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흑인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페타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영흥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48
  • 대표적인 인기가수 2명/음반계 큰손 연루 “충격”/가요계 파장

    6일 국세청이 발표한 탈세자 명단에 오른 史孟錫 라인음향 대표와 가수 金建模·申昇勳은 9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해온 인물이다. 음반업계에서 활동한 史씨는 지난 93년 말부터 가요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金建模·申昇勳을 비롯해 클론,박미경,노이즈 등이 소속가수다. 金建模와 申昇勳은 흑인음악과 발라드로 90년대 가요계의 인기를 양분해 온 라이벌.탄탄한 가창력과 깨끗한 무대 매너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히트곡을 발표했다. 金建模는 92년 9월 ‘잠못드는 밤에 비는 내리고’로 데뷔한 이후 ‘첫 인상’,‘핑계’,‘잘못된 만남’,‘스피드’등을 히트시켰다.지난 해 말 5집 앨범 ‘사랑이 떠나가네’를 내놓았고 史사장과 함께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깨끗한 마스크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트레이드 마크로 ‘발라드의 황제’라 불리는 申昇勳은 대전 다운타운가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약하다,90년 11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스타로 떠올랐다.이후 ‘보이지 않는 사랑’,‘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등으로 계속 인기를누려왔다. 이번 국세청 발표로 음반업계 판도와 가수들의 인기 순위에 커다란 변동이 예상된다.국세청이 밝힌 혐의 내용은 원가 과대계상이나 수입신고 누락 등에 의한 세금포탈이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할 때 그 충격파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가요계 일부에서는 이번의 국세청 발표가 음반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사실 만성적인 무자료거래나 전체시장의 20∼30%에 달하는 불법음반 등의 불공정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한다는 것이다.
  • 국악­서양음악 벽 허물기/K­1TV 국악한마당

    ◎재즈·록과의 만남 등 파격적 시도 KBS가 지난달 15일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초점을 둔 사항 중 하나가 전통 문화와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늘린 것이다. ‘찬밥’ 신세이던 1TV의 ‘국악 한마당’을 일요일 상오 9시로 옮기고 방영시간도 1시간으로 늘린 사실은 이런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새로 단장한 ‘국악 한마당’은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달 21일과 28일 두 차례의 방송에서 국악만을 무대에 올리는 기존의 형태에서 과감히 탈피,크로스오버 공개 콘서트 형식으로 재즈·록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21일 첫 무대에서 피아노·드럼·국악기의 반주가 흐르는 가운데 이정식의 색소폰과 김원선의 피리 선율이 감미롭게 어우러지면서 동·서양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흑인에게 영혼의 소리인 재즈·블루스와 우리의 신명과 한을 담은 국악이 이루는 조화는 듣기에도 보기에도 좋았다. 진도 씻김굿의 명인 박병천옹이 가르치는 우리 장단과 우리 춤의 시간도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는 뛰어난 편성이었다. 28일에는 80년대를 풍미한 안치환과 자유밴드가‘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국악기와 밴드로 반주,벽허물기를 시도했으며 안숙선 명창과는 ‘남누리 북누리’를 함께 불러 국악의 지평을 넓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진행자인 이금희 아나운서도 한복 차림의 정적이고 정형화한 진행에서 탈피해 현대 국악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악의 비중을 너무 낮게 두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악보다는 서양음악이 판을 주도하는 느낌을 줘 자칫하면 국악 자체에 멋을 변질시킬 우려를 낳았다. 이제 출발 단계이기에 가능성은 더 열려 있다. 모처럼 시도한 우리 문화 가꾸기가 더 깊게 뿌리내려 주기를 바란다.
  • 투혼의 한국축구/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한국축구대표팀이 벨기에 팀을 맞아 1대1로 비기던 25일 하오(현지시간). 경기가 열린 파크 프린스 경기장 안팎은 물론 온 파리시내가 ‘한국열기’로 가득했다. 비록 비겼지만 내용면에서 벨기에를 완전히 압도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가히 혈전이라 할만큼 우리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한국의 투혼(鬪魂)이 되살아난 멋진 한판이었다. 이상헌의 철벽수비가 특히 돋보였다. 최종 수비수로서 벨기에의 브라질출신 흑인스타 올리베이라를 무력하게 하는데 일등 공을 세웠다. 다리부상으로 물러난 이상헌의 뒤를 이어 후반에 들어간 이임생도 다친 머리를 붕대로 감고서도 닐리스가 이끄는 상대 공격수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우리 월드컵 출전사상 10번째 골을 성공시킨 유상철의 공수양면에서의 활약은 눈부시기조차 했다. 온 국민의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준 천금 같은 골이 아닐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축구의 저력과 재기 가능성을 확인시 켜준 골이기도 했다. 언제나 제 몫을 다해준 홍명보의 늠름한 모습과 날쌘돌이 서정원의 활약도두드러졌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이긴 것은 경기뿐만이 아니다. 경기장 남쪽과 전면 중앙 스탠드에 자리잡은 3천여 우리 응원단의 함성도 3만여 벨기에 응원단을 눌렀다. 전반 6분, 한골을 빼앗기고도 젼혀 흔들림없이 꽹과리를 치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들이 누구인가. 1천8백여 ‘붉은 악마’를 제외하고는 프랑스 교민을 비롯, 이웃 영국과 이탈리아,스페인,독일등지에서 자비를 들여 응원하러 온 교민들이다. 축구가 생활의 일부이다시피한 유럽에서 네덜란드에 패배한 충격과 실망이 엄청났는데도 이렇게 다시 모여든 것이다. 런던에서 여행업을 하는 김기선씨는 교포들이 응원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 넓히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랬다.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라 바로 국력의 대결장이었다. 16강에 들지 못한 것은 우리의 수준이 그 정도 밖에 되지 못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벨기에에 비기고도 좋아하는 이유는 후회없이 싸운 한판이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은 물론 벨기에 사람들도 박수를 건네지 않았는가. 2002년 대회를 우리가 주최한다. 실력이 따르지 않는 ‘투혼’만으로는 어림없다. 되살아난 한국의 자존심을 세계속에 우뚝 세우기 위해 실력을 쌓자.
  • “인종차별정책 남아공 백인정부 흑인 겨냥 생화학무기 개발 추진”

    ◎연구참여 학자 증언 【케이프타운 AP AFP 연합】 인종차별정책으로 악명을 날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부가 흑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생화학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했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81년부터 94년까지 진행된 남아공 정부 보안군의 생화학무기 개발계획에 동원됐던 얀 루렌스 박사는 7일 백인통치 시대의 인권탄압 등을 조사중인‘진실화합위원회(TRC)’ 특별청문회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루렌스 박사는 백인정부 보안군의 요청에 따라 자신은 80년대 말까지 독이든 특수반지,손잡이에 독을 주입할 수 있는 스크루드라이버,독처리가 된 우산 등을 만드는데 참여했으며 이같은 무기가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폭로했다. 그는 특히 당시 계획은 백인정부의 군 고위층이 승인했던 것으로 이 외에 우편폭탄,비누폭탄도 있었으며 인체 수정실험을 위해 군연구소에 장비를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재즈와 오케스트라 ‘이색 만남’

    미국 흑인들사이에서 태동해 지금은 현대음악에서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된 재즈.깊이 있는 음역과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즉흥성 때문에 국내에서도 갈수록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이런 재즈를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듣는다. 덕수궁과 올림픽공원 야외음악회 등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가 이번엔 분위기 있는 재즈음악으로 음악팬들을 찾아나선다.8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갖는 53회 정기연주회 제목도 그래서 ‘재즈와 클래식의 어울림’이다. 연주곡은 정통재즈 ‘위켄드 인 모나코’와 ‘메모리 어바웃 페루’ ‘서머 타임’ 등을 비롯,경쾌하고 율동감 있는 ‘프롬 더 바흐’와 영화음악 ‘흑인 오르페’등 13곡.
  • 美 흑인지도자들 한국 돕기 운동

    ◎목사 등 80여명 실직자 지원방안 협의 【뉴욕 연합】 뉴욕의 흑인 지도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한국의 실직자와 노숙자들을 위한 ‘한국 돕기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와튼 니콜슨(55),웨슬리 체나윗(56) 목사 등 흑인 지도자 80여명은 25일 뉴욕시내 메리오트호텔에서 ‘한국 돕기운동’ 모임을 갖고 한국을 돕기 위한 구체적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니콜슨 목사는 특히 이 자리에서 “미국의 가난한 흑인들이 수년 전 한국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큰 용기를 얻었으며 한국을 올바로 이해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이제 우리가 실직 등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한국인들에게새 희망을 주고 그들을 돕는데 앞장서자”고 당부했다. 이들 지도자들은 또 재미교포 목사인 헨리 洪목사(한국명 洪현희,미국 평화목자회장)와 경실련 등이 설립을 추진중인 식량은행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식량을 저장·배급하는 이같은 은행이 한국에서 설립되면 적극 지원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날 흑인 지도자들로부터 한국 돕기운동과 관련,연사로 초청받은 헨리 洪목사는 설교를 통해 “한국 경제는 2∼3년 내에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전국적으로 150만명에 이르는 실직자가 발생하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현재 실직의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사람과 매달 증가 추세에 있는 노숙자들을 도울 수 있는 미국식 식량은행의 설립 추진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 ‘美 노동장관 비리’ 特檢 임명 요청/리노 법무장관 법원에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재닛 리노 미법무장관은 11일 직권 남용과 불법선거모금 개입 혐의를 받아온 알렉시스 허만 노동장관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키로 결정했다. 리노 장관은 이날 허만 장관이 과거 백악관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한 컨설팅회사의 업무를 도와주고 상담료의 일부를 받았다는 주장과 민주당 정치헌금에 개입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을 법원에 요청했다.허만 장관은 특히 지난 94∼96년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친구인 바네사 위버가 경영하는 컨설팅회사의 부탁으로 위성전화서비스의 허가를 받도록 알선하는 등 업무상 도움을 주고 상담료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왔다.흑인계 여성각료인 허만 장관은 또 공화당으로부터 외국인 자금이 불법적으로 민주당에 유입될 수 있도록 막후역할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 미국에 역사소설 바람

    ◎“소설가들이 부쩍 과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컴퓨터가 할수 없는 일.즉,사람들을 과거로 데려가는 일을 하고픈 까닭일까”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최근 미국에 역사소설 붐이 일고 있다. 어느 나라나 현재가 아닌 지나간 과거를 무대로 삼거나 잘 알려진 과거사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린다.미국의 대히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뿌리’도 역사소설이지만 미국도 역시 딴 나라들에서 처럼 대개의 역사소설은 익히 알려진 과거사를 재탕삼탕 ‘쥐어짜는’ 데 그쳐 역사인식이나 소설적 격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 대신 미국에서는 플리쳐 상이 증명해주듯 역사 넌픽션과 전기 문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그런데 최근 소재가 쓰기 쉬워 고른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적 형상화의 방편으로 역사를 택한 격조있는 역사소설이 동시에 많이 나오고 있다고 뉴스위크 지는 주목하고 있다. 뉴스위크가 거명한 소설가들은 워낙 예전부터 소설적 자존심이 ‘센’ 작가들이라 최근의 동시출간을 아류가 범람하는 유행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있다고 뉴스위크는 말한다.그렇더라도 지난해 하드커버로 1백60만부가 팔린 찰스 프레이져의 ‘추운 산’을 이런 붐의 엔진으로 꼽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무명작가의 첫 소설인 이 작품은 남북전쟁을 소재로 했다.지난해에는 이 작품 말고도 헤비급 역사소설이 여럿 있다.플리쳐 수상작가인 돈 드릴로의 ‘지하세계’는 미국의 냉전시대를 조람한 것인데 마지막까지 ‘추운 산’과 내셔널 북 상을 다투가 밀려났었다.미국에서 가장 현대적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고도 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말 그대로 가장 신비한 작가인 토머스 핀천은 독립전쟁 무렵이 시간대인 ‘메이슨과 딕슨’을 발표했었다. 올 봄엔 중량급 작가들의 역사소설이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말한다.엘모어 레오나드의 ‘자유 쿠바’는 19세기 후반의 미·스페인 전쟁을 다루고 있고 T.C. 보일의 ‘쪼개진 바위’는 금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백만장자 아들 이야기로 그의 정신병적인 성적 행태와 환상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조명하고 있다. 놀라운 박람강기에다 현학적 문체로 유명한 고어 바이들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역대 미 대통령 납인형들이 밤만 되면 되살아나 13살짜리 소년에겐 역사적 사건들을 다른 식으로 전개해 보여주는 환상적인 ‘스미소니언 협회’를 냈다.러셀 뱅크스는 남북전쟁 1년전에 흑인 노예의 반란을 기도하다 처형당한 열렬한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을 주인공으로 7백매가 넘는‘구름을 가르는 사람’을 썼다. 이밖에도 올 봄에 선보인 역사소설도 많는데 “소설가들이 과거에 부쩍 열을 올리는 것은 컴퓨터의 사이버 혁명과 상관이 있다.작가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즉 사람들을 과거로 데려가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고 토머스말론이란 작가 겸 비평가가 말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한다.
  • 킹 목사 암살범 사망/진상 영원히 미궁에

    【내슈빌·워싱턴 AP AFP 연합】 미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 암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줄곧 혐의를 부인해온 제임스 얼 레이(70)가 복역중 23일 사망,사건의 진상이 영원히 미궁에 빠지게 됐다. 미 테네시주 교정국은 9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레이가 내슈빌 메모리얼병원에서 이날 상오 숨졌다고 공식발표했다.최종사인은 간경변에 따른 신장기능 정지 및 기타 합병증.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제임스 먼로(美國의 대통령 문화:18)

    ◎‘먼로 독트린’ 천명… 미 외교정책 기틀 확립/재임전 국무­전쟁장관 자격 영과 전쟁서 승리/성실과 결단력으로 재선… 평화­번영시대 열어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는 1823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 독트린’을 통해 신생 미합중국의 독자적 외교정책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독립초기 신생국의 체제정비에 심혈을 쏟았던 버지니아왕조의 막내이자 건국세대(Founding Fathers)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두차례 임기 내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특히 그는 신생국가로써의 국내외적 불안정을 씻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호감의 시대’(Eraof Good Feelings)를 전개시켜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중퇴 독립전쟁 참전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던 1758년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의 개척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했으며 16세 되던 해에윌리엄스버그에 있던 당시 버지니아 식민지의 최고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대학에서 수학했다.그러나 2년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륙군 소위로 참전,뉴욕전투,저먼타운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특진을 거듭,1778년 전쟁이 끝날때는 계급이 중령까지 올랐다. 특히 먼로는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에 의해 남부 미군의 현황파악을 위한 연락관으로 임명받아 활약했으며 이후 줄곧 제퍼슨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전쟁이 끝난후에는 제퍼슨의 지도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프레데릭스버그에서 개업했다.제퍼슨과 먼로의 우정은 16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계속됐다. 이어 먼로는 1782년,24세의 약관에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듬해에는 대륙회의 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활약한뒤 잠시 정계를 떠나 변호사일에 주력했다.그러나 1790년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제퍼슨,매디슨(4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결성,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당에 맞섰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주재 대사를 맡는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이렇다할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1794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프랑스와의 관계강화에 노력했으나 프랑스혁명 신봉자인 그의 노골적인 친프랑스 언동은 워싱턴의 분노를 사게돼 2년만에 소환되고 말았다.그는 다시 1803년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대사로 임명됐으나 역시 본국정부 의도와 다른 무역협상을 벌임에 따라 다시 소환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에 먼로는 제퍼슨에 의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구매협상 대표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1천500만달러에 당시 미국영토 2배에 달하는 영토를 구매토록하는 협상을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성사시킴으로서 협상력을 과시했다.또 매디슨에 의해 국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812년 영국에 선전포고,전쟁에 돌입했다.그러나 워싱턴이 함락되는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을 전쟁장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국무와 전쟁 겸임장관이 된 그는 탁월한 지휘역량을 발휘,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후 매디슨 행정부 말기는 전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됐고 그 주역인 먼로의 인기는 치솟았다.대사로 프랑스·영국을 오가는 사이사이에 두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도 갖춘 그는 자연스레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1816년 선거에서 당선,매디슨의 뒤를 잇게 됐다. 59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다양한 공직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거기서 생성된 그의 정치감각은 탁월한 각료 임명으로 나타났다.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전쟁장관 존 칼훈,재무장관 윌리엄크로포드,법무장관 윌리엄 워드 등은 지성적이고 뛰어난 능력과 함께 단합이 잘돼 환상의 진용으로 평가됐다.더우기 먼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굳센 결단력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했다. 먼로는 남부와 서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820년 실시된 두번째 선거에서는 232표중 231표를 얻어 만장일치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에 이어 최다 득표로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먼로는 퇴임후 리스버그의 오크힐에서 거주했으나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5년후 부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뉴욕의 딸 집으로 옮겨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831년 7월4일,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퇴임후 곤궁… 사저 매각 먼로의 유적으로는 현재 프레데릭스버그의 박물관,사저이던 샬롯빌의 애쉬론,리스버그의 오크힐 등이 보존돼 있다.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은 먼로독트린을 초안하던 책상 등 다양한 유품들이 진열되고 있다.또한 애쉬론 사저는 퇴임후 경제난으로 팔았던 것을 1931년 박애주의자 제이 존스가 구입,일반에 공개했다.1974년 존스 가족은 그의 모교인 윌리엄&메리 대학에 이를 기증,이 대학이 박물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먼로는 제퍼슨,매디슨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제퍼슨은 자신의 사저인 샬롯빌의 몽티첼로 인근에 ‘지적공동체’(intellectual community)마을의 설립을 위해 이들을 모여살도록 권고,애쉬론을 먼로에게 소개했으며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도 이 부근에 있다. ◎먼로 지명/도시·학교·산·교회 등 238개/워싱턴·링컨과 함께 도시지명 ‘빅3’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도시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많다.신대륙으로의 이주자들이 정착,새 도시를 건설할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먼로 지명은 워싱턴,링컨과 함께 미대통령 가운데 도시명으로 가장 많이 쓰인 ‘빅3’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지명이 49곳으로 가장 많고,링컨은 45,먼로는 44,제퍼슨은 41 순으로 나타나 있다.이 숫자는 미자동차협회(AAA)가 최근 발행한 ‘로드 아틀라스’에 나타난 지명을 기준으로 한것이기 때문에 산·강·호수 등 자연의 이름과 학교·역 등 공공기관의 이름까지 합하면 실제로 대통령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훨씬 많다. 먼로박물관이 펴낸 먼로 지명 연구 책자인 ‘먼로,USA’에 따르면 미국내 ‘먼로’가 들어가는 지명은 모두 238개에 달한다.그리고 미국 해방흑인들이 세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와 남극해의 먼로섬 등 미국 밖에도 존재한다. 미국내 50개주중 36개주에 흩어져 있는먼로 지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시이름으로 26곳이 있다.인구 40명인 노스 다코타주의 소읍에서부터 인구 5만5천인 루이지애나주의 먼로시까지 다양하다.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 이름은 모두 18곳으로 인구 9천명의 미주리주 먼로카운티에서 인구 71만명의 뉴욕주 먼로카운티까지 그 규모가 제각각 이다. 먼로 지명이 가장 많은 주는 오하이오로 35곳이 있고,다음은 인디애나 23,일리노이 19,미주리 17,아이오와·펜실베이니아 13,버지니아 11 순을 기록하고 있다.자연지명으로는 강·호수명 10곳,산 6,숲 2,협곡 2,다리·전망대 1곳 등이 있고 교회 7곳,학교 3곳 등도 있다.
  • 보타 철권 11년 법의 심판대에/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주역

    ◎흑인 판사 주재 오늘 역사적 재판 금세기 인류가 저지른 최대의 수치라 할 수 있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이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백인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손가락 하나로 흑인인권을 좌지우지하던 P.W.보타 전 남아공대통령(89)이 14일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따지기 위해 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지난 시절 흑인에 대해 판사임용을 거부했던 그가 빅터 루가주라는 흑인 판사 앞에 서게 돼 그에 대한 재판은 판결 자체보다도 더 극적인 시대상황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보타는 1978년 백인통치시대의 남아공대통령직에 오른 뒤 무려 11년동안 자유를 부르짖는 흑인에 대해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렀던 인물.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내고 흑백 공동정권 창출을 담당했던 데 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1989년 국민당수직에서 물러났던 보타는 남아공의 자유화 물결이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말 흑인들에 대한 폭행과 살인,고문 등 갖가지 만행을 저질러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남아공이 각종 제재조치를 받게 만들었었다. 그를 재판정에 세운,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화해위원회는 보타가 지난 시절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자행한 갖가지 폭거를 묶어 3가지 혐의를 적용,개별적인 소환장을 발부했었다. 그러나 보타는 은퇴한 2명의 의사를 내세워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이 소환에 응할 수 없으며 “위원회가 백인들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1천700쪽에 달하는 답변서를 내면서 소환에 불응했었다. 검찰측의 프랭크 칸 검사는 “그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는 재판을 받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결국 심판대에 서게 만들었다. 혹독한 통치스타일로 ‘거대한 악어’(Big Crocodile)로 불리던 보타는 이제 세월의 흐름 앞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운데 만년을 보내던 고향에서 멀지 않은 케이프타운 동쪽 385㎞ 떨어진 조용한 도시 ‘조지’시에서 죄값을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클린턴 “킹 목사는 위대한 영웅”/서거 30주년 라디오 연설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4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 서거 30주년을 맞아 “그는 미국의 위대한 영웅중 한 사람”이었다고 칭송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같이 킹 목사에게 찬사를 보내고 미국민들은 킹 목사의 말씀에 유념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 美­阿 신동반관계 구축/클린턴 아프리카 6개국 순방 결산

    ◎실질 성과보다 상징성 무게/민주화·인권문제 부각 실패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클린턴 미 대통령은 가나,우간다,르완다,남아프리카공화국,보츠와나,세네갈 등 아프리카 6개국에 대한 12일간의 순방외교를 끝나고 3일 워싱턴에 귀환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은 애초부터 실질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게 부여됐으며 실제 평가 또한 그러하다.미국 대통령으로서 최대로 가장 길고 광범위한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클린턴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열광과 환호는 클린턴 대통령의 예상을 훨씬 웃돌아 그를 크게 고무시켰지만 그의 순방은 끝내 상징성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7억 인구,48개국의 아프리카는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평균 연 5%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반 이상의 국가가 자유투표로 지도자를 뽑고 있다.클린턴의 이례적 방문은 이같은 긍정적 사실에 대한 미국의 인정을 뜻하는 것이나 아프리카인이 원하는 경제성장,민주화에 대한 미국의 실체적인 지원이나 개입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과거 3백년간에 걸친 미국의 노예수입과 관련,최소 2천만명 노예 무역의 시발지인 세네갈의 고리섬을 찾아 유감을 표시했으나 아프리카인 및 미국내 흑인들이 바라는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첫 기착지 가나의 50만명 환영인파 운집,르완다에서의 종족학살 논의,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수감지인 로벤섬 방문,보츠와나의 초베 사파리와 환경보호 역설 등은 뉴스사진 용 활동일 뿐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또 나이제리아,케냐,콩고 등의 민주화 및 인권 문제 개선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클린턴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은 섹스 스캔들로 골치아픈 국내정치 상황과 연관해 올 상반기 촘촘히 잡힌 해외순방의 스타트란 의미가 더 클 수 있다.4월 남미 무역정상회담,5월 영국경제정상회담,6월 중국방문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아프리카방문은 아프리카를 둘러싼 프랑스 등 유럽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일부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한다.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만델라 대통령을 제외한아프리카 지도자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밝힌 미국과의 무역에서 특혜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아프리카 성장 및 기회법안’이 아프리카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 국산­할리우드 수준작 대격돌

    ◎한국영화 ‘강원도의 힘’ ‘남자이야기’/‘아이언마스크’ 스타 내세운 호화대작/드물게 소개되는 호주영화도 개봉 한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의 대리전 무대처럼 보이던 극장가가 4일 분위기를 일신한다.수상결과에 따라 일부 영화가 막을 내리거나 상영관 수가 줄면서 그 빈자리를 새 영화들이 채우게 된 것. 이에 따른 개봉작은 무려 7편으로 이중에는 한국영화로 ‘강원도의 힘’과 ‘남자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나머지는 스타를 내세운 전형적인 할리우드 작품(‘아이언 마스크’‘스피어’‘미스터 커티’)이거나 개성이 강한 독립영화(‘후드럼’),국내에 드물게 소개되는 호주영화(‘내가 쓴 것’)등이다. ‘강원도의 힘’(미라신코리아 제작)은 지난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로 데뷔해 국내외 평단에서 격찬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두번째 작품.90년대 말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30대 유부남 대학강사와 여대생의 엇갈린 사랑이라는 형태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같은 시간,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그려낸다.곧 ‘시공간 해체’라는 새로운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결국은 관객 스스로 영화를 재구성해 해석하게끔 유도한다.흥행결과는 미지수이지만 충무로에서는 다음달 열리는 제51회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 마스크’는 국내에서 인기절정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간판으로 삼고,제레미 아이언스·존 말코비치·제라르 드파르디유 등 연기파들을 조연으로 배치한 호화 대작이다.알렉상드르 듀마의 고전소설인 ‘달타냥 이야기’3부작 가운데 ‘철가면’(영어제목 The Man in the Iron Mask)을 영화로 만들어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고,선과 악을 함께 연기하는 디카프리오의 1인2역도볼 만하다. ‘스피어’도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에 더스틴 호프만·샤론 스톤·사무엘 잭슨 등 톱스타를 동원한 점에서는 ‘아이언 마스크’에 뒤지지 않는다.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을 맡은 ‘미스터 커티’는 여성의 성공담을 그린 코미디영화.여성(게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한 증권투자 상담가가 가상의 동업자인 백인남자를 앞세워 성공을 거머쥔다는 내용이다.참신한 소재에 성·인종차별을 깨부수는 주제여서 상당히 유쾌함을 줄 만한데도 줄거리에 사실성이 결여돼 가슴 후련한 웃음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한편 ‘후드럼’은 지난 30년대 뉴욕 할렘가에서 실제 발생한 백인·흑인갱단의 세력다툼을 사실적으로 담았다.갱스터무비의 틀을 가졌지만 흑인들이 만들고 흑인의 눈으로 해석한 흑인영화이다.백인갱단의 흑인거주지 침입을 막아낸 주인공 ‘범피’ 존슨을 영웅이면서도 인간적 고뇌에 번민하는 인물로 그렸다. 이밖에 호주영화 ‘내가 쓴 것’은 예술 또는 예술가적인 삶과 인간심성의 연관성을 고급스럽게 포장했지만 응집력이 부족해 미스터리팬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듯.
  • “킹 목사 암살 공모 새증거 있다”/오늘 타계 30주년

    ◎미망인 “정부측 사건 은폐·축소 물증 확보” 【애틀랜타 AP AFP 연합】 미국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30주년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망인인 코레타 스콧 킹 여사가 2일 암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킹 여사는 지난 68년 4월4일에 발생한 킹 목사 암살사건은 살인청부업자 제임스 얼 레이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새로운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지난 60년대 킹 목사를 도와 민권운동을 펼쳤던 앤드루 영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당국이 단서가 될만한 것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않는 등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으며 이에 대한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앤드루 존슨(美國의 대통령 문화:16)

    ◎‘세기의 부동산거래’ 러서 알래스카 사들여/‘無學의 양복장이’서 링컨 피살뒤 대통령 승계/재임중 남북전쟁 수습·국민상처 치유에 헌신 【그린빌(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저는 9살때부터 양복일을 배웠습니다.정치를 해오면서 나 자신이 양복쟁이 출신임을 감추려한적은 한번도 없습니다.왜냐하면 마름과 재단의 정확성,솔기솔기 마다의 세심한 주의,또한 고객과 약속 날짜의 준수 등 양복쟁이로서 몸에 익힌 사항들이 정치생활의 원칙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로 갑작스레 대통령직을 승계,미국의 17대 대통령(1865­1869)에 취임한 앤드루 존슨이 취임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한 말이다. ○의회 도전 강력하게 맞서 동부 테네시의 소도읍 그린빌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존슨 대통령의 존재는 전임자의 탁월한 업적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그러나 그는 남북전쟁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미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또 의회의 도전에과감히 맞서 대통령의 권한을 수호해냈다.세기의 부동산 거래라고할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알래스카 구입도 그의 재임중 일이다. 무엇보다도 무학(無學)의 양복쟁이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에 오른 그의 입지전적 생애는 일반대중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널리 기억되고 있다. 1865년 4월14일 밤,워싱턴 DC 한복판의 포드극장에서 연극 관람중 남부 과격주의자인 존 부츠에 의해 링컨 대통령이 피격된지 하룻만에 사망하자 남북전쟁의 전후처리문제로 시끄럽던 미정국은 혼돈의 와중에 빠지게 됐다.재선된 링컨의 임기가 시작된지 불과 40일만 이었다. 15일,뜬 눈으로 밤을 지샌 부통령 존슨은 링컨이 눈을 감은 극장앞 3층집의 옆방에서 각료들이 모인 가운데 대법원판사 새몬 체이스 앞에서 취임선서를 했다.그는 링컨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자유정부의 원칙과 대중의 권익보호에 압장설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최대 현안은 항복해온 남부 주들의 재건문제 였다.링컨과 마찬가지로 존슨은 현 지도자들에게 주정부를 맡기는 점진적인 재건계획을 지지했다.또한 남부에 취해졌던 해상봉쇄령을 풀고 대사면령도 내렸다.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점령군의 입장에서 남부 반란자들을 혹독하게 다룰 것을 주장해온 북부 중심의 과격파들은 이같은 존슨의 유화책에 크게 반발했다.의회는 남부 전역에 군사정부를 설치하고 400만 자유노예를 위해 강력한 자유노예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존슨은 거부권으로 맞섰다. 대통령의 유화책을 악용한 남부의 기득권층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며 흑인들에게 사적인 형벌을 가하는 등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대통령과 의회와의 불협화음은 점차 심화됐으며 이는 양자간에 보다 큰 권력장악을 위한 힘겨루기 양상을 띄어갔다.마침내 중간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급진파는 자신들의 주장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존슨의 축출을 모의하게 됐다.그러던 차에 존슨이 급진파와 가까운 국방장관 애드윈 스탠턴을 해임하자 상원 동의 없이 대통령 임의로 각료를 해임할수 없다는 공직신분보장법 위반을 구실로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다. 두달여의 논란 끝에 68년 5월,탄핵안은 하원에서 128대 47로 통과 됐다.이어 상원의 표결로 존슨의 대통령직 존속 여부가 결정되는 순간 이었다.그러나 전체 54명중 35명만 찬성,3분의 2 선에서 1표가 모자람으로 존슨은 아슬아슬하게 미 역사상 최초의 탄핵을 면할수 있었다. ○이웃 구둣방집 딸과 결혼 69년 대통령 퇴임후 존슨은 고향으로 돌아와 연방의회 진출을 다시 도모했다. 두차례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74년 마침내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뜻을 이뤘다.그러나 7개월후 6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1808년 노스 캐롤라이나의 랠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슨은 3세에 부친이 죽자 생활이 어려워진 모친이 돈을 받고 9세때 양복점집으로 보냈으며 어깨넘어로 양복일을 배우게 됐다.그러나 양복점 주인과 어머니와의 계약이 21세때까지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그는 15세때 그곳을 도망쳐 여러곳을 전전하다 18세때 그린빌에 정착,양복점을 개업하게 됐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솜씨 또한 좋아 이내 유명해졌으며 이듬해에는 이웃 구두방집 딸인 엘리자 메카들과 결혼해 자리를 잡게 되었다.메카들은 남편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매사에 열심인 존슨은 남다른 학구열을 보였다. 그의 양복점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있던 그는 20세에 시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년후에는 시장으로 선출됐다.그후 주하원,주상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에 진출했으며 테네시 주지사,상원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그는 모든 선출직을 단계적으로 거쳐 링컨의 러닝메이트가 됐던 것이다. ◎“노력하는 서민 대통령으로 인식”/사적지 박물관·옛양복점·私邸·묘지 등 보존/“생전에 쓰던 재단기구서 존슨의 숨결 느껴”/카렌 래핑웰 존슨사적지 안내 담당관 【그린빌(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애팔래치아 산록 구릉에 위치한 그린빌시가지 한복판에 자리잡은 앤드루 존슨 국립사적지의 카렌 래핑웰 안내담당관은 “앤디(존슨 대통령의 애칭)가 양복지을때 사용하던 가위,다리미,골무 등을 볼때마다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면서 “지금도 양복점 건물 안으로 앤디가 들어설 것같다”며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존슨 사적지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비지터 센터를 중심으로 박물관과 옛양복점,옛집 등이 있고 메인스트리트에 사저가 있으며 시가지 남쪽에 앤드루 존슨 국립묘지가 있다.특히 앤디가 경영하던 양복점은 목조건물로 부식돼가고 있기 때문에 1958년 국립공원국의 관리로 되면서 건물 외부에 기념관을 지어 실내건물로 만듦으로써 이건물을 영구보존 할수 있게 됐다. ­존슨의 양복점에 얽힌 에피소드는. ▲앤디는 18세때 개업해서 12년 동안 양복점을 운영했다.시의원,시장,주하원의원 때까지 그의 직업은 양복쟁이 였다.그의 양복점은 매우 장사가 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양복점을 그만둔 후에도 자신의 옷은 손수 지어 입었으며 주지사 시절 우정의 표시로 이웃의 켄터키 주지사에게 양복을 지어 선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린빌 시민들의 존슨 대통령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 ▲앤디 생존시의 그린빌은 인구 500명 이었으나 오늘날은 1만4천명의 큰도시가 됐다.그러나 대통령의 도시에 사는데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비지터 센터 옆 길모퉁이에의 동상과 도시 남쪽에 우뚝 솟은 국립묘지의 중앙에 높은 기념탑을 세운 것은 이곳 시민들이다. ­존슨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링컨의 그늘에 묻히고 의회의 강한 견제로 라이딩스의 대통령 평가 순위는 41명중 39위로 바닥권이다. 그러나 그는 서민대통령으로 노력하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게 심어져 있다.
  • 미 신아프리카 정책 ‘시동’/클린턴 20년만의 첫 순방

    ◎인권·자유 지원 경협 확대/‘동반자관계’ 격상 계기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1일간의 일정으로 22일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클린턴 대통령은 사하라 이남에 위치한 가나·우간다·남아프리카공화국·보츠와나·세네갈 등 5개국을 들러 정치 및 경제교류 협력방안을 논의한 뒤 내전에 시달리는 르완다의 키갈리 국제공항에 잠깐 머물며 난민들을 다독거릴 계획이다. 미 대통령으로서는 20여년 만에 이뤄지는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은 단순히 정치·경제교류의 차원을 넘어,그동안 무관심했던 미국의 대아프리카 인식을 바꾸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빈곤·기아·질병 등 부정적으로 각인된 미국내 흑인사회에 대한 인상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특히 아프리카 중시 정책을 통해 미국과 아프리카를 동반자관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을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그는 이번 방문길에서 지난주 하원을 통과한 ‘아프리카의 성장 및 기회법’을 널리 알린다는것.상원 표결을 앞둔 이 법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규칙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아프리카 상품에 대한 수입을 전면 허용하는 한편 미국의 아프리카 투자를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다.클린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우간다 등 중동부 아프리카국가들을 방문,인권 및 정치적 자유를 신장시키면 강력한 지원을 하겠다는 의도도 천명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은 이번 아프리카 순방에 따른 경제적 이익도 기대하고 있다.수잔 라이스 미국무부 아프리카담당 차관보는 “이번에 방문하는 국가들은 지난해 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나라들”이라며 “6억∼7억에 이르는 거대한 아프리카시장에 미국 상품의 내다팔아 수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취임축가/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지난 93년,16년만에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미국 클린턴 대통령 취임행사 첫날에는 백악관앞 광장과 링컨기념관에서 다이애나 로스,레이 찰스,퀸시 존슨 등 인기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다.다음날은 케네디센터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갈채’‘청소년을 위한 갈채’공연과 저녁엔 캐피털센터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국가인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열창했다.제42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에는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역시 국가를 불렀고 웨이크 포레스트대학 교수인 흑인시인 마야 안젤라가 축시를 낭독했다.유명작곡가나 시인에게 따로 작사나 작곡을 의뢰하지 않고 ‘애국가’와 ‘축시’를 취임축가·축시로 쓰고 있다. 내일이면 우리도 50년만에 처음 이룬 여야 정권교체로 야당출신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취임식을 갖게된다.나라 안팎이 IMF몸 살로 어수선한 형편이라 호화취임식은 엄두도 못내지만 어쨌든 다른때에 비해 그 절반 수준에서 검소하게 치러질 모양이다.그래선지 지금까지 유명작곡가에게 의뢰했던 취임축가 없이 KBS가주관한 ‘겨레의 노래’공모에서 당선한 ‘아,동방의 아침의 나라’가 취임축가를 대신하고 있다. ‘아,동방의 아침의 나라/햇빛이 찬란하다/반만년 역사속에 갈고 닦은 슬기로움/새시대 열리는 이땅위에/우리 모두 힘을 모아 나아가자’로 시작되는 전주는 아침햇살이 떠오를 때의 찬란한 느낌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전진,힘과 용기를 주는 멜로디가 신선하다.한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69세의 김경희씨가 ‘새벽기도후 받은 영감’을 노랫말로 적었고 바로 그의 따님인 임준희씨가 작곡,소프라노 조수미가 서울시향의 반주에 맞춰 노래부른다.우리의 취임식은 국가적 난국을 극복하려는 장중하고 맑고 힘찬 분위기로 국민적 화합과 용기를 북돋우는 자리일 수밖에없다.지난번에는 최영섭 작곡의 ‘해뜨는 아침의 나라’가 취임축가로 창작됐으나 그날 하루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다.오늘의 축가는 ‘겨레의 노래’로 만들어진만큼 국민화합을 다짐하는 노래로 계속 불려져도 괜찮을 것같다.
  • 상대 체면 살려주는 협상의 명수/아난 총장은 누구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유엔의 무기사찰을 둘러싼 합의안을 도출해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59).분쟁 양측의 자존심을 살려주며합의를 이끌어내는 탁월한 협상가란 명성에 걸맞게 이번에도 그는 무력응징과 외교적 타결로 대립한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입장을 하나로 절충하고,이라크가 체면을 잃지 않으면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에 양보토록 하는데 성공했다. 한주전만 하더라도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아랍연맹과 러시아·프랑스 등으로부터 중재노력을 게을리 한채 미국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는 ‘세계 평화 조율사’라는 유엔사무총장의 명예를 건 이번 바드다드 방문에서 지난 10월부터 고조돼 온 제2의 걸프전 위기를 한풀 잠재웠다. 타고난 유머감각과 유화적인 성격,각국과의 원만한 관계,91년 유엔평화유지군에서 보인 협상력 등 특유의 자산으로 이번 합의안을 이끌어냈다.그러나 그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나 출신인 그는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에이어 지난 97년초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아프리카 흑인으로,또 유엔 사무국출신으론 처음 유엔의 수장이 된 인물.24살때인 62년 유엔에 투신,30년 동안 유엔 각 부처에서 일했다.미국 미네소타대학 졸업후 제네바에서 경제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으며 유엔에 근무할 당시 미 MIT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아난은 지난 84년 스웨덴 출신 법률가인 라게르그렌 여사와 재혼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