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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영상]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충격적 구조 영상

    [동영상]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충격적 구조 영상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어린아이의 영상이 공개돼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잔해에서 구조되는 시리아 아이(Syria Child is Saved from the Rubble)’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총 8분 길이의 해당 영상을 살펴보면 초반 1분까지는 구조과정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하지만 2분여가 지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돌무더기에서 어린아이의 팔로 추정되는 부분이 발견되면서 구조대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지는 것. 별다른 장비 없이 맨 손으로 정신없이 잔해를 파헤치던 구조대의 눈앞에 드디어 어린 생명의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동이 없던 아이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자 구조대는 환호성을 보내며 더욱 활발히 잔해를 파헤쳐나간다. 아이는 오랜만에 보이는 햇빛이 눈부신 듯 팔로 눈을 감싸며 천천히 호흡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눈을 뜨며 긴박한 구조대의 손길을 응시하기도 한다. 곧 아이 몸 전체가 구조대에 의해 잔해에서 빠져나오며 영상은 끝을 맺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 배경은 시리아 북부 할라브 주 알레포 지역으로 촬영자는 시리아 반군 측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리아는 3년 가까이 진행 중인 내전으로 1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난민촌에 거주 중인 상황이다. 한편 최근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첫 대면 협상을 시작했다. 양측 대표단은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유엔 중재로 한 테이블에 앉아 구호품 지원, 포로 석방, 휴전 등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협상은 다음 주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동영상·사진=유튜브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북한·스위스 연결고리 이용 北변화 유도 시사

    북한·스위스 연결고리 이용 北변화 유도 시사

    박근혜 대통령의 21일 ‘북한 변화 유도’ 발언은 스위스가 가진 독특한 위치와 가치를 극대화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선 스위스가 1953년 휴전협정 이래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에 대표를 파견하는 한편, 북한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점을 고리로 삼았다. 스위스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을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 공조에 적극 동참해 왔고, 박 대통령은 디디에 부르크할터 스위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점에 사의를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스위스가 매년 북한과 정치 대화를 갖고 있고, 인도적 대북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모습을 취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어떤 구체적인 방안과 로드맵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낸 적이 없어서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좋은 결과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진인사대천명’, ‘지성감천’ 등 인내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일단 ‘최소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정도의 어감을 던졌다. 박 대통령은 해외 정상이나 유력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 문제를 잊지 않고 언급해 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와 관련, “DMZ가 비록 지금은 중무장 지대이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거듭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볼 때 ‘최소한 노력’ 이상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베른의 한 시내 호텔에서 부르크할터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부르크할터 대통령이 “DMZ가 언제쯤 없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발전시켜 북한 측에 제안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추진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에 대해 지지와 환영의사를 표명한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힌 것은 국제사회의 공조를 강화해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 의무 준수 촉구 등 대북 압박을 해 나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부르크할터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도록 하고 중국이 (6자회담을 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베른(스위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영화 ‘실미도’처럼… 법정서 드러난 북파공작원의 가혹훈련

    영화 ‘실미도’처럼 북파공작원들이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죽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실상은 훈련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전 북파공작원이 공무수행 중 상이 인정을 받지 못하자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때문에 알려졌다. 지난해 2월 28일 수원지법 행정2단독 왕정옥 판사 판결문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모(36)씨는 모병관으로부터 50개월 근무를 마치면 1억원 이상 돈을 주고 제대하면 국가기관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1997년 4월 특수임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김씨는 강원의 한 시설에서 부대 배치 전까지 동료 24명과 함께 매일 12㎞ 달리기, 특수무술, 잠복호 구축, 수류탄 투척, 사격, M18A1 클레이모어(크레모아) 폭파, 공수훈련 등을 받았다. 100일간 훈련이 끝나고 1997년 7월 부대에 배치된 뒤에는 더 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침투, 첩보 및 요인납치를 위한 독도·모스부호 수신, 휴전선 침투 훈련, 공수강하훈련, 투검, 해상수영 등의 훈련을 맡은 선배들은 김씨와 동료들을 야구방망이로 매일 구타했다. 구덩이를 파고들어가게 한 뒤 모스부호 송수신이 틀릴 때마다 물을 채워넣기도 했고 한겨울에는 수시로 부대 앞 계곡 얼음물에 2~3시간 밀어 넣어 동료 1명이 숨지기도 했다. 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김씨 후배를 투검 훈련용 표적 옆 나무에 묶어두거나 목만 내놓고 땅에 파묻은 채 1주일을 내버려두고 욕조에서 물고문을 반복해 숨지게 했다. 결국 김씨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이유 없이 불안해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50개월 군생활을 마친 2001년부터 정신분열증 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 아직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김씨는 수원보훈지청을 상대로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했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이 공무수행 중 상이로 인정되지 않아 2011년 12월 등급 기준미달 판정을 받자 지난해 국가유공자 요건 비해당 결정취소 소송을 냈다. 왕 판사는 판결문에서 “입대 전까지 증세가 없었고 가족 중 병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점, 견디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겪은 점 등에 비춰보면 원고의 정신질환은 군복무 과정과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김씨 변호인은 “북파공작원의 공무관련 상이에 대해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보훈청의 의결 내용을 뒤집은 첫 판결”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국제평화회담(제네바 2회담)이 오는 22일부터 시작된다. 3년간 계속된 최악의 내전으로 13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평화회담을 둘러싼 안팎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상 전망이 밝지 않다. 17일 AFP, BBC, 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 대표자들은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 모여 평화회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벌였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는 SNC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과도정부 관리는 물론 향후 대선에 출마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반군 대표들이 반드시 협상에 들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시리아 정부가 이날 국지적 휴전과 포로 교환에 동의한다고 밝혀 회담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했다.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북부 최대 도시인) 알레포에서 휴전하고, 포로 교환을 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협상 참여 여부도 논쟁거리다. 미국은 이란이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의 대량 학살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란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6월 열린 첫 제네바 회담에서도 미국과 러시아가 알아사드 대통령의 과도정부 참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결실을 맺지 못했다. 반군 내의 분쟁도 골칫거리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 등은 SNC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정부군보다 SNC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반군 내 충돌로 106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유럽의 이슬람 교도들이 ‘용병’을 자처해 참전하는 것도 사태 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나 아랍계 이주민들이 시리아 반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들은 내전 해결보다 참전한 자국민들의 동향과 귀국 후 테러리스트로 활동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00여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참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인 1200명 이상이 참전을 위해 시리아로 건너갔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中, 남수단 사태 개입 ‘내정 불간섭’ 원칙 깨나

    중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외교의 기본틀인 ‘내정 불간섭’ 원칙을 무시하고 남수단 사태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남수단 사태 중재에 나선 것을 이른바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노선의 일환으로서 ‘창조적 개입 외교’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은 중국이 국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공식화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8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 6일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휴전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양측 대표를 각각 만나 평화적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왕 부장은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남수단 충돌 사태를 해결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히고, 양측이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남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주요 국가에 아프리카사무특별대표를 보내 남수단 사태 중재를 시도한 바 있다. 왕 부장의 공개적인 개입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중국은 개국원수인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 평화·공존 5개 원칙(주권과 영토 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을 외교의 기본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직접적인 언급이나 개입을 자제해 왔기 때문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발전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내정 불간섭’ 원칙을 조만간 폐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남수단 사태에 개입한 것도 정치·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있다. 아프리카는 중국이 서방에 맞설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는 정치적 지지 세력이자 원유, 광물 등 지하자원의 최대 수입처이다. 특히 남수단은 중국의 최대 유전 투자국으로 꼽힌다. 중국 전문가들은 자국 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해당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하도록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창조적 개입 외교’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내정 불간섭 원칙을 폐기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최대 투자국인 만큼 이 같은 현상이 강화되면 북한 내정에도 자연스럽게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량윈샹(梁雲祥) 교수는 “남수단이나 북한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말을 듣듯 중국의 말을 듣지는 않는다”면서 “중국이 강해질수록 자기 뜻대로 타국을 움직이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아직 그럴 힘이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이슈&이슈] “영동 북부 발전 위해 조기착공을” vs “예비타당성 조사가 먼저”

    [이슈&이슈] “영동 북부 발전 위해 조기착공을” vs “예비타당성 조사가 먼저”

    “낙후된 영동북부 지역 발전을 위해 동서고속화철도 조기 착공해 주오.”(속초 주민), “경제성이 있는지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해야 한다.”(기획재정부)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91.8㎞)를 놓고 벌이는 강원도와 정부의 줄다리기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1987년 대통령 공약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당초 서울~춘천~속초로 이어지는 사업이었지만 서울~춘천 구간(81.4㎞)은 2010년 개통됐다. 23년 만에 절반만 성사된 셈이다. 이후 춘천~속초를 잇는 나머지 구간에 대한 완공도 하루속히 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지만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사업 추진이 뒤로 밀리고 있다. 3조 379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이 사업은 선거 때마다 강원 영동북부 지역의 최고 이슈로 등장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말만 무성하다. 지난해 말 국회 예결위에서 사업 초기 예산 50억원이 반영됐지만 실제 연구용역 이외에는 다른 용도로 예산을 투입할 수 없는 일반회계로 명목을 정해 놓는 바람에 조기 착공이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사업의 경제성이 있는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부터 면밀하게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도는 그동안 수차례 예산의 일반 용도 사용이 가능한 특별회계를 주장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도는 당초 지난해 말 특별회계에 예산을 반영해 놓고 현재 교통연구원이 진행하고 있는 ‘춘천∼속초 간 철도 대안노선 연구용역’ 결과를 이달 중 기재부에 보고한 뒤 빠르게 사업을 진행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선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일반회계로 예산을 반영했다. 지난해 말 국회의원들도 “동서고속화철도는 기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50억원) 일반회계로 두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현재 대안 노선 활성화 용역이 진행 중이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아 당초 정부안대로 일반회계 집행이 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회계 변경을 승인하면 다른 시·도와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동서고속화철도를 어떤 식으로든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고 대안 노선 활성화 용역 이후에도 사업 추진을 담보할 수 있는 결론을 내기 위한 해법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사업 추진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처럼 회계 변경이 어렵게 되면서 사업 진척이 늦어져 올해 조기 추진은 난망하게 됐다. 연초에 예비타당성 조사 이후 발 빠르게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일반회계가 정해 놓은 씀씀이 범위를 넘지 못해 본격 사업 추진은 한 해를 또 넘기게 됐다. 올 하반기에 예산을 다시 확보한 뒤 내년부터 사업을 추진하면 착공은 2018년쯤이나 가능할 전망이다. 공사 기간이 6년쯤 소요될 것으로 보여 속초, 고성, 양양 등 강원 영동북부 지역 주민들과 철도가 지나는 양구·인제 지역 주민들이 혜택을 보는 것은 2024년이 돼야 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처럼 사업이 지연되자 지역 주민들은 “26년 동안 뒷전으로 밀리던 사업의 성사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번번이 늦어져 안타깝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도와 주민들은 “동서고속화철도는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지역 활성화에도 목적이 있지만, 이 철도 사업이 성사되면 아시아~유럽을 잇는 대륙 횡단철도와 연계돼 우리나라 전체의 물류혁명이 예상되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도 절실한 사업인데도 경제성만 따지려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륙횡단철도(TSR)와 연계하면 수도권에서 동해안으로 물류가 이동한 뒤 북한 동해안 지역을 지나 러시아~유럽으로 이어져 물류혁명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가 놓이면 기존 서울~춘천 간 복선전철과 연계돼 수도권에서 속초항으로 곧바로 물류가 이동, 바닷길이 열리는 북극항로 루트와 이어지면서 또 다른 북방 해상 물류도 기대된다. 속초 지역까지 철길만 놓이면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길과 북극해를 통한 유럽으로의 해상 루트 모두 가능한 우리나라 최대 북방 전진기지 역할이 가능한데 정부에서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속초항이 북극항로 등 환동해안권의 해양 전진기지로 자리 잡으면 다가올 북방경제시대를 맞아 국가 차원에서도 이득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수도권 물류가 러시아 등 북방과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육로로 부산항·울산항으로 이동한 뒤 다시 동해안을 따라 이어져 속초항보다 뱃길로만 2, 3일이 더 소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예 수도권에서 동서축인 속초항으로 물류를 곧바로 이동시키면 국가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재진 강원발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0년대 동서고속화 철길이 놓이면 한 해 2000만명의 관광 수요와 1000만t의 화물 물동량이 새롭게 생겨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통일시대에 대비해 하루라도 빨리 서울~속초를 잇는 동서축의 고속화 철길을 놓아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교통기간망이 남북 축으로 발전되면서 소외됐던 동해안이 고속화 철길이 놓이면서 개발되면 국가 균형 발전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사시 중무장 화력을 동서 휴전선으로 긴급하게 보내는 등 휴전선 일대 군부대로 안정적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전략 루트의 역할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 전철길을 따라 송전선 지중화사업을 병행하면 송전탑 건설 등 주민과의 마찰 없이 새로운 동해안 화력발전소 조성에 따른 수도권 전기에너지 공급망 역할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설악권을 끼고 국내 최고 청정 지역으로 남아 있는 강원 영동북부 지역이 옛 영광을 되찾아 다시 일일 수도권 관광 지역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장래를 내다보고 당장 경제성을 벗어나 ‘선공급 후창출’의 안목으로 동서고속화철도를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26년 동안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의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던 동서고속철도가 아직 이렇다 할 사업을 시작도 못 하고 또 한 해를 보내게 돼 안타깝다”면서 “더이상 선거용이 아닌 실제 국가의 균형발전과 지역 주민의 오랜 바람이 해결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속초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남수단 유혈사태 종지부 찍나… 정부·반군 직접 협상 개시

    남수단 유혈사태 종지부 찍나… 정부·반군 직접 협상 개시

    최근 내전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남수단에서 정부와 반군 대표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직접 협상을 시작해 지난 3주간 이어진 유혈 사태가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주목된다. 5일 AFP통신 등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공식 평화 협상이 이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디나 무프티 에티오피아 외무부 대변인은 양측이 이날 낮 12시부터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휴전 시기와 방식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 타반 뎅 가이 반군 측 협상 대표는 폭력 사태와 관련된 정치인들의 석방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직접 협상을 하루 앞둔 4일에는 정부와 반군 측 대표자로 구성된 협상단이 사전 회담을 가졌다. 협상을 중재한 테드로스 아드하놈 에티오피아 외무장관은 이날 “남수단은 평화와 발전을 누려야 할 나라이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 의미 없는 전쟁이 계속되게 해서는 안 되고 오늘 꼭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지난달 31일 휴전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했지만 교전이 계속되면서 협상 일정이 미뤄졌다. 양측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직접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가 돌연 연기하는 등 막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사전 협상이 열린 이날도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는 포탄이 오가는 등 교전이 계속됐다. 이번 유혈 분쟁은 지난해 7월 남수단 제1부족인 딩카족 출신 살바 키르 대통령이 제2부족인 누에르족 출신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해임하자 이에 반발한 세력이 지난달 15일 정부군과 충돌하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이 숨지고 2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의 중재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기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기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독립운동가이자 국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올해 여야 정치인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분열갈등과 이전투구를 보면 역사를 잊은 지 오랜 것 같다. 한반도는 임진왜란 때부터 오늘까지 대륙과 해양세력의 상시적 각축장이 돼 왔다. 한반도 상에 지정학적 대분단선(大分斷線)이 지나가는 데다 4강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고질적 대외의존 중독증과 분열적 DNA도 한몫하고 있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한다”는 말이 오늘의 한반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륙과 해양세력 간 숙명적 대분단선으로 인해 임란 이후 전란 때마다 한반도 분할론이 강대국 간 비밀 흥정거리가 되었다. 임란 때는 명나라 지원군사령관 이여송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이에 흥정이 오갔다. 분할조건은 한강을 중심으로 이북 4도는 조선국왕에게 반환하고 이남 4도는 일본에 할양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명 간의 이해 대립으로 분할은 불발로 끝났지만 근세사 이후 최초의 분할론이라는 점에서 나쁜 선례를 남겼다. 두 번째 분할흥정은 1894년 7월 영국 외상 킴벌리가 내놓은 청나라와 일본의 한반도 공동점령 분할론이다. 한반도 전체를 병탄, 식민지화하기로 결정한 일본의 반대로 이 분할안은 성사되지 못했다. 세 번째 분할흥정은 1896년 6월 모스크바에서 있은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때였다. 일본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청나라 이홍장(李鴻章)이 특사로 참석했다. 야마가타는 러시아의 로바노프 외상에게 북위 38선을 기준으로 서울이 포함된 남반부는 일본이 차지하고 북반부는 러시아가 갖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부동항에 야심을 가진 러시아는 한반도 전체를 단독점령하기 원했기 때문에 이 안을 반대함으로써 성사되지 못했다. 이때 민영환이 대관식에 참석했음에도 강대국들의 한국 말살음모를 까맣게 몰랐다. 정보수집 기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03년 러시아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한국 분할안을 일본에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거절했다. 이유는 일본이 7년간 군비를 대폭 증강, 현대화한 데다 최강국 영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한반도 분할흥정은 실패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를 병탄, 식민지화했다. 조선정부는 러·일 사이 국가 해체를 위한 음모에 대한 기본적 정보조차 없었다. 410년 전 임란 때부터 1953년 휴전협정, 그리고 오늘의 한반도 분단은 약소국에 대한 외세의 비밀흥정과 정글 논리가 초래한 희생의 산물이었다. 4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과 해양세력 간 4강의 치열한 각축 프레임은 똑같다. 핵 무장한 호전집단 북한, 복잡다단한 영토문제, 그리고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강대국 갈등이 우리에게 새로운 약육강식의 희생을 강요하지 못하게 유비무환의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을 폐지하자는 건 안보의 첨병인 국가의 눈과 귀를 빼 버리자는 망국적 자살행위다. 국정원 개혁은 초당적이어야 하며 정보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 남수단 정부·반군 평화협상 시작

    2주간 교전을 벌이며 대립하고 있는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 에티오피아에서 만나 평화협상을 시작한다고 AFP 통신이 31일 보도했다. 디나 무프티 에티오피아 외무부 대변인은 AFP통신에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이 지금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로 오고 있으며 오늘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협상 발표는 반군의 대변인 모세스 루아이가 “보르는 우리가 (다시 일주일 만에)장악했다”고 주장한 뒤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군은 교전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반군이 재탈환했다고 주장하는 종글레이주의 주도 보르 지역은 수도 주바에서 북쪽으로 200㎞ 거리에 있으며 우리 정부가 파견한 한빛부대의 주둔지다. 282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한빛부대는 지난해 4월 현지에 도착해 재건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평화협상은 아프리카정부간개발기구(IGAD) 정상들이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31일까지 휴전안을 받아들이고 키르 대통령과 직접 협상하라고 촉구한 가운데 이뤄졌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인근 국가들의 조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지난 15일 키르 대통령의 정부군과 지난해 7월 해임된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주바에서 교전을 벌여 왔다. 유엔은 이번 남수단 분쟁으로 지난 2주간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8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지난 24일 보르에서 정부군이 반군을 몰아냈으나 이날 아침부터 또다시 교전이 발생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남수단 한빛부대 주둔지 보르 인근서 교전…“반군 총공격 시작될 듯”

    남수단 한빛부대 주둔지 보르 인근서 교전…“반군 총공격 시작될 듯”

    한빛부대가 주둔한 남수단 보르 인근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발생했다. 남수단 정부군인 인민해방군(SPLA) 대변인 필립 아구에르는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보르 북쪽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구에르는 “곧 (반군의) 총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보르에 주둔하는 정부군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니알 마자크 니알 보르시 시장도 보르에서 북쪽으로 30㎞가량 떨어진 마티아 지역을 ‘백색 군대’로 알려진 반군이 공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로이터와의 통화에서 “(백색군이) 마티아 마을을 공격해 주민을 살해하고 민가를 불태우고 있다”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보르로 도피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 역시 보르 외곽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했다고 확인했다. 루에트 정보장관은 앞서 이날 2만 5000명 규모의 백색군이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어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교전에 따른 사상자 규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레이첼 니예다크 폴 정보부 차관은 보르 지역에서 퇴각하도록 반군을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 차관은 백색군의 주요 구성원인 누에르족의 관리를 통해 백색군 지휘관과 수차례 통화해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인종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개입을 삼가라고 촉구했다고 CNN에 말했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지난 15일 살바 키르 대통령의 정부군과 지난 7월 해임된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수도 주바에서 교전을 벌였다. 키르 대통령은 딘카 족이고 마차르 전 부통령은 누에르 족이다. 정부군은 지난 24일 반군이 거점으로 점령하고 있던 보르를 재탈환했다. 벌레를 퇴치하려고 온몸에 흰색 재를 발라 ‘백색군’으로 불리는 반군은 대부분 누에르족 출신으로 1991년 보르에서 발생한 딘카족 학살에도 관여했다. 유엔은 2주간 이어진 남수단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8만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분쟁 종식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거의 매일 전화해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남수단에 파견된 도널드 부스 미국 특사도 협상이 곧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이날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이 말했다. 같은 날 남수단 주바를 방문해 키르 대통령과 만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반군 측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31일까지 휴전안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282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한국의 한빛부대는 지난 4월 초 본진이 현지에 도착해 재건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빛부대 주둔 남수단 보르 인근서 교전

    한빛부대가 주둔한 남수단 종글레이주(州)의 주도 보르 인근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발생했다. 남수단 정부군인 인민해방군(SPLA) 대변인 필립 아구에르는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보르 북쪽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구에르는 “곧 (반군의) 총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보르에 주둔하는 정부군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니알 마자크 니알 보르시 시장도 보르에서 북쪽으로 30㎞가량 떨어진 마티아 지역을 ‘백색 군대’로 알려진 반군이 공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로이터와의 통화에서 “(백색군이) 마티아 마을을 공격해 주민을 살해하고 민가를 불태우고 있다”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보르로 도피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 역시 보르 외곽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했다고 확인했다. 루에트 정보장관은 앞서 이날 2만5천명 규모의 백색군이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어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교전에 따른 사상자 규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레이첼 니예다크 폴 정보부 차관은 보르 지역에서 퇴각하도록 반군을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 차관은 백색군의 주요 구성원인 누에르족의 관리를 통해 백색군 지휘관과 수차례 통화해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인종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개입을 삼가라고 촉구했다고 CNN에 말했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지난 15일 살바 키르 대통령의 정부군과 지난 7월 해임된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수도 주바에서 교전을 벌였다. 키르 대통령은 딘카 족이고 마차르 전 부통령은 누에르 족이다. 정부군은 지난 24일 반군이 거점으로 점령하고 있던 보르를 재탈환했다. 벌레를 퇴치하려고 온몸에 흰색 재를 발라 ‘백색군’으로 불리는 반군은 대부분 누에르족 출신으로 1991년 보르에서 발생한 딘카족 학살에도 관여했다. 유엔은 2주간 이어진 남수단 분쟁으로 1천명 이상이 숨지고 18만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분쟁 종식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거의 매일 전화해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남수단에 파견된 도널드 부스 미국 특사도 협상이 곧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이날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이 말했다. 같은 날 남수단 주바를 방문해 키르 대통령과 만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반군 측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31일까지 휴전안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282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한국의 한빛부대는 지난 4월 초 본진이 현지에 도착해 재건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 보르로 진격 중

    [속보]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 보르로 진격 중

    남수단 사태가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수만 명의 무장 반군이 우리나라 한빛부대가 주둔한 보르로 진격하면서 또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뉴스채널 ‘프랑스 24’와 AP통신 등 외신은 반군이 마체테(날이 넓은 긴 칼), 몽둥이,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채 남수단 종글레이주(州) 주도인 보르로 진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수단 정부의 한 관리는 2만 5000명의 무장한 청년으로 구성된 ‘백색군대(White Army)”가 정부군이 지난 24일 재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밝혔다. 벌레를 퇴치하려는 목적으로 온몸에 흰색 재를 발라 ‘백색군대’로 불리는 이들은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누에르 족 출신이다. 무장 반군은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의 정부군이 지난주 반군을 몰아내고 재탈환한 보르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은 백색군 내부 연락책으로부터 “그(마차르)가 그의 부족 이름으로 청년들을 소집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저녁 보르에서 50Km 외곽까지 진격한 이들이 조만간 보르시에 도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남수단에서는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마차르는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하며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동지 정치인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에 진척이 더딘 상태다. 앞서 보르 지역에서는 지난주 2천 명의 무장한 누에르족 청년이 아코보에 있는 유엔캠프에 난입해 유엔군 병사 3명이 숨졌다. 또 누에르족의 습격을 피해 숨어 있던 딘카족 주민 수십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이너프 프로젝트’의 남수단 애널리스트인 악샤야 쿠마르는 “지난 2주간 두차례나 충돌을 겪은 보르 주민들은 더는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코보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유엔 평화유지군이 이들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향해 진격하다 대부분 해산”

    유혈 분쟁에 휩싸인 남수단의 한빛부대 주둔지인 종글레이주(州) 주도 보르로 향하던 반군 민병대가 29일(현지시간) 진군을 멈추고 흩어졌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남수단 정부 대변인인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공보장관은 이날 보르 외곽 50Km까지 진격한 누에르족 출신 반군 민병대인 ‘백색군대’(White Army)가 부족 원로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군 측으로부터는 백색군대가 실제 철군했는지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루에트 장관은 전날 2만5천명의 전사들로 구성된 백색군대가 지난 24일 정부군이 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면서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백색군대란 명칭은 누에르족 전사들이 벌레를 쫓기 위해 신체에 소똥을 태워 만든 흰색 재를 바른 데서 유래한다. 루에트 장관은 “우리 소식통에 따르면 누에르 부족의 족장들이 청년들을 설득했다. 누군가 다시 소집하지 않는다면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은 휴전을 이끌어 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민병대 진격 소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남수단에서는 정부내 반대파 간 총격전으로 촉발된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차르는 그러나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정치적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지로 진격”

    남수단 무장 반군 수만명이 한빛부대가 주둔한 보르로 진격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남수단 반군은 자동소총과 긴 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하고 남수단 종글레이주(州) 주도인 보르로 진격 중이다. 남수단 정부 관리는 2만 5000명의 무장한 청년으로 구성된 ‘백색군대’가 정부군이 지난 24일 재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밝혔다. 벌레 퇴치를 위해 흰색 재를 온몸에 발라 백색군대로 불리는 이들은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누에르족 출신이다. 무장 반군은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의 정부군이 지난주 반군을 몰아내고 재탈환한 보르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은 백색군 내부 연락책으로부터 “그(마차르)가 그의 부족 이름으로 청년들을 소집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저녁 보르에서 50㎞ 외곽까지 진격한 이들이 조만간 보르시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했다. 남수단에서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하면서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한 중재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마차르는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하며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동지 정치인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남남북녀’의 이면/최광숙 논설위원

    예전부터 남쪽은 남자가 잘나고, 북쪽은 여자가 예쁘다는 뜻의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있다. 이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능화 선생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정치가, 학자, 예술가, 군인 등은 대다수가 남쪽 출신이다. 반면 뛰어난 미모의 여인들은 강계미인(江界美人), 회령미인(會寧美人), 함흥미인(咸興美人)이란 말에서 보듯 북쪽 출신들이 많다. 이는 기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피부가 희고 얼굴이 갸름하며 외꺼풀 눈에 허리가 긴 여성을 미인으로 꼽았다. 기후 영향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여성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남남북녀’의 이야기는 분단 후 영화의 소재로 새롭게 등장했다. 1967년 ‘남남북녀’를 필두로 ‘쉬리’, ‘풍산개’, ‘한반도’ 등의 영화에서는 휴전선이 가로막혀 이뤄질 수 없을 법한 남과 북의 이성들이 만나 사랑을 꽃 피운다. 슬프고 애절한 사랑의 커플이 바로 ‘남남북녀’다. 요즘은 탈북자들이 늘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닌 실제 ‘남남북녀’ 커플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남남북녀’의 의미를 다시 써야 할 것 같은 통계가 나왔다. 통계청의 ‘2013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 자료에 따르면 남한은 남성이 여성보다 7만 5000여명이 더 많고, 북한은 여성이 남성보다 60만 4000여명 더 많았다. 남북한 전체의 남녀 성비를 봤을 때 남한은 남자가, 북한은 여자가 더 많은 ‘남남북녀’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 북한에 여성이 더 많은 이유는 남자들이 일찍 사망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남자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시베리아 벌목장 등 해외 건설현장이나 군대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사고사 등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의료 기술 낙후로 태아 성감별을 미리 못하는 북한에 비해 남한의 남성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북한의 남녀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북한 체제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간 안타깝지 않다. 고된 노역으로 일찍 죽는 남성들만 불쌍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의지해야 할 파트너 없이 혼자 남을 여성들도 가엾다. 북한과 같은 과도한 여초(女超) 현상은 보통 전쟁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 많이 죽으면서 여성들만 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남은 사람들을 황폐시킨다. 지금 북의 남녀 성비율만 봐도 북은 평화로운 시기가 아닌 전시의 모습 그대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1차대전 ‘성탄절 휴전’ 영국·독일군 축구 경기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1차대전 ‘성탄절 휴전’ 영국·독일군 축구 경기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성탄 전야, 벨기에 이프르란 곳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 전장은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 묘사했던 대로 처참했다. 그런데 영국과 독일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겨누던 소총을 내려놓고 참호 속에서 나와 캐럴을 함께 부르며 시신들을 거둔 이른바 ‘크리스마스 휴전’이 펼쳐졌다. 두 나라 군 지휘부는 적과 ‘내통’하는 자들을 처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휴전은 열흘, 길게는 한 달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욱 극적인 얘기가 더해진다. 두 나라 병사들이 한데 어울려 축구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반전(反戰) 뮤지컬 ‘얼마나 사랑스러운 전쟁인가’에도 진흙탕의 무인 지대에 골대를 세우고 병사들이 축구 경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BBC 월드서비스는 25일 랭커스터대학의 역사학자 이언 애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99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 얘기가 상당히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애덤스는 “40㎞에 걸친 전선 가운데 25㎞ 정도에서 이런 간헐적인 휴전이 이어졌다”며 “병사들이 축구를 한 것은 맞지만 축구 경기를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제까지 총구를 겨누던 독일 병사들이 참호에서 빠져나와 무장을 벗은 채 영국군 병사들이 배낭에서 꺼낸 축구공으로 경기를 벌인 것은 아니었다고 애덤스는 주장했다. 그는 “총성이 멎은 전장에서 무료해진 병사들이 적군이 아닌 전우들과 깡통을 차서 주고받거나 미니 게임을 벌인 정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함께 예배를 본 뒤 시신을 수습하고 어울려 찍은 사진이 이듬해 1월 8일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에 실려 전해진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손성진 칼럼] 나만이 정의라는 세상

    [손성진 칼럼] 나만이 정의라는 세상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참 꿋꿋이 살았다.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올해도 양보 없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상대방의 목소리엔 귀를 막았다. 휴전선 스피커처럼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일베충’이니 ‘홍어’니 ‘좌좀’이니 느낌도 섬뜩한 말들이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곧 적화(敵化)된다. 우리 사회는 우파 아니면 좌파뿐이다. 거기에 끼지 못하면 ‘왕따 학생’처럼 따돌림당한다. 통합을 외쳤지만 균열은 더 심해졌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다. 누가 뭐라든 마이웨이였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언론은 분열을 부추긴다. 막무가내식 아전인수가 판친다. 분풀이하듯 마음 놓고 상대를 쏘아대도록 마당을 마련해 준 종합편성채널(종편)도 단단히 한몫했다. 사상의 대립에는 양극화라는 배후가 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대립은 심화됐다. 대소(大小)밖에 없다. 중(中)은 점점 설 땅을 잃어간다. 우리 경제의 몇십%를 두 재벌이 쥐고 있는 현실이다. 올해 벌써 몇 개의 중소 재벌이 무너졌다. 우열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大)와 우(優)는 더욱 커지고 소(小)와 열(劣)은 더 쪼그라들고 있다. 소와 열은 외쳐도 반향이 없으면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러면서 기득권의 방어전략처럼 공격할 수단으로 사상을 찾는다. 논리로 무장한 사상은 빈틈을 주지 않는다. 나만이 정의다. 그러니 용납이란 말이 통할 리 없다. 세상이 좀 살벌해졌다. 권력은 권력이 없는 자의 숨통을 죈다. 궁지에 몰린 ‘없는 자’는 막돼먹은 말로 저항한다. 어른에게 뺨 맞고 선을 뛰어넘어 덤비는 아이같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것들도 욕망과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정서다. 궁극적으론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심리가 내재해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본질은 다 똑같다. 나의 기준만으로 봐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만사를 내 생각대로만 하기는 어렵다. 나와 이념이 다르다고 다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매사 이념을 잣대로 생각하니 문제다. 이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세상에 많다. 이념을 떠나 대중은 철도 파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좌파의 인식에 동의하더라도 당장 불편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 이념을 갖다 붙이면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대중은 노조원들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배척한다. 장사를 망쳐도 시위대에 기꺼이 동조해 주던 건 옛일이다. 대중은 그만큼 영악해졌다. 이념에 기댄 이기주의를 분별해 낼 줄 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숨어 있는 대중은 의외로 자원이 풍부하다. 그들도 이럴 땐 목소리를 낸다. 이 땅에 핍박받으면서도 정작 끽소리도 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따로 있다. 대기업에 혈(血)을 빨리다시피하면서도 노조 결성조차 못한 노동자가 수두룩하다. 파업은 그들에게 배부른 소리다. 정부와, 대기업과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나만이 정의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나보다 앞세워야 할 사람도 있다. 우파가 분배와 복지에 빗장을 풀어 젖혔듯 좌파도 경쟁을 수용해야 한다.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그런 수정의 과정을 거쳐왔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국민이다. 또 국가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스스로 틀렸음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할 포용력.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대통령이든 노조원이든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만나지 못하는 두 가닥 레일처럼 분열과 갈등은 종착점을 모르고 가열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흘러갈 것인가. 새해에는 나만이 정의라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부고] ‘백선엽 장군 친동생’ 백인엽 예비역 중장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친동생인 백인엽 예비역 중장이 지난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1923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임관한 뒤 1948년 육군 제17연대장에 임명됐다. 6·25 전쟁 때인 1950년 8월 27세의 나이로 수도사단장에 임명돼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제17연대를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서울 탈환에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전 이후에는 9사단장, 1군단장, 6군단장, 육군본부 관리참모부장을 역임하고 1960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1958년 고인은 성광학원을 인수한 뒤 형과 자신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 선인학원을 설립했다. 유치원부터 대학(인천대·인천전문대)까지 16개 학교로 이뤄진 선인학원은 ‘비리 사학의 원조’ 격으로 논란을 빚다가 1994년 공립화됐다. 고인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공금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고인은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육군장(葬) 대상이지만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장지도 국립묘지가 아니다. 유가족은 “고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묻혀 있는 천안 풍산 공원묘지에 안장토록 유언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주광숙(71)씨와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9시 30분. (02)2072-2010.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泰 국왕 생일 앞두고… 경찰·시위대 “일단 휴전”

    태국 경찰이 3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최루탄, 물대포 등을 동원한 무력 저지를 중단하고 시위대의 정부청사 진입을 허용했다. 시위대는 이를 승리라고 선언했으며, 시위로 인한 긴장이 크게 완화됐다. 태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는 5일 국민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생일을 앞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경찰은 시위대와의 협상 끝에 무력을 통한 시위 저지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방콕 시경은 더이상 시위대를 저지하지 않기로 했다며 “시경은 국민의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대 지도부는 이에 대해 “오랜 투쟁과 저항 끝에 우리가 승리했다”며 승리를 선언하고 전 국민이 이를 축하하자고 촉구했다. 시위대와 합의한 뒤 경찰은 지난 1일부터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최루탄과 물대포 발사를 중단했다. 경찰과 시위대는 정부청사와 방콕시경을 방어하던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제거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화해의 표시로 사진 촬영을 하고 미소를 주고받기도 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무력 저지가 중단된 뒤에도 경찰에 의해 포위될 가능성을 우려해 1시간가량 시경 구내에 진입하지 않다가 나중에 구내로 들어갔다. 시위대는 총리 청사와 방콕시경 구내 마당에 진입했으나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의 시위대 저지 중단과 이로 인한 양측 간 긴장 완화가 시위 중단 및 정국 위기 해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잉락 친나왓 총리의 퇴진, 이른바 ‘국민회의’ ‘국민정부’ 구성을 주장하는 반정부 진영과 정부·여당이 시국 대책에 대해 큰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서다. 반정부 시위대의 정부 청사 점거를 이끌었던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지지자들에게 “이는 부분적인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별이 된 ‘베트남의 별’

    별이 된 ‘베트남의 별’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예비역 중장)이 25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소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소련군 주둔 이후인 1947년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월남했다. 모태신앙을 지닌 그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5기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 9연대로 발령받아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6·25전쟁 때에는 육군 중령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불리는 ‘백골병단’을 이끌고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4후퇴 무렵,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백골부대는 정식 군번도 없이 적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을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 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  휴전 후 9사단 참모장이던 박정희 당시 대령과 인연을 맺었다.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은 그를 박정희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5사단장이던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왔다. 당시 혁명 5인 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 1965년 8월 맹호부대장 겸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인 1969년 4월 헬리콥터로 이동 도중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 국군 28연대 주둔지역인 투이 호아에서 헬기가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69년 귀국한 이후 2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72년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유신의 뜻을 내비치며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같은 해 6월 전역했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었다. 이후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군 복무기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최고2등훈장, 미국 공로훈장, 타이완 공로훈장, 필리핀 명예훈장, 태국 왕관훈장, 브라질 문화훈장 등 외국 훈장도 다수 받았다.  2000년 베트남 참전 전우회 회장과 2004년 사단법인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을 거쳐 같은 해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트남전쟁과 나(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여사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28일 발인을 거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02)3010-2631.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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