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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휘소박사 잘못알려져 있다”

    ◎재미과학자 강경식교수,월간 「과학과 기술」에 기고/소립자 이론 전공… 「핵개발」 운운은 난센스/“「미첩보기관에 의한 교통사고 위장사」 허위” 『고 이휘소박사는 유신정권의 핵개발프로젝트와 전혀 무관한 소립자이론 물리학자였을 뿐이다』­최근 이박사의 죽음을 핵개발사업과 결부시킨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의 영화화가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지자 생전에 고인과 가까웠던 한 재미과학자가 『소설속의 이박사 생애는 완전히 왜곡,날조됐다』며 지적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브라운대 강경식교수(소립자물리학)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발행하는 월간 「과학과 기술」 1월호에 특별기고를 통해 『이박사의 죽음이 엉뚱하게 꾸며져 자꾸 퍼뜨려질 경우 한·미관계가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 전 엄격한 고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교수는 우선 이박사의 전공이 핵물리학이 아닌 고에너지 소립자이론 물리학이었음을 일깨우고 있다.소설의 저자가 핵물리학과 소립자이론 물리학의 엄청난 차이를 구별 못하고 엉뚱하게 핵물리학자 또는 핵공학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더구나 대다수의 미국물리학자들처럼 그도 핵무기확산을 반대하는 과학자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강교수는 회고했다. 강교수의 두번째 지적은 이박사의 성향과 관련된 문제.70년대의 재미교포 지성인이 대부분 그랬듯이 이박사도 유신정권을 반대하고 문민 민주체제로의 환원을 열망했다는 주장이다. 한 예로 강교수가 그에게 모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참석을 권유했을때 『유신체제 상황의 한국 방문은 말도 꺼내지 말라』고 면박당한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강박사는 또 70년대 박대통령이 직접 동백장훈장 추서를 지시했다는 내용도 일축했다.당시 한국과학원교수였던 고 조병하박사등이 주축이 된 한국물리학회가 『교포학자도 고국의 이름을 빛냈음을 후학에 알려 자극제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훈장추서를 건의했다는 것이며 당시 물리학회내에서는 『이박사가 고국에 봉사한 일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강교수는 전했다. 강교수는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박사가 유신정권과 밀착,소신에 어긋나는 핵개발프로젝트에 깊이 개입했다가 미국 첩보기관의 관여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설은 한마디로 국제적인 웃음거리일 뿐』이라 결론짓고 고인의 인격을 더 이상 손상시키지 말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한편 강교수는 70년대초 이박사와 함께 재미한국과학자협회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서로 가정을 왕래하는등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작년 전국쌀증산왕 이천 한천희씨(농산물개방/극복의 현장)

    ◎“다수확 비결은 땅심”… 지력증진에 실혈/토양 정밀조사후 가지·이삭거름 적절히/단보당 8백51㎏ 수확… 농가평균 배 넘어 93년 전국 쌀재배 최우수농가로 선정돼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경기도 이천군 와현리의 한천희씨(42). 한겨울인데다 하늘마저 유달리 춥게 느껴진 6일 하오 김씨는 마당앞 퇴비장에서 열심히 두엄을 개고 있었다.우루과이라운드다 쌀개방이다 해서 전국의 농촌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그는 개방시대의 해결책이 두엄속에 있기라도 한듯 묵묵히 두엄더미만을 뒤적였다. 바쁜 일손에 동네 이장직까지 맡고있는 그는 서울로 떠난 부모와 동생들을 뒤로하고 홀로 고향에 남아 과학영농을 실천해온 의지의 농군이다. 한씨는 지난해 이상저온현상에 따른 극심한 냉해에도 불구하고 단보당 8백51㎏의 쌀을 생산,일반농가의 평균생산량 4백18㎏의 2배 이상 수확을 올렸다. 그러나 농사꾼으로서 이같은 최대영광을 안기까지에는 그의 치밀한 과학영농 추구와 피나는 노력이 배어있다. 지난 91년 이천군 다수확상을 수상한 한씨는 군의 추천에따라 이듬해 경기도 다수확부문에 도전,역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고무된 한씨는 이번에는 전국 다수확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영농방법을 면밀히 분석,우량품종 선택과 지력증진을 위한 최상의 과학영농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때묻은 영농일지엔 제일 먼저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결과가 적혀있다.그는 우선 다수확의 선결요인이 땅심에 있다고 판단,출품할 3단보의 논에 대한 정밀 토양검증을 농촌지도소에 의뢰했다.그리고 지도소의 처방에 따라 단보당 볏짚 5백㎏을 절단해 투입하고 부식함량을 높이기 위해 두엄 2천㎏도 1년간 묵혀 완숙된 것을 사용했다.게다가 전해에 거둬들인 들깨짚 2백여㎏까지 알뜰하게 섞어 토양가꾸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지력향상에 필수인 규산질비료 7백50㎏과 용성인비 3백㎏도 빠짐없이 쓰는 한편 평소보다 5㎝가량 깊은 18㎝이상의 깊이갈이를 했다. 비료는 가지거름으로 단보당 요소 8.3㎏을 주고 이삭거름으로는 단보당 12.3㎏의 복합비료를 투여했다. 한씨는 농민들 대부분이 이삭이 달리기 시작하면 일체의 비료를 사용치 않고 있으나 낱알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삭거름 시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를 낼 논에는 단보당 42㎏의 밑거름과 벼가 썩어들어가는 문고병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농민들이 밭에만 사용하는 붕사 등을 과감히 시비하는등 본답관리를 시작했다.그리고 이앙은 기계를 사용치 않고 손모내기를 했다.이 과정에서 그의 피나는 노력을 지켜본 동네 청년 20여명이 달려들어 품삯도 거부한채 모내기를 돕기도 했다. 물관리는 6월부터 9월 말까지 5∼7일 간격으로 일정하게 실시했다.7월 중순이후 이상저온현상이 지속되자 한씨는 물의 온도를 높여주기 위해 논주위에 투명비닐호스를 설치,대낮의 태양열을 이용해 호스안의 물온도를 2∼3도가량 높여 공급했으며 병충해 방제는 5월 벼물바구미 방제를 시작으로 모두 9회에 걸쳐 실시했다. 지난 76년 군에서 제대한후 물려받은 5천여평의 논을 기반으로 첫 농사를 시작한 한씨는 2년뒤인 78년 장호원읍에서는 최초로 콤바인등을 구입,기계화영농에 앞장서 선배 농군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의 억척같은 농사열기에 수확도 매년 늘어 재산이 불어나갔고 이제는 2만5천평의 전답에 묘목단지와 양돈까지 겸해 연간총소득 6천만원에 달하는 부농으로 성장했다.
  • 육사 이원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일제하 17차례 옥고치른 저항시인/의열단 가입,조선은행 폭탄투척 등 주동/32세에 첫시 발표… 민족의식 고취 앞장/첫 수감번호 64를 호로… 40세 옥사 「어데다 무릎을 꾸려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절정에서) 육사 이원록선생은 절정·광야등 저항시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운 민족시인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이다. 최초 일제에 체포됐을 당시 수감번호 64의 음을 따 아호를 지음으로써 나라 잃은 슬픔을 가슴에 간직한채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일생을 바쳤다. 육사는 1904년4월4일 5형제중 2남으로 태어나 41세인 1944년1월16일 북경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무려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진성 이씨로 퇴계 이황선생의 14대손인 육사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881에서 아버지 이가호씨와 어머니 허길씨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다. 그는 1921년 18세때 경북 영천의 안일양씨와 결혼,영천의 백학서원에서 공부하다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2년뒤 일본으로 건너 갔으며 도쿄 소재 대학에 다니다 중퇴하고 1925년 귀국했다. 선생은 이어 형 원기,동생 원유씨와 함께 항일 무장투쟁 결사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은 1927년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장 앞으로 벌꿀을 위장한 폭탄 상자를 보내 일경 5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건을 일으켰다. 선생은 이 사건 발생 직후 형제와 함께 일경에 주동자로 지목돼 체포돼 쇠꼬챙이로 지지기,대꼬챙이로 손가락 사이 훑기,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붓기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을 겪은 뒤 대구지방법원에 기소됐으며 수감번호는 64였다. 2년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선생은 출옥후 의열단원 윤세주씨가 운영하고 있던 중외일보 기자로 일하며 청년지도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중 1929년11월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또 다시 예비검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1931년1월21일 동생과 대구경찰서에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는 대구에서 반제 배일 격문이 시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으며 선생은 격문 작성자 또는 비밀결사 혐의를 받은 것이다. 선생은 3개월만에 출소하자 중국 북경으로 탈출,심양에서 김두봉의열단장을 만나 독립운동 방법을 논의하고 귀국했다. 육사는 1932년6월 북경으로 가 중국의 대문호 노신과 교유,나중에 노신의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다. 선생은 북경에서 본격적으로 무장항일운동에 뛰어 들기로 하고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간부훈련반에 입학했다. 이 훈련반은 김두봉단장이 황포군관학교 재학 당시 장개석총통에게 부탁해 한국청년의 군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남경에 설립된 군관학교이다. 선생은 이 학교 정치조에 소속돼 6개월 동안 비밀통신·선전방법·폭동공작·폭파방법등 게릴라훈련을 받고 1933년5월15일 귀국했다. 선생은 차기 교육대상자 모집,국내 민족의식 환기,혁명사상 조성과 국내정세 파악등의 비밀 임무를 띠고 상해·안동·신의주를 거쳐 입국한 것이다. 선생은 이 임무를 비밀리에 수행하던중 1934년5월22일 서울에서 경기경찰에 피체돼 한달만에 기소유예조치로 석방됐으나 이미 건강이 매우 상한 상황이었다. 선생은 그래서 당시 진로를 놓고 크게 인간적 고뇌와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 과연 의열단밀명을 계속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광복을 위한 투쟁대열에서 벗어나 은둔할 것인가. 선생은 결국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글과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쳐 주고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북돋는다는 새로운 항일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같이 결정한 선생은 바로 북경으로 가 문인으로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이후 선생은 정치·사회분야에서 폭넓은 작품활동을 전개,1935년 개벽지에 「위기에 임한 중국 정국의 전망」,「중국 청방비사 소고」등을 발표했다. 다음해인 36년에는 처음으로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는 시를 발표,시인으로 등장했다. 또 해조사·노정기·질투의 반군성·무희의 봄을 믿아서등 산문을 내기도 했으며 꾸준히 평론과 수필을 발표했다. 이어 1939년에는 절정·남한산성·청포도등 주옥같은 시를 썼으며 영화에 대한 문화적 촉망,시나리오 문학의 특징등의 영화 예술부문의 평론을 문장 냉광등 잡지에 선보였다. 1941년 선생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으나 파초·독백·자야곡등의 시를 지었으며 연인기·산사기·중국현대시의 일단면등 수필도 짬짬이 썼다. 1942년에는 사실상 유고인 광야를 발표했다. 그러던 선생은 귀국한지 두달만인 1943년7월 갑자기 서울동대문경찰서에 연행돼 북경으로 이송됐다. 그가 무슨 영문으로 체포됐는지 조차 몰랐던 가족들은 돌연 1944년1월6일 「북경감옥에서 사망했으니 유해를 찾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깜짝놀라 북경으로 달려갔다. 북경주재 일제영사관은 선생의 유해를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담은 조그만 상자를 내줄 뿐이었다. 선생은 병마와 싸우며 죽는 순간까지도 많은 작품을 써내 이 민족에게 빛을 던져준 민족시인이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83년 문화훈장 금관장을 추서했다.
  • 컴퓨터 게임/“재미있는 지능훈련” 새해연휴 건전하게

    ◎과학적 대응사고 기르는데 효과적/조상슬기 다룬 「오성과 한음」 등 많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연말연시.부모가 자녀와 함께 컴퓨터게임을 즐겨보면 어떨까.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듯 컴퓨터게임에는 폭력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할만한 지적인 게임도 적지 않다.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다보면 게임에 대해 알게 되어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는데도 효과적이다. 특히 투자·농산물·환경 등과 관련한 시뮬레이션게임은 조만간 또는 미래에 예상되는 여러 난관에 대비해 과학적이고 대응적 사고를 함양하는데 좋다. 연말연시 가족이 함께 즐길수 있는 건전한 컴퓨터게임을 소개한다. ◇오성과 한음=조선 선조때의 인물인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소재로하여 현대적인 아이디어로 재구성한 게임.국내 최초로 개발된 퍼즐형 어드벤처게임으로 20개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다.감 따기,훈장님의 꿀 훔쳐먹기,왜군 격퇴하기,아기도깨비 구출하기 등 각 스테이지별로 주어진 난관을 두 인물이 협동하여 극복해 다음스테이지로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이다.천진난만한 재치와 유머로 가득차 있으며 옛선인들의 지혜를 되새겨 볼 수 있다.금성소프트웨어 출시. ◇심팜=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처음 일정크기의 농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연적인 재해및 병충해로부터 농작물과 가축을 잘 보호하고 기른후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을 남겨 농장을 넓혀가는 게임이다.농사계획을 세워 적절한 시기에 작물을 심고 물을 공급해야 할 뿐만아니라 시기에 맞는 농약살포,농기계를 이용하는데 따른 비용부담,적절한 판매시기의 선택 등 농장운영에 따른 제반 손익계산을 잘해야 한다.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농산물 수입개방을 앞두고 과학적인 영농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SKC소프트랜드 출시. ◇바닥에서 재벌까지=자금투자 시뮬레이션 게임.부모로부터 받은 20만달러의 돈으로 독립해서 주식·채권·석유·금 등에 잘 투자해서 재벌이 되거나 망해서 거지가 되는 게임.컴퓨터·전화·텔레비전·라디오·신문·비서·정보원 등을 통해 각종 거래정보를 수집해 쌀때 사고비쌀때 팔아 이익을 낸다.가끔 잘못된 정보나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재앙이 닥칠 수 있다.현실적인 투자요령을 익히기에 알맞은 게임이다.동서게임채널 출시. ◇쥬라기공원=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쥬라기공원을 게임화한 것.8개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다.주인공인 인류학자 앨런 그란트박사로 하여금 여러 공룡우리와 방문객센터를 거쳐 헬리콥터로 섬을 빠져나가도록 하는 게임이다.박사에게 주어진 총과 페이저라는 무기는 공룡들을 잠시만 무기력화할 따름으로 각 스테이지는 복잡하게 얽혀진 수수께끼와 미로를 풀어야만 빠져나갈 수있어 흥미진진하다.동서게임채널 출시. 이밖에 출시를 앞두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고구려시대를 배경으로 만주영토를 확장하는 전략게임인 「광개토대왕」,우리별3호에 탑승했던 정다민과 한솔이 29 99년 악당에게 장악된 지구 탈환작전을 벌이는 「고우고우 우리별」,한반도를 대상으로한 전쟁시뮬레이션게임인 「한국전쟁」도 관심을 끄는 컴퓨터게임프로그램이다.
  • 올해의 최우수 창안 공무원/관세청 이철종씨 등 3인

    ◎총무처 선정… 수상 내용을 보면/항공화물 관리 선진화… 연1천억 수지개선 효과/상시 입찰·외국인 세무관리안 등 제도발전 기여 총무처는 행정업무개선을 위한 창안으로 국가예산절감과 불합리한 제도개선에 이바지한 우수창안공무원 67명을 선정,포상했다. 올해의 최우수창안자로 뽑힌 공무원은 관세청의 관세주사보 이철종·김형렬씨와 관세서기 박순익씨. 이들은 비효율적인 통관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의 「국제항공 통과화물관리의 선진화방안」으로 옥조근정훈장과 함께 4백만원의 부상을 받았다. 이밖에 은상(근정훈장)에는 ▲김정현씨(조달청 행정사무관)등 3명=정부공사입찰참가방법개선 ▲김종관씨(국세청 세무주사보)등 3명=외국인·재외국민에 대한 상속세등 세원관리강화방안 ▲김성우씨(관세청 관세서기)등 3명=보세공장물품의 수출입절차 간소화방안 ▲박종근씨(철도청 기능직6등급)등 2명=배선번호 색출기 개발 등이 각각 선정됐다. 우수창안자들은 특별승진·특별승급의 인사혜택과 함께 별도의 상여금도 받게 된다. 금상을 수상한 「항공화물관리 선진화방안」은 국제항공통과화물에 대한 입항보고를 항공기가 도착하기전에 할 수 있도록 해 항공기 도착 즉시 하역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통과화물 출항도 일일이 실물확인을 거치지 않고 사후 일괄보고로 대신토록 해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선안은 이밖에 통과화물에 대한 조업전용지대를 설치해 일반수출입화물과 뒤섞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정부는 이같은 개선방안을 통해 국내 관련업계의 경쟁력 향상과 함께 해마다 1천억원 이상의 무역외수지 개선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정부공사 입찰참가방법 개선안」은 입찰장에 입찰함을 설치,희망자가 아무때나 입찰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상시입찰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이를 통해 입찰시간을 줄이는 한편 담합의 여지를 없애 조달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지금까지는 현장입찰방식이 운영돼 많게는 4백여개업체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 혼잡을 빚은데다 담합가능성마저 높았었다. 「외국인 및 재외국민에 대한 세원관리강화방안」은 외국인의 생년월일·성별·국적·여권번호등을 일정 규칙에 따라 종합한 관리번호를 만들어 세무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안이다. 「보세공장 물품의 수·출입절차 간소화방안」은 보세공장 물품의 반입이나 사용,반출등 각 단계마다 해야 했던 문서보고를 컴퓨터통신망을 통한 자동전산보고로 대신토록 해 문서보고에 드는 5천명의 인력을 줄일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밖에 「배선번호 색출기 개발」은 철도차량의 형광등선·공기배출선등 30여개의 전기배선을 기사 2명이 배선 양끝에서 무전기를 통해 점검해 오던 것을 색출기를 통해 1명이 짧은 시간안에 점검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서재필박사 유해 내년 4월 봉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박사(1863∼1951)의 유해가 미국 땅에 묻힌지 43년만인 내년 4월7일 「신문의 날」에 국내로 모셔진다. 국가보훈처는 14일 유족들이 최근 서박사의 유해를 내년 신문의 날을 기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해줄 것을 희망해 왔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에따라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 라우렐힐 공동묘지내 납골당에 안치돼 있는 서박사(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키로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서박사 형의 증손자인 동성씨(미로스앤젤레스거주·변호사)와 서박사 동생의 손자인 희원씨(64·전이화여대교수),서박사의 유해를 관리해온 장익태씨(57·미뉴저지주거주·사업가)등 유족측은 그동안 유해 안장지와 봉환시기등을 놓고 기념사업회및 신문협회등과 협의한 끝에 이같이 최종결정,지난 10일 보훈처에 서면통보했다.
  • 북 외화난 심각/조총련에 송금활동 독려

    ◎김병식 신임부주석에 「돈줄」 관리 맡긴듯/재일 실업가에 사업권 등 미끼,헌금 유도/357개 단체 동원… 대대적 모금운동 전개 북한은 최근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외화부족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조총련에 대해 송금등 대북 지원사업을 적극 전개하도록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총련 부의장 출신의 김병식을 부주석으로 발탁한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인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핵사찰을 끝내 거부할 경우 조총련에 대한 대북 송금중단이 국제 경제제재의 한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송금라인의 지속적 확보라는 중책이 그에게 주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재일 동포실업가 및 귀국자들에게 거액의 헌금을 내는 조건으로 주택건축과 부동산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있다.이를테면 평남 안주시에 거주하는 북송교포 홍모씨(58)는 김일성부자에게 미화 14만달러를 헌납하고 거주지인 안주시내 야산 2백평을 불하받아 단층주택을 건축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밖에도 올들어 재일상공인들의 헌금기피 현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각종 특혜를 미끼로 다양한 유인책을 구사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의 경제건설을 위해 50만달러 정도의 외화를 헌납할 경우 ▲평양과 함흥 등에 조성중인 신도시의 거리 명칭을 헌금자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금강산 생수 등 각종 상품의 상표명을 헌금자의 명의로 해준다는 것이다.이외에도 헌금자의 북한내 연고자가 있을 경우 이들에게 평양거주와 가벼운 노동을 보장해주는 것도 또 다른 유인책이다.특히 헌금액이 1백만달러 이상일 경우에는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하고 두만강유역 자유무역지대 안에서의 각종 편의제공과 북한내 원광 채굴권 등 갖가지 이권을 주는 조건으로 헌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외화난에 처해있음을 부인하고 있지만 조총련 밀반출 자금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이는 조총련이 지난달 19일 도쿄에서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대북지원사업확대를 촉구한 데서도 짐작된다. 조총련은 올들어 이른바 「전승40주」를 맞아 제1부의장 이진규를 단장으로 하는 축하단을 평양에 보내 「축하금」으로 9억엔을 헌납했으며 김일성이 제시한 10대강령 실현을 명목으로 산하단체인 조선신용조합협회를 통해 2조5천3백억엔을 목표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또 산하 3백57개 지부에 대해서는 지부당 1건 이상의 대북 지원물자를 선정해 송부토록 요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조총련계 상공인들로부터 「헌금」이 원활치 않자 지난 7월초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는 부의장 허종만을 책임부의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허는 지난 86년 9월이후 조총련의 경제 담당 부의장직을 맡아온 인물이다. 북측이 이진규 제1부의장과의 조직내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신설직인 책임부의장직에 앉힌 것도 바로 조총련의 대북지원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실제로 허의 부상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가 조총련의 부동산을 부당하게 처분하여 북한으로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표명하는 등 상당한 불협화음을 조성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 동미산업 방문 근로자 등 격려/김 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4일 상오 지난 무역의 날에 중소기업을 대표해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충남 천안군의 낚싯대 전문생산업체인 동미산업(사장 김연호)을 방문,공장을 돌아보며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동미산업은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해 오던 낚싯대 핵심부품의 자체개발에 성공하여 전량 수출하는 중견기업으로 지난해 9백60만불의 수출을 달성한데 이어 금년에는 1천4백만달러를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범 수출업체이다.
  • 오동진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만주 15개독립단체 규합… 대일 항전/정의부 결성 주도… 독립운동 구심체로/미의원단 내한에 맞춰 일인요인 암살/체포된뒤 재판거부 33일간 단식… 44년 옥에서 숨져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출생한 오동진선생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16일 고향인 광평면 시위에 참가,맹렬한 활동을 전개한 뒤 일경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3월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로 망명했다. ○평북 의주서 출생 선생은 이곳에서 윤하진 장덕진 박태렬등을 규합,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했으며 의용대를 편성 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같은해 5월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 있는 이륭양행 2층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기관을 설치하고 안동교통사무국을 두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관할했다. 1919년 12월 선생은 대한의용군사의회·한족회·기원독립단·민국독립단·대한청년단연합회등을 통합,서북간도지방의 교민 통치기관으로 임시정부 내무부 직속의 광복군 참리부와 군무부 직속의 군사기관으로 광복군사령부를 조직했으며 각 지방에는 군영을 두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6월6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이 탁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질적 군대로 광복군총영이 조직돼 사령관에 조맹선,참모부장에 이 탁,경리부장에 조병준이 임명되고 선생은 총영장이 되었다.일제의 끊임없는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장총 2백40여정과 많은 탄약을 이륭양행을 통해 입수하고 항쟁준비를 위한 무장을 강화하고 있을 때 미국의회 동양시찰단인 모리스의원 등 상원의원 일행과 가족 70여명이 1920년 8월14일 서울에 입경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광복군 총영에서는 이 호기를 이용,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여론에 호소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국내 일제 중요기관을 파괴하며 침략원흉과 일제관리등을 처단하기로 했다.1920년 7월 결사대원을 엄선,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 미 의원단 일행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일제관청을 파괴하고 일제요인들을 암살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이 제안하는 동삼성내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적극 찬성하고 양기탁김동삼 현정경 이상용 이 탁등과 광복군총영·서로군정서·한교민단·광복단·독립단·대한청년연합회를 통합,통군부를 조직했으며 2개월후에는 다시 대한통의부로 확대 발족시켰다. ○7백여 병력 편성 이후 군사위원장이 된 선생은 이듬해 6월 신팔균사령장이 전사함에 따라 사령장을 겸직하고 소속 독립군을 총지휘,항일전을 전개한다. 1925년 1월25일경 선생은 통의부의 고문인 양기탁등과 통의부를 중심으로 길림주민회·의성단·대한독립단·광정단·노동친목회·변론자치회·고본계·대한독립군단·학우회등 지방자치단체를 총망라,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정의부를 조직했다.통의부와 마찬가지로 입법·행정·사법기관을 두었으며 중앙집행위원장밑에 내무·군사·학무·생계·재무·외무등 6부를 두었다.군사부에는 정의부의용군을 두고 군사위원장에 이청천(후임으로 선생이 취임),사령장에 선생이 겸무했으며 8개중대에 무장한 7백여명의 병력이 각종 군사활동을 전개,적지않은 전과를 올렸다. 1926년 3월3일 길림성내 양기탁의 집에서 각계 인사들이 연석회의를 열고 고려혁명당을 조직,좌우익이 합작으로 새롭게 통일된 독립운동을 추진하개 된다.당원수는 1천5백여명에 이르렀으며 선생은 정의부 군사위원장으로 총사령을 겸임했다. 이무렵 선생과 가까웠던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하자 1926년 12월16일 장춘시내 구시가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잠복중인 일경에게 잡혔다. 선생은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고 1929년 11월11일부터 33일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1932년 3월5일 강제로 재판정에 서게 된 선생은 광기가 발작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한채 검사로부터 무기징역을 구형받았으며 3월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도 같은 형이 선고됐다. ○18년간 옥고치러 공소를 제기한 선생은 그해 6월 평양에서 1심과 똑 같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더이상 일인의 재판이 필요없음을 깨닫고 상고를 포기했다.7월 장기수를 수용하던 경성형무소로 이감된 선생은 1934년 6월11일부터 48일간의 제2차 단식을 벌인다. 7년간의 형무소생활로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 진선생이 2차 단식에 들어가자 모두들 선생의 정신력에 경이로움을 표시했으며 일본인 형무소장조차 선생과 면담을 할 때에는 경례하고 예를 갖추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인 의사가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이는 바람에 선생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는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그해 5월20일경 옥중에서 순국한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금리·지가·물류비 인하에 총력/개방 확대·경쟁력 강화 주력

    ◎김 대통령,무역의날 기념식서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30일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시장 개방을 계속 추진하겠으며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에도 노력하여 자유무역주의 확산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제3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수출증대 못지 않게 수입자유화도 꾸준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저 자신 수출증대를 위해서라면 지구촌의 어디에라도 달려가서 어느 누구와도 만나겠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다른 나라야 어찌되든 우리의 수출만을 강조하는 이기적인 정책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는 금리·지가·물류비용을 낮추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통화를 신축적으로 공급하고 토지개발을 확대하며 사회간접자본투자를 늘리겠다』며 소득과 저축증대를 통한 자본축적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기술혁신을 산업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겠으며 연불수출금융과 수출보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면서 『중소기업을 돕기위해 상품전시장을 마련하고 해외시장개척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5백여업체 훈·포장 무역의 날 기념식 제30회 무역의 날 기념행사가 30일 상오 김영삼 대통령과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수출입 유공자와 업계대표 등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종합전시장 올림피아홀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효성물산과 동미산업 등 2개업체가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1백50개 업체가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대한석재산업 등 2백여개 업체는 상공부장관 표창을 타는 등 총5백여업체 및 단체가 각종 훈·포장 및 표창을 받았다.
  • 기술 개발… 릴낚시대 세계 석권/금탑산업훈장 동미산업

    『국제화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고가품 위주의 수출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상을 받게된 것 같습니다.밤을 새며 기술 개발과 판매에 힘써 온 1백80여명의 종업원과 모든 협력업체에 이 상을 바칩니다』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낚싯대 전문 생산업체 동미산업의 김연호 회장(62)의 수상 소감이다. 바다용 릴 낚싯대의 수출에 힘써 지난 해 9백58만달러의 실적을 올린 데 이어 올해도 지난 해보다 42%나 늘어난 1천4백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지난 75년 설립된 뒤 처음부터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기술개발에 투자했다.1백80여명의 직원중 기술개발 인력만 30명에 이르고 매년 5∼6명씩 일본 등 선진국에 기술연수를 보낸다.그동안 개발된 신상품만 2백가지 이상이다. 저가품인 유리섬유 제품이 지난 80년대 초부터 개도국의 맹추격을 받자 86년엔 고가품인 탄소섬유 낚싯대의 개발에 집중,「피셔」라는 고유 상표로 세계 24개국에 수출하고 있다.가격이 국내 다른 기업의 낚싯대보다 5∼6배 비싸게 받아 일본과 유럽에서는 1백달러를 넘는다.특히 일본에서 배워온 적외선 건조기술은 일본에 역수출 할만큼 뛰어나다. 업계에 우수한 인력을 많히 배출해 「낚시기술소원장」이란 별명을 얻은 김회장은 『기술 개발 뿐아니라 신용을 지키는 것도 제품 고급화에 중요하다』고 말한다.하자를 줄이는 노력이 신용 획득 뿐아니라 제품 고급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상품중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외국에 직원을 보내 일일이 잘못된 것을 고쳐준다.때문에 일단 동미와 거래를 한 업체는 거래선을 바꾸는 법이 없다. 김회장은 『국내 업체들의 과당경쟁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내수에는 진출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수출에만 주력할 계획이며 품질 향상보다 저임금에만 신경쓰는 해외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주의 시장경제 「비법」 전수/강택민 「20시간 쿠바방문」 배경

    ◎중­소분쟁이후 오랜 앙숙관계 청산/군중 열렬한 환영,「오늘의 동지」 과시 ○최고의 훈장 받아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 참석했던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행선지인 브라질 공식방문에 앞서 잠시 쿠바에 들러 하룻밤을 묵는 동안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중국 TV에서는 강주석이 쿠바 최고의 영예인 호세 마르티 훈장을 받는 모습으로부터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과의 뜨거운 포옹,공항주변 연도에 나온 수많은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모습 등을 비춰주고 있어서 불과 몇년만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했다. ○카스트로와 포옹 소련과 동구에서 사회주의체제가 흔들리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쿠바는 견원지간이었다.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직후인 60년 중국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쿠바와 국교를 맺을 정도로 양국관계는 처음에는 좋게 출발했으나 곧이어 시작된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쿠바가 철저하게 친모스크바 노선을 추종하자 서로 등을 돌린채 살아왔었다.그래서 카스트로는 중국을 「이단자」로 공격하기도 하고심지어는 비동맹회의에서 세계의 불행이 미국과 그 동맹국인 중국에 있다고 까지 비난했을 정도였다. 그토록 매정하게 중국을 매도하던 바로 그 카스트로가 지난 21일밤 아바나의 혁명궁에서 벌어진 강주석 환영 리셉션에서는 『영원불멸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을 중국 현실에 맞도록 영명하게 적용시켰다』고 극구 찬양하는가 하면 중국인구가 거대함을 들어 『아직도 세계 인구의 5분의1 이상이 사회주의 깃발 아래 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중 싸잡아 비난 하지만 중국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북한 베트남 등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모아 맹주 노릇을 꿈꿀 것인가.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중론이다.쿠바로서는 붕괴된 소련 대신 중국을 맏형으로 모셔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으로서는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이런 점에 비추어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은채 견디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는게 중국의 속마음인지도 모른다.그래서 사회주의체제를 허물지 않고도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하는게 가장 큰 쿠바방문 목적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추정되고 있을 정도다. ○위싱턴방문 좌절 강주석의 쿠바방문이 불과 20시간에 불과하고 그것도 시애틀 APEC회담 이후 워싱턴을 방문하려던 당초의 희망이 「한국과의 선약」을 이유로 미국측이 반대하는 바람에 아바나 기착이 결정되지 않았나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시인 이용상씨가 펴낸 「용금옥시대」

    ◎해방후 「거물 술꾼」들 일화 생생히/변영로·오상순·박정희·박종화씨 등장/서울 무교동 추탕집 「용금옥」 무대의 반세기 명정애기/북측통역 「추탕 맛」 물어본뒤 추방당해 용금옥은 서울 한 복판 무교동 골목에 있는 추탕집이다.자리는 한번 옮겼지만 해방 무렵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드문 노포다.서울식 추탕 한가지 만으로 이같은 역사를 이어왔다는 점만으로도 용금옥은 충분히 이야기 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용금옥의 이야기는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 문화 언론의 중심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광화문과 태평로 일대였고 특히 40∼50년대의 용금옥은 거기서도 한다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인 이용상씨(69)가 펴낸 「용금옥시대」(서울신문사간)는 「한국근대인물비화」라는 부제가 일러주는 것처럼 용금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거물 술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이씨가 「술스승」으로 모시던 수주 변영로와 팔봉 김기진·이영세선생을 비롯,중국군시절의 친구이자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공초 오상순,정지용,조병옥,유진오,홍종인,고정훈,선우휘,박정희등과 술로 3각관계가 되어 얽힌 일화들이 담겨 있다. 이씨는 「용상,술깨나마나」라던가,보이는 술집마다 모두 들르는 바람에 「지프타고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일주일」이었다고 구상시인이 회상할 정도의 호주객.또 장면총리가 그의 국무원 사무처 보도과장 전입승인서에 「과음 삼가라」는 친필메모를 남겼다는 일화도 가지고 있다.이 책은 그가 당초 1년으로 예정했다가 주위의 「협박에 가까운 권유」로 만 6년 동안이나 신문협회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내용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고려대교수였던 김동석은 6·25때 월북한뒤 판문점 휴전회담때 북측통역으로 나왔다.그는 남측 취재기자들에게 『용금옥 추탕 맛 여전한가』라고 물었다가 이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회담장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19 46년5월 이씨는 중국에서 함께 돌아온 김일선(김영주)과 용금옥에 처음 들어섰다.그곳에는 이씨의 형님과 정지용 이영세등이 있더라는 것.지용은 이날 눈시울을 적시며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고 한다.이씨가 학도병으로 입대하기 전날 지용은 일장기의 여백에 「용감히 싸워 일제의 무공훈장을 타오라」는 내용의 글을 써주었기 때문이다.이씨는 지용의 참뜻이 일본을 부수고 오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6·25가 일어나고 서울2차수복전 유엔군을 위한 영자신문「코리언 리퍼블릭」회장이던 수주는 용금옥에서 한잔하고 당시 국방부장관이 참전국장성들을 초청한 덕수궁으로 걸어들어가다 헌병들의 제지를 받는 봉변을 당했다.이때 안면이 있던 국방부장관이 본체만체하고 지나쳐버렸던 것.수주는 연회장에 들어간뒤 그를 찾아내 뺨을 세차례 갈겼다.다음날 당시 서울신문의 박종화사장과 김팔봉고문이 수주를 위해 연 위로회는 물론 용금옥에서였다.이 자리에서 수주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에게 그렇게 했으니 그 박해를 어찌 견디겠느냐』는 말에 『큰일났다』면서 『더러운 피부가 내 손에 닿다니,이 주먹을 잘라버려야겠어』라고 되뇌이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어느날 육사골프장에 나갔다가 진해별장에 있다는 기사를 방금 신문에서 보고온 「지만아버지」(이씨는 박전대통령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와 함께 골프를 치고 「각하 특실」로 초대를 받았다.그런데 그 자리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정모씨가 아들과 함께 와 있고 잠시 뒤에는 육영수여사가 장녀 근혜를 데리고 나타났다는 것이다.이씨는 그 혼사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는 관심밖이지만 당시 육여사에게서 혼기가 찬 딸을 가진 보통사람의 심정을 발견할수 있었다고 되돌아보고 있다.
  • 정인보선생/해방전후 국학부흥­교육에 진력(다시 새기는 그 충절)

    ◎18세 상해 망명… 신채호 등과 항일투쟁/국학대학 설립… 민족사관 정립에 큰공 의에 철저한 인생을 살았던 위당 정인보선생은 말을 타고 총칼로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붓과 펜으로 싸운 정신적 독립운동가였다. ○서울 종현서 출생 선생은 1893년 5월6일 서울 종현(지금의 명동성당부근)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정은조씨와 어머니 달성 서씨의 독자로 태워나 후손이 없는 큰집의 양자로 들어간다.1910년 17세때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난곡 이건방선생으로부터 한국화한 양명학을 배워 학문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11년과 1912년 두차례 망국의 한을 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동북성 회인현 흥도촌과 유하현 삼원보등지에서 활동하는데 이곳에서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있던 이회영형제를 만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평땅 4백∼5백섬거리 전답을 팔아 신흥강습소등 이회영형제의 독립군양성소를 위한 군자금으로 지원한다.선생은 1913년 중국 상해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일제와의 투쟁을 다짐하는 박은식·신규식·신채호·김규식등많은 청년애국지사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과 비밀결사인 동제사를 조직했다. 선생은 1922년 4월부터 연희전문학교의 초빙을 받아 조선문학론과 한문을 강의한다.그후 중앙불교전문학교·협성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학및 동양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 얼을 환기시켰다.또한 동아일보·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며 민족사관 정립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선생은 일본인들의 왜곡된 학설에 철저히 반론을 전개해 주목을 끌었는데 우리 고대사의 심층연구를 위해 안재홍·신채호·문일평·손진태선생등과도 힘을 합쳤다. ○일경에 검거·고초 선생은 1926년의 6·10만세운동을 지원했고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창립,현충사를 중건했으며 고전을 소개하는 「조선고전해제」를 동아일보에 실었다.이후 같은 신문에 「단군 개천」「5천년간의 조선의 얼」을 연재했으며 실학연구를 위한 학문행사를 주도했다.1937년 「경훈훈민정음서」「훈민정음운해해제」등을 저술,국어보존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어교육만을 강요,연희전문학교에서 선생이 강의하던 조선문학과목은 폐지됐다.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1940년 10월 중동학교안에 소위 「5인 독서회」가 조직된다.노국환·조성훈·황종갑·이기을·유영하등은 역사연구를 명분으로 선생을 비롯,김성수·송진우등으로부터 국제정세등을 들기를 요청해와 이들과 접촉을 갖는다.독서회 운동이 한창 추진되고 있을 때 황종갑의 편지가 일제의 검열에 발각되면서 선생도 적지않은 고초를 당했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기에 이르자 선생은 병을 핑계로 휴직을 한뒤 1943년 가족을 이끌고 전북 익산군 황화산으로 들어가 산중생활을 한다. 2년후인 1945년 마침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게되자 선생은 서울로 귀환,일제하의 식민정책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연면하게 이어온 국학을 부흥·발전시키기 위해선 일제로 인해 단절된 우리 얼을 선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국학대학을 설립한다. ○1950년 납북 국학발전에 몸바치고 있던중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돼 감찰위원회가 구성되자 선생은 여러 인사의 천거와 이승만초대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새 정부의 감찰위원장에 취임,관기확립및 부정부패 일소에 나섰다.그러나 선생은 취임 1년이 지날즈음 자신의 의지가 이루어 질 수없음을 깨닫고 감찰위원장 자리를 떠났다. 다시 국학대학장에 돌아온 선생은 더욱 우리 얼을 밝혀 내는데 정진했으며 국학대학장을 그만 둔 뒤 서울 회현동에서 역사연구와 집필생활을 하다 6·25전쟁을 맞았다.미처 피란가지 못한 선생은 1950년 7월 북한으로 납치돼 한동안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그해 11월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녹조근정훈장/관세청 정운기과장(만나고 싶었습니다)

    ◎“밀수단속엔 사명감이 최고의 무기”/사비털어 정보캐고 중국의 차등관세 철폐에도 기여 『3대 밀수품목으로 꼽히는 마약과 농수산물,금괴를 단속하려면 세관원들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꼭 적발하겠다는 사명감이 앞서야 합니다』 공무원 생활 18년을 관세청에서만 보낸 정운기과장(52·심리담당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밀수단속 전문가답게 사명감을 첫번째 김과옥조로 들었다. 그는 지난 3월 우수 공무원에게 주는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지난 81년 12월 근정포장에 이은 두번째 표창이다.지난 88년부터 올 4월까지 밀수왕국으로 소문난 홍콩영사관의 주재관으로 근무하며 정보를 수집,금괴밀수등 15건 2백25억원 상당을 검거토록 하는 공을 세웠으며 중국의 대한 차등관세 철폐에도 앞장섰다. 『세관원이 밀수정보를 수집하려면 사비를 털어서까지 현지인이나 교포는 물론 현지 세관원과 평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경험담을 들려준다.이 덕에 지난 90년 20억원에 달하는 뉴질랜드산 녹용 2천여㎏을 적발하고 앰프 뒷면에 금괴 13개를 숨겨들여 오려던 밀수꾼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중국과의 수교 이전에 홍콩에서 중국의 세관원과 꾸준히 접촉하며 중국의 관세제도를 분석,우리나라에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수입관세를 최고 20%포인트나 높게 적용하는 사실을 알아내 외무부에 보고했다.이는 양국의 국교수립 이후 차등관세를 철폐하는 「무역 및 관세협정」 체결에 밑거름이 됐다. 정과장은 치밀하고 차분한 성격을 지녀 밀수 기획통으로 명성이 자자하다.올들어 관세청이 시행하는 크고 작은 밀수단속 계획을 일일이 작성하고 금융실명제 이후 외화밀반출 방지대책 등을 마련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올들어 적발된 총 4천4백여건 1천6백여억원의 밀수사범 검거에 조타수 역할을 한 셈이다.특히 민·관 합동 밀수감시를 위해 관계기관의 1천여명을 명예세관원으로 위촉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전주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개인사업을 하다 동기들보다 10년 늦은 지난 75년 행시에 합격,관세공무원만으로 일해 왔다. 『밀수를 근절하기 위해선 단속도 중요하지만 건전한유통시장의 발전이 병행돼야 한다』며 『세관원이 국제적인 감각으로 행정에 항상 앞서가기 때문에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흡족해 했다.
  • 「헌금」 유도위해 재일 상공인에 특혜조건 제시(북한 이모저모)

    ◎“몸매가꾸기 좋다” 에어로빅·건강 태권도 보급 ○조총련 앞세워 선전 ○…북한이 재일상공인들로부터 「헌금」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 특혜조건을 내세우고 조총련 산하 조직을 앞세워 이를 적극 선전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재일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헌금유도를 위한 각종 특혜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재일상공인들의 북한에 대한 헌금액과 횟수가 80년초를 기준으로 현저히 감소한데다 최근에는 북한에 거액을 헌금했던 조총련계상공인들 마저 헌금을 기피하고 있어 외화획득에 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재일상공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특혜조건은 북한의 경제건설을 위해 50만달러 정도의 외화를 헌납할 경우 ▲평양과 함흥 등에 조성중인 신도시의 거리 명칭을 헌금자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금강산생수등 각종 상품의 상표명을 헌금자의 명의로 해준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북한에 연고자가 있을 경우 가족들의 평양 거주및 경노동 직장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며 헌금액이 1백만달러 이상일 경우에는 북한 최고의 훈장인「김일성훈장」을 수여하고,두만강유역 자유경제무역지대내에서의 각종 편의제공과 북한내 원광및 채굴권등 각종사업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체육의 대중화 강조 ○…북한에도 에어로빅이 보급되기 시작했다.북한은 최근 체육의 대중화·생활화를 강조하고 있는 당의 방침에 따라 에어로빅(대중율동체육)과 건강태권도를 주민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다고 중앙방송이 3일 보도했다. 국가체육위원회 체육과학연구소에서 만들어 내놓은 에어로빅은 가요(우린 사랑한다)의 음악에 맞춰 5분간 진행하게 되는데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15개 율동적인 체조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또한 중앙방송은 에어로빅이 『체조동작에 춤 율동을 합리적으로 배합하고 있어 사람들의 피로회복 뿐만 아니라 건강과 육체단련,몸매가꾸기에도 좋으며 일단 배우기 시작하면 흥겨움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따라 배우려는 충동을 준다』고 소개했다. ○왕건왕릉 개축공사 ○…북한은 최근 개성에 있는 고려태조 왕건왕릉 개축공사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평양방송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북한의 왕건왕릉 개축공사는 김일성이 지난해 5월 개성지방을 현지지도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여러 유적·유물들과 함께 왕건왕릉을 둘러보고 능과 주변환경을 잘 정비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시작됐는데 최근의 동명왕릉 복원공사 및 단군릉 발굴작업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왕건왕릉의 개축공사는 ▲능구획 ▲제단구획 ▲능문구획 등 3개 구획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능구획의 제일 상단에는 봉분이 있는데 봉분의 직경은 11m이상이고 높이는 6m정도로 꾸며진다. 봉분의 밑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면돌을 둘러서 십이각형을 이루면서 빙 둘러치게 되며 그 바깥으로도 십이각형을 이루며 돌 난간을 설치하게 된다.
  • 본상/13회 농어촌 청소년 대상

    ◎농업 김성규씨/우량채소종 1.8t 보급 지난 90년 3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영농 4­H회를 조직,지금까지 3·7㏊의 휴경지를 경작하는 등 8백9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특히 휴경지 공동학습포에 우량채소포를 설치,벼·콩·참깨등 우량종자 1천8백㎏을 보급했다. ◎농업 박춘기씨/특용작물 재배에 심혈 중학교때부터 영농에 뜻을 굳혀 현재 트랙터등 5종의 농기계로 논 3천평과 밭 7천4백평을 기계화 영농으로 경작,연간 5천7백만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어민후계자. 지난 89년에는 특용작물 전업농가로 선정돼 특용작물재배에 대한 새로운 영농기술을 선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농업 이대성씨/아파트촌과 화훼 직거래 지난해 지역특화 시범농가로 선정돼 표준하우스 8백평을 지어 화훼재배시설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화훼인. 지난 90년부터 관엽을 재배하면서 아파트 주부교육및 학교 4­H회 선진견학 농장으로 선정,해마다 3백여명에게 직거래를 통해 2천5백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농업 이정린씨/위탁영농 4년째 “고소득” 90년부터 기계화영농단을 조직,부족한 농촌일손을 덜어주기위해 경운·육묘·이앙·병해충방제및 수확에 이르기까지 일체 위탁해 농사를 지어주는 위탁영농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90년과 91년에 이어 올해에도 4백50마지기를 위탁받아 경영비를 제외하고 2천5백만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있다. ◎농업 양희렬씨/11년 4H활동의 베테랑 딸기 시설하우스,양다래,수도작 각각 9백평에 한우 12두를 사육하며 6천만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복합영농인. 83년부터 4­H에 가입,4­H활동으로 농사기술과 지도력을 키우고 있고 지난해엔 전남 4­H 대상을 수상하기도. 딸기소득의 한계성을 지적하며 수출오이,화훼로 작목을 바꿀 계획. ◎농업 심차관씨/농촌환경 개선에 큰공로 지난 84년 4­H에 가입한뒤 마을에 3개소의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고 마을회관을 정비하는등 4­H 활성화와 쾌적한 농촌환경을 개선하는데 남다른 공을 세웠다. 기계화영농단을 조직,농가소득증대및 과학영농기술보급에 힘쓰는 한편 지난해 축산분야 농민후계자로 선정된뒤 한우사육등 농촌자립기반 구축에 애쓰고 있다. ◎농업 도정선씨/쌀 증산왕이된 통신대생 국화·안개꽃·글라디올러스등 화훼재배와 쌀재배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어민후계자. 벼재배기술 관련 서적을 주경야독하며 실천한 결과 지난 87년에는 전국쌀증산왕으로 뽑혀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중학 졸업뒤 방송통신고를 거쳐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학구파. ◎농업 전성택씨/한우 고급육 생산에 앞장 91년 8월 4­H 회원 배낭여행 교육을 통해 한우사육 선진목장을 순회방문,실기실습을 할 정도로 양축농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있는 축산인. 거세지고 있는 수입개방압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두사육으로 생산원가를 절감,고급육을 생산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조사료 위주로 사육하고 있다. ◎수산 박준식씨/어탐지기 등 장비 선진화 컬러어탐기와 중층채수 수온계등을 비치,어종 다변화로 연중 휴업없는 과학영어를 추진해 연평균 6천8백여만원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는 어민후계자. 태풍발생시 어선대피,인양,앰프방송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있다.수협 주관으로 해마다 실시되는 「명태 침체어망 인양사업」에 자신의 어선을 직접 출동,참여하고 있다. ◎수산 김철호씨/어법개발로 어획고 향상 옥돔어장 개척과 어구어법 개발로 어획량을 91년 22t에서 지난해 30t으로 36.4% 증가시킨 어민후계자. 어선톤수를 91년 이전 14톤급에서 지난해 29톤으로 늘리는등 어선대형화로 사업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불법어업및 해양오염방지,유통구조개선등을 통해 어촌발전에 기여. ◎수산 김선기씨/수조이용 등 양식 다변화 가업인 미역양식을 물려받아 어촌에 정착한뒤 지난 85년 수익성이 높은 우렁쉥이 양식어업으로 전환한 어민후계자. 넙치의 육상수조식 양식과 해상가두리 양식을 연계한 복합양식 경영으로 지난해 4억2천만원이라는 고소득을 올렸다. 2년동안 4­H 회장을 역임하는등 4­H및 JC등 지역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수산 최동환씨/레이더 갖춘 전업어민 벽지 어촌에서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7살때 부친을 여의고 17세때부터 남의 어선에 고용되는등 어려움을 이겨낸 굳센 모범 어민.어민후계자로 선정된 지난 84년 2·6t 짜리 어선 한 척과 김양식 20책으로 사업을 시작,지난해 6·7t 크기의 어선을 새로 건조하는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마을 최초로 레이더·로란·어탐지기등의 장비를 갖춘 전업어가.
  • “청춘바쳐 국가위해 싸웠는데…”/무공훈장 70대 참전용사

    ◎예우소홀 비관 목매 자살 22일 상오 7시2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3 ㅈ하철5호선 공사장 입구에서 6·25 참전용사로 무공훈장까지 받은 예비역 육군대령 임상철씨(70·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954)가 높이 1.5m 공사용 철제빔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됐다. 임씨는 『우리 무공훈장 수훈자들은 청춘을 바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지만 연금수당을 비롯한 각종 예우면에서 전몰군경이나 상이용사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면서 『이같은 현실을 개선해달라는 건의서조차 묵살당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워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숨진 임씨는 지난 49년 육군사관학교 8기 특별과정을 거쳐 중위로 임관,수도사단 공병대 대대장으로 6·25에 참전,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지난 60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임씨의 시신은 영등포구 대림동 한독병원에 안치됐다.
  • “어업기자재 반값 공급/내년부터/러 핵폐기 단호대처”

    ◎김 대통령,「수산인대회」 치사 김영삼대통령은 23일 러시아 핵폐기물 동해 투기 사건과 관련,『대통령으로서 생태계를 살리고 어업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단호하게 대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수협중앙회에서 열린 제1회 「수산인대회」에 참석,치사를 통해 『이제 어업은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해야한다』며 『어항시설 개선과 어업장비 현대화에 필요한 어업용 기자재도 내년부터는 반값으로 공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수산물의 유통구조도 혁신적으로 바꿔나가도록 하겠으며 원양의 어장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한 교섭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치사에 앞서 연근해어업진흥 유공자인 최재완씨(63·전남 여수시 신월동)에게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하는 등 어업발전에 공로가 큰 유공자 5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 경관 2백14명 훈·포장/오늘 경찰의 날

    경찰청은 경찰 창설 48주년을 맞아 21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역대 내무장관및 치안총수등 내빈 3천8백여명과 경찰간부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충북경찰청장 김길동청장 등 19명이 국민훈장 등을 받는 것을 비롯,모두 2백14명이 국민포장·대통령표창등 각종 훈포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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