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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평신도협의회장 한홍순씨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최근 제39회 정기총회를 열어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한국외대 교수) 회장을 제16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회장은 한국외대 대학원장 등을 지냈으며,1995년 교황청으로부터 성그레고리오 대 교황 기사 훈장을 받았다. 현재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으로 있다.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풍산’하면 어떤 회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들지 않는 회사인 까닭이다. 하지만 풍산은 이미 생활속에 깊이 스며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인 소전(素錢)을 생산한다. 그래서 ‘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총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방위산업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것으로 풍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리드프레임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구리 합금기술이다. ●한 손엔 돈, 다른 손에 총알을 2세 경영인 류진(48)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의 왕국’으로 불린다. 지난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업체로 지정된 풍산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오는 2008년까지 호주에 1억달러어치의 소전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EU) 동전의 소전도 공급하고 있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시장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3년 타이완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60여개국에서 30억여명이 풍산의 소전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했던 소전을 이어면 지구를 4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소전은 구리를 기본으로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용해왔던 케케묵은 소재다. 하지만 동에 니켈 등을 적당히 합금만 하면 되는 그렇고 그런 굴뚝산업이 아니다. 까다로운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73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했다. 소구경 총탄뿐만 아니라 포탄까지 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를 시작했다. 이후 모든 탄약을 국산화했다. 수입대체 효과를 매우 높였다.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 류찬우(1923∼1999) 회장이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풍산의 출발은 미미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풍산은 지난 1968년 10월 창업주 류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달러로 출발한 신동(伸銅·구리가공산업)업체다. 창업주 류회장은 기업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기보다도 당시 허약했던 국가 산업발전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소재 가운데서도 구리를 골랐다. 현대문명에서 구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창업 다음해인 1969년 부평공장 준공과 함께 정부의 5대 핵심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73년 경북 안강공장을 준공하면서 방위산업을 통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실현했다. 방위산업 진출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인 그의 조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읽고 유비무한 정신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에는 온산신동공장을 세워 한국을 세계적인 신동산업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92년부터 미국 현지공장,2000년 12월 태국 현지법인을 가동하면서 풍산은 연산 46만 5000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다국적 신동기업인 KM유로파 메탈에 이어 세계2위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철금속에서 풍산의 위상은 철강에서 포스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첨단업종으로 변신중 구리가공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던 풍산은 지난 79년 서울 퇴계로 극동빌딩에 세들어 사무실을 마련한 뒤 지금까지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방위산업체인 까닭에 군관련 인맥 네트워크가 해외까지 탄탄하다. 풍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97년부터 2세 류진 회장 체제가 구축되면서 풍산은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회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하면 첨단 통신사업 등에도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문원 풍산 사장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가전 등 전기가 통하는 곳은 어디나 동 압연재가 필요하다.”며 주력인 신동산업을 통한 사업 다각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풍산그룹의 계열사는 핵심기업인 ㈜풍산을 중심으로, 풍산마크로텍, 풍산산업 등 16개(해외법인 포함)에 이르고 있다. 특히 류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일본, 미국, 상하이 등지에 법인을 설립했다. 풍산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점차 줄어드는 방위산업을 첨단산업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선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는 것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변신을 꾀하는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동, 스테인리스, 티타늄 분야에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새로운 첨단소재산업 분야로 진출할 도모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탄약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와 함께 항공기와 유도무기에 필수적인 가속도계, 속도 및 고도측정센서 등 정밀 센서류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등 정밀산업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창업주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 회장은 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일본에서 아메리칸 고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류 회장의 영어 구사력은 재계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동전의 제왕’ 류 회장은 미국통 류 회장은 ‘미국통’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대통령의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전경련 초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경련 부회장인 류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7월28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환송 만찬의 사회를 보는 등 단순히 경제인 차원을 넘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앞서 지난 2002년 12월 국내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질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런데서 보듯 류 회장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인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풍산의 미국법인 PMX인더스트리의 공장 준공식에서 바버라 부시 여사가 기념 테이프를 자르면서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풍산이 방위산업체라 일찍부터 대미관계에 공을 들였고, 미국의 거대 방위산업체 인맥은 물론 정계 인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류 회장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 등 해외에 머물며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국내에는 풍산이나 류 회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류 회장이 매우 겸소한 성품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은 부담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족보상 명문가의 후손인 풍산의 류진가는 재계의 혼맥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풍산 류씨 서애종파의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세손이다. 바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류 창업주는 회사 이름을 풍산 류씨인 자신의 본관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류 창업주는 병산교육재단을 세워 고향인 풍산에 풍산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재단에 서애가 후학을 양성했던 병산서원과 그 일대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류 회장이 지난 99년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뒤 풍산그룹의 경영권은 차남 류진 회장으로 이어졌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계열의 ㈜풍산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산의 공익법인인 병산교육재단과 93년 설립된 학록장학재단(학록은 류 창업자의 호)와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명실상부하게 풍산가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있다. ●대통령가에 닿았던 화려한 혼맥 류 창업주는 부인 배준영(79) 여사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배씨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969년 풍산의 첫 공장인 부평공장을 지을 당시 배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을 봐 부평 공장의 종업원들의 음식 뒷바라지를 할 정도로 창업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이문원 사장은 “모든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장남이자 류 회장의 형 류청(57)씨는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인더스트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53·당시 이름 박서영)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딸과의 결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1년도 못돼 파경을 맞아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 여사는 여전히 박씨를 “큰 며느리”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의 큰 누이인 류지(54)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누이 류미(52)씨는 미국 LA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회장은 노신영(77·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전 국무총리의 딸과 혼인했다. 류 회장의 부인인 노혜경(47)씨는 노 전 총리의 딸이다. 노씨는 미국 스탠포퍼드 법대 출신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성왜(17)양과 성곤(14)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풍산의 류진가는 노 전 총리와의 통혼을 통해서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됐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53)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작고)의 딸 숙영(47)씨와 결혼했다. 노 교수는 정몽규(44)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매형이 된다. 류 회장은 노신영가를 통해 현대가와 순환혼맥을 이룬다. 노 전 총리의 둘째아들 노철수(51)씨는 P.Wian&Associate 대표이사 사장. 그의 부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 딸인 홍라영(46)씨로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레오버넷 코리아 사장을 지내고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로써 풍산의 류진가는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노 전 총리 셋째아들 노동수(48)는 고려서적 사장을 맡고 있다. chuli@seoul.co.kr ■ ’동전 왕국’ 일군 숨은 일꾼들 신동(구리가공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오늘의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나 2세 경영인 류진 회장 못지않게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풍산은 대표적으로 정훈보(68) 전 사장, 류민하(78) 전 부사장, 이진우(72) 전 부사장, 김사철(70) 전 감사, 류인한(79) 전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 금융계획과장을 지냈던 정 전사장은 지난 78년 풍산의 전신인 풍산금속공업에 이사로 입사했다. 타고난 기획통으로 사세 확장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80년대 초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을 당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플랜트를 수출할 때 백동관을 자체 기술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7년 풍산 부회장을 거쳐 99년 한국철도차량 사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농협중앙회 자금부장을 지낸 류민하 전 부사장은 지난 73년 풍산금속공업의 상무로 입사, 류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의 회사 기틀을 다졌다. 회사가 해마다 2배씩 성장을 거듭할 70∼80년대 자금과 인사 등 회사의 안살림을 두루 맡았다.80년 부사장을 거쳐 90년 감사를 지냈다. 풍산의 후배들은 학자풍인 그를 ‘선비형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다. 역시 고려대를 거쳐 농협 중앙회 출신인 이진우 전 부사장은 지난 75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80년대 초 회사의 경영정보관리시스템(MIS)을 도입, 당시로서는 국내의 어느 회사보다 빨리 선진적인 경영관리시스템을 받아들였다. 특히 90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 헌신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노사협력우수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지난 97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김사철 전 감사의 경우 뛰어난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타고난 최고재무관리자(CFO)이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감정사 자격을 갖춘 그는 재무부·국세청·총무처 등 정부의 여러 부처를 거쳐 76년 풍산금속에 이사로 들어왔다. 재무업무의 기본 프로세스를 조성했으며 시설·자재·감사 등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의 류인한 부사장은 세계 최상급의 품질과 능력을 자랑하는 동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설비와 생산프로세스의 토대를 구축한 산증인으로 전통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임원이다. 지난 73년 부평공장 공무부장으로 입사, 동제품 생산기술과 공정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78년 온산공장 건설본부장으로 온산공장 건설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온산공장장을 지냈다. 풍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토대가 됐다. 88년 온산공장 제2공장을 준공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25만t 생산능력의 신동공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온산공장 건설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이후 풍산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건설한 미국 현지법인 PMX사와 태국 공장건설에도 공헌했다. chuli@seoul.co.kr ■ “선조에 누 되는 일 하지 마라” 풍산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임진왜란을 넘긴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이다. 이런 정신이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난 68년 순수민족자본에 의해 창업, 세계적인 신동기업으로 발전한 풍산은 전통 문화의 계승에 남다르다. 풍산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이라는 방위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다. 서애의 가르침이자 영향이다. 풍산의 기틀이 잡힌 지난 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의 후손들과 학자들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기념사업회를 세웠다. 또 류 창업자는 지난 80년 4월 사재를 출연, 육군사관학교에 서애관이라는 체육관을 기증했다. 지난 일을 되살려 앞날을 대비하자는 서애의 가르침을 호국 간성에게 일깨우고자 건립된 상무의 도장이다. 지난 91년 5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일본 도쿄대 종합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 러시아 과학대 동방연구소, 중국 베이징대 등 30여개국 50여개 대학과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다. 약 10년 동안의 편찬사업 끝에 서애의 저술과 관계자료를 수집, 망라한 것으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를 규합해 완성한데 의미가 깊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특히 지난 2003년 임진왜란의 극복 경험과 교훈을 적은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을 출간, 세계화시켰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가 6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됐다. 기념사업회는 특히 내년 서애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범유림기념사업회에서 당파를 초월해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중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지난 17일 오전 국민대 학위수여식장. 검은 박사복과 박사모를 차려입은 서찬교(63) 서울 성북구청장이 대학 관계자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오늘은 구청장이나, 동문회 부회장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앉을 수 없죠. 강단 의자에 앉겠습니다.”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특별한 대우’를 거절했다. ●‘금연 정책´으로 박사학위 받아 서 청장은 이날 늦깎이 박사가 됐다. 환한 웃음으로 가족,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주경야독으로 보낸 지난 20년을 되돌아봤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을 못가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욕망이 늘 요동쳤지요.” 1963년 서울시 9급 공무원으로 시작,‘공무원의 꽃’이란 1급 관리관까지 올랐지만 늘 학문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국민대 법학과와 명지대 지방자치대학원,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에 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국민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또다시 밤을 밝혔다. 서 청장은 “학문연구와 공직생활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학문적 연구가 정책 수립의 밑거름이 되고, 정책경험이 이론을 풍성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박사논문 ‘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연구’도 서 청장이 2002년 7월 구청장에 취임한후 열정적으로 추진한 ‘담배연기 없는 성북 만들기 사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첫 업무보고를 받는데 보건소장이 ‘우리 성북구가 다른 지역보다 20세 이상 성인남성 흡연율이 1% 높다.’고 발표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금연실천팀을 구성해 흡연율을 감소시킬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죠. 구민의 건강을 책임지는게 구청장 역할 아닙니까.” 당시 자치구가 금연정책을 펼쳐본 적이 없는터라 국내에는 자료가 없었다. 금연팀은 일본과 싱가포르의 금연거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성공사례를 모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3S(Stop Smoking in Seongbuk)운동’선포식을 가졌다.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 칠레대사와 국내 최초의 여성 금연운동가 정광모 회장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슈미트 대사가 직접 찾아와 홍보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대사 부인이 애연가였는데 어느날 금연을 결심,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후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서 청장도 15년간 피우던 담배를 1978년 정초에 내던졌다. 흡연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흔들렸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자고 되뇌었다.28년간 그 약속은 깨지지 않고 있다. ●흡연율 감소·금연체험 홍보관 건립 금연캠페인에 주민들이 서포터스로 참여하는 등 호응이 이어졌다. 이에 구청사와 동청사 건물을 ‘절대금연 건물’로 지정하고,‘금연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최초로 공포했다. 또 성신여대 입구 ‘하나로 거리’를 금연홍보 거리로 조성했다. 그 결과 2004년 8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ISO9001:2000)을 받았다. 성북구가 ‘자치구 금연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은 셈이다. “담배소매인 단체가 처음에 많이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면 공청회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냈죠.” 성과는 눈부셨다. 금연사업전 56.4%이던 성인남성 흡연율이 2004년 42%로 감소했다. 전국 평균보다 8%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그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30% 수준으로 줄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 길음 뉴타운에 전국 최초로 금연체험 홍보관을 건립하는 등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다. 서 청장은 ‘건강하고 행복한 성북구’를 꿈꾸며 24시간 달리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3년 경남 고성 ▲학력 국민대 졸, 행정학 박사 ▲약력 공무원 9급 임용, 서울시 비서실장, 보건위생과장, 총무과장, 양천·구로·은평·강동 부구청장, 송파구청장, 지방관리관(1급) 명예퇴직. 황조근정훈장. 온누리교회 장로 ▲가족 강혜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매운탕 ▲주량 마시지 않음▲좌우명 언제나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만남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

    지난 17일 오전 국민대 학위수여식장. 검은 학사복과 학사모를 차려입은 서찬교(63) 서울 성북구청장이 대학 관계자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오늘은 구청장이나, 동문회 부회장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앉을 수 없죠. 강단 의자에 앉겠습니다.”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특별한 대우’를 거절했다. ●‘금연 정책´으로 박사학위 받아 서 청장은 이날 늦깎이 박사가 됐다. 환한 웃음으로 가족,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주경야독으로 보낸 지난 20년을 되돌아봤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을 못가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욕망이 늘 요동쳤지요.” 1963년 서울시 9급 공무원으로 시작,‘공무원의 꽃’이란 1급 관리관까지 올랐지만 늘 학문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국민대 법학과와 명지대 지방자치대학원,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에 이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국민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또다시 밤을 밝혔다. 서 청장은 “학문연구와 공직생활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학문적 연구가 정책 수립의 밑거름이 되고, 정책경험이 이론을 풍성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박사논문 ‘금연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연구’도 서 청장이 2002년 7월 구청장에 취임한후 열정적으로 추진한 ‘담배연기 없는 성북 만들기 사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첫 업무보고를 받는데 보건소장이 ‘우리 성북구가 다른 지역보다 20세 이상 성인남성 흡연율이 1% 높다.’고 발표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금연실천팀을 구성해 흡연율을 감소시킬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죠. 구민의 건강을 책임지는게 구청장 역할 아닙니까.” 당시 자치구가 금연정책을 펼쳐본 적이 없는터라 국내에는 자료가 없었다. 금연팀은 일본과 싱가포르의 금연거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성공사례를 모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3S(Stop Smoking in Seongbuk)운동’선포식을 가졌다.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 칠레대사와 국내 최초의 여성 금연운동가 정광모 회장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쉬미트 대사가 직접 찾아와 홍보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대사 부인이 애연가였는데 어느날 금연을 결심,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후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서 청장도 15년간 피우던 담배를 1978년 정초에 내던졌다. 흡연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흔들렸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자고 되뇌었다.28년간 그 약속은 깨지지 않고 있다. ●흡연율 감소·금연체험 홍보관 건립 금연캠페인에 주민들이 서포터스로 참여하는 등 호응이 이어졌다. 이에 구청사와 동청사 건물을 ‘절대금연 건물’로 지정하고,‘금연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최초로 공포했다. 또 성신여대 입구 ‘하나로 거리’를 금연홍보 거리로 조성했다. 그 결과 2004년 8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ISO9001:2000)을 받았다. 성북구가 ‘자치구 금연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은 셈이다. “담배소매인 단체가 처음에 많이 반대했습니다. 그럴 때면 공청회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냈죠.” 성과는 눈부셨다. 금연사업전 56.4%이던 성인남성 흡연율이 2004년 42%로 감소했다. 전국 평균보다 8%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그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30% 수준으로 줄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 길음 뉴타운에 전국 최초로 금연체험 홍보관을 건립하는 등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다. 서 청장은 ‘건강하고 행복한 성북구’를 꿈꾸며 24시간 달리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3년 경남 고성 ▲학력 국민대 졸, 행정학 박사 ▲약력 공무원 9급 임용, 서울시 비서실장, 보건위생과장, 총무과장, 양천·구로·은평·강동 부구청장, 송파구청장, 지방관리관(1급) 명예퇴직. 황조근정훈장. 온누리교회 장로 ▲가족 강혜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매운탕 ▲주량 소주 마시지 않음▲좌우명 언제나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만남
  • [14일 TV 하이라이트]

    ●대발견 아이Q(EBS 오후 8시5분) 아이들이 꼭 먹어야 할 채소 두 번째 깻잎 편. 고기 먹을 때 먹는 깻잎이 시력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밖에 깻잎에는 시금치만큼 철분이 들어있어 빈혈 예방에 좋다, 오렌지 주스와 함께 먹으면 깻잎 속의 영양이 잘 흡수된다는 말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정보인지 ‘알쏭달쏭 육아극장’에서 알아본다.   ●비법 대공개(SBS 오후 7시5분) 채연의 스타 비법을 공개한다. 이성을 사로잡는 채연의 색시댄스 비법, 매끈하고 탄탄한 복근을 위한 운동 비법, 새하얀 치아를 만드는 상추 비법, 탄력있는 피부를 만드는 법 등을 공개한다. 또 김밥 꽁다리 부분으로 얻은 특허 비법, 대한민국 특허 초밥, 고기가 익으면 알람이 울리는 특허 비법 등을 공개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5분) 미국 휴스턴에서는 범법자들에게 자신의 죄를 공공장소에서 널리 알리는 형벌이 선고된다. 지나친 수치심을 준다는 사람도 있지만 처벌이 약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처벌방식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나 지금의 처벌방식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교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인생의 스페셜(MBC 오후 9시55분) 뺑소니범의 정체를 파악한 형석과 동구는 보상금을 받으면 둘이 나눠갖자며 의기양양하게 호텔로 찾아간다. 벌써 퇴근했다는 말에 두 사람은 집 앞으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한편 혜라는 자신이 진짜 검거하고 싶은 사람을 겁나서 못잡았다는 사실을 강호에게 털어놓고, 강호는 그런 혜라를 다독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예전에는 관절염을 나이 들면 자연히 얻게 되는 세월의 훈장쯤으로 여겨왔지만 요즘은 점차 발병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어 젊은 사람들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관절염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겨울이면 더 고통스러운 관절염 환자의 겨울나기 요령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641가족(KBS2 오후 6시10분) 재호는 요한이네 가족의 도움으로 발명품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마산과 호만, 순아, 수철, 미현은 태천의 장례식에 가고 아이들만 집에 남게 되어 급한, 재인, 재호는 요한이네 집으로 간다. 발명품으로 신문에 났던 호만의 집을 노리던 충선과 상태는 발명품 설계도를 훔치러 호만의 집으로 잠입한다.
  • [부고] 애국지사 장용담선생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장용담(張龍淡) 선생이 10일 별세했다.82세.1924년 11월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한 선생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중국 화북(華北)지구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3묘역. 발인은 13일.(02)3430-0457.
  • 일반직 공무원 첫 국립묘지 안장

    전북지역 폭설피해 복구현장에서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를 받다 지난 7일 숨진 경기도청 환경정책과 고 이주영(40)씨가 일반직 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9일 경기도에 따르면 재난재해와 관련해 순직한 일반직 공무원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지난 1월29일 ‘국립묘지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이씨가 일반직 공무원으로는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군인이나 경찰, 소방공무원 등 특수직 공무원들에 한해 순직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경기도는 이에 따라 이날 오전 경기도청 운동장에서 이씨에 대한 영결식을 치른 뒤 이씨의 유해를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 임시 안장했다.한편 이씨에 대한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청 운동장에서 유족과 동료 공무원들의 애도 속에 경기도청장으로 거행됐다.손학규 지사는 고인에 대해 1계급 특진한 사무관(5급) 임용장과 정부의 녹조근조훈장을 추서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정부 훈·포장제 ‘대수술’

    앞으로 공직생활을 퇴직하는 대부분의 공무원에게 훈·포장을 수여하던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 일반국민과 달리 공무원에게만 퇴직시 훈·포장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기 때문이다. 7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퇴직공무원에게 수여되는 훈·포장에 대한 상훈제도 등 개선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하지만 추진방식과 개선범위를 놓고 각 부처의 의견이 엇갈려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자부는 상훈제도 중 큰 문제점으로일정기간 공직에 근속하면 퇴직할 때 모두 훈·포장을 주는 것을 꼽고 있다. 현행 제도에선 공직에서 ‘큰 탈 없이’ 33년간 근무를 하면 훈장을 받는다. 또 30∼32년 근무를 하면 포장을 받는다. 일반공무원과 교원의 경우는 근정훈·포장을, 군인의 경우는 보국훈·포장을 받는다. 보국훈·포장을 받는 군인은 국가유공자증도 함께 주어져 퇴직 후에도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정부는 매년 3만여명에 대해 정부 포상을 하는데 장기간 공직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훈·포장을 받는 인원이 2만여명에 이른다. 퇴직공무원에게 훈·포장을 수여하는 근거로 ‘공적이 있는 경우’를 들고 있다. 상훈법에 “근정훈장은 공무원 및 사립학교의 교원으로서 그 직무에 정진하여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대부분 ‘30년 이상 공직에서 근무한 것’을 ‘공적이 뚜렷한 것’으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준으로 장·차관이 공직을 그만둘 때나 일반 공무원이 퇴직할 때 무더기로 훈·포장을 주는 것에 대해 일반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현재 정부에서 무궁화대훈장을 비롯, 건국훈장·근정훈장 등 모두 72가지의 훈·포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근정훈·포장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에 따라 정부는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30년 이상 근속한 공무원에게 훈·포장을 주던 방식을 ‘내세울 만한 공적이 있는 경우’에만 줄 수 있도록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포상 남발을 막고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인식이 들도록 수상자에 대한 공적평가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개선안에 대해 반대도 만만치 않다. 중앙부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관행이 지난 1977년부터 이어져왔는데 갑자기 축소하면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반 공무원보다는 교원과 군인들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상 교원 등 일부 공무원에 대해선 ‘공적’을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부처 논의과정에서 국방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개선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행자부 내에서는 독자적으로 개선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정부차원에서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 개선방안을 찾는 것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자부 관계자는 “개선안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를 했으나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최종적으로 확정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의사상자도 국립묘지 안장

    앞으로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다 희생한 의사상자나 순직·공상 공무원,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사람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국가보훈처는 7일 이같은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 시행령은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으며, 법이 시행일로 정한 ‘올해 1월30일부터’를 기준으로 적용된다. 시행령에 따른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1)일반 시민 가운데 의사자와 장애등급 1∼3급에 해당되는 부상을 당한 의상자가 사망한 경우 (2)공무원 가운데 교정직이나 위험직종에서 근무하다가 순직하거나 상이 1급 또는 3급에 해당되는 부상을 당한 뒤 사망한 경우 (3)외교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산업훈장, 과학기술훈장 등을 받은 경우다. 국립묘지 안장을 희망하는 유족들은 보건복지부에 신청을 하면 된다. 국립묘지의 묘는 평토장(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매장)으로, 시신 안장 때는 평분으로 해야 한다. 문의는 국가보훈처 (02)2020-5138.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장동건 1인시위 사고날뻔…

    장동건 1인시위 사고날뻔…

    영화배우 장동건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스크린 쿼터제 축소·폐지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릴레이 시위에 참가한 것. 하지만 ‘시위하는 장동건’을 보려고 시민 수백명이 몰려 자칫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장씨가 ‘스크린쿼터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전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겠습니다’라는 글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등장한 것은 6일 오후 1시. 소식을 듣고 대기하던 취재진과 팬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 등 500여명이 몰려 시위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 주말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안성기, 박중훈의 1인 시위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5분 만에 장씨는 인파에 떠밀려 빌딩 안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주최측은 누구나 예상했던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 경찰에 협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 결국 오후 2시30분부터 경찰의 보호 속에 국회 정문 앞에서 시위가 계속됐다. 이곳에서도 200여명이 장씨의 시위를 지켜봤으며 NHK 등 일본 취재진도 눈에 띄었다. 한편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문화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설 예정인 영화배우 최민식은 정부로부터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하기로 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이날 “스크린 쿼터 축소를 추진 중인 정부에 항의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최씨가 받은 훈장을 반납키로 했다.”고 밝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盧대통령 조전…“합당한 예우 모색”

    정부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고 백남준씨의 빈소에 조전과 조화를 보냈다. 청와대 측은 이날 저녁 백씨의 타계와 관련해 긴급 회의를 갖고 “백씨가 생전 한국에 묻히기를 희망한 점을 포함해 국내의 조문 장소 지정 문제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 31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백씨가 이미 지난 2000년 예술인으로서의 최고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훈장 추서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다른 차원의 예우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저도 훈장받았어요” 행자부 청사 매주수요일 개방

    “나라도장이 참 신기하네요.” 25일 ‘혁신정부 체험하기’에 참가해 정부중앙청사를 방문한 장준하(7·서울 홍제초)군 등 30명의 어린이들은 19층에 들러 보관 중인 국새를 보고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도장인 ‘국새’를 실물로 보는 것이 처음인데다 어디에 사용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안내 공무원으로부터 “국새는 훈장과 포장을 수여할 때나 외국과 문서를 교환할 때 사용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들은 행정자치부가 학생과 국민들에게 정부가 하는 일을 알리기 위해 방문 프로그램을 마련함에 따라 정부청사를 찾았다. 사실 일반 국민들이 정부청사를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테러 등에 대비해 청사외곽은 경찰이, 내부에도 경찰과 방호원들이 2,3중으로 지키고 있다. 따라서 청사방문을 위해서는 까다로운 통과절차를 밟아야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청사방문 프로그램은 ‘열린 정부, 열린 행정’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이런 취지에서 이날 오영교 행자부 장관은 직접 ‘손님’들을 맞이해 정부가 하는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행자부는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에 청사를 국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행자부 홈페이지(www.mogaha.go.kr)를 통해 접수하는데 이미 2월 15일까지 매진된 상태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양대웅 구로구청장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은은한 선율에 취한 양대웅(64) 구로구청장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지난 16일 밤 궁동 연세중앙교회 대강당에서 열린 ‘찾아가는 시민음악회’에서 만난 양 구청장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오랜만에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난 듯 그의 표정에서는 편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이 디지털 오디오시스템을 타고 대강당에 웅장하게 울려퍼지자 그는 2만 2000여명의 관객들과 함께 정명훈의 손놀림이 빚어내는 소리의 마술에 빠져들었다. 곡이 끝날 때마다 구민과 함께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산업단지에 문화를 심는 ‘문화전도사’ “흥행 대박 아닙니까. 문화 이벤트 사업이나 한번 해볼까요.” 그는 관람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한다. 대규모 관객이 몰린 공연이 작은 불상사도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우회적인 대답이다. 다른 구와 같이 500여석 규모의 구민회관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그는 “1년에 한번 개최될까 말까한 공연인데 많은 구민이 봐야 한다.”고 고집, 이 곳으로 옮겼다. 교회 목사님도 그의 간곡한 부탁에 흔쾌히 예배당을 내주었다. 그는 “우리구는 산업단지가 많아 어느 곳보다 ‘문화적인 갈증’을 많이 느끼는 곳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세계 최고의 문화지대가 됐다.”면서 “구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공연을 진작, 많이 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든다.”고 말했다. 구로 1동에 사는 50대 주부는 “새해에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아직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이 가슴을 ‘쿵쿵’ 치고 있고, 진정되지 않는다.”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양 구청장은 ‘문화 전도사’를 자처한다. 산업단지가 많아 문화의 갈증을 느끼는 구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풀어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일상에 바쁜 구민들에게 수만원을 호가하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의 공연은 남의 일”이라면서 “앞으로 구로를 ‘문화 구로’를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년 “가정 형편이 좋았더라면 문학가나 법률가가 됐을 겁니다. 아직도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감수성이 풍부하다.1970년 서울시 행정주사보(7급)로 공직을 시작해 올해로 36년의 공직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한때는 시인을 꿈꿔왔던 ‘문학소년’이다. 쪽빛 파도가 물결치는 경남 남해 창선의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파도소리와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바쁜 공직생활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2002년 5월 소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을 발간했고, 올해에는 수필집 ‘아침 햇살 속으로’를 내놓을 예정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면 ‘아내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겠고 다짐한다. 구로구의 미래에 대해서도 “캄캄한 밤에서 새벽의 여명을 거쳐 아침 햇살 속으로 빠져드는 곳”이라며 시적인 표현을 토해낸다. 그래서 그는 지난 4년동안 주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우리구가) 떠나는 곳이 아니라 미래가 있는 곳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또 ‘클린 구로’와 안양천을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꾸민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자발적으로 골목 구석구석까지 누비는 ‘깔끔이 봉사단’ 덕택에 ‘깨끗한 서울가꾸기’부문에서 3년 연속 최우수구에 선정됐다. 때문에 취임후 구민수도 40만명에서 42만명으로 늘었다. 그는 지금, 수목원과 전원형 주거단지, 예술회관 등을 건립, 구민들이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는 ‘문화구로’‘복지구로’를 이루는 꿈을 꾸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2년 경남 김해 ▲학력 경북대졸,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 석사 ▲약력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대책본부 주무과장, 서울시환경관리실 환경기획관(국장급), 구로·용산구 부청장, 한나라당 구로을 지구당 부위원장, 홍조근조훈장 수상, 안양천 수질개선 대책협의회 회장,GCD(국제도시간 대화) 운영위원회 부의장 ▲가족 김정숙씨와 1남 2녀 ▲종교 기독교 ▲취미 산책, 독서, 글쓰기, ▲좌우명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다 ▲주량 소주 반병. ▲애창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김희철 관악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김희철 관악구청장

    서울 관악구 김희철 구청장은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 5시면 눈을 뜨고,6시면 집을 나선다. 어린 시절 농부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란다. 김 구청장은 집을 나서면 아직도 밤 기운이 가시지 않은 골목골목을 누빈다. 너저분한 곳을 치우기 위해서다. 그의 관용차 트렁크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손전등이 들어있다. 쓰레기 양이 많아 혼자 정리하기 힘들면 구청이나 해당 동사무소에 연락한다. 그러면 ‘청소기동대’가 현장으로 달려온다. 골목길 청소에 나선 지 8년째. 주민들은 그에게 ‘청소 구청장’이라는 훈장을 달아줬다. 19일 오전 6시40분. 봉천3동 봉천시장에 자리한 새마을금고 앞. 주민 200여명이 크고 작은 빗자루를 들고 ‘주민 자율 대청소’를 하기 위해 모였다. 관악구 27개동은 두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대청소를 실시한다. 이 행사에 김 구청장은 빠지는 일이 없다. 하늘색 점퍼를 입은 구청장이 도착하자 청소가 시작됐다. 그는 흰색 장갑을 끼더니 긴 빗자루를 잡고 익숙한 솜씨로 앞장을 섰다.‘쓱삭 쓱삭’,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쓰레기가 한 곳으로 모인다. 주민들도 30∼40명씩 무리를 이뤄 각 방향으로 흩어졌다.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도 청소하는 손놀림에는 정성이 담겼다. 김 구청장은 1998년 7월 취임하자마자 ‘청소주간’을 선포했다. 그리고 전 직원과 함께 주택가 주변의 해묵은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뛰어들었다. 일주일 만에 3000t이 쏟아졌다. 이같은 제안은 1987년부터 관악구에서 살아온 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퀘퀘한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를 들어서면 괜스레 짜증스럽더군요. 활기찬 구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구청장이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쓸자 직원들이 쓰레기 봉투를 헤집으며 분리 수거를 독려했다. 더디긴 했지만 주민들도 변해갔다. 쓰레기 무단 투기가 줄고,‘골목청결이 봉사단’에 주민 1만명이 가입했다. 이들이 2240개 골목을 관리한다. 생활폐기물이 절반으로 줄고 재활용은 배로 증가했다. 깨끗한 도시가꾸기에 성공한 김 구청장은 2002년부터 연간 10만 그루 나무심기에 도전했다. 서울시 전역에 심는 나무의 5분의 1에 달한다. “관악산 덕분에 구의 녹지비율이 높더라도 주택가와 자투리 땅을 활용해 푸른 쉼터를 나눠주고 싶습니다.” 김 구청장은 21세기 도시는 경쟁력과 삶의 질, 환경이란 3박자가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우리 생활을 편안하게 만드는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의미 있으려면 마음을 여유롭게 만드는 환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쟁력과 환경 보존 사이에서 균형잡힌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2000억원을 들여 난곡지역과 신대방역을 잇는 경전철 건설에도 이같은 그의 철학이 반영됐다. “푸른 녹지를 만들어 가는 일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더 소중한 일입니다. 그래서 한 뼘의 공원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김 구청장의 ‘철학’을 듣다 보니 어느새 골목길이 말끔해졌다.40분만에 100ℓ짜리 쓰레기봉투 10개가 가득찼다. 윤기나는 골목길을 따라 출근하는 주민들의 얼굴이 아침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빛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출생 1947년 전북 고창 ▲학력 건국대학교졸, 행정학 박사 ▲약력 건국대총학생회장, 새정치국민회의 관악구지구당 지방자치위원장,2·3기민선관악구청장, 건국대학교 총동문회부회장,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수상, 제2회 반부패청렴대상수상, 자랑스런CEO 한국대상수상,2005행정대상수상, 제8회 자치대상수상 ▲가족 조선자씨와 3녀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김치찌개, 칼국수 ▲주량 거의 마시지 않음 ▲좌우명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추풍령
  • 한국 스포츠 터 다진 ‘80대 청년’

    한국 스포츠 터 다진 ‘80대 청년’

    국회 부의장과 대한 체육회장을 지낸 민관식 한나라당 고문이 16일 새벽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유족들은 조촐한 가족장을 지내기로 결정했으며 서울 또는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1918년 개성에서 출생한 민 전 고문은 경기 제일고보와 수원농대, 일본 교토(京都)대를 졸업했으며 정계와 학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황해도 개성 출신으로 제일고보 시절 개성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면서 일본인 학생들과 자주 충돌,‘제일고보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고 결국 1년 낙제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심기일전, 교토대 농림화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3·4·5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던 고인은 6대 국회의원에 이어 10대 국회에서 부의장과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다.71년부터 74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문교부 장관 시절인 73년 고교 무시험 정책을 발표했고 한글 전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박 전 대통령을 설득, 실용한자 1800자를 제정해 결국 한자 혼용정책을 관철시켰다. 소신과 결단력있는 행정으로 부하 직원들에게 ‘민(閔)짱’으로 불렸다.‘마당발’로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사무실 문에 아예 ‘평생 현역’이라는 글귀를 써붙였던 고인은 특히 체육계와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을 맺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장에 올라 1971년까지 한국체육을 이끈 고인은 1968년부터 1970년까지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 선수촌을 건립, 스포츠 근대화의 토대를 세웠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으로 내세웠던 고인은 ‘선수촌을 지으려면 태릉으로 가보라.’는 꿈을 꾸고 난 뒤 태릉의 부지를 물색을 했다는 일화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훈장 등을 받았다. ‘건강을 잃으면 인생 전부를 잃는다.’는 생활신조를 지녔던 고인은 미수(米壽)의 나이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즐겼다. 타계하기 전날에도 테니스를 즐기고 매일 3㎞씩 걷는 등 건강관리에 철저,‘80대 청년’으로 자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호(81) 여사와 병의(63·사업)·병찬(52·”)·병환(49·공무원)씨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 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0일 오전 9시다.02-3410-3153.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사학법투쟁 훈장보다 자랑스러워”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살아온 내 인생 같이…나는 나의 소신을 절대 굽히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투쟁과 관련, 지난 13일 자정 가까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의 일부다. 사학법 장외투쟁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박 대표는 이 글에서 “지금 나의 길이 어렵고 힘들어도 누군가는 꼭 해야될 일이기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끝까지 견디어 나갈 것”이라며 “소신을 펴나가는 그 과정에서 비난을 받더라도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갈 것”이라고 비장한 결의를 내비쳤다. 박 대표 글은 올린 시점으로 볼 때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취임 이후 제기한 ‘재개정 전제 등원론’ 혹은 ‘투쟁·협상 병행론’에 대한 일종의 ‘응답성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北, 미국인에 첫 국가훈장 구호단체 대표 故컬버씨

    북한이 미국인에게 국가훈장을 처음으로 직접 수여했다. 15일 미국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 ‘민족통신’에 따르면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지난 10일 포틀랜드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대신해 고 엘스워즈 컬버씨의 미망인 에스머 조씨에게 국가훈장인 친선메달을 전달했다. 지난해 8월 78세로 별세한 컬버씨는 생전에 개발도상국 구호단체인 머시재단 대표로 평양을 20여차례 방문하며 인도적 차원에서 각종 지원을 한 인물이다.한 대사는 유족들이 참석한 만찬회에서 “고인은 조(북)·미관계의 발전을 위해 물질적으로 많이 기여한 사람이며, 조·미관계가 정치적으로 악화됐을 때도 변함없이 민간관계를 증진시켜 온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에스머 조씨는 한 대사에게 고인이 간직했던 서적 한 권을 답례로 선물했다. 한 대사는 “조·미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포틀랜드까지 여행은 미 국무부의 허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부토건-조남욱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부토건-조남욱 회장家

    ‘부여 출신의 3형제가 서로 도와 세운 건설사.’ 국내건설업 면허 1호 업체인 삼부토건의 유래다. 삼부토건의 삼(三)은 삼각형과 안정,3형제 등을 의미한다. 부(扶)는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의 고향인 부여와 자조(自助)를 뜻한다. 즉 삼부는 부여출신 3형제인 조정구·창구·경구 3형제가 창업했다는 뜻이다.3형제가 서로 도우며 안정적으로 회사를 끌고 가겠다는 의미도 있다. 삼부토건은 60,70대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면허 1호 업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급순위 3위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업문화는 성장에 걸림돌이 됐다. 창업주인 조 총회장뿐 아니라 대를 잇고 있는 큰아들 조남욱(73) 삼부토건 회장은 지금도 10대 선조까지 제사를 지낼 정도다. 보수적인 기업문화 탓에 여러차례 도약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80년대부터는 기업순위가 밀려 현재는 도급순위 26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성실시공’이란 창업정신과 호텔업을 중심으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엄격한 한학교육 받으며 성장한 창업주 조정구 삼부토건의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은 1914년 11월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서 부친 조동일씨와 모친 풍천 임씨 사이에서 4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 총회장이 5세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총명함을 보이자 부친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가정교사를 둬 조 총회장을 가르쳤다. 조 총회장은 15세때인 1928년 장암면장 남정국씨의 맏딸 삼순씨와 결혼을 했다. 이후 부여공립보통학교와 일광심상고등소학교를 다녔다. 고3 때에는 장남인 조 회장을 낳았다. 조 총회장은 자식까지 생겼으나 공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공업고등학교(현 서울기계공고) 건축과에 입학했다. 경성공고를 졸업하고 1936년부터는 경기도청에서 건설관련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1948년 3월 사직서를 제출,12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곧바로 삼부토건을 설립했다. ●성실시공이 성공의 밑거름 창업 초기 삼부토건은 이렇다할 공사를 따내지 못했다. 삼부토건이 따낸 첫 공사는 창업 한달 뒤인 1948년 4월 성동소방서와 돈암동소방서의 부서진 문을 고치는 공사였다. 토목공사라기보다는 보수공사였다. 그러나 조 총회장은 공사 규모에 연연해하지 않고 ‘성실시공’이라는 창업정신으로 임했다. 삼부토건의 성실성이 알려지면서 경기도 상공국의 지하식당 수리공사, 서울시 부녀병원 수리공사, 전매국 통상염고 신축공사 등 굵직한 공사를 도맡았다. 삼부토건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된 계기는 군공사를 싹쓸이하면서부터다.1951년 해군본부의 해군병원 수리공사를 맡은 3개 건설업체 가운데 삼부토건만이 예정된 기간에 공사를 끝내면서 군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쌓았던 것이다.1951년에만 삼부토건은 진해에서 4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1960년대 초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은 제주도였다.1948년 4·3 사건이라는 정치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주도가 개발이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건설업체들의 수익성 때문이다. 섬이라는 특성 탓에 장비, 자재, 인부 조달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도 정부는 건설단가를 제주도와 내륙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제주도 공사 참여가 바로 적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조 총회장은 제주도 개발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해군공사를 도맡으면서 알게된 해군 준장 출신의 김영관씨가 제주도지사를 맡으면서 삼부토건이 제주도 사업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던 것이다. 수익을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했지만 조 총회장은 “우리가 공사를 하지 않으면 제주도민들은 한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 살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안한 끝에 수락했다. 제주도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40㎞에 달하는 제주∼서귀포 횡단도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경부·경인고속도로, 잠실개발사업 등으로 한단계 도약 1968년에 착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는 삼부토건을 비롯한 국내 건설업체들에게는 모두 도약의 기회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종전 불도저나 포클레인 등 구식 장비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2000대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첨단 중장비가 투입됐다. 건설업체들은 정부보증으로 부족한 중장비를 구입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부터 본격적인 기계화 시공이 이뤄진 것이다. 삼부토건은 충북 옥산∼충북 현도 구간 21.3㎞, 경북 봉산∼경북 금천 구간 16.2㎞을 맡았다. 경인고속도로는 합작회사 형태로 건설을 맡았다.1967년 경인고속도로가 착공될 때는 시공업체가 삼안산업이었지만 정부가 공기 단축을 위해 당시 도급순위 1∼3위였던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부토건을 공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잠실개발사업도 오늘날의 삼부토건을 있게 한 대공사다. 잠실주변을 흐르는 성내천과 탄천을 막지 못하면 잠실개발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삼부토건은 이들 지류를 막기 위해 하루에만 1000여명의 인력과 500대의 중장비를 투입하자 물 길이 멈춰서면서 100만평에 달하는 매립지가 생겨났다. ●90년대 들어 사세 주춤, 제2의 창업 선언 삼부토건은 60,7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도급순위 3∼4위에 달했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70,80년대 활발했던 해외건설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다른 건설업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등 대규모 건설공사에서 재미를 봤지만 삼부토건은 제한적으로만 해외사업을 해나갔다. 철저하게 해외 현지시장을 조사해야 부실시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건설업을 기반으로 제조업, 중공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꺼렸다. 주로 국내시장을 공략했다. 삼부토건이 처음으로 해외공사에 뛰어든 시기는 1973년. 말레이시아 제2연방고속도로 공사 성공을 계기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순환공사, 네팔의 쿨레카니 댐 건설공사, 사우디아라비아 상수도 확장공사 등을 잇따라 따냈다. 이처럼 삼부토건이 해외건설에 뒤늦게 뛰어들어 기회를 잃었지만 내실경영으로 인해 1979년의 제2차 석유파동을 견뎌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삼부토건 기술력이 빛을 발한 것은 국내 최초의 하저터널을 성공리에 마쳤을 때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해협의 유로터널도 두 번이나 무너졌을 정도로 하저터널 공사는 선진국에서도 어려워하는 공사였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1990년부터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별 사고없이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역 공사를 성공리에 끝냈다. ●미래 유망산업인 호텔업에 진출 삼부토건은 1980년 경주 도뀨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업에 진출한다.1981년에는 강남구 역삼동에 부지 5000여평을 매입했다.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됐기 때문에 호텔을 짓게 되면 올릭픽 기간에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삼부토건이 호텔을 짓기로 한 데는 80년대 들어 국내외 건설 수주가 어려워져 자체 사업을 통해 매출을 올리자는 전략도 담겨 있었다. 삼부토건은 서울올림픽 개최 불과 70여일 전인 1988년 7월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을 준공했다. 호텔업에 진출할 때의 전략대로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은 개관 6개월동안 19억여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올해로 창사 58년을 맞은 삼부토건은 몇차례의 부침 끝에 현재는 2005년 기준으로 도급순위 26위(도급액 7938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삼부토건은 르네상스서울호텔, 삼부건설공업㈜, 경주 콩코드호텔,㈜여의상사, 삼부스포츠프라자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조 총회장의 장남인 조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른바 ‘KS’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조 회장의 인맥은 정계, 재계, 경제계에 널리 퍼져 있다. 경기고 졸업 동기로는 성백인 서울대 명예교수, 이면영 홍익대 이사장, 최영철 변호사, 한건희 전 육군 소장 등이 있다. 서울법대 졸업 동기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해 박우동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이대순 한국대학총장협회 이사장 등이 있다. 조 회장은 대학 졸업 뒤에는 조달청의 전신인 외자청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2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선거계장, 선거과장, 총무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1973년에는 대통령으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조 회장은 외자청에 다니던 29세때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사범대를 나온 후 교사를 하던 김양희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의 장인은 초대 상공부 전기국장을 지내고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 부사장을 지낸 김영년씨다. ●재계·관계에 퍼져 있는 혼맥 조 회장은 3남1녀를 뒀다. 연세대 가정학과 출신인 장녀 명선(47)씨는 이용걸(49)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과 결혼했다. 이 단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장인인 조 회장의 고교·대학 후배인 셈이다. 명선씨의 결혼에는 이 단장의 외삼촌이면서 삼부토건 상무까지 지냈던 신억상씨가 중매를 했다. 행정고시 23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 단장은 기획예산처로 자리를 옮겨 재정정책과장, 기획총괄과장, 사회재정심의관 등을 두루 거친 기획예산처 내 선두주자다. 장남인 조승연씨는 1997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인창고, 경희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MBA까지 마친 차남 조시연(44) 삼부토건 이사는 박선정(35)씨와 결혼했다. 조 이사의 장인은 신라교역 회장인 박준형씨다. 한국원양어업협회 제14대 회장을 지낸 박 회장은 신라수산, 신라엔지니어링, 비전힐스 골프장, 신라문화장학재단을 거느리고 있다. 조 이사의 부인 선정씨와 선정씨 언니인 민정씨는 모두 ‘미래회’멤버다. 미래회는 재계 유력 인사들의 부인과 며느리 등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불우이웃돕기 등 자선활동을 하는 미래회에는 선정씨 자매 외에도 최태원 SK 회장의 부인 노소영씨, 한솔 조동길 회장의 부인 안영주씨,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며느리 이수연(이명박 서울시장 딸)씨 등이 회원으로 있다. 조 회장의 막내 성연(39)씨는 가톨릭의대 외래교수의 딸인 최지영(34)씨와 결혼했다. 성연씨도 아버지를 돕기 위해 삼부토건 공무부장으로 재직중이다. 조 이사는 삼부토건 현장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자재 조달과 구매 등을 맡는 핵심부서다. 조 회장이 삼부토건에 입사하기 전 조달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조달업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때문에 삼부토건의 사실상 후계자인 조 이사에게 현장지원 업무를 맡도록 했다.MBA를 마친 조 이사는 영어실력도 유창해 해외사업도 관여하고 있다. 후계구도와 무관하게 삼부토건의 모든 업무는 아직까지는 조 회장이 좌지우지한다. 엄격한 유교집안 탓에 장자인 조 회장이 회사일과 집안일 모두를 결정한다. 한달이면 한두차례 모든 형제들은 조 회장 집에 모인다. 조 회장의 첫째 동생인 조남원(61) 부회장은 물론 경주에서 콩코드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조남립(53) 사장도 제사에 반드시 참석한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조 회장의 두 아들은 물론 조 회장의 동생들도 조 회장에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 가부장적인 분위기”라면서 “조 회장도 아버지인 조정구 총회장에게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가풍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형을 끝까지 보좌하고 있는 조남원 부회장 조 총회장의 차남인 조남원 삼부토건 부회장은 금융인인 고 신동필씨의 딸인 용옥(60)씨와 결혼했다. 고려대를 나와 미국 로욜라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용옥씨를 만났고, 귀국과 함께 외환은행에 다녔던 용옥씨와 결혼한 것이다. 조 부회장은 1975년 삼부토건에 입사,30년동안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바 하수종말처리장, 타이프 스포츠센터, 말레이시아 MBA사옥, 파키스탄 물탄∼미안찬누 도로건설 등과 같은 해외건설 공사를 완벽하게 끝내 세계속에 ‘건설 한국’의 입지를 다진 토목 전문가다. 조 부회장이 삼부토건의 해외파트를 도맡았던 것은 유학생활을 통해 얻은 외국어 실력 덕분이다. 형인 조남욱 회장보다 1년 먼저 삼부토건에 입사했다. 조 부회장은 현재 대한건설협회 대의원 및 이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도로교통협회 부회장, 한국엔지니어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장학재단인 숙정재단을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인 재활재단 이사를 맡아 사회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조 부회장의 부인인 용옥씨는 삼부토건의 유통업 계열사인 ㈜여의상사의 감사로 있다. ●호텔 계열사를 넘겨받은 조남립 회장 조 총회장의 3남인 조남립 삼부토건의 계열사인 경주콩코드호텔 대표로 재직중이다. 조 총회장의 장녀 옥주(68)씨는 이화여대를 다니면서 연세대를 다니던 정병렬(작고)씨와 만나 졸업 뒤 결혼했다. 잠시 공무원생활을 한 병렬씨는 결혼과 동시에 장인회사인 삼부토건에 입사, 금융담당 상무까지 지낸 뒤 81년 퇴사했다. 한때 선일레미콘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정자(65)·남숙(작고)씨 등은 모두 연예결혼했다. 차녀 정자씨의 남편은 선도전기 대표이사 회장인 전경호(65)씨. 마산고와 성균관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전씨는 학창시절 친구의 소개로 정자씨를 만났다고 한다. 4녀 남숙씨는 학창시절 교회의 성가대에서 알게된 정홍식(58)씨와 결혼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홍식씨는 당초 삼성그룹에 입사, 그룹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삼부토건의 계열사인 여의상사의 총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보문관광·도큐호텔·라마다르네상스 등 그룹내 계열사를 돌며 장인을 도왔으나,1987년 주방기기 납품업체인 HRS를 차려 독립했다.HRS의 홈페이지에 월요예배 코너를 따로 만들어 설교를 전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chungsik@seoul.co.kr ■ 故조정구 총회장 11대 장남 조남욱 회장은 13대 父子 국회의원 삼부토건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과 큰 아들인 조남욱 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부자(父子)가 모두 국회의원과 대한건설협회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조 총회장은 지난 1981년 3월 제11대 한국국민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대한건설협회장을 여러차례 역임했던 조 총회장은 건설업체들의 도움으로 국민당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건설업체의 뜻대로 조 총회장은 국회 경제과학위원회에 배정돼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하지만 조 총회장은 당초 약속대로 4년동안만 국회의원을 지낸 뒤 기업인으로 돌아왔다. 정치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도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대한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던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됐다.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가 합당했을 때는 김종필씨의 지역구였던 부여의 지구당 위원장직도 넘겨받기도 했다. 조 회장이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계속 정치를 할 뜻이 있었던 것이다. 부여 지구당위원장직도 넘겨받았기 때문에 다음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출마도 가능했다. 하지만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김종필씨가 부여에 직접 출마했다.1996년 총선에서는 김종필씨가 민자당을 탈당한 뒤 자민련 후보로 부여에 출마했다. 조 회장은 그 당시 여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지만 당선 가능성이 떨어져 아예 정치의 뜻을 접었다. 조 회장처럼 부자가 모두 국회의원을 한 경우는 현직에만 9명이 있다. 대표적으로 6선을 지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민주당 의원이 있다. 정주영(제14대 전국구 의원)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준 의원은 무소속으로 활동중이다. 한나라당에는 김무성(김용주 전 의원 아들), 남경필(남평우 전 의원 아들), 정문헌(정재철 전 의원 아들), 이종구(이중재 전 의원 아들), 유승민(유수호 전 의원 아들) 의원이 있다. 국민중심당에는 정진석(정석모 전 의원 아들), 열린우리당에는 노웅래(노승환 전 국회 부의장 아들)의원이 있다. chungsik@seoul.co.kr ■ 조남욱회장 남다른 백제문화사랑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은 백제문화에 애정이 남다르다. 물론 조 회장 고향이 부여이기 때문에 백제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부여는 백제가 서기 538년 천도(遷都)한 뒤 660년 패망할 때까지 문화적 전성기를 이룬 도읍지였다. 하지만 조 회장이 백제문화권개발에 앞장서는 데는 고향이라는 이유말고도 다른 사연이 있다. 백제문화는 일본에 전파돼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위대한 것인데도 신라문화권 개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본격적으로 백제문화권 개발에 나선 것은 1990년대부터다.1990년 국립부여박물관 공사를 시작했고,1994년에는 ‘백제 작은길’과 ‘백제 큰길’을 착공했다. 또 그해 일본 규슈 미야자키 남향촌 등의 유적지를 답사한 뒤 백제문화가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남향촌은 ‘백제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백제문화의 영향이 깊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98년에는 백제역사재현단지 조성 사업에 앞장섰다. 부여 규암면 합정리 일대 100만평 부지에 3700여억원을 들여 역사재현촌, 민속박물관, 호텔, 컨벤션센터, 예술인촌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그해 4월 열린 기공식에는 조 회장을 비롯해 김종필 국무총리,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심대평 충남지사 등 30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공사는 속도를 냈고 조만간 백제의 역사와 백제인의 생활상·문화·유적 등을 총망라한 ‘백제역사문화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 중에는 사비(지금의 부여)시대 백제 왕궁과 능사(능을 지키기 위해 세운 절) 5층 목탑도 일반에 공개된다. 또 2010년까지 산업교역촌, 개국촌, 장제묘지촌, 전통민속촌 등이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백제역사재현단지에는 생태숲인 백제숲도 들어선다. 충남도가 2008년까지 8억원을 들여 단지내 왕궁촌 주변 43㏊에 백제풍의 생태숲을 조성키로 한 것이다. 백제숲에 백제시대에 많이 자생했던 것으로 옛 문헌을 통해 밝혀진 소나무와 박달나무, 느티나무, 떼죽나무 등 각종 나무 3만 8000그루와 가시연꽃, 감국, 개미취, 나리꽃, 원추리, 인 동덩굴 등 3만 2000포기의 초화류를 심어 백제시대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chungsik@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세계적 작품 60여점 한자리에

    ●Top Show-스페인국왕 문화훈장 특별 기념전 2월20일까지 서울 청담동 쥴리아나 갤러리.1980년 갤러리 개관이래 기획 전시했던 세계적인 작가 미로, 워홀, 솔 르윗, 자코메티, 머레이, 알레친스키 등의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02)514-4266.
  • [줄기세포 다시 공방] 황우석 훈포장 취소 검토

    정부가 황우석 교수의 공직 박탈에 이어 훈·포장 취소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황 교수에 대한 ‘제1호 최고 과학자’ 지위 취소에 이어 황 교수가 정부로부터 받은 훈·포장에 대해서도 취소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황 교수가 2000년 4월에 받은 홍조근정훈장과 2004년 6월에 받은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취소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문제가 된 줄기세포와 관련해 받은 과학기술훈장의 취소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이 관계자는 “서울대가 황 교수를 파면할 경우 행정심판 청구절차 등이 이뤄질 수 있고,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어서 훈·포장 취소를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상훈법(제8조)은 ‘서훈 공적이 거짓임이 판명된 때’ 훈포장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행정자치부장관이 직권이나 서훈 추천 기관장의 요청을 받아 국무회의에 취소안건을 상정해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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