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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서 가장 긴 휴전… 분단의 벽 언제 헐릴까

    ◎되돌아 본 “판문점 38년”/“냉전의 상징”… 성과없는 회담만 4백60차례 3년1개월이나 계속됐던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전쟁의 포연이 멎은지 38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해도 세번이나 더 바뀔 세월이 흘렀어도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남북2㎞씩의 비무장지대는 변함이 없다. 1953년 7월27일 상오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을 대리한 해리슨중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을 대리한 남일대장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것이 오늘의 판문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판문점은 세계 뉴스의 초점이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찾는 남북한 방문객의 관광명소가 됐다. 당초 휴전회담은 51년 7월10일 공산측의 통제구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은 휴게소 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 있어 통신이나 경비·왕래 등에 불편함이 많았고 심리적으로도 협상대표들이 압박을 받기도 했다. 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과 합의를 보아 옮겼다. 대형 군용천막 4개를 급속히 세우고 통신시설과 도로 등을 닦아 회담장을 설치했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공공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집,평화의집,일직장교실,초소,막사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통일각,경비본부초소,막사등과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실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있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본회의장은 군대막사형인 단층의 콘크리트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군정위 본회담이 열릴때마다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의 내외신기자1백여명과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등 중립국감시위원단장교들이 창문을 통해 회의진행을 지켜본다. 휴전이후 4백6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한것은 아무것도 없이 수사학적인 언어의 전투가 계속되고있다. 유엔군측은 지난1월 군정위 수석대표를 미군장성에서 한국군장성으로 교체 임명 발표했으나 공산군측은 한국이 휴전협정에 조인한 당사국이 아니기때문에 대표권이 없다고 주장하며 군정위해체론까지 들고 나오고있다. 한국군의 장성이 군정위 수석대표에 임명된이후 본회담이 열리지 않고있다. 공산측은 『조선문제는 조선사람들끼리 풀어가자』면서도 한국군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있다. 우리 민족은 부끄럽게도 세계에서 가장 긴 휴전의 역사를 갖게됐다. 휴전협정조문속에는 「통일」에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어 이 불안정한 휴전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 G7의 「정·경·군축선언」 요지

    ◎외채탕감·동구에 G7시장 개방 확대/공동가치에 바탕,국제협력관계 강화 서방선진 7개국(G­7)정상들은 16일 냉전종식과 걸프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의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정치선언및 군축선언을 채택한데 이어 17일 소련의 정치·경제개혁을 지지하고 소련을 세계경제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내용의 경제선언을 발표했다.런던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경제선언과 정치선언및 군축선언을 요약했다. ▷경제선언◁ ▲실질금리 인하정책,계속적인 재정적자 감축노력과 소비자 선택폭의 제고,물가 인하,기업부담 완화를 위한 경제적 경쟁력 확대 등이 필요하다. ▲자원분배를 왜곡시키고 공공지출의 확대를 초래하는 정부보조금은 규제돼야 한다. ▲관세및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감독하에 금년말 이전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해야 한다. ▲세계 에너지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연구개발 촉진 및 에너지 거래와 투자를 위한 장벽 제거,환경 및 안전기준 강화가 필요하다. ▲동유럽 경제개혁 지원을 위한 노력 재다짐의 일환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간 연계를 환영하고 동유럽에 대한 민간투자를 고무하고 이들 국가가 G­7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소련의 경제개혁을 지지하며 소련 경제상황의 악화에 우려한다. ▲대부분이 채무국들인 빈국을 위한 사안별 부채탕감을 확대하고 제3국 및 부채문제와 관련한 IMF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약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경제회복 조짐이 점증하고 있고 무역 및 경상수지 불균형 현상도 개선되고 있으며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유엔체제와 무기의 이전 및 확산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정치선언◁ ▲G­7(선진7개국)과 EC(유럽공동체)는 평화적이고 정의로우며 번영하는 세계의 이상에 대한 확고한 공약을 재확인한다.G­7은 유엔을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국제체제의 강화를 촉구한다. ▲유엔안보리와 국제사회가 평화회복 및 갈등해소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라크가 모든 유엔안보이결의들을 이행하고 이라크국민과 인접국들이 협박과 탄압,또는 공격의 두려움없이 살 수 있을 때까지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들을 존속시킨다.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은 스스로 그들의 장래를 결정해야만한다.그곳의 상황을 우려하며 폭력행위의 중단과 영구적인 휴전 및 군의 병영복귀를 요구한다. ▷군축선언◁ ▲재래식 무기거래=대다수 국가들이 적절한 수준의 안정보장을 위해 무기 수입에 의존해야하며 자위권이란 고유의 권리가 유엔 헌장에 승인돼 있음을 인정한다.그러나 지난 걸프 전쟁은 한 국가가 자위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막강한 병기를 보유할 경우,평화와 안정이 손상될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우리는 그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보장키로 결의한다.모든 국가가 완전공개,협의,행동이라는 3대 원칙을 준수할 경우 그같은 진전이 이루어질수 있다고 믿는다. ▲핵,생물학및 화학무기 확산 방지 ①핵부문=핵확산방지 조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핵확산방지조약 비서명 국가들에게는 이 협정에 서명할 것을 촉구한다. ②생물학 무기 부문=오는 9월 열릴 생물학 무기 검토회의가 기존의 신뢰 구축 조치를 확대하고 효과적인 검증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기존 협약 조항의 이행을 촉진시키는데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③화학무기 부문=화학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은 강력하고 포괄적이며 효과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화학무기 금지 협약을 위한 협상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 “남북평화 정착때까지 휴전협정 필요”/15일 상위(의정중계)

    ◎“한미 「전시주류국 협정」 공개 용의는”/“「서사연」 논문은 헌법질서 전면 부정” ▷외무통일위◁ 이날 여야의원들은 노태우대통령의 방미성과,쌀시장개방,세종연구소처리방향 등에 관해 폭넓게 질의를 펼쳤으며 특히 남한내 핵무기존재여부및 철수용의,한미정부간 전시주류국지원협정의 불평등성에 대해서는 여야를 떠나 정부의 입장을 집중 추궁. 이수인의원(신민)은 전시주류국지원협정이 국회동의를 받아야 효력이 발생된다는 절차를 지적하며 『이같은 중대사안을 비밀에 부치는 것은 옳지않으며 따라서 협정문안을 공개,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 이상옥외무부장관은 『남북간의 직접대화를 통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때까지는 휴전협정과 유엔사령부의 존속은 필요하다』고 정부의 기존입장을 설명. 황병태의원(민자)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아·태각료회의(APEC)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서로 상치된 조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향후 본격전개될 통일외교에 대비,『통일원과외무부간의 업무조정이 시급하다』고 주문. 황의원은 이어 소련이 APEC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줄 용의와 함께 최근 말레이시아가 주장한 동아시아경제그룹(EAEG)의 태동이 우리경제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해서도 추가질문. 박찬종의원(민주)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는 남한뿐만아니라 북한의 핵시설까지 모두 포함해서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내 핵무기배치사실을 이제는 밝혀도 된다』며 핵존재사실과 관련,시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NCND)을 유지하고 있는 정부방침의 변화를 촉구. ▷내무위◁ 여야의원들은 이날 내무부를 상대로 ▲오대양사건 ▲경찰중립문제 ▲경찰관총기난동사건 ▲광역선거에서의 관권개입의혹 ▲민생치안확립방안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최기선의원(민자)은 경찰청발족과 관련한 제반문제를 중점적으로 따지면서 『경찰청이 단순히 내무부 외청이라는 일부직제개편의 개념을 넘어 어떤 역사적 소명의식이 있는가』고 묻고 『경찰 내부에 잔존하는 권위주의적 잔재와 관행을 어떻게 해소하고 참된 민주경찰로 전환할 것인가』고질문. 답변에 나선 이상연내무부장관은 경찰청발족과 관련한 추진상황을 설명하면서 『청발족을 계기로 국민의 신뢰받는 새로운 경찰상을 정립하고 치안역량을 한단계 높이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약속. 이장관은 이어 오대양사건에 대해 언급,『앞으로 수사중점을 ▲자수자들의 위장자수여부와 자수동기 및 배후관계수사 ▲사채거래관계및 행방수사 ▲오대양의 경영실태 ▲이른바 「오대양교」라고 칭하는 종교의 성격과 실체 ▲생존사원 상대 관련수사첩보 입수 주력에 두겠다』고 말하고 『제기된 의문점에 대한 심층수사등을 통해 국민의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변. 이장관은 서사연(서울대사회과학연구소)연구원 구속문제가 학술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야당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술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구속자들의 논문은 사회주의국가인 민중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할 것을 선전하는등 헌법질서를 전면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부연. ▷재무위◁ 한보에 대한 금융특혜지원여부가 핵심현안이긴 했으나 신민당의원들이 회의벽두 재무부현황보고 순서에서 「한보진상조사소위」구성을 「긴급동의」하자 김영구위원장(민자)이 『여야간에 논의할 시간을 갖자』면서 정회를 선포한 뒤 하오 늦게까지 공전. 김봉욱의원(신민)은 『채권은행단들이 지난 6월20일 채권보전이라는 미명아래 지난3월 가압류했던 수서택지 선납금 1백7억원에 대한 압류를 해지한 것과 21일에는 1백67억원을 신용대출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특혜조치』라면서 「진상소위」구성을 주장. 이에대해 민자당측은 『3일전 여야간사접촉에서 소관부처현황보고를 듣기로 합의해 놓고 갑작스레 무슨 소리냐』면서 『약속대로 현황보고를 듣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가서 소위구성문제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집. 신민당측은 『한보문제와 관련해 재무장관이나 은행감독원장이 상위에 출석해 석명하거나 진상조사소위에 대한 동의안을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처리하자』고 수정제의했으나 민자당측은 「선현황보고청취」를 내세우며 요지부동,결국은 절충을보지 못하고 정회상태에서 유회.
  • 유엔가입 그후의 한반도(사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계속에서 한반도정세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우선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을 하면 일단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의 가능성은 덜 느끼게 될것이다.그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유엔은 누가 뭐래도 현존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국제기구로서 그 권능을 갖고있다.걸프전의 전과정이 바로 그것을 증명했다.국제법적으로도 유엔 가맹국이 된다는 것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것을 약속하는 일이 된다.그 헌장 전문에 게재된바 공동의 이익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락해야한다.원칙적으로 「전쟁은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 즉 남북한문제 해결에 관한한 유엔가입 이후 일차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현안은 유엔군 사령부 지위와 이와관련된 남북한간 휴전체제이다.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군사적 제재를 가하기 위해 설치된 유엔사의 존재는 북한이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유엔헌장을 준수하는한 현실적으로 재규정될 수 밖에 없다. 유엔군은 당초 그것을 구성했던 대부분의 국가가 군대를 철수하여 현재는 그 주축이었던 미군 일부만이 남아있다.유엔사의 존재와 지위가 재규정될 경우 그에 따라 대두될 현안이 휴전협정과 주한미군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쟁억지수단으로서,또 세계전략 차원의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으로서 존재하면서 그 인계철선 역할이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지금 엄밀하게는 교전이 없는 전쟁상태,다시말해 정전상태에 있다.그 상태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데에 남북한 문제해결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여기서 이제 그 어려움을 깨뜨리자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북한도 그 당위성은 인정한다.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북한의 주장은 정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미군사령관인 유엔군 사령관이고 따라서 새로운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억지라도 보통이 아니다. 어느 경우의 휴전협정에서도 서명인의 국적과 협정의 당사국은 개념이 다르다.우리 정전협정의 서명자가 마크 클라크대장이었다고 해서 한국이 당사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한국정부의 사실상 승인이 없었다면 협정은 성립될 수 없었다.그리고 지난 38년동안 한국군은 정전위의 대표로서 또 지금은 유엔군측 수석대표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현실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현실은 그 활용여하에 따라 한반도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수단이 될수도 있다.통일의 길을 극적으로 앞당길수도 있다는 얘기다.따라서 이제 북한은 대국을 걸어야한다.군비통제와 당사자간 해결원칙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전쟁을 버리고 평화를 택해야한다.유엔가입후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휴전협정의 개폐문제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 미주학술회의 이항열교수(셰퍼드대) 발표

    ◎남북한 평화보장 「2+4조약」 긴요/휴전협정의 불가침조약 전환을 먼저/「미군 철수」카드로 남북동률 군축 유도 제7회 미주지역 학술회의가 「90년대 북한의 변화와 남북한관계」라는 주제로 12,13일 이틀간 워싱턴 근교에서 열렸다.통일원이 주최하고 재미 한인정치학회가 주관한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이항열교수(미셰퍼드대)의 「남북한긴장완화와 군비통제」를 요약 소개한다. 지금 남북한의 군사적 파괴력은 6·25때에 비해 근 60배가 증대됐다.남한측 예측에 의하면 한국에서 전쟁이 날 경우 1주일내에 2백4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1개월내에 사상자 5백만명에 건물의 90%가 파괴된다고 한다.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면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다.군비 통제는 남북한의 존재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북한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곤란과 외교적 고립때문에 군비통제가 필요하며,특히 김일성 사후의 정치사회적 안정을 바란다면 더욱 그렇다.남한의 경우 남북한 관계개선과 복지증진을 위해 군비통제가 필요하다. 그동안 군축 제안은 북한에서 64차례,남한에서 24차례 나왔으나 대개 선전효과와 외교적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북한측 제안은 군사 이동과 적대적인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전투병력과 군사시설을 비무장지대에서 철수시키자는 것이다.이것이 달성되면 총 병력수를 1992년까지 10만명으로 줄이고 군비경쟁을 중지하며 외국으로부터의 무기수입도 금지하자는 것이다.북한은 또 주한미군철수,한미안보협정폐기,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등을 요구하고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남한은 비무장지대를 문자그대로 비무장 완충지대로 만들고 불가침 선언을 통해 군사긴장을 완화하며 군사훈련에 있어선 상호 통지와 참관단 파견을 제의하고 있다. 남한의 군비 통제안 가운데 중요한 것은 남북한 양측의 병력 수를 똑같이 하자는 것이다.이 제안은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보다 훨씬 우세하며 이러한 불균형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의 군사력이 우세하다고 주장하나 객관적으로 보면 동등한 것 같다. 북한의 우려는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남한에 미군과 핵무기가 있는데다가 걸프전에서 미국의 위력을 보았기 때문이다.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6백∼7백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그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 원폭의 1천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2.7배나 되며 북한의 많은 비행기는 50∼60년대에 제작된 비초음속 비행기다.조종사의 비행 연습 시간도 북한은 남한의 3분의1에 불과하다. 한국의 내년도 국방 예산이 금년보다 24.6% 증액 요구된 것에 대해 북한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 군축안의 가장 큰 단점은 군축에 대한 기본 개념이 결핍돼 있고 군축으로 가는 단계적인 신뢰구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북한은 군사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신뢰 구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남북한 양자간의 상이점을 고려할 때 군비통제의 첫번째 과제는 양측의 군사력을 같은 비율로 점차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현재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화학공격능력은 큰 위협이 되고 있으나 북한측 군축안은 이에 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은 수백t의 화학무기 물질을 비축해 놓고 이를 수출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에선 병력 감축과 더불어 이런 생화학무기를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철수를 요구하는 주한미군 문제의 해결없이는 현실적으로 남북한간 신뢰구축방안과 분쟁해결 협정이 달성될 수 없다. 남한과 미국은 미군철수문제를 신뢰구축과 군축달성의 카드로 사용해야한다.미국의 점진적인 주한미군철수는 기정사실화 된만큼 남한은 한미간 미군철수협상에 북한을 참관자로 초청함으로써 남북한평화교섭의 능동성과 신뢰구축의 투명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간 군사신뢰 구조와 군축이 성공하려면 군사 긴장의 원인과 근원을 제거해야하며 어느 쪽도 군축으로 인해 그들 안보가 위협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한다.그 출발점은 양측 군대의 후퇴배치가 될 수도 있고,팀 스피리트훈련 문제와 상호군사훈련 참관이 될 수도 있다.그러나 서로간의 오랜 불신때문에 어떤 경우건 신중하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남북한은 국제적 긴장완화의 여건을 이용해야한다.미·일·중·소 4강은 한반도에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긴장을 원치않는다. 어떠한 군축도 신뢰구축 방안을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해결을 수반해야한다.정치적 해결책으로는 첫째,휴전협정을 불가침조약으로 대치하고 둘째단계로 미·일·중·소를 포함시켜 한반도에서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다.
  • “통일향한 큰 걸음” 유엔가입/국회동의안 처리 의의와 절차

    ◎“「46년 숙원」풀자… 초당적 지지로 뒷받침/안보리 심사뒤 「남북단일안」처리 확실/8월초 신청서 제출 목표,세부전략 수립 1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유엔가입을 위한 헌장수락동의안」이 여야만장일치로 통과됨으로써 유엔가입신청을 위한 국내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로써 유엔에서 가입절차를 거치면 한국외교 46년의 최대 숙원이자 남북한 통일을 촉진할 획기적인 계기가 될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은 두달후인 9월17일 실현되게 된다.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김대중신민당총재는 이날 찬성연설을 통해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해방이래 최대경사』라며 『유엔가입이 우리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큰 계기가 되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대유엔외교에 초당적 지지와 함께 우리 외교의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유엔가입을 위한 국내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14일 하오 노창희주유엔대사가 일시 귀국하는대로 유엔가입신청서 제출을 위한 세부전략과 노태우대통령의 유엔총회연설 등 유엔가입 절차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이상옥외무장관은 이어 가입신청서에 서명,오는 8월초 페레스 데 케야르유엔사무총장에게 이를 제출할 계획인데 가입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 이유는 남북한유엔가입에 대해 안보이 상임이사국간 묵시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안건처리에 있어 거부권을 갖고 있는 상임이사국들은 남북이 각기 따로 제출하는 가입안을 단일 결의안으로 「조용히」처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이는 특히 테러국가·핵안전협정미체결 등의 약점을 갖고 있는 북한이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 정부도 굳이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다.따라서 단일결의안으로 처리,안보리 이사국간 표결이 아닌 「합의」형식으로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 안보리의장은 헌장4조2항및 안보리의사규칙 58조에 따라 가입신청서 접수사실을 즉각 사무총장으로부터 통보받은 뒤 곧바로 안보리 정식문서를 통해 회원국에 고지한다.사무총장은 남북한의 유엔가입신청을 잠정의제로 채택하고 안보리의장은 이를 승인한 뒤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참여하는 「가입심사위」를 구성,정식 의제로 채택하게된다. 이같은 일련의 절차는 늦어도 8월9일까지 완료된다.왜냐하면 가입심사위는 총회개막일(9월17일)35일전(8월9일)까지 신규회원국 자격심사 결과를 안보리에 보고해야 되기 때문이다.안보리는 가입심사위원회의 실무적인 심사결과를 바탕으로 ▲가입신청국가의 평화애호국 여부 ▲헌장의무 준수 가능성 등을 중점심사,신규회원국으로 추천할지를 결정한다.이때 결정은 미·영·불·중·소등 5개상임이사국의 동의를 포함한 9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걸프전 이후의 새로운 경향에 따라 표결을 거치지 않고 합의방식으로 통과할 것이라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비상임이사국들은 8월 의장국인 에콰도르와 7월 의장국인 쿠바를 비롯,오스트리아·벨기에·예멘·자이르·코트디부아르·인도·루마니아·짐바브웨등 10개국이다. 안보리는 총회개막 25일전까지인 8월23일까지 심사결과를 사무총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는데 남북한유엔가입권고결의안을 8월12∼16일 사이에 회부하게 될 것으로 외무부는 전망하고 있다. 유엔의 1백59개 회원국은9월17일 제46차 유엔총회 개막당일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표결(참가국 3분의2이상 찬성)처리하지 않고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처리,남북한이 신규회원국으로 가입함을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북한과 남한이 각각 1백60번째,1백61번째 신규회원국으로 가입,남북한이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의 당당한 회원국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가입후 단기적으로 동서독처럼 남한에 흡수통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데 최대 역점을 두면서 유엔사해체와 휴전협정 대체를 위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등 대남정치선전공세의 장으로 유엔을 활용할 것이라는 게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국가가 별로 없고,최근 북한의 대외정책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대결보다는 화해·협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유엔에 가입키로 결정했던 것도 그들이 스스로 택한 길이라기 보다는 국제사회 분위기에 따른 강요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 노 대통령이 밝힌 남북관계 정책기조

    ◎“통일은 우리 손으로” 주도의지 천명/북방외교등 결실,“주변여건 성숙” 판단/「문화공동위」제의는 이질성극복 의지/지방의원 위촉으로 새 「평통」역할 기대 남북통일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의지가 한층 더 구체화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12일 명실상부한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재출범한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기 출범회의에서 통일정책의 기조를 총정리하여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통일정책기조와 관련,▲한반도문제는 남북한이 스스로 해결해야하고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통일이 유혈이나 비극을 수반해서는 안된다는 큰 방향을 재천명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을 언급한 것 같지만 최근의 한반도주변정세,북방정책의 결실,방미외교의 성과등 현재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대단한 함축성을 지니고있다. 한반도문제의 자주적 해결은 비록 분단은 주변강대국에 의해 이뤄졌지만 통일은 우리손으로 이룩한다는 것이다.실제 한소관계의 급진전,중국과의 관계개선등 일련의 정세변화로 한반도의 외부적 통일장애요인은 없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여기에 깔려있다.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말뒤에는 대북협상카드가 모두 남측에 있지 결코 주변강대국에 있지않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북한이 한반도의 핵문제 특히 주한미군의 핵이동문제도 북한이 미국과 얘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바로 얘기할때 실효성을 거둘수 있다는 메시지도 들어있다고 본다. 이같은 통일정책의 기조는 지난1년간 3차례에 걸친 한소정상회담,이달초의 한미정상회담등 일련의 통일외교를 통해 통일분위기의 성숙을 확인하고 동시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데서 그 바탕을 이루고있다. 이번 민주평통개회사에서 천명된 구체적인 통일정책가운데 주목해야할 대목은 ▲8·15경축행사 공동주최를 비롯한 「민족문화공동위원회」설치 ▲TV,라디오등 방송의 상호개방 ▲실효성있는 불가침선언채택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등이다. 이같은 통일정책의 제시는 뉴스라는 측면에선 별로 새로운 것이 없으나 6공들어 처음으로 초당적 범국민통일기구로 출발하는 자리에서 천명했다는 점에 매우 의미가 크다. 시군구및 시도의회의원들이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 전원위촉됨으로써 이번 제5기의 평통은 통일정책에 관한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의 결집된 의사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 기구에서 거른 통일정책은 그만큰 정통성과 함께 비중을 갖게되는 것이다. 8·15경축행사 공동개최등 남북교류문제는 「밴쿠버지시」의 반복이기는 하나 「민족문화공동위원회」설치는 새로운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위는 남북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민족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연구하고 언어의 이질현상을 해소하는 일들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40년이 넘는 오랜 단절기간으로 한민족의 생활양식과 사고마저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우선과제로 타결해야겠다는 노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있다. 남북의 방송교류는 동서독의 경험에서 알수 있듯이 민족의 이질화를 막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첩경이라고 할수 있다.동서독 양쪽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방송을 상호 시청해옴으로써 생활양식이나 사고를 하나로 묶을수 있었고 통일에 대한 마음의 벽을 이미 헐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불가침선언채택」이나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등은 이미 88년 노대통령의 유엔연설등을 통해 우리의 통일정책으로서 밝힌 것이다. 다만 노대통령이 「불가침선언」앞에 「실효성있는」단서를 붙여서 채택을 강조한 것은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제의하고 있는 「불가침선언」과 채택수순을 달리하고 있음을 표시한 것이다. 불가침선언채택과 관련,한국의 입장은 불가침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인적교류,군사면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불가침의 실효성이 있다는데 비해 북한은 당장 「불가침선언」만 채택한뒤 이를 근거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한다는 전술을 갖고 있다.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는 오는9월 남북한이 유엔에 함께 가입하게되면 남북관계의 최대현안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지난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당시 유엔군사령관과 중공군사령관 그리고 김일성 3자사이에 체결됐음을 들어 한국은 휴전협정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한국을 제외시키고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측의 주장이지만 한국측은 6·25전쟁의 당사국으로서 북한과의 직접협상에 의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는 원칙아래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8·15광복절을 전후로한 경축행사인 민족통일대행진(판문점 공동경축행사,서울·평양 통일대토론회,백두산∼한라산 국토종단순례,판문점 민속예술한마당)을 비롯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민주평통과의 협의를 거쳐 오는 15일 북한측에 공식제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초 북한측의 제의를 대부분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또한 노대통령의 이날 통일기본정책 재천명으로 오는 8월 27일 평량에서 중단6개월만에 재개되는 남북고위급회담도 크게 활성화 될 것같다.
  • “남북 「평화체제」로 바꾸자”/노 대통령

    ◎실효성 있는 「불가침선언」채택을/북에 방송교류·개방 촉구/이질화 해소 위해 「민족문화공동위」구성/민주평통 5기출범 개회사 노태우대통령은 12일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지양하여 한반도에 긴장의 시대를 종결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실효성있는 부가침선언을 채택하고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기 출범회의에 참석,개회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야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관련이 있는 국가들도 필요한 협조와 공동의 노력으로 이를 확인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나는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텔레비전·라디오방송부터 우선 상호 교류하고 개방해 나갈것을 촉구한다』고 말하고 『남과 북의 학자와 전문가가 민족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연구하고 언어의 이질화현상을 해소해 나가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 「민족문화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할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나는 북한측이 주장해온 것처럼 남북의 동포와 젊은이들이 참여해 광복절 경축행사를 함께 치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 8월15일을 기해 그것이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통일대행진을 실시하고 남북의 각계대표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대토론회를 갖는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것』이라면서 북한측에 대해 이의 수락을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이제 통일의 준비태세를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통일에 들 비용과 노력,통일과정에서 맞게될 도전에 대비하고 통일한국의 위상을 생각해야할때』라고 역설했다. 이날 회의에서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통일정책추진에 관한 보고」를 통해 『정부는 이제까지 추진해왔던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가일층 진전시켜서 이것이 자연스럽게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최부총리는 이어 『북한이 11일 재개를 제의해옴으로써 다시 열리게 되는 고위급회담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생산적인 대화의 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부총리는 그러나 정부는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먼저 채택하고,불가침의 토대가 마련된후 신뢰할 수 있고 실효성있는 불가침협정을 체결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남북교류 부진은 북의 선별초청 때문”/10일 본회의(의정중계)

    ◎「남북 유엔협력기금」 설치할 용의는/미군 핵과 북의 핵사찰은 별개문제 ◇김중위의원(민자)=유엔가입이후 북한의 외교전략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가.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남북한 유엔대표부 협의체 산하에 「남북한유엔협력기금」을 설치,유엔이 결의하는 모든 국제적 부담금을 공동으로 부담토록 할 용의는 없는가.북한의 대일·대미관계개선노력에 우리정부는 어느정도,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밝혀라.남북한간의 민간교류를 강화키 위해 서울대학교와 평량금일성대학간의 자매결연과 대학생의 남북유학교류까지 추진할 의향은.전쟁억지력의 지렛대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미 조야에서 대두되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속에서 남북간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복안은. ◇유인학의원(신민)=대소경협의 대가는 무엇이며 소련과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한반도의 비핵화지대를 위해 우리나라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사정거리 5백㎞이하의 전술핵의 전면철수를 단행할 의향은 없는가.통일비용의 산출근거는 무엇이며 1∼2년내에 통일돼도 비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대일무역 역조의 시정책과 일본문화의 침투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일제 징용 미불임금을 환불받을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수교를 미루는 이유가 무엇이며 대만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상회의원(민자)=북한은 이미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를 전제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이 70년말부터 계속 주장해온 「한반도비핵지대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북한은 앞으로 2∼3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서 철수시키기만 하면 앞으로 핵개발을 완전포기할 것으로 보는가.주한미군의 연차적 감축과 핵무기철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본노선에 입각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는데 정부의 견해는.지난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정상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는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사항으로 규정짓고 북은 무조건 핵사찰을 수락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군의 핵무기철수는 기정사실이 아닌가. ◇정 웅의원(신민)=남북한 유엔가입에 따라 대두되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포함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복안이 있는가.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유엔가입에 대한 절차를 북한측과 긴밀히 협조하여 동시신청,단일안건으로의 처리 등을 타결지어야 한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장관은 신민당의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의 내용을 검토한 바가 있는가.6공들어서 북한을 방문한 인사는 총3백23명인데 이중 순수한 민간인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이렇게 인적교류사업이 부진한 것은 정부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김제태의원(민자)=남북한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정부입장은 무엇인가.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베를린개최 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의 실체는.북한의 대일수교추진현황및 대미접근속도,미국의 태도 및 향후 전망을 말해달라.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중관계의 수교시기 및 수교이후의 전망은.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적정방위비와 이를 위한 확보대책은.소련및 중국의 대북군사원조현황과 우리정부의 대응책은. ◇정원식국무총리=정부는 국가안보·공공질서·남북관계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민간인들의 방북을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재야인사들의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북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체험,통일문제에 올바른 이해를 갖게될 것이다. 쌀·금융시장 개방문제는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있으며 구속자들은 지난 87년까지 모두 사면복권돼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고있지 않다.광주시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묘지공원화·위령탑건립및 관련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단체들과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천지무역과 금강산개발국제상사간에 남한의 쌀과 북한의 시멘트·석탄을 직교역하는 작업이 추진됐으나 북한이 시멘트·석탄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더러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며 연기를 요청했다.그렇다고 직교역길이 막혔다고 보진 않으며 그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일부 국내학술기관에서는 우리의 통일비용을 2천∼4천억원정도로 추정,통일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검토된 적은 없다.독일도 통일이후 당초 예상보다 통일비용이 2∼3배 더 소요되는등 통일시점에 따라 그 비용규모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북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도 어렵다.정부는 앞으로 통일비용규모와 재원조달방안을 신중히 연구하겠다. 남북간 인적교류가 부진한 이유는 북한이 친북 성향의 재야인사나 단체를 선별 초청 했기 때문이다. ◇이상옥외무부장관=북한과의 유엔대표부협의체구성문제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시각에 따라 평화를 지향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지난 5월 정부는 유엔가입안을 동시제출하는 문제를 논의키 위해 유엔주재 남북대표부간 협의를 제안했으나 북측의 긍정적 호응이 없었다.북한이 이미 유엔가입안을 제출했고 우리는 이달말이나 8월초에 가입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과거 동서독의관례 등으로 미뤄볼 때 유엔총회나 안보리에서는 단일결의안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원폭피해자의 치료·요양이 이뤄지도록 일본 정부와 교섭한 결과 현재 일본측이 40억엔 지원을 약속하는 등 가능한 범위내에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상연내무부장관=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현재 내무부 소관업무 1백66종을 시도에 이관했고 시 도에서는 3백82종을 시 군 구에 이관해 자율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지방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담배판매세 1조5천억원을 지방에 이관했고 내년에는 지방양여금을 1조원이상으로 확대해 재정자립에 기여토록 하겠다. ◇이종구국방부장관=1990년대 말까지는 국방연구비를 국방비 대비 5%로 확대해 첨단기술장비를 개발토록 하겠다.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NCND정책에 정부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스커드미사일 전환배치문제를 연계해 주한미군의 핵정책을 다루는 것은 불합리하며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주한 미군의 핵보유문제와 대북군사정책을 연계시킬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증강문제는 지역내 균형유지,전쟁억제력강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미군의 타지역이전,소련의 정책과 마찰을 빚을 우려도 있다.한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제한적인 교류협력에서 탈피해 외교적 측면에서 전향적인 협력으로 강화해 나가겠다.일본의 군사력증강에 대한 목적,군사력사용 용도 등에 유의하면서 대처하겠다.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순수한 민간목적이며 주기적으로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영변발전소는 송전선이 없고 재처리시설을 건설중이며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어 군사목적임이 분명하다.남북간 군비통제 협의는 북의 주장처럼 미군철수 등을 전제로 한다면 지루한 논쟁에 불과하다.군사정보교환·군인사교류·핫라인설치·대규모 군사훈련 상호참관 등 신뢰가 조성된 뒤 성과에 따라 군비통제 협상으로 진전돼 나가야 한다.
  • “남북관계 진전땐 보안법 개정”/정부,국회답변

    ◎“북 핵포기땐 남북군사시설 사찰 검토”/미 방위비분담 증액등 추궁 국회는 10일 정원식국무총리와 관련 국무위원을 출석시킨 가운데 본회의를 속개,통일 외교 안보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을 벌였다. 이날 질문에는 김중위(민자) 유인학(신민) 이상회(민자) 정웅(신민) 김제태의원(민자)등이 나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에 따른 대응책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에 대비한 대책 ▲북한과 미일관계정상화전망 ▲주한미군단계철수와 우리의 방위비분담증액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정원식총리는 『서경원의원등 밀입북자 처리문제는 남북교류가 전향적으로 대폭 확대되더라도 법과 절차에 따르는 문제이며 현재로서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진전이나 상황변화가 있을 때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는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정총리는 『중국과 북한은 소련과는 달리 아시아식 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동구권과는 달리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방식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히고 『북한의 내부변화도 점진적이고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한반도및 동북아평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미일과 협력,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남북간의 이해와 이질감 극복을 위해 대학교육협의회가 추진하는 학술교류도 적극 지원하되 대학생의 유학교류는 장기체제에 따른 신변보장 등 당국간의 합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우리의 이같은 입장을 앞으로 각종 남북회담이나 제의를 통해 북측에 계속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옥외무부장관은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관련,『남한내 핵무기존재여부에 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않는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 전쟁억지의 중요요소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존중해오고 있다』고 말하고 『한반도주변국의 완전한 합의와 보장없이 이 지역의 비핵지대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이장관은 『휴전협정 및 유엔군사령부는 남북유엔동시가입 이후에도 남북간 항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구국방부장관은 『북한이 국제기구의 핵사찰을 성실히 이행하고 핵재처리시설포기등 숨겨진 핵시설의 군사적목적 이용을 포기하는 것이 확실하게 확인된다면 남북한내 모든 군사시설에 대한 공개사찰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그러나 북한의 핵시설과 주한미군의 핵보유여부에 대한 동시사찰허용여부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사찰은 핵확산방지조약가입국의 의무사항이며 주한미군의 핵정책과는 별개사항』이라면서 『북한의 핵사찰과 스커드미사일 전환배치 문제와 주한미군의 핵보유여부 공개를 연계시키는 것은 불합리한 조치』라고 밝혔다.
  • 한반도평화「노태우구상」가시화/위싱턴정상회담의 의의와 전망/긴급대담

    ◎「통일이후」 구도 접근… 영속 파트너십 구축/“미·북한관계 핵과 묶어 상당한 외교압력”/「북방정책」에 대한 미 일부의 불신 완전해소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미국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신질서구축에 공동노력키로 다짐함으로써 한미관계를 상호보완의 협력관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유정렬교수(외국어대)와 김국진교수(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의 긴급대담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전망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유정렬교수 김국진교수 (무순) ▲김국진교수=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후에도 외교·경제·안보등 모든 면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성숙되고 영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것은 탈냉전으로 변화하는 동북아의 새로운 정세에 맞게 한미관계를 다져나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다시말해 한반도가 동북아 냉전탈피의 핵심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태우대통령은 탈냉전분위기에 맞게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 의사를 밝혔으며 부시 미대통령은 이에대해 적극지원을 다짐한 것입니다.양국정상은 또 국제사회에서 격상된 한국의 위상을 토대로 통일과정뿐 아니라 통일이후에도 한국이 동북아정세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유정렬교수=해방이후 한미관계를 보면 50,60년대의 대미의존적 과정과 70,80년대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거쳐 이제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이같은 한미관계의 위상변화속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접근,동북아평화구축등에 있어 양국간의 역할과 기능등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 주변은 최근 몇년사이에 급속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북방외교는 소연과의 수교에이어 중국과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또 북한역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고 따라서 미·북한간의 관계도 멀지않은 시점에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이같은 국내외정세의 변화속에서 양국정상들은 우선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한반도의 통일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신장된 경제력등을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내기위해 각급 남북대화를 시도하는등 꾸준하게 북한과의 대화노력을 기울여 온게 사실이지요.이런 바탕위에서 미국 역시 우리의 통일노력과 남북이 자주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도록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원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김교수=양국정상들이 북한측에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체결을 촉구하면서 핵관련시설과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사찰을 요구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양국은 북한측이 핵안전협정의 당사국이 돼야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와 아울러 핵개발 가능성이 있는 핵연료재처리시설도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확인한 것입니다.북한의 핵개발은 남북관계의 차원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주변국가와 동북아평화질서 구축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뿐만아니라 소련·일본·중국등이 공동으로 우려하고 있는 현안입니다.따라서 일본·미국등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파탄에 직면한 경제적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북한으로서도 결국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교수=그렇습니다.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체결과 핵관련시설및 물질에 대한 조건없는 핵사찰을 촉구한 것은 북한에 대한 상당한 외교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북한은 유엔가입 발표이후에도 핵사찰 거부등으로 인해 유엔가입을 거부당할까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미국측은 오는11일 열릴 미일정상회담에서 가이후(해부)일총리에게 북한의 핵사찰문제를 일북수교협상의 확실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할 것으로 관측됩니다.또한 이번 회담에서 북의 핵사찰과 주한미군의 핵철수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것은 북한의 억지주장 가능성에도 쐐기를 박은 것이라 할수 있죠.그리고 핵사찰 이행 문제는 경제난 극복등을 위해 대미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는 북한에게는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회담은 특히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일정상회담(1월)을 비롯,미일(4월),일소(4월),한소(4월),중·북한(5월),중소(5월)정상회담등 동북아 국가정상들의 행보가 잦아지고 있잖습니까.특히 소련이 선린우호조약체결을 우리에게 제의한 시점에서 한미정상이 만나는 것은 북방외교의 속도를 조절하고 우방국들과 동반자 관계의 동방외교를 다져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또한 다변화되어 가는 국제정세변화 과정에서 최근 걸프전이후 강화되어온 양국 협력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다져졌다고 여겨집니다. ▲유교수=특히 한반도 통일을 성취하기까지는 한미안보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는 점을 양국 정상이 재확인한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한미방위조약에 근간을 둔 한미군사협력관계는 동북아 안보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교수=미국방부는 지난 4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거듭 확인한 바 있습니다.우리측 입장 역시 남북간의 군사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구도에서 일정수준의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요.따라서 양국정상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입장조정의 측면보다는 향후 전략변경이 있을 경우 사전 협의해 나간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여부 문제도 언급됐습니다만 이는 양국간의 견해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와 주변정세변화 등과 관련,입장을 정리해 놓기 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올가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실현될 경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유엔사령부 해체등의 문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김교수=노대통령이 후버연구소 연설에서 아태각료회의(APEC)의 발전을 강조한 것은 APEC를 주축으로한 아태지역협력에 미국도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한미간 양자적 협력관계가 이제는 국제기구의 다변화 현상 속에서 새로운 양자 협력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것이죠.유럽공동체(EC)의 시장단일화,북미자유무역협정(FTA)등 지역경제 블록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아태지역내 자유무역경제협력의 필요성은 어느때보다 증대되고 있습니다. ▲유교수=이번 회담은 우리의 북방외교추진과 관련한 미국의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전통적인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결코 미국의 이익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는 점입니다.미국이 소연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측과도 관계개선을 기울여 나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그동안 우리의 북방외교결실이 미국측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도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교수=6·25라는 동족상잔을 경험했고 남침의 당사자인 김일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통일을 위한 당사자간 노력은 상호신뢰와 평화체제의 구축이 전제돼야 할것입니다. 이같은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한과 주변국가들의 관계정립을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라고한다면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남북대화체계를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라 할수 있습니다. 이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뤄지면 주변분위기의 성숙과 함께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한 본격적인 남북협상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교수=한미양국은 작년에 통상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양국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자유무역체제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천명했습니다.자유무역체제원칙은 우리의 통상·무역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따라서 농산물 시장을 비롯한 시장개방은 불가피할 것이지만 이문제는 해당 국가의 특성을 고려,급속히 이뤄져서는 곤란하리라 봅니다.결국 양국 관계장관회의를 비롯한 실무자 협의를 거쳐 어느정도 조정되어야 할것입니다.
  • 유고,다시 교전상태/연방군,슬로베니아공 공습… 23명 사상

    【류블랴나 외신 종합】 유럽공동체(EC)사절단의 중재로 유고연방정부와 슬로베니아공화국 지도자들이 휴전에 합의한지 하룻만인 2일 슬로베니아공 영내에서 철수하던 연방군 장갑차 부대와 슬로베니아 민병대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슬로베니아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날 전투는 크로아티아 국경에 인접한 크라호프크시 고즈마을에서 포위된 상태인 연방군 기갑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또다른 기갑부대에 슬로베니아 민병대가 공격을 가해 발생했으며 3시간 가까이 계속된 전투로 인해 연방군 병사 10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으며 전차 수대가 파괴되는등 양측에 상당한 피해를 냈다.오스트리아 국경에 인접한 고르냐 라드고나지역에서도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 연방군은 전폭기와 무장헬기를 동원,슬로베니아 민병대를 공습했고 슬로베니아공 수도인 류블랴나 상공을 위협 비행했으며 교외의 방송중계탑 3곳을 폭파함에 따라 슬로베니아 전역에 걸쳐 TV및 라디오방송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전투직후 연방군측은 『슬로베니아의 일방적이고끊임없는 휴전협정 위반에 대해 모든 전투력을 동원,응징하겠다』고 선언했고 옐코 카친 슬로베니아 공보장관은 연방군이 탱크를 트럭에 싣고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날 하오3시(한국시간 하오10시)부터 휴전에 들어갈 것을 제의했다. 스티페 메시치 신임 유고연방간부회 의장(대통령)은 이번 전투를 중지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이기 위해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로 떠났으며 연방간부회의도 긴급소집했다. 한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분쟁방지센터는 2일 재발된 유고슬라비아 분쟁과 관련,즉각적인 휴전과 슬로베니아 영토방위군을 포함한 모든 부대들의 원대 복귀를 촉구했다.
  • 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5·끝

    ◎북경자료 분석통한 진겸교수의 추적/“장기전에 대비하라”…모,인해전술 지시/80만 병력 3조로 나눠 교대 투입/유엔 총공세에 12개군 지리멸멸/미의 휴전안 소 통해 전달받고 무력적화 포기 모택동은 중국지원군을 3개조로 나누어 교대로 한국전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스탈린에게 전달했다. 유엔군을 상대로 조기승리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는 않았다.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서 모는 『앞으로 몇년이 걸리더라도 미군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승리를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51년 3월중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팽덕회는 4월6일 중국지원군 당위원회확대회의를 소집,『단기전을 수행하되 장기전에도 대비하라』는 모의 교시를 전달했다. 팽은 이 자리에서 51년중 60만의 병력이 추가징발될 것이며 군사문제가 국가의 최우선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유엔군은 중국군의 추가병력이 도착한 4월중순까지 반격을 계속,3월중순 서울을 재탈환하고 전선을 38도선으로 옮겨갔다.맥아더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짓기 위해 중국본토를 공격할 것을 워싱턴에 건의했다. 그러나 트루먼대통령은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진격하자 전쟁을 그쯤에서 끝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견차 때문에 트루먼대통령은 4월11일 맥아더장군을 유엔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후임에 리지웨이장군을 임명했다. 미국이 전전 영토를 회복하는 것으로 전쟁의 목표를 줄여잡은 것과는 달리 중국은 완전한 승리의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51년3월 중국군 제3,9,19군단이 지원군으로 도착하자 팽덕회는 제5차공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4월6일 중국군당위원회에서 팽덕회는 총반격작전 개시일을 4월20일경으로 잡았다. 팽은 이때 미군이 북한지역의 동서해안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졌으나 기선을 잡기 위해서 공격날짜를 서둘렀다. 중국군 사령부는 이 5차공세를 공격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전쟁을 완결짓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5차공세는 4월22일밤 시작됐다. 유엔군 주방어군인 미제24,25사단을 일시에 포위,섬멸하고 서울을 재점령한다는 목표하에 북한인민군 제1군을 포함,총12개군의 대규모 병력이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작전은 예상보다 어렵게 진행됐고 서울공격에 나섰던 제64,65군은 유엔군의 공습·포공격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모택동은 그러나 5차공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는 서울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병력을 돌려 동부전선을 칠 계획을 세웠다. 5월16일 재차공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한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나 역시 대대단위 이상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조금씩 남하하다가 5월21일 공격을 멈추고 말았다. 이틀 후인 5월23일 새벽 유엔군이 총반격에 나서자 중공군은 허겁지겁 퇴각하다 제60군 예하 1백80사단이 전멸하는등 「한국전 기간중 최대의 피해」를 입은채 5차공세를 실패로 끝냈다. 모택동도 마침내 완전한 승리 대신 휴전을 수락할 뜻을 비추기 시작했고 동시에 미국도 종전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미국무부는 당시 프린스턴대 교수로 국무부 고문이던 조지 캐넌을 유엔 주재 소연대사 야코프 말리크와 만나도록 주선,두사람은 5월31일 롱아일랜드에 있는 말리크의 관저에서 만났다. 캐넌은 전전경계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협상을 통해 한국전을 끝내고 싶다는 미국정부의 뜻을 밝혔고 소연정부는 이를 즉시 중국측에 전달했다. 이 메시지를 받은 모택동은 6월초 북경으로 김일성을 불러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양자는 전전영토보장과 한반도 주둔 외국군대의 점진적인 철수를 약속한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51년6월23일 말리크소대사는 공식적으로 휴전을 제의했고 중국이 이에 동의했다. 이어 7월10일 중국·북한대표와 유엔군측 대표가 개성에서 첫대좌를 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휴전협정조인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2년의 세월이 걸렸다. 중국이 무력승리 정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한국전참전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엔군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땅으로 진격해 들어올 것에 대한 안보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모택동과 중국지도부가 갖고 있던 공산혁명 이데올로기가 보다 중요한 동기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모는 한국전을 아시아공산혁명의 한 단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모는 중국이 한국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적 의무」로 생각했다. 이러한 혁명논리가 동원될 때 비로소 모가 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전부터 한국전참전준비를 했고,왜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들었는가가 보다 분명하게 해명된다. 한국전참전을 통해 중국은 군사전략과 외교면 등에서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현대전에서 무기·병참 등의 열세 속에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가 원자탄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둘째 소연이 공군지원을 하겠다던 당초약속을 어긴 것은 그뒤로 모가 소연을 불신케 된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은 한국전에서의 패배로 그때까지 추구해온 아시아혁명전략을 전면 재조정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대미접근 위한 「유화제스처」/북한 미군유해 인도의 배경

    ◎유엔가입 앞두고 선전효과 노린듯/미군 포함,아직도 1만여구 잔존 추정 북한 쪽에서 24일 「미군유해」 11구를 미국 쪽에 인도한 것은 극히 폐쇄적인 그들의 일상관행에 비추어볼 때 대단한 선심행사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군사·외교관측통들은 일반적으로 미국 등 자유세계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유화제스처로 보고 있다. 우리의 유엔 외교정책에 밀려 오는 가을 남북한 동시가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수세적 입장에 놓인 북한으로서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호감을 사둘 필요가 무엇보다 절실했을 것이라는 게 그 논거이다.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절차가 우리 쪽의 주도 아래 이뤄지는만큼 자칫하다가는 앞으로의 유엔 외교무대에서 상당한 열세를 모면하기 어려워지리라는 판단 아래 미리부터 손을 쓰고 있다는 풀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유엔 참전국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전 시실종자문제에 대해 그들이 아직까지 성의를 가지고 대처하고 있으며 이는 곧 참전국에 대한 우호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참전국은 물론그 주변 유엔 회원국들에게 「평화애호국」의 이미지를 심으려 하는 셈이다. 그것도 6·25발발 41주년에 즈음한 타이밍을 맞춤으로써 선전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북한 쪽에서는 이에 앞서 우리 쪽이 유엔가입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타진하고 있던 지난해 5월에도 미국 쪽에 은근히 유화제스처를 쓰면서 5구의 「미군유해」를 넘겨주었었다. 이들 유해는 정밀진단 결과 대부분이 미군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긴 했지만 그런대로 미국 쪽에 호의적인 인상을 준 것 만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인도된 11구 가운데 미군이 과연 몇 명이나 포함돼 있을지는 의문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북괴군의 때아닌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난 50년 6월25일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53년 7월27일까지 37개월 동안 국군 14만9천5명을 비롯,유엔군 3만6천8백37명,경찰 3천5백여 명,민간인 37만3천여 명 등 모두 56만1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국군 71만7천여 명,유엔군 11만5천여 명,경찰 7천여 명,민간인 23만여 명 등 1백6만9천여 명이 부상했다. 국군9천6백34명과 유엔군 6천2백67명 등 1만5천여 명은 포로가 됐으며 국군 4만3천여 명,유엔군 2천2백32명,경찰 7천여 명,민간인 30만여 명 등 35만여 명이 실종됐으며 민간인 8천4백여 명은 납북됐다. 전쟁기간 동안 북한은 평북 강계 등에 모두 29곳의 국군과 유엔군 포로수용소를 운영했고 만주지역에도 18개의 포로수용소를 따로 두었었다. 북한과 만주지역에 수용되어 있던 국군과 유엔군 포로들은 휴전 직전 포로교환 때 대부분 송환됐으나 수용소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부상병들이나 영양실조,과로로 숨진 희생자들은 휴전 뒤 1년이 지난 54년 8월17일 유엔군 쪽에 유해로 인도됐다. 당시 유엔군 쪽에 인도된 유해는 모두 4천23구로 미군의 유해가 1천8백69구였다. 유엔군 쪽에서는 아직도 북한에 8천5백6구의 미군유해와 함께 2천2백32구의 영국·캐나다·터키 등 참전국 장병유해가 더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엔군 쪽에서 전투 중 실종자(MIA)로 추산하고 있는 장병의 수도 2천여 명이나 된다. 유엔군 사령부는 이에 따라 휴전 이래 줄곧 이를 전사자와 실종자 1만여 명의 유해를 넘겨줄 것을 공산군 쪽에 요청해오고 있다. 나아가 유해를 찾아내는 작업을 위해 중립국감시위원단을 포함한 전쟁당사국의 다국적 조사반을 구성하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북한 쪽에서는 실종 미군이나 유엔군 유해의 발굴작업은 군사정전위원회의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이같은 제의를 일축했다.
  • “중립국감독위 존속”/외무부 밝혀

    정부는 20일 오는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앞두고 지난 53년 휴전협정 이래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 존속해온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 4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감독위원회가 해체될 것이라는 최근 일부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외무부 당국자는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휴전협정체제의 불가분의 일부로 본다』면서 『따라서 휴전협정 제62조에 따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항구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중립국감독위원회는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휴전협정에 의해 이 협정의 운영을 위한 양대 기관으로 설치됐던 것』이라고 말하고 『이 두 기관은 지난 38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재발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설명했다.
  • “탈고립”… 평양의 「워싱턴승부수」/잇단 유화제스처…양국관계 전망

    ◎“큰 매듭 풀려야 대일수교 실현” 인식/핵사찰 수락·유해 송환… 돌파구 마련 안간힘/미선 남북대화 진전과 연계… 본격 협상 회피 북한의 대미 접근공세가 가열되고 있다. 북한은 20일 리처드 스틸웰 전 유엔군 사령관이 이끄는 미국의 고위민간 군사사절단의 평양방문을 받아들이는 데 이어 24일엔 판문점에서 정전 이후 두 번째로 미군유해 11구를 송환할 예정이다. 북한의 외교통인 한시해는 지금 미국을 누비며 평양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접촉과 대화에 여념이 없다. 그는 특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초청,주목을 끌었다. 이 밖에도 2,3건의 미국 학자 초청이 평양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이 밝힌 유엔가입 결정이나 IAEA(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 체결방침도 따지고 보면 대미 관계개선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이 같은 대미 공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미군 유해 11구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키로 한 것은 한마디로말해 북한측의 후퇴다. 지난해 5월 미군 유해 5구를 휴전협정 후 최초로 미국에 인도한 북한은 이해 9월 제12차 미·북한 북경접촉에서 두 번째 유해송환 용의를 표명하다 이를 대미접촉 다각화의 미끼로 삼기 위해 정부간 협상을 제의하는 한편,미 정치인들로 구성된 유해인수단을 평양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북한이 인도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고 비난하며 유해소환은 판문점의 군사정전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의 유엔주재 차석대사 허종은 지난 2월 뉴욕에서 미 상원 원호위 소속 로버트 스미스 의원과 접촉,유해 인수를 위한 그의 방북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1차 송환 때처럼 미측이 주장한 절차를 따른 것이 북한의 이번 미군 유해 송환이다. 1976년 북한의 도끼만행 사건 당시 한국에서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스틸웰 장군은 이번 평양 방문에 앞서 북한측에 대해 고위 군사지도자 면담과 군사문제의 협의를 요구했다. 그는 특히 면담 희망대상자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최광 인민군 총참모장 등을 거명하면서 이들과의 면담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방북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웰 장군이 18일 평양으로 향발한 것은 그의 주장이 관철됐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 무언가 대화를 트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그 동안 일본과의 수교협상을 통해 무엇보다도 대미관계의 선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통절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왜냐하면 일본이 북한에 대해 내세우고 있는 수교의 전제조건이란 미국의 주장을 사실상 되풀이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워싱턴을 상대로 「큰 매듭」을 먼저 풀지 않고서는 일본과의 수교나 서구제국과의 관계개선을 원만하게 진행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북한이 미·북한 관계개선의 선행조건으로 워싱턴이 가장 중시해온 국제 핵사찰 수용을 천명하고 북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대미교류에 적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큰 매듭」을 풀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사찰 수용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미·북한 관계의 급속한 진전 가능성을 뜻할 수 있다. 미·북한 관계는 오는 9월이 국면 전환의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IAEA이사회에서 북한은 9월까지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9월엔 남북한의 역사적인 유엔 동시가입이 실현될 예정이다. 이때 북한은 연형묵 총리를 유엔에 보내 대미 평화공세를 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들이 가시화되면 그땐 워싱턴이 지금까지 공언한 대로 평양에 「화답」할 차례다. 워싱턴의 화답으로는 우선 ▲북한에 대한 통신개방을 비롯해 ▲무역규제 완화 ▲미·북한 접촉수준 격상과 접촉장소 확대 ▲고위 인사교류 허용 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북한간 수교협상의 개시나 대표부 교환 같은 조치는 아직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평양의 후속조치까지 지켜본 뒤 화답을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컨대,핵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의 IAEA 안전협정 서명만으로는 미흡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내 협정발효 조치의 완료와 핵무기 개발포기에 대한 확인 절차까지 마친 뒤 관계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워싱턴은 북한의 남북대화 호응 여부와 유엔가입 후 북한이 취할 태도도 중요한 척도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나타날 평양의 정책이 서울과 워싱턴에 대해 과거처럼 적대적이냐,아니면 현실 인정 쪽이냐에 따라 관계개선의 폭과 강도가 좌우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이 평양과의 관계개선에서 가장 크게 고려할 요소의 하나는 서울의 반응과 입장이다. 미국은 미·북한 협상이 한국을 훼손시켜서는 안 되며,남북대화가 획기적 성과를 거두기 이전엔 북한과 본격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작년 6월 한미정상회담 때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미·북한 관계개선에 대한 한국정부의 견해를 물었다. 이 질문은 오는 7월2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 워싱턴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별 실익이 없는 평양과의 관계개선 문제를 위해 맹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 남북 「평화협정」체결 검토/유엔가입후 한반도안정장치 마련 전제

    ◎휴전협정과 대체… 유엔사 해체도/이 외무/북한의 대남정책 변화 불가피 이상옥 외무장관은 13일 『남북한의 유엔가입 후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보장장치가 마련된다면 주한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포함해 현재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지역정책연구소(이사장 송용식) 주최 조찬간담회에 참석,「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 및 동북아질서 재편에 미칠 영향」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마친 뒤 가진 일문일답을 통해 『남북한 유엔가입이 휴전협정에 즉각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며 다만 유엔가입 후 유엔사 해체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를 북한이 주장해올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장관은 『한반도의 평화보장 장치가 마련된 뒤에 휴전협정이 폐기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며 『유엔사는 휴전협정의 한 당사자인 만큼 당장 이를 해체하는 것은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없어지는 것이 돼 한반도의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북한은 유엔에 가입한다고 해서 단기적으로는 대남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대남정책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남북이 따로 유엔가입신청을 내더라도 결국에는 단일가입결의안으로 일괄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영문 알파벳 국호표기순서상 북한(DPRK)이 1백60번째,우리(ROK)가 1백61번째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의 예상되는 정치공세에 쐐기/정부의 기존입장 변화는 아닌듯(해설) 이상옥 외무장관의 남북한 유엔가입 후 유엔군사령부 해체 및 평화협정대체 검토발언이 기존 정부입장의 변화를 의미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는 최근 학계 등에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한반도 핵문제와 함께 취급이 거의 금기시돼온 문제를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언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이 장관의 발언은 예상되는 북한의 정치공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지 정부의 기존입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장관은 이날 『휴전협정의 폐기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전제조건으로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을 제시했다. 정부가 그 동안 줄곧 밝혀온 평화보장장치는 남북대화의 실질적 진전과 기본조약 및 통상·통행·통신 등 3통협정의 체결,대남 혁명노선의 명시적 포기 등을 들 수 있으며 이 장관의 이날 발언은 유엔가입 후 예상되는 북한의 정치공세에 쐐기를 박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하여(사설)

    우리 국방정책의 기조라고도 할 「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작금년에 걸쳐 크게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이 한미연합사령부 지상을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한국측에 이양하리라고 전해진 것도 그 중 하나이다. 특히 한국군의 자체 방어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향후 18개월내에 한미연합사 지상군의 지휘권을 넘겨받게 됐다고 미 국방부도 발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3월 한미 양국이 군사정전위 유엔군측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한미연합사 부참모장 황원탁 소장)을 임명한 데 이은 또 하나의 발전적인 조치로서 평가될 것이다. 한국측의 이같은 조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측에 국방의 전력과 책임을 더 많이 맡도록 하고 태평양지역 주둔 미군 병력을 감축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서 이미 예상돼왔다. 주한미군의 리스카시 사령관도 주한미군 감축과 병행해서 이뤄지는 지휘권 이양은 미국의 한국방위공약에 변화를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미군의 역할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한반도 안보정책과 관련한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제22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한국방위에 있어서 한국군의 역할을 크게 증대시키는 몇가지 조치를 마련한 바 있다.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와 한미연합사 지상군구성군(CFC) 사령관을 92년말까지 교체키로 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 추진된다면 그 두 가지 조치가 다 예정보다 조기에 실현되는 것으로서 이는 한국방위에 있어서 한국군의 지위향상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6·25전쟁중 미군측에 넘겨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와 휴전협정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서명거부로 빚어진 이른바 휴전협정 「당사자」 문제는 이후 40년 가까이 주권국가로서의 위신과 자존심에 적잖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온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북한측은 판문점 정전위원회에서는 물론 여러 루트의 남북대화 때마다 번번이 교활한 방법으로 이 작전권 문제와 비당사자 문제를 악용해왔다. 또 현실적으로 미군 사령관이 형식적이지만 한국군의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지나도록 정전위 대표가 미군측이었고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미간에는 한반도 유사시 미 전투부대의 신속한 증원을 보장한다는 취지 아래 두 정부가 조기체결에 박차를 가해온 전시주유국지원(WHNS)협정이 마무리단계에 있다. 오는 연말까지는 이 협정이 발효될 것으로 보여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과 관련된 일련의 한미 안보협력조치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두가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가속화시키는 조치들이다. 최근 북한은 그들의 유엔정책을 대폭 전환,남북한 동시가입에 순응하고 나온 바 있다. 이 전환 역시 그들의 전략전술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남북한 군축 및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문제도 새롭게 추진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이제 한미 안보협력은 본래의 구도대로 한국방위의 한국화 방향으로 완전히 궤도를 잡고 착실한 효과를 얻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로서는 자주국방의 완성도 되는 것이다.
  • 통일정책의 변화와 대응(남·북한 유엔시대:6·끝)

    ◎북한 「고려연방제」 수정 불가피/동시가입 따라 「단일의석」 전제 붕괴/9월전 「남북연합」과 유사안 나올듯/우리측,대화 통한 점진적 신뢰구축 계속 모색 오는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으로 이어질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 앞으로 남북한의 통일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재까지 나온 결론은 한마디로 남과 북의 통일정책은 단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바뀔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기존의 대남 혁명노선,통일전선전략을 수정하지 않은 채 불가침선언 선 채택,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 이른바 평화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입증하듯 북한은 유엔가입 결정을 발표한 후 방송보도 및 고위관리들의 해외발언 등을 통해 「하나의 조선」 논리를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을 뿐 아니라 『대남 정책의 기본입장을 바꿀 생각도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반면 우리 정부도 최호중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대남 정책이 변했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에따라 우리의 대북 정책의 기본입장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듯 점진적이고 기능적인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기존의 통일정책에 수정이 가해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는 오히려 북한이 유엔가입 결정을 계기로 불가침선언 조기 채택과 주한미군 및 핵 철수 등 정치 군사적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에 대비,기존의 「선 신뢰회복 후 정치·군사적 현안논의」라는 대북 정책의 논리적 설득력을 보강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정부는 북한이 유엔가입 결정과 때를 맞춰 남북한 정치인·학자·언론인들이 참여하는 대토론회를 오는 7월 하순이나 8월초 개최,통일의 방도에 관해 협의하자고 제의하는 등 기존의 통일전선전략에 기초한 대남 선동을 늦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남북고위급회담 등 남북간 공식적인 당국간의 대화가 상당기간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또 이 같은 판단과 더불어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이 독자적이고 합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중소의 압력,더 나아가 이를 가능케 한 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과라는 점에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현행 대북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으며 통일의 길을 여는 정도라는 자신감을 보다 강하게 갖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우리의 대북 정책방향도 상당기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기존의 패턴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단기적인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나 학자,대부분의 국민들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겠다는 것은 곧 모든 문제를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유엔헌장의 정신에 동의하면서,국제무대에서 책임있는 한 구성원으로 역할하며 서로의 실체를 존중하겠다는 선언인만큼 남북간 평화공존의 바탕 위에서 통일로 이어지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특히 북한이 이번 결정을 외부로부터의 「강요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합리주의와 현실주의」에 눈뜨고 있는 자신들의 변화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도,북한의 대남 정책도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경우 북한 통일정책의 기본골격의 하나인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다른 모든 정책에 앞서 수정,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기존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따른 북한의 유엔정책은 연방제 실시 후 단일국호하에 유엔에 가입하거나,통일이 되기 전 북과 남이 유엔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하나의 의석으로 공동가입하는 것이었으나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키로 결정한 이상 올 가을 유엔에 가입하기 전에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은 수정발표될 수박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정내용은 남북지역정부에 외교 군사 입법권을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것으로 우리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남북연합과 개념상 상당히 접근된다는 것. 그러나 이 수정통일안 역시 남북연합을 통해 공동체 형성의 기반을 닦은 후 궁극적으로 통일헌법에 의한「1국가 1체제」의 통일국가로 나아간다는 우리의 통일방안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또 북한이 정치협상회의 소집 주장 등 통일전선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권한과 책임있는」 당국간의 대화를 통한 통일방안 모색이라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대북 입장과도 근본적인 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열 각종 방안들이 「바람직하고 또 실현성 있는」 정책들로 제시되고 있으나 이를 풀어나갈 실마리는 남북당국간 회담인 고위급회담의 재개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또 유엔헌장 정신의 수용으로 북한이 고위급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의했던 「남북한간 화해와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의 근본정신에도 사실상 동의한 것으로 간주,회담 재개시 이를 채택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결국 남과 북의 유엔 동시가입이 곧 남과 북의 통일정책이 전향적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관계가 좀더 합리적이고 현실에 기초한 바탕 위에서 풀려나갈 가능성을 높여준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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