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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영웅” 김좌진장군 생가 복원/홍성 행산2천5백평 말끔히 단장

    ◎사당 세워 성역화… 국민교육장 활용 만주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킨 백야 김좌진장군의 생가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생가터에 복원돼 26일 준공됐다. 김장군의 생가는 홍성군이 4억6백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천5백여평의 부지에 지난해 5월부터 본채·문간채·행랑채·외양간 등은 물론 담장·도로·조경까지 말끔히 단장,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군은 민족의 영웅이며 구국운동의 선구자인 김장군의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건립등 성역화사업을 벌여 김장군의 독립정신을 계승할수 있는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김장군의 생가는 그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어 허물어져가 충남도에서 지난 89년12월 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어 홍성군도 김장군의 애국심과 남아의 기개를 기리기 위해 생가복원에 나섰다. 특히 군은 이 지역성역화사업비로 지난3월 정부에 40억원의 국비지원을 요청내놓고 있다. 이날 생가복원준공식에는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김을동씨등 유족과 이강훈광복회장등 독립유공단체 관계자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백야 김좌진장군은 1889년 이곳에서 태어나 3세때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16세때인 1905년에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고향에 돌아와 50여가구의 노비들에게 당시 2천석을 추수하던 전답을 나눠주고 그들을 해방시켜줘 민주개화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다. 20세때인 1909년에는 이봉창과 경성고아원을 경영하면서 서울 관철동에 이창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해 국내외의 연락기관으로 이용하는등 항일운동과 육영사업에 힘을 쏟았다. 29세때인 1918년에는 애국지사 윤치성·신현대등과 광복단을 조직,단장직을 맡은 뒤 중국 길림성으로 가 김동삼·조소앙등 만주지역 독립운동가 39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사관양성소를 설립,보병 1개연대를 양성했다. 김장군은 1920년에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이범석·홍범도장군 등과 같이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켜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김장군은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 정신착란등 고엽제후유증/월남전 참전 40대 자살

    【평택=조덕현기자】 월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참전용사 정종도씨(47·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은산리 206)가 고엽제후유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월유공전우회」관리부장 황명호씨(55)는 25일 집앞 전신주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상태로 지난18일 가족들에게 발견돼 평택성심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온 정씨가 24일 상오3시 숨졌다고 밝혔다. 황부장은 『정씨가 지난 68년 7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소총전투병으로 월남전에 파병돼 미군이 베트콩소탕을 위해 정글지대에 살포한 고엽제 「에이전트디옥신」을 맞은뒤 정신착란과 양손가락이 문드러지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1년5개월만에 귀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해왔다』면서 『고엽제후유증에 시달리던 정씨가 심한 정신착란증세끝에 18일 자살했다』고 밝혔다.
  • 귀순설득 방송에 선제총격/수훈장병이 말하는 교전 상황

    ◎새벽 4시경 발견… 4시간 매복 추적/10m앞까지 접근 수류탄 던져 제압 북한의 무장침투조 3명을 섬멸한 육군 백골부대의 작전은 완벽했다. 22일 상오4시쯤 희미한 달빛 아래 군사분계선을 넘는 3명의 적을 처음 발견한 국군 매복조는 4시간동안 적의 동태를 감시하며 대대본부로 순간순간 상황을 보고했다. 대대장 박명규중령과 중대장 김승겸·이상복대위가 병력 1백26명을 인솔하고 현장에 도착,적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상오8시30분 수색조가 군견을 앞세우고 짙은 녹음에 은신해 있는 50m지점까지 접근,메가폰으로 『귀순하라』고 선무방송을 했다. 국군수색대에 노출된 적들은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적의 사격이 시작되자 안강찬상병이 10여m앞까지 접근,수류탄을 던졌다. 하늘을 찢는듯한 폭음과 함께 적 2명이 사살되고 1명은 부상을 입은채 도주했다. 하오4시10분쯤 달아난 적도 수색대에 의해 사살돼 작전이 종료됐다. 대대장 박중령은 『평소 녹음기 침투에 대비,철저한 교육훈련으로 자신감과 담력을 키워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중대장 김대위는 『병사들의 철저한 경비로 적을 조기에 발견,작전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육군 백골부대는 6·25전에 창설된 국군의 최정예부대로 상승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 금탑산업훈장 수상/신발명연구소 소장 신석균씨(인터뷰)

    ◎“내가 만든 발명품만 2,700개”/기네스북 올라… 「발명대학」설립이 꿈 『발명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늠짓는 척도입니다.영토와 인구가 아무리 넓고 많아도 산업과 연결된 발명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면 후진국 위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19일 스물일곱번째 「발명의 날」을 맞아 발명유공자로 이 분야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신석균씨(63·한국신발명연구소소장).2천7백여건의 발명품과 7백여건의 특허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발명품과 특허권을 갖고 있을뿐 아니라 59회에 걸친 국제발명대회에서의 입상경력으로 「세계최다 국제상 수상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발명황제다. 유리로 된 우유병이나 음료수병시대를 마감시키면서 종이팩시대를 연 것도 그였고 고성능 위조지폐감식기나 테이프없이도 태양전지를 이용해 녹음되는 카세트레코더등 외국기업가들이 침을 흘리는 발명품들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해외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디오모자나 낚시할때 가지고 다니는 접는의자도 개인발명가 신씨의 노작품.사범학교와 고등학교의전기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선 러시아어,대학원은 기계공학을 공부한 다양한 편력만큼 그의 발명품 종류 역시 끝이 없어 보인다. 그간 그의 발명품이 벌어들인 외화는 대략(한국발명특허협회추산)1천여만달러.기업가등 제3자에게 권리를 양도해 벌어들인 돈이다.대개 발명가들이 장사가 됨직한 발명품을 기업화하려고 공장짓고 사업도 일으키는데 비해 신씨는 「발명가는 발명에만 전념하고 실용화는 기업가에 맡긴다」는 신조에 충실해 왔다.그런 과정에도 최근엔 중국과 「특허권의 생산·판매등 기업화과정중 드는 비용을 중국측이 부담해 생산한다」는 20년기한부 합자회사 가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발명의 길로 들어선 직접적인 계기는 6·25동란중 부산에서 만든 도량형환산기.기존에 쓰이고 있던 재래식도량형과 막 수입된 서구식도량형이 되죽박죽돼 거래와 생활에 상당한 불편이 있었던 때였다. 그후 처음 5년간은 가정교육사라는 잡지사를 운영,생활해 나가면서 발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생활속의 불편을 조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것 같읍니다.어떻게 좀더 편리하게 고쳐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몰두하느라 40년이 지난것 같습니다』발명에 대한 그의 이런 열정은 국내 발명풍토조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아이디어와 기술밖에 살길없는 우리처지에서 발명회관등 그럴듯한 발명교육장소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발명진흥복권과 같은 방식으로 전 국민의 발명의욕을 고취시키고 발명기금도 조성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그는 또 발명교육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문교육기관의 설립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가없는 은혜 기려/어제 스승의 날

    제11회 스승의 날 기념식이 15일 상오 서울 강남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조완규교육부장관,현승종한국교총회장,교육계원로,교사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김병렬서울사대부국교장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등 교육발전에 공이 큰 교육자 4천8백62명이 훈·포장및 표창을 받았으며 시·도교육청별,학교별로도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펼쳐졌다. 이날 조장관은 치사를 통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세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교사들의 노고를 치하한뒤 『다가올 21세기를 맞아 창의력과 다양성을 길러주는데 힘을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 기계국산화에 반평생/금탑훈장 받은 제일중기 강종대대표

    ◎톱니절삭기·프레스등 미에 역수출 『산업에 기여하는 기계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망입니다』 14일 전국중소기업자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강종대 제일중기공업대표(64)는 『상을 받게되니 책임감이 더 무거워진다』고 겸손해 했다. 강사장은 낙후된 기계공업분야에 전념해온 외곬 중소기업인이다. 대학에서의 전공(동아대기계공학과)을 살려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불모시절인 지난 58년 제일기계를 설립한후 34년간을 한눈을 팔지 않고 기계공업기술개발을 위해 뛰어다녔다. 그 결과 지난 78년에는 수입에 전량 의존하던 기어를 만드는 기계인 치차절삭기를 일본기계제작소와 기술제휴,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을 비롯,판금물을 가공하는 프레스의 국산화에도 기여해 수입대체효과를 높였다. 기계공업분야에서 국산화 실적이 가장좋다는 평을 받고있는 제일중기공업은 국산화를 이룬제품·부품등을 미국·중남미지역을 중심으로 수출,지난해에는 1백5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강사장은 여느기업처럼 중소기업을 경영하는데 자금문제와 노사문제가 어려웠다고 밝힌다. 『노조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회사를 이해하는,서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노조의 이해가 있어야 회사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강사장은 대기업에도 노조가 별로 없던 시절인 지난 76년 노조를 인정했다.퇴직금의 범위내에서 내집마련 자금도 지원하고 장학회를 통해 학비도 보조해주는등 종업원들의 복지면에 남다른 신경도 쓰고있다. 제일중기공업은 기술인력양성이 중요하다는 강사장의 경영방침으로 근로자들을 매년 일본등에 연수시키고 외국의 전문가를 초빙,기술강연을 듣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노사분규가 없는 노사화합,강사장의 장인정신과 경영철학으로 기계1대 직원20명으로 출발한 제일중기공업은 지난해 2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급성장을 했다.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기계공업분야에 전념해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알찬 기업을 만들도록 하는것이 꿈입니다.또한 종업원들의 근무·복지수준도 업계 최고가 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계공업의 국산화와 수출에기여한 노중소기업인의 다짐이었다.
  • 중기 「공제사업기금」 대폭 확대/전국중소기업자대회서 강조

    ◎노 대통령/2∼3년간 세금감면방안 곧 마련/인력난덜게 시설자동화 지원/까다로운 창업절차 연내 간소화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정부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중소기업 공제사업기금을 계속 확대하고 중소기업 구조조정기금을 내실화 할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전국 중소기업자대회에 참석,치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빠른 시일안에 세제를 개편하여 중소기업에 대해 앞으로 2∼3년동안 세금을 크게 줄여주는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또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은행의 자본금을 늘리고 중소기업의 담보능력을 보완해 주는 신용보증기관에 대한 정부출연금을 늘려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기 위해 시설자동화와 정보화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외국인 기술연수제도를 신축적으로 운용해 나가겠으며 중소기업의 창업이나 공장건설·경영면에서 느끼고 있는 각종 행정규제나 번잡한 절차도 연말까지 대폭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중소기업도 이제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만 의존하는 시대가 지났다』면서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앞장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전문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중소기업자대회가 14일 상오 세종문화회관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와 중소기업자 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는 기계공업분야에 공헌한 강종대 제일중기공업대표가 금탑산업훈장을 받은것을 비롯,중소기업의 발전에 공이 큰 중소기업인,근로자,유관기관 공로자 1백42명과 5개의 우수조합이 산업훈장,산업포장,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 수리남외무에 훈장

    노태우대통령은 12일 하오 청와대에서 수리남의 숩하스 찬드라 문그라외무장관을 접견,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 노 대통령,효자·효부등 198명과 어버이날 대화

    ◎“역경속의 효행 참 장하십니다”/“64세에 90세 시모 봉양 본받아야/5대한가족 모두에게 부러운 일”/희생정신 소개될때마다 박수로 격려 제20회 어버이날인 8일 낮 노태우대통령은 효자·효부,장한 어버이,전통모범가정의 가장,노인복지 공로자등 어버이날 수상자 1백98명을 청와대로 초청,한식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노고를 위로했다. 1시간30분동안 계속된 이날 오찬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17살에 청각장애 남편과 결혼,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3남3녀를 훌륭하게 키운 조용순할머니(64)의 이야기등 감동적인 인생역정이 소개될 때마다 박수로 격려했다. 식사에 앞서 노인복지 공로자 김자현씨가 나라의 발전과 노대통령내외의 건승을 위해 건배를 제의한데 이어 노대통령이 참석자들의 수상을 축하하는 건배제의로 답하는등 모임은 시종 따뜻하고 흐뭇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노대통령=(국민훈장을 받은 조용순할머니에게)병환중인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장애인 남편을 돌보시느라 고초가 크셨겠습니다. ▲조=시어머니는 올해 90세이고 건강하십니다.3남3녀 가운데 셋째아들만 미혼이고 전부 결혼했습니다. ▲노대통령=이제 효도를 받아야 할 연세이신데도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남보다 뛰어난 효행을 실천하고 계시니 참으로 장하십니다.(국민포장을 받은 금기호씨에게)노모께서 오랫동안 와병중이고 막내동생도 맹인이고 부인마저 3년전에 실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집안일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요. ▲금=어머니,막내동생,아내의 병수발과 빨래,부엌일,농사일등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맡아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금선생의 효행과 희생정신은 만인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기 바랍니다.(장한 어버이로 국민포장을 받은 조어빈여사에게)자녀들 모두가 훌륭하게 성장했다지요.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나요. ▲조=큰애는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상공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는 지청장을 지낸뒤 법무연수원 과장으로 있으며 다섯째 딸은 소아과의사입니다. ▲노대통령=돌아가신 남편,시부모의 병구완등 남다른 효행을 하셨고 남몰래 불우이웃까지 돕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건강하고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노인복지 기여자로 국민훈장을 받은 김경학씨에게)양로원을 경영하고 계시다지요.고향이 이북이라고 들었는데 오갈데 없는 노인을 돌보기로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대구에서 영락경로원을 경영,모두 1백13명을 돌보고 있습니다.고향에 두고온 올해 93세가 될 아버님을 그리다가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아버지처럼 모시기로 했습니다. ▲노대통령=김선생을 포함해 연세가 드신 이산가족들이 하루속히 재회할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전통모범가정으로 보사부장관 표창을 받은 장금순여사에게)가족은 어떻게 되나요.할머니 연세는 얼마이신지요. ▲장=시할머니,시부모,저희 부부,아들내외,손자·손녀등 5대 12명이 함께 삽니다.할머니는 금년에 1백세이시고 몇년간 백내장으로 고생하시다가 올해 수술을 받고 이제는 앞을 제대로 보십니다. ▲노대통령=요즘 핵가족화 현상으로 부모를 모시는 것조차 꺼리는 풍조가 늘어나고 있는데 5대가 화목하게 함께 사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할 일입니다. ▲노대통령=예로부터 우리는 효를 모든 덕목의 근본으로 삼아왔습니다.우리민족이 반만년의 역사속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않고 오늘날 이만큼 당당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효의 정신이 원천이 되었습니다. 산업사회의 특징에 맞는 효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여 온 국민이 힘써 실천하는 도덕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통일을 이루고 한단계 더 높은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 효자·효부 5백20명 포상

    정부는 어버이날을 맞아 8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기념식을 갖고 장한 어버이와 효부·효자등 5백20여명에게 훈·포장및 표창장을 수여했다. 훈·포장을 받은 사람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민훈장 ▲조용순(64·여·경기도 시흥시 계수동331의2·동백장) ▲원득희(71·여·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4가11의6·목련장) ▲은순기(60·여·대구시 달서구 송현2동 광명아파트 가동302호·〃) ▲노진옥(51·농림수산부 국립농산물검사소 경남지소 울산출장소·석류장) ▲박귀연(64·여·부산시 동구 수정1동1011·〃) ▲김경학(61·대구 영락양로원장·〃) ◇국민포장 ▲김영임(62·여·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475) ▲금기호(54·경북 경주군 안강읍 검단2리1036) ▲김영자(54·여·경남 충무시 명정동247) ▲조어빈(64·여·광주시북구 운암동447의 29) ▲김자현(62·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김종백(54·전북 부안여상 교사) ▲양순임(44·여·서울 도봉구 창동241의4) ▲오세의(45·여·인천시 북구 부평동177의7) ▲김월화(46·한국방송공사 대구방송국 직원) ▲임완순(51·여·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주공아파트216동502호)
  • 재향군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사설)

    계절의 여왕이라는 싱그러운 5월은 꽃과 나무,훈풍의 풍성함에 못잖게 각종 행사로 더한층 풍요롭다. 어린이날이 지나 어버이날이 왔고 부처님 오신날을 지나면 스승의 날로 이어진다.그러다보니 오늘 8일은 제40주년 재향군인의 날이다.6·25동란 중인 52년,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장병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재향군인회가 국가안보를 위한 후비군사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오기 40년에 이른 것이다. 지난달 26일의 일이었다.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는 얼룩무늬군복의「관중」들이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경쾌한 군가를 합창하고 있었다.무대위에서는 해병대 팔각모에서 삐져나온 흰머리의 군인들의 춤판이 한창이었다. 그들도 역시 재향군인들이었다.해병전우회중앙회가 전현직 장성 서른한명과 예비역장병 가족등 7천여명을 초청해서 벌인 해병대사령부창설기념 모임이었다.우리 국군중 어느 군의 기념모임이어서 라기보다 국가안보의 후비군으로서는 물론 한사람의 성실한 시민으로서,또 훌륭한 산업역군으로서 재향군인들의 오늘의 모습을 볼수 있는 장면이어서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됐다. 나라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한번 국민이면 영원한 국민이듯이 나라가 지켜지고 안보가 유지되는한 이 나라 국민 누구나 한번 군인이면 영원한 군인일수 있다.그 재향군인회는 지난 40년동안 과도기적 전환기 속에서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연면히 이어져 지금은 4백60여만명의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나라와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국민들은 불혹의 연륜에 이른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와 우리들의 재향군인들에게 경하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건 군의 현역을 물러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재향군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된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그들 재향군인의 날엔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역전의 용사들이 현역복장으로서 거리에 나와 시가행진을 벌인다.지난날 용사답게 가슴에는 훈장들이 번쩍이며 더러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에 의지한 용사들의 얼굴도 그렇게 밝고 자랑스러운 모습일 수가 없다.지난날 조국수호의 대열에 앞장서 싸웠고 오늘엔 국가발전과 사회공익에 기여함으로써 그 긍지와 자존심을 유지하는 재향군인들은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같이 일등국민이라 아니할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부터 재향군인의 날에 시가를 행진하는 예비역장병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장령출신이건 사병출신이건 가릴것 없이 그들 각자가 이 나라 이사회의 손색없는 지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그들을 가리키는 베테랑 뜻 그대로 그들은 고참이고 숙련자들이다.재향군인들의 존재의미는 그래서 더 큰 것이다.
  • 오늘 20회 어버이날/효자·효부·경노유공자등 훈장·표창

    8일은 스무번째 맞는 어버이날.정부는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등 전국에서 각 시도별로 기념식을 갖고 효자·효부와 노인복지에 공이 큰 5백20명을 표창한다.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1백살 이상의 장수노인 3백80명에게 탁상시계를 선물한다. 정부는 이날부터 14일까지를 경로주간으로 정하고 각 시도별로 「경로위안및 체육대회」와 노인무료진료·노인복지세미나 등을 갖는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 효행이 뛰어난 조용순씨(64·여·경기도 시흥시 계수동331)가 국민훈장 동백장을,원득희씨(71·여·서울 영등포구 문래동4가11)가 국민훈장 목련장,노진옥씨(51·국립농산물 검사소 울산출장소)가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는다.
  • 수리남 외상 11일 방한

    수리남공화국의 슈하스 찬드라 문그라외무장관이 이상옥외무장관의 초청으로 11일부터 13일까지 한국을 공식방문한다. 문그라외무장관은 방한기간중 노태우대통령을 예방하고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받을 예정이며 이외무장관과 한·수리남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관계증진방안에 대해 협의한다.
  • 오늘 70회 어린이날/글짓기대회등 행사 다채

    오늘은 제70회 어린이날. 전국 각 시·도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기념식과 글짓기대회,체육대회등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며 정부는 아동복지향상에 크게 기여해온 천안시 삼일육아원 원장 김옥화씨(68·여)등 75명에게 훈·포장을,모범어린이 1백14명에게는 보사부장관 표창을 수여한다. 노태우대통령도 이날 낙도어린이 30명과 소년·소녀가장 60명,시설어린이 1백50명,일반가정 어린이 41명등 모두 2백81명을 청와대로 초청,청와대 시설을 견학시키고 학용품과 탁상시계등 기념품을 줄 예정이다. 육군사자부대는 이날 상오9시부터 하오5시까지 성남시·하남시·광주군·용인읍 국교생과 학부모 1천여명을 초청,고공침투시범과 그림그리기·글짓기·보물찾기등 어린이날 행사를 연다. 대한항공은 오는 10일 시설아동과 소년·소녀가장을 비롯한 어린이 1천명을 초청,항공기 4대를 이용해 전국일주를 시켜주기로 했다. ◇국민훈장 ▲김옥화(동백장) ▲임혜옥(72·여·혜심원원장·목련장) ◇국민포장 ▲곽종옥(65·풍익보육원 원장) ▲이상철(81·남해자애원 원장) ◇대통령표창 ▲이혜윤(72·여·우리집원 원장) ▲이석은(59·여·순창애육원 원장) ◇국무총리표창 ▲이지숙(48·여·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정현태(61·여·광원 원장) ▲이정순(65·여·신애원 원장) ▲김민자(55·여·신아원 원장) ▲은희현(45·문화방송 직원)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오늘 「체신의 날」

    체신부는 22일 상오9시 체신부 대회의실에서 제37회 체신의 날 기념식을 갖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체신부 기획관리실장 이계철씨가 홍조근정훈장을,이종구아세아화학공업사장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등 체신사업발전에 기여한 유공체신공무원과 외부인사에 대한 정부포상과 체신부장관표창이 수여된다. 한편 전국의 우체국은 이날 우편창구업무를 평상시와 다름없이 취급하지만 일반 배달업무는 휴무한다.
  • 장애인의 날 12돌맞아 국민훈장 받는 박근수씨

    ◎“사재털어 맹인자립 부축 15년”/난립 41개단체 묶어 「복지회」결성/9살때 실명… 교사·역술가로 재산모아/77년 「동진회」만들어 장학금등 지급/“동정보다는 지속적 관심·사랑을” 20일은 열두돌을 맞는 세계장애인의 날. 한국맹인복지연합회장 박근수씨(47)에겐 이날처럼 가슴뿌듯한 날이 또 없다. 지난 77년부터 시각장애자들의 재활과 자립을 부축하는데 사재를 털어가며 헌신해오기 15년. 이제는 그동안 서로의 이해관계에 얽혀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41개 단체를 하나의 연합회로 묶고 어엿한 회관까지 마련했다. 박씨는 이같은 공로로 이날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됐다. 『큰 일을 한 것도 없는데 이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돼 부끄럽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연합회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종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장애인 개개인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동안 지역별로 조직돼 있던 각 단체들이 개개인의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조직된 개인중심의 모임이었다면 연합회는 제도적 차원의 장기적인 지위향상방안등을 강구하는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앞으로 맹인들이 할 수 있는 각종사업의 개발과 함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공공편의시설의 확충,승차요금할인,교육시설확대등을 촉구하는 등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주가 고향으로 철부지였던 9살때 폭발물을 가지고 놀다 두눈이 먼 박씨가 같은 맹인들을 한데 묶을 연합회의 창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77년부터. 스무살이던 65년에 서울에 올라와 서울맹학교를 나와 2년남짓 교사생활을 한데 이어 돈암동과 방배동 등지에서 역술점과 안마시술소를 경영,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되자 자신보다 더 불우한 맹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동진회라는 봉사단체를 발족시켜 이웃의 불우한 맹인들과 그 자녀들에게 생계비와 학비등을 대줬고 갖가지 경조사 때도 빠짐없이 찾아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따라 결성된 갖가지 단체들이나 관계자들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조정하거나 이익을 대변할 연합기구가 없는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마포사회복지회관의 한귀퉁이를 빌려쓰는 한국맹인복지협회가 있었으나 재정형편등이 어려워 사실상 유명무실한 실정이었다. 89년 이 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보사부등 관계기관으로 뛰어다니며 백방으로 탄원을 했다. 그러기를 1년남짓만에 노원구 상계6동에 맹인들을 위한 복지회관을 세울 3백여평의 땅을 확보하게 됐다.1억4천만원의 사재를 털고 보사부와 서울시에서 지원한 공사비등 모두 6억원으로 90년9월 지하1층,지상3층짜리 서울맹인복지회관을 완공했다. 이곳에서는 40여명의 직원들이 맹인들의 자활과 자립을 위한 각종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안마,침술,역술등의 기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장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물질의 도움보다는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라는 박씨는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사회전체가 책임감을 가지고 장애인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것』이라고 장애인들을 외면하기 일쑤인 국민들의 의식전환을 간절히 바랐다.
  • 「장애인주간」행사 다채

    20일은 유엔이 정한 제12회 장애인의 날. 정부는 이날부터 오는 26일까지를 장애인주간으로 공포,이 기간동안 각종 기념행사와 문화·체육행사 등을 다채롭게 펼친다. 20일 서울에서는 상오11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14개장애인복지단체주관으로 5천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린다. 또 올림픽유스호스텔에서는 15개국 3백12명의 장애인이 참가한 「92서울 아시아·태평양 농아인대회」가 27일까지 계속되고,21일에는 3백명의 정신지체인이 만든 공예품등의 전시회가 서울정신박약자복지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2일 서울시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강당에서는 한국장애자재활협회주최로 장애예방대책에 관한 세미나도 개최된다. 한편 20일의 기념식에서는 장애인복지에 공이 큰 한국맹인복지연합회 박근수회장(47)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것을 비롯,유공자 12명이 국민훈·포장,대통령표창 등을 수여받는다.
  • 일 「적기」 전 평양특파원 하기하라 료씨 폭로(인터뷰)

    ◎“김일성 「조선해방설」은 날조”/45년9월까지 소군서 복무… 인민군 지휘한적 없어/「김정일 백두산 출생」도 허위,하바로프스크 태생 『김정일에게 젖을 먹였던 이재덕여사를 만나 그가 백두산에서가 아니라 구소련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북한 김일성의 과거 경력의 허구성을 집중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있는 일본인 하기하라 료(추원료)씨는 최근의 조사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 공산당기관지 「적기」의 마지막 평양주재 특파원을 지낸 그는 지난해 모스크바,타슈켄트에 이어 금년엔 북경등을 오가며 김일가의 과거를 집중 취재해왔으며 현재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미정부문서기록보관소의 한국전쟁관련문서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김일성은 항일투쟁중 백두산에서 김정일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는 42년4월 하바로프스크에서 낳았지요.김일성이 소련극동방면군 보병88여단의 대위로서 제1대대장을 맡고 있을 당시 그의 처 김정숙과의 사이에 정일을 낳았으며 그때 젖이 모자라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던 이재덕여사가 대신 젖을 먹여주었다더군요』 그는 지난1월 북경으로 이여사를 찾아가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들었는데 올해 75세인 이여사는 자신이 88여단의 통신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때의 일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기하라씨는 북한교과서엔 김일성이 45년8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총공격명령을 내려 조국을 해방시켰다고 돼있지만 당시 김은 북한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그는 모스크바에서 소련군사 역사가인 그레고리 쿠주민교수를 만나 88여단의 군사문서기록을 접할 수 있었다. 그 내용 가운데 당시 이 여단엔 김일성을 비롯,66명의 한국인대원이 있었고 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한후 한달여만인 9월에 이 여단이 해산되면서 훈장수여식이 있었는데 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전투적기훈장」을 받았던 것으로 기록돼있다는 것이다.따라서 김은 적어도 45년9월까지는 소련에 있었지 북한엔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작년말 하기하라씨는 해방후 북한에 진주했던 소련군사령부의 서열3위였던 니콜라이 데베제프장군(90)을 만나 김일성의 과거 즉 13세때부터 항일투쟁에 참가,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했다는 사실이 날조된 것임을 알수있었다고 말했다.
  • 어제 임정수립 73돌/유공 2백여명 포상

    정부는 13일 상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정원식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임시정부관련인사및 유족·정당대표·시민등 1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3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식을 갖고 독립유공자 2백명을 새로 포상했다.기념식에서는 임정 교통차관을 지내고 군무부 참모차장으로 광복에 헌신한 김철남선생등 3명에게 건국훈장 독립장,광복군 정훈조장과 임정 문화부 선전부 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송면수선생등 7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그리고 일제고관을 살해하고 탄약제조및 제조기술자 양성과 흥사단항일활동을 했던 김공즙선생등 10명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서훈했다. 이밖에 독립유공자 가운데 민병두선생등 13명에게는 건국포장,강대년선생등 1백67명에게는 대통령표창등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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