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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박(讀博) 육아일기] (16) 환상 속에‘만’ 둘째가 있다

    [독박(讀博) 육아일기] (16) 환상 속에‘만’ 둘째가 있다

    18개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말이 트이려고 하는 아이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지난해 잠 못자고 밥도 못 먹던 날들의 기억도 어느새 흐려지고 있다.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는 그렇게 육아 공감을 나눌 사람들이 없더니 이제서야 주변에서 아기를 갖고, 낳고 있다. 겨우 1년 전 겪었던 일인데도 다른 신생아 사진을 보면 새삼 신비롭다.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며 남의 아기 사진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아기에게 모유 한 방울 더 먹이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초보 엄마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금방 정신을 차리지만. 여기저기서 둘째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생명에 대해서는 절대로 함부로 말해선 안 되며 어떤 것이든 장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고 일관되게 답한다. 최대한 단호한 표현을 쓴 거다. 그리고 단서를 붙인다. “생기면 낳겠지만 자의(自義)로 갖진 않을 것” 그나마 지난해 “절대로 낳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던 것에 비해서는 비교적 완화된 입장이다. ●“한국인 생각하는 이상 자녀수 2.7명, 실제 출산을 1.24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8일 공개한 ‘자녀 가치 국제 비교’ 보고서에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가 2.72명이지만 2011년 기준 실제 출산율은 절반 수준인 1.24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21명이다. 이와 관련, 요즘 딴 생각할 틈이 주어질 때마다 머릿 속에 떠올려 보는 고민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둘째에게 죄의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며. 물론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도 열심히 일하며 성공한 여성들도 많다.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무척 궁금하면서 존경스럽다. 친정과 시댁 찬스라고는 10분도 쓸 수 없는 내 상황에선 꿈 같은 이야기다. 가끔 남편이 둘째와 동생의 ‘ㄷ’ 자라도 말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눈을 흘겼다. 너무 힘들었던 1년을 보냈고 지금도 겨우 버텨가고 있는데 나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혼자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다. ‘둘째’는 금기시 된 용어였기에 아직 부부끼리도 이런 생각을 나눠 보지 않았다. 상상 속의 둘째, 이 아기의 존재를 확인하자 마자 걱정부터 밀려올 것 같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에 기쁨에 앞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 같다. ‘회사에 어떻게 말을 해야하지?’가 첫번째 고민이다. 육아휴직을 못 쓰게 하거나 휴직을 하면 권고사직을 당하는 등의 나쁜 직장은 아니라 다행이다. 그렇지만 첫 아이 육아휴직 1년을 꽉 채워 쓰는 것도 상당히 눈치가 보였다. 대놓고 쓰지 말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육아휴직을 냈을 때 뒷말이 나오는 것을 적잖게 봤다. 첫 아이 육아휴직에서 복귀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쉰다는 거냐는 눈초리가 먼저 겁이 난다. 육아가 ‘쉬는 것’이 아님에도, 출산을 한 여성이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함에도, 또 아이와 최소 1년은 함께 하며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 시간이 있어야 함에도 여전히 시선이 곱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냥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불만이다. 내 자식을 낳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 쯤이야 가벼이 여길 수도 있다. 당장 회사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고, 눈 질끈 감고 1년 버티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작 회사를 다니는 것부터 일이다. 첫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 한 달 전까지 출퇴근을 하고 업무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회사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고 일 하느라 태교도 제대로 못 한다는 죄책감을 안고서, 임신부라고 동료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받았지만 그것 조차 가시방석인 날들이었다. 그래도 큰 문제 없이, 나름 수월한 임신 기간을 보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34주에 조산기로 입원을 하고 말았다. “첫째 때 조산기가 있으면 둘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던 산부인과 주치의의 조언도 상기된다. 그렇다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 쉴 수 있는 형편도 못 된다. 둘째는 배도 더 빨리 나오고 모든 임신 증상들이 더 심해진다고도 들었다. 임신해서 가뜩이나 예민하고 체력이 달리는 통에 나의 첫 사랑, 첫째는 과연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이들도 동생이 생기는 걸 용케 알아채고서 엄마에게 더 안기고 어리광을 부린다는데, 그런 아이를 마냥 사랑으로 받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 한 명을 혼자 키우는 것도 이렇게 헉헉거리고 있는데 육아 관련 카페에 둘째 임신부들의 눈물나는 고군분투기들은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첫 아이 때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달라진다 당장 가장 막막해지는 것은 출산이다. 진통이 시작될 때부터 첫째를 맡길 곳이 없다. 남편에게 첫째를 맡기고 혼자 분만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분만 과정과 출산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지금처럼 평일 낮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고 등하원 시간에 봐주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그 이후는? 또 주말에 아기가 태어난다면? 게다가 남편의 출산휴가는 딱 사흘 뿐이다. 지난해처럼 아기가 수요일에 태어나서 일요일까지 5일 동안 출근을 안 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야 한다. 산후조리는 꿈도 못 꾸게 된다. 대부분의 산후조리원에서는 첫째 아이 동반을 금지하고 있다. 나 같은 산모는 조리원의 호사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기본 2주 동안 70~80만원의 비용이 드는 출퇴근 산후도우미를 부르게 되면 첫째 아이까지 봐주는 추가 비용을 따로 내야 한다. 입주 도우미를 부르면 130~150만원이 기본이다. 비용은 둘째치고, 몸도 덜 회복된 상태에서 둘째에게 수시로 젖을 먹여가며 동시에 첫째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놀아줄 수 있을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이제는 두 번째니까 처음처럼 아무 것도 몰라 허둥대지도 않을 것이고 어느 정도 여유와 요령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좀비 같은 몰골로 지내며 외로움과 우울함에 빠졌던 때를 다시 떠올리면 끔찍하다. 아이가 세 명인 다둥맘들에게서 “둘에서 셋은 오히려 쉬웠다. 그러나 하나에서 둘은 정말 끔찍하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들을 공통적으로 들었다.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첫째와 터울이 많이 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완전히 될 때, 첫째가 나를 도와줄 수 있어야 조금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두 아이 키우는 직장맘’ 꿈 같은 이야기 두 아이를 키우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지난해 수 백번 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하느냐’는 고민을 수 천번 할 것 같다. 아이가 한 명인 지금도 회사에서 당분간 뛰어난 능력을 펼칠 것이라는 욕심과 기대를 애써 접으려 하고 있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느라 항상 정시 출근에 퇴근 시간이 되면 칼퇴근을 해야한다. 매일 뒤통수가 따갑다. 일이 많은 부서에 ‘애 엄마’라 알아서 배제가 될까 걱정되면서도, 정말 바쁜 부서에 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도 막막하다. 후배들에게마저 뒤쳐진 듯한 열등감을 가진 채, 그저 회사에서 나를 다시 받아주어 고맙다는 생각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그렇다고 일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2~3일은 집에 와서도 아이를 울려가며 일에 매달릴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하나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두 아이를 맡기는 것은 더 큰 걱정이다. 첫째 때 그랬듯 돌도 안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베이비시터에 의존하면 되긴 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온종일 입주해 있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된다. 지금은 100만원대의 베이비시터 비용이 입주로 할 경우 200만원대, 아이가 두 명이면 더 늘어난다. 하지만 두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는 구하는 것부터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요즘은 남자 아이의 경우 추가 금액을 받는 시터들도 있다고 한다. 월급을 버는 대로 전부 아이 맡기는 데에 쓴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엄마로서 행복할지 의문이다. 지금도 아이 한 명을 내내 남의 손에 맡겨놓고선 내 꿈을 위해 일을 한다는 자책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내가 즐거워서 선택한 길이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행복하지만, 이기적인 엄마라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언제나 깔려있다. 하루종일 보고 싶었던 아이의 얼굴을 보는 반가운 퇴근길이 제2의 출근길이 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평일에 회사와 집, 딱 두 곳만 오가는 데에도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다. 저녁 8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이를 돌보며 저녁식사와 설거지, 일주일에 한 두번 빨래나 청소를 하는 정도인데도 새벽 1시를 넘겨 방전이 된 채로 잠이 든다. 아침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집에 오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나를 깨운다. 집안은 부끄러울 만큼 엉망이고 지저분하다. 항상 한숨을 달고 산다. ●“배우자 주중 양육참여시간 길수록 둘째 출산 계획 높아”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의 ‘1명의 영유아 자녀를 둔 취업모의 후속 출산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에 따르면 첫 자녀가 여아인 경우, 엄마가 상용직인 경우, 영유가가 기관을 이용할 경우에 후속 출산계획을 세우는 경향을 보였다. 또 취업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모 본인과 배우자의 주중 자녀양육 참여 시간이 길수록,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정도가 낮을수록, 양육지원 정책에 대한 인지 정도가 높을수록 후속 출산계획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0~5세의 영유아 자녀 1명을 둔 직장맘 2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특히 여성의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정도’가 낮을수록 후속 출산을 계획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한다. 엄마의 직장이 안정적인 곳일수록, 아빠의 주중 양육참여시간이 길수록 둘째 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마저 지금처럼 오전 6시에 나가 밤 11시에 집에 들어오는 상황은 둘째가 생긴다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지금도 매일 밤 설거지를 할 때마다 유일한 화풀이 상대인 남편에게 짜증이 밀려오는데,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난다면 이 우울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돈 때문에 둘째를 낳기 싫다는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았다. 아이를 돈의 가치에 빗대는 것 자체에 격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돈 생각을 아예 안 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부부의 합산 급여는 적은 편이 아니다. 소득 차등에 따른 어떠한 복지 혜택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왠지 늘 빠듯하다. 아이를 맡기는 비용,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비용으로 내 월급을 다 써버리고 생활비와 전세대출금과 이자, 보험료 등 필요한 데에 돈을 쓰는 데도 매달 말일이 되면 우리는 우울한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고 아이를 위해 최고급이나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다. 책과 장난감은 거의 중고로 얻었고 옷은 해외에 있는 친정 가족들이 보내준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생각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 아이 한 명을 대학 졸업까지 시키는 데 평균 2~3억원 남짓의 돈이 드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에 집을 사고 차를 좋은 걸로 바꾸고, 아이에게 다양한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득한 일이다. ●사실은 나도 갖고 싶다, 둘째… 부모님 도움 없이 둘 만의 힘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것이 자랑거리였지만 때로는 부모님께 집을 받고 시작한 부부들이 내심 부러울 때가 많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이제 나도 어엿한 부모가 되었는데,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내 부모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매순간 느껴야 하는 처지가 너무나 서글프다. 글을 쓰고 나니 오히려 둘째가 더욱 갖고 싶어지는 건 무슨 역설인가. 솔직히 나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기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고 아기를 통해 얻는 행복과 기쁨을 두 배로 느끼고도 싶다. 두 아이가 함께 종알거리며 노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울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내가 감내해야 할 것, 포기해야할 것이 지금보다 더 많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난다. 환상 속의 둘째, 지금 나에게는 단순히 선택의 문제를 뛰어 넘었다. 육아가 정말 힘들다고 외치면서도 어느새 둘째를 가졌다는 육아 카페의 글들에 부러워하며 “능력자”라고 댓글을 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11)’아빠 육아’ 예능을 끊은 이유는 (12)엄마들은 왜 찌라시를 퍼다 날랐나 (13)온종일 놀면서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구요? (14)수능 성적표보다 떨렸던 아이 검진표 (15)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암탉을 울게 하라 나라가 살아난다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암탉을 울게 하라 나라가 살아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아내가 남편을 제치고 설쳐 대면 가정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속담이다. ‘여자는 바깥 일에 나서지 말라’는 가부장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속담도 바뀌어야 한다. ‘암탉이 울어야 나라가 산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인 일본만 봐도 그렇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지만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생산가능 인구(15~64세)가 줄었다. 이것이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켜 일본의 장기 침체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日 2010년부터 인구 절벽… 71%인 여성 경제참여율 남성처럼 83% 되면 GDP 9% 증가 일본은 201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는 ‘인구 절벽’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데도 여성 인력을 일터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일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8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4위이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1.4%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남성만큼 늘리면 국내총생산(GDP)이 9%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인구 절벽에 직면한 국가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하려면 여성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스웨덴이 좋은 예다. 총인구가 972만명에 불과한 스웨덴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5만 7556달러를 기록했다. 스웨덴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83.6%로 일본보다 바로 한 계단 앞서는 OECD 3위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80.7%로 일본보다 9.3% 포인트나 높다. ●한국 생산가능 인구 2016년 3703만명으로 정점 찍고 내리막… 일본식 장기침체 우려 우리나라는 일본의 인구 구조를 20년 시차를 두고 뒤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도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우려가 크다는 의미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 인구는 2016년 3703만 9000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탄다. 주요 경제활동 인구인 25~49세는 200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2030년 이후부터 총인구(5216만명)도 점점 줄어든다. 김한곤 한국인구학회장(영남대 사회학과 교수)은 “지금의 인구 추세와 산업 구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는 노동력이 줄어 생산과 소비가 감소하면서 경제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식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올 인구 첫 여초… 女 경제참가율 60%로 男보다 23%P 낮아… 육아·일 병행 어려운 탓 우리나라의 여성 인구는 올해 2531만 4525명으로 사상 최초로 남성 인구(2530만 2520명)를 제칠 것으로 추산된다. ‘여초(女超) 시대’의 개막이다. 해가 갈수록 여성 인구는 남성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2013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3%로 남성(83.6%)보다 23.3% 포인트나 낮았다. OECD 회원국 중에서 꼴찌 수준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애를 낳고 기르면서 일까지 하기가 어려운 사회구조 탓이 크다. 정부의 출산·보육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불충분하고,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 기업의 여성 차별이 여전하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무상보육, 누리과정 등을 도입하면서 보육 정책을 많이 보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육아 부담이 크다”면서 “미국의 경우 출산·육아휴직을 쓴 여성의 복직을 보장하고 있지만 한국 여성들은 육아휴직을 쓰려면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봐야 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경력단절 여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도록 민간 기업에도 탄력시간제 근무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일을 그만 둘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더 많은 교육과 훈련, 승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이민 적극 받아들이자” 주장… “단순 노동자 유입만 늘 것” 부정적 의견 커 줄어드는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반론이 나온다. 김 연구위원은 “중국동포와 동남아 인력 등이 한국에 오려 하는데 대부분 단순 노동자이고 정부가 이민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선진국의 과학자, 교수, 엔지니어 등 고급 인력은 이민자가 적어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국가 경쟁력과 임금 수준으로는 외국의 고급 인력을 끊임 없이 수혈하는 미국처럼 이민으로 인구 절벽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도 부정적이다. 백용천 기재부 미래경제전략국장은 “이민 정책이 취약업종의 고용허가제 중심이어서 고급 인력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고용 친화적인 여성 정책을 펴는 게 좀 더 현실적인 인구 절벽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女 평균 월급 男의 67% 수준인 209만원… “워킹맘 위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늘려야” 여성 인력 확충은 고급 인력 확대와도 연결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09년 82.4%로 남성(81.6%)을 뛰어넘었다. 지난해에는 이 격차가 7.0% 포인트(여성 74.6%, 남성 67.6%)로 더 벌어졌다. 전문직의 여풍(女風)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중 여성 비율은 2000년 3.1%에 그쳤지만 2013년 21.2%로 급증했다. 2013년 5급 공채시험(행정고시)과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각각 46.0%, 59.5%로 절반 수준이다. 여성 의사 비율도 2000년 17.6%에서 지난해 24.4%까지 올랐다. 지난해 약사 10명 중 6명은 여성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여성의 노동 여건은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 지난해 여성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209만 2000원으로 남성(312만 2000원)의 67.0%에 그쳤다.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주로 비정규직과 단순 서비스업 등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도 위로 올라갈수록 ‘유리천장’이 여전하다. 여성 공무원 비율은 최근 14년 새 13.4% 포인트(2000년 35.6% 2014년 49.0%)나 늘었지만 3급 이상 고위직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 중 월급이 적은 임시·일용 근로자 비율은 33.4%로 남성(20.2%)보다 13.2% 포인트 높다. 여성의 산업별 취업자 비중을 보면 도소매·숙박·음식점업이 28.2%로 가장 많다. 금융·보험업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은 각각 4.0%, 3.1%로 낮은 수준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워킹맘을 위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저소득층 여성을 위해 최저임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국가직 女공무원 30만명 돌파… 내년 ‘여초시대’ 열린다

    국가직 女공무원 30만명 돌파… 내년 ‘여초시대’ 열린다

    국가직 여성 공무원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다. 남성 중심의 공직 사회에 내년부터 여초(女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인사혁신처는 ‘2014 행정부 국가공무원 인사 통계’에서 지난해 말 국가직 여성 공무원 수가 31만 860명을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전체 공무원 63만 4051명 중 49.0%로 절반에 이른다. 여성 공무원 비율은 2000년 35.6%에서 2005년 43.3%, 2010년 47.2%로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6년에는 남성 공무원 수를 넘어설 것이라고 인사혁신처는 내다봤다. 직종별로는 특정직 중 교육공무원의 여성 비율이 69.3%로 가장 많았다. 특히 승진과 경력 채용에서 여성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5급으로 승진한 여성 공무원 비율은 2010년 10.9%에서 지난해 16.4%로 상승했다. 2010년 34.7%였던 5급 경력채용 여성 비율도 지난해 43.0%로 높아졌다. 육아휴직 인원은 2010년 1만 8819명에서 지난해 3만 3197명으로 크게 늘었다. 고위직 여성 공무원 수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편이다. 4급 이상 관리직 여성 공무원은 2010년 593명(7.4%)에서 지난해 949명(11.0%)으로 늘어났다. 전체 고위 공무원단 여성 비율은 지난해 4.5%로, 2010년(3.4%)에 비해 다소 증가했으나 여전히 5% 미만에 그쳤다. 8급과 9급에서는 여성 공무원 비율이 각각 47.0%와 43.0%에 이르지만 6급은 26.2%, 5급은 19.8% 등 직급이 올라갈수록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관섭 인사관리국장은 “향후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육아휴직제도 개선, 업무 공백 최소화를 위한 대체인력 활성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관리직 여성 공무원 임용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여자라서, 엄마라서 행복해요’라고 말할 날까지/최연순 사회평론 편집이사

    [옴부즈맨 칼럼] ‘여자라서, 엄마라서 행복해요’라고 말할 날까지/최연순 사회평론 편집이사

    서울신문 5월 11일자에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가 문을 열었다. 그 첫 번째 기사는 ‘맞벌이는 ‘맞살림’도 의미해야 한다. 맞벌이 여성들은 고개를 젓는다. 맞벌이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살림’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는 더 피폐해졌다’로 시작한다. 20~5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거의 65%를 넘었으니 (30대만 60%가 안 되는 58.5%인데, 여기에 속하지 않은 여성 중에 양육으로 인한 경단녀는 또 얼마나 많을까) 대한민국 여성 100명 중 65명은 ‘더 피폐해졌다’는 말을 진심으로 통감했을 것이다. 이 65명 중에 싱글의 비율이 적잖을 거라고 백번 양보해도 그렇다. 직장맘들에게 맞살림만 다급한 문제일까. 어쩌면 가사 노동의 절대량보다 더 시급한 건 아이를 봐 줄 사람이다. 직장맘에게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공포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그 시간들을 맡아 줄 사람을 구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전화기를 돌리는 힘든 기억에 밀린다. 남편이나 친척이 조금이라도 협조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누구도 엄마처럼 처절히 고민하지도, 그 시간들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수많은 직장맘들이 대책도 없이 경단녀의 길을 자처할까. 육아 문제로 일을 그만두는 실력 있는 편집자들을 여럿 보았다. 메르스 때문에 휴교 조치가 취해졌을 때, 오죽하면 직장맘인 나는 ‘휴교 동안 아이들은 누가 맡아 주나’ 그 생각부터 들었다. 연차 한 번 쉬고 싶을 때 내본 적 없이 늘 아이의 학교일정에 맞추어야 했던 내 경험이 저절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자리가 없어서 아예 못 보내는 엄마들은 또 어찌해야 하나. 아직도 한참 어린 아이를 온종일 맡아 줄 사람을 구하거나 자신이 직접 돌보아야 하는 여성에게는 하루라는 시간 전체가 막막할 수도 있다. “아이 기르는 비용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정부나 정치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임신을 하고, 아직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로 인해 직장에서의 위치를 걱정하고, 육아휴직의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여성들은 또 어떤가. 계속 생각하다 보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연령에 따라 어쩌면 그렇게 여성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가 싶다. 맞살림, 보육정책, 여직원의 임신과 출산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는데도 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76%나 된다는 덴마크, 아이를 돌보기 위해 당당히 휴가를 낸다는 프랑스 워킹맘 등의 선진국 사례가 해결책으로 느껴지기에는 현실의 고민이 또 얼마나 깊은지. 그래서 처음 이 문제가 ‘틀을 깨자’의 캐치프레이즈 아래 기사로 나왔을 때 여성 문제는 너무 뻔하지만 또 현실은 얼마나 느리게 개선되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새삼스럽지도 않고, 수없이 많이 들었어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기사의 첫머리만 보고도 백배 공감하는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거론하고 또 거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니까. 태곳적부터 양성평등이 보장되었을 것 같은 노르웨이도 겨우 20년 전부터 그랬다고 하니까.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최대 240만 → 360만원 인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최대 240만 → 360만원 인상

    하반기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자의 대체인력 채용을 위한 지원금 지급 시기가 당겨지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과 육아를 병행토록 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이 인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근로자의 육아 관련 지원제도 개선방안을 7월부터 실시한다고 29일 밝혔다. 우선 근로자의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과 관련해 대체인력을 채용할 때 사업주에게 주는 지원금 지급 시기는 휴직 시작 30일 전에서 60일 전으로 바뀐다. 휴직자와 대체인력의 원활한 업무 인수인계 및 대체인력의 업무적응, 사전 직무교육을 위해 지급 시기가 당겨졌다. 대체인력을 고용한 사업주에게는 우선지원 대상기업의 경우 월 60만원, 대기업은 30만원이 지원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있는 사업주에 대한 지원금은 연간 최대 240만원에서 360만원으로 인상된다. 중소기업은 1인당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대기업은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른다. 육아휴직 및 육아기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지원금 지급방식도 바뀐다. 기존에는 육아휴직자가 복직한 지 1개월이 지나면 사업주에게 지원금의 50%, 6개월이 지나면 나머지 50%가 지급됐지만, 하반기부터는 휴직 이후 1개월이 지나면 한 달치 지원금이 지급되고, 나머지 지원금은 복직 뒤 6개월 이상 고용하는 경우에만 지급된다. 고용부는 “육아휴가를 사용한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국가 및 공공기관은 사업장에 대한 육아휴직 지원금이 없어지고, 1000인 이상 대기업에 지급되던 월 10만원의 지원금도 5만원으로 줄어든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저소득 근로자에 생계비 저리 대출

    근로복지공단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가뭄 등으로 인한 경기 악화로 소득이 감소한 저소득 근로자에게 생계비를 낮은 이자로 빌려준다고 29일 밝혔다. 신청 대상은 3개월 이상 재직근로자 가운데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월 임금이 30% 이상 감소하고, 한 달 179만원 이하를 받는 근로자다. 융자 한도는 1인당 200만원이며, 연 이자 2.5%(신용보증료 0.9% 별도)로 1년 거치 1년 균등분할상환 조건이다. 공단은 메르스 확진에 의한 치료·자가격리로 소득이 줄거나, 소비심리 위축으로 소득이 감소한 관련업계 종사자를 사업구조상 이유 및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직 등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공단은 “메르스로 인해 경영상태가 악화돼 임금지급이 어려운 사업주는 ‘체불청산지원 사업주융자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업주 융자는 체불임금 지급을 위해 근로자 1인당 600만원, 한 사업장에서 최대 5000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다. 연 이자 2.7%(신용 4.2%)이며 1년 거치 2년 분할 상환 조건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단 전화(1588-0075)나 근로복지넷(www.workdream.net)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女보는 눈을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월요일 낮, 덴마크 아빠들 모임

    [女보는 눈을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월요일 낮, 덴마크 아빠들 모임

    행복지수 세계 1위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거리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덴마크의 아빠들은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채 장을 본다. 북유럽 특유의 바퀴가 커다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 조깅을 하기도 한다. 요즘 덴마크에서는 아빠들의 육아 모임이 유행이다. 자녀가 있는 아빠들은 80% 이상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아내 대신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바로 이 점은 직장과 가정이 양립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단지 여성을 보는 눈만 바꿔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단 집안일은 여자 일로 제쳐 두고 남자는 시간 날 때 거들면 된다는 생각, 남자가 어떻게 아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느냐는 생각 등 남성을 보는 시각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난 22일 낮 12시 30분. 업무로 한창 분주할 시간에 코펜하겐 코어스게드할른 시립 체육관에 젊은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입구에 유모차를 일렬로 댄 남성들은 아이를 안고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파스 라이스트우’라는 팻말이 있다. 우리말로 ‘아빠들의 놀이터’라는 의미다. 20여명의 아빠들은 편한 곳에 자리잡고 체육관 바닥에 아이들을 내려놓았다. 아빠가 손수 돌려 주는 회전 놀이기구에 ‘까르르’ 하는 아기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월요일 아빠들의 육아모임 6개 도시서 성황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센터의 예산 중 일부로 운영되는 월요 아빠 모임은 올해로 18년이 됐다. 1996년 “왜 엄마들의 육아 모임만 있고 아빠들의 육아 모임은 없느냐”며 다섯 명의 아빠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육아 나눔을 한 데서 출발했다. 이렇게 시작된 모임에 해마다 4000명가량의 아빠들이 참여하고 있다. 코펜하겐 외에도 5개 도시에 이런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아빠 모임을 담당하고 있는 코페하겐 복지센터의 하네 두에르는 “덴마크에서도 예전에는 아빠들은 항상 일만 하는 존재였다”면서 “1970년대부터 일하는 여성들이 늘기 시작했지만 육아는 늘 엄마들의 몫이었다”고 상기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정에서 여성은 더욱 고단했고, 남성은 점점 가족에게서 소외됐다. 두에르는 “일만 하던 아버지들이 어느 날 자녀들과의 유대 관계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에 빠지곤 했다”면서 “가족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심화되면서 남성들도 자녀 육아에 대한 참여가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정착 30년 걸려… 아빠의 권리 찾아라 1984년 남성 육아휴직이 도입됐다. 여성에게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4주와 태어난 후 14주의 의무 휴직이 주어진다. 남성은 아이가 태어난 후 14주 안에 2주의 의무 휴직이 있다. 부부는 이외에 32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총 52주의 법적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매주 4075크로네(약 68만원)의 급여가 보장되며 이는 자영업자에게도 해당한다. 이런 육아휴직 제도는 육아가 남녀에게 똑같이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아내 대신 휴직을 하고 9개월 된 딸을 돌보는 스틴 옌센(37·전기기술자)은 “아내가 일이 더 많고 바쁘기 때문에 내가 육아를 맡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주변에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을뿐더러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아빠 모임에서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는 미케엘 왕 허겐센(50)은 “요즘은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잘 쓸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는 회사가 인기 있는 회사로 통한다”면서 “이 때문에 주로 고학력, 고스펙의 직장인들이 모임에 참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10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온 야코브 마드센(30·엔지니어)은 3년 전 첫째 아이에 이어 이번에도 두 달 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마드센은 “아기가 태어난 아빠들은 대부분 육아휴직을 쓴다. 다만 부부가 나눠 쓰기 때문에 보통 3~4개월 정도 이용한다”고 말했다. ●낮에 유모차 끌 수 있다면 좋은 직장 다니는 아빠 아빠들은 모임을 통해 아이들이 크는 과정이나 직장, 가정 생활 등에 대해 상담을 하거나 토론을 하기도 한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프란스 로렌센(33)은 “아내가 엄마들 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아빠도 아이가 크는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하고 다른 아빠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요즘은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남성들이 오히려 소외되거나 바보란 소리를 듣는다”고 귀띔했다. 이어 “오늘날 덴마크에서 낮 시간에 아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에게는 (좋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특별한 지위가 부여된다”며 “그것이 바로 (덴마크에서) 남성 육아휴직과 아빠 모임이 활성화된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로렌센은 “남성 육아휴직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덴마크 아빠들도 육아에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회사는 가정 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직원들의 만족도와 능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를 장점으로 내세우기 시작했고, 남성들도 육아 참여를 반드시 지켜야 할 ‘아빠의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 코펜하겐(덴마크)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시간제·18세 미만 근로자 국민연금 보험료 절반만 낸다

    앞으로 시간제 근로자와 18세 미만 근로자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절반만 부담하게 된다. 또 다음달부터 45세 이상 근로자와 육아휴직자도 직업훈련비가 지원되는 내일배움카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5일 국무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이 담긴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과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2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기준이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개별 사업장에서 월 60시간 이상 일해야 사업장 가입대상이 됐지만, 내년부터는 60시간 미만이어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가입할 수 있다. 사용자가 동의해야만 사업장 가입자가 될 수 있었던 18세 미만 근로자도 다음달 29일부터는 당연 가입하게 된다. 실직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구직급여 수급자가 국민연금 보험료의 25%만 내면 국가가 나머지 75%(월 최대 5만원)를 지원해주는 ‘실업크레디트 제도’ 도입 근거도 마련됐다. 실업크레디트 제도는 현재 국회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시행된다. 아울러 내일배움카드 발급 대상이 현재 50세 이상 근로자에서 45세 이상으로 확대되고, 육아휴직 근로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내일배움카드는 중소기업 근로자, 기간제 근로자, 이직 예정자 등이 외국어·정보기술(IT) 등 직업훈련 과정을 수강하면 1년간 200만원 내에서 훈련비의 50~100%를 지원하는 제도다. 육아휴직자가 복직한 이후 받는 육아휴직 잔여 급여는 현재 6개월 이후 15%에서 6개월 이후 25%로 바뀌게 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근무자 상당수 기간제·의료 비전문가… 감염병 대응 ‘역부족’

    공공의료의 최일선인 자치단체 보건소들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건소 업무가 늘어나지만 인원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근무자 상당수가 기간제이고, 의료 전문직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보건소의 현장 대응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23일 지자체 보건소들에 따르면 충남지역은 16개 시·군에 각 한 곳씩 16곳의 보건소가 있다. 보건지소는 읍·면·동에 모두 151곳이 있다. 그러나 이들 보건소는 직원 50~60명 중 40~50명이 기간제로 채워져 있다. 손철준 충남도 보건행정팀장은 “기간제는 금연 등 목적사업을 위해 뽑기 때문에 모자보건사업 등 보건소의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더구나 기간제는 8시간 근무를 준수해 메르스와 같은 질병이 확산되면 24시간 비상근무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지소는 더 열악하다. 부여군 석성보건지소는 공중보건의 1명과 직원 2명이 일한다. 장비는 아무것도 없다. 예방접종만 할 뿐 약품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 보건지소 관계자는 “주민들이 우리 지소에서 처방을 받으면 오토바이나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인 초촌지소로 가 약을 타 온다”고 말했다. 재정 여건이 나은 지자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울산의 보건소 인력은 전국 꼴찌 수준이다. 울산에서는 현재 5곳의 구·군 보건소와 통합보건지소 1곳, 보건지소 7곳, 보건진료소 11곳, 보건분소 1곳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190여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육아휴직 등으로 실제 근무하는 인력은 더 적어 업무 가중에 시달리고 있다. 메르스 확산 같은 비상 체제가 되면 행정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충북도내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옥천군은 밀접 접촉자와 2차 접촉자 등 모니터링할 대상자가 500여명에 달했지만 보건소 인력은 120명에 불과했다. 보건소 인력 1명이 4명이 넘는 접촉자를 관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에 군은 보건 지식이 없는 군청 직원들까지 투입, 3명이 1조를 이뤄 접촉자 1명을 관리하도록 했다. 안기숙 충북도 질병관리팀장은 “현장에 투입된 면사무소 직원들이 주민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다 보니 주민들이 다시 보건소에 물어보는 일이 반복됐다”며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인력 부족으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보건소가 비전문가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북은 전체 25곳의 시·군 보건소 가운데 의사 출신이 소장을 맡고 있는 곳은 전체의 24%인 6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19곳은 행정·보건·간호직 출신자들이 소장을 맡고 있다. 도내 보건소마다 간호 인력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안동시보건소(지소 및 진료소 포함)의 경우 전체 인력 111명 가운데 간호직이 21명으로 20%에 못 미친다. 하지만 비의료인인 보건직의 경우 29명으로 간호직보다 8명이 많다. 의성군보건소는 사정이 더욱 심하다. 간호직(14명)이 보건직(3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비의료인에 대해 감염병 예방교육을 실시하지만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보건소의 전문성 결여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보건소의 가장 큰 책무는 지역 내 전염병 관리와 소독인데 서울지역의 경우 급성전염병 담당자가 1~2명밖에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업무가 보건소에 다 내려온다. 정규직원이 110명이지만 절반이 행정직이다. 역학 전문가도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민간보건의료자원의 양적인 확대에 비해 공공보건의료자원의 양적인 규모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수요자의 공공의료서비스 접근도를 향상시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 분야의 지속적인 개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전국종합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女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유치원 쉬는 수요일 워킹맘은 회사 휴가 육아하기 참 좋은 프랑스

    [女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유치원 쉬는 수요일 워킹맘은 회사 휴가 육아하기 참 좋은 프랑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 있는 ‘샹드마르스 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소풍 나온 프랑스 엄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앞 공원에도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엄마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한창 일할 시간인 평일 오후에 한가롭게 공원에 나온 여성이라면 당연히 전업주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프랑스 엄마들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대부분 직장에 다니거나 잠시 육아휴직을 쓴 워킹맘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매주 수요일에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가 쉰다. 파리의 워킹맘들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수요일에 당당히 회사에 휴가를 낸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복직도 보장된다. 파리의 아침은 사진이나 영화에서 본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물론 서울보다는 덜하지만 지하철과 버스에 사람이 가득하고 사거리 건널목마다 신호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 줄 서 있다. 다른 점을 꼽자면 유모차를 끌거나 자녀의 고사리손을 꼭 잡고 출근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10살 이하 어린이는 반드시 부모가 등·하교를 같이 해 줘야 한다. 회사에서는 자녀 하교 시간에 맞춰 직원들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한국 엄마들이 볼 때 프랑스는 ‘워킹맘의 천국’이지만 프랑스 정부는 출산·보육 지원 제도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 아직도 고칠 점이 많다고 한다. 올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워킹맘에 대한 기업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대기업에 직장어린이집을 늘리고 워킹맘을 위해 저녁 늦게까지 회의를 하지 말라고 제안한 상태다. 지난 2일 파리의 집무실에서 만난 스테파니 시두 프랑스 사회·보건·여성권리부 사회총국 부총국장은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다른 남성 직원들보다 월급이 깎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달 말 120개 대기업을 불러 임신한 아내가 산부인과에 갈 때 남편도 휴가를 내고 같이 가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는 순간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정부가 철저히 책임진다는 게 프랑스 보육정책의 원칙이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일손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과 보육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야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두 부총국장은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는 출산율이 낮아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지 않은데 프랑스는 유럽에서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높다”면서 “2020년까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70% 이상으로 올리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여성이 출산과 보육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지원해 준다. 임산부에게 아이를 낳기 전에 6주, 낳은 뒤에 10주의 유급 출산·육아휴가를 보장한다. 무급 육아휴직도 3년간 쓸 수 있다. 특히 육아휴직이 끝난 엄마들은 직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회사에는 무거운 벌금이 매겨진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6%가량을 가족 정책에 쓰고 있다. 자녀 수에 따라 각종 가족수당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족수당에 드는 예산만 연간 300억 유로(약 38조원)에 이른다. 3~5세 어린이는 유치원(에콜 마테르넬)에 100% 입학하는데 정부가 교육비를 모두 지원한다. 학부모는 급식비만 내면 된다. 저소득층일수록 급식비는 더 싸진다. 파리의 한 민간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마텔데 롬므(26)는 “사립 유치원에도 정부가 운영비의 80%가량을 지원해 주고 나머지는 기업들이 보조한다”면서 “학부모가 급식비 등으로 내는 돈은 저소득층의 경우 시간당 14센트(약 176원)밖에 안 되지만 고소득층은 시간당 3유로(약 3760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은행을 다니면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한국계 프랑스인 플로케 세실리아(50)는 “큰애는 의대에 다니고 둘째는 고2인데 수업료가 공짜고 등록비만 10만원 정도 낸다”면서 “음악, 미술, 체육 등도 공립 교육시설에서 가르치니까 학비가 싸고 과외나 학원이 없어서 사교육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세계에서 보육 지원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나라로 꼽힌다. 프랑스 엄마들도 다른 나라보다 아이를 키우기가 쉽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도 보육 제도에 부족함이 많다고 말한다. 한 명품 의류 회사의 비즈니스 매니저인 루이 보장(40)은 “4살 된 딸이 지금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지만 3살 넘을 때까지 국공립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못 보냈다”면서 “실업자나 저소득층의 자녀부터 어린이집에서 받아주는데 일하는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못 보내면 정부가 보모에게 아이 맡기는 돈을 지원해 주지만 교육 프로그램이 우수한 국공립어린이집의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두 살과 다섯 살 아들을 둔 안 샤를로트 카잘레(34)는 변호사로 지난 8년 동안 법무법인에서 일하다가 두 달 전부터 법률 출판사의 기자로 직장을 옮겼다.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도 대형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는 평일에는 새벽 1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 바쁜 직업이다. 현재 매달 300유로(약 38만원)씩 보모 지원금과 가족수당을 받고 있는데 다음달부터 75%가 깎인다. 소득이 많아서다. 카잘레는 “정부가 보육 지원 자금으로 쓸 세금을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 많이 떼 가는데 이들에게 주는 지원금을 줄이는 것은 문제”라면서 “정부 보조금만 받고 일하지 않는 여성보다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더 지원해야 경제활동 참가율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리에 위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일하는 에블린 구에주(51)는 “OECD 본부에도 아직 어린이집이 없을 만큼 프랑스도 직장어린이집 확충이 시급하다”면서 “최근에는 남편들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추세지만 프랑스 남자들도 집안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안 솔라즈 프랑스 국립 인구문제연구소 연구국장은 “한국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려면 여성이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노동법에서 확실하게 보장해 줘야 한다”면서 “경력 단절 여성이 단순 서비스업 이외에도 자신의 전공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고를 수 있도록 취업 지원을 확대하고 회사와 지자체가 0~2세 영유아를 마음 놓고 맡길 어린이집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 파리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대체 인력 뱅크서 일자리 잡으세요”

    “대체 인력 뱅크서 일자리 잡으세요”

    “내 업무가 구직자들에게 줄탁동기(?啄同機·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를 실천하는 작은 힘으로 뒷받침되고 있음을 깨닫고 자부심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됐어요.” 고교 교사였던 A씨는 육아과정에서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자 다시 직업을 찾아다녔으나 경력단절 기간과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집단상담 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기회를 엿보던 차에 고용노동부 직원에게서 대체인력공무원 공모를 귀띔받아 지원해 한시임기 공무원 일자리를 잡았다. 구직급여 수급자격 업무를 맡았다. 예민해진 실직자 상대라 녹록잖은 일이었다. 퇴사 사유도 저마다 달라 고용보험 법령·사례 연구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래서 보람도 크다. 대체인력 뱅크가 구직자와 정부 부처에 좋은 결실을 안기고 있다. 육아휴직·출산휴가 등으로 결원될 직위에 대해 공백을 메워야 할 경우 미리 선발한 인력 중 한시임기제 공무원을 임용해 업무를 대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16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0~2013년 활용 실적은 국세청 1003명, 고용부 887명, 통계청 184명 등 39개 중앙행정기관에 모두 2847명이다. 세무서에서 30년 근무하고 퇴직한 B씨는 한시임기제 공무원으로 실업인정 업무와 수급자 교육업무를 맡고 있다. 다른 직원들에게 아버지뻘인 그는 “민원인을 많이 상대해 피곤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실직자에게 재취업 때까지 구직활동비를 지급함으로써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좋다”며 웃었다. 대체인력 등록을 거쳐 2~5배수를 추천하는 면접에서 한시임기제로 합격하면 공무원 신분을 갖는다. 만만찮은 경쟁률이다. 하루 최저 3시간, 주당 15~35시간 근무다. 등급별 월급여 외에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시간외근무수당 등을 보장받는다. 연가, 병가, 모성보호시간, 육아휴직도 가능하다. 뱅크는 두 형태로 나뉜다. 먼저 일반행정, 사무운영 등 공통업무분야를 대상으로 인력 풀을 사전에 구성, 부처의 수요발생 때 적격 대체인력을 활용하는 통합 운영방식이다. 또 세무 안내, 직업 상담 등 공통업무분야 이외의 소관 전문분야를 중심으로 직접 대체인력 풀을 구성, 휴직을 비롯한 직원 공백 발생에 대응하는 기관별 운영방식이 있다. 지금까지 활용된 사례 가운데에선 기관별 뱅크가 269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사혁신처는 대체인력 모집 공고를 민간, 퇴직공무원 채용정보 및 공고와 연계해 한시임기제 공무원 지원자 풀을 한층 확대해 질 좋은 인력 공급에 가속도를 붙이기로 했다. 퇴직공무원 채용정보(G-시니어), 대체인력 뱅크(www.대체인력뱅크.com)에서 선발공고를 확인한 후 ‘나라일터’ 홈페이지로 이동, 로그인하면 지원할 수 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40% 쿼터제 남성에게도 도움… 여성의 경제 참여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40% 쿼터제 남성에게도 도움… 여성의 경제 참여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북유럽 국가들은 처음부터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고 얘기한다. 글로벌 보험중개사인 마시에서 20년째 근무하고 있는 니나 올포트 포섬(46·여)은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자들은 주로 업무 지원 부서로 배치됐다”면서 “남성들이 독차지하고 있던 중개 업무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많이 싸워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은 1986년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 총리인 그로 할렘 브룬틀란이 8년 연속 집권하면서부터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크게 신장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후 노르웨이는 2008년부터 40% 양성할당제를 시행하면서 다시 한번 고용에서의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 2003년 양성할당제가 국회에 상정된 직후 여성 임원의 비율은 9.0%(2004년)에 불과했으나 2008년 시행 이후 40%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책에 대해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없을까. 포섬의 직장 동료인 토마스 케플런(42)은 “40% 쿼터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40% 쿼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에도 직장 여성과 육아를 위한 각종 정책이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성을 보는 눈’과 고용 환경이다. 일과 가정을 놓고 한국의 워킹맘들이 늘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한다면, 노르웨이는 경제적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여성의 경제 참여와 가정 양립이 함께 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케플런은 “일과 가정을 함께 유지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며 “회사에서 육아휴직 등을 손실로 여기는 것은 매우 짧은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정해진 업무 시간(오전 9시~오후 5시 또는 오전 8시~오후 4시)과 유연근무제를 잘 활용하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누구나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지만 늦어도 오후 5시까지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부부가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헤게 니고르 노르웨이 양성평등부 국장은 “여성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진 데는 아동 보육과 50주의 육아휴직(유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면서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도록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오슬로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노르웨이 여성임원 40% 할당제 만들다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노르웨이 여성임원 40% 할당제 만들다

    노르웨이는 여성들의 파워가 강한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1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는 여성 경찰이나 군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왕궁을 지키는 여성 근위병도 눈에 띄었다. 노르웨이는 유능한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모든 분야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2016년부터 여성의 군복무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노르웨이의 양성평등 노력은 수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르웨이의 기업 임원 10명 가운데 4명은 여성이다. 노르웨이 양성평등부에 따르면 올해 상장 주식회사 임원으로 등록된 1316명 가운데 41%인 540명이 여성이다. 2009년 이후 7년째 이 비율에 변화가 없다. 지난해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1.9%에 불과한 우리나라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노르웨이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노르웨이의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은 바이킹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노르웨이 역시 여성 임원 비율은 10%가 채 안 됐다.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노르웨이 여성 리더들로부터 해법을 들어 봤다. 시스템 - 시스템 남녀 숫자 맞추는 건 기본… 보육지원·유연근무제 뒷받침돼야 “제대로 된 시스템 없이 양성평등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여성 정치인들이 해야 할 임무이지요.” 12일 오슬로 집무실에서 만난 아네트 솔리(53) 아케르스후스 주지사는 양성평등을 정착시키기 위한 여성 정치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솔리 주지사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40% 양성 할당제’를 꼽았다. 40% 양성 할당제는 기업 임원의 남녀 비율이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도록 한쪽 성별 비율을 최소한 40%로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흔히 여성 쿼터제로 알려져 있지만,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상대편 정당인) 노동당이 만들긴 했지만 이 정책을 만든 건 높이 평가한다”면서 “이 정책의 영향을 받아 많은 공공기업과 자치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여성 비율을 늘려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0여명의 고용을 책임지는 아케르스후스주의 경우 여성 간부 비율을 50%까지 늘리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중간 관리직에서 여성 비율은 58.8%, 최고 관리직에서는 44.6%이다. 하지만 남녀 비율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역시 두 자녀(아들 17, 딸 11)를 둔 엄마인 솔리 주지사는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는 남자 직원이 아이를 돌보러 집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엄마인 내가 휴가를 낼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남녀 숫자를 맞추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고, 육아휴직이나 보육 지원, 유연 근무제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네트 솔리는 1991년 시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집권 보수당 소속으로 당 대표 등을 거쳐 2013년 아케르스후스 주지사로 당선됐다. 노르웨이 국회에는 169명 중 40%(67명)의 여성 정치인이 있으며, 보수당 소속의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 역시 여성이다. 롤모델 - 육아휴직 6주뿐이던 시절 퇴직 후 재입사로 돌파… 후배들 휴직 가능해져 “정책도 중요하지만 개별 직장과 사회에서 롤모델이 나와 줘야 합니다.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 총리인 그로 할렘 브룬틀란의 영향이 굉장히 컸지만, 저 역시 회사에서 워킹맘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용기를 내야만 했지요.” 그로 미옐름(59) 노르웨이석유협회(NPF) 고문은 “정책이 있더라도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면서 “개별 직장에서 롤모델이 많이 나와 줘야 온전히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석유 강국인 노르웨이에서 그는 12년째 석유협회 실무 총책임을 맡아 이끌어 오고 있다. 화학과 수리물리학을 전공하고 석유화학 분야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아 온 미옐름은 “대표적인 남성 중심 산업이지만 단 한 번도 채용에서 차별적인 질문을 받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결혼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며 남성들과 경쟁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례로 첫 직장이었던 네덜란드 정유회사 로열더치셸에서는 6주 이상의 육아휴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상사에게 가서 말이 안 된다고 했더니, 상사도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면서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7개월 뒤 복직하는 방법으로 계약서를 다시 썼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내가) 회사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이 상황에서 절대 아이를 못 가질 것이라고 했던 부부도 아이를 갖게 됐다”면서 “젊은 여성 직장인들에게는 상사나 선배들이 먼저 권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 줘야 이것이 문화로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로 미옐름은 2004년 1월 노르웨이석유협회 본부장으로 임명돼 11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지난 4월 퇴임한 뒤 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노르웨이는 2013년 기준 세계 3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7위 석유 수출국이다. 글 사진 오슬로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근무시간 다이어트? 딴 나라 얘기랍니다 !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근무시간 다이어트? 딴 나라 얘기랍니다 !

    일부 가족친화형 기업을 빼고는 시간제·재택 근무 등의 ‘유연근무제’가 겉돌고 있다. 출산과 보육, 자기 계발을 위한 대책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림의 떡’에 가깝다. 워킹맘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남모르게 가해지는 불이익 등을 우려해 신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워킹맘 공무원이라고 다를 건 없다. 민간의 참여 확대를 끌어내려면 정부부터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7월 20일 이명박(MB) 대통령이 주재한 ‘스마트워크 활성화 전략’ 회의. 2015년까지 공무원의 30%가량을 재택 근무나 모바일 근무로 대체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이용해 집이나 혹은 전용시설(스마크워크센터)에서 업무를 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출산 증가와 생산성 향상, 정보기술(IT) 발전을 기대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워크는 여전히 ‘딴 나라’ 얘기다. ●유연근무제 공무원 16% 그쳐 행정자치부는 2010년 근무 형태를 다양화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총 근무시간만 채우면 일주일에 3~4일만 출근해도 되고, 출근 시간도 오전 7~10시 사이에 마음대로 선택하게 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이런 ‘파격’을 도입했으니 민(民)보다 훨씬 앞서간 관(官)의 행보였다. 육아 부담과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공무원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현실은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 때문에 신청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행자부는 올 3월 재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유연근무제 활용 결과를 부서장과 부원 평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당시 이재영 행자부 정책기획관은 “유연근무제가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고 저출산 극복 및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출근 1시간 늦출 뿐… 워킹맘 혜택 못 봐 하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연근무제의 ‘7가지 유형’(시간제 근무, 시차 출퇴근, 근무시간 선택, 집약근무, 재량근무, 재택근무, 스마트워크) 가운데 시차 출퇴근만 이용자가 늘었을 뿐이다. 시차 출퇴근도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추는 반쪽짜리다. 정시 퇴근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50개 기관(15만 493명)에서 유연근무제를 단 하루라도 이용한 공무원은 모두 2만 4259명(16.1%)이다. 중복 숫자를 감안해도 많지 않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차 출퇴근(77.8%·1만 8853명)과 ‘국회 출근’으로 의미가 바뀐 스마트워크(8.3%·2003명) 이용자가 전체의 86%를 넘는다. 육아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는 재택근무 이용자는 0.6%(154명)에 불과하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유연근무의 기본 전제가 정시 퇴근 보장인데 공무원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힘들다”면서 “결국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간 근로단축제 한 해 700여명뿐 민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는 주 15~30시간으로 줄여 일할 수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법으로 보장돼 있다. 하지만 이용자가 거의 없다. 2011년 39명, 2012년 437명, 2013년 736명만 이용했다. 자신이 빠지면 주변 동료가 일을 떠맡아야 하는 데다 기업들도 그런 직원들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시간제 일자리도 정부에 등 떠밀려 하다 보니 질 나쁜 ‘파트 타임직’을 양산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당 17시간 미만을 일한 근로자 수는 117만 7000명(여성 74만 2000명·63.0%)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은 4대 보험 가입 등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과 차별 없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 의도와 다르게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한 유통업체는 지난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거꾸로 주 40시간을 근무하는 촉탁직 판매와 진열 직원들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려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업 관계자는 “시간제 일자리는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기업들에게 손해”라면서 “그러다 보니 일부 기업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꼼수가 나타나면서 시간제 일자리가 왜곡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쟁취한 재택근무… 만족도 최고 이렇듯 재택·시간제 근무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일단 그 길을 가는 데 성공한 워킹맘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주 4일 집에서 일하고 하루만 출근하는 서울시 정보기획단 소속의 최지혜 주무관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최 주무관의 4살된 딸은 피부염과 아토피가 심해 어린이집도 다니지 못할 형편이었다. 재택근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휴직을 해야만 했다. 최 주무관은 “공직 분위기가 엄격해서 신청해도 받아들여질까 반신반의했는데 운 좋게 잘 풀렸다”면서 “재택근무라도 동료와 수시로 메신저로 소통하고 민원은 전화로 처리하고 있어 업무 차질은 없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고용센터에서 취업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양은영 주무관은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귀한 뒤 3년째 하루 6시간만 근무하고 있다. 전일제보다 임금은 25% 가까이 깎였지만 육아와 가사, 직장 일을 모두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양 주무관은 “시간제 근무 취지를 살리려면 그에 맞는 업무를 맡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민원 업무에 배치되면 퇴근 시간이 일러 동료들에게 (일을 떠넘기는)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전교조, 9개월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대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法外)노조’ 처분의 효력을 정지했던 항소심 결정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처분의 효력이 다시 살아나면서 전교조는 9개월 만에 법적으로 다시 법외노조 상태가 됐다. 법외노조란 ‘노조 관련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조’를 말한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전교조가 “법외노조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재항고심에서 전교조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8일 교원노조법 2조를 ‘합헌’으로 결정함에 따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전제로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할 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전교조는 합법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됐다. 법외노조가 되면 노조 전임자 84명에 대한 휴직 허가 취소, 정부 예산 지원 중단 등 조치를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을 통해 취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당장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 관련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서울고법의 재심리 결과까지는 일단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고용부는 전교조가 해직교원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한 것에 대해 2013년 10월 교원노조법상 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외노조 통보’를 했고, 이에 전교조는 법원에 해당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반정우)는 지난해 6월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고 판단했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기각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민중기)는 교원노조법 2조가 위헌이라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항소심 선고 때까지 정지시켰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달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 (11)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은 이유는

    [독박(讀博) 육아일기] (11)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은 이유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면 앞치마를 두른 예쁜 아내가 상냥하게 맞아준다. “잘 다녀왔어요?” 집 안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긴다. 피로가 싹 녹는 듯 하다. 귀여운 아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꺄르르’ 행복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많은 아빠들의 머릿 속에는 이런 로망이 있지 않을까. 깨끗한 집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 단란한 가정. 가장의 책임이란 게 거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이랬다. -현관문을 열고 퇴근했는데 아내의 눈은 ‘백안시’가 되어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쏘아붙이는 아내 뒤로 보이는 집안 꼴이 가관이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온갖 잡동사니가 거실에 늘어놓여 있고 설거지 거리는 쌓여 있다. 아내의 우울한 얼굴은 또 어떻고. 연애할 때 수줍고 예쁘던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아기가 보챈다. 순간 짜증이 몰려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 누구나 갖고 있다고 알려진, 이 로망이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물론 남편이 내게 이런 꿈 같은 상황을 요구하진 않았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타박을 하거나 발 디딜 틈이 없는 거실을 보며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낸 적도 없다. 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눈치가 보였다. “과연 나를 다 이해했을까?” 늘 의문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접점을 찾아서 아빠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남편이 무척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기가 태어난 뒤부터 나에게 1순위는 무조건 아이다. 남편은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나를 도와주는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엄마들은 남편을 ‘큰 아들’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하는 짓은 꼭 아이 같다. 눈이 한참 나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내 안경 어딨지?”하고 왜 나한테 묻는 걸까. 만날 신는 양말, 짝도 다 맞춰 놨는데 왜 못 찾고, 용케 구멍난 걸 찾아 신고 가는 건지. 정말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아이 같기만 하다. 아무튼 이런 남편이 아이에게 완전히 밀렸다. 내 손길이 남편에게까지 뻗칠 겨를은 없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저녁상을 차려준 것도 일주일에 사나흘 뿐이었다. 뭔가를 차릴 여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김치 한 종지만 내놓을 수는 없으니 그냥 시켜먹자고 하면서 연신 미안했다. ‘도대체 하루종일 집에서 뭘 하길래 밥도 안 해놓았을까’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반면 아기에게는 1++등급 한우만 먹였다. 어느 날 이유식 육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자기를 위해 사골이라도 끓이는 줄 알고 들뜬 마음으로 냄비를 열었다. “그거 OO이 먹일 육수야”라고 했을 때 실망스런 표정이 지금도 미안하긴 하다. 겨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남편이 쉴 시간은 별로 없다.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청소 등 몇 가지 집안일을 도와준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집에서 약 3시간 동안 쇼파에 제대로 앉아 보지도 못하고 바쁘다. 오랜 취미생활도 딱 끊었다. 결혼 전에는 매주 일요일 오전 사회인 야구 경기를 하러 나갔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로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는 게 취미가 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유독 화장실에 들어가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혹시나 집에서 유일한 도피처로 화장실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주말이라고 늦잠 한 번 제대로 자기 어렵다. 평일 내내 아기와 씨름했던 나는 남편에게 외출하자고 조른다. 맛있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라도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싶다. 바깥 공기도 쏘이고 사람 구경도 좀 해야겠다. 남편의 피로는 더 쌓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아빠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아빠들이 주말에 낮잠을 자거나 쇼파에 누워 TV를 보는 것은 ‘간 큰’ 행동이 됐다. 발 뻗고 쉬지도 못하고 바쁜데 마음도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을 거다. 가끔은 내가 남편이라면 집에 들어오기가 참 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종일 남편이 오는 시간만 기다리다가도 막상 얼굴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 짜증이 밀려왔다. 씻지도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온다고 겨우 세수를 하며 기다리는데도 문을 여는 순간, 하루의 설움이 복받쳤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데가 남편이 유일했고, 내가 이렇게 힘든 게 모두 남편 탓이라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냥 미웠다.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남편은 말 없이 집안일에 더 열중했다. ●”고된 퇴근길, 웃어주지도 않는 아내” vs “입꼬리 올릴 힘도 없어”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에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웃으며 반겨줄 수는 없냐”고 따졌다가 크게 다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정말 뜨끔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남편은 육아의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마주치기 싫은 상사들과 하루종일 시달리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사회생활을 한다, 너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웃어주지도 않느냐”는 식으로 아내에게 따졌다고 해 수많은 엄마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비판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1000여개가 넘었다. 남편이 나의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 역시 남편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아마 남편이 체감하는 정도가 더 무거울 수도 있다. 똑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남편 통장에 들어가는 돈이 더 빠듯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유독 육아만 힘든 것처럼,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처럼” 이야기하냐고 묻는 남편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매일 도저히 몇 시에 잤는지, 몇 시에 일어난 건지도 모르도록 밤새 잠을 설치며 모유 수유를 하고, 날이 밝으면 또 이유식을 만들어 세 끼를 챙겨 먹여야 했다. 밥 한 끼 먹이는 것도 전쟁. 요즘도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으려고 온갖 애교와 굽신거림으로 “제발 한 입만 먹자”를 연발해야 하고, 마치내 입을 “아~”하고 벌려주면 황송하기 그지 없다. 17개월이 된 지금도 안아서 재워야 할 만큼 잠에 대해서는 예민한 아기다. 겨우 다 재워놓고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면 어느새 침대 위에 벌떡 앉아 있는 아기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분명히 5분도 안 잤는데, 그럼 다시 잠 들어야 하는데, 언제 졸렸냐는 듯 다시 놀기 시작한다. 아이는 ‘급속 충전’이 가능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급속 방전’이 돼버렸다. 기본적으로 피곤함을 달고 외로움과 우울함과도 싸우며,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감추고 아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남편을 봐도 도저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마주친 내 모습이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남편에게 세뇌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심지어 한 번은 “나를 그냥 정신병에 걸린 환자로 생각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아직도 남편에게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 심정은 참담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이해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밤마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집 앞에서 손을 꼭 붙잡고 놓지 못하던 연인에게 불과 3년 만에 닥친 현실은 이랬다. 물론 여전히 사랑하고, 오히려 아기가 생긴 뒤부터는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깊은 사랑이 생겼고 둘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쉽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는 여정은 어렵기만 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빠들은 온종일 집에서 아이와 ‘노는’ 엄마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들도 눈치 보며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잔소리 뿐이다.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빠 육아’ 콘셉트가 넘쳐난다. 물론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지고 아빠들에게 육아에 대한 일정 부분의 의무나 책임감을 안겨준 것은 매우 반길 일이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올해 1분기 남성 육아휴직자가 879명으로 지난해(564명)에 비해 55.9%나 증가했다고 한다.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게 된 이유 육아휴직을 하고 제대로 된 육아를 해본다면 분명 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남편들에게는 ‘아빠 육아’라는 것이 TV에서 하듯이 아이와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체험, 이벤트를 하는 것, 또는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는 수준으로 좁혀지는 게 아닌가 우려도 된다. 어쩌다 한 번 아이를 ‘봐주는 것’, 엄마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빠 육아인 것처럼 되는 게 오히려 아쉽다. 어찌보면 출산하고 딱 사흘만 같이 있어주는 아빠에게 육아에 대한 공감을 해달라는 게 더 말이 안 되기도 하다. 하루에 3~4시간 겨우 집에 있는 아빠에게 나와 아이가 갖고 있는 만큼의 친밀감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즐겨 보던 아빠 육아 예능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것은 이런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다. 엄마들이 매일 겪는 일상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걸 아빠도 경험하고 느끼는 게 진짜 아빠 육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주말 하루, 몇 시간 함께 해서는 알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한 두시간 뛰어 놀아준 것으로는 부족하다. 연예인 아빠들은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내 남편도 일을 잠깐 쉬고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나도 육아휴직할까?”라고 농담이라도 하면 곧바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나무라게 된다. 일단 생활을 이어가려면 지금 수준의 월급을 꾸준히 벌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을 아무도 쓰지 않는 회사에서 남편이 굳이 눈초리를 받아가며 총대를 메게 하고 싶지도 않다. 꼭 ‘휴직’이라거나 ‘아빠의 달’이라는 등의 특별한 제도, 있어도 쓸 수 없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아빠들이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엄마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TV 속 연예인들처럼 ‘슈퍼맨’인 아빠가 아니다. 연애할 때 내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 내 편만 들어주었듯이, 육아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기억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밖에서 공 한 번 차고 놀아주는 것보다 힘이 된다.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완벽한 아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혼자가 아님을,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 [女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잘되면 콜센터… 경단녀, 늪에 빠지다

    [女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잘되면 콜센터… 경단녀, 늪에 빠지다

    여기저기서 ‘경단녀’를 채용한다고 한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직장을 관둔 엄마들에게 취업 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한번 끊긴 경력을 다시 잇는 데 평균 7년이 걸린다. 어렵사리 끈을 다시 이었더라도 시간제 일자리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외국계 컨설팅사가 “한국에는 거대한 여성 인력 풀이 있다”며 냉소인 듯 희망인 듯한 진단을 내놓았겠는가. 여성 근로자들은 “최고의 경단녀 대책은 처음부터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며 “일과 가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적 인프라와 분위기를 구축)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글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육아와 경력을 맞바꾼 건 지금도 후회가 없어요. 다만 평생 ‘비정규직’ 꼬리표를 달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신세는 서글픕니다.” 김인선(45·가명)씨는 A은행에서 지난해 9월부터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김씨는 ‘산전후(産前後) 대체근무자’로 채용됐다. 정규직 창구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떠나면 그 기간만큼 근무를 하게 된다. 6개월마다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그나마 이곳은 조건이 나은 편이다. 상황에 따라 최장 2년간 계약 연장이 가능해서다. #정규직은 꿈도 못 꾸는 그녀들… “정년까지 일할 수만 있다면” 김씨는 1989년 상업고등학교(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B은행에 취직했다. 만 13년을 정규직으로 근무하다 2003년 3월 퇴사했다. 자녀 양육 문제 때문이었다. “둘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아이를 봐주던 친정어머니가 갑작스레 폐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어요. 비싼 돈을 주고 베이비시터도 고용해 봤지만 결국 회사를 관두게 됐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2010년 김씨는 재취업을 결심했다. 시중은행 시간제 경력직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원서를 내 봤지만 마흔이란 ‘적지 않은 나이’가 늘 걸림돌이 됐다. 어렵게 취업해도 1년 이상은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아 실업자가 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김씨는 ‘운이 좋으면’ A은행에서 2016년 9월까지 근무할 수 있다. 그런 김씨의 소망은 단순하다. 그는 31일 “정규직 전환은 감히 꿈꾸지도 않는다”며 “남들이 정년퇴직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A은행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다시 다른 은행에도 원서를 내볼 생각이에요. 그런데 아마도 지금 근무하는 은행이 제 인생에서 마지막 영업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씨는 씁쓸하게 덧붙여 말했다. ‘경단녀’는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김씨처럼 출산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한 여성 실업자를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기혼여성(15~54세)은 971만 3000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일을 하지 않는 여성은 406만 3000명(41.83%)이고, 그중에서도 경단녀가 195만 5000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이를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매킨지 보고서는 “한국에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거대한 여성 인력 풀(pool)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대 15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2013년 여성의 경력이 단절될 경우 1인당 6억 3000만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현 정부 들어 무상보육(2013년)을 비롯해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2014년 2월), ‘여성고용 후속·보완대책’(2014년 10월) 등 경단녀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올해는 ‘일·가정 양립’을 핵심 개혁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성고용 활성화를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 정권의 강한 의지다. #여성의 경력 단절로 사회적 비용 15조 날린다는데 하지만 ‘기혼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직장을 관두고 있는 것이 국내 고용시장의 현 주소다.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부족과 남성 외벌이 중심의 근로문화, 여성 중심의 가사양육 활동 고착화 때문”(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이다. 실제 경단녀들이 일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45.9%)이었다. 통계청 조사에서 육아(29.2%), 임신·출산(21.2%), 자녀교육(3.7%)은 그 뒤를 이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대기업과 시중은행들이 2013년부터 경단녀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시간제 일자리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대기업과 시중은행 계약직은 근무 여건과 처우가 좋은 곳이다. 재취업에 성공한 경단녀들은 단순 서비스 직종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한국여성인력개발센터 조사에 따르면 경단녀가 가장 취업을 많이 하는 업종은 경영·회계·사무직(22.5%)으로 나타났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리, 사무, 행정보조, 콜센터상담원 등이다. 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 직종(17.4%)이 두 번째로 많았다. 가사도우미나 산모·신생아 돌보미, 요양보호사 등이다. 음식서비스업(9.2%)이나 경비 및 청소(8.8%), 영업 및 판매(6.1%), 미용·숙박·여행·오락(4.1%) 등의 저임금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도 적지 않다. 그마저도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 직장을 떠나면 재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7년이었다.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용 불안이 늘 따라다닌다. 임시계약직(1년 미만)이 52.3%로 절반이 넘는다. 정규직은 25.2%, 상용계약직(1년 이상)은 22.5%로 조사됐다. 연령대별 계약조건 차별도 두드러진다. 30대 이하는 상용계약직(22.5%)이나 임시계약직(33.0%)보다 정규직 비율(36.1%)이 높다. 반면 40대(41.1%)와 50대(68.6%)는 임시계약직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급여 수준도 취약하다. 재취업 여성의 월평균 급여는 92만원이다. 100만~150만원 미만(42.7%, 세전 기준)이 가장 많다. 50만~100만원 미만(38.2%), 50만원 미만(12.3%)을 받는 재취업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 #정부 “여성 고용 늘려야” 기업은 “국가가 할 일” 입씨름만 원경록 한국여성인력개발센터연합 사무국장은 “재취업 여성은 음식·숙박·복지 분야와 같이 진입 장벽이 낮은 사회서비스 분야에 많이 취업하는데, 근무 조건이 좋지 않고 저임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회에 다시 적응해야겠다는 욕구가 떨어져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력 단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단녀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와 기업체, 가정의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 사무국장은 “경단녀 등 고용취약계층은 입체적인 지원이 필요한 만큼 맞춤형 고용서비스정책 개발이 시급하다”며 “경단녀 고용 유지를 위해 소규모 사업장에 장려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지현 숙명여대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교수는 “여성노동 정책의 초점이 ‘경력 단절’이 아닌 ‘노동 지속’으로 옮겨 가야 한다”며 여성의 생애주기별 경력 유지 및 경제활동 참여를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여성고용 확대와 일·가정 양립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남성 육아휴직 권장 등 기업의 자발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정부의 경단녀 일자리 창출 정책이) 여전히 기업부담을 전제로 한 제도 확대에 치중하는 추세여서 기업 경쟁력 저하와 경단녀 채용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공공재인 ‘보육 인프라’ 확충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민간기업에 전가하는 규제”라며 “보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재원 분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전담자라는 인식의 변화가 가정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 경단녀 해소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yium@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 (10) 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독박(讀博) 육아일기] (10) 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피곤에 찌든 얼굴, 앞머리가 숭숭 빠져 휑한 이마,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헝클어진 머리. 목이 다 늘어난 면티셔츠와 무릎이 툭 튀어나온 파자마. 쳐진 가슴과 뱃살, 그 밖의 곳곳에 삐져나온 살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지금도 낯설다. 애초에 외모에 별 자신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가씨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육아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는 걸 내 얼굴과 몸도 말해주는 듯 하다. 한숨을 쉬고 다시 거울을 본다. 초라한 몰골이지만 왠지 좋아보일 때가 있어 흠칫 놀란다. 육아는 정말 힘들다. 가끔씩 어디론가 혼자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럴 거면 왜 애를 낳아서 키우느냐고? 나를 움직이는 힘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과 우울, 부담감, 두려움, 불안, 피로 등 온갖 감정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금방 추스르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비록 내 몸은 1년 만에 폭삭 망가져 버렸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이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라고 믿게 된다. 바로 아이가 나에게 주는 선물들 덕분이다. ●아기와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아픈 짝사랑을 할 지라도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또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기가 찾아오면서부터 나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사랑에 푹 빠져버렸다. 출산한 지 닷새쯤 됐을 때 처음 알게 됐다. 물론 아기를 뱃 속에 품고 있을 때에도 꿀렁꿀렁 움직이는 느낌에 엄청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조리원 식사 시간에 흑미밥이 나왔다. 쌀밥 사이사이 까만 쌀이 박혀 있었는데 가운데에 있던 쌀알 두 개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 안고 있었던 내 아기의 까만 눈동자 같았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처럼 눈만 새까만 아기 얼굴 같았다. 밥그릇을 한참 동안 빤히 들여다 봤다. 내가 엄마가 됐음을, 아기를 사랑하게 됐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직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신생아의 얼굴은 나를 초조하게 했다. 나를 언제 바라봐 줄까, 내가 엄마인 걸 알고는 있을까,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를 사랑하게 될까. 사춘기 시절 짝사랑은 비교도 안 되게 조급했다. 육아 카페에 ‘신생아 눈맞춤’을 수없이 검색했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살이 갈라지고 피가 나는 고통을 참았다. ‘악’ 소리가 났지만 젖을 물고서 나를 바라보는 아기의 눈동자에 아픔이 사라져 버렸다. 오물오물하는 입을 보며 ‘내 새끼’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에 붙었다. 왜 남에게 욕을 할 때 ‘새끼’라는 단어를 쓰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유식을 처음 먹이던 날, 고작 쌀을 갈아 물에 끓여주는 미음이었지만 그토록 땀을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요리를 한 적은 없었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어줄 때, 그 어떤 시험을 치를 때보다 긴장됐다. 내가 지은 밥을 먹으려고 새끼새처럼 입을 벌리는 모습을 보면 내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싶도록 예쁘다. 단지 밥 한 숟가락인데 나의 전부를 받아주는 듯한 뿌듯함마저 든다. 아기가 웃기 시작하면서부터 구애는 더 활발해졌다. 어떻게 하면 한 번이라도 더 웃을까, 간지럽혀도 보고 노래하고 춤도 춰보고, 수시로 장난감도 쥐어줬다. 주말 나들이로 공원에 갔을 때 매점에서 바람개비가 달린 풍선을 샀다. 초등학생 때 소풍에 가서도 “쓸 데 없다”며 밥주걱 같은 기념품 하나 사지 않았던 나다. 바람개비 한번 보여주려고 4000원짜리 작은 풍선을 사서 아기에게 가는 길이 연인에게 이벤트를 해주러 가는 것 마냥 설렜다. 엄마들이 요괴워치나 터닝메카드 등 품절된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하는 장면이 더 이상 극성스러워 보이지가 않는다. 내 아기가 더즐거워 한다면 뽀로로 장난감을 종류별로 사다 놓고 싶은 욕심이다. 아기가 처음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 모든 발달과정에서 주는 신비로움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경이롭게 보도록 만들었다. 누가 보여준 것도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쩜 시기에 맞춰 정확히 움직이는지. 대학 시절 책으로 배웠던 인간의 발달과정, 아기의 행동 특성들이 정확히 재현되고 있어 놀랍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소중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우리를 키워낸 엄마들 모두가 존경스럽기만 하다. 요즘은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해 진짜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엄마” “아빠”를 불러주고 “사랑해”라는 말에 목을 꽉 잡고 있는 힘껏 끌어안아준다. 검지 손가락으로 자기 볼을 꾸욱 누르며 “이쁜 짓”을 하기도 하고 “빠~” 소리를 내며 뽀뽀도 해준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감격스럽다. 아기가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면 좋겠다. 이 행복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기 웃음, 엄마에게는 ‘자연 마약’과 같아” 가끔은 ‘조울증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도대체 극도로 힘들다고 느끼면서 나는 왜 행복한 것인가 궁금했다. 다행히(?) 엄마(주 양육자)와 아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행복감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 인간 신경영상 연구실은 지난 2008년 자신이 낳은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본 여성에게서 뇌의 도파민계 보상중추가 자극되는 현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생후 5~10개월 된 첫 아기를 가진 여성 28명에게 아기의 웃는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로 뇌를 관찰한 결과, 쾌락과 행복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과 연관이 있는 부위가 활성화됐다고 한다. 주로 마약 중독 관련 실험에서 활성화되는 부위들이란다. 그러나 ‘내 아기’가 아닌 다른 아기의 웃는 얼굴 사진은 그 보다 반응하는 정도가 적었다는 결과다.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 루시 브라운 교수 연구팀은 사랑하는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의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강렬하고 정열적인 사랑은 마약을 복용했을 때와 동일한 뇌 영역에서 반응이 일어난다”고 밝혀낸 바 있다. 아이의 웃음을 ‘마약’이라는 단어와 빗대려니 적절하진 않아 보이지만 그만큼 엄마에게 깊은 행복과 큰 기쁨을 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정신과 전문의로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의 저자인 정우열 원장은 “아이와의 친밀감과 유대감으로 인해 엄마도 유아기적 의존 욕구가 충족되면서 서로 더 끈끈해지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기가 온전히 엄마에게만 의지하는 것과 동시에 엄마도 아기에게 의지를 하며 서로의 의존 욕구를 충족해 나간다는 것이다. 또 아기를 통해 엄마의 인정욕구가 채워지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엄마들이 아이의 웃음을 통해 얻는 행복함이 에너지를 유발하게 되고 계속해서 그것을 갈망하는 일종의 ‘중독’ 효과도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잠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면서도 요즘 신생아를 보면 왜 그렇게 예쁜지. 우울해서 견딜 수 없다고 난리를 치던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육아는 정말 행복한 경험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나다. 출산을 할 때 몸이 두 동강 나는 듯한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아기가 태어나는 그 순간 고통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걸까. 이래서 엄마들이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둘째, 셋째를 계속 낳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사랑에 취해 사는 시간들이 조금 더 오래도록 지속되기만을 바란다. 또 한 편으로는, 이기적이고 철 없던 내가 아이를 키우며 한 단계씩 성숙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끔 친구들에게 농담을 섞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싶거나 인내심을 기르고 싶다면, 한 마디로 ‘도(道)’를 닦고 싶으면 아이를 낳아라”고 말한다. 육아를 하다 보면 거의 득도(得道)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생각이다. 우울함에 빠졌을 때 하루종일 앉아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반성했다. 심지어 “몇 년 전 그 사람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오해를 샀을까” 하는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린시절 어떤 일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이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우열 원장은 이를 두고 “육아는 육아 당사자의 인격을 성장시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보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고 실감했다. 엄마라는 존재 하나만 믿고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생명을 먹이고 재우고 살지우는 일을 하다보니 진짜 책임감이 뭔지 알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뒤쳐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아홉을 가졌어도 부족한 하나를 아쉬워하며 열등감에 찌들었던 나였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예쁜 아기가 있으니 웬만해선 남 부러울 게 없었다.(친정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말고는 딱히 부러울 일이 없었다.) 아기가 잠든 사이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됐다. 아기띠에 안겨서 내 가슴팍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아기의 따뜻한 체온에 ‘눈물나게 행복함’을 느낀다. 화려하게 남들에게 돋보이며 사는 게 행복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웃고 있는 순간이 진짜 행복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진짜 육아는 아이가 나를 키우는 것 일에도 더 활력을 느낀다. 나의 욕심 만을 일해서 일하던 때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내 아이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의미있는 성과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돼야겠다 다짐한다. 용기도 얻었다.직업이 기자면서도 소심하고 쭈뼛거리던 성격이어서 취재할 때 어려움도 있었다. 지금은 아이 얼굴을 생각하니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육아에 대한 어려움만 토로했더니 “그럴 거면 애를 왜 낳았냐”거나 “그렇게 힘들다면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등의 극단적인 반응도 있어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을 할 겸, 그리고 되도록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험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나의 감정, 내가 아기에게 받은 선물들을 적어봤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해보는 경험, 또 누군가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만 의지하며 사랑해 주는 시기가 또 있을까 싶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시간도 겨우 10년 안팎에 그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무척이나 고되지만,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큰 행복감을 느낄 기회는 흔치 않을 것 같다. 비록 머리털은 빠지고 뱃살은 쳐져버렸지만, 아이는 나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아이도 나를 키우고 있다. 스스로가 한층 풍요로워짐을 매일 느낀다. 그리고 이 감정을, 이 경험을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거창하게 국가를 위해서라거나 경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귀한 경험을 할 기회를 가져보는 측면에서 출산과 육아를 권장하고 싶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행복한 감정을 갖고 서로를 대한다면, 길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이 각자 머릿 속에 아이 얼굴을 떠올리며 기쁨을 느끼고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내가 느꼈던 사랑의 감정, 성장하는 기회들이 단순히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부모라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라고 한다. 주 양육자이거나 아이와 오랜 시간 함께하거나 돈독한 애착 관계를 형성했을 때 비로소 이 ‘사랑의 묘약’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남편도 아직은 이 맛을 제대로 모르는 듯 하다. 아이와 오랜 시간 함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가 돼야 나만큼의 행복을 느낄 것 같다. ‘진짜 육아’에 취해 보는 경험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사회, 아이의 행복 말고는 다른 것을 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간절히 꿈꿔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 [가족친화 기업 특집] KT, 13세 미만 자녀 있으면 ‘스마트 근무’

    [가족친화 기업 특집] KT, 13세 미만 자녀 있으면 ‘스마트 근무’

    KT는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가족친화기업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선 육아휴직을 2년으로 확대 적용하고, 다자녀 출산축하금 차등 지급, 산전·후 휴가 90일 중 70일 유급 적용, 배우자 출산휴가 및 불임휴직 제도 도입 등 출산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전국 8곳에서 직장 보육시설을 운영 중이다. 사옥 내 수유실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사원 자녀를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도 무료로 제공한다. 여직원들이 좀 더 편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스마트 패밀리’라는 육아휴직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만 13세 미만 자녀가 있는 임직원에게 원격근무를 월 8회 이상 또는 선택근무시간 월 10일 이상을 허용하는 제도다. 장기근속자에게 자기계발 및 재충전 기회를 제공하는 리프레시 휴직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이다. 선발 규모는 전사 350명 수준이다. 10년 근속자는 6개월, 20년 근속자는 1년을 선택해 휴직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근무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 [가족친화기업 특집] 삼성그룹, 여사원 육아휴직 만 12세로 상향

    [가족친화기업 특집] 삼성그룹, 여사원 육아휴직 만 12세로 상향

    삼성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연중 캠페인으로 실시할 만큼 가족 친화적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울, 경기 수원, 경북 구미, 광주 등 전 사업장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여사원 육아휴직이 가능한 자녀 연령은 법적 기준으로 현재 만 8세인데 자체적으로 만 12세로 상향 조정해 필요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분할해 쓰도록 하고 있다. 출산 전 선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업장마다 여성과 임산부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삼성증권은 임직원 자녀를 상대로 영어캠프를 운영한다. 지난 16일 경기 파주영어마을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다양한 문화 체험과 야외 게임 활동을 벌였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둘러보는 삼성증권 본사 투어 활동도 포함돼 있다. 제일기획은 2008년부터 직장어린이집인 ‘아이제일어린이집’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5월 현재 제일기획의 국내 임직원 중 여성의 비중은 43%에 이른다. 과장급 이상 직원 중 여성의 비율도 30%를 넘는다. 임직원 자녀를 초청하는 가족 친화 프로그램인 ‘주니어 제일러스 데이’ 행사도 매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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