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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광고] 국민여동생 문근영 “더위싹~“

    KTF가 ‘Have a good time!’의 여름 캠페인으로 “여름 시간 내내 좋은 시간 되세요.”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무더운 여름 퇴치법을 주제로 문근영을 내세웠다.귀신을 흉내낸 뒤 “좋은 시간 되세요.”라 외치기도 하고 냉장고에서 얼린 녹차 티백을 꺼내 얼굴에 붙이기도 한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생활로봇’ 왕국 꿈꾸는 日 오사카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생활로봇’ 왕국 꿈꾸는 日 오사카

    “500년 제조업 벤처의 전통을 살려 오사카를 로봇산업의 메카로 만들자.”. 오사카의 중소기업과 대학, 시 당국은 물론 시민들이 로봇산업 부흥을 통한 ‘모노쓰쿠리(제조업) 오사카’ 부활의 꿈을 키우고 있다.2만여개 중소기업들이 선두에 서고,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오사카시·부 정부는 예산을 지원한다.260여만 시민들은 시제품 실험에 적극 응해주는 등 산·학·관·민 일체다. |오사카 이춘규특파원|오사카의 제조업은 16세기 말 오사카성을 축성할 때부터 본격화된다. 총기 제조가 주류였다. 19세기 말 방적업이 활발, 동양의 맨체스터로 불렸고 이후 기계, 부품, 소재산업과 전후에는 철강, 조선, 화학 등을 거쳐 태양전지, 액정패널 같은 각각의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과 상품에 끊임없이 도전, 발전해 왔다. ●‘로봇산업=오사카시대’ 열겠다 도전의 도시 오사카시, 나아가 인구 1700만명의 오사카 생활권이 최근 수년간 “로봇산업 하면 오사카”를 세계인이 떠올릴 수 있도록 로봇산업 진흥에 도전하고 있다. 마사키 히로시 오사카부 홍보실장은 “로봇은 물론 바이오, 나노 등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에 도전하겠다.”면서 오사카인들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다카노 슈이치 오사카시 로봇산업담당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사카는 마쓰시타전기산업, 샤프, 산요전기, 미즈노 등 세계적인 제조업의 전통이 있는 고장”이라며 “이처럼 실생활과 관련된 벤처에서 출발한 기업들의 모태인 오사카가 10년 뒤에는 ‘로봇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사카시 주택가에 산재한 2만여개의 중소기업 중 로봇과 관련된 150여개 기업이 현재 로보(RooBo)라는 중소기업네트워크에 가입해있다.7개 안팎씩의 기업·대학연구소 등과 20여개 컨소시엄을 형성, 생활로봇을 만드는 데 도전중이다. 오사카시는 연간 2억 5000만엔을 지원한다. ●도전하는 중소기업이 앞장선다 중소기업중 로봇 연구 및 생산에만 전념하는 기업은 아직 없다. 내년에 로봇전업기업의 출범을 꿈꾼다. 현재는 기업들이 핵심 부품기술을 갖고 개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로봇제품을 개발, 대기업이 실용화하거나 직접 대량생산하는 것도 목표로 한다. ㈜에잇테크 기무라 토시오 사장, 후쿠치금속㈜ 후쿠치 마모루 사장 등은 현재 산학 연계 컨소시엄을 결성, 대형 수족관 내부를 청소할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누전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력을 이용한 로봇이다. 비행기 모형이나 특수스탠드, 금형 등 수많은 제품을 소량 생산하고 있는 에잇테크의 기무라 사장은 “세계에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술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소방로봇도 개발하고 싶다는 의욕을 비쳤다. ●교수, 연구원, 학생, 시민도 참여 오사카시의 산·학·관·민 합동 로봇산업 진흥에는 오사카대학 대학원의 아사다 미노루 교수 등이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시와 오사카부 당국은 자금과 연구공간을 지원한다. 오사카 시내 대학생들은 인턴사원으로 중소기업 현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자원봉사도 한다. 시민들도 기업들이 행하는 제품 실험에 적극 협조한다. 지역특성이다.“오사카사람들은 남을 돕길 좋아한다. 로봇팬들도 많다. 그게 중소기업에는 힘이 된다.”(간사이국제홍보센터 아리야마 히토시 심의역) 오사카 로봇산업의 연구지향점은 인간의 삶의 질 개선. 각종 로봇관련 대회나 이벤트를 만들어 기술력 향상도 꾀한다. 그러면서 병간호나 말동무, 청소 등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아사다 교수는 설명한다. 아사다 교수는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간성을 상실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인간이 싫거나 힘든 것을 로봇이 대체하면 된다.”고 로봇만의 역할을 강조했다. ●오사카의 꿈 2009년 시작 지난해 11월 로봇전문가인 이시구로 슈가 중심이 돼 오사카역 근처 역전 제3빌딩 16층에 로봇연구실험실을 열었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 오사카 경제인들이 힘을 모았다. 차세대 로봇산업 진흥과 개발, 지원의 총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로봇연구실험실은 중소기업 로봇산업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연구자·기술자와 산업계의 교류를 촉진한다. 시장에서 제품실험프로젝트도 실시한다. 로봇산업 활성화 이벤트도 자주 마련한다. 특히 2011년까지는 오사카역 북쪽의 드넓은 화물열차기지에 로봇산업기업, 도시형주택, 호텔, 연구·개발전시관, 상업지구, 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는 ‘지식자본’기지를 완성, 로봇산업의 총본산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꿈의 로봇산업비즈니스거점은 2009년 우선 완공된다. 오사카시는 지식자본기지 가시화를 위해 지난 15일 북미지역투자유치단 등을 상대로 설명회를 통해 “첨단기술과 인간의 피드백이 잘되고, 서비스와 거주지가 제공되며 노하우가 축적돼 사업 성공률이 높은 오사카에 투자하라.”고 호소했다. 다카하시 토루 오사카시 도시재생기획담당과장은 “마쓰시타, 샤프, 산요 등은 오사카에서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크게 성공했다.”면서 ‘로봇은 왜 오사카인가.’를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2025년 차세대 로봇산업시장은 7조 2000억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오사카시와 연구자, 중소기업인들은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오사카시 남항지역에서 로보컵2005세계대회를 개최했다. 로보컵은 일본 연구자들이 제창,1997년 시작돼 올해로 9회를 맞았다. 올해는 한국·미국·일본 등 31개국 330여개 팀에서 2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taein@seoul.co.kr ■ 아카자와 요헤이 (주)시스테크 사장|오사카 이춘규특파원|항공·우주산업 부품 등을 생산하는 ㈜시스테크 아카자와의 아카자와 요헤이 사장은 “자원이 없는 일본은 제조업을 해야 하는데 비행기, 로켓, 반도체, 디지털제품 등의 부품은 최근 1년반 사이에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등 경쟁이 심해 로봇산업에 도전하게 됐다.”는 전형적인 오카사 중소기업인이다. 아버지 때부터 일궈온 그의 회사는 65년 역사를 자랑한다. 주택가에 위치한 회사에서는 지금도 항공기나 로켓 부품 등을 만들고 있으며 로봇은 전체 매출에서 10%를 차지한다. 시스테크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1950년대에 화물열차 부품을 만들었다. 이후 중공업시대가 열리면서 선박 부품을 만들었고,70년대 이후 원자력발전소 터빈, 모터, 발전기 등의 부품을 제작했다. 신칸센과 전차 부품, 항공기와 로켓, 반도체관련 부품까지 만든다. 15일 오사카시내 공장에서 만난 아카자와 사장은 91년 일본경제의 거품 붕괴는 시련이었다고 말했다. 새롭게 도전할 사업을 물색하다 2003년 로봇산업에 뛰어들었다. 전업은 아니고 ‘7명의 로봇산업 사무라이’가 지혜를 모은, 네트워크 형식이다.2003년 300만엔이던 로봇관련 매출은 지난해 2900만엔으로 급증했고, 올해 6000만엔을 예상하고 있다. 그는 오사카의 부활은 로봇산업의 성공여부에 달렸다고 강조한다.2만개의 중소기업 중 800개사가 로봇관련 잠재기술을 갖고 있고, 그 중 150여개사가 로봇산업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오사카 차세대 로봇산업의 기수라는 것이다. 아카자와 사장은 “오사카대 아사다 미노루 교수 등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로봇을 연구시켜 기업들에 연구성과를 제공하는 등 오사카는 로봇산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로봇사업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다. 아울러 90년대 중반 도산위기를 경험한 뒤 대기업 하청만이 아닌 스스로의 사업으로 활로를 찾아야 미래가 있다고 판단, 오사카시 비즈니스인큐베이터에 가입해 그 곳에서 교수·연구원 등의 지원을 받으며 희망을 일궜다. 그의 꿈은 원대하다. 한국기업과 실용로봇 수출관련 상담을 진행중이다.17일 끝난 로보컵2005대회 인간형로봇부문 축구대회에서는 그의 회사가 포함돼 있는 네트워크가 2연패했다.2연패후 지명도가 높아져 지난해 우승한 로봇 ‘비전’을 대학과 다른 중소기업들이 연구용으로 250대나 사갔다. 가격을 현실화시키자 공립중학교들로부터 교재용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다양한 로봇도 개발중이다. 손님을 안내하는 펭귄로봇에 대한 주문을 받고, 제작을 서두르고 있다. 피아노에 광택을 내는 로봇도 생산 가능성을 타진받고 신이 나 있다. 로봇사업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로봇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는 그는 ‘세계인들에게 로봇하면 오사카’라고 알리고 싶단다. 현재는 로봇의 매출에서 연구비를 빼면 마이너스이지만 2년뒤에는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다른 부품사업들도 포함하면 회사는 수년째 흑자경영이다. tae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 개그계 대부 김웅래 인덕대 교수

    ‘그분의 시대’가 왔다. 만병(萬病)을 통치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묘약, 웃음이다. 고종 황제 때였다. 유성기(留聲機)가 황실에 처음 나타났다. 이를 본 고종 황제는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시험해보려고 소리꾼 박춘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르는 박춘재는 황제의 거듭된 독촉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기계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부른다.‘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에∼’ 이어 고종은 유성기 기술자를 불러 기계 작동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계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타난다. 박춘재의 목소리가 그대로 재현된 것.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한 물체를 통해 흘러나오자 박춘재는 깜짝 놀라 거의 까무러쳤다. 이를 본 고종 황제가 “수명이 십년은 줄었겠구나. 자네의 정기를 기계에 빼앗겼으니.”라고 했다. 이때부터 ‘십년감수’란 말이 생겨났다. 박춘재는 당시 소문난 소리꾼이기도 했지만 임금의 심사(心思)를 즐겁게 해주는 공인된 재담가였다. 팔도의 온갖 장사꾼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도 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가무별감(歌舞別監)의 직책까지 얻었다. 이런 까닭에 학계에서는 박춘재를 현대 코미디언의 효시로 해석한다. 구한말의 박춘재 재담에서 오늘날의 만담가-코미디언-개그맨 등으로 변천돼 왔다는 것이다. 김웅래(60)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우리나라 개그계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한국 코미디 역사를 한달음에 관통할 만큼 많은 연구와 발품을 통해 내로라하는 이 시대의 ‘웃음스타’들을 배출했다. 임성훈 최미나 고영수 정광태 곽규호 김학래 임하룡 심형래 전유성 김형곤 김미화 김한국 이봉원 김국진 이창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금도 김 교수를 ‘형님’ ‘스승’ 으로 깍듯이 모신다. 김 교수를 더욱 주목케 하는 것은 그가 최근 국내 처음으로 ‘웃음문화학회’를 만든 일. 웃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진지한 연구를 통해 더욱 많은 웃음을 창출해보자는 취지로 학회 창립을 선언했다. 학자와 개그맨들이 함께 뭉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회장은 서대석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맡았고, 김 교수는 수석 부회장. 전유성 김성녀씨가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오는 27일 첫 임원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과 향후 계획을 논의한다. 이뿐만 아니다. 김 교수는 강원도 평창에 200여평 규모의 ‘코미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쯤되면 김 교수의 ‘웃음 열정’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33년동안 방송에서 개그프로 연출만 전문적으로 맡아오다 지난해 3월 정년 퇴임한 뒤 인덕대를 비롯, 몇몇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방학이었지만 방송국을 오가며 개그맨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으랴, 대학로 모 극장에서 개그맨 조련을 하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KBS개그프로인 ‘개그콘서트’와 ‘폭소클럽’에 최근 두 팀씩을 투입해 웃음작전을 지휘 중이다. 먼저 국내 코미디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춘재에 이어 ‘신불출’을 거론했다. 구한말의 박춘재를 거친 재담은 일제시대의 신불출을 만나 ‘만담’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신불출은 월북한 문예인 중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유일무이하게 별도의 연구소가 생길 만큼 북한 내에서도 최고의 만담가로 명성을 날렸다. 자료에 따르면 신불출은 월북 후 1957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1961년 국립만담연구소 소장,66년 중앙방송위원회 만담가로 활동했다. 서울의 전력난을 풍자한 ‘서울의 전기세’, 미국을 비난한 ‘승냥이’ 만담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남한에서는 장소팔 고춘자 부부, 김영운씨 부부, 김뻑국씨 등으로 대표되는 만담이 TV가 생기면서 코미디를 이어주는 웃음사(史)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웃음문화학회 출범과 관련,“현장에 있는 연기자들과 여러 학자, 교수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생겨난다.”고 했다.“PD 활동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가 ‘코미디가 저질이다.’ ‘소재가 한정돼 있다.’라는 말이었다.”면서 “앞으로 웃음 연구를 통해 이 두가지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방송프로 ‘웃찾사’ ‘웃으면 복이 와요’ ‘개그콘서트’ 등도 사랑받아야 하지만, 잊혀져 가는 만담을 되살려야 한다.”면서 “조선시대의 ‘앙천대소’ ‘소천소지’ 등 과거의 유머를 알리고 미래의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 격월간지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기자와 학자들이 상호협력할 경우 극대화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웃음도 패션이듯, 복고풍도 있고 시대에 맞는 웃음도 있게 마련이 아니냐는 반문도 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코미디는 쇠퇴하고 대신 개그가 살아났다는 그는 웃음 발전을 위해 매년 ‘올해의 웃음대상’을 제정하겠단다. 올 연말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웃긴 사람을 선정,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것. 국내 처음 개관될 코미디 박물관에는 대한민국 웃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단다. 고 서영춘씨의 유물도 처음 공개하며, 고구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PD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각종 자료 100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왕년의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개그맨 전유성 심형래 등이 박물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진행방법과 포크댄스도 배웠지요. 학교 시험이 있던 전날에도 이기동 서영춘씨가 등장하는 ‘웃으면 복이와요’ 프로그램을 꼭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학교 수업 빼먹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 극장의 연극관람도 자주 했지요.” 김 교수는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6·25전쟁으로 서울로 피신해 수색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대성동이 낳은 인물이 아니냐고 하자 웃을 뿐이다. 이곳엔 아직도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유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73년 동양TV에 입사했다. 면접 때 코미디프로를 맡고 싶다고 해 ‘코미디전망대’의 고 김경태 PD와 사수-조수로 만났다. 이어 양훈-양석천 콤비 프로그램인 ‘좋았군 좋았어’를 처음으로 맡았다.75년에는 ‘살짜기 웃어예’라는 최초의 개그프로를 연출했다. 외국잡지를 들여다보고 대학 축제 현장을 다니며 꾸준히 개그 아이디어를 모았다. 대학 다닐 때 다 외우다시피했던 ‘세계 해학전집’(정음사刊) 등의 자료도 많은 참고가 됐다. 밤이면 서울 무교동 일대를 뒤지며 DJ쇼에 출연했던 임하룡 김학래 주병진 등을 만나 방송에 출연시키는 등 웃음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동서고금 어디를 가나 웃음처럼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웃음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내친김에 서울 대학로에 개그 전용극장을 짓고 있다.160석 규모로 이달 말 간판을 내걸 예정이다. 그동안 거쳐간 수백명의 후배와 제자, 여러 개그맨들이 드나들 것으로 보여 ‘웃음의 메카’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경기 파주 대성리 출생 ▲66년 배재고 졸업 ▲73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73년 동양방송PD ▲80년 한국방송공사PD ▲93년 중앙대 신문방송학 석사 ▲94년 제34회 골든로즈상 심사위원(이후 4회) ▲98∼2000년 한국방송공사 코미디프로그램 담당 전문프로듀서 ▲2002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현재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 ■ 주요 작품 최초 개그프로 ‘살짜기 웃어예’ 연출(75년),‘유머1번지’연출(82∼92년), 시트콤 ‘아무도 못말려’ 연출(97년)시카고 코미디페스티벌 참가(2000년) ■ 주요 저서 유머개그야사(91년), 입술터진 하마도 노래방 가냐(92년), 웃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93년), 훔쳐보는 공포(94년), 김웅래PD폭소카세트북(96년), 한국을 웃긴 250가지 이야기(96년), 잡담으로 성공하기(98년) km@seoul.co.kr
  • 원숭이와 초밥요리사 /박성규 옮김

    침팬지는 흔히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는 이유로 코미디에 자주 등장한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웹사이트에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바보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을 침팬지와 나란히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웃음의 근저엔, 침팬지가 아무리 인간과 비슷해 보여도, 인간과의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가르치기와 배우기, 언어, 예술, 요리 등의 문화 그자체는 침팬지가 뛰어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인간중심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뛰어넘으려는 학자가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리빙 링크스 센터의 소장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이 그 주인공. 그의 책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박성규 옮김, 수희재 펴냄)는 ‘타자로부터 배우는 행위인 문화가 인간의 유일무이함을 나타내는 징표’라는 가설이 얼마나 낡았는지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침팬지는 새끼들에게 고구마를 바닷물로 씻어먹는 방법, 돌로 견과를 쪼개는 방법을 보여준다. 풀로 자기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유인원도 있다. 저자는 이같은 배움이 문화적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초밥요리사의 수습생이 일을 배우는 방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수습생은 초밥을 직접 쥐게 되는 날까지 수년간 말없이 장인의 어깨 너머로 관찰한 뒤 스스로 배운다. 저자는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도움반응’도 그 동물의 긴밀한 관계성에 의거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세련된 어떤 것, 즉 진짜 비이기적인 행동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을 끄집어낸다. 만일 그가 옳다면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 행동 연구는 인간의 도덕규범의 윤곽을 그리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 될 것 같다.1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미리 본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는 배우 이영애의 ‘허기’를 완벽하게 달래준 스릴러극이 됐다. 순백의 정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영애에게 숨구멍을 터준 영화는, 배우 자신에게나 관객에게나 전복의 묘미를 안겨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봄날은 간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이영애의 영화’로 괄호치고 출발한 스릴러에서 그녀는 13년 반을 복역하고 갓 출소한 유괴살인범 이금자 역이다. 복역 이후 주인공의 동선을 쫓는 한편으로 카메라는 그녀의 복역생활을 복기하느라 여념없다. 그녀가 교도소에서 ‘친절한 금자씨’란 별명으로 통하기까지 동료죄수들을 얼마나 희생적으로 보살폈는지를 돌이키는 데 공을 들이며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을 금자씨 편으로 포섭한다. 스릴러물임에도 관객에게 비밀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히려 독특한 감상을 던지는 영화다. 스무살에 살인용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된 주인공이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한겹두겹 노출시키는 대담한 능청에 “역시, 박찬욱”이란 탄성이 터져나온다. 교도소에 갇힌 13년을 오로지 출감 뒤의 한판 복수극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았던 이중인격의 캐릭터를 이영애가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종 신선한 화학반응을 자아내는 감상포인트. 그녀가 태연자약하게 수위높은 대사를 날리는 대목들에선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손잡고 코믹스릴러의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쓰리, 몬스터’ 등 극도의 긴장으로 일관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감독은 최대한 어깨 힘을 빼보려 노력한 듯싶다. 감독의 실험적 시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절제된 대사로 시각을 집중공략하는 한편으로 금자의 심리와 주변상황을 친절히(?) 해설해 주는 성우의 내레이션, 이따금씩 끼어들어 복수극에 야릇한 팬터지를 입히는 만화적 화면 등은 낯설 만큼 새롭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에서 여러 실험을 즐기던 영화는 그러나 결국 ‘박찬욱표’로 되돌아온다. 자신의 핏덩이 아이를 볼모로 살인누명을 씌웠던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을 포박한 금자가, 백 선생에게서 아이를 잃었던 부모들로 하여금 손수 그를 응징케 만드는 결말 시퀀스는 ‘날생’의 하드보일드 살인극 자체다. ‘박찬욱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임에는 여러모로 틀림없다. 그러나 예민한 관객이라면 ‘불친절한 박 감독’을 발견할 여지 또한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감독이 관객보다 배우를 훨씬 많이 배려했다는 인상을 남기는 몇몇 대목들이 무엇보다 개운찮다. 예컨대 금자가 자신을 연모하는 20세(13년전 금자가 살인누명을 썼던 나이) 빵집 청년에게 잠자리를 허락하는 장면. 죄를 뒤집어쓴 금자가 감방에서 썩은 세월의 무게를 역설하는 비감한 장면일 수 있건만, 섹스신 흉내조차 내지 않고 카메라는 황망히 다음 장면으로 건너뛴다. 극의 핵심에 손상을 주진 않더라도 ‘금자의 일인극’이나 다름없는 영화의 질감을 일궈내는 데는 결정적 흠집으로 꼬집힐 만하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타이」라곤 생후 두 번 맨 명함없는 햇병아리

    「타이」라곤 생후 두 번 맨 명함없는 햇병아리

    제1회 한국문화대상 연예부문 대상을 탄 조영남(趙英男)씨 별명이「타잔」. 납작한 얼굴에 납작한 코, 짤막한 키에 멋대로 자란 더벅머리,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 해도 결코 미남은 아니다. 서울신문사 제정 제1회 한국문화대상의 연예부문 대상 수상자 조영남.「데뷔」1년 6개월이 채 못 되는 그가 권위를 다짐하는, 그리고 부상 45만원의 푸짐한 상금이 달린 대상을 차지하기까지는? 별명「타잔」, 더벅머리 총각 - 본격적 활동은 겨우 여섯 달 「데뷔」한지 1년 반이라고는 하지만 조영남이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한 것은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작년 4월 모 방송국의「오늘도 명랑하게」라는 아침「프로」에서 어느 외국가수의「컨트리·송」을 흉내낸 게 최초의 방송무대이고 그로부터 1년 가까이는 8군 무대가 주무대였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대 음대 3년에 재학중인 성악도(聲樂徒). 독집을 십여개씩 가지고 있고「레코드」사, 방송국,「쇼」무대를「서커스」처럼 뛰어다니고 가요상이라면 단골로 차지하는 관록파 가수들에 비하면 조영남은 아직 햇병아리이다.「레코드」가 가수의 명함이라면 조영남은 아직 명함도 없다(현재 그의「레코드」는 3개가 거의 동시에 출반단계에 있지만). 시상식 무대 위에서의 그는 남달리 상기돼 있었다. 7명의 심사위원이 대상후보자 선출을 위해 이례적으로 무대 위에서 투표용지를 함 속에 집어넣을 때까지, 그는 그가 차지한「남자가수상」이란 영예만으로도 충분히 흥분상태였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6대 1이라는 압도적인 수로 그의 이름이 호명됐다. 심사위원회는 당초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안나올 경우 2차 투표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그럴 필요도 없이 부상 45만원의 큼직한 상금이 달린 최고의 영예인 대상이 그의 손에 굴러들어간 것이다.「인기보다는 재능을, 관록보다는 장래성」을 주장한 심사위원들이 그에게「몰표」를 던져준 셈이다. 「극장엔 낮잠자러 간다」, 맥주 30병 마신 끝에 이틀 앓아 『처음으로 가수가 됐다는 기분입니다』 시상식 뒤 조영남은 생후 두 번째 매어봤다는「보·타이」를 어루만지며 히죽 웃었다.「넥타이」를 처음 매어본 것이 지난 9월「드라마·센터」에서「조영남 리사이틀」을 가졌을 때.「안매는 게 아니라 못맨다」고 주장한다.『신사복은「리사이틀」때 이모가 사준 검정색 한 벌 뿐이고 목욕은 잘해야 1년에 몇 번, 이발소와는 담을 쌓을 정도이고 영화관엔 낮잠자러 간다』약간 엉뚱한 얘기다. 사실상 그의 차림새나 얘기에서「히피」적인 체취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술은 즐기지 않으나 마신다면 소주를 맥주「컵」으로 마시고 때론 술로 밤샘을 한단다. 『새벽 3시까지 한 30병 마시고 나서 이틀을 앓아 누웠습니다.「컨디션」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도 그는「무대화장」이란 걸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려는 듯(?) 그「퍼니·페이스」를 마음껏 찌푸린다. 노래는『애써 배우는게 아니고 저절로 배우게 된다』집에는 TV, 전축은 물론 가수의 필수품격인 녹음기,「라디오」하나 없단다. 다방이든 극장이든 흘러 들어오는 노래가 곧 교과서이고『한번 들으면 대개는 외게 된다』는 것. 따라서 다른 가수들처럼「레슨」이니 연습이니 하는 과정을 밟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연애사건」으로 H대 중퇴, 지금은 서울음대 3년 재학중 조영남의 이 천재적(?) 재능은 이미 고2(강문고)때부터 실증됐다. 한양대 주최 전국 고교「콩쿠르」에서 수석을 차지한 그는 장학금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해외유학」까지 보장되는 조건의 장학생으로 한양대 음대에 들어갔다. 2학년에서 중퇴한 그는 다음해에 현재의 서울음대에 다시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한양대를 퇴학한 이유는「연애사건」때문이란 것.『퍽 심각한 연애였다』면서 상대방 여학생이 자퇴하자 자신도『더 다닐 마음이 안생겨 중퇴해 버렸다』는 얘기다. 당시 19세였던 그가 어느 정도의「심각한 연애사건」을 벌였는지에 관해서는 애써 입을 다문다. 또 한 곳 그에게 장학금을 대준 곳은 그가 고등학생 때 성가대로 있던 D교회. 한 달에 2천원씩 학비보조를 해줬는데…. 『너무 조건을 내세우고 치사하게 굴어서』1년 만에 교회를 뛰어나왔다. 협조를 이유로 자유를 구속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란 주장. 그의「비틀즈」에 대한 견해는『자유분방해서 좋고』「히피」쪽에 대한 견해는『개성이 있고 사회에 생명감을 넣어주는 것 같아서』할 수 있으면 자신도『「히피」적인 생활을 해보고 싶다』한다. 홀어머니 김씨(54) 슬하 7남매의 넷째, 가정형편은 퍽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게 산다. 8군 무대에 선 것은 대학 2학년 때, 장학금을 차버린 뒤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승한 재능이 이때부터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세미·클래식」에서부터「컨트리·웨스턴」「포크·송」「칸소네」유행「팝·송」등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가창과 특이한 무대「매너」는 날과 함께 그의 주가를 높였고 파격적인「개런티」상승이 뒤따랐다. 이런 현상은 그의 TV무대 진출에서도 곧 재현되었다. 그가 부른『딜라일러』는 지금 선풍처럼 가요계를 휩쓸고 TV극『목격자』의 주제가『이 생명 다하여』정훈희(鄭薰姬)의 「히트·송」인『안개』도「스타일」이 바뀐 채 못지않게「히트」하고 있다.『딜라일러』는 영국가수「톰·존스」가 금년 초에 불러 英·美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가수로 군림케 된「컨트리·뮤직」이다. 조영남의 등장은 바로 이「딜라일러」의 한국상륙과 때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 있다. 그를 둘러싼 작곡가,「레코드」사들이 거의 동시에 세 곳에서 나타나 취입쟁탈전을 벌였고 조군은 번역곡을 3개의「디스크」에 취입, 곧 출반될 단계이다. 음대에서 기초교육을 착실히 쌓은 그가 몇 개의 대중가요에서 가능성을 보이자 가요계의 기대는 거의 절대성을 띠고 있다. 이봉조(李鳳祚), 홍현걸(洪鉉杰), 손석우(孫夕友), 서영은(徐永恩) 등 많은 작곡가들이 저마다 자작곡의 취입을 위해 집중공격을 펴고 있고 몇 개의「레코드」사들이 그를 끌어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에게 한국문화대상의 연예대상을 주는데 서슴지 않은 심사위원들은『종래 가수들의 창법에서 완전히 탈피한 가수』『풍부한 기초실력, 풍부한 성량, 놀라운 소화력』을 내세우며 극찬을 펴고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1 제1권 제11호 ]
  • [이현세의 만화경] 운이 좋으면…

    [이현세의 만화경] 운이 좋으면…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스승을 만난다. 그 스승은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선배일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아버지나 어머니일 수도 있다. 혹은 아이일 수도 있고 먼 대양을 춤추는 고래나 가을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의 비상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시간과 상황과 인연인 것이다. 만화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평생 남의 스타일을 흉내만 내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만화를 잘 그리고 재미있게 쓴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만화에는 자기만의 주인공과 그림체가 있어야 하고 금방 종이에서 뛰쳐나와 펄펄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 만화의 표현법이다. 예를 들자면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던 작가가 있었다고 하자. 그러던 작가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아기가 커나가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육아일기를 쓰게 되었다. 하루하루 아기의 커가는 모습을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만화가답게 삽화도 곁들였다. 육아일기를 본 부인은 책으로 발표하기를 권했고 이 육아일기가 히트를 쳐서 돈방석에 앉았다면 이 작가에게는 자신이 낳은 아기가 스승인 셈이다. 누구는 오징어잡이 배가 스승이 되고, 누구는 탄광촌이 스승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혼의 아픈 상황이 스승이 되기도 하고 여성편력이나 매춘경험이 스승이 되기도 한다. 또 누구에게는 독이 되는 사람이 자기에게는 스승이 되기도 하니 이처럼 스승은 상대적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에게 스승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때 자기와 조우하게 될지 알 수는 없다. 습작시절 누구나처럼 내게도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주인공이 필요했다. 이제까지는 다른 작가의 스타일로 만화의 테크닉을 쌓아왔지만 이제는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발버둥치는 기존 작가들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을 원했지만 내가 그리는 그림은 너무나 눈에 익은 아류에 지나지 않았다. 내 무능에 지쳐서 할 일 없고 한강변을 찾았고 그때마다 차라리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의욕이 없어지고 지친 풋내기 작가에겐 술이 친구다. 한잔 술에 취해서 세상을 싸잡아 욕을 하며 자신의 무능을 위로하는 것이 또한 풋내기 작가의 속성이다. 어느 날 공공변소에서 술에 취해 비틀대는 내게 평소 말이 없는 친구 하나가 “왜 우리는 실제로는 오줌을 갈기면서도 이런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데, 글을 쓸 때면 진지한 얘기는 다방이나 술집에서 꼭 분위기 잡고 해야 되는 거냐?”라고 비웃듯이 얘기했다. 그 순간 나는 벼락을 맞았다. 여태껏 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다 화장실도 가지 않는 꽃미녀와 꽃미남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사람이 사는, 냄새 나는 세상을 그리기 위해 틈만 나면 술 한잔 마시지 않는 이 친구와 담소하는 것을 즐겼으니, 까치와 엄지가 탄생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 친구 이름이 이희재이고 내 만화인생에 최고의 스승이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인생의 스승을 만날 기회가 오고 누구에게나 한번은 인생을 역전할 순간이 온다. 문제는 그 순간 스승을 알아봐야 하고, 알아 본 순간 진실로 가슴을 열고 그 스승을 받아들이는 자세인 것이다. 당신이 가슴을 열면 스승은 지혜와 깨달음을 준다. <만화가>
  • “이병철은 용병형… 정주영은 불도저형”

    “미국에는 미국식 경영이 있다면 한국에는 한국식 경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선진국을 흉내내 왔고 뇌물, 청탁 등 기업 스캔들로 얼룩져 왔지만 이제는 훌륭한 최고경영자(CEO)들을 통해 우리의 유교적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국CEO 연구포럼 연구위원장이자 저명한 CEO 칼럼니스트인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의 지적이다.그는 국내 CEO들에 대한 비판과 칭찬을 통해 이 시대 CEO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담은 ‘대한민국 CEO 10계명’이라는 저서를 최근 출간했다. 10계명으로는 ‘인재(人才)를 품는 인재(人材)가 되라, 품질을 경영하라, 가격을 경영하라, 일자리를 만들어라, 투명성을 우선하라,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라, 농부를 본(本)삼아라, 욘사마를 벤치마킹하라, 마부가 되라, 날쌘 경영을 하라’등 모두 경영 화두들이다. 책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를 비롯, 기라성 같은 CEO들의 스타일을 분석해 냈다.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을 용병형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불도저형, 반면교사형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는 공익형으로 분류해 놨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儒林(38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0)

    儒林(38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0)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0)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깨닫고 비로소 안심하고 기뻐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교육에는 무엇보다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유할 때는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하다.’라는 뜻의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성어를 인용하는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도 쓰여지는 이 고사는 맹자의 어머니 급씨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이었던가를 말해주는 가장 유명한 일화이다. 일찍이 사마천은 ‘공자세가’에서 ‘공자는 어렸을 때부터 놀 때에도 항상 예기를 진열하고 놀아 그 예절바른 태도는 선천적인 듯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맹자가 세 번 이사 끝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제구를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예를 흉내 내며 놀았다’는 기록은 맹자가 어렸을 때부터 공자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이며 이를 통해 맹자는 태생적으로 공자의 수법(授法)제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야합하여 사생아를 낳아 이를 꺼려 아버지의 묘소조차 가르쳐 주지 않은 철부지 공자의 어머니와는 달리 명문가의 후손이었던 맹자의 어머니는 집안 생계와 자식의 교육이라는 이중의 고난 속에서도 아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고 오직 교육만이 맹자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꿰뚫어 보았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성인, 공자가 왠지 나서기를 꺼려하고 대인관계에 있어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는 기다리고 참고 물러서는 행동을 보인 것과는 달리 장강대화와 같은 언변으로 제후들을 질타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보인 당당한 투장 맹자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보인 자식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의 소산일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정반대적 성격은 모두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인 교육열에서 비롯된 것이니 ‘세살 이전에 아이의 인격이 모두 형성된다.’는 현대유아교육의 중요성은 그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웅변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어머니에 의해서 높은 관심을 받아 자신감 넘치는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이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예가 ‘열녀전’에 전하고 있다. 맹자의 나이가 교육에 전념해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당시로서는 체계적인 교육방법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처음에 맹자는 별로 노력하지 않았던 듯 보인다. 어느 날 집을 떠나 공부하던 맹자가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집이 그립고 공부가 지겹기도 해서였을 것이다. 그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아 주기는커녕 베틀에 앉은 채로 맹자에게 엄하게 물었다. “공부는 다했느냐.”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갑자기 돌아왔느냐.” 이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제 물건이 하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찾고자 하여서 돌아왔습니다.”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잠자코 곁에 있는 칼을 들어 짜고 있던 베를 단숨에 잘라버렸다.
  • 儒林(38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9)

    儒林(38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9)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9) 그러나 맹자가 공자의 사상적 계승자가 된 것은 이처럼 공자의 손자였던 자사의 문하에 들어가 유가문파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자의 계승자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 때문이라는 게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공자와 맹자는 출생에서부터 흡사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물론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부잣집의 예를 돌봐주는 것으로 먹고 사는 미천한 사(士)의 신분이었던 공자와는 달리 맹자는 귀족출신이었다. 노나라의 권력이 대대로 환공의 서자였던 중손(仲孫)씨, 숙손(叔孫)씨, 계손(季孫)씨 등 ‘삼환(三桓)’씨에게 집중되어 공자는 항상 이들 권신과 충돌하고 싸우고 있었다. 공자가 55세 때의 나이에 대사구(大司寇)라는 벼슬을 하루아침에 내던지고 13년 동안의 주유열국에 나선 것도 공자의 정치가 노나라의 권신들이었던 삼환씨들과 마찰이 있어 더 이상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 달리 중손씨의 후손이었다. 중손씨는 맹손(孟孫)씨라고도 불렸는데, 맹자는 바로 이 귀족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나라에서 군림하였던 삼환의 지위도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전만 못하게 되었으며, 이 무렵 맹자의 아버지는 노나라에서 추나라로 옮겨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머니 급(伋)씨와 가난하게 살았다는 점에서 공자와 동병상련의 소년시절을 보낸다. 공자는 60세의 숙량흘(叔梁紇)과 안징재(顔徵在)라는 젊은 여인과의 야합(野合)에서 태어난 비정상적인 사생아인데 반해 맹자는 이처럼 명문가에서 태어난 귀족이었다. 공자와 맹자가 모두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점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에 의해서 한껏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였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급씨가 보인 지극한 교육열은 유향(劉向)이 쓴 ‘열녀전(烈女傳)’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고사성어는 바로 맹자 어머니의 지극한 교육열을 말할 때 흔히 사용되는 성어로,‘어머니가 맹자의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맹자의 전기에는 어린시절 그의 집이 묘지 근처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 주위로 늘 장례행렬이 지나갔고 장례식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동네아이들은 그 모습을 흉내내곤하였다. 어린 맹자도 일꾼들이 묘지를 파는 흉내를 내며 놀았으며, 자연 상여꾼들이 부르는 노래도 따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대로 두면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외진 묘지에서 시장 근처로 이사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이었다. 싸구려를 외치는 고함소리와 물건을 흥정하는 맹자의 흉내를 보고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역시 아들의 성장에 좋은 환경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세 번째로 이사한 곳이 바로 학교 근처. 이곳에 와서야 맹자는 글공부하는 흉내를 내고 또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제구(祭具)를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예를 흉내내며 노는 것이었다.
  • [문화마당] 확신의 덫/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ㆍ전문 번역가

    거품이 있든 없든 부동산값이 뛰고 있다. 내가 사는 충주도 예외가 아니다. 몇 년 전, 아니 2년 전만 해도 아파트 매매값은 평당 200만원, 전셋값은 100만원 안팎이 정설이었는데 요즘 분양되는 아파트들은 평당 500만 원에 육박한다. 집 없는 사람이나 집이 한 채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답이 있지만 이런 정책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 지적하고 부동산정책의 방향에 대해 “첫째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고, 둘째 투기로 얻은 초과이익은 철저히 환수해 투기적 심리가 사라지도록 하고, 셋째 시장이 투기적 세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세금의 전가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공부문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시장 불안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시장 기능의 실패 때문”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어떤 맥락에서 말했든 두 지도자의 말에서 자기잘못의 인정은 읽혀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것이 누구가 알고 있는 ‘이론’이다. 교과서에 써있는 뻔한 해결책이다. 뻔한 해결책이라도 제시하지 않으면 무능한 대통령처럼 보일까 두려웠던 것일까? 이 정부가 출범할 때 참여정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민 모두가 대통령입니다.”라고 말하자 모든 국민이 으쓱했다. 지금 대통령을 서민적 대통령이라고 좋아했다. 서민의 아픔을 달래줘서 서민적 대통령이라 불렀던 것이 아니라 서민처럼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좋아했다. 새로운 리더십이란 칭찬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리더십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한 듯하다. 대통령인 국민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속은 듯하다. 그가 서민을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우리 서민은 간혹 감정에 휩싸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선거만 끝나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려 애쓴다.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노동자로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릭 호퍼는 광신과 헌신의 차이가 ‘불확신’에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확신은 광신으로 흐르기 쉽다는 경고였다. 잘못된 확신은 아집이기 십상이다. 확신은 잘못된 길로 접어든 줄 알면서 그 길을 고집한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헌신하려면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유부단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의심하면서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지도자에게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확신하는 사람은 자기잘못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를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으로 돌린다. 이런 점에서 확신에 찬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겁한 사람이다. 부동산값의 앙등도 정책 실패의 탓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의 탓으로 우리 대통령도 지나친 확신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통령에게 이론의 나열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론의 나열로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고,‘잘못된 관행’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우리를 설득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대통령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통령,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이 많으니 도와달라.”고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갖고 싶다. 이런 설득이 통하려면 언제나 정직하고 솔선해야 한다. 개혁하겠다고 말하면 자기 주변부터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할 때 국민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돕는다. 그렇지 않을 때 국민에게 얻을 것은 냉소뿐이고, 처음에 걱정했던 대로 국민은 그렇게 도움을 청하는 대통령을 무능한 대통령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ㆍ전문 번역가
  • [★들에게 물어봐] 신예 R&B그룹 ‘소울 스타’

    [★들에게 물어봐] 신예 R&B그룹 ‘소울 스타’

    이름부터 만만치 않다. 하지만 노래 실력은 더 만만치 않다. 세븐·휘성·빅마마 등 실력파 가수들을 발굴해 낸 양현석이 ‘국내 최고의 R&B 그룹이 될 것’이라며 자랑을 해댈 만도 하다. ‘소울 스타’(Soul+Star). 국내 R&B 장르의 주목할 만한 신예 그룹이 나왔다. 이창근(27)·이승우(24)·이규훈(20) 등 3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룹.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환상의 하모니를 자랑한다. 몇몇 그룹에서 보듯 화음이 잘 맞지 않든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튀어서 귀에 거슬리는 흠은 거의 없다. 세 사람이 내는 코러스는 마치 한 사람이 부르는 것 같은데, 곱씹어 보면 세가지 색깔의 음색이 뚜렷이 배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그룹이 주목 받는 이유는 여느 국내 R&B 가수들과는 차별화된 느낌을 주기 때문. 기존 가수들이 R&B를 한국적인 맛으로 요리하려 했다면, 이들은 정통 미국 R&B 음악을 추구한다. 중요한 것은 단지 ‘흉내’만 내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흑인 가수가 한국말로 부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통 R&B의 느낌이 진하게 배어 있다. “요즘 R&B 음악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통 R&B를 하는 가수는 드물잖아요?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미국 흑인 음악을 제대로 하는 그룹으로 인정받고 싶어요.”한국적 R&B도 나름대로 매력 있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멀단다. 이들이 정통 흑인 음악의 길에 들어선데는 정통 R&B 그룹 ‘보이스투맨’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학창시절 ‘보이스투맨’이 들려준 환상적인 화음에 매료됐고, 결국 가수의 꿈을 꾸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멤버 가운데 이창근과 이승우는 지난 2001년 4인조 댄스 그룹 ‘위즈(WIZ)’로 데뷔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중고 신인이다.“데뷔 당시 가슴속에는 정통 R&B의 선율이 꿈틀대고 있었지만, 주위(?)의 요구로 인해 본의 아니게 ‘춤’을 춰야 했어요. 결국 견디지 못하고 팀을 빠져 나왔죠.”(창근) 이규훈 역시 ‘보이스투맨’과의 인연으로 가수가 됐다.“인터넷 ‘보이스투맨’의 팬 카페 게시판에 그들의 카피곡을 녹음해 올렸는데, 형들이 듣고는 ‘함께 정통 R&B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했어요. 주저할 것 없이 ‘오케이’했죠.(웃음)”(규훈) 이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13곡 모두 이창근과 이규훈의 파워풀하고 진한 저음과 이승우의 투명한 고음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성한 화음이 잘 녹아있다. 타이틀곡은 ‘온리 원 포 미(Only One for Me)’. 부드러운 멜로디와 포근한 가사가 일품인 정통 R&B곡이다. 이밖에 아카펠라 곡인 ‘언더 유어 러브(Under Your Love)’와 클럽 분위기의 ‘아이 라이크 잇(I Like It)’ 등 R&B를 기반으로 한 힙합·가스펠·펑크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았다. 이들은 “3년에 걸쳐 앨범 준비를 했으며, 매일 10시간 이상 연습하고 입을 맞췄다.”면서 “녹음된 앨범보다는 생생한 라이브 공연을 통해 평가해 달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 R&B 역사를 새로 쓰는 그룹”이 꿈이라고 당찬 답변을 내놓는 소울스타. 가창력만큼이나 욕심도 만만치 않다.“나중에 후배들로부터 ‘소울스타는 진정한 R&B가 뭔지를 알게 해준 그룹’이라는 평을 듣도록 성장할 거예요.”(규훈)“그것보다는 우선 올해 신인상부터 수상해야지요.(웃음)”(승우)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두 페이지 복원을 위해 52권을 통독하는 할머니

    두 페이지 복원을 위해 52권을 통독하는 할머니

    『재생연전(再生緣傳)』34권째 한 장 한 대학생이 급한 휴지로 찢어 쓴 소설 한 장, 그 두「페이지」를 재생시키기 위해 81세 할머니를 동원, 할머니는 두「페이지」의 문장을 기억해 내기 위해 5개월에 걸친 긴 독서를 하고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남연궁 윤백영(尹伯榮)씨. 이조(李朝)말 갑오(甲午)년에 6조판서를 지낸 윤용구(尹用求)대감의 딸이며, 이조 23대 순조의 딸 덕온(德溫)공주의 손녀이다. 지난 5월 초순, 창경원 안 장서각 열람실에서 D대학 국문과 학생들이 열람할 때 찢긴 낙선재 문고 옛 궁중소설『재생연전』34권째 중간 한 장 두「페이지」를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재생연전』총권 52권 통독에 들어가 현재 34권째 읽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나머지 18권을 연말까지 끝내고 정초에 그 대목을 90년째 간직해 내려온 한서지(漢書紙)에 그대로 재생시킬 예정. 할머니는 1백%까지 완벽하게 그 대목을 옮겨 놓을 자신이 있단다. 「기쁘다」는「환희한다」 지금 당장 옮겨 놓아도 되지만 문체와 문구가 다른 옛 궁중소설과 다른 이 소설에 조금이라도 흠을 내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은 후 쓴다는 것. 「기쁘다」를「환희한다」,「거짓말한다」를「모칭한다」,「문을 열고 들어온다」를「염자를 열고 들어온다」- 다른 궁중소설에서 모두「황제폐하」,「상이…」라는 것을 유독히「만세야(萬世也)」라고 부르는 이 소설은 원(元)나라가 무대, 작자는 미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 윤씨 할머니는 이 소설이 다른 낙선재 문고 소설보다 잔 말이 많고 주인공들이 마음먹고 있는 상태까지 일일이 서술했으며, 구절, 토붙이는 것까지 특이한 소설이기 때문에 찢긴 두「페이지」에 써 있던 특이한 문체, 문구, 토를 그대로 기억해 내기 위해 새로 한 번 전권을 읽는 것이라 한다. 원나라 맹여군 이야기 할머니가 들려준『재생연전』은 이야기 무대가 원나라. 전생에 인연이 있던 네 주인공, 맹(孟)승상의 딸 맹여군, 황보(皇甫)국장의 아들 소화와 장화, 유(柳)국장의 아들 유규벽이 이생에 나와 지내는 사연을 적은 것. 맹승상의 딸 맹여군은 황보국장의 아들 황보소화와 혼인을 정했는데 같은 귀족 계급인 유국장의 아들 유규벽이 불측한 마음을 품고 모략과 권세로 맹여군을 빼앗으려고 하여 맹여군이 도망, 맹여군이 남자 복색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 밑에서 승상을 지내는데 약혼자 황보소화가 병까지 나서 양가가 맹여군을 찾아 임금에게까지 상소, 임금은 전국에 방까지 내어 맹여군을 찾았으나 전국에서 가짜 맹여군이 속출, 희비가 엇갈리다가 나중에야 임금이 자기 밑에서 일하고 있는 승상이 맹여군인 줄 알고 결국 어린 시절의 약혼자 황보소화와 혼인해서 잘 살게 된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건방진 글씨」흉내가 걱정 윤씨 할머니는 이 소설의 글씨가 나인 글씨로 잘 쓴 글씨는 아니고 체가 1백 여년된 체로 몹시 건방진 체라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체와 틀린 글씨를 그대로 흉내내어 쓰는 것이 걱정이라고. 윤씨 할머니는 전에도 한 번 읽은 기억을 되살려 자기 아버지가 쓴 책 30권 중 없어진 1권을 보완해 놓았고, 10년 전에는 20권 중 1권이 빠져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친척의 말을 듣고 앞뒤 권을 읽은 뒤 없어진 책에 해당되는 내용을 되살려 옛날 종이로 글씨까지 꼭 같이 한 권 책을 맞추어 주어 많은 값을 받게 해준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의 그 대가는 고작 담배 한 갑. 할머니는『바라지도 않았지만 철없는 소치를 나무라서 무엇하겠느냐』고 귀한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그냥 체념해 버린 듯했다. 이번 작업도 큰 노력이 들어야 되는 일, 한 권 4백 여「페이지」되는 흘려 쓴 한글체를 52권이나 읽어야 되는데도 무보수에 대한 한 마디 불평도 없다. <신동직(申東植)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3 제1권 제7호 ]
  •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전국의 시·군·면을 가면 어디서나 해병전우회 사무실을 볼 수 있다. 컨테이너로 된 어설픈 건물이지만 타 군 출신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전우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 무슨 비결이 있기에 젊은 날 잠시 군문에서 맺은 인연이 ‘사회’에서까지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일까. 해병 기수 1000기 돌파를 맞아 해병 출신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신화’를 파헤쳐 본다. ●전국 231개 지부… 봉사단체로 맹활약 서울에 있는 해병전우회중앙회 산하에는 16개 광역 시·도별로 연합회가 형성돼 있으며 각 시·군·구에는 231개의 해병전우회 지부가 자생적으로 생겨나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도 60개의 지부가 있다. 해병 전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들 전우회 및 직장·학교 등 그룹별로 구성돼 있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친목단체는 물론 사회봉사단체로서도 존재 이유를 밝힌다. 지부별로 야간 방범순찰은 기본이고 응급구조대·기동봉사대·환경봉사대 등을 편성해 활동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기능의 편차를 보여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해양사고 인명구조를, 산악지역에서는 등반사고 구조 등에 주력한다. 이들은 군대에서 익힌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전문가 못지않은 활동을 펴고 있다. 야간순찰 시에도 해병대 출신은 범법자에게 경찰 못지않은 위압감을 주기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다. 이들이 공식활동을 할 때의 복장은 해병의 상징인 빨간 명찰과 팔각모, 얼룩 무늬의 위장복 등 현역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해병 출신들은 아직도 군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회원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불가사의한 단결력 전우회의 일이라면 자다 일어나서라도 달려가는 것이 이들의 생리다. 너무 단합이 잘 돼 호남향우회, 고려대동문회와 더불어 잘 뭉치는 3대 집단으로 회자된다. 여느 친목회들이 상부상조를 통해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는 데 비해, 해병전우회는 이익이나 반대급부에 상관없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돌쇠형’에 가깝다. 군대 시절부터 익히고, 제대해서도 선배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 이런 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요즘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 아직도 이런 구시대형(?) 결합이 가능할까. ●지옥훈련 속 고도의 동질감 형성 우선 해병의 단일화된 기수체계를 들 수 있다. 훈련소별로 기수가 다른 육군과 달리 해병대는 하나의 훈련소에서 배출된 단일기수여서 일체감이 형성된다. 생면부지의 해병 출신이라도 만나자마자 기수부터 확인하고, 긴 말이 필요없이 금방 선·후배 사이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해병전우회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최고참은 80∼85기(대략 65∼70세), 아래로는 900기(25∼27세) 밑으로까지 내려가나 기수가 ‘나이의 골’을 메운다. 이채로운 것은 기수체계가 다른 장교나 하사관 출신도 전우회에서는 입대연도에 따라 사병 기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전관예우를 못 받는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어차피 ‘해병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마당이기에 이런 사정은 중시되지 않는다. 해병을 뭉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통에서 오는 자부심이다. 해병이 6·25전쟁이나 월남전 등에서 만들어낸 신화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전통은 해병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작용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짬밥’ 출신이든 기술병 출신이든 누구나 ‘귀신 잡은 해병’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해병 출신들의 유난스럽기까지 한 단결력에 대해 ‘논리가 필요없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훈련받을 때부터 ‘해병은 하나다.’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해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형제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정기인(64·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엄청난 기합과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타 집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권 및 정치와는 거리 멀어 특이한 점은 해병전우회가 사회단체로서의 적지 않은 영향력에 비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전우회가 만들어진 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이권에 개입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 해병 출신들이 다소 ‘폼’을 잡는 경향이 있음을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권오현(權五顯·50) 김포해병전우회장은 “해병 출신들은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데다, 해병의 명예를 실추했을 때 매장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우회 간부직함 등을 무기삼아 지방의원 등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예 내부 정관으로 회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전우회도 많으며, 선거 때는 중앙회 차원에서 선거 개입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려보낸다. 또한 단체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우회 사무실 운영비를 다른 곳의 특별한 지원없이 대체로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수도권지역 한 해병전우회는 수년 전 회원들이 야간순찰 도중 술집에서 술을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상자들을 징계했다. 이 단체 간부는 “말썽의 싹을 자르기 위한 차원”이라며 “해병대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명예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이 거름이 돼 해병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 한때 ‘개병대’로 불리며 취직과 결혼조차 잘 안되던 것은 이미 전설이 된 지 오래고, 지금은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가고 싶은 군대’로 꼽히는 등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노병은 사라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성금(李成金·64) 해병전우회 서울연합회장은 오전 9시면 출근, 연합회 일을 보는가 하면 저녁이면 전우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 바쁘기만 하다. 이 회장은 “죽는 날까지 전우회 일을 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해병 출신이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해병이 수행하는 상륙작전 등은 뭉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임무적 특성에다 단결을 중시하는 해병의 전통이 오늘의 해병정신을 만들었다. ▶요즘 주안점을 두는 활동은. -지난 4월부터 주말이면 연합회 회원 60여명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또 다음달 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서울 여의도부터 춘천까지 한강청결 캠페인을 벌이는 등 환경정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군에서 대형 총기사고가 발생했는데. -군기가 빠질수록 사고가 많이 생긴다. 해병전우회에서는 60세를 넘겨도 선후배 관계가 분명하다. 요즘은 내 자식만을 위하는 가정교육부터 잘못된 것 같다. ▶향후 활동 방안은. -육·해·공군 가운데 유일하게 해병대만 전용회관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는데 전우들과 힘을 합해 건립하도록 노력하겠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 식품업계 ‘블루오션 클럽’ 뜬다

    식품업계 ‘블루오션 클럽’ 뜬다

    식품업계에 ‘1조원 클럽’에 이어 ‘블루오션 클럽’이 뜨고 있다. 단가가 낮은 몇 백원짜리 제품으로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한 회사들이 ‘1조원 클럽’이라면 블루오션 맴버들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파워 브랜드’로 국내외 시장을 확대하며 지난 연말 대비 주가를 20% 이상 올리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국내 라면시장 75%를 차지하는 농심의 14일 주가는 30만 4500원으로 지난해 말(24만원)대비 22% 올랐다. 북미 시장이 커지면서 최근 미국에 공장을 가동시킨 농심은 중남미까지 진출할 계획.‘신라면’등 다른 나라에는 없는 ‘매운 맛’으로 세계 시장을 잠식한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북미지역 매출이 6100만 달러로 전년 보다 56% 올랐다. 농심은 ‘1조원 클럽’ 맴버이기도 하다. 크라운제과의 이날 주가는 12만 7500원으로 지난해 말(5만 2900원) 대비 141% 올랐다. 이 회사는 통밀을 튀겨 만든 국내 최초의 천연 곡물 스낵 ‘죠리퐁’공장을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 자사의 첫 해외 공장으로 가동했다. 결코 모방할 수 없는 33년 장수 제품인 만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독자시장을 확보한다는 전략에서다.‘죠리퐁’은 지난해 상하이시 식품협회가 꼽은 ‘2004년 최대 인기스낵 10대 신상품’에 선정된 바 있다. 지난 1월 2위인 해태제과 인수로 향후 과자 시장 지배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평도 받는다. 오리온의 주가는 지난해 말 10만 9000원에서 14만원으로 28% 올랐다.10개 채널로 케이블 업계 선두를 달리는 온미디어 등 자회사의 실적과 파워 브랜드 ‘쵸코파이’가 국내외에서 선전한 덕이다. 내년 중 러시아에 공장을 추가로 짓는다. 저가 모방 제품이 넘쳐나도 쵸코파이 시장점유율은 80%를 넘으며 장수하고 있다. 남양유업 주가도 우유 제품 소비위축이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날 44만 50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35만 7000원보다 25% 올랐다. 성장경 상무는 “남양유업은 식품업계의 삼성전자로 불린다.”면서 “‘떠먹는 요구르트’가 대부분인 중국 시장에 지난달부터 세계 최초로 마시는 요구르트 ‘이오’를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베트남에서 프리미엄급 분유 ‘임페리얼 드림 XO’를 팔아 3년 만에 점유율을 30%로 높이기도 했다. 빙그레 주가도 4만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3% 올랐다. 이 회사는 국내 바나나우유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나나우유’만으로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렸다. 지난 3월부터 이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요청이 쇄도해 수출 확대 방안을 검토중이다. 교보증권 박종열 차장은 “이들 블루오션 맴버들은 음식료군의 대표 주자들로 지난 2∼3년간 꾸준히 주식 재평가 작업을 받아 주가를 키워왔다.”면서 “고유의 ‘파워 브랜드’로 해외 시장을 개척·확대하는 등 선전하고 있어 추가 상승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중앙PSAT연구소 실전풀이]

    문제1. 다음 글의 뒤에 이어질 내용으로 가장 적당한 것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담배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공식 발효됐다. 전세계 성인 사망원인의 10%, 한해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담배에 대해 보건위생 분야 최초의 국제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이 협약에 우리나라가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한국은 협약을 주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이종욱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 협약채택 두 달 만에 서명을 하고서도 비준절차를 미뤄 최초의 협약 당사국 지위를 놓쳤다. 공공장소 금연구역 확대, 담뱃값 인상 등 최근 우리나라가 확고하고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담배의 해악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해 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60%대를 간신히 면한 성인흡연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수준이며 중학생, 여학생 등의 흡연율은 오히려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규제 기본협약이 제시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적·비경제적 판매규제, 경고 강화, 보건교육, 청소년 보호조치 등이 우리에게도 시급한 이유다. (1)국민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정부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정부와 국회는 하루빨리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3)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4)담배는 폐암의 원인이다. (5)많은 사람들이 협약의 비준을 원하고 있다. ●풀이 및 정답 윗글의 논리상 ‘전세계에서 담배규제기본협약 공식 발효→한국은 비준절차를 미뤄 협약 당사국 지위를 놓침→현재 한국에서의 흡연 실태→신속한 협약 비준이 필요’의 흐름으로 가는 것이 적당하다. 정답은 (2) 문제2. 다음 보기 중 (가)의 내용에 들어갈 가장 적당한 것은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한다. 약혼한 여성을 사랑한 끝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연애담이라기보다 사랑·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성을 추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열정 그 자체였다.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그에 못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내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가 급증한 것이다. 책은 다음해 판매금지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세상에 나온 지 딱 200년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도 일종의 전염 현상이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자살 소식이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온 뒤의 두 달 동안 자살자 수가 평상시보다 평균 58명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립스의 가설이 나오자 구미 각국의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지만 결론은 찬반으로 확연히 갈렸다. 어쨌거나 그 뒤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불길한 용어는 사회학과 정신의학의 영역에 자리를 마련했다.(가)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은 전염성에 있다. 저명인사의 자살 소식을 접한 충격이 바이러스처럼 내재해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가해지면 충동적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뉴스를 전하는 언론매체, 또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네티즌 모두가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써 자살 대책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까닭이 시대상황에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함께 걷어내 자살이라는 악질(惡疾)을 잠재울 것이다. (1)‘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실례들 들어준다. (2)‘베르테르 효과’의 사회악적인 면을 보여준다. (3)‘베르테르 효과’가 사회적으로 옳은 가설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4)자살의 해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5)언론과 인터넷에 나타난 자살의 양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풀이 및 정답 앞에서 ‘베르테르 효과’의 정의를 제시했고, 마지막에서는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했으므로 (가)의 부분에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실례를 들어주는 것이 글의 흐름상 가장 자연스럽다. 정답은 (1)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축구, 그분이 오셨다.’ 우선 2006독일월드컵 본선진출 여부가 곧 판가름난다.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도 이달에 열린다.3년전 한반도를 뒤흔든 ‘6월의 함성’이 다시 들려온다. 축구는 가장 스펙터클한 스포츠다. 감동과 환희, 좌절과 한숨…. 남녀노소를 동시에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거대한 응집력은 차라리 신화요, 전설이다. 누가 태극전사의 내달림을 보면서 웃고 울고,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있으랴. ●축구인생 50년 ‘그라운드 풍운아’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메르데카배 축구대회가 열리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1970년대초였다. 농촌의 여름밤,TV는 물론 라디오조차 귀했기에 저녁밥 일찍 먹고 서둘러 라디오가 있는 이웃집으로 속속 모인다. 이어 중계방송이 시작되고 아나운서의 “슛, 아깝습니다. 슈∼웃, 골인!”하는 목소리에 탄식과 환호가 교차한다. 상상속에서 슛동작을 흉내내는 모습은 저마다의 흥분이요,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맞다. 그때의 우상이었다. 아시아의 표범,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표현된다. 네살 때 아버지가 월북해 ‘고아’나 다름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진 깡통과 길가의 돌멩이들을 속절없이 걷어차기 일쑤였다. 파란과 곡절의 축구인생 5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회택(60)씨.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대표팀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그를 만났다. 키 173㎝, 짧은 머리에 어깨가 딱 벌어져 다부진 체격, 왕년의 스트라이커를 연상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역시 그대로였다. 독일월드컵 본선진출을 장담한 그는 먼저 한국축구에 대해 “월드컵 4강에 오른 팀이다. 다만 월드컵 4강 당시 수비수 3명, 즉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박주영 골결정력·패싱·순발력 3박자 겸비 공격라인에 대해서는 “박지성 차두리는 힘과 스피드가 좋아졌고, 안정환도 부상에서 회복됐다. 최근에는 박주영까지 가세했다. 경쟁이 아주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박지성의 경우 공수에 걸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패싱기술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주영을 가리켜 골 결정력, 패싱력, 순발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여기에 이천수와 설기현이 들어오면 경쟁은 정말 가열된다고 부연했다. 송종국 선수를 거론하면서 “(송 선수가)사경을 헤매는 것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어 정말 아쉽다. 빨리 회복해 이들과 경쟁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전술과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히딩크 감독도 처음에는 욕을 먹었다. 결국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선수들도 죽어라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들은 자만심에 차 있고, 상대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꺾으려고 한다. 수비수를 더욱 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승부세계에서는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응집력과 투지가 관건이다.” 화제를 돌렸다. 현역시절인 70년대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해달라고 했다.“당시에는 태클을 잘 하는 선수, 개인돌파가 좋은 선수 등 개인기술이 특징이었지만 지금은 체력과 체격이 아주 좋아졌다.”면서 “그때만 해도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장 사정도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4-4-2,3-4-3 등 포메이션이 다양하고 국제정보에도 밝지만 그때는 전술과 정보가 보잘 것 없었다고 회고했다. ●67년 중앙정보부서 징발 ‘양지팀’ 창단 #에피소드 1.67년 2월. 이회택은 연세대 입학을 일주일을 앞두고 축구부원들과 동계훈련 중이었다. 검은 지프 한 대가 훈련장에 도착했다. 한 사내가 내리더니 “이회택이 이리 나와.”라고 했다. 사내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의 임경옥씨. 당시 ‘중정’은 누구도 거역 못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회택이 사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이문동 중정 본부. 사연은 이러했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충격받았다. 김형욱 중정부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했다. 감독 최정민, 골기퍼 이세연, 이회택 김호 김정남 김삼락 등 이른바 ‘양지팀’이 곧바로 조직됐다. 김 부장은 팀 창단식 때 이들을 불러모아 “모든 것을 지원해 줄 테니 빛을 보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훈시했다. 아울러 팀에서 뛰는 동안 군복무를 인정해주고 매달 2만원씩(쌀 한 가마니 4000원) 월급을 약속받았다. 잔디구장과 기숙사도 제공됐다. 갑작스러운 호강이 오히려 술과 도박을 가깝게 했다. 전적도 보잘것없었다.68년 5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3전3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으나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양지팀 시절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메르데카배 내기건 교민 비기기 작전 주문 #에피소드 2.68년 여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양지멤버가 주축인 대표팀은 패전을 거듭해 5,6위전으로 밀려났다. 상대는 인도. 당시만 해도 교포들이 거의 없어 외교관 부인들이 김치를 들고 와 응원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교포라는 사람이 찾아와 고참선배를 만나고 갔다. 잠시 후 고참선배는 이회택 등 공격수들만 불러 비기는 작전을 주문했다. 교포가 비기는 쪽으로 상당액의 돈을 걸었으며 그럴 경우 배당액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이회택은 말이 되느냐며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내내 그 말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영문을 모르는 수비수들은 몸을 날리며 열심히 뛰었다. 그날따라 이세연 골기퍼는 인도선수들의 슛을 잘도 막아냈다. 경기 종료 직전. 이회택은 상대의 공을 뺏어 김기복 선수한테 슬쩍 패스를 했더니 그냥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1대0으로 이겼다. 이씨는 국민가수 조용필씨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72년 어느날 저녁. 서울 퇴계로의 라이온스 나이트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조용필(보컬그룹 25시 멤버)과 처음 만났다. 이씨는 밴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이씨는 조용필의 매니저 역할까지 했다. 잘 아는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사장에게 레코드 취입까지 부탁했다.‘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 등을 이때 취입했다. 또 방송국 PD 등에게 연락해 조용필의 노래를 자주 내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뒤에는 바로 이씨가 있었다. 이와 관련, 이씨는 “2년여전 조용필씨의 부인 장례식 때 만난 이후로 서로 바빠서 잘 안 만나게 된다.”면서 “언젠가 골프 라운드도 한번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골프실력은 이븐파를 기록할 정도. ●한때 국민가수 조용필 매니저 역할도 축구인 이회택. 비록 키는 작았지만 빠른 몸놀림과 날카로운 슈팅과 드리블, 그리고 대담성을 가진 천부적인 골잡이였다. 김포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돼지 오줌보와 깡통 등으로 축구놀이를 즐겼다. 초등학생때는 동네 형의 손을 잡고 조기축구회에 나가기도 했다. 중3 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끼리 축구부를 조직, 대회에 출전했다. 고등학교 진학은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에 먼저 원서를 냈다. 퇴짜맞았다. 빠르지만 기술이 없다는 이유에서. 마음을 돌려 얼른 영등포공고에 진학했다. 고교 2년 때였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고교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첫시합은 부산상고였고 두번째는 광주상고. 연거푸 2골씩 넣어 이겼다. 축구신동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어 동북고로 스카우트됐다.65년 청소년대표에 이어 이듬해 국가대표에 뽑혔다.75년까지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86년 프로리그의 포항 아톰스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90년 대표팀 감독으로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에 참가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74년 결혼한 그는 결혼한 딸(사위는 농구선수)이 얼마전 손자를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은 한양대 1학년에 다니다 해군복무 중이다. 부인은 현재 방이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살던 부친은 2년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6년 경기 김포 출생 ▲ 65년 서울 동북고 졸업 ▲ 65년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 66∼76년 국가대표팀 선수 ▲ 69년 한양대 졸업 ▲ 83∼85년 한양대 감독 ▲ 86∼92년 포항제철 감독 ▲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 감독 ▲ 93∼2003년 대한축협회 이사 ▲ 2003년 전남드래곤즈 상임고문 ▲ 2004년∼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기술위원장
  • [이집이 맛있대] 서울 압구정 김치생각

    [이집이 맛있대] 서울 압구정 김치생각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김치찌개. 그러나 우리 입에 착착 감기는 김치찌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유명하다는 김치찌개 전문점을 다녀도 시큼하거나 맛이 강해 먹고 나면 뭔가 허무함이 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어머니’손맛이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김치생각’이 바로 그곳이다. 김치생각의 첫인상은 무엇보다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것. 허름하고 찌그러진 냄비는 없지만 김치찌개 맛은 정말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담백하고 깊은 국물맛은 다른 여느 집에서는 맛볼 수 없다. 맛이 진하거나 강하지 않고 구수하며 특히 깊은 맛이 일품이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김칫국처럼 벌컥벌컥 들이켜도 될 정도로 담백하다. 속풀이로 ‘짱’이다. 일단 김치찌개는 김치 맛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채은희(47)사장은 전남 광양에서 200일 이상을 숙성시킨 김치만을 고집한다. 각종 조미료 대신 매실을 넣어 담근 김치만을 쓰기 때문에 오래돼도 전혀 무르지 않고 칼칼한 맛을 유지한다. 또 김치를 살짝 찐 다음 끓이는 것이 특이하다. 김치찌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 넣은 담백한 고기의 고소함이 그야말로 찌개의 맛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돼지의 앞다리 부분만을 고집해서 그런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김치찌개 팔아서 얼마나 벌겠어요. 무엇보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가실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그 맛을 흉내냈습니다. 맛있다기보다는 구수하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라며 채사장은 자신의 김치찌개 철학을 이야기한다. 인근 직장인들 중에는 한달 동안 거의 이집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는 마니아도 한둘이 아니다. 이곳 김치생각의 메뉴판에는 김치찌개가 없고 ‘김치조치’라고 써있어 눈길을 끈다. 옛날 궁중에서는 찌개를 조치라고 했다고 한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아 먹는 돈빼미는 저녁에 소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패션+α]

    ●엠포리오 아르마니 주얼리는 시원한 블루 컬러의 ‘홀리데이 컬렉션’을 선보인다. 블루 토파즈의 은은한 광채와 맑고 청량한 색감이 실버와 만나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디자인으로 편안한 캐주얼에서부터 여름 정장까지 다양하게 매치된다. 귀고리 39만 5000원, 반지 17만 4000원.080-592-5432. ●앙드레김 엔카르타는 남성용 언더웨어 ‘엔카르타 옴므’를 출시했다. 깔끔한 화이트와 크림, 베이지, 메탈 실버, 민트 등 은은한 색감에 선염조직·도비직물·주자직물·메탈릭 팬디직물 등 고급소재를 사용했다. 트렁크 팬티 기본 5종과 마 트렁크 팬티 2종, 런닝 1종, 티셔츠 1종 구성으로 8만 9900원.(02)6747-6580. ●미샤는 해외시장을 조사하는 ‘미샤 세계원정대 1기’를 선발한다.40세 미만의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뷰티넷(www.beautynet.co.kr) 회원 3명이 한 팀을 만들어 24일까지 신청하면 서류심사→어학테스트·면접을 통해 총 6팀,18명을 선발할 예정. 원정대는 7월25일부터 3박 4일간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중국 일본 등 현지 탐방활동을 한다. 문의 원정대 담당자 globalresearch@beautynet.co.kr ●더페이스샵은 땀냄새 억제제인 ‘리프레쉬 데오드란트’를 출시했다. 전남 보성의 녹차 추출물, 특수 파우더 성분인 ACH를 함유해 사용이 간편하고 땀냄새를 없애는 효과가 탁월하다. 파우더 스프레이 타입으로 일반 스프레이 타입보다 빨리 마르고, 지속성이 우수하다. 무향과 아쿠아, 플로럴 등 3종으로 구성.100㎖,5500원. ●이철헤어커커는 올해 헤어트렌드를 재조명해 설치미술과 예술작업으로 표현한 가을·겨울 이철트렌드 전시회를 6월5일까지 개최한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AURA(아우라)’를 컨셉트로, 자연과 친밀한 헤어와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줄 예정. 장소는 서울 청담동 이철헤어커커 본사 아카데미.(02)544-2326.
  • ‘쭉쭉빵빵’ 부위별 살빼기 운동용품 인기

    날이 더워져 여름 옷을 꺼내지만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 겨울에 굵어진 허리, 허벅지, 종아리, 팔뚝 때문에 옷 맵시가 나지 않는 것. 러닝 머신 등 전신 운동기구는 가격이 비싸 엄두도 나지 않고. 올 여름엔 부위별 다이어트 용품으로 콤플렉스를 극복해 보면 어떨까.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기를 얻은 제품을 모아봤다. ●뱃살을 빼자 여름에 가장 고민되는 부위는 뱃살. 윗몸 일으키기, 다리 들어올리기 등을 꾸준히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슬림 다이어트 벤치’(4만 8600원)는 곡선형이라 누워만 있어도 복부가 당겨진다. 핸드 스프링이 있어 초보자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장점. 윗몸 일으키기에 소질이 없다면 밸랜스 롤러(3만 9000원)를 선택해도 괜찮다. 체중을 기구에 싣고 무릎을 펴 몸을 뒤로 젖히는 동작을 반복해 살을 빼는 운동기구다. 1만원대 훌라후프도 뱃살을 빼는 데 탁월하다. 돌기가 붙어있는 훌라후프는 돌릴 때 장을 자극, 배변에도 도움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돌기가 연약한 피부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날씬하게 다리를 문지르고 주물러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기구도 잘 팔린다. 미니스커트 열풍과 맞물려 10∼20대 여성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은 세븐라이너 슬림(15만 5000원). 콜라병 모양의 롤러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종아리를 자극한다. 앞·뒤·상·하 모두 6개 에어백이 다리를 주물러 피로감을 없앤다. 미용 스타킹으로 날씬한 다리를 ‘흉내’낼 수도 있다. 스타킹은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순으로 압력을 가해 붓기를 방지한다. 붓기는 다리를 굵게 만드는 최대 적. 신축성이 좋아 거들처럼 엉덩이 부분을 감싸도 괜찮다. 옷에 맞춰입도록 색상도 5가지다. 가격은 4만 4000원. ●팔뚝 굵기를 줄이자 통통한 팔을 날씬하게 만들고 싶다면 아령이 최고다. 가볍게 걷거나 TV를 보면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한번에 12∼30회씩 체력에 맞게 정하고 점차 운동량을 늘리면 좋다. 일주일에 2회 정도가 적당하다. 호흡은 코로 마시고 입으로 내쉬어야 효과적이다. 가격은 8000원대. 일반 아령이 무겁다면 물아령(1만 1800원)을 사용해 보도록. 물과 모래로 무게를 조절하기에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예쁜 엉덩이 만들기 슬림쿠션(1만 9600원)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모아주는 제품. 쿠션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사용자의 골반을 안쪽으로 밀어준다. 골반이 벌어지면 식생활과 상관없이 하반신이 부어오르고, 허벅지가 벌어져 보기 싫다. 골반이 다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은 사용하면 안된다. 공기압을 넣은 슬림쿠션은 편하게 앉아서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일 수 있어 날씬하고 탄력있는 허리를 가꿔준다.15번 이상 움직여야 운동 효과가 있다. 골반이 오므라들고 넓어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허벅지도 날씬해진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직접 해보니 인터넷 쇼핑몰 옥션(www.auction.co.kr)에서 히트하는 상품을 직접 체험해 봤다. 굽없는 운동화(6만 7000원)는 신발 뒤축이 없어 뒤꿈치가 땅에 닿도록 서면 25도 남짓 기운다. 종아리가 당겨지는 느낌. 그러나 걸을 땐 중심잡기가 어렵다. 뒤꿈치부터 착지하면 뒤뚱거리거나 넘어지기 십상. 러닝 머신 등 운동기구를 바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듯싶다. 신발 속에서 발이 많이 움직여야 하기에 보통 신발 사이즈보다 한두 치수 큰 것이 좋다. 발걸음, 걸음마다 신경을 써야 하기에 걸음걸이 교정에 효과적. 스트레칭 슈즈(9600원)는 앞축이 뒤쪽보다 25도 이상 올라간 신발. 하이힐을 거꾸로 만들어놓은 형태다. 신발을 신자마자 종아리와 허벅지, 허리가 댕긴다. 허리가 약한 사람에겐 무리를 줄 수 있다. 앉으면 종아리 당김이 사라진다. 걷는 것은 힘들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넘어질 듯 불안하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제품. 트윈팡 훌라후프(3만 6000원)는 500g짜리 무게추가 달린 기능성 운동기구.30분만 운동해도 10㎞ 달린 효과가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훌라후프가 무게추 부분으로 떨어지기에 이 부분에 반드시 에어백을 장착해야 한다. 잘못하면 발등을 크게 다칠 수 있다. 무거운 데다 링이 두 개로 나눠져 있어 초보자는 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일반 훌라후프를 잘하는 사람도 한참동안 돌리지 못했다. 익숙해질 때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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