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흉터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 진출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 질투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84
  •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만난 ‘아빠! 오늘도 무사히’의 작가 레이놀즈[으른들의 미술사]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만난 ‘아빠! 오늘도 무사히’의 작가 레이놀즈[으른들의 미술사]

    50대 이상의 독자라면 버스나 택시 기사 옆에 놓인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몰라도 어린 소녀가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선명하다. 사실 이 소녀는 소녀도 아니고, 택시를 모는 아버지도 없는 이스라엘 선지자 어린 사무엘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영국이 아끼는 작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Sir Joshua Reynolds·1723~1792)이다. 로열 아카데미 교육의 핵심, 모방하고 노력하라레이놀즈는 영국 런던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의 초대 원장으로서 영국 미술 교육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고전 찬미자로서 레이놀즈 교육의 핵심은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초 단계에서 미술의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다.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는 거장을 본받되, 멋을 부리지 말고 기초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레이놀즈 교육의 또 하나의 규칙은 노력보다 더 좋은 왕도는 없다는 점이다. 즉 레이놀즈 교육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기초에 충실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자화상’은 고전을 모방하라는 레이놀즈의 교육방식을 보여준다. 레이놀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린 렘브란트 그림을 그대로 모방했다. 램브란트 그림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호메로스 흉상에 손을 올리듯 레이놀즈도 왼손을 미켈란젤로 흉상에 올리고 있다. 이는 레이놀즈 자신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연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의 후계자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또한 레이놀즈는 자신을 예술가보다 학자로서 보이기를 원했다. 따라서 57세의 레이놀즈는 ‘자화상’에서 50세에 받은 옥스퍼드 명예박사 학위복을 입고 그렸다. 레이놀즈는 멋을 한껏 부려도 되는 거장이 된 것이다. 단정한 학자 차림을 즐기는 레이놀즈는 동료 예술가보다 작가 사무엘 존슨,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 등 사회 저명인사들과 어울렸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레이놀즈는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엄격한 원장님의 말할 수 없는 비밀그러나 레이놀즈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달리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레이놀즈는 20대 중반 말을 타다 넘어져 입술에 흉터가 남았다. 레이놀즈는 30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때마다 윗입술의 흉터를 감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더 많았다. 레이놀즈는 20대 중반 로마에서 2년간 고대 로마 미술을 연구할 때 감기를 앓았다. 레이놀즈는 그 후유증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겨 젊은 시절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다. 60대 중반에는 시력마저 잃어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화가에게 시력 상실은 절대적인 능력 상실을 의미한다. 평생 독신인 레이놀즈, 그러나 한 아이를 둔 영원한 아버지레이놀즈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레이놀즈는 50대 들어 유독 아이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아빠! 오늘도 무사히’로 알려진 ‘어린 사무엘’(1776년) 그림도 이때 그려진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룬 것이 많은 사내는 딱 한 가지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다. 바로 자식을 키우는 애틋한 부정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한국의 중장년들에게 아빠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귀여운 소녀를 둔 아버지로 영원히 남아 있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 李 상처 살핀 文 “다선 중진·친명 희생 나서야”

    李 상처 살핀 文 “다선 중진·친명 희생 나서야”

    30분 비공개 차담 후 추어탕 식사文 부울경 인재 영입·단일화 제안李 “용광로처럼 단결해 총선 승리”용퇴엔 즉답 않고 오늘 광주 방문 총선을 66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가운데 두 사람은 공천을 앞두고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친문재인)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 듯 통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공천에서 중진 및 친명계의 양보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지도부, 김두관 의원 등과 동행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의 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했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30분가량 비공개 차담 후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식사를 했다. 한 참석자는 “(문 전 대통령이) 다선 중진 의원들이 후배를 위해 길을 열어 주고 당대표나 지도부에 가까운 사람들이 후배를 위해서 자리를 비워 주면 국민한테 훨씬 더 살갑게 다가가지 않겠냐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중진·친명 의원들의 희생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은 채 경청했다고 한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부산·울산·경남 등에서 지역 인재 영입에도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고, 이곳에서 여타 개혁·진보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좀 우호적인 제3세력까지 힘을 모아 상생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도 했고,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은 총선 앞 단합에 뜻을 모았다. 문 전 대통령은 소위 ‘명문 정당’(이재명·문재인)이라는 조어를 언급하며 “총선쯤에 와서 친명·친문을 나누는 프레임이 있다. 우리는 하나이고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대표는 “용광로처럼 분열과 갈등을 녹여 내 단결해서 총선 승리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만나자마자 흉기 피습과 관련한 위로도 전했다. 이 대표가 흉기 피습으로 왼쪽 목에 생긴 흉터를 보여 주자 문 전 대통령은 “옷깃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세상이 험악해지고 갈수록 난폭해진다”며 “이(피습)를 계기로 민주당이 상생의 정치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했다.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끝난 식사 후 이 대표가 문을 나서자 문 전 대통령이 배웅했고 둘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함께 만세를 하는 자세를 취하며 헤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해 9월 19일 문 전 대통령이 단식 중이던 이 대표를 찾은 후 4개월여 만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초 신년 인사로 문 전 대통령을 방문하려 했지만 부산에서 습격을 당해 일정을 취소했었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로 이동해 5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다. 오후에는 서구 양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호남 민심 다지기에 나선다.
  • 넉달 만에 만난 문재인·이재명, “친문·친명 프레임 안타까워”

    넉달 만에 만난 문재인·이재명, “친문·친명 프레임 안타까워”

    총선을 66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가운데 두 사람은 공천을 앞두고 친명(친이재명)계와 친문(친문재인)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 듯 통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이날 오후 당 지도부, 김두관 의원 등과 동행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의 문 전 대통령 사저에 도착하자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반기며 포옹했고, 이 대표는 흉기 피습으로 왼쪽 목에 생긴 흉터를 보여줬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의 흉터를 가리키며 “옷깃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했다”며 “세상이 험악해지고 갈수록 난폭해졌다”고 위로했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30분가량의 비공개 차담 후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식사했다. 문 전 대통령은 식사 전 피습 사건을 언급하고 이 대표에게 트라우마를 빨리 털어내길 바란다며 “이를 계기로 민주당이 상생의 정치에 앞장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저쪽(국민의힘)은 늘 증오나 적대를 생산하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삼았으니 이쪽(민주당)이 선거에 이겨 주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상생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좀 우호적인 제3세력까지 힘을 모아서 상생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소위 ‘명문 정당’(이재명·문재인)이라는 조어를 언급하며 “총선쯤에 와서 친명·친문을 나누는 프레임이 있다. 우리는 하나이고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대표는 “용광로처럼 분열과 갈등을 녹여내 단결해서 총선 승리에 힘쓰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은 민생경제 회복의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승리하는 게 시대의 소명”이라 했고, 문 전 대통령은 “절박함과 간절함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결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외 문 전 대통령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선거가 중요하다”며 해당 지역의 인재 영입에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오찬장에서는 줄곧 웃음소리와 함께 “총선 파이팅” 등의 구호가 나왔고, 회동은 예정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끝났다. 이 대표가 문을 나서자 문 전 대통령이 배웅했고, 둘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함께 만세를 하는 자세를 취하며 헤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해 9월 19일 문 전 대통령이 단식 중이던 이 대표를 찾은 후 약 4개월 만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초 신년 인사로 문 전 대통령을 찾아가려 했지만, 방문 직전에 부산에서 당한 습격 사건으로 일정을 취소했었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로 이동해 5일 오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다. 오후에는 서구 양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호남 민심 다지기에 나선다.
  • [영상] 신년 기자회견서 尹정부 작심 비판한 이재명

    [영상] 신년 기자회견서 尹정부 작심 비판한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무시한 채 정적 죽이기에만 올인했다”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3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무능으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 제대로 되는 일이 있겠느냐”며 “민생은 고사 직전이고, 경제는 심각한 침체다. 먹고사는 문제를 등한시한 윤석열 정권 2년의 적나라한 성적표다”라고 말했다. 모두발언을 마친 이 대표는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목의 흉터가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와이셔츠 깃이 없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나는 것도 트라우마일 수 있지만 국민들께서 삶 현장서 겪는 고통과 그 번민에 비하면 큰일이겠나 하고 위안을 삼는다”며 흉기 피습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정치인에 대한 암살 테러가 가장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벌어졌다”며 “상생의 정치는 사라지고, 상대를 제거하고 죽여버리겠다는 적대와 전쟁만 남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나는 그분(피의자)에 대해서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그분이 내게 무슨 사적 감정이 있어서 1년 동안 칼을 갈아서 단검을 만든 다음에 연습까지 해가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확하게 목을 겨눠 칼로 찔렀겠느냐”고 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호소드린다.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면 미움받는다”며 “일부 지나치고 과격한 언행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4월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비전을 되찾는 날이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도, 우리 국민들께서 두 눈 부릅뜨고 요구해야 가능하다”며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비전과 희망, 미래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밝혔다.
  • ‘26살 연하♥’ 브래드 피트, 1억원 성형설

    ‘26살 연하♥’ 브래드 피트, 1억원 성형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최근 한층 젊어진 얼굴로 화제인 가운데 한 성형외과 의사의 언급으로 그의 성형설이 불거졌다. 올해 60세인 피트는 팬들은 지난해 윔블던에서 사진이 찍힌 이후 젊어진 비주얼로 실제 ‘벤자민 버튼’이란 반응을 얻고 있다. 피트는 2008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브래트 피트 얼굴을 본 런던 클리닉 JB 에스테틱스의 설립자이자 전 NHS(국립보건서비스) 의사인 존 배터리지 박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피트가 비밀리에 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에는 10만 파운드(약 1억 7000만원)이상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SNS에서 화제를 모은 동영상에서 배터리지 박사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찍은 피트의 사진과 지난해 7월 윔블던 센터 코트에 앉아 있을 때 모습을 비교하며 “4년 전에는 정상적인 노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깊고 정적인 주름, 눈과 얼굴 중앙 부분의 볼륨 감소, 얼굴 아래쪽의 약간의 피부 처짐. 하지만 이제 얼굴 윤곽의 변화가 정말 인상적인데, 흉터를 보면 안면거상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배터리지 박사는 또 피트의 귀가 ‘얼굴 성형 흉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며 “시술 중 주변 피부가 올라가면서 귓불의 모양과 위치가 바뀔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피트는 2000년대 초반 얼굴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는 그가 벤자민 버튼 역을 맡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기도 하다고. “그는 수술을 잘 한 좋은 예”라고 덧붙였다. 동영상이 큰 화제를 일으킨 뒤 배터리지 박사는 해외 일간 ‘더선’에 “브래드의 동영상은 사람들이 그가 60세에도 얼마나 멋진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입소문이 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트의 대변인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앞서 브래드 피트는 이전에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용 비법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난 시골스러운 사고방식을 갖고 자랐다. 아시다시피 비누 한 번 돌리는 것”이라며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조금 더 잘 대하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건강하게 늙어가세요. 건강한 방식으로 늙어가세요”라고 말했다. 한편 피트는 현재 32세의 보석 사업가 이네스 드 라몬과 1년 넘게 데이트를 하고 있다.
  • “中 테무서 산 손톱 접착제에 화상, 피부이식”…알리 이어 ‘테무 직구 주의보’[포착]

    “中 테무서 산 손톱 접착제에 화상, 피부이식”…알리 이어 ‘테무 직구 주의보’[포착]

    중국 직구 사이트인 테무에서 인조손톱 접착제를 산 영국의 11세 소녀가 화상을 입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 미러 등 현지 언론의 2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켄트주(州)에 사는 11세 소녀 클로이 노리스는 아버지를 통해 중국 테무 사이트에서 가정용 매니큐어세트를 구입했다. 이후 인조손톱을 붙이기 위해 동봉된 접착제를 이용했다가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고, 심각한 화상 진단을 받았다. 클로이의 어머니는 “11살 딸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고, 테무에서 매니큐어세트를 가지고 싶어했다”면서 “아이가 내 앞에서 인조손톱을 붙이려고 접착제를 바른 직후 갑자기 손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후 접착제가 묻은 팔과 손가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어 “통증이 조금 진정된 뒤 집에 있던 연고를 발랐지만, 다음날 거대한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집은 풍선만큼 커져 있었다”면서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고, 피부 겉면이 모두 타버렸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클로이는 두 차례의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의료진으로부터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평생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클로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구입한 매니큐어세트의 가격은 1파운드(약 1700원)도 채 되지 않았다”면서 “테무 측에 연락해 딸의 부상에 대해 전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3차례 걸쳐 1750파운드(약 298만 원) 상당의 테무 쿠폰을 보상으로 주었지만, 다시는 이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도 주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클로이의 부모는 아이가 해당 접착제가 닿은 손으로 눈이나 얼굴을 만지지 않아 다행이라면서도, 이런 위험한 상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무 측은 “해당 제품에는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라는 경고의 문구가 있었다”면서 “다만 해당 제품은 인조손톱 접착, 네일 팁 부착, 네일 리페어, 네일아트 등에 주로 사용되며 많은 유통업체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인기 아이템”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접착제의 성분이자 슈퍼 글루로 알려진 시아노아크릴레이트는 일반적으로 피부에 닿았을 때 무해하지만, 면이나 양모 등 특정 물질과 반응해 화상을 유발하는 사례가 보고됐다”면서 “우리는 제품의 안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해명했다.앞서 일본에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초저가 직구 사이트인 알리에서 점을 빼는 크림을 샀다가 피부가 괴사하는 피해 사례가 발생해 당국이 ‘알리 직구 크림 주의보’를 내린 바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일본국민소비생활센터(NCAC)는 “이 크림과 관련 다수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3건에서 심각한 피부 손상이 발생했다”면서 “해당 제품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해당 크림은 pH14 수준의 강한 알칼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크림을 사용하면 심각한 피부 손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가지고 계신 분은 사용을 중지해달라”고 당부했다.
  • ‘탈모’ 정복 실마리 찾았다…국내 연구진 새로운 치료법 제시

    ‘탈모’ 정복 실마리 찾았다…국내 연구진 새로운 치료법 제시

    최근 국내 연구진이 다양한 탈모증에 대한 새로운 치료 기전을 규명했다. 미토콘드리아 내에 위치한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ehyde Dehydrogenase2, ALDH2)를 활성화하여 휴지기 모낭을 성장기로 전환시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 연구팀은 체내 ALDH2 활성도를 높이면 세포 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해 모발 성장 주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머리카락은 성장기와 퇴화기, 휴지기를 순환한다. 성장기에는 피부 밑에 있는 모낭 줄기세포가 활발하게 작동해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다가, 휴지기에 들어가면 모발 재생이 중단되고 머리카락이 빠진다. 탈모는 이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할 수 있다. 휴지기 이후 성장기가 찾아와야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데, 성장 주기가 진행되지 않으면 가늘어진 모발이 탈락하면서 탈모가 생긴다. 연구팀은 모낭 휴지기를 성장기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체내 세포의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ALDH2에 주목했다. ALDH2는 알코올을 분해할 때 나오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해독해 산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소다. 연구팀은 ALDH2이 모발 성장과 산화 스트레스 감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기 위해 효소 활성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ALDH2 활성화를 유도해 휴지기 모낭과 성장기 모낭에서의 활성도 차이를 분석했다는 것이다.그 결과 ALDH2는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낭의 상피 세포층에서 가장 뚜렷하게 발현됐고, 모낭의 성장기에 가장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낭 휴지기에는 미미하게 발현됐다. 연구팀은 효소의 활성화 정도가 모낭의 휴지기에는 미미하다가 성장기로 전환했을 때 증가하는 점으로 미뤄보아 이 효소가 모발의 성장을 유도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동물실험에서도 ALDH2 활성화가 모발의 길이 성장을 촉진하고, 모낭의 성장기 전환을 가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ALDH2를 활성화하면 이미 탈모치료제로 널리 쓰이고 있는 미녹시딜과 유사한 수준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또 ALDH2 활성화는 모낭 형성과 유지에 관여하는 베타카테닌이라는 체내 단백질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안드로겐성 탈모를 포함한 다양한 탈모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안드로겐성 탈모는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모발의 성장을 억제해 모발이 서서히 얇아지고 빠지는 질환이다.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는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탈모 유형으로, 호르몬뿐만 아니라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권오상 교수는 “ALDH2 활성화가 모낭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했고, 모발 성장기 단계 유도를 위한 새로운 치료 전략 가능성이 제시됐다. 탈모 치료 분야에서 혁신적인 접근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라며 “더 나은 탈모 치료법을 개발하고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어드밴스드 리서치(Journal of Advanced Research)’에 게재됐다. 잠재적 탈모인 1000만명 시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5만명에 육박했다. ‘병적 탈모’는 피부염이나 흉터로 인한 탈모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탈모 치료 인구 중 30대 비중은 22.6%로 가장 높았고, 이어 40대(21.7%), 50대(16.5%) 순이었다. 특히 20대 탈모 치료 인구도 전체의 20%를 차지해 2030 탈모 치료 인구는 전체의 40% 이상에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원인 없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다. 보통 노화나 유전이 원인인데,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병원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 숫자 파악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잠재 가능성이 큰 모든 탈모인의 숫자를 전부 합치면 1000만명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실제로 엠브레인이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헤어 관리 및 탈모 관련 인식 조사’ 결과 탈모 증상 경험자 303명 중 20대가 14.1%, 30대 23.4%, 40대 29.0%, 50대 33.3%로 집계됐다. 또한 20대 응답자의 17.2%, 30대의 28.4%, 40대의 35.2%, 50대의 40.4%가 탈모를 경험한 것으로 답변했다. 특히 탈모 비경험자인 697명(69.7%) 중 307명(44%)은 ‘탈모를 겪어본 적 없지만, 예방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답했다.
  • ‘서현역 흉기 난동’ 최원종 정신감정 결과 “당시 심신미약 상태 추정”

    ‘서현역 흉기 난동’ 최원종 정신감정 결과 “당시 심신미약 상태 추정”

    지난해 8월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의 최원종(23)이 ‘조현병으로 인해 사물변별 능력이 저하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신감정 결과가 나왔다. 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2부(강현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에 대한 4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국립법무병원이 작성한 최원종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통보서 내용을 공개했다. 정신감정 결과 “범행 당시 피고인은 사물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심신미약 상태였다. 정신과적 치료가 없으면 망상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조현병이 지속될 수 있어 재범의 위험이 크다. 다만, 반사회적 성격장애 요건은 충족하지 않는다”라는 소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검찰은 “정신감정 결과는 참고 사항일 뿐”이라면서 최원종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2차 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 조현병이 의심돼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며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검찰은 국립법무병원 측의 정신감정 결과에 대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혔던 기존 주장대로 “범행 당시 피고인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앞서 최원종을 기소할 당시 “피고인은 주식 투자를 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정도의 학업능력을 갖춘 점,범행 수일 전 심신미약 감경을 검색하기도 했다”라며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범행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면서 최원종의 가족과 친구, 정신과 담당의 등 참고인 25명을 조사하고 전문의 자문을 종합해 심리상태를 분석한 결과, 최원종은 망상에 몰두해 주변 환경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감을 갖고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인 것으로 봤다. 정신감정 결과를 받은 피고인 측 변호인은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않으면 조현병이 지속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나온 점, 장기간 수형생활이 불가피한 점 등 고려해 치료감호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피해자 측 3명이 법정에 나와 증언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김혜빈(사건 당시 20세) 씨의 아버지는 “혜빈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똑똑한 외동딸이었다”라며 흐느꼈다. 그는 “최원종은 망상에 의한 범죄꾼이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반사회인 일뿐”이라며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될 수 있도록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아내 이희남(당시 65세) 씨를 잃은 남편은 “어제(1월 3일)는 집사람과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참 슬프고 참담하다”라며 “아내와 외식하려고 손잡고 인도를 걷던 중 뒤에서 모닝 차량이 돌진해 아내가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사흘 만에 숨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흉악범죄 살인자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법이 약해지면 이런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며 “감경 없는 엄벌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최원종이 휘두른 흉기에 왼쪽 팔을 찔린 백화점 보안요원도 법정에서 증언했다. 피해자 A씨는 다친 팔 상처가 아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는 검사의 질문에 “응급실 가서 수술받고 이틀에 한 번꼴로 소독 받아 두 달 정도로 걸렸다.흉터는 남아 있다”라고 했다. A씨는 “현장에 다시 복귀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심이 이어져 백화점 보안요원 일을 그만뒀다”라고 밝힌 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였고 난동 당시 피고인의 모습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아닌 시민을 해치면서 쾌락을 느끼는 모습이었다”라며 엄벌에 처해달라고 했다. 최원종은 피해자 측 요청에 따라 피해자 측 3명 중 2명이 증언할 때는 법정 밖 대기석으로 이동해 헤드셋을 통해 증언을 들었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범행 경위와 위험성, 피해 정도, 범행 이후에도 피고인이 망상 증상을 보인 점 등 고려해 재범의 위험이 크다”며 최원종에 대해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인 오는 18일 피고인 신문을 하고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같은 날 검찰의 구형도 진행된다. 최원종은 지난해 8월 3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분당점 부근에서 모친의 승용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5명을 들이받은 뒤 차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를 받는다.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한예슬 ‘시술’ 고백…“쌍꺼풀 수술 받고 수면마취 뒤 관리”

    한예슬 ‘시술’ 고백…“쌍꺼풀 수술 받고 수면마취 뒤 관리”

    배우 한예슬이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고 솔직 고백했다. 22일 한예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기 관리 비법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영상에서 한예슬은 “절대 빠뜨리지 않고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운동이다. 못해도 일주일에 3번 한다”며 “탄력 관리도 하는데 1년에 한 번씩 매년 초,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고강도 초음파 수술기기 시술인 ‘○○라’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라가 너무 아파서 수면 마취하는데, 한 번 수면 마취할 때 (수술) 하나만 하면 너무 아깝지 않냐. 자주 수면 마취를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한 번 할 때 ○○라와 함께 스킨 보톡스인 더○○신, 피부 재생에 좋은 ○○란 등 총 3개를 받는다”고 부연했다. 한예슬은 “그리고 또 하나, 눈을 집었는데 흉터나 이런 거 전혀 없고 티가 하나도 안 난다”며 쌍꺼풀 수술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쌍꺼풀이 자꾸 처지더라. 상담 갔는데 이거 15분이면 금방 집는다고 해서 ‘네 선생님 해주세요’라고 바로 수술대 누워서 바로 집고 나왔다. 처음에는 부었는데 3주 되니까 가라앉고 지금은 너무 편안하게 일상생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예슬은 최근 난치병 피부 염증을 앓았다고 말했다. 그는 “온 얼굴에 염증이 올라오고 가렵고 난리도 아니었다. 한의원 가서 체질 검사했더니 금음 체질이었다”며 “먹지 말라는 안 좋은 음식들을 사회생활 하기 힘들 정도로 다 끊었다. 한약 잘 챙겨 먹었더니 싹 사라졌다. 거기에 찬물로만 세안하고 순한 제품들로만 얼굴에 발랐다”고 했다. 현재는 완치돼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예슬은 10세 연하 남자 친구와의 러브스토리도 전했다. 그는 “정말 그냥 누나 동생 사이로 캐주얼하게 시작됐다. 어느 순간 오랜 시간 이 친구를 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랑 달랐던 부분이 보였다. 영혼이 맑고 순수함에 내가 뻑이 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서울에서 2~3시간 떨어진 곳에서 내 생일파티를 하는데 그 친구가 생각나더라. 와 달라고 했더니 고민하다가 깜깜한 밤에 전력 질주해서 내게 달려왔다. 거기서 내가 심쿵했다”며 “나를 그냥 누나로 생각하지 않나 보다 싶어서 그때부터 나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한예슬은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인연이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더라. 난 남자친구를 만나서 40대에 이 인연을 잡았다는 게 나의 삶 속에 엄청난 행운이었던 거 같다”고 덧붙였다.
  • 얼굴화상에 ‘은둔 생활’하던 키르기스스탄 아이, 韓서 미소 되찾았다

    얼굴화상에 ‘은둔 생활’하던 키르기스스탄 아이, 韓서 미소 되찾았다

    얼굴 절반에 생긴 화상 흉터로 방안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키르기스스탄 8살 소년이 한국 병원과 의료진의 도움으로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19일 서울아산병원은 안면화상으로 인해 코 모양이 변형되는 등 영구적인 기형을 갖고 있던 키르기스스탄 국적 알리누르(8)가 지난 6일까지 두 차례에 걸친 화상 흉터 제거와 재건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밝혔다.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지역 시골 마을에 살던 알리누르는 2년 전 집 보수를 위해 끓이던 화학용 액체가 얼굴에 튀어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코가 변형되고 화상 부위에 햇빛이 닿으면 심한 자극과 가려움이 발생하는 등 바깥으로 나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알리누르의 가족은 월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부담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현지 병원은 흉터가 커지지 않게 하는 조치만 할 수 있었다. 현지 의료진은 14세가 넘어야 흉터를 치료하는 수술이 가능하다며 8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전신마취로 4번에 걸쳐 수술을 받아야 하는 큰 수술인 만큼 의료진은 수술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 알리누르는 점차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에는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외부 세상과 벽을 쌓았다. 2년간 이러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알리누르는 지난 7월 키르기스스탄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온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과 만났고,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알리누르 가족은 고민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은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거쳐 알리누르의 이마 피판(이식을 위해 분리한 피부나 조직)을 떼내어 코를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알리누르는 4시간에 걸쳐 화상 흉터를 제거하고 이마 피부를 떼어 코를 다시 만드는 1차 수술을 받았으며, 이식한 피판과 이마의 연결 부위를 분리하는 2차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알리누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20일 귀국한다. 치료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누르는 “화상을 입은 후로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게 싫었다. 방 안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혼자 노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며 “서울아산병원 선생님들이 예쁜 얼굴을 다시 찾게 해주셨으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어른이 되면 세계지도에서 봤던 나라들을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리누르 수술을 맡은 최종우 교수는 “어린 나이인데도 알리누르가 큰 수술을 잘 버텨주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 재건 부위가 더 자연스러워질 테니 화상 아픔은 잊고 건강하게 멋진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 검찰, 여자친구 ‘살인미수 혐의’ 징역 7년에 항소…‘양형부당’

    검찰, 여자친구 ‘살인미수 혐의’ 징역 7년에 항소…‘양형부당’

    검찰이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20대 남성의 1심 판결에 대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25)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항소 이유에 대해 “피해자를 쫓아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피고인은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고 있어 더욱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살인 등 강력범죄에 대해 그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월쯤 충남 아산의 한 택시 안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9차례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교제 기간에도 주먹을 휘둘러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는 당시 범행으로 종아리의 신경이 끊어지고,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등 심각한 부상과 함께 다리에 약 40㎝의 흉터와 보복이 두려워 외출도 어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도 이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A씨의 변호인은 지난달 29일 결심 공판에서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 살인미수가 아닌 특수상해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피해자와 부모에게 속죄하고 반성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피해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라며 “범행 도구와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판시했다.
  • 먹고 바르고 펫사업까지…제약업계 ‘무한 영토 확장’

    먹고 바르고 펫사업까지…제약업계 ‘무한 영토 확장’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더마 코스메틱, 펫사업, 건강기능식품 등 사업 분야를 확장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다각화하고 있다. 성공 확률이 낮은 신약을 개발할 때보다 제약사의 우수한 연구개발 역량을 손쉽게 활용하면서도 대중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일단 시장을 선점하면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피부과학 앞세워 화장품 등 선보여 5일 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에서 올해 1~11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주요 화장품 브랜드(파티온, 센텔리안, 이지듀, 후시다인)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5% 성장했다. 제약사들이 화장품에 피부과학이 더해져 효능이 높은 이른바 ‘더마 코스메틱’ 상품을 만들면서 이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 높아진 셈이다. 국내 더마 코스메틱 시장에서 ①‘센텔리안24’는 대표적인 성공 브랜드로 꼽힌다. 동국제약에 따르면 이 브랜드는 2015년 출시 이후 올해 8월까지 약 7300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했다. 또 홈쇼핑 등의 채널을 적극 활용하면서 대표 제품 ‘마데카 크림’은 누적 판매량 4700만개를 기록했다. 화장품 브랜드 ③파티온을 운영하고 있는 동아제약의 관련 매출도 증가세다. 이 회사 더마사업부 기타 부문 매출은 올해 1~9월(3분기 누적) 156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인 144억원을 넘어섰다. 파티온은 자사 여드름 흉터 연고인 ‘노스카나’의 핵심 성분을 기반으로 한 ‘노스카나인’ 제품 라인 등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동아제약의 독자 성분인 ‘헤파린 RX 콤플렉스’를 함유한 ‘노스카나인 트러블 세럼’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매출도 상승세란 설명이다. 동화약품도 연고 ‘후시딘’의 이름을 딴 뷰티 브랜드 후시다인을 내놓고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2021년 10월 브랜드 출시 이후 주력 제품인 ⑤‘후시드 바이옴 유스 크림’이 누적 판매액 2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시장으로부터의 호응을 얻고 있다.새로운 브랜드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유한양행은 뷰티 사업 확대를 위해 지난 10월 말 프리미엄 비건 선케어 브랜드 ②‘딘시’(dinsee)를 론칭했다. 제약기업으로서 꼼꼼한 품질 관리를 통해 ‘고기능성 비건’을 표방하고 있다. 국내 뷰티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프랑스 ‘이브 비건’(EVE VEGAN) 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지난달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인증까지 완료하면서 국내 최초로 두 곳의 인증을 동시 취득한 브랜드가 됐다. 기능성 측면에서는 피부 노화 원인인 활성 산소 생성을 억제하는 ‘캠페롤’을 비롯해 비타민C, 아미노산 등이 함유돼 주름 개선, 미백 기능성까지 기대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선케어 시장 성수기인 여름이 지났음에도 29~39세 여성 소비자 대상으로 높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면서 “고기능성 비건 카테고리를 확장해 가며 내년 동남아 시장을 비롯 아세안 지역을 우선으로 글로벌 판매를 확대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뇌건강·관절 등 건강기능식품도 선봬 건강기능식품도 제약바이오 회사가 손쉽게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6조원대로 추산됐으며 일반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30년에는 25조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성장성도 높다. 대웅바이오는 지난 10월 건강기능식품 시장 출사표를 던지면서 향후 3년 안에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뇌건강 보조제, 다이어트 유산균, 프리미엄 비타민 등 ④3종을 우선 내놨는데 시장 차별화 전략으로 전문가와 함께 임상 근거 기반의 신제품을 출시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뇌건강 건기식의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중추신경계 제품 ‘글리아타민’ 기술력을 살려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신제품 출시와 함께 온라인 쇼핑몰 ‘곰몰’을 개설하면서 유통망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미그룹 한미사이언스도 지난달부터 건강기능식품 6종을 순차 출시했다. 혈행 건강부터 눈과 간, 장, 관절 건강에 도움을 주는 제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전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은 원료를 포함시켜 건기식 트렌드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반려동물 건강식·의료기기도 판매 제약회사들은 지난해 8조원에 육박한 반려동물 시장에도 뛰어들어 건강기능식품과 의료기기 등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제약사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인체 임상 시험에 앞서 동물 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대한 데이터도 충분히 쌓여 있어 안전성 높은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동제약 자회사인 일동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반려동물용 건강기능식품 ‘일동펫 신바이오틱스·아연’을 출시했다. 반려동물의 장 건강과 면역에 도움이 되는 제품으로 기존 일동제약의 유산균 분야 원천기술을 활용해 사람이 먹어도 되는 수준의 제품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9월부터 동물용 의약품 개발 전문기업 ‘플루토’와 협업해 반려동물 관절 건강을 위한 의료기기 ‘애니콘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애니콘주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 특허출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제품으로의 성장도 계획하고 있다.
  • 온몸 훼손된 채 태국서 구걸하는 ‘中 거지들’…“인신매매 아냐” 결론

    온몸 훼손된 채 태국서 구걸하는 ‘中 거지들’…“인신매매 아냐” 결론

    최근 얼굴과 팔다리 등이 심하게 훼손된 중국인들이 태국에 출몰해 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서는 인신매매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태국 경찰은 범죄 조직과 관련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29일 태국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경찰과 이민 당국은 “시내에서 구걸 행위를 하는 중국인 6명을 체포해 조사한 결과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이들을 중국으로 추방했다고 밝혔다. 앞서 태국 경찰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파툼완, 파야타이 등 방콕 시내 곳곳에서 구걸 행위를 한 중국인 6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방콕 시내의 유명 쇼핑몰 인근에서 구걸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태국에서는 구걸 행위가 불법이다. 문제는 이들의 외모였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일반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이 다수 올라왔는데, 이들 몸에는 화상과 흉터들이 선명했다. 손발이 없거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람도 있었다. 몸이 성치 않은 중국인들이 태국에서 구걸 행위를 하는 것을 두고 “국제 인신매매 조직과 연루됐다”, “고문과 협박을 당해서 나왔다” 등의 추측이 무성했다. 수상한 점은 또 있었다. 한 중국인 여성이 통역을 자처하더니 이들을 위해 보석금을 내겠다면서 석방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이 인신매매 집단과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며 석방을 거부했다. 붙잡힌 중국인들은 “여권을 잃어버렸다”, “관광객으로 입국했는데 돈이 바닥나 구걸을 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도 구걸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하루 6시간가량 거리에서 구걸하면서 매일 1만바트(약 36만 8000원) 가량을 벌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이 그 누구에게도 돈을 송금하지 않았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또 이들의 얼굴과 몸에 생긴 흉터는 젊은시절 사고로 인해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 통역에 나선 여성에 대해선 “몸이 불편한 중국인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직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의문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부실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거된 중국인 6명과 자칭 통역사라는 여성은 서로 아는 사이였고, 이들이 방콕의 호텔과 아파트 등에 함께 머물렀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 한 명은 학생비자로, 나머지는 관광비자로 입국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의 무비자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태국 정부는 중국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이에 신원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이들까지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꿈 포기하고 간 떼어준 아들, 다리 잃은 父 돌보는 딸…아이들의 사연

    꿈 포기하고 간 떼어준 아들, 다리 잃은 父 돌보는 딸…아이들의 사연

    “간 이식 수술로 꿈꾸던 직업 군인은 될 수 없겠지만 아버지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에요.”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용돈으로 아버지에게 맛있는 저녁도 사드려요.” 꿈 포기 후 父에 간이식…“지킬 수 있어 다행” 경북 구미 금오공고에 재학 중인 양희찬(18)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간 기능 저하로 의식을 잃어 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병이 있는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던 양군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양군은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 이식 적합자로 판정이 나자 곧바로 날짜를 잡고 간 이식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통증이 있었지만, 양군은 가슴에 생긴 흉터를 보며 웃는다. 양군의 아버지는 수술 후 1년이 지난 현재 건강을 되찾았다. 양군은 “(간 이식 수술로) 평소 꿈꾸던 직업 군인은 될 수 없겠지만 아버지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며 “고교 졸업을 앞두고 공장에서 정밀기기를 다루는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기능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새로운 꿈을 밝혔다. 아픈 아버지 돌보는 딸…“저녁도 사드려요” 인천 신흥여중에 다니는 최은별(15)양은 혼자 아버지를 돌보며 집안일을 챙기고 있다. 홀로 타지에서 일하며 두 딸을 열심히 키워온 최양의 아버지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당뇨 증세가 악화했고, 지난해 초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최양은 정기적으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은 물론, 약을 거르시지 않도록 잔소리하며 식사도 챙겨야 한다. 아버지의 다리 근육이 굳지 않도록 매일 주물러 드리기도 한다. 어머니도 계시지 않고, 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업 후 따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밝은 성격을 가진 최양은 인사도 잘해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인기만점’이다. 최양은 “동네 어르신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용돈을 모으고, 아버지를 위해 맛있는 저녁도 사드린다”며 “내년에는 세무 분야를 배우기 위해 상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전했다.이 두 학생은 가천문화재단이 효심이 지극한 현대판 ‘심청이’에게 주는 제25회 가천효행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가천효행대상은 가천문화재단 설립자인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1999년 심청전 원작의 무대로 추정되는 인천 백령도에 심청 동상을 제작해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각각 장학금 300만~1000만원과 100만원 상당의 종합건강검진권 등 상금과 부상이 주어진다.
  •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살인미수’ 혐의 20대, 징역 7년 선고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살인미수’ 혐의 20대, 징역 7년 선고

    재판부 “필사적 저항에 무차별적 공격”A씨 “속죄하고 반성하며 살겠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가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29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25)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월쯤 충남 아산의 한 택시 안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9차례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1년여 동안 교제하며 빚을 내 고가의 선물을 했지만, 피해자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교제 기간에도 주먹을 휘둘러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는 당시 범행으로 종아리의 신경이 끊어지고,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등 심각한 부상과 함께 다리에 약 40㎝의 흉터와 보복이 두려워 외출도 어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변호인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 살인미수가 아닌 특수상해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와 부모에게 속죄하고 반성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피해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라며 “범행 도구와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을 혼자 마주했던 피해자가 느꼈을 충격과 공포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는 어려운 후유장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 여친 이별 통보에 흉기로 9차례 찌른 20대 징역 7년

    여친 이별 통보에 흉기로 9차례 찌른 20대 징역 7년

    사귀던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원한을 품고 흉기로 보복한 20대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부장 전경호)는 29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25)씨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7월 충남 아산의 한 택시 안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9차례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1년여간 교제하며 빚을 내 고가의 선물을 했지만,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요구하자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교제 기간에도 주먹을 휘둘러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범행 당일 집에서 미리 흉기를 준비해 피해자를 만났다. 피해 여성은 A씨가 흉기를 소지한 사실을 알고 택시 안으로 달아났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당시 범행으로 종아리의 신경이 끊어지고,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등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다리에는 약 40㎝의 흉터가 남았으며 보복이 두려워 외출도 못 하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변호인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며 살인미수가 아닌 특수상해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못 하는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당한 피가 흘렀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며 “범행 도구와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협소한 공간에서 칼을 든 피고인을 혼자 마주했던 피해자가 느꼈을 충격과 공포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는 쉽게 감내하기 어려운 후유장애를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고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 여드름, 흉터만큼 흔한 또 다른 후유증은?

    “여드름 동반된 붉은 자국, 흉터도 조기 치료 바람직” 여드름 환자의 가장 골치 아픈 미용 문제는 여드름 흉터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여드름 환자들을 괴롭히는 후유증이 또 있다. 여드름이 난 자리에 생긴 붉은 자국이다. 의학용어로는 ‘여드름 후 홍반’(PAE)이라고 한다. 홍반은 피부 진피의 모세혈관에 생긴 혈류 이상 등에 의해 피부가 붉게 변하거나 충혈되는 것이다. 여드름이 없어졌다고 좋아했는데 여드름 붉은 자국이 오래 이어져 고민하는 환자 사례가 적지 않다. 여드름 붉은 자국(여드름 후 홍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여드름 붉은 자국은 놔두면 저절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일부 여드름 붉은 자국은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몇 달 또는 몇 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여드름은 종류는 크게 ‘일반 여드름’과 ‘염증성 여드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중 일반 여드름은 여드름 흉터나 붉은 자국을 남기지 않고 낫기도 한다. 하지만 염증성 여드름은 3주 이상 지속되면 흉터 발생 위험성이 증가한다. 염증이 지속되면 병변 부위에 일시적으로 혈액 공급이 감소 또는 차단되는데 이로 인해 콜라겐, 엘라스틴 등 피부 섬유 조직이 손실돼 패인 흉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염증 회복 과정에서 모세혈관이 확장되면 여드름 붉은 자국과 여드름 흉터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여드름 붉은 자국에서 그치지 않고, ‘염증 후 과다 색소 침착(PIH)’을 동반할 때도 있다. 여드름 붉은 자국의 원인은 피부의 모세혈관 확장증과 홍반성 병변 등이다. 이 때문에 여드름 붉은 자국은 주로 빨간색 또는 분홍색을 띤다. 반면 염증성 과다 색소 침착은 염증 회복 과정에서 피부 색소 세포가 자극돼서 생기며, 갈색이나 회색 등 어두운 반점이 생기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침착된 색소는 저절로 옅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영구 연세스타피부과 강남점 원장은 “염증성 여드름 환자는 여드름만 있는 경우보다는 여드름 붉은 자국, 패인 흉터를 동시에 가진 경우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여드름 붉은 자국을 치료하면 여드름 흉터가 심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라며 “여드름이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여드름과 여드름 붉은 자국, 흉터 등이 함께 나타날 때도 조기 치료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미 법원, 여교사에 총 쏜 6세 소년 어머니에 징역 21개월형

    미 법원, 여교사에 총 쏜 6세 소년 어머니에 징역 21개월형

    지난 1월 미국 버지니아주 뉴퍼트 뉴스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여교사에게 총을 쏴 부상을 입힌 일이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총기를 허술하게 관리해 여섯 살 아들이 총기를 학교 교실에까지 가져가는 일을 막지 못한 혐의로 기소된 데자 테일러(26)가 연방법원에서 징역 21개월형을 선고받았다고 ABC 뉴스가 15일(현지시간) 전했다. 테일러에게 제기된 혐의는 마리화나를 복용하는 상태에서 총기를 구입하며 약물 이용 서류 위조, 총기 소지 잘못 등이다. 그녀는 지난 6월 이들 혐의들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이에 따라 검찰은 양형 거래에 따라 징역 21개월형을 구형했다. 버지니아 등 몇몇 미국 주는 총기 보유자의 마약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도 2018년 마약 중독 사실을 숨기고 권총을 구매해 소지한 혐의 등으로 지난 9월 델라웨어주에서 기소된 일이 있다. 테일러의 아들은 1월 6일 교실에 총기를 가져가 나무라는 애비 즈베르너 교사를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즈베르너 교사는 손과 가슴에 총상을 입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목숨만은 건졌다. 연방 검찰은 테일러가 문제의 총기를 구입한 것은 지난해 7월이었는데 총기를 보관하면서 어떤 자물쇠도 채우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즈베르너 교사는 증인으로 출석, 총격을 받은 후유증이 오래 가더라고 진술했다. “영원히 남을 것 같은 흉터를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깊은 심리적 흉터가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내 꿈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낸다.” 그녀는 다섯 차례나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손 동작을 낫게 하려고 정기적으로 재활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영구적인 손상은 내게 일어나도록 허용해선 안 되는 일이었고 피고인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교실에서의 총격이 일어나기 몇 주 전에도 테일러의 총은 두 차례나 말썽을 일으켰다. 테일러가 빌린 이삿짐 트럭 뒤쪽 창문이 깨져 있었는데 소년의 아버지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격분한 테일러가 쏴서 깨진 것이었다. 다친 사람도 없었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검사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테일러 때문에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테일러의 변호인은 ABC 뉴스에 보낸 성명을 통해 피고가 “엄청 후회하고 있으며 그녀의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주 검찰에 의해서도 기소돼 있다. 지난 8월 아동 방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는데 아직 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총기 보관을 잘못해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혐의는 취하됐다. 즈베르너 교사는 관할 교육청을 상대로 40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청 변호안들은 주 공무원의 보상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달 초 판사는 소송을 진행해도 좋다고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 ‘대학원생 제자 성추행 의혹’ 서울대 교수, 4년 만에 무죄 확정

    ‘대학원생 제자 성추행 의혹’ 서울대 교수, 4년 만에 무죄 확정

    해외 출장에서 대학원생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서울대 교수가 4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일명 ‘서울대 A 교수 사건’으로 불렸던 이번 사건은 학내 성추행에 분노한 학생들이 A씨의 교수 연구실 점거 농성을 벌이고 총학생회까지 가세하면서 학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학교의 교수직 해임 처분까지 이어졌지만 이번 대법원의 무죄 결정으로 향후 해임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법정 다툼이 또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6일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해외 학회 참석 과정에서 동행한 대학원생 제자 B씨의 머리를 만지고 팔짱을 끼게 하거나 허벅지 안쪽 흉터 등을 만져 성추행한 혐의로 2019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A씨의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서울중앙지검도 같은해 12월 30일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사건은 B씨가 2019년 2월 학교 대자보를 통해 ‘A교수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학교 측에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했는데 B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면서 사건이 공론화됐다. B씨는 같은 해 6월 19일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고, 서울대는 8월 29일 강제추행을 이유로 A씨를 교수직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6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사건 직후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에 비춰볼 때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부 강제추행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A씨가 피해자의 정수리를 만진 사실과 이에 따른 피해자의 불쾌감은 인정되지만 이를 강제추행죄에서 정하는 추행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법원 역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지적하며 같은 판단을 내렸다. 검찰이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기각했다. 무죄 확정 후 A씨는 “하지도 않은 일을 증명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며 “세 번에 걸친 사법부의 무죄판결로 뒤늦게나마 억울함을 풀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잘못 알려진 많은 것들이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B씨 측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편 A씨는 자신이 제기한 해임처분취소 청구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기각되자 2020년 7월 행정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도 A씨가 이겼고 서울대 측이 항소해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