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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가 조수호(이세기의 인물탐구:120)

    ◎석고문을 법첩으로 독창적 행장구축/“글씨보다 인품”… 흐트러짐 없는 자세 일관/“개인전은 최상의 기량때 일생 한번” 고집 동강의 글씨는 패기와 강유를 겸하고 그의 난죽은 칼날 같고 풋솜 같고 세찬듯 부드럽다. 음악에 음조가 있듯이 명필에는 선조가 숨어 있다.옛대가의 서체를 두루 완수한 동강의 행초는 「천변만화를 구사하는 경지」에서 일생일작을 놓고 냉엄한 생사의 소명을 수행하는 시기다. 그는 서단에서는 여러 모로 남다른 존재다. 첫째 서예가로서는 드물게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동양화가 아닌 서양화를 전공한 것은 서구적인 미학의 특성과 이질감을 접목하여 동양예술을 심도 있게 탐색,창조하자는 의도에서다.둘째는 미대재학중 「사군자」성적이 「100점」 만점을 기록한 일화가 있고 25세인 49년 제1회 국전 특선이후 57년부터 연 4회특선,아직 30대초반에 국전추천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만만치 않은 기세로 서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서양학과 전공 이색경력 또 서예를 보는 눈과 이론에 정연하여 강물처럼 쏟아내는 명강의로 유명하다.84년,중국정부주최로 열린 「안진경 서거 1천2백주년 기념 국제서법학술대회」에서 그가 강의한 「안진경의 위치와 중국서법에 끼친 영향」은 중국서단의 거봉인 요몽각·우우임을 감동시켰고 그 내용이 중국 문화일보에 전면게재된 바 있다.이에 앞서 「예술의 파죽지세」로 지칭되는 그의 대작 「난죽도」를 대북의 역사박물관과 중국서화회겸 중국서법학회 이사장이던 마수화와 황군벽이 구입하여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강의 예술관은 「글씨에 앞서 고매한 인품을 먼저 형성시켜야 한다」는 자세가 굳건하다.문자의 의상에서 창출되는 서예술은 글씨의 점과 획,장법도 중요하지만 「부단한 노력과 수련을 통해 진실을 발견해야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지론이다.그런 맥락에서 그는 「누에가 실을 토할 때」의 「여잠토사」와 「송곳으로 모래를 그린다」는 「추획사」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언제나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엄숙하고 경건한 심신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붓을 잡는다. 그가 좋아하는 법첩은 전예해행초가 모두 들어 있는 「석고문)」을 최고로 꼽고 있다.「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천가지 비문을 배워야만 비로소 글씨를 이룰 수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젊은 시절에는 왕희지와 안진경·구양순을 임서하는 과정에서 글자의 형태에 중점을 두는 「형임)」과 운필과 필세를 체득하는 「의임」,마음속으로 외워서 쓰는 「배임」의 과정을 섭렵한 끝에 자신의 체질에 맞는 정묘하고 유심한 행초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었다. ○정연한 논리의 달변가 그는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웃의 부탁을 받아 「입춘대길」을 쓰기 시작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전통사회의 엄격한 집안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묵향에 젖어들게 되었고 대구사범 심상과에서 현재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부친인 우당 김용하 선생에게 서예와 교육심리학을 배웠다.그때 스승이 추천해준 왕희지의 「난정서」와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서법수업에서 일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평소의 성격은 괴팍하며 불의가 싫은 나머지 이에 저항하는 기질이과격한 편이다.가식과 겉치례를 경멸하고 현실과 의기투합한 속물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친구의 범위도 산정 서세옥이나 오정 김진해에 한하고 생존해 있는 유일한 스승인 월전(장우성)을 극진히 모신다.지금도 청년같이 건강하여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정의감은 「원문 한줄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국전이나 서예전에서 입·특선하는 기미가 보이면 추호의 용서없이 몰아붙인다. 『나에게 순탄하고 행복한 역정을 지내왔다고 하지만 나나름대로 고통과 인내,탄압과 분노,좌절과 희망으로 점철된 청춘기를 보냈다』고 그는 돌아본다.『국민학교 교사로 있던 일제시대에는 사상이 불온한 반일교사로 지목되어 왜경의 감시에 시달리다 징병으로 끌려간 적이 있고 6·25때는 굶주림과 뼈저린 외로움을 겪었으며 죽음을 넘긴 여러 번의 체험 탓인지 어떤 일도 함부로 포기하는 일이 없어졌고 침식을 거르고 작품제작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책임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국제전에 출품하고 국제서법학술대회에 참여하면서도 75년 문예진흥원이 주관한 국전초대작가상 수상기념전에 응한 것 외에 서울에서는 정식으로 개인전을 연 적이 없다.이에 대해 동강은 『자연의 사계가 다르고 해마다 피는 꽃의 자태와 빛깔이 다르듯이 나만의 빛과 나만의 자태와 나만의 향기가 절로 우러나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새롭고 신묘한 기운」이 현현할때 일생 단 1회 개인전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힌다.다만 그 시기는 예정된 것은 아니지만 첫특선이 50주년이 되는 99년에 지금까지의 화업과 서업을 한자리에 펼쳐 스스로를 돌아보고 검토하고 반성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다. 90년 서울교대 정년퇴임후 종로3가 세운상가에 있는 서실에 나와 그는 아침부터 난과 죽의 은은한 향기를 눈부신 백지에 뿜는다.일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건 듯한 그의 서체는 세상을 질타하는 듯한 필획과 결구를 표출하여 「한획보다는 한폭에 흐르는 탐신의 미학이 구축된」 독창적 풍모다. 가족은 「글씨를 사랑하여 나를 따르던 묘령의 착한 소녀가 어느새 백발로 변한 아내」와 장남의 가족과 함께 종로구 구기동에서 살고 있다.아호는 달 밝은 밤이면 강이나 산으로 밤새도록 헤매는 습성 때문에 스스로 「월명」을 지어 가졌으나 고향이 낙동강부근이라는 데 착안하여 소전(손재형)이 「동강」을 내려주었다. ○퇴임후 종로에 서실 내 사람과 글씨가 함께 무르익는 「인서구로」를 지나 「마음속에 이미 대를 그리고 있는 흉중성죽」을 성취한 동강은 「묵과 획이 서로 화목하고 운치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심오한 유현의 세계를 유유자적으로 누리는 시기다. 그러나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예술가는 선택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과 「예술가는 자기노래를 부르면서 자기자신을 발견하고,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태워나가는데서 희열을 느낀다」는 진언은 바로 자신을 향한 심혼의 혈서일지도 모른다. □연보 ▲1924년 경북 선산 출생 ▲45년 대구사범 심상과 졸업 ▲47년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 입학, 전국대학생미전 「고궁」특선 ▲49년 제1회 국전 서예부문 「어부사」특선 ▲57·58·59·60년 국전 서예부문 연속4회 특선 ▲51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졸업, 김용진·손재형·김용준·장우성사사 ▲62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 ▲68∼90년 서울교육대학 교수 ▲74년 국전초대작가상 수상 ▲75년 초대작가상수상 세계일주기념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77∼83년 제1·2·3회 아시아현대서화명가연합전 대회장 ▲76년 한중교류전(대북역사박물관) ▲78∼81년 문교부 1종도서 중학교서예교과서 개발위원장 ▲81년 중화민국 중화학술원서 명예철학박사,중국정부초청 서화개인전 ▲83년 제1∼3회 아시아 현대서화명가연합전 대회장 ▲84년 중화민국정부주최 「안진경서거 1천2백주년기념」국제서법학술대회 한국대표,대구매일신문사 특별초대전 ▲85년 문교부 중·고교미술교육과정 심의위원 ▲86년 중화민국 서법학회명예이사,부산일보 초대개인전 ▲91∼현재 한국국제서법연맹 회장 ▲94년 대북국제서법연토회 한국대표 ▲95년 광복50주년기념 95 서울국제서예전 대회장(예술의 전당) ▲96년 대구국제서예전 대회장(대구 문화예술관) 〈저서〉 「근례비편해열」(80년) 「동강 조수호서화집」(81년) 문교부검인정교과서 「고교서예」편찬 〈수상〉 경북문화상(60년) 국민훈장목단장(90년)
  • 이회창 의장 「광주 신역할론」 제창/망월동 등 방문 이모저모

    ◎5·18은 한국민주화 앞당긴 불씨/이젠 광주가 「탈지역」 출발점돼야/이례적 유족대표 안내받으며 묘역 참배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대위의장이 2일 「불모지」 광주에 안착했다.공항에서 망월동으로 직행,5·18묘역에 참배한 뒤 북갑지구당(위원장 정경주)개편대회에 들렀다.그는 골깊은 지역감정의 대안으로 광주의 「신역할론」을 제창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급」으로 망월동 영령에게 헌화,분향하기는 그가 처음이다.여고생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안타까운 한숨도 토했다.그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며 『유족이 바라는 후속조치가 마무리돼 광주만이 아닌 전국적 의미를 갖는 묘역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여당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청한 유족대표의 안내를 받았고 전남대 학생대표의 요구서한도 품속에 넣었다. 이어 중흥동 신한국회관에서 열린 지구당대회에서 이의장은 격려사를 통해 『5·18책임자들이 재판에 회부돼 처벌받는다고 해서 응어리진 아픔을 풀 수 있는가.반목과 갈등의 해결 없이 온전한 정치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5·18을 4·19에 견주어 『민주화를 앞당긴 불씨로서 처절한 시민항쟁이며 문민정부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규정짓고 『광주의 아픔을 온 국민의 아픔으로 승화해 함께 치유해야 한다』며 국민화합을 역설했다. 이의장은 『정치인이 조장한 망국적 지역주의는 5·18정신에도 반한다』면서 『새정치의 출발점으로서 광주가 「광명과 동참」의 빛을 일으켜야 한다』며 탈지역주의의 신역할론을 부르짖었다.『산자들이 돌아가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용서와 화해를 실천할 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덧붙인 그는 『과거 청산의 공백을 건강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채워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스스로도 강조했지만 광주는 그에게 낯선 고장이 아니다.모친의 고향으로 초등학교를 이곳에서 나왔다.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반긴」 것은 쇠파이프를 들고 행사장주변 시청앞 네거리와 역전광장 사이 6차선도로를 점거한 4백여명의 대학생 시위대였다.매케한 최루가스도 함께였다. 그는 『옛 추억이 많이 서린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라면서도 『난생 처음 데모대의 환영을 받았다』고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 「관용의 해」 1995년/박원순 변호사(일요일 아침에)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시가지 한 모퉁이에 위치한 「관용의 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을 방문한 적이 있다.이 박물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흥미있는 경험 그 자체』라고들 말한다.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한 후 나치전범의 추적에 평생을 바쳐온 「시몬 비센탈」이 세운 이 박물관은 5층짜리 공간에 온갖 전시물을 통하여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가장 비인간적 형태」였던 「홀로코스트」와 인간의 편견과 인종주의가 낳은 참혹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유네스코는 올해를 세계 「관용의 해」로 정하여 지구촌에 평화의 바람을 불어 넣기로 했다고 한다.지구상에 벌어졌던 온갖 갈등의 원천이 된 냉전의 종식은 인류에게 평화와 안식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 충분하였다.그러나 그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지구상의 곳곳에는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외국인 거주자들에 대한 폭력,동족간의 내란과 기아,대량의 인권침해가 잇따랐다.이 때문에 벌어진 인류의 비극과 참화,고통과 희생은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유네스코가 정한 「관용의 해」는 바로 인종,종교,영토,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중지하기 위하여 상호간의 차이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에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그러나 가까이보면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다민족국가보다 더 크게 들린다.당장 남북의 관계가 그렇다.남북의 관계는 서로의 공통점을 하나씩 확인하고 다가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서로 헐뜯고 해악을 주는 관계로 악화되어 왔다.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을 처신을 우리는 해왔다.1천만 이산가족에게 설을 고향에서 새도록 해야 할 때가 이제 오지 않았겠는가. 나라안에서도 「관용의 해」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이 좁은 나라에 「망국병」이라고 할 지역감정은 여전히 판치고 있다.「경상도」「전라도」싸움에 이제 「충청도」「강원도」도 끼어들고 있다.이 작은 반쪽도 화합 대신 으르렁거리는 마당에 항차 남북을 어떻게 아우를 수 있을까.문제는 사소한 우리네 생활의 주변에도 도처에 불필요한 언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차끼리 부닥쳐 보험처리하면 그만인 것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길 한가운데서 말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지하철 속에서 전도하는 크리스천과 그것을 막는 불교신자의 싸움이 가끔씩 벌어지기도 한다. 무조건 「관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때로는 정확히 따지고 철저하게 시비를 가려야 할 때도 있다.법이나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우리는 그냥 봐넘겨서는 안된다.감시의 불침번이 있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의 질서는 도둑맞고 만다.로스앤젤레스의 「관용의 박물관」은 동시에 그 잔혹한 학살에의 「기억과 감시의 센터」(A World Center for Remembrance and Vigilance)임을 표방하고 있다.그런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당한 「정신대」할머니와 「광주사태」의 피해자들을 다함께 기억해야 한다. 올해는 기릴 것이 많은 한 해이다.「해방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이기도 하다.「사법 1백주년」도 바로 올해이다.그리고 앞을 바라보면 21세기를 5년 앞두고 있다.우리가 진정 벌할 것을 벌하고,용서할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름다울 수 없다.공동체의 약속을 배신하고 법을 어긴 자를 엄단하는 한편 상호간의 갈등과 다툼을 관용과 화해로 씻어내어 정의와 화해,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그것이 사법 1백년과 해방 50년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 마음의 정원에 꿈을 가꾸자/주준희 아세아연합신대교수(일요일아침에)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학교에 가까운 경기도 양평 시골로 이사해 살면서 흙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봄이 되자 어느날 아주 따뜻한 햇빛이 비비고,여기저기서 생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우리 가족은 마당의 구석구석에 보물찾기를 하듯이 꽃씨를 감추어 두었는데,흙 속에서 파란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보고는 완전히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작은 씨앗 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의 비밀처럼 경이스러운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마음 속에 정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우리는 스쳐 지나가면서 그 정원을 흘낏 보기도 하고 긴긴 이야기를 통해 오랜 시간 그 속을 거닐어 보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너무나 겹겹이 싸인 문 때문에 담밖에서만 서성일 때도 있다.어떤 곳은 불모의 사막같기도 하고 어떤 뜰에는 가꾸어 지지 않은 야생초가 무수히 자라고 있고 어떤 정원에는 색색가지의 아름다운 꽃이 가득피어 그 아름다움과 풍요함에 매혹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씨앗을 품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정직과 성실과 절제와 인내… 이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지고 성장한 아름다운 정원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존경스러운 것은 꿈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다.꿈은 우리가 지금 현재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는 아름다움,이상일 것이다.위대한 사람들은 남이 보기에 불가능한 것을 소망하였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긴 하지만 김영삼대통령은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었고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그 꿈을 붙들고 있었던 듯하다. 꿈을 가진 어머니들은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자녀에게서 훌륭한 가능성을 본다.최선을 믿어주는 사랑이 그를 최선으로 만든다.성적이 나빠서 학교에서 쫓겨난 에디슨을 천재과학자로 만든 것은 그 어머니의 꿈과 사랑이었다.자기는 가난하게 컸지만 성실하게 노력해서 집을 장만하고 자녀들을 훌륭히 교육시키고자 하는 가장의 꿈은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다.청년은 큰 꿈을 가져야 한다.그는 그가 꾸는 꿈만큼만 될 수 있는 것이다.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능력도 주어진다. 영화 「서편제」를 만든 임권택감독의 꿈,에베레스트산 등반에 성공한 세명의 여성대원의 꿈,우리가 기억하는 올림픽영웅들의 꿈,그 꿈이 이루어졌을때 우리가 감격하는 것은 그들이 감히 꿈꾸었기 때문이고,때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금속성 기계문명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황폐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우리는 생명과 아름다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개혁의 사정바람 속에서,우리 중 가장 현명하고 부요하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욕심과 야망과 탐욕의 잡초 속에 묻혀 살아 왔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된다.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우리 모두가 그동안 너무나 황금만능적인 가치관 속에 스스로의 부정직한 삶의 방식에 무감각해져서 살아 왔던 것이다. 이제는 잠시 흙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도시의 삶이 치닫는모든 것의 의미를 잠시 떠나,한알의 씨앗을 심고 싶다.모르는 사이에 무성해진 마음의 잡초를 제거해야 하겠다.그리고 상실했던 꿈의 씨앗을 심고자 한다.한알의 씨앗을 싹틔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생명을 주관하는 이에 달린 것임을 기억하면서.
  • 김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요지)

    오늘 이 국무회의는 역사상 중요한 국무회의가 될 것입니다.오늘 정부가 취하는 사면·복권조치는 의례적인 것이 아닙니다.새 정부 출범을 경축하는 통과의례가 아닙니다.이번의 사면·복권조치는 그것이 지니는 의미와 규모에 있어서 지난날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문민시대의 출범과 함께 지난 30여년간 쌓인 그늘을 말끔히 거두어 대화합속에서 새로 출발하기 위한 것입니다.어둠의 한시대를 종결지어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신한국」창조에 나서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신한국」으로 가는 길에는 너와 내가 없다고 했습니다.오직 「우리」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진실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충정에서 사면·복권조치를 취했습니다.신한국 창조를 위해 우리 모두 새로 시작하자는 저의 호소를 이번 조치에 담았습니다.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자는 성심을 다한 저의 간절한 뜻을 심고자 했습니다.노사가 일체가 되고,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자랑스런 대한민국을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화합한후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같이 충심에서 나오는 화해와 관용의 뜻을 밝히면서 앞으로 더 이상 구속과 석방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저의 확고한 의지를 아울러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법은 지켜야 합니다.질서는 우리가 다같이 가꾸어야 할 덕목입니다.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법과 질서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국가기강을 세우는 일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화를 착실하게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땀흘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를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화된 사회,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은 제가 국민 여러분에게 드린 약속입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법과 질서를 어기면서까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국가기강의 확립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가기강을 엄정히 세워야할 책무가 대통령인 저에게 있음을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분명히 밝힙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사면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에서 제외된 분들도 있습니다.제마음 같아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싶었습니다.그러나 국법질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무조건 석방이나 전면적인 사면을 능사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신한국 창조에 참여하려는 분들에게는 앞으로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특별사면인 만큼 일괄적으로 수배해제나 공소취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조치의 이러한 한계때문에 섭섭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참다운 뜻에 합당한 실무적인 검토를 관계부처에서 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국민은 이번에 사면을 받게된 분들이 과거의 아품을 딛고 우리의 친근한 이웃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힘껏 도와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공직자들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그것은 공인이 처신과 주변정리를 어떻게 하고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며,국민 모두의 도덕적 수준이 이쯤에 와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출입기자들에게 밝힌 바 있듯이 재임 5년 기간에 어떤 형태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정치부패의 척결없이 모든 부패근절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정치에 부정한 자금유입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돈 안쓰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당법·정치자금법·선거법 개정을 당에 지시했습니다.
  • 법률·제도의 개혁 방향(출범 김영삼신한국:8)

    ◎정치자금 개선… 부패 원천봉쇄/선거법 수술,돈안드는 선거 기반 조성/번잡한 인허가절차 줄여 「검은돈」 일소 기업 하나를 창업하려면 4백여개의 절차와 서류를 갖춰야 한다.거기엔 언제나 급행료가 따라다닌다고 한다.급행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이란 바로 이런 부조리와 부패,비능률과 비효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작업이다.김영삼정부가 내건 모든 개혁적조치를 뒷받침하는 「가볍고 따뜻한 새옷」을 의미한다. 그 첫 작업들이 한창 진행중이다.일부 부처를 폐지한 정부조직법개정처럼 마무리된 것도 있다.청와대 앞길및 인왕산과 국회 윤중로 개방,파출소의 철망 제거,민자당당사 주변 전경철수등의 조치도 크게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그릇된 관행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서 개선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드러나고있다.그것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밝은 사회이다.청와대 안가의 공원화 조치라든가 정치자금거절의 결단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문민의 몸」에 맞게 옷을 고친 까닭이다. 궁극적으로 볼때 개선작업의 목표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있지만 초기엔 부패척결과 경제회생 부문에 집중될 게 확실하다.이 두 지표가 국정운영의 최대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다품종소량생산의 추세,침체일로의 국내경제 상황들을 고려할 때 경제활력을 위한 개선작업은 무엇보다 규제완화에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김대통령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경제활력을 위해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누차 강조해왔다.까다로운 인·허가 절차와 정부의 폭넓은 간섭이 경제의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부패의 원인이 되고있는 현실을 간파한 것이다.따라서 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조만간 구성될 「행정쇄신위」가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겠지만 벌써 경제기획원·상공자원부·총무처등 몇개 부처에서는 부처별로 심도있는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예컨대 간섭없는 「작은 정부」에 대한 의지 천명을 비롯,공장설립 인·허가절차 간소화,은행대출의 신용폭 확대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부정부패방지를 위한 제도및 법개선 작업도 마찬가지이다.오히려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만큼 더 강도높고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경제회생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 장애도 따지고보면 절차를 둘러싼 정경유착등 부패고리이다.돈을 써서 이권을 따고 남보다 빨리 정보를 얻고 쉽게 허가를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아무리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책을 마련한다 해도 이런 부정부패의 구조적인 고리가 근절되지 않는한 회생은 백년하청이다. 김대통령은 부패근절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제도및 법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취임후 재산공개에 이어 『정치자금의 개선없이는 부정부패척결도 경제회생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앞으로 5년간은 결코 암거래식 정치자금 거래나 정경유착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위로부터 「반부패혁명」에 나선 것이다.곧이어 총리를 포함,장관과 의원,청와대비서진들의 재산공개가 이루어질 게 분명하다.나아가 현행 정치자금법·선거법·정당법등에 대한 손질이 있을 것이다.정치자금이 차단되면 개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치권 개혁의 신호탄으로 「부정방지위」가 들어서면 대대적인 법및 제도의 개폐작업이 이뤄질 것이다.이른바 「생활정치」 실현을 위한 민생관련 제도와 법의 개선이다.공직자윤리법·안기부법·중소기업육성법·지역개발금융 기본법·첨단기술 기업화 촉진법·산업기술교육육성법등이 개정되고 은행,병원,행정관청,대학등의 「문턱」을 낮추는 제도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법이 없고 제도가 나빠 지금까지 개혁을 못한 것만은 아니다.역대 정권 모두 「정의사회 구현」「범죄와의 전쟁」등을 기치로 개선을 추진해왔다.그렇지만 성과가 미흡했고 더러는 실패로 끝났다. 결국 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결집시키는 지도력이 관건이다.「위로부터의 혁명」은 지도층의 끝없는 자기혁신을 요구하며 그래야만 공감대를 형성,성공할수 있다. ◎전문가의 시각/토지관계법 87개나 있다니…/중앙집중 행정권 대폭 지방이양을/이순용 동국대교수·법학 새 정부의 출범은그것이 단순한 군사정부의 찌꺼기를 씻어 낸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개혁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더욱 뜻있는 일로 생각된다. 새 정권은 개혁을 출발의 첫구호로 삼았다.5·16군사정권도 부정부패,구악일소 등 개혁을 그들의 혁명공약으로 내세웠으며,그 뒤를 이은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정변을 통해서,또는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었기에,집권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개혁의 구호는 더욱 요란했던 셈이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번번이 용두사미에 그쳤다. 우리 국민은 여러 차례 비슷한 경험 내지 실패를 맛본 바 있기에,김영삼정부의 개혁공약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에 주저하는 기색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과거의 정부는 정변을 통해서 집권을 하였거나 여소야대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인해 무엇보다 정권안보에 힘쓰지 않을 수 없었으며,이것이 개혁에 대한 공약을 「공약」으로 만든 최대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김영삼정부는 다행히도 그러한 멍에에서 해방되어 있다.여기에바로 다수 국민이 새 정부에 의한 개혁에 기대와 신뢰를 보내게 되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김영삼대통령은 개혁을 바탕으로한 신한국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었다.그리고 취임사를 통해서도 「개혁없이는 결코 안정을 이룰 수 없다.진정한 안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개혁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그리고 평소 「인사가 만사」임을 강조한 인물답게 정부인사에서도 개혁의 의지가 돋보이는 것 같다.그러면 무엇이 개혁의 대상인가.「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일단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른다.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부분이 「법률제도의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불합리한 법률제도의 개혁에 있어서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규제의 완화이다.이미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공장을 하나 세우는데 약3년이 걸린다고 한다.그만큼 갖추어야 할 서류가 많고,거쳐야할 관청의 인·허가가 많은 것이다.그같이 수많은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또는 그것을 수월하게 거치기 위해서는 돈봉투가 따라야 한다고 한다. 토지에 관계되는 법률이 무려 87개나 된다고 한다.과연 그들 법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한번 세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예컨대 독일은 「건설법전」이라는 하나의 법률에 우리의 국토이용관리법·도시계획법·도시재개발법·토지구획정리사업법·건축법·지가공시법 등에 해당하는 법률들이 포함되어 있다.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시도해 볼만하다. 그리하면 법률의 수도 줄고,제도 역시 많이 간소화될 것이다.토지관계법률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환경관계 법률등 통·폐합을 통해 간소화시켜야할 법제도는 그 밖에도 많이 있다고 본다. 둘째로 행정권의 축소및 지방이양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모처럼 지방의회를 구성하여 지방자치(주민자치)를 실시하였다고 하나,집행은 여전히 관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중요사항에 대한 권한이 아직도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자치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황이다. 한마디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것이 개혁의 으뜸가는 목록중의 하나가 되어야겠다. 셋째,행정권의 과잉 비대와 번잡함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미비한 제도의 정비 또는 확충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하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이를테면 「행정집행법」의 제정이다.현재는 체계가 맞지 않은채 산재되어 있는 행정집행(행정상 강제집행및 즉시강제)에 관한 규정등을 하나의 법률로 묶음으로써 행정의 실효성을 거두는 동시에 그의 오용이나 남용을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우리 다함께 신한국으로”/김 대통령 취임사 전문

    ◎“위로부터의 개혁 이미 시작됐다”/고통과 기쁨의 현장에 항상 국민과 함께/좌절과 침체 디디고 희망의 새시대 개척/우리의 적은 외부아닌 내부의 패배주의/부정부패 척결에 성역 있을 수 없어… 「내몫」보단 「공동체」 먼저 생각을 ○문민시대의 개막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마침내 국민에 의한,국민의 정부를 이땅에 세웠습니다.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민주주의에 대한 저 자신의 열정과 고난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늘 저는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합니다.저는 국민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또한 험난했던 민주화의 도정에서 오늘을 보지 못하고,애석하게 먼저가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앞에 국민과 더불어 머리를 숙입니다. ○시대적 소명 절감 국민 여러분! 저는 14대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새로운 조국건설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지금 이 땅은 지층 깊은 곳으로부터 봄 기운이 약동하고 있습니다.지난날 우리 민족에게는 번성했던 여름도,움츠렸던 겨울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이제 민족진운의 새 봄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에게 새로운 결단,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입니다.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입니다.문화의 삶,인간의 품위가 존중되는 나라입니다.갈라진 민족이 하나되어 평화롭게 사는 통일조국입니다.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우뚝서서,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나라입니다.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그것이 바로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우리는 일찍이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이루어낸 민족입니다.우리 다시 세계를 향해 힘차게 웅비해 나갑시다. ○더불어 사는 사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습니다.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세계는 실리에 따라 적과 동지가 뒤바뀌고 있습니다.바야흐로 경제전쟁,기술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변화하는 세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입니다.그것은 엄숙한 민족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신한국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다듬어야 합니다.그런데 지금 우리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한국병을 앓고 있습니다.한때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의 근면성과 창의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전도된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는 흔들리고 있습니다.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은 자신감을 잃고 있습니다.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우리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바로 우리 안에 번지고 있는 이 정신적 패배주의입니다.이대로는 안됩니다.새로워져야 합니다.좌절과 침체를 딛고 용기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폐쇄와 경직에서 개방과 활력의 시대로,갈등과 대립에서 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바꾸어야 합니다.불신의 사회에서 신뢰의 사회로,나만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더불어 사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이것이 제가 말하는 변화와 개혁의 방향입니다.제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행동양식까지도 바꾸어야 합니다.우리가 변화와 개혁을 회피한다면,우리는 역사로부터 외면당할 것입니다. ○3가지 개혁 목표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개혁은 먼저 세가지 당면과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첫째는 부정부패의 척결입니다.둘째는 경제를 살리는 일입니다.셋째는 국가기강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결코 성역은 없을 것입니다.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이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것입니다.그러나 국민 모두가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없이 부정부패는 근절되지 않습니다.깨끗한 사회의 실현은 국민 여러분의 손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야 합니다.그것을 위해서 정부는 규제와 보호 대신에 자율과 경쟁을 보장할 것입니다.민간의 창의를 존중할 것입니다.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맬 것입니다.국민은 더 절약하고 더 저축해야 합니다.사치와 낭비는 추방돼야 합니다.근로자는 더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기업은 대담한 기술혁신으로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정부와 국민,근로자와 기업,모두가 신바람나게 일함으로써만 우리는 경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이것이 제가 주창하는 신경제입니다. ○미래향한 신교육 국민 여러분! 흐트러지고 있는 국가기강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부정한 수단으로 권력이 생길때 국가의 정통성이 유린되고 법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목적을 위해서 절차가 무시되는 편법주의가 판을 치게 됩니다. 이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은 없을 것입니다.또 우리 사회에있어야 할 권위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우리의 자유는 공동체를 위한 자유여야 합니다.백범선생의 말처럼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여야 합니다.땅에 떨어진 도덕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이런 점에서 오늘의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학기술교육과 함께 사람다운 사람,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인간교육이어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신교육입니다. ○희망을 주는 정치 국민 여러분! 오늘부터 정부가 달라질 것입니다.이제 청와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일터가 될 것입니다.청와대는 바로 국민 여러분의 친근한 이웃이 될 것입니다.저는 국민이 일하는 현장,기쁨과 고통이 있는 현장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국민과 함께 기뻐하고,함께 아파할 것입니다.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주는 생활정치여야 합니다.국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정치,국민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가 필요합니다.이렇게 정부가 달라지고,정치가 달라질 때,변화와 개혁을 통한 살아있는 안정이 이 땅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분열넘어 화해로 국민 여러분! 정의와 화해로 새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나갑시다. 지난날 우리는 계층으로 찢기우고,지역으로 대립되고,세대로 갈라지고,이념으로 분열되었습니다.우리 안에 있는 벽은 허물어야 합니다.한은 풀어야만 합니다.우리 사회에는 그늘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그들은 위로받아야 합니다.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양보해야 합니다.힘있는 사람은 더 큰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너무나 성급하게 내 몫만을 요구하지 맙시다.먼저 우리 공동체 전체를 생각합시다.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몫을 갖기 위하여 더 큰 떡을 만듭시다. ○국민합의의 통일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저는 역사와 민족이 저에게 맡겨준 책무를 다하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상적인 통일 지상주의가 아닙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입니다.김일성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세계는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김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여름날 백두산 천지못가에서도 좋습니다.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도처에서 민족의 긍지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5백만 해외동포 여러분! 금세기 안에 조국은 통일되어 자유와 평화의 고향땅이 될 것입니다.우리 모두 국내외에서 힘을 합하여 세계속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자랑스런 한민족 시대를 열어 나갑시다. ○모두 신한국 주역 국민 여러분! 신한국의 창조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모두가 하는 것입니다.오늘 이 자리에는 많은 신한국인이 참석했습니다.땀흘려 일하는 근로자,새로운 작물로 소득을 올리는 농민,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연구에 몰두하는 과학도,시장개척에 동분서주하는 회사원,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중소기업인,그리고 밤새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이 자리에는 또 묵묵히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도 있습니다.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야말로 신한국 창조의 주역이요 주인입니다. 특히 이 땅의 젊은이 여러분,세계를,그리고 미래를 바라봅시다.방관에서 참여로,비난에서 창조의 길로 나갑시다.미래는 여러분의 것이요,신한국은 바로 여러분의 세상입니다. ○땀과 고통을 함께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집시다.신한국을 창조합시다.신한국의 창조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정부의 힘만으로 이룩될 수 없습니다.신한국으로 가는 길에는 「너」와 「내」가 없습니다.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입니다.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그러나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눈물과 땀이 필요합니다.고통이 따릅니다.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합시다.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반드시 해내야만 합니다. 자,우리 모두 희망과 꿈을 안고 새롭게 출발합시다.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힘차게 함께 달려갑시다.감사합니다. 1993년 2월25일 대통령 김 영 삼
  • 과감한 국정개혁 의지 천명/김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국정방향

    ◎국민에 적극적 지지와 동참을 호소/“자율속의 경쟁” 경제활력 보장 약속 김영삼대통령은 신한국 창조를 위한 솔선수범을 다짐하고 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김대통령은 명실상부한 문민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고 그동안 일관되게 강조해온 변화와 개혁,이를 통한 신한국 창조를 천명했다. 김대통령의 「우리 다 함께 신한국으로」라는 주제의 취임사는 새정부의 역사적 과제와 대통령 자신의 시대적 소명,국정개혁 과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새정부가 이끌어나갈 신한국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김대통령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사회,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문화의 삶과 인간이 존중되는 나라』라고 규정했다.또 갈라진 민족이 하나되어 평화롭게 사는 통일조국,세계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나라,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나라,이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신한국의 청사진은 과거와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김대통령은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정지표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문민시대」「문민대통령」은 정권과 지도자의 탄생과정과 정치적 배경이 국민으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한다.김대통령이 취임사의 서두에서 문민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것은 보다 과감한 국정개혁을 추진할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고 동참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이해된다. 김대통령은 신한국 창조를 위한 국정개혁의 과제로서 부정부패 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확립이라는 3대목표를 제시했다.이는 우리사회의 정상회복을 의미한다.김대통령이 「한국병」으로 진단한 총체적인 우리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탈이념,경제전쟁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도약이냐 생존이냐 하는 민족생존 자체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고 강조해왔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나태,타성,가치관의 전도,이로 인한 정신적 패배주의등 내부의 병리적 현상부터 고쳐야한다고 인식해 온 것이다. 부정부패척결을 위해 김대통령은 그동안 천명해 온 대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천에 옮길 것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공직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임으로써 국민 모두의 신뢰를 얻어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의미다. 경제활력의 요체는 자율과 경쟁의 보장이다.이를 통해 각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 기본 흐름이다. 국가기강의 확립은 법질서의 확립과 인간중심의 신교육을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별성은 명백히 강조했다.김대통령은 기강해이의 원인을 부정한 수단을 통한 권력의 획득에서 기인한 일반 도덕성의 상실에서 찾고 있다. 신한국이 목표로 하는 궁극적인 모습은 통일한국이다.김대통령은 금세기내에 통일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또 임기중에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피력했었다.김대통령은 이날 『김일성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김대통령의 통일비전은 민족경쟁이라는 세계적 현실에 비추어 마련된 것이며 감상주의적 통일과는 다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신한국의 창조는 김대통령과 새정부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김대통령은 이점에서 「고통의 분담」을 요구했다.이는 우리의 당면과제인 경제회생을 위해 국민 모두가 사치와 낭비를 줄이고 근면하고 절약하자는 뜻을 함축한 표현이다.여기에 앞으로 추진될 개혁일정에 대해 인내하고 동참해 달라는 의미도 담겨있다.이는 경제적 분담은 물론 가치관에서 관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자기쇄신을 포괄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미 국무총리,감사원장,비서실장의 인선과정을 통해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의지의 일단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6일로 예정된 새내각의 면모에서도 이같은 의지는 적절히 투영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취임 첫날부터 청와대앞길을 전면개방함으로써 국민 모두에게「신한국」의 출발을 실감케 해주었다. 신한국에 대한 꿈과 희망은 부풀기 시작했다.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실망만을 낳기 쉽다.새정부의 앞날에도 수많은 도전과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김대통령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그리고 모두의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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