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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복지’ 외면하는 청주복지재단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최근 출범한 청주복지재단이 장애인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충북도 장애인단체 연합회 등 9개 청주지역 장애인단체 회원 100여명은 30일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에 있는 청주복지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장애인을 적극 지원해야 할 청주복지재단이 오히려 장애인을 외면하고 있다며 강력 항의했다. 장애인들이 문제를 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청주복지재단 사무실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변창수 충북협회장은 “3층에 위치한 청주복지재단 사무실이 엘리베이터나 휠체어리프트,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면서 “재단이 장애인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단 직원 가운데 장애인이 없다는 것도 이들을 자극하고 있다. 변 회장은 “청주시가 공모 등을 통해 채용한 재단 상근직원 5명 가운데 장애인은 고사하고 장애인단체와 관련된 사람조차도 없다.”면서 “시가 복지재단을 구성하면서 장애인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재단 상근직원 채용과정의 공정성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심사위원을 맡은 도내 모 대학 교수의 제자들이 3명이나 재단 직원으로 채용됐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편의시설 확충과 재단 상근직원 재공모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청주복지재단은 이번 주 중에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수용 범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청주복지재단 김영석 상임이사는 “재단을 출범하면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는 등 신중치 못했던 점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장애인단체들의 요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범덕 시장의 공약사업으로 지난달 25일 출범한 청주복지재단은 시 출연금 50억원으로 출발했다. 민간기부금 등을 포함해 100억원을 조성,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현재 직원은 이사장과 상근 근무자 등 총 9명이다. 4명을 추가로 모집할 예정이다. 초대 이사장은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남기민 교수가 맡고 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8000시간 봉사… 빨간명찰의 천사

    8000시간 봉사… 빨간명찰의 천사

    경북 포항 해병대 상륙지원단에서 근무하는 이찬우(37·사관후보생 97기)대위는 22년 동안 장애인을 위해 8000시간 봉사활동을 해 왔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 1990년 3월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난 5월에 한국장애인봉사협회 기준 8000시간의 봉사활동을 달성했다. 8000시간은 2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겨우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대위의 선행은 고교 재학시절 오르막길을 힘겹게 가던 장애인 휠체어를 도와주면서 시작됐다. 이 대위는 “당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망설이다 장애인을 돕고 나니 너무 뿌듯해 곧바로 한국장애인봉사협회에 가입했다.”며 “저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타인이 주는 사랑과 봉사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위는 “학창시절에는 매일 봉사했으나 10년전 해병대 장교로 임관한 뒤부터는 주말에만 활동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토요일 아침 8시만 되면 협회에서 지정해 준 장애인과 하루를 함께 시작한다. 목욕을 시켜 주고 병원에 동행해 보호자가 돼 주기도 한다. 약을 받아와서 먹이고 매끼 식사를 수발하는 것도 이 대위의 몫이다. 장래희망으로 봉사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현재 사회복지사 1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 대위는 “장애인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몸과 마음이 즐거워진다.”며 활짝 웃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모두가 포기했던 난치병 소년 한국이 내민 손 잡고 기적을 만나다

    모두가 포기했던 난치병 소년 한국이 내민 손 잡고 기적을 만나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우리들병원 회의실, 화상 콘퍼런스를 위해 모인 이상호 이사장 등 의료진은 화면을 통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면 속 소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빈탕(7). 허리뼈와 목뼈가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안면비대칭으로 왼쪽 얼굴은 흉하게 부풀어 있었다.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빈탕은 숨쉬기마저 힘겨워 보였다. 빈탕을 괴롭힌 것은 신경계의 유전적 장애로, 뇌와 척수·신경·피부 등에 이상이 나타나는 ‘신경섬유종증’이었다. 몸 안의 종양이 척수를 압박해 목뼈가 심하게 휘는 경추 후만증이 생겼으며, 두개골과 얼굴, 가슴에도 심각한 변형이 진행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호흡장애와 폐렴, 폐부종 등 합병증까지 겹쳐 빈탕은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고난도 수술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큰 데다 고도의 의술과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치료라고 해봐야 한 살 때 경추 척추궁절제술과 종양제거술을 받은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이니 신경섬유종을 치료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인 빈탕의 부모는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소문한 끝에 미국의 한 어린이병원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치료비만 7억원이 넘어 포기해야 했다. 부부가 의사이면서도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모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런 빈탕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다가왔다. 자카르타의 우리들척추센터를 찾은 빈탕에게 척추센터의 와완 박사가 “한국의 우리들병원이라면 수술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운을 뗀 것. 우리들척추센터는 서울의 우리들병원으로 빈탕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냈다. 사망률이 10%를 넘는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빈탕의 동영상을 본 의료진은 도전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상호 우리들병원 이사장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빈탕과 부모의 마음을 잘 알기에 모든 의료진이 의기투합해 치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빈탕을 위해 청담우리들병원 장지수 원장을 비롯해 신경외과·마취과·흉부외과·내과 소속 의료진 이병철 원자력병원 교수까지 가세한 의료팀이 꾸려졌다. 빈탕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한 채 지난 5월 9일 한국땅을 밟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마침내 수술이 결정됐고, 같은 달 22일 수술이 진행됐다. 경추체 제거술, 후두부~흉추부 고정술 등 18시간 동안 고난도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던 빈탕은 수술 후 2주가 지나자 의료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가 하면 걸음도 걷기 시작했다. 폐렴과 폐부종 등의 증상도 호전됐다. 빈탕은 빠르게 회복해 지난달 15일 고국으로 돌아갔다. 빈탕의 부모는 현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삶을 포기했던 아이의 병을 고쳐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국과 한국의 의사들을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朴 “당원명부 유출 유감… 재발방지 대책 필요”

    朴 “당원명부 유출 유감… 재발방지 대책 필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당원명부 유출사건에 대해 “저도 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유출 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자세하게 밝혀야 되고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이번 기회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노원구에 있는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비례대표 의원들과 봉사활동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박 전 위원장은 당원명부 유출을 두고 당시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데 대한 입장을 묻자 이같이 말한 뒤 야당에서 관련 의원들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조사하고 있으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박 전 위원장은 특히 MBC 파업문제에 대해 “파업이 징계 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날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대화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또 “결국 (파업이) 장기화되면 가장 불편해지고 손해보는 게 국민 아니겠느냐.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노사 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출마선언 시점에 대해서는 거듭 “조만간 알려드리겠다.”고만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50분 동안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 비례대표 의원들로 구성된 ‘약속지킴이 25인’ 모임에 동참하면서다. 점심식사하러 온 장애인들에게 직접 밥을 덜어주면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혼자 식사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메뉴로 나온 삼계탕의 닭고기를 손으로 발라 주고, 연로한 장애인들에게 먼저 “제가 모자를 썼는데 알아보시겠어요?”, “저 박근혜입니다.”라는 등 인사를 건넸다.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박 전 위원장을 불러 “0~2세 영·유아 무상보육이 실시되면 (장애인 지원수당이) 끊기는 것 아니냐.”고 묻자 박 전 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이 어렵다는 것인데 당에서 지원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비를 하고 있다.”면서 “끊어지지 않도록 특별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시중 환자복 입고 첫 재판…파이시티 비리 혐의 전면부인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거액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정선재)의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최 전 위원장의 변호인은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8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2억원은 수수한 사실이 없고, 나머지 6억원도 알선 대가 명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차관 측도 1억 6000만원을 챙긴 혐의 등과 관련, 지난 5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그러나 박 전 차관의 부탁으로 인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대가로 3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는 입장을 변호인 측을 통해 전달했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심혈관 질환 수술을 받아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박 전 차관은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최 전 위원장은 건강상태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어 힘을 쓸 수가 없다.”면서 “의사가 운동하라고 하는데 할 수가 없어 몹시 괴롭다.”고 낮은 목소리로 답변했다. 재판부는 최 전 위원장에 대해 구속집행정지를 내리지 않고 입원 중인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키로 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21일 오전 10시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양천구 8일 ‘장애인 한마음 축제’

    양천구는 8일 오전 9시 신정6동 양천공원에서 ‘제8회 으뜸양천 장애인 한마음 축제’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구 장애인단체연합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지역에 사는 장애인과 가족, 자원봉사자 등 2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에서는 휠체어 달리기와 박 터트리기, 농구공 넣기 등 8개 종목의 체육행사가 열린다. 사물놀이와 강진, 현당, 금사향 등의 초청 가수 축하공연도 마련했다. 또 장애인 작품 전시관과 생산품 판매관, 장애인 인권자료관, 장애 체험장 등을 만들어 장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장애인보조기 점검과 수리 코너도 설치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성북구 장애인 취업 지원

    성북구가 지역맞춤형 일자리사업으로 장애인 텔레마케터 양성훈련을 통한 취업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구는 지난 29일 하월곡동 성북구장애인단체연합회 정보화 교육장에서 장애인 텔레마케터 양성훈련 과정 개강식을 가졌다고 30일 밝혔다. 이날 개강식에 참여한 훈련 대상자는 구에 거주하는 40세 미만 경증 지체장애인 20명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더라도 상반신 사용에 지장이 없는 구직 희망 장애인들이다. 구청과 북부고용노동지청, 사업수행기관인 성북구장애인단체연합회가 협력해 실시하는 이번 훈련은 상·하반기 연 2회 실시하며 대상인원은 각 20명씩 총 40명이다. 교육 및 훈련은 텔레마케터 양성훈련 전문기관의 강사가 진행한다. 3개월 동안 텔레마케터의 역량과 실무, 현장견학, 취업교육 등의 내용으로 매주 화, 목요일 오후에 4시간씩 교육훈련이 실시된다. 수강료는 전액 무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쉿! 우리 결혼했어요’ 어느 중증장애인 부부의 안타까운 청첩장

    ‘쉿! 우리 결혼했어요’ 어느 중증장애인 부부의 안타까운 청첩장

    꽃을 든 중·고교생들 사이로 휠체어를 탄 신랑이, 또 신부가 들어왔다. 꽃길이 휠체어에 방해가 될까 봐 학생들이 스스로 꽃길이 됐다. 지난 2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의 한 교회에서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신모(44)씨와 조모(45·여)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장애인 40여명을 비롯해 300명의 하객들이 결혼을 축하했다. 결혼을 위한 모든 준비는 자원봉사로 이뤄졌다. 신랑·신부는 하객들에게 “서로 마음의 힘이 돼 잘 살겠다.”고 인사했다. 신씨와 조씨는 지난해 7월 지인의 소개로 만나 10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둘 다 중증장애인이니 갈 만한 데가 없었어요. 집이 가까워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고, 주로 교회에서 만났어요.” 신씨가 만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조씨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3년 안에 같이 살자.”는 짧고 투박한 고백이었다. 조씨는 마냥 좋았다. 단번에 “오케이”했다. 조씨는 “비 오는 날 남편과 함께 비를 쫄딱 맞고 거리를 달렸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연애담을 말했다. 또 “휠체어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제게 달려오는 남편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신씨와 조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혼인신고 얘기에 조씨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졌다.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죠. 그렇지만 하고 싶어도 못 해요.” 1급 장애인 대부분은 결혼을 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조씨는 “서울시가 1급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원을 파견해 간호하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다 매달 받는 수급비마저 대폭 깎이기 때문”이라며 혼인신고를 못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현실에 오히려 마음 아파했다. 신씨와 조씨는 휠체어와 활동 보조인이 없으면 당장 화장실조차 갈 수 없다. “늘려 줄 수는 없더라도 지금 쓰고 있는 시간만큼이라도 쓰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결혼하면 도움받을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라고 했다. 신씨와 조씨는 27일 아침 목포에서 제주도로 5박 6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활동보조인 2명도 함께했다. 여객선편을 이용했다. 비행기는 애당초 탈 엄두조차 못 냈다. 휠체어를 화물칸에 실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적잖아서다. 조씨는 “설렐 뿐”이라고 했다. 신혼 부부는 “일반 부부들이 살듯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 말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겠죠. 안 맞는 부분이 생기면 서로 잘 맞춰 갈 거예요. 그렇게 남들 살듯, 숨 쉬는 순간순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씨와 조씨는 손을 꼭 잡았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2010년 11월 23일, 전쟁을 방불케 했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우리는 인천 옹진군에 위치한 연평도라는 섬을 알게 되었다. 평평하게 뻗은 섬 연평도는 봄철이면 알 밴 꽃게로 풍년을 이룬다. 예부터 길조로 환영받던 백로가 유유히 알을 품고 있는 풍요의 섬.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밥상을 소개한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승아는 태범이 서울로 올라가 버리자 울적해진다. 윤식은 승희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받을 결심을 한다. 송 사장은 승아를 보기 위해 만복당까지 찾아가고, 승아와 송군의 교제를 밀어붙인다. 한편 노경은 외할머니 유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철은 태범에게 연홍의 가정교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준금과 정우의 결혼을 결사반대하는 진행은 정우와 크게 싸우고 시완을 데리고 집을 나와 버린다. 그러나 시완이에게 강한 척하며 가출을 감행했던 진행의 현실은 큰소리쳤던 것들과는 점점 멀어진다. 한편 최근 빚 독촉까지 겹쳐 두통약을 달고 살던 석진. 우연히 쌈디, 경표, 예원이의 어설픈 개그를 보고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생방송 투데이(SBS 오후 6시 5분) 임진각에서 시작해 제주도 한라산까지, 6개월간 전국 7000㎞를 누비는 자전거 여행을 떠난 부부가 있다. 주인공은 현재 폐암 4기인 김선욱씨와 그의 아내다. 그는 남은 시간을 병원이 아닌 자연 속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전거 여행으로 12개월의 시한부 인생은 어느덧 18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상사가 달라졌어요(EBS 밤 7시 35분) 태양광 산업 분야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현화 대표는 현재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원대한 꿈을 쫓고 있다. 그러나 그의 꿈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직원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대표와 직원들은 서로에게 지쳐 있는 상태다. 상하 간에 형성되지 못한 신뢰, 과연 그들이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올리브(OBS 밤 11시 5분) 개그맨 황기순이 나눔 전도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과거의 좋지 못했던 모습을 씻어내고자,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가 자전거 일주를 통해 모금한 돈 전부를 휠체어로 기부한 사연을 전한다. 또한 장학금과 사랑의 연탄을 기부한 사실도 밝힌다. 대한민국 최악의 남자 0순위였던 그가 나눔 전도사로 변하게 된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 봉송 성화 꺼지고 허들 1개빼고 대회치러 금메달 무효처리…올림픽 두달전 英 망신살

    봉송 성화 꺼지고 허들 1개빼고 대회치러 금메달 무효처리…올림픽 두달전 英 망신살

    성화는 봉송 사흘 만에 꺼지고, 육상 경기를 치르면서 허들을 잘못 설치해 모든 기록이 무효가 되고…. 런던올림픽 개막 60여일을 앞두고 영국에 망신살이 단단히 뻗쳤다. 성화는 그리스에서 건너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내 봉송 일정을 시작했다. 장애인올림픽 배드민턴 유망주 데이비드 폴레트가 20일 데본주 그레이트 토링턴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봉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화가 꺼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폴레트는 물론, 봉송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까지 당황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호송차량에 대체 성화봉이 있어서 위기를 넘기고 봉송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 성화봉은 독일 뮌헨의 BMW 기후센터에서 어떤 악천후에도 꺼지지 않게 제작했다고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자랑해 왔던 터라 더욱 창피한 일이었다. 사실, 그리스 아테네의 올림피아 신전에서 채화식이 거행되던 도중에도 성화가 꺼져 참석자들이 크게 당황한 일이 있었다고 유로스포츠 닷컴은 전했다. 또 이날 맨체스터시티센터에서 열린 ‘그레이트 시티 게임스’(Great City Games) 여자 100m허들 경기에서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허들 10개를 설치해야 하는 사실을 깜빡하고 9개만 설치한 것이 나중에 확인돼 모든 기록이 무효가 됐다. 영국 육상을 대표하는 ‘포스터걸’ 제시카 에니스(26)가 이 종목에서 개인 최고기록인 12초75에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했다. 런던올림픽 7종 경기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에니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돈 하퍼(28·미국)와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인 다니엘레 캐루서스를 꺾어 기쁨이 더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짱 헛일이 됐다. 여자 100m허들도 남자 110m허들과 마찬가지로 10개의 허들을 세워야 한다. 다만 여자는 8.5m, 남자는 9.14m로 허들의 간격만 다를 뿐이다. 에니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정말로 잘 달렸는데 실망스럽다.”며 “허들이 제 숫자대로 설치됐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팔… 상상이 현실이 되다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팔… 상상이 현실이 되다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가 ‘물건을 들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로봇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명령을 수행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기계 부피를 줄이고 개발 비용을 줄이는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해 상용화한다면 마비 환자의 자활에 획기적 도움이 될 듯하다. ‘600만불의 사나이’, ‘로보캅’ 등 공상과학물 주인공처럼 뇌파 등 생체신호로 기계를 작동시켜 인간 능력을 극대화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브라운대 메디컬센터·하버드 의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16일(현지시간) 마비 환자의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인공 수족을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과학저널인 네이처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피실험자인 59세 여성 캐시 허친슨과 ‘밥’으로 알려진 60대 남성 등 2명은 모두 뇌졸중으로 팔다리가 마비된 미국인이다. 연구진은 이들의 뇌 운동 피질에 어린이용 아스피린 크기(4㎟)의 ‘브레인게이츠’라는 센서 칩을 이식했다. 이 칩 속에는 96개의 전극이 담겼다. 이 전극은 환자가 팔을 움직이는 상상을 할 때 발생하는 신경 신호를 포착, 수집해 머리 윗부분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외부 컴퓨터로 전송한다. 컴퓨터는 신경 신호를 해석해 환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로봇팔에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15년간 팔을 움직이지 못한 허친슨은 이번 실험에서 로봇팔을 이용해 커피 마시기에 도전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실험 동영상에 따르면 허친슨은 상상을 통해 로봇팔로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들어 올린 뒤 천천히 입으로 옮겼다. 병이 입술에 도달하자 빨대로 커피를 마시고 병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두 환자는 고무공 잡기에도 도전했다. 밥은 성공 확률이 50%를 밑돌았지만 허친슨은 60%가량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뇌파로 컴퓨터 마우스를 조작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밥은 “내 손을 움직이는 상상을 했더니 로봇팔이 저절로 움직여 물체를 집더라.”며 놀라워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뇌파를 이용한 기기 작동 실험의 정점을 찍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존 도너휴 브라운대 뇌과학연구소장은 “마비 환자, 특히 전신 마비 환자의 입장에서는 아침에 커피잔을 잡고 마시는 동작이 매우 경이로운 일”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연구를 진행 중인 앤드루 슈워츠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도 “‘커피 마시기’는 마비 환자들이 진정 바라는 일상생활의 한 동작”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사고와 기계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사지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움직여 ‘하이파이브’를 하는 데 성공했고, 스위스의 한 실험실에서는 부분 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원격 제어하기도 했다. 윤인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국내에서도 최근 척추마비 환자의 재활을 돕는 ‘맨머신인터페이스’(인간이 컴퓨터나 기계 등을 조작하는 장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보온병 들기’ 실험에 성공한 연구진은 향후 무선으로 신경신호를 외부 컴퓨터로 전송하는 체계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인게이츠 칩 이식에 관여한 케빈 워위크 영국 리딩대 교수는 “신경신호로 전구를 켜고, 문을 열고, 휠체어를 밀고, 심지어 차를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향후 몇 년 내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공직열전 2012] (3) 행정안전부 (하)정책실무 주도 과장급

    [공직열전 2012] (3) 행정안전부 (하)정책실무 주도 과장급

    행정안전부 정책 실무를 이끌고 있는 과장들은 각 분야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신도 행정고시 7, 9급까지 다양하다. 본부 과장 중에는 행시 38명, 기술고시 4명, 지방고시 4명 등 고시 출신이 46명(68.7%)을 차지한다. 7급 공채 출신 15명(22.4%), 9급 공채 출신 5명(7.5%), 6급 특채·일반계약직 특채 각 1명이다. 김주이 제도총괄과장·김우호 인력기획과장·하병필 자치행정과장은 행정고시 36~39회로 각각 행정안전부의 주축인 조직실·인사실·지방행정국의 대표 과장이다. 윗사람들이나 후배들로부터 조직 관리·업무성과·대외 협상 능력 등이 남달리 뛰어난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는다. ●업무 정통·대외 협상력도 우수 자치행정과장은 행안부에서 ‘1번 과장’으로 불린다. 방대한 2차관 소속 조직(옛 내무부)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단독 업무는 크게 없지만 지방조직·인사·재정 등 지방행정 업무 성과가 대부분 지방행정과장의 성과라는 것이 행안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 과장은 대통령실 행정자치비서관실 행정관·행안부 자치제도과장·자치분권제도과장 등을 거쳤다. 이력이 보여주듯 지방행정에 정통하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부하 직원들도 잘 따른다. 김주이 과장은 3명뿐인 본부 여성과장 중 한 명. 동기(행시 39회)보다 빨리 조직실 주무과장을 맡을 정도로 당차다. 정책에서는 세심하고, 부처 간 협상 능력·추진력은 대장부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산부 배려 계산창구 개설 ▲어린이집 급식 위생 상태 처벌 강화 ▲휠체어 사용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설치 표준안 ▲전통시장 가격공시제 등이 그의 작품이다. 김우호 과장은 외교부 장관 딸 특채 파동이 일었던 2010년 8월에 부임했다. 정부 인사정책이 전반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을 때다. 김 과장은 부처에 위임됐던 특채 선발 권한을 행안부로 가져와 ‘5급 민간 경력자 일괄채용’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킨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 부처의 반발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9급 공무원 공채 시험과목 확대 등 굵직굵직한 인사정책도 김 과장의 손을 거쳤다. 이정구 지방경쟁력지원과장은 ‘자전거 달인’이다. 이전 보직인 자전거정책과장을 잘 수행했다. 지난달 ‘국토 종주 자전거길’ 개통식을 1주일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지만 전화로 일일이 업무를 지시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이필영 기획재정담당관은 정보통신부 출신이지만 핵심 보직을 맡았다. 대외 협상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황규철 정보화지원과장·서보람 미래정보화과장은 기시 출신으로 우리 정부가 ‘유엔 전자정부 평가’에서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한 주역이다. ●과장 30%가 비고시 출신 7급 출신의 약진도 특징이다. 소기옥 안전개선과장은 업무 성과·열정에서 뒤지지 않는다. 정년이 2년 남은 행안부 최고령 과장이지만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 전직 경찰·교사를 활용한 어린이 교통안전 정책 등 생활 밀착형 안전정책이 그의 아이디어다.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도 도맡아 추진했다. 김항섭 법무담당관도 7급 출신으로 눈에 띈다. 충북 제천 부시장을 올해 초 본부로 발탁한 케이스다. 국무회의·차관회의 안건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체력이 요구된다. 대개 행시 출신들이 맡는 자리여서 관가에서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7급 공채 동기인 권혁문 의정담당관·유지훈 홍보담당관도 눈에 띈다. 권 과장은 ‘국새 파동’을 수습한 주인공. 유 과장은 중앙인사위 홍보과장 등을 역임했다. 행안부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 이들은 비고시 출신으로, 주요 보직을 놓고 고시 출신과 겨룰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유모차·휠체어도 OK… 매봉산 ‘無장애길’ 만든다

    유모차·휠체어도 OK… 매봉산 ‘無장애길’ 만든다

    내년쯤이면 유모차, 휠체어로 마포구 매봉산을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마포구는 매봉산 일대에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 등 누구나 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무장애길을 포함한 ‘매봉산 자락길’을 조성한다고 10일 밝혔다. 자락길 조성사업은 총 3.6㎞ 구간을 2014년까지 3단계로 나눠 추진한다. 우선 올해는 자락길 진입로부터 전망 데크가 들어서는 지점까지 1㎞ 구간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보행객들이 쉴 수 있는 북카페, 명상쉼터, 휴게쉼터와 구간 거리, 경사도, 소요시간 등을 표시한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매봉산 산림을 훼손하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았던 담장 1.5㎞도 철거한다. 아울러 이 중 0.6㎞구간은 휠체어, 유모차도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로 조성한다. 무장애길은 폭 2m, 경사도 8% 미만으로 목재 데크를 깔아 보행이 쉽도록 한 숲길이다. 구는 무장애길을 ‘소나무향기길’, ‘숲속쉼터길’, ‘바람의길’, ‘명상의길’ 등으로 나눠 다양한 체험과 경관 조망이 가능한 테마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무장애길 끝에는 전망 데크가 자리 잡는다. 매봉산 자락길 조성 사업에는 총 9억 6000만원이 투입된다. 오는 7월 착공한다. 올해 말쯤 일부 구간이 주민들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성경호 공원녹지과장은 “매봉산 자락길은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월드컵공원, 불광천과 인접하고 있어 순환산책로나 탐방로로 각광받을 수 있는 곳”이라며 “보행 약자가 이용하기에 적합한 자락길을 조성해 주민 편익을 도모하고 나아가 산림훼손 방지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성북구, 장애인 텔레마케터 키운다

    구청이 텔레마케터를 양성한다? 얼핏 생뚱맞아 보이지만 서울 성북구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용노동부와 함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을 위한 지역 맞춤형 일자리를 지원하려는 취지를 엿볼 수 있어서다. 구는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과 사업수행기관인 성북구장애인단체연합회가 협력해 장애인 텔레마케터 양성을 위한 훈련생을 10일까지 모집한다고 7일 밝혔다. 훈련 수료자들은 구에 위치한 이마트, 홈플러스, 현대백화점, 병원 등으로의 취업을 지원받는다. 구는 지난달 25일 북부고용노동지청과 지역맞춤형일자리창출사업 지원에 관한 제반사항에 대해 약정을 체결하고 30일에는 사업수행기관인 성북구장애인단체연합회와도 책임과 역할에 따른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모집 대상은 성북구에 거주하는 만 40세 미만의 여자 경증 지체장애인이며, 휠체어를 이용하더라도 상반신 사용에 지장이 없으면 지원할 수 있다. 훈련 대상자는 서류전형과 개별 면접을 통해 선정한다. 희망자는 성북구장애인단체연합회에 주민등록등본, 반명함판 사진 2장, 복지카드를 제출하면 된다. 장애인 텔레마케터 양성훈련은 이달 중순과 올 9월 각각 3개월 과정으로 시작된다. 텔레마케터 양성 전문기관의 강사가 교육을 맡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1∼5시 텔레마케터의 역량과 실무, 현장견학, 취업교육 등으로 프로그램을 짠다. 전액 무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더 꼬인 천광청 사건] “클린턴 비행기로 미국 가고 싶다”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머물고 있는 베이징 외교가 바이자좡루(白家莊路) 인근에 위치한 베이징차오양(北京朝陽)병원은 3일 공안의 통제로 모든 출입문이 봉쇄됐다. 천은 본원 9층 VIP룸에서 부인 위안웨이징(袁偉靜) 등 가족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탈출할 때 한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석고 붕대를 하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중국인 의료진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정복과 사복 차림의 공안 10여명이 병실 앞에서 감시를 하고 있어 사실상 ‘연금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 요원들의 검사를 거쳐야 한다. 공안복을 입은 경찰들이 입구를 막아선 것 이외에 건물 주변에도 검은색 차량들과 사복 경찰들이 배치돼 24시간 경계를 서고 있다. 천의 탈출 계획 총책임자로 알려진 인권운동가 후자(胡佳)의 부인 쩡진옌(曾燕)은 이날 트위터에 자신이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안들로부터 자신이 앞으로 며칠간 자택에 감금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천의 변호사 텅뱌오(?彪)는 지난 2일 밤 10시쯤 천과의 전화 통화에서 천이 “오늘(2일) 오후 ‘만약 대사관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부인과 아이가 다시 산둥(山東)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중국) 외교부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천이 현재 협박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공안은 전날 천이 병원에 들어온 뒤 병원 건물 내부에서 기자들을 쫓아내는 ‘특별 행동’에 돌입했다. 환자로 위장해 병원으로 진입하려다 잡혀 나온 기자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외신 기자 전담 공안들이 대거 파견돼 자신이 담당하는 기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천은 이날 중국을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비행기 편으로 중국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가 보도했다. 천광청은 이 매체에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인 클린턴 장관을 언급하면서 “나의 간절한 바람은 나와 내 가족이 힐러리 클린턴의 비행기로 미국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의 반중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도 자체 웹사이트에서 천광청이 텅뱌오에게 “(주중 미국대사인) 게리 로크와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인) 커트 캠벨, 그리고 다른 미국 관리들이 나를 병원에 데려왔지만 그들은 모두 떠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문화마당] 기적의 신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기적의 신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루르드’(Lourdes,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2009년)라는 영화가 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성모 발현을 공인받아 유명해진 가톨릭의 성지이다. 매년 세계 각지로부터 약 600만명의 관광객과 순례자가 찾아오는 루르드는 ‘기적의 땅, 치유의 땅’으로 일컬어진다. 1858년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가 성모 발현을 체험한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의 말씀대로 샘을 파, 그것을 마신 이들이 치유의 은사를 입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동굴의 샘물은 기적의 샘물이 되었고, 지금도 기적에 대한 소망을 안고 병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루르드로 모여든다. 사실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의 존재 혹은 초월적 현상 등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유사 이래 철학, 종교, 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규명하고자 애써 왔던 가장 본질적인 담론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는 신의 존재를 논증하고자 했고,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는 ‘만들어진 신’에서 불가지론을 들어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루르드’는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실비 테스튀)은 전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묶여 있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수프를 떠먹을 수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그녀는 답답한 일상을 떠나기 위해 루르드로 왔고 그곳에서 침수의식과 기도를 바친다. 그런데 그녀의 기도는 그리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에 냉담하고 의욕도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이 찾아온다. 꿈에서 목소리를 들은 이후 그녀가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의 영화 내용은 타종교 신자들이나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들로서는 특정 종교와 관련된 현상이라고 여겨져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면모와 재미는 이후부터이다. 사람들은 신심이 돈독해 보이지도 않는 크리스틴에게 왜 ‘기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아해한다. 그들은 내가 아닌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에 대해 질투하고, 정말 기적이 맞는지 의심한다. 영화 ‘루르드’가 기적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이성적·논리적으로 추론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황당무계함이나 비현실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장 영리하게 처리한 사례이다. 영화는 크리스틴의 ‘기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녀를 쓰러뜨린다. 온몸을 뒤덮은 마비에서 풀려나 호감을 갖게 된 남자와 즐겁게 춤을 추던 크리스틴은 휘청하면서 쓰러진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술렁임. 크리스틴은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 앉아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옥죄던 마비에서 벗어나 비로소 육신의 자유를 누리던 그 기쁨의 정점에서 다시 쓰러뜨리다니. 물론 본디 마비상태로 돌아간 것인지, 일시적인 피로현상인지 불확실하게 처리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상상에 맡기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그 어떤 쪽이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기적의 신비’인 까닭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적을 체험하는 일은 얼마나 될까? 아니, 기적이란 무엇이며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기적을 종교적 신비현상으로 접근하면 희귀하고 불가사의한 것이지만, 세속적으로 생각하면 기적은 희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삶이 엄혹하고 고통스러울 때 기적을 바란다. 기적은 그를 고통으로부터 곧추세우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므로 곧 희망인 것이다. 3·11 대지진으로 쓰나미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일본 소년의 축구공이 알래스카까지 떠내려 와 발견되어 소년에게 곧 전달될 것이라는 외신이 있었다. 모든 것을 쓰나미가 쓸어가 버린 줄 알았는데 대륙을 넘고 대양을 건너 소년의 소중한 추억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고, 이것이 희망 아닌가. 그래서 ‘루르드’의 마지막 장면, 크리스틴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는 기적의 신비를 체험한, 기적이 희망임을 안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인 것이다.
  • KFC 트위스터 먹고 뇌손상 소녀 94억원 배상 판결

    KFC 트위스터 먹고 뇌손상 소녀 94억원 배상 판결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업체 KFC의 ‘트위스터’를 먹고 뇌손상을 입은 소녀의 가족들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근 호주 뉴 사우스웨일스 최고법원은 “KFC 측은 모니카 사만의 가족에게 800만 호주달러(약 95억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호주 KFC 측과 사만 가족의 법정 공방은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7세 였던 사만과 가족들은 시드니 인근 KFC 점포에서 ‘트위스터랩’을 먹고 살모넬라균에 의한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더 큰 문제는 사만이 휴유증으로 뇌손상을 입어 평생 휠체어 생활에 말 조차 할 수 없게 된 것. 가족 측 변호인은 “법원이 적절한 판결을 내렸다.” 면서 “사만을 치료하기 위해 가족들은 전 재산을 탕진했다. 지금은 숙녀로 자란 사만을 돌보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KFC 측은 법원 판결에 항소할 뜻을 밝혔다. 호주 KFC 측은 “사만의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면서도 “우리는 좋은 품질과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만이 우리 음식으로 인해 뇌손상을 입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며 항소할 계획임을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독자의 소리] 미국 장애인과 한국 장애인/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이재학

    등록된 장애인 수가 2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 4인 가족 기준으로 다섯 가구당 1가구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리에서 장애인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거리로 나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 가도 휠체어를 타고 일반인과 함께 어울려 웃으면서 지나간다. 또 식당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을 때는 모두 장애인용으로 돼 있다고 한다. 미국에 장애인이 특별히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학교나 가정에서 받은 교육이 몸에 배어서 장애인들의 불편도 함께하는 공동체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진정으로 장애인의 복지를 바란다면 값싼 동정이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장기적 제도 마련과 더불어 그들을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가치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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