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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르는 강물처럼…플라이낚시

    흐르는 강물처럼…플라이낚시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초록색 나무와 맑은 계곡물,그리고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대화를 나눈다.‘플라이낚시’란 모조 미끼를 사용하는 친환경적인 스포츠 피싱으로 줄을 돌려서 날리기 때문에 플라이(fly)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라이 낚시는 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느끼게 해준다.한번만 해보면 다음 휴일을 기다리게 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영국에서는 승마,춤과 함께 플라이낚시가 신사가 갖추어야 할 3대 덕목으로 꼽힌다.국내에서도 플라이낚시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낚시가 아니다.좀 특별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은,남들과 똑같은 삶이 싫다는 사람이라면 플라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앞뒤로 리듬을 타며 낚싯대를 흔들자 푸른색 낚싯줄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허공에 굽이친다.목표를 향해 줄을 던지자 솜털 모양의 인조 미끼가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이것이 플라이낚시의 캐스팅(낚싯줄을 강물로 날려보내는 행위)을 하는 장면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생각났다.아름다운 몬태나 협곡에서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가 아들인 폴(브래드 피트)과 노먼(크레이그 셰퍼)에게 낚시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고독 등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게 하는 영화였다.이제서야 아들에게 플라이낚시를 가르친 이유가 마음에 와닿았다.‘머리’로 다 아는 자연의 진리와 섭리를 ‘몸’으로 느끼고 하나가 되어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난 10일 플라이낚시 동호회 ‘좋은 친구들’의 회원들과 인제 내린천으로 출조에 나섰다.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내린천 상류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길은 멀미가 날 정도로 꼬불꼬불 끝도 없었다.포장길이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자 팔 벌려 기다리는 내린천의 아름다움에 멀미는 사라졌다.분재를 해놓은 듯한 계곡들이 계속 이어졌다.열목어는 1급수에서만 산다고 하더니 정말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사는 물고기가 부러울 정도였다. 여기는 ‘열목어’가 많이 나온다.우리는 열목어를 천연기념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정암사와 경북 봉화군에 있는 봉화 석포면의 열목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그곳에서는 잡지 못한다.하지만 강원도 내린천이나 금강 지수리 등 다른 곳에서는 가능하다. 회원들의 도움으로 웨이더(가슴까지 올라오는 특수바지장화)를 입고 계곡으로 들어가려하는데 박원범(68·약사)씨가 “한 기자,벌써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물 온도,벌레들의 움직임,미끼 선택을 하고 가야지.”하며 불러세운다.“지금은 물의 수온이 16도야.내린천에 사는 열목어들은 냉수어종이라 물 온도가 낮아야만 활동이 활발해.지금은 손맛 보기가 쉽지 않겠는걸.” 그의 설교는 이어졌다. “좀 큰 미끼를 골라야겠어.그래야 놈들이 움직일 것 같아.”하며 훅 박스(모조 미끼를 모아놓은 상자)를 열더니 하루살이 성충 모양의 ‘메이프라이’와 날도래의 성충을 흉내낸 ‘캐디스’를 꺼낸다. 옆에 있던 한성호(30·음악인)씨가 한마디 거들었다.“플라이 낚시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닙니다.계절에 따른 계곡의 변화,물고기의 습성,강 벌레들의 종류,움직임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손맛을 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꾼’이라면 생태학자를 능가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박씨는 ‘물고기들이 내 미끼는 왜 안 무나.어떻게 하면 놈들을 속일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90년부터 플라이를 시작했다.“철저한 머리싸움입니다.저기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놈이 내 미끼를 물게끔 만드는 것이 플라이의 재미입니다.” ‘그렇구나.자연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물고기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모조 미끼로 놈들을 속일 수 없구나.그래서 낚시의 마지막 과정이 바로 ‘플라이’라고 이야기하는구나.’ 기초학습을 마무리하고 회원 3명과 드디어 강물에 몸을 담갔다.시원함과 상쾌함에 몸의 세포가 하나씩 살아나는 것 같았다.영화에서 본 것처럼 앞뒤로 낚싯대를 흔들다 강 안쪽으로 줄을 날렸다.그런데 플라이 훅(인조 미끼)이 날아가지 않고 줄이 엉켰다.창피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이번에는 좀 세게 흔들었다 던져야지.’ 속으로 생각했다.이번에는 아예 플라이 훅이 내 어깨에 걸려 줄이 목에 감겼다.“저기요,이것 좀 풀어주세요.”하고 도움을 청하자 협회 사무장 이석훈(41작가)씨가 “대어를 낚으셨네요.”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줄이 너무 엉켜 낚싯줄 끝부분을 클리퍼로 잘라내야만 했다.“어차피 하루만에 캐스팅을 한다는 것은 무리예요.보통 1∼2개월은 연습을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라며 “물 밖에서 캐스팅 연습이나 하세요.”라고 말하며 ‘초짜’ 낚시꾼을 강에서 ‘뽑아냈다’. 그 순간 앞에 있던 오재선(40·건축설계사)씨의 낚싯대가 휘청했다.재빠른 손놀림으로 릴을 감았다.족히 20㎝가 넘어 보이는 열목어였다.“우∼와 힘 좋네.”하며 바늘을 빼더니 바로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속으로 ‘저거 회 떠먹으면 죽이겠는데 왜 놓아주지.’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했다.“아니 바로 놓아줄 거면 뭐 하러 잡아요.” 오씨의 답은 명쾌했다.“진정한 플라이꾼은 물고기를 잡으러 오지 않고 ‘만나러’ 옵니다.플라이 낚시에는 ‘캐치 앤드 릴리스’라는 미덕이 있어요.손맛만 보고 자연으로 바로 보내주지요.” 플라이낚시는 친환경적인 스포츠 피싱이다.인조 미끼를 쓰기 때문에 강이 더럽혀지지도 않고,어족자원을 보호하기위해 철저하게 잡은 고기는 돌려보내주는 정신,그것이 여느 낚시와는 달라보였다. 이씨는 “우리의 계곡에는 투망과 배터리 등 무분별한 포획으로 고기의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또한 낚시인들이 남기고 간 각종 쓰레기로 낚시터 주변 환경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외국처럼 하루빨리 ‘낚시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휴지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저녁장’(해질녘이면 물고기들이 활동성이 강해져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다는 뜻의 은어)을 보러 인제 합강으로 향했다. ●가볼만한 플라이낚시터 플라이낚시는 계곡·강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그러나 물의 온도가 8∼14℃가 적당하고 먹이가 풍부하고 포말이 많이 발생해 산소량이 많은 곳이 좋다.플라이낚시를 즐기기 좋은 포인트 4곳을 소개한다. 삼척 덕풍계곡 응봉산(998m),중봉산(739m),삿갓대(1119m) 등 3개의 고산준봉들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첩첩산중 오지다.1급수보다 더 맑은 특급수가 흐르는 이곳 계곡이 국내 최고의 플라이낚시터다.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로 계곡이 망가져 휴장하고 있는 상태로 올 하반기에 다시 개장한다. 정식개장 때까지는 특별한 통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반기부터는 회원에 가입을 해야만 계곡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회비는 정회원의 경우 10만원(유효기간 3년),준회원은 5만원(1년),일반회원은 2만원(1개월)을 내야 회원자격을 가지게 된다.낚시는 플라이낚시 외 어떤 방식의 낚시도 허용되지 않는다.회원가입에 관한 문의는 삼척시 관광개발과(033)570-3543,www.samcheok.go.kr.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삼척까지 간 다음,국도로 다시 원덕에 도착한 후 태백시 통리로 향하는 지방도 416번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한계령 오색천 한계령을 동쪽으로 넘어 국립공원 경계를 막 벗어난 물레방아 휴게소 앞부터 낚시가 허용된다.휴게소부터 약 8㎞ 구간에 놓인 3개씩의 보와 다리 주변이 포인트.휴게소에서 백암리까지는 산천어,하류쪽은 송어가 많이 나온다. 홍천강 마곡·모곡 홍천강의 모곡(한덕)과 마곡 유원지는 ‘강의 폭군’이라 불리는 ‘끄리’가 많이 나와 유명하다.서울에서 1시간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주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의 휴양지로도 적합한 곳이다. 가는 길은 서울에서 춘천방면 46번 경춘국도로 가다가 대성리를 지나 신청평대교를 건너 좌회전하면 홍천방면 37번 국도이다.이 도로를 따라 약 10㎞ 가면 신천리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의 86번도로를 타고 13㎞ 정도 가면 모곡초등교를 지나 모곡교에 다다른다.이곳 모곡교에서 강 건너편이 마곡유원지다.미곡유원지는 모곡유원지에 들어가기 약 2㎞ 직전 좌측에 밤벌유원지 이정표 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푯말이 보인다. 금강 지수리 지수리는 충남 옥천군 안남면에 있으며 대청댐의 상류이다.예전에는 쏘가리 터로 유명했으나 요즘에는 ‘끄리’가 많이 나온다.충청권에서 플라이 낚시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가는 길은 경부 고속도로 옥천 IC에서 보은 방면으로 가다가 인포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안남으로 진입한다.안남면 안남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지수리로 갈 수 있다. ●초보용 장비 플라이낚시의 장비와 복장은 좀 특별하다.제대로 갖추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지만 초보자용 장비는 30만∼50만원이면 무난히 구입할 수 있다. 전문숍이나 동우회에 들러 전문가급 선배의 조언을 듣는 것이 필수다. 장비는 크게 낚싯대·릴·줄·미끼와 바지장화 정도로 나뉜다. 초보자용으로 낚싯대는 7만∼12만원,릴은 2만 5000∼7만원이다. 낚싯대와 릴은 국산이 있지만 줄은 전량 수입품이다.줄은 여러가지인데,보통 물 위에 완전히 뜨는 ‘플로팅 타입’을 주로 사용한다.플로팅 타입에는 루프(캐스팅할 때 그려지는 곡선)가 아름다운 ‘DT’와 끝이 화살촉처럼 생겨 멀리 날아가는 ‘WF’(웨이트 포웨드)가 가장 많이 쓰인다.가격은 4만∼8만원선. 미끼는 초보자의 경우 타잉(바늘과 털 가위 등이 구비된 키트를 구입하여 만드는 것)을 하기보다는 전문숍에서 하나에 2000∼3000원 정도 하는 것을 사서 쓰는 것이 좋다. 주로 계류에서 낚시를 하기 때문에 계류화와 웨이더(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장화)가 중요하다.각각 1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낚시재킷,편광안경,부력제 등 나머지 장비들은 필요에 따라 구입하면 된다. ●어떻게 배울까 플라이낚시 전문숍이 온·오프라인에 많다.하지만 직접 방문해서 전문가에게 교육받고 인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판교에 있는 ‘앵글러스리버’는 초보자용 장비부터 200만원이 넘는 낚싯대까지 갖추고 있고 주인이 친절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www.ezfly.co.kr,(031)715-7555. 인터넷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플라이동우회로는 ‘좋은 친구들’이 유명하다.20년이 넘는 꾼부터 초보까지 회원층이 다양해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www.fly.or.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흐르는 강물처럼…플라이낚시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초록색 나무와 맑은 계곡물,그리고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대화를 나눈다.‘플라이낚시’란 모조 미끼를 사용하는 친환경적인 스포츠 피싱으로 줄을 돌려서 날리기 때문에 플라이(fly)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라이 낚시는 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느끼게 해준다.한번만 해보면 다음 휴일을 기다리게 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영국에서는 승마,춤과 함께 플라이낚시가 신사가 갖추어야 할 3대 덕목으로 꼽힌다.국내에서도 플라이낚시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낚시가 아니다.좀 특별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은,남들과 똑같은 삶이 싫다는 사람이라면 플라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앞뒤로 리듬을 타며 낚싯대를 흔들자 푸른색 낚싯줄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허공에 굽이친다.목표를 향해 줄을 던지자 솜털 모양의 인조 미끼가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이것이 플라이낚시의 캐스팅(낚싯줄을 강물로 날려보내는 행위)을 하는 장면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생각났다.아름다운 몬태나 협곡에서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가 아들인 폴(브래드 피트)과 노먼(크레이그 셰퍼)에게 낚시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고독 등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게 하는 영화였다.이제서야 아들에게 플라이낚시를 가르친 이유가 마음에 와닿았다.‘머리’로 다 아는 자연의 진리와 섭리를 ‘몸’으로 느끼고 하나가 되어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난 10일 플라이낚시 동호회 ‘좋은 친구들’의 회원들과 인제 내린천으로 출조에 나섰다.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내린천 상류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3시가 넘었다.길은 멀미가 날 정도로 꼬불꼬불 끝도 없었다.포장길이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자 팔 벌려 기다리는 내린천의 아름다움에 멀미는 사라졌다.분재를 해놓은 듯한 계곡들이 계속 이어졌다.열목어는 1급수에서만 산다고 하더니 정말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사는 물고기가 부러울 정도였다. 여기는 ‘열목어’가 많이 나온다.우리는 열목어를 천연기념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정암사와 경북 봉화군에 있는 봉화 석포면의 열목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그곳에서는 잡지 못한다.하지만 강원도 내린천이나 금강 지수리 등 다른 곳에서는 가능하다. 회원들의 도움으로 웨이더(가슴까지 올라오는 특수바지장화)를 입고 계곡으로 들어가려하는데 박원범(68·약사)씨가 “한 기자,벌써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물 온도,벌레들의 움직임,미끼 선택을 하고 가야지.”하며 불러세운다.“지금은 물의 수온이 16도야.내린천에 사는 열목어들은 냉수어종이라 물 온도가 낮아야만 활동이 활발해.지금은 손맛 보기가 쉽지 않겠는걸.” 그의 설교는 이어졌다. “좀 큰 미끼를 골라야겠어.그래야 놈들이 움직일 것 같아.”하며 훅 박스(모조 미끼를 모아놓은 상자)를 열더니 하루살이 성충 모양의 ‘메이프라이’와 날도래의 성충을 흉내낸 ‘캐디스’를 꺼낸다. 옆에 있던 한성호(30·음악인)씨가 한마디 거들었다.“플라이 낚시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닙니다.계절에 따른 계곡의 변화,물고기의 습성,강 벌레들의 종류,움직임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손맛을 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꾼’이라면 생태학자를 능가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박씨는 ‘물고기들이 내 미끼는 왜 안 무나.어떻게 하면 놈들을 속일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90년부터 플라이를 시작했다.“철저한 머리싸움입니다.저기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놈이 내 미끼를 물게끔 만드는 것이 플라이의 재미입니다.” ‘그렇구나.자연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물고기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모조 미끼로 놈들을 속일 수 없구나.그래서 낚시의 마지막 과정이 바로 ‘플라이’라고 이야기하는구나.’ 기초학습을 마무리하고 회원 3명과 드디어 강물에 몸을 담갔다.시원함과 상쾌함에 몸의 세포가 하나씩 살아나는 것 같았다.영화에서 본 것처럼 앞뒤로 낚싯대를 흔들다 강 안쪽으로 줄을 날렸다.그런데 플라이 훅(인조 미끼)이 날아가지 않고 줄이 엉켰다.창피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이번에는 좀 세게 흔들었다 던져야지.’ 속으로 생각했다.이번에는 아예 플라이 훅이 내 어깨에 걸려 줄이 목에 감겼다.“저기요,이것 좀 풀어주세요.”하고 도움을 청하자 협회 사무장 이석훈(41작가)씨가 “대어를 낚으셨네요.”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줄이 너무 엉켜 낚싯줄 끝부분을 클리퍼로 잘라내야만 했다.“어차피 하루만에 캐스팅을 한다는 것은 무리예요.보통 1∼2개월은 연습을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라며 “물 밖에서 캐스팅 연습이나 하세요.”라고 말하며 ‘초짜’ 낚시꾼을 강에서 ‘뽑아냈다’. 그 순간 앞에 있던 오재선(40·건축설계사)씨의 낚싯대가 휘청했다.재빠른 손놀림으로 릴을 감았다.족히 20㎝가 넘어 보이는 열목어였다.“우∼와 힘 좋네.”하며 바늘을 빼더니 바로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속으로 ‘저거 회 떠먹으면 죽이겠는데 왜 놓아주지.’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했다.“아니 바로 놓아줄 거면 뭐 하러 잡아요.” 오씨의 답은 명쾌했다.“진정한 플라이꾼은 물고기를 잡으러 오지 않고 ‘만나러’ 옵니다.플라이 낚시에는 ‘캐치 앤드 릴리스’라는 미덕이 있어요.손맛만 보고 자연으로 바로 보내주지요.” 플라이낚시는 친환경적인 스포츠 피싱이다.인조 미끼를 쓰기 때문에 강이 더럽혀지지도 않고,어족자원을 보호하기위해 철저하게 잡은 고기는 돌려보내주는 정신,그것이 여느 낚시와는 달라보였다. 이씨는 “우리의 계곡에는 투망과 배터리 등 무분별한 포획으로 고기의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또한 낚시인들이 남기고 간 각종 쓰레기로 낚시터 주변 환경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외국처럼 하루빨리 ‘낚시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휴지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저녁장’(해질녘이면 물고기들이 활동성이 강해져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다는 뜻의 은어)을 보러 인제 합강으로 향했다. ●가볼만한 플라이낚시터 플라이낚시는 계곡·강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그러나 물의 온도가 8∼14℃가 적당하고 먹이가 풍부하고 포말이 많이 발생해 산소량이 많은 곳이 좋다.플라이낚시를 즐기기 좋은 포인트 4곳을 소개한다. 삼척 덕풍계곡 응봉산(998m),중봉산(739m),삿갓대(1119m) 등 3개의 고산준봉들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첩첩산중 오지다.1급수보다 더 맑은 특급수가 흐르는 이곳 계곡이 국내 최고의 플라이낚시터다.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로 계곡이 망가져 휴장하고 있는 상태로 올 하반기에 다시 개장한다. 정식개장 때까지는 특별한 통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반기부터는 회원에 가입을 해야만 계곡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회비는 정회원의 경우 10만원(유효기간 3년),준회원은 5만원(1년),일반회원은 2만원(1개월)을 내야 회원자격을 가지게 된다.낚시는 플라이낚시 외 어떤 방식의 낚시도 허용되지 않는다.회원가입에 관한 문의는 삼척시 관광개발과(033)570-3543,www.samcheok.go.kr.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삼척까지 간 다음,국도로 다시 원덕에 도착한 후 태백시 통리로 향하는 지방도 416번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한계령 오색천 한계령을 동쪽으로 넘어 국립공원 경계를 막 벗어난 물레방아 휴게소 앞부터 낚시가 허용된다.휴게소부터 약 8㎞ 구간에 놓인 3개씩의 보와 다리 주변이 포인트.휴게소에서 백암리까지는 산천어,하류쪽은 송어가 많이 나온다. 홍천강 마곡·모곡 홍천강의 모곡(한덕)과 마곡 유원지는 ‘강의 폭군’이라 불리는 ‘끄리’가 많이 나와 유명하다.서울에서 1시간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주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의 휴양지로도 적합한 곳이다. 가는 길은 서울에서 춘천방면 46번 경춘국도로 가다가 대성리를 지나 신청평대교를 건너 좌회전하면 홍천방면 37번 국도이다.이 도로를 따라 약 10㎞ 가면 신천리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의 86번도로를 타고 13㎞ 정도 가면 모곡초등교를 지나 모곡교에 다다른다.이곳 모곡교에서 강 건너편이 마곡유원지다.미곡유원지는 모곡유원지에 들어가기 약 2㎞ 직전 좌측에 밤벌유원지 이정표 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푯말이 보인다. 금강 지수리 지수리는 충남 옥천군 안남면에 있으며 대청댐의 상류이다.예전에는 쏘가리 터로 유명했으나 요즘에는 ‘끄리’가 많이 나온다.충청권에서 플라이 낚시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가는 길은 경부 고속도로 옥천 IC에서 보은 방면으로 가다가 인포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안남으로 진입한다.안남면 안남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지수리로 갈 수 있다. ●초보용 장비 플라이낚시의 장비와 복장은 좀 특별하다.제대로 갖추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지만 초보자용 장비는 30만∼50만원이면 무난히 구입할 수 있다. 전문숍이나 동우회에 들러 전문가급 선배의 조언을 듣는 것이 필수다. 장비는 크게 낚싯대·릴·줄·미끼와 바지장화 정도로 나뉜다. 초보자용으로 낚싯대는 7만∼12만원,릴은 2만 5000∼7만원이다. 낚싯대와 릴은 국산이 있지만 줄은 전량 수입품이다.줄은 여러가지인데,보통 물 위에 완전히 뜨는 ‘플로팅 타입’을 주로 사용한다.플로팅 타입에는 루프(캐스팅할 때 그려지는 곡선)가 아름다운 ‘DT’와 끝이 화살촉처럼 생겨 멀리 날아가는 ‘WF’(웨이트 포웨드)가 가장 많이 쓰인다.가격은 4만∼8만원선. 미끼는 초보자의 경우 타잉(바늘과 털 가위 등이 구비된 키트를 구입하여 만드는 것)을 하기보다는 전문숍에서 하나에 2000∼3000원 정도 하는 것을 사서 쓰는 것이 좋다. 주로 계류에서 낚시를 하기 때문에 계류화와 웨이더(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장화)가 중요하다.각각 1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낚시재킷,편광안경,부력제 등 나머지 장비들은 필요에 따라 구입하면 된다. ●어떻게 배울까 플라이낚시 전문숍이 온·오프라인에 많다.하지만 직접 방문해서 전문가에게 교육받고 인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판교에 있는 ‘앵글러스리버’는 초보자용 장비부터 200만원이 넘는 낚싯대까지 갖추고 있고 주인이 친절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www.ezfly.co.kr,(031)715-7555. 인터넷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플라이동우회로는 ‘좋은 친구들’이 유명하다.20년이 넘는 꾼부터 초보까지 회원층이 다양해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www.fly.or.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인기 프로그램 잣대 달라진다/ 인터넷이용 TV시청 확산추세 시청률 -VOD접속 일치안해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TV를 VOD(Video on Demand)로 보는 시청자가 늘었다.하지만 여전히 프로그램의 인기를 따지는 척도는 시청률.그렇다면 과연 시청률과 인터넷 다시보기의 접속률은 일치하는 걸까. 대답은 노(NO)! 큰 흐름은 비슷하지만 개별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면 종종 순위가 뒤바뀐다.TNS 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지난 한주간 KBS 드라마의 시청률 순위는 ‘저 푸른 초원위에’‘노란 손수건’‘아내’‘무인시대’순.하지만 인터넷의 VOD 접속건수는 ‘노란…’‘무인시대’‘아내’‘저 푸른…’ 순으로 나타났다.‘노란…’이 TV에서는 ‘인어 아가씨’와 같은 시간대에 붙으면서 시청률이 기대치만큼 올라가지 못하는 반면,시간의 구속이 없는 네티즌들은 ‘노란…’을 가장 많이 시청한 것. 프로그램의 시간대와 함께 VOD 시청층이 주로 젊은층인 것도 순위가 뒤바뀌는 데 한몫하고 있다.MBC의 경우 시청률은 ‘인어아가씨’‘타임머신’‘신비한 TV 서프라이즈’순이지만,VOD 접속건수는 ‘강호동의 천생연분’‘뉴 논스톱’‘러브레터’‘위풍당당그녀’순이다.‘인어아가씨’는 6위에 그쳤다.SBS의 VOD 접속 순위는 ‘올인’‘야인시대’에 이어 시청률 3위인 ‘흐르는 강물처럼’대신 ‘천년지애’가 올랐다. 시청률과 VOD 접속률이 꼭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선 제작진들도 핑곗거리가 생겼다.SBS 드라마 제작본부의 이용석 PD는 “시청률이 좀 나빠도 VOD접속률이 높으면 ‘방송 시간대가 안 맞아서’라는 이유를 댈 수 있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하루 평균 VOD 이용횟수는 방송사별로 적게는 7만여건에서 많게는 100만건.인터넷으로 TV를 보는 시청자가 부쩍 늘다보니 시청률 수치도 예전 같지 않다.‘첫사랑’(65.8%),‘사랑이 뭐길래’(62.7%),‘모래시계’(64.5%) 등 몇 년 전만 해도 인기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 50%를 훌쩍 넘기곤 했지만,최근에는 40%도 힘들다.‘대박’드라마인 ‘올인’‘인어아가씨’의 지난주 시청률도 39.8%·35.6%에 그쳤다. 시청률만으로 프로그램의 인기를 재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하지만 각 방송사는 유료화 문제 등 서로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프로그램별 VOD 접속건수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린다.이를 계기로 프로그램을 시청률이나 VOD 접속률과 같은 수치로만 평가하는 관행을 깨보는 것은 어떨까. 김소연기자 purple@
  • ‘러브 발라드’의 왕자 리처드 막스 새앨범

    ‘now and forever’‘right here waiting’등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 노래만을 고집해온 리처드 막스(사진)가 5년간의 공백을 깨고 최근 6집 ‘days in Avalon’을 들고 팬들 앞에 섰다. ‘Avalon'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존 도시 이름.앨범에서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노인이 볕 좋은 정원에 앉아 회상하는 인생 최고의 시절을 의미한다.이같은 내용을 담은 타이틀곡 제목을 앨범 이름으로 택했다. ‘days in Avalon’은 리처드 막스 특유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멜로디와 보컬이 여전한 곡.느긋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나 편안한 베이스 라인,그리고 화려한 코러스 등을 가미해 전형적인 신세대 록그룹 스타일을 지향했다. 다섯 번째 노래 ‘one more time’은 벌써부터 히트를 예감케 하는 곡. 최근 SBS 주말극 ‘흐르는 강물처럼’을 통해 잠깐 소개된 뒤 문의가 잇따를 만큼 반응이 좋다. 미드 템포 발라드의 ‘almost everything’은 작고한 아버지를 기리며 만들었다는 취지만큼 슬픈 느낌이 그대로 와닿는다. ‘high’는 보컬과 연주가 간지러울만큼 감미롭다.록 비트가 가미된 ‘more than a mystery’‘someone special’,그 밖에 ‘waiting on your love’‘I can't help it’ 등은 연인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실 사랑 노래들이다. 총 14곡의 러닝타임이 60분을 약간 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자이브.
  • [굄돌]雜文禮讚

    2000년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잡다한 것들의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멀티나 퓨전은 일찌감치 유행어가 되었고,다재다능이 요구되는 세상이 왔다.천박하고 유치하다며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영화나 대중음악은 세상을 읽는 가장 대표적인 코드가 되었고,젊은이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1980∼90년대가 논문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잡문의 시대이다.짧고 가벼운 글들이 주는 경쾌함은 아름답다.하나의 논리를 담은 무거운 글들은 어렵고 딱딱하지만,잡문은 쉽고 가볍다.어려운 주제를 무겁고 딱딱하게 쓰기는 쉽지만,가볍고 경쾌하게 쓰는 것은 오히려 더욱 어렵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써온 글을 반으로 줄여오라고 시킨다.그리고 반으로 줄여온 글을 다시 반으로,결국 더 이상 줄일 수 없게 될 때까지 글을 다듬고 깎아내게 한다.내가 아직도 그 사소한 장면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장면이 내게 잡문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비유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잡문들 중 하나는 잡지마다 서두에 붙어있는 ‘편집장이 독자에게’이다.잡다한 것을 모두 모아놓은 ‘잡지’도 재미있지만,그 잡다한 것들을 군사로 거느린 장군이 전쟁에 나서기 전 출사표처럼 던져놓는 그 글은 형식 없이 자유로운 잡문의 최고봉이다.‘씨네21’에서 조선희·허문영씨가 쓴 글은 단순한 잡문 그 이상이다.그런가 하면 ‘프리미어’의 맹렬 아줌마 최보은씨의 글은 잡문의 표본과도 같다. 정운영 선생의 단아한 잡문은 얼마나 아름다우며,김규항씨의 잡문은 얼마나 간결하고 명쾌한가.김영하씨가 쓰는 잡문에는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이제 잡다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면 그 세상을 건널 무기도 잡다한 것이어야 한다.그렇다면 잡문이 이 어지러운 세상을 가볍게 훌쩍 건너게 해줄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그래서 나는 잡문이 좋다. 김종삼씨의 아름다운 시 ‘북치는 소년’의 한 줄짜리 첫 연이 내게 명쾌한 잡문예찬으로 읽히는 것은 멋진 오독(誤讀)이 아닐까.‘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조 희 봉 북 칼럼니스트
  • 새달 방영 SBS ‘흐르는 강물처럼’ 주연 김주혁/“능청스러운 백수役 어울리나요?”

    “목에 힘도 안 주고 닭살 돋는 대사도 없어 정말 다행이에요.” 최근 종영한 SBS 주말극 ‘라이벌’에서 매너 좋은 재벌2세 태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김주혁(31)을 곧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주연급으로 발돋움한 그는 오는 11월2일 첫 방영되는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흐르는 강물처럼’(토·일 오후8시45분)에서 능청스러운 백수로 변신한다. 그가 맡은 역은 김도현(장용)과 박순애(고두심) 사이의 장남 김석주.성년이 됐으면서도 부모에게 기생하는 게으르고 밉살스러운 인물이다.월급쟁이는 싫고,7년 사귄 애인 박상희(김지수)와는 애인으로만 지내고 싶다.결국 대책없이 결혼하지만,벤처사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해피엔드를 맞게된다. “실제로도 이번 역할처럼 장난기 많고 능청스러운 성격이에요.진지한 것을 못견디는 데 어찌된 게 매번 진지한 역할만 했어요.‘라이벌’에서 맡았던 역할처럼 느끼(?)하지 않아 큰 부담이 없더라고요.”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학과(91학번)를 졸업한 뒤 1년 동안 대학로에서 ‘보이첵’등 연극을 하다 98년 SBS 공채 8기로 연예계에 입문했다.드라마 ‘카이스트’‘서울탱고’,영화 ‘세이 예스’‘YMCA야구단’에서 조연으로 기본기를 다졌다.‘누구의 후광’으로 반짝스타가 됐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이력이라고 강조한다.그는 탤런트 김무생씨의 둘째아들이다. “아버지는 연기에 대해 한번도 지적하신 적이 없어요.뜬구름 같은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항상 겸손하라고 충고하실 뿐이지요.실제로 ‘라이벌’로 얼굴이 알려지다 보니 왜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자꾸 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더라고요.” 그는 이런 이유에서 쉽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그의 현안은 금연이다.주량이 소주 석잔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 마땅한 수단이 없어 하루 담배를 두 갑이나 피운다.그에게 이상형을 물었다. “밝고 명랑한 여자가 좋죠.예쁘면 더 좋고요.그런데 연예인은 절대 싫어요.” 주현진기자 jhj@
  • 선택6.13/ 대선후보.각당대표 출사표

    ■“진보정치 국민적 열망 꼭 실현”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는 “진보정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왔다.”면서 “217명의 후보자들은 노동자·서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이어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꼈다면 민노당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민노당은 언론의 무관심과 기성 정치권의 높은 장벽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권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도 향응 제공,금품 수수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후보자간 상호비방과 고소·고발이 치열했다.”고 지적했다.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저질스러운 정치싸움은 냉소적 유권자들의 발길을 더욱 돌려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민노당 후보가 선전한 울산시장선거와 관련,“한나라당이 보여준 추악한 음해공세는 혼탁선거의 결정판”이라고 비난했다.또한 “방송사들이 토론회에 민주노동당을 배제,진보정당의 주장과 정책을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섭섭함을 표시했다. 이지운기자 jj@ ■민주당 노무현후보 “낡은정치 개혁 계속돼야” “민주당이 최근 국민에게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드린 것은 사실이지만,그렇다고해서 한나라당이 대안일 수는 없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지방선거 투표일을 하루 앞둔 12일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세풍사건 등 각종 부정과 부패로 손을 더럽혀온 이회창(李會昌)후보와 한나라당은 부패청산의 주역이 될 수 없고,때묻은 손으로는 결코 깨끗한 정부를 세울 수 없다.”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노 후보는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마지막까지 판단이 어렵다.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즉답을 회피했다.그러면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경우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는 약속에 대해선 “그 약속은 변함이 없다.나중에 따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그는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선거시기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계속 터져나온 것이 어려웠다.”며 그동안 선거운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털어놓았다.투표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지난날을 되돌아 보니,아쉬운 점이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통령 아들들 비리의혹 등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당 안팎에서 제기된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에 대해 “억지로 자기의 역사를 부정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우리 당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잘못을 짊어지고 반성과 개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지,당 이름을 바꾸고 누구를 나가라고 하는 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월드컵 열기 등으로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우려되는 것과 관련,노 후보는 “축구대표팀을 한마음 한뜻으로 성원했듯이 그 성숙한 자세로 투표에 참여해 달라.”며 민주당 지지세력인 20∼30대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자민련 김종필 총재 “충청인의 정당은 자민련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12일 기자회견을 생략한 채 오전 주요당직자 간담회를 갖고 곧바로 충남지역으로 달려가 막판 표심잡기에 부심했다.앞서 김 총재는 11일 대전과 청주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들과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대신했다. 김 총재는 이들 기자회견에서 ‘충청권 위기론’을 제기하며 충청표 결집을 호소했다.그는 “충청인들을 사분오열시키려는 한나라당에 일부 충청인들이 부화뇌동하는 것이 충청의 첫째 위기이며,충절과 의리의 고장이 변절과 배신의 고장으로 돼가는 것이 둘째 위기”라고 주장했다. 김 총재는 “충청을 대변할 정당은 자민련뿐이고,어느 정당도 충청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대전과 충남의 형제자매들이 13일을 충청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날,충청인이 존경받는 날로 만들자.”고 호소했다.민주당과 공조했다가 파기하는 등 엇갈린 정치행보를 지적하는 질문에는 “우리가 민주당과 공조한 대의적 생각이 충청인에게 이해가 안갔던 것 같다.국가의 내일을 위해 공조한 것이고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망각한 행위는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진경호기자 jade@ ■한나라 이회창후보 “부패한 정권 심판의 날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3 지방선거는 부패정권을 심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세력에 또다시 국가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부패정권 심판론’을 역설했다. 이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 전망에 대해서는 직답은 피했지만,자신은 있는 듯했다.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민심을 읽었다.”면서 “서울·대전·울산·제주 등 접전지역에서도 최선을 다했으며 국민들이 좋은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기간중 (각 정당들이) 정권창출을 강조하는 등 마치 지방선거가 대통령선거처럼 진행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이 후보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대선인 것처럼 혼동시킨 것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는 또 “자민련 때문에 충청도가 변방에 밀려난 게 안타까워 울산이나 경남에서도 한 거함론 얘기를 충청도에서도 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큰 배에서 국정운영의중추적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강조한 것일 뿐,(일부 정치인들처럼)지역감정을 부추긴 게 아니며 지역을 볼모로 한 것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일부 언론에서 월드컵 성적과 지방선거의 승패를 연결시키려는 전망과 관련,이 후보는 “설령 한나라당에 불리해 지더라도 월드컵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우리팀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특히 이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갈 20∼30대 젊은층은 부패정권이 연장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권력의 부패에 맞서 싸우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드는 일에 젊은층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곽태헌기자 tiger@ ■미래연합 박근혜대표 “기존정치 엄중 경고를”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참신성을 강조하며,이번 지방선거를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의 기회로 삼자고 역설했다. 박 대표는 “기존의 부패한 정치,구태의연한 정치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엄중히 경고하고 심판해 주시길 바란다.”면서“새롭고 깨끗한 정치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우리 한국미래연합을 지지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민국당 김윤환대표 “거대정당 독식 막아야” 김윤환(金潤煥) 대표가 이끄는 민국당측은 “주민자치까지 위협하는 거대 정당의정치적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수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한다.”면서 군소정당의 지방행정 진출을 적극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민국당은 “아울러 마음 내키지 않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오늘의 대선구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계개편의 충격요인이 이번 선거를 통해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녹색평화당 임삼진대표 “건강한 녹색정치 구현” 임삼진(林三鎭) 녹색평화당 공동대표는 “개발과 발전의 논리로 황폐해진 ‘회색한국’을 살려내기 위해 녹색씨앗을 뿌렸다.”면서 “아직 그 씨앗은 미약하지만 그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 녹색 한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임 대표는 “상호비방과 욕설공방으로 얼룩진 ‘흑백 정치’를 따스하고 인간미 넘치는 ‘녹색 정치’로 바꿔 나가겠다.”고 호소했다. ■사회당 원용수대표 “보수정당은 희망 없다” 사회당 원용수(元容秀) 대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의 부패와 타락에서 보듯 기존 보수 정당에 희망은 없다.”면서“한국의 좌파정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원 대표는 “환경과 생태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당에 표를 몰아줘 기성 보수정당의 썩은 정치,지역주의 정치,금권정치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자.”고 밝혔다.
  • 선택6.13/ 첫 ‘정당투표’ 변수로

    ‘월드컵 열기를 선거로 이어가자.’ 앞으로 4년간 지역살림을 이끌어 갈 광역·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새로 뽑는 제3회 지방선거가 1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만 3461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된다.4대 선거 중 광역 및 기초단체장선거에서는 전자개표 방식이 채택돼 광역은 밤 10시쯤,기초는 자정무렵 쯤에는 당선자가 확정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8월8일 국회의원 재·보선과 12월 대통령선거의 판도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유권자들의 책임의식과 적극적인 투표참여가 요구된다.특히 비례대표 광역의원(73명) 투표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정당투표제)가 처음 도입됨에 따라,진보정당 등 신진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해 정치권을 변화시킬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려대 정외과 이내영(李來榮) 교수는 “이번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의미와 함께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다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월드컵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을 선거참여를 통해 더욱 드높여야 한다.”며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각 정당은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밤 12시까지 최대승부처인 수도권과 충청권에 당력을 총집중하며 마지막 득표전을 벌였다.주요 정당과 후보들은 서로 상대방이 폭력과 금품살포 등 막판 불법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을 주고받으며 고소·고발사태도 이어져 선거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서울지역 거리유세에 각각 나서 ‘부패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후보는 오전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정권을 심판하지 못하면 그것은 부정부패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권력의 부패에 맞서 싸우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드는 것은 젊은 여러분의 용기”라며 젊은층의 지지를 당부했다. 민주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서울과 경기도,한화갑(韓和甲) 대표가 인천 지원유세에 나서는 등 수도권 공략에 당력을 쏟았다. 노 후보는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엄청난 부패 전력을 지닌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부패청산의 주역이 될 수 없다.”면서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축구대표팀을 성원하듯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충남·북을 돌며 ‘충청인 대단결론’을 내세우는등 텃밭인 충청권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2)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이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 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 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밤을 새워 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그 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 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늘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 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 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 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강을 등지던 시간도 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 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 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 뗏꾼들은 험한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 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 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취해 어슬렁거리다 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 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나귀에봇짐을 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남정네가 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스쳐갔다. 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 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갔다.이번에는 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 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털푸석 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짝은 뒤틀린 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 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 이 강의 시원이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 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 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갔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 하지만 고향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 그 날, 그는낚싯대를 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 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바뀌어 봄이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 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 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바라보던 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들어왔다고 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는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 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최고의 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살다보면 세상에는 열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알았겠는가. 나는 이 강의 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 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 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떠나온 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 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 나침반으로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 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낯선 길에서 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해 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일요일이면 밀린빚을 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 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 그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 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받아들였다. 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 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 수는 없는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 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는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 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 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뻐꾹 울어댔다. 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 세월처럼 무서븐 게 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먼 곳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 누치도 잡고, 보고 싶다던 무당소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않아도 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 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누치는 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장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북진나루.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 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그득그득 싣고 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 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아버지를 빼앗겨버린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기며칠 전에야 말했지요. 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 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보인다. 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알고 있다. 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 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 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 윤공희대주교 27년 광주대교구장 마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고집해온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尹恭熙·세례명 빅토리노·76)대주교가 30일 27년동안 맡았던교구장직에서 은퇴했다. 윤 대주교는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몸으로 항거하는 등 ‘교회’를뛰어넘은 올곧은 행동으로 광주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을 받아왔다. 그는 성직자의 사회참여에 대한 일부의 비판에 대해 “하느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며,정의란 그 시대의 복음을전하는 행위”라며 “사회의 모순과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는 일이 곧그리스도의 구원”이라고 말했다. 윤 대주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농락했던 과거를 정확히 되짚어야만 진정한 화해와 화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고시촌 산책/ 군필자 시험응시 불이익 없어야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7·9급 공무원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부여되는 가산점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그 이후 한동안 들끓던여론은 이제 좀 잠잠해 진 것 같지만,여진(餘震)은 아직도 계속되고있다. 얼마전 공무원시험 등에서 10%의 국가유공자 가산점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그런가 하면 지방·기술고시 1차시험 합격자들은 “군필자와 미필자에게 동일한 응시연령이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는헌법소원을 제기,현재 헌재에 계류중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한 젊은이들에게 어떤식으로든 보상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설사 헌재 등의 주장처럼 “의무의 이행에는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군필자들이 군복무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만은보전(補塡)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우선 지방·기술고시 1차 합격자들의헌법소원에서도 보듯 군필자들은 군복무기간만큼 응시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행정자치부는 “고시합격 평균연령에 비추어 볼 때 응시제한 연령 32세면 충분히 응시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행자부는 군필자들이 병역미필자들에 비해 3회 정도 응시기회를 박탈당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군필 수험생들이 받는 불이익은 또 있다.공무원시험에서 동점자가발생했을 때 연소자를 우선 선발한다는 규정이다.만일 30세의 군필남성수험생과 28세의 미필수험생이 동점을 받았을 경우 군필자는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그가 26개월 혹은 그 이상의 기간 군복무를 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군필 수험생들에게 군복무기간만큼 응시연령을 연장해 주고,동점자처리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것은 가산점제도처럼 여성등에게 상대적인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도 군필자들의 권익을 되찾아 주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젊은이들의 수고에 대해 최소한의 감사와 애정은 표시할 줄 아는 나라,아니 적어도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지는 않는 나라,그게 진정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일 것이다. 김채환 고시정보신문사 대표
  • [16대 국회 初選 대해부](1)민주화운동 그룹

    16대 국회에 진출하는 초선 의원은 모두 111명이다.민주화운동 그룹을 비롯,법조·행정·언론·기업·군 출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탈 보스정치·탈 계보화와 국회개혁을 다짐하고 있다.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포부를 들어본다. 16대 국회의 새 인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그룹은 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그룹이다.숫자는 10여명에 불과하지만 소속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새로운 정치를 다짐하는 등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주화운동 그룹은 크게 재야 출신과 학생운동 출신으로 나눌 수 있다. 재야운동가 출신으로는 민주당의 이창복(李昌馥·강원 원주)·심재권(沈載權·서울 강동을)·이호웅(李浩雄·인천 남동을)·배기선(裵基善·부천 원미을)·이재정(李在禎·전국구)·한명숙(韓明淑·전국구) 당선자가 꼽힌다. ‘마지막 재야’로 불리는 이창복 당선자는 한 시대를 관통하며 재야 세력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개혁국민연합 등 재야단체에서 공동의장 또는 상임대표라는 직책을 맡은명실상부한 재야운동권의 중심 인물이다.그는 “당과 정치권의 쇄신을 위해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심재권 당선자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선봉에 섰다.수배와 구속,도피,망명생활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서울대 상대 재학중이던 71년 내란음모예비죄,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그는 “정의가강물처럼 흐르는 사회,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조국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으며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의 모습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재정·한명숙 당선자 역시 항상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이 당선자는 “참여민주주의 정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학생운동 출신으로는 민주당의 송영길(宋永吉·인천 계양)·임종석(任鍾晳·서울 성동) 당선자,한나라당의 김부겸(金富謙·경기 군포)·심재철(沈在哲·경기 안양 동안)·김영춘(金榮春·서울 광진갑)·이성헌(李性憲·서울 서대문갑) 당선자 등이 포진하고 있다. 맏형격인김부겸 당선자는 유신 반대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시위로 제적·구속·복학을 반복했다.민추협 부대변인을 거쳐 15대 때 민주당 후보로 과천·의왕에 출마했으나 쓴잔을 마셨다.김 당선자는 “무조건 당론에 따르는 거수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심재철 당선자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출신으로 80년 ‘서울의 봄’때 김 당선자와 함께 학생운동을 이끌었다.그는 “옳은 것은 옳고,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대 총학생장 출신인 김영춘 당선자와 연대총학생장 출신인 송영길 당선자는 84년 연고전이 끝난 뒤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김 당선자는 “인사청문회 도입,특별감사제 도입 등 제도 보완에 힘쓰겠다”고 밝혔고,송 당선자는 “1인 보스정치를 극복하고,상식이 통하는 정치 풍토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16대 최연소 당선 기록을 세운 임종석 당선자는 89년 전대협의장 출신으로민주화운동을 통일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그는 “민주화운동은 이제 시민운동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참여정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시민단체들의 정치 참여 확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강동형 주현진기자 yunbin@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I)고봉준

    ◆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백무산論 ◆ [1]90년대는 이른바 포스트-모던 담론의 시대이다.현대 영·미 철학과 프랑스철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이 담론들은 근대 서구 철학의 주춧돌인 합리적 이성과 동일화 논리를 전략적으로 해체시키면서 탈근대적 사유를 정초시킨다. ‘다양성(차이)’의 긍정을 통한 ‘탈근대’적 사유로 공약되는 이들 포스트주의 담론의 격랑은 우리 문학에도 새로운 문제틀을 촉발시켰다.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사회적 주체의 생성을 이미 틀지워진 구조 속으로 몰아 넣거나 이념의 족쇄로부터 풀려난 반사회적 주체들을 양산함으로써 오히려 문학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90년대적’이라는 사회학적 관용구는 이러한 포스트담론들에 대한 한국적 반향의 일종이다.그리고 이러한 90년대적 사유의 한극점에서 ‘근대성’담론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지난 세기와 새롭게 도래하는 밀레니엄의 분별지를 이룬다.보편적인 의미에서 탈근대란 근대적 주체(코기토)의 파산을 선고하는 조종(弔鐘)이며,동시에 서구적 거대 담론의 시효만기를 의미한다.코기토로 표상되는 합리적 이성은 역사의 구조와 과정을 논리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일상적 경험을 비롯하여 이성으로 인식될 수 없는 사건들을 배제시킴으로써 탈근대적 사유의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탈근대적 사유란 결국 탈근대적 주체의 발견과 그 주체의 욕망에 대한 문제를 사유하려는 행위와 다름 아니며,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의 출현과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경험하고 있다.그러나 탈근대적 사유의 한국적 수용은 거대담론이 개인으로부터 강탈해 간 일상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역사가 축조한 문제의식을 생활세계로부터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또한 탈근대성 논의들은 근대와 탈근대를 적대적 모순의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상호배제라는 극단적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근대와 탈근대의 문제의식이 이처럼 화해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일 때 결국 그들은 서로의 굴절된 욕망만을 투영하는 거울,즉 일란성쌍둥이 이상의 의미는 아니다.이러한 역설의 질곡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근대를 넘어서려는 담론들이 노자(老子)철학과 불교적 사유를 근간으로 최근 우리 문학에서 시도되고 있다. 백무산의 언어는 근대를 가로지르며 그 너머의 세계로 횡단하고 있다.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에서부터 ‘길은 광야의 것이다’(1999)에 이르기까지를 관통하고 있는 그의 시의 핵심은 ‘생성’과 ‘소멸’의 문제이다.80년대라는 정치적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초기 시에서 이러한 대립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 현실을 고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그러나 ‘인간의 시간’(1996)이후 그의 시는 ‘혁명’으로 표상되는 근대적 패러다임에 대한 철저한 자기부정,생태학적·불교적 사유의 탄력적인 수용을 통해 ‘생성’이라는 탈근대적 언어로의 횡단을 모색하고 있다.물론 이때의 ‘생성’담론은 여타의 탈근대적 사유들이 보여주는 탈역사적인 특성들과는 달리 역사성의 대지라는 근대적 지반에 뿌리내리고 있으며,나아가 근대적 산물의 성과를 부정하지도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백무산의 사유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드러낸다.경계,그것은 80년대와 90년대,근대와 탈근대의 이중적 관계를 가로지름으로써 생성적 사유로 넘어서려는 언어적 전략이다.이 글은 그의 언어가 펼쳐 보이는 사유의 궤적을 따라 근대의 문턱을 조심스레 넘어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2]백무산의 시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두 진영의 ‘확연한 갈라섬’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갈라섬’이란 곧 배제의 원리이며,그러한 단절을 통해서이들 두 진영은 각자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초기시 ‘만국의 노동자여’와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피지배세력의 저항이 모순의 극단적 양태인 적대적 분열을 통해 본질적인 힘을 추동받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그리고 이러한 적대적 분열의 자장은 “밥 가운데서 죽은 밥과 산 밥을 보았다”처럼 ‘밥’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구체화된다. 1)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쓰일 데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살아 있는노동의 밥이 -‘노동의 밥’부분2)무슨 밥을 먹는가가 문제다/우리는 밥에 따라 나뉘었다/그 밥에 따라 양심이 나뉘고/윤리가 나뉘고 도덕이 나뉘고 또 민족이 서로 나뉘고//… 그래서밥은 계급적이고//노동자의 가슴에/노동자의 피가 흐르는 것은/밥이 다르기때문이다 -‘만국의 노동자여’부분‘밥’은 곧 현실의 질서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다.1)에서 노동자의 밥은 ‘피가 도는 밥’‘펄펄 살아 튀는 밥’‘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처럼 생명성을 지니는 반면,자본가의 밥은 단순한 소모의 대상 이상으로 의미화되지 않는다.여기서 ‘밥-힘(노동)-밥’으로 연결되는 노동자의 밥은 생성의 힘을 선취하고 있다.표제시 2)에서 ‘밥’은 ‘양심’‘윤리’‘도덕’‘민족’등의 상부구조적인 모든 질서를 나누는 분별지이다.따라서 ‘밥’을 둘러싼 투쟁이란 경제투쟁의 차원을 넘어선 ‘생명’이라는 새로운 문제틀을 함의한다.이제 밥은 단순히 음식과 경제의 표상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며,동시에 그 진리를 판가름하는 ‘메타-진리’인 것이다.‘밥’을 통한 사물의 재분할은 인간을 ‘죽은 자’와 ‘산 자’로,‘밥’을 ‘죽은 밥’과 ‘산 밥’으로 그리고 ‘역사’를 ‘죽은 역사’와 ‘산 역사’로 새롭게 규정하는 계기가 된다.밥은 곧 세계를 구획짓는 새로운 질서이다.그 새로운 질서에 의해 생명의 계열(산 밥-산 자-산 역사)은 노동(자)의 세계를,그리고죽음의 계열(죽은 밥-죽은 자-죽은 역사)은 자본(가)의 세계를 표상한다. ‘만국의 노동자여’가 ‘밥’을 매개로 한 대립의 세계를 형상화한다면,‘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시간’을 둘러싼 대립의 세계를 그려 보인다.여기서 ‘시간’이란 노동의 소외와 물신화라는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시간을 둘러싼 투쟁이다/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뺏고/되찾는 투쟁의 역사다//…자본가!…자연을 개조하고 한 역사를 개조하고/이윤을 위해 인간의 시간을/이윤의 시간으로 전환해 버리는 힘의 소유자…자본가들은 드디어 세상의 모든 시간을 제압했다…인간의 시간을 제압해 버렸다…그 누구도 어떠한 계급도자본의 시간으로부터/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를건설했다…파업에는 혁명이라는 괴물이 숨어 있다고/파업에는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피빛 혁명이 숨어 있다고-‘서시-생존의 경쟁’부분근대적 성격을 띠는 ‘자본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자연의 시간’과 대립적으로 인식된다.이때 ‘인간의 시간’이란 분절되고 선분화된 직선적 흐름이 아니라 생명의 새로운 생성과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살아 있는 시간’만이 ‘움직임’과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그러나 근대 자본주의는 발전의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절대적인 분리를 초래하였다.‘시계’라는 근대적 장치의 등장은 그러한 분리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표상이다.그 과정에서 ‘시계’는 인간의 노동을수량화함으로써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분배와 측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착취하는 기계가 되었다.반면 파업을 통해 구가하는 생명의 되살림이란 결국 자본주의적인 시간 혹은 ‘죽음의 시간’과 대조되는 ‘살아 있는 시간’의 발견이다.그가 ‘자본론’에서 발견한 ‘돈으로 왜곡된 시간’역시 결국 이러한 근대적 시간관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에 대한 역설(力說)적 표현이라 할수 있다. [3]‘인간의 시간’은 90년대가 지난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우리의 기억 속에서 80년대는 여전히 ‘불의 시대’이다.80년대는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황홀하게 조응’함으로써 시가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던 뜨거운 시대였다.그러나 그 뜨거운 서사는 결국 ‘패배’라는 단어 뒤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종결되었다.‘인간의 시간’은 시인의 긴 침잠이 자기부정의 여정이었음을 고백하는 낮은 목소리로 시작된다.누가 이런 길 내었나/가던 길 끊겼네/무슨 사태 일어나 가파른/벼랑에 목이 잘린 길 하나 걸렸네//옛 길 버리고 왔건만/새 길 끊겼네/…지난 길 다 버린 뒤의 경계//아,나 이제 경계에 서려네/칼날 같은 경계에 서려네//나아가지도 못하나 머물지도 못하는 곳//아스라히 허공에 손을 뻗네/나 이제 모든 경계에 서려네-‘경계’부분한 시대를 길의 이미지로 표상한다면 90년대란 ‘벼랑’이 아닐까?이때 벼랑이란 “옛 길 버리고 왔건만/새 길 끊긴”참혹한 현실의 상징이다.‘옛 길’과 ‘새 길’이 모두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벼랑에 목이 잘려’위태롭게 걸려 있는 길,그것은 ‘경계’이다.두 길의 이중주가 만들어 놓은 예각으로서의 경계란 일종의 정치적 망명상태이며,‘나아가지 못하나 머물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임에 틀림없다.시집 도처에서 발견되는 한숨과 자조의 강박적 반복은,그가 ‘경계’위에서 지나온 삶을 허무는 고투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이러한 자기부정을 통해 그는 “그대가 잃은 길도 집도/진작 허물어져야 했던 것이네”“차라리 길이었으므로 갈수가 없었습니다”“이미 난 길은 길이 아니네/이미 지어진 집은 집이 아니네”처럼 ‘무위(無爲)’의 세계를 발견한다.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한다/소모와 죽음의 행로를 걸어온,/날로썩어가고 황무지만 진전시켜온/죽은 시간을 전복시킨다/대지는 단절을 꿈꾼다/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대지는 이렇게 혁명을 하는 것/잠든 씨 알갱이들과 언 땅 뿌리들을/불러내는 것은 봄이 아니다/스스로 자신을 밀어올리는 것/생명의 풀무질을 충만하게 가두고/안으로 눈뜬 초미의 주의력을 늦추지 않는 것/시간과 봄은 생명력의 배경일 뿐//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믿는가/그렇지 않다/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인간의 시간’부분 무위의 세계는 곧 조화와 융합,즉 대자연의 세계이다.그 세계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배려’란 본질적으로 ‘타자성’에 대한 인정이며,나아가 지난날 인간이 구가해 온 폭력적 이성에 대한 반성이다.“모든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은 바로 생명의 본원적인 흐름이며,그러한 자연의 질서란 그 속에 어떠한 ‘지휘계통’도 내포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연의 질서란 ‘내재적’사유로서의 ‘생성’을 근간으로 한다.그러나 이때의 ‘생성’과 ‘생명’은 ‘역사’라는 근대적 사유와의 관계장 속에 놓임으로써 근대적 가치 전체로부터 수직적인 초월을 모색하지는 않는다. 즉 생성이란 부르주아와 자본으로 점철된 근대적 시간관의 형이상학적 역사,나아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근대 이성의 부정태에 대한 거역의 차원이지 결코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복고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퇴행성 의지는 아니다.이러한 사유에 의해 혁명적 담론은 새롭게 구성된다.생명이 대지의 내부에 존재하듯 혁명이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내부적 사건에서 촉발되는 것이다.‘잠든 씨 알갱이’와 ‘언 땅 뿌리’를 불러내는 것이 결코 ‘봄’이 아니듯이 혁명이란 인간의 외부적 상황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밖으로부터의 변혁이 아닌 안으로부터의 과정이어야 한다.그 내부의 힘이 곧 ‘단절의 꿈’이고 또한 그것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다.따라서 이제 ‘혁명’이란 대지와 자연의 질서를 닮은 형태여야 하며 그것의 인간적 현상이 곧 노동이다.‘인간의 시간’은 생성으로서의 역사가 언제나 단절의 맹아를 잉태하면서 접힘과 풀림을 반복하는 운동임을 보여주고 있다.
  • 새천년 D-100일 金대통령 대국민 메시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새천년 D-100일을 하루 앞둔 22일 메시지를 발표,“우리 모두 힘을 합쳐 새로운 도전에 적극 대처해 자랑스러운 새천년의 통일한국을 가꾸어 나가자”고 호소했다.다음은 메시지 전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오늘로 새로운 천년 21세기가 100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우리 앞에 펼쳐질 새 시대는 단순한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의식과 문화의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오늘 저는 100일후면 다가올 이 문명사의 역사적 대전환점을 바라보며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맞을 새 천년,21세기의 꿈과 희망,그리고 도전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20세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전반 반세기에 걸친 국권상실,후반 반세기의 남북분단과 전쟁,그리고 IMF의 경제난국까지 겪어야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불가능 할 것 같이 보였던 민주화를 우리 국민은 굽힐 줄 모르는 투쟁과 헌신을 통해서 50년만에 성취한 것입니다.세계가 놀랄만큼 빠른 시간에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것도 우리 국민입니다.이번 APEC 회의에서도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회복이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이는 바로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저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세기,새로운 천년은 인류 역사상 최대혁명이라 할 수 있는 ‘지식혁명시대’가 될 것입니다.지식과 정보문화의 창조력이 국부의 원천으로 되는시대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는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21세기를 위해 태어난 민족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세계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는 높은 교육수준과 문화적 창의력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도전정신과 진취적 기상이 드높은 저력있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바로 대처해야 합니다.우리 민족은 조선왕조말엽 근대화가 역사의 필연이었던 시대에 이를 외면하다가 근대화를 받아들인 일본에 국권을 상실한 쓰라린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21세기의 도전에 바르게 대응하면 세계 일류국가가 될 것이고 실패하면 과거 100년의 설움을 또 한번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우리 모두 힘을 합쳐 새로운 도전에 적극대처해 나갑시다.이것이 새천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가 들꽃처럼 피어나고 번영이 강물처럼 흐르는 자랑스러운 새천년의 통일한국을 가꾸어 나갑시다.
  • [박강문코너] 폭탄주 권하는 사회

    몰로토프 칵테일은 술이 아니라 폭탄이다.우리가 화염병이라고 부르는 이것으로 전시에는 탱크도 잡았다.폭탄주는 마시는 술인데,때로는 이것도 폭탄이다.법무부 장관과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일시에 물러나게 했을 만큼 위력이대단하다.몰로토프 칵테일에 댈 바 아니다. 우리나라에 폭탄주 마시기가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군에서 시작돼 군사통치 시절에 일반 사회에 퍼진 것으로 보이지만,본디 서양 땅에서 들어왔을 것이다.미국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맥주 가득 부은 잔에 버번 위스키가 든 잔을 빠뜨려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미국 공군 조종사들이 흔히 폭탄주를 마셨다고 하는데 이들도 원조는 아니고 이보다 훨씬 앞서서 영국 탄광부와 뱃사람들이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서민이 적은 돈 들여 많이 취하려고,또는 심리적으로 쫓기는 공군 조종사가 빨리 취하려고 마셨을 폭탄주는,우리 술판의 술잔 돌리기와결합하면서 거의 토착 풍습처럼 되어 가고 있다.위스키가 없으면 소주로라도 심을 박아 잔을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가 꽤 많다. 폭탄주 술판을 보자.두 가지 술로 폭탄주를 만들고,그 잔을 돌리고,마신 사람은 빈 잔들이 딸랑딸랑 소리가 나도록 머리 위로 흔든다.의식(儀式)과도같다.개인을 집단에 함몰시키려는 의식이다.머리 잘 쓰는 술 제조업자들이폭탄주 완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술자리에서 즉석 혼합주를 만드는 것부터가 의식이기 때문이다. 뭐든지 우리 땅에 들어오면 대체로 제바닥보다 맹렬해지는데 폭탄주 풍속도 그렇다.술 강권하기와 겹쳐져 무자비한 폭력성까지 띤다.주량만큼 개인차가 큰 것이 드문데도 우리 사회의 폭탄주 돌리기는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집단 가혹행위나 다를 바 없다.술이 센 호걸들의 호언과 과시가 질펀해지는 동안 술이 약한 사람은 초주검이 되어 간다. 폭탄주 하면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가 연상되는데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신세계에서는 인간 정서를 획일화하는 소마라는 약을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한다.소마는 근심과 불안,자아 성찰,창의적 사고,반항심,의심 등이의식 속에 자리잡을 틈을 없앤다.불평 없는 복종심만 남긴다.소마를 거부하는 것은 반역이다.주석에서 폭탄주 피하기는 반역처럼 어렵다. 사람 사귐에 술이 확실히 좋은 윤활제 구실을 하기는 하지만,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면 바른 것을 굽히고 맑은 것을 흐리기 쉽다.술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양심의 갈등을 잊게도 한다.이래서 술이 선용되기도 하고 악용되기도 한다.불합리에 부딪혀 절망하고도 술이요,합리를 불합리로 덮어야하거나 덮고 싶을 때도 술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온 문학작품에‘술 권하는 사회’라는 것도 있었고‘취한들의 배’라는 것도 있었는데,여전히 이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고 취한들의배인 듯하다.술 접대를 전담하는 이른바‘술 상무’가 딴 나라에도 있는지모르겠다.깊은 밤 길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토악질하는 취한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가 달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일찍이 먼 옛날 중국 임금이 처음 술을 맛보고는 술로 망하는 사람이 나오겠구나 걱정했다고 한다.‘십팔사략’(十八史略) 앞쪽 부분에 있는 기록인데 그 우려는 들어맞았다.취중 살인,취중 방화,취중 실언,취중 패싸움,취중 패륜이 얼마나 많은가. 술은 역사도 바꾼다.91년 8월 소련의 개혁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변방 별장에 휴가 가 있는 동안 수구세력이 모스크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며칠만에 실패로 끝났다.‘실패한 쿠데타’의 한 원인이 술이었다.쿠데타 수뇌부 인물들이 독한 보드카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는 후속 조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가 어이없이 무너졌다. 도덕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검사들이 대낮에 폭탄주 마신 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을 우리는 최근 한 달 간격으로 연거푸 보았다.폭탄주 돌리기는 비인간적이며 부작용이 큰데도 속효성과 그에 따른 경제성을 찬양하는사람들이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리무리 술에 취해 돌아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폭탄주 관습은 이제 없애거나 수출하는 것이 좋다.
  • 구조조정 “흐르는 강물처럼”/전경련 孫炳斗 부회장

    ◎“막을 수도 없지만 재촉할 수도 없어”/타율보다 시장경제 논리로 풀었으면/인색한 여론 섭섭… 미국도 10년 걸려/반도체 호황땐 통합법인 설립 무의미 “신3저를 수출증대로 연결시키려면 무엇보다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돼 금융경색이 풀려야 합니다.반도체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면 현대와 LG의 통합법인 설립계획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요즘 ‘리틀 김’으로 불린다.金宇中 전경련 회장만큼이나 바쁘기 때문이다.29일부터 이틀간 일본에서 열린 한일재계회의에 그룹총수들과 함께 참석한 뒤 30일 오후 곧 바로 귀국한 그를 만나봤다. ­재계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들이 여전합니다. ▲여론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기업구조조정은 정부개입보다는 시장경제의 원칙아래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퇴출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기업은 환경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기업환경이 어디보다 좋다는 미국이 구조조정에 10년이 걸렸습니다.경제개혁에 성공한 뉴질랜드도 7년이 걸렸습니다. ­이(異)업종 상호지급보증 해소,계열기업 축소 등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정부의 재계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는 느낌인데요. ▲상호지보 해소는 2000년 3월까지 마무리하게 돼있습니다.기업들이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이업종에 대한 정의가 분명히 내려져야 합니다.기존의 상호지보 해소계획과 상충돼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계열기업 정리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몇% 줄인다고 말할 수 없으나 재무구조 개선차원에서 주력사업이나 핵심 우량기업도 매각할 수 있습니다.물론 정부 지원책이 따라야 합니다.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도 빨리 이뤄져야 하지 않습니까. ▲삼성자동차 문제는 이제 삼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며 삼성이나 다른 그룹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가 호황으로 돌아서면 현대와 LG의 통합법인 설립계획이 무산되리라는 전망이 많습니다.약속위반이 아닙니까. ▲시장은 항상 동태적으로 움직입니다.흑자가 난다면 굳이 통합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재계의 지지부진한구조조정이 신3저 활용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기업 구조조정은 경기순환과 관계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경기침체는 단순히 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어서라기 보다는 금융 기업 노동 등 경제주체의 구조조정이 조화롭게 추진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3저 활용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신3저 추세가 지속된다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 아주 다행스런일입니다.신3저가 수출증대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수출금융이 활성화돼야 합니다.무역금융을 대기업에도 허용해돼야 합니다.
  •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다/한충목 열사·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누군가 나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우리만의 약속을 누군가 알고 있다. 우리 이야기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 누군가 나의 휴일 오후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이 현정부에 대해 불법도청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들이 집권한 수십년 동안 시민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느라 일상적인 불법도청에 익숙해진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의 반전을 지켜 보게 된다. ‘너희도 한 번 당해 봐라’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라고 자처하는 현정권에서조차 불법도청 의혹이 제기되고,합법적인 도청이 급증한다는 주장이 나오니 배신감과 더불어 가슴이 쓰려온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법원행정처가 국회 법사위에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전화감청 영장 건수가 96년 2,067건에서 97년 3,306건,올 8월까지 2,289건으로 1.6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이 한참 진행되던 지난 7월 부산·울산 지역의 소위 ‘영남위원회’라는 공안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김창현 울산 동구청장을 포함한 20명 가량의 사회·노동단체 간부가 구속되었고,현재 법정에서 첨예한 공방이 진행된다. 공안당국이 제출한 증거는 대부분 2년 동안 무차별적으로 행한 도청·감청 자료가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타,앰네스티 등 국내외 인권단체에서 그 부당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불법도청으로 사생활이 낱낱이 감시되는 심각한 현실에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에는 인권침해와 고문조작이 없다. 아직도 국민을 위한,국민에 의한 정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요구되고 있다.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예측가능한 개혁” 다짐에 환호/합당전대 이모저모

    한나라호가 21일 하오 한밭벌에서‘깨끗한 정치,튼튼한 경제’의 돛을 달고 출항했다.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합당전당대회를 통해 신한국당과 민주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추대된 이회창 후보는 인사말에서 “한나라당은 낡고 병든 구시대 정치를 물리치고 국민대통합과 전진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주체세력이 모인 정당”이라며 “정경유착을 심화시키고 경제위기를 초래한,30년 묵은 3김의 장기구도를 깰 때가 됐다”고 3김정치 청산을 강조했다.이후보는 “집권하면 최우선 과제로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겠다”며 “싱가폴처럼 튼튼한 경제의 뒤에는 깨끗한 정부가 존재한다”고 부정부패 척결을 약속했다.이후보는 “개혁은 과거를 헤집거나 편을 가르는 것이 되어선 안된다”며 ‘예측가능한 개혁’을 다짐했다. ○…조순 총재는 총재수락연설에서 “나라를 파멸로 이끌 DJP의 집권을 막고 병든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이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다”며 “대선에서 엉뚱한 사람을 뽑는다면 나라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전3김시대보다 더 깊고 철저하게 나라를망칠 후3김시대를 맞을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한동 대표는 인사말에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모였다”며새 정권 창출을 호소했다. ○…한나라당은 합당선언문에서 “국민대통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화합의 생산적·창조적인 정치를 지향하고 민간주도 자율경제를 실현,지속적 경제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며 “원칙과 상식이 지배하고 정의와 양심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합당을 의결하기 위한 신한국당 전당대회,합당전당대회의 순으로 진행됐다.패거리정치의 구습을 타파한다는 취지로 이후보와 조총재,이대표,서정화 전당대회의장을 뺀 지도부 모두 단하에 자리했다.이후보와 조총재의 부인인 한인옥 김남희 여사도 단하에서 행사를 지켜봤다.합당전당대회 도중 이의익 안택수 박종근 의원 주병덕 충북도지사 등 입당 인사와 홍성우 변호사 제정구 김홍신 이미경의원 이철 전 의원 등 신정치추진연합인사,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등이 소개를 받고 환호에 답하는 등 열기를 고조시켰다.
  • 화가 권영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7)

    ◎‘그리는 그림’아닌 생명의 혼 터치/순백의 캠버스에 명암따라 부조 성취/‘종이의 화가’ 대부… 파리·LA서도 개인전 ‘종이의 작가’로 알려진 화가 권영우의 그림작업은 ‘흰무명을 볕에 바래어 표백하는 과정’처럼 생략과 절제가 끈질기게 중복된다.먹을 가는 동안 화상을 가다듬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종이 자체에서 그는 ‘깨끗하고 고요한 담벽과 담흑색’을 캐내고 싶어한다.‘한국화’라는 전승표현의 범주에서 벗어나 화면에 구멍을 뚫거나 찢는 변칙은 종이가 지닌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그만의 조형수단이다. ○작품세계 생략·절제 중복 서울대 미대시절에도 동양화과에 다녔으나 나체모델이 배당된 서양화 실기실에 드나들었고 선묘 위주의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70년대이후 기하학적으로 윤곽처리된 묘사적 화풍에다 광활한 여백을 화면에 함축하는 것이 특징이다.그런 한편으로는 동양화에 있어 거의 숙명적이라고 할수 있는 종이의 섬세한 재질감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물들이는 수묵 농담의 수법에서 언제나 과묵하면서도담소한 감수성을 지킨다.이른바 백색 일색의 종이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화판에 담기는 층이나 명암에 따라 리듬의 부조를 성취시키는 것이다.물기가 아련히 스며든 여러층의 마티에르는 지루하리만큼 수많은 구멍들이 모래벌판에 찍힌 철새의 발자국이나 고공에서 바라본 비늘구름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에 혁혁함을 던져준다.조용한가 하면 행동적인 데가 있고 전위적인가 하면 전통을 고수하는 곡진한 그의 방법에 대해 “결국 미의 종합세계를 이루어놓고야 말았다”는 평론가 박래경의 말은 옳다.그는 실제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들어진 흰빛의 그림’속에 순백의 적요를 흩뿌리면서 ‘거울같이 맑고 고요한 수면보다는 빗방울이 떨어져 소용돌이가 일고 물결치는 상황’으로 작품을 몰아나간다. 그의 추상화면은 작은 알들이 깨지는듯한 ‘껍데기가 깨지는 아픔’과 ‘탄생의 기미’를 창출하면서 직선과 사선과 횡선에 먹번짐과 균열과 누빔을 엇가르고 총총하게 뚫어진 화면은 온통 보석타래가 흩어진 형국이다.그렇게 인위적으로뚫린 그의 창들은 내면과 외부를 향해 저마다 쏘듯이 다른 광채를 내뿜고 있는 것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직선에서의 영롱한 물방울무늬를 얻어낸 그는 76년 파리의 권위있는 자크마솔화랑 초대전을 갖게 되었고 파리의 미술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더없이 다양한 추상풍경화의 경이”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그때 자신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끝없는 추상의 전조를 예감하고 그는 전업작가로 남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기에 이른다.이른바 자신의 테마에 파고들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파리여정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다진 명성과 중앙대교수직을 버리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앞날이 막막한 보장 없는 모험’이 아닐수 없었다.그러나 그만의 방법과 그만의 세계를 부여잡게된 이상 그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파리전시 2년후인 78년에 도불,예술은 다만 ‘던지는 것’이며 ‘전력투구로 매달릴뿐’ 어떤 방해도 그를 막을순 없었다.연약해 보이는 체구에 말이 별로 없는 대신 고집이세고 일단 마음먹은 것은 만류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파리시내에서 25㎞ 동쪽으로 떨어진 트로시의 아틀리에에 틀어박힌지 2년만에 아트포럼 앙테나쇼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평론가 데니스 로제로부터 “맑고 투명하고 평화로운 공기속에서 작가는 빛과 깊이의 이중감정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그 무렵 이일씨가 표현한 ‘종이의 정교한 무표정속에서 무한한 진폭을 지닌 무구한 정신성’과 ‘동양으로의 현대적 회로’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소사업을 하던 권태인씨의 1녀3남중 차남.그는 부친을 따라 한국인 밀집지역인 북간도 용정에서 광명중학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그가 도불을 결심하게 된것은 광명중 시절의 미술스승이던 석희만씨가 “둑을 지키는 포플러가 아닌,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 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서울로 와서 해방 다음해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고 ‘비어있는 것이 저장되어 있는것’이라는 ‘무사무위’의 노장사상을 그림에 적용하여그만의 ‘숭려’를 체득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2년간 생활 남천 송수남은 “그의 묵시적이면서도 금욕적이고 수도자적인 자세는 누구라도 일단 외경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고 전제한다.“화선지의 흰빛에 흐르는 무구한 숨결과 그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무관심성은 요약과 절제로 일관된 것 같으나 실은 허세없는 작가의 본성이 그속에 창만해 있다”는 것이다.과연 그의 그림에서는 어둠을 가르는 여명이 새어나오고 그 순백의 새벽빛은 모든 광원의 색광들을 반사한 본질색이며 화선지가 포용하는 영험하고 신비스러운 통합적 상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의 근작은 또다른 실마리를 추구하려는 자세다.먹과 과슈에 의한 설채의 도입,또 뚫고 찢기 위해 찰상을 가하는가 하면 예리한 칼날로써 형성된 선조는 물감과의 교호작용으로 운율의 파문을 현란하게 일으켜준다. ○독자적인 동양화추상 고수 10여년만에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도심을 피해 전원적인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 정착하여 주로 한밤중에 일어나 작업에 임하고 있다.최근의 대형화면들은완고한 예술정신과 심도가 스민 발색을 존립시키고 ‘순수무결’과 ‘세련미’는 남이 넘볼수 없는 도저한 화풍으로 경도되지 않을수 없게 한다.서울대 미대 동기동창이며 동갑인 부인 박순일씨는 스승인 월전의 소개로 만난 사이.자녀는 아들만 둘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류에 물들지 않은 독자적인 동양화추상’을 지키는 그의 집념은 결국 카뮈의 요나처럼 어느날 화면에 점 하나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이순을 넘긴 지금도 조용하고 시적인 소년의 자세를 변치않는 이 혁신적화가는 예술의 끝을 향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면서 대양을 이루기 위한 만리심을 좀처럼 잠재울줄 모른다.〈사빈논설위원> □연보 △1926년 함남 이원 출생 △1951∼57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1956∼77년 국전출품 △1966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0∼79년 한국미술대상전 출품 △1974년 개인전(서울명동화랑) △1976년 파리 자크마솔화랑 개인전 △1977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8∼89년 프랑스 파리체류 △1980년 파리 개인전(아트포럼 앵테나쇼날화랑),아세아현대미술전 △1982년 파리(주불한국문화원) 및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3년 주불한국인화가전(파리) △1984년 LA개인전(삼일화랑) △1986년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LA(아트코아화랑) 및 토론토 개인전(브리지스톤화랑) △1988년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 △1990년 서울(호암미술관) 및 일본오타와대학초대 개인전 △1991년 선재현대미술관개관기념초대전(경주),한국현대회화유고전 △1992년 개인전(서울현대화랑) △1993년 대전 한림갤러리개관기념전 △1994년 에꼴드서울전(관훈미술관) △1996년 후소회 창립60주년기념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수상〉 국전문교부장관상(58·59년),국전초대작가상(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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