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훈장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불가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추도식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한남동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차관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35
  •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부패 낙인… 친노진영 몰락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진영이 집권 시절부터 ‘훈장’처럼 달고 다니던 ‘개혁성’과 ‘도덕성’이 치명타를 입었다. 노 전 대통령이 7일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 친노 진영도 치유불능의 깊은 내상을 입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은 거의 초토화 수준이다. 후원자 3인방인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씨는 이미 구속됐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의 직계인 안희정 최고위원은 강 회장으로부터 10억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이광재 의원은 박 회장으로부터 2억원이 넘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구속됐다.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는 세종증권 매각과 관련해 불법 로비를 벌이고 수십억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건평씨의 사위인 연철호씨도 박 회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의혹을 사며 검찰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로써 친노 진영의 정치적 재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친노 진영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제대로 된 후보조차 내세우지 못하고, 연이은 총선에서도 줄줄이 낙선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정치적 재기를 노려 왔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하고, 친노 진영은 안 최고위원이 주도하는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를 정치적 교두보로 삼는 등 보폭을 조금씩 넓혀 왔다. 정치권에서는 친노 진영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개혁 세력을 결집, 정치활동을 본격 재개하면서 2012년 총선과 차기 대선까지 넘보고 있다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같은 친노의 시나리오는 한낱 물거품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친노 진영이 쑥대밭이 되면서, 현 정세균 대표 체제를 비롯한 민주당 내부 역학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전기의 날 59명에 훈포장

    대한전기협회(회장 김쌍수)는 10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대강당에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국내외 전기인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4회 전기의 날 기념식’을 열고 구자열 LS전선 회장 등 59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 주요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금탑산업훈장=구자열 LS전선 회장 ▲은탑산업훈장=김문덕 한국전력공사 부사장 ▲동탑산업훈장=유영현 현대건설 전무 ▲철탑산업훈장=권용학 대원전기 회장 ▲석탑산업훈장=이연용 일신이앤드씨 대표이사.
  • [新귀거래사] 이재욱 노키아티엠씨 명예회장

    [新귀거래사] 이재욱 노키아티엠씨 명예회장

    ‘신화를 창조한 최고경영자(CEO).’ 휴대전화 제조회사 노키아티엠씨의 이재욱(68) 명예회장에 대한 기업인들의 평가다. 그는 적자에 허덕이던 노키아티엠씨의 경영을 맡아 18년만에 100배 넘게 회사를 키우는 수완을 발휘했다. 노키아티엠씨는 핀란드 노키아 본사가 100% 출자한 한국법인으로, 생산 제품은 전량 수출한다. 1986년 그의 취임 당시 200억원이었던 이 회사의 수출은 그에게 병마가 들이닥친 2000년 3조 7000억원으로 늘었다. 국내의 외국계 기업 가운데 매출액 1위를 1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인후암 수술뒤 자청해 04년 은퇴 이 명예회장은 2000년 갑자기 닥친 인후암으로 2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뒤 200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계의 정보기술(IT)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CEO의 건강 상태가 회사에 치명적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지으며 건강을 되찾겠다고 마음먹고 경남 마산시 진북면 영학리 학동마을에 정착했다. 뒤쪽으로는 서북산(738.5m)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바로 앞에는 넓은 학동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2003년 농가를 헐고 2층 붉은 벽돌집을 지었다. 집 위에는 항상 태극기와 핀란드 국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국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했다. 이 명예회장은 직접 트랙터를 몰며 5년째 농사에 빠져 지낸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 농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할 정도의 해박한 ‘농업전도사’로 변했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농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농업은 어릴적 꿈이었다. 그는 “농대를 가려 했으나 집안이 어려워 빨리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공대로 진학했다.”며 “나이 60이 넘으면 농사짓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는쌀 식품 만들고 밀수입 줄여야 농사일로 건강이 회복되면서 이 전 회장은 한국 농업의 실상을 기업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게 됐다. 그는 “우리나라 쌀 농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높은 생산원가를 낮추어 경쟁력을 높이고, 남아도는 쌀을 소비하는 2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한해 생산하는 쌀은 450만t으로, 이 가운데 350만t을 소비하고 100만t은 남아돌지만 해마다 200만t의 밀을 식용으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먹는 쌀은 자포니카로 밥과 떡밖에 해먹을 수 없는 쌀”이라며 “남는 100만t의 쌀은 국수·빵 등 가공식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인디카 쌀로 바꿔 밀 수입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생산원가를 낮추는 농법으로 자신이 개발한 이른바 ‘지장농법(地藏農法)’을 제안했다. 땅을 갈지 않고 초여름과 가을에 벼와 보리·밀을 파종한 뒤 잡초가 생길 때만 물을 대고 비료와 제초제를 1회만 주는 농사방식이다. 지난해 경남 고성군 거류면 일대 13.3㏊의 논에 지장농법으로 벼와 보리 농사를 지어 지장농법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의 집 주변 들판에는 지장농법으로 손수 파종한 보리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보리밭에 선 그는 한국 농업의 갈 길을 거듭 강조했다. “대안을 제시하고 시연까지 해보였으니 이제부터는 정부가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이 명예회장은 정부에 적극적인 농업정책을 주문했다. 암 세포가 전이된 혀의 일부까지 수술한 탓에 발음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강한 열정이 묻어났다. 글 사진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이재욱 노키아 명예회장 걸어온 길 -1941년 10월28일생 -196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67년 대한광학 입사 -1986년 티엠씨 대표이사 -1992년 1억달러 수출의 탑 수상 -1998년 노키아티엠씨로 상호변경, 대표이사 회장 -2001년 금탑산업훈장 수상 -2002년 핀란드정부 훈장 수상 -2004년 노키아티엠씨 명예회장
  • ‘닥터 지바고’ 영화음악가 모리스 자르 사망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1965), ‘인도로 가는 길’(1984)로 세 차례나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었던 세계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모리스 자르가 3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84세.이 같은 사실은 고인의 아들인 전자음악가 장미셸 자르의 매니저가 발표했다.프랑스 태생의 작곡가 모리스 자르는 교향곡과 오페라, 연극, 발레 음악을 작곡하며 영화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거장 데이비드 린을 만난 뒤 영화음악에서도 명성을 쌓아 올렸다. 이후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1970), ‘인도로 가는 길’을 함께 하며 웅장하면서도 로맨틱한 음악을 세상에 선보였다. 모리스 자르는 이밖에 존 프랑켄하이머, 윌리엄 와일러, 프레드 진네만, 앨프리드 히치콕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하며 150편이 넘는 영화음악 작품을 남겼다. ‘지상 최대의 작전’(1961),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맨발의 이사도라’(1968), ‘양철북’(1979), ‘사랑과 영혼’(1990), ‘구름속의 산책’(1995) 등도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일제강점기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형석 선생이 29일 별세했다. 97세.지난 1912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중국 장시(江西)성에 있는 중국 중앙군 전시간부훈련단에서 복무하다 1941년 4월 광복군 징모 제3분처가 현지에서 발족하자 합류했다. 이후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다 1943년 중국군에 복귀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백계득씨와 1남 5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1일 낮 12시. (02)3410-6903.
  •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말 없음의 시’라고 할까. 침묵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깨달음의 시’라고 해야 할까. 한국 여성 시단의 최고 원로인 김남조(82)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묵시(默詩)’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월 깊어져 지금은 침묵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할 말들이 그치진 아니합니다.” 60년 가까이 시업(詩業)을 이어온 이 노성한 시인에게 아직도 시로써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제 시인은 하고 싶은 말들을 침묵, 아니 그 이상의 언어로 전하려 한다. 서울 효창동 비탈의 하얀 단독. 창밖 백목련 그림자가 우련히 비쳐 드는 2층 응접실에서 만난 시인은 예의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 이후 지금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내며 불굴의 시혼(詩魂)을 살라온 천생 시인. 얼마 전에는 한지에 요즘 보기 드문 납활자를 사용한 수제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시는 땀과 눈물의 수제품”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이처럼 공력이 든 활판시집이 더없이 맞춤해 보인다. 시집에는 그동안 써온 1000여편의 시 중에서 가려 뽑은 100편의 작품이 실렸다. “무릇 좋은 시란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해요. 시의 하늘은 종국에는 그런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최근 젊은 시를 호명하는 용어로 굳어진 ‘미래파’ 시에 대해서는 사뭇 마뜩잖은 표정이다. “‘형의 두개골을 파먹고… ’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게 이른바 미래파라는 건데, 요즘 시가 점점 기괴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불온한 서정의 섬뜩한 시가 아닌 순연한 정조(情調)의 따뜻한 시를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시는 영혼 혹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영혼이란 육체와 따로 노는 영혼이 아니다. 늘 육체와 함께하는 영혼, 육체를 입은 영혼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사변적일지언정 공허하지 않다. 좀처럼 관념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유정함, 종교적인 경건함, 만유에 대한 감사, 세상과의 화해·용서의 마음”이 생생한 시어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참담한 영혼의 고통을 맛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다. ●자신의 시대 업신여기는 건 모순 시인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한국전쟁의 참화도 몸소 겪었다. 처녀 시집 ‘목숨’은 그 전쟁의 와중에 탄생했다. 표제시 ‘목숨’에는 시인의 고단했던 삶의 한 자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산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중략)반만 년 유구한 세월에/가슴 틀어박고/매아미처럼 목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이 모두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罰族)이더라도/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그래도 죽지만 않는/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름겨운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참혹한 상황, 시인은 오죽하면 ‘벌족’이라는 말을 썼을까. “지금 우리 삶이 힘들지만 식민지 시절보다 슬프고 6·25때보다 더 가혹하겠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대를 업신여기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자기부정이에요. 인생의 수틀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색상과 잘못 기워진 자국도 남지만 그것까지 포함해 산다는 건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니 보수니 좌(左)니 우(右)니 하며 분열을 앓고 있다. 상생의 길은 없을까. “어린 아이들이 빨갛고 파란 예쁜 자동차를 보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돌을 던지게 만드는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문학 쪽도 마찬가지예요. 이수익·신달자 같은 괜찮은 시인도 성향이 어떠어떠하다고 한국 대표시인 목록에서 빼고 그랬지요. 편 가르고 증오하는 마음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야 합니다.” 시인에게 사랑의 대상은 무궁하다. 사랑의 총량 또한 무한하다. “떫은 사랑일 땐/준 걸 자랑했으나/익은 사랑에선/눈멀어도 못다 갚을/송구함뿐이구나”(‘사랑초서’ 53)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더욱 넉넉한 사랑이 필요한 때다.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 밖엔 길이 없음’을 설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진리는 지극히 평범한 데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男)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일까. 시인의 시에는 굳이 ‘페미니즘적’이랄 게 없다. 스스로도 페미니즘 운동엔 별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 또한 사랑의 프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여성적인 여성은 인간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남성적인 남성 역시 인간적인 남성이고요. 양쪽 모두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겠어요. 여성이 여성이기에 받는 사랑의 몫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퍽이나 선명한 논리다. ●부권 상실 풍조에 아쉬움 시인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지적해온 부권(父權)상실 풍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TV 드라마에서도 여걸형 가모장(家母長)이 뜨는 시대.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부권의 역조현상이 점점 가속화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혀 줘야 합니다. 뒷방에 내앉거나 머슴이나 문지기의 자리에 있어선 안 되지요. ‘기눌림’을 풀어줘야 해요. 남자에게는 큰 틀을 세우는 능력이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요즘 시류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남 탓 하지 말고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의 원로의 충고로는 충분한 값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원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지금 헨리 키신저(86) 전 국무장관 등 7080세대 원로그룹이 정부 대외정책의 ‘선봉’에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우리에게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원로회의가 생겼다. 김 시인은 공동 의장을 맡았다. 어떤 형태의 세속정치와도 절연된 삶을 살아왔기에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말에서는 한층 진정성이 느껴진다. “38년간 대학에 있으면서 어떤 보직도 맡지 않았어요. 내 문학에 상처를 줄까봐서였지요. 지난 독재정권 시절엔 전국구 의원을 하라고 찾아온 이에게 ‘날 빼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며 통사정해 돌려보낸 적도 있어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심정입니다. 식민지 시절을 생각하면 나라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인데, 정치도 국민 노릇도 너무 미숙하기만 하니….” ●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라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시가 그의 후기작에 속하는 ‘좌우명’이다.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답기를,/능금 익히듯 사람들 마음에 공들이고/충직한 농부에서 모범을 취하여라/백지를 능가하는 글을 쓰고/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말하여라/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를 동일하게 경애하며/다수의 복지를 섬기는 이에게/앞자리를 대접하고 아울러 그 줄에 서거라/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며/행복에 앞서 가치를 생각해라…” 삶의 잠언, 나아가 우리 사회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국민교육헌장’ 같은 시다. 김 시인은 그의 애제자인 신달자 시인이 첫 시집을 냈을 때 ‘봉헌문자’라는 제목을 지어 줬다. ‘평생 문자를 받들며 살라.’는 뜻이다. 봉헌문자는 결국 그의 명제가 됐다. “시를 쓰는 건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지만 그 측은한 길동무와 언제까지 함께하리라.”고 지금도 다짐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7년 만해대상 수상 시집 ‘귀중한 오늘’ 출간 이후 80줄이 넘어 새로 쓴 시만 30여편. 60편쯤 모이면 내년에는 열일곱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문학은 내게 병이면서 치유”라고 말하는 노시인. 그의 바람은 시의 언어가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어 미움으로 얼룩진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시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뜨거운 기도의 문을 연다. 글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숙명여대 교수(1955∼93년), 한국시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의 회장 역임 ▲예술원상, 영랑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은관문화훈장 받음 ▲저서:‘목숨’ ‘나아드의 향유’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 ‘바람 세례’ ‘마음 안의 마음’ 등 16권의 시집과 ‘잠시 그리고 영원히’ ‘먼 데서 오는 새벽’ 등 12권의 수필집 등 다수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 국민교육발전 유공자 46명 포상

    교육과학기술부는 25일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의 이종환 전 이사장 등 국민교육을 위해 헌신한 학교법인 및 교육단체 관계자 46명을 국민교육발전 유공자로 선정해 포상했다고 밝혔다.정부포상 대상자는 국민훈장 12명, 국민포장 2명, 대통령 표창 14명, 국무총리 표창 18명 등이다. 훈·포장 선포식은 이날 오전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이 전 이사장은 재산 6000억원을 출연,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장학금으로 498억원을 지급하는 등 국가발전의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데 기여한 공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박상복 동양학원 이사장, 손동수 명덕학원 이사장에게는 국민훈장 모란장, 윤철상 전 삼량학원 이사장, 동화학원 유경화 이사장, 설월학원 천병춘 이사장에게는 국민훈장 동백장, 백운영 신일학원 이사장, 김옥순 소년의 집 학원 이사장, 정화국 문성학원 이사에게는 국민훈장 목련장이 각각 수여됐다.국민훈장 석류장은 서천수 덕명학원 이사, 이찬희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고(故) 이강오 전 조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오치석 송강학원 이사장, 정태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포장을 받았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스페셜포스’ 최강 클랜 쟁탈전 진행

    ‘스페셜포스’ 최강 클랜 쟁탈전 진행

    네오위즈게임즈는 25일 온라인 총싸움게임 ‘스페셜포스’에서 최강 클랜(게임 이용자 모임) 쟁탈전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는 4월 20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가장 열심히 활동한 클랜들을 대상으로 훈장과 지원금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행사 내용 중 ‘클랜 훈장 쟁탈전’은 클랜 랭킹 상위 1,000위에 속한 클랜들에게 금, 은, 동의 훈장을 지급한다. 그동안 훈장을 보유하지 못한 클랜이라도 랭킹 여부에 따라 훈장을 받을 수 있다. ‘클랜 자금 쟁탈전’은 클랜 활동을 활발히 해 별사탕을 많이 모은 클랜 중 1~2위에게 50만원, 3~5위에게 30만원의 클랜 지원금을 제공한다. 또 6~10위에게 게임머니와 아이템이 들어있는 대박폭탄 900 아이템을, 11~50위에게 대박폭탄 500 아이템을 클랜원 모두에게 지급한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미자 은관문화훈장 받는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한국 전통가요의 여왕 이미자(68)가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는다.정부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미자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내용의 영예수여안을 의결했다. 대중음악 가수가 문화훈장 가운데 2등급인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것은 이미자가 처음이다. 앞서 고 김정구(1980년), 고 백년설(2002년 추서), 조용필(2003년), 남진(2005년) 등이 3등급인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그는 600여장의 음반과 2000여 곡의 노래를 발표하며 1960~1970년대 국민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면서 “평생 대중음악 활동으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밝혔다. 이미자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직접 수여받는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불황에도 고미술품은 왜 뜨나

    연일 불어오는 경제 쪽 우울한 소식으로 미술시장은 여전히 겨울의 한복판에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의 분위기는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중견작가들의 작품가는 하향조정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미술시장이 실수요자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들은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소장가층의 존재가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편으로는 소위 골동품이라고 불리는 전통 회화와 도자기, 목가구 등을 찾는 소장가들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고미술전문 경매회사인 아이옥션은 ‘3월 메이저 경매’에서 출품작 169점 중 71%인 120점이 낙찰, 24억원 이상 판매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 같은 낙찰률은 지난해 11월 경매 때의 57.3%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고미술 쪽에 관심을 갖는 소장가들은 대개는 ‘묵은 컬렉터’들이다. 이들은 연세가 지긋해서 경제 활동에서 은퇴한 경우가 많아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시대적으로, 도상학적으로 빠져 있는 부분을 메워 컬렉션을 완성시키려는 자존심이 이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왜냐하면 불경기란 이들에게는 컬렉터로서 꿈꾸었던, 정말 손에 넣고 싶었던 작품들을 소장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품이건 고미술품이건 간에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있다 해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또 원하는 작품이 있다 해도 그 순간 수중에 돈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미술품은 소장가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이런 미술시장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리이다. 매년 이즈음에 열리는, 고미술품만을 다루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아트페어는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루벤스, 가브리엘 메추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종래의 매출액에 도달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베르사체 컬렉션 경매에서도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나타나 전체 매출이 143억원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규모는 작지만 고미술시장과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대표작을 중심으로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소비가 늘어야 경제가 회복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경제학에서 소비는 ‘소유적 소비’와 ‘공유적 소비’로 나뉜다. 경제수준이 올라가고 시간이 경과하면 소비패턴은 ‘소유’에서 ‘공유’로 진화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사회는 소유적 소비에 머물 뿐이어서 애호가들의 미술품 수장행위를 개인적인 취미활동으로 파악, 대중들과 함께 공유할 장치 마련에는 인색하다. 지금이라도 이들이 평생을 들여 수장한 작품들이 다시 흩어지지 않고 국민들이 영원히 경험할 수 있도록 중앙박물관과 국립미술관 등에 기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부에 따른 세제혜택과 훈장수여 같은 방안 등이 그것이 되겠다. <미술평론가>
  • 체육활동중 부상자도… 도넘은 유공자 남발

    탈모증 환자, 전역빵(전역축하 폭행) 부상자 등 전투나 공무수행과 거의 관련없는 국가유공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공훈장 서훈자(전투 공헌)가 아닌 장기근속 전역자에게 일괄적으로 보국훈장을 주고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현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가보훈처는 17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보훈대상 및 보상체계 개편방안’ 공청회를 통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예우라는 국가적 상징정책인 보훈 제도에 대한 적절성에 적지 않은 의문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보훈 제도 운용에 대한 보훈처의 자성과 비판은 최근 단순 사고와 질병으로 국가유공자 호칭이 부여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가유공자 제도가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단순 부상 질병 2만여명 부여 보훈처에 따르면 2006~2008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3만 8498명 중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전상(戰傷)자는 5179명(전체의 13.5%), 근무·훈련 중 부상자는 1만 5506명(40.3%)으로 전체의 53.8%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질병 1만 914명(28.3%), 체육활동 부상 4316명(11.2%), 출퇴근 중 부상 638명(1.7%) 등이었다. 오진영 보상정책과장은 “국민들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유공자 사례가 나오는 건 사법부나 행정심판위원회 등 다른 행정쟁송기관마다 국가유공자 인정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훈법상 33년 이상 장기근속자인 군·군무원에게 주는 보국훈장 서훈자의 유공자 인정도 문제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부의 보국훈장 수여 현황을 보면 2005년 1312명, 2006년 1059명, 2007년 1817명, 2008년 2229명이었다. ●장기근속 보훈훈장 수여자도 그러나 상훈법상 근정훈장을 받는 다른 분야 공무원들은 서훈을 받아도 국가유공자가 되지 않는다. 군·군무원으로 장기근속한 전역자는 높은 계급으로 서훈을 받아 유공자도 되고 조기 전역자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보훈처는 국민정서 등을 고려해 보국훈장 수훈자에 대해서는 순국선열자처럼 일정한 공적심사를 거쳐 ‘공헌 있는 희생’에 대해서만 유공자 자격을 인정하는 개선 방침을 제시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군인과 군무원 모두 현행대로 국가유공자 범주 내에 존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자연이야기] 어린이는 콧물을 흘려야 건강하다

    [자연이야기] 어린이는 콧물을 흘려야 건강하다

    우리나라의 기초학제는 삼국시대의 고구려가 정착시킨 경당, 고려와 조선시대의 서당, 구한말의 일제강점기부터 소학교, 보통학교, 국민학교(황국신민학교) 등의 이름으로 남아왔고, 1996년 민족 정기를 되찾겠다는 취지로 오랜 동안 사용해 오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하기에 이른다. 오래 전 이 국민학교의 입학식 때면 신입생과 재학생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표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입생의 왼쪽 가슴에 어른 한 뼘 길이만큼의 하얀 손수건을 달아 두었던 것이다. 그 손수건은 신입생을 상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직은 생소한 학교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린 그들의 사소한 실수와 두려움, 크고 작은 근심걱정을 덜어주는 보호막처럼 작동해 주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야 했을 신입생 시절, 하얀 천조각을 길게 접어 옷핀으로 찔러 달아놓은 그 모습…. 하얀 마크 같은 손수건은 무슨 큰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고 신기한 액세서리 같은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지금, 그 같은 손수건을 달고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은 아예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성도 사라졌다. 언젠가 실제 초등학교 입학식장엘 가보았더니 콧수건은 커녕 콧물을 흘리며 등교하는 학생들조차 보기 쉽지 않았다. 사실 학교에 입학할 나이쯤의 아이들이 흘리는 콧물은 대단히 중요한 모종의 지표가 된다. 이들이 흘리는 콧물은 대부분 면역반응의 결과 생성된 노폐물이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체액의 분비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중증의 축농증이나 비염이 아니면 대부분 외부에서 침입한 다양한 미생물과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체내 면역 시스템과의 반응에서 생겨난 물질이 방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콧물은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콧물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공기와 토양 중에 포함된 물질 속에 들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진균,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의 생물학적 인자들이 있다.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급증하고 친구들과의 활발한 놀이활동에 따른 호흡량이 증대되면서 아이들의 콧구멍으로 이런 물질들이 유입되거나 노출될 기회는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그 결과 자연적인 후천적 면역 과정을 겪게 되고 그 흔적으로 콧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먼지를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를 가는 동안에도 아스팔트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걷거나 부모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집에 돌아와도 거의 먼지 하나 구경하기 힘들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환경에서 하루를 보낸다. 놀이터에서도 흙장난을 하기 어렵다. 흙을 만지고 들어오는 것을 방관할 만한 부모도 많지 않지만 놀이터 자체가 흙이 없는 환경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아이들은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불러일으키고 건강을 보증해 줄 면역반응을 담당할 외부물질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채 비닐주머니 같은 환경에서 살아간다. 어린 시절 콧물 속에서 만들어진 면역체계는 요즘 가장 골칫거리로 떠오른 아토피를 극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당장 살아가기에 깔끔하고 편하며 위생적일 것 같아 온 세상을 단단한 대리석과 시멘트로 뒤덮은 오늘의 주거 환경은, 우리 후손들로 하여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신체적 조건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며, 결국 가장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을 병원과 약국으로 전전하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아직 아토피와 콧물의 상관관계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된 바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콧물 흘리며 자란 나와 친구들 중에 아토피에 걸려 고생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 어떤 행복도 건강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다. 우리 자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면, 그들을 위해 콧물이 흐르도록 하는 온전한 자연을 남겨주고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을 챙기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 힘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먼 훗날 콧물과 건강을 되찾은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지구의 미래가 될 것이다. 글·사진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 ※ 이 글의 모든 내용들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됩니다. 박병권·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 WDU 한방건강학과 교수. MBC ‘느낌표-이경규 다큐멘터리 보고서’에서 너구리박사로 출연. SBS ‘반달곰복원프로젝트’ 제작지원 및 출연.
  • 故 이성자 화백에 보관문화훈장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일 91세로 별세한 재불 화가 이성자씨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 [부고] 이상철 전 국민은행장 별세

    이상철(李相哲) 전 국민은행장이 13일 오후 1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 이 전행장은 1960년 농업은행 공채로 입행한 뒤 62년 국민은행 창립 멤버로 옮겨 87년 부행장을 거쳐 88년 국민은행장에 올랐으며 97년 국민신용카드 회장을 마지막으로 금융계를 떠났다. 은행장 재임 때 5조 원에 불과하던 수신액을 15조 원으로 늘리고, 고객 수도 1천만 명 넘게 확보하는 등 국민은행이 리딩뱅크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장을 지내던 96년 금융실명제 조기 정착과 저축증대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명자씨와 찬희(CH 인베스트먼트 대표)·수경·태희(방송통신위원회 대변인)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7시. (02)3410-6917.
  • 황병무 “北,가을께 협상테이블 앉을것”

    황병무 “北,가을께 협상테이블 앉을것”

    북한의 미사일 발사문제로 한반도 주변정세가 어수선하다. 자고 일어나면 새 뉴스가 쏟아진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만 하면 미사일방어체제를 가동해 요격하겠다는 뉴스가 한동안 대세를 이루더니,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북한이 쏘려고 하는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수정하는 등 뒤죽박죽이다. 급기야 북한이 국제해사기구에 문제의 ‘광명성 2호’를 4월4일부터 8일 사이에 발사하겠다고 통보한 것을 보면 이제 발사는 시간문제인 듯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전까지, 또 쏜 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과 전망이 분분했지만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 북핵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12일 노무현정부시절 대통령직속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방개혁의 밑그림을 그렸고, 대한민국 최초의 문민 국방장관이 나온다면 유력한 장관후보로 거론되는 황병무(69) 국방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중국 학자보다 더 중국군 문제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는 황 교수는 군사문제의 시각으로 북핵문제를 들여다 보는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중국군 관련 일부 저서는 미국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정도다. 명쾌한 북핵해법을 들어봤다. →한·미 키리졸브훈련을 구실로 북한이 군통신망을 차단, 개성공단과 금강산 일원에서 남측 민간인 600여명이 하루 동안 억류되는 등 남북관계가 급냉각되고 있습니다. 북의 미사일 발사 예고로 촉발된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북한의 협상전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북은 전쟁이 아닌 ‘위협’을 통한 정치목적의 달성을 노립니다. 최선의 협박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거둔다는 전략이죠. 한 곳에서 발목을 건 뒤 상응하는 대가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 또 거는 식이죠. 중요한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되 전쟁으로 몰고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라는 점입니다. ●北 게릴라식 위협 또다른 타깃은 남·남 갈등 →이른바 ‘통제된 압박전략’이군요. 통제가 안 되는 최악의 경우도 가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위협은 가하되 전쟁은 피한다는 거죠.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기조 대북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겁니다. 핵보유와 경제지원을 연결짓지 말라는 뜻이기도 해요. 미국에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한반도문제를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는 공고합니다. 대내적인 체제안정은 부수적 효과에 불과합니다. 통제불능의 가능성은 내재하지만 큰 변수는 못될 겁니다. →교수님은 2006년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정확하게 예측하셨는데요. 이를 귓전으로 흘린 정부는 뒤통수를 맞았죠. 이번에도 북한은 예고대로 미사일을 쏠까요. 미사일 발사 이후가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북핵은 북한이 갖고 있는 거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사용가능한 카드는 거의 소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카드의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쉽게 써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미사일은 ‘대남용’ 이 아니라 ‘대미협상용’ 최후 카드라고 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발사는 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면서, 태평양 중간지점을 조준하는 정도로 끝낼 겁니다.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 제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제2, 제3의 위협 거리를 찾다가 찾지 못하면 협상테이블에 앉을 겁니다.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것도 노림수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동안 북한은 위협전략을 써서 재미를 톡톡히 봤죠. 자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초강경 미국 부시행정부를 상대로 6자회담을 이끌어내지 않았습니까. 북의 게릴라식 위협이 노리는 또 하나의 목표가 남·남갈등입니다. 보수·진보세력의 불화입니다. 국론분열이 가장 우려되는 문제입니다.그들은 정부를 상대하면서 칼끝은 내부분열을 겨눕니다. 개성공단 민간인 억류의 경우 남쪽의 여론이 너나없이 악화되자 하루만에 물러섰습니다. 유연하면서 차분하게 대처하면 됩니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북안보정책을 펴야 위협전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국민 신뢰 바탕한 대북정책 긴요 →현 국면을 한·미와 북한 양자간 ‘치킨게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한·미공조와 북한 내부의 체제 안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게임이론으로 보면 한·미와 북한은 외길에 서서 마주보고 충돌하려는 치킨게임의 양상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인식을 공유하고, 전략을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내부 국론분열이 없으면 북한은 협상테이블에 나옵니다. 나올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는 북 내부의 체제안정과 ‘선의적 관망’ 이 전제돼야 하겠지요.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우리는 불개입을 선언하고, 북한에서 일어난 내분은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의의 관망입니다. 이렇게 서로 조금씩 정책을 변화시켜야 충돌을 면합니다. 제 생각에는 올 가을쯤이면 진전된 자세로 6자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것으로 봅니다. ●김정일체제 공고… 3대 세습 가능성 높아 →최근 북한의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의 3대 세습에 관심이 쏠렸는데요. 세습이 이뤄질까요. 또 ‘내우’의 요인을 가진 나라는 과잉 대응하기 마련이므로 ‘외환’으로 연결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는데요.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나름의 구상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권력승계를 협의하는 과정이라고 봐야지요. 제3의 권력엘리트에게 이양하는 방안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세습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습을 해도 김 위원장이 10년 이상 생존해야 이뤄져요. 승계 구도를 만들어주려면 김 위원장의 건강과 측근들의 화합이 관건이죠. 사후 주체사상에 대한 내부적 회의 때문에 노선투쟁이 발생하면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는 있어요. 북한의 권력은 노동당 비서국 조직지도부가 틀어쥐고 있습니다. 조직지도부의 자리이동을 눈여겨 보지만 움직임이 없어요. 또 다른 권력의 핵인 국방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어요. 북한인민군은 당의 군대입니다. 당이 분열되기 전에 군부 쿠데타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북한의 ‘내우’가 긴장 최고조 상태를 의미하는 ‘외환’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외환이 반드시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속내는 무엇입니까. ‘김정일 유고’ 등 북의 비상사태 발생시 중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까요. -세계 3대 핵 강국이자, 300만 병력을 보유한 군사 강국 중국도 북핵을 달가워하지 않기는 미국과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설득에 한계를 보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북한이 손을 들 정도로 때리자는 건 아닙니다. 중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되 반대급부를 미국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을 궁지에 몰지 않는다는 입장은 분명합니다. 그것도 미·중관계가 우호적일 때의 상황이지, 티베트나 타이완문제가 터지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최악의 사태도 가정해야 합니다. 북한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외세가 개입하는 ‘동네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중국은 미군이 북한을 점령하지 않는 한 지상군파견을 주저할 것으로 봅니다. 한국전쟁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가 “한국군이 단독으로 38선을 넘으면 개입하지 않지만 유엔군이 넘으면 개입하겠다.”고 했고 그것을 지킨 것이 중공군의 참전입니다.지금도 변치 않는 원칙입니다. ●국방개혁에 전·현 정권 따로 있어선 안돼 →미사일 발사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 등에서 국지적인 도발과 위협이 계속될 경우 우리 군의 대처 방안에 대해 조언해 주십시오.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국지적인 도발시에는 ‘발사지점 타격화’라는 안보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서해 북방한계선에서의 제3의 서해교전 상황이나 해안포의 위협사격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을 정도의 즉각적인 무력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면전을 우려해 기 싸움에 밀리면 절대 안 됩니다. →참여정부 시절 여야합의를 거쳐 마련한 국방개혁법이 정권이 바뀌면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등 지지부진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상희 국방장관은 당시 합참의장으로 실질적으로 개혁안을 만든 분입니다. 전작권 전환과 병력감축을 전제로 한 군 구조조정, 국방부의 문민화 등 굵직굵직한 개혁방안이 두루 포함돼 있습니다. 그분이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4월쯤 대통령께 보고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방개혁에 전 정권, 현 정권이 따로 없습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걸어온 길 ▲ 전북 고창 생 ▲ 서울대 외교학과, 동대학원 졸업 ▲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정치학 박사 ▲ 국방대 교수 ▲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 ▲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회 위원장 ▲ 대통령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 통일 고문회의 고문 ▲국방대 명예교수 ▲ 한국국제정치학회 편집위원회 위원장 ●주요 저서·수상 ▲ 한국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 전쟁과 평화의 이해 ▲ 신 중국군사론 ▲ 한반도 평화와 편승의 지혜 ▲ 세종문화상(국방·안보 분야) ▲ 보국훈장 천수장
  •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7)한국 시·소설 25권 번역 佛 테제공동체 소속 안선재 수사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37)한국 시·소설 25권 번역 佛 테제공동체 소속 안선재 수사

    한국문학은 작품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어휘와 토속적 뉘앙스를 외국어로 옮기는 번역의 어려움 탓에 세계무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뒤늦게 번역의 중요성에 눈뜬 문학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여전히 한국문학의 번역은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우리 한국문학을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어려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수사(修士)가 있다. 오래도록 서강대 교수로 살다가 정년퇴직하고 서강대 옆 오피스텔에 연구소를 꾸려 여전히 한국문학 번역에 매달려 있는 테제공동체의 안선재(67·본명 브러더 앤서니·영국) 수사. 얼마 전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의 ‘한국에 와달라.’는 주문에 선뜻 응해 한국 땅을 밟아 귀화까지 한 생활 속 수도자다. 신촌역과 서강대 캠퍼스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오뚝하니 선 허름한 오피스텔 12층. 꽃샘추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을씨년스러운 날, 작은 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오피스텔을 찾았다. 궂은 날씨와 어둑한 조명 때문인지 조금은 어둡다 싶은 오피스텔 초인종을 누르니 기다리고 있던 노 수사가 큰 손을 내밀어 손을 반긴다. 왠지 꾸밈이 없을 것만 같은 편안한 얼굴. 푸근한 인상에 편한 마음으로 손을 잡았지만 잘 정리된 집안의 분위기가 순간 객을 긴장하게 만든다. 사방의 벽에 빼곡히 꽂힌 한국 책들, 책상 위에서 몸을 사르는 은은한 향 내음, 그 향 내음에 잘 어울리는 다기들, 그리고 공간 곳곳을 장식하는 그림과 붓글씨들. 번역 작업에 매달리는 서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도자의 은밀한 신앙공간 성격이 강한 독특한 방이다. ● 천상병 ‘귀천’·고은 ‘화엄경’등 번역 “번역을 하다가 가끔씩 머리를 식히려 향을 사르곤 하는데 마음에 드시는지요.” 지리산 자락에서 어렵게 구한 차라며 우려내 따라 주는 차 맛이 일품이다. 생각대로 화제는 자연스럽게 번역에서부터 풀어졌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아 번역을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아요. 텍스트를 정해 1차번역 정도만 하고 세밀한 번역은 전문가에게 맡기지요.” 지금까지 안선재 수사의 손을 거쳐 번역되어 책으로 마무리된 한국 시, 소설만 해도 25권. 천상병의 ‘귀천(Back to Heaven)’, 고은의 ‘화엄경(Little Pilgrim)’,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Faint Shadows of Love)’,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The Early Lyrics)’ …. 수사가 손에 잡히는 대로 빼어서 객에게 보여주는 책들이 모두 굵직굵직한 한국 문인들의 시, 소설. 그 공으로 해서 받은 상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상(1991년), 대산문학상 번역상(1995년), 옥관문화훈장(2008년)…. 어떻게 이 많은 작품들을 골라 번역해 냈을까. “1988년 서강대에서 영문과 강의를 하던 중 문득 한국문학을 번역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학생들에게 영문학 강의를 하는 것보다 직접 한국문학에 파고들고 싶은 욕심이었지요.” 서강대 교수에게 뜻을 전해 가장 먼저 1990년 구상 시인의 시를 파고들었고 지금까지 모두 25권의 책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수사의 이름 ‘안선재’도 고은 시인의 ‘화엄경’을 번역하면서 얻은 이름. 인도를 돌아다니며 53명의 스승을 만난 선재 동자의 역정에서 자신의 한 면을 보았고 또 닮고 싶어 본명 앤서니와 비슷하게 붙인 이름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이며 글씨들로 눈길을 옮기자니 사연들을 들려준다. “편액 ‘난석산방’(夕山房)은 고은 시인이 연구소에 달라며 써준 것이고 ‘다선일미’(茶禪一味)는 김지하 시인의 선물입니다. 그 옆의 불상 사진은 구상 선생이 일본에서 구해 선물하신 것이지요.” 53명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고 다닌 화엄경 속 선재 동자만큼이나 안 수사의 삶은 다양한 가지를 쳐왔다. 옥스퍼드의 수재 문학도가 수사의 길을 택해 한국 땅을 밟고 대학교수에서 한국문학 번역가로 살아가는 파격의 연속. 그의 삶은 수사 자신의 말마따나 ‘예측불허’이다. 어려서부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교회를 다녔지만 중·고등학교는 감리교 계열의 학교에 진학했다고 하니 그의 신앙과 생각은 처음부터 자유로웠던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근대 영문학을 전공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뒤 공부를 계속할 요량으로 프랑스에 갔다가 인연을 맺은 테제공동체가 한국에 온 계기다. 1940년 프랑스의 테제에서 시작된 테제공동체는 개신교와 가톨릭 등 종파를 가리지 않는 독특한 공동체. 화해와 일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갈등 극복과 평화 찾기 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는 수사들의 모임이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혼란기, 자유로운 생각의 소유자였던 그가 테제공동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다.” 그토록 매달려 살던 모든 학문과 종전의 삶을 송두리째 버리고 평생 구도자의 길을 선택, 파리 공동체에서 5년간을 살았고 1977년 필리핀 남부 다바오의 판자촌 주민들과 어울려 살던 무렵 우연히 판자촌을 찾아온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는 1972년 이미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사제의 신분으로 파리 테제공동체에 들렀던 김 추기경은 한국의 암울한 군사독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테제공동체 수사들이 기도하는 모습에 몹시 감명 받았던 것 같아요.” 7년 뒤 머나먼 필리핀에서 사목하다가 우연히 김 추기경을 다시 만났고 한국에 관심 많던 수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추기경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 故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한국 와 귀화 격동기인 1980년 한국에 들어와서도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주일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은 영문 자료 번역 등을 자주 수사에게 맡겼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화곡동의 테제공동체 한국 지부를 찾았던 일화도 들려준다. “테제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김 추기경이 찾아왔는데 대접할 게 없었어요. 라면을 끓여 드렸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며 웃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서강대 교수로 살기 시작한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학 문이 굳게 닫혔던 1980년. 외국인만 학교를 출입할 수 있었던 시절 우연히 방문한 서강대측이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칠 교수가 없다고 해서 학교 문이 다시 열린 뒤부터 2년반 동안 프랑스어 기초를 강의했다고 한다. 이후 영어회화와 영문학 전임강사로 줄곧 강단에 섰고 학과장도 두 번이나 지낸 뒤 지난 2007년 2월 정년퇴임하고 이곳에 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화곡동 테제공동체 한국지부에서 프랑스, 스위스 출신 수사 3명과 함께 살며 아침 일찍 이곳 연구소로 출근해 하루 종일 번역에 매달려 살다가 화곡동 숙소로 돌아간다. 주일 미사에 참석해 강론을 하기도 하고 화곡동 공동체를 찾아오는 한국인 신자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미사도 함께 드린다. 생의 극적인 전환을 계속해온 안선재 수사. 한국에 귀화한 노 수사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숱하게 옮겨 살았지만 한국은 정착한 땅이지요. 하지만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아직도 끝이 안 잡힙니다.” ‘인생은 40세가 돼야 비로소 시작하는 것’(Life begins at 40)이라는 영국 속담을 들려주는 노 수사는 “한국에서 인생이 시작됐고 그 삶은 곧 신앙이고 거스를 수 없다.”며 언제까지나 ‘어린 나그네’(고은 시인의 화엄경 번역서 이름)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 안선재 수사는 ▲1942년 영국 잉글랜드 출생 ▲1964년 옥스퍼드대 학사 ▲1967년 옥스퍼드대 석사 ▲1969년 박사학위 논문 준비중 파리 테제공동체 방문, 수도자의 삶 결정 ▲1969~1974년 파리 테제공동체에서 생활 ▲1977년 필리핀 판자촌에서 사목중 김수환 추기경 만남 ▲1980년 수사로 한국 생활 시작 ▲1980~2007년 서강대 교수, 학과장 ▲1990년 한국문학 번역 시작 ▲2007년~ 서강대 정년퇴임 후 오피스텔에서 한국문학 번역 글 사진 kimus@seoul.co.kr
  • [부고] 재불화가 이성자씨 별세

    재불 화가 이성자씨가 9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현지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때 여성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파리로 유학,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했다. 이응노, 김환기 등과 함께 동양적 향취가 담긴 작품으로 현지 화단의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재불 화가였다. 동시대 실존의 부조리와 자폐적 우울증에서 벗어난 미학을 추구하면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2차례나 예술 공로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4월 창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이성자의 귀천(歸泉)’전을 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신용석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위원장 겸 인천아시안게임 대외협력위원장, 용학 파리7대학 건축학과 교수, 용극 유로통상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프랑스 투레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02)542-0533.
  • [부고] 애국지사 김득명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득명 선생이 4일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본군대를 탈출, 충칭(重慶)에서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해 요원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유족은 외아들인 명민씨. 빈소는 인천 길병원. 발인 6일 오전 7시. (032)472-9262.
  • 의병장 허겸선생 손부의 ‘씁쓸한 3·1절’

    의병장 허겸선생 손부의 ‘씁쓸한 3·1절’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언제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을까요?” 3·1절 아침 김순옥(60·여)씨는 씁쓸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침을 맞았다.김씨는 의병장인 허겸 선생의 손자며느리다. 허겸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반대 상소를 올리고 400명을 규합해 경기도 연천 등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1912년 만주로 망명해 중어학원·부민단 설립 등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 끝에 1939년 생을 마감했다. 허겸 선생의 동생은 1907년 서울진공작전을 편 뒤 옥사한 왕산 허위 선생이다.(본지 2006년 8월14일자 보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왕산로가 허위 선생의 호에서 유래했다. 중국 국적으로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김씨는 특별귀화 신청을 내기 위해 지난해 12월1일 3개월 단기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맞은 첫 국경일인 3·1절은 김씨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 바로 발급받은 비자가 만료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국하자마자 국적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중국공적서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는 정부 당국의 답변만 들었다. “지난해 5월 아들이 국적을 회복했어요. 당시에는 족보에 이름이 오른 걸 보고 중국공적서류가 없어도 특별귀화를 받아 줬는데… 이번에 신청한 저는 안 된다고 하네요.” 평생 나라탓을 해 본 적이 없는 집안의 며느리답게 김씨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지난 3개월 동안 귀화 신청을 위해 한 노력을 설명할 때에는 절박함이 묻어 났다. 법무부가 요구하는 중국공적서류를 받으려면 한국돈으로 1000만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되고, 그나마 그 돈을 내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우선 한국 국적을 회복한 아들과의 의학적 친자 확인을 통해 자신이 허겸 선생의 손부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정부는 불허했다. 한국 국적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한국 국적을 원할 경우에만 유전자 검사에 의한 증명이 가능할 뿐, 반대의 경우에는 안 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족보 원부를 어렵게 공수했다. 만주에서 운명한 허겸 선생의 묘를 돌본 게 김씨와 남편 허준도씨였기에 이미 족보에는 이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 있었다. 역시 정부는 불허했다. 김씨의 아들이 국적을 회복하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거로 활용됐던 족보였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광복절을 즈음해 법무부는 중국·러시아·일본 국적으로 살아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특별귀화 허가증을 줬다. 2006년에는 33명, 2007년에는 32명, 지난해에는 22명이 이렇게 국적을 회복했다. 김씨의 시누이인 허금숙씨를 비롯한 친척들도 이 때 특별귀화 허가증을 받았다. 정부는 이들이 조상의 묘소와 생가를 찾는 사진까지 배포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늦게 특별귀화를 신청한 김씨는 시할아버지가 1968년에 받은 대통령표창과 1991년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 사본만 만지작거리며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김씨는 지난해 한국에 들어올 때 중국내 한국 영사관에서 받았던 비자에 선명하게 찍힌 ‘유공자 후손’이라는 글귀를 한참 쳐다본 뒤 힘없이 말했다. “한국 영사관도 정부 기관 중 하나일 텐데 여기서 해 준 ‘유공자 후손’ 인정도 한국에서는 효력이 없군요. 다음 번에는 이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호프먼 佛문화예술훈장

    할리우드 배우 더스틴 호프먼(72)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여실에서 호프먼은 “대단한 영광”이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AFP 등 외신이 이날 보도했다. 호프먼은 “1958년 뉴욕에서 연기 공부를 시작했을 때 친구들과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을 알게 됐다.”며 ‘천국의 아이들’과 ‘금지된 장난’ 등 프랑스 영화에 공을 돌렸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성동구 공무원 월급 갹출·경비 절감…일자리 1만5352개↑

    [나눔 바이러스 2009] 성동구 공무원 월급 갹출·경비 절감…일자리 1만5352개↑

    서울 성동구와 부산시가 ‘일자리 나눔’에 총력전을 펼친다. 일자리 나누기가 지역 경제 활성화의 ‘비타민’이란 인식이 지자체에 확산된 까닭이다. 일자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단순한 지원 수준을 넘어 자립기반을 만들어 준다. 성동구는 79억원의 예산을 확보, 월수입 20만~100만원인 1만 5352개의 한시적 일자리를 만드는 ‘올해 일자리 창출 종합계획’을 25일 발표했다. ●봉급 1~3% 반납… 79억 확보 구는 공공부문에 67억원을 투입 1만 4000개, 민간부문에 12억원을 들여 1352개의 다양한 일자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구는 이 재원의 확보를 위해 올해 업무추진비·행사운영비 등 경상 경비를 10% 줄인다. 또 구청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봉급의 1~3%를, 직원은 자율적인 기부로 재원을 마련한다. 부족한 예산은 추경예산에서 반영한다. 먼저 공공부문에서는 ▲자치회관 관리보조 ▲아르바이트 대학생 확대 ▲구립도서관 운영시간 연장 ▲정보화서포터스 운용 ▲저소득층 컴퓨터 무상서비스 제공업무 등을 통해 모두 2600개의 청년일자리를 마련한다. 노인들을 위해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청소년지킴이 ▲공영주차장 안내도우미 ▲무지개훈장선생님 등 모두 12개 사업을 통해 4600개의 일자리를 확충한다. 중장년층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인력실태 조사반 ▲재활용선별시설 작업 지원 ▲공공근로사업 확대 ▲저소득층 이사 서포터 등 4300여개의 다양한 일자리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또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월 1회 기업과 구직자 ‘만남의 장’을 열어 일자리 찾아주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부산시 일자리 400개 창출 부산시 5급 이상 간부 공무원 480명은 월급을 떼어서 일자리 창출 재원으로 쓴다. 5급(342명)은 급여의 1%, 4급(111명)은 2%, 3급 이상(27명)은 3%씩을 자진 반납, 연말까지 3억여원을 조성한다. 또 각종 경비 절감액 32억원을 합쳐 연말까지 4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 부산시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허남식 시장이 직접 편지를 보내는 등 범 시민적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서울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