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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과 경영 이야기] (40) LG생명과학 양흥준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40) LG생명과학 양흥준 사장

    “역사를 다시 쓴다는 자세로 도전하는 것 뿐입니다.” 말단 연구원으로 출발, 이공계 출신 전문경영인(CEO)으로 우뚝 선 LG생명과학 양흥준(楊興準·58) 사장은 우리나라 생명과학산업을 일궈낸 ‘산파’이자 ‘대부’로 꼽힌다. 양 사장은 전자,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80∼9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던 생명과학분야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투자에 주력했다.20여년이 지난 지난해 4월 호흡기 질환 항생제 ‘팩티브’를 ‘국산신약 1호’로 내놓는 등 성장산업으로의 가능성을 이끌어냈다. ●수학교과서,1주일 만에 ‘뚝딱’ “교과서에 적혀 있는 그대로 암기해야 하는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적어도 내가 해야 할 몫이 남겨져 있던 과목은 수학과 과학뿐이었습니다.” 양 사장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 모든 지식이 나열돼 있는 인문·사회과학 과목보다 계산이나 실험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하는 자연과학 과목에 훨씬 흥미를 느꼈다. 이 때문에 그는 새학기가 시작된 지 1∼2주일 만에 수학교과서에 실린 모든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어냈다. 물론 선생님의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에서 벗어나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시간은 ‘탈출구’나 다름 없었다. 그는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경상도 ‘깡촌’이라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었다.”면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 실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던 순간들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죠.”라고 회상했다. 결국 양 사장은 망설임없이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선택했다.1969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충북 충주의 한 비료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1978년 LG생명과학의 전신인 ㈜럭키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하면서 LG와 첫 인연을 맺었다. ●성공은 새로운 도전 위한 디딤돌 양 사장은 연구소에서 전자제품을 세밀하게 가공하는 데 쓰이는 PBT라는 고분자 수지를 만드는 공정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발, 한국 화학산업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PBT는 전자, 전기, 자동차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제품으로 당시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 독일 등 3개국뿐이었다. 또 국화꽃 향기가 파리와 모기 등 벌레들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 착안, 인체에 해가 없는 피레스로이드 살충제 제작공정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양 사장이 개발한 공정들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화학분야 연구원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가 과감히 유학의 길을 선택한 것은 80년대 중반.“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면서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를 가꾸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사장은 지난 89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단백질 분리에 관한 연구로 생물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럭키에 재입사했다. 연구에만 주력하는 외곬로 비쳐졌던 그가 96년에는 LG화학의 기술 및 사업전략을 담당하면서 연구원으로서의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이어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을 거쳐 2002년 8월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첫 생명과학 전문기업으로 탄생한 LG생명과학의 CEO를 역임하면서 경영인으로서의 삶을 활짝 열었다. ●위기는 끝이 아닌 과정 양 사장이 ‘성공의 문’만 두드린 것은 아니다. 10여년간 500억원을 쏟아부은 퀴놀론계 항균제 신약 팩티브가 2001년 12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의해 신약 승인 유보 판정을 받았다. 미국이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형선고’에 가까운 충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재신청을 준비하던 2002년 4월 개발 제휴사인 미국 GSK사로부터 공동개발 포기라는 ‘비보’도 접해야 했다. “신약 개발 경험이 없는 데다 승인 여부도 불투명해져 눈앞이 캄캄했죠.GSK는 자사 전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신약 승인이 물건너간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그는 당시 심정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러나 양 사장은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신약 승인을 다시 추진했다.A4용지 10만쪽 분량의 방대한 자료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결국 2003년 4월 국내 제약사상 최초로 미국 FDA 신약 승인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공식 판매에 들어간 팩티브는 연간 40억달러(약 4조 2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퀴놀론계 항균제 시장의 10%가량을 점유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는 “국내 제약회사가 700여개에 이르지만, 우리 스스로 개발한 약이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신약 개발이 어려운 분야라는 방증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가장 가능성 있는 분야인 만큼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얘기도 된다고 했다. ●지나친 이공계 부각은 차별 이공계 연구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매김한 양 사장은 과학적 마인드가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훨씬 쉽게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연구든 경영이든 지식을 바탕으로 실제 생활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확한 분석과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는 연구 경험은 시련이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고 여긴다. 이 같은 철학 때문에 이공계 현실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이공계 교육 프로그램이 잘못됐거나 이공계 전공자들의 실력이 낮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아닌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시쳇말로 ‘꼬여내는’ 방식으로 이공계를 부각시키는 것은 우대가 아닌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요즘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기초과학은 구식이고, 생명과학 등 응용과학은 최첨단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실 응용과학을 깊이 연구하다 보면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한데 이를 멀리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특히 양 사장은 최근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속속 내놓고 있는 생명과학분야조차도 갈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연구 인력의 능력은 선진국과 차이가 없지만, 조급증에 휘둘려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내는 능력이나 이 같은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선택과 집중이 승부수 양 사장은 1897년 국내에 근대적 의미의 제약사가 설립된 지 106년 만에 신약 개발의 염원을 풀었다. 동시에 한국을 세계 10대 신약 개발국의 반열에도 올려놓았다. 특허기간이 끝난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을 복제하거나 염기만을 일부 바꾼 제너릭제품(개량신약)으로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인력과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모든 분야를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항암제나 항생제 등 우리가 특화할 수 있는 분야에 전략을 집중해야죠.” 이 같은 신념에 걸맞게 LG생명과학은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 2100억원 가운데 3분의1이 넘는 700억∼8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사용했다. 연구개발인력도 전체 직원 1000여명 중 400명에 육박하며,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포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이 뒷받침되면서 LG생명과학은 현재 서방형 인간성장호르몬과 B형간염 치료제 등 제2, 제3의 신약 개발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약을 만든다는 신념이 없다면 연구에서 상품화까지 10∼20년이 걸리는 신약 분야에 발을 담글 수 없죠. 풍성한 가을걷이를 위해 봄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양 사장의 도전정신은 끝이 없어 보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양흥준 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양흥준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로 통한다. 깔끔한 인상에 온화한 표정, 여기에 경남 창녕 출신으로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오는 말투에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양 사장은 특히 분기별로 맥주집에서 직원들과 만나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무추진에 있어서만큼은 결단력과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갖췄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지난 20여년간 ‘한 우물을 판’ 양 사장은 신약 팩티브 개발과 국내 생명과학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5월 발명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는다는 양 사장은 과학뿐만 아니라, 경영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서적을 탐독하는 ‘책벌레’이기도 하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새벽 5시. 붓을 든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묵직한 고요가 찾아온다. 몇 갈래로 가슴을 후벼판다.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돌아 이내 절정에 이른다. 붓이 춤춘다. 무아지경이다. 구경꾼은 없으나 세상이 지켜본다. 불끈 솟아오른다.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한국의 색채다. 그건 원초적 본능이었다. 수십년째, 그렇게 토해낸다.3000점은 족히 된다. 개인전만 무려 46회를 열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58) 홍익대미술대학장.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 버릇이 있다. 매일 새벽 3시간 동안 붓과 내통한다. 찰나적인 테마를 떠올리기엔 새벽공기가 그만이다. 밤을 새운 적도 많다. 이런 까닭에 작업량이 가장 많다는 얘길 듣는다. 그는 1995년 이례적으로 40대에 미술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주목을 끌었다.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현재도 여전히 욕(?)먹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미술대학장 외에,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미협고문, 서울예고총동창회 회장, 홍대 총동문회 수석 부회장 등. 이달 말에는 아주 색다른, 대학배구연맹 회장직이 추가된다. 바쁜 와중에 오는 5월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2년 전에는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겪었다. 본인의 감회도 특별하겠지만 어떤 화풍을 새삼 선보일지 주목된다. 이래저래 2005년은 제2의 그림 인생을 출발하는 이정표인 셈. 그는 “올해를 계기로 지금까지 토해냈던 분량만큼 앞으로도 3000점은 더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터뷰의 첫 말문을 열었다. 장소는 홍대 미대학장실이었다. ●배구가 좋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직도 맡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에 발탁된 연유부터 물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도맡아왔던 스포츠 단체장직에 미술계 인사가 발탁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키가 181㎝이다. 고등학교 때나 ROTC(학군단)시절에도 최장신이었다.”며 웃는다. 자연스럽게 배구와 친해졌다.9인제 배구팀에서 주로 중앙세터나 오른쪽 공격수를 맡았다. 홍익대에서도 배구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최근 홍대 배구팀이 대학배구 4강까지 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과는 달리 손재주가 아주 좋아 배구를 잘 하는 민족”이라면서 “프로연맹 출범에 맞춰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드래프트 등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림 얘기로 넘어갔다. 그동안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참으로 바빴고 고통도 많았다.”며 한숨을 내쉰다.2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을 떠올렸다. “(부인 고집으로)병원에도 잘 안 갔습니다. 우린 서로 화가생활을 하면서 부부 개인전을 한번도 못 열었지요. 올해에는 함께 열려고 했는데….” 부인은 이화여대 회화과를 나왔다. 이 학장과는 서울예고 동기동창.16살에 만나 26살에 결혼했다. 이 학장 자신이 특별한 직장이 없어 처가 쪽에서 결혼반대가 심했다. 부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성사됐다. 장인은 4·19 당시 서울신문사장을 지낸 손도심씨였다. 부인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화가의 길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런, 인생의 반쪽을 위해 병바라지하고 또 먼저 보낸 아픔을 겪어내느라 공백이 길어졌다. 부인은 평소 문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소설가 박완서씨와 좀더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자주 보기 위해 박씨 자택 근처인 경기도 구리시로 집을 옮길 정도였다. 덕분에 이 학장 역시 문인들과 친분이 넓어졌다. “결혼초 먹고 살기 힘들 때 황석영씨의 소개로 현암사(출판사)에서 일감을 얻었지요. 한번은 황씨와 둘이 만리포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진 저를 황씨가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지요.” 소설가 조선작씨와는 1988년 서울신문에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리면서 인연을 맺었다. 소설가 김주영씨와도 친한 사이. 지난해 7월 화제를 모았던 ‘그림, 소설을 읽다’라는 주제로 열린 ‘소설화(小說畵)’ 전시 때 서로 짝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최인호씨와도 각별하다. 가수 이장희·조영남·윤형주 등과도 가깝게 지내는 등 문화예술계에 폭넓은 친화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각계의 지인들로부터 새해 안부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부인과 死別… 아픔딛고 4년 만에 개인전 그림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원초적 본능이라는 직답이 돌아왔다. 잠자는 본능, 움직이는 본능, 울고 웃는 본능이 있듯, 그림의 본능 또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는 것. 아울러 인류문명이 발전해오면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그림이 그려졌다고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숨쉬는 공기처럼 온갖 일상사가 곧 그림이란다. 그렇다면 화가로서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고행의 길이란다. 춥고 배고픔 속에서도 감동을 주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즉 어느 정도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 그림이 좋아져야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단다. 자연스럽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회고됐다. 놀랍게도 그는 ‘수출화’(이발소그림)를 무려 7년 동안이나 그렸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양쪽 시력이 다 나빠질 정도였다. 대가급 화가로서 쉽게 토로할 수 없는 대목이어서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부친은 경북 영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부친 역시 화가가 꿈이었다. 또 중학교 때 오세영 미술선생의 적극적 권유 등으로 쉽사리 서울예고쪽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2년 때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혼 후에도 생활비가 쪼들리기는 마찬가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재료비는 더욱 필요했다. 결국 1973년 수출화를 그리는 회사인 ‘서울갤러리’에 들어갔다. 밀레의 ‘만종’과 같은 풍경화와 기타 인물화 등 모방과 창작, 닥치는 대로 그렸다. 하루에 6∼7점,1년에 200여점을 그릴 정도로 강노동의 연속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영화사 쪽 일도 틈틈이 했다.70년대 후반 ‘별들의 고향’과 82년 박철수 감독의 ‘들개’에서 미술 소품을 담당했다. 운이 좋아서인지 ‘들개’로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는 한편 1974년 ‘20세기 현대미술전’과 ‘제1회 서울비엔날레’ 등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닦았다.79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매년 1∼2회씩 개인전과 해외전시 등을 부지런히 열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고 ‘대가’의 길로 들어섰다.47살에 미협회장을 맡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 그림을 소장한 사람이 3000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특히 미국 쪽에는 많고요.” 요즘 1호당(우편엽서 크기) 그림가격이 얼마인지 불쑥 물었다. 그는 “죽은 후에 (가격이)비싸질지 모르니 지금은 많은 사람이 소장할 수 있도록 저렴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그래서 몇년째 호당 20만∼30만원을 넘기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피카소는 위대한 작가이고, 애정 넘치는 샤갈과 모딜니아니도 존경하는 화가”라면서 5월 전시 때에는 사뭇 달라진, 절제된 색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장남은 미국 유학 중이고 군입대를 앞둔 차남과 함께 산다.16년째 ‘장기근속’하는 가정부 할머니가 집안 일을 맡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경북 영주 출생 ▲65년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69년 홍대 미대 회화과 졸업 ▲79년 동대학원 졸업 ▲95년 미술협회 이사장 ▲현, 홍대미대학장·동대학 회화과교수·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73년∼현재까지 단체전 및 국제전 70여회 ▲79년∼현재까지 개인전 46회 ▲주요 수상=신상전 최고상(68년), 선미술상(88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95년), 서울국제아트페어대상(2001년) k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정부연구기관 첫 억대연봉자

    정부연구기관에서는 처음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과학자가 탄생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31일 신희섭(54), 홍성안(54), 강용수(50) 박사 등 책임연구원 3명과 강성철(37), 이창준(38) 박사 등 선임연구원 2명을 2004년도 우수연구원으로 선정,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구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로써 책임연구원 3명은 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 이들은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의 억대 연봉자로 보도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원 2명보다 먼저 억대 연봉을 받아 국내 출연연구기관 최초의 억대 연봉자로 기록됐다. 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원 2명은 내년 초 성과급을 받을 예정이다. 그동안 KIST에서 연간 소득이 1억원을 넘는 과학자들이 상당수 있긴 했지만 과제 인센티브나 포상금 등을 제외한 순수 연봉만으로 1억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신 박사는 생체시계 작동 핵심유전자(PLCβ4), 통증억제 유전자(T타입칼슘채널) 및 수면조절 유전자 등을 처음으로 규명, 네이처 등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했고, 이같은 연구 업적으로 국민훈장 동백장, 호암상, 듀폰과학기술상,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등을 수상했다. 홍 박사는 산업자원부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형 사업중 수소ㆍ연료전지사업단장을 맡아 대체에너지 분야 연구를 주도,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소경제를 위한 국제협력기구(IPHE) 등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수소연료전지 연구현황’을 발표했다. 강 박사는 고체형 유기태양전지의 성능을 세계 최고수준(8.1%)으로 향상시켜 상용화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1월의 독립운동가 최용신

    국가보훈처는 30일 일제시대 당시 농촌 계몽활동을 통해 민족교육에 앞장선 최용신(1909∼1935) 선생을 2005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함남 덕원군 태생인 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한국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신념을 갖고 농촌 계몽운동에 투신했다.1931년에는 YWCA 농촌지도원으로서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천곡(샘골)에 파견돼 아동과 청년,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산술, 재봉, 수예 등을 가르치는 한편 생활 개선사업과 농가부업을 장려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길섶에서] 군화/김경홍 논설위원

    운동화나 수제화를 신던 발에 흉측스러운 군화(워커)가 어울릴 턱이 없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딱딱해서 도대체가 걸음걸이와 조화가 되지 않는다. 발 크기만 대중해서 지급된 군화는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춰야 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낫다. 발과 신발의 재봉선 이음새가 맞지 않아 뼈가 조이는 상태는 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이 자지러들게 한다. 그래서 훈련병들의 군화는 군데군데 면도칼 자욱이 훈장처럼 남았다. 훈련소만 벗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근무한 부대는 광나는 군화가 아니라 빛을 빨아들이는 어둠을 닮아야 한다. 이른바 세무 구두다. 구두고무창을 불에 태워 가루를 낸 뒤 병에 담는다. 천으로 마개를 하고 쇠브러시로 흙을 떨어낸 군화에 콕콕 찍어 검은 분칠을 한다. 새벽녘, 스무켤레쯤 분칠을 하고 나면 손톱 밑은 물론 콧구멍, 속옷까지 검댕투성이다. 2006년부터 군대에 신형전투화가 보급된다고 한다. 가볍고 품질이 우수하고, 치수도 다양하고, 세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우리·신한銀 ‘中企지원 대통령표창’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제9회 중소기업 금융지원상 단체부문 대통령 표창’수상자로 선정돼 30일 표창을 받는다. 중기청은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경기침체 등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금융지원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개인부문에서는 정경득 경남은행장이 은탑산업훈장을, 송기진 우리은행 부행장이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모범 금융인 57명이 훈·포장과 표창을 받는다.
  • 손관호 사장 ‘동탑산업훈장’

    손관호 SK건설 사장은 27일 열린 제천∼영월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 준공식에서 도로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 ‘디자인 브랜드 대상’ 공로부문 수상

    이남식 전주대 총장은 2004년도 대한민국 디자인·브랜드 대상 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24일 오후 3시 한국디자인진흥원 컨벤션홀에서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 [스포츠 라운지] 국내 첫 여성 IOC위원 꿈꾸는 ‘수영여왕’ 최윤희

    [스포츠 라운지] 국내 첫 여성 IOC위원 꿈꾸는 ‘수영여왕’ 최윤희

    서울 신촌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최윤희(38)씨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잔주름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에 여전히 시원한 눈매, 오뚝한 콧날까지 15살 때 인도 뉴델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던 생김새 그대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그와 12월이 깊어가는데도 포근한 캠퍼스의 분위기가 묘하게도 닮아 보인다. 40대 전후의 중년이라면 최윤희의 이름 석자를 모를 리 없다. 지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과 4년 뒤 서울대회에서 모두 신기록만 6개를 갈아치우며 5개의 금메달을 휩쓴 ‘아시아의 인어’. 그는 걸음마에 그치던 한국 여자수영을 뜀박질로 바꾼 주인공이다. 이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는 또 다른 금메달을 꿈꾼다. 난생 처음인 유학길. 비록 1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국내 첫 여성 IOC 위원’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일궈내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다. ●인어의 두마리 토끼 잡기 최씨는 이달 초 대한체육회가 실시한 ‘스포츠외교 전문인력’ 선발 시험 합격 통지를 받았다. 국제스포츠 외교를 담당할 인적 시스템 구축이 목표인 이 시험의 전형은 영어평가시험인 텝스(TEPS) 한 가지로 이뤄진다. 최씨는 시험에 참가한 각 종목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10여명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전이경(28·쇼트트랙)에 이어 선수 출신으로는 두번째로 ‘전문 인력 코스’를 밟게 된 것이다. 최씨가 공부할 곳은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학. 뛰어난 어학코스로 정평이 난 곳이기도 하지만 ‘가수 남편(유현상씨)’의 뒷바라지 때문에 ‘극성쟁이’ 두 아들을 맡긴 시댁이 근처에 있어 주저없이 이 학교를 택했다. 지난 2001년 1년 동안 이곳의 한 수영클럽에서 코치생활을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는 것도 유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년 초 출발할 최씨는 이 곳에서 오랜만에 며느리·어머니의 몫을 해 내면서 영어도 정복하는 ‘두 마리 토끼몰이’에 혼신을 다할 각오다. 그는 “아테네올림픽때 양태영 파문 등을 지켜보면서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내뱉는 영어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면서 “1년 동안 영어공부에 파묻히겠다.”고 덧붙였다. ●나이 마흔살에는 최씨의 수영 인생은 5살 때 시작됐다. 눈만 뜨면 온종일 수영장에 몸을 담근 까닭에 그는 지금도 친구들과 어울린 것은 물론 학교 소풍을 간 기억조차 없다. 대신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시아의 인어’라는 별칭뿐이다. 그만큼 수영은 10대 최윤희의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수영복을 벗은 것은 또 다른 인생의 목표를 세워야겠다고 절실히 느꼈기 때문. 최씨는 이후 리포터와 88서울올림픽 MC 등 방송계에 잠시 발을 들이는 등 다른 삶을 시작했다. 그때의 ‘방송밥’ 덕분에 지난 부산아시안게임과 아테네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 단골 해설자로 이름을 빠뜨리지 않았다.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1997년에는 대학원에 입학해 5년 만에 졸업, 학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드러냈다. 그는 “요즘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최씨는 “또 다른 삶에 대한 다소 겁나는 도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내 나이 마흔살에는 지금보다 더 당당한 모습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당차게 말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최윤희가 걸어온 길 ●출생 1967년 서울 ●학교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연세대학원 사회체육 전공 ●가족 남편 유현상(가수)씨와 2남 ●경력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여자배영 100·200m·개인 혼영 200m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여자배영 100·200m 금메달, 1990년 남북축구 북측선수단내전담당,2001년 미국 워싱턴주 King Aquatic Swim - ming Club 코치, 2002년 연세대 전임강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해설,2004년 아테네올림픽 해설 ●수상 1982년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체육훈장 청룡장
  • [한·미장관 성향·경력 비교] 美는 멀티플레이어·韓은 단일경력자

    [한·미장관 성향·경력 비교] 美는 멀티플레이어·韓은 단일경력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마이클 리비트 환경보호국 국장을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2기 정부의 인선이 거의 마무리됐다.‘내니(유모) 스캔들’로 전격 낙마한 버나드 케릭 국토안보부 장관 지명자의 후임 인선이 남았지만 부시 2기 정부의 면면은 대체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각료들과 경력, 출신지 및 대학 등을 비교 분석해본다. ●부시와 코드 맞고 충성심 강해 부시 내각 각료들의 특징은 ‘멀티 플레이어’가 많다는 점이다. 장관 및 지명자들의 경력을 보면 대부분이 정부와 기업 및 학계에서 두루 일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 경제학 박사인 존 스노 재무장관의 경우 경제학 교수, 정부부처 차관보, 대기업 회장 등 ‘3박자’를 갖춘 뒤 장관에 취임했다. 장관에 임명되기 전 한가지 경력만 쌓아온 인물은 켈로그 회장 출신인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지명자뿐이다. 다양한 경력을 쌓아온 장관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해하고, 해당 부처뿐만 아니라 백악관과 언론, 시민단체, 다른 부처 등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장관들은 대부분 ‘단일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관료나 교수로만 일해온 인물이 많다. 특히 학교에서만 머물러온 인물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되기 쉬워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직업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기업 마인드’로 무장 부시 2기 각료 및 지명자 14명 가운데 12명이 기업이나 법률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부 조직이 ‘기업적 마인드’를 갖고 운영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다국적 제약회사인 ‘설’과 정보통신(IT) 기업인 제너럴인스트루먼트 회장으로 업계에서 ‘최고의 경영자’상까지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은 월스트리트 출신으로 미국 역사상 최고, 최장의 호황을 이끌어낸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영향으로 금융계 출신 인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부시 2기 내각에서도 럼즈펠드(투자은행), 일레인 차오(뱅크아메리카캐피털마켓그룹), 새뮤얼 보드먼(피델리티 투자), 마이클 리비트(보험사) 등이 금융계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업계 출신은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유일하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 시스템에 밝은 전문가는 “한국의 경우 그동안 정경유착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특정기업 출신을 내각에 등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점이 있었다.”면서 “진 장관 등의 공과에 따라 향후 기업인 출신 장관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전국적 ‘스타’ 거의 없어 부시 2기 내각의 또다른 특징은 ‘전국적인 거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일 노튼 내무장관(전 콜로라도주 검찰총장)이나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전 텍사스주 대법관), 마거릿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전 텍사스주 교육정책 자문관) 모두 지역사회에서만 알려졌던 인물이다. 럼즈펠드 장관 정도가 거물이지만 72세인 그의 ‘정치적 미래’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이른바 ‘차기 대권주자’들이 포진해 있는 한국의 내각과는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관들이 조직을 장악하고 소신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한 4년에서 8년의 임기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부시 2기도 15명 가운데 6명이 유임돼 대부분 8년 동안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 많아 부시 대통령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내각에는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 많다.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지명자, 니컬슨 보훈장관 지명자 등의 성공담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이나 아시아계, 히스패닉계가 많아 배려나 조화 차원의 임명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도 몸담았던 차오 장관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위해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다.2004년 대선 때도 지방을 돌며 부시 대통령의 치적을 올려세우고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연설했다. 여성 내무장관인 게일 노튼은 “북극을 원유탐사지로 개방해야 한다.”는 등 보수적 환경관을 지닌 인물이다. 알래스카의 유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부시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것이다. 흑인인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와 히스패닉인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 여성인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부시 집안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다. 구티에레스도 켈로그 회장 시절 본사가 있는 미시간주에서 히스패닉을 상대로 부시 당선운동을 벌여왔다. 충성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dawn@seoul.co.kr ■ 텍사스·지방大출신 많아 부시 2기 내각 각료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역시 텍사스 출신이 가장 많다. 곤살레스 법무장관 지명자, 스펠링 교육장관 지명자, 알폰소 잭슨 주택장관 등이 텍사스 출신이다. 그밖에는 럼즈펠드 장관과 보드먼 에너지장관 지명자가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일 뿐 출신지가 겹치는 장관은 없다. 차오 노동장관은 타이완계이며 노먼 미네타 교통장관은 일본계이다. 출신학교는 매우 다양하다. 하버드대(차오, 곤살레스)와 덴버대(라이스, 노튼) 출신이 2명씩이고 나머지는 모두 출신학교가 다르다. 또 MIT(새뮤얼 보드먼)나 프린스턴대(럼즈펠드),UC버클리(미네타), 컬럼비아대(짐 니컬슨)와 같은 명문대 출신도 있지만, 지역의 소규모 대학을 나온 인물도 많다.
  • 수출시장 도전 가전 3사의 힘

    ‘세계가 좁다.’내수경기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가전업계가 ‘한류열풍’ 등에 힘입어 아시아권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이같은 성장을 뒷받침해줄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전 세계에 연구개발(R&D)센터도 속속 열고 있다. ●아시아는 한국 독무대 LG전자는 중국지주회사 및 계열사의 현지 매출이 지난해 70억달러에서 올해는 43%가량 늘어난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13일 밝혔다.2002년 중국 내 매출이 40억달러였으니 2년새 2.5배 성장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외국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훈장과 최고기업상, 기업인상을 받은 데 이어 에어컨 시장점유율이 35%를 차지하는 등 3년째 현지 가전시장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중국에서 프로젝션TV, 양문형 냉장고, 모니터, 광디스크드라이브(ODD)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매출이 작년보다 4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다. 올해 중국 내 매출(내수와 중국법인에서 수출한 금액 포함)은 120억달러로 예상되며 2010년까지 25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도 PDP·LCD TV 등 프리미엄급 가전시장 1위에 오른 것에 힘입어 매출 신장률이 30%를 넘었다. 베트남 냉장고시장 1위인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올해 점유율이 작년보다 5% 높아진 35%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에서는 다기능 오븐 전자레인지,3도어 냉장고 등을 중심으로 가전 매출이 25%가량 늘었고, 타이완에서도 디지털 영상가전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세계의 두뇌를 빨아들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영국(휴대전화, 디지털TV), 러시아(광학,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인도(소프트웨어), 이스라엘(휴대전화 소프트웨어), 미국 산호세(디지털TV, 프린터), 미국 달라스(차세대 통신시스템), 일본 요코하마(핵심부품), 중국 베이징(통신 및 IT), 쑤저우(반도체)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올들어서도 중국 항저우(시스템LSI)와 난징(소프트웨어)에 R&D센터를 신설했다. LG전자는 지난 6일 프랑스 파리 빌르뱅크에 유럽 휴대전화 R&D센터를 개설하면서 해외 R&D센터를 14개로 늘렸다. 정보통신 관련만 미 샌디에이고, 중국 베이징, 인도 벵갈로, 러시아 모스크바 등 5개에 이른다.LG전자는 전체 휴대전화 연구인력의 30% 이상을 해외 현지인력으로 충원,2006년까지 연구인력을 50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직종 통합’ 가처분 결과 주목

    ●결과따른 후폭풍 양측모두 부담 철도노사의 직종통합 합의에 반발하고 있는 일반직노조(가칭)가 ‘직종통합에 관한 특별단체협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8일 대전지방법원에 제기해 그 결과의 귀추가 주목. 철도청과 일반직 노조 공히 연내 조속한 결정을 기대하고 있으나 결과에 따른 ‘후폭풍’의 부담은 양측 모두 불가피해졌다는 것이 중론. 조만간 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인 노조는 예측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결과는 인정결정(효력정지)뿐이라고 강조. 인정결정되면 노조 등록은 물론 무효소송없이 3자간 협상을 통해 일반직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 그러나 기각시는 노조 등록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되고 전면전(?)이 될 수 있는 무효소송이 불가피. ●‘그라운드 룰’ 제정 회의 효율성 높여 산림청이 회의 시간 절약 및 회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회의 그라운드 룰’을 제정해 눈길. 이달 1일부터 본청의 모든 회의에 도입된 회의 룰에 따르면 ▲회의자료는 하루전 배포 ▲회의시간 준수 ▲핵심내용만 간략히 발언 ▲회의는 1시간 이내 종료 등이 원칙.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타임체크기를 회의마다 비치해 시간초과시 벨이 울리도록 하는 등 변화에 대한 적응을 시도. 산림청 관계자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회의가 길어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촌평. ●기록원 ‘친일 서훈자’ 명단 누출 당혹 국가기록원이 ‘친일 서훈(敍勳)’ 명단을 입수·분석중이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 지난 6월 일본으로부터 1500여명에 달하는 표창 및 훈장수여 기록을 들여와 은밀히 사실확인 작업을 벌이던 기록원은 정보 발설자(?)에 대한 원망과 함께 후속 작업 일정 차질을 크게 우려. 한 관계자는 “문건에는 성명과 직위, 상훈명이 대부분이고 공적사항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내년 추가 자료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미궁에 빠지게 됐다.”며 하소연. 명단 존재사실이 알려진 후 국가기록원에는 사실 문의 및 확인 등을 요청하는 민원 전화 등으로 북새통. 기록원 관계자는 “이런 파장을 우려해 비밀을 유지하고 정확성을 기했던 것”이라며 “과거사법이 통과되고 진상조사위가 설치되더라도 자료 제출여부는 일본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친일서훈/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이뤄 국회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네티즌 모금운동에 힘입어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이 국고지원도 받게 됐다. 아마도 이런 친일청산 분위기에 지하에서나마 가장 감격해 할 이는 고 임종국선생이 아닐까 한다. 임선생은 아무도 ‘친일파’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던 1960년대에 ‘친일문학론’을 펴내면서 친일연구의 서막을 연 재야사학자다. 원래 문학평론가였던 선생은 한·일국교회담에서 너무도 당당한 일본의 모습과 당시 장관이 “제2 이완용이 되더라도…”운운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 친일파 연구로 인생의 행로를 바꾸었다고 한다. 선생의 업적은 ‘일제침략과 친일파’ ‘밤의 일제침략사’ ‘친일논설선집’ 등 5권에 집대성됐다. 오늘의 ‘친일인명사전’은 선생의 유업 ‘친일파총서’를 계승한 것이다. 선생의 서거후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는 등 친일 연구 명맥은 이어지고 있지만 항상 문제는 자료부족이다. 선생이 기술한 ‘일제 하 작위취득 상속자 135인 매국 전모’는 한일병합 공로로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친일파들의 전모를 세세히 밝힌다. 선생이 신문, 잡지, 조선총독부 관보는 물론 관계자 증언까지 취합해 쓴 글들은 그대로 친일연구 자료가 돼왔지만 아직도 진상규명에 필요한 원사료는 태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기록원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들여온 일제하 일본정부 서훈명단은 기대를 모은다. 최고훈장인 ‘대훈위 국화 대수장’을 받은 이완용 등 친일 관료와 판·검사, 교사, 경찰 등 무려 1500명의 수훈사실이 자세한 공적과 함께 적혀있다고 한다. 작위취득자의 경우처럼 거절하거나 반납한 경우 등만 확실히 가린다면 친일 진상규명에 획기적 근거자료가 될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조선총독부의 ‘조선공로자명감’도 개인에 의해 공개됐다. 진상규명 의지만큼 민·관의 자료 발굴도 활발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친일규명의 필요성은 이제 정치권도 이의가 없다. 친일진상규명법이 하루빨리 통과돼 우리의 과거청산 콤플렉스가 깨끗이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친일서훈 일제 공문 발견

    정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정부로부터 표창 및 훈장을 받은 한국인들의 친일행적이 담긴 ‘친일 서훈(敍勳)’을 발견했다. 행정자치부는 9일 일본 내각 상훈과의 공식문서인 ‘서훈’을 일본 공문서관에서 발굴해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수여한 표창 및 훈장 기록이 담겨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부고]

    ● 애국지사 김재황 선생 별세 애국지사 김재황 선생이 7일 낮 12시14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7세. 충남 연기 출신인 선생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중이던 1939년 김상흠·서영원·민영로 선생 등과 함께 항일결사 조직인 조선학생동지회를 결성했으며, 이후 3·1운동과 같은 거사를 계획했다. 정부는 1980년 대통령 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월향 여사와 4남 4녀를 두고 있다. 발인 9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042)935-8699. ●유장준(서울신문 수원 신영통지국장)씨 부친상 7일 연기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6시 (041)866-4412 ●강세중(전 기업은행 지점장)세덕(교사)세근(자영업)기중(LG화학 본부장)대중(쌍용양회 부장)씨 부친상 황경규(전 신세계 이마트부문 대표)씨 빙부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3410-6917,6930 ●윤우용(국민연금관리공단 언론홍보팀장)병용·중용(사업)씨 부친상 조복현(MBC 조명감독)이강지(순천고 교사)씨 빙부상 7일 전남 순천 한국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61)743-4492,740-5193 ●김병윤(한국산업교육연구원장)병기(전 구주제약 부사장)씨 모친상 7일 경희의료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958-9545 ●남효열(경산서부초등학교 교사)씨 상배 태광(조선비료 직원)현미(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희연(산업안전공단 대구지도소)경림(윈텍아이티 직원)씨 모친상 박춘배(아성산업 직원)씨 빙모상 6일 오후 10시10분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64 ●이완복(CBS 보도국 사회부 기자)씨 조모상 7일 구미 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54)452-1975 ●이제호(현대자동차 청량리영업소 영업부장)씨 별세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30분 (02)3010-2265 ●신광철(전 대전시교육위원회 의장)씨 별세 동수(사업)동욱(동양오리온투자증권 대전충청본부장)동열(전 중도일보 사회부장)씨 부친상 윤양호(주식회사 넵스 대표)씨 빙부상 7일 충남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30분 (042)257-4861
  • [CEO 칼럼] 프로와 非전문가/류춘수 이공건축 회장

    [CEO 칼럼] 프로와 非전문가/류춘수 이공건축 회장

    음악이나 미술 콘테스트의 심사위원 중에 해당 분야의 권위있는 예술가나 전문가가 아닌 분은 있을 수 없지만, 건축을 평가하고 자문하는 이들 중에는 행정관료나 타 분야의 예술가나 기술자들이 의외로 많다. 건축은 행정이 수반되는 기술적 산물이며 종합적 예술이기에 얼핏 당연한 듯 보이고, 건축은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다는 통념이 깔린 탓이기도 하다. 최근에 작은 보석점포의 인테리어 설계를 한 적이 있는데, 건축주는 내게 강의에 가까운 설계 주문을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 말들은 혹 맞는 듯하지만 사실은 안목없이 ‘코끼리 만지는 장님’의 견해일 뿐임을 그들은 모른다. 수십만명의 아마추어가 수십년 공부를 한 뒤 한꺼번에 이창호 한 사람과 바둑을 두어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비전문가의 10년이 프로의 한나절 생각보다 결코 나을 수 없음을 사람들이 아직 인정을 못하는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예술분야에서 권위와 명성을 쌓은 분들이 공식적 자문에서 던진 한마디가 때론 좋은 건축을 크게 방해할 수 있음이다. 두 가지 경험적 사례가 있다. 하나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설계에 당선돼 실시설계를 시작할 때였다. 상상해 보라. 그만큼 중요한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심의와 자문위원회가 있었겠는가. 건축가에게 때로는 이런 위원회가 설계보다 힘들게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이 된다. 전직 장관을 지낸 문화계의 거물이 어디서 듣긴 들었는지 “건축에서 두 가지 재료를 쓰는 것은 나쁜 디자인이다.”라며 막구조 지붕 양측에 달린 유리 지붕을 떼라고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상 VIP석은 지붕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 권위 앞에 묵살 당한다. 결국은 내 뜻대로 했지만, 나는 이것을 문화인이 가장 반문화적일 수 있는 사례로 꼽는다. 헌법재판관을 현란한 지식으로 매도한 유명한 철학강사나, 그 권위있는 문화인이 헌법이나 건축에는 보석상 주인과 다름없는 비전문가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에 미치는 해독은 그 분들의 명성에 비례해 커진다는 데 있다. 또 하나는 근년에 설계한 어떤 공연장 건축을 자문받을 때였다. 어느 권위있는 음악가가 내 건축을 한국적 기와지붕으로 고쳐야 한다기에 나는 감히 이렇게 답했다.“만약 제가 선생님의 연주에 이 음을 길게 혹은 강하게 고치라 하고 또는 플루트 대신 대금을 쓰라고 하면 따르시겠습니까.” 건축도 이와 다름없이 아무나 설계하고 아무나 간섭할 상식적 작업이 아니다. 어떤 예술과 다름없이 작가의 피나는 고뇌의 산물임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다 각 분야의 기술적 융합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안팎의 공간에 사는 이들의 생활을 지배하며 동시에 인류의 유산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좀더 경건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덕분에 서울경기장을 설계한 나도 덩달아 영광스럽게 훈장을 받았다. 훈장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귀하는 국민 체위 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수여함/체육훈장 백마장/2002년 11월 27일’ 꼭 2년 전의 일이다. 히딩크나 홍명보라면 몰라도 내게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문안이다. 이것을 나는 형식적이며, 반개혁적이며 반성없는, 그러기에 반문화적인 ‘관료 한국’의 현실적 증표라고 본다. 그 반문화적 훈장은 왜 받았냐고? 한 반세기 지나면,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나라에서 혹 문화훈장으로 바꾸어 줄지 모른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이루어진다.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
  • [부고]

    ● 한국 핵의학 개척자 이문호교수 별세 한국 핵의학 분야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문호(李文鎬·82) 전 서울중앙병원장(현 서울아산병원)이 5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2세.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난 이 박사는 1946년 서울대의대(경성대 의학부)를 졸업한 뒤 정년퇴임때까지 내과교수와 암연구소장을 지내면서 한국 의료와 의학을 서양의학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 박사는 대한의학회의 전신인 대한의사협회 분과학회협의회 회장을 맡아 한국 의학의 발전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핵의학과 혈액학, 신장학, 갑상선학 분야의 신학문을 국내에 도입,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박사는 3·1문화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학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공로대훈장을 받았다.88년 서울대의대를 정년퇴임한 뒤에는 서울아산병원의 초대 원장을 맡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송귀순 여사와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9일 오전 8시.(02)3010-2270. ●김성호(인천광역시의원)씨 별세 5일 인천길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32)462-9261 ●최영근(보건복지부 서기관)영재(자영업)영호(건설업)씨 모친상 김종승(공무원)이순일(뉴질랜드 거주)정태영(농협 본부장)이민종(한국외대 교직원)손형락(자영업)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 (02)3010-2233 ●윤신(대한항공 상무)준(수경의료재단 작업환경실장)찬(사업)씨 부친상 송재동(한불화장품 과장)씨 빙부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2)3010-2237 ●이용석(교보생명 상무)씨 모친상 손상렬(자혜의료재단 이사)유기영(자혜의료재단 이사장)임문규(대우조선해양 부장)씨 빙모상 4일 경남 거제대우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55)680-8444 ●이두영·주영(사업)권영(서울시교육청 사학진흥담당 사무관)태영(A&A설계 대표)씨 부친상 강태갑·곽오병(자영업)씨 빙부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3 ●오상원(홍익대 법학과 교수)씨 별세 엄묘섭(대구카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씨 상부 윤희(코리아헤럴드 기자)씨 부친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3010-2260 ●김성한(서울도시철도공사 주임)상현(동일팬벨트 사원)씨 부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3010-2239 ●이창준(롯데쇼핑 상무이사)씨 모친상 4일 국립의료원, 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2662-4820 ●최상균(현대자동차 대리점 부장)씨 부친상 5일 대구 영남대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53)620-4238 ●김언호(도서출판 한길사 대표)상호(전 동현초등학교 교장)판호(미국 거주)장호(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치호(예금보험공사 부장)씨 모친상 이상철(진해 경제자유구역청 세정과장)씨 빙모상 4일 부산 영락공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51)508-9004 ●이백운(전 LG정유 전무이사)백남(사업)백철(경기대 교무처장)씨 부친상 이완구(전 국회의원)씨 빙부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1 ●이규철(주한미군 군속 인사 및 노사담당관)규만(제조업)규창(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 ●고현진(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씨 모친상 우천영(한국모토롤라 부장)씨 빙모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5 ●정주래(전 조흥은행 강남구청역지점장)씨 별세 승래(해태음료 차장)씨 형님상 4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92-3499 ●김판국(농민신문 화백·전 경향신문 편집위원)씨 모친상 5일 경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404-1099
  • 盧대통령 버킹엄궁서 잔다

    |런던 박정현특파원|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한 노 대통령은 대영제국의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왕실로부터 전통적이고 화려한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국빈 방문이 공식 방문과 다른 점은 런던 시내 호스 가즈(Horse Guards)에서 공식 환영행사를 받고, 여왕의 관저인 버킹엄궁을 숙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버킹엄 궁에서 잠을 자는 최초의 한국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영국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으로 국빈 방문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윌슨 대통령에 이어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두번째였고, 러시아는 제정러시아 붕괴 이후 푸틴 대통령이 유일했다. 올 상반기 국빈 방문한 외국 정상은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다. 전날 밤 런던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힐튼호텔로 찾아온 찰스 황태자의 동생인 에드워즈 왕자 내외로부터 호스 가즈로 안내받았다. 노 대통령 내외가 12시50분쯤 환영 행사장에 도착해 여왕으로부터 영접을 받은 뒤 단상으로 이동할 무렵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같은 시간에 시내 그린파크와 런던타워에서는 4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이어 의장대장이 우리말로 “의장대 사열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으며, 노 대통령은 100여명의 화려한 의장대를 사열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황금빛 왕실 전용마차 두 대에 나눠타고 화려한 복장을 한 근위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버킹엄 궁으로 향했다. 노 대통령과 여왕이 탄 마차는 말 6마리, 권 여사와 에든버러 공이 탄 마차는 4마리가 이끌었다. 공식수행원들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 다섯대에 나눠타고 뒤를 따랐다. 여왕은 이날 외국 원수에게 주는 가장 높은 훈장인 배스 대십자훈장을 노 대통령에게 수여했다. jhpark@seoul.co.kr
  • 與 “민주당 대선 빚 갚겠다”

    열린우리당 ‘봉숭아 학당’이 열렸다. 기획위원장인 민병두 의원은 1일 오전 기자들에게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봉숭아 학당’이나 한번 해보려고 불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열린우리당 ‘봉숭아 학당’의 ‘단골 훈장’은 문희상 의원이었다. 이번에는 기자 출신인 민 의원이 나섰다.4대법안 처리를 위해 적극적인 대언론 홍보에 나선 뜻으로 해석된다. 민 의원은 “민주당이 청와대에 와서 또 시위한다는데 조금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고 당내에서 지난 7∼8월부터 ‘상도의상’ 민주당의 부채를 갚아 주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깜짝 공개’하는 등 정치권 안팎의 여러 내용을 두런두런 풀어냈다. 그는 “우리당은 뉴라이트운동이 실체가 없다고 보며 ‘무시 전략’을 쓰고 있다.”면서 “우리당에서 뉴라이트 대응문건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는 보수세력의 상실감, 분노를 나타내며, 우왕좌왕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되지만 구체적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비판도 곁들였다. 그는 또 “4대 법안에 대해 1주일에 한 번씩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 다른 법안은 물론 국보법 폐지안도 30%를 웃돌던 지지율이 40%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당 사람들의 동지애는 의외로 높다.”는 등 당 홍보도 잊지 않았다. 민주당 부채 청산 발언에 대해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우리당이 뒤늦게나마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니 다행”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이 노 대통령 때문에 발생한 비용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환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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