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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회견·촛불… 보혁 맞짱 집회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지 이틀째를 맞은 13일 보수·진보단체들의 관련 집회가 잇따랐다. 보수 단체들은 정부 발표에 ‘적극 환영’ 의사를 밝혔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등 6개 보수단체 회원 250여명은 13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반국가, 친북, 자학사관으로 점철돼 있어 ‘다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라며 “휴전 중이라는 특수성까지 고려하면 더이상 현행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교육 현장에서부터 대한민국의 훌륭한 역사를 일깨우고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첫걸음이 바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라고 역설했다. 앞서 오후 1시쯤에는 자유청년연합, 자유통일연대 회원 1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좌편향 역사 교과서는 계급투쟁론에 근거한 민중 사관을 우리 아이들에게 교묘하게 주입시키고 있다”며 “검인정 교과서의 사실 오류 및 형평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만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야말로 사회통합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진보 단체들도 집회와 성명 등을 통해 국정교과서 반대 의지를 피력했다. 이날 오후 7시쯤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400여 진보 성향 단체의 연대기구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참여 단체 중 하나인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정치적 편향성과 학문적 전문성이 의심되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의 단체도 성명을 냈다. 참여연대는 이날 낸 성명서를 통해 “국정교과서 강행은 역사에 대한 해석을 국가가 독점하고 국민들의 역사관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최근 몇 년 동안 역사 교과서 문제로 혼란이 야기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교육부가 검정체제 운영을 소홀히 한 데에 원인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해야지 국정체제 회귀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터키, 총선 강행 예고… 들끓는 쿠르드족

    터키, 총선 강행 예고… 들끓는 쿠르드족

    최소 128명이 희생된 터키 앙카라의 폭탄 테러가 오는 11월 1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을 앞두고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사흘간 애도 기간을 선포한 터키 정부는 “이번 테러로 총선을 연기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아 총선 연기를 촉구하는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과 갈등을 빚고 있다. HDP 지지자들은 앙카라 테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현지시간) 앙카라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 행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와 장례식 참석자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테러의 배후로 지목했다. 정부는 이번 테러가 쿠르드족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이라며 배후설을 즉각 부인했다. 일각에선 테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정부가 일부러 이를 방조해 학살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셀라하틴 데미르타쉬 HDP 공동대표는 “땅바닥에 누운 친구들의 시신을 놓고 어떻게 총선을 준비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6월 총선에선 HDP가 13.1%의 득표율로 돌풍을 일으키며 80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약 41%를 득표했으나 전체 550석 중 과반(276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는 조기 총선 선언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8월 대선에서 승리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대통령제 전환을 위한 헌법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 터키와 쿠르드족을 둘러싼 정세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10일 테러 발생 수 시간 뒤 쿠르드족 급진 반군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은 ‘공정한 총선’을 요구하며 휴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터키 공군은 이튿날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 접경지대의 PKK 거점을 겨냥한 공습을 재개했다. 테러의 희생물이 된 HDP의 앙카라 집회도 애초 터키 공군의 PKK 폭격 중단과 휴전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쿠르드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자리한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북부 유전지대, 터키 동남부, 이란 서부와 아르메니아 남부를 포괄하는 5개 국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무려 3500만명에 육박한다. 이슬람교 수니파에 속하는 쿠르드족은 고유 언어와 문자를 가졌으나 1차 대전 직후 연합국과 터키가 자치 약속을 저버리고 소수민족으로 전락시켰다. 현재 터키에 1800만명, 이란에 800만명, 이라크에 700만명, 시리아에 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현재 이라크와 이란, 시리아에선 자치령을 형성하고 있으나 터키에선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 2000년대까지 쿠르드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1978년 무장 테러단체인 PKK가 등장했고,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며 첨예한 갈등을 빚어 왔다. PKK는 시리아의 쿠르드 인민방위군(YGP)과 함께 가장 강력한 IS 견제 세력이기도 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北 모욕 말라” 中 관영언론의 이례적 사설

    중국 관영 언론이 이례적으로 북한을 조롱하는 자국민들을 향해 “북한을 모욕하지 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을 계기로 형성된 ‘북·중 관계 정상화’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중국의 외교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환구시보는 12일 사설에서 “북한을 가장 적대시하는 한국 미국 일본에서나 있을 법한 대북 비난이 중국 인터넷에도 등장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조롱한다고 자신의 존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이런 태도가 중국인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이후 중국 인터넷에선 “북한군의 가장 큰 임무는 열병식이고 두 번째가 휴전선 경계근무다. 그다음은 해상에서 중국 어민을 상대로 강도질하고 접경지역에서 중국 농민을 살해하는 것이다” 등의 조롱이 이어졌다. 이 매체는 특히 “중국과 북한 사이에 핵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있지만, 이것이 북한을 모욕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동북아가 여전히 냉전을 탈피하지 못한 데 있고 계속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북한이 얼마나 초조해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핵 보유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것은 실정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괴물’로 바라보고 모든 것을 (북한이) 자초한 일로 보는 것은 단견이며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환구시보는 또 “외부 세계는 북한이 안심하고 국가 전략을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쿠르드계 지지자 집결지서 ‘쾅’… 터키 정부 “PKK·IS가 배후”

    쿠르드계 지지자 집결지서 ‘쾅’… 터키 정부 “PKK·IS가 배후”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10일(현지시간)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95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쿠르드계 야당인 인민민주당(HDP)은 폭탄 테러로 128명이 숨졌고 이 중 120명의 신원은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터키 사상 최악의 테러로 누가 왜 저질렀는지 관심이 집중된다.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와 현지 언론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터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반군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다음달 조기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번 테러로 터키에서 민족 갈등과 정국 혼란이 우려된다. ●야당 “128명 숨져”… 부상자 48명도 위중 10일 오전 10시쯤 앙카라 기차역 광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거의 동시에 두 차례 발생했다. 부상자 48명은 위중한 상태라 사망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폭발 당시 기차역 광장은 낮 12시로 예정된 시위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터키 노동조합연맹 등 반정부 단체들이 주최하는 이날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정부에 PKK와의 유혈 충돌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예정이었다. 테러 발생 직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앙카라 기차역에서 발생한 테러는 우리의 단결, 형제애, 미래를 공격 목표로 한 것”이라며 연대와 투지를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총리는 “이번 공격이 자살 폭탄 테러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면서 유력한 테러 용의자로 IS, PKK, 그리고 극좌 테러조직 혁명민족해방전선(DHKP-C)을 지목했다. 반면 셀라하틴 데미르타쉬 HDP 공동대표는 폭발이 HDP 지지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발생했다며 테러 목표는 HDP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력한 정보망을 가진 정부가 이번 공격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테러 직후 정부의 태도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이 부상자를 치료하러 오는 구급차를 막았다고 강하게 항의하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터키 정부가 폭발 상황이 담긴 사진에 대해 보도 통제를 하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차단하자 이날 밤 이스탄불에 수천명이 모여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근 터키는 IS와 쿠르드족을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내 테러 위협이 고조됐었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주장하며 30년간 투쟁해 온 PKK는 2013년 정부와 휴전 협정을 맺었지만 지난여름 PKK 대원이 정부군을 공격하고 정부가 이라크 북부에 있는 PKK 진지를 공습하면서 협정은 파기됐다. 10일 테러 발생 직전에 PKK는 다음달 조기 총선 전까지 휴전하자고 정부에 제의했지만 이번 테러로 양측의 충돌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워싱턴근동연구소의 소네르 차아프타이 터키담당 연구원은 “이번 테러는 PKK가 터키 정부와 계속 투쟁하도록 유도하려는 PKK 내 강경하고 극단적인 분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르드족과의 긴장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쿠르드족과 충돌을 유발해 터키 국민의 반(反)쿠르드족 정서를 강화함으로써 오는 11월 총선에서 쿠르드계 야당인 HDP의 지지도를 잠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약진하며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의 과반 확보를 저지한 HDP는 오는 11월 총선에서도 저번 총선과 비슷한 수준의 지지를 얻을 전망이다. 이번 테러가 쿠르드계 정당인 HDP가 참가한 시위 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IS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는 시리아 북부에서 IS에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의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외교부, 터키 전역에 ‘여행유의’ 경고 발령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11월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해 강력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외교부는 이와 관련해 11일 “터키 전 지역에 여행경보상 1단계인 남색경보를 오늘부로 발령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남색경보는 여행경보 중 가장 약한 단계로 ‘여행유의’에 해당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전경련-경단련, 체육교류회,”한일 경제인 힘겨뤘다”

    전경련-경단련, 체육교류회,”한일 경제인 힘겨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 경제단체인 경단련과 ‘전경련-경단련 체육교류대회’를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대회는 경단련의 쿠보타 미사카즈 사무총장을 비롯한 일본 경단련 임직원 30여명이 10~11일 방한해 이뤄졌다..  전경련-경단련 체육교류회는 지난 1989년 서울에서 1회 대회 이후 도쿄와 서울에서 번갈아 열리고 있다.  경단련 일행은 방한 첫 날인 지난 10일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둘러본 뒤, 이날 오전에 용산 등지에서 풋살과 볼링 등 체육대회를 진행 하고 코리아그랜드세일 기간에 맞춰 쇼핑을 한 후 출국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2020년 동경 하계올림픽이 연이어 개최되는 만큼,오늘 경단련과 전경련 간의 스포츠 교류회가 양국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쿠보타 경단련 사무총장은 “미국과 유럽 등에도 여러 경제단체들이 있지만,이렇게 양 기관의 임직원들 모두가 강한 신뢰로 연결되어 있는 곳은 전경련뿐”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내일 제569돌 한글날…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 “교과서 한자 병기, 아버지 보셨으면 펄쩍 뛸 일”

    [내일 제569돌 한글날…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 “교과서 한자 병기, 아버지 보셨으면 펄쩍 뛸 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것은 아버지가 보셨으면 펄쩍 뛸 일이에요. 교과서 한자 병기는 시대를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569돌 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아버지를 꼭 닮은 노년의 아들은 생전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광화문의 터줏대감인 안과 병원 ‘공안과’를 운영하는 공영태(67) 원장은 고 공병우(1906~1995) 선생의 아들이다. 공 선생은 세벌식 한글 타자기와 컴퓨터 자판을 개발해 ‘한글 타자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올해는 공 선생의 20주기다. 공 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가 아버지의 노력과 자판의 우수성을 인정해 세벌식이 ‘제2의 자판 표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성과 중성, 종성을 나눠 배치한 세벌식 자판은 지금 흔히 쓰이는 두벌식과는 다른 형태다. 전두환 정권에서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채택된 이래 세벌식은 밀려났지만 초·중·종성을 결합한 한글의 창제 원리에 맞고 익숙해지면 두벌식보다 더 빠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8년 광화문에 공안과를 개원한 공 선생은 한글학자 이극로(1893∼1978) 선생을 만나 한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공 선생은 일본 말로 된 시력검사표를 한글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1949년에는 ‘공병우 타자기’를 개발했다. 공 원장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문도 ‘공병우 타자기’로 작성됐다”며 “아버지가 워드프로세서 개발에도 이바지해 지금까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한글’과 ‘MS워드’에 공병우식 세벌식 자판이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아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공 원장은 컴퓨터 자판을 세벌식으로 바꾸는 방법을 담은 마우스패드를 만드는 등 세벌식 자판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설] 與 공천특별기구 계파 갈등 넘어서야

    내년 4·13 총선에 나설 후보자 공천 방식을 정하는 특별기구 구성을 논의하면서 집권 여당 내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안심전화 국민공천제’를 둘러싸고 빚어진 여권의 내분은 일단 임시 휴전 상태가 됐지만 공천 특별기구 출범을 앞두고 다시 친박(친박근혜) 세력과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박 간에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당장 오늘 열리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공천 특별기구 구성 안건이 핵심 의제다. 특별기구의 위원장 및 위원 선임을 놓고 벌써부터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이 어떤 계파에 유리하냐에 따라 자신들의 사활이 걸려 있는 만큼 당내 갈등이 내홍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크다. 벌써부터 비박계는 기존의 ‘국민공천제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하되 양 진영이 원하는 인물을 일부 교체, 보강하자는 입장이지만 친박계는 전면적으로 새로운 인물 위주로 TF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비박과 이를 반전시키려는 친박 사이에 계파 간 이해관계가 확연하게 갈려 있다. 특별기구가 논의할 우선적 쟁점 역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 문제인 점을 감안하면 ´산 넘어 산´의 형국이다. 명칭 역시 ‘국민공천 실현을 위한 특별위원회’로 가닥이 잡혔지만 일정 비율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친박계의 입장이다. 비박계 역시 전략공천이 밀실 공천을 낳았던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명분을 고수하고 있어 접점찾기가 어렵다. 공천권 문제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각 계파의 정치적 진로가 걸려있는 문제인 만큼 여야 모두의 최대 관심사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아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다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고 어려운 민생을 챙기라는 지상명령이나 다름없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룰을 정하겠다고 막무가내식으로 싸움을 벌이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다. 지금 집권 세력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주체로서 노동개혁 등 4대 개혁과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집권세력이 공천권 다툼에 매몰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목전의 계파 이익 때문에 당내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면 결국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 공멸의 길에서 벗어나 계파를 뛰어넘어 공천권 문제를 매듭짓는 지혜가 절실하다. 국민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국정개혁과 침체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여당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 1953년 경찰 3명 중 2명이 20대… 박격포·야포 등 중화기 696대 보유

    1953년 경찰 3명 중 2명이 20대… 박격포·야포 등 중화기 696대 보유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 1953년 우리나라 경찰은 3명 중 2명이 20대일 정도로 젊은 조직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경찰은 소총을 사용했고, 야포 등 중화기도 보유하고 있었다. 경찰청은 오는 21일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아 경찰통계연보 창간호의 일부 내용을 4일 공개했다. 통계연보 창간호는 경찰의 첫 공식 통계자료로,1954년 6월 20일 발간됐다. 창간호는 1953년 기준으로 조직과 인원, 장비 등 현황을 담고 있다. 1953년 경찰 총원은 5만 731명으로 현재의 절반 수준이었다. 20대(21∼30세)가 3만 2858명으로 전체의 64.8%를 차지, 7.4%(2013년 기준)인 요즘과 대조를 보였다. 30대(31∼40세)는 1만 6629명으로 32.8%, 40대(41∼50세)는 24%였다. 50대 이상은 0.1%에 불과했다. 2013년 기준으로는 30대 28.5%, 40대 41.6%, 50대 이상 22.5%다. 당시 경찰이 젊은 조직이었던 것은 강제 구조조정 때문이다. 1949년 말 2만 8000여명이었던 경찰 정원이 전쟁 중인 1952년 6만 3000여명으로 늘었다. 휴전 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자 정부는 국가·지방 공무원을 감원했다. 경사·순경은 만 40세, 경감·경위는 45세, 총경 이상은 50세를 기준으로 이보다 나이가 많으면 퇴출시켰다. 이때 40~50대 1만 3256명이 퇴직했다. 1953년 경찰이 보유한 총기는 10만 7338정이었다. M1카빈 등 미식 소총이 8만 9663정으로 가장 많았다. 기관총, 기관단총, 박격포, 야포 등 중화기도 696대 보유하고 있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65년째 ‘고향없는 추석’…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65년째 ‘고향없는 추석’…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명절은 늘 반가움보다 그리움이 먼저다. 북한 원산 출신인 원로 소설가 이호철(83)씨도 지난 65년간 고향 없는 추석 명절을 지내왔다. 10월 20~26일로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이씨가 가족과 고향을 향한 애끓는 심경을 글로 썼다. 예술원 회원인 이씨는 2000년 8월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나는 1950년 12월, 북한의 원산에서 18세 어린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나 혼자 부산에 닿았다. 그렇게 부두 노동, 제면소 직공, 미군기관 경비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1955년부터 작단에 데뷔, 소설가로 60년을 살아오면서 83세가 되기까지 그동안 어느 한순간도 고향 쪽을 잊은 일은 없었다. 하여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누이동생 생일이 동짓달 초아흐레이고 남동생 생일이 3월 초엿새임을 말하자, 50년 만에 만났던 누이동생도 엄청 놀라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50년 넘어 줄곧 고향 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8세에 홀로 北가족 떠나 부산서 생활 특히 추석날이면 더 싱숭생숭하여 하숙방에 혼자 벌렁 누워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들과 남동생, 여동생을 한 분 한 분 차곡차곡 그리며 혼자 눈물 섞어 망향에 잠기곤 했었다. 그렇게 더러는 이미 10년 전에 고인이 된 후배 소설가 한남철이 일부러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와, 같이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었다. 적선동, 사직동, 청운동 하숙 시절에 그랬었다. 하지만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묘해지기도 하였다. 실은 내가 북에서 어렸을 때는 추석보다는, 봄날 한식날을 더 귀히 여겨 그네 놀이나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었는데, 이 남쪽에서는 한식보다는 추석날을 더 명일로 치지를 않는가. 하지만 실제로 나 같은 사람으로서 망향에 잠기기에는 양명한 봄날인 한식날보다, 낙엽도 우수수 떨어지는 추석 때가 한결 더 어울려 보이기는 하였었다. 더구나 내 고향 원산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으뜸으로 꼽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주, 세 번째는 평안도 박천…. 이것이 언제부터 내려오는 속설인지는 모르지만, 이 밖에도 주택가로 가장 좋은 곳으로는 강원도 강릉과 황해도 해주,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을 친다고 한다. 실제로 원산은 동해 바다를 끼고 있고, 바로 남쪽으로는 안변 평야가 자리해 있어 질 좋은 쌀과 사과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가까이 약수터가 있는 석왕사와 금강산, 총석정 등 주위에 명승지가 많고, 태백산맥의 시작인 황룡산도 둥그렇게 솟아 있고, 명사십리와 송도원 해수욕장도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살기 좋고 질 좋은 쌀·사과로 유명한 내고향 원산에서 동해안 남쪽으로 고성까지가 300리, 다시 그 고성에서 강릉까지가 300리, 그 600리 해안이 기가 막힌 명승지였음은 옛날부터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그 고성도 남북 분단의 휴전선 안으로 들어 있어 황량한 풀밭으로 변해져 있을 뿐이지만.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두만강 끝머리까지의 동해안도 절경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해산물들은 일단 원산으로 모아져서 서울과 평양으로 기차 편으로 운송이 되어, 품팔이 일꾼들도 원산의 인심이 후하다며 원산을 유독 좋아들 하였었다. 그 무렵에는 주문진이나 강릉, 삼척 등의 해산물도 원산과 양양까지 통하던 동해선 기차를 통해 일단은 원산에 모였었다. ●1949년 가봤던 연천… 지금도 그대로 1949년 초여름이던가, 나는 북에서 고 2 때 38선 근처 연천의 한탄강 유역 농촌을 열흘 정도 돌면서 벌인 행사에 동원되어 시 낭독도 하고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어느 날 저녁은 밤중에 전곡의 한탄강 경계선까지 콩밭 속을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강 건너 남쪽의 국방군이 쏘아대는 ‘딱 궁’ 하는 총소리도 들어 보고, 이튿날 낮에는 전곡 읍내의 인민군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삼엄한 분위기도 엿보았었다. 이번에 그 근처를 모처럼 돌아보았더니 그 근처 농촌 모습은 그 옛날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고, 연천 읍내의 사진관 앞에서 동료 학생 하나와 사진을 찍었던 자리 근처도 그대로였음을 확인했지만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동료 학생은 그 뒤 월남하지 못했음을 아쉬움 섞어 쓰디쓰게 되씹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거리는 220㎞, 우리네 이수(里數)로는 550리이다. 그러니까 서울서 전주까지의 거리, 서울서 영동까지의 거리다. 바로 요만한 거리임에도 지난 65년 동안 한 번 가 볼 엄두나마 내기는커녕, 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으니 사람살이 한평생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65년째 ‘고향없는 추석’… 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65년째 ‘고향없는 추석’… 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명절은 늘 반가움보다 그리움이 먼저다. 북한 원산 출신인 원로 소설가 이호철(83)씨도 지난 65년간 고향 없는 추석 명절을 지내왔다. 10월 20~26일로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이씨가 가족과 고향을 향한 애끓는 심경을 글로 썼다. 예술원 회원인 이씨는 2000년 8월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나는 1950년 12월, 북한의 원산에서 18세 어린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나 혼자 부산에 닿았다. 그렇게 부두 노동, 제면소 직공, 미군기관 경비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1955년부터 작단에 데뷔, 소설가로 60년을 살아오면서 83세가 되기까지 그동안 어느 한순간도 고향 쪽을 잊은 일은 없었다. 하여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누이동생 생일이 동짓달 초아흐레이고 남동생 생일이 3월 초엿새임을 말하자, 50년 만에 만났던 누이동생도 엄청 놀라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50년 넘어 줄곧 고향 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8세에 홀로 北가족 떠나 부산서 생활 특히 추석날이면 더 싱숭생숭하여 하숙방에 혼자 벌렁 누워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들과 남동생, 여동생을 한 분 한 분 차곡차곡 그리며 혼자 눈물 섞어 망향에 잠기곤 했었다. 그렇게 더러는 이미 10년 전에 고인이 된 후배 소설가 한남철이 일부러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와, 같이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었다. 적선동, 사직동, 청운동 하숙 시절에 그랬었다. 하지만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묘해지기도 하였다. 실은 내가 북에서 어렸을 때는 추석보다는, 봄날 한식날을 더 귀히 여겨 그네 놀이나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었는데, 이 남쪽에서는 한식보다는 추석날을 더 명일로 치지를 않는가. 하지만 실제로 나 같은 사람으로서 망향에 잠기기에는 양명한 봄날인 한식날보다, 낙엽도 우수수 떨어지는 추석 때가 한결 더 어울려 보이기는 하였었다. 더구나 내 고향 원산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으뜸으로 꼽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주, 세 번째는 평안도 박천…. 이것이 언제부터 내려오는 속설인지는 모르지만, 이 밖에도 주택가로 가장 좋은 곳으로는 강원도 강릉과 황해도 해주,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을 친다고 한다. 실제로 원산은 동해 바다를 끼고 있고, 바로 남쪽으로는 안변 평야가 자리해 있어 질 좋은 쌀과 사과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가까이 약수터가 있는 석왕사와 금강산, 총석정 등 주위에 명승지가 많고, 태백산맥의 시작인 황룡산도 둥그렇게 솟아 있고, 명사십리와 송도원 해수욕장도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살기 좋고 질 좋은 쌀·사과로 유명한 내고향 원산에서 동해안 남쪽으로 고성까지가 300리, 다시 그 고성에서 강릉까지가 300리, 그 600리 해안이 기가 막힌 명승지였음은 옛날부터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그 고성도 남북 분단의 휴전선 안으로 들어 있어 황량한 풀밭으로 변해져 있을 뿐이지만.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두만강 끝머리까지의 동해안도 절경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해산물들은 일단 원산으로 모아져서 서울과 평양으로 기차 편으로 운송이 되어, 품팔이 일꾼들도 원산의 인심이 후하다며 원산을 유독 좋아들 하였었다. 그 무렵에는 주문진이나 강릉, 삼척 등의 해산물도 원산과 양양까지 통하던 동해선 기차를 통해 일단은 원산에 모였었다. ●1949년 가봤던 연천… 지금도 그대로 1949년 초여름이던가, 나는 북에서 고 2 때 38선 근처 연천의 한탄강 유역 농촌을 열흘 정도 돌면서 벌인 행사에 동원되어 시 낭독도 하고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어느 날 저녁은 밤중에 전곡의 한탄강 경계선까지 콩밭 속을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강 건너 남쪽의 국방군이 쏘아대는 ‘딱 궁’ 하는 총소리도 들어 보고, 이튿날 낮에는 전곡 읍내의 인민군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삼엄한 분위기도 엿보았었다. 이번에 그 근처를 모처럼 돌아보았더니 그 근처 농촌 모습은 그 옛날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고, 연천 읍내의 사진관 앞에서 동료 학생 하나와 사진을 찍었던 자리 근처도 그대로였음을 확인했지만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동료 학생은 그 뒤 월남하지 못했음을 아쉬움 섞어 쓰디쓰게 되씹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거리는 220㎞, 우리네 이수(里數)로는 550리이다. 그러니까 서울서 전주까지의 거리, 서울서 영동까지의 거리다. 바로 요만한 거리임에도 지난 65년 동안 한 번 가 볼 엄두나마 내기는커녕, 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으니 사람살이 한평생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박 대통령, “통일위해 주요국가와 협력 더욱 강화할 것”

    박 대통령, “통일위해 주요국가와 협력 더욱 강화할 것”

    박근혜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통일을 이루려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 대표 및 주요 인사들과 만찬간담회에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잔재인 한반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평화통일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북핵, 인권문제, 도발과 같은 북한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국 한반도 통일”이라며 “통일 한국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역내 협력의 통로를 열게 됨으로써 동북아와 국제사회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해 평화롭고 번영한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저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앞으로 아태지역 협력과 번영을 위한 핵심 축인 한미동맹의 역할을 높여나갈 것”이라면서 “한미동맹의 외형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서 사이버 우주를 비롯한 새로운 분야에서의 협력을 제도화하고, 범세계적 문제에 공동대응하는 글로벌 파트너로서의 역할도 더욱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도발과 보상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원칙과 신뢰를 토대로 하는 지속가능한 관계로 바꿔나가려 하고 있다”며 “지난 8월 북한의 지뢰도발과 폭격으로 긴장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대응했고, 결국 북한의 유감표명과 8·25 합의를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을 하면서, 그러나 또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대화의 문은 한편으로 열어놓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토마스 허바드 이사장, ‘아시아 소사이어티’ 케빈 러드 정책연구소장(전 호주 총리), 조셋 쉬란 회장, ‘미국외교협회’ 로버트 루빈 이사장, ‘미국 외교정책협의회’ 로즈마리 디카를로 회장, ‘미국외교정책협회’ 노엘 라티프 회장, 리 볼린저 컬럼비아대학교 총장, 윈스턴 로드 전 주중 미국대사 등이 참석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북핵과 한반도 평화통일 등 한반도 문제, 동북아 평화안정에 대한 한국의 역할, 미국과 중국 간 관계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뉴욕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문경을 돌아보는 이유/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문경을 돌아보는 이유/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에이, 또 뭘?’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기자도 처음엔 그랬다. 서울에서 184㎞ 떨어진 경북 문경에서 세계군인들이 체육대회를 연다는데 그런가 보다 했다. 문경 인구는 8만이 채 안 된다. 그런 외진 곳에서 120여개국 7500여명이 참여하는 국제종합대회를 연다는 게 거짓부렁처럼 들리기도 했다. 더욱이 그 대회란 게 역설로 가득한 촌극 같기도 했다.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군인들이 사격 대표들을 빼고는 총을 내려놓고 운동장을 뛰고 구른다. 19개 일반 종목 외에 전투기술을 스포츠로 변형한 군사 종목이 다섯 가지나 열린다.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도 대회 조직위원회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북한이 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그 아이러니는 극에 이를 것이다. 상상해보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250㎞의 휴전선 따라 대치하는 군인들이 한군데 모여 뛰고 구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어떻겠는지. 사격에 출전하는 북녘 군인들이 남쪽을 향해 겨눠야 할 총기를 들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면 그 자체로도 상징하는 바가 작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처럼 군인들이 모여 평화를 갈망하는 대회를 연다는 국제군인스포츠위원회(CISM)의 창립 취지에 이처럼 부합하는 이벤트가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들이 묵는 숙소를 남쪽 군인들이 빙 둘러 경호하고 차량에 태워 이동시키는 것도 색다른 장면일 것이다. 폐막일 여자마라톤에서 북한이 우승한다면 그 자체로 대회 성공을 함축하게 될 것이다. 다음달 2일 문경 오정산 자락에 자리잡은 국군체육부대 안 메인스타디움에는 120여개국 군인들이 저마다의 제복을 차려입고 입장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여기에 모든 참가 선수들이 조직위가 만든 솔저댄스를 함께 추는 보기 드문 모습도 볼 수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일찍 귀국하지만 이 대회는 군인들이 참여하는 대회인 만큼 폐막 때까지 붙들려 있게 된다. 경기장 신축을 자제하는 차원에서 김천, 안동, 영주, 영천, 상주, 예천, 포항 등 8개 시군에서 개최하는데 대회 조직위와 문경시 지원본부는 해외 무관 경력자 등을 참가국별로 100~300명씩 서포터즈단으로 묶어 선수단이 본국을 출발하기 전부터 인터넷이나 메일로 친분을 쌓고 대회 기간 응원하도록 조직했다. 각국 선수단이 지역 관광, 특산품 쇼핑, 향토 음식 등을 맛보게 할 계획이다. 지난 17~18일 미디어 팸투어를 다녀왔는데 거의 모든 경기시설과 훈련시설이 망라된 국군체육부대의 위용에 놀랐고, 그렇게 많은 군(軍) 인력이 차출돼 열심히 대회 준비에 매달리는 모습에 또 놀랐다. 1653억원밖에 안 되는 예산으로 군과 지방자치단체가 규모 있는 대회를 치러내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것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국민들이 여전히 대회 개최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남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 보러 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새재 너머로 경사로운 소식이 맨 처음 들려온다는 뜻에서 문경(聞慶)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한반도 전역으로 뻗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면 너무 낭만적일까? bsnim@seoul.co.kr
  • [이경형 칼럼] 캠프 그리브스의 ‘선무’

    [이경형 칼럼] 캠프 그리브스의 ‘선무’

    캠프 그리브스의 실내 체육관은 숙연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9월 17~24일)의 개막식은 DMZ 남방 민간통제선 안에 있는 미군 철수 기지에서 열렸다. 지난 17일 저녁 개봉된 개막작은 ‘나는 선무다’였다. ‘선무’(線無)는 얼굴 모습 없이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주인공 탈북 화가의 예명으로 ‘경계선이 없다’는 뜻이다. 선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남북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그리는 등 팝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에서 미술을 전공한 선무는 인민군 복무 중 북한 체제 선전물을 주로 그렸다. 1998년 북한을 탈출한 그는 중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와서 다시 그림을 배웠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나, 개관 당일 북측의 항의를 받은 중국 공안에 의해 봉쇄됐다. 이번 개막작은 바로 베이징 전시회를 열기까지 4주간에 걸쳐 그가 부딪쳤던 현실을 미국 영화감독 애덤 쇼버그가 담아낸 것이다. 남북 이념 대결의 엄혹한 현실을 절감한 그는 북한 세습체제의 풍자화를 그릴 때는 지금도 누군가 등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환상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남한에 살고 있는 2만 8000여명의 새터민들도 북에 두고 온 혈육으로 인해 선무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의 최전방 부대였던 미 2사단 9연대 2대대는 임진강 북안 언덕 위의 캠프 그리브스에 주둔했다. 휴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부터 2004년 8월 이라크의 미군강습사단으로 흡수, 이동되기 전까지 51년간 주둔했다. 북한이 남침할 경우 미군이 자동 개입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부대였다. 1976년 북한의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캠프 그리브스는 미군 피살자 후송 및 후속 작전 수행의 전방 기지로 임무를 수행했다. 2년 뒤인 1978년 8월 당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철수 방침을 밝혔을 때, 가장 먼저 철수할 부대로 철책선에 인접한 이곳의 대대병력 800여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광복·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개막작이 던지는 탈북 화가의 고뇌에 찬 메시지는 700여 관객을 뛰어넘어 DMZ를 끼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다큐멘터리 ‘선무’가 주는 감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주둔했던 미군 철수 기지라는 상영 장소와 맞물려 여운이 길었다. 영내 농구시합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미군 병사들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 낡은 체육관은 결코 전쟁의 상흔을 반추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DMZ와 함께 일상을 살고 있는 대성동, 통일촌, 해마루촌 사람들의 평화와 남북 소통을 간구하는 염원이 장내를 메웠다. 남북 간에 새로운 희망의 신호를 기다리는 ‘DMZ 사람들’에게는 DMZ가 더이상 남과 북을 갈라 놓는 경계선이 아니다. DMZ의 생태는 이미 남북의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치군사적 분단은 어느덧 70년을 넘어가고 있지만, 숲의 생태는 이미 통일을 이룬 탓이다. 다음달 하순에는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예정돼 있다.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도 코앞에 다가왔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이산상봉 이전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남북 관계를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뤄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통일로 가려면 먼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캠프 그리브스는 주한미군이 2007년 이후 한국 측에 반환한 40여개의 기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미군 철수 기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DMZ 평화공원’의 후방 지원시설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기지의 절반은 이미 국군 보병사단 예하 대대가 사용하고 있지만, 절반만이라도 원형을 잘 보존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한국 현대사의 안보문화유산으로 가꿔 가야 한다. 주필
  • 안철수 vs 비주류 vs 신당… 불안한 文

    안철수 vs 비주류 vs 신당… 불안한 文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21일 재신임 투표 철회가 곧바로 대표 리더십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안철수 ▲당내 비주류 ▲천정배 신당 등 문 대표 체제를 흔들 안팎의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새정치연합의 재신임 정국을 관통했던 중요한 키워드는 ‘안철수’다. 두 전·현직 당 대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서로 협력하며 경쟁하기보다는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관계임이 드러났다. 김상곤 혁신위의 실패를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안철수 의원은 앞으로도 문 대표와 차별화를 통해 당내 주도권 싸움을 더욱 확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 온정주의 논란을 두고도 양측은 이날 평행선을 달렸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유죄판결에 대한 당 안팎의 불복 움직임을 비판한 전날 안 의원의 발언과 관련, 문 대표는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섣불리 온정주의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대표 측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며 “(당 부패척결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냈으니 그것을 받아서 당에서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조만간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등 당내 부패척결을 위한 입법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 측은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 철회를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문병호 의원은 “전날 연석회의는 일종의 간이 재신임 절차”라며 표면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르면 12월 9일 정기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당이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날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결의문 가운데 “정기국회에 전념할 것을 약속한다”는 문구의 해석을 놓고 당내 일각에서는 비주류가 일보 후퇴하는 시점이 정기국회까지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무엇보다 ‘문재인발(發)’ 재신임 정국 때문에 야당이 국정감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종걸 원내대표의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당내 갈등요소 때문에 상대적으로 1월 창당을 선언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신당 선언은 출발부터 다소 힘을 잃은 모습이다. 현재 문 대표 체제가 정상화되고 있지만, 향후 새정치연합의 인적쇄신과 공천 작업에 따라 당이 다시 흔들리는 시점과 맞물려 ‘천정배 신당’이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전쟁 없는 세상’ 얼마나 좋을까요

    ‘전쟁 없는 세상’ 얼마나 좋을까요

    올 추석 한국 영화 기대작 중 한 편인 ‘서부전선’이 베일을 벗었다. 추석에는 국내 영화계 4대 메이저 배급사 중 세 곳에서 신작을 내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암살’과 ‘베테랑’으로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쇼박스와 CJ E&M이 각각 ‘사도’와 ‘탐정’을 내놓은 가운데 ‘서부전선’은 상반기 부진을 만회하려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의 단골 소재인 남북 분단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대립과 긴장 완화를 반복하는 남북 관계는 늘 마음이 무거워지는 숙제와도 같다. 때문에 영화적 소재로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제작 보고회 직전 서부전선을 둘러싸고 확성기 설치, 포격 등으로 남북의 긴장 관계는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부전선’은 냉랭한 남북 관계를 따뜻한 휴먼 코미디로 녹인 영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남북 간 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직전의 마지막 3일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천성일 감독은 이 시점을 택한 이유에 대해 “휴전 협정이 계속 진행되고 심지어 발효가 된 뒤에도 서부전선에서는 사기 진작을 위해서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 장의 비밀 문서에서 시작된다. 농사를 짓다 전쟁터에 끌려온 남복(설경구)은 일급 기밀문서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전달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적의 습격으로 부대가 전멸한다. 이 문서는 교전 도중 탱크와 함께 홀로 남겨진 열여덟 살 어린 북한군 영광(여진구)의 손에 들어간다. 영화는 무사귀환을 꿈꾸는 두 사람이 비밀문서를 서로 손에 쥐기 위해 벌이는 소동이 주를 이룬다.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탱크 안은 전쟁터의 축소판이다. 이념의 충돌도 발생한다. “미제의 앞잡이를 벗어나 민족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영광의 외침에 남복은 “내가 니들한테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어? 사정을 했어? 애기 얼굴도 못 보고 이게 무슨 XX이여!”라며 쏘아붙인다. 난투극 끝에 누가 총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탱크의 방향은 남과 북으로 엇갈리기를 반복한다. 긴장은 점차 고조되고 서로 총구를 겨누던 두 사람은 서로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비극적 결말? 아니다. 인류로서 존재의 소중함과 민족의 동질성은 이념의 강팍함과 전쟁의 냉엄함을 뛰어넘는다. 인류애적 위대함을 보여주는 장치는 곳곳에 깔려 있다. 남복이 우연히 북한 마을에 들어가 위협을 하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초상집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는 현실을 통해 전쟁통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다. 서로 반목하던 두 사람은 남복이 아내와 배속의 아이를 두고 온 사연을 털어놓고 영광이 형들이 모두 전쟁통에 죽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점차 가까워진다. 영화는 문서의 정체도 모르고 쫓기만 하던 남복이 “우리가 뭘 알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라는 대사를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비인도적인 문제를 고발한다. 1959년 발표된 선우휘의 소설 ‘단독강화’를 시작으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 ‘적과의 동침’ 등 수많은 영화와 문학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의 이념을 넘어선 우정과 민족애는 여러 차례 다뤄져 왔다. 물론 이 영화도 그런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마치 연극 무대 위 배우를 보는듯 두 주인공에게만 집중해 소소하고 일상적인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자칫 썰렁해 보일 수 있는 구성을 메운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설경구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푸근한 40대 아저씨로, 여진구는 어리바리하지만 혈기 왕성한 10대 소년병사 역을 맡아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냈다. 이들이 나이와 이념을 넘어 우정을 확인하는 순간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7급 공무원’,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각본을 썼던 천성일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다. 아기자기하게 날리는 잽펀치는 많지만 관객을 단번에 휘어잡는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6·25 전사자 유해, 64년만에 가족 품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를 촬영하던 도중 발굴한 6·25전쟁 참전 용사의 유해를 추석을 앞둔 23일 유족들에게 전달한다고 18일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1950년 입대해 1951년 전사한 정성준(당시 21세) 하사의 유해를 64년 만에 대구에 거주하는 동생 정문웅(68)씨와 여동생 정수조(72)씨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화배우 이규한(36)씨는 지난 5월 강원 화천군 내성동리 일대에서 호국보훈의 달 특집 ‘진짜사나이 유해발굴감식단편’ 촬영에 병사로 참가하던 도중 정 하사의 인식표를 발견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를 근거로 병적 자료 확인과 유전자 감식 작업을 거쳐 유해의 신원이 육군 6사단 7연대 소속이던 정 하사임을 확인했다. 정 하사는 1950년 9월 20일 제6사단 7연대로 입대해 용문산 전투 등에 참전했고, 휴전 회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던 1951년 8월 2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문웅씨는 “하늘에 계신 부친께서 당시 전사자 통지서를 받고 유품을 뒷산에 묻으셨다”면서 “추석을 앞두고 형님의 유해를 찾게 돼 분명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 지역도 일기예보를 해야 한다/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

    [열린세상] 북한 지역도 일기예보를 해야 한다/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

    어떤 정보가 반복적으로 제공되면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의미에서가 아닌 일종의 ‘세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남자는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를 입는다거나 짜장면은 단무지랑 먹는 게 좋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세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세뇌 심리학의 이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 중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언론이나 방송이 내보내는 ‘일기예보’도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지상파 텔레비전이나 언론사에서 내보내는 일기예보는 우리나라 전반이나 특정 도시의 날씨뿐 아니라 남북한의 지형 등에 대한 생각까지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기예보는 비단 날씨 정보에만 한정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한 국민 정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이나 지상파 텔레비전의 일기예보는 한반도 가운데서 북한 지역은 싹둑 잘라 내고 남한 지역만의 일기예보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극히 일부 언론사가 휴전선 이북의 개성, 금강산 등의 일기예보를 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북한 지역을 제외한 뉴욕,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파리, 런던 등 세계 주요 지역의 날씨까지도 예보한다. 심지어 기상청 홈페이지에서조차도 북한의 날씨 정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언론사의 경우는 일기예보를 대부분 민간 회사에 맡기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일기예보를 맡아서 제공하다 보니 이들은 일기예보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의식 같은 데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초 언론사가 지면을 늘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일기예보를 직접 챙기기보다는 외주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남한 지역만의 일기예보는 우리나라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의 일기예보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도 한다. 언론들이 일기예보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부는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을 700여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8월 남북한 고위급 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다음달 20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씩 두 차례 이뤄질 예정이다. 이산가족은 자나깨나 고향이나 부모형제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처럼 계절이 바뀌거나 비가 오거나 시나브로 눈이 오면, 또 지금처럼 명절을 앞두고 있으면 고향 날씨가 무척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나 언론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 주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는 예전에도 이점을 지상(2014년 7월 25일자 서울신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아쉽게도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여파는 작지 않다. 지상파 텔레비전이나 신문이 우리나라 전체가 아닌 남한 지역에 한정된 일기예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마음의 분단’을 고착시키고, 이것을 강화·세뇌시킬 수 있는 소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에 대한 간절함보다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흐려지게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것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는 우리나라 헌법 제3조의 규정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의 영토에 대해 일기예보 측면에서는 ‘영토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굳이 이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모습은 세계화 시대의 성숙한 방송이나 언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유수의 방송사나 언론은 국경을 초월해 세계 거의 모든 곳의 일기예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시대를 떠나 우리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 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더 큰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통일은 크고 작은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 지역의 일기예보도 인도주의를 떠나 통일의 작은 기초로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 [소비자의 선택] 사과

    [소비자의 선택] 사과

    사과는 과일의 대명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한가위 선물로 사과상자가 오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미풍양속이다. 4000년 전부터 재배해 온 것으로 알려진 사과가 우리나라에는 1901년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북위 30~50도 지대에서 자라는 한대성 식물이어서 일교차가 큰 고랭지에서 많이 재배된다. 각 지역마다 최고 명품 사과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각종 품평회 휩쓴 당도 높은 청송사과 경북은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이다. 재배면적과 생산량 모두 전국의 60%를 넘는다. 이 중에서도 ‘청송사과’는 전국 사과 가운데 최고의 브랜드를 자랑한다.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품평회에서 최고상을 휩쓸었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청송사과’는 당도가 높고 저장성이 좋으며 육질 또한 단단해 씹는 맛이 일품이다. 평균 당도가 16브릭스로 타지산보다 월등히 높다. 빛깔이 곱고 과즙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대신 산야초와 농업부산물 등 유기질 비료 등을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재배되는 것도 고품질 사과 생산에 한몫한다. 청송사과에는 ‘꿀맛 사과’ 또는 ‘명품 사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다른 지역산 사과보다 10~20% 더 높게 값이 형성되고 있다. 청송군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1994년 청송의 지명과 사과를 합성한 ‘청송사과’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했고 2007년에는 지리적표시제 등록까지 마쳤다. 또 매년 서울광장에서 청송사과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청송 꿀맛사과 전국산악마라톤대회도 열고 있다. 청송에서 생산되는 기능성 사과인 폴리페놀사과와 비타칼슘사과 등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러시아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추석사과의 대표 선수 장수사과 장수사과는 대한민국 대표 추석사과로 유명하다. 전국 추석사과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9월에 출하되는 품종인 ‘홍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도 장수사과다. 해발 400m가 넘는 고랭지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타 지역보다 빨리 시장에 출하된다. 장수사과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사과 재배기술을 배워 와 타 지역보다 5년 이상 앞선 재배기술을 자랑한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청정 고랭지의 지역 특색을 살려 당도 높고 과즙이 풍부하며 아삭거림이 뛰어난 고품질 사과를 생산한다. 가락동 농산물시장 등에서 ‘특별대접’을 받는다. 강서구 장수농업기술센터 과수연구팀장은 “장수사과는 출발은 타 지역보다 늦었지만 앞선 재배기술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시장에서 인정받은 상품”이라며 “특별히 배합한 유기질 비료와 타 지역보다 월등히 적은 병충해 소독으로 고품질 저공해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토밭서 생산하는 국가대표 예산사과 충남 ‘예산사과’는 전통적으로 유명하다. 국내 사과 재배 초기인 1920년대 초 고덕면에서 처음 재배됐다. 예산사과는 맛이 좋고 당도가 뛰어나며 향이 진하다. 수분이 많고 식감이 아삭아삭하다. 예산은 국내 최대 예당저수지가 있고 토질이 대부분 황토여서 질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데 적격이다.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사과들보다 색깔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흠이다. 대부분 추석 전에 출하하는 조생종 ‘홍로’와 나중에 따는 ‘부사’를 재배한다. 올해 1월부터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국가대표’ 사과가 됐다. 러시아에 수출도 한다. 2008년에는 예산농산물유통센터를 설립해 ‘애플리나’라는 브랜드로 출시하고 있다. 박주석 센터장은 “예산은 오랜 역사만큼 재배 노하우가 뛰어나 질 좋은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외국인이 더 좋아하고 수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달착지근한 뉴질랜드산 ‘엔비’와 속까지 빨간 스위스산 ‘레드러브’를 들여와 재배했고 올해 출하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출신인 탤런트 정준호 부부가 예산사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맛, 향, 빛깔 고루 갖춘 명품 충주사과 충북 충주사과는 명품사과로 불린다. 맛과 향, 빛깔 등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다. 과육이 단단해 저장성이 좋은 것도 장점이다. 충주사과의 품질이 뛰어난 것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은 충주 지역 날씨 때문이다. 농산물파워브랜드 대상, 자랑스러운 명품대상, 세계명품브랜드 대상 등 잇단 수상기록이 충주사과의 품질을 보증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2003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사과과학관을 건립했다. 1912년 재배를 시작한 충주사과의 정통성과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과와인, 사과국수, 사과막걸리, 사과순대 등 사과를 응용한 식품 80여점도 개발했다. 충주에는 1997년 조성된 5.8㎞의 사과나무 가로수도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사과는 지역 복지시설에 전달된다. ●신맛 없고 큰 밀양 얼음골 꿀사과 밀양 얼음골사과는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천황산·가지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 일대에서 생산된다. 다른 평지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보다 당도가 높고 산도는 낮아 달고 신맛이 없으며 크기가 크다. 일명 꿀사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후·지형·토양이 사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덕분이다. 성분 분석 결과 밀양 얼음골 사과의 당도는 14.06으로 전국 평균 13.39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밀양 얼음골사과가 생산되는 산내면 지역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로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 아래 15~30%의 경사가 진 구릉지여서 주·야간 일교차가 크다. 개화는 빠르고 수확은 늦게 할 수 있어 경쟁력 있는 고품질 사과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이다. 밀양 얼음골사과는 2006년 정부에서 인증하는 지리적 표시 등록 제24호로 등록된 데 이어 지리적 단체포장 등록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얼음골 일대의 자연환경 때문에 사과맛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기온차 커 꿀이 가득 밴 양구 펀치볼 사과 휴전선을 지척에 둔 최북단 강원 양구 해안면 ‘펀치볼 사과’는 꿀사과로 유명하다. 밤낮의 기온차가 12~13도에 이르다 보니 당도가 다른 지역 사과보다 월등히 높다. 펀치볼 사과는 서리를 맞추어 육질에 꿀을 바른 것 같은 ‘홍로’와 과일 세포마다 고르게 당도를 유지시키는 ‘부사’ 두 가지 품종이 주로 생산된다. 육질이 아삭하면서 단단해 저장성도 최고로 꼽힌다. 이듬해 4월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결실기인 가을철 강한 햇빛으로 색깔도 선명하다. 지난해에는 전국 과수 품질평가 사과 부문(홍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공식 명품사과로 인정받았다. 주변에는 공장지대 등이 없고 무공해, 유기농으로 재배된다. 위도가 높아 한겨울 모든 것이 얼어붙지만 작은 분지로 이뤄진 펀치볼 지역은 사과나무가 얼지 않고 생존이 가능해 5~6년 전부터 대량 사과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열린세상] 남북 음악인의 합동음악회를 꿈꾸며/이원철 코리아심포니 대표

    [열린세상] 남북 음악인의 합동음악회를 꿈꾸며/이원철 코리아심포니 대표

    제1차 세계대전 중 격전지의 한 장면이다. 치열한 전투를 끝낸 어느 날 밤 대치하던 양 진영에 휴식이 찾아든다. 지쳐 있던 양측 병사들이 긴장과 피로를 잠시 내려놓고 있던 그즈음 연합군 소속이던 스코틀랜드 종군 신부가 백파이프를 잡고 ‘아임 드리밍 오브 홈’(I’m dreaming of home)이라는 노래를 연주한다. 그 노래는 당연히 불과 100m 앞에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 병사들의 귀에 흘러들어 간다. 음악 소리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독일군 진영에서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 순간 저격수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의 한 장교가 참호 밖으로 몸을 드러내 ‘사일런트 나이트’(Silent Night)를 부르며 화답한다. 마치 경연과 같은 작은 음악회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서로 저격하기 위해 증오와 투쟁심에 젖어 있던 ‘적’과 ‘적’은 그날 밤 기적 같은 자기들만의 ‘휴전’의 시간을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의 뭉클한 장면이다. 얼마 전 DMZ 내에서 일어난 목함지뢰 사건으로 제2의 한국전쟁을 예감하는 불안이 온 사회에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영화를 떠올려 보았다. 음악이란 것이 어쩌면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평화의 염원 같은 것을 자극하는 뇌관 같은 것이 아닐까. 다행히 전쟁 일보 직전을 떠올리게 하던 남북의 전운은 긴 협상 끝에 공동합의문 발표를 통해 마무리됐다. 이산가족 재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재개와 당국자 간 대화 채널 재개통,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 교류의 활성화 등이 주 내용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었다. 힘겨룸은 늘 불안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만 남겨 준다. 그래서 음악을 다시 생각해 본다. 무기의 경합은 서로 상처를 주지만, 음악을 통한 경합은 늘 서로에게 이로움으로 작용하지 않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필자의 경험을 떠올려 본다. 필자는 몇 년 전 서울시향 재직 당시 남북합동음악회를 추진한 적이 있다. 서울시향과 북의 은하수교향악단은 가까운 시일 내 남과 북이 함께 연주하자는 데 동의했다. 그 일환으로 2012년 3월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북한의 은하수교향악단과 한국의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합동공연이 진행됐다. 당시 합동공연에서는 서울시향에 근무하는 여러 명의 해외 교포들이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측으로 함께 참여해 연주했다. 북의 교향악단은 우리의 교향악단과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악기 편성 및 연주, 운영체계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그들의 교향악단은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과 개량 악기인 21현 가야금을 비롯해 옥류금, 장새납과 같은 동서양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교향악단 형태였다. 공연의 제1부는 북한 지휘자의 은하수교향악단 연주였다. 북의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가 혼성된 배합곡과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등이 연주됐다. 제2부에서는 정명훈 지휘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과 앙코르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당시 파리 살 플레엘 극장에서는 프랑스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과 각국 대사, 언론인들이 관람했는데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감흥은 매우 컸다. 파리 공연이 끝난 지 벌써 3년여 세월이 흘렀다. 남북의 음악 교류는 북한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소원해졌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남북 합동음악회가 열릴 날을 꿈꾼다. 이번 여름의 아찔한 사건을 떠올리며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남북 합동음악회 개최가 절실하다. 다만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에서 육십 년 넘게 대립한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음악을 매개로 한 남북의 만남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체제 선전에 이용돼서는 안 되고, 통일을 가정해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순수 예술로 문화적·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남과 북의 문화예술인은 예술적 협동 작업을 통해 질적 교류의 폭을 더욱 넓혀야겠다. 이를 위해 통일부와 문화부를 중심으로 관은 물론 민간단체가 어우러지는, 민관 거버넌스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음악을 매개로 우리가 지혜롭게 접근한다면 영화에서의 짧은 평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에 기여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 국내여행 | 숱한 시간의 흔적 교동도

    국내여행 | 숱한 시간의 흔적 교동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걸까?소곤소곤 들려오는 교동도의 옛 향기에 차분히 집중했다.디디는 발걸음마다 애틋해진다.비로소, 한 발 더 가까이 멀게만 느껴졌던 교동도가 가까워진 지 벌써 1년이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 강화도에서 배를 타야만 했던 불편이 지난해 7월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교동도는 연백평야까지 불과 3.2km인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속한다. 자국민일지라도 신분증을 검사받는 등 군부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외부인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만 교동대교를 통행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은 지난 6월부터 방문객에게 교동대교를 자정까지 연장해 개방한다는 것. 비로소 교동도에 한 발 더 가까워진 셈이다. 주민들에게 24시간 통행이 허용된 것도 지난 6월 초부터였으니 교동대교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구름에 뜬 섬’이라는 뜻의 대운도戴雲島가 원래 이름이었다. ‘하늘에 닿을 새’라는 의미로 달을신達乙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강화 나들길의 교동코스 중 하나인 ‘다을새길’은 옛 지명 달을신의 소리음인 다을새의 이름을 따서 탄생했다. ‘나들길’이란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1906년,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끊어진 길을 연결했다. 총 19개의 코스, 20개 구간으로 310.5km에 이른다. 이 중 교동도에는 2개의 코스, ‘다을새길’과 ‘머르메 가는 길’이 있다. 월선포를 출발하여 교동향교, 화개사, 화개산 정상, 석천당, 대룡시장, 남산포, 교동읍성, 동진포를 둘러보는 9코스(교동 1코스)는 약 16km. 장장 6시간이 걸리는 걸음이었지만 애틋하기만 했던 교동도 이야기.화개산 아래로 보이는 시간의 흔적 비가 제법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해발 259.6m로 비교적 낮지만, 교동도에서는 가장 높은 화개산을 오르기에 선선한 날씨다. 오르는 내내 눈에 들어오는 푸름과 중턱에서 보이는 교동도의 모습이 정상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다소 가파르지만 속도가 더디어도 곳곳에서 소곤소곤 들리는 옛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화개산 약수터, 화개산성의 외성과 내성의 북벽이 교차하는 지점인 북벽망루北壁望樓, 자연숭배 신앙의 흔적으로 보이는 성혈바위 등 볼거리가 쏠쏠하기 때문.정상에 다다르자 한 장의 정지된 사진을 보는 듯 모든 것이 멈춰 있는 풍경과 마주한다. 드넓은 교동평야 뒤로 섬들과 산이 교차하여 내다보인다. 교동도에는 논이 약 2,640만 평방미터, 밭이 660만 평방미터로 모두 3,300만여 평방미터의 농경지가 자리한다. 간척사업을 통해서 농경지가 마련된 것으로 강화도에서 경작지 면적이 가장 넓고, 호당 경지면적도 가장 넓다. 동쪽 교동대교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조금씩 눈을 돌리면 석모도, 상주산, 남산포, 기장섬, 주문도, 미법도, 서경도를 차례대로 음미할 수 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지도상의 ‘말도’는 눈으로 짚어지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서북쪽 휴전선 너머로 너무 가까워 믿기 힘들 정도의 거리에 황해도 연백평야가 뿌옇게 펼쳐져 있다.교동도는 연산군 유배지로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고려 희종,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폐비 류씨, 익평군, 영선군, 은언군 등 이곳으로 많은 왕과 왕족, 귀족이 유배됐다고 한다. 교동도는 ‘돌아오지 않는 섬’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는데, 유배당한 이들 대부분이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해 얻은 호칭이다. 하지만 옛날 사적은 물론 유배지도 분명한 자료가 남아 있지는 않아 전설과 추정으로만 전해지고 있다.조선시대 선조들도 찜질방을 즐겼던 걸까. 연산군 유배지로 추정되는 화개산 서쪽 자락에는 돌무덤으로 보이는 한증막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1960년대까지도 간간이 사용했을 거라 추정된다고 한다. 화개산은 이 모든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인 셈이다.그 많던 제비는 대룡시장에 있었다 옛것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 있다고 소문나면 너도나도 그 모습을 담아 오려고 애쓴다. 교동대교가 들어서기 전 대룡시장은 그런 이들에게 호기심과 정복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의 영화세트장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골목은 옛것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물들지 않은 역사 그대로의 모습이다.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는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으로 활기도 잃고 촌스럽지만 정겹고 순박하다. 기나긴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실향민들 때문인지 아련한 공기가 감돈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점포들이 있는 시장을 둘러보려면 10분도 넉넉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을 느리게 또 느리게 둘러본다. 2명이 오갈 수 있을 법한 좁은 골목도 한산하다. 관광객보다 주민을 마주치는 일이 더 어려울 정도로 적막하다. TV를 통해 그나마 낯익은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거북당이 외지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뿐.고요함을 뚫고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제비다. 애잔한 실향민들의 보살핌으로 매해 둥지를 틀었나 보다. 처마 밑 곳곳에 제비집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운 좋게 새끼 제비들이 있는 둥지를 찾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니 미안한 마음이다. 새끼 제비가 불안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해 주어야 할 것 같다.최신식으로 보태어 꾸미지 않아 더욱 소중했고 어디를 둘러봐도 옛것 그대로의 교동도다운 모습을 담아 올 수 있어서 뜻깊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옛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교동도에서는 따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학문적인 지식은 조금 흘려 지나도 괜찮다. 멈춰 있는 시간에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결고리가 있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으니.▶travel info 교동도인천유형문화재 28호 교동향교 가장 오래된 향교 중 하나인 교동향교喬桐鄕校는 고려 인종5년(1127년)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17년(1741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고려 충렬왕12년(1286년) 당시, 안유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와 십철十哲의 초상을 모셔 왔다고 전해진다. 제사와 교육의 공간이 결합해 있는 향교에서는 매년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위시한 성현들을 추모하고 덕을 기리기 위한 ‘석전제釋奠祭’ 행사가 펼쳐진다. 8월 말까지 교동향교 내 전통건축물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인천기념물 23호 교동읍성화개산 남쪽의 읍내리에 있는 교동읍성은 조선조 인조7년(1629년) 수영이 설치되었을 때 축조된 것으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아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로 동, 남, 북에 3개 성문이 있었다. 현재는 반원 형태의 남문인 홍예문만 남아있다.교동 정미소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삼선리 교동 정미소는 부부가 20년 넘게 운영하는 교동도에서 가장 오래 된 방앗간이다. 대룡시장의 모습처럼 옛 자취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350가마를 찧는데, 쌀이 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모두 지켜볼 수 있다. 전기 대신 아직도 기름으로 모터를 돌려 쌀을 찧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교동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논과 밭이 많고 벼농사가 발달했다. 축산농가가 없어 맑고 깨끗한 농업용수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북로 183 삼선리정미소 032 932 1887강화 교동 나들길 여행상품DMZ와 접경지역 10개 시·군을 대상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DMZ관광주식회사(대표 장승재)에서 교동대교 1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교동도 당일여행 관광상품. 나들길 화개산과 연계한 교동문화 중심의 A코스와 역사 문화 농촌 관광자원 중심의 B코스로 운영될 예정이다. 7월부터 매주 주말 출발하며 단체의 경우 주중 출발도 가능하다.02 706 4851 www.dmztourkorea.com 3만3,000원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유리취재협조 DMZ관광주식회사 www.dmztourkorea.com☞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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