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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만대장경 지켜냈던 그 ‘빨간 마후라’

    팔만대장경 지켜냈던 그 ‘빨간 마후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의 어느날,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영환 장군(당시 대령)에게 폭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공비들이 숨어 있는 가야산을 폭격하라.”는 지시였다. 자신이 지휘하는 전대를 이끌고 출격했지만 김 장군은 가야산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그곳에는 바로 팔만대장경을 모셔둔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빨치산 몇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다.”고 목숨도 내놓은 항명을 했다. 그 항명으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지금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6·25 당시 해인사 폭격명령에 항명 경남 합천 해인사(주지 선각 스님)는 14일 문화재 보존을 위해 용기 있는 항명을 했던 김영환 장군을 기리기 위한 ‘고 김영환 장군 호국추모재’를 개최한다. 김 장군은 1954년 34살의 나이로 비행 중 실종됐다. 공군 창설 멤버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팔만대장경에 얽힌 이야기는 최근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에도 이름이 누락됐고, 그 공적도 부하 장지량 장군의 것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고 김 장군을 문화재 지킴이로 되살린 것은 해인사였다. 해인사는 2002년 장군의 공적비 건립을 추진하던 중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고, 공군 역시 이를 계기로 역사자료발굴위원회를 꾸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추모재는 2011년 열릴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을 앞두고 기획됐다. 이 행사에서는 추모재와 함께 문화재청에서 수여하는 문화재지킴이 감사패 전달식, 명예도민증 수여식 등이 열린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지은 추모시 낭송도 이어진다. 행사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 6·25 참전 유공자회 회원 등 총 2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내년엔 문화훈장 수여식도 함께 봉행 또 해인사는 김영환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며 스님들을 중심으로 6000여명의 국민들의 서명을 받아 김 장군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토록 정부에 요청했다. 훈장 추서가 결정되면 내년 추모재에는 문화훈장 수여식도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해인사 주지 성각 스님은 “김영환 장군은 대장경 1000년, 공군 창군 60주년을 기념하는 데에 가장 어울리는 명장”이라면서 “이 추모재를 통해 그의 문화재 사랑 정신을 널리 전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얼굴 반 크기’ 딸기코 가진 할아버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술을 마셔온 60대 중국인이 얼굴의 반 만한 딸기코를 가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현지 신문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성 톄링에 사는 리우 제(68)는 10여 년 전부터 코가 부풀어 오르더니 끝에 혹 두 개가 생겼다. 혹은 계속 커졌고 급기야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동네 사람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2리터 가량의 술을 마신 탓이라며 그를 ‘딸기코 할아버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놀림에 오히려 즐거워 했다. 16세 때부터 양조장에서 일해온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술을 직접 마셔 맛을 보는 것인 터라 5cm에 달하는 ‘딸기코’가 훈장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맛을 판단하려면 술을 직접 마셔봐야 한다. 내게 술을 마시는 건 물 마시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코가 얼굴의 반을 뒤덮어 볼썽사나울 뿐 아니라 숨도 잘 쉬어지지 않자 할아버지는 가족의 권유로 수술을 결심했다. 혈관이 팽창해 코가 부푸는 비류(rhinophyma)를 진단 받은 그는 최근 선양에 있는 성지병원에서 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은 “술을 지속적으로 마신 탓”이라면서 “고령인 만큼 독한 술을 계속 마시는 걸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공직자와 지식인, 문화예술인 등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1905년 황성신문 주필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을 비롯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 20명가량도 친일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정책실장은 “친일행위자 중 사회지도층이 많은 것은 한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경시되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친일파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 장면 전 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겸 동아일보 사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들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2세이던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면서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함께 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장면 전 부통령은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던 경력 때문에 포함됐다. 이 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으며 미사 후에는 단체로 신사참배를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던 김성수 전 부통령은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를 맡고 1943년 8월에는 ‘매일신보’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는 등 징병을 격려하는 글을 썼다. 음악가 안익태와 무용가 최승희, 시인 서정주 등 문화예술인의 친일행적도 발견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1938년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발표했는데, 본래 일본 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그대로 차용했다. 1942년에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의미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현대무용가 최승희는 1937~1944년까지 무용공연 수익 중 7만 5000원이 넘는 금액을 국방헌금·황군위문금 등으로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 서정주는 ‘매일신보’에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고 썼다. 언론인 장지연, 이종욱 전 의원 등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들도 친일행위자로 분류됐다.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로 알려졌지만 1914~1918년까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700여편의 글을 실었다. 조계종 종무총장과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욱 전 의원도 1977년 건국훈장이 추서됐지만 1941년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라.”는 통첩을 전국 사찰에 보낸 사료가 발견돼 친일 인사로 규정됐다. 편찬위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 군·경찰·헌병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박정희 전대통령 등 4389명 수록 친일인명사전 공개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친일 행각과 해방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돼 8일 공개됐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묘소 부근에서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자 4389명의 명단이 들어 있는 친일인명사전 3권을 공개했다. 이번 친일인명사전은 발간작업 이후 8년 만에 이뤄졌으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위암 장지연, 장면 전 부통령, 작곡가 안익태, 시인 서정주 등 각계 유명 인사들이 포함됐다. 그러나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등 3명은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수록 대상에서 빠졌다.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해 민족에 피해를 끼친 자를 친일파로 정의했다. 친일 행위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주요 기준으로 반복성, 중복성, 지속성도 고려됐다. 그동안 역사학자 등 150여명의 편찬위원들이 3000여종의 일제강점기 사료를 활용, 2만 5000여건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한 뒤 수록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처음 공개된 것을 바탕으로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언론인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20명이 포함된 것과 관련, “자료를 입수해 내용을 살펴본 뒤 신중하게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족이나 친인척들의 명예훼손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광고인 동탑산업훈장에 홍석규씨

    홍석규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회장이 3일 ‘2009 한국광고대회’에서 광고인 정부포상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권오용 SK 브랜드관리부문장은 산업포장을 받았다. 대회는 한국광고단체연합회 주최로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한편 대한민국광고대상 시상식에서는 일반인 가족을 모델로 섭외해 출산 장면 등을 광고로 제작한 웅진코웨이의 기업PR캠페인이 대상을 받았다. 또 오리콤이 제작한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1998년 이후 올해까지 12차례 입상, 최장수 단일 캠페인 기록을 세웠다. HS애드의 대한항공 캠페인은 잡지·TV·인터넷 등 9개 부문에서 수상, 최다 부문 수상작이 됐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낮엔 대학강사 밤엔 간첩 ‘17년 이중생활’

    해외 유학 중 북한 대남공작원에게 포섭돼 17년간 각종 군사기밀 등을 북한에 넘겨주고 거액의 공작금을 받은 대학 강사가 검거됐다. ●인도 유학때 포섭… 軍기밀 넘겨 수원지검 공안부(변창훈 부장검사)와 국정원은 경기도내 모 대학 강사 이모(37)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 편의제공·금품수수, 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은 이씨에게서 통신용 암호표 및 난수 해독 책자, 북에 제공한 군사자료 및 녹음자료 출력물, 북한 원전(原典) 등 30종 160점을 압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1992년 인도 델리대학 재학 중 북 ‘35호실’ 공작원 리진우에게 포섭된 뒤 93년과 95년 2차례 밀입북,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 밀입북 때에는 북한 공무여권을 사용했다. 이후 97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중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 9차례에 걸쳐 군 작전교범, 군사시설 위치 등을 리진우에게 전달하고 공작금으로 5만 600달러를 받았다. 이 공작금으로 인도 대학 학부와 국내 대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씨는 2006~2007년 민주평통 자문위원 신분으로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안보정세 설명회에 참석해 보이스레코더로 3급 비밀인 설명회 내용을 녹음하는 한편 수원공군비행장, 송탄미군비행장, 해병대사령부 등 군부대와 국회의사당과 미대사관 등 국가 중요시설의 GPS 좌표값 34개를 탐지해 그 자료를 북 공작원에게 전달했다. ●민주평통자문위원 신분으로 활동 이씨는 또 2006년 국회의사당 모 의원 사무실에서 국가기밀자료인 주외무관(駐外武官) 명단을 발견하고 몰래 가지고 나와 보관하고 있었다. 앞서 2001년 육군 모 사단 정훈장교로 복무 중 지상작전(육군 최상위 야전교범), 미작전요무령 등 군관련 자료 507종 5957쪽 분량을 CD로 제작해 북에 전달했다. 이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싱가포르에서 북 지도원에게서 황금색 노력훈장과 훈장증을 받았으며, 지령을 받고 기밀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2002년부터 매년 1회 한 번에 300~1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다. ●공작금으로 박사과정·정계진출 노려 그는 리진우에게서 “정계에 진출하라.”, “국회의원 또는 시장이 되라”는 권유를 받는 등 제도권에서 활동하며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 중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대전에서 고교를 졸업한 이씨는 경찰관 아버지 밑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했으며 대학진학에 실패한 뒤 인도로 유학갔다가 대남 공작원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을 빛낸 바리톤’ 고성현·최현수를 만난다

    ‘한국을 빛낸 바리톤’ 고성현·최현수를 만난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바리톤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마포아트센터는 새달 5일부터 선보이는 ‘한국을 빛낸 음악가’ 시리즈로, 세계가 극찬한 바리톤 고성현과 최현수의 무대를 준비했다. 풍부한 성량으로 역동적인 소리를 뿜어내는 고성현의 독창회로 시리즈를 시작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고성현에게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14년 만에 갖는 단독 리사이틀이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고성현은 이탈리아의 푸치니 국제 콩쿠르와 밀라노 국제 콩쿠르, 나비부인 국제 콩쿠르,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세계 유명극장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며, 그 공로로 난파음악상, 젊은 음악가상, 옥관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이날 공연에서 고성현은 헨델의 ‘그리운 나무 그늘’, 토스티의 ‘이별의 노래’, 슈베르트의 ‘그림자’, 김연준의 ‘청산에 살리라’, 도나우디의 ‘오 나의 사랑하는 님’ 등 바로크와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이어 12일에는 ‘바리톤의 시인’으로 불리는 최현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무대에 오른다.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각광받는 최현수는 1986년 이탈리아 베르디 콩쿠르와 마리오 델 모나코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사랑의 묘약’과 ‘루이자 밀러’에 함께 출연하며 미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1990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하고 차이콥스키상까지 거머쥐며 세계 정상의 실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국내에서도 옥관 문화훈장, 효시상, 난파음악상 등을 수상하며 최고의 음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카치니의 ‘아마릴리 내 사랑’, 파솔로의 ‘소망을 바꾸어라’, 한의 ‘클로리스에게’, 김동진의 ‘내 마음’, 김성태의 ‘동심초’, 브로츠키의 ‘그대는 내 사랑이기에’ 등 고전과 뮤지컬을 넘나드는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다. 한편 17일에는 소프라노 박미자(이화여대 성악과 교수)가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기품 있으면서 깔끔한 소프라노로 불리는 박미자는 스페인 자코로 아라갈 국제콩쿠르, 이탈리아 스파지오 무지카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는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류퉁의 꿈’, ‘춘향전’, ‘심청’ 등 다양한 오페라로 일본 도쿄국립가극장, 중국 텐진대극장 등에 오르며 아시아 오페라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음악가다. 문의 02-3274-860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어릴때부터 저축습관 몸에 배”

    “유년시절부터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요. 아직 미혼이라 수입을 부모님께서 관리해주고 계셔서, 부모님께서 대신 이 상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27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46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배우 장동건은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배우 김아중과 가수 이자연은 국무총리 표창을, 가수 이민우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김아중은 “초등학교 때 받아본 저축상을 두번째로 받게 됐다.”면서 “통장은 세어보진 않았지만, 10개는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에서는 훈장 1명, 포장 3명, 대통령표창 6명, 국무총리표창 11명, 금융위원회 위원장 표창 73명 등 총 94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조르주 루오는

    조르주 루오는

    │파리 문소영특파원│“조르주 루오(George Rouault·1871~1958년) 하면, 검고 굵은 선으로 외곽선을 그리는 작가를 연상하지만, 아주 특이한 화가이자 분류가 불가능한 작가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루오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야수파니 상징주의니 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인 화풍을 유지한 탓에 그는 현대에 와서는 점차 잊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루오는 생존에는 인상파 화가보다 더 유명했고 대접을 받았다. 1925년 레지옹도네르 훈장을 받았고, 1945년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48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1953년에 미국, 도쿄 등에서 전시를 했다. 1958년에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정도로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랑프는 “유럽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원자폭탄의 등장, 대량학살, 모든 가치가 붕괴된 상황에 빠졌을 때 루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가치, 연민, 신성, 숭고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루오는 가구 제조공의 아들로 1871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오노레 도미에의 석판화 작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는데, 루오는 “도미에에게 최초의 교육을 받았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14살 무렵부터 유리 제조공의 작업장에서 5년간 견습을 받는다. 유리 제조공으로서의 화려한 색깔과 검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해본 경험 등이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분석된다. 12월 한국 전시에도 루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1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891년에 루오는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해 정식 미술교육을 받는다. 그때 그는 야수파인 젊은 앙리 마티스와 알베르 마스케 등을 만나고,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의 총애를 받는다. 랑프는 “ 루오의 화풍은 전통적인 기법에서 출발했으나 귀스타프 모로와의 만남으로 결정적으로 바뀌었다.”면서 “당시 학교에서 만난 마티스, 마르케 등도 루오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에콜 데 보자르에서 램브란트 등의 영향이 워낙 강해서, 일부 학생들이 거장의 화풍을 흉내내 그리는 것에 만족했는데, 루오는 자신만의 길을 갔다는 설명이다. 루오의 특이한 점은 초기작품부터 나타난다는 것이 랑프의 설명이다. 1905년에 모로가 죽은 뒤 루오는 야수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는데, 루오가 다룬 주제를 보면, 창부, 서커스에 나오는 광대들이고, 색상은 야수파에 일부 동조했으나 어두운 측면이 남아 있었다. 반면 마티스 등 다른 작가들은 화려한 색채를 찾아서 떠났다는 것. 소외된 자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고난 즉, 남을 웃겨야 하지만 자신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창부나 광대 등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루오는 중기에 이르러 미제레레 판화연작(58개)이 주류를 이룬다. 1차대전 직후에 나타난 인간의 고난, 성경에서 나오는 것 등 성스러움과 세속의 주제를 뒤섞는다. 이 주제는 중기 이후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60세를 전후로 한 후기(1920~30년)에 루오 그림의 주제나 톤은 어둡지만, 색채가 폭발한다. 미술평론가 R 맥뮬렌(McMullen)의 글에 따르면 ‘죽기 10년 전까지 루오는 색조의 범위를 노란 색과 초록색 계통의 색까지 넓혔고, 초자연적인 분위기의 풍경화도 그렸다.’고 한다. 특히 풍경화, 성자, 광대에서 색깔이 폭발한다. 루오가 추구해온 숭고함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민의 주제가 살아있으면서, 숭고함의 경지에서 구도나 색채, 하모니를 중요하게 생각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루오의 일생에서 한 차례의 굴곡이 있었다. 다음은 앙겔라 랑프의 설명이다. 루오에게는 앙부르와즈 볼라르라는 후원자 겸 화상이 있었다. 볼라르는 고흐, 르느와르 등 인상파, 세잔, 피카소 등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볼라르는 루오에게 아틀리에도 빌려주고 거기서 제작된 모든 작품은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1939년에 볼라르가 갑작스레 죽었다. 그의 상속인들은 이미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루오의 작품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루오가 자신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아틀리에에 있는 작품들을 사인도 없는 미완성 상태에서 팔려고 했다. 그래서 루오가 재판을 벌였고, 1944년에 승소했다. 루오는 자신이 너무 나이가 들어서 반환된 작품을 다 완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공증인이 보는 데서 자신의 작품 315점을 불태웠다. 그리고 1958년 죽기 직전까지 그린 그림을 미망인이 1963년 국가에 기증했고, 10년 뒤 퐁피두의 수장고로 들어갔다. 소각되지 않고 루오의 손에서 살아남은 그 걸작들이 한국에서 12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셈이다. 당시 그림을 불태우던 루오의 모습은 예술의전당 전시장에서 흑백 기록영화 형태로 상영될 예정이다. symun@seoul.co.kr
  •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줄 수 있어 보람”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 줄 수 있어 보람”

    │도쿄 박홍기특파원│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재일 한국인 진창현(80)씨의 삶을 담은 일본 고교의 영어교과서 읽기부교재 단행본이 이르면 다음달 출판된다. 진씨는 세계에서 감독 및 검사 없이 바이올린을 제작할 수 있는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가운데 한명이다. ●어려움 딛고 세계 최고 오른 인생역정 진씨의 이야기는 지난해 4월 출판사 산유샤(三友社)의 고교 영어교과서 ‘코스모스(COSMOS) 영어Ⅱ’의 한 단원에서 9페이지에 걸쳐 ‘바이올린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교과서에 실린 것도, 부교재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도 진씨가 처음이다. 부교재 역시 산유샤에서 만들고 있다. 부교재는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좀더 자세하게 전달, 학습할 수 있도록 제작한 보조 교과서다. 출판사 담당직원 가와구치 유는 “국적을 떠나 꿈과 희망 속에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진씨의 인생역정은 많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면서 “진씨를 자세히 보여줄 수 없어 부독본(副讀本·읽기 부교재)을 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11월, 늦어도 12월에 나올 부교재는 48∼64페이지 분량이다. 산유샤가 지금껏 내놓은 영어 읽기 부교재의 인물은 헬렌 켈러, 테레사 수녀, 일본 여자마라토너 다카하시 나오코, 록밴드 비틀스뿐이다. 진씨는 이와 관련, “기쁘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자체가 보람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고생도 달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씨와 바이올린의 인연은 길고도 끈질기다. 결정적인 계기는 메이지대학 영문과 3학년 때다. 국적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장 이토카와 히데오 교수의 ‘바이올린의 신비’라는 강연을 들었다. 이토카와 교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 소리를 해명하는 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번뜩 떠올랐죠. 인간이 만들었는데….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현실의 벽은 높디 높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바이올린 제작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때문에 진열된 바이올린을 보고, 바이올린 공장의 창문으로 훔쳐보며 혼자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명장의 바이올린을 보기 위해 무대 뒤로 가 연주가에게 사정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음, 모양을 얻기 위해 수십번, 수백번의 과정을 거쳤다. 진씨는 “표본이 없으니 맘대로 생각하고 분석했다.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독창성이다.”라고 회고했다. 진씨의 초기 바이올린 값은 당시 가장 싼 4500엔(약 5만 8500원)짜리 보다 낮은 3000엔이었다. 진씨의 진가는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결정적으로 인정받았다. 6개 부문 중 5개 부문서 금메달을 땄다. 콩쿠르 사상 최다 금메달 기록이다. ●1년에 5~6개 주문제작… 150만엔 호가 진씨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 지금도 가고 있다. 보통사람인 만큼 수백배 노력했다. 그때마다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현재도 1년에 5~6개 정도의 바이올린을 주문 제작하고 있다. 바이올린 값은 150만엔을 호가한다. 정경화, 헨리크 셰링, 아이작 스턴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연주자들이 고객이다. 진씨는 “영감이 떠오르는 한 손을 놓지 않을 각오”라며 웃었다. 글ㆍ사진 hkpark@seoul.co.kr ●진창현씨는 ▲1929년 경북 김천 출생 ▲43년 14세 때 일본에 옴 ▲55년 메이지대 졸업 ▲76년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 5개 부문서 금메달 ▲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무감사(無監査) 마스터 메이커 칭호 ▲98년 일본문화진흥회에서 국제예술문화상 수상 ▲2008년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
  • [부고] 애국지사 장호강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애국지사 장호강 선생이 17일 별세했다. 90세. 선생은 1919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나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군 제24집단 군사령부 및 제29군사령부의 정보장교로 활동했다. 이후 광복군에 입대해 제3지대 본부 부관실에서 활동했다. 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제3지대가(歌)를 작곡·작사해 보급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만미 여사와 아들 영준(자영업)씨 등 2남1녀. 발인은 19일 오전 10시. 빈소 서울보라매병원. (02)870-2977.
  •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선정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월 작고한 연극평론가 한상철씨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하는 등 문화훈장 서훈자 24명과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 및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를 15일 발표했다. 훈장 서훈자에는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 사진작가 배병우씨, 디자이너 이영희 ㈜메종 드 이영희 대표, 가수 정훈희씨 등이 포함됐다.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자로는 연극배우 윤석화, 가수 김인순(예명 인순이)씨 등 6명이 뽑혔다. 장래가 촉망되는 20·30대 젊은 예술가들에게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로는 그룹 ‘소녀시대’, 영화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 피아니스트 김선욱, 미술작가 김기라씨 등 개인 8명 및 1개 그룹을 선정했다. 서훈과 시상은 17일 오전 10시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09년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이뤄진다.
  • [문화마당] 재즈의 계절/김동언 경희대 교수·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문화마당] 재즈의 계절/김동언 경희대 교수·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가을이 왔다. 다시 마음이 설렌다. 하늘은 드높고 바람은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열기와 습기를 날려 보낸다. 일상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이 떠나기에 제격인 시절이다. 이 산 저 산 곳곳에 붉게 단장한 단풍이 오라고 손짓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마음에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사람의 영혼을 키워준다.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이란 시에서 젊은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격랑의 근세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젊은 시인의 처연한 아픔을 보듬어 어루만져준 바람은 따뜻한 몇 방울의 피가 섞인 시를 잉태하게 했다. 이 시를 읽으면 시대의 아픔을 뚫고 태동한 재즈 음악이 떠오른다.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 노예, 아무런 원죄 없이 억울하게 살아야 했던 이들은 필연적으로 바람 같은 자유를 꿈꾸었을 것이다. 이들의 자유정신이 현대음악의 도도한 흐름을 주도한 재즈를 키워낸 팔 할을 맡았고, 바람의 자유정신은 장르와 인종과 국경을 넘어 다종다양한 음악적 표현과 양식을 수용하고 용해시켜 보다 넓은 예술 세계를 만들어 냈다. 재즈는 20세기 초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전문 음악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 넓은 의미로 보자면, 재즈는 20세기 이후를 관통하는 총체적 음악의 흐름을 표현하는 용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시원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이래 성행한 노예무역을 통해 강제로 미국으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음악과 만나게 된다. 고단한 노예의 삶을 버텨 가며 그들이 불렀던 노래들인 영가, 블루스, 노동요 등이 재즈의 모체가 되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음악적 특징과 감정 표현에서 시작한 재즈가 오늘날 세계 음악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재즈의 자유로운 정신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힘들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바람을 음악 속에 담는 한편 다른 음악 장르와 표현방식들을 해면체처럼 흡수하고 새롭게 녹여내는 엄청난 수용력과 탄력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즈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대음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힌데미트, 라벨을 비롯하여 거슈윈, 버르토크, 스트라빈스키 등 서양음악사에서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는 작곡가들의 재즈 작품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여러 문화의 높은 벽을 허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 역시 재즈와의 결합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바람처럼 막힌 것 없이 넘나드는 재즈의 자유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5일 한국 재즈음악계에 이례적인 사건이 있었다. 재즈가수 나윤선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의 대중가수가 외국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은 것은 매우 드믄 일이다. 그동안 재즈를 통해 프랑스와 한국 간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나윤선은 지난 2007년 미국 뉴욕의 재즈 공연장인 ‘재즈 앳 링컨 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콘서트를 열어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 독일 재즈 레이블 액트(ACT)에서 내놓은 앨범 ‘Voyage’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재즈=미국이라는 공식을 갈아치운 것이다. 때마침 15일부터 18일까지 경기도 가평에서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 맑고 신선한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재즈의 울림을 따라 끝 간 데 없이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김동언 경희대 교수·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
  • 소녀시대, 장관 표창 ‘2009 젊은 예술가상’ 영예

    소녀시대, 장관 표창 ‘2009 젊은 예술가상’ 영예

    소녀시대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표창하는 ‘200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다. 문화부는 15일 오전 2009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에 대한 문화훈장 서훈자와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 및 ‘200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등을 선정, 발표했다. 시상 내역 중 장래가 촉망되는 20~30대 젊은 예술가들에게 수여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의 대중예술부문에는 소녀시대가 영예를 안았다. 올해 수상자와 서훈대상자는 전국의 문화예술단체, 지방자치단체, 대학 및 일반국민으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아, 각 분야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후보자 공적심의·추천 및 정부 공적심사위원회 등을 거쳐 최종 확정했다. 영화부문에는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이 선정됐고 문학부문에는 김병곤 시인이 상을 받는다. 이들에게는 문화부장관 명의의 상창과 상금 500만원이 수여된다. 한편 시상 및 서훈은 오는 17일 오전 10시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는 ‘2009년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거행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관객 열정적… 서울은 기분좋은 도시”

    “제 음악을 좋아하고 제 무대에 박수를 보내는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지만, 정말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도시는 서울입니다.” 오는 20~2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팝스타 비욘세가 12일 국내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공연에 대한 설렘을 진하게 드러냈다. 그는 “2007년 월드 투어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 공연했던 아름다운 도시가 서울”이라면서 “정말 열정적이고 공연을 즐길 줄 아는 한국 관객들 덕분에 첫날 공연 뒤 밤새도록 신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고, 둘째날도 최고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연에 대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파워와 여성성이 모티프”라면서 “관객과 조금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 메인 무대와 별도로 스탠딩 객석 안에 무대를 마련했다. 안무, 의상, 영상, 조명 등 모든 부분에서 새롭고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분신인 샤샤 피어스로 변신하기 위해 3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해 미리 준비한다는 비욘세는 10㎝가 넘는 킬힐을 신고 안무 연습을 하는 것은 맞지만, 소문처럼 킬힐을 신고 러닝머신을 뛰지는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가끔 우리 댄서들이 오늘은 비욘세가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라면서 “투어를 앞두고 2개월 동안 매일 12시간씩 리허설을 해 훈장처럼 발에 물집이 생기고 멍이 들었다.”며 혹독한 준비 과정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과 관련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즐기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팝 문화에 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도 “디테일에 중점을 두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강력한 보컬리스트이자 작사·작곡도 할 수 있고 무대에서도 빛을 발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크렘린 발레단 예술감독 안드레이 페트로프 인터뷰

    크렘린 발레단 예술감독 안드레이 페트로프 인터뷰

    “평가는 공연이 끝난 뒤에….” 이 말에 그만큼 자신감이 묻어날 수 없다. 크렘린 발레단의 예술감독 안드레이 페트로프는 자신의 작품 ‘에스메랄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1층부터 10층까지 차근차근 올라가는 길목, 그 중간에 서 있을 뿐”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7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는 전막 초연하는 ‘에스메랄다’에 대해 “이번 작품은 원작에 충실하고, 드라마와 발레의 기교가 뛰어나다.”라고 소개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기본으로 한 ‘에스메랄다’는 쥘 페로, 마리우스 프티파 등 대안무가를 통해 재탄생을 거듭해 왔다. 페트로프는 기존의 작품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 2006년 러시아에서 첫선을 보였다. 갈라 공연이나 콩쿠르 레퍼토리로 채택될 정도로 구성과 기교가 탁월한 다이아나와 악테온 2인무를 비롯해 집시 춤, 에스메랄다와 페뷔스의 2인무 등이 이 작품에서 유명한 장면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 유명한 고전뿐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나 스네구로치카(눈의 요정) 같은 러시아 민담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다양하게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수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에스메랄다’를 꼽는다. 집시의 인생과 사랑, 억압에 맞서는 자유 의지 등이 매력적이란다. 페트로프는 20년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에 몸담은 발레 마스터 출신으로, 러시아의 상징인 크렘린 궁 옆에 1990년에 세워진 크렘린 극장의 창립부터 함께 했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유리 그리가로비치 등 옛 소련을 대표하는 안무가의 작품부터 20세기 초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작품들까지 폭넓은 공연 레퍼토리로, 6000석에 달하는 이 극장의 객석점유율은 무려 평균 85%를 유지한다. 그가 조국의 공로상,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 알레세이 2세의 훈장, 헝가리 문화공로상 등을 수상하며 러시아 최고의 예술감독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관객들이 중간에 나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짐짓 자신을 낮춘 그는 “이야기, 무용수, 음악 등 모든 게 훌륭해도 얼마나 즐기느냐는 결국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크렘린 발레단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피가로’를 한국에 소개할 기회도 갖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고] 헌법학 권위자 권영성교수

    한국 헌법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권영성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경남 함양 출신으로 1957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독일 괴팅겐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서울대 법대 교수를 시작으로 서울대 법학연구소장과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법률자문특별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9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옥분(고려대 교수)씨와 아들 오한, 딸 희경, 유미씨, 사위 이문석(우리은행 부부장), 김경환(NT리서치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8일 오전 6시30분. (02)2258-5957.
  • [부고] 소반 인간문화재 이인세씨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이인세 보유자가 6일 별세했다. 81세. 소반이란 음식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을 말한다. 고인은 전통공예인 소반 제작 기능의 전승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해 왔다. 1992년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지난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3남1녀가 있다. 발인 8일 오전 10시. (02)970-8444.
  • [부고] 애국지사 강백 선생 별세

    애국지사 강백 선생이 3일 별세했다. 83세. 1926년 9월 서울에서 출생한 선생은 1945년 7월 조선총독부 주최로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에 잠입해 2개의 폭탄을 터뜨려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김원순(85) 여사와 2남 2녀.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5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4묘역. (02)483-3320.
  • “北과 대화위해 원칙 훼손 안된다”

    “北과 대화위해 원칙 훼손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일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한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이 훼손돼선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제61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우리 군이 강하고 대응태세가 확고할 때 오히려 남북대화와 평화는 앞당겨질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비효율·무사안일 과감히 버려야 이 대통령은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내세우고 핵 문제 등으로 한반도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군은 한반도 안보 수호는 물론 성숙한 세계국가, 글로벌 코리아를 뒷받침하는 ‘고효율의 다기능 군’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세계와 안보 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노력을 잠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비효율과 낭비, 무사안일과 같은 낡은 관행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군은 굳이 싸우지 않고도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태세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우리 군은 ‘강한 군대’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강한 군대’의 기본 요건으로 ▲엄정한 군 기강 확립 ▲공정하고 투명한 병역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병영문화 등을 꼽았다. ●6·25 참전용사 4명에 무공훈장 이 대통령은 “정부는 전쟁 희생자의 유해발굴을 계속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드릴 것이며 전공을 세운 분들도 계속 찾아내 그 공훈을 기릴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에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국군의 날 행사는 ‘선진강군! 국민과 함께 미래로 세계로’를 주제로, 이 대통령 내외와 백선엽 예비역 대장 등 창군 원로와 국가유공자, 장병대표, 시민, 주한미군 등 3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6·25전쟁 당시 무공을 세우고도 훈장을 받지 못했던 예비역 육군 이등중사 도연청(78)옹 등 참전용사 4명에 대한 충무 및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식후행사에서는 특전사의 특공무술 시범과 집단 전술강하, 한·미 장병과 일반 스카이다이버 동호회원이 함께하는 고공강하가 펼쳐졌다. 코브라(AH-1S), 블랙호크(UH-60) 등 21대의 헬기와 T-50으로 새로 단장한 블랙이글스 및 KF-16 등 전투기 31대의 축하비행도 진행됐다. 이종락 안동환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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