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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연회장 ‘보복폭행’ 의혹] 귀국한 차남 “아버지 청계산 폭행 몰라”

    [김승연회장 ‘보복폭행’ 의혹] 귀국한 차남 “아버지 청계산 폭행 몰라”

    “국민과 아버지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피해자입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핵심 인물인 둘째 아들(22)이 30일 오후 7시30분쯤 중국 베이징발 남방항공 CZ315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다. 그는 지난 25일 교환학생으로 있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중국 답사여행에 동행, 해외 도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었다. 예정보다 1시간 10여분 늦게 도착한 그는 다소 긴장한 듯 무뚝뚝한 표정이었으며 검은 모자를 눌러 쓰고 게이트를 나섰다. 그의 얼굴 오른쪽 눈가에는 지난달 8일 유흥업소 종업원으로부터 맞아 오른쪽 눈 주위를 10여바늘을 꿰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대기 중이던 취재진 앞에서 1분여 동안 사진 촬영에 응했으며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짤막하게 대응했다.‘아버지가 청계산으로 갔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고, 이어 ‘피해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 잠시 들른 그는 출석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은 오후 11시5분쯤 변호인 및 한화그룹 관계자와 함께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계산에 아버지랑 함께 갔느냐.’‘본인이 직접 때렸느냐.’‘아버지가 때리라고 시켰느냐.’는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만 입을 꾹 다문 채 김 회장이 조사받았던 1층 폭력팀 진술녹화실로 사라졌다. 피의자 겸 피해자 신분인 그는 남대문서 수사과장과 강력2팀장으로부터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했는지 ▲김 회장이 직접 폭력을 휘둘렀는지 ▲아버지와 함께 청계산에 갔었는지 등에 대해 조사받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흉터없는 수술’ 시대

    |파리 이종수특파원|“여성으로서 담낭 수술 뒤 배에 흉터가 남지 않아 너무 기쁘다.” 세계 최초로 흉터없이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30세 여성이 25일(현지 시간) 언론에 기쁨을 털어 놓았다. 이전에는 담낭 수술을 할 경우 옆구리나 배를 절개해 내시경을 넣어 잘랐기 때문에 흉터가 남아서 여성들에겐 큰 부담이었다. 무흉터 담낭 제거 수술의 신기원을 이룬 주인공은 자크 마레스코 박사가 이끄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의료팀. 이들은 지난 2일 환자의 질벽을 자른 뒤 소형 비디오 카메라와 조직·혈관 절제용 정밀 의료기구를 갖춘 내시경을 복강에 투입해 수술에 성공했다. 물론 질벽에는 약간의 수술 흔적이 남지만 곧 아무르게 되고 이전처럼 복부 등 외관의 흉터는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의료진은 먼저 환자의 질벽을 잘라 카메라를 장치한 2mm 주사 바늘을 복강에 투입했다. 그 바늘을 통해 복강에 인체에 해롭지 않은 가스를 주입하여 내시경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이어 의료진은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내시경과 수술 도구를 조종해 담낭 절개에 성공했다. 마레스코 박사는 “이번 수술의 목적은 흉터가 환자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기존의 피부층 절개 방식으로 도구를 투입하는 방식에 비춰보면 획기적 성과”라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이번 프로젝트 연구를 위해 3년 동안 720만유로(약 90억원)가 투입됐다고 설명했다.vielee@seoul.co.kr
  • 커서 남주나? 코주부 콘테스트

    커서 남주나? 코주부 콘테스트

    「콘테스트」,「콘테스트」하더니 세상에 별의별「콘테스트」도 다 생긴다. 이번엔 이름하여 전국 큰 코 선발대회. 말하자면 우리나라 제일의 코주부를 뽑는「콘테스트」다. 거주지 관할 파출소장의 확인 서명이 있는 추천서로 응모, TV를 통해 최종결선을 갖는다는 이 코주부「콘테스트」의 내용은-. 코주부 인연있는 상호(商號)의 애교있는 선전 방법으로 역학에서는 코를 재백궁(財帛宮)이라 하여 재물운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본다. 관상가 백운학(白雲鶴)씨의 말을 따르면『집을 지을때 전체 조화가 맞아야 하는 것처럼 코도 그 사람의 얼굴 전체와 조화가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달리 큰 코는 역학적으론 별로 찬성할 것이 못된다. 코가 크면 얼굴도 커야 조화가 된다는 것. 이 점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코만 큰 사람들이 있다. 얼마전엔 이들 코주부들이 모여 대비자(大鼻者)「클럽」이란 묘한「클럽」이 생기기도. 이번 제1회 전국 큰 코 선발대회를 연 곳은 얼마전 서울 명동에 생긴「시라노」란 이름의「디스카운트·스토어」. 내건 명분인즉「개점 1백일 기념」이지만「시라노」란 상호를 널리 알리자는 속셈이 있고 보면 다분히 상혼이 깃든「콘테스트」다. 그러나 상호선전 치곤 애교있는 방법. 우선 응모요령을 보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만 20세 이상의 건강한 남성』으로『코에 자신이 있는 사람』으로 되어있다. 자기 코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기 코의 측면, 정면사진(명함판)2장과 코의 가로, 세로 길이를「cm」로 표시, 주최측에 보내면 응모한 것으로 된다. 이때 가로는 코끝의 가로 길이를 말하며 세로 길이는 인중에서 코 부리까지의 길이. 그러나 이 길이는 거주지 파출소장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 이런 조건이 붙은 것은 자기의 코 크기를 과장, 예선을 통과할 경우 지방에서 올라오는 가짜를 막기위해서라고. 이렇게 해서 응모된 전국의 코주부들은 서류심사로 1차예선을 거쳐 예선통과자에겐 2차심사통고가 간단다. 2차예선은 9월5일(土) 하오 2시「시라노」본점에서 갖고 이 2차예선을 통과한 사람들로 최종결선을 갖게 되는데 결선은 TV를 통해 다음날인 9월6일(日) 하오 2시에 갖는다고. 미스터·시라노에 뽑히면 금제 실물대(金製 實物大) 코상패 주어 이렇게 뽑힌 대상(大賞)「미스터·시라노」에겐 금으로 실물과 같은 크기에 코를 만들어 상패로 주며 제주도 관광여행의 부상이 따르고 준「미스터·코」격인「미(美) 코」엔 은으로 만든 역시 실물대의 코 상패를 주며 양복 한벌을 부상으로. 마지막으로 인기상격인「추(醜) 코」에는「시라노」명예사장의 직함과 구두 한 켤레가 주어진다. 그밖의 참가자 전원에게도 부상이 주어진다는 소식. 이 기발한「콘테스트」의 심사위원들 얼굴도 이채롭다. 「고바우」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金星煥)씨가 있는가 하면 관상가 백운학씨, 대비자「클럽」회장 이준범(李俊凡)씨, 성형외과 의사인 정성채(鄭聖彩)여사, 이비인후과 의사인 한기택(韓基澤)씨와「시라노」대표 정명근(鄭明根)씨(해외에 이름을 떨친 음악가 정경화(鄭京和) 오빠)가 끼여 있다. 심사방법은 코의 길이, 너비, 높이 등으로 우열을 정하고 여기에 건강미와 관상학적 판단(?)이 뒤따른다고. 심사위원중의 한 사람인 관상가 백운학씨의 말을 따르면『코는 그 사람의 재운을 관장하는 기관』이며 좋은 코를 판별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이 코의 색깔. 검거나 푸르거나 하면 좋지 못하고 동양인의 피부색 그대로여야 하며 코가 크고 볼품이 있더라도 비뚤어지면 곤란. 콧날은 오똑하되 울퉁불퉁해도 안되며 고르게 뻗어야 한다. 또 코에 흉터가 있으면 좋지 못하고 콧구멍이 보이지 않을수록 좋다고. 나란히 서있을 때 콧구멍이 많이 들여다 보이면 그 사람은 재물운이 있어도 쓰임새가 많아 큰 재물을 모으기는 어렵다는 것. 이번 코주부「콘테스트」에서 또하나의 금기사항은 정형, 혹은 성형으로 코를 키운(?)것. 이의 판별은 성형외과 의사인 정성채씨가 맡는다고. 지난 7월31일 발족을 본 대비자「클럽」에선 5명의 회원 전원이 이「콘테스트」에 응모해와 이채를 띠었는데「클럽」이 생긴 뒤 전국에서 몰려든 입회신청이 80여건에 달한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코주부가 많음을 자랑하고있다. 상점명(商店名)은 프랑스 코주부 실제로 있었던 검객시인(劍客詩人) 이 대비자「클럽」은 『순수한 대한민국산(産)의 남자로서 명실공히(?) 코가 큰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아 들이는데 부대조건으로『장차 코에 대한 연구를 거듭할 사람』이란 단서가 붙어 있고 회칙 15조엔『불의의 사고로 코를 다쳤을때는 본회에서 치료비를 보조할 수 있으나 순수한 회원본인의 잘못으로 고이 보존해야 할 코를 부상시켰을 때는 징계 또는 벌금형 및 제명까지도 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벌칙조항이 들어있다. 이 대비자「클럽」은 이번 코주부「콘테스트」의 입선자는 물론 2차예선을 통과한 사람들도 모두 회원으로 포섭하겠다고. 이번 대상격인「미스터·시라노」의「시라노」란 이름은 17세기에「프랑스」에 실제 있었던 사람의 이름.「풀·네임」은「시라노·드·벨주락」으로 1619년에 태어나 무지무지하게 큰 코로 한 세상을 살다가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이며 검객이다. 하도 코가 커서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는데 정작 명성을 얻기는「프랑스」극작가인「에드몽·로스땅」이 희곡『검객「시라노」』를 써서 발표 하면서부터. 그러나「시라노」장본인도 검객이면서도 시인·극작가여서 비극『아그리피느의 죽음』과 희극『현학자 놀려먹기』등의 희곡을 썼으며「유토피어」소설『월세계와 태양계 제국의 웃기는 얘기들』도 있다. 이「시라노」가 오는 9월6일 결선을 통해 다시 우리나라에 탄생할 모양. 코 큰 형부를 가진 아가씨들은 슬쩍 형부의 코사진을 넣어 주최측에 한 번 보내볼 일이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30일호 제3권 35호 통권 제 100호]
  • 꽃같은 시어로 인간의 내면 보듬어

    “더 멀리/떠나왔나 보다/밀교(密敎)의 단호한 문을 여러 겹 건너/비바람과 눈보라 사이를 숨차게 헤쳐/바위처럼 금 간 상처 내려다보며/그래도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서로/위로하면서/몇백 날을 그렇게 달려왔지/은닉한 쾌감에 메마른 주둥이를 대고 싶어/피 흐르는 육체의 윤곽을 덮어 지우면서/저 감옥 속으로,/감옥 속으로.”(‘꽃나무 아래의 키스’ 전문) ‘우울한 샹송’ 등 우수 어린 아름다움을 노래해온 중견시인 이수익(65)씨가 새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시작 펴냄)를 발표했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61편의 근작시를 담았다. 그의 시는 생의 본질을 밝히고자 태어난다. 삶에 대한 깊은 응시를 통해 사물과 현상의 내면에 숨어있는 움직임과 고요함을 빨아들여 그것으로 한송이 꽃과 같은 시를 피워낸다.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침 뱉고 저주하라, 그대/불행의 작두 위를 걸어야 할 시인이여.”(‘또 다른 생각’ 부분) 시인에게 있어 ‘시인’이란 ‘불행의 작두’를 타야할 숙명을 지닌 사람들이다.칼날 같은 현실을 비켜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위를 걸을 수 있고, 자신의 상처로 세상이 치유되지 않으면 기꺼이 죽음에도 키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시집은 이런 그의 ‘시인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주 거대한 것까지 두루 소재로 쓰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아픈 흉터를 어루만지고 있다.시인은 “시는 현실적 삶의 풍경과 체온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우울한 샹송’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등의 시집을 냈고,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내시경 이용 갑상선암 제거 서울대병원 세계 최초 성공

    국내에서 내시경을 이용해 갑상선암을 제거하는 수술법이 세계 최초로 성공적인 임상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갑상선암 치료를 위해 수술을 할 경우에는 초기라도 목 부위를 절개하는 방식으로 시술을 해야 해 흉터가 남을 수 밖에 없었으나 내시경 수술이 성공함에 따라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대병원 외과 윤여규 교수팀은 2001년부터 최근까지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내시경 수술법을 적용, 모두 4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해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최근 밝혔다. 의료팀은 양쪽 겨드랑이와 젖꼭지 가장자리(유륜선)를 따라 모두 4곳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을 넣어 목 부위 갑상선에 이르게 한 뒤 암을 절제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이 수술에 걸리는 시간은 기존 절개술의 90분보다 30분 가량 더 걸리지만 절개 부담이 없을 뿐더러 치료 예후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의료팀은 설명했다. 이 임상 성과를 담은 윤 교수의 연구논문은 ‘세계외과의학저널’ 2월호에 게재됐다. 윤 교수는 “내시경을 통한 수술은 목에 흉터를 거의 남기지 않아 여성이 대부분인 갑상선암 환자들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이제 크게 웃을 거예요. 이제까지 웃지 못했던 것까지 전부 다 합쳐서요.”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병원의 ‘밝은 얼굴 찾아주기 캠페인’을 통해 얼굴 기형치료를 받은 저소득층 아이들과 청소년 9명의 초·중·고등학교 입학축하 행사장에서였다. 그동안 선천성 얼굴 기형이나 상처 흉터로 인해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모처럼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민영(7·충남 보령군)양은 목젖과 입천장, 코뼈가 뭉그러진 얼굴로 세상에 태어났다. 이불보에 싸인 민영이의 일그러진 얼굴에 깜짝 놀란 어머니 이현희(31)씨가 생후 100일이 지난 뒤 1차 성형수술을 시켰지만 수술 흔적은 여전했다. 민영이는 매일 유치원에서 코와 입이 이상하다는 놀림에 시달렸다. 이씨는 “한번은 몰래 유치원에 가서 창밖에서 봤더니 따돌림 당해 한쪽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민영이를 보고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코와 입이 기형이다 보니 비장애 아이들보다 말 배우기도 느려 매일 회초리를 맞아가며 읽고 말하기 연습을 따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전셋집에서 근근이 꾸려가는 형편 탓에 재수술은 꿈도 꾸지 못하다 지난해 8월에야 한 병원의 도움으로 얼굴이 거의 제 모습을 찾았다.“다음달 들어가는 학교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할 거예요.” 민영이가 책가방을 꼭 부여잡으며 말한다. 강원도 화천에 사는 정세희(9·여)·예찬(7) 남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매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돌출되는 크루존씨병이란 걸 앓았다. 집을 나간 부모 대신 할머니 최혜자(62)씨의 손에서 자란 세희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본다.”며 친구도 없이 혼자만 지냈고 예찬이 역시 누나와 함께 행동했다. 학교까지 가지 못하던 남매는 2005년 7∼8월 잇따라 수술을 받고 다음달 뒤늦게 초등학교 책가방을 메게 됐다. 선천성 소이증(小耳症)으로 왼쪽 귀가 자라지 않은 문대일(17·전남 순천군)군은 평소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신의 귀만 바라보는 것 같아 대인 기피증까지 겪었다. 중학교 땐 스포츠 머리인 친구들과 달리 귀를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지만 그것마저 ‘다름’의 증거가 됐다. 문군은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갈비뼈와 사타구니살을 떼어내 귀 모양을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부모님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어요. 귀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2004년 4월부터 캠페인을 열어 모두 210명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준 삼성서울병원 사회사업실 구미현 사회복지사는 “수술 전에는 거울 보기조차 거부하며 침울하게만 지내던 아이들이 수술 뒤 웃음을 되찾으면서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는 입학 이후의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돼 우리도 보람차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日사과 안하면 직접 가서 설득”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본으로 날아가 의원들과 토론을 벌이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을 사과하라는 내용의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미국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은 8일(현지시간) 전화 회견을 통해 “동료 의원 대부분이 결의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오는 3월 말까지는 위안부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의 본회의 상정권을 쥐고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개인적으로 결의안을 지지할 뿐 아니라 과거 제출됐던 결의안에 공동서명한 일도 있다.”고 전했다. ●日정부 ‘반대 로비´ 공식 진행중 일본계 3세인 그는 결의안 제출 취지를 묻는 질문에 “10년 전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점점 연로해지고 돌아가시기 시작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이제는 정리가 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이미 사과했고 보상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혼다 의원은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진정한 사과를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잘못에 대해 화해하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면서 “그것은 일본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해야 할 아주 성숙한 일”이라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해도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내 자신이 기꺼이 일본에 가서 의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과거의 실책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압도적 지지로 결의안 통과될 것 일본측의 결의안 반대 로비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매우 공식적인 로비를 통해 일본측 입장을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면서 “일부 의원은 일본측의 반대 논리와 같은 우려를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론 초당적으로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결의안과 관련해 일본계 미국인들로부터는 어떤 반응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지해주는 이들도 있다.”면서 “21세기는 화해의 시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미·일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일본측 논리에 대해 “정의를 확립하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없다.”면서 “일본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처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의 사과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화해하면 미래에 더 강한 양자 및 다자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흉터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강한 것처럼 일본의 사과를 통한 화해가 미·일간은 물론 동북아 3국간에 훨씬 강한 유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8) 노인성 황반변성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8) 노인성 황반변성

    8년 전 정년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김모(62)씨는 최근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시야 중앙의 글자들이 시커멓게 뭉쳐 보여 깜짝 놀랐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은 결과는 ‘노인성 황반변성’이었다. 의사는 “잃어버린 시력은 회복할 수 없지만 남은 시력은 유지할 수 있겠다.”며 “시력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빨리 병원을 찾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안질환은 크게 각막 질환과 망막질환으로 나뉜다. 이 중 망막질환은 특히 치료가 어려워 자칫 실명(失明)으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망막질환의 권위자로 꼽히는 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장 권오웅 교수는 이에 대해 “특히 황반부는 망막의 중심으로, 색각을 담당하는 시세포가 집중돼 있어 이 곳이 건강해야 정상적인 시력 유지가 가능한데, 여기에 문제가 생겨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황반변성(AMD)이 오면 자칫 ‘암흑의 노후’를 맞기 쉽다.”며 “의사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황반변성은 녹내장, 당뇨병성 망막증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으로, 성인 실명원인의 30∼40%를 차지하는 중증 안질환이다. 망막의 중앙에 있는 누른 부위로, 지름 0.5∼0.8㎜ 크기의 황반은 중심 시력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의 세포가 변성을 일으켜 이상조직이 생기거나 출혈이나 세포괴사 등으로 시력이 저하돼 결국 실명으로 이어지는 것이 곧 황반변성이다. 주로 50세를 넘긴 고령층에서 발생하는 황반변성은 대부분 양쪽 눈에 모두 생기고, 남성보다 여성 유병률이 다소 높으며, 가족력도 종종 관찰된다.“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흔치 않았으나 지금은 60세 이상 노인의 1.7%가 걸릴 만큼 증가세가 두드러집니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0년 7631명이던 환자가 2004년에 무려 1만 3673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지금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증가세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 기름진 서구식 식생활과 고도 근시, 자외선 노출, 흡연 등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알려진 정도이다. 일단 황반변성이 오면 시각이 뒤틀려 사물이 정상보다 크거나 작게 보이고, 직선이 곡선으로 보인다. 욕실의 타일이나 자동차, 건물 등의 윤곽선이 굽어보이는 게 한 예다. 물론 독서나 텔레비전 시청, 다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권 교수는 이런 황반변성을 크게 ‘근시성’과 ‘노인성’으로 구분했다.“근시성은 성장기가 지난 고도근시 환자의 안구가 지나치게 성장해 안구 내 맥락막, 브루크막, 안구 공막과 망막 조직 등이 전체적으로 변성을 일으켜 문제가 되는데, 심한 경우 브루크막이 찢어진 틈으로 맥락막의 새 혈관막이 자라 들어오면서 황반부 출혈을 일으킵니다. 다행히 근시성은 치료 성적은 좋은 편입니다.”문제는 노인성이다.“노인성은 다시 건성과 습성으로 구분하는데, 건성은 망막에 드루젠이나 망막 색소상피의 위축과 같은 병변이 생긴 경우로, 노인성 환자의 90% 정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심한 시력상실을 유발하지는 않으나 습성으로 진행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이에 비해 습성은 망막 밑 맥락막에 새 혈관이 자라서 생기며, 망막 중에서 특히 중요한 황반부에 출혈 등을 일으켜 중심시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비정상적으로 생성된 혈관들이 파열되어 환자의 눈 가운데에 생긴 검은 원이 커지면서 한 순간 중심시력을 잃게 되고, 이때 황반에 흉터가 생겨 영구 시력 상실로 이어지게 되는데, 진행 속도가 매우 빨라 빠르면 수개월에서 3년 내에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심각한 안질환이지요.” 황반변성의 자가진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둑판 모양의 ‘앰슬러씨 격자무늬’를 이용하는데, 가정에서는 손바닥 크기의 흰 도화지에 검은 색 펜으로 촘촘하게 바둑판 모양의 선을 놓고 가운데를 응시해 격자의 선이 층이 져 보이거나 끊어져 보이면 황반변성일 가능성이 높다.“노인성은 이밖에도 다양한 증상을 보입니다. 글자체가 흔들려 보이고, 직선이 굽어보이며, 인쇄물의 글자에 공백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 그림의 한 부분이 지워진 것처럼 보이거나 시야 가운데가 흐려 검거나 빈 부분이 생기기도 하며,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변시증, 색이 이상하게 보이는 변색증이 나타나기도 하지요.” 권 교수는 이런 황반변성의 치료 목표는 잃어버린 시력의 회복이 아니라 남은 시력의 유지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종래의 레이저치료 대신 최근에는 광역학치료법이 널리 쓰인다. 특수 약물을 주사한 뒤 망막을 통해 비열성 특수 레이저를 쏘아 신생혈관을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미국 사이언스지가 지난해 10대 과학계 업적으로 소개하기도 한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도 관심을 모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제네텍이 개발한 ‘라니비즈맵’을 망막 황반변성 치료제로 허가했다. 라니비즈맵은 ‘VEGF’란 단백질을 자극해 정상적인 혈관 생성을 촉진해 시력 유지는 물론 회복까지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은 현재 ‘루센티스’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희귀병의약품센터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아직 황반변성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은 미흡하다. 진단 분야에서는 초기 진단법인 형광안저촬영, 치료 분야에서는 레이저치료와 광역학치료의 일부만 보험을 적용하고 있어 다른 희귀난치질환에 비해 환자 부담이 큰 편이다. 권 교수는 이런 황반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중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지금까지는 황반변성이 발생해 최선의 치료를 해도 손상된 세포를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 요즘처럼 고령화가 두드러진 세상에서 50∼60대에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질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가능한 조기에 병을 발견,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로봇수술 어느덧 우리곁에

    ‘로봇수술’이 대중화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도입한 ‘로봇 복강경수술’이 1년 반 사이에 200건이 넘는 수술례를 기록했다. 이중 암 수술이 91%를 차지할 정도로 고난도 수술 시행률이 높다. 수술비가 비싸 대중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이 수술을 선택하는 환자 대부분이 6인실을 사용하는 이른바 ‘일반인’들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이 2005년 7월 도입한 복강경 수술용 로봇인 ‘다빈치’의 경우 도입 후 1년만에 100건의 수술을 치러낸 데 이어 이후에도 6개월 만에 200례의 수술 기록을 달성했다. 로봇 한대가 1일 최대 2건밖에 수술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증가세이다. 로봇이 처리하는 수술이 고난도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의료진들은 그동안 전립선암 106례, 위암 45례, 자궁암 19례, 직장암 10례, 식도암 5례와 흉곽수술 5례 등을 시행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이 로봇으로 심장 수술을 시도, 모두 6례를 치러냈다. 이처럼 로봇수술 의존도가 급속히 확대되는 것은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로봇을 이용한 암 수술의 경우 실제보다 10배 이상 확대된 3차원 입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인간의 손보다 더 정밀한 로봇팔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술 부위의 신경이나 혈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소 절제로 회복이 빠르고 흉터 부담이 적은 것도 장점. 전립선암의 경우 대표적 수술 부작용인 요실금과 발기부전을 80∼95% 이상 해결했으며, 기존 외과적 수술의 경우 6∼12개월이 소요되던 소변 조절능력 회복 기간도 1∼3개월로 줄였다.위암 수술도 퇴원까지 2주가량 걸린 기존 수술법에 비해 장운동 회복까지 평균 3일, 첫 연식 시작까지 평균 4.1일 등으로 입원일을 평균 6일가량 단축했다. 부인암도 현재 자궁내막암,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증식증, 자궁경부암 등에 로봇수술이 시행되고 있으며, 식도암의 경우 지금까지는 흉부를 30∼40㎝나 절개, 늑골을 벌린 상태에서 수술하는 데 비해 로봇수술은 직경 1㎝ 정도의 구멍 4개로 수술이 가능해 수술 후 통증이 적고, 폐렴 등 합병증 우려도 크게 줄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병원에는 초창기 1주일에 1∼2건에 불과하던 문의가 현재는 20여건이나 된다.병원 관계자는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회당 1000만∼200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에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일부 부유층만 이용하는 수술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일반 환자의 이용률이 훨씬 높다.“며 “이에 따라 신촌 및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수술용 로봇을 각 1대씩 추가 구입해 배치할 예정이며, 다른 대형병원에서도 이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23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5시10분) 지난 2005년 6월 꿈 많은 한 인도네시아 아가씨에게 다가온 끔찍한 재앙 화마(火魔). 당시 그녀는 자신이 일했던 금형 주조공장에서 일어난 큰 폭발 사고로 전신 30%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그녀의 꿈은 산산히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얼굴과 가슴을 온통 뒤덮은 화상 흉터뿐인데….
  • [프로축구] 신인왕 염기훈 올 31경기서 7골 기록

    “더욱 열심히 노력해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 20일 신인왕을 거머쥔 ‘왼발 스페셜리스트’ 염기훈(23·전북)은 이같이 다짐했다. 전북 선수가 신인왕을 차지한 것은 2000년 양현정 이후 6년 만이며 사상 두 번째다. 호남대 시절 공격수 1∼2위를 다투다가 올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염기훈은 31경기에서 7골(5어시스트)을 기록했다. 전북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해 외견상으론 동갑내기 장남석(대구·36경기 9골 4어시스트)에게 뒤졌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와 측면 공격수를 오가며 알토란 같은 플레이를 펼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빛났던 점이 신인왕 경쟁에서 한 발 앞서게 했다. 검증된 왼발 슈팅과 과감한 측면 돌파로 전북이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품는 데 큰 몫을 해낸 것. 또 챔피언스리그 활약을 디딤돌 삼아 신인 가운데 유일하게 ‘베어벡호’에 합류했다.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아시안게임 북한과의 8강전에서 터뜨린 왼발 골은 그의 진가를 과시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7월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시련도 있었다. 머리에 흉터를 남겨 ‘땜통’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외려 염기훈은 교통사고 이후 물이 올랐다. 염기훈은 “꼭 타고 싶은 상을 받게 돼 기쁘다.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푸석해진 피부는 어떡해

    ■ 푸석해진 피부는 어떡해 ㅠㅠ 술에 망가지는 것은 간뿐이 아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연말 술자리로 피부는 금방 푸석푸석 까칠해진다. 술로 인한 피부트러블은 대부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지만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만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 피부숙취, 수분 섭취가 우선 과음한 다음날 얼굴이 푸석하고 각질이 일어나는 이유는 알코올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면서 체내 수분도 함께 배출되기 때문. 피부 수분이 빠져나가는 양은 비워지는 술잔에 비례한다. 술은 또 체내의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파괴시켜 피부 노화를 부추기고 혈액순환을 방해, 눈두덩이나 얼굴을 붓게 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알코올은 피지 분비량을 늘리고, 숙면을 방해, 부신피질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해 여드름이나 뾰루지 등 피부트러블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생기면 하루 2∼3회 세안으로 피부를 깨끗이 하고 피지가 모공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러 피부트러블이 생기면 더러운 손으로 만지거나 짜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여드름이 덧나거나 흉터가 남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음주 전후에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피부관리의 기본이다. 단, 탄산음료나 커피의 카페인은 피부 탈수를 촉진시키므로 피하는 게 좋다. 음주 후에는 얼굴을 깨끗이 씻은 후 수분이 많은 로션을 발라주고, 물을 평소의 2배가량 마셔주면 피부 보습과 트러블 예방에 효과적이다. 보습과 세정·진정효과가 뛰어난 우유를 발라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귀가후 얼음수건으로 얼굴 냉찜질 과음한 날은 귀가 즉시 냉장고에 넣어 둔 수건이나 녹차 티백, 얼음을 감싼 수건 등으로 얼굴을 냉찜질하고, 미지근한 물로 닦아내 피부를 안정시킨 뒤 눈 전용 에센스와 크림을 발라주면 된다. 취했다고 메이컵 상태로 잠들면 노폐물과 화장품 속 유분이 모공을 막아 각종 트러블의 원인이 된다. 아침에는 물을 충분히 마셔 염분을 배출시키고 몸을 가능한 많이 움직여 얼굴에 집중된 수분을 분산시켜야 한다. 음주로 모세혈관이 확장돼 홍조증이 나타날 경우 술자리를 피하고 충분히 쉬어주면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된다.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되면 만성화되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흡연도 피부에 심각한 위협이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체내에서 0.5㎎의 비타민C가 파괴된다. 이 때문에 피부는 거칠어져 생기를 잃게 된다. ■ 도움말:서동혜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원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숙취피부를 위한 생활습관 ▲물을 자주 마시고, 과일을 많이 먹어 수분과 비타민을 충분히 보충한다. ▲기능성 화장품을 이용해 피부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다. ▲강알칼리성 비누 대신 중성이나 유아용 비누를 사용한다. ▲목욕시 보습 오일을 물에 섞거나 목욕 후 3분 이내에 오일이나 로션, 크림 등을 발라준다. ▲가습기를 이용해 실내 습도를 40% 이상으로 유지한다. ▲실내 온도를 너무 높지 않게 하고, 옷을 가볍게 입어 체내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피부에 자극을 주는 울이나 폴리에스테르 소재 대신 면 제품 의류를 입는다. ▲자기 직전에는 많은 땀을 흘리는 운동을 피한다.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프랑스 영화 ‘제8요일’에서 다운증후군을 앓던 주인공 조르주는 마침내 날개를 달고 뛰어내려 ‘천사의 죽음’을 택한다. 그임죽음이 자신의 의지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정신박약의 일종인 다운증후군은 우리나라에도 흔한 질병이다. 실눈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지고, 코는 납작하며, 입이 작고 혀가 입 밖으로 비죽이 밀려나오는 특징을 보인다. 또 머리가 납작하고, 눈과 눈 사이가 멀며, 짧은 손가락은 안으로 자꾸 말린다. 경희의료원 성형외과 양원용(대한성형외과학회 차기회장) 교수는 지능장애 때문에 흔히 백치로도 불리는 이런 다운증후군의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평균 지능지수가 50 안팎으로, 침착성이 없고, 호기심이 강하며, 아무나 잘 따릅니다. 또 엉뚱한 흉내와 농담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선천성 심장판막증과 발육장애 등 매우 특이한 용모와 증상을 가진 질환입니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으나 일반적인 유병률은 신생아 600∼700명당 한 명꼴로 태어난다. 주로 고령(35세 이상)의 초산부에게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 서양에서는 이 병을 가진 아이의 눈꼬리가 몽골인과 닮았다고 해서 ‘몽고증’이라고도 부른다. 양 교수는 최근의 고령임신 경향으로 다운증후군 유병률이 높아질 것을 경계한다.“신생아 700명당 1명꼴로 태어나므로 정상인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산모가 고령일수록 이런 아기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며, 남성의 나이가 50을 넘어서 아이를 가질 경우에도 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젊은 임신부가 늘고 있어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원인은 염색체 이상이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정상인보다 1개가 많은 47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유전질환으로, 어머니가 관련 인자를 가진 경우에는 15%, 아버지가 가진 경우에는 4% 확률로 나타나며 특히 어머니의 21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는 100%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아이가 47개의 염색체를 가졌다면 그 다음 아기도 1%의 확률로 이 병을 갖게 되며, 염색체 수는 정상이나 위치가 바뀐 전위의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8%로 높아집니다.” 따라서 임신부는 적극적으로 태아 염색체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염색체 전위라면 부부가 지체없이 염색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모든 임신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진단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혈청검사, 초음파검사와 융모막검사로 임신 12주 이내에 얼마든지 진단이 가능합니다.” 양 교수는 다운증후군이 다른 선천성 기형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은데도 이들에 대한 교육 및 재활시설이 태부족한 현실을 개탄했다.“그뿐이 아닙니다. 사회적 인식과 이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이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과 클 수밖에 없지요.” 선천성 질환이어서 치료는 환자가 갖고 태어난 신체적 증상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안면 성형이나 혀 절제술 등이 그것이다. 제한적이지만 이런 치료를 통해 환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복귀와 정상적인 생활을 돕는다. 큰 혀를 항상 내밀고 생활하는 경우에는 혀의 일부를 절제함으로써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한다. 혀를 내민 환자는 대부분 공명장애 때문에 발음이 어눌하며, 편도선과 아데노이드 염증질환이 잦고, 심하게 코를 골기도 한다. 또 충치가 심하고 턱이 불균형성장을 하게 되는데,3∼4세 무렵에 혀 절제술을 시향하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안면 성형은 다양하게 이뤄진다. 발육 부진으로 코가 납작한 환자는 양 눈 사이가 더 멀어보이고 눈 안쪽에 주름이 잡히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코뿌리를 높여 해결한다. 또 눈썹이 안쪽으로 나 각막을 찌르거나 발육 부진으로 광대뼈가 평평한 경우, 목에 지나치게 많은 지방이 축적된 경우, 변형된 귀와 힘없이 처진 아랫입술도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물론 이전 특성을 가졌다고 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술 기술이 발전해 흉터 등의 부담이 없을뿐더러 환자의 용모나 인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 이상으로 큽니다. 그러나 지능이 너무 낮아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환자라면 수술을 받아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수술이 무의미할 정도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없지 않고요.” 수술 시기는 일반적으로 취학 전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혀 절제술은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인 3∼4세 무렵에 해주는 게 좋다.“적기에 수술을 하면 환자가 자신의 용모나 신체 기능에 자신을 가져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연령대를 지나친 환자의 수술 치료가 어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제든 환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수술치료가 가능하지요.” 아직 정책적 지원이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얼마 전 혀 절제술이 보험 대상이라는 판례가 나왔다. 이에 따라 혀 절제술 환자는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심장재단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수술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양 교수는 이런 당부로 말을 맺었다.“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다운증후군 아동들의 사회 적응력이 가장 높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운증후군 아동들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떳떳이 자립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따뜻해야 하고,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5) 얼굴 전체 화상입은 김대성군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5) 얼굴 전체 화상입은 김대성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63빌딩보다 1층 더 높은 건물을 지어서 맨 꼭대기층을 엄마, 아빠께 선물할래요.” 1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김대성(9·광주초교 3년)군의 집. 마루에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였다. 트리 불빛을 호롱불 삼아 스케치북 위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리던 대성이는 크레파스로 ‘64층짜리’ 빌딩을 멋지게 그려낸다. 대성이의 꿈은 건축가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건축가 꿈을 꼭 이루게 해달라고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빌 생각이라고 한다. ●“화마(火魔)의 상처 딛고 건축가 꿈 키워요” 대성이는 얼굴 전체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오른쪽 팔목도 인대까지 2도 화상이 자리잡고 있다. 화마가 대성이를 덮친 건 지난해 3월18일. 엄마(41)가 직장 모임에 참석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아빠(35)와 고기집에서 외식을 했다. 숯더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피는 순간 갑자기 불길이 확 치솟았고, 대성이는 뜨거운 바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처음 한 달 동안 상처 부위에서 붕대를 떼어낼 때마다 뭉친 고름에 피부가 묻어나왔고, 대성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고 한다. 딱지가 내려앉자 이젠 지루한 약물 마사지 치료가 시작됐다. 맞벌이를 나가는 아빠·엄마 때문에 대성이는 1주일에 한번씩 홀로 1시간 거리인 서울 강남에 있는 화상전문병원인 베스티안병원으로 재활치료를 다닌다. 감염을 막고 피부가 부풀어오르는 걸 막기 위해 병원에서 특별히 만들어준 마스크를 항상 착용해야 하고 햇볕도 최대한 피해야 한다. 하루 두 차례 식물성 오일과 비타민, 스쿠알렌 등이 들어 있는 보습제로 직접 마사지를 한다. 부상 당시 입은 ‘트라우마’(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애들이 놀려 짜증나면 파란 하늘을 봐요” 치료비도 만만찮다. 치위생사로 일하는 엄마 월급과 새시(창틀) 기술자인 아빠의 월급 중 매월 55만∼65만원이 대성이 치료에 쓰인다. 대성이 엄마는 “화상약은 약이 아니라 대부분 화장품으로 분류되어 있어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힘들다.”면서 “대성이 재건성형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 아빠가 담배까지 끊어가며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화상 후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대성이를 괴롭혔다. 지난해 9월 여섯 달 만에 학교에 돌아가자 처음에는 사고를 이기고 돌아온 대성이에게 아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 짓궂은 아이들이 대성이의 얼굴을 보고 ‘외계인’이라고 놀렸다. 얼마전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아이가 대성이의 얼굴을 보고 징그럽다며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이는 밝고 꿋꿋하다.“애들이 놀려서 짜증이 나면 파란 하늘을 봐요.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나중에 얼굴에 흉터가 남아서 사람들이 물어봐도 ‘이게 제 개성이고 패션’이라고 답할 거예요.” 대성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축구선수 박지성이다.“지성이 형 발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겉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까지 제가 본 발 중에 가장 징그러웠어요. 제 얼굴도 조금 징그럽지만 지성이 형처럼 하면 사람들이 제 얼굴을 좋아할 거라고 믿어요.”박지성 이야기를 꺼내자 모처럼 대성이의 얼굴에는 화상으로 생긴 주름이 사라지고 환한 미소가 퍼졌다. 경기 광주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이중고 겪는 화상 어린이 대성이와 같은 어린이 화상 환자는 세포가 죽어 피부 성장이 멈춘 상태다. 따라서 뼈만 자라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이 때문에 재건성형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이 수술은 미용 목적 성형으로 분류돼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아이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 대성이와 같은 어린이 화상환자는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수치는 없고 몇개의 종합병원 환자 수를 합친 숫자다. 보통 온몸의 20% 정도에 2도 이상 화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한 차례 수술 비용으로 최대 2000만원가량이 든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엄두도 못낼 만큼 많은 액수다. 약도 대부분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으로 분류돼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화상 보습제를 구입하는 데만 한달에 수십만원이 들 정도다. 화상은 장애 인정에서도 외면당한다. 정부가 장애제도를 신체의 기능 장애에 한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화상이 미관상의 문제일 뿐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는 부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외다리 원숭이, 두목 등극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외다리 원숭이, 두목 등극

    ‘외다리 두목 원숭이의 전설.’ 어린이동물원 다람쥐 원숭이 무리 20여 마리를 이끌고 있는 똘똘이(♂·2002년생)는 그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한다. 오른쪽 허벅지 아래로는 절단된 ‘외다리’이기 때문이다. 똘똘이가 한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은 태어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을 때다. 똘똘이의 엄마는 다른 곳에서 똘똘이를 임신한 상태로 대공원에 왔다. 하지만 당시 무리를 장악하고 있던 우두머리 다이아몬드(♂)는 자기 자식이 아닌 똘똘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원숭이와 싸우다 이마에 남은 흉터 모양 때문에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의 폭군. 다이아몬드는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똘똘이를 덮쳐 한쪽 다리를 물어 뜯었다. 심하게 상처입은 똘똘이는 허벅지 아래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포육실에서 6달 동안 치료를 받고 살아남긴 했지만, 의료진과 사육사들은 아직 어린 똘똘이를 합사시킬 경우 다시 공격을 받을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어미가 똘똘이를 알아볼 경우에만 합사를 시키기로 결정한 뒤 똘똘이를 작은 우리에 담아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냈다. 긴 시간이 지나 서로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는 사육사들의 기우였다. 똘똘이 엄마는 단번에 자식을 알아보고 작은 우리에서 끌어내 등에 업었다. 모정에 감동한 것인지, 똘똘이의 잘린 다리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다이아몬드도 더이상 똘똘이를 괴롭히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줬다. 지난해 봄 똘똘이의 어미가 폐사했을 때 대신 똘똘이를 보살폈을 정도이다. 다람쥐 원숭이로서는 드물게 4년이 넘도록 폭정을 펼쳤던 다이아몬드도 지난해 말 폐사했다. 다이아몬드가 아끼던 똘똘이는 ‘의붓아비’의 권위를 물려받았지만, 다른 수컷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똘똘이에게는 한쪽 다리가 없는 대신 양팔의 힘이 엄청나게 세다는 강점이 있었다. 똘똘이는 몇 번의 승리를 통해 서서히 무리를 장악했고, 우두머리로 등극했다. 똘똘이는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따뜻한 카리스마’ 스타일의 리더. 다람쥐 원숭이 무리는 오늘도 외다리 두목의 지휘아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누드 브리핑] 성동구 ‘마이크 공포’

    [누드 브리핑] 성동구 ‘마이크 공포’

    오세훈 서울시장이 모교인 미동초등학교를 방문해 고백한 ‘과거사’와 성동구청에서 중요한 행사 때마다 마이크가 꺼지는 징크스가 화제가 됐습니다. ●시장 엉덩이에 U자형 흉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엉덩이에 U자형 흉터가 있다고 깜짝 고백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오 시장이 모교인 미동초교를 방문해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요. 행사가 끝날 때쯤 한 학생이 ‘초등학교 때 기억 남는 일’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 시장은 웃으며 ‘과거사 보따리’를 풀어냈습니다. “예전에 학교 운동장 저 끝쪽에 미끄럼틀이 있었어요. 미끄럼틀을 타며 신나게 놀았는데요. 마침 미끄럼틀 손잡이 중간에 한 토막이 떨어져 나간 거예요. 그걸 모르고 미끄럼틀을 타다가 실수로 엉덩이가 손잡이쪽으로 쏠렸고, 바로 그 잘려나간 부분에 엉덩이가 걸렸죠. 살점이 움푹 패고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 흉터가 아직도 엉덩이에 U자 모양으로 남아 있어요. 오늘 학교를 오며 그쪽을 제일 먼저 봤는데 미끄럼틀이 없어졌네요.” 오 시장은 1973년에 미동초교를 졸업했습니다. 아이들은 선배님의 상처가 눈에 보인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더군요. ●행사 때마다 꺼지는 마이크 공포 성동구 문화공보과가 ‘마이크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 행사를 주관하는 문화공보과가 행사만 열면 마이크가 갑자기 다운되는 등 사고를 쳐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고 하네요. 행사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구청장이 참석한 자리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공포는 지난 7월 이호조 구청장의 취임식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참석 직원들도 긴장한 순간인데 갑자기 마이크가 끊어졌죠.‘아∼아’‘후∼후’ 당황한 문화공보과 직원들이 마이크와 마이크 줄을 이리저리 만졌으나 원인을 알 수가 없었죠. 그러다 5분후 저절로 마이크가 다시 연결됐습니다. 말이 5분이지 직원들에게는 5시간만큼 긴 시간이었겠죠. 제법 유명해진 왕십리 가요제를 열 때도 마이크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사전에 마이크를 시험하고 정비를 했는데 또 10분 동안 마이크가 ‘정전사태’를 맞았습니다. 망신살이 뻗친 셈입니다. 성동문화예술제 때 3분, 주민자치센터 발표회 때에도 3분…. 공포가 계속 됐습니다. 지금은 마이크를 사용해야 될 행사의 전날 밤에는 잠도 설친답니다. 고사라도 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을 지경입니다. 문화공보과 직원들이 ‘성동구 구민과 다른 직원 여러분께, 마이크가 꺼져 행사장에서 짜증이 났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고 하네요. 시청팀 ejung@seoul.co.kr
  • 흉터 제거 통증 최소화 ‘어펌 레이저’ 국내 첫선

    통증을 획기적으로 줄여 색소질환은 물론 주름 제거, 흉터까지 치료할 수 있는 최신형 레이저 투사 방식인 ‘어펌(Affirm)’이 국내에서 선을 보였다. 서울 강남 에스앤유(S&U)피부과 김방순 원장팀은 최근 이 병원을 찾은 25명의 주름 및 기미, 흉터 환자를 대상으로 ‘어펌레이저’를 시술한 결과 88%에 해당하는 22명에게서 기존 ‘프락셀레이저’ 치료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심한 통증이 크게 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치료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고, 치료 안정성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도 높았다고 의료팀은 설명했다. ‘어펌레이저’는 레이저를 이용해 피부의 상층부를 깎아낸 뒤 고르게 재생되도록 하는 치료 방식이다. 그동안 치료 과정에서 통증이 심하며, 시술 후 재생 기간이 길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어펌레이저’는 이같은 기존 레이저 치료의 문제를 개선, 피부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진피층 깊이 레이저를 조사, 광노화로 손상된 피부를 재생시키는 치료 방식이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입술·코 정상… 담배도 다시 피워”

    |파리 이종수특파원|“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믿을 수 없었고 공포에 떨었다.”(2005년 11월 수술 뒤 이자벨 디누아르의 부상 당시 회고)“수술 3일 뒤 외출을 했다. 현재 입을 열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입술과 코도 사용할 수 있다.”(2006년 2월. 디누아르 수술 3개월 뒤 기자회견)“디누아르는 이전처럼 담배도 피우고 음료수도 마시고 있다.”(수술 담당 의사 베르나르 드보셀 박사, 수술 1주년 앞두고) 지난해 세계 첫 부분 안면이식 수술을 받은 프랑스 이자벨 디누아르(38)가 27일로 수술 1주년을 맞았다. 수술 직후 윤리 문제와 면역체계·암 발생 가능성 부작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디누아르는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고 기증자에 대한 감사의 말과 수술 뒤 변화를 설명했다.“지속적인 약물투여와 안면 근육 연습을 해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그의 생활이 다시 베일에 가려진 채 9개월이 흘렀다. 수술 1년을 맞는 그의 상황은 어떨까? 당시 수술 담당 의사인 베르나르 드보셀 박사는 “디누아르는 현재 먹고 마시는데 문제가 없다.”면서 “일자리를 찾는 대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프랑스 북부 아미앵병원의 드보셀 박사는 “성형학상 환자 얼굴 형태에 이식이 잘 들어 맞았다.”며 “그가 이식 수술 환자라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드보셀 박사에 따르면 디누아르의 얼굴은 현재 수술 흉터가 조금 남아있고 피부 아래 층 봉합선 부근에 염증이 있다. 그러나 수술 흔적을 나타내는 선은 거의 사라졌고 화장을 하면 거의 가릴 수 있는 상태다. 또 부작용의 하나로 지적된 조직 거부 반응과 관련,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완벽히 제어됐다는 게 드보셀 박사의 설명이다. 피부의 온기와 촉감 등 안면 감각도 회복됐고, 왼쪽 뺨에 작은 수축 현상이 있지만 안면의 움직임이 복구된 것으로 관찰됐다.지난해 5월 약을 복용하고 자다가 애완견에게 얼굴 아래 부분을 물어 뜯긴 디누아르는 6개월을 기다린 끝에 뇌사자에게서 코와 턱, 입술을 기증받아 15시간의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디누아르가 안면 부분이식 수술에 신기원을 연 뒤 지난 3월 인도,4월 중국에서 각각 안면 부분 이식수술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드보셀 박사팀도 5차례 더 비슷한 수술을 할 예정이다. 얼굴 이식 수술이 대중화될지는 여전히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이식 후 5년 이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데다 평생 면역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특히 숨진 기증자의 살아 있는 얼굴을 보게 될 유족과 기증받은 환자의 심리적 고통은 연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피부는 인체 조직 중 가장 면역 거부반응이 강하다. 수술 실패율도 5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학계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영국 런던의 로열프리 병원의 외과의사 피터 버틀러 박사가 세계 최초로 안면 전체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한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드보셀 박사는 “눈꺼풀의 미세 근육과 혈관이 복잡한데 우리팀은 아직 이식 수술 뒤 눈꺼풀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모른다.”면서 전체 이식수술의 성공 여부에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vielee@seoul.co.kr
  • ‘끝없는 스트레스’ 탈모 원인과 치료

    ‘끝없는 스트레스’ 탈모 원인과 치료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쯤이면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시때때로 빠지는 머리카락은 가뜩이나 버거운 스트레스를 더하게 한다. 탈모, 정말 대책이 없는걸까. # 탈모란 빠지는 머리카락 개수가 50∼100개 정도면, 모발의 수명이나 성장주기로 볼 때 정상으로 본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면 병적인 탈모에 해당한다. 두피 상태나 두피질환, 호르몬 불균형, 내과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모발 주기에서 성장기 모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거나, 모낭은 살아있으나 모발이 없는 휴지기가 길어지는 것이 바로 병적인 탈모다. # 남성형 탈모 대머리를 말하며, 유전적 소인이 강하다. 원인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다. 탈모는 사춘기에서 20∼30대 사이에 시작한다. 앞머리에서 정수리로 이어지는 부위의 모발이 점차 가늘고 짧아지다가 나중에 앞머리 탈모된 부위와 정수리 탈모된 부위가 서로 만나 대머리가 된다. 탈모는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뿐 건강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스트레스다. 최근 한 대학병원 조사 결과 탈모로 고민하는 20∼60대 인구가 34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남성형 탈모의 원인 가장 큰 원인은 유전적 소인과 남성호르몬, 그리고 노화이다. 이밖에 혈액순환 장애,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및 지루성피부염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임상적으로는 두피에 남성호르몬이 작용해 발생하며, 여기에 유전적 소인과 노화가 작용한다. 따라서 유전적 소인이 강해도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없으면 대머리가 되지 않으며, 안드로겐이 많아도 유전적 소인이 없으면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 # 남성형 탈모의 증상과 진단 아침에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 수가 유독 많으면 탈모 가능성이 높다. 또 머리밑이 가려워지면서 지성 비듬이 많아지는 경우에도 탈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모발이 점차 가늘어지고 힘이 없거나 예전과 비교해서 이마가 넓어진 경우도 탈모에 해당된다. 자신의 머리카락 8∼10개 정도를 잡아 가볍게 당겼을 때 1∼2개 정도 빠지면 정상, 그 이상이면 탈모로 구분한다. # 여성 탈모 여성들은 산후 탈모가 가장 많다. 즉, 출산 후 일시적으로 휴지기 모발이 증가해 탈모로 이어지는데, 이 경우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회복되나, 스트레스나 영양부족 등으로 산후 탈모가 영구 탈모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도 탈모를 유발하는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을 갖고 있지만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훨씬 많아 남성들처럼 완전한 대머리는 되지 않는다. 대신 머리 주위에서 서서히 탈모가 진행되다가 나이가 들면 두피의 위 부분이 훤히 보이는 경과를 보인다. 탈모가 주는 스트레스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크다. 탈모 때문에 우울증과 강박,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런 반응은 스트레스를 낳아 탈모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밖에 원형탈모나 정신적 장애로 인해 자신의 모발을 습관적으로 뽑아내는 발모벽, 화상이나 감염 후 두피에 흉터가 생겨 모낭이 영구적으로 파괴되는 반흔성 탈모, 여성들이 고무줄로 머리를 너무 단단히 묶을 때 나타나는 견인성 탈모, 갑상선 기능 이상에 의한 내분비성 탈모 등도 남녀가 겪는 탈모에 해당한다. # 탈모 치료 비수술적인 치료방법으로는 프로페시아 복용, 호르몬제 국소 도포, 병변내 주사, 자외선치료, 두피 마사지 등이 있으며, 수술적인 방법으로는 인조모발 이식술과 자가모발이식술, 조직 확장법, 두피 피판술 및 축소술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자가모발 이식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CTG’라는 장비를 이용해 탈모 진행을 억제하고, 탈모의 초기 증상인 머리카락의 가늘어짐을 개선하기도 한다. 임상 결과 36주 이상 치료한 환자의 66.1%에서 모발이 재생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자가모발 이식술은 자신의 후두부 모발을 이용해 탈모된 부위에 재배치하는 방법으로, 부작용이 없고 생착률이 매우 높다. 한번에 많은 양의 이식이 가능한 ‘메가세션(megasession)’이 최근에 도입됐지만 이 방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환자의 탈모상태와 헤어라인을 고려해 적적한 양을 이식하는 것이 좋다. 또 탈모가 계속 진행되는 경우라면 앞으로 진행될 탈모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식된 자가모발의 생존율은 보통 80∼90% 정도. 이식된 모발은 한 차례 빠졌다가 3개월 후쯤 다시 나기 시작해 9개월 후쯤 완성된다. 따라서 수술후 최소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모발의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 ■ 도움말:홍남수 듀오피부과 원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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