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훈장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현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망가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군수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경수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36
  • 내부고발자 탄압 “법적 대응”

    # 1. 지난 24일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옥조근조훈장을 받을 예정이던 한광고등학교의 김진훈 교사는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학교 재단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재단이 김 교사의 조퇴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 KT가 고속철도(KTX) 전력유도방지 공사를 강행해 예산이 낭비된 사례를 청렴위에 신고한 KT 직원 Y씨는 지난해 2월 파면 조치를 당했다. 청렴위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지만 회사측은 Y씨가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만으로 Y씨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3. 서울 양천구 한 사립 초등학교의 학부모는 최근 같은 학교 학부모들로부터 “아이를 다른 곳으로 전학시켜라.”는 집단 협박을 받았다. 이 학교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여행 비용을 받아온 사실을 서울시교육청에 고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청렴위원회가 이같은 내부고발자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 조직적 탄압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청렴위는 25일 “내부 고발로 인한 신변 위협, 신분상 불이익,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관계 기관의 협조를 받아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청렴위는 “김 교사와 양천구 사립초등학교 문제와 관련, 감사원과 교육인적자원부·서울시교육청 등 감독당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부당한 처우를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를 요청하고 부당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제재 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렴위는 또 Y씨에 대해서는 지방노동위원회가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며, 부당한 처우가 확인되면 KT에 복직 권고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청렴위는 “사립학교 내 촌지 수수행위나 불법 찬조금 모금행위에 대해서는 현행 부패방지법에 따른 처벌이 불가능하다.”면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프랑스 예술문학훈장 받아

    모철민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이 한·프랑스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기사장)’을 받는다. 훈장 수여식은 5월 초에 열린다.
  • ‘정보통신의 날’ 훈·포장

    정보통신부는 제 52회 ‘정보통신의 날’(22일)을 맞아 정보통신 발전에 기여한 민간인, 공무원 50명과 1개 단체에 23일 훈·포장을 수여한다. 다음은 주요 포상자 명단.●홍조근정훈장 정경원(우정사업본부장) 임차식(소프트웨어진흥단장) 이진용(서울산업대 교수)●철탑산업훈장 하원규(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문위원)●근정포장 양환정(정통부 통신방송정책총괄팀장) 홍만표(우정사업본부 금융사업단·부이사관) 김학래(부산체신청 우정계획과장) 김동열(서울체신청 광화문우체국 정보통신기장) 윤영진(계명대 교수)●산업포장 이환근(대륭종합건설 대표) 송윤호(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경영지원실장)
  • 독도 가지도 않았는데 훈장?

    국가보훈처가 독도 수호활동에 대한 공적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독도의용수비대원 33명 전원에게 훈장을 주는 등 서훈을 남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10∼11월 ‘독도의용수비대원 지원법’에 따른 국가보훈처의 사업추진 업무 등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조사됐다고 19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보훈처는 지난 1996년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독도를 수호한 공적 등으로 수비대원 33명 전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독도에서 활동한 사람은 17명뿐이고 나머지 16명은 독도에 아예 가지도 않았다.‘푸른독도 가꾸기 운동’은 서훈을 위한 주요 공적 사항으로 꼽혔으나 수비대장 1명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처는 서훈 대상자를 개별 면담하거나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공적심사위원회의 공적 심사도 거치지 않고 서면 자료만으로 훈장을 줬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보훈처에 진상규명위원회 등을 구성해 서훈 대상 전원의 공적을 재심사하고, 지원 대상을 33명으로 명시한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 개정도 검토할 것을 통보했다.감사원 관계자는 “독도에 가지 않은 16명에 대해서는 서훈 박탈 여부 등을 포함해 재조사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들이 후방에서 지원 업무를 했다고 하더라도 독도에서 활동한 수비대원과는 차등 대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나에게는 세 가지 기쁨이 있다 / 피천득

    나에게는 세 가지 기쁨이 있다. 첫째는 천하의 영재에게 학문을 이야기하는 기쁨이요, 둘째는 젊은이들과 늘 같이 즐김으로써 늙지 않는 기쁨이요, 셋째는 거짓말을 많이 아니하고도 살아 나갈 수 있는 기쁨이다. 이런 행복한 생활을 해오기에는 내조의 공이 큰 바 있다. 만약에 불행히 그가 사교성이 있는 여자였더라면 나는 아마도 대관이 되었을 것이요, 화려한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아는 영민한 여성이었더라면 내가 영어로 편지도 잘 쓰는 터이니 지금은 큰 무역상이 되었을 것이다. 10 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더구나 한곳에서 훈장 노릇은 못하였을 것이다. 이번에 금반지를 타게 된 것이 어찌 오로지 부덕의 힘이 아니랴? 이 반지는 우리집 사람이 결혼 반지 삼아 끼고 다녀도 좋을 것이다. 지은이 : 피천득 수필가, 시인이기에 앞서 평생을 우리나라 영문학의 개척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제1세대 영문학자이다. 1920년대의 암울했던 일제 식민 치하의 한반도를 등지고 중국으로 피신하여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던 선생은 당시 상하이의 호강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해방을 맞은 후 경성대학교 예과 교수직을 시작으로, 1951년부터 1974년 정년 퇴임을 맞이하기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걸출한 영문학자들을 무수히 배출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문집 <산호와 진주>, <생명>, 수필집 <인연> 등이 있다.
  •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6월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시민운동 거듭나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살아가는 이유인 사람이다. 달리 말해 권력과 독재와 불의와의 싸움에 평생을 건 사람이라고 하겠다. 시커먼 얼굴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말하는 박씨의 인생 밑바닥에도 6·10항쟁의 도도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87년 6월은 평생 노동현장을 지키고 싶었던 ‘촌놈’을 인권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박씨는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권이 됐고 강제징집을 당했으며 감옥을 갔다온 전형적인 투사였다. 그에게 87년 6월은 어떤 의미일까. 박씨는 86년 5월30일 해고 노동자 16명과 함께 한미은행 서울 영등포 지점을 점거농성한 죄로 2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다. 항소심 선고를 받고 지프차로 대전교도소에 이감될 때 4·13호헌조치를 듣게 됐다고 한다.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털어놨다.6·10항쟁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냈다. 안 그래도 감옥은 정치상황에 예민한 공간인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에는 더더욱 바깥의 정황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양심수의 희망까지 섞여 있던 때라 상황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박씨는 “박종철 사건 때문인지 교도관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근무하기에 뭐가 있긴 있나 보다라고만 여겼다.”고 말했다. 좀 지나니 교도소 안으로 최루가스가 날아오는 걸 보고 박씨는 비로소 ‘4·19’때 보다 더 큰 시위가 있었다는 것을 체감했다.6·10항쟁에 굴복한 군부독재정권이 6·29선언을 내놓으며 백기를 든 덕에 박씨는 가석방됐다. 박씨는 6·10항쟁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시민운동가의 입장에서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낙관적인 평가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항쟁의 성과가 고스란히 자유주의 정권으로 넘겨지면서 시민운동의 밑바닥부터 다져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씨는 “군사독재를 깼다는 승리감은 곧바로 대선분열로 이어져 노태우정권의 집권으로 드러났다.”며 몇달 사이에 승리와 좌절을 동시에 겪었던 경험을 들려줬다.88년 4월 치러진 총선결과도 여소야대였다. 박씨는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8년 6월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던 동생 고 박래전씨가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며 분신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박씨는 노동운동 대신 유가협을 택했다. 특히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에 몰두했다. 책임자 처벌과 배상 중심이던 의문사를 인권문제로 고민하던 시점이었다고 한다.93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국내 인권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국내 의문사를 알리는 성과도 이뤄냈다. 박씨는 “이 대회를 다녀온 뒤 인권운동이 반독재 민주화투쟁에만 매몰돼 독자적인 운동으로 존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박씨에게는 인권운동이 87년 6월정신이 남긴 민주화의 성과물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셈이다. ●6월정신 살려 ‘네트워크형´ 운동 필요 그는 6월 정신이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서도 대선을 앞두고 국본이 분열했던 불철저함과, 군사독재정권을 결국 막지 못한 점은 후회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항쟁의 기세를 몰아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과제를 뿌리뽑지 못했다는 반성이기도 하다. 그는 “집시법, 국보법, 노동악법이 여전히 살아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6월 정신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항변은 특히 정치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6·10항쟁을 통해 제시했던 국민들의 꿈을 배신하고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단 채 개인적 출세만 다졌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월 정신의 함의처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네트워크형’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한때 80년의 달력을 90년대로 바꿔 걸 수 있을지조차 의심했었다. 그때마다 89년 모교 ‘연세지’에 기고했던 “산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있지만 죽은 사람과의 약속은 바꿀 수 없다.”는 글을 보며 며 87년 6월과 열사들 앞에서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때만큼 벅차게 신뢰하며 그때만큼 승리의 기억을 가졌던 때가 없다는 말과 함께.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58) 유한킴벌리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범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 거론에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공개적인 모임이나 정치인과의 만남에 스스럼없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 것인가.4일 만난 그는 여전히 분명한 답은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1949년생은 전쟁의 피해를 잘 모르고 부모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은 세대”라면서 “사회의 수혜자로서 미래세대를 위해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책무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미 FTA는 개방형통상국가라는 새로운 비전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2000만 인구가 종사하는 중소기업을 살리고 500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비책이 있다.”고 국가경영 구상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결심은 서지 않았지만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미 FTA협상과 타결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WTO에 가입한 이상 자유무역체제로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한·미 FTA는 기한을 정해 추진했고, 국내협상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죠. 저는 한·미 FTA를 중요한 기회라고 봅니다. 서명과 비준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개성공단 문제를 하루빨리 마무리짓고, 농촌 등 피해분야에 대한 미세한 조정과 산업경쟁력 강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문 사장은 특히 개성공단 역외지역 지정에 큰 의미를 뒀다. 한·미 FTA로 한국은 남북·중·일·러 등과 경제 5각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개성은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바람과 남북협력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협상에서 미국에 절대 양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농촌 피해에 대해 단순한 계량적 접근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농촌은 경제적 측면 외에, 생태적·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50% 이상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FTA 선발주자 효과는 1∼2년이면 끝날 것이기 때문에 중·일보다 빨랐다고 자찬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력강화 방안을 지금부터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래위원회와 경쟁력강화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미래위원회·경쟁력강화특위 설치를 ▶대표를 맡고 있는 사회단체가 20개나 됩니다. 기업인으로서 이렇게 사회활동에 열심인 이유는 뭡니까. “빌 게이츠는 자기는 영혼이 두 개라고 말합니다. 기업혁신을 위한 것과 사회발전을 위한 것이죠.52세 때는 은퇴하여 아예 사회공헌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외국에서 이런 것은 보편화된 일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36년 전에 돌아가신 유일한 박사가 실천을 했어요. 저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문 사장은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윤리경영을 다짐하는 기업인들의 모임 윤경포럼 대표로서 유엔과 다보스포럼 경제인들이 제정한 글로벌 콤팩트의 국내 보급운동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콤팩트는 인권, 노동권, 반부패, 환경 등 4대분야의 국제규범 준수를 다짐하는 기업인들의 서약. 문 사장은 “세계적으로 4000개 기업이 가입했는데, 한국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나오고 나서야 23개가 가입한 형편”이라며 세계와의 격차를 안타까워했다. ▶범여권의 ‘잠룡’으로 분류되는데 정치를 계속 거부만 하실 건가요. “경제인의 눈으로 볼 때 정치는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정치활동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사명감과 비전, 세계지향적 전문성, 공익적 리더십이 기준이 돼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지역적 연고, 이해집단과의 관계, 인기도에 따라 정책과 예산이 왔다갔다 하거든요. 일자리 창출, 세계시장 진출, 성과로 말하는 경제인들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장원리가 작동이 안되는 곳이라 경제인들이 갈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권 제3후보 중 ‘가장 준비가 잘 된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올까요. “아주 소수겠죠. 한국인으로서 아시아 전체의 경영을 해봤고, 미국시장도 잘 알고, 다보스 포럼 등에 참여해 세계의 흐름을 잘 안다는 점에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경제와 좀 다른 것이, 난마처럼 얽힌 수많은 법령들이 신속한 결정을 막고, 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유불리를 설득해 나가면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잖아요. 또, 수많은 부처의 예산, 조직 등의 과감한 조정능력도 필요하고요. 지금 정치인들도 많은데 기업인까지 뛰어들어야 합니까. ▶보수수구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치세력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적인 입장이 따로 없다는 게 경제인으로서는 옳은 듯합니다. 그러나 비정치인들이 이 시기에 통합을 위해 정계에 나온다면, 특정 세력을 살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국민, 미래와 통합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세계를 보아야지요. 누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온국민이 지역과 당의 연고를 떠나 꿈을 갖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구체적인 전략과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출판기념회도 하고, 미래구상,‘통합과 번영’모임 등에도 참석하는 등 이미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요. “경제인은 숨도 쉬지 말라는 얘기인가요. 책 출판은 수년전부터 계획돼 있던 것이고, 다른 모임들은 경제인으로서 주제발표, 윤리경영 등 평소 활동과 관련해서 갔어요.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어떻게 또 한사람의 영웅을 만들어볼까 관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봐요. 지금은 영웅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공유하고 국민들의 능력을 최대한 통합시킬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제 눈에는 10명 정도의 지도자가 보여요. 이들을 아껴줘야 합니다. ●평생학습체제 도입때 500만 일자리 창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계획,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페리호 계획을 비판했는데요. “대운하 계획을 비판한 건 맞습니다. 환경파괴와 구시대 개발논리로 나같으면 그런 공약은 안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나 페리호 계획은 비판한 적이 없어요. 구체안은 못봤지만 국제화시대에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디어같습니다. 박 전 대표는 반부패 의지도 강하고 아버지 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리더십이 있다고 봐요.”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요. “지난 60년간의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해결못한 부패문제를 청산하고 신뢰와 법치, 투명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저임금, 국토개발에 의존하는 낡은 패러다임을 단절하고, 지식창조로 나가야지요. 이를 위해 평생학습체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평생학습체제를 도입하면,2000만 근로자가 종사하는 중소기업도 살리고,500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요.” 문 사장의 설명에는 열정과 집념이 가득했다. yshin@seoul.co.kr ■ 그는 누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동고,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사업을 하는 부친 아래 유복하게 자랐으나, 가장 예민한 시절 두 차례나 입학시험에 낙방하는 좌절도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은 약자를 이해하는 큰 자산이 됐다. 대학 4학년때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전재산 사회환원 소식에 충격을 받고 장교복무 후 곧장 유한양행에 입사했다. 사회개혁과 반부패운동에 관심을 갖고 미국에서 1년 연수후 귀국, 필생의 관심사인 숲운동과 반부패운동, 평생학습운동을 회사 안에서부터 시작했다. 유한 킴벌리에서 시작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은 물론, 포지티브 환경운동의 시초가 됐고,IMF시절, 경실련,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구상한 ‘생명의 숲’국민운동은 환경운동과 일자리 창출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태동시켰다. 평생학습을 통해 노동자들의 평생고용을 유도하는 뉴 패러다임 운동을 제안, 기업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윤경포럼 대표로서 반부패투명사회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매출액 1%에 달하는 기업기부는 물론 개인 기부가로도 알려져 있고, 선구적 비전과 추진력으로 20개의 사회단체를 이끌고 있다.1995년 유한킴벌리 사장이 돼 지난 3월 5번째 임기 시작.2003년부터는 한·중·일 등 북아시아지역 총괄사장으로 세계경영을 성공리에 이끌고 있다.UNEP글로벌500상, 일가상, 금탑산업훈장 등 수상.
  • 국립발레단 군부대서 공연

    국립발레단은 다음달 1일 충남 서산의 한 전투비행장에서 군 장병들 대상의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을 무료로 진행한다. 공연은 이 부대 정훈장교 김태봉 소령이 지난 2월말 국립발레단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부대 정훈장교로서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우리 부대 장병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간절하게 요청한 것을 박인자 예술감독이 받아들여 성사됐다.이에 따라 이 전투비행단은 여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치러 발레 해설자 1명을 선발하는 한편 공연에 맞춰 600석 규모의 공연장 무대 폭을 넓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립발레단은 갈라로 진행될 공연에서 조지 발란신 안무의 ‘차이콥스키 파드되’, 바실라 바이노엔 안무의 ‘파리의 불꽃 그랑 파드되’ 등을 보여줄 예정이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이란, 억류 영국군 15명 석방키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국 해군 15명 억류 사건을 둘러싸고 13일간 고조돼온 이란·영국간 외교 갈등이 4일 전격 해소됐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달 샤트 알 아랍 수로에서 이란 영해를 침범한 영국 해군장병 15명을 처벌하지 않고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들을 사법처리할 권리가 있지만 대통령령으로 사면, 용서한다.”면서 영국 국민들에게 이들의 자유를 ‘선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페르시아인들의 새해를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끝낸 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옆방으로 건너가 정장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던 영국 해병 15명과 일일이 악수하는 ‘깜짝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기자회견 초반 이슬람 성전인 코란을 한동안 인용한 뒤 서방의 중동 침략 현대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영국 해병을 체포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에게 무공훈장 메달을 수여했다. 회견에서 아마디네자드는 “블레어 총리에게 남의 나라를 점령하지 말고 정의와 진실을 생각할 것, 그리고 자신보다는 영국 국민들을 생각하라.”고 일장 훈계를 했다. 이어 “불행하게도 블레어 총리는 자신의 국민들에게 진실(영국 해병이 이란영해를 침범했다는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로이터 통신은 병사들이 5일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석방 발표는 앞서 이란 최고 안보관리인 알리 라리자니(이란 국가안보최고회의 의장)가 영국의 나이젤 세인발드 총리 외교보좌관과 통화한 후 이뤄졌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런던 주재 이란 관리의 말을 인용,“토니 블레어 총리의 최측근인 나이젤 세인발드가 알리 라리자니와 3일 밤 전화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가 이란이 그동안 주장해온 “영국 해군들이 이란 영해를 침범했음을 시인하라.”는 요구를 들어줬을 공산이 크다. 이란은 이들을 억류한 뒤 4차례에 걸쳐 국영 방송을 통해 15명 중 유일한 여군 1명을 포함해 이란 영해 침범을 자백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내보냈었다. 지난달 23일 영국 해병들이 억류된 이후 영국 정부는 이란과의 석방 협상에서 시종 이란에 끌려다니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비난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영국 정부는 시리아에도 영국 해군 병사들의 석방문제와 관련해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김수정기자 외신종합 crystal@seoul.co.kr
  • 김국환 준장 美 공로훈장 받아

    이라크 바그다드의 다국적군사령부에서 민군처장으로 근무한 김국환(50) 준장이 지난달 29일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다국적군사령부에 근무한 외국군 참모로는 첫 수상이다. 합참은 “김 준장이 미군과 동맹군으로 구성된 참모부원들에 대한 뛰어난 지휘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훈장 가운데 9번째 등급인 ‘Legion of Merit’(수훈장)를 받게 됐다.”고 3일 전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현역장교 ‘철탑훈장’ 수상

    현역 해군 중령이 정부가 토목분야 최고 엔지니어에게 주는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해군본부 시설처에 근무하는 김희대(49) 중령이다. 김 중령은 지난 30일 서울 건설회관에서 열린 ‘토목의 날’ 행사에서 건설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현역 군인으로 이 훈장을 받은 것은 김 중령이 처음이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김 중령은 1982년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임관,25년 동안 군에 몸담으며 진해 잠수함 부두, 평택 작전기지, 부산 3함대 기지 등 대형 기지 건설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2005년에는 공학박사 학위까지 받아 ‘공부하는 토목장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광우 선생 별세

    애국지사 이광우 선생이 2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82세. 선생은 1942년 5월 당시 17살의 나이로 부산진초등학교 동기생 5명과 일본군 군수품 제조공장인 조선방직을 파괴할 목적으로 ‘친우회’를 조직, 공장노동자를 설득하고, 자갈치시장, 부두 등을 돌며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다 일경에 체포됐다. 체포 뒤 경남 경찰국 고등과 외사계 하판락(사망)주임 등 일본경찰로부터 10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장기간의 조사 끝에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단기 1년 장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2년 5개월간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다.1989년 뒤늦게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했지만 증거자료 불충분으로 심사가 유보됐다. 하지만 아들 상국(48)씨가 아버지를 고문한 하판락씨를 추적해 항일활동을 입증,2000년 8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빈소는 부산 보훈병원 장례식장 203호(011-557-5357)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6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김재현 土公사장 “올공급 택지 69%가 수도권”

    김재현 土公사장 “올공급 택지 69%가 수도권”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수도권내 부족한 택지를 공급하는 데 토지공사의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김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중동순방을 수행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날인 23일 경기도 분당 토지공사 본사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차질없이 택지를 공급하는 게 올해 최대의 경영 목표”라고 설명했다.2기 신도시를 비롯해 수도권내 택지 공급이 줄줄이 예정된 만큼 공공택지 공급 주체인 토공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토공이 올해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신도시 건설 등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773만평의 택지를 올해 공급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공급한 택지(297만평)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중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른 편인)수도권에 공급하는 비율이 69%나 됩니다. 내년 이후에도 공급이 잘 이뤄지도록 신규 택지 후보지도 전국 683만평 규모 수준으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보상비가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들어가 주택 가격을 올린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요. -이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보상비가 수도권의 땅을 사는데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토지상환채권을 발행하려는 것도 보상금이 토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이 있습니다.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는 잘 되고 있습니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오는 7월 착공됩니다. 당초 계획대로 강제 수용을 최대한 줄여 협의보상률이 83.1%나 됩니다. 혁신도시는 오는 5월중 토지 보상에 착수해 오는 9월 대구,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착공에 들어갑니다. ▶개성공단은 어떻습니까. -북핵 문제로 아직 분양이 남아 있는 개성공단 53만평(300개 업체)은 늦어도 오는 4∼5월중 분양할 계획입니다. ▶토공이 건설업체들에 비싼 값에 땅을 넘겨서 고분양가를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땅 장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요. -택지 개발 과정을 이해하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오해에 따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예컨대 토공이 전체 사들인 토지가 100이라면 이를 다 파는 게 아닙니다. 이중 52%는 도로 등 기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주고 있습니다. 택지개발한 토지중 48%를 팔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중에서도 임대나 중소형 아파트, 학교 등 공공시설의 경우는 원가나 원가 이하로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남나요. -중대형아파트 택지나 단독택지는 감정가로, 상업용지는 입찰가로 팝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토지공사는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이익이 나면 정부에 배당으로 줍니다. 지난해의 경우 순이익 약 6000억원중 정부에 배당으로 나간 게 2000억원입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쓰이나요. -나머지는 국민임대, 행정중심복합도시, 경제자유구역, 산업단지 등 공공사업 재투자에 썼습니다. 공익성과 수익성을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개발이익이 해당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발 이익을 지역에 어떻게 환원시키나요. -예컨대 현재 장성군 등 전국 47개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고 개발 이익을 지자체에 재투자하는 지역종합개발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곧 착공을 앞둔 남양주의 경우 개발 이익의 50%를 지역에 재투자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원가공개 등에 따라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형태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도시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임대 주택 문제를 놓고 주공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요.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고요.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부 정책이 중형임대를 많이 공급하는 것이고 그 물량을 다 채우려면 현재의 상태로는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차원에서 토공도 임대주택을 짓는 쪽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토공이 임대주택을 한다면 펀드를 조성해서 할 것입니다.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즘 ‘무능력 공무원 퇴출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토공에서는 몇년 전부터 해오던 일입니다. 지난 2005년부터 1∼2급중 능력과 성과부진자 하위 5%를 보직퇴출자로 뽑아 현장부서에 파견하는 등으로 긴장을 주고 있습니다. ▶인사정책이 앞선다는 평이 많습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나이제한과 학력제한을 없앴습니다. 또 지난해부터는 지방대 출신을 입사자의 40% 수준까지 늘렸습니다. 토공이 전국에서 개발사업을 벌이는 만큼 지방대 출신이 중요합니다. 최근 청와대에 인사정책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토공을 최근 자주 찾는 것 같은데요. 토공이 인정받는 강점이 무엇인가요. -‘U시티’(유비쿼터스 시티) 조성 기술입니다. 지난 2003년 착공한 화성 동탄을 시작으로 성남판교, 인천청라, 행정중심복합도시, 송파거여 등 앞으로 토공이 시행하는 모든 신도시가 U시티로 조성됩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 기술을 전수받으려 몰려들고 있습니다. 몽골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과는 신도시 개발 기술 전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습니다.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1급 간부들에게는 대외 협상력을 갖추고 후배들에게 의지가 되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바람나는 직장도 중요하겠지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를 조성해 직원들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조직(2800명)의 40%가 3∼4년차의 새내기입니다. 현재 129명의 신입사원이 연수중인데 올해부터 신입사원 하나에 부장급을 한명씩 붙여 지도하도록 하는 ‘멘토제’를 도입했습니다. 정리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기업문화 투명하게 대혁신 토지공사가 수년간 투명한 경영 문화를 만들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경영혁신이 지난해 기획예산처의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1위라는 영예로 돌아왔다. 김재현 사장은 토마토를 좋아한다. 경영혁신의 모토도 토마토다. 겉이 빨간 색이면 속도 빨갛게 익은 토마토처럼 투명한 토지공사가 되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2005년 신청, 추첨, 계약체결, 잔금 납부, 소유권 이전 등 토지 청약의 모든 과정을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토지매수 고객에 대한 토마토 거래시스템’으로 구체화됐다. ●‘훌륭한 일터´ 추진 최근에는 ‘훌륭한 일터’라는 뜻의 GWP(great work place)를 기업문화로 추진중이다. 임·직원의 청렴의식을 높이고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클린토공 청렴학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 강화도 혁신활동의 일환이다. 최근 ▲국토사랑 ▲이웃사랑 ▲문화사랑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토공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체계화했다. 본·지사 26개 지부 120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토공 온누리 봉사단’은 지부별로 사회복지기관과 자매결연을 맺어 활동을 펴고 있다. ●5년 연속 매출 4조원 이상 조직의 변화는 높은 경영성과로 이어졌다.2000년 261%였던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135%로 낮아졌다.5년 연속 4조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경영성과도 거두고 있다. 토공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한 5조 3740억원. 순이익은 5831억원.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재현 사장은 누구 김재현 토지공사 사장은 사내에서 ‘불도저’로 통한다. 1990년 6공 시절 정부의 통일정책사업으로 추진된 통일동산과 자유로 조성사업 때의 일화 때문이다. 당시 김 사장은 이 사업의 총책임을 맡았다.8·15 광복절 기념으로 통일전망대 주차장∼오두산 전망대를 연결하는 오두산1교 개통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개통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시공상 문제점이 발견됐다. 마땅히 재시공을 해야 했지만 그럴 경우 광복절에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주변의 지적이었다. 결국 기념행사에 맞춰 임시개통한 뒤 재시공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철거를 강행했다. 그뒤 4개월간 현장에 상주하며 매일 공정과 현장 상황을 일일이 체크해 오두산1교를 완벽한 상태로 개통시켰다. 이후 자유로도 개통됐다. 그의 이같은 밀어붙이기식은 토공의 조직 혁신에도 적용시켰다. 무능력자 퇴출제 도입, 입사연령 폐지, 지역파괴, 특별승진제 도입 등 혁신 정책을 주도해나갔다. 그래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은 ‘혁신 전도사’로 통한다. 이같은 그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토공 설립 원년(1979년) 멤버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경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지역 및 도시계획기사 1급, 토목기술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철탑산업훈장, 산업포장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주말마다 산을 찾았으나 최근에는 가끔 골프도 즐긴다. 부인 정현옥(58)씨와 사이에 3남. ●프로필 ▲62세 ▲전남 고흥 출생(1945년) ▲순천 농림고 졸(1964년) ▲조선대 토목공학과 졸(1969년) ▲토지공사 입사(1979년) ▲지원사업처장(1993년) ▲택지본부장(1999년) ▲부사장(2001년) ▲사장(2004년)
  • 김민기 독일 괴테메달 수상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한국과 독일 간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9일 독일 정부로부터 2007년도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김씨는 바이마르에서 거행된 시상식에 직접 참석했다. 독일의 대문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활동했던 바이마르의 레지던스 슐로스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김씨는 수상 소감을 통해 “진정한 존중과 아량에 기초한 ‘지하철 1호선’의 성과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실감하면서 다시 한번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와 그립스 극단, 전 과정에 걸쳐 지대한 도움을 준 독일문화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수상자 소개에서 루드비히는 김씨를 ‘존경하는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노래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고, 선동적인 구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억압의 시대에 저항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1954년 제정된 괴테 메달은 독일과의 문화교류에 공을 세운 예술가나 학자에게 독일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으로, 지금까지 58개국 314명이 수상했다.베를린 연합뉴스
  • [강태규의 연에in] 숨통 끊길듯한 맹훈련으로 월드스타된 비

    가수 비가 무대 위에서 격렬한 춤사위를 선보이면서도 흔들리지는 않는 음정을 객석으로 전달하는 광경을 목격한 관객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어떻게 저리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의 춤을 따라하면서 노래를 불러보았다면 그 의문은 더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숨통이 끊어질 것 같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비가 월드스타인가 아닌가의 논쟁 이전에 그의 오늘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7년전 뮤지션 박진영사단의 연습생 시절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할 만큼 비는 착실하고 빠르게 성장했다. 비를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로 지칭하면서 말들이 많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분명 세계적이다. 비의 실력을 능가하는 아티스트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비가 가진 실력과 매력은 세계적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겨룰 만큼 출중한 것이 사실이다.스타들에게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연습과 자기개발은 필수요건이다. 그리고 인기 범위를 광범위하게 넓혀나가는 것에는 난관이 따른다. 특히, 문화를 달리하는 국제적 인기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문화종속적 우위관계에 따라 투영되는 인기도는 누려야 할 실제 노력의 대가와 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연예산업은 자본의 논리가 짙게 드리워진 영역이다. 세계 중심에 누가 포진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런 의미에서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되는 것은 한국이 세계의 중심에 서있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적어도 비는 무조건적인 폄하 대상이 아니다. 비의 미국 공연이 끝난 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가수는 마이클 잭슨을 흉내내는 정도라며 마치 조롱하듯 현지 언론이 먼저 일축하고 나섰다. 미국내에서도 인종간·민족간 차별과 배타적 문화는 극심하다. 하물며 비의 미국시장 진입을 흔쾌히 허락할 리 만무하다. 비의 해외진출 시도는 상당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앞으로 세계 음악시장으로 진입하려는 한국 뮤지션들에게 초석이 되는 계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팬들과 관계자들이 좀더 넓고 포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함을 깨닫게 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런닝머신 위에서 완벽한 가창이 이루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노래를 불렀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닐 거예요. 비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친구였을걸요.” 얼마전, 뮤지션 김동률이 필자에게 한 말이다. 비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철저한 연습과 자기관리가 있었다.인기를 얻는 대신, 청춘을 모두 땀속에 헌납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인기스타의 오늘은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얼룩진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 임채정 국회의장 ‘콜롬비아 의회 대훈장’ 받아

    임채정 국회의장 ‘콜롬비아 의회 대훈장’ 받아

    남미를 순방 중인 임채정 국회의장이 16일 콜롬비아를 방문했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 당시 5100여명의 군대를 파견한 혈맹국. 하지만 196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콜롬비아 측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방한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지난 82년 김상협 전 총리 이후 고위인사로는 임 의장이 처음이다. 이런 사정으로 콜롬비아 측은 임 의장에 대해 각별한 환대를 보였다. 콜롬비아 상원은 임 의장의 민주화 운동과 정치적 업적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콜롬비아 의회 대훈장’을 수여했다.25년만에 콜롬비아를 방문한 대한민국 귀빈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 임 의장은 훈장 수여식 인사말에서 “86년 바르코,96년 삼페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고, 콜롬비아 상·하원 의장도 한 두차례 방한한 적이 있지만, 우리측 고위인사의 콜롬비아 방문이 거의 없었던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저의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고위 인사의 방문이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의장은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대(對) 콜롬비아 지원 및 경제협력 사업을 열거하면서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특별하區 ★나區] 출산천국 만드는 성동

    우리 성동구(구청장 이호조)에서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해 올 1월부터 출생아를 둔 성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출산양육지원금제도를 마련했답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의 자치단체에서는 인구증가를 위해 정책적으로 출산양육지원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서울의 자치구에서는 1∼2곳에 불과하지요. 물론 지원금을 받으려고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구에서 펼치는 작은 정성에 많은 주민들이 감사의 뜻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급방법은 각 동사무소에서 출생신고를 할 때 신청을 받아 동사무소가 구청에 통보하면 구청(가정복지과)에서 부모의 통장으로 한꺼번에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첫째, 둘째 출생아는 5만원을 주고요, 셋째 이상은 20만원을 지급합니다. 또 출생아 전원에게 출생 축하카드를 발송해 아기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가는 것은 물론 출산 분위기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축하카드는 가정별로 자녀수에 따라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발송하는 맞춤형 카드입니다. 주민들에게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지난 1월2일 둘째아이를 출산한 황청랑(31·성수동1가)씨는 성동구청 민원여권과에 출생신고를 한 뒤 10일 후 통장으로 입금된 출산양육지원금 5만원과 출생 축하카드를 받고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달라진 행정서비스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구청 담당자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가족사진을 전해왔답니다. 최근 결혼을 늦추거나 안하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동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출산장려책이 저출산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315명의 출생아가 183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는데요. 황금돼지해인 올해는 다른 해보다 출생아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우리구는 어린이들에게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무지개장난감세상을 구청에 만들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것으로 청소년상담지원센터도 만들었구요. 지역 어르신을 위해서는 거리환경지킴이, 스쿨존선생님, 서울숲안내도우미, 훈장선생님 등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면서 일도 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지원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어린이천국, 복지성동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김진명 성동구 가정복지과장
  • ‘사물놀이’ 김덕수씨 은관문화훈장

    문화관광부는 올해 전통예술 입문 50주년을 맞은 김덕수(55) 사물놀이 한울림 예술감독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한다고 13일 밝혔다. 훈장 전수식은 14일 오후 5시30분 문화관광부 장관실에서 열린다.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1)신분의 벽 못 넘은 國手 유찬홍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1)신분의 벽 못 넘은 國手 유찬홍

    인왕산에 살면서 위항시인과 가난한 이웃들을 도와주던 임준원의 집에서 가장 오래 얹혀 살았던 시인은 홍세태(洪世泰)와 유찬홍(庾纘洪)이다. 홍세태의 제자 정내교는 스승이 임준원의 집에 얹혀 살았던 이야기를 ‘임준원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유공(유찬홍)의 호는 춘곡(春谷)인데, 바둑을 잘 두었다. 홍공(홍세태)의 호는 창랑(滄浪)인데, 시를 잘 지었다. 이 두 사람의 명성이 모두 당시에 으뜸이었다. 유공은 술을 좋아했는데, 한꺼번에 몇말씩 마셨다. 홍공은 집이 가난해서 양식거리도 없었다. 준원은 유공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한 뒤 좋은 술을 마련해두고 양껏 마시게 했다. 또한 홍공에게는 여러 차례 재물을 주선해주어 양식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었다. 유찬홍은 초기의 국수(國手)로 알려진 전문기사이다. 홍세태는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까지 가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역관(譯官) 시인이다. 유찬홍(1628∼1697)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가장 가깝게 지낸 홍세태(1653∼1725)가 전기를 지어 주었다.(홍세태가 일본에 가서 역관으로 활약한 이야기는 다음주에 소개한다.) 유찬홍은 9세에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로 피란갔다가 포로가 되어 청나라까지 종으로 붙잡혀 갔다. 집안사람이 돈을 주고 사온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다. 홍세태는 전기 첫줄부터 유찬홍의 암기력을 칭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암기력 뛰어난 천재… 훈장에 매 맞으면서도 바둑 몰두 유술부(庾述夫)의 이름은 찬홍, 고려 태사 금필(黔弼)의 후손이다. 이웃에 서당 훈장이 있었는데, 학생 수십명이 모였다. 술부도 그곳에 가서 글을 배웠는데, 총명하고 빼어나서 외우기를 잘했다. 여러 학생들이 반을 나누어 과업을 받고 상벌(賞罰)을 계획 세운 뒤, 훈장이 여러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이소경(離騷經)’을 외우는 학생이 있으면 상을 주겠다.” 술부는 집으로 돌아와 ‘초사(楚辭)’를 찾아 옆에다 끼고, 학사 정두경(鄭斗卿)의 집을 찾아가 문지기에게 말했다.“들어가서 공을 뵙고 ‘유찬홍이란 자가 ‘초사’를 배우고 싶어 왔다고 전하소.” 정공은 평소에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을 몹시 꺼렸는데, 이때 만나서도 매우 간단히 가르쳐줬다. 술부는 곧 돌아와서 ‘이소경’을 읽었다. 날이 밝자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술부도 소매에서 ‘초사’를 꺼내들고 훈장 앞에 나아가 돌아앉아 외웠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자 훈장이 크게 놀랐다. 술부는 자기의 재주를 스스로 믿고 다시는 공부에 힘쓰지 않았다. ‘초사’는 글자 그대로 초나라 풍의 노래를 모은 책. 굴원(屈原)의 글 25편을 중심으로 제자 송옥(宋玉)의 글 등 몇편이 더 실려 있다. ‘이소경’은 그 첫번째 노래이다. 경(經)이라는 글자가 붙을 정도로 시인들에게 존중받으면서도 까다롭기로 이름난 글이다. 훈장은 어린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숙제를 내준 셈. 유찬홍은 겁도 없이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정두경을 찾아가 숙제를 풀어 달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뜻도 모르고 그저 외우려 애썼지만, 유찬홍은 뜻을 알아야 외우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찬홍은 그 이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자기 신분의 한계를 이미 알았던 것이다. 정내교는 유찬홍이 국수가 된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따금 바둑 두는 사람을 따라 노닐며 그 솜씨를 다 배웠다. 아침에 강할 때마다 훈장은 목찰로 그의 오른쪽 손가락을 치면서,“너에게 글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 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둑 두기를 좋아하는 그의 버릇은 더욱 심해져서, 바둑 잘 두는 사람들과 겨루더라도 감히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일시에 국수로 치켜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전문적인 기사라든가 교육기관이 없었다.‘이따금 바둑 두는 사람을 따라 노닐며’ 배웠다. 그가 공부하지 않는다고 훈장에게 매 맞으면서도 바둑 배우기에 힘쓴 것을 보면 1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당시 국수를 인정하는 제도가 따로 없어, 자타가 최고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이기면 하루아침에 역시 최고가 되었다. 정내교는 어떤 사람의 평을 빌려 “신기(神棋)로 이름난 덕원군(德源君)이 늙게 돼서야 윤홍임(尹弘任)이 겨우 이겼는데, 술부는 (소년 후배로서) 한창 강성한 때의 홍임을 압도했다. 술부야말로 덕원군의 맞수이다.”라고 했다. 바둑천재로 불렸던 이창호가 9세에 조훈현의 제자로 바둑계에 입문해 20세에 국수위를 스승으로부터 쟁취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유찬홍이 술을 잘 마시고 바둑까지 잘 두자 사대부와 고관들이 그를 불러 함께 놀았다.‘다투어 윗자리에 불러 바둑 두는 것을 보려고 해 그저 보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바둑돌을 하나 놓으면 사람들이 옆에 울타리같이 둘러서 구경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더욱 거만해지고 술만 취했다 하면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위항시인들의 모임에서만 그를 환영했다. 그럴수록 술을 더욱 즐겨, 집안사람과 살림도 돌보지 않았다. 술이 떨어지면 이따금 남의 집까지 들어가 술을 뒤져 마셨다. 술에 취하면 아무데나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하루는 술에 취해 이웃 여자의 집에 들어갔다가 소송당하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귀양갔다. 홍세태는 ‘유찬홍전’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재주를 지녔지만 쓰일 곳이 없었으므로, 그 울적하고 불평스러운 기운을 모두 바둑과 술에 내맡겼다.(줄임)당세에 쓰였더라면 어찌 남들보다 못했으랴만, 가난하고 천한 생활로 괴로워하다가 끝내 떨치지 못하고 죽었다. 아아! 슬프다.(줄임)술부로 하여금 자기가 전업했던 바둑을 바꾸어 원대한 사업에 힘쓰게 했더라면 볼 만했을 것이다. 어찌 이에서 그쳤을 뿐이겠는가? ●바둑만 두고도 먹고 사는 세상 오다 정내교는 천재 유찬홍이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지 못해 과거시험도 못보고 바둑이나 두며 살았던 것을 아쉬워했다. 바둑만 두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은 생각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바둑을 하찮은 재주로 여기거나 심심풀이로 생각했다. 아무리 잘 두어도 ‘동네바둑’으로나 여겼다고 할까. 유찬홍 이후부터 국수로 인정받는 전문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둑은 병법이나 학문과도 관련돼 사대부들이 즐겼지만, 바둑을 소재로 쓴 글은 많지 않다. 기보(棋譜)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바둑을 소재로 한 글도 많지 않으며, 전문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도 몇편 되지 않는다. 김윤조 교수는 ‘조선후기 바둑의 유행과 그 문학적 형상’이라는 논문에서 순조(純祖)의 장인으로 대제학까지 지낸 김조순(金祖淳·1765∼1832)의 예를 들어 바둑이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소개했다. 수원유수(종2품)로 부임했던 그의 종숙부 김이도는 1813년 3월12일 공무를 처리하고 밤중까지 손님과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을 밀쳐두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김조순 자신은 1819년 동짓달 하순에 ‘기자(者) 김한흥(金漢興), 가자(歌者) 군빈(君賓), 금자(琴者) 익대(益大)’와 사냥꾼 한 사람을 데리고 봉원사로 놀러갔다. 그들을 ‘절기(絶技)’라고 불렀는데, 전문기사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동원되는 연예인이자 한시도 떨어져 있기 힘든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01년부터 6년 동안 경상도 기장에 유배되었던 심노숭은 ‘기장 고을에서 서울의 어느 귀인(貴人)에게 1년에 1000벌 이상의 바둑돌을 바친다.’고 기록했다. 심노숭은 그 부당성을 고발한 것이지만, 바둑 열기가 무척 뜨거웠음을 반증한 것이기도 하다. 유찬홍보다 선배였던 삭낭자(索囊子)는 상대가 고수건 하수건 한점만 이기는 삭낭자기법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먹고 살았다. 반면 유찬홍 이후의 국수들은 많은 상금으로 생활을 보장받았다. 보성 출신의 정운창(鄭運昌)은 국수 김종기를 꺾으러 평양까지 걸어가 사흘을 문밖에서 버티며 도전했다가 이겨, 순찰사에게 은 20냥을 상으로 받았다. 어느 정승은 그에게 상화지(霜華紙) 200장을 상금으로 걸기도 했다. 그러나 국수 유찬홍은 끝내 만족하지 못하고 술을 마셨으며,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한강 물로 술 못을 삼아 마음껏 고래같이 마셔봐야지. 그런 뒤에야 내 일이 끝나리니 죽어버리면 곧바로 달게 잠들 테지. 그대들도 보았겠지. 이 뜬 세상을 만사가 한바탕 꿈이란 것을. 그는 죽어야 신분 차별이 끝나는 중인이었기에, 술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부귀를 맘껏 누렸던 사대부들은 늘그막에 ‘만사는 일장춘몽’임을 느꼈지만, 그는 차별받는 이 세상이 차라리 ‘한바탕 꿈’이기를 바랬다. 국수가 돼서도 벽을 넘지 못했던 17세기 중인 지식인의 한 모습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한국 농구의 어머니’ 故 윤덕주씨 국제농구연맹 ‘명예의 전당’ 올라

    ‘한국 농구의 어머니’ 故 윤덕주씨 국제농구연맹 ‘명예의 전당’ 올라

    전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으로 ‘한국 농구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 윤덕주씨가 국제농구연맹(FI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윤 전 회장은 FIBA가 창립 75주년을 맞아 지난 2일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에 설립한 ‘FIBA 농구 명예의 전당’에 공로자(contributor) 부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FIBA는 “세계적으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선수 코치 심판 공로자 부문으로 나눠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난 윤 전 회장은 당초 육상 선수로 뛰다가 1935년 숙명여고 시절부터 농구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1937년 숙명여고를 전국 정상에 올려놨고, 후배들과 함께 ‘숙명구락부’라는 일반팀을 만들어 일본 원정을 다니는 등 최고 센터로 이름을 날렸다. 결혼과 함께 코트를 떠났다가 1947년 두 딸을 둔 어머니 농구 선수로 복귀했으며,1950년 넷째딸을 임신한 채 경기를 치른 일화도 남겼다. 그는 현역을 완전히 떠난 뒤에도 대한농구협회 이사 및 부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거치며 한국 스포츠와 농구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국제스포츠 무대 행정가로 활동하기도 한 윤 전 회장은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공로상 및 국제올림픽위원회 공로훈장 등을 받았다. 그는 특히 2005년 7월8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기 바로 전날에도 여자프로농구 개막식을 찾는 등 뜨거운 농구 사랑을 보여 줬다. 한편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MVP)이며 1999년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던 박신자(66)씨는 선수 후보에 올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