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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나라사랑 큰 나무’를 키우자/최완근 국가보훈처 보훈선양국장

    우리 현대사에는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풍찬노숙하며 생명을 걸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독립유공자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호국유공자,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유공자들의 숨결이 서려 있다. 이 분들의 희생과 공헌의 바탕 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80%는 전후 세대인 탓인지 독립운동이나 6·25전쟁 등을 나와 상관없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한 진통이기는 하지만 지역·계층·세대, 그리고 이념간 갈등마저 겪고 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심각성이 표출되는 빈도도 잦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사회지도층 인사가 자녀의 병역을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차치하고 도덕적·정신적 황폐마저 우려되는 형국이다. 이같은 세태만 보더라도 국가보훈의 참 의미를 다시 강조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국가 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라는 국가보훈처의 비전은 국가 보훈의 당위성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가보훈 즉, 나라사랑 정신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실천정신이고 지역·계층·세대간의 통합을 이끌어 미래를 보장하는 절실한 가치이며 잘못된 역사의식을 치유할 수 있는 보약이다. 프랑스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들은 거의 1세기전의 사건임에도 제1차 세계대전 휴전일을 기념해 매년 11월11일에 전사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특히 영연방 국가들은 이날을 ‘포피데이(Poppy Day)’라고 부르며 인조 양귀비꽃(Poppy)을 가슴에 달고 호국·보훈정신을 되새긴다. 포피데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지역중 한 곳인 벨기에의 플랜더스 들판에 뿌려진 장병들의 핏자국마다 양귀비꽃이 피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제에 국권을 침탈당하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음에도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인권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싸워 온 우리나라야말로 이들 영연방 국가에 못지않게 국민들이 보훈의 의미를 더욱 되새기고 계승 발전시켜야 옳을 일이다. 그동안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러한 희생과 공헌이 정신적 귀감으로 받아들여지고 나라사랑 정신으로 계승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왔는데 무엇보다 보훈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10∼30대가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전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공모하여 태어난 게 ‘나라사랑 큰 나무’이다. 국가보훈처는 우리사회에 나라를 사랑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정신적 토대 구축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라사랑 큰 나무’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라사랑 큰 나무’는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을 바탕으로 오늘의 풍요로움이 있으며 우리 모두의 희망과 내일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운동의 캐치프레이즈인 ‘당신의 나라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갑니다.’는 “한 국가가 어떻게 존립하고 발전할 수 있는가.”라는 담론을 담고 있다. 이를 상징화한 ‘나라사랑 큰 나무’배지를 국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가슴에 달고 널리 알림으로써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신가치를 창출하고 희망찬 내일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가야겠다. 우리의 나라사랑이야말로 대한민국을 키워가는 힘이요 역사발전의 동력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보훈선양국장
  • 국군포로 일가족 탈북

    한국전쟁 이후 지난 1950년대 북한에 국군포로로 잡혀 있던 일가족이 동반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20일 “국군포로인 장판선(74)씨 일가족 6명이 지난 2월부터 연달아 중국으로 탈북했다.”면서 “장씨와 장씨의 차남 영철씨가 지난 3월5일 국내로 들어왔고 부인 김옥련씨와 장남 영복씨는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장남과 부인은 다음달 입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장씨의 딸과 외손자도 베이징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탈북을 주선한 사람들에 의해 일시 억류돼 있다고 최씨는 덧붙였다. 이들은 탈북을 주선한 조직이 한국대사관측에 다른 탈북자(37·여)와 함께 입국시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4년 한국전쟁 당시 소위였던 조창호(74·경기 용인 수지)씨가 탈북한 이후 국군포로 일가족이 동반 탈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남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가 고향인 장씨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초 국군 제3사단 수색중대에 입대한 뒤 같은 해 가을 중공군의 대공세 때 포로가 됐고 종전 후 전사자로 처리돼 대전국립묘지에 위패가 안치돼 있다. 장씨는 1956년 북한 내 포로수용소가 폐쇄된 뒤 불량 성분으로 분류돼 함경북도 온성의 탄광촌에서 30여년간 최하층민으로 살아왔으며 자녀까지 대를 이어 차별과 멸시를 당하자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현재 주중한국대사관에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2∼3명이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의제로 삼아 북측에 공식적으로 송환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씨의 입국으로 현재까지 송환된 국군포로는 모두 49명으로 늘었지만 5만∼8만명에 이르는 국군포로가 송환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군포로 생존자가 538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1953년 8월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군포로 및 실종자수를 8만 2318명으로 집계했다. 정전 후 북한이 송환한 국군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軍 총기난사 ‘충격’] GP는 어떤곳

    19일 새벽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GP(Guard Post)는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MDL) 사이에 설치된 최전방 전초(前哨) 또는 감시초소다. GP는 남방한계선과 MDL 사이의 보통 2㎞ 정도의 비무장지대 지역을 가리키는 GOP(General Out Post·일반전초)와 대비되는 것으로 휴전선 부근에서 북한 초소들의 동태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최전방 관측소로도 불린다.30명 내외의 1개 소대병력이 2∼3개월씩 교대하며 경계근무를 선다. 주요 임무는 24시간 북한군 동태 감시와 적침투 및 매복의 조기 발견 등이다. GP는 북한 GP와의 거리가 서부전선의 경우 수백m에 불과, 소총의 유효사거리내에 위치해 있고 초소 주변의 지뢰 매설로 사고 위험이 높아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1개 초소 근무는 약 2시간이며 초소에는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복수 인원이 근무를 선다. 병사들은 근무 교대 후 상황병이나 불침번의 안내에 따라 소지했던 수류탄과 실탄을 상황실에 반납하고 빈 소총만 갖고 내무반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실탄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 자살이나 살인, 안전 사고 등의 위험이 늘 따르는 곳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4㎞지역의 비무장지대는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적의 침투나 동태 감시 등을 위해 이 지역에 GP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양측은 다만 중화기를 배치 또는 무장하지 않고 소총 등 개인화기만 휴대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휴전선 철책 또 뚫렸다

    휴전선 철책 또 뚫렸다

    북한군 병사 1명이 중부전선 최전방의 3중 철책선을 뚫고 월남, 철책선 인근을 나흘 동안이나 배회했으나, 군 당국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주민신고를 받고 검거했다. 특히 이번에 북한군이 월남한 지역은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불과 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8개월 만에 철책선에 또다시 구멍이 생긴 것이다. 17일 오전 5시50분쯤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남모(65)씨가 집 앞 공터에 세워둔 자신의 화물차 안에 숨어 있는 북한군 병사 이용수(20)를 발견, 군 당국에 신고했다. 군과 경찰 기무사 국정원 요원 등으로 구성된 중앙합동신문조의 신문 결과 초급 병사인 이용수는 강원도 평강군에 있는 방포사 예하 122㎜ 포병부대 소속으로 밝혀졌으며 “군 복무가 힘들고 배가 고파서 부대를 탈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용수는 지난 12일 오전 8시 나무를 한다는 핑계로 부대를 이탈한 뒤 다음날인 13일 오전 7시쯤 남측 철책선까지 무사히 접근해 남측 경계병에게 발각되지 않고 철책을 통과했다. 철책선은 뛰어넘거나 땅을 파는 수법으로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 150㎝에 몸무게 45㎏의 왜소한 체형인 그는 발견 당시 북한 주민들이 입는 인민복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으며, 약간의 과자류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이용수가 숨어 있던 곳은 철책선에서부터 3∼4㎞ 남쪽지역으로,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견된 지점과는 약 5∼6㎞ 떨어진 곳이다. 부근에 개천이 많은 데다 잦은 안개 때문에 경계 취약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생한 부대와 동일한 부대가 경계를 맡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점을 중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요원들을 현장에 투입로 경계태세 점검에 나섰다. 한편 이날 오전 8시24분쯤 옹진군 소속 227어로지도선(선장 김종원·55)이 백령도 북방 2.5마일 해상에서 길이 5m, 폭 3m의 북한선박 ‘남포호’(전마선)를 발견, 해군 및 경찰에 신고했다. 이 배에는 최모(43)씨 부부로 알려진 남녀 1쌍이 타고 있었으며 이들을 발견한 어로지도선측에 “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귀순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승진·인천 김학준기자 redtrain@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웰빙 시대, 청정 산나물 하나로 부자를 꿈꿉니다.” 인구 2만 1890여명.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강원도 양구군이 산채 재배에 승부수를 던졌다. 해발 1300m 안팎의 대암산과 가칠봉을 병풍처럼 두른 DMZ 인근 청정 자원을 활용해 벽오지의 가난을 벗어 보겠다는 몸부림이다. 곰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두릅, 느타리버섯 등을 해발 600∼800m의 산중턱에서 대량 재배해 고소득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우선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오염과는 거리가 먼 것이 큰 장점이다. 이곳 지형이 분지(일명 펀치볼지역)인 까닭에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산나물의 향과 맛이 최고라는 것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더구나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곰취 등 산나물이 항암효과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잇따라 알려져 인기 식품으로 뜨고 있는 것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같은 효능을 활용해 양구군은 ‘산채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최고의 산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우수 신활력 사업으로 선정, 국비가 포함돼 추진되는 만큼 사업비만 124억원에 달하는 야심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첫해인 올해는 곰취, 더덕 등 산채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마을별 작목반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생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암산 산채작목반원 35명을 중심으로 250농가까지 늘려 생산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구군 전체 농업인구(2074가구)의 4분의1을 산채 재배에 종사하게 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산채군(郡)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작목반이 모아지면 강원도 산채시험장과 대관령 고령지 시험연구소, 강원대, 한림대 등에서 산채 재배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방침이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 생산기반을 탄탄하게 갖춘다는 것이 1차 목표다. 해안면 제4땅굴 인근에 통일농장을 세워 산채종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묘포장까지 갖출 계획이다. 국비, 지방비 등 60억원이 투입돼 조성되면 역시 전국 최고의 산채 연구단지가 될 전망이다. 생산되는 산채종자는 양구군은 물론 전국 산채 재배지로 팔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채전문시장과 가공산업, 유통사업단 설립까지 추진한다. 재래시장인 양구중앙시장을 산채만을 전문으로 사고 파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은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 약령시장 등에 산채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양구중앙시장을 산채전문시장으로 리모델링해 놓으면 생산지는 물론 연구단지, 도·소매 판매장이 어우러져 산채전문시장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산채를 이용한 ‘먹을거리 촌’도 구상 중이다. 국토 정중앙 지점으로 알려진 남면 도촌마을에 산채를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 판매점을 만들어 도시인들이 찾아오게 하겠다는 취지다. 곰취국수, 뽕잎국수 등 양구에서 생산되는 산채로 만드는 음식은 모두 포함시킨다는 전략이다. 산채가공식품도 연구되고 있다. 곰취찐빵과 더덕무침, 각종 산채 장아찌, 마른 고사리·취나물, 깐 도라지, 더덕 등도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으로 판매된다. 여기에 곰취, 더덕 등을 가루로 만들어 차(茶)와 음료수 등 건강보조식품으로 생산하는 방안도 적극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7년쯤이면 현재의 건강보조식품 생산라인을 활용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 유통을 위해 유통사업단도 별도로 구성되고 전자상거래를 접목한 유통망도 갖추게 된다. 산채를 테마로 클러스터 구축이 차근차근 추진되면 양구군이 휴전선 오지마을에서 웰빙마을로 각광을 받을 날도 머지않았다. 현지인들도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 있다. 결국 ‘양구군=청정 산채마을’로 브랜드화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꿈꾸고 있다. 서울∼춘천∼양구로 이어지는 도로망(국도 46·31번) 확포장과 2008년 개통되는 동서고속도로 등이 완공되면 서울∼양구간 거리가 1시간 10분대로 대폭 줄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근의 박수근미술관과 선사박물관, 제4땅굴 등 볼거리와 연계해 산채마을은 양구군의 또 다른 이미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경순 양구군수는 “양구 팔랑리의 흑돼지 고기를 자연산 곰취와 함께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면서 “‘볕의 마을’ 양구를 산채를 중심으로 새롭게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하우스 곰취’ 두달새 4000만원 매출 “깊은 산속에 심어 놓은 곰취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면 마치 잘 키운 자식들 같습니다.” 14년 전부터 곰취를 재배해오고 있는 최관수(55·대암산 산채작목반장). 정재심(54)씨 부부는 ‘곰취 아빠 엄마’로 통한다. 사람들이 자연산 곰취만을 알고 있던 시절 곰취재배를 궁리해 냈고 산채작목반까지 이끌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목반 식구가 35명으로 늘었지만 초창기 곰취 재배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산속을 헤매며 곰취를 뿌리째 캐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일이 한포기 한 포기 캐내 하우스에 옮겨 심어 놓으면 온도와 습도, 차광이 맞지 않아 번번이 시들고 죽어갔다. 어렵게 살려 어느 정도 활착에 성공했다고 한시름 놓고 나자 이번에는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또다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소비자들이 산에서 자생하는 곰취가 시장에 널려 있는데 굳이 하우스 재배 곰취를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곰취 재배로 큰 돈을 벌자고 뜻을 함께했던 초창기 5명 가운데 3명은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러나 최씨 부부는 냉동차를 구입,1996년부터 서울 가락동시장을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에는 농협과 우체국택배, 인터넷 판매망(한글 주소창:양구 대암산곰취)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하우스재배 면적만도 3000여평으로 늘었고 5년 전부터는 대암산 중턱 해발 600∼700m에 800평 정도의 노지재배단지까지 개간해 놓았다. 올 4월부터 지금까지 수확한 곰취가 4000박스, 매출액만 4000만원을 웃돈다. 꽃을 피우는 7월말까지 계속 출하가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씨는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곰취는 향과 맛이 뛰어나 서울 대형 백화점 등에서 최상품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랑한다.“생산량이 달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는 귀띔도 한다. 노지재배단지도 아까시나무와 뽕나무가 울창한 곳에 만들어 차광 효과가 뛰어나다. 단지 옆 골짜기에 흐르는 샘물도 가재가 우글거릴 만큼 1급수다. 당연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최상급이다. 올해에는 노지재배 면적을 2000여평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곳에는 곰취 외에 두릅과 참나물 등을 심어 산채류 재배 종류도 늘려볼 계획이다. 최씨는 “올해처럼 가뭄이 찾아오면 노지재배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지재배단지에도 물을 뿌려줄 수 있는 시설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의전화 (033)481-5944, 011-791-5944.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지금 지방에선] 강원 양구 전국 최고 ‘청정산나물’ 주산지 꿈꾼다

    “웰빙 시대, 청정 산나물 하나로 부자를 꿈꿉니다.” 인구 2만 1890여명.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강원도 양구군이 산채 재배에 승부수를 던졌다. 해발 1300m 안팎의 대암산과 가칠봉을 병풍처럼 두른 DMZ 인근 청정 자원을 활용해 벽오지의 가난을 벗어 보겠다는 몸부림이다. 곰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두릅, 느타리버섯 등을 해발 600∼800m의 산중턱에서 대량 재배해 고소득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우선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오염과는 거리가 먼 것이 큰 장점이다. 이곳 지형이 분지(일명 펀치볼지역)인 까닭에 일교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산나물의 향과 맛이 최고라는 것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더구나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곰취 등 산나물이 항암효과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잇따라 알려져 인기 식품으로 뜨고 있는 것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같은 효능을 활용해 양구군은 ‘산채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최고의 산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우수 신활력 사업으로 선정, 국비가 포함돼 추진되는 만큼 사업비만 124억원에 달하는 야심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첫해인 올해는 곰취, 더덕 등 산채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마을별 작목반을 모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생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암산 산채작목반원 35명을 중심으로 250농가까지 늘려 생산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구군 전체 농업인구(2074가구)의 4분의1을 산채 재배에 종사하게 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산채군(郡)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작목반이 모아지면 강원도 산채시험장과 대관령 고령지 시험연구소, 강원대, 한림대 등에서 산채 재배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방침이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 생산기반을 탄탄하게 갖춘다는 것이 1차 목표다. 해안면 제4땅굴 인근에 통일농장을 세워 산채종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묘포장까지 갖출 계획이다. 국비, 지방비 등 60억원이 투입돼 조성되면 역시 전국 최고의 산채 연구단지가 될 전망이다. 생산되는 산채종자는 양구군은 물론 전국 산채 재배지로 팔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채전문시장과 가공산업, 유통사업단 설립까지 추진한다. 재래시장인 양구중앙시장을 산채만을 전문으로 사고 파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지금은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 약령시장 등에 산채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양구중앙시장을 산채전문시장으로 리모델링해 놓으면 생산지는 물론 연구단지, 도·소매 판매장이 어우러져 산채전문시장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산채를 이용한 ‘먹을거리 촌’도 구상 중이다. 국토 정중앙 지점으로 알려진 남면 도촌마을에 산채를 재료로 만든 각종 음식 판매점을 만들어 도시인들이 찾아오게 하겠다는 취지다. 곰취국수, 뽕잎국수 등 양구에서 생산되는 산채로 만드는 음식은 모두 포함시킨다는 전략이다. 산채가공식품도 연구되고 있다. 곰취찐빵과 더덕무침, 각종 산채 장아찌, 마른 고사리·취나물, 깐 도라지, 더덕 등도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으로 판매된다. 여기에 곰취, 더덕 등을 가루로 만들어 차(茶)와 음료수 등 건강보조식품으로 생산하는 방안도 적극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7년쯤이면 현재의 건강보조식품 생산라인을 활용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 유통을 위해 유통사업단도 별도로 구성되고 전자상거래를 접목한 유통망도 갖추게 된다. 산채를 테마로 클러스터 구축이 차근차근 추진되면 양구군이 휴전선 오지마을에서 웰빙마을로 각광을 받을 날도 머지않았다. 현지인들도 벌써부터 꿈에 부풀어 있다. 결국 ‘양구군=청정 산채마을’로 브랜드화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꿈꾸고 있다. 서울∼춘천∼양구로 이어지는 도로망(국도 46·31번) 확포장과 2008년 개통되는 동서고속도로 등이 완공되면 서울∼양구간 거리가 1시간 10분대로 대폭 줄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근의 박수근미술관과 선사박물관, 제4땅굴 등 볼거리와 연계해 산채마을은 양구군의 또 다른 이미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경순 양구군수는 “양구 팔랑리의 흑돼지 고기를 자연산 곰취와 함께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면서 “‘볕의 마을’ 양구를 산채를 중심으로 새롭게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하우스 곰취’ 3000평… 年 수천만원 수익 “깊은 산속에 심어 놓은 곰취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면 마치 잘 키운 자식들 같습니다.” 14년 전부터 곰취를 재배해오고 있는 최관수(55·대암산 산채작목반장). 정재심(54)씨 부부는 ‘곰취 아빠 엄마’로 통한다. 사람들이 자연산 곰취만을 알고 있던 시절 곰취재배를 궁리해 냈고 산채작목반까지 이끌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목반 식구가 35명으로 늘었지만 초창기 곰취 재배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산속을 헤매며 곰취를 뿌리째 캐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일이 한포기 한 포기 캐내 하우스에 옮겨 심어 놓으면 온도와 습도, 차광이 맞지 않아 번번이 시들고 죽어갔다. 어렵게 살려 어느 정도 활착에 성공했다고 한시름 놓고 나자 이번에는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또다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소비자들이 산에서 자생하는 곰취가 시장에 널려 있는데 굳이 하우스 재배 곰취를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곰취 재배로 큰 돈을 벌자고 뜻을 함께했던 초창기 5명 가운데 3명은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러나 최씨 부부는 냉동차를 구입,1996년부터 서울 가락동시장을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에는 농협과 우체국택배, 인터넷 판매망(한글 주소창:양구 대암산곰취)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하우스재배 면적만도 3000여평으로 늘었고 5년 전부터는 대암산 중턱 해발 600∼700m에 800평 정도의 노지재배단지까지 개간해 놓았다. 올 4월부터 지금까지 수확한 곰취가 4000박스, 매출액만 4000만원을 웃돈다. 꽃을 피우는 7월말까지 계속 출하가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씨는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곰취는 향과 맛이 뛰어나 서울 대형 백화점 등에서 최상품 대우를 받고 있다.”고 자랑한다.“생산량이 달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는 귀띔도 한다. 노지재배단지도 아까시나무와 뽕나무가 울창한 곳에 만들어 차광 효과가 뛰어나다. 단지 옆 골짜기에 흐르는 샘물도 가재가 우글거릴 만큼 1급수다. 당연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최상급이다. 올해에는 노지재배 면적을 2000여평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곳에는 곰취 외에 두릅과 참나물 등을 심어 산채류 재배 종류도 늘려볼 계획이다. 최씨는 “올해처럼 가뭄이 찾아오면 노지재배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지재배단지에도 물을 뿌려줄 수 있는 시설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의전화 (033)481-5944, 011-791-5944.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열린세상] 꿀벌의 날갯짓/임춘웅 언론인

    암투병 중이면서도 강단에 서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수필중에 ‘꿀벌의 무지’라는 글이 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꿀벌은 몸통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원래는 날 수 없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자기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날갯짓을 함으로써 정말로 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꿀벌이 날게 된 것은 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열심히 날갯짓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인용문은 과학적 타당성 이전에 신화처럼 시사해 주는게 있다. 그러나 분명한 자의식과 용기를 갖고 날갯짓을 계속 함으로써 날게되는 경우도 있다. 날기 어려운 환경과 본시 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수 없게 된 몸을 다시 날 수 있게 하는 것도 무지 때문에 날게 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균형자론을 제기한 이래 수없이 많은 논객들이 나서서 이런저런 해석을 하고 평가를 하며 비판을 해왔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는 헷갈리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균형자론의 필요성을 설득하려 하는 정부측 인사들마저 해석과 대응이 자주 모호하다. 최근 외교통상부의 모 실장이 언급한 균형자론은 고등수학을 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것이었고 어떤 청와대 인사는 균형자론이 일본 때문에 나왔다는 알쏭달쏭한 꼬리도 붙이고 있다. 하물며 일반국민이 균형자론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저런 해석과 설명보다 균형자론의 실체는 스스로 날아보려는 꿀벌의 의지라고 보면 보다 쉽게 이해될지도 모른다.‘균형자’란 용어선택이 과연 적절했는지, 노 대통령이 말한 균형자 역할이 통일이전에도 가능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균형자론의 본질은 한국 스스로 날아보려는 꿈이란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스스로 날아보려는 꿀벌의 의지, 나도 날 수 있다는 꿈이 자꾸만 벽에 부닥치고 있다. 미국은 균형자론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비록 일부이긴 하겠으나 미국사람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 사람들은 균형자론의 위험성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 워싱턴에서 열렸던 갑작스러운 한·미정상 회담도 실은 균형자론으로 야기된 한·미동맹의 균열을 수습해 보려는 노력이 아니었겠는가. 이처럼 날아보려는 꿀벌의 용기에 대한 저항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부터 이미 시작됐었다.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은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과 상충되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핵문제로 이어지고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론에 이르며 미국의 ‘분노’가 하늘에 닿고 있는 것이다. 날갯짓은 노태우 정부 때에도 있었다. 중국,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냈던 북방외교가 그것이다. 날개를 가진 생물이 날려는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날개를 갖고도 날지 못하는 새도 있다. 타조에겐 꿈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북방외교가 없었고 햇볕정책이 없었으며 균형자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동북아는 보다 태평했고 한반도의 번영은 보다 성대했을까.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개성공단에서 남북합작품이 생산되고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장벽을 더 넘어서야겠지만 두 사업은 현재까지만으로도 이미 성공적이다. 그것들은 반세기 동안 견고하게 남북을 갈라놓았던 휴전선을 무너뜨렸고 남북간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개성공단에 이르는 길을 뚫었을 때 어떤 인사는 북한에 침략로를 열어주었다고 노발대발했다. 우리가 올라가는 길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일까, 답답하다.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통일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북한이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은 우발적 남북충돌을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모두 열심히 해온 날갯짓 효과이다. 신념과 끈기를 갖고 날갯짓을 계속해야 한다.   임춘웅 언론인
  • 美언론 “한미 대북 유인책 이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간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강경·온건파 간의 내부 이견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표출했으나 일단 정상회담은 모양새 좋게 끝내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미 정부내에서 북한은 물론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국방부는 9일 논평을 통해 한·미 동맹관계가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 논평은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지속적인 중요성과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공동 이익에 위협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계속 확인해 가고 있다.”며 “한·미 동맹은 양국의 이해에 사활적이며 양국은 더욱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관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국방부 논평은 리처드 롤리스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주미대사관 및 한국 방문 때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 동맹과 양립할 수 없다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 등을 주장한 것이 공개돼 정상회담을 앞두고 파문이 커지자 진화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션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긴밀한 우방이자 맹방의 지도자와 의견교환을 고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 언론도 한·미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회담의 주된 목적은 양국 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양국간 의견 일치를 대외에 과시하는 데 있다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전하고 “한·미 양국 외교관들은 양국 동맹에 틈이 생겼다는 인상을 불식하기 위해 두 대통령이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 입장을 나타내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문은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특히 외교적 수단의 시한과 대북 유인책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USA투데이의 알 뉴하스 창업자는 이날 비무장지대에서 보낸 칼럼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와 군사력을 모두 사용하려 한다.”면서 “군사적 행동은 ‘바보짓’이므로 부시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 옛 소련을 무너뜨린 것처럼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고 들어가 대화하라.”라고 주문했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한반도 전문가 발비나 황 동아시아 정책분석관은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실패시 추구할 공동 대응과 북한의 핵 실험시 행동계획도 세울 것 ▲양국 국민이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대민 홍보를 강화하기로 의견 모을 것 ▲부시는 노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토록 요청할 것 ▲양국 정부 관리가 상대방을 헐뜯는 등의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 북한을 유리하게 만들지 말 것 등에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 dawn@seoul.co.kr
  • 105세 前 전남지사 53년만에 ‘출근’

    105세 된 이을식 전 전남지사가 오는 11일 도지사를 떠난 뒤 53년만에 전남도청을 방문한다. 이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17일 51세로 제 3대 전남지사로 부임, 휴전협정을 맺은 53년 11월22일까지 2년 남짓 도백으로 일했다. 초대 도지사(이남규)가 여·순 사건으로 부임 두 달만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독립운동 당시 친분을 쌓은 이승만 대통령의 권고로 지사에 임명됐다. 지사를 마친 이후 강원도로 가 석회석 광산에 손을 댔고 지금도 이 광산을 갖고 있다. 백수를 넘긴 이옹은 전화통화 중에도 옛일을 모두 기억하는 등 남다른 기억력을 과시했고 알아듣는 데 조금 불편할 뿐 발음도 아주 또렷했다. 이옹은 지사 재임 때 “화학비료 대신 퇴비증산에 힘쓰도록 직원들을 독려했던 일이 새롭다.”고 회고했다. 건강비결에 대해 “5살 때부터 일평생 잡곡밥만을 먹는다. 맘 편하게 먹고 밥 잘 먹는 게 건강을 지켜준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옹은 지금도 역대 전남지사들의 모임인 ‘지우회’ 회장을 맡고 있고, 건강을 염려한 외손자(30·정시채 전 전남부지사의 아들)의 차편으로 광주에 온다. 이번 나들이는 현 박준영 지사(34대)가 역대 도지사를 초청해 도청에서 도정 보고회를 하면서 이뤄진다. 그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살고 있고 슬하에 3남 5녀를 뒀으며,86년을 함께 산 부인과는 15년 전 사별했다.. 한편 전남지사 34명 가운데 생존자는 16명이고 이들 중 14명이 이번에 참석한다. 참석자는 16대 김재식,18대 고건,19대 장형태,21대 김창식,22대 전석홍,23대 문창수,24대 송언종,25대 최인기,26대 백형조,27대 이효계,28대 이균범,30대 조규하,31·32대 허경만 지사 등이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Love & Wedding] 강상희·박은희

    [Love & Wedding] 강상희·박은희

    더위가 한창 시작될 오는 11일, 저희 두 사람 강상희와 박은희가 사랑하는 분들 앞에서 서약을 하고 부부가 됩니다. 지나 온 연애기간은 6년이지만 우리가 사랑을 하는 동안 저는 서울에, 은희는 대구에 있었습니다. 그 탓에 2주일에 한번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지요. 진정한 연애기간은 매일 얼굴 볼 수 있는 연인들의 10분의1 밖에 안됐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분들께 우리들의 결혼이 있기까지 제가 지켜왔던 다짐들을 한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심하게 다투더라도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자.’-제 첫번째 다짐이었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진짜 헤어진다고 저는 마음 속에 깊이 새겼고, 연애기간 동안 두 사람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다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 속에도 감정이 격해지면 ‘지금 더 이야기 하다 보면 심한 말이 나올 것 같으니 그만 이야기하고 생각 좀 더 해보자.’란 말로 대화를 자르고 휴전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다짐 하나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라는 게 한번 하게 되면 또 하게 되고, 그 말들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현실이 되고 맙니다.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우리 두 사람에게 여태껏 애틋한 마음이 유지되고 있는 데는 이 다짐의 효과가 아주 컸던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연인들의 입과 귀를 잠시도 떠나지 않는 이 말. 그러나 저는 이 말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비겁하고, 바보같은 결심이었지요. 어떻게 사랑하는데 표현을 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이 여자와 연애를 시작할 때 두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습니다.“은희야,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이 바로 너한테 청혼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보면 여자 입장에서 꽤나 로맨틱한 다짐처럼 들렸을 겁니다. 그 자리에서 감동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연애를 하는 동안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렇게 바보 같은 다짐에 불만 하나 토로하지 않고 제 마음속 사랑을 믿어준 내 사랑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물론 이 여자에게 처음으로 꺼낸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로 청혼을 했으니 결말은 아주 로맨틱하고 해피하게 된 것이죠. 이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동갑내기 부부가 될 우리. 이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됩니다. 대구상인초등학교 10회 동창생, 사랑하는 내 여자 박은희, 우리 정말로 잘 살자.
  • ‘영혼의 친구’ 월북시인 설정식씨 자녀 상봉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한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81)가 월북시인 설정식(1912∼1953)의 가족들을 만났다. 티보 머레이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52년 북측 종군기자 자격으로 평양과 개성 등을 오가며 휴전협상 과정을 취재하던 중 북측 통역관이던 영문학자 설정식과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함남 단천 출신인 설 시인은 연희전문과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 유니언대학,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미군정청 등에서 일하다 한국전쟁때 부인과 3남1녀를 두고 월북했다. 이번 만남은 설 시인의 자녀들이 지난 22일 티보 머레이의 숙소로 찾아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설 시인의 딸 정혜(64), 둘째 아들 희순(63), 막내아들 희관(58),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 그의 부인인 설시인의 조카 설순봉씨 등이 함께했다. 미국에 사는 큰아들 희한(68)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혜씨의 아들은 영화 ‘투캅스’에 출연한 인기배우 김보성이다. 설 시인의 가족들은 24일 서울국제문학포럼 행사장에서 티보 머레이를 만난 데 이어 28일에도 자리를 함께할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북한 주권국가 인정 美, 北에 직접 전달”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구혜영기자|조지프 디트러니 미국 국무부 대북협상대사가 지난 13일 비밀리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방문, 박길연 대사에게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 체제의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직접 전달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디트러니 대사는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휴전상태 종식과 북·미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회담 복귀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 미국대사관 관계자도 “양측간에 실무자급 접촉이 있었다.”고 확인한 뒤 “북한과 협상을 하려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북한과 미국이 직접 접촉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여 만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 접촉은 양측의 사안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콘플랜 8022를 작성한 것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북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느니 ‘북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느니 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디트러니 대사는 북한이 핵포기 조건의 하나로 ‘안전보장’을 요구한 사실을 감안,6자회담 재개에 응하면 회담틀 내에서 북한의 안전보장 우려 해소를 위한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고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북한이 완전한 핵포기를 약속하면 주변국으로부터 중유 등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서 김정일 체제의 ‘주권’을 인정한 것은 처음으로 북·미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성의’를 보이는 한편 나머지 5개국의 대북 포위망을 재구축하려는 계산도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중국이 북한에 6자회담 복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고 명분을 준 만큼 북한도 신중하게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도통신은 북한이 미국이 설명한 내용에 대해 2주일 이내에 회신할 것으로 보인다고 북·미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taein@seoul.co.kr
  • 6·25전쟁때 北서 포로생활 美 참전용사 히노조사·브라운씨 방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의 퇴역 군인 2명이 52년 만에 ‘포로 석방로’였던 ‘자유의 다리’를 다시 건넜다. 5일 미 군사전문 성조지에 따르면 6·25 전쟁 때 포로생활을 했던 호세 히노조사(75·샌 안토니오 거주)와 빌리 브라운(72·휴스턴 거주)은 최근 6·25 참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50여년 전 북한군에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던 과거를 떠올리며 당시 포로 석방로였던 경기도 파주시 소재 자유의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재연했다. 1951년 7월 상병 계급으로 비무장지대 인근 ‘펀치볼’ 지역에서 북한군과 전투 도중 포로가 된 히노조사는 억류 2년여만인 1953년 8월 자유의 다리를 통해 집으로 향하던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2번이나 참전한 그는 “50여년 만에 처음 이곳을 찾았다.”며 “마치 당시 북한군 포로에서 석방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히노조사보다 석달 늦은 1951년 10월 포로로 붙잡혔다가 역시 1953년 8월 석방됐으며, 혹독한 포로생활에 대한 아픈 기억때문에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당시의 얘기를 일체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브라운은 “포로가 되자마자 북한군이 전투화를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아 몸에 걸친 것은 얇은 천으로 된 상·하의 뿐이었다.”고 말했다. 또 “두달 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 해 12월12일 새 옷을 받기 전까지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며 “내 생에 그런 추위는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이들이 다시 찾은 자유의 다리는 휴전협정 조인 이후 북한군의 포로가 됐던 국군과 유엔군 1만 2700여명이 석방됐던 통로 역할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월북시인 설정식 서사시집 남겼다

    월북시인 설정식(薛貞植·1912∼1953)이 한국전쟁 와중에 쓴 장편 서사시가 1952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정의 서사시’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 파견돼 종군기자로 14개월간 활동했고, 휴전협정을 취재했던 헝가리 출신 소설가 티보 머레이(81)가 오는 24∼26일 열리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할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그는 포럼에서 발표할 ‘기억과 고통, 의심 그리고 희망’이라는 글에서 “1951년 8월14일 폭격이 있은 직후 나는 휴전회담이 진행중이던 개성에 도착했다.”면서 “그곳에는 북한에서 파견된 두 사람의 통역관이 있었다. 그중 젊은 사람의 이름은 설정식, 내가 알게 된 유일한 한국인 작가”라고 회고했다. 티보 머레이는 심장발작으로 헝가리가 지원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설정식이 투병중에 탈고한 400행의 장편 서사시 원고를 입수해 영역원고를 헝가리로 보냈고, 이는 다시 헝가리어로 재번역돼 부다페스트에서 출간됐다. 티보 머레이는 시집의 서문과 해설을 썼다. 그는 1962년 ‘사상계’ 9월호에 기고한 ‘한 시인의 추억 설정식의 비극’이라는 글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번역자이자 시인이었던 설정식과의 소중한 추억을 공개한 바 있다. 설정식은 함남 단천 출신으로 연희전문과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 유니언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미군정청 등에서 일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했고,53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씨줄날줄] 베를린 효과/이목희 논설위원

    근·현대 세계사의 주된 흐름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대치였다. 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해양국가의 패권에 독일-소련(러시아)의 대륙국가가 도전하는 양상이었다. 해양국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라시아 중심부를 제패하는 세력의 등장이다. 독일이 그를 노리다가 1·2차대전의 패배를 맛봤다. 이어 40여년간 유라시아 중심부를 지배한 옛 소련이 힘을 잃자 미국의 봉쇄정책은 중국쪽으로 방향이 옮아가고 있다. 유라시아세력이 밖으로 뻗는 길목은 4군데다. 동북아, 중부유럽·발칸반도, 중동·서남아, 동남아가 그곳이다. 근대 이후 큰 전쟁은 유라시아세력이 해양세력과 맞부딪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한국전, 월남전이 유라시아 변방에서 벌어진 대표적 전쟁이다. 냉전종식으로 동북아에서 북한·러시아·중국의 대륙세력과 한국·미국·일본의 해양세력의 동맹구도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청와대측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각판의 충돌을 예상하기 힘들 듯 유라시아 변방의 불안정은 여전하다. 양대 세력이 만나는 전형적 장소로 한국의 판문점과 독일의 베를린이 꼽힌다. 베를린에서는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대륙세력의 힘이 꺾였다. 엄청난 군사력이 밀집된 휴전선을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 베를린은 깊이 참고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대륙국가 소련을 설득해 베를린장벽을 깬 옛 서독의 지혜가 아직 한국 정부에선 보이질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부터 베를린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와 관련해 관심을 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3월 남북경협, 한반도냉전 종식을 골자로 하는 ‘베를린선언’을 발표해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독일과 베를린은 분단 이외에도 한국 상황과 연관이 많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독일의 모범사례가 재강조되어야 한다. 독일은 또 수도이전의 선배다. 통일 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문제로 나라가 들썩인 끝에 ‘부분 이전’ 절충안을 채택했다. 우리와 다른 점은 핵심부처가 새 수도로 이전했다는 것이다.‘동백림(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참여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고, 동백림사건도 진상이 새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효과가 주목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휴전선 로봇이 ‘경계근무’

    최전방 철책선 일대의 경계력 강화를 위해 2007∼2011년까지 로봇 등 첨단 장비를 적극 활용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구축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최전방 철책선 절단사건을 계기로 오는 2011년까지 최전방 GOP(일반 전초) 일대에 최신형 로봇형 영상센서와 광섬유 그물망, 폐쇄회로(CC)TV 등을 활용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최신형 로봇형 영상센서는 자동으로 물체의 감지 및 목표물을 추적하는 로봇을 활용하는 것으로, 로봇 가격은 1대당 약 8000만원에 이른다. 주·야간 영상 카메라와 열상센서를 갖춘 이 감시로봇은 이미 이라크 파병 자이툰부대에서 2대를 운용중이다. 그러나 이 로봇은 영화에서처럼 이동할 수는 없으며, 제 자리에서 방향만 180도 바꿔가며 관측이 가능하다. 또 직경 3㎜의 광섬유 망을 철책선에 설치해 철책선을 절단하거나 잡아 당길 때 반사광으로 감지,CCTV와 중앙관제시스템에 전달하는 광섬유 망 경보체계 설치도 검토중이다. 이와 함께 40㎏ 이상의 물체가 침투하면 적외선으로 감지하는 마이크로웨이브 경보체계도 도입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 육군본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 합참 관계관 통합 토의를 거쳐 소요 및 작전요구성능(ROC)을 결정, 내년 중 시험평가를 위한 대상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어 작전환경을 고려해 산악·야지(들판)지형 시험부대를 선정, 내년부터 2007년까지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에 대한 4계절 시험평가를 거쳐 2007∼2011년까지 이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설치해 나갈 방침이다. 신현돈 국방부 공보관은 “중장기적으로 병력위주의 경계체제를 과학화 장비위주의 경계체제로 구축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일본의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이 도마에 오르면서 역사왜곡의 탈출구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탈출구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이후 한·중·일 3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과거사를 서술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구 전교조와 히로시마 교원노조, 한·일교과서연구회, 한·일역사교육교류회도 나섰고 한·중·일 3국의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도 있었다. 분노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안을 내기 위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공통점은 ‘일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이들 작업의 의미와 노력은 인정하면서도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6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에 관한 한·일학술대회’에서 연세대 백영서 교수가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 백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을 주도해온 대표적 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를 분석한 백 교수의 비판 논리는 ‘동아시아사로서의 관점이 불명확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각국 역사 병렬적 나열에 그쳐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동아시아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한·중·일 3국 역사서술을 단순히 ‘합친다.’는 뜻이 아니다.“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동 부교재는 ‘일제의 수탈과 피식민지의 피해’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 것 외에는 한·중·일 3국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삼국지’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동아시아사를 지향한다는 공동부교재 역시 여전히 “국가중심의 역사서술”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판은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예견됐었다. 역사부교재 사업을 두고 길게 봐서는 어차피 3국 민족주의자들간의 싸움으로 끝날 것이라는 노골적인 비아냥도 있었고 “과거에 대해 ‘동일한 기억’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는 무슨 의미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국가중심 역사서술 고집 여전 그렇다면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으로 벌어진 역사전쟁을 뛰어넘는, 동아시아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백 교수는 한국의 발전, 중국의 발전, 일본의 발전이라는 ‘일국사’의 관점을 유지하는 한 “휴전은 이뤄져도 평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 사회에 본질적인 성찰을 가능케 하는 사건으로 ‘한승조 파문’을 꼽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의 노선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매진해온 한국사회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는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가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현 정부에 답을 요구한 질문과 일맥상통한다.“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선진한국’ 건설과 ‘친일진상규명’을 동시에 이루려는 집권여당은 일본의 길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앞장서 온 친일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플루엔자 아기도 노린다

    인플루엔자 아기도 노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유행성 독감(인플루엔자)의 세계적인 창궐과 이로 인한 피해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인플루엔자 유행 지역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주장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다. 대한감염학회는 최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인플루엔자의 현황과 대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갖고 향후 예견되는 ‘인플루엔자 유행’에 대비해 정부와 의료·제약계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서울대의대 소아과 이환종 교수는 ‘소아에서의 인플루엔자질환’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소아에게 독감이 치명적이지 않다는 기존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며 “지난해까지는 6세 이상의 인플루엔자 고위험군에게만 기본접종으로 권장했지만 올해부터는 6∼23개월의 정상 소아도 기본접종으로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WHO는 앞으로 유행성 독감이 도래하면 전 세계에 걸쳐 5000만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소개하고 “특히 한국은 조류독감이 빈발하는 지역에 위치해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백신개발 및 생산, 사용 및 보상 기준의 정립, 범세계적 인플루엔자 감시시스템 확립, 지속적인 탐구조사 등의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 교수는 이날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에 대한 인식도가 낮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그가 경북 포항시 기계면과 청송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곳의 인플루엔자 예방접종률은 평균 36.8%에 그쳤다. 수의과학검역원 김재홍 질병연구부장은 북한의 조류독감과 관련해 “그나마 감염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 북한의 닭공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면 상당히 많은 감염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야생조류에 의한 국내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휴전선 주변의 야생조류에 대한 감염 여부 조사를 환경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서울공항 부근 땅 투기광풍

    서울공항 부근 땅 투기광풍

    서울공항에 바람이 거세다. 횅한 활주로에 간간이 보이는 군용 비행기들이 예상치못한 기상여건(?)때문에 이착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적정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고 있는 조종사들의 고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근 주민들의 소음공해 주장에 높은 고도에서 급히 활주로로 내려앉는 곡예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비행매뉴얼대로 낮은 고도를 유지했다간 곧바로 민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마저 사치다. 아예 비행장 존폐문제가 도마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군은 악조건속에서도 줄곧 비행장의 존치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고, 관할자치단체를 포함한 주변세력은 공항을 애물단지로 취급하며 호시탐탐 밀어낼 궁리만 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김한길 수도권발전대책특위 위원장이 당정협의를 거친 뒤 “수도권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서울공항이전을 검토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인근 부동산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전투기없는 최전방 군용비행장 서울시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공항은 면적이 135만평에 이르는 국내 최전방 공항.1972년 조성돼 2년뒤인 1974년 여의도비행장이 옮겨왔다. 당시는 전투비행대대가 상주했지만 지난 90년대 수서비리 이후 인근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민원이 제기돼 전투기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서울공항의 수난은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유사시 휴전선 최전방 비행장으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각종 군사물자 수송업무도 맡고 있다. 대통령 전용기를 포함해 외국 귀빈들이 심심치않게 서울공항을 이용하고 있고 이라크 파병 가족들의 애절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수난 시대 서울공항의 수난은 인근 지역에 수십년간 지속된 고도제한과 소음공해에 시달린 주민들의 저항으로 시작됐다. 주로 성남시 구시가지(수정·중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반대시위대는 서울공항을 위한 철저한 고도제한으로 30여년간 재산권행사에 제약을 받았다며 군의 입지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당시 군용항공기지법에 따르면 해발 73.04m 높이의 지역에서는 ‘지표면으로부터 12m’까지만 건축이 허용됐다. 이 때문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포함한 성남구도심 건축물 대부분이 4∼5층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99년 ‘성남지역 고도제한 해제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기존의 개별적 항의에서 벗어나 비로소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범대위는 국방부에 질의서 발송, 거리 서명운동 및 범시민결의대회 개최 등을 통해 성남시 등 유관기관을 상대로 지속적인 활동을 벌여 왔다. 이러한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결과로 개정안이 지난 2002년 2월 국회 국방위에 상정된 뒤 같은해 8월26일 국회를 통과했다. 덕분에 고도제한을 받던 도시계획구역의 경우 높이 12m에서 45m까지 건축이 가능해졌다. 당시 군은 고도제한 완화조치로 비행기 이착륙시 건축물들이 만일의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며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소음공해에 따른 피해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30여건에 달하는 소송이 제기돼 계류중에 있는 등 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공항 떠나라.” 서울공항 이전논의는 고도제한 완화조치 이후부터 있었다. 지난 2000년 인천공항 개항을 1년 앞두고 서울공항 기능을 김포공항으로 이전한다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국방부가 펄쩍 뛰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어 2003년 10월 29일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되자 당시 열린우리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이 서울공항을 택지로 개발하자고 고건 총리에게 제안했다. 골자는 서울공항을 강남 대체주거지로 개발해 주택공급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이전이란 말이 나오자 관할자치단체인 성남시도 발빠르게 움직였다.2002년말 시(이대엽 현 시장)는 2억 1080여만원을 들여 공항이전을 염두에 둔 용역을 발주했다. 이듬해인 2003년 2월 ‘성남시 지역발전을 위한 서울공항활용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용역최종보고서(460쪽 분량)가 제출됐고, 이를 토대로 시는 공항이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용역보고서는 실제로는 공항 이전보다는 타목적으로의 활용에 무게를 뒀다. 어쨌든 시는 지난해 8월 ‘2020년 성남 도시기본계획안’을 마련하면서 공항이전을 전제로 성급히 서울공항 터를 업무·금융·유통 및 광역생활 중심단지로 바꾸어 버렸다. 땅값상승을 부채질한 셈이다. 이에 질세라 경기도도 지난해말 산하 경기개발연구원을 통해 서울공항을 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도시권 성장관리방안’을 완성했다. 이들 말대로라면 서울공항은 이미 이전이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여기다 지난 3월 11일 김한길의원의 ‘이전검토’ 발언은 충격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신촌동, 고등동 등 공항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하루종일 문의전화로 북새통을 이뤘고 이후 김의원의 해명 뒤에도 투기세력의 요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도 할 말 있다.” 군은 수년 동안 이전에 반대하며 나름대로의 존치필요성을 조목조목 정리해 나가고 있다. 첫째 유사시 최전방 비행장으로의 임무수행이다. 휴전선에서 가장 가깝다는 얘기다. 유사시 중부권과 중부이남에 배치된 전투기를 전진배치하고 지상화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항공지원은 물론, 공중통제임무도 맡게 된다. 서울이 불과 휴전선에서 40㎞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서울공항의 존치가 절대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둘째는 서울공항 이전에 따른 ‘도미노효과’에 대한 우려다. 서울공항이 이전하게 되면 똑같이 이전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수원기지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 또 서울공항을 잃으면 수도권내에서는 비싼 땅값과 주민반대로 대체부지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여기다 군의 순수한 의도도 덧붙인다. 공군은 서울공항의 존치가 국토를 지켜낸다는 목적 외 아무것도 없다며, 막무가내식 이전요구가 군장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투기꾼들 세상… 그린벨트 한평 1000만원 이전논란속에 전국의 투기꾼들이 다 몰려들었다. 그린벨트 한평이 1000만원을 넘으니 쉽게 짐작이 간다. 이마저도 공항만 이전하면 ‘따따블’이라니 로또가 따로없다. 서울공항 인근 고등동과 심곡동 일대 그린벨트내 대지는 1년여전만 해도 부동산시장 침체속에서도 평당 400만∼500만원선을 유지해왔으나 최근 이전바람을 타고 평당가격이 최고 15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소위 비싸다는 분당 중심지역 상가용지와 맞먹을 정도다. 그나마 매물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 사도 이전만 하면 대박이라는 소문이 퍼져 내로라하는 투기꾼들이 종일 기웃거린다. 잡초가 무성한 전답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평당 50만∼70만원을 유지했으나 이제는 100만원 이하로는 구경조차 힘들다. 특히 공항과 연결되는 23번 국도변 전답은 평당 400만원 이상 호가한다. 게다가 그린벨트 내 임야도 이제는 평당 40만∼50만원은 주어야 살 수 있다. 고등동 K중개업소 김모(44)씨는 “지난해 혹시하다 살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예전가격으로 사겠다고 하지만 매물이 없다.”며 “당분간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서울공항 수난일지 ●1999년 8월:‘성남지역 고도제한 해제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결성 ●2000년 3월:인천공항 개항앞두고 서울공항 기능 김포공항 이전방안 대두 ●2002년 8월:고도제한 완화를 담은 ‘군용항공기지법의 개정안’ 국회통과 ●2003년 2월:성남시 서울공항 이전을 위한 ‘서울공항활용에 관한 연구’용역결과 토대로 이전요구 ●2003년 10월:열린우리당 정세균의원 서울공항 택지개발 제안 ●2004년 8월:공항이전을 전제로 한 ‘2020년 성남도시기본계획안’ 마련 ●2004년 12월:성남시 도시기본계획안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제출 ●2004년 12월:경기도 서울공항 신도시 개발‘대도시권 성장관리안’ 확정 ●2005년 3월:열린우리당 김한길 수도권발전대책특위 위원장 서울공항 이전검토 발언 ■ 서울공항 활용 용역 결과는 “김포보다 여건 좋아 민항기 취항 바람직” 성남시가 의뢰한 ‘성남시 지역발전을 위한 서울공항활용에 관한 연구’는 민항기 취항이라는 서울공항의 새로운 활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김두만 교수가 책임을 맡은 이 최종연구보고서는 서울공항이 주변도시에 경제적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공항을 김포공항과 비교했을 때 지리적으로 수도권 동남부에 인접해 공항주변의 우세한 교통망을 이용, 공항접근이 용이하며 기상조건도 타 공항에 비해 유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서울공항에 민항기가 취항할 경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구수는 남한 총인구의 18%가량으로, 무역중심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을 포함한 수도권 위성 신도시의 경제수준이 타지역에 비해 매우 높아 항공교통의 이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함께 역사적 도읍지로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서울·경기지역의 경우 관광을 통한 항공수요를 유발할 수 있는 잠재요인이 충분하다. 게다가 서울외곽순환도로와 인근 전철 등 주변 교통망의 개통으로 공항접근이 용이한 것도 장점이다. 항공수요는 고속전철수요를 제외하더라도 오는 2010년에는 142만여명,2020년에는 25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입출항 절차와 항행안전시설, 활주로 등에 대해서도 민간항공기 운영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특히 민간항공기 취항시 소음영향분석 결과도 피해지역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향후 피해지역 확대를 우려해 시설물의 설치제한과 용도제한 등을 고려, 주변지역 토지이용의 효율적인 제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공항에 활주로 길이 및 경제성 등 제반사항을 고려해 취항항공기는 50석급 터보프롭으로 제한했고 여객터미널의 규모도 상설화하고 있다. 민항기 취항으로 성남시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2010년 5611억원,2020년에는 1조원 가량으로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하튼 연구보고서 어디에도 이전하라는 말이 없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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