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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총 아닌 꽃다발로 은행 턴 ‘기발한 강도’

    권총 아닌 꽃다발로 은행 턴 ‘기발한 강도’

    뉴욕 경찰이 ‘꽃다발 은행강도’를 추적하고 있다. 30대로 보이는 남자는 꽃다발만 갖고 현금을 털어(?) 도주했다. 사건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 첼시의 한 은행에서 발생했다. 평범한 옷 차림의 흑인 남자가 손에 꽃다발을 든 채 은행에 들어섰다. 저벅저벅 창구로 걸어간 남자는 꽃다발에 붙어 있는 메시지 카드를 떼어 창구직원에게 건냈다. 메시지를 읽은 직원이 허겁지겁 돈을 챙겨주자 남자는 꽃다발을 창구에 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카드에는 “100달러와 50달러권 지폐를 모두 내놔라. 영웅이 될 생각은 말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남자가 챙겨간 돈은 모두 440달러(약 52만원). 뉴욕 경찰은 20일 은행 CCTV에 잡힌 남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수배령을 내렸다. 한편 뉴욕에선 1주 전에도 비슷한 은행강도사건이 발생했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화분을 들고 은행에 들어간 남자가 유사한 수법으로 2325달러를 챙겨 도주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흑인부부 사이서 ‘백인 아기’ 탄생 미스터리

    흑인부부 사이서 ‘백인 아기’ 탄생 미스터리

    영국 런던에 있는 퀸 매리병원 산부인과 분만실이 지난 17일 새벽(현지시간) 발칵 뒤집혔다. 흑인 산모 안젤라 이헤그보로가 산고 끝에 낳은 딸이 푸른 눈과 흰 피부, 고불거리는 금발 등 전형적인 백인 외모를 가진 것. 영국 대중지 더 선에 따르면 3일 전 흑인 부모 사이에서 백인 느마치가 세상에 나왔다. 나이지리아 이민자인 흑인 부모와 달리 백인 외모를 가졌다는 점이 특이했지만 느마치는 다른 아기들만큼 아름다웠고 건강했다. 고객상담원으로 일하는 아기 아버지 벤(44)은 “세상에 태어난 딸을 처음 봤을 때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해서는 안 될 말인 걸 알면서도 ‘너 내 딸 맞니?’라고 물어봤다. 아기는 눈을 떠서 나를 바라봤고 내 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지금껏 드물긴 하지만 혼혈 부부 사이에 다른 인종의 아기가 태어난 일이 있었고 흑인 부부 사이에 피부가 흰 아기가 태어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의 결합이거나 선천적으로 피부, 모발, 눈 등의 멜라닌 색소가 결핍된 알비노(백색증)이 대부분이었다. 유전학자에 따르면 이 아기는 알비노가 아니다. 안젤라와 벤은 5년 전 영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나이지리아에 살았으며 둘이 아는 한 백인 조상은 없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안젤라나 벤이 부정을 저질렀거나 아기가 신생아실에서 뒤바뀌었을 확률도 0%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흑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 아기의 탄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옥스퍼드 대학 브라이언 사이크스 유전학 교수는 “확률로 따지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이한 일”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아기에게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Afro-Caribbean) 혼혈의 먼 조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사이크스 교수는 이어 “유전자는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돌연변이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피부와 눈 색깔은 멜라닌 색소로 결정되는데 이것의 종류나 양을 결정짓는 유전자만 12개 정도다. 피부나 눈 색깔을 결정짓는 알비노와는 다른 종류의 돌연변이가 존재할 것”이라고 유전자 돌연변이설에 힘을 실었다. 현재 유전학 정보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지만 부부는 자신들과 달리 백인 외모를 지니고 태어난 딸을 따뜻한 사랑으로 키울 생각이다. 아기에게 ‘미의 신’이라는 뜻의 느마치란 이름을 지어줬으며 흑인 형제들과 함께 건강히 기르겠다고 했다. 부부는 “아들(4)과 딸(2)이 아직 동생의 외모가 자신들과 달라 혼란스러워 하지만 곧 괜찮아 지리라고 본다. 우리에게는 딸의 얼굴이 아니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자랑스럽고 건강한 딸로 기르겠다.”고 말했다. 사진=더 선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는 지구 사람?/부경희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열린세상] 우리는 지구 사람?/부경희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해외에서 성공한 건축가 친구가 있습니다. 세계 굴지의 박물관, 미술관의 인테리어 설치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국제적 인지도 때문인지 디자인 서울의 한 행사에 정중히 초대를 받았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그녀가 내용을 문의하러 관할 부서에 들렀더니, 한국사람의 전형적 모습인 그녀를 보고는 홀대하더랍니다. 정중하게 초청했던 이메일 편지에 감동받았던 친구는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습니다. 외국의 저명한 교수인 또 다른 친구가 한국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참석해 비슷하게 경험한 일을 전하더군요. 주최 측은 그녀는 무시하고, 함께 따라온 후배 외국인 조교수들을 밤마다 환대하더랍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잘 대접하는 건 좋은데, 진정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더군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수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 통역, 여행 일을 하는 분들은 이와 같은 사대주의적 에피소드는 흔하다고들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을 무시하는 국수주의적 태도 또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쟤네들은’ ‘얘는’ 하면서 낮추어 얘기한다든지, 비웃는 듯 웃으며 귓속말을 한다든지, 무조건 적대감을 보이곤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런 태도를 보이는 우리는 혹시 집단적 이중인격자들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we)’ 와 ‘그들(they)’을 구별하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원시시대부터 우리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과 동료를 빠르게 구분하는 비합리적이지만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존해 왔지요. 내가 새치기를 하면 바쁜 상황 때문, 잘 모르는 남이 새치기를 하면 도덕성이 없는 성격 때문이라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특성을 중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판단은 도통 믿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갈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먹잇감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이건 분명히 어느 나라 사람 불문하고 인간의 아주 기본적 속성입니다. 이를 좀더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 받은 나라는 선진국이라 불리며 이를 다른 집단, 문화에 개방적이라고 불리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런 개방성은 확실히 글로벌 환경에서의 생존가치가 높다는 사실입니다. 외국인을 지구인이라는 큰 그룹에 넣어 계산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됩니다. 그들이 ‘우리’가 된다면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그들이 우리라면, 그들의 행동·태도의 상황을 고려하고 그들의 감정을 알아봐 준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얼굴색과 같은 특성이나 우리의 변덕스러운 상황에 따라 해석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런 마음은 상호성을 높여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의 생존력을 아주 많이 높여줍니다. 목적에 따라 비굴하게 백인에게 아부하는,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야비하게 깎아내리는 이중적 태도, 비합리적 오류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우리 투자의, 영어학습의, 글로벌도시의 모습을 채워주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더 좋은 지구를 만들어 나갈 그리고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으로 대하면서, 우린 진정 글로벌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편견, 차별 등은 인간의 원초적 ‘우리 대 그들’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걸 일찍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은 ‘접촉’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흑인학교에 백인아이들이 함께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아시아인이 서양의 학교에 유학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해주는 상황귀인을 한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사대주의도, 민족주의도 모두 접촉을 통해 ‘우리’가 된다는 사실과 그것이 우리 지구라는 동네에서의 경쟁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냥 ‘지구사람’이라고 웃으며 발표하던 대학친구가 떠오릅니다. 몇 십 년 후 그녀는 실제 지금 지구사람의 대표주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 [씨줄날줄] 만델라 데이/육철수 논설위원

    1963년 7월12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에겐 일생일대의 비운을 안긴 날이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무장부 수장이던 만델라는 그 전날 알제리에서 특공훈련을 마치고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더반에서 ANC 의장을 만나고 이튿날 승용차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ANC에 흑인 첩자를 심어놓았을 줄은…. 만델라가 눈을 감고 은신처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꿈에 푹 젖어 있을 즈음, 백인 경찰들이 탄 승용차 몇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만델라는 가명(假名)을 대고 태연하게 행동했다. 허사였다. 경찰관은 미소를 띠며 “당신은 넬슨 만델라요. 체포하겠소!”라고 소리쳤다. 상황은 참 싱겁게 끝났다. 만델라 자신도 이날이 27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첫날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길게 봐야 하는 법. 만델라가 체포된 날은 먼 훗날 세계 평화주의자이자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첫날이었다. 1942년 ANC에 몸담아 평생을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그의 공로는 이미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1912년 남아공 흑인들이 창설한 ANC가 비인종·비폭력 저항운동을 표방했다는 점은 만델라의 투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정당성도 부여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1893년부터 20년간 남아공에서 노예로 이주한 7만여명의 인도인을 위해 무저항 권리투쟁을 펼친 게 ANC에 큰 영향을 미친 점도 흥미롭다. 결국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으로 이어진 500여년간의 뿌리깊은 아파르트헤이트가 간디와 넬슨이라는 세계적 두 평화주의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나 할까. 만델라는 내일 92세 생일을 맞는다. 남아공은 지난해 그의 생일(7월18일)을 ‘만델라 데이’로 지정했다. 만델라의 박애주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유엔에도 기념일 지정을 요청했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이를 받아들여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Nelson Mandela International Day)’을 제정했다. 그의 생애 중 ANC 입당 후 지금까지 인권운동과 인류평화에 헌신한 67년을 상징하기 위해 ‘67분 봉사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힐튼 데니스 주한 남아공 대사가 서울 옥수동 몬테소리 어린이집을 찾아 67분간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이다. 흑인에 대한 유혈과 억압의 진실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화해로 마무리지은 만델라의 ‘사람 사랑’이 세계 모든 나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휘성, 자전적 스토리 공개 “성대결절 후 우울증”

    휘성, 자전적 스토리 공개 “성대결절 후 우울증”

    가수 휘성이 자전적 스토리를 공개했다. 휘성은 오는 17일 방송되는 케이블채널 MTV ‘가이즈 온 탑-휘성’ 사전녹화에서 어린 시절부터 데뷔 후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성공 스토리, 슬럼프 극복 과정, 우울증 등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먼저 휘성은 어릴 적 꿈을 묻는 질문에 “가수가 아닌 탐정”이라며 당시 읽었던 추리 소설 ‘셜록홈즈’가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태지, 양현석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데뷔 뒷이야기와 음악 활동 당시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휘성은 솔로 데뷔 전 실질적인 연예계 첫 데뷔였던 그룹 A4 시절에 대해 “준비한지 한 달 만에 데뷔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예상한 결과”라고 회상했다. 이후 ‘안되나요’를 MR로 만들어 YG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간 사연도 전했다. 휘성에 따르면 당시 ‘안되나요’를 들은 YG측은 아주 간단하게 “(작업)할래요?”라며 앨범제안을 했다. 그는 가장 후회 없는 앨범이라고 꼽은 2집 ‘It’s Real’ 작업 당시 “나는 왜 흑인이 아닐까”라는 고민까지 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밖에 휘성은 "평소 악플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편인데 기분이 우울해지면 일주일 동안 한 끼도 안 먹고 외출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며 성대결절 이후 찾아온 슬럼프와 우울증을 극복한 사연 등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진 = MTV코리아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나 아직 안죽었어”

    “나 아직 안죽었어”

    음악의 대가들이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며 화려하게 복귀해 눈길을 끈다. 힙합 제왕 에미넴(38)과 메탈 제왕 오지 오스본(62)이 그 주인공이다. 백인이면서도 흑인 음악인 힙합을 누구보다 잘 만들어내 힙합 아이콘이 된 래퍼 에미넴이 내놓은 새 앨범 ‘리커버리’가 7월 둘째 주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에미넴에게는 아홉 번째 빌보드 넘버원 앨범. 리아나와 함께 부른 ‘러브 더 웨이 유 라이’와 ‘낫 어프레이드’는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999년 데뷔한 에미넴은 폭발적인 랩과 독특한 세계관을 담은 신랄한 가사로 인기몰이를 했다. 2002년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 ‘8마일’에서 직접 주연을 맡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4년 4집 ‘앙코르’ 발표 뒤 가정사 등 개인적인 문제가 겹치며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뜨린 5집 ‘릴랩스’가 몸풀기였다면 이번 앨범으로 전성기 시절 위용을 완전히 회복한 셈이다. 에미넴의 재능을 발굴했던 닥터 드레가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리아나, 릴 웨인, 핑크 등이 함께 입을 맞춰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평가다. 에미넴은 새 앨범에서 헤비메탈의 원조 블랙 사바스의 발라드 명곡 ‘체인지스’를 샘플링한 ‘고잉 스루 체인지스’를 담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블랙 사바스의 원조 보컬리스트로 이 노래를 불렀던 오스본도 오랜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갈채를 받고 있어 공교롭다. 그가 3년 만에 내놓은 10집 앨범 ‘스크림’은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오른 데 이어 둘째 주 11위로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블랙 사바스의 두 번째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가 세상을 뜬 직후 나온 작품이라 감회가 새롭다. 블랙 사바스를 통해 헤비메탈 시대를 열었고, 거칠고 어두운 음악으로 세상에 대한 반항을 노래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TV쇼에 출연하며 옆집 아저씨 이미지로 변신하기도 했다. 거스 지(기타), 아담 웨이크먼(키보디스트), 토미 클루페토스(드럼) 등 아들뻘 뮤지션들과 만든 10집 앨범은 2000년 이후 작품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폭발력이 줄어들지 않은 목소리가 반갑다. 타이틀곡 ‘렛 잇 다이’를 비롯해 ‘렛 미 히어 유 스크림’은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델라 삶 속 15가지 멘토

    2010년 6월11일 남아공월드컵 개막식.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예정과 달리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다. 전날 증손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2004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당시 일일이 국제축구연맹(FIFA) 위원들을 만나며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그는 대변인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개막식에 참석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1969년 7월 로벤 섬 교도소.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 정책) 철폐를 위해 투쟁하다 국가 반역죄로 수감 중이던 만델라는 장남 템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날 만델라는 감방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만델라는 평소처럼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석회석 채석장에 나가 일했다. 그는 자신이 지닌 상징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교도관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무력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만델라는 두 번이나 가족을 잃은 시련 앞에서 한번은 흑인 해방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치인 만델라’로서, 한번은 손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할아버지 ‘자연인 만델라’로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했다. 상반되는 행동이었지만, 두 행동 모두 단호했다. 이것이 ‘만델라의 방식’이었다. ‘만델라스 웨이’((Mandela’s way·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문학동네 펴냄)는 오랜 흑백분리 체제를 끝내고 남아공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만델라가 걸어온 길에서 배우는 삶과 리더십에 관한 15가지 통찰을 정리한 책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편집장인 저자가 3년 동안 만델라와 동행하며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 냈다. 저자는 만델라와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삶의 중요한 교훈 15가지를 이끌어 냈다. 그 교훈에 박제된 ‘성인’(聖人)의 모습은 없다. 좌절하고 실수하는 한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과 위기의 순간을 헤쳐가는 ‘승부사’로서의 면모 등 만델라의 정신을 우리 일상에 접목시킬 수 있는 가이드들이다. 때로는 용감한 척해야 하고, 라이벌도 가까이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에 주목해야 할 때도,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구축해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가는 법’이다. 진행 속도보다 방향을 앞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만델라가 27년간의 수감 생활에서 배운 핵심이다. 속도는 사람들을 도전하도록 고무하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만델라는 경험을 통해 알았다. “인생은 길다. 그러니 천천히 가라.” 만델라가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1만 2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25년만에 잡힌 미국판 강호순

    25년만에 잡힌 미국판 강호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역에서 한국의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는 살인 용의자가 25년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LA경찰은 7일(현지시간) 시내 81번가 주택에서 1985년부터 2007년까지 최소 11명을 살해한 혐의로 전직 경찰 기술직 직원인 로니 데이비드 프랭클린 주니어(그림·57)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10명의 젊은 흑인 여성과 남성 1명이 프랭클린의 손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 여성의 대부분은 성매매 종사자이거나 마약중독자였으며, 프랭클린은 성폭행을 한 뒤 총을 쏘거나 목을 조르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온 것으로 파악됐다. 프랭클린은 연쇄살인 기간 중 약 14년간 살인 행각을 중단했다가 또 다시 시작해 현지에서는 그를 ‘음침한 수면자(Grim Sleeper)’라고 부르고 있다. 경찰은 반복된 살인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동일한 DNA를 확보했지만 뚜렷한 대조군을 찾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2008년 인권침해 논란 속에 새롭게 도입된 ‘가족 유전자 추적’ 수사 기법을 통해 20년 넘게 풀리지 않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지역 내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대조를 통해 DNA 샘플이 다른 사건으로 이미 수감 중인 프랭클린의 아들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 그의 아버지 프랭클린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가족 유전자 추적 기법이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데다 섣불리 접근할 경우 유력 용의자가 도주할 것을 우려해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했다. 경찰은 지난 6일 프랭클린의 집에서 그가 먹다 버린 피자 조각을 수거해 피자에서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것과 동일한 DNA를 얻었고, 이튿날 그를 긴급 체포했다. 프랭클린이 희대의 살인마인 사실이 알려지자 이웃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의 강호순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살인마 프랭클린을 조용한 성격에 선량하고 친절한 옆집 아저씨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프랭클린은 언제나 남을 잘 돕고 선행을 베풀었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프랭클린은 살인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덴버대·북핵으로 맺은 인연

    덴버대·북핵으로 맺은 인연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국제외교가의 스타로 부상했던 크리스토퍼 힐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가 올가을 덴버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됨에 따라 새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의 남다른 ‘3각 인연’이 화제다. 오는 9월1일부터 힐 대사가 학장을 맡게 될 덴버대 조지프 코벨 국제관계대학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부친인 조지프 코벨이 1964년 설립했다. 그런가 하면 이 대학의 가장 유명한 졸업생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인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다. 이들 세 사람은 또 북한 핵 문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였던 2000년 10월 국무장관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중단 및 유예문제 등을 협의했다. 스탠퍼드대 학장으로 복귀한 라이스 전 장관은 당시 힐 전 동아태차관보와 함께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등 북한의 핵불능화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핵검증이라는 암초에 걸려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마디로 ‘덴버대’와 ‘북핵’으로 엮어진 관계인 셈이다. 힐 대사는 교수로 전업하는 것과 관련, “유능한 교수진과 함께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교육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필생의 기회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크림전쟁의 흑인 ‘나이팅게일’ 메리시콜

    크림전쟁의 흑인 ‘나이팅게일’ 메리시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숨겨진 나이팅게일’ 메리시콜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한 액자가게에서 초상화가 발견됐다. 그림 속 노년의 흑인 여성은 왼쪽 가슴에 3개의 훈장을 달고 있었는데, 이 여인의 이름은 자메이카에서 온 메리시콜이었다.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온 흑인 간호사 메리시콜은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못지않은 크림전쟁의 숨은 공로자다. 크림 전쟁 당시 후방에 나이팅게일이 있었다면, 전방에는 메리시콜이 있었다. 메리시콜은 어릴 적부터 약초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던 어머니에게서 치료방법을 배웠다. 이후, 1853∼1856년 ‘크림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메리 시콜은 영국에서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지원을 해 보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결국 메리시콜은 사비를 털어 최전방에 치료소를 차렸다. 이 치료소에서 응급 치료를 한 환자는 나이팅게일의 병원으로 보내졌다. 이러한 공로가 있는 메리 시콜의 초상화는 수십년 동안 분실 됐다가 어이없게도 액자의 튀를 받쳐 다른 그림을 보호하는 종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메리시콜의 초상화는 현재 영국 런던의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다. 그녀의 가슴에 달려있는 세 개의 훈장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터키에서 받은 것들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메리 시콜의 이야기는 피부색과 인종차별을 넘어선 한 여인의 숭고한 희생을 담고 있다. 사진 = MBC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외국에선 특별위 활동후 공익재단 만들어 재발방지

    외국의 과거사 청산과정은 진상 규명으로 시작해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상, 화해 및 위령 사업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처럼 한시적인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끝내면 공익재단을 설립해 재발 방지를 위한 기록·연구·교육 등 후속조치를 단계적으로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과거사를 극복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특별법으로 정부가 설립한 재단은 칠레의 ‘국가배상 화해재단’, 타이완의 ‘2·28사건기념기금회’가 있고, 민간재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재단’이 대표적이다.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은 나치 시절 유대인과 인접국가의 강제노동 피해자의 보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는데 정부와 기업이 함께 기금을 낸 것이 특징이다. 국내 사례로는 5·18 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주 4·3 평화재단을 꼽을 수 있다. 정치상황과 재정형편에 따라 액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금전적 배·보상금을 지급한다. 일반적으로 기준을 정해 차등을 두고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것이 힘들면 상징적인 보상을 단행한다. 스페인은 역사기억법을 제정해 1968~1977년 국가폭력의 희생자에게 1인당 13만 5000유로(약 2억 4000만원)를 지급했다. 독일은 나치 강제노동 피해자가 많아 상징적으로 166만명에게 1인당 2650유로(약 480만원)씩 일괄 보상했고 이후 역사 교육에 집중했다. 남아공도 흑인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려고 생활비 6000란드(약 120만원)를 지급하는 등 사회개혁을 시행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마이클 잭슨의 큰아들, 아버지 닮아 ‘백반증’?

    마이클 잭슨의 큰아들, 아버지 닮아 ‘백반증’?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큰 아들 프린스 마이클(13)이 생전 아버지를 괴롭혔던 희귀 피부질환을 앓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호텔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프린스 마이클에게서 백반증(vitiligo)으로 추정되는 증상이 엿보였다.”고 최근 보도했다. 백반증은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앓던 질환으로, 후천적으로 생긴 흰색 반점이 점차 커지는 난치성 피부병변이다. 이 병을 앓은 잭슨은 흑인이지만 전체적으로 피부가 하얗게 되는 증상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흑인인 것이 싫어서 전체 피부를 벗겨내는 성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루머에 휩싸였다. 데일리메일은 “프린스 마이클의 팔과 겨드랑이에 흰색 반점이 포착됐다.”면서 “단순히 햇빛에 그을렸다가 피부가 벗겨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흰색 반점이 너무 뚜렷해 보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편 잭슨은 1996년부터 3년 간 결혼 생활을 유지한 데비 로우와의 사이에서 프린스 마이클과 패리스(12)를 얻었다. 피부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잭슨은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산드라 블록,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

    산드라 블록,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

    배우 산드라 블록이 ‘바람둥이’ 남편과 완전한 ‘남남’이 됐다.한 외신은 29일(한국시간) “남편 제시 제임스의 외도사실에 그와 영영 헤어지기로 결심한 산드라 블록의 이혼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전했다.또 블록의 대변인은 최근 피플지에 “블록의 이혼서류가 텍사스 법원에서 접수됐다. 이혼절차가 완료됐다.”고 알렸다.블록은 올해 초 남편 제시 제임스의 불륜사실이 속속들이 알려지자 별거에 돌입했다. 이어 올해 초 흑인 아이 루이스를 입양한 사실을 뒤늦게 밝혔다. 이후 블록은 지난 4월 피플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이혼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한편 제시 제임스는 오토바이사업가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산드라 블록과 처음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다. 제시 제임스는 4명 이상의 여인과 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 = 피플지 온라인판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신예 한 ‘일어나 대한민국’, 美서 더 화제

    신예 한 ‘일어나 대한민국’, 美서 더 화제

    한 외국인이 부른 한국축구국가대표팀 응원가가 화제가 된데 이어 이번에는 MIT 재학생들까지 한국팀 응원에 나섰다. 24일 네이트 동영상 코너에는 MIT(메사추세스 공과대학교) 재학생이라 소개한 외국인들이 신인가수 한의 월드컵 응원가 ‘일어나 대한민국’을 부르는 영상이 올라와 화제다. 영상 속 다섯 명의 외국인들은 “일어나~ 일어나~ 대~한민국 Yes we can”이라고 이뤄진 가사를 어깨동무를 하고 불러 눈길을 끈다. 이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태극기를 그리고 멀리서나마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준다. 영상을 올린 이는 “평소 좋아하는 곡인데 얼마 전 흑인이 부르는 영상을 보고 감명 받았었다.”며 “다른 영상이 있는지 검색하던 중 MIT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어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외국인들이 부르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인 것 같다.”, “BGM으로 나오는 노래가 원곡인 듯 한데 외국인들이 어설프지만 먼 땅에서 한국을 응원해주니 기분 좋다.” 등 외국인들의 한국팀 응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흑인과 외국인들이 부른 곡은 ‘일어나 대한민국’이란 한이 부른 한국 국가대표팀 응원가다. 한은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흑인으로 구성된 버클리 가스펠 콰이어의 리드 보컬을 맡기도 한 싱어송라이터. 한은 “흑인이 부른 동영상을 접하고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이렇게 또 다른 동영상을 보게 돼 신기하다.”며 “16강에 진출한 만큼 내 노래가 더욱 더 많은 곳에서 불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한의 첫 싱글은 솔로로 부른 ‘일어나 대한민국’을 비롯해 실력파 가수 신효범과 듀엣으로 입을 맞춘 ‘일어나 대한민국’, MR(instrumental) 등 총 3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 한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30년만에 부활 목소리… 왜 다시 민중신학인가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한국 사회를 뜨겁게 한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피복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 사건은 사회 곳곳에 크나큰 충격과 함께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들을 가져다 주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접한 신학자 안병무(1922~1996)는 전태일의 희생 속에서 남을 구원하고자 하는 민중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는 민중 속에서 끝없이 부활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민중신학은 1970~8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기독교의 진보적 사회운동 이론이다. 이는 정치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민중들의 고난과 저항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찾자는 실천운동이었다. 민중신학은 당시 제3세계 신학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았고, 지금도 한국 기독교 하면 이것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민중신학은 시들한 역사 속 단어가 됐다. 최근 이 민중신학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민중신학회는 최근 학회 발표 논문들을 모아 ‘다시, 민중신학이다’(동연 펴냄)로 엮어 내고 민중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해외 신학자들이 한국 민중신학에 대해 평가한 논문을 모은 ‘민중신학, 세계 신학과 대화하다’(동연 펴냄)도 잇따라 나와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 ‘다시 민중신학이다’는 한국민중신학회 소속 국내 신학자 12명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들 신학자는 197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중신학이 필요한 이유와 갈 길에 대해 나름의 답을 모색하고 있다. 처음 촉발될 당시 민중신학이 폭압적 산업화나 독재를 대척점에 세웠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현 시대의 민중신학은 ‘신자유적 세계화’나 재물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와 교회의 타락’을 주된 안건으로 본다. ‘한국 교회의 세계화 신학을 위하여’라는 글을 쓴 새민족교회 김영철 목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당면한 세계화의 부정적 현실 앞에서 교회는 목회적, 윤리적, 신학적, 나아가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기독교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 세계 시민사회와의 협력 등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다문화 사회’도 새로운 민중신학의 주제다. 류장현 한신대 교수는 이주 외국인을 ‘떠돌이 민중’이라 정의하면서 “한국 교회가 다문화 신앙공동체를 꾸릴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책에는 민중신학 관점에서 바라본 구약 민중종교, 반제국주의 운동에 대한 글도 실렸다. 한편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정용(1935~1996) 전 드루대학교 교수가 엮은 ‘민중신학, 세계 신학과 대화하다’는 해외 신학자 11명이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해 쓴 글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의 ‘흑인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의 공통점을 분석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학 전통 안에서 나름대로 한국 민중신학이 갈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새로이 민중신학이 주목받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필요성과 생명력을 이유로 꼽는다. 권진관 성공회대 교수는 “민중신학은 닫힌 이론 체계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 내고 대안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적인 신학”이라며 “한국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제대로 공헌하기 위해 민중신학은 계속 모색돼야 한다.”고 했다. 연규홍 한신대 교수는 “자본주의적 제국화로 전세계 3분의2에 해당하는 민중이 고난을 받는 지금, 민중신학은 한국이란 공간적 상황과 197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오늘 지구화 시대에 고난받는 세계 민중의 삶의 자유로까지 확장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클레오파트라=흑인” 안젤리나 졸리 캐스팅 논란

    “클레오파트라=흑인” 안젤리나 졸리 캐스팅 논란

    ‘미(美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최고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는다는 소식은, 언뜻 들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 해 나온 “클레오파트라가 아프리카계 혈통일 수 있다.”는 BBC의 다큐멘터리가 이 영화 캐스팅에 인종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힐케 투어 박사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혈통인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법의학적 분석 결과 아프리카계 혈통의 어머니를 둔 것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역대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영화에서는 모두 백인 여성이 주연을 맡아왔다. 1934년 클로데트 콜베르, 1945년 비비안 리, 1963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은 그들이다.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대표 그림인 귀도 카나치의 1658년 작품 ‘클레오 파트라의 죽음’에서도 그녀는 흰 피부의 백인으로 표현돼 있다. 졸리의 캐스팅 소식이 들리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연기를 잘하고 예쁜 흑인 배우도 많은데, 굳이 졸리같은 백인이 또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아야 되는 이유가 뭐냐.”면서 “바네사 윌리암스나 할리 베리 등의 배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의 원작자인 스테이시 스치프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졸리는 오스카 상을 노려도 가능할 만큼 클레오파트라 역에 제격”이라고 말했고, 출판사 측도 “클레오파트라의 강한 카리스마와 우아함을 동시에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한편 영국 언론인 데일리 메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클레오파트라의 상대역인 마크 앤토니 배역에 브래드 피트를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해 논란 속에서도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무단횡단’ 17세소녀에 주먹질 경찰 파문

    ‘무단횡단’ 17세소녀에 주먹질 경찰 파문

    무단횡단을 한 17세 흑인소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경찰관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 영상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고 해당 경찰관은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시애틀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시애틀의 한 도로에서 경찰관 이안 월쉬가 최근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앤젤 로젠탈(17)과 마릴린 엘렌 리비아스(19)를 적발해 주의를 줬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은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며 소녀들을 체포하려고 했고 이들이 반발하자 로젠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시민이 촬영해 제보한 이 영상에는 경찰관 로젠탈의 얼굴 가운데를 주먹으로 치는 모습과 로젠탈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감싸며 뒤로 쓰러지는 장면이 담겼다. 결국 이들은 모두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연행됐고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소녀들보다는 무단횡단 한 10대 소녀들에게 폭력까지 휘두른 경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특히 해당 경찰이 백인이었고 소녀들이 흑인이라는 사실로 미뤄 인종차별적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시애틀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의 대변인 제임스 켈리는 “무단횡단은 물론 잘못한 것이며 이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경찰의 폭력은 분노의 수단에 가까웠고 그런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시애틀 경찰 측은 “주먹 가격은 제압하는 훈련 전술일 뿐”이라고 월쉬를 감싸면서도 맹렬한 여론을 의식한 듯 이 사건을 철저히 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 정계 오바마發 흑색돌풍 없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이 흑인들의 정계 영향력 상승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중간선거에서 주지사나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흑인 후보들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전인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USA투데이는 15일(현지시간) “올해 주지사 및 연방 상원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민주·공화 양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가 점쳐지는 흑인후보는 4명 정도”라며 “이는 지난 2006년 중간선거 당시의 6명에 비해 줄어든 수치”라고 전했다. USA투데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이 공직선거에서 흑인후보들의 도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현실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 경선 승리가 예상되는 주지사 및 연방 상원의원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주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인 디발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서먼드 조지아주 상원의원 후보, 플로리다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켄드릭 미크 하원의원 등이 주요 후보들이다. USA투데이는 “그나마 대부분의 후보들이 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거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흑인후보들의 민주당 편중 현상이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빈센트 허친스 미시간대 교수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소수인종들만을 중시하는 정당이란 이미지를 강화시켜 백인 유권자와 다른 인종의 지지가 필요한 주 전체 선거에서는 흑인후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9년 전 우즈 아들 낳았다” 새로운 여인 등장

    “9년 전 우즈 아들 낳았다” 새로운 여인 등장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4)의 재기는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해 보인다. 섹스 스캔들로 한 때 필드를 떠났다가 돌아온 우즈에게 이번에는 혼외 자식이 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채널4’가 우즈에게 숨겨둔 딸이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방영을 예고한 가운데 최근 미국의 포르노 여배우 데번 제임스(29)가 9년 전 우즈의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윤락 여성이었던 제임스는 2001년 우즈의 아들을 낳았다. 5년 뒤 우즈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아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이후 아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냈다고 제임스는 주장했다. 지난 3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06년부터 2008년 까지 이어진 우즈와 혼외정사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기도 한 제임스는 우즈와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아들의 이름을 오스틴 T라고 밝혔다.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등 흑인 혼혈인 아들의 얼굴을 공개한 제임스는 “과거에는 유전자 검사를 받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폭로에 앞서 방영 예정을 밝힌 타이거 우즈의 숨겨둔 딸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2003년 우즈가 테레사 로저스에게 딸아이와 둘의 은밀한 관계에 대한 사실을 입막음하는 용으로 30억원을 건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데번 제임스와 아들 오스틴 T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병규 기자의 헬로 남아공] 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까닭은

    10여개에 달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식 언어 중에 ‘아프리칸스(Afrika ans)’가 있다. 1600년대 중반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케이프타운에 상륙,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그들의 말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흑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영어가 그들의 일상적인 언어가 됐고, “흑인과 어떻게 같은 말을 쓰느냐.”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백인들은 ‘그들 만의 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식민과 피식민, 피부 색깔에서 비롯된 우열의 잣대를 언어에도 들이댄 것이다. 네덜란드어와 독일어 등 몇 가지 유럽의 말들을 뒤섞어 만든 이 언어는 이후 이른바 남아공의 ‘백인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근처 나라에까지 퍼졌다. 최대 2300만명의 아프리카 남쪽의 사람들이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흑과 백의 공통언어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이른바 ‘섬 업(Thumb Up)’이다. 그런데 이 보디랭귀지는 서양에서처럼 뜻이 한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좋다, 훌륭하다.”는 의미 외에도 “괜찮다,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할 때에도 엄지손가락을 내보인다. 식탁에서 물을 엎질렀는데 옷을 적신 상대방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는 “너 참 잘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했구나.”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면 낭패다. 지난 12일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그리스전 승리 이후 한국사람들에게 이 ‘손가락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버스 운전기사부터 곳곳의 자원봉사자까지. 물론, 이때는 ‘투 섬스 업’이다. “정말 잘했다. 훌륭하다.”는 의미다. 축구 한 번 이겼다고 누구에게나 환대를 받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포트엘리자베스는 남아공 도시들 가운데 케이프타운과 함께 백인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13일 포트엘리자베스 공항. 검색대의 흑인 여직원이 한국기자임을 알아채고는 의레 엄지손가락을 내보인다. 그런데 탑승구로 들어서는데 표를 뜯던 백인 항공사 남자 직원은 손가락 대신 알아듣지 못할 말로 넌지시 말을 건넨다. “Ek sien uit om jouveert te sien in Port Elizabeth.(포트엘리자베스에서 또 보게 되길 바랍니다.).” 아프리칸스다. 요하네스버그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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