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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교원 562명에 훈·포장

    정부는 8일 지난 2월 말 명예·의원퇴임한 교원 562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과 이무근 경일대 총장, 박명수 전 중앙대 총장, 고재식 전 한신대 총장 등 4명에게는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이 수여된다. 문병언 경기부광초 교장 등 34명에게는 황조근정훈장, 서기원 부산 브니엘예술고 교장 등 35명은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조동균 전남 목포인성학교 교장 등 83명은 녹조근정훈장, 이문호 충북 청안중 교사 등 136명은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이밖에 79명은 근정포장,36명은 대통령 포장,55명은 국무총리표창,100명은 교육부총리 표창을 받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청조근정훈장(4명) 1 박찬석 朴贊石 (前)총장 경북대학교2 이무근 李茂根 총장 경일대학교3 박명수 朴命洙 (前)총장 중앙대학교4 고재식 高在植 (前)총장 한신대학교 ◆황조근정훈장(34명) 5.고문자 高文子 교사 동산초등학교6 故 신중배 愼重培 교감 서울연촌초등학교7 정화자 鄭和子 교장 서울덕수초등학교8 박승봉 朴勝鳳 교장 서울잠동초등학교9 김상욱 金相旭 교감 서울학동초등학교10 박인홍 朴寅弘 교장 서울남성초등학교11 신웅 申雄 교장 서울광장초등학교12 최진흡 崔振洽 교감 서울동자초등학교13 박부자 朴富子 교장 달북초등학교14 송후덕 宋厚德 교감 낙동고등학교15 황봉진 黃鳳鎭 교감 분포초등학교16 이호기 李好基 교감 초읍초등학교17 이연무 李然武 교감 학남고등학교18 김윤환 金允煥 교장 대구칠곡초등학교19 故 김휘영 金輝永 교장 대구동호초등학교20 윤덕자 尹德子 교사 인창초등학교21 문병언 文炳彦 교장 부광초등학교22 김영수 金永壽 교장 오남초등학교23 양건 梁健 교장 청곡초등학교24 오영자 吳英子 교장 부림초등학교25 장대홍 張大弘 교장 안말초등학교26 김재섭 金在燮 교장 구운초등학교27 최일웅 崔一雄 교감 교동초등학교28 故 조공성 趙孔聖 교장 대진초등학교29 김순택 金淳澤 교장 아우내중학교30 김영석 金永錫 교장 화순제일초등학교31 김경자 金京子 교감 야은초등학교32 강승구 姜勝求 교감 북성초등학교33 故 김정섭 金正燮 교장 신현초등학교34 김종인 金宗仁 교수 대구미래대학35 권용호 權容浩 교수 동부산대학36 홍은택 洪殷澤 학장 배화여자대학37 조문규 曺文圭 교수 포항1대학38 故 이창효 李昌孝 교수 한양대학교 ◆홍조근정훈장(35명)39 전태준 田泰準 교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40 최종희 崔鍾姬 교감 신구중학교41 이철구 李哲求 교장 서울방배초등학교42 이병천 李炳天 교감 서울양재초등학교43 노병하 盧秉河 교장 서울송중초등학교44 김효진 金孝鎭 교장 서울경운학교45 서기원 徐基元 교장 브니엘예술고등학교46 이채익 李埰翼 교사 금정고등학교47 류백우 柳伯友 교감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48 김하진 金夏辰 교사 지원중학교49 고병석 高炳錫 교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50 신봉섭 申鳳燮 교감 동대전초등학교51 김영자 金英子 교감 가평초등학교52 이병숙 李炳淑 교감 마성초등학교53 최우현 崔又鉉 교감 석수초등학교54 정경일 鄭炅日 교감 백마고등학교55 김동환 金東煥 교감 소양초등학교56 김남화 金南和 교감 양양초등학교57 조현묵 趙鉉默 교감 봉오초등학교58 최재필 崔在弼 교감 충주중앙초등학교59 우용의 禹溶義 교감 충주중앙초등학교60 이복희 李馥熙 교장 청주동중학교61 윤복한 尹福漢 교감 강서초등학교62 권오인 權五仁 교감 청산초등학교63 김상근 金相根 교감 공주중동초등학교64 故 김동진 金東振 교장 가사초등학교65 정화자 鄭花子 교감 충남체육고등학교66 성길호 成吉鎬 교감 여산고등학교67 윤종철 尹鍾鐵 교감 촉석초등학교68 송영호 宋英浩 교감 동진초등학교69 홍도윤 洪道潤 교감 덕오초등학교70 오정환 吳正煥 교장 경화초등학교71 김광웅 金光雄 교장 밀성중학교72 임종국 林鐘國 학장 대구미래대학73 최천택 崔天鐸 교수 한신대학교 ◆녹조근정훈장(83명)74 권영문 權寧文 교장 예일여자실업고등학교75 정영순 鄭英順 교장 정원여자중학76 김영기 金英起 교장 충암고등학교77 방현기 方玄基 교장 선정고등학교78 故 김원영 金元永 교사 중앙고등학교79 이승호 李勝浩 교장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80 송한성 宋漢星 교사 중평중학교81 유정민 劉政敏 교감 혜화여자고등학교82 장현숙 張鉉淑 교감 잠실고등학교83 권순규 權純珪 교감 서울불광초등학교84 손관명 孫寬明 교장 서울유현초등학교85 김길성 金吉成 교감 낙동초등학교86 김명자 金明子 교감 신남초등학교87 선현태 宣鉉泰 교사 안민초등학교88 이영조 李榮助 교감 대동고등학교89 박성훈 朴成勳 교사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90 김영창 金永昌 교감 공산중학교91 한영학 韓永學 교장 영남공업고등학교92 장인식 張仁植 교감 대건고등학교93 故 정명교 鄭明敎 교사 대구용지초등학교94 김영숙 金英淑 교감 대구용지초등학교95 최창길 崔昌吉 교감 영남고등학교96 유태영 兪泰寧 교감 청구고등학교97 이천곤 李天坤 교감 경구중학교98 김종명 金鍾鳴 교장 인제고등학교99 구자서 具子書 교감 인천여자공업고등학교100 박성빈 朴聖彬 교장 살레시오중학교101 양세원 梁世元 교감 대전송촌중학교102 故 송병직 宋炳直 교육연구관 대전교육연수원103 박노정 朴魯貞 교장 호수돈여자중학교104 김여산 金麗山 교감 부천부안초등학교105 방묘희 方妙姬 교감 대야초등학교106 박병익 朴炳益 교감 성남중앙초등학교107 양종호 梁鐘湖 교감 늘푸른초등학교108 류훈열 柳訓烈 교감 주엽공업고등학교109 민철기 閔鐵基 교감 시화공업고등학교110 박경자 朴慶子 교감 근명여자중학교111 민중기 閔中基 교감 진위고등학교112 양승복 梁承福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3 정호섭 鄭浩燮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4 이상진 李相振 교감 동춘천초등학교115 김희민 金熙敏 교감 후평초등학교116 권창주 權昶周 교감 봉대초등학교117 김희만 金熙萬 교감 명덕초등학교118 기노봉 奇老鳳 교감 구송초등학교화성분교장119 조현영 趙顯榮 교감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120 조영수 曺永秀 교장 강릉명륜고등학교121 이광구 李光求 교감 진천고등학교122 연규만 延圭晩 교감 율량초등학교123 권정자 權貞子 교감 금천초등학교124 이종환 李鍾煥 교감 풍광초등학교125 이규숙 李圭淑 교감 율량초등학교126 박선희 朴仙姬 교감 율량초등학교127 김재용 金在容 교사 공주중동초등학교128 故 박일남 朴一南 교감 논산여자고등학교129 故 오택근 吳宅根 교장 삼례여자중학교130 조동균 趙東鈞 교장 목포인성학교131 서영순 徐永順 교사 쌍봉초등학교132 조태용 曺泰用 교감 영천초등학교133 주홍임 朱洪任 교감 안계초등학교134 김규승 金圭勝 교감 문경공업고등학교135 김광득 金光得 교장 의성고등학교136 故 김창록 金昌錄 교장 양북중학교137 최명 崔明 교감 대구가톨릭대학사대부속무학고등학교138 황장홍 黃金長弘 교장 옥계중학교139 김상순 金相淳 교감 안평중학교140 하용성 河龍成 교감 합포초등학교141 정종상 鄭宗相 교감 함양초등학교142 구태용 具台用 교사 대아중학교143 정만기 鄭萬基 교감 김해여자중학교144 김청 金淸 교사 양산고등학교145 이용우 李龍雨 교감 양산남부고등학교146 故 양문식 梁文植 교장 삼천포중앙고등학교147 신진영 申珍泳 교장 동광초등학교148 양창구 梁昌九 교감 제주중앙초등학교149 박진종 朴鎭宗 교사 신성여자중학교150 석정자 石靜子 교수 동주대학151 김도용 金到勇 교수 동주대학152 조열 趙烈 교수 동서울대학153 임병오 林炳午 학장 영남이공대학154 심종섭 沈宗葉 교수 강원대학교155 윤형자 尹亨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156 김두석 金斗錫 교수 호원대학교 ◆옥조근정훈장(136명)157 김인종 金仁鍾 교사 동성중학교158 문용호 文勇浩 교장 중앙고등학교159 서정구 徐廷龜 교장 광문고등학교160 남호법 南浩法 교장 대일고등학교161 故 이상세 李相世 교사 성내중학교162 최영호 崔英鎬 교감 혜화여자고등학교163 이영자 李英子 교감 강남공업고등학교164 故 피용진 皮容鎭 교사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165 양길자 梁吉子 교감 증산중학교166 김일천 金一天 교사 부산정보관광고등학교167 박태순 朴泰淳 교장 해운대여자중학교168 손영식 孫鍈植 교감 장서초등학교169 하태진 河太鎭 교감 부산중앙고등학교170 이영희 李永熙 교감 운봉초등학교171 박옥수 朴玉守 교감 용호중학교172 김승석 金承石 교감 해운대공업고등학교173 故 이병욱 李丙旭 교감 구서여자중학교174 정경혜 鄭慶惠 교감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175 김정시 金正市 교감 성광고등학교176 김홍 金弘 교감 평리중학교177 이상백 李相伯 교감 와룡고등학교178 이팔수 李八洙 교감 원화여자고등학교179 권태승 權泰昇 교장 영진고등학교180 정재영 鄭載榮 교감 구남중학교181 이정석 李正錫 교감 현풍고등학교182 안신영 安信瑩 교사 인천남동초등학교183 박민호 朴敏鎬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184 김명애 金明愛 교감 인천신흥초등학교185 이우만 李愚萬 교감 인천용현남초등학교186 故 장경선 張慶善 교감 인천서운초등학교187 최지선 崔志瑄 교감 인천박문여자중학교188 김옥은 金玉恩 교감 광주문화초등학교189 박명진 朴明辰 교감 상일중학교190 박내길 朴來吉 교감 각화초등학교191 박정식 朴定植 교감 두암초등학교192 김종윤 金鍾潤 교사 광주효덕초등학교193 강중구 姜重久 교감 동대전중학교194 황태운 黃泰雲 교감 대전고등학교195 나능찬 羅能燦 교감 회덕초등학교196 이옥선 李玉善 교감 도덕초등학교197 故 김은기 金銀起 교감 상패초등학교198 김남주 金南珠 교감 부용초등학교199 강태진 姜太珍 교장 의왕부곡초등학교200 전갑순 全甲順 교감 오마초등학교201 이영휘 李永徽 교감 화성장안초등학교202 황연욱 黃蓮旭 교감 운암초등학교203 故 한민교 韓敏敎 교장 이천송정초등학교204 엄귀순 嚴貴順 교감 원천초등학교205 이정애 李貞愛 교감 조원초등학교206 허관철 許關鐵 교감 이천중학교207 고삼직 高三直 교감 수성여자중학교208 이양자 李洋子 교감 동부여자중학교209 엄준섭 嚴準燮 교감 안양공업고등학교210 오영일 吳英日 교감 평택여자고등학교211 장재영 張在濚 교감 동두천중앙고등학교212 김선희 金善姬 교사 동내초등학교213 신춘애 申春愛 교감 강릉초등학교214 김헌우 金軒友 교감 현북초등학교215 정의환 鄭義煥 교감 천곡초등학교216 권만희 權萬喜 교감 광덕초등학교217 이필동 李弼東 교감 도계고등학교218 이기조 李基祚 교감 고성고등학교219 이문호 李文鎬 교사 청안중학교220 장주현 張周鉉 교감 충북공업고등학교221 강태영 姜泰榮 교감 제천농업고등학교222 권태호 權泰鎬 교감 동량초등학교223 박영상 朴榮相 교감 청주농업고등학교224 안광원 安光源 교감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225 故 한광복 韓光福 교사 진흥초등학교226 김홍빈 金洪 교사 개신초등학교227 이우복 李愚福 교감 삼성중학교228 김응실 金應實 교장 풍세초등학교229 조석교 趙錫敎 교사 대왕초등학교230 김형선 金炯善 교장 판교중학교231 이성우 李成雨 교감 천안북중학교232 김혁석 金赫石 교장 금산여자중학교233 조용호 趙瑢鎬 교감 공주농업고등학교234 김형태 金亨泰 교감 논산공업고등학교235 하봉균 河奉均 교감 천안공업고등학교236 박무영 朴茂永 교감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237 故 유기철 柳起哲 교사 성수초등학교238 故 전이곤 全二坤 교장 아영초등학교239 양봉규 梁鳳圭 교사 원광정보예술고등학교240 강현욱 姜炫旭 교감 전주솔빛중학교241 홍남기 洪南基 교사 상산고등학교242 임성민 林成敏 교감 전주중앙중학교243 이규룡 李圭龍 교감 심창초등학교244 故 최종근 崔種根 교사 순천선혜학교245 정박신 鄭博信 교장 광양중마초등학교246 이병조 李丙祚 교감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247 문병숙 文炳淑 교장 망운중학교248 이명희 李明姬 교감 예천동부초등학교249 故 김재현 金在顯 교감 온혜초등학교250 손성애 孫聖愛 교감 유림초등학교251 안덕환 安德煥 교감 용황초등학교252 정윤옥 鄭潤玉 교감 장기초등학교253 장헌문 張憲文 교장 영광여자고등학교254 故 김경동 金炅東 교사 문경서중학교255 이영옥 李英玉 교감 청도전자고등학교256 안문현 安文鉉 교장 경북인터넷고등학교257 정문호 鄭文昊 교감 구미신평중학교258 류승환 柳承煥 교감 구미정보여자고등학교259 김정순 金晶順 교감 봉원초등학교260 故 조찬래 趙贊來 교감 주동초등학교261 故 안수경 安守敬 교사 밀양초등학교262 故 배영동 裵英東 교사 밀성초등학교263 권영숙 權榮淑 교감 사포초등학교264 故 박무재 朴武在 교장 산외초등학교265 전경주 全炅柱 교감 삼천포초등학교266 박정제 朴正濟 교감 정곡중학교267 이종석 李鐘碩 교감 고성여자중학교268 임일석 林逸錫 교장 해성중학교269 김국치 金國治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0 최배규 崔培奎 교감 마산공업고등학교271 故 이우섭 李佑燮 교감 밀성고등학교272 장세철 張世哲 교사 함안고등학교273 신호향 申鎬享 교장 마산중앙고등학교274 박중구 朴重久 교감 합포고등학교275 문정일 文丁一 교감 노형초등학교276 오광균 吳廣均 교감 서귀포초등학교277 정화철 鄭和喆 교수 우송공업대학278 정은식 鄭垠植 교수 동의공업대학279 문창아 文昌兒 교수 동주대학280 구대회 具大會 부교수 대구미래대학281 이종수 李宗秀 교수 경남정보대학282 임채현 林采鉉 교수 동부산대학283 박재환 朴載煥 교수 동부산대학284 인주철 印柱哲 교수 경북대학교285 한은재 韓恩在 교수 계명대학교286 이길룡 李吉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7 곽광자 郭光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8 황석자 黃晳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289 故 강진경 康珍敬 교수 연세대학교290 故 송세목 宋世穆 교수 청주대학교291 전용기 全勇起 교수 호원대학교292 박현빈 朴鉉彬 교수 호원대학교 ◆근정포장(79명)293 신승철 申承澈 교장 보인중학교294 故 이달수 李達壽 교사 은평웹미디어고등학교295 신동범 愼東範 교장 상계제일중학교296 백금순 白金順 교감 둔촌고등학교297 故 박도원 朴道元 교사 서울용암초등학교298 박임희 朴臨熙 교장 서울신답초등학교299 故 홍완석 洪完錫 교사 신재초등학교300 윤승삼 尹勝三 교감 계성정보고등학교301 박명복 朴明福 교감 동현중학교302 이인숙 李仁淑 교감 장림여자중학교303 전철부 田鐵夫 교사 대양전자정보고등학교304 김해원 金海元 교감 대구서부고등학교305 송옥헌 宋玉憲 교감 성명여자중학교306 박대흠 朴大欽 교감 현풍고등학교307 정승현 鄭承鉉 교감 경북여자정보고등학교308 유순종 劉順鍾 교감 인천신광초등학교309 오순학 吳淳鶴 교감 문학정보고등학교310 이용성 李勇成 교감 인천함박초등학교311 박오순 朴五順 교사 문산초등학교312 故 신명식 申明植 교사 문산중학교313 박장환 朴長煥 교장 보문고등학교314 김영철 金榮喆 교감 대전양지초등학교315 故 서원기 徐源基 교감 신탄진초등학교316 김순희 金純姬 교감 가납초등학교317 임충균 林忠均 교감 매화초등학교318 이영임 李榮壬 교감 용정초등학교319 김정원 金貞媛 교감 경의초등학교320 신비식 申妃植 교감 성남매송초등학교321 김영희 金英姬 교사 도곡초등학교322 권태범 權泰範 교감 소하고등학교323 김찬용 金讚鎔 교감 수원공업고등학교324 박상열 朴相烈 교사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325 박군자 朴君子 교감 군포정보산업고등학교326 심현국 沈鉉國 교감 유신고등학교327 황미자 黃美子 교감 영성여자중학교328 강윤석 姜允錫 교장 심석중학교329 김현숙 金賢淑 교감 홍천초등학교330 류영오 柳瑩五 교감 남원주중학교331 이세구 李世求 교감 영월중학교332 박광모 朴光模 교장 심천중학교333 고평식 高平植 교사 개신초등학교334 故 전경우 全敬寓 교사 제천동중학교335 김학수 金學洙 교사 운호고등학교336 故 김창동 金昌東 교사 석교초등학교337 조옥명 趙玉明 교감 온양여자중학교338 차인호 車仁鎬 교장 신풍종합고등학교339 손원의 孫源義 교사 군산영광중학교340 김상칠 金相七 교감 이리영등초등학교341 안병진 安秉鎭 장학관 전라북도교육청342 유재덕 兪在德 교감 전주인후초등학교343 신재도 申載道 교사 호남고등학교344 최성호 崔盛皓 교사 불갑초등학교345 이경호 李京浩 교감 석보초등학교346 허영숙 許英淑 교감 상주초등학교347 정태환 鄭泰煥 교감 지곡초등학교348 정영화 鄭永花 교감 형일초등학교349 김소경 金素卿 교감 인동초등학교350 김영옥 金永玉 교감 경산서부초등학교351 조희축 曺喜丑 교감 자인초등학교352 장영희 張永熙 교장 현일고등학교353 신인묵 辛仁默 교장 오천고등학교354 조봉환 趙鳳煥 교장 경주중학교355 정해유 丁海酉 교감 병곡중학교356 박종현 朴種鉉 교감 청도여자고등학교357 김채숙 金菜淑 교감 회원초등학교358 이상훈 李相勳 교장 거창대성중학교359 김종환 金鍾煥 교사 성지여자고등학교360 조병철 曺秉鐵 교감 삼계중학교361 오경순 吳京順 교수 숭의여자대학362 오인식 吳仁植 부교수 우송공업대학363 김영찬 金榮燦 교수 인덕대학364 김진숙 金辰淑 교수 동부산대학365 양삼승 梁三勝 교수 포항1대학366 심영학 沈永鶴 교수 연세대학교367 조규철 調圭哲 교수 울산대학교368 이정전 李正典 교수 전남대학교369 한기영 韓基榮 교수 제주대학교370 한준노 韓俊老 교수 호원대학교371 이종복 李鍾福 교수 호원대학교 ◆대통령표창(36명)372 故 박종출 朴鍾出 교사 서울상월초등학교373 이옥희 李玉姬 교감 교리초등학교374 김천규 金千圭 교감 부산여자고등학교375 故 김영신 金渶信 교사 덕명정보여자고등학교376 최돈규 崔敦圭 교감 남성여자고등학교377 박정순 朴正順 교감 부산혜성학교378 정헌찬 鄭憲澯 교장 장안제일고등학교379 김재일 金載一 교감 덕원중학교380 이영희 李英姬 교감 인천만수북초등학교381 지진호 池珍昊 교감 인천외국어고등학교382 박인수 朴仁秀 교장 동산고등학교383 안영진 安暎珍 교감 가좌여자중학교384 권선유 權善有 교감 유성여자고등학교385 故 김용호 金龍鎬 교감 전하초등학교386 정점순 鄭占順 교감 부광초등학교387 오세화 吳世和 교감 경의초등학교388 이상희 李相姬 교감 덕풍초등학교389 장인숙 張仁淑 교감 구운중학교390 김안자 金安子 교감 백석중학교391 故 오영진 吳永鎭 교감 광주고등학교392 故 오종덕 吳鍾德 교감 안내중학교393 이규현 李揆炫 교사 상산고등학교394 소선영 蘇善永 교감 이리동중학교395 김정애 金貞愛 교사 여수부영초등학교396 최종구 崔鍾九 교감 포항동부초등학교397 이명애 李明愛 교감 풍기중학교398 송국자 宋國子 교감 봉곡중학교399 최충길 崔忠吉 교감 함창고등학교400 허정숙 許貞淑 교감 명서중학교401 구갑순 具甲順 교감 문산중학교402 이원부 李源夫 교감 김해고등학교403 곽오계 郭五季 교수 대구과학대학404 윤현중 尹玄重 부교수 경북전문대학405 이진표 李振杓 교수 대불대학교406 정원배 鄭元培 교수 부산대학교407 故 고소웅 高昭雄 교수 연세대학교 ◆국무총리표창(55명)408 윤병욱 尹炳旭 교감 유석초등학교409 故 최응도 崔應燾 교감 경희초등학교410 장현숙 張賢淑 교사 성신초등학교411 신유섭 申庾燮 교사 수송중학교412 김연심 金連心 교사 이사벨중학교413 김인근 金仁根 교감 금사중학교414 최정숙 崔貞淑 교사 사직여자중학교415 정정순 鄭靜順 교감 내성중학교416 마동호 馬東浩 교감 부산국제고등학교417 이국웅 李國雄 교사 대구광명학교418 최호숙 崔好淑 교감 대구범어초등학교419 김우태 金瑀泰 교감 삼산고등학교420 조병남 趙炳楠 교감 신흥여자중학교421 김복순 金福順 교감 광주제일고등학교422 김영현 金榮賢 교사 대전백운초등학교423 김정선 金貞善 교사 대전석봉초등학교424 故 안의환 安義煥 교사 대전중학교425 염근호 廉根浩 교감 동구초등학교426 박광희 朴光熙 교감 성복초등학교427 김성태 金聖泰 교감 양곡초등학교428 장은주 張恩珠 교감 의정부서초등학교429 김순옥 金順玉 교감 금상초등학교430 이상옥 李相玉 교감 포천초등학교431 故 최도철 崔道撤 교감 평촌공업고등학교432 전주영 全珠英 교감 부일중학교433 박순자 朴順子 교감 군포중학교434 한명옥 韓明玉 교장 여주제일중학교435 원옥희 元玉姬 교감 여주중학교436 정순희 鄭舜姬 교감 도농중학교437 故 서정호 徐廷晧 교사 중흥고등학교438 故 임상철 林相喆 교사 이월중학교439 故 윤택중 尹宅重 교사 경천초등학교440 오인순 吳仁順 교감 신풍중학교441 이정옥 李貞玉 교감 광천고등학교442 박영수 朴英秀 교사 전주덕진중학교443 이종암 李鍾岩 교사 전주영생고등학교444 유명심 兪明心 교감 정읍여자중학교445 이순희 李順姬 교감 경산중앙초등학교446 故 김동원 金東源 교사 정평초등학교447 김영열 金永烈 교감 안동중앙고등학교448 박종욱 朴鍾郁 교감 김천농공고등학교449 최영철 崔永喆 교사 상주고등학교450 정명숙 鄭明淑 교감 남양초등학교451 이정기 李政基 교감 삼천포제일중학교452 진옥선 陳玉善 교감 영운중학교453 김연실 金硏實 교감 애월상업고등학교454 박금옥 朴今鈺 부교수 신구대학455 원송대 元松大 교수 천안연암대학456 김일남 金一男 교수 포항1대학457 김욱동 金旭東 교수 서강대학교458 이원섭 李元燮 교수 경북대학교459 황윤식 黃潤植 교수 동국대학교460 함병문 咸秉文 교수 서울대학교461 故 심재룡 沈在龍 교수 서울대학교462 백인욱 白寅煜 교수 인제대학교 ◆장관표창(100명)463 서경호 徐璟鎬 교사 중동중학교464 이선종 李善鍾 교사 신정여자중학교465 김경환 金敬煥 교사 등촌중학교466 황선현 黃善鉉 교사 혜원여자중학교467 권순택 權純宅 교사 대일고등학교468 홍익의 洪翼義 교사 서울대현초등학교469 장경신 張慶信 교사 서울포이초등학교470 정용오 鄭用五 교사 서울역삼초등학교471 故 조재식 趙宰湜 교사 수유중학교472 양종화 梁鐘和 교사 종암중학교473 故 권태형 權泰亨 교사 방산중학교474 선일영 宣逸永 교사 경서중학교475 김선혜 金善惠 교사 서울보광초등학교476 이은적 李殷適 교사 서울염창초등학교477 박순희 朴順姬 교사 서울신목초등학교478 박용조 朴龍祚 교사 서울정목초등학교479 이희숙 李喜淑 교사 서울구의초등학교480 이인숙 李仁淑 교감 영도중학교481 엄애숙 嚴愛淑 교감 부산고등학교482 서혜원 徐惠媛 교감 데레사여자고등학교483 김영숙 金永淑 교감 다선중학교484 손양숙 孫陽淑 교감 구남초등학교485 이명옥 李明玉 교감 해운대여자중학교486 남광이 南光二 교감 소선여자중학교487 이현정 李賢貞 교사 가좌여자중학교488 황예자 黃禮子 교사 인천소양초등학교489 최현주 崔賢珠 교사 인천능허대초등학교490 박태구 朴泰求 교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491 故 이길선 李吉仙 교사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492 김은희 金恩姬 교감 새일초등학교493 김욱생 金旭生 교감 동천초등학교494 이성옥 李成玉 교감 효정고등학교495 김혜자 金惠子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6 김혜숙 金惠淑 교감 광명북초등학교497 권영숙 權英淑 교감 광명동초등학교498 조계환 趙啓煥 교감 주엽초등학교499 이수자 李修子 교감 고양화정초등학교500 이규영 李圭英 교사 문촌초등학교501 故 노두한 魯斗漢 교사 전곡초등학교502 강춘식 姜春植 교감 상갈초등학교503 故 김재웅 金載雄 교사 양성초등학교504 故 양내석 梁來錫 교사 현덕초등학교광덕분교505 문기섭 文奇燮 교감 세교초등학교506 김차옥 金次玉 교감 수성초등학교507 선향영 宣享榮 교감 중탑초등학교508 김경숙 金京淑 교감 관양초등학교509 곽용임 郭勇壬 교감 의정부고등학교510 김귀식 金貴植 교감 용호중학교511 윤상화 尹相和 교사 용호중학교512 이선애 李仙愛 교감 저동중학교513 故 이승호 李承鎬 교사 호성중학교514 홍정임 洪貞任 교감 양영중학교515 故 최진화 崔鎭和 교사 구리중학교516 전윤주 全潤珠 교사 경화여자고등학교517 변미숙 卞美淑 교사 충북대학교사범대부속중학교518 이정옥 李晶玉 교사 매괴고등학교519 이미미 李美美 교사 삼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520 김영자 金英子 교사 천안부영초등학교521 송해성 宋海星 교사 부여여자고등학교522 오재균 吳在均 교사 천안백석중학교523 문승태 文承泰 교사 공주정명학교524 故 김영순 金榮順 교사 천안봉서중학교525 황금순 黃錦順 교감 신풍중학교526 정종섭 丁鍾燮 교사 남성여자고등학교527 김장욱 金장旭 교사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528 김영표 金永標 교사 상산고등학교529 김종배 金鍾倍 교사 상산고등학교530 김연수 金蓮秀 교감 고산고등학교531 故 김지순 金智淳 교사 남평중학교다도분교장532 조혜숙 趙惠淑 교사 월야초등학교533 양선옥 梁先玉 교사 영주초등학교534 서정숙 徐貞淑 교감 신동초등학교535 최병길 崔丙吉 교감 안강제일초등학교536 윤창식 尹昌植 교감 옥산초등학교537 노윤희 盧允熙 교감 구미신평초등학교538 故 김정화 金貞和 교사 남성초등학교539 김은희 金恩姬 교사 신동초등학교540 박선희 朴善熙 교감 신녕중학교541 故 최우남 崔羽南 교사 구미여자중학교542 김효철 金孝哲 교감 서라벌여자중학교543 故 김명미 金明 교사 구미신평중학교544 채수광 蔡洙光 교사 이동중학교545 염찬기 廉贊基 교사 남해해성고등학교546 故 정훤 鄭煊 교사 김해고등학교547 김철 金哲 교감 선명여자고등학교548 최진숙 崔珍淑 교감 중문상업고등학교549 이영진 李榮振 교사 오현고등학교550 홍순태 洪淳泰 부교수 대구산업정보대학551 김경학 金京鶴 교수 동부산대학552 김경호 金暻浩 교수 대불대학교553 구본식 具本植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554 故 임창호 任昌虎 교수 서울대학교555 이택수 李宅洙 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556 故 이동수 李東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557 조백현 曺伯炫 교수 전남대학교558 정영숙 丁英淑 교수 전북대학교559 송요한 宋要翰 부교수 전북대학교560 정태기 鄭泰基 교수 한신대학교561 이대남 李大南 교수 호원대학교562 박노준 朴魯俊 교수 관동대학교(끝)
  • 美 ‘괴짜 전쟁영웅’ 해크워스 사망

    |뉴욕 연합|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무훈을 세워 ‘전쟁영웅’으로 불렸으나 괴이한 행동으로도 유명했던 데이비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멕시코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숨졌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74세. 신문에 따르면 불과 20세의 나이로 한국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베트남전에서는 최연소 대령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의 무공십자훈장 등 91개의 훈장과 메달을 받을 정도로 혁혁한 무훈을 세운 해크워스는 현역 신분으로 미군의 베트남전 수행방식을 비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1931년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출생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은 15세 때 ‘가짜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입대연령에 도달했다는 보증서를 받아 육군에 입대했다. 이어 한국전이 발발하자 자원 참전,‘울프하운드(이리사냥개) 특공대’로 불린 의용군 부대를 지휘하면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전선을 떠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보였다. 한국전 종전 후에는 미군의 베트남전에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공격용 헬기 부대 지휘관이 됐다. 그가 이끈 헬기부대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소재가 됐다. 한 전투에서는 2500명의 월맹군 병사들을 몰살한 반면 아군 사망자는 25명에 그치는 대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해크워스는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들의 성병 감염 위험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부대 주변에 매춘업소를 운영하는 등 기이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식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제49주기 추모식이 5일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유치송) 주관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선생의 묘소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민주당 한화갑 대표, 송방용 헌정회장, 국민대 김문환 총장, 이철승 서울평화상이사장, 민관식 조병옥박사기념사업회장,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와 분향에 이어 추모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광복 후 국민대 초대 총장을 지내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돼 1947년 의장이 됐다. 이어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유세중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할아버지 닮은 대한사람 되고 싶어요”

    |상하이 연합| “할아버지의 조국,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을 호소하고 나섰다. 주인공은 흥사단의 일원으로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상하이 독립운동 시절 ‘비서’역할을 했으며 김구(金九) 선생의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에도 관여한 김복형(金復炯) 선생의 손자인 김광릉(金廣陵·52)씨. 김씨는 이미 ‘한국 국적회복 신청’을 주상하이 총영사관을 통해 법무부 등 정부 당국에 제출했다. 김복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복형 선생은 1897년 평북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상하이로 건너와 태창(太昌) 중학교에서 미술선생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유명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등에 보면 김복형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했으며, 특히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의거 당시 임정과 또다른 독립운동 조직인 남화연맹 주요 인사들과 교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씨의 아버지 김홍락(1919년 출생)은 1952년 중국여인과 결혼했으며 1982년 사망했다. 현재 상하이 전력공업국에서 기술주관(技術主管)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한국 국적을 얻을 경우 할아버지의 숨결이 있는 상하이에서 살 계획”이라며 “한국인으로서 권리를 얻기 위해 국적을 회복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 유효일 국방차관 사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 대대장 경력 논란이 제기됐던 유효일(62) 국방차관이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유 차관은 4일 “일신상의 사유 이외에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고, 군 과거사 진상 규명작업이 한 점의 의혹 없이 조사돼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국방부 신현돈 대변인을 통해 사의 표명 사유를 밝혔다. 청와대측은 유 차관의 사의에 대해 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사의는 일단 군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유 차관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20사단 62연대 3대대장을 맡았던 경력 때문에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데다, 최근엔 80년대 청와대 비서관 근무시 운동권 대학생 강제징집(일명 녹화사업)에도 관여해 국민훈장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민간위원 8명과 국방부 관계자 5명 등으로 구성된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켜 실미도 사건과 녹화사업 등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하지만 유 차관이 ‘경질’될 것이라는 예상이 이미 지난달부터 증권가 정보지 등에도 나돌 만큼 광범위하게 퍼졌던 점을 들어, 주변에서는 순수한 자의(自意)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한편 후임 국방차관에는 황동준 전 국방연구원장과 황규식 전 국방대 총장, 안광찬 국방부 정책실장, 문동명 전 국방부 기획관리실장,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입양활성화’ 윤석화씨 대통령표창

    오는 5일 ‘제83회 어린이 날’을 맞아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국내 입양활성화 등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윤씨는 1996년 미혼모자 보호시설인 서울 서대문구 사회복지법인 애란원과 결연한 것을 인연으로 국내입양 홍보대사가 됐다. 그는 외과의사, 문화예술가 등과 함께 ‘밀레니엄키드에게 웃음을’이라는 캠페인을 벌여 선천성 얼굴기형 아이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5일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갖고 조종희(68ㆍ여) 영명보육원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는 등 238명의 어린이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을 갖는다.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⑬ ‘긴즈버그의 초상’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⑬ ‘긴즈버그의 초상’

    ‘백남준’作. 스크린프린트.73×61㎝.1978.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다. 독일 경제 월간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의 예술가중 8위에, 피카소·모네·뒤샹 등과 함께 미국의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기의 미술인에 꼽히기도 했다. 그는 비디오 아트뿐만 아니라 판화나 아크릴 페인팅 작업에서도 판화와 아크릴을 접목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초기 작업을 판화로 시작해 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작’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80년대 후반까지 판화작업을 계속했다.1999년에도 판화작업을 했으나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의 판화작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긴즈버그의 초상’은 판화속에서 비디오 아트의 경지를 보인 작품이다.TV 스크린속 사람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TV화면처럼 뚜렷하지 않게 보이기도 하고, 다른 색깔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그런 상태를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변화된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교토상, 괴테메달,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다다익선’‘백팔번뇌’‘TV첼로’‘뉴밀레니엄’ 등이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문의 서울신문사 (02-2000-9752)
  • 프랑스, 꽃을 말하다

    영원한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핀 아름다운 꽃들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예성화랑은 3일부터 6월20일까지 프랑스 원로작가들의 작품으로 ‘프랑스 인기 작가 6인전’을 꾸몄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이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화가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뤄 온 예성화랑은 그동안 피카소전, 미로전, 샤갈전 등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들은 베르날드 뷔페, 베르날드 카트랑, 앙드레 코타보, 앙드레 브라질리에, 질 고리티, 폴 아이즈피리 등 6명. 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이즈피리의 ‘꽃’은 분홍빛 화병에 담긴 다양한 꽃들이 동화적으로 그려진 반구상적인 작품이다. 프랑스 전통의 감각과 선명한 색채가 돋보인다. 고흐의 색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키슬링의 색처럼 진하거나 무겁지도 않다.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동양의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도 있다. 카트랑의 작품 ‘겨울’은 눈꽃송이를 연상시키는 하얀 꽃들을 여백의 미를 살리면서 표현하고 있다. 동양 정신과 문화를 사랑하는 그의 예술 세계가 색채, 공간배치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뷔페의 ‘장미꽃’은 노란색 바탕에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빨간 장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는 1974년도에 최연소 미술아카데미 회원에 선정되고 퐁피두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한 프랑스화단의 원로중의 원로다.(02)738-3639.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훈장 변신 ‘배추머리’ 개그맨 김병조씨

    누군가 그랬다.‘어느날 눈을 떠보니 세상에 내던져졌고, 살아가는 매뉴얼은 보이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렸다. 인생의 매뉴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무미건조? 허망? 수많은 오류와 잘못을 과연 피해나갈 수 있을까. 문득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명심보감, 글자 그대로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중국의 경전 사서 문집류 등에서 좌우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처세훈을 추려 놓았다.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음의 수양서로 여전히 으뜸이다. 한 코미디언이 있었다.‘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로 전국민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밑빠진 항아리는 막을 수 있어도 코밑의 입은 막을 수 없다는 말처럼 거침이 없었다. 뱉어내는 얘기마다 배꼽을 겨냥하면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에서는 ‘배추머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떠나거라’를 실천하듯 코미디계를 훌쩍 떠나버렸다. 왜그랬을까. 알고 보니 어엿한 훈장이 됐다.‘명심보감’이라는 간단치 않은 등짐을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주 탐라대서 강원 한림대까지 서울 마포에 위치한 불교방송국 건물 17층에서 그를 만났다. 순간 ‘앗’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왕년의 ‘배추머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말쑥한 머리모양에 전통한복 차림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하지만 특유의 큰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근황부터 들었다. 우선 매주 수요일이면 광주에 내려간다. 조선대학 초빙교수 자격이다. 오전에는 평생교육원(3시간)에서, 오후에는 학부(4시간)에서 강의를 한다. 학생수만 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월·금요일에는 불교방송(BBS) 라디오 프로그램 ‘다시 듣고 싶은 노래’의 진행을 맡고 있다. 화·목요일에는 중앙부처 기업체 대학 등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한다. 이날도 서울 구로구청 관내 통·반장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단다. 강연을 들은 구민들은 감동을 받아서인지 관내 고등학교에서도 강의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제주 탐라대에서 강원도 한림대까지 정신없이 다닙니다. 코미디언으로 방송했을 때보다 더 살맛이 나요.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도 있지만 옛 어른들의 밥상머리 교육을 생각해 보세요. 전통이 단절됐습니다. 이어야 하지요.” 김씨의 목소리는 높아진다.“부모가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려면 부모 자신이 엄한 자세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밤 9시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밤 12시에 귀가한 아들·딸을 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엄격해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심보감의 참뜻은 ‘니나 잘해.’라며 껄껄 웃는다. ●한학자 선친 뒤이은게 큰보람 또 “부모는 자식을 잠자리에 재워놓고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불을 덮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한다. 김씨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버지의 빚을 갚아드렸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논 네마지기로 입에 풀칠하며 여기저기 빚을 얻어가며 자식 5남매를 키워낸 아버지, 그러면서도 자식들한테는 매우 엄하게 대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다며 창밖을 응시한다. “코미디언인 제가 명심보감을 강의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웃기고 있네.’하면서 놀리더군요. 그러나 강의를 듣고 나서는 ‘울리고 있네.’라고 합디다. 저는 그래요. 중간고사같은 거 안봐요. 대신 학생들에게 아버지한테 양말 사다드리라고 숙제를 줍니다. 효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요.” 김씨가 명심보감 전도사로 나선 것은 방송활동을 중단한 1998년부터.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가지의 꿈이 있었다. 첫번째는 세상만사 영원이란 없다는 말을 늘 떠올리면서 인기가 쇠약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특히 방송계는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 더욱 절실했다. 그래서 한학자였던 선친의 뒤를 이어 훈장이 되고자 했다. 두번째는 고향(전남 장성)에서 방송활동을 해보는 것. 다행히 지인을 통해 지난 97년 지역방송인 광주방송(KBC)에서 ‘열창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때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연극과 영화, 한국 코디미사 등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처용가도 코미디요 판소리도 코미디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선뜻 승낙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황금 만냥이 있다한들 자식 하나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대학측과 논의 끝에 ‘명심보감’으로 주제를 바꿨다. 김씨는 75년 MBC-TV ‘뽀뽀뽀’로 데뷔했지만 ‘일요일밤에 대행진’ 등을 맡으면서 평소 갈고 닦은 ‘명심보감’을 자주 인용했다.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도 여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고백했다. 코미디계를 떠난 그의 강의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한 예가 있다. 하루는 조선대에서 강의하던 중 이공대 김모 교수가 수강을 했다는 것. 그래서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김씨의)강의평가가 최고로 나왔는데 한 수 배우려고요.’라고 대답했다. ●명심보감 1인자 되고 싶어 “마음의 부자가 진짜 행복입니다. 옛날 ‘뽀뽀뽀’를 보던 학생들이 오늘날 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들 하더군요. 다시 부자가 됐습니다.” 그는 스스로 짠돌이라고 한다. 저축 잘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한문공부를 많이 한다는 세가지 연유로 명심보감을 강의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학자인 아버지와 행상을 하는 어머니 슬하에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특히 7대장손이어서 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별명은 ‘움직이는 옥편’일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덕분에 김씨는 초등학교때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접했다. 붓글씨도 함께 연마했다. 족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억력이 뛰어나 집안에서는 천재소리를 들으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집이 가난해 광주고에 진학하면서 육군사관학교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성균관대 유학과를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웃기는 일을 워낙 잘해 담임선생 등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연극영화과를 권했다. 결국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방향을 바꿔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부인 얘기가 나오자 “목포교대를 나왔다.”면서 “빚도 많고 형제도 많은 장손 집안의 장남을 선뜻 택해준 아내가 늘 고맙다.”고 했다. 부인은 여러번 중매를 봤지만 김씨의 솔직한 자세에 반려자로 택했단다.1978년 70만원 월셋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200만원 지하 전셋방을 거쳐 결혼 5년 만에 세를 떠안고 2300만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이후 부모가 진 빚을 다 갚은 뒤 84년 고향에 스물네마지기 논을 사서 부모한테 효도선물로 드렸다. 부친은 88년 작고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논두렁을 걸어다닐 정도로 무척 좋아했다. 또한 서울로 떠난 아들에게 ‘자가용을 타고 오기 전까지는 고향에 내려오지 말라.’는 약속도 지켰다. 모친은 현재 82세로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함께 살고 있다. “명심보감의 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옛것들이 다 버려지고 있습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병조의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펴내기 위해 5년전부터 틈틈이 원고정리를 해왔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술과 담배를 전혀 안하는 그는 요즘 걷기와 등산으로 건강을 다진다. 명심보감 한 구절을 들려준다.‘글을 읽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도리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다. 근검은 집안을 다스리고, 온화는 집안을 정제하는 근본이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4월 전남 장성 출생 ▲67년 광주고 졸업 ▲72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72∼75년 육군복무 ▲75년 MBC‘뽀뽀뽀’ 진행 ▲76∼96년 MBC‘일요일 일요일밤의 대행진’ ‘사랑의 공개홀’‘우리가락 한마당’‘세월따라 노래따라’‘김병조의 생활한자’ 진행 ▲96년 4월 SBS 코미디 전망대 진행.11월 MBC‘우정의 무대’ 진행. ▲98년∼현재 조선대 초빙교수 ▲상훈 전국대학생화술경연대회 최우수상(70년), 우리들의 스타상(코미디부문), 국무총리표창(저축유공·84년),MBC연기대상(코미디 개그부문,85·88년) ▲주요 작품 수필집 ‘종가집 배추’ 영화 ‘자기 난 이렇게 산다우’ 등
  • ‘35년 청소외길’로 산업훈장 가슴에…

    ‘35년의 정성스러운 비질은 동탑산업훈장을 세웠다.’ 전주시 완산구에는 산업훈장을 받은 환경미화원 김학근(60·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씨가 매일 말끔히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지난 70년 전주시 보건소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처음 황색 조끼를 입고 빗자루를 손에 잡은 이후 3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오전 4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매일 10시간씩 아침을 깨끗하고 상쾌하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같은 근면성으로 그는 지난달 28일 정부로부터 ‘근로자의 날’ 기념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태풍이 불거나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쉴 수 없었죠. 내가 나가지 않으면 냄새나는 쓰레기를 누가 치우겠어요.” 그러나 이 때문에 김씨는 몸이 안 좋아도 맘 편히 아플 수 없었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단란한 시간을 갖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올 해부터는 노동조합 덕택에 한 달에 두번씩 일요일에 쉴 수 있게 됐지만 30년 넘도록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몸에 깊이 밴 탓으로 김씨는 평생 처음 맞는 휴일 새벽에도 일찌감치 일어나 잠자리에서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누워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5명의 자녀(딸 4, 아들 1)에게 ‘환경미화원’ 직업을 가진 아버지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는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커서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했을 것”이라며 “그런 아이들에게 늦게나마 훈장을 목에 걸고 당당히 직업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조용한 성격에 전주시내 400여명에 달하는 동료 환경미화원의 큰 형임을 자처해 온 김씨는 술·담배에 찌들어 사는 일부 동료를 동생처럼 달래고 토닥이며 바른 길로 이끌어와 직장 내에서는 누구보다 신뢰와 인기가 높다. 내년 6월 정년을 앞둔 김씨는 퇴직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훈장까지 받은 만큼 열심히 일하고 그만둔 뒤에는 손자들을 돌보며 편하게 살겠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고]

    ● 애국지사 최동식 선생 일제 강점기 징용·징병제도에 반대해 일본 경찰에 항거한 애국지사 최동식 선생이 29일 오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27년 경북 경산 태생인 선생은 1944년 7월 15일 최덕종 선생 등 동료 28명과 함께 경북 경산군 대왕산에 입산, 죽창과 투석전으로 일제의 징용·징병제도에 항거했다. 선생은 1944년 8월 10일 식량 조달을 위해 하산하다 일경에 체포돼 두달 뒤인 10월4일 보안법 위반 등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듬해 광복으로 출소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6년 대통령 표창을,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용근씨 등 4남이 있으며, 빈소는 대구 영남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5월1일 오전 7시.(053)620-4231. ●권영덕(서울시정 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씨 모친상 홍순형(소담출판사 전무이사)씨 빙모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8시 (02)3010-2254 ●이덕희(동방세이프 대표)병호(영주이브자리 〃)병삼(청맥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부친상 29일 수원 동수원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8시 (031)214-2161 ●오세현(비경시스템 연구소장)세창(삼성SDS 수석보)씨 모친상 황미선(한국암웨이 Diamond)씨 시모상 김성국(아시아나항공 부기장)씨 빙모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1 ●김재석(사업)재국(정릉개발 사장)씨 모친상 유희근(전 전주MBC 사장)남기석(신일특수인쇄 〃)씨 빙모상 29일 인천 길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9시 (032)462-9261 ●신재훈(삼성SDS 부장)씨 부친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9시 (02)3410-6919 ●박남기(전 양정중 교장)씨 별세 종선(건축사무소 삼정종합 대표)종만(유리더 부사장)종현(전 마크로젠 전무)씨 부친상 이정관(주미LA 부총영사)씨 빙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8시 (02)3410-6914 ●조승희(중부매일 논설주간)씨 형님상 28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43)286-9415 ●김승회(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투수)씨 부친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30분 (02)3410-6906 ●김용호(GM대우자동차 전무)승호(대신화물 신천리영업소장)성호(원익텔레콤 상무)진호(사업)씨 모친상 양재용(공인회계사)씨 빙모상 29일 평촌 한림대성심병원, 발인 5월 2일 오전 6시20분 (031)386-2345 ●최규덕(대덕산업 대표)씨 별세 준호·재호(대덕산업)씨 부친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7시 (02)3410-6920 ●류재우(국민대 경제학부 교수)씨 모친상 성룡(삼성코닝 과장)성현(대한법률구조공단 법무관)씨 조모상 최미영(선문대 생명과학과 교수)씨 시모상 29일 천안삼거리장례식장, 발인 5월 1일 오전 9시 (041)523-5499 ●이홍근(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행정부장)씨 모친상 이길재(서울화계중 교사)씨 시모상 29일 대전을지병원, 발인 5월 1일 오전 8시 (042)471-1365
  • ‘5월의 독립운동가’ 한성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는 29일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광복군 제3지대 화남(華南)지역 책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성수(1920∼1945)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1920년 평북 신의주 태생인 선생은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중국 장쑤성(江蘇省) 인근에 배치됐으나 같은 해 3월 탈출에 성공, 안후이성(安徽省)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일본군내 한국인 장병 포섭, 군자금 확보 등 활동을 펼쳤다. 1945년 3월13일 상하이 주둔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잔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법정투쟁을 전개하는 등 기개를 잃지 않았다. 선생은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5월13일 유명을 달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노사협력 유공자 196명 정부포상

    정부는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노사협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근로자, 노조간부, 사용자 등 196명에게 정부 포상을 주기로 했다.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은 해태제과식품㈜ 정연봉 기장과 ㈜삼양사 박종헌 사장이, 은탑산업훈장은 세방전지㈜ 심재신 과장보, 금속노동련 이병균 위원장,㈜디피아이 한영재 회장 등이 각각 받게 됐다. 정부는 29일 오후 3시 정부 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정부 포상 전수식을 갖는다.
  • [MLB] 찬호, 올해의 재기선수상?

    ‘올해의 재기선수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시상하는 공식부문도 아니고 구미를 당기는 부상이 주어지지도 않지만, 오랜 슬럼프와 부상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재기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다. 텍사스에서 지옥 같은 3년을 보내고 올시즌 화려한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는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가 강력한 ‘올해의 재기선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19일 오클랜드전을 제외한 3경기에서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쳐 2승1패 방어율 4.24를 기록해 지난 2001년(15승11패) 이후 4년만에 두 자리 승수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97년 첫 수상자를 낸 ‘올해의 재기 선수상’은 선수들이 직접 뽑는다는 점에서 사이영상이나 MVP와는 성격이 다르다. 선수노조는 ‘올해의 선수’ ‘올해의 투수’ ‘올해의 타자’ ‘올해의 신인’ 등 성적에 따른 상을 자체 수상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시상하고 있다. 한번 부진의 나락에 떨어진 선수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가치있는 일인지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크리스 카펜터(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올랜도 에르난데스(시카고 화이트삭스·당시 뉴욕 양키스)가 각각 양대리그 ‘올해의 재기선수상’을 받았다. 카펜터는 2000,2001년 연속해서 두 자리 승수를 거둔 뒤 2002년 4승5패로 망가졌지만 지난해 15승5패로 재기했고, 에르난데스도 2002년 8승을 거둔 뒤 부상으로 한 해를 완전히 개점휴업했지만 2년 만에 다시 8승을 거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사장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부족한 제가 우리사회의 ‘경쟁력’ 덕분에 이렇게 회사를 키우고 또 작지만 장학재단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최근 사재 50억원을 털어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해 화제를 모은 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46) 사장. 자그마한 체구에 말투도 워낙 조용조용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업계에서 황 사장은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혼자 맨몸으로 일군 회사는 창립 10년 만인 올해 매출 2240억원을 내다보는 중견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이 정도에서 만족했겠지만 그는 연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으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주성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지난해 13%.2003년에는 85.6%였고 2002년에는 126.4%로 매출보다 연구개발비가 더 많았다. ●‘남들만큼 해서는 남들을 앞설 수 없다’ 경기도 광주의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물 곳곳에는 가로 13m, 세로 9m의 대형 태극기와 함께 황 사장의 지론을 담은 ‘격문’들이 나부끼고 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황 사장이 지금껏 걸어온 상상을 초월하는 ‘성실’과 ‘혁신’이 담긴 격문이다. 주성의 아침은 매일 7시30분 회사 구내식당에서 황 사장과 12명의 임원이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식 출근시간은 9시지만 사장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7시까지 출근하자 요즘은 직원들도 자발적으로 ‘조기출근’을 하고 있다. 황 사장의 부지런함은 ASM이란 네덜란드 반도체장비업체의 영업대리점 직원으로 일하던 8년 동안 주말도 없이 일에 매달린 데서 잘 나타난다. 황 사장이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서초동 정류장에서 기흥공장으로 출발하는 삼성전자 출근버스를 타고 저녁 10시면 기흥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퇴근버스에 몸을 실어 모두들 삼성전자 직원으로 오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ASM의 고객사였던 삼성전자는 이같은 황 사장의 성실함을 높이 사 훗날 그가 독립했을 때 반도체 장비를 주문하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황 사장은 또 아무도 생각지 못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도 탁월하다. 주성은 지난달 임원들 전원에게 한달간의 ‘강제 휴가’를 지시했다. 창립 이후 1년차 이상 전 직원들에게 1년에 한달씩 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밀린 업무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자 아예 임원들에게 강제로 휴가를 ‘명령’한 것이다. 황 사장은 “일주일 쉬는 것으로는 본인이나 조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면서 “한달 동안 남아 있는 직원들은 휴가간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임원의 역할을 대신 하며 책임감도 배울 수 있어 조직 관리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주성의 한 임원은 “처음 1주일 동안은 나 자신도 그렇고 집에서도 하도 걱정을 많이 해 불안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알아서 자기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을 시킬 때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는 평이다. 주성의 한 임원은 고객사들의 요청에 못 이겨 장비 단가를 10% 정도 낮춰야겠다고 황 사장에게 보고했다. 황 사장은 그 자리에서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대신 당신이 원가를 10% 이상 낮춰서 공급하라.”는 단서가 붙은 승낙이었다. 결국 그 임원은 밤을 새워가며 원가절감 방안을 찾아냈다. 황 사장과 주성 임직원 200여명은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지난 12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오대산 25㎞를 야간 행군했다. 해외사업장의 외국인 직원까지 열외 없이 전 직원에게 해마다 해병대 ‘지옥훈련’을 시키는 것도 ‘독종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반도체장비도 1위를 할 수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매출 1669억원, 순이익 340억원을 달성한 주성은 올해 224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버거워 보이지만 황 사장의 진짜 목표는 2007년 매출 1조 2000억원,2009년 2조 5000억원으로 반도체 전(前) 공정 세계 1위로 등극하는 것이다. 4년 만에 매출 10배가 가능할까. 황 사장은 “창업 당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지난 10년간 우리보다 100배,200배 더 큰 회사들과 싸우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위기도 많았다.”면서 “어플라이드 머티리얼(APMT·미국),TEL(일본) 등 세계적인 장비업체들이 지난 수십년간 일군 성과를 우리는 10년 만에 이룩한 만큼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실제 주성의 공격적인 행보에 기존 장비업체들이 단가를 15%나 낮출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APMT의 자회사인 AKT가 ‘특허소송’을 걸어 온 것도 주성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주성은 최근 세계 최초로 8세대 LCD용 PECVD(화학증착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올해 안으로 인텔,AMD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업체에 300㎜ 웨이퍼용 ALD(원자층증착) 장비 공급을 완료할 예정이다. 특히 ALD의 경우 지난해 전세계 시장 점유율 20%로 초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LCD 장비는 올해 매출 5억 8400만달러로 25%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이어 8세대 이후에서는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황 사장은 “우리나라가 지금 메모리 반도체,LCD에서 세계 1위를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LCD 장비 회사도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회사를 떠나는 것이 목표” 황 사장은 ‘인재욕심’이 많다. 지난 2002년 매출이 226억원으로 곤두박질치고 순손실이 875억원에 달할 정도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직원들이 떠날까 봐’ 제일 두려웠다고 한다. 직원 가운데 석·박사급 34%를 포함해 57%가 R&D 인력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1인당 2.4건의 특허 출원(총 577건)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한 것도 한국의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오는데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 등 곳곳에서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황 사장은 “인텔,IBM 등 세계적인 기업을 방문해 봤지만 우리나라만큼 현장 인력들의 수준이 높은 곳이 없었는데 앞으로도 그럴지는 의문스럽다.”면서 “이공계 대학뿐만 아니라 공업계 고교에서 좋은 인력이 나오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황 사장은 그동안 인터뷰 등에서 “직원들에게 봉급이나 복지 등에서 세계 최고 대우를 해줄 수 있을 때 회사를 그만두겠다.3∼4년 후에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혀 왔다. 실제 주성의 임직원들은 “황 사장이 목표대로 주성을 2009년 세계 최고의 장비회사로 만들면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떠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매출 1조 관건은 해외시장 진출” 동원증권 민후식 애널리스트는 주성엔지니어링의 올해 실적을 매출 2420억원, 영업이익 590억원으로 내다봤다. 이는 주성이 공표한 매출 목표치인 2237억원을 넘는 수치지만 내부목표인 3495억원에는 크게 못미친다. 민 애널리스트는 또 내년 매출은 2780억원으로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2007년 1조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주성의 목표와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민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어려움을 딛고 잘해 왔다고 보지만 앞으로 매출 1조원대로 도약하려면 국내를 벗어나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 의미있는 규모로 진출해야 한다.”면서 “APMT나 TEL, 히타치 등 세계적인 장비회사들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사업 아이템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수합병(M&A)이나 신규사업 진출을 통해 토털 솔루션 업체로 변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해외경쟁사의 견제, 경쟁 심화, 보수적인 고객사들의 장비 구매 패턴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덧붙였다. 삼성증권 정영훈 애널리스트는 “주성이 PECVD 등 지금까지 LCD 장비시장에서 이룩한 성과는 높이 살 만하다.”면서 “하지만 현재 2000억원 수준인 매출을 1조원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회사측의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애널리스트는 “매출 1조원으로 세계 톱 10 장비회사로 도약하려면 현재 LG필립스LCD,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업체 위주인 사업구조를 해외로 더 넓혀야 한다.”면서 “특히 향후 1∼2년 동안은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줄 LCD장비외에 삼성전자, 인텔,TSMC 등 세계적인 반도체업체와 거래를 더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황철주 사장은 ▲1959년 경북 고령생▲85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86∼93년 한국ASM 근무▲93년 주성엔지니어링 창립▲95년 법인 전환▲부인과 1남▲2004년 한국의 100대 주식부호 75위(950억원, 현재 1040억원) ●주성엔지니어링 ▲97년 3월 경기도 유망중소기업 선정▲98년 9월 벤처기업 과학기술부 장관상▲98년 11월 철탑산업훈장▲99년 11월 1000만달러 수출의 탑▲99년 12월 반도체장비 국산화 기여공로로 산업자원부 장관상▲2001년 8월 LP CVD HSG 세계일류상품 선정(산자부)▲2001년 11월 2000만달러 수출탑▲2002년 4월 신화이엔지 계열편입▲2003년 8월 제4회 한국반도체 기술개발 경진대회 대상(반도체산업협회)▲2005년 3월 무한 계열편입▲직원 289명(연구개발 152명)
  • 금탑산업훈장 이용경씨

    이용경 KT 사장은 제 50회 ‘정보통신의 날’인 22일 정보통신분야를 발전시킨 공로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는다.
  • 과학의날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장인순·조장희·조무제씨 수상

    과학기술부는 제38회 과학의 날(21일)을 맞아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장인순(65) 한국원자력연구소장과 조장희(69) 가천의대 석학교수, 조무제(61) 경상대 총장 등 3명에게 과학기술훈장의 최고등급인 창조장을 수여한다고 20일 밝혔다. 과학기술훈장 2등급인 혁신장 수상자로는 김충섭(63)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이정인(64) 서울대 교수, 김효근(69)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이장무(60) 서울대 교수, 윤동한(58) ㈜콜마 대표이사 등 5명이 선정됐다.3등급인 웅비장에는 김춘호(48) 전자부품연구원 원장 등 6명,4등급 도약장은 이병주(55)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7명,5등급 진보장은 최혜미(64) 서울대 교수 등 8명이 수상자로 뽑혔다. 한편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유룡(50)교수와 이재영(66)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55)책임연구원 등 3명을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 이날 함께 시상한다.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은 매년 이학, 공학, 농수산, 의·약학 등 4개 분야에서 1명씩 선정, 대통령상장과 함께 국내 최고액인 상금 3억원을 수여한다.
  • [부고]

    ●애국지사 박하규선생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박하규(朴夏圭) 선생이 18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81세.1924년 9월 경북 상주에서 출생한 박 선생은 일군정부대(日軍情部隊)를 탈출,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돼 공작활동과 문서번역,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한 공로로 1982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천안 아산 장례식장이며 20일 발인,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된다.(041)542-4465. ●이종희(모다정보통신 대표)철희(FAG상무이사)상훈(KT전무이사)씨 모친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 ●한성태(NSE 대표이사)씨 부친상 원주희(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씨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3010-2264 ●이강서(하남시청 공보감사담당관)씨 부친상 이근환(광제한의원장)씨 빙부상 덕재(현대건설 자재부 차장)성재(메디팜생활건강)씨 조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39 ●박진형(쌍용자동차 성동지점 차장)진희(새롬디자인 대표)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3010-2261 ●김태훈(에이캐시)재훈(AIG생명)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30분 (02)3010-2268 ●한요한(개혁총연총회 총무)씨 부친상 한만길(한서상재 대표) 빙부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2)3010-2233 ●양은숙(서울대 간호대학 총동창회 명예회장·학교법인 초당학원 이사)씨 별세 김기운(백제약품 대표회장)씨 상배 동구(백제약품 회장)찬구(초당약품 부회장)승관(백제약품 부회장)씨 모친상 곽현수(법무법인 광장변호사)씨 빙모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70 ●양승진(CBS 문화체육부 차장)씨 모친상 18일 조선대학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62)220-3352 ●노찬식(씨에스유통 대표이사)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2)3010-2266 ●조남우(서울 북공업고등학교 교사)씨 별세 승연(학생)수연(〃)씨 부친상 18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921-5699 ●유연채(KBS 보도본부 취재1팀장)씨 조부상 18일 오후 3시 충남 홍성의료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41)630-6242 ●이한수(승진에프앤씨 이사)씨 현수(시민약국 약사)씨 부친상 권영춘(자영업)씨 조우현(SK텔레콤 부장)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35 ●박종화(조양물산 대표)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30분(02)3010-2295
  • [부고]

    ●독립유공자 이용상 선생 독립유공자 이용상 선생이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서울 출신인 선생은 1942년 4월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항일운동을 하다가 헌병에 체포돼 수감됐다. 이후 중국 중앙군 형산 유격사령부에서 특수공작 임무를 담당했다.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자 중칭(重慶)으로 가던 도중 일본 군대의 무장해제를 도모했으며, 이듬해 4월 귀국했다. 옛 문화공보부 예술국장을 역임했으며, 문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시내 추어탕 전문 음식점으로 유명한 ‘용금옥’을 거쳐간 사람들을 소재로 한 소설 ‘용금옥 시대’를 남기기도 했다.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원재(재 캐나다), 용재(롯데호텔 과장)씨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고 발인은 14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02)3410-6914. ●최규인(한범 대표이사 회장)씨 별세 한호(삼성전자 대리)범호(삼성SDS 선임)씨 부친상 최규환(전 대한주류공업회 회장·전 전북부안군수)씨 아우상 최규연(예비역 육군 중령)씨 형님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410-6912 ●고인환(고견디자인 대표)씨 부친상 서규용(한국마사회 상임감사)윤홍식(태종개발 대표)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15 ●김정재(전 한일그룹 부회장)씨 별세 도형(SK C&C 직원)태은(태원고 교사)씨 부친상 김두영(신한은행 사상지점 부지점장)이주상(대우증권 대리)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3 ●박문규(자영업)철성(현대자동차 차장)씨 부친상 홍의신(자영업)최병렬(해군)윤시원(신용보증기금 부장)양승식(전일고 교사)심재국(건축사)씨 빙부상 12일 전북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063)250-2441 ●이상열(자영업)상협(대본엔지니어링 상무)상현(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대리)씨 부친상 김청수(자영업)박병규(송촌건설 상무)공석환(신도전기 대표)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5시30분 (02)3010-2291 ●박일룡(전 경찰청장)씨 빙부상 12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51)256-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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