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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꾼·광부 거쳐 市長으로/金潤周 군포시 당선자의 인간 드라마

    ◎농사 실패 부친따라 탄광촌서 날품팔이/무작정 상경 인부·노점상 등 밑바닥 전전/노동운동 16년 국민회의 공천받아 ‘행운’ ‘가난한 농사꾼에서 탄광촌 광부를 거쳐 민선 시장으로­’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인 노동자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민선시장에 당선,한 편의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엮어냈다. 주인공은 경기도 군포시장 선거에서 두번째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金潤周 당선자(50·한국노총 중부지역본부 의장).지난 77년부터 93년까지 16년동안 냉방기기 회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으로,국민회의 공천을 받아 시장에 당선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번 선거에서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두터운 학력 장벽을 극복하는 문제였다.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언론사 정치부 기자를 거친 무소속의 沈良燮 후보(38)나 40여년의 공직 경력을 내세운 趙源克 현 시장(66·한나라당)을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숱한 고난을 겪어온 金당선자는 ‘단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농사에 실패한 부친을 따라 탄광촌으로 들어가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던 기억이나 무작정 상경한 뒤 막노동판 벽돌인부,시장골목 노점상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고통을 참아냈던 과거들이 유권자들에게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서는데 큰 힘이 돼준 것이다. “시민의 60%가 노동자와 그 가족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노동운동도 이제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金당선자는 “지방자치도 결국 시민자치를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앞으로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시정을 의논하는 진정한 시민자치 행정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金당선자는 노동현장에서도 틈나는 대로 공부에 몰두해 숭실대학 노사관계대학원을 수료했으며,근로자 복지를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돼 대통령포상(85년)·석탑산업훈장(96년)을 받기도 했다.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국회 정치개혁 중심돼야/金 대통령 국회 개원50돌 기념식서 강조

    국회는 30일로 개원 50주년을 맞아 29일 여의도 의사당 중앙홀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金守漢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각 정당대표,전·현직 국회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金대통령은 “국회는 정치개혁과 나라안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 국회가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정부에 건전하게 비판하고 견제하는 국정의 참다운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에서 金의장과 朴浚圭 李萬燮 黃珞周 전 의장등 4명이 국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金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 張斗讚씨 등 10명 바다의 날 훈포장

    張斗讚 한구특수선(주) 사장이 30일 ‘세계해양의 해 및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해양개발과 수산분야 유공자로 은탑산업훈장을 받는다.張사장은 석유화학제품 등 특수화물의 적기수송으로 국위선양과 외화획득에 기여한 공을인정받았다.姜正極 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과 千金石 대형선망 수산협동조합장은 동탑산업훈장을 받는다. 그밖의 포상자는.▲철탑산업훈장=黃昌奎 경남항운노조위원장▲석탑산업훈장=崔錫煥 (주)세광종합기술단 대표이사▲산업포장=金太羽 한국선급기획조정실장,朴泰吉 전국선박관리선원노조위원장,李正吉 대형기선저인망 수산업협동조합이사,金蓉午 광해산업 대표이사,甘武雄 (주)대원 대표이사
  • 내일 바다의 날… 오늘 기념행사

    ◎2010년까지 해양기술력 G7수준 목표/해양동물 박람회·함정공개 행사 등 다채/바다자원 개발과 보호의 중요성 일깨워 31일은 제3회 바다의 날이다.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30일 열린다.바다 행사는 94년 유엔해양법 발효를 계기로 각 나라가 다투어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넓힘에 따라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여기에 우리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하다는 점을 더하면,바다의 중요성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하겠다. 따라서 해양수산부는 해양 전진기지 개발 등을 통해 바다의 경제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2010년까지 해양 과학기술력을 G7 수준으로 키운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바다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이런 관점에서 세계해양의 해를 맞아 열리는 올 바다 행사의 의의와 우리의 해운 정책,21세기 비전 등을 짚어본다. ‘98세계해양의 해 및 제3회 바다의 날 기념행사’가 30일 상오 9시30분 부산항 감만 컨테이너 부두에서 金善吉 해양수산부 장관과관련업체 및 단체,지역주민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해양수산부가 주최하는 기념식에서는 바다헌장 서명 및 선포,유공자 포상과 기념치사,감만 컨테이너 부두 개장 행사 등이 함께 진행된다. 포상자는 은탑산업 훈장을 받는 한국특수선(주) 張斗讚 대표이사를 포함,산업훈장 5,산업포장 5,대통령 표창 14,국무총리 표창 14명이다 세부 행사로는 경기도 가평군 읍내리 해양동물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해양동물 박람회(4.17∼6.15)와 30일 각 해경 전용부두에서 해양경찰청 주관으로 열리는 함정공개 행사 등이 있다. 30일은 98세계해양의 해를 맞아 ‘바다헌장’과 ‘국민바다헌장’에 서명하는 날이다. ▷행사 목적◁ 세계해양의 해를 맞아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자원 보고인 바다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해양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우려는데 있다.이로써 해양을 슬기롭게 개발하고 해양환경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바다의 날 제정 경위◁ 94년 11월 유엔 해양법협약이 발효됨으로써 세계 각국은 해양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경쟁체제에 들어갔다.우리나라도 96년부터 바다의 날을 지정했다.이를 위해 96년 3월 대통령이 ‘바다의 날’ 제정 방침을 천명했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기념일로 확정했다. ▷98 세계해양의 날 제정 배경◁ 93년 3월 정부간 해양과학위원회(IOC) 결의에 이어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추인을 받음으로써 제정됐다.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지구환경 변화를 막아줄 핵심 요소가 바다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해양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각국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주 목적이다. ▷바다헌장◁ 국가가 해양 및 연안의 환경보전에 대한 의지,신념,약속을 선언하는 양식이다.법적 구속력은 없다.97년 9월 캐나다 세인트 존스에서 개최된 바다정상회담에서 채택됐다.4월말 현재 캐나다를 시작으로 7개국이 서명했다. ▷국민바다헌장◁ 보조 헌장으로 국민 개개인이 서명주체가 된다.내용은 바다헌장과 비슷하다.서명을 원하는 사람은 장차 개설될 해양수산부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momaf.go.kr)를 활용하면 된다.
  • 6·25 훈장 찾아줍니다/假수여증 받은 6만여명

    ◎본인·유가족 陸本 확인을 ‘6·25 무공훈장을 찾아줍니다’ 국방부는 28일 6·25전쟁때 ‘무공훈장 가수여증’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정식 훈장을 받지 못한 국가유공자 6만3,629명을 대상으로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가수여증’을 보관하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유가족 누구라도 육군본부 부관감실 인사처리과(02­505­1622,042­550­1622∼6)로 연락하면 훈장 수여대상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전쟁 중 자신들에게 훈장이 수여된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온 참전 노병들이 적지 않다”면서 6·25 당시 군에 복무했으면 누구나 육군본부에 확인해 볼 것을 당부했다. 6·25전쟁 중 모두 17만9,391명에게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 등이 수여됐으나 92년말 현재 11만5,762명만이 정식 훈장을 교부받았다.
  • 英 방문 日王 곤욕 우려

    ◎향군 “과거사 사죄” 시위속 첫날 행사 순조 【런던 AP AFP 연합】 곤욕을 치를 것이란 우려속에 영국 방문길에 나선 아키히토 일왕(日王) 부처가 25일(이하 현지시간)런던에 도착,공식일정에 들어갔다. 당초 영국정부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중 일제 포로수용소에서 고통을 당한 영국 군인과 민간인들이 일왕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준비,공식일정에 불미스런 일이 염려됐었지만 첫날 행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일왕 일행이 버킹엄 궁전으로 지나가는 길가에서 재향군인회 소속 전쟁포로 출신자들이 일장기를 태우고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행진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야유도 보내는 등 과거사에 사죄를 촉구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런던에 도착해 4일간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간 일왕에게 영국 최고의 ‘가터’ 훈장을 수여키로 하는 등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일왕의 방문에 앞서 최고의 판매부수를 가진 신문 ‘선’지에 “우리는 왜 오늘 일왕의 영국방문을 환영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 훈·포장규모 대폭 축소/정부,개선지침 마련

    정부는 해마다 각종 기념일에 정기적으로 수여하는 포상 규모를 대폭 줄이고 ‘올해의 공무원’ 포상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훈 포장 수상자가 최근 4년 동안 급격히 늘면서 정부가 훈 포장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었다. 행정자치부는 21일 이같은 내용의 ‘정부포상 운영 개선지침’을 마련,각부처에 통보했다. 개선지침에 따르면 94년부터 각 기관별로 근무성적이 우수한 공무원 1명씩을 선발,훈장 수여와 함께 해외연수 등의 혜택을 줘왔던 올해의 공무원 포상제도를 폐지하고,우수공무원 정기포상 규모도 800명에서 600명으로 줄였다.
  • 80% 매질에 사랑이 실렸는가(박갑천 칼럼)

    한(漢)나라때 효자 伯兪가 쉰이 넘은 어느날 잘못을 저지르고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는다.효자는 맞으면서 운다.어머니가 묻는다.“전에는 울지않더니 웬일이냐”고.그는 대답한다.“전에는 어머니께서 때리시면 아팠는데 오늘은 아프지가 않습니다.기력이 쇠약해지신 것같아서 슬퍼지나이다” 우리 전통사회에도 집안에는 회초리가 마련돼 있었다.비록 자식이 나이들고 벼슬해도 잘못이 있으면 다스리기 위해서.글공부하러 서당엘 가도 훈장님 옆에는 회초리가 놓여있다.오늘날 교직에 발들여놓는 것을 이르면서 “교편(敎鞭)잡는다”고 하는 말에 그 그림자가 어린다.이 회초리는 불뚝감정을 섟삭여 거른다는 뜻이 깊다.그점에서 伯兪의 어머니나 서당훈장님 회초리는 매라기보다 사랑이 담긴 훈계의 상징이었다. 전국의 어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녀폭력에 대한 설문조사’결과가 알려진다.그에 따르자면 79.8%의 어버이가 가벼운 신체적 폭력을 가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어머니가 더 잦은편.한데 그 내용이 문제다.손발을쓰는 ‘가벼운 학대’가 44.9%이고 몽둥이나 허리띠를 쓰는 경우도 6.0%에 이른다는 대답 아니던가.맷손에 감정이 묻어있는 매질은 가정·학교 할것없이 교육적 측면에서는 어리석은 것.더구나 밖에서 골틀린 일이나 부부싸움의 화풀이로 손발질하는 체벌처럼 퉁어리쩍고 용렬한 짓도 없다.몽둥이·허리띠 매질은 그 냄새를 풍기잖는가. 엄격히 말한다면 매질에서도 ‘자격’을 따져볼만하다.그행실을 본받을 수 있는 어버이의 매질이라야 설득력을 가질수 있다는 뜻이다.맹모삼천(孟母三遷)으로 알려진 맹자어머니는 그점에서 ‘유자격자’였다고 하겠다.어느날 맹자 동쪽집에서 돼지를 잡는다.왜 잡느냐고 묻는 어린 맹자.어머니는 무심코 “너한테 먹이려고 잡는단다”하고 대답한다.그러고서 금방 아차!한다.만약 돼지고기를 안먹일때 거짓말로 괴덕부린 셈이고 불신(不信)을 가르치는 꼴이 아닌가.그는 돼지고기를 사다 먹이고 있다. “선인(善人)과 함께 있으면 지란(芝蘭)이 향기뿜는 방으로 드는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훌륭한 사람과 함께 있노라면 자연히 그 사람됨에 감화된다는 비유로 하는 말이다.이땅의 어버이 혹은 교육자의 때리기에 앞선 지란구실이 그리워지는 ‘가정의 달’이 이울어간다.
  • 상훈치탈 ‘제자리 걸음’

    ◎79명중 충청작전관련 鄭鎬溶·崔世昌씨만 박탈/全·盧 前 대통령 등 14명 대상 제외… 憲訴제기 상태 5·18은 193명의 사망자와 47명의 실종자(95년 검찰발표 기준)를 낳았다.그리고 광주시민 모두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그러나 그 희생을 있게한 ‘공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훈장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이른바 충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당시 특전사령관 鄭鎬溶씨와 제3특전여단장 崔世昌씨 등 79명(2개단체 포함).이들중 鄭씨와 崔씨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받은 상훈을 취소토록 규정하고 있는 5·18특별법 제7조에 의거 지난해 훈장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5·18특별법에 따라 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16명중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충정작전이 아니라 ‘국가안보 공헌’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는 이유와 ‘상명하복 관계에 있던 영관급 이하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국방부측 논리로 치탈대상에서 제외됐다.全 전대통령은 전쟁영웅에게나 수여되는 최고훈격의 태극무공훈장을,盧 전대통령은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국방부는 ‘3년이상 형을 받은 자에대해 서훈을 취소한다’는 상훈법 8조 적용도 검토했으나 지난 63년 제정된이후 적용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 또한 무산됐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상자를 축소하기 위해 5·18특별법과 상훈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특히 ‘유죄가 확정된 全·盧 전 대통령 등 14명에 대해 훈장을 박탈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헌법소원을 제출했던 卞禎洙 변호사(68·정일종합법률법인)는 “일단 헌법소원이 심판에 회부되면 180일 이내에 위헌여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서 “이는 헌법재판소의 명백한 직무태만”이라고 비난했다.그는 새 정권에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우아동 뒷바라지 52년/어린이날 국민훈장 文延壽 할아버지

    ◎일제때부터 버림받은 아이 남몰래 도와/장학금 지급·보육원 지원 등 한평생 헌신 52년동안 불우아동들을 보살펴온 독지가(篤志家)가 있다.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4일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文延壽 할아버지(86·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게는 ‘제2의 方정환’이라는 별칭이 지나치지 않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文할아버지가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것은 일제 치하인 1936년.당시 24세로 강릉에 정착한 文씨는 폭우로 하룻밤 사이에 재산을 모두 잃은 뒤 짓다 만 건물에 들어가 살면서 철공소를 차렸다.평남 중화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이라곤 겪어보지 않았던 文할아버지에게는 매우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섣달 그믐날 개천변 판자집에 사는 한 어린 아이가 깡통에 밥을 얻어 가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길로 쌀을 사다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가 사는 10여 가구의 판자집에 주었다. 그 뒤 남 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 온 文할아버지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는 청소년을 위해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83년 포남동에 있는 3백여평 부지에 2층 짜리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나오는 임대수입으로 ‘아세아공영재단’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85년부터는 강릉시 7개 중학교 2·3학년 14명에게 1년에 2차례씩 1인당 30만원을 지급해오고 있다.또 강릉성결교회 강릉교회 중앙감리교회 등 3개 교회로부터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 21명을 추천받아 경제적으로 돕고 있다. 86년부터는 소년소녀가장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년소녀가장 41명에게 ‘사랑의 불씨’ 봉투를 나눠주고 있다.이 봉투에는 격려금과 함께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 줄 것을 당부하는 文 할아버지가 손수 쓴 편지가 들어 있다. 文 할아버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모여 사는 강릉자비원과 강릉보육원도 20년째 지원하고 있다.
  • 교보생명 비제조업체로 첫 대통령 표창/오늘 생산성 향상 촉진대회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와 성장의 잠재력을 배양토록 하기 위한 제 22회 전국생산성향상촉진대회가 29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주최하는 대회에서는 생산성 향상에 공이 큰 鄭堅植 동성플랜트 대표이사가 동탑산업훈장을,文東信 농어촌진흥공사 사장이 산업포장,LG전자(주) 디스플레이사업본부 등 3개 기업이 대통령 표창을 각각 받는다. 단체부문 생산성대상을 차지한 LG전자 디스플레이사업본부(본부장 具勝平 부사장)는 90년부터 한국문화에 맞는 혁신운동을 벌인데 이어 95년부터 3년간 매출,수익성,품질을 각각 3배 향상시키는 DTJ운동을 펴 매출은 1조5백억원에서 5조1천2백억원으로 4.8배,경상이익은 2백48억원에서 2천7백35억원으로 11배나 향상시키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교보생명(사장 李萬秀)은 비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대통령표창을 받는다.교보생명의 수상은 조직혁신대회를 시작으로 영업발전 토론회,책임경영체제선포,팀장제도 등 지속적이고 획기적인 경영혁신 전략을 잇따라 도입한데 따른 것이다.이에따라 교보생명은 95년 고객만족대상,96년 인재개발대상,97년 노사협력대상에 이어 4년 연속 생산성대상을 수상하는 기록도 갖게 됐다. 교보생명은 지난 58년 창립 이래 세계 최초로 생명보험 원리와 자녀교육을 연계한 교육보험을 창안한 것을 시작으로 암보험,제 3분야 상해보험 등 각종 상품개발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96년에는 금융업계 최초로 ‘ISO 9001’품질 인증을 획득하는 등 생산성 향상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태양절은 金正日 충성다짐의 날

    ◎黨政軍 간부 결사옹위 맹세 “진짜 충신 되자”/軍 장성 22명 승진·黨政 간부 표창 ‘사기진작’ 지난해‘태양절’로 격상된 이후 처음 맞는 올해 金日成의 86회 생일(15일)행사는 사망한 金日成을 기리는 행사라기보다는 金正日에대한 충성행사로 일관됐다. 지난 15일을 전후해 북한 전역이 ‘민족 최대의명절’을 맞아 떠들썩한 가운데 金正日에 절대충성을 다짐하는 각종 집회와 충성맹세예식이 잇따라 열렸다. 金正日에 대한 충성예식은 군(軍)에서부터 시작됐다.군총정치국장 趙明祿 등 북한군 수뇌부는 지난 13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육해공군 충성맹세 예식’을 갖고 金正日을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결의했다.이날 당정(黨政)간부들도 별도로 충성결의대회를 열고 金日成의 유훈을 받들고 金正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맹세했다. 이어 14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金日成 생일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부주석 李鍾玉은 당정군 간부들에 대해 金正日의 ‘수령결사옹위투사·진짜배기 충신’이 되자고 역설했다.당정군 간부들은 15일엔金日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했다. 金正日의 친위조직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청소년 조직들도 金正日을 총폭탄으로 사수하자는 결의모임을 잇따라 가졌다.13일에 열린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충성 결의대회’에서 청년동맹 1비서 이일환은 金正日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자고 촉구했다.이어 조선소년단은 14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1만명이 동원된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를 개최하고 전체 소년단원들에게 金正日을 옹호·고수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金正日은 지난 11일 金日成의 생일에 즈음해 金桂冠 외교부 부부장 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에게 ‘공화국영웅’·‘노력영웅’ 칭호와 김일성 훈장 등 각종 칭호와 표창을 무더기로 수여했다.이어 13일엔 군최고사령관명령으로 장성급 22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올들어 처음 실시된 군장성급 승진인사는 올해가 金日成 생일을 태양절로 기념하는 첫번째 해인데다 군창건 66주년(25일)을 앞두고 군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金正日에 대한 충성맹세와 함께 金日成 생일을 계기로 생산증대를 독려하는 근로자들의 노역배가궐기모임도 연일 개최되고 있다.지난달 金正日의 성진제강연합기업소 현지지도와 생산성제고를 위한 궐기모임(3월23일) 이후 전국각지의 공장·기업소 및 협동농장에서는 노역배가를 촉구하는 결의모임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한편 金正日은 15일 金日成의 생일을 맞아 제313대연합부대를 방문,金日成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 것을 촉구했다.이날 노동신문은 金日成 생일을 맞아 게재한 기념사설에서 “金日成의 영도는 곧 金正日의 영도”라고 주장했다.이신문은 “수령의 유훈은 영원하다”고 역설해 金日成의 유훈통치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지난해 당총비서에 추대된 金正日은 북한정권창건 50돌(9월9일)을 전후해 주석직에 취임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올림픽 권투 銀 鄭申朝씨/주차장 관리원으로 새삶(조약돌)

    ○…지난 64년 동경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권투경기 사상 최고의 성적인 은메달을 따낸 권투영웅 鄭申朝씨(58 통영시 봉평동 352)가 공영주차장 관리원으로 변신,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때 ‘인텔리 복서’로 유명했던 鄭씨는 동경올림픽에 앞서 62년 제 4회 아시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공로로 국민훈장석류장을 수상했다. 지난 88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이사를 마지막으로 권투계를 떠난 鄭씨는 조선업 등 개인사업의 잇따른 실패로 어렵게 지내오다 최근 동료의 주선으로 통영시 주차장 관리원으로 일하게 됐다.
  • 영웅세대의 비극/이대실 생명공학硏 유전체사업단장(굄돌)

    우리 어른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자.조선 말기 무력함과 국치의 울분을 가진 이로부터 시작하여,일제의 치욕을 겪었으며,해방후 혼란에 시달렸고,전쟁의 처절함과 생사의 고빗길을 헤매었다.또한 보리고개의 쓰라린 배고픔을 달래야 했으며,권위주의 시대의 횡포를 감수한 세대다.역경의 굴레 속에서도 역사의 단절과 사회의 전환기를 헤쳐가며 시련과 한을 땀으로 바꾸어 왔다.역사이래 최대의 번영을 이룩한 영광의 주역들이다.우리는 이들에게 한민족 최고영웅훈장을 달아주고,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야 한다. 나는 이 영웅세대를 ‘유형재산세대’라 부르고 싶다.허기진 배를 채우려 가시적이고 유형적인 경제목표를 향해 매진해 왔다.유형재산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온 세대다.그 결과 창조적인 내일을 준비하지 못했고,전통적인 규범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전이다.아마도 주어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로 인해 또 시련이 닥쳐왔다.IMF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오면서,그들이 쌓아온 유형재산의 허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가령 산업경쟁력이 무형의 과학기술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체험적으로 느끼지 못했다.단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장식품 정도였다.국가경제가 유형적 상혼만 가지고는 안된다.이제부터라도 지식창조의 전통,미래를 그려갈 과학기술,그리고 문화적 자산을 쌓아야 한다.영원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비극도 예견된다.영웅세대는 아이들에게 전통과 혼을 심어주지 못했다.아이들은 텅빈 가슴을 안고 방황하고 있다.가치관의 진공상태에서 외래문화와 규범이 여과없이 채워진다.영웅세대는 생각이 다른 신세대로부터 소외되어 실의에 빠져 있다.아니 내팽겨쳐지고 있다.이제라도 차분히 앉아 전통의 맥을 이어주고,마음의 고향을 찾아주어야 한다.영웅세대는 내일을 향해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질 때이다.
  • 눈밭 낙오자 끝까지 인솔하다 ‘산화’/행군 참변 金光錫 대위

    ◎강한 의협심… 각종 평가서 줄곧 1위 차지 1일 밤 행군 도중 숨진 흑룡부대 중대장 金光錫 대위는 낙오한 부하들을 인솔하기 위해 끝까지 현장에 남아 있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특전사에 따르면 金대위는 행군 도중 3명이 탈진해 더 이상 움직이자 못하자 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밤늦도록 애쓰다 산속에서 결국 낙오자들과 함께 탈진해 숨졌다.충남대 낙농학과를 졸업한 뒤 학군 30기로 군인의 길에 들어선 金대위는 95년 3월 부인 양현숙씨(29)와 결혼해 딸 민지양(3)을 두고 있으나 훈련 등으로 신혼여행도 가지 못해 오는 6월 전역한 뒤 제주도로 뒤늦게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동료들은 金대위가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으며 각종 부대 평가에서도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우수한 장교였다고 말했다. 육군은 5일 국군수도병원에서 흑룡부대장으로 영결식을 갖는 한편 고인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훈장 추서를 건의하기로 했다.
  • 한국신발명연구소 申錫均 소장(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3)

    ◎달러 위폐감식기 등 4,000여개 발명/특허·실용신안건 700건… ‘韓國의 에디슨’/국제발명상도 89회 수상,기네스북에 올라 ‘일흔살의 청년’.申錫均 한국신발명연구소장을 주변에선 이렇게 부른다.내년이면 벌써 고희(古稀).그를 나이대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창 나이의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요즘도 하루 한 건씩 발명을 하고 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양복 안주머니에 신주 모시듯 항상 품고 다니는 ‘발명수첩’에 다 들어 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 수첩에는 깨알같은 글씨와 복잡한 그림들이 빼곡히차 있다.매일 매일 쓰는 일종의 ‘발명일기’.러시아어,영어,일어,독어로 음과 뜻을 뒤섞어 써 놓았기 때문에 申소장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5세때 ‘자전거 우산’ 발명 이렇게 해서 그가 지금까지 발명한 것만 4천개가 넘는다.이 가운데 특허나 실용신안권을 따낸 것만 700여건.국제발명상도 89번이나 받아 이 부문 세계 최다(最多) 기록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세계천재회의 주최 발명대회에서는 87년에서 90년까지 4년 내리 금메달을 땄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한국의 에디슨’이다.사실 어려서부터 발명에 천재성을 보인 점에서 그는 에디슨과 닮았다.첫 발명품을 내놓은 것이 겨우 다섯살 때.대부분의 발명이 그렇듯 ‘필요’의 산물이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탈수 없게 된 꼬마는 고민에 빠졌다.우산을 손에 들고 자전거를 타자니 너무 불편했다.궁여지책으로 우선 자전거핸들에 우산대를 붙잡아맸다.일단 비는 피하게 됐지만 이번엔 우산때문에 앞을 볼수가 없었다.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우산을 조금 찢어 투명 셀로판지로 창을 내는 방법.이렇게 하자 고민은 순식간에 풀렸다. 발명가 申소장의 천부적인 소질을 보여주는 이 얘기는 91∼96년 초등학교 5학년 사회탐구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의 발명품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는 점. 야구장이나 낚시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모자에 쏙 들어가는 소형 솔라셀(Solar Cell) 라디오가 대표적인 작품이다.당시 스위스에서 출간되는 불어신문 ‘라 쉬스’(La Suisse)는 이런 기발한 발명을 한 한국인 발명가의 인터뷰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입체투시기’도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스테레오 렌즈’를 이용,평면사진을 입체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82년 7월 권위있는 영국의 과학전문잡지 ‘포퓰러 사이언스’에 자세히 소개됐다. 이런 그의 발명품은 사물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만들어진다.‘위조지폐 만능감식기’가 좋은 예이다. 申소장은 은행에서 달러를 바꿀 때 은행원들이 일일이 위폐감식기로 확인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며 쓸 수 있는 위폐감식기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당시 쓰던 감식기를 수집해 뜯어 보고 성능을 분석하기를 수백차례.결국 연구를 시작한 지 11년만에야 열매를 맺었다. ○‘공해환경 특별상’ 수상 그가 만든 담배갑 절반 크기의 위폐감식기는 지폐안의 특수화학물질을 읽어내는 원리.진짜돈이면 불빛이 들어오면서 ‘삐’소리가 나고 가짜돈이면 아무런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발명으로 90년 스위스 제네바대회에서 금상을 받는다. 요즘은 점점 크기를 줄여 나가 궁극적으로 볼펜형으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거창한 발명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가 만든 아주 간단한 발명품한 가지는 ‘화장지의 인출 안전장치’다. 상자 모양의 화장지는 두장씩 나오면 불편하다.마지막 몇장이 상자안에 남아 있어도 골치.이전에는 또 곽화장지에는 비닐이 붙어 있었다. 申소장이 새로 만든 것은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장지통의 윗덮개종이부분만 톱니모양으로 잘라 낸 것.거기에 화장지가 물리면서 한 장씩 쏙쏙 뽑힌다. 비닐을 붙이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으니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고 환경공해도 막을 수 있었다.9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국제발명신기술전시회에서 공해환경분야의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발명가답게 申소장은 발명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발명의 역사입니다.첨성대나 망원경이 없었다면 천문학자가 무슨 수로 별을 관측했겠습니까? 타이머가 없었다면 스포츠경기에서 정확한 기록을 재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겠지요” 하지만 발명가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국내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과학,기술은 이미 오래전 대중화한 반면 발명은 극히 소수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만든 금속활자나 충무공의 거북선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우리는 누구보다도 창의력이 뛰어난 민족입니다.다만 지금까지 도덕교육에만 치중하는 탓에 그런 쪽의 발전이 더뎠을 뿐입니다” 그는 한국인의 이런 두뇌자원을 기술화,상품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스위스 하면 곧바로 시계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듯 우리만의 특성을 갖춰야 합니다.‘한국=아이디어왕국’이라는 공식이 성립됐으면 합니다” □약력 △1929년 출생. △외국어대 러시아어과 졸 △연세대 산업대학원 기계공학석사 △미국 뉴욕 유니온 유니버시티 이학박사 △한국신발명연구소 소장 △한국발명학회 회장 △국제발명가협회 고문 △3.1문화상 수상(84년)△서울올림픽경기장 수상(88년) △금탑산업훈장 수훈(92년) △국제발명상 89회 수상 △세계최다 국제발명상 수상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
  • 연극인 김의경(이세기의 인물탐구:164)

    ◎10년 앞 꿰뚫는 공연 예술의 선지자/초대형 청소년 뮤지컬 ‘슈퍼스타’ 기획 공전의 히트/청소년공예술진흥회 등 구성,연극계 입지 넙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분과 결부된 감성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극작가이자 발군의 연극기획자인 김의경의 연극인생을 두고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나 김의경은 극작가 이전에 먼저 ‘조직의 천재’다.단체를 조직하고 그 조직을 움직이는데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획 능력을 타고 났다.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포착하여 그 시대의 연극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그때의 활약상으로 한 시대의 영욕과 투철성을 일목요연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 그가 조직한 단체의 면모를 살펴보면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의 서울대 연극회를 필두로 지난 60년, 이낙훈 김동훈 등과 만든 극단 실험극장을 들 수 있다. 창단 당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노력하는 천재를 발굴하고 미래의 참된 예술인을 위한 가교가 된다’는 것이었으나 이 극단이 10년이상 지속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그러나 당시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던 소극장 중에서도 실험극장은 최근까지 단연 돋보인 단체로 손꼽혀 왔다.사무실도 없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던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그들은 연극을 향한 열망만으로 종로 2가 아세아제과점에 죽치고 앉아서 ‘행운의 여신’이 오기만을 베케트의 고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끝내 여신은 손짓하지 않았고 그대신 사회 각층의 연극애호가들을 모아 ‘실험극장 후원회’를 만들었다.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때는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 이진순 이해랑이 원경씨와 의논하여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축전’을 기획했고 스스로 사무간사가 되어 고급 관객을 위한 티켓을 제작한 것이 연극 페스티벌 사상 공전의 히트를 성취시킨 첫번째 예이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76년,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현대극장을 창단했고 춤과 노래와 연기의 총체적 예술에 눈뜨게 되었으며 창작뮤지컬 ‘빠담빠담빠담’과 ‘백설공주’‘피터팬’‘올리버’‘오즈의 마법사’ 등청소년 연극과 어린이를 위한 어른의 뮤지컬로 연극의 대형화,형태의 다양화, 관객의 광역화에 성공했다.그중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관객 2백만을 동원한 초대형 호화판으로 정력적이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기획력은 단시일에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을 발휘해 냈다. ○극작가로도 활동 활발 실험극장이 자기세계를 위한 위대한 준비기간이었다면 뮤지컬공연은 전문연극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군소극단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대형 뮤지컬에 승부를 걸면서 청소년층에 ‘연극을 보는 것도 수업’이라는 캠페인을 벌여나갔고 이화여고 강당인 류관순기념관과 능동 어린이회관의 무지개극장 등 공연장을 확대한 것도 그의 공로로 돌릴 수 있다. 그가 어린이·청소년연극을 만들게 된 동기는 지난 75년 국제극예술협회(ITI)총회에서 만난 미국의 저명한 연출가 해럴드 클로먼이 ‘한국연극사’ 토론중에서 ‘한국연극의 영세성과 낙후성’을 타개하려면 ‘먼저 어린이연극을 시작하라’는 충고에서부터다.김의경 특유의 냉철한 투쟁정신과 정확성의 힘은 지난 80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SSITEJ) 한국지부를 유치하는가 하면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를 발족하여 연극계 입지를 강화하는데 추호의 빈틈이 없는 완벽성을 기하고 있다.이후 대학로극장 개관과 함께 ‘대학로의 타락과 황폐화’를 막기 위한 대학로지역 극장연합회,서울시립극단의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으로서 지방의 시립극장의 모임인 한국공립극단연합회 등은 결국 연극인의 단합과 연극의 퇴보를 검속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극작가로서 그가 쓴 ‘함성’‘북벌’‘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와 ‘남한산성’ 등은 우리민족의 수난사와 고난사, 민족정신에 깔린 간독을 갈파하면서도 당대의 정사를 이지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론 정연한 원칙주의자 그런 가운데 극의 반전과 드라마투르기로 어둡고 슬픈 이야기에 진지하게 파고들고 억지웃음이 아닌 투명한 웃음을 무대에 부조하여 관객 공감의 밀도를 더하고 있다.이런 창작의지는 미국의 명배우 윌리엄 워런이 말한 것처럼 ‘기계가 인간의 웃음을 앗아가는 시대’에서 ‘진정한 웃음은 우리들 인생의 시’라는 차원과 서민의 애환을 보다 간박하게 펼치는데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평남 순안에서 의명학교에 재직하던 교육자 김연묵씨의 9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났다.해방후인 10살때 월남하여 서울대 사대부고에 다닐때는 교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고 일찍이 소설가 허윤석씨로부터 문재를 인정받기도 했다.그만의 사업적인 두뇌는 아무도 뮤지컬의 붐을 예견하지 못할때 청소년 연극인 ‘수퍼스타’를 무대에 올렸으며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연극계는 뮤지컬의 회오리에 휘말려 있다.연극계의 편협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선험적으로 ‘연극산업’을 시도한 셈이다.그런 한편으로는 ‘한국 연극의 홀로서기’를 위해 ‘뉴욕­런던­파리­도쿄’로 이어지는 세계적 극단의 공연일정속에 서울공연이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서울은 마치 호적이 없는 무적자’‘우리의 현실은 빈자의 왕자’라는 자조가 그의 예술적 고뇌를 뒷받침한다.성격은 원만하지만 능소능대보다는 이론이 정연한 원칙주의자이다.능력있는 ‘걸물’로 불리는 부인 최문경씨와의 사이엔 남매.서울시립극단의 봄공연인 입센의 ‘민중의 적’을 준비중이다. 그의 감성은 연극무대에서 항용 ‘이성과 지성의 갈등’을 교직시키면서 어느때는 ‘노도와도 같은 웅변’을 뿜지만 그의 영혼의 뿌리는 한국연극의 10년 앞을 재단하는 연극의식이 누구보다 총달하다.지금도 희곡·기획·조직에서 이시대 삼장장원의 면모를 마모시키지 않는 그는 연극계의 기수로서 시들 줄 모르는 기백과 예각적 혜안으로 언제까지나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세다. □연보 ▲1936년 평남 순안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졸업 ▲1960­72년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운영위원·대표 ▲1961년 MBC창설멤버(PD1기) ▲1963년 희곡 ‘애욕의 우화’공연 ▲1964년 희곡 ‘갈대의 노래’공연, TBC창설 멤버 ▲1964­94년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 ▲1967년부터 캐나다 ITI총회 참가 ▲1968­70년미 브랜다이스대학원 수료, 연극학 석사 ▲1973­76년 중앙국립극장 공연과장 ▲1976년 현대극장 창설, 대표 ▲1980년 한국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SSITEJ) 초대 이사장 ▲1983년 미 하와이대 연극학과 수학 ▲1986­89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서울올림픽문화축전 서울국제연극제 상임위원 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이사,ITI한국본부 회장,서울시립극단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 동국대 고려대 서울대 중앙대 출강 ‘세계신경향희곡선’(76년) 희곡집 ‘남한산성’(77년)‘경극과 매난방’ 번역(93년) 외 백상예술상 희곡상(75·86년) 눈솔상(85년) 문화훈장 ‘관훈장’(89년) 서울연극제 희곡상(91년)
  • 제25회 상공의 날/유공자 137명 포상

    □금탑산업훈장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이정환 금호유화 회장 장병주 대우 사장 제 25회 상공의 날 기념식이 18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김상하 대한상의 회장를 비롯 경제4단체장 등 1천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이정환 금호석유화학 회장,장병주(주)대우 사장이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모범 상공인,모범관리자 및 사원 등 137명이 정부 포상을 받았다.프랑스 투자업체인 (주)평화발레오의 던턴존스 부사장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수훈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금탑산업훈장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이정환 금호석유화학(주) 회장 △장병주 (주)대우 사장 ◇은탑산업훈장 △박영구 삼성정밀화학(주) 대표이사 △전진규 (주)동영산업 대표이사 ◇동탑산업훈장 △김상현 (주)삼기기공 대표이사 △신동열 성문전자(주)부회장 ◇철탑산업훈장 △장형수 (주)남선알미늄 회장 △유태로 성미전자(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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