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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감 교육위서 산출/국무회의 의결/민통선 범위 15㎞로 축소

    정부는 26일 이수성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휴전선 인근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의 설정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군사시설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지금까지 군사분계선 남방 20㎞까지 설정할 수 있었던 민통선을 앞으로는 군사분계선 남방 15㎞까지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무회의는 이와 함께 의결기관인 교육위원회와 집행기관인 교육감을 통합하여 합의제 집행기관으로 교육위원회를 개편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또 교육감 선출방식도 바꾸어 교육위원회의 1·2차 투표 결과 재적위원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시·도의회가 교육감을 선출하며,선출의 공정성을 위해 교육감을 포함한 교육위원이 교육감 후보로 등록하면 투표에 참가할 수 없도록 했다.
  • 평통자문회의 토론회/배찬복·오관치 교수 주제발표

    ◎“대북정책 최우선순위는 국방력 강화”/남한보다 우세한 북한군사력 흡수통일 방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는 25일 하오 서울 타워호텔에서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남북관계 경색 및 우리의 안보상황과 관련,「통일안보 역량 제고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다음은 배찬복 명지대교수와 오관치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통일과업을 위한 효율적 대북정책(배찬복 명지대교수)=대북정책에 있어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4자회담으로 유도해 내거나 연착륙시키는 경우다.북한의 붕괴나 연착륙을 전제로한 우리의 대북정책이나 우리의 것을 엷게하여 북한과 접촉하려는 이상론적 대북정책도 전면 수정해야할 시점에 와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첫째,국방강화가 될 것이다.둘째,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만이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하고있다는 차원에서 불그스레한 사람(Change of the System)은 경계되어야 한다.셋째,확실한 국방력,확고한 군의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는한 통일정책은허상이 될수 밖에 없다.넷째,한·미관계가 실질적인 동맹관계가 될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펼쳐야 한다.다섯째,통일회담이나 통일논의가 성숙되어 가다가도 체제의 유형이나 이념문제가 나오면 벽에 부닥친다.따라서 이 문제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남북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자고 북에 제의할 필요가 있다.여섯째,정치성이 가장 낮고 복잡한 정지작업이나 절차가 필요없는 휴전선 부근의 섬을 골라 통일특구로 지정하자고 제의해야 한다.일곱째,위에 제시된 어느정책도 효율성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또는 무책의 대북정책을 수립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평화통일을 위한 안보역량 제고방안(오관치 국방연구원 연구위원)=북한은 한국에 의해 흡수됨에 있어 필요한 거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북한의 정체성 및 정통성의 위기,왜소한 국력,누적된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경제적 실패,수많은 이산가족의 존재등은 이러한 조건들의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한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군사력이다. 한국의 대북한 군사력 수준은 양적으로 북한군사력의 약70%에 불과하며 한국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 국력우세­군사력 열세라는 위치에 있다.만일 한·미 동맹관계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우리의 위치는 평화적인 재통합이 북한의 군사모험에 의해 지연되고 방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월한 국력과 군사력이 평화통일의 전제가 된다.따라서 부강하되 공평하고,자유로운 가운데 단결하고,정직하고 관대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곧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지속적으로 방위력을 정비하며,국제사회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노력과 함께 우리사회가 보다 공평하고 정직하며 관대한 사회가 되도록 내실을 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우리의 국력 증대에 의해서만 북한체제를 변화시킬수 있고 북한체제가 변한 후에야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 북한 조만간 기아재난/650만명 중 탈출 가능성

    【베를린 연합】 북한에서 조만간 대재난이 발생,주민 6백50만명이 중국으로 집단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가 독일 연방정보부(BND) 자료를 인용,21일 보도했다. 전날 공개된 BND의 북한관련 자료는 『북한에서 멀지않아 기아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이같은 상황이 되면 주민들은 『휴전선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란동,도문과 같은 국경도시를 통해 중국으로 집단 탈출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세종연 「국가경쟁력과 운하건설」 세미나

    ◎“경부·경안운하 완공땐 연 3조원 절감”/물류비 크게 줄어… 유사시 병력이동 등 큰 도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안양천과 반월천을 준설해 한강을 시화호와 연결하는 「경안운하」를 건설하면 물류비를 연간 3조원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특히 유사시 병력이동과 군수물자조달이 편리해져 국방전략상 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됐다.세종연구원(원장 주명건)은 21일 세종호텔에서 「국가경쟁력과 경부·경안운하건설」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운하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부운하◁ 충주호와 문경 사이에 고도 125m로 20.5㎞의 터널(조령터널)을 만들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할 수 있다.건설비는 8조6천7백억원이 예상되나 8조7천3백억원의 재원을 골재와 부지판매로 얻을 수 있어 재정부담이 없다. ▷경안운하◁ 안양천과 반월천을 준설하고 이를 7.6㎞의 터널로 연결,한강물을 시화호로 흐르게 한다.건설비는 1조4백억원이고 재원조달은 1천5백억원에 불과하나 투자타당성은 경부운하보다 높다. 수도권 공업지역이 안양천변에 많이 있어 경인운하에 비해 환적비용이 적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천연의 양항이자 전략요충인 아산항에 인접,수도권과 수로가 연결되면 경부축에 가중된 물동량의 압박을 덜 수 있다.바지선으로 서울에서 중국·일본의 지역항 또는 내륙으로 직송하면 물류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국방전략효과◁ 휴전선에서 불과 40㎞ 떨어진 곳에 1천2백만 인구가 집중돼 있다.이중 7백50만명이 강북에 사는 서울은 남북대결시 우리의 가장 취약한 요소이기도 하다.경부·경안운하가 건설되면 북한의 도발을 감지할 수 있는 24시간내에 수백만명의 민간인을 신속히 안전지대로 대피시킬 수 있다. 또한 후방의 예비병력과 군수물자를 신속히 조달가능하게 된다.운하를 통해 1개 사단을 이동할 때 큰 바지선 15척이면 가능하다.그러나 도로로 이동할 때는 트럭행렬의 길이가 200㎞에 이른다.따라서 적의 공격에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교량이나 도로가 폭격받은 때는 복구시간도 길고 수용능력이 감소하므로 수로가 유리하다.특히 탄약이나 전차·야포 등 경장비를 운송하는 데도 수로가 우월하다. ▷관광·여객운송효과◁ 경부·경안운하가 완성될 경우 해마다 3억7천만달러(2천9백6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다. 특히 경부운하를 관광자원이 풍부한 충주호권역을 거치도록 건설하면 월악산·소백산·수안보온천·단양팔경 등을 관광휴양지로 개발할 수 있다.또 낙동강수계에는 문경새재·경천대국민관광지·금오산·부곡온천·마금산온천 등이 있어 하나의 관광코스로 연결될 수 있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 대한언론인회 토론회… 송영대 전 차관 주제발표

    ◎“잠수함사건 북한사과 받아내야”/북 태도변화따라 지원규모 결정을 대한언론인회(회장 이혜복)는 20일 하오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북한동향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다음은 송영대 전통일원차관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북한동향 어떻게 볼 것인가(송영대 전통일원차관)=그동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끝났다,북한은 곧 붕괴될 것이라는 인식과 가설들이 만연돼 왔다.그러나 무장공비사건은 이러한 대북인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90년대 들어 미국과의 관계개선,제한된 경제개방,대내통제 강화,통일전선전술 고수등 4박자식 체제유지전략을 계속해 왔다.이같이 체제방어적 위치에 놓여있는 북한이 무장공비침투와 같은 대남 공세적 태도로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모택동의 전략 가운데 「불리의 유리화」전략이 있다.불리할 때는 상대측의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궁지를 모면한다는 개념이다.북한당국자들은 이와 비슷한 「약자의 강자전복 전술」을 믿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대미유화제스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만은 반드시 북한으로부터 납득할만한 조치를 받아내도록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지난 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때는 미국이 휴전선에 수백대의 전폭기를 띄우고 항모전단과 구축함을 집결하는 등 보복태세에 돌입했다.이에 겁을 먹은 김일성이 유감을 표명하는 메시지를 유엔사령관 앞으로 보내옴으로써 사태가 수습된 적이 있다.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결연한 의지로 응징하고 받아낼 사과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받아내며,「벼랑끝 전술」에 대해서는 「역 벼랑끝 전술」로 대응하는 것이 불행한 사태를 막는 첩경이다. 판문점 연락사무소 폐쇄등이 보여주듯 북한은 앞으로 개방,개혁,남북관계 개선호응 등 안정적 변화에 응해오기 보다는 「안정을 통한 체제강화」 방향으로 나갈 공산이 크다.우리는 북한의 리더십 온건화,남북관계 개선 호응 등 태도변화를 보아가면서 지원하는 연계전략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북한이 지금처럼 대남대결정책과 통미봉남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자세는 북한을 다소 무시하고(Neglect),태도변화를 기다리면서(wait),급변 상황에 준비하는 자세(prepare)가 바람직하다.
  • 북한사과는 직접적이어야(사설)

    북한은 최근 북·미 뉴욕접촉채널에서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용의가 있음을 비공식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알러졌다.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시사가 그동안 우리정부가 요구해온 북한당국의 사과를 실현시키는 단초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는 바다. 현재 알려진 북한측의 의향은 침투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아닌 애매한 내용이며 누구를 상대로 유감의 뜻을 표명하겠다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은 상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채 미국을 상대로 유감표명을 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으며,특히 사실상의 북·미간 군사접촉채널인 군사정전위 비서장급회의를 통한 사과 가능성을 탐색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는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직접적이고 솔직하게,그리고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한다.그렇지 않은 사과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으며 상황개선에도 아무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무장간첩 26명을 태운 잠수함을 휴전선 남쪽 수역에 침투시킨 사건은 과거의 도끼만행사건이나 미군 헬기 격추사건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건 군사분계선상의 우발적 사고나 충돌이 아니라 북한 군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주권침해요,무력도발이었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는 남파공비에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는등 수십명의 인명피해와 수천억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한반도 및 그주변의 평화와 안정까지 크게 위협받았다. 이사건은 결코 미군 대령과 북한군 대좌가 마주앉은 정전위 비서장회의차원에서 처리될 일이 아니다. 잠수함사건에 대해선 북한당국이 한국정부에 솔직히시인,사과함은 물론 재발방지를 다짐해야 마땅하다. 물론 이는 모두 문서로 이루어져야 할것이다.북한이 요구하는 잠수함승무원유해 송환은 그 뒤에 논의할 문제하고 본다.
  • “난민을 인간방패 이용”/투치반군,자이르 비난

    【고마·키갈리(르완다) AFP AP 연합】 자이르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투치족 반군들은 10일 자이르 정부군이 인접국 및 자이르 난민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동부지역의 주요도시 점령에 성공한 「콩고­자이르해방을 위한 민주연합군」 소속 반군들은 인도주의적 이유로 자신들은 고마에 포격을 가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이 정부군을 비난했다. 반군의 한 관계자는 『그들의 유일한 힘은 그들이 잡고 있는 인질들 뿐이다.우리는 민간인 사상자가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대응할 수 없다』면서 자신들은 지난 4일 일방선언했던 휴전결정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남북한 에너지 통합계획 추진/향후 10년 기본계획 마련

    ◎탄소세 도입·환경비용 에너지가에 반영 앞으로 10년안에 남북간 경제교류와 통일에 대비,남한의 석탄관련 잉여설비 등을 북한에 지원하고 휴전선부근에서의 실험적인 전력교류사업을 통한 남북한간 전력교류상 기술적인 문제점을 검토하는 등 남북에너지통합계획수립이 추진된다. 11일 통상산업부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마련한 향후 10년(97∼2006)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수급체계구축을 위해 에너지탄소세도입을 검토하고 환경비용을 에너지가격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에너지공급자의 환경투자를 유도할 방침이다. 2006년 석유의존도를 95년 62.5%에서 49%로 낮추기 위해 석유제품에 대한 조세구조를 개선,특별소비세와 교통세를 소비세로 통합한다.에너지공급능력확충을 위해 내년부터 정제산업진입규제 폐지,석유제품 수출입자유화를 시행하고 석유제품의 수급균형을 위해 중질유분해시설을 증설하기로 했다.
  • “평양에 김정일 전용 보약공장”/귀순 허창걸씨 부녀 일문일답

    ◎공업 80% 군수품담당 제2경제위에 집중/식량난에도 군량미 충분… 주민들 전쟁 원해/도시 남고생 대부분 흡연… 여학생 임신사건 빈발 ­왜 금순양만 데리고 귀순했나. ▲허씨=압록강이나 휴전선 부근까지 가는 데는 특별통행증이 필요하다.특히 압록강 지역에는 안전국이나 보위국 요원들의 경계가 심하다.이런 상황에서 모든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은 무리였다.그래서 고등중 졸업반인 큰 딸이 아버지가 없으면 가장 막막할 것 같아 큰 딸만 데리고 왔다. ­귀순동기는. ▲지난 94년 12월 사로청 속도전 돌격대에서 제대한 뒤 1년 동안 실직상태로 있었다.평소 알고 지내던 안전부 간부를 통해 가짜 복무증명서를 받아 식량을 배급받아 생활했다.커 가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가 막막했다.95년 가을 문덕군 영남리 한 협동농장에서 빼돌린 옥수수로 만든 술을 먹고 공범으로 몰려 한달간 강제노동을 했다.아들 뻘되는 안전원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했다.나중에 가짜 복무증명서까지 들통나 징역 3년의 처벌까지 받을 위험에 처해 탈출을 결심했다. ○가짜 복무증으로 연명 ­제약공장의 설립실태와 주민에 대한 의료혜택은. ▲평양에 김정일을 위한 「백두산 제약공장」이 있으며 약제가 40명이 보약과 장수약을 만들고 있다.주민에 대한 혜택은 말 뿐이다.인구 20만명인 평북 덕천시의 경우 페니실린 등 항생제가 3천개 밖에 공급되지 않고 있어 간부들만 혜택을 받는다.주민들은 장마당에서 15∼20원(일반 노동자월급 70∼80원)인 페니실린을 구입한다.돈 없고 친척이 힘 없는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병원에서 사용하는 주사기는 10∼20년 된 것이다.주사 바늘도 소독해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데,요즘에는 개인별로 바늘을 가지고 사용하는 「개별화」를 실시하고 있다. ­아편농장의 실태는. ▲아편농장은 중앙당에서 직접 운영한다.함북 백마고원에는 최대규모의 아편농장이 있다.각 도마다 5호 관리부에서 아편농장 1개씩을 운영하고 있고,시·군 5호 관리부에는 아편작업반이 1개씩 있다.여기서 생산된 아편은 아트로핀·카페인 등으로 가공돼 「백도라지」라는 상표를 붙인뒤 국적을 알 수 없도록 위장한 배에 실어 공해상에서 판매한다. ­북한의 한의학 연구실태는. ▲사리원동약 단과대학과 함흥동약 단과대학 등 2개 대학이 있다.여기서 약초재배·가공방법 등을 가르친다.대부분의 약초는 북한산을 사용하지만 감초는 토질이 맞지않아 대부분 중국산을 수입했으나 최근에는 질이 나쁜 북한산을 사용하고 있다.분쇄기·용매제 등이 부족해 가공에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알약이 너무 단단해 녹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장으로 들어간다.북한은 소화가 잘 되도록 잘게 썬 쌀약을 공급하고 있다.지난 83년 당은 보건부에 「동의법을 전체치료의 70∼80% 도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그래서 보건일꾼(의사·약사)들이 시·군으로 내려와 약초사용법 등 민간요법을 강의하고 있다.이들은 환자들에게 「약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약초사용법을 알려주도록 교육하고 있다. ○약대신 민간요법 교육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은. ▲계절별로 군사훈련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있다.평남 신양과 함북 봉산에 남한과 비슷한 지형을 설정,공격훈련을 하고 있으며 38선 지역의 콘크리트 돌파연습도 하고 있다.제대 군인들로 구성된 교도대는 연간 한달씩 훈련을 하고 있으며 적위대와 학생소년 군위대도 보름간의 훈련을 한다.어린 학생들도 군사체육을 실시하고 있다.주민들은 1년에 두 번 대피훈련을 하고 비행기 공습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반항공훈련도 하고 있다.북한 공업의 80%는 군수품을 담당하는 「제2 경제위원회」가 맡고 있다.군수품 공장들은 지하에 건설돼 있다.주민을 동원하기 위해 남조선이 북조선을 침략한다는 교양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전쟁에 대한 반응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바라고 있다.마흔이 넘은 사람들은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청년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주민들에 대한 식량공급은 안되고 있지만 전쟁예비식량은 준비돼 있다.군량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청년들은 승전 확신 ­북한 학생들의 군사훈련 실태는. ▲금순양=고등중 4,5학년 쯤에 사로청과 붉은 청년근위대에 가입한다.학교에서 10리쯤 떨어진 야영소에서 군사 기초훈련을 받고 매달 남녀 구분없이 AK소총으로 사격을 한 뒤 평가를 받는다.고등중 5,6학년 때에는 철조망·담장 뛰어넘기,밧줄타고 오르기 등 국방체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달에 한번씩 새벽에 비상 소집훈련을 받는다.대부분 전화가 없어 직접연락을 통해 소집되고 복장과 물품점검을 받은 뒤 행군훈련을 한다. ­북한 청소년범죄 실태는. ▲고등중 5,6학년 남학생은 대부분 담배를 피우고 이들 사이에는 음주·패싸움·연애사건 등이 많이 일어난다.김정일 지시로 올해부터 불량 청소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됐다.수시로 학생들의 지갑을 수색한다.남포나 청진 등 대도시 지역에서는 여학생들이 임신하는 사건까지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최근 청소년 노동교양대가 만들어져 불량학생을 수용,강제노동과 정신교양을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대학 입학절차와 금순양의 장래희망은. ▲능력이 있어도 성분에 차별이 있어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그래서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성분 차별을 극복하면 군에서 대학입학 예비시험을 치른 뒤 대학시험을 친다.나도 성분차별로 인해 공부 못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남한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해보고 싶다. ○대학진학은 성분순 ­아버지가 탈출을 제의했을때 심정과 당시 남조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사상교육을 받아 조국을 배신한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들었다.그러나 북에서는 더 나아질 게 없어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북한에서는 계급교양을 통해 『남조선 학생들은 구두닦이를 하고 있으며 남조선이 북조선을 도발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어 남한의 실상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남한에 와서 북한의 교육이 얼마나 허구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 북 공습 대비할 방어체제 갖춰라/윌리엄 테일러(특별기고)

    ◎기아와 빈곤 심각… 군사도발 가능성 커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북한문제에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는 윌리엄 테일러 미 국제전략연구소(CSIS) 부소장은 「기로에 선 북한」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신문에 보낸 특별기고를 통해 한국은 서울 방어를 위해 패트리어트미사일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의 공습과 포공격에 대비할 고도의 방어체제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그의 특별기고문이다. 지난 9월12일 필자는 미 상원 외교위산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출석,증언한 적이 있다.당시 필자의 증언은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우선 그 내용부터 소개하겠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할때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우리는 고립돼 있는 북한의 내부 움직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해외원조 거의 못받아 필자는 네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고 모두 한달간 북한 전역을 여행했다.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때 그와 만나 7시간동안대화한 것을 포함,북한 고위지도자들과 수백시간동안 여러 문제들을 논의했다.어떤 외국방문객도 잘 조직된 북한의 선전범주를 벗어난 영역을 보거나 듣지는 못한다.그러나 필자는 이 범주를 벗어난 몇가지 관찰을 전하고자 한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사지를 절단당한 환자다.냉전이 끝난뒤 러시아와 중국에게 버림받음으로써 북한은 거의 외부지원을 받지 못했다.거대한 외국차관에 대한 채무불이행에 의해 북한은 이제 차관을 들여올 수도 없게 됐다. 따라서 심각한 연료난과 함께 원자재및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공산주의식의 통제경제는 90년이래 대략 연평균 4.5%의 마이너스성장을 보여왔다.산업은 약 3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고 농업생산성이 지극히 저조한데다 두번에 걸친 최근의 홍수피해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세계식량기구(WFO)는 북한의 기근상태가 절박함을 알리고 있다. 북한은 모든 권력이 조선노동당(KWP)의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고전적인 공산독재국가다.1백10만명을 헤아리는 막강한 북한 인민군(KPA)조직은 주민들의 빈궁함에 아랑곳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노동당간부들에게 있어서 권력유지의 주요한 기반이다.감옥과 세뇌교육캠프가 곳곳에 널려 있으며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전선에 군전진배치 북한인민군은 한국의 안보에 매우 현실적인 위협요소다.인민군 병력의 약 3분의2는 서울에서 30마일 거리이내의 비무장지대 근처로 전진배치돼 있다.이는 지대지미사일과 전투기,그리고 장거리대포와 박격포 공격이 가능한 거리다.이같은 위협은 북한군이 65만명의 국군과 3만7천명의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 연합군 및 그들의 첨단무기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다만 현 상황에서 볼때 고도의 파괴무기와 화학무기,그리고 아마도 세균무기 등으로 단기전 초기 3∼4일만에 서울을 파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현재 서울의 미사일방위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습과 대포공격에 대응,서울을 방위할 능력도 의문시된다. 서울을 파괴하고 노동1호미사일로 일본의 대부분 지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과 북한에 1∼3개의 핵무기가 있다는 미국중앙정보국(CIA)의 평가는 북한이 미국·한국·일본과 거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다.북한은 벼량끝까지 사태를 몰고갔다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이를 철회하는 극한정책을 취해왔다.이같은 평양당국의 접근방식은 94년 핵합의를 포함,반복적으로 시행됐다.그같은 방식을 이용,북한은 5메가와트짜리 원자로와 핵연료재처리공장을 잠정적으로 폐쇄하는 대신 매년 50만t의 원유를 얻는 한편 50억달러가 투입되는 2개의 경수로건설을 지원받게 됐다.핵합의의 핵심에는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재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그러나 미국과 한국·일본 등이 지난 2년동안 원유와 수백만달러의 식량원조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한국영해로 잠수함을 침투시킴으로써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일상적인 훈련이었건 아니었건간에 26명의 침입자들은 한국해안에 상륙했다.침투의 이유는 무엇일까.평양당국은 자본주의국가인 한국이 자멸할 것이라는 주체사상을 믿고 있다.그에 따라 한국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요원들을 침투시키고 남한의 내부분열 또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파괴되어질 목표물들을 정탐할 목적으로 10만명의 특수훈련부대를 이용하고 있다. ○특수부대원 10만 육성 우선 서울을 방어하라.이를 위해 패트리어트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공습과 포공격에 대비,보다 고도화된 방어체제도 구축해야 한다.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은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평양당국에는 한국과의 대화재개일정과 관련,명백한 날짜를 제시하라.그리고 남북대화의 진척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대북 원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그러는 동안 조화를 이루면서 북한 독재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서울신문 탐사팀 서해북단 고도 백령도를 가다:하

    ◎검은머리 물떼새 담수호 공사후 사라져/“신경통에 특효” 소문에 가마우지 “수난”/꼬리 흰테 선명한 낭비둘기 서식 확인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면사무소가 위치한 진촌에서 고봉포구로 가는 길녘의 가을리 들판은 드넓고 한가롭다. 들판 한 가운데 서면 섬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사방으로 펼쳐진 들판 언저리 어디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백로 30여마리가 들녘 곳곳에서 노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마치 황금색 바탕에 붓으로 점점이 흰 물감을 찍어 놓은 듯하다.떼지어 나래를 펼쳐 하늘로 박차 오를때면 마치 흰 물감이 푸른 하늘로 번지는 듯한 모습이다. 백로 무리는 키 순으로 쇠백로·중백로·황로로 이루어져 있다.왜가리도 간간이 끼어있다.「백로들의 합창」을 뒤로하고 고봉포에서 장골리로 가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길에 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를 만났다. ○가을리 들판에 백로떼 전깃줄에 앉은 황조롱이는 개구리를 먹느라 바빴다.탐사팀을 실은 차가 접근하면 10여m를 저공비행,바로 옆 전봇대로 옮긴다.마치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모습이다. 황조롱이는 도시의 건물에서도 번식하는 「특이체질」의 텃새.주로 산에서 번식하고 겨울철이면 평지로 내려온다.둥지를 틀지 않고 새매나 말똥가리가 지은 둥지를 빌려 번식한다. 백령도서 관찰된 황조롱이는 회색 머리에 황갈색 몸통.30㎝가 넘어 보이는 몸집이 백령도의 하늘을 지배하는 영주답게 늠름하다. 백령도 내륙지역 조사기간 내내 탐사팀은 북방계 곤충인 돼지메뚜기와 말잠자리를 찾는데 주력했다.「민충이」라고도 불리는 돼지메뚜기는 황해도 서해안 초지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다.1920년 서식이 첫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국내 서식이 보고되지 않았다. 돼지메뚜기는 몸집이 너무 커 날지못한다.흙갈색에 어른 엄지손가락만하다.9월초 땅에 알을 낳은 뒤 어미는 죽는다.초지의 쑥대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생태는 알려지지 않았다.동작이 둔해 황해도 지방에는 어쭙지도 않은 사람이 으스될때 「돼지메뚜기 쑥대위에 올라갔다」고 놀린다. 같은 북방계열 곤충인 말잠자리는 간혹 휴전선 근처에서 발견되곤했다.남쪽지방에 사는 왕잠자리와 생김새나 크기는 비슷하지만 색깔이 다르다.말잠자리는 검은색 바탕에 노란줄무늬,왕잠자리는 검푸른색을 띤다.말잠자리는 매년 7∼8월이면 해류를 타고 날아온다. 대만 남부나 필리핀에서 계절풍을 타고 먼 길을 달려온다. 황해도 출신 주민들은 「백령도에서 돼지메뚜기를 봤다」고 입을 모았으나 탐사팀은 돼지메뚜기와 말잠자리의 백령도 서식을 확인하지 못했다.탐사팀 이승모씨는 『백령도는 위도상 38도선상에 있기 때문에 북방계열 곤충들이 서식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라며 『시기가 조금 늦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북방계 곤충 확인못해 장골리의 숲으로 난 작은 길을 헤쳐 나가다 보면 나무색에 따라 보호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콩중이·팥중이 등 갖가지 곤충들이 수두룩하다.딱때기는 방아개비와 육안으로는 구별이 어렵다.다리길이가 날개길이와 엇비슷할정도로 긴쪽이 딱때기다. 발이 네개뿐인 네발나비도 관찰됐다.보통 나비는 발이 6개인데 비해 이것은 발이 4개이다.앞다리 2개는 퇴화해 더듬이로발달했다. 실잠자리도 곧 잘 보였다.날개가 투명하고 몸통은 초록색을 띠고 있어 풀과 구별하기 힘들다.밤새 내린 이슬에 젖은 날개가 마르는 한낮이 돼서야 활동한다고 한다. 수명이 20일밖에 되지 않는데도 날이 갈수록 늙어서 색깔이 바래는 뱀눈나비,네발나비과의 멋쟁이나비,실베짱이 등도 관찰됐다. 「미확인 지뢰지대」 팻말이 꽂혀있는 해안을 따라 곤충들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는 끝없이 펼쳐졌다. 화동으로 접어드는 지점에 오목하게 들어 앉은 자연 저수지에서는 흰뺨검둥오리를 비롯,산오리 8∼9마리의 자맥질이 한창이다.인기척이 느껴지자 쨉싸게 갈대속으로 몸을 숨긴다.주민 김부남씨(55)는 『환경오염과 더불어 밀렵꾼과 박제꾼들이 몰려 들면서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같다』고 말했다.두무진 선대바위 위에 까맣게 덮여있던 가마우지도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남획돼 개체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화동은 지난해만해도 천연기념물 326호 검은머리 물떼새들이 찾아온 곳이지만 대규모 담수호 조성작업이 시작된 이후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간척사업으로 메워진 땅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닷였음을 알리듯 소금끼를 머리에 얹고있다. 붉은 색 산게 3마리가 탐사팀의 눈에 띄였다.무덤가에 주로 출현한다고해서 「송장게」라고 불린다.산게는 바닷게에 비해 치장이 요란하다.몸에 물을 저장해 놓고 산에 올라가서 살고 새끼를 낳을 때면 바다로 간다는 설명이다. ○네발나비·뱀눈나비 관찰 집비둘기의 원종인 낭비둘기를 백령도 중화동에서 관찰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백령도 명물」 까나리 액젖을 만드는 공장이 즐비한 중화동 초입 아스팔트 길에 낭비둘기 4마리가 앉아 주민들이 말리다가 떨어뜨린 나락을 주워 먹느라 분주한 모습이 탐사팀에 포착된 것이다.낭비둘기는 집비둘기와 겉모양이 똑같다.꼬리 끄트머리에 뚜렷한 흰테가 있는 점이 다르다.그래서 앉아 있을때는 구분이 안된다.날개를 펼때만 비로소 식별된다. 승용차 한대가 접근하면서 이들이 접었던 날개를 펴고 비상하자 흰테가 선명했다.낭비둘기가 백령도에 서식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특별탐사팀 ▲이승모〈국립식물검역소 곤충담당자문역〉 ▲이정우〈삼육대 생활환경과 교수〉 ▲노주석·박준석〈사회부 기자〉
  • 실종 표 일병 월동작업중 피랍

    ◎공비의 야전점포서 수첩·지갑 등 나와/공비 “살해후 묻었다” 뺏은 수첩에 기록 군 당국이 5일 사살된 무장공비의 유류품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육군 노도부대 공병대 소속 표종욱 일병(22)을 납치,살해한 사실이 밝혀졌다. 군은 이날 사살된 무장공비 한명이 표일병(22)의 야전점퍼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이 공비가 입고있던 표일병의 야전점퍼 주머니속에는 표일병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육군수첩과 군번줄,지갑 등이 발견됐다. 특히 공비들이 소지한 수첩에 『묻고 옷을 입었다』고 메모했다고 군은 밝혔다.또한 공비들은 수첩에 도망 중 하루하루의 일정을 적기도 했다. 표일병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 집의 가족들도 『TV 화면을 통해 공비가 차고 있던 시계를 보니 지난 6월24일 면회를 가 외아들인 표일병에게 생일선물로 사 준 것』이라고 확인,표일병의 사망사실을 뒷받침했다. 군당국은 표일병이 지난 달 22일 하오3시30분쯤 양구군 남면 두무리 인근 야산에서 같은 부대 황재영 하사 등 13명과 함께 월동준비용 싸리나무작업에 나갔다가 하오5시30분까지 귀대하지 않아 탈영 조치했었다고 설명했다. 표일병의 부친 표찬능씨(56·서울세관 근무)는 『아들의 탈영직후인 지난달 22일 하오 8시10분쯤 부대로부터 소식을 들었다』며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다음날 부대를 방문했으며,오늘 아침에도 부대에 다녀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장공비가 사살된 곳은 표일병이 실종된 지점으로부터 남서쪽으로 30㎞쯤 떨어진 곳이다. 이에 따라 무장공비들은 강릉에서 산악도주로를 택해 양구를 타고 인제의 매봉산·향로봉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귀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군은 이에 따라 무장공비들의 도피로를 역추적,표일병의 사체를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무장공비 사살­어떻게 인제까지 갔나

    ◎오대산∼설악산∼향로봉 월북기도/휴전선 20㎞ 남겨… 통과 시기 노린듯/오대산 만행뒤 26일… 군수색으로 지연 5일 사살된 무장공비 2명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통선을 넘어 북으로 가려다 우리 군의 수색망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관측된다. 정찰조원으로 보이는 공비들이 사살된 지점은 향로봉(1천296m)과 3㎞,휴전선까지는 불과 8㎞ 남짓 떨어져 있다.월북을 눈앞에 두고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무장공비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때는 지난달 9일.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민간인 3명을 살해한 뒤로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9월18일 강릉시 대포동 해안으로 침투한 공비들은 칠성산∼대관령∼오대산∼한계령∼설악산∼향로봉 루트를 이용,월북을 꾀했던 것 같다.탑동리에서 흔적이 발견된지 26일만인 4일 하오3시 무장 공비들이 모습을 드러낸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2리도 이 루트 언저리에 있다. 공비들은 이 과정에서 북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미리 확보한 비상식량을 가지고 비트(비밀 아지트)생활을 하면서아군의 수색망이 소홀한 틈을 타 산악 행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사살된 공비들은 야간 산악 행군 때도 시간당 4∼5㎞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이어서 우리 군의 수색작전이 펼쳐지지 않았더라면 벌써 월북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9월18일 생포된 공비 이광수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정찰조 2명은 평상시 행군 능력이나 군사분계선 통과훈련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았다』고 전했고,휴전선 부근에서 근무하다 귀순한 곽경일 중사도 『아군 3명이 우리 중대 방향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승조원으로 추정되는 잔당 1명은 추위와 굶주림속에 이미 숨졌을 가능성이 커 이번 공비 침투사건은 사건 발생 49일만에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무장공비 침투 일지 ▲9월18일 상오 1시30분=택시기사 이진규씨(37),강릉 대포동 앞바다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 발견·신고 ▲하오 4시45분=무장공비 이광수(31),강릉 강동면 모전리 농가에서 생포 ▲하오 5시=강동면청학산에서 공비 11명 시체 발견 ▲19일 상오 10시30분=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공비 3명사살 ▲21일 상오 9시30분=칠성산 망기봉에서 이병희 중사(25) 전사 ▲22일 상오 6시15분=칠성산 계곡서 송관종 상병(21)·강정영 병장(21) 전사,공비 2명 사살 ▲23일 상오 6시30분=민간인 안상영씨(50),아군 오인사격으로 사망 ▲28일 상오 6시45분=성산면 보광리서 잠수함 부함장 유림(38)사살 ▲29일 하오 8시=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에서 매복중이던 한대성 병장(21),아군 오인사격으로 사망 ▲30일 하오 3시18분=왕산면 목계리 35번국도 인근에서 잠수함 기관장 만일준(48) 사살 ▲10월9일 하오 2시50분=진부령 탑동리에서 민간인 3명 피살체로 발견 ▲10일 하오8시40분=강릉 연곡면서 매복중이던 홍종진 대위(26),아군 오인사격 사망 ▲11월4일 하오3시=인제군 서화면 민통선내에서 거동수상자 2명발견 ▲5일 상오4시28분=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거동수상자와 첫 교전 ▲상오10시30분=정찰조원 추정 공비 2명 사살
  • 부패추방전쟁 「휴전」없다(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회의에서 부정부패추방을 위한 새로운 의지를 가다듬을 것을 강조했다.부패척결없이는 국가안보도,경제발전도 국가경쟁력 강화도 기대할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에서 우리는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또 한차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단호하고도 비장한 의지를 읽는다.우리는 대통령의 새로운 각오가 공직사회의 비리사정을 넘어 깨끗한 사회건설을 위한 목표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아울러 전 정부적인 입체적 부패추방노력과 범국민적인 동참협력으로 뒷받침되기를 기대한다. 부정부패의 추방은 일과성 사정이나 제도개혁,또는 정부만의 노력으로,그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대통령이 개탄한대로 취임이후 지금까지 칼국수 점심을 계속하며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않는 솔선수범을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와 버스업자간의 비리사건과 전직국방장관의 뇌물사건이 일어났다.전직대통령들을 비자금사건으로 법정에 세우고 금융실명제,공직자 재산등록,정치관계법 개정,행정기구 개편 등 제도개혁과 성역없는사정활동을 벌였어도 부패는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그동안 정경유착과 구조적비리의 인적,제도적 청산이 있었지만 중·하위층의 공직비리와 지자제 실시에 따른 인·허가비리의 만연등을 국민들은 체감하고 있다. 부정추방에 왕도가 있다면 지속적인 사정과 제도 및 의식개혁,그리고 국민적 호응뿐일 것이다.부패의 온상이 되는 행정규제의 과감한 철폐와 재산등록제도의 보완,공직비리 내부고발자 보호장치 등 꾸준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성역없는 강도높은 공직사정으로 부정부패의 면역성을 깨뜨려야한다.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태업등의 교묘한 저항은 재연되어서도 안되고 용납해서도 안될 것이다. 선거철을 틈탄 부패구조 기득권자들의 연명을 위한 방해책동도 경계해야 한다.그리고 정치권일부에서 벌써부터 정략적 사정운운하며 부패척결을 왜곡하는 것도 유감스럽다.그럴수록 정치권이 부패척결에 성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 자이르,르완다에 단교통첩/5일 아프리카 정상회담서 「내전」 논의

    ◎부룬디와도/「고마」 적십자 등 구호단체 사무소 약탈 【나이로비 로이터 특전 연합】 케냐는 오는 5일 수도 나이로비에서 최소한 7개 아프리카 국가 정상을 초청,투치족 반군의 공격으로 촉발된 자이르 동부의 내전에 대해 집중 논의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자이르 외무부 공보실 관계자도 탄자니아,우간다,잠비아,르완다,에티오피아 및 카메룬 지도자들이 나이로비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며 자이르 지도자도 초청됐다고 밝혔다.유엔과 유럽연합(EU)도 휴전 합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 평화회담을 개최시키기 위해 압력을 가해왔다. 그러나 자이르는 지난달 31일 르완다군이 동부 국경을 넘어와 투치족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어떤 회담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자이르 의회는 이날 우간다,부룬디 및 르완다 3국과 국교를 단절키로 결정했다. 한편 일본 외무성 중근동 아프리카국의 히나타 세이기 부국장은 르완다,자이르,탄자니아 및 에티오피아를 방문,자이르 내전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외무성 관리들이 1일 밝혔다. 【나이로비 로이터 연합】 자이르의 정부군과 투치족 반군간에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일 국제 구호기관의 현지 사무소들이 약탈당함에 따라 철수를 권고받고 있다고 관계자들이 밝혔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대변인은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고마 소재 국제적십자연맹(IFRC)과 적신월사의 사무소가 약탈당했으며 일단의 무장한 젊은이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 북은 전쟁준비… 우리는…(사설)

    북에서 온 두명의 북한 군인은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군사도발위협이 얼마나 코앞의 일이며 현실적인 것인가를 재확인시켜주었다. 정탐과 파괴를 위해 잠수함을 타고 침투했다가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북한군 상위),감시와 탄압이 지겨워 총탄세례속에 총상을 입은 채 자유를 찾아 휴전선을 넘어온 곽경일 중사.남으로 온 경위는 정반대였지만 두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오늘 이 시점 북한이 적화통일을 위한 기습전준비에 얼마나 골몰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경고였다. 대남침투를 위한 대형잠수함 건조와 침투부대 증강,군사정보 수집을 위한 끊임없는 간첩남파,1천리 산악행군등 강훈을 통한 특수전 요원양성 및 실전훈련 등 북한군은 김정일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고 도발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증언이다.물론 이들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장거리미사일 실험,최신형 미그전투기 30대 증강 및 전진배치등 최근 북의 군사력 증강동향을 모르는 바 아니다.악화일로의 국제여건과 경제상황 등으로 1∼2년내 기습전을 시도하지 않으면자멸밖에 길이 없다는 군부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상황인식이다.벼랑끝에 내몰린 저들이 마지막 남은 무력의 이빨로 국면전환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한 데도 우리국민은 시큰둥한 자세다.공비침투를 자작극이라 하는 자가 없나,한 사기꾼과 이에 우롱당한 정신나간 전직장관 얘기로 안보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 실정이다.밥그릇싸움 결과 위기에 처한 경제는 아랑곳없이 사치와 과소비에 노름판 해외여행까지 성행하는 현실이다. 안보는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죽으나 사나 하루빨리 한판(전쟁) 벌이는 게 낳겠다는 인민의 생각,명령만 내리면 육탄돌격을 하겠다는 자폭정신이 북의 가장 강한 무기』라는 이광수의 증언을 국민은 되새겨보아야 한다.
  • 생포 이광수·귀순 곽경일 인적사항

    ◎이광수/82년 입대·91년부터 잠수함 근무 생포된 북한 잠수함 조타수 이광수(31)는 65년 1월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리에서 태어나 계정인민학교,계정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82년 해군 5전대 4호 잠수함의 조타수 근무를 시작으로 91년 8월에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3기지 1편대 6조 조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이어 3편대 3호 잠수함 조타수로 근무했으며 지난해 7월 3편대가 22전대로 독립하면서 22전대 2편대 1호 잠수함 조타수로 일해 왔다. 협동농장원 출신인 아버지 이병호씨(59)와 어머니 박영순씨(59) 사이의 6남매 중 셋째로 92년 3월 오현숙씨(27)와 결혼,2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곽경일/부친 신의주 건설총국 책임지도원 지난 13일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곽경일 중사(25)는 71년 황해북도 금천군 문명리 출생으로 황해북도 송림시 제철인민학교,송림남자고등중학교와 황주군에 있는 삼정고등중학교 출신이다. 같은해 7월 북한군 1사단 민경대대(수색대대) 1중대 3소대에 배치돼 군복무를 시작했다. 아버지 곽덕빈씨(51)는 평안북도 신의주시 건설총국의 노동행정 책임지도원이며 어머니 김선순씨(49)는 신의주시 역전식당 책임자다. 남동생 경준(23)은 금성정치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며 여동생 경애(20)는 금성 트랙터 공장 보위대원으로 일하고 있다.〈김경운 기자〉
  • 이광수·곽경일씨가 말한 잔당 3명의 행방

    ◎“휴전선 통해 월북 기도”/특수훈련받아 야간산악 시간당 5㎞주파/정찰조 2명 잠수함서 몇시간 먼저 나가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씨와 귀순한 곽경일 중사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무장공비 잔당 3명의 행방과 관련,이들이 휴전선을 통해 월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같은 근거로 이들이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야간 산악 행군 때 시간당 4∼5㎞ 정도를 달릴수 있을 정도로 특수훈련을 받은 베테랑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씨는 『특히 정찰조 2명은 평상시 행군 능력이나 군사분계선 통과훈련 등 강도높은 훈련을 쌓았으며 승조원 이철진도 행군과 회피기동 능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이씨의 진술과 지금까지 밝혀진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정찰조 2명은 좌초된 잠수함에서 다른 동료들 보다 몇시간 먼저 빠져 나가 일당이 산으로 도주할 무렵에는 이들은 최대한의 기동력을 발휘해 이미 산속 깊숙이 숨어 들어 포위망을 벗어난 뒤 태백산맥 등을 타고 북쪽으로 달아났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특히 이들은 단파라디오 등 통신기자재를 갖고 있어 북한과 지속적인 교신을 통해 지령을 받으며 휴전선 부근으로 귀환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휴전선 부근에서 근무하다 지난 12일 귀순한 곽경일중사가 『지난 6일 소대장으로부터 아군 3명이 우리 중대 방향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쏘지말고 정확히 확인한 뒤 안전하게 들여보내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힌 것도 지령을 통해 휴전선을 넘어 귀환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곽씨는 이어 『소대장으로부터 우리 잠수함이 남조선에서 좌초한 상황이지만 1명은 잡히고 3명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으며 10월 10일에는 사단 정찰참모가 근무초소를 직접 방문해 야간 감시소에서 야간관측 망원경으로 남측지역을 계속 정찰한 뒤 다음날 사단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은 공비 잔당이 아군의 철책 경계망을 뚫고 실제 월북했는지,아니면 도주에 실패해 태백산맥 등에 은신하거나 이미 숨졌는지 등에 대해 단서가 될만한 흔적을 아직 찾아 내지 못한 상태다.〈주병철 기자〉
  • 생포 이광수·귀순 곽경일씨 일문일답

    ◎“해상처장 동승은 전쟁관련 임무수행” □이광수 상위 ­남한사람 자연산광어 모를줄 알았다 ­북한 인민들 전쟁나면 이긴다고 믿어 □곽경일 중사 ­입당·군관승진 대상서 제외 귀순 결심 ­탈출때 북 정찰중대원과 수류탄 교전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씨(31)및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곽경일 중사(25)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다. ­잠수함의 침투경로는. ▲이=함남 낙원을 떠나기 전날인 9월13일 저녁,인민무력부 정찰국장을 통해 남한침투임무를 처음 알았다.세포총회를 갖고 맹세문 낭독과 수표(서명)를 했다.이튿날 상오5시에 출발,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에서 기관을 끄고 은밀하게 해안에 접근했다. ○휴전선선 기관 끄고 접근 ­너무 쉽게 잡혔는데. ▲이=훈련을 많이 받았지만 잠수함을 타면 높은 압력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괘방산을 오를때 배가 너무 고파서 고민끝에 공작원과 떨어져 혼자 북으로 향했다.산마루에서 강릉시내와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민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붙잡혔다. ­붙잡힌 뒤 광어회를 먹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이=나는 해상공작원이라 고급어종인 광어회를 많이 먹어봤다.못산다고 믿었던 남한 사람들은 자연산 광어를 모를 것으로 여겼다. ­침투인원을 처음에 20명이라고 한 이유와 사살된 11명에 대해 말해달라. ○정찰조가 살해 가능성 ▲이=승조원들은 붙잡혀도 임무가 있는 정찰조는 하루만 시간을 끌면 복귀하리라 믿었다.해상처장과 부처장,정찰조는 숨기고 싶었다.사살된 11명은 해상처장이 『포위됐으니 죽자.나를 먼저 쏴라』고 해서 죽었을 것이다.북의 교신을 받고 정찰조가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곽중사의 탈출 상황은. ▲곽=지난 12일 하오9시쯤 잠복근무중 작업으로 피곤해진 동료들을 자게한 뒤 지휘 전화선을 끊고 총창으로 지뢰를 탐지하며 남으로 향했다.3시간쯤 뒤에 소대원들의 수색작업 소리와 남한측의 귀순 유도방송이 들렸다.13일 상오 뒤쫓아온 정찰중대원 3명과 수류탄을 던지며 교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다리를 이끌고 1시간쯤 도망쳐 국군 초소에 다달았다. ­잠수함 침투사실은 언제 알았나. ○“귀환 도우라” 지시 받아 ▲곽=9월21일 병사들의 외출금지와 지휘관 대기명령이 내려졌고 10월6일에는 소대장이 『좌초된 잠수함에 타고 있던 정찰조원 3명이 복귀할 예정이니 발견하면 무사귀환을 도우라』라는 지시를 받고 알았다. ­김정일이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곽=김정일이 군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방문한다고 생각된다. ­남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이=남한의 통신·방송을 듣고 요원을 남파,육안으로 확인한다. ­곽중사의 귀순동기는. ▲곽=북한의 정치·사회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됐다.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발전상을 동경해 왔다.또 지난해 6월 휴가복귀선물로 부대원들에게 나눠준 가스라이터와 볼펜이 중국을 통해 반입된 남한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적들 물건의 선전자」로 찍혀 입당과 군관 승진대상자에서 제외됐다.규정을 어기고 지난 94년부터 김정희와 교제,감시를 받았고 김이 임신하게 되자 「생활제대자」로 분류돼 처지가 막막했다. ­세차례 침투한 것이 사실인가.당시 남한군의 경계상태는. ▲이=이전에 세번 침투했다는 말을 들었다.바닷속은 온도차가 커서 남한군의 잠수함 소음탐지기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찾은 일반 시민들을 본 소감은. ▲곽=이들은 8·15와 6·25때 북에서 도망친 친일분자들이 북한땅을 되찾기 위해 전망대를 찾는다고 교육받았다. ­체포된 뒤 남한에서의 생활과 남북한을 비교하면. ▲이=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 거리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미국 상품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전혀 달랐다.한 가정집을 방문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들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할 망정 파괴하러 왔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꼈다.남조선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전향의사가 있는가. ▲이=죄인으로 남한정부의 처분에 따르겠다. ­구체적인 침투목적은. ▲이=정찰조 임무는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잠수함안에서도 밥도 따로 먹고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다만 정찰국의 주요임무가 군사기지 정찰·파괴,중요인물 납치·살해,후방교란인 점과 평소와 다르게해상처장이 동승했다는 사실로 미뤄 전쟁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북한의 백배천배 보복 성명이 나온 뒤 북한군의 경계상태는. ○민경대대 정찰임무 강화 ▲곽=민경대대의 잠복근무와 관측정찰 임무가 강화됐다. ­북한군내 식량사정은. ▲곽=전방 민경대대는 식량 사정이 원만한 편이나 민간인들은 「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수해로 식량이 부족하다고 교육받았다. ­잠수함이 훈련도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는 북의 주장은. ▲이=분명히 훈련은 아니다.정찰국장이 환송파티까지 해주면서 격려했고 내가 당사자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북한에서는 전쟁이 나면 당연히 북한이 이긴다고 믿는다.미국은 신형무기를 가졌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자폭정신」,즉 사상적 무기다.인민들도 어떻게 죽든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전쟁을 벌이자는 생각이다.〈김경운·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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