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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훈가족 출신 「유일한 별」 유보선 준장

    ◎휴전선 무너지는 날 빨리 왔으면…/「6·25 산화」 부친 뜻 새삼기려/어머니 모시고 금강·백두산 구경 가는게 꿈 『6·25때 전사한 부친의 뜻을 잇기위해 군인이 됐지만 아직도 통일의 날은 알 길 없어 안타깝습니다』 40여만명에 이르는 6·25 보훈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장군⊃이 된 유보선 육군준장(육사24기·49). 유장군은 광복 50주년이자 6·25 발발 4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합동참모본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각별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남북통일의 선봉으로 탱크를 몰고 휴전선을 돌파할 날이 언제쯤일까』 『45년 반평생을 홀로 살아온 어머니(김봉희·71)의 「한」은 언제쯤이나 풀어드릴 수 있을까』 어느덧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난 유장군은 귀밑이 새파랗던 시절,육사에 지원할 당시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64년 육사에 지원한 것은 오로지 부친의 유지를 이어 남북통일에 몸을 바치기 위해서였기 때문. 부친 유상재씨는 48년 7기로 육사에 입교해 대위로 근무중 6·25를 맞아 전사했다.그러나 유해를 찾지 못해 유장군등 유가족들은 해마다 현충일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위패에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있다. 사후 소령으로 추서된 유상재씨는 전쟁발발 5일전 육군헌병학교에 입교했다가 전쟁이 터지자 학교에서 나와 전선투입을 자원했었다.그는 50년 8월26일 얼굴과 목등 3군데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던중 미처 완쾌되기도 전에 다시 전쟁터로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같은해 12월18일 2사단중대장으로 전투를 치르다 다음해 1월초 가평전투에서 전사했다. 유장군은 그동안 부친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지난해 비로소 부친의 실종처리서를 찾아내는데 성공,부친의 사망경위를 파악했다. 유장군은 『5살때 부친의 철모와 권총을 갖고 장난을 치다 넘어져 다친 기억이 있다』면서 『이런 기억 때문에 서울고를 졸업한뒤 곧바로 육사를 지원했고 군에서도 통일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 기갑병과를 택했다』고 말했다. 유장군이 당시 생도들에게 인기가 낮은 병과를 택한 것은 서독육사 재학중의 경험때문.우리나라는 65년 처음으로 육사생도 가운데 1∼2명을 뽑아 서독육사에서 수학시켰으며 이 때 유장군이 선발돼 서독육사 졸업 1호를 기록했다. 그는 68년 소위로 임관,소대장과 전차중대장·전차대대장·기갑여단장을 거쳤으며 91년7월 준장진급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꿈은 금강산·백두산 구경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에게는 결코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는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1·4후퇴(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7)

    ◎중국군 파상공세… 2개 사단 서울 재점령/모,김일성에 “북조선군 사단수 감축 필요” 전문/4∼5월 춘계대공세 맞춰 소제무기 증강 촉구 파상공세를 펼치던 중국군은 마침내 51년1월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그후 1월8일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15227).바로 팽덕회,김송,박일우등 3명의 전선사령관이 서울점령직후 김일성앞으로 보낸 작전보고서의 사본이었다. 『1.제116보병사단과 117보병사단병력 일부가 오늘(1월4일)서울을 점령했음.적군 병력은 한강이남의 강안으로 패주했음.적은 한강과 산악지대등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해 잔여병력을 끌어모아 시간을 끌며 이후 전투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음. 2.만약 적이 한강이남을 따라 방어선을 펴고 김포공항을 장악하고 제물포항을 이용해 보급품을 조달할 경우 서울은 적의 공습과 포공격의 위협을 받을 것임.이는 아군의 춘계대공세에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만약 적을 한강이남지역에서 더 패주시킬 경우 김포공항을 아군이 장악함은 물론 재물포항도 아군수중에 넣을 수 있음.아울러 춘계대공세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임.적이 남으로 계속 후퇴할 경우 아군은 수원을 점령한뒤 추가 작전지시를 기다리겠음. 1월4일 24시. 팽덕회,김송,박일우』 ○“인민애국세력 승리” 이 전문을 읽은 스탈린은 전문위에다 자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모택동앞으로 보냈다.『본인은 팽덕회를 비롯한 사령관들이 1월4일자로 김일성에게 보낸 작전건의문을 읽었음.필리포프의 견해로는 이 건의가 타당하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생각함.진심으로 서울을 점령한 귀하에게 축하를 보냄.이는 인민애국세력이 반동세력에 거둔 위대한 승리임』 추후 작전전개와 관련,1월16일 모택동은 김일성앞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냈다.이 전문사본은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스탈린에게도 보고됐다(전문번호 N15 603). 『현재 중국 동북부에서 훈련중인 10만명의 조선인 신병들은 2∼3개월후면 훈련이 끝남.이들을 인민군 각급 부대에 배치하되 각 중대인원은 1백명이상,사단병력은 1만∼1만명이상으로 구성돼야함.북조선군은 사단,여단급 부대가 너무 많음.모든 병력을 15개정도의 사단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소련제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그럴 경우 조선문제를 최종 마무리할 춘계대공세(4월∼5월사이)때 이들이 중국의용군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음. 향후 2∼3개월사이 중국의용군과 북조선군은 신병들을 보충해 부대를 새로 개편하는 중대한 대규모 작업을 해내야함.신병들에게 고참병들의 경험을 가르쳐야 하고 무기증강,철도보수,식량 및 탄약저장등을 마무리해야함.앞으로 있을 군사작전에서 적군사령부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의 2가지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됨. 1.아군의 공세에 밀려 크게 저항을 못하고 조선을 떠남.우리의 준비가 완벽하고 전력이 자기들보다 우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적은 물러날 것임.2.적은 부산,대구지역에서 최후저항을 벌일 것임.하지만 이 경우에도 저항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조선을 떠날 것임.물론 이를 위해선 우리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됨.그렇지 않을 경우 1950년 6월에서 9월사이 북조선군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것임.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2월에 공세작전을 한번 펼친뒤 다시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 대작전에 대비한 병력재편성에 착수해야함.중국과 조선동지들은 인내를 갖고 필요한 준비에 임해줄 것을 바람』 이렇게 1·4후퇴를 계기로 김일성,모택동,스탈린 3인은 다시 한번 한반도무력통일이 임박했다는 벅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아울러 중국군의 대공세를 계기로 작전의 거의 모든 전권을 어느덧 모택동이 행사하고 있음도 이 전문은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을 받아본 김일성은 곧바로 중국군 전선사령관 팽덕회를 만나 후속문제를 논의했다.팽덕회는 김과의 회담결과를 1월19일 모택동에게 보고했다.이 전문도 물론 북경의 소련대사관을 통해 1월21일자로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됐다(전문번호 N15974). ○모,작전 전권 행사 『김일성과의 회담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함. 1.김일성을 비롯한 북한동지들은 미군과 그의 괴뢰군들을 남쪽으로 패주시키기 위해서는 북조선군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음.북한동지들은 최소한 2개월은 휴식을 취하며 병력재편성에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음.박헌영은 이와 다른 입장을 보였으나 본인의 추가설명을 들은뒤 수긍했음.소련군사고문관도 앞으로 있을 추가 대공세는 결정적인 마무리작전이 돼야하기 때문에 북조선 당정치국의 뜻에 따라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게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했음. 2.해안방어 관련.소련으로부터 기뢰1천개,대전차 지뢰를 비롯한 각종 지뢰 20만개를 제공받았음.이중 10만개는 해안방어에 사용키로 했고 기뢰는 제일 중요한 항구들의 방어에 사용키로 했음. 3.5개군 편성건.각 군은 3개사단으로 편성키로 결정했음.현재 1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들은 모두 4∼5개사단으로 편성돼있음.그러나 이들 사단들은 모두 3천∼5천명의 병력만 보유한 불완전한 사단임.본인은 남조선군포로들중 2만명을 5개군에 골고루 배치해 넣자고 제의했으나 북조선동지들은 이에 반대했음. 4.새로 해방된 지역에서 일할 장교숫자가 부족함.서울인구는 이전에 1백50만이었는데 현재도 1백만이 남아있음.식량,연료난이 극심함.피란민,실업자들에 대한 보조가 전무함.인민군,중국의용군이 보유한 식량도 최저수준임』 팽덕회는 이 전문에서 이밖에도 크고 작은 각종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해 시행에 옮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그중 몇가지만 더 소개한다.점령지역 통제강화,적군 사기저하를 위해 노력,북한주민들의 봄파종 지원,피란민 지원대책,미군·남조선괴뢰가 일시점령중인 지역에 대한 정치선전공세강화,적의 후방에 침투할 특수부대창설 등등.하지만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재차 협의키로 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1·4후퇴를 계기로 한껏 고조됐던 중국군,북한군진영의 축제분위기는 1월말을 고비로 눈에 띄게 수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는 곧이어 불안,공포,때에 따라선 엄청난 히스테리현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관련문서들은 또한 중·소간에도 불협화징조가 커져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스탈린은 계속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피하려 했다.소련군사고문단,조종사를 비롯한 군병력 일부를 한국전에 파견하기는 했지만 매번 모택동,김일성 양자로부터 몇차례씩 간곡한 파견요청을 받은 후에야 마지 못해 이에 응했다. 스탈린은 또한 병력지원뿐 아니라 무기,탄약지원에도 모,김일성 두사람이 요청한 것보다 훨씬 못미치는 양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소련의 형편 역시 크게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전협상은 시간벌기 51년 1월28일자로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제4차 공세작전을 펼 뜻을 밝히고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의중을 물었다.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같은 날짜로 전선의 팽덕회장군앞으로 보낸 작전지시문을 동봉했다(전문번호 N16052.51년 1월29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 다음은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의 주요내용.『서울과 재물포인근 지역으로 진격한 적군 2만∼3만명을 격퇴시키기 위해 제4차 공세작전준비에 즉각 착수할 것.대전­안동 북부지역을 점령할 것.재물포와 서울,그리고 한강이남지역을 확고히 장악한뒤 전선을 남하시킬 것.중국군,북한군 병력을 15∼30㎞북쪽으로 후퇴시킨뒤 임시휴전협상에 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적들은 우리병력이 북으로 물러나고 한강을 자기들이 장악한 뒤에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임.4차 공세가 끝나면 적들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평화협상을 제의할 것임.그렇게되면 이 협상은 중국,북조선에 유리하게 됨.이후 아군은 2∼3개월 휴식과 준비기간을 거쳐 결정적인 제5차 대공세를 감행할 것임』 어떤 경우에도 불리한 상황에서 휴전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과 휴전협상은 추가 대공세를 펴기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할뿐이라는 점을 전선사령관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작전지시문이었다.
  • “미 6·25때 북한 원폭투하 검토”/일 NHK 보도

    ◎평강시 목표로 히로시마 3배규모 계획/“한반도대상 첫 기록”… 일 학자 미서 발견 2차대전후 냉전시대에 일어난 6·25동란 당시 미국은 38선 북쪽인 평강을 원자폭탄투하 목표지역으로 검토한 사실을 보여주는 극비문서가 발견됐다고 일본 NHK­TV가 23일밤 보도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중국본토에 대한 원자폭탄투하를 검토한 바는 알려져 있으나 한반도에도 원폭투하를 검토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는 전했다. NHK는 일본 릭쿄(입교)대학의 아라 다카시(황경) 강사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극동군문서철 가운데서 이 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서는 2차대전후 일본과 필리핀·한반도를 관할한 미국 극동군이 6·25전쟁 발발 3개월후인 1950년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1년간에 걸쳐서 한반도전선에서 원폭사용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각도에서 검토한 내용을 기록한 기밀문서다. 문서는 원폭투하에 관해 극동군 각부서가 의견을 밝힌 것과 작전을 입안한 막료 제3부의 검토결과를 종합한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중 1951년9월의 막료 제3부 문서에 원폭투하목표를 나타낸 지도가 첨부되어 있으며 현재 휴전선에 가까운 북한의 평강이라는 도시가 투하목표지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미군은 평강에 투하할 원자폭탄규모를 40Kt으로 검토했으며 이는 2차대전당시 히로시마(광도)에 떨어진 원폭의 2∼3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보도는 덧붙였다. 미군이 북한지역에 원폭을 투하할 경우 소련도 원폭으로 맞설 가능성을 미국이 예상한 것으로 이 문서는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극동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와 요코다를 원폭 발진기지로 검토한 데 대해 같은 극동군에서도 군사적으로 위험하다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는 풀이했다. 이와 관련,한반도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경응대) 교수는 『원폭투하지점을 나타낸 지도를 본 것은 처음으로 매우 놀랐다』면서 『미국이 원폭을 사용해 어떻게 하든지 전황을 타개하려고 했음을 엿보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중국군의 대공세(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16)

    ◎중,핵전초기 소총 실탄 모자라 고전/36개 사단에 6개사단 분량뿐… 모,소에 지원 요청/주소 중대사­그로미코 「38선 재돌파 여부」도 논의 중국군 파병문제를 논의키 위해 모스크바로 극비 파견된 주은래는 10월15일 모택동 앞으로 다음과 같이 짧막한 전문을 보내왔다.『필리포트 동지는 조선에 군사적 개입을 결정한 중국공산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10월18일.노신이 고강의 말을 인용해 스탈린에게 보고한 전문) 이 전문을 보낸 이후 중국지도부 내에서는 한국전 참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당시 러시아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던 고강이 이같은 사실을 목단 주재 소련총영사관 직원들에게 알렸다.중공당정치국 내에서 이같은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목단의 소련총영사관 직원인 레도프스키,바즈노프장군은 이를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다음은 10월25일 레도프스키 총영사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 ○“즉각 조선파병” 주장 『조선전쟁 참전과 관련한 주은래의 전문보고가 있은 뒤 중국의 참전 여부를 놓고 중국지도부내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함.고강은 팽덕회에게 즉각 조선파병을 실행할 것을 모택동에게 함께 청하자고 주장했음.두사람은 당장 중국군을 파병치 않으면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해 중국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했다고 함.두사람은 첫째로 미군이 조선전역을 차지한 뒤는 중국군 파병명분이 없어진다는 점과 둘째로 미군이 국민당을 무장시켜 조선·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나아가 중국까지 공격할 것이라며 즉각 파병을 주장했음. 다른 중공당 지도자들도 고강·팽덕회 두사람의 입장에 동조해 당정치국은 조선파병을 결정했다고 함』 한편 노신 대사가 입수해 보고한 이날의 회의 분위기는 파병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보다 뜨거웠음을 보여준다.『10월24일 조선파병 문제를 논의키 위해 민주 제정당 대표와 정부대표가 참석한 특별회의가 열렸고 주은래가 공식보고를 했다.참석자 다수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하지만 일부는 미국이 강한 반면 중국은 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싸우면 중국이 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어떤 참석자는 미국이 조선,나아가 만주까지 점령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그 경우 소련과 미국이 전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참석자들은 왜 소련이 중국과 함께 조선파병을 않는가고 따졌다.회의 끝 무렵에 모택동이 발언을 했다.그는 조선은 중국의 관문이며 일본도 과거에 조선을 점령,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을 공격했다고 말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모는 또 소련은 중국과 매우 우호적이고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직접 병력을 조선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1950년 2월1일 체결한 중·소조약에 의거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종결정은 이렇게 내려졌고 이어서 중국군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노신 대사는 10월27일 인민해방군이 조선에서 참가한 최초전투에서 남조선군 1개 대대를 궤멸시키고 수개 산봉우리를 점령했다고 보고했다.평양의 슈티코프 대사도 같은날 같은 내용의중국군의 최초전투 참가를 보고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스탈린과 김일성은 크게 고무됐다.중국군이 전선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스탈린은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 ○스탈린,중 참전에 고무 시일이 지나면서 중국군은 무기,특히 탄약부족으로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다.11월7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소총·자동소총 실탄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6 637) 『조선에 파견된 우리 군은 주로 적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갖고 싸우고 있음.따라서 무기의 종류와 구경이 각양각색이라 탄약 생산에 큰 어려움이 있음.특히 소총과 자동소총의 탄약 공급이 문제임.중국의 군수공장은 필요한 탄약의 생산능력이 매우 낮음.…중략…현재 중국의용군은 36개 사단으로 편성된 2개 병단임.그러나 확보된 탄약은 6개 사단이 쓸 분량밖에 없음.51년1월∼2월까지 36개 사단이 쓸 무기를 공급해주기 바람』 이와 함께 장황하게 쓴 필요 무기목록이 첨부됐다. 12월1일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격려전문을 보냈다.이 전문에서 그는 중국군의 선전을 치하하고 『현대장비를 갖춘 미군과 싸우는 기회를 통해 중국군도 현대화된 강한 군대로 거듭 태어날 귀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는 등 장황한 칭찬을 늘어놓았다.(전문번호 N97 68.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50년 12월4일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 왕자향이 그로미코 외무차관을 면담했다.중국정부의 입장을 대신해 왕대사는 한국전 상황을 전하면서 계속되는 패배로 미국·영국 진영에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고 특히 미정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왕대사가 그로미코를 찾은 목적은 연일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는 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남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의논키 위함이었다.그로미코가 기록해 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는 이날 대화내용 일부를 소개한다.(문서번호 N517.그로미코와 왕자향대사의 대화 비망록) 『나(그로미코)는 외국 언론매체들에도 영국과 미국간 불화에 관한 보도들이 있다는 그(왕자향)의 분석에 동의했음.그리고 최근 들어 맥아더가 취하는 행동과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점을 나는 지적했음.본인은 또 미국은 한반도에서 이같은 불리한 상황 전개로 인해 매우 당황해하고 있다고 말했음.왕대사는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소·중과 한반도문제와 관련,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는지 나의 견해를 물었음.나는 아직 미국측으로부터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어떤 협상 제의도 없었다고 답했음.미국의 본심을 알 수는 없다고 본인은 말했음. 왕대사는 철저히 비공식적인 사견임을 전제,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게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 역시 사견임을 전제,중국은 현재의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답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음』 개전 초기 때처럼 38도선을 돌파해 남한 전역을 점령하자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일치한 것이다. ○유리한 상황활동 공감 두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왕대사는 본인(그로미코)에게 예를들어 미국이 장개석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장개석군과 함께 남조선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와 관련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편지내용을 인용해 미군병사들은 일본군보다도 더 형편없는 군대라고 혹평했음』 12월7일 스탈린은 주은래 앞으로 전문을 보내 향후 휴전협상과 관련 중국이 취할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전문번호 N23343) 『휴전과 관련 귀하가 내건 조건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함.이 전제조건들이 충족되기 전에 군사행동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음.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3개국(영국·스웨덴·인도를 일컬음) 대표 앞에서 우리의 카드를 너무 솔직하게 펴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서울이 해방되기 전에 중국이 카드를 먼저 내보여서는 안됨.더구나 미국이 중국이 내건 이 조건들을 유엔의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이용할 수도 있음.미국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됨.따라서 현상황에서 우리는 다음의 2가지 카드만 내보여야 함. (1)중국정부는 영국·스웨덴·인도대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군사행동 종식을 환영함.중국은 남조선과 중국이 관련된 군사행동을 가능한한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음. (2)따라서 우리는 휴전에 관한 유엔과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음』 ○“서울 점령선 협상말라” 스탈린의 의도는 중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섣불리 휴전협상에 임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새해를 맏은 51년 1월4일 모택동은 팽덕회가 1월3일자로 전선에서 보내온 전문사본 1부를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중국군의 대공세와 국군의 후퇴를 담은 전선상황 보고였다.(전문번호 N15120.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 『우리 군은 동부전선의 양강에서 서부전선의 문천에 걸쳐 공세를 계속해 적의 수비선을 돌파했음.저항은 강하지 않음.적은 신속히 남으로 후퇴해 큰 손실은 입지 않았음.51년 1월3일 낮 12시까지 우리는 포로 3천명,1백50대의 차량과 탱크,포 1백문 이상을 노획했음.…중략…이같은 공세작전으로 서울·제물포·수원·홍천 등을 재점령한 다음 아군은 일단 공세를 멈추고 휴식을 취해 전력을 재정비,강화하겠음』 중국군의 의도는 휴전이 아니라 38도선 이남으로 공세를 계속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국 참전」 주도인물은 고강·팽덕회/모,전선상황 스탈린에게 직접 통보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누가 과연 참전을 주도하였느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이번 자료는 이에 대해 고강과 팽덕회가 그 중심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앞으로 중국측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더 상세한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또한 이번 자료에는 소련은 왜 중국과 함께 파병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중국내에서 상당했었으며,이를 소련이 이미 알고 있음도 공개되어 있다. 이번 회의 내용에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뒤에도 스탈린이 무기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11월7일의 모택동 전문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36개사단병력에 고작 6개사단분량의 무기,즉 필요량의 6분의 1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이는 소련이 실제의 약속과는 달리 적어도 초전에는 무기를 거의 대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주소대사가 중국군의 38선 월경을 문의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는 중국군의 38선 월경이 소련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리고 당시 일부에서 운위되고 있던 휴전논의에 대해서조차 스탈린은 직접 개입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뒤에 이에 응할 것을 주은래에게 권고하고 있음도 밝혀졌다.이러한 권고와 함께 모택동이 전선의 상황을 직접 스탈린에게 통보하는 데서 우리는 스탈린이 이 전쟁의 전개에 얼마나 깊숙이 직접 들어와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이번 회를 통해볼 때 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동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박명림
  • 쌀제공,남북관계 발전의 전기돼야(사설)

    북한에 한국 쌀을 제공하는 문제를 협의해온 북경 남북한차관급 쌀회담이 다소의 진통을 겪기는 했으나 마침내 극적인 타결을 본 것은 반가운 일이다.이번 합의는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1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마주앉아 이루어낸 화해와 협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남북 쌍방의 전례 없는 양보자세와 화해협력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이러한 정신이 이제부터의 남북관계 전반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가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바란다. ○남북한 전례없는 양보의 승리 우리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전제조건 없는 대북쌀제공을 제의해 왔다.이 제의에는 북한을 민족 공존의 동반자로 돕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순수한 대북 화해·공존의 의지가 담겨 있다.지금 북한의 식량 및 물자부족은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특히 식량사정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북한의 올해 곡물수요량은 6백72만t이지만 94년 생산량이 4백12만t,자급률이 61.4%에 그쳐 2백59만t이나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최근 북한을 다녀온 한 재외동포는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하루 두끼먹기운동」을 알리는 선전포스터와 플래카드를 직접 목격했으며 식량배급이 제대로 안돼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그런데도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쌀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은 외면한 채 동남아·일본 기타 세계를 상대로 쌀 공급을 요청해 왔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북의 요청에 호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의 동기는 인도주의보다 정치적 계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가회담 북경아닌 판문점서 그같은 일본의 책략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지적한 바 있다.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우리와의 차관급 쌀 대화에 나서고 이를 당국간 대화로 인정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이 식량위기라는 체제 내부의 문제를 놓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민족공동복지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는 것은 큰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북핵문제라는 남북관계 최대의 걸림돌이 치워지게 된 상황에서 실질적인 남북교류를 적극 확대해 갈수 있는 역사적인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가 곡물제공 및 경수로공급을 위해 남북대화채널은 꾸준히 가동될 것으로 전망 된다.그러나 이번 회담의 타결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1차적인 여건의 조성일 뿐 관계개선 그 자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경제교류협력위 가동 바람직 북한은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합의서」에 서명해 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그동안 남북간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어버린 전례가 여러차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여전히 북한의 태도여하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본합의서」정신부터 되살릴 것을 북한 당국에 촉구한다.우선 쌀회담 타결을 계기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약속된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가동시켜 추가곡물제공 협상을 진행하되 이번에는 제3국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92년 5월 발효이후 한번도 열린 적이 없는 남북경제공동위원회가 가동된다면 남북협력과 교류가 활성화 될 수 있으며 남북관계개선에도 획기적인 기여를 할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우리에게 선의보이라 우리정부가 인도적인 입장에서 무조건 쌀을 제공하는 만큼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주기 바란다.최근 납북된 우성호 선원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휴전 이후 납북돼 아직도 억류돼 있는 4백38명의 남쪽 사람들도 송환하는 문제를 놓고 남북이 계속해 협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이산가족의 상봉과 자유로운 왕래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도 바람직한 북한의 호응일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남북화해·협력시대의 새로운 문을 여는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하는데 동참해 주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 러,인질극 주모자 인도요구/“불응땐 휴전 중단” 체첸에 경고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 정부는 21일 체첸지도부가 부됴노프스크 인질극 주모자들을 러시아에 인도하지 않으면 체첸의 휴전을 중단,체첸게릴라 소탕전을 재개할 것임을 경고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전했다. 이 통신은 체첸주둔 러시아군사령관의 발표를 인용,조하르 두다예프 체첸지도자는 이날 하오 6시까지(현지시간) 인질사건이 테러행위였음을 시인하는 한편 3일내에 주모자들을 러시아당국에 인도하지 않으면 러시아군이 체첸게릴라 소탕전을 재개할 것임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 “러­체첸반군 23일까지 휴전”/인테르팍스 보도

    ◎러군 단계철수도 합의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와 체첸반군은 20일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평화협상이 계속되는 오는 23일까지 체첸에서 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평화협상에 참석한 러시아 대표들의 말을 인용,양측은 또 러시아군의 체첸으로부터 단계적인 철수에 대한 세부사항에도 합의했다고 전했다. 인테르팍스통신은 또 러시아와 체첸 협상대표단은 러시아군 일부를 체첸남부 3개 마을에 남겨놓기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이 마을들에는 군사적 지위를 부여해 테러 및 게릴라 활동을 방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체첸 반군,러 인질 대거 석방/의원 등 백50명 볼모로 귀국

    ◎다게스탄지역선 러 초소 공격… 4명 사살 【부됴노프스크 오이신 종합】 러시아 남부도시 부됴노프스크에서 지난 5일간 러시아인 인질을 붙잡고 항거하던 체첸반군들이 19일 하오 4시2분(한국시간 하오 9시2분)쯤 인간방패를 자원한 인질과 함께 부됴노프스크를 떠나 체첸공화국 남동부의 반군점령지역인 베데노지역으로 출발했다고 러시아 관리들이 전했다. 체첸반군 1백43명은 러시아인 인질 1천5백여명 대부분을 모두 병원에 남겨놓고 기자 16명,러시아 하원의원 8명 등을 포함한 자원인질 약1백50명과 함께 러시아정부가 제공한 버스 7대에 나눠타고 체첸반군의 사체를 실은 냉동트럭 한대와 함께 경찰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떠났다고 알렉산드르 모길니 러시아총리 대변인이 전했다. 병원에 남아있던 인질들은 체첸반군들이 떠나자마자 병원밖으로 나와 자유의 몸이 됐다. 이에 앞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군의 체첸 철군을 제외하고 평화회담 재개,체첸내의 휴전,반군의 안전한 귀환등 반군이 내건 요구조건을 수용했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체첸반군 약 80명이 19일 체첸공화구과 다케스탄 자치지역 사이에 있는 러시아군 초소를 공격,러시아군 4명을 사살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세르게이 메드베데프 대통령대변인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아침 일찍 체첸반군과 4시간 전투를 벌인 끝에 이들을 격퇴했으며 이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고 이통신은 전했다.
  • 한·미·일 시각/남북한 관계 진전의 단초 열리다(경수로 타결)

    ◎서울/미흡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일만 『항복문서가 아니라 외교협상의 산물임을 이해해 달라』.콸라룸푸르 북­미 준고위급회담에서 타결된 합의문안에 대한 13일 공노명 외무장관의 솔직한 토로였다. 이같은 언급 속에는 타결 결과가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대체로 수용할 만한 수준이라는 정부의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정부로선 당초부터 대북 경수로 공급시 계약협상과 설계·건설은 물론 사후관리등 전과정에서 주도적 역할확보가 최상의 목표였다.이는 북한핵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발전계획이라는 명분에 따라 우리측이 경수로지원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만큼 당연한 원칙이었다. 우리측이 이번 콸라룸푸르 회담에 나선 미국측에 한국형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합의문에 명기토록 강력히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서는 한국표준형원자력발전소(KSNP)라는 용어나 울진 3,4호기를 참조발전소로 한다는 등 직접적 표현으로 이를 문서화하지는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네바 북­미 합의에 대한 북한의 계속적 이행의지를 확인했다는데서 애써 상당한 의의를 찾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권능과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한국형 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인정했고,이를 보장하는 장치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이를테면 비록 한국형을 합의문에 명기하지는 못했지만 「2개의 냉각제 유로를 가진 가압 경수로 2기」,「현재 건설중에 있는 것」등의 기술적 표현으로 이를 보완했다는 것이다.이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원자로는 한국형 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이 집행이사국으로 참여하는 KEDO가 경수로 노형과 주계약자를 선정토록 합의한 사실이야말로 한국형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담보라는게 정부측의 대체적 시각이다.KEDO 설립협정은 1천Mw급 한국표준형원자로 2기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탓이다.정부는 이날 하오 한·미·일 3국이 참여하는 KEDO 집행이사회를 열어 이같은 설립규약을 재확인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부내 일부 전문가들이 이번 합의에대해 내심 상당한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예컨대 한국형을 명백히 못박지 않은데다 경수로 공급시 KEDO의 역할과 함께 미국의 주접촉선 역할을 인정하는 이중적 합의를 함으로써 북측이 한국형과 한국의 역할을 배제하려는 기도를 계속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모든 당사자 득준 국무부의 개가 경수로공급에 관한 미국과 북한간의 콸라룸푸르 합의는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북한의 체면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는 점에서 미국내에서는 일단 이 회담을 주도해온 국무부의 개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경수로의 한국형 명기와 한국업체의 주도적 건설참여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국에 대해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 주장의 수용을 확약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기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역할을 인정토록 함으로써 합의문에 「한국형」이라는 표기는 없지만 실제로는 한국형을 채택토록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 합의로 북한이 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모델를 수용하고 KEDO가 선정하는 주계약자와 공급계약을 맺게됨으로써 앞으로 KEDO가 경수로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게 됐다.또한 북한의 경수로 건설이 국가대 국가의 국제안보적 차원보다는 민간차원 혹은 기술적 차원으로 포커스가 전환되는 결과도 가져올수 있게 됐다. 또한 클린턴 대통령도 친서에서 앞으로 한반도 핵문제의 완전해결을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재개가 필수불가결이라고 밝힌바와 같이 앞으로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강력하게 대두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1주일 예정에서 3주를 끌어온 북·미간의 콸라룸푸르 접촉은 최종합의에 이를때까지 몇차례의 결렬 고비를 넘기며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온 끝에 극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비상식적이고 상궤를 벗어나는 경우를 자주 겪어온 미국무부 관리들은 이번 합의가 KEDO와 북한 대외경제위원회간에 올해안에 체결키로한 경수로공급협정으로 순탄하게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번 합의는 그동안 미·북한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큰 장애가 제거된 것으로 앞으로 미·북한간의 관계개선 또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우선 대북한 중유제공문제는 앞으로 미기술진이 방북,중유전용방지를 위한 장치에 합의할 경우 예정대로 추가공급분 5만t의 제공이 이행될 예정이다.또한 폐연료봉 안전처리문제 역시 미전문가팀의 6월중 방북합의로 빠른 시일내 장기안전보관방법이 강구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평양간 연락사무소 개설문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규제완화 조치등도 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공급협정 추이와 남북대화재개 여부등에 따라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도쿄/최종 계약까진 먼 산… 더 지켜보자 일본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경수로지원문제에 대해 합의에 이른데 대해 일단 환영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정부의 대북한 접근에 속도가 붙을 것은 분명하다.일본의 대북한 접근에 장애가 돼왔던 커다란 암초가 하나 제거됐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지난주 북한과 미국의 협상진전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또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형」의 명시 여부로 한국정부가 미국과 긴급협의를 가질때 일본정부는 타결여부와 관련,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한국정부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결국 회담이 타결될 것으로 보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체제정비를 요청하는 「한수 먼저 두는」대응을 보여왔다.핵문제가 KEDO로 넘어오는 만큼 경수로 공급의 범위,공급사업비의 변제방법등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정부는 12일 한국방문을 마친 갈루치대사를 맞아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일본정부는 대북한접촉에서도 발빠른 대응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일본은 지난 4월을 전후해 경수로지원문제가 난국을 맞이하고 있을 때도 북한에 여당대표단을 보내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그 뒤 정부차원에서는 경수로협상 진척상황을 고려해 공식적인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물밑 접촉은 지속해 왔다.최근 비공식 접촉을 통해 북한측으로부터 「평양과 도쿄를 오가며 교섭하자」는 전향적인 제의를받아두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또 북한이 요청한 쌀원조문제에 대해서도 분위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현재 쌀문제는 한국이 제의한 조건없는 쌀제공의사를 북한이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강력한 견제로 진전이 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연립여당과 농림수산성등의 당정협의에서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인 문제이므로 한국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제공하자는 강경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하튼 일본은 10억달러 가량의 경수로지원금을 내놓으면서도 북한과 대화통로를 닫힌 상태로 놔둘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접근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북한도 외교와 경제측면에서 일본접근이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양자간에는 「함께 춤을 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수로지원까지는 구체적인 계약단계에 들어가서도 넘어야 할 산과 강이 많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경수로지원 추진상황을 조금은 더 지켜 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동진 단장·갈루치 대사 공동회견/“중유전용­폐연료봉 감시 등 난제”/대북관계개선 「휴전선병력」 등 해결돼야 13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회를 마친뒤 갈루치 미핵대사는 『경수로 제공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고 강조했다.다음은 갈루치 대사와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의 공동회견 일문일답. ­지금까지 경수로 노형 선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장애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갈루치)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설,중유 제공,중유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및 다른 나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일,계약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일등 모두가 어려운 일이다.지난 7개월동안의 노력보다 더 애써야만 할것으로 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의 기업인과 기술자들이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는가.또 남북간의 경제관계 전망은. ▲(최동진)때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명의 기술자와 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더불어 물자 왕래도 필요하게 된다.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이런 바탕 위에서 경제협력이 점차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 타결에 따라 미국과 북한간 연락사무소 개설이 가능해졌다.외교관계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갈루치)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일련의 회담이 열렸었고 앞으로도 개최될 것이다.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탄도미사일과 엄청난 재래식 군사력의 휴전선 전진배치등 우려되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북­미 합의문 전문 미국대표단과 북한대표단은 콸라룸푸르에서 95년5월19일부터 6월12일까지 94년10월21일의 북­미 기본합의문의 이행과 관련한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북­미 기본합의문 이행에 관한 정치적 약속을 재확인 했으며 특히 동합의문에 입각한 경수로 사업의 원활한 이행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결정하였다. Ⅰ,미국은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에 관한 94년10월20일자 미대통령의 보장서한이 계속유효함을 재확인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미국 주도하에 북­미 기본합의문에 입각,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사업의 재정조달 및 공급을 담당한다.합의문에 명기되어 있는 바에 따라 미국은 경수로 사업에 있어서 북한과의 주접촉선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미국 국민이 필요에 따라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KEDO 대표단 및 작업반의 대표가 된다. Ⅱ,경수로 사업은 각각 두개의 냉각재 유로를 가진 약 1천㎽(e) 발전용량의 가압 경수로 2기로 구성된다.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 노형은 미국의 원설계와 기술로부터 개발되어 현재 생산중인 개량형으로 한다. Ⅲ,북한정부를 대표한 대외경제위원회와 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턴키베이스로 제공하기 위한 공급협정을 가능한 최단시일내에 체결한다.이 발표문에 기초하여 북한은 경수로 공급협정에 관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하여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KEDO와 회동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의 건설과 운전에 필요한 요건들을 확인하기 위해 부지조사를 실시한다.동 부지조사와 부지준비에 소요되는경비는 경수로 사업의 공급범위에 포함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을 수행할 주계약자를 선정한다.경수로사업의 전반적 이행에 관하여 KEDO의 감리업무를 보조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미국기업이 담당하며 KEDO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선정한다.북한기업은 경수로사업의 추진을 위해 필요에 따라 이행에 관련된 계약에 참여한다. Ⅳ,경수로 사업에 추가하여 양측은 기본합의문의 이행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의 전문가들은 기본합의문에 따른 중유의 단계적 공급을 위한 일정과 제반협력조치에 합의하기 위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에서 만난다.KEDO는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중유의 1차분 공급을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한다. 1995년 1월20일자 사용후 연료봉의 안전한 보관에 관한 북­미간 회담기록은 신속하게 실천에 옮겨진다.이와 관련,동이행을 위해 미국 전문가들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을 방문한다.
  • 중,북에 원유·무기지원 계속/정권붕괴 막게 예년수준 유지

    ◎당 외교부 부부장 평양가 방침 전달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은 최근 한국과의 급속한 관계발전에도 불구,원유및 무기공급을 예년 수준대로 유지하는등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중국 외교부 관계자가 7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행사와 북한정권의 붕괴방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연간 1백50만t규모의 원유제공과 탱크 및 미사일등 무기류에 대한 대북한지원은 예년수준에서 계속될 것임을 7일부터 시작된 당가선외교부 부부장등의 방북에서 재확인하게 될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국정부는 이미 요녕성 심양 한국 총영사관의 연내 개설불허결정을 내렸으며 북한측에 중·북한사이의 우호관계를 고려,이를 허용치 않고 있다는 사실을 통고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식량지원에 관해선 올들어 중국내 식량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문제등으로 지원의 어려움을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중국측은 당부부장의 이번 방북을 통해 중국은 한반도의 휴전협정의 당사자이며 정전협정논의에는 중국이 반드시 당사자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북한측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관계자는 이번 당부부장 등의 방북을 통해 최근 북한과 대만사이의 관계개선추세에 대한 중국정부의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국정부는 북한과 대만사이의 관계발전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발전이 중국의 주권과 통일정책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는데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가 중·북한 관계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7일부터 시작된 당부부장을 대표로 하는 외교부 방북대표단은 다음주 화요일까지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등을 만날 예정이다.또 이와 별도로 서청 당 중앙기술위 부서기를 단장으로하는 당 대표단도 별도로 이날부터 북한을 공식 방문하고 있다.
  • 황창평 보훈처장에 듣는다(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보훈의 달」 짚어본 복지정책/“2천세대 「국가유공자 복지타운」 건립”/재중·러 독립지사후손 모국정착 지원/고엽제 「후유의증」 환자까지 보상·치료/동­서해안·제주 등 4곳에 보훈가족 휴양시설 □대담=황병의 정치부장 올해는 광복 50주년이자 한국전 발발 45주년이 되는 해다.그 의미만큼이나 우리는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경제개발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뒤 가리지 않던 단계에서 벗어나 통일에 대비하고 세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새김으로써 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국가통합의 구심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국가의 주요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새 분위기 조성 시급 사실 일제에 항거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바친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접은 미국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낙후돼 있다. 미국은 참전용사모임인 재향군인회가 미국내 최대 압력단체이며 대만도 국가유공자들이 시민으로부터 최대의 경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유공자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국가유공자 후손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활지원등을 「빈곤층에 대한 그 것」으로 여겨 신분을 오히려 감추는 현상까지도 빚어졌다. 호국보훈의 개념을 한차원 발전시켜 나라사랑 정신을 국가 중심 이념으로 승화시키는 기수역을 맡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대공일선에서 30여년 근무한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제격이라는 평이다. 황 처장은 4일 대담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지만 국민들 사이에 희생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각종 이기주의가 분출,국가안보와 사회불안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보훈은 국가의 뿌리라는 점에서 보훈대상자들이 당장 미국처럼 자랑스럽게 예우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만은 조성하자는 게 보훈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틀후면 현충일입니다.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유공자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먼저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수는 18만가구 1백만명에 이릅니다.일제∼6·25∼월남전까지의 유공자와 그 외 공상자들이지요.이 가운데 6·25관련 유공자가 5만가구로 가장 많습니다.이들은 아직도 전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이만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이들 유공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습니다.이 점에서 국가유공자와 가족을 보살피고 예우하는 일은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유공자들은 순직이나 전사·전상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생활이 무척 어려운게 현실 아닌가요. ▲70년대 중반부터 보훈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지원을 위해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주택·취업등의 지원을 해 오고 있습니다.그 결과 지난해말 보훈대상자의 월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백31만원보다 35% 많은 1백77만원에 이르고 있습니다.또 주택보급률도 일반국민의 79.8%보다 6.4%포인트 높은 86.2%에 이르고 있지요.대부분 보훈가족들은 어느정도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또 현재 한달에 35만원씩 주고 있는 기본연금을 올해와 내년에 12%씩 올려 97년에는 매달 45만원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대부분 노령화돼 있지 않은가요. ○8백60세대분 착공 ▲보훈대상자 평균연령은 61세에 이르고 있습니다.독립유공자의 경우 본인은 74세이고 유족은 65세이며 6·25대상자는 66세이지요.따라서 각종 노인성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국가는 이들의 쾌적한 노후생활을 위해 수도권과 부산·대전·대구·광주등 대도시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령자 주거시설로 2천세대 규모의「복지타운」을 연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입니다.이미 수원에 8백60세대분 휴양시설이 착공됐지요.또 보훈가족용으로 동해·서해안과 제주도등 4곳에 휴양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과 관련해서는 월남전 고엽제피해자문제가 현안인데 정부의 대책은. ▲고엽제문제를 보면 월남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현재 고엽제환자로 검진받은 사람은 4천3백25명이며 이 가운데 14%인 5백96명이 후유증환자로 판정됐고 39%인 1천6백69명은 「후유의증」환자로 판정돼 무료진료를 받고 있습니다.말초신경병등 고엽제후유증으로 선정된 10개 질병에 대해서는 보훈병원의 판정에 따라 전상자와 같이 한달에 35만∼1백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문제는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후유의증환자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고엽제역학조사를 진행중이므로 결과가 나오는대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입니다.역학조사결과 후유의증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확정되는대로 보상이나 치료를 해줄 생각입니다.또한 생계가 어려운 후유의증환자를 위해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고엽제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국내 생존 유공자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지만 보훈의 특성상 선열을 잘 모시는 일도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올해는 광복 50주년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정부는 이를 위해 올광복절에는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1천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새로 포상하고 국외안장 선열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봉환식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또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진 미확인 선열묘소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합니다.이와 함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3백여명을 초청,발전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특히 이준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시의 구드용호텔을 매입,기념관으로 개조하고 8월5일쯤 유럽한민족제전을 개최,유럽교포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을 예정입니다. ○미확인 선열묘 조사 ­해외안장 애국선열 가운데 가장 관심사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곳을 찾는 일입니다.진척이 있습니까. ▲지난 77년부터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안 의사 묘소를 찾아왔으며 최근 한중 수교이후 안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자리를 찾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진전이 아직 없습니다.정확한 묘소위치를 믿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관계자료를 모두 수집,분석하는 중입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생활한 독립유공자후손들이 국내정착을 희망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중국과 러시아지역에는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이들은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친지등의 초청에 따라 일부 국내정착했지만 후손들 가운데 모국정착희망자가 많아 현재 이들에 대한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이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면 본인이나 가족 1명에 한해 3천만원의 정착금을 주고 있습니다.취업이나 대부지원도 있고 의료보호등도 실시하고 있습니다.현재 영주귀국한 중국거주 교포는 11가구 39명에 이릅니다. ◎미 「한국전 참전기념탑」/새달 27일 워싱턴서 제막/주요정책 심층보도… 국민과 정부를 잇는 기획/총든 병사 동상 19개… 참전 22국 각명새격/참전용사 등 50여만 참가 “축제 한마당” 오는 7월27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는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다. 한국전 휴전일에 맞춰 갖게 되는 이 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전 참전 22개국 외교사절과 참전용사등이 참여,한바탕 축제가 열린다. 이들은 이날제막식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원히 기억될 승리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당시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 탑은 80년대초 한국전 참전용사의 명예를 높이고 미군전사자와 실종자를 추념하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에 의해 처음 건립이 제안됐다. 미국의회는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제의에 따라 지난 86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미 한국전 참전 기념사업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의결,탑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미국정부는 우선 한국전에 참전했던 알 데이비스 예비역해병대장을 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재원마련을 위한 기념주화 발행을 허용했다. 또 탑이 들어설 링컨기념관 앞 광장 주변 8천4백여평을 공원으로 지정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같은 정부결정에 따라 기념은화를 발행하는 한편 참전용사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재원 1천7백만달러를 마련,92년 6월14일 당시 부시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 이 탑은 49m 높이의 화강암석벽을 V자형으로 땅위에 배열한 모습인데 승리의뜻을 담고 있다. 또 V자 안쪽에는 총을 들고 걸어가는 병사들의 동상이 19개 놓이며 탑 벽면에는 한국전 참전 22개국 이름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는 이번 제막식에 맞춰 벌어지는 나흘간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 우선 전야제인 26일에 한국전의 의의를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어 제막식 당일에는 케네디센터등에서 사물놀이·어린이 태권도시범등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다. 28일에는 워너극장에서 국악·현악4중주단 연주등 한국음악제를 열고 전통한복패션쇼도 펼친다.행사 마지막날인 29일에는 우리군 의장대와 미군의장대가 함께 의사당로 15번가에서 23번가까지 퍼레이드를 벌인다.
  • 북은 납북어선 즉각 송환하라(사설)

    북한경비정이 우리의 비무장어선에 총격을 가해 선원을 살상하고 납북한 것은 반민족적이며 비인도적인 행위다.납북된 제86우성호가 나침반 고장으로 항로를 잘못잡아 북방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배가 무장을 갖추지 않은 꽃게잡이보조어선에 불과하고 납북지점이 북한영토에서 12해리이상 떨어진 공해상이었다는 점,그리고 이런 정황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대낮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사상자를 낸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북한당국은 이같은 불법적인 과잉대응을 솔직히 시인·사과하고 납북어부들을 지체없이 송환해주기 바란다. 북한에 의한 우리어선 납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56년 제3선진호가 동해에서 피랍된 것을 시발로 16차례에 이른다.이중 87년1월15일 서해 백령도근처 공해상에서 납치된 제27동진호 선원 12명을 포함,25명의 어부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그뿐 아니다.휴전이후 강제납북돼 지금까지 억류돼 있는 사람은 4백29명이나 된다. 우리정부는 인도주의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문제나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어떤 남북현안보다도 이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고 그동안 여러차례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해왔다.이번에도 우리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납북어부들을 조속히 송환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그러나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은 불투명하다.북한은 최근 정전협정의 무력화를 꾀하며 비무장지대 정찰병사들에게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을 고의적으로 침범케 하는등 일련의 무력시위를 벌여온만큼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그럴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정부는 최근 아무 전제조건 없이 북한에 쌀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따라서 북한당국도 조건 없이 납북어부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남북이 인도적인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간다면 신뢰는 쌓이게 될 것이고 민족화해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북한당국의 성의 있는 반응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북한군 휴전선 월경/한국 정치이용 경고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주한미군사령관인 게리 럭 장군은 최근 북한의 휴전선 월경문제로 야기된 남북한 긴장관계에 우려를 표시했으며 특히 한국군부지도자들에게 경고성명을 통해 이러한 월경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29일 워싱턴타임스지가 보도했다.
  • 인간방패(외언내언)

    발칸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무기고에 대한 나토(NATO)의 공습이 이틀째 계속되자 세르비아계는 이곳 평화유지를 위해 들어가 있는 유엔 감시요원 13명을 붙잡아 나토의 공습대상지역에 인간방패로 묶어두고 있다.공습에 대한 보복이다.이들 인간방패중 희생자가 생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라예보 외곽의 9개 유엔무기고를 방어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 67명을 무장해제시킨뒤 다음 공습예상지역에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이에는 이로』의 끝없는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벌써 37개월째.전체인구의 44%를 차지하는 보스니아계와 인구의 33%인 세르비아계,소수민족인 크로아티아계 간의 얽히고 설킨 종족분쟁이다.「인종청소」로 불릴만큼 처절한 이 민족분쟁에서 희생된 사람의수가 자그만치 20여만명.난민이 3백여만명에 이르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유엔은 92년 평화유지군을 투입했다.평화유지군은 투입됐으나 내전의 양상이 워낙 복잡한데다 미국과러시아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평화유지에 별무효과.이번 나토군의 폭격은 지난 4개월동안의 휴전기간동안 세르비아계가 유엔평화유지군으로부터 탈취한 중무기를 25일까지 반납하라는 유엔의 최후통첩을 무시했기 때문. 러시아의 체첸사태도,지난 4월세계를경악케했던 르완다의 난민수용소 후투족난민학살사건도,1백50여만명의 희생자를 낸 수단내전,89년 이래 15만명이 죽어간 라이베리아 사태,2백50만명이사망한 비아프라 사태,에티오피아의 30년내전,모두가 종족분쟁이다. 종족이나 민족단위로 국가를 세분화하면 이런 핏줄 싸움은 없어지는 것일까.전문가들은 그렇게 되면 세계에는 최소한 1천여개의 민족국가가 탄생하리라고 예상한다.그래도 문제는 또 남는다.쪼갤 땅과 방법이 없는 것이다.종족보존이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문제다.
  • 유엔사/「정전위 장성급접촉」 대북 제의

    ◎북에 서한/한미정성포함… 내일 판문점서 만나자/미에 장성대화 제의했던 북에 역제의 국방부는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미군 및 한국군 장성을 포함한 군사정전위 대표 4명이 참석하는 장성급 접촉을 오는 23일 갖자고 북한측에 제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고위관계자는 21일 『지난19일 판문점 일직장교 접촉을 통해 북한 이찬복 중장 앞으로 보내는 주한유엔군사령부 스미스소장 명의의 서한을 전달,「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장성급 접촉을 23일 갖자」고 제안했다』고 밝히고 『이번 장성급 접촉에 있어 유엔사측 대표단은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인 황원탁 소장을 제외한 한국·미국·영국 및 여타 참전국 대표 1인 등 4명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북한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의 잇단 정전협정 위반으로 휴전선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접촉 채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따라서 중간 레벨 이하의 정전위 대표간 접촉 채널을 가동하는 방안을 미국측과 협의해추진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미국과 정치·군사협상을 노리고 지난 3월 미국과의 장성급 접촉을 제안한바 있는 북한이 정전위 틀안에서 접촉하자는 우리와 미국의 이러한 수정제의를 수락할 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게리 럭 주한유엔군사령관이 지난 12일 이양호 국방부장관 앞으로 서신을 보내 『군사정전위 틀안에서 미국­북한 간 장성급 접촉을 추진하겠다』면서 우리의 견해를 물어왔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이장관은 「정전위 틀안에서의 대북 접촉」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대표단 구성은 한국군 장성을 포함,4명으로 하고 ▲회의장소는 판문점 군사분계선상의 정전위 회의실로 하며 ▲회의 의제는 비무장지대관리 등 정전협정 관련 사항으로 국한돼야 하며 ▲실제 회담은 유엔사측 제의에 대한 북한측의 명시적 동의를 받은 뒤에 이뤄져야 한다는 4가지 원칙을 담은 답신을 럭 사령관에게 보낸것으로 확인됐다. 럭 사령관은 17일 이 장관에게 다시 서한을 보내 『한국군 장성을 포함한 4명의 군사정전위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는 한국측 입장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주한유엔군사령부도 21일 성명을 발표,『우리는 군정위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북한측의 일방적인 행위에 맞서 최근 수개월간 정전협정의 유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한국정부측과 협의해왔다』면서 『북한측과의 장성급 접촉이 긍정적 조치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 “러 정부 이양문서의 「공백」메웠다/서울신문의 소 문서 발굴 의미

    ◎스탈린 역할 「부차적 아닌 주도」밝혀줘/「역사원형 찾아내기」두드러진 언론역할 지난해 6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옐친 대통령으로 부터 6·25남침전쟁에 관한 기록 문서들을 받아온 일이 있다.정부는 그것들을 모두 공개했다.우리의 현대사에서 우리 운명에 가장 결정적이며 가장 비극적인 작용을 했던 6·25전쟁의 원인에 대한 왈가왈부의 오래된 논쟁은 그 문서들에 의해 일단락을 지을 수 있었다.남침전쟁의 숨은 설계자로 지목되었던 구소련이 실제로 전쟁의 시작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를 지휘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넘겨받은 문서가 6·25남침전쟁의 전모를 다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그렇겠지만 캐고 들면 들수록 더 의심나고 더 알고 싶은 대목이 줄줄이 떠오르게 마련인 것이다.특히 그때 러시아가 우리쪽에 넘겨준 문서들은 주로 그들 외무부 관련 문서들로서,그것도 그들이 적당히 골라서 넘겨 준 것이어서 세밀하게 파고들면 들수록 몇갈래의 관련 문서 또는 부속 문서의 열람의필요를 낳게 하는 것들이었다. 뿐만아니라 구소련이란 나라가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당중앙위원회나 그 정치국에서 결정·재단되게 마련이어서 6·25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자면 아무래도 당문서의 발굴이 필수였다.소련공산당은 없어졌다해도 주요문서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모스크바의 한구석,구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보관 서고에 그것들은 있다. 뿐만 아니라 6·25란 전쟁에 관한 준비 및 진행상황이 군부 몰래 이루어질 수는 없다.어떤 무기의 어느 만큼의 수량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어느 수준의 어느 만큼의 실제 병력이 북한군의 배후를 떠받치고 있었는가.또 미군이나 한국군 포로들의 어느 부분이 소련영토로 연행되었는가.6·25남침전쟁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명 또한 필수다.소련의 붉은 군대는 러시아 연방 군대로 바뀌었지만 붉은 군대 시절의 주요 문건들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모스크바의 교외,하루 거리의 조그마한 고을에 있는 군 문서보관 서고에 그것들은 있다. 소련이망하고 러시아로 바뀌자 많은 나라들이 지난 70년간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섰다.구소련의 외무부 문서,당문서,군부 문서들 속에서 자기 나라와 관련된 부분을 찾기위해 러시아 정부당국과 교섭하기 시작한 것이다.이에 이르러 옐친은 하나의 꾀를 생각해 냈다.정부의 문서보관소들에 각국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한 문서들을 골라 대통령부 문서보관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93년중에 이 작업은 끝났다.그래서 오늘날 어느 나라든 소련과 관련된 역사를 복원하자면 크렘린궁의 대통령부 문서보관소와도 교섭을 잘 해야 한다. 우리는 작년에 옐친이 넘겨준 6·25문서가 기대에 차지 못한다.해서 실망한 일이 있다.그래서 러시아에 대해 당및 군의 문서도 공개하라고 소리 높이 요구한 일이 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성질의 일이란 요구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호락호락 받아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필요한 쪽이 파고 들어가서 필요한 기록을 발굴해 내야 한다.이웃나라 일본은 5명의 전문가를 모스크바대사관에 상주시켜 필요한 역사의 원형을찾아내는 일을 전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신문이 이일을 맡고 나서 대통령부문서보관소와 당및 군의 문서보관소를 뒤져 벌써 9백50여건,총 3천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6·25관련 문서들을 발굴해냈다.대견스럽고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관점도 바로 섰고 취지도 바로 잡힌 취재였다.문제는 자료의 해석이다.미국측 자료나 우리측 자료및 북한측 자료와 등거리 동일 시야 속에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미국이 6·25때 북한에서 노획한 방대한 양의 자료는 워싱턴의 공문서보관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신문이 발굴한 자료들은 요즘 지면을 통해 소상히 알려지고 있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작년의 외무부 문서들이 6·25의 전쟁 책임에서 스탈린의 역할이 부차적이었다는 해석을 낳게 했었는데 비해,이번의 문서들은 그것이 스탈린에게 더큰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물론 연재가 끝나야 더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겠으므로 앞으로의 연재에 큰 기대를 걸면서 서울신문의 일대 취재에 경의를 표한다.
  • 에볼라 출혈열(외언내언)

    에이즈에 이어 에볼라(Ebola)바이러스 출혈열이 온 지구촌으로 확산될 위기에 있다. 에이즈가 아프리카 특수지역 병으로 인식돼 방심하는 사이 세계에 전파된 것처럼 에볼라 바이러스도 오늘날처럼 고속 항공편으로 인구와 물자가 이동하는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세계 유명 세균학연구소에서도 그 판단시험을 기피할 정도로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현재 미국립 질병통제예방센터(CDC·조지아주 애틀랜타)만이 이 병을 판별할 수 있는 진단혈청 일부를 보유하고 세계 유일의 시험기관 구실을 하고 있다.우리도 필요시 검체를 이곳에 보내야 한다. 에볼라출혈열은 원래 콩고강유역 우림지대에 토착화한 출혈열의 일종이다.1976년 자이르 삼림속 야무부쿠라는 작은 촌락에서 발견되기 이전에도 인근에 번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당시 수단 남부지역과 자이르에서의 발병은 에볼라강연안 등의 촌락이었지만 이번 자이르에서의 발병은 키크위트라는 인구 60만명의 도시지역이다.이곳이 수도 킨샤사와멀지 않아 세계 역학계는 더욱 긴장 하고 있는 것이다. 자이르가 8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식민시대 종주국이던 벨기에는 물론 영국 프랑스 등 서구인들의 내왕이 빈번하다.옛날의 역병은 수세기에서 수십년에 걸쳐 확산되고 한 나라에서도 발병지역이 한정되어 시일을 두고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고속화되고 있다.항공편과 자동차 및 열차편으로 국외에서의 침입과 국내 확산도 빠르다. 북만주지역 풍토병이던 유행성출혈열이 수천년을 지나 51년 휴전선지역에서 발병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에 토착화하는데 40여년 걸렸다.에이즈는 85년 미국에서의 노출보도된후 바로 우리문제가 되었다.에볼라 출혈열은 아직 근원도 모르고 백신 치료약도 없다.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 IPI의 대북언론자유 촉구(사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북한의 개방과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대북결의문을 채택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16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문의 내용을 보면 ▲모든 언론인의 자유로운 출입국과 여행을 보장할 것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사소통의 자유를 허용할 것 ▲이산가족의 편지왕래를 허용할 것 등이다.IPI가 북한의 언론과 인권에 관심을 갖고 개선을 촉구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결의문은 북한당국에 대한 세계여론의 첫경고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에 언론자유와 인권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언론」과 「인권」이라는 개념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자유는 물론 주민일반의 인권도 처참한 상태지만 북한전역에는 12개의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이들 수용소에는 북한공산독재체제가 용납하지 않는 15만여명의 「정치범」이 갇혀 인간이하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북한이 납치해간 남한사람도 휴전이후만 4백38명이나 된다.북한당국은 이들의 송환은커녕 생사확인을 위한 서신교환마저 거부하고 있다.우리는 차제에 납북인사들의 송환을 강력히 촉구한다.이들의 송환이 이산가족의 재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한반도상황에서 이산가족문제만큼 절박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IPI대북결의문이 채택된 날 우리정부는 「북한인권대책실무회의」를 신설하기로 했다.북한의 인권문제에 정부가 적극 대처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북한당국으로서는 공산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과 인권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자유세계와 언론 특히 같은 동포로서 우리는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북한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붉은 귀족」들은 IPI의 대북결의와 북의 인권에 대한 우리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 클린턴행정부의 북핵딜레마/윌리엄테일러 미국제전략연구소 수석 부소장

    북한은 클린턴 미 정부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피하려한다는 점을 간파,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한·미관계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윌리엄 테일러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수석 부소장이 15일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이다. 북한은 클린턴 미행정부 및 지난해 10월 이루어진 제네바 핵합의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있다.실제로 평양측은 핵합의에 따른 관련 의제와 회담 시기등 모든 면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워싱턴은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채택하는 것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평양은 한국형 경수로와 기술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미국이 새 대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핵협상은 무효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핵합의때 한국과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만약 대화가 추진되지 않는다면 미국도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고 워싱턴은 밝혔다.이에 북한은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는다면 한국과 대화를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다.게다가 북한은 이같은 「적절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기 위해 한국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계속하며 지난달 베를린 경수로 회담의 일방적 결렬을 선언했다.또 판문점에서 폴란드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킴으로써 53년 체결한 휴전협정을 보기좋게 위반했다.북한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클린턴 행정부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클리턴 정권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미국은 이같이 외교적 교착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그러한 교착상태를 어떻게 풀것인가.워싱턴은 이같은 상황에서 꼼짝 못하고 말 것인가. 최근 클린턴 진영의 외교정책이 결단성을 띠고 있다고 일부에서는 말한다.그러나 이같은 말을 과신하지 말라.공화당 후보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를 위해 줄지어 서 있듯이 클린턴도 재선을 준비하고 있다.그의 재임기간동안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외교정책분야였다.따라서 그는 외교정책의 결단력이 없다는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투중이다. 현재 긴급성과 중요성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의 문제는 평양과의 교착상태다.클린턴 대통령이 내년 대선이 실시되기 전까지 외교정책 차원에서 우려하는 것은 지난해 여름과 같은 핵위기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으로서 다행한 일은 제네바 핵합의가 영변의 핵폐기물처리장 두곳에 대한 사찰이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한참뒤인 앞으로 5년이내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평양측에서 미국이 한반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린 점을 들 수 있다.따라서 전통적인 외교수법으로 보아 평양은 한미 동맹관계를 분열시키면서 미국의 「양보」를 계속 얻어내려 할 것이다. 「양보」는 무엇을 말하는가.더 많은 외국지원금,한·미군사훈련중단,북미평화조약,미국의 북한 인정,미·북한 무역및 미국의 북한투자에 대한 제한 완화,주한미군철수,남북통일을 위한 과정에서 한국의 북한 인정 등이다.평양은 핵합의의 이행을 위한 「적절한 조건」이 만족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많은 사항들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으로부터의 많은 양보 문제를 떠나서 「적절한 조건」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그것은 북한이 지하 깊숙이 감추려고 하는 핵무기 개발계획이다.북한은 이미 5메가와트의 원자로를 건설하겠다거나 외국의 압력은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핵무기계획의 모호성을 이용,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북한 관료의 관점에서 볼때,그들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미국·한국 등과의 관계에서 강력한 힘을 가져 남북대화를 위한 「조건」을 더욱 「북한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그리고 이는 지도자 김정일의 지위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지난 몇달 동안 김정일이 관심을 갖고 노력한 군부에 대한 그의 지도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편 미 의회의 공화당원들과 한국정부의 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정부가 평양측에 제시하는 양보조건들과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북한이 매번 「브링크맨십」(일촉즉발의 마지막순간까지 밀어붙이는 외교전략)을 유지하는 동안 클린턴 행정부는 핵협정에 있어 나약성을 보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는한 미국 정부가 선거 이전에 핵위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그것이 미국외교의 고전적인 딜레마다.
  • IPI 서울총회/김 대통령 연설

    ◎새로운 국제정보질서 구축 모두의 과제/「더불어 잘사는 지구공동체」의 중추되길 국제언론인협회가 창설된 이래 지난 44년동안 지구상에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동서냉전의 완강한 장벽은 마침내 무너졌습니다.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간존엄이 인류보편의 가치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시대가 왔습니다. 나는 언론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이같은 역사의 진보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나는 국제언론인협회를 중심으로 한 세계언론이 지난 40여년의 세계사에 남긴 지대한 공헌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에서도 언론은 역사발전을 앞서 이끌어 왔습니다.우리는 식민통치와 빈곤,분단과 전쟁,그리고 독재라는 최악의 조건속에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 냈습니다.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바로 그 기적의 뒤에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특히 민주화를 이룰때까지 권위주의의 탄압과 고난을 견디어 낸 한국언론의 크나큰 활약이 있었습니다.40여년에 걸친 나의 민주화투쟁에서 한국언론은 언제나 나의 동지이며 후원자였습니다.나자신 언론자유의 쟁취를 민주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습니다.그것은 자유언론이야 말로 민주화의 기초라는 나의 신념에 바탕한 것이었습니다. 83년5월 가택연금중 민주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나는 「언론자유」를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이 23일에 걸친 단식투쟁은 범국민적인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에는 세계 언론의 많은 지지와 성원이 있었습니다.특히 국제언론인협회는 여러차례 한국의 언론탄압을 규탄하고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나는 여러분의 지원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국민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국제언론인협회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극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서울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라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이 승리를 거둔 현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계에는 이미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정보화와세계화의 물결이 「문명사적인 변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언론은 인류 운명에 대하여 중요한 매체가 아니라 결정적 매체가 된 것입니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언론이 먼저 세계화되어야 합니다.무엇보다 국가간,지역간 균형있는 정보유통과 공정한 뉴스선정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새로운 국제정보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그리하여 국제언론인협회가 국가와 지역,민족과 문화를 뛰어넘어 「더불어 잘 사는 지구공동체」를 구현하는 중추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역시 문호를 더욱 활짝 열어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한 「세계화정책」을 적극 펴 나가고 있습니다.세계로,미래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더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꿈은 아직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지상의 마지막 냉전지역인 한반도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보의 단절」이 반세기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흩어진 수백만명의 이산가족들은 서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며 편지 한장,전화 한통 주고 받을 수 없습니다.북한 주민은 외부세계와의 차단 속에서 인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통제와 억압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을 강요당한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입니다.그렇다고 우리가 급격하고도 일방적인 통합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반세기에 이르는 분단사에 비추어 남과 북은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상호 조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안정과 질서있는 변화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곡물을 비롯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거듭 밝힙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민족공동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한국정부가 북한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북경제협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뜻에서 입니다.나는 남북한이 서로 협조하여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그날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성큼 앞당기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하는 새 출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을 찾아왔습니다.오늘의 시점은 세계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광복 반세기를 맞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뜻깊은 전환기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위에서 세계화를 추구하는 문민정부의 이상이 바야흐로 열매맺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서울은 여전히 지난 시대의 마지막 긴장이 살아있는 현장이면서 21세기의 세계를 앞서 이끌 동아시아의 중심입니다.바로 이러한 때에 바로 이곳에서 세계 언론의 진로를 논의하고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함께 고뇌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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