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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관람료/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구경을 마침내 가게 됐다. 22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은 다음달부터 금강산 관광을 떠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측과 합의한 내용을 보면 4박5일 기간으로 관광비용은 미화 1,000달러(한화 약 130만원)에 합의함으로써 예정대로 9월25일 4,000여명의 1차관광단이 출발할 수 있게 됐다. 관광코스는 구룡연,만물상,해금강,삼일포,총석정등 5개장소,4개코스로 확정됐다고 한다. 예로부터 세계적인 명산으로 이름이 높았던 금강산, 그래서 「금강산을 보기전에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시어(詩語)가 나오게 됐고 사람들은 금강산을 한번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까지 나왔던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니 여간 기쁜일이 아니다. 더욱이 원한의 휴전선때문에 한발짝도 갈수 없는 북한땅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 사건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에 여비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비자발급 수수료,입산료등 북한측에 지불해야 할 공적비용을 감안하면 1,000달러의관광비용은 너무 비싸다. 특히 현대 측이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한 점을 감안하면 영세 실향민들의 금강산 구경은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다. 적은 비용으로 우리 국민이면 모두가 한번은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경비를 절감할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관광객 수송로를 단축하는 문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확정된 수송로는 하오 6시 동해항을 출발, 다음날 아침 7시에 장전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돼 있다.정전협정 체제에서 여러가지 제약과 풀어야 할 법적장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남북교류협력의 제도적 차원에서 관광수송로 단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현재 대북식량지원의 경우처럼 해상에서 남북이 인수·인계하는 절차를 적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번 금강산 관광사업은 정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진 만큼 현대측이 이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현대가 분단의 비극을 청산하고 민족공동번영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했고 북한의승인을 얻어 냈다고 한다면 이같은 문제에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아무튼 금강산 관광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남북화해와 협력의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우는 역사성에 입각해서 진행돼야 할 것이다.
  • 아일랜드 민족해방군 휴전 선언

    【벨파스트 AFP 연합】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NLA)은 22일 벨파스트 지부 성명을 통해 아일랜드의 재통일을 위한 전쟁을 이날 정오(한국시간 22일 하오 8시)부터 완전 휴전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그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데 대해 사죄한다고 밝혔다. INLA는 지난 20여년 동안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사건들을 일으킨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한 분파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조직이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28명이 숨진 오마시 폭탄테러를 자행한 ‘리얼 IRA’도 사건 직후 테러행위 중지를 발표했다.이로써 아직 휴전이나 테러행위 중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IRA 분파조직은‘컨티뉴어티 IRA’한 조직만 남게 됐다.
  • 건교부,911건 규제완화 추진/경제부처 실천방안

    ◎해양부­환경친화적 바다목장 사업 시행/농림부­농산물 직거래장 50곳 이상 개설 金大中 대통령의 ‘제2건국을 위한 6대 국정개혁과제’ 천명과 관련,각 경제부처는 16일 세부적인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건설교통부=규제 철폐와 정보화,남북협력 등 분야를 집중 추진한다. ▲도시 ▲주택·건축 ▲토지이용 ▲건설·산업 ▲교통·물류 등 5개 분야의 911건에 달하는 규제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추진중인 물류종합정보망과 지능교통시스템,국가지리정보체계 등 정보화사업(1단계)을 2000년까지 끝낸다. 경의선∼경원선의 휴전선 구간을 잇는 사업과 나진·선봉지구의 공단개발 사업의 개시 시기를 앞당기도록 대북협상에 주력,남북교류협력시대에 대비한다. ■산업자원부=기업의 자율경영체제 구축과 수출 증진,외국인투자 유치 촉진,산업구조 개편에 초점을 둔다. ‘일몰제’ 도입으로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금융 세제 토지 환경 노동 등 기업활동과 관련된 주변 여건을 최대한 국제기준에 맞춰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보장한다. 첨단기술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 육성,가격경쟁력 중심의 수출전략에서 탈피한다. 신소재 정밀화학 등 지식집약산업을 21세기 주력산업으로 집중 육성한다. ■해양수산부=▲바다를 제2의 국토로 개발하고 ▲한반도를 동북아 물류중심기지로 구축하며 ▲환경친화적인 ‘바다목장화 사업’을 추진한다. 남극과 남태평양 등 세계 각지에 해양전진기지를 세우고 해양과학 기술을 적극 육성한다. 부산과 광양에 첨단 자동화 및 기계화 시스템을 갖춘 대단위 컨테이너 부두건설을 차질없이 추진,‘자유항’으로 발전시킨다. ■농림부=농산물 물류체계를 집중 개혁한다. 30∼40%의 농산물을 산지에서 포장,브랜드화해서 출하할 수 있도록 한다. ‘채소류 생산출하조절 기획단’을 설치해 지역·시기에 따라 출하물량을 조절,안정적 공급토대를 구축한다. 대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500평 이상의 상설 직거래장터 50개소 이상을 올해 안에 세운다.
  • 북아일랜드 차량 폭탄테러/28명 사망·200여명 부상

    ◎신·구교 평화협정 위기 봉착/79년 이후 최악의 참사/IRA 탈퇴 조직 소행 추정 【오마·런던 AP AFP 연합】 북아일랜드 오마시 중심가에서 15일 하오(현지시간)차량 폭탄테러가 발생,28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오마시는 수도인 벨파스트에서 서쪽 100㎞에 자리한 신·구교도 공동거주 지역.영국군의 벨파스트 주둔 29주년 기념일에 맞춰 있은 이날의 폭탄테러는 79년 18명이 사망한 아일랜드공화군(IRA) 폭탄테러 이후 최악의 참사다.이로써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된지 4개월만에 위기를 맞게 됐다. 경찰은 테러에 앞서 벨파스트의 BBC방송국으로 ‘법원청사 밖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경고전화가 걸어오자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다.그러나 차량폭탄 폭파로 저질러진 테러는 경고 전화 후 40분만에 주민들이 대피한 대형 슈퍼마켓 앞에서 터져 사상자가 많았다. 사고 현장은 희생자들의 시체와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부상자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으며 주변거리도 폭발 당시 깨진 유리조각과 쓰레기더미 등 파편으로 뒤덮였다. 이번 사건을자신의 소행으로 주장하는 단체나 개인은 아직 없다. 경찰은 아일랜드공화군에서 탈퇴한 조직 중 무장을 갖추고 맹렬한 활동을 벌여온 ‘리얼(진정한)IRA’를 꼽고 있다.휴전에 반대하며 아일랜드공화군에서 탈퇴했고 지난 1일에는 벨파스트 남서부 밴브리지에서 차량폭탄 테러를 감행,35명의 부상자를 냈었다.지도자는 지난해 IRA를 탈퇴한 폭탄제조 책임자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NLA)과 ‘영원한 IRA’도 용의 선상에 올라있다. ◎북아일랜드 분쟁 약사 ▲1600년∼1700년:스코틀랜드 등에서 신교도들 대대적인 이주. 북부지방에 대거 정착하며 분쟁의 불씨가 됨 ▲1801년:영국,아일랜드 합병 ▲1905년:신페인당 창설 ▲1919년:반정부 무장투쟁단체 아일랜드공화군(IRA) 창설되며 독립투쟁 가열 ▲1972년:영국,북아일랜드에 군대파견하며 직접통치.폭력사태로 470명 사망 ▲1995년: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북아일랜드 평화안 발표 ▲1996년 6월:신페인당 불참하에 다자간 평화회담 시작 ▲1998년 4월: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체결.북아일랜드의 고도의 자치권 부여와 영국령 존속을 영국과 아일랜드,북아일랜드의 신·구교 각 파벌이 합의 ▲1998년 6월:북아일랜드 총선 얼스터통일당(UUP),신페인당 등 평화를 지지하는 정당들 승리 ▲1998년 7월:신교도들의 가두행진 둘러싸고 신·구교 갈등.어린이 3명 소이탄 공격으로 사망. ▲1998년 8월1일:‘리얼(진정한)IRA’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 남서부 밴브리지에서 차량 폭탄 테러 감행,35명 부상.
  • 印·파 6일째 포격전/核전쟁 비화 우려

    【이슬라마바드·뉴델리 AFP A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접경지대에서 4일까지 6일째 포격전을 계속했다. 인도군 간부들은 1,300㎞의 통제선(휴전선) 가운데 400㎞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시작된 이번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락미나라얀 람다스 전 인도 해군참모총장(63)은 이날 양국은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진지한 대화를 벌여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 金正日 주석추대 거듭 시사/北 중앙방송

    북한은 28일 金正日이 곧 소집될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국가주석직에 추대될 것임을 거듭 시사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재일동포들은 정전(휴전협정체결일) 45주년을 맞아 위대한 장군을 국가주권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공화국 정부의 두리(주위)에 굳게 뭉칠 결의로 불타고 있다”는 축전을 조총련이 金正日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국가주권의 최고수위는 국가주석을 의미한다. 북한 중앙통신이 이달 초 金正日이 국가주석에 추대될 것이라고 시사한 이후 외교부 고위관리들도 비슷한 말을 해왔다.
  • 北 잠수함·잠수정 92척 ‘물밑작전’

    ‘북한 잠수정의 침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이 공격형 핵잠수함과 순양함,P­3C 대잠(對潛)초계기 등 대잠 장비와 병력을 한반도에 급파,북한 잠수정의 동해 침투에 대비한 한·미 연합작전을 전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자 우리 군이 이를 계기로 ‘잠수정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로 비유되는 북한 잠수정의 탐색 작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지만 해안선을 따라 침투하는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찾아내기는 이론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육지에서 가깝기 때문에 음파탐지기를 통해 적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 70t 규모의 소형 잠수정을 확실하게 탐지할 만한 장비는 미개발 상태이다.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때와 최근 두 차례의 침투 사례에서 보듯 물속에 있는 잠수정을 찾기보다는 물위로 떠오른 잠수정을 탐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다. 이 점에서 민·관·군 통합방위 체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있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우리 군의 대응 전력 및 전술,보완 대책 등을 점검해 본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대부분 노동당작전부 지휘받아/7∼9월 음력그믐 전후 집중/공해서 반잠수정 이용 침투도 관계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동해와 서해에 모두 6개의 해상 침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동당 작전부 313연락소가 동해의 원산과 청진,서해의 남포와 해주기지 등 4곳을,인민무력부 정찰국은 동해의 퇴조와 서해의 남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1,400t 규모의 로미오급 잠수함정 26척,320t규모의 상어급 잠수정 19척,70t규모의 유고급 잠수정 47척 등 잠수함정 92척을 비롯,60∼70t규모의 공작선박 80∼90척 등 북한 해군이 보유한 함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들 기지에 배치,대남 침투 도발에 사용하고 있다. 또 노동당 소속 공작원 1,500명 및 인민무력부 특수전부대 요원 2만여명을 평상시 대남 침투 특수요원으로 투입하고 있다. 북한군의 전시 대비 특수전 요원은 모두 12만명에 이른다. 최근 두차례의 북한 잠수정 침투는 모두 원산에 본부를 둔 노동당작전부에서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전부 요원들만이 사용하는 체코제 기관권총과 사각수류탄 등이 나왔고 침투용 추진기도 발견됐다. 20일 간격으로 같은 부서에서 동일한 장비를 이용해 침투 공작에 나선 것이다. 군 당국은 속초 앞바다에 좌초한 장수정에서 ‘9·9절을 앞두고 충성의 선물을 드리자’는 편지가 나온데 주목하고 있다.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50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선물 마련’ 차원에서 침투 공작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노동당 작전부는 통상 2∼3개월씩 장기 체류하면서 고정간첩과 접선하고 지하망을 새로 구축하거나 기존 지하망을 확인·확장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북한의 경제난에 따라 고정간첩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것도 최근 밝혀진 이들의 주요 임무의 하나이다. 이에 반해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1∼2일 가량 짧게 체류하면서 침투지역의 군사표적을 정찰,군사첩보를 수집하고 무장공비 남파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이를 위해 수중 침투전담 조직인 22전대를 운영하고 있다. 22전대는 지휘부와 1,2,3편대로 구성돼 있으며 인원은 1,2편대 45명씩,3편대 15명 등 모두 110명이다. 1,2편대에는 상어급 잠수정이 2척,3편대에는 유고급 잠수정 1척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는 인민무력부가 주도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시 좌초한 상어급 잠수정은 2편대 소속 1호함으로 94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분단 이후 60년대까지 2,187건,70년대 345건,80년대 205건,90년대 72건 등 모두 2,800여차례나 육상및 해상을 통해 대남 침투도발을 저질러 왔다. 60∼70년대에는 주로 개인 수영장비나 고무보트 등을 이용해 임진강 하류지역에서 김포반도와 강화도지역으로 침투를 시도했었다. 이어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이나 8명이 타는 반잠수정 및 수중 추진기를 개발,침투해왔으나 이들 방식이 은밀성에서 뒤지고 침투지역이 제한되는데다 기동성이 떨어지자 90년대 들어서는 잠수함및 잠수정을 이용한 수중침투로 전환했다. 북한이 최근 집중 침투하고 있는 동해지역은 핵심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는 군사요충지다. 공군기지 및 해군 1함대사령부 등의 군사시설이 있다. 이곳이 점령되면 태백산맥 전체가 북한 수중에 넘어갈 위험이 있으며 태백산맥이 조기에 함락되면 기계화부대가 해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할 수 있다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 집중 침투하는 시기는 7∼9월 사이의 달빛이 없는 음력 그믐 전후. 지난번 속초 침투에서 드러났듯 원산 등 동해기지로에서 출발한 소형 잠수정은 5∼7마일(8∼10㎞)밖에 떨어지지 않는 연안 해로를 따라 잠행,해군의 경계망을 피한다. 이어 고성에서 강릉 사이 해저에 안착한 뒤 심야시간대에 공작조를 침투시키고 있다.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을 이용해 공해상에 도착,자선(子船)인 반잠수정에 의해 내륙을 침투하는 방법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전략/민·관·군 통합 3중 그물 친다/취약지역 연안 정치어망 설치/대잠함·초계기 등 24시간 경계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두차례나 침투 당한 데 대해 울분을 금할 수 없다”. 합참의 고위 관계자는 잇따른 침투도발을 ‘군의 치욕’이라고규정,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철책이 쳐진 휴전선 155마일은 말 그대로 ‘물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으나 동·서·남해안의 수중 침투에 대한 경계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실토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동해안에서 북한의 잠수정을 샅샅이 잡아내려면 이론상 100∼140척의 대잠(對潛)함정,50∼80대의 P­3C 대잠초계기를 수중 및 수상,공중에 깔아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해군의 동해 경비전력은 대잠함 10여척,P­3C 대잠 초계기 10여척,대잠헬기인 링스 10여척에 불과하다. 부족한 대잠 장비로 5,800㎞의 해안선 및 31만㎢의 바다를 완벽하게 지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잠수정 탐지률은 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해안은 한·난류가 교차하고 수중 소용돌이 현상이 발생,음파를 이용한 잠수정 탐지가 곤란한 실정이다. 해저지형이 급경사에다 불규칙하게 분포돼 있어 ‘잠수함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많은 선박이 오고 가며 내는 소음으로 미국의 최신예핵잠수함이든 구식인 북한 상어급 잠수정이든 여간해서는 잘 탐지되지 않는,세계에서 대잠 작전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의 핵잠수함도 1,000t급 이상의 잠수정을 탐지,격퇴시키는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70t짜리 북한잠수정이 바다 밑에 숨어버리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95년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해안경계 병력이 70%까지 감소,동해안의 평시 초소 간격이 최대 770m까지 늘어나는 등 육상경계도 느슨해졌다. 특히 주민들의 편익 증진을 위해 일부 해안경계 철조망이 제거되면서 거의 모든 해안선은 경계 취약지역이 되고 말았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북한 잠수정의 침투에 대비해 상근 예비역을 취약 해안지역에 배치하는 한편 취약지역 연안에 정치어망을 설치하고 민간 어선단을 구성,경계와 신고체계를 조직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정규적인 해상 침투에 완벽하게 대처하려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추가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군은 원칙적으로 정규전에 대비하고 비정규전에 대해서는 주민신고를 받아 신속하게 격퇴하는 민·관·군 통합 방위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여기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때 미국은 많은 양의 대잠전력 외에 바다에 그물망까지 설치하고 대비했는데도 5척의 일본 잠수함이 침투,어뢰공격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말로 대잠 작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을 어부가 발견해 신고,잠수정을 나포했듯이 그물망을 설치하고 주민신고 체제를 확립하는 게 최선의 방비책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잠 장비를 확충,대잠 탐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 장비 턱없이 부족 對潛활동 한계/軍 해상경계 실태

    ◎함정 50여척중 10여척만 작전가능/東海 해양특성도 수중탐지에 장애 잇따라 침투한 북한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우리 군은 왜 미리 탐지하지 못했나. 무엇보다 군의 허술한 해안경계에 그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동해의 해양적 특성이 잠수함 침투를 탐지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 여기에다가 잠수함의 활동을 탐지할 수 있는 군의 대잠 장비부족도 지적되고 있다. 13일 군 당국에 따르면 1,537㎞에 이르는 동해안은 한류와 난류의 교차가 심해 음파탐지가 굴절되거나 중간에 되돌아와 탐색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름철에는 표면온도가 높아 수중음파 탐지거리가 평소의 3분의 1 수준에 그쳐 바다 밑에 숨은 잠수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군의 열악한 장비도 큰 이유중의 하나다. 현재 40∼50척의 함정으로 동해안을 책임지고 있는 1함대사령부의 경우 대잠활동이 가능한 함정은 불과 10여척에 불과하다. 그마나 대잠헬기를 탑재하는 구축함의 경우 대부분이 50년 이상 된 것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상초계기인 P3C도 8대에 불과해 휴전선을 중심으로 동서로 날아다니며 대잠활동을 벌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박겉핥기식에 지나지 않는다. 군 당국은 특히 잠수함이 심해가 아닌 연안쪽으로 붙어다닐 경우는 찾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수중음파탐지 기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잠수함 찾기란 ‘모래속의 바늘찾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지난 달 22일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한미대잠위원회를 활성화시켜 대잠정보·해양정보 교환 등 대잠작전 협조체제를 강화하고 해군내 대잠작전중앙위원회의 기능을 대폭 보강하고 있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현대,北에 수출공단 추진/鄭夢憲 회장 관훈토론

    ◎서해안 휴전선 부근/월내 北과 합영회사 설립 현대그룹은 대 북한 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서해안 휴전선 부근에 신발·가죽·섬유·봉제 등 경공업 중심의 자유수출공단을 조성할 계획이다.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의 추진을 위해 이달 말까지 북한과 이를 전담할 합영회사를 설립한다.금강산 유람선은 1억2,000만달러를 들여 2척은 구입하고 2척은 빌어 쓰기로 했다.특히 현대는 북한측이 관광객의 신변안전과 편의제공을 보장했으며,장전항의 선착장 시설공사를 오는 25일부터 시작해 9월 25일까지 끝내기로 했다. 鄭夢憲 현대 공동회장은 2일 관훈클럽이 프레스센터에서 연 조찬 간담회에 참석,금강산 관광 및 대북 협력사업 추진현황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鄭회장은 “섬유 신발 완구 피혁 등 국내 사양업종의 유휴설비 20%정도를 앞으로 북한에 조성할 공단으로 이전시키면 국내 수출액의 3.1%인 44억달러 이상의 수출 증대가 이루어지고 북한은 근로자 임금 등으로 4억4,000만달러 이상의 외화획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대북 경협사업으로 이미 밝힌 5대 사업 외에 발전소 건설,연 20만대 규모의 자동차 라디오,컴퓨터 생산,하루 100t 용량의 금강산 광천수 개발,북한 특산품 판매사업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鄭회장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측이 관광객과 현대측 실무대표단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며,환자 발생시에는 응급조치 및 후송에 대해 필요한 지원 조치의 제공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 전산요원 49명 出禁조치/미복귀땐 검거 나서기로

    대검찰청 공안부(秦炯九 검사장)는 퇴출은행 직원들의 전산망 가동중단 행위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산요원들이 1일 상오 7시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퇴출은행 관리인으로부터 고발장을 접수받아 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또 5개 퇴출은행의 핵심 전산요원 49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출금대상자는 △경기은행 임헌남씨(4급·운영총괄)등 11명 △동화은행 李명구씨(4급·시스템관리과장)등 10명 △대동은행 강희대씨(4급·제휴전산망담당)등 8명 △충청은행 정운영씨(4급·시스템관리과장)등 10명 △동남은행 朴지순씨(3급·정보시스템실차장)등 10명이다. 검찰은 30일 금융감독위 재경부 노동부 경찰청 안기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안합동수사본부 회의를 갖고 퇴출은행 직원들의 집단 반발과 관련해 이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오라’손짓(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下)

    ◎鄭周永씨 訪北후 통일전망대 관광객 북적/명파리 주민들도 “北行 뱃길 열린다” 부푼꿈 그리운 금강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꿈속에서나 갈 수 있었던 세계적인 절경 금강산.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자연예술의 극치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현실세계에서도 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향한 유람선이 오는 가을 속초를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한 후 현대그룹은 9월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한국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남북 해빙의 염원도 함께 태우고 떠날 것이다. 유람선의 고동소리는 남북 화해의 새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남북 화해 새시대 바라 24일 하오 기자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위의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의 금강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방문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이미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지못해 실망스런 표정들이었지만 망원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이들의 눈길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우뚝 솟은 비로봉을 경계로 펼쳐진 외금강 신금강 해금강 내금강의 아름다운 자태에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금강산에 대한 화답인 듯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내려오다 인근에 사는 촌로를 만났다. 명파리에 사는 李씨(76)라고만 소개한 그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 자락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동해 북부선 기차가 지나 다니던 터널을 보기 위해 왔다”며 “죽기 전에 철길이 다시 복원돼 기차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회에 젖었다. 그가 안내하는 터널은 6·25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터널입구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조국’이라는 글자가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로 흔적 조차 없어 양양쪽으로는 아예 철로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웠다. 방문객들마다 녹슨 철로라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는 게 안내장교의 얘기였다. 李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느냐고 묻자 “최근까지는 거의 찾은 적이 없었다”며 “그러나 鄭周永씨의 방북으로 늙은이의 마음이 동요된 탓인지 요즘은 가끔 들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명파리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파리 마을은 동해안 38선에서 북으로 84㎞지점인 통일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한 140여가구의 자그마한 동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내집 드나들 듯 했다. 금강산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李씨의 말대로 들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도로 옆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 등의 간판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양,함흥,금수강산,원산 등 북한지명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6년 명파리 마을이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뒤부터 생긴 변화중의 하나라고 귀뜀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금강산은 마을 노인들의 옛 휴식처였다”고 남북 해빙 움직임을 반겼다. 동네 노인정을 금강산자락 밑으로 옮겨야 되지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鄭周永씨가 부풀린 기대감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李성찬씨(65)는 “북한이 그동안 한 짓을 보면 언제 마음이 변할 지 모르겠다”며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못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李씨는 명파리 사람들이 원하는 ‘금강산구경’이 뭐겠느냐고 되물었다. “명파리 사람들은 매일 매일 분단의 아픔을 삼키며 삽니다. 한 때의 급류타기가 아니라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의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마을노인들 옛 휴식처 그는 “鄭周永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된 것을 보면 남북화해에 대해 아직은 섣불리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철조망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이 꿈에만 그리는 ‘금단의 땅’은 아닐 것”이라며 “鄭周永씨의 방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지속돼온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25가 터진지 어언 48년. 홍안의 나이는 반세기의 나이테를 더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명파리의 노인들에게 금강산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녹슨 철길이 다시 놓이고,속초항에서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의 고동이 울리는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명파리 마을’사람들. 분단을 아픔을 뒤로 한 채 이들의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가 있는 듯 하다.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탁 상흔도 그대로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 상흔도 그대로/배봉리주민 朴在奉씨 “금강산 구경요. 그 좋죠. 조만간 갈 수 있다니까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갈 겁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에 사는 朴在奉씨(83)는 금강산 얘기가 나오자 어린애처럼 즐거워 했다.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왔기에 금강산에대한 일화는 몇날이 걸려도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朴씨가 사는 배봉리는 통일전망대 아래의 명파리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으로 6·25 당시 동네 개천가 앞의 철교와 터널이 북한군의 폭격으로 폐허화됐던 곳. 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인 뒤 말문을 연 그는 “비로봉 구룡폭포 내금강 외금강 등 금강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못가는 안타까움보다는 가로막힌 현실이 더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보통학교 시절 금강산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많이 꼬드겼어요. 인근 사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일포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온정리로 들어갔지요. 한두어시간 걸렸나요. 그리고는 원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지요. 명산에 들어갈 때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하거든요”이어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금강산에 발길을 끊게된 것은 8·15광복과 함께이곳이 공산당에 접수되면서부터. 감시가 워낙 심해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안됐다. 그러다 6·25를 맞으면서 금강산은 추억속으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동네앞 철교를 놓을 당시 잡부로 공사일을 한 적이 있는데 6·25때는 북한이 양양으로 가는 이 철교를 부수기 위해 폭격을 한 현장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옛 친구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 금강산을 다시 찾는데도 혼자 밖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평생 이곳을 지킨 노인네로서 느끼는 점은 부서진 철교가 다시 복원될 때 분단의 역사는 진정 그칠 수 있다는 확신뿐”이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 돼지떼도 북한 간다/개신교 평신도協 기금 갹출

    ◎10월 1004마리 선물 추진 소떼가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으로 간 데 이어 오는 10월 돼지떼도 휴전선을 넘는다. 개신교 한국평신도단체협의회(회장 이우호)는 25일 한국교회1백주년기념관에서 ‘6·25 48주년 예배 및 세미나’에서 추석(10월 5일)을 전후해 ‘북한동포를 위한 사랑의 돼지 1,004마리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32개교단 평신도 대표들은 2억5,000만원으로 추산되는 기금을 교단별로 갹출하기로 하는 한편 관계기관과 접촉,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하기로했다.돼지는 천사를 상징, 1,004마리로 정했다.
  • 평화의 훈풍 감도는‘鐵의 삼각지’(휴전선 해빙의시대 오는가:下)

    ◎안보교육장된 격전지에 관광객 북적/민통선 주민 금강산철도 복원 큰 기대 날아오는 총알을 이빨로 물었던 무용담과 금강산 여행의 희망이 어우러진 곳이 있다.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지역이다. 철의 삼각지는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포탄을 너무 맞아 높이가 1m 낮아진 백마고지,꼭대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는 아이스크림고지,희생자들의 피가 내를 이뤘던 피의 능선 등. 이제 이곳은 대표적인 안보교육장이 되었다. 백마고지 전적지와 월정리 일대는 관광객을 태운 버스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코 앞에 휴전선이 있고 민통선 이북이다. 여기가 뚫리면 단번에 서울이 위험해진다. 정예강군으로 평가받는 육군 청성부대와 열쇠부대가 한치의 틈도 없이 지키고 있다. 6·25 발발 48주년을 맞아 철의 삼각지 전투에 참여했던 예비역 장성 10여명이 부부동반으로 백마고지 전적비를 찾았다. 모두들 감회어린 표정으로 ‘무용담’을 자랑했다. “일어나서 부대원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순간,적의 총알이 입으로 들어오길래 꽉 깨물어버렸지” “중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전투는 내가 다 치렀는데 기록판에 내 이름은 없구만” 환갑을 훨씬 넘긴 노병(老兵)들은 지금이라도 전투에 나서겠다는 기백이 넘쳤다. 최전방을 지키는 초병들에게 북한은 아직 ‘격멸해야할 적(敵)’이다.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정이 나포된 뒤 경계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초병들 강도높은 훈련 매진 열쇠부대 姜恩珍 중위(26)는 “조건반사적인 훈련만이 유사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아래 강도높은 교육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고 씩씩하게 외쳤다. 관광객이 더욱 많이 찾는 청성부대 장병들도 경계태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柳寅雲 중령(40)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경계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고 강조했다. 철원은 한탄강을 끼고 북한의 평강고원까지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너른 들판이다.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다.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과 금강산가는 전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산 아래의 ‘명사십리’는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가보고 싶은 해수욕장이다. 그러나 내금강행 전철은 해방 1년전인 지난 44년 일본이 다른 곳의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철거했다. 북한이 개방되면 경원선도 복구하고 금강산 전철도 새로 깔아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북 화해정책’의 훈풍이 철원평야에 먼저 분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남북통일이 되거나 관계가 개선될 때 개발 우선순위 지역이다. 민통선 북쪽에 위치한 마을 대마리 주민들도 꿈에 부풀어 있다. 188가구,950명의 주민 중 상당수가 실향민이다. 이들은 고향에 가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과 함께 ‘금강산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마리 이장 林鍾睦씨(41)는 ”정주영씨의 소떼가 북한에 감으로써 남북교류의 물꼬가 터졌으니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라고 말했다. 철원과 금강산을 잇는 철도 복원문제에 대해서는 “가슴이 벅차 무어라 표현을 못하겠어요”라고 설레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 잠수정 사건이 일과성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경원선이마지막으로 끊어진 월정리역. 휴전선 남방한계선과 붙어 있다. 취재진과 동행한 작가 柳在用씨(62)는 ‘적극적 통일대비론’을 폈다. “이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가 아니라 ‘달려야 한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서진 옛 기차를 새 기차로 바꿔놓고 조건만 충족되면 당장이라도 달리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월정리 일대에는 이미 유명해진 ‘북한 노동당사’와 ‘제2땅굴’도 있다. 북한의 호전성을 알려주는 유적들과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 그 가운데 삭막한 분위기를 바꿔주는 이가 있다. 청성부대 정훈장교 朴商瑛 중위(27). 훤칠한 키에 절도있는 동작의 여장부지만 해맑은 미소로 방문객을 맞으며 최전방을 밝게 한다. 21세기 남북관계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도 싶다. ○굵직한 문화유적 곳곳 산재 남북 해빙무드에 맞춰 철원 일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교통의 요충이라는 것 외에도 다양하다. 굵직한 문화 유적만 해도 10여개가 넘는다. 궁예도성,성산성,동주산성 등. 후삼국 시절 궁예가 지은 도성은 비무장지대(DMZ)안에 있다. 재두루미,고라니,큰기러기 등 희귀조류 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여기에 동송저수지,학저수지 등 사람에 찌들지 않은 호수들과 50년간 인공이 배제된 DMZ 일대의 생태계 등. 금강산 개발과 철원일대 관광지개발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남북관계 발전은 물론 국부(國富)증진에 폭발적 힘을 보탤 것이다. ◎김화 출신 소설가 柳在用씨/금방 전원교향악 들려올듯 평온/6월 햇살속 겨울옷 벗겨낼 힘 충만/포성·격양된 대남방송 분단 실감케 6월 하순의 철원평야. 여기가 6·25전쟁중 최대 격전장이었던 ‘철의 삼각지’란 말인가. 검푸르게 자라는 벼포기들을 가득 실은 평야,그 위로 유유히 날으는 백로들,여유있는 표정의 농민들을 바라보느라니 아름다운 민요가락이나 전원교양악이라도 들려올 것 같았다. 인구 2만의 융성했던 도시 철원읍을 완벽한 폐허로 만들어버린 전쟁은 꿈속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전쟁은 결코 꿈은 아니었다. 반세기라는 짧지 않은 세월로도 다 아물릴 수 없었던 상처들이 철원평야의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구철원읍의 중심가였던 자리에 벽과 벽의 일부로만 남아 있는 얼음창고,농산물검사소,금융조합,철원감리교회,교각만 남아 있는 금강산행 관광철도의 철교와 잡초 우거진 철로둑,월정리역에서 끊겨버린 경원선 철로,해골처럼 흉물스러운 몰골로 서있는 철원노동당청사,길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지뢰지역,24회나 주인이 바뀌는 격전으로 2만명의 전사자를 낸 백마고지,북한의 남침 야욕과 적화통일에의 미련이 노출된 땅굴,국토의 허리를 막아 놓은 철조망…. 뛰어가면 5분에 닿을 수 있다는 북한쪽 고지에서는 격앙된 목소리의 대남방송이 들려오고 어디선가 포사격 연습하는 소리가 먼 천둥소리인양 우릉우릉 들려온다. 게다가 북한군 잠수정의 동해안 침투소식마저 겹쳐 어쩔 수 없이 분단과 대치를 실감하게 해준다. 하지만 몇 년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철원평야에는 한결 짙은 평화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한가로운 전원풍경이나 철조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래하는 뻐꾸기와 꾀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에는 철원평야의 정적속에 공포와 불안이 배어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감과 안정감과 화해의 기운이 배어들어 있었다. 철원평야 위로 쏟아져 내리는 6월의 따가운 햇살속에는 얼음을 녹이고 겨울옷을 벗겨낼 힘이 충만해 있었다. 내실을 다지는 일과 경계하는 자세를 흐트리지는 말아야 한다. 서두르지도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며 기다리자. 멀지않은 장래에 통일열차를 타고 분계선을 넘어 북쪽땅으로,고향으로 달려갈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가슴 속에 고여 올라옴을 느끼며 철원평야를 뒤로 했다. (柳在用씨는 강원도 김화군 창도리가 고향인 실향민이다. 철원 지역을 주무 대로한 자전적 분단소설 ‘달빛과 폐허’ 등 많은 작품을 썼다.) ◎6·25당시 美 군사고문단 캐롤 하지스씨/전쟁의 교훈 어느것이든 잊어선 안돼/미국서 한국전쟁 관심 되살아나 다행 6·25전쟁시 군사고문단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미국인 캐롤 B,하지스씨(84)는 주한미군사령관 고문으로 한국군 창설과정,또 농촌근대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예비역 대령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그가 6·25 48주년을 맞아 한국에 왔다. ­한국전쟁 48주년을 맞는 소감은. ▲이 때만 되면 남다른 감회가 많다. 헐벗고 굶주리던 당시 한국민들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3만5,000여명의 미군이 숨지고 10만명이상 부상한 한국전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것이 안타깝다. ­그 이유는. ▲베트남전쟁 패배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을 기억할 여유가 없었다. 왜 막강한 화력의 미군주도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해야 했는가도,전쟁중 작전권이 박탈된 맥아더 장군의 교훈도 잊었다. 한국전쟁 기념비도 1995년에야 세워졌다. 전쟁의 교훈은 어느 것이든 잊어선 안된다. 최근 미국내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 다행이다. ­한국전쟁후 심혈을 쏟은 농촌부흥운동인 4H운동에 대해 들려달라. ▲한국민들의 열정과 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성과는 놀라왔다. 평택 모범농장은 폐허에서 일으켜 세운 농촌의 전형이 됐다. 또 4H운동은 한국 민초(民草)들에게 민주주의를 심어준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朴正熙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바뀌었고 아쉽게도 나중에 획일적 집단주의로 흘렀다. ­부인 해리어트 여사와 벌이고 있는 어린이심장병환자 수술운동은. ▲이 일은 단번에 중단할 수 없다. 지난 72년 심장병을 앓던 한 한국 소녀를 아내가 적극 미국에 주선해 완쾌시킨 뒤부터 시작,지금까지 3,300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50년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용공 시비는. ▲용공시비는 한국군 내부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많은 군인사들이 내게 그런 정보를 흘렸으나 근거가 없다.
  • 48년 白凡 북행길을 가다(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上)

    ◎소떼 넘은 분단 현장 和解의 瑞氣/잇단 장성회담·투자설명회 “변화 실감”/임진강나루 서쪽 5㎞엔 통일대교 관통/긴장·대결의 무대 판문점 화해·교류의 場으로 변화/평화로운 비무장지대 산새·짐승의 낙원으로/50년전 白凡의 북행길 鄭 회장 대남방송속 귀국/역사에 묻힌 평화통일론 DJ 햇볕론으로 재구현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의 최근 소떼몰이 방북과 그로 인한 올가을 금강산 관광에의 기대는 온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6·25 48주년 아침,또다시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새겨지는 때이지만 여느해와는 다른 희망과 기대가 샘솟고 있다. 서울신문은 그 남북해빙(解氷)의 기운을 전하기 위해 당시 남북간 민족의 교통로였던 판문점 일대와 철원,고성을 찾았다. 이는 백범 金九 선생이 민족통일의 염원을 안고 북으로 향했던 50주년 되는 해여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분단 50년. 그 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지나온 분단의 땅에도 마침내 ‘화해의 봄’은 오는가. 불행한 식민지시대의 시인 이상화의 소망대로 1945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그러나 그 봄은 너무나 짧았다. 한반도는 곧 분단의 긴 겨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은 분단의 벽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이제 분단의 겨울을 헤치고 ‘화해의 봄기운’이 판문점으로부터 피어오르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변화의 기운은 분단의 비극을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긴박한 갈등과 첨예한 대결의 무대였던 판문점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화해와 교류의 장소로 그 기능과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의 변화는 鄭周永 명예회장이 16일 소떼 500마리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는 새로운 풍속도로 나타났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판문점의 긴장이 초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새정부의 ‘햇볕정책’에 의해 화해의 따듯한 분위기로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그가 돌아오던 23일의 판문점은 마치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 된 듯 북적거렸다. 판문점에 있는 군사정전위 회의실에서도 이날 7년만에 유엔사와 북한군 장성들이 마주 앉았다. 군사대화 채널이 다시 열린 것이다. 또한 중립국감독위 캠프 스위스측 건물에서는 120여명의 외국 투자가들이 참석하는투자설명회가 열렸다. 놀라운 변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판문점으로부터 남서쪽 8㎞에 있는 도라전망대. 북한군 초소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남과 북이 푸르름으로 이어진 비무장지대(DMZ)는 평화로웠다. 산새와 짐승들은 울창한 삼림 속에 그들의 낙원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초적 평화와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 평화로움 속에도 긴장만을 느낄뿐이었다. 때마침 다시 시작된 북한의 대남방송은 남북간의 긴장과 대결의 심각함을 알려주었다. 냉전이 20세기 후반 긴장 속에 세계평화를 유지했듯이 냉전의 잔영이 짙게 남아 있는 DMZ에는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대남방송은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실패한 혁명론을 낡은 레코드판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한 대남방송 속에 판문점을 넘어온 鄭명예회장은 남북경제교류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가 갔던 길은 50년전 金九 선생이 갔던 길이다. 백범은 남북 협상을 위해 48년 4월19일 38선을 넘었다. 金九 선생은 그 당시 지금의 통일대교로부터 동쪽으로 5㎞ 정도 떨어진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넜다고 그와 함께 평양에 갔던 金祐銓 전 광복회부회장은 말했다. 그는 백범이 50년전 임진강을 건넜던 나루터를 22일 다시 찾았다. “金九 선생의 평양 방문은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만 맡기지 않고 통일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노력했다는 소중한 역사”라고 金 전부회장은 말했다. 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론은 그러나 빛을 보지 못해왔다. 백범을 죽인 일그러진 권력은 그의 통일론을 역사속에 묻어두었다. 그러나 백범의 통일론은 민족의 자주적 화해와 통일을 추구하는 金大中 대통령에 의해 다시 구현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그러나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북한의 호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鄭명예회장의 방북과 판문점에서의 대화·교류를 허용하면서도 같은 시간 동해안에는 북한의 잠수함이 있었다. 북한의 이중전략은 남북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화해를 어렵게 해왔다. 남북관계는 그동안 화해와 단절이 반복돼 왔다. 해빙의 조짐이 있다가도 돌발사건이 발생하면 다시 남북관계는 얼어붙곤했다. 남북관계에서 낭만적 환상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러나 70년·80년대의 남북화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세계사를 지배하던 냉전이라는 큰 틀 속의 남북관계였기 때문에 냉전이라는 이념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한반도의 냉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세계사적인 냉전은 끝났다. 국제정세가 크게 바뀌면서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졌다. 金大中 대통령은 국제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짜고 있다. 그것은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한 과거와 다른 차원의 남북교류와 화해다. 햇볕정책은 鄭명예회장의 방북과 금강산개발 합의라는 열매를 맺었다. 鄭씨가 달린 통일대교로부터 판문점까지 이어진 새로운 도로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통일의 희망을 갖게 한다. 鄭씨도 통일의 가능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도라전망대 근처 통일촌에 사는 윤여원(31)씨도 “鄭명예회장의 방북등 남북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화해와 통일이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라전망대 바로 앞의 DMZ는 한국전쟁의 포화로 ‘죽음의 땅’이 되었던 곳이다. 그 폐허가 지금은 자연의 보고로 바뀌었다. 위대한 자연의 복원력은 죽음의 땅을 ‘생명의 낙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남과 북의 단절도 자연의 복원과 같이 화해로 이어질 날이 다가오는 듯하다. ◎白凡북행 수행 金祐銓씨/“鄭周永씨 방북은 역사의 진전”/새정부 對北유화정책 매우 반가운 일/그분의 평화통일노력 재평가 중요 징표 金九 선생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金祐銓 전 광복회부회장이 22일 백범이 건넜던 임진강 나루터를 50년만에 다시 찾았다. “金九 선생이 통일의 큰 뜻을 품고 건넜던 임진강 나루터에 다시오니 감개 무량합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을 가까이에서 모신 金 전부회장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金九 선생의 소원했던 통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백범이 갔던 길을 반세기만에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다시 간 것은 중요한 역사의 발전입니다.” “金九 선생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지도자들이 노력하면 통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분단상황은 그 때보다 훨씬 견고합 니다. 그러한 분단상황이 金大中 대통령의 유화적 대북정책으로 해빙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것은 金九 선생의 평화통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입니다.” 金전부회장은 나루터 주변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50년전에는 주변에 집도 별로 없어 황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어렵게 평양을 방문하는 길이라 더욱 쓸쓸한 마음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나루터는 군부대의 통제로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주변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화려한 건물들은 대부분 음식점이다. 임진강 특산물인 황복과 민물장어 간판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나루터 근처는 새로운 도로공사로 어수선했다. 그러나 임진강은 민족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동시에 안은채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 北 잠수정 침투­왜 내려왔나

    ◎북의 두 얼굴… ‘대화’ 뒤의 ‘도발’ 재확인/무장간첩 침투·군사훈련 목적 추정/군당국 조사 끝나야 의도 드러날듯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정은 끊임 없는 북한의 무력도발 의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라는 사실만 알려졌고,무장공비가 타고 있었는지,어떤 의도로 침투했는지는 군 당국이 조사 중이어서 확실한 북한의 목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합참의 고위관계자는 “23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장성급 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화해 분위기가 다소간 조성된 상황에서 무장 침투용으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정확한 의도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서 발견되었고 또 걸린 그물을 찢고 달아나려 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목적의 침투임이 분명해 보인다.북한은 96년 9월 26명의 무장공비가 탄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고 상륙한 무장공비들이 두달이 넘도록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했다.당시 잠수함의 임무는 공작조를해안에 상륙시키는 것이었다.이번 침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발견된 잠수정은 레이더 탐지가 어렵고 잠수 및 발진속도가 빨라 북한이 정찰 및 침투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고급 잠수정이다.따라서 북한은이 잠수정을 이용해 우리 해안 지역을 정찰하거나 무장간첩 또는 고정간첩을 침투시키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공작조를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훈련 목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인 당시 잠수정에는 3명 정도가 탄 것으로 알려졌다.유고급 잠수정에는 2∼4명의 승무원과 8∼10명의 공작조를 태울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공작조를 침투시킨 뒤 돌아가는 길에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군과 경찰은 강원도해안 일대와 산악 지역에 대적태세를 갖추고 비상경계근무에 돌입했다. 결국 북한의 잠수정 발견은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대화 제스처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대북 경수로건설사업 등 남북간의 경제협력은계속되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53년 이후 휴전선에서의 도발,무장공비 침투 등을 통해 남한을 교란시켰고 70년 이후에만도 309차례,90년 이후에만도 15차례나 해상과 육상을 통해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 “統一 소”/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남자의 눈물’을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다. 60대의 실향민 작가가 쏟은 눈물이었다. 비공식 통로를 통해 어찌어찌 북쪽 가족 소식을 알아낸 그는 평소의 꼿꼿한 자세를 허물어뜨리고 어린 기자들 앞에서 울었다.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생존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누이마저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울면서 그는 말했다. “도대체 신문과 방송은 무얼 하느냐?”고. 북한 주민의 기아(飢餓)사태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몇년 전 일이다. 한동안 그는 거의 곡기(穀氣)를 끊다시피 하고 술만 마셨다. 500마리 소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고향을 찾는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도 그와 같은 절절함이 느껴진다. 16일 북한 땅에 발을 내딛기 직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뜻을 품고 세번째 가출할 때 아버님의 소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제 그 한마리 소가 천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 무렵 북한으로 간 소들이 자란 목장이 있는 충남 서산 일대에서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시각 전국에서 비가 내린 곳은 서산 뿐이어서 기상청 관계자들도 의아스러워했다는 것이다. 鄭회장 일행을 보며 ‘차라리 소가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 실향민들의 한(恨)이 뿌린 비일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에 꼽힐 金東吉씨는 실향민으로서의 마음을 자신의 칼럼에 이렇게 쓰고 있다. “소가 되면 나도 북에 갈 수 있다. 소처럼 쓰다 달다 말도 않고 묵묵히 노동만 하면 나도 휴전선을 넘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늙은 몸이 입은 다물고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노동은 하기 어렵다. 오래전에 나는 고향에 가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소들이 북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그 꿈도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다” 판문점을 넘어 간 소떼는 이런 한을 풀어줄 것이다. 비록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그 소들이 식용으로 이용된다 하더라도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고대에서 소 사육의 가장 큰 목적은 식용도 농사용도 아니었고 하늘에 제사 지낼때의 희생을 위한 것이었다. 북한 언론이 소의 방북(訪北)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서 통일을 위한 소들의 희생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500마리 가운데 150마리의 소는 새끼를 배고 있다니 평화의 씨앗은 계속 자랄 수도 있을 듯 싶다.
  • 올해 建軍 50주년/국제에어쇼·시가행진/전국서 기념행사 다채

    국군의 날 경축행사를 비롯,건군 50주년 기념행사들이 이달부터 10월 사이에 연이어 개최된다. 국방부는 9일 건군 5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도보 및 기계화부대 등 2만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군의 날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이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현역 및 예비역 장병,상이군경과 최신 군장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94년 이후 4년만에 펼쳐진다. 이밖에 참전 선배전우 모(母)부대 초청행사(9.1∼9.30),호국영령 추모 문화제(7.27),대학생 21세기 평화캠프(8.11∼8.15),휴전선 155마일 사진전,서울 국제에어쇼 등 65개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국방부는 또 육·해·공군의 화합과 군의 발전된 모습을 형상화한 기념 엠블렘을 선정·발표했다.
  • DMZ 희귀 동식물 생태 자연 다큐영화 만든다

    ◎민·관·군 공동으로 하반기 제작/휴전선 248㎞ 4계절 변화 45년만에 기록/역사·문화유적도 탐사… 환경교육자료로 천연기념물인 물범과 산양,희귀어종인 모치망둑과 목납자루,세계적인 희귀식물인 범부채와 금강초롱,경순왕릉과 궁예성터,백마고지와 피의 능선,땅굴과 판문점…. ‘민간인 출입 금지지역’ 비무장지대(DMZ)의 이같은 자연생태계와 역사·문화유적지,안보관광자원 등이 곧 생생한 속살을 드러낸다. 국방부와 환경부는 31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군 합동 탐사대가 올하반기부터 휴전선 남쪽 2㎞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군사보호시설 지역을 영상으로 담는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248㎞인 휴전선을 따라 형성된 비무장지대 907㎢는 국군홍보관리소가,민통선 북방 1,632㎢와 남방 군사보호시설 지역 5,315㎢는 민간 전문가가 촬영을 맡는다.1년 동안 강원도 고성군에서 경기도 김포군까지의 육지는 물론 강화도 백령도 등 서해 도서지역의 4계절 변화를 생생히 담는다. 국방부와 환경부는 내년 6월 5일 환경에날에 이 다큐멘터리를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DMZ는 1953년 7월 휴전이 된 뒤 만 45년동안 민간인 출입 및 개발이 통제되면서 희귀 동·식물 146종 등 2,8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고인돌 궁예성터 통일·을지전망대 펀치볼 노동당사 등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문화유적이 남아있는 관광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연생태계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실태를 알게 되면 보전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서 “영상물은 자연생태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자료나 관광홍보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1차 영상 기록작업이 끝난 뒤 환경부와 전문학자를 포함,현지 사정에 밝은 군 관계자 등이 공동으로 참가한 가운데 3∼5년의 장기 계획을 세워 비무장지대의 자연생태계를 본격 탐사할 것을 환경부에 제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6월 초에 국방부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환경협의회’를 갖고 영상 작업과 장기 탐사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라면서 “탐사 결과는 통일 후의 비무장지대 보존방안을 수립하는데도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 金明基 교수 ‘미송환 국군포로 법적 지위’ 토론회 주제 발표

    ◎北 국군포로 송환 의무 다해야 중앙대 민족통일연구소(소장 李相萬)는 29일 대학원 국제회의의실에서 ‘미송환 국군포로들의 법적 지위’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金明基 명지대대학원장의 주제발표문을 요약한다. ○불이행 제재규정은 없어 최근 보도에 의하면 상당수의 미귀환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한다.이들의 송환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북한이 국군포로를 송환해야 할 의무의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북한이 이러한 송환 의무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어떠한 것이 있는가를 고찰한 뒤 결론으로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북한은 휴전협정,제네바 제3협약,국제인권규약,국제연합헌장,남북기본합의서 등에 의해 미귀환 국군포로 송환의무를 지고 있다.그러나 북한이 송환의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제재방법이 규정된 바는 없다.일반국제법상의 일반적 제재의 방법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일반국제법상 제재의 방법으로는 자위권의 행사,복구권의 행사,조약폐기권의 행사가 있다.휴전협정 등의 포로송환규정 의무 불이행에 대해 이러한 3개의 제재방법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개별적인 검토를 요한다.포로송환문제가 남북한간 분쟁이 됐을 때 당사자는 유엔 안보리 혹은 총회에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안보리는 이 사태 또는 분쟁이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되면 군사적·비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북한은 미귀환 국군포로가 포로가 아닌 전쟁범죄인이라는 이유를 들거나 귀순자라고 주장,송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올 가능성이 있다.북한은 미귀환 포로가 송환되지는 못했지만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민간인의 신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송환을 거절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미귀환 포로의 송환을 요구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제네바 제3협약을 근거로 국제적십자위원회 또는 이익보호국을 선정하여 이를 통해 요청하는 방안,국제연합헌장을 근거로 유엔 총회·경제사회이사회·안보리·인권위원회에 제의하는 방안,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하여 남북교류협력공동위 또는 남북군사공동위에 제의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어느 방안이든 북한은 미귀환 포로가 전쟁범죄인 혹은 귀순자·피석방자로서 포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송환 요구를 거절할 것으로 예측된다.북한이 송환을 거절하면 미귀환 포로는 일반적인 이산가족의 범주에 속하게 되고이들의 송환문제는 이산가족의 송환문제로 귀착되고 만다. ○비전향자와 교환 바람직 북한에 있는 미귀환 포로의 송환문제는 결국 남한에 있는 비전향 출소자의 송환문제와 법적 근거,이론적 기초,현실적 요구 등의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따라서 미귀환 포로와 비전향 출소자를 교환하는 제의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귀환 포로의 송환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것은 분명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하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할 것이나,그것이 자칫 미귀환 포로의 그나마 현재의 생활을 오히려 그들의 인권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게 하는 쪽으로 이끈다면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인권을 이용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그러므로 북한이 미귀환 포로를 송환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는 것은 분명하나 미귀환 포로의 현재의 인권이 더이상 침해되지 않도록 정책입안자의 신중한 고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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