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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 별세

    남양유업 창업주인 홍두영 명예회장이 17일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1925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 일본 와세다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 1·4후퇴 때 월남해 1964년 남양유업을 창업했다. 1963년 나선 외국 출장길에 외국의 분유산업을 목도한 뒤 낙농업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 고인은 “전쟁 직후 아기들에게 제대로 먹일 우유조차 없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기술로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낙농산업의 선구자’로 불린 고인은 이후 요구르트와 치즈 등 다양한 유제품을 선보이며 한국 낙농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남양유업은 고인의 독특한 경영철학 덕분에 무차입, 무분규, 무파벌, 무사옥의 ‘4무(無) 경영’을 달성했다. 고인은 철저한 장인정신과 정직한 기업정신으로 한국낙농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지송죽(80) 여사와 남양유업 회장인 장남 원식과 우식, 명식씨, 딸 영서, 영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98이다. (02) 2072-2014.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데뷔 20년 이병헌, 특별 다큐 나온다

    데뷔 20년 이병헌, 특별 다큐 나온다

    한류스타 이병헌이 다큐멘터리로 안방극장에 다시 돌아온다. KBS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이병헌의 지난 행보과 향후 비전을 조명하는 설 특집 다큐멘터리 ‘이병헌이 있다’를 오는 13일 밤 11시5분부터 60분간 방송한다. ’이병헌이 있다’는 지난 1991년 14기 공채탤런트로 처음 데뷔한 이후 20년간 활동해온 이병헌의 연기인생을 집중 조명한다. 특히 세계의 배우로 올라선 2010년 오늘의 이병헌을 상징하는 9개의 주제어 (Hollywood, 스톰 쉐도우, 아키타, 투혼, 브랜드‘이병헌’, 도쿄돔, 자랑스런 한국인, 훈장, FAN)로 섹션화해 다각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하루 1~2시간의 수면시간에 영양주사를 맞아가며 버텼던 KBS ‘아이리스’의 촬영과정을 비롯해 KBS연기대상 대상수상 후 차 안에서 가장 먼저 어머니께 전화해 사랑을 고백했던 사연 등 수많은 트로피와 팬들의 선물을 정리하며 숨가쁘게 달려온 이병헌의 20년상이 세세하게 공개된다. 또 배우 이병헌의 연기철학, 배우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이병헌의 인간미와 그를 바라보는 영화계, 문화계 관계자부터 해외에서 그를 스쳐간 수퍼마켓 주인, 호텔 종업원, 운전기사 등 평범한 시민들의 소소한 증언까지 이병헌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들도 다큐 안에 총망라됐다. 이번 프로그램을 지휘한 박서현 CP는 “배우로서 성실한 행보와 연기력으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 예술영화계, 그리고 헐리우드에까지 진출해 한국 배우의 이름을 알린 공로에 주목해 이병헌을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제작배경을 밝혔다.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하프타임]

    박건우 장애인 체육훈장 청룡장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보치아 2관왕에 올랐던 박건우가 체육훈장 최고의 영예인 청룡장을 받았다. 박건우는 1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열린 장애인 체육발전 유공자에 대한 훈·포장 전수식에서 베이징 패럴림픽 사격 2관왕 이지석 등과 함께 청룡장 영예를 안았다. 박건우는 뇌병변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임에도 베이징 패럴림픽에 한국 선수단 최연소로 출전해 보치아 개인·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밖에 베이징 패럴림픽 양궁 종목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땄던 이홍구, 이화숙 등 9명도 청룡장을 받았다. KBL 사무처 조직개편… 홍보 강화 한국농구연맹(KBL)은 사무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고 10일 밝혔다. 홍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홍보마케팅팀을 홍보팀으로 변경했고 경영관리팀, 경기운영팀, 업무지원 TF는 기존 형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경영관리팀장에는 업무지원 TF 김정훈 부장, 홍보팀장은 경영관리팀 장재홍 팀장이 맡는다. 이훈상 홍보마케팅팀장은 업무지원 TF로 옮겨 갔다.
  • [부고] 차중근 전 유한양행 사장 별세

    [부고] 차중근 전 유한양행 사장 별세

    차중근 전 유한양행 사장이 8일 새벽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65세. 고인은 1974년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 2003년 대표이사에 오르기까지 평생 제약 ‘외길’을 걸었다. 2003년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에 선정됐고, 2007년에는 소화기궤양 치료 신약을 개발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미화씨와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02)2258-5971.
  • [부고] 국악계 대부 만당 이혜구옹 별세

    국악학자 만당(晩堂) 이혜구옹이 30일 낮 12시25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101세. 서울대 음대 국악과 교수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한 고인은 국악을 학문으로 정립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최근까지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악계의 큰 어른 역할을 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국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며 국악과 인연을 맺었고, 대학 졸업 후 1932년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해 국악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 연구에 뛰어들었다. 광복 후 공보부 방송국장을 거쳐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를 신설, 초대 과장을 지내며 국악의 대학교육 시대를 열었다. 1974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 황준연 서울대 교수, 송방송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수천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며 1970년대 들어 만들어진 전국 20여개 국악 대학의 교수는 모두 그의 제자여서 국악과 졸업생은 모조리 만당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양대학교 등의 객원 교수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1954년 한국국악학회를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음악연구’(1957년) ‘국역 악학궤범’(1980) ‘한국음악서설’(1967) ‘한국음악논고’(1995) 등 기념비적 저서를 내놓으면서 국악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인은 국악발전에 대한 기여로 생전에 대한민국예술원상, 국민훈장, 보관문화훈장,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2001년에는 방송인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 여사와 창복(안과의사, 재미), 영복(사업), 대복(전 창문여중 교장), 영숙, 영혜 등 3남 2녀가 있다. 국악계는 고인의 이런 업적을 기려 장례를 국악인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초동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열린다. 장지는 천안 목천읍 도장리 선산. (02)3410-6915.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주류가 된 아웃사이더 작가들

    세계 문학의 주변부, 이른바 아웃사이더 작가들의 입을 통해 인류 보편을 사유하게 한다. 인종 문제, 여성 문제, 역사적 사실의 문제 등 주변부의 특수성으로 인식되던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핵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문학평론가 겸 번역가인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지난 10년간 직접 인터뷰했던 세계의 유명 작가 9명의 얘기를 담은 ‘문학의 거장들’(현대문학 펴냄)을 내놓았다. 왕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대,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등으로 머무는 동안 현지 작가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보완했다. 공교롭게 혹은 필연적으로, 9명의 작가는 모두 아웃사이더들이다. 나딘 고디머와 J M 쿠체, 안드레 브링크는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제3세계에 속한 작가다. 또한 흑인의 대륙에 사는 백인 작가들이다. 반면 찰스 존슨, 낸시 롤스, 나타샤 트레서웨이, 하진(哈), 할레드 호세이니 등은 모두 미국에 사는 유색인종 작가다. 세나 지터 내스런드는 작품을 통해 여성성에 천착해 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적 비의(秘意)를 좇았던 것이 인류의 보편적 사유로 승화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디머는 1991년에, 쿠체는 2003년에 각각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브링크는 마틴 루터 킹 기념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받았고 1979년 이후 계속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 출신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으며 미국 문단의 중심에 우뚝 선 하진이며 불교적 철학을 작품 속에 담아내 전미도서상, 미국학술원상 등을 받은 흑인 소설가 존스, 퓰리처상을 받은 트레서웨이 등이 문학의 역할, 작가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쉬 만나기 힘든 이들도 포함된 만큼 함께 곁들여진 왕 교수의 작품 해설, 작가론도 눈에 쏙쏙 박힌다. 왕 교수는 “주변부에 해당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일은 내게는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아가씨와 건달들’ 진 시몬스 하늘로

    [부고] ‘아가씨와 건달들’ 진 시몬스 하늘로

    은막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큰 인기를 모았던 영국 출신 여배우 진 시몬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자택에서 폐암으로 타계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81세. 1944년 영국 영화 ‘기브 어스 더 문’으로 데뷔한 시몬즈는 ‘위대한 유산’ ‘검은 수선화’ 등의 영화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1948년 ‘햄릿’에서 오필리아역을 열연해 일약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어 ‘블루 라군’ ‘비련의 공주 엘리자베스’에 출연했으며, 1955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스파르타쿠스’ ‘해피엔딩’ 등에서 열연, 1970년대 초까지 영화계를 풍미한 그는 브라운관에서도 맹활약해 1983년 ‘가시나무새’로 에미상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에 출연한데 이어 2004년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나이 든 소피역을 더빙하는 등 최근까지 연기자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200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OBE) 작위를 받기도 했다. 시몬스는 1950년 할리우드에 진출한 직후 영국 출신 배우 스튜어트 그렌저와 결혼해 1960년 이혼하고 영화감독 리처드 브룩스와 재혼했지만 1977년 다시 이혼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인순창선생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애국지사 인순창 선생이 23일 별세했다. 91세.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선생은 중국군 군통국(軍統局) 요원으로 근무하다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했다. 이후 제9전구 적지공작원으로 베이징 등지에서 공작 활동을 했다. 1982년에는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은빈 여사와 아들 영남(목사), 영호(외국거주)씨가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7시30분. 빈소는 서울대병원. (02)2072-2011.
  • 살신성인 두 해군영웅 48년만에 부활

    살신성인 두 해군영웅 48년만에 부활

    48년 전 바다에 빠진 전우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영우(왼쪽) 중위와 김태원(오른쪽) 중사의 흉상 제막식이 22일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에서 열렸다. 낙동함 승조원이었던 이 중위와 김 중사는 1962년 1월1일 인천 외항에서, 함정에 묶여 있다가 풍랑에 떨어져 나간 소형보트를 잡으려고 갑판병이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에 휩쓸리자, 갑판병을 구하려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사투 끝에 갑판병은 구했지만, 두 사람은 숨지고 말았다.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막식에는 당시 한국함대사령부의 군종과장으로 장례식을 집도한 윤종원(79·예비역 해군 중령) 목사가 유가족을 대신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중위의 형인 이광우(74)씨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다. 윤 목사는 “김 중사는 6·25 전쟁 직후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김귀연씨와 월남해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아직 혈육을 찾지 못하고, 훈장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늘 제막식이 알려져 하루빨리 김 중사의 여동생을 찾아 이 자랑스러운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해군교육사령관 김정두 중장 주관으로 열린 제막식에는 해군 장병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중위의 흉상은 장교생활관에, 김 중사의 흉상은 갑판부사관이 교육받는 제승관에 각각 세워졌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부고] 4代 걸쳐 한국사랑… 린튼 목사 별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에서 4대에 걸쳐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온 미국의 유명한 선교사 집안의 드와이트 린튼(한국명 인도아) 목사가 11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별세했다. 82세. 린튼 목사는 이날밤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편으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의 외손자로, 한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다 은퇴한 뒤 게인즈빌에 머물러왔다. 한국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1952년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 목사는 25년간 한국에 머물며 의료봉사활동에 전념했다. 1973~1978년에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린튼 목사는 린튼 가문이 지난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인도주의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FK)’을 설립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북한에 의약품과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인도적 지원활동을 펼쳐왔다. 린튼 목사의 외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는 지난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뒤 나주와 목포, 광주 등 전라도 지방에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유진 벨 선교사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 목사는 장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1959년 대전 한남대를 설립했다. 윌리엄 린튼 목사의 막내 아들이 이번에 별세한 드와이트 목사다. 고인의 형인 휴 목사도 한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해오다 교통사고로 숨져 전남 순천에 안장됐다. 부인인 베티(한국명 인애자) 여사도 순천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하며 30년이상 결핵퇴치사업에 앞장선 공로로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에 머물고 있다. 휴 목사의 장남과 차남이 1994년 유진벨재단을 세워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하는 스티브 린튼(한국명 인세반)과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 박사이다. kmkim@seoul.co.kr
  • SK케미칼 동탑산업훈장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는 8일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제4회 도농교류 농촌사랑대상 시상식을 열고 ㈜SK케미칼에 동탑산업훈장을 시상했다.
  • 연예예술상 대상 이용식 화관문화훈장 받아

    코미디언 이용식(58)이 지난 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상과 함께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 시상식에서 올해 최우수 프로그램상은 MBC의 ‘세바퀴’가 받았으며, 가수상은 그룹 FT아일랜드와 카라, 성인가요 가수상은 박현빈과 장윤정, 희극인상은 유세윤과 정주리에게 돌아갔다. TV 진행상은 송해와 송은이, 라디오 진행상은 최양락과 태연이 차지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 별세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이 4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1954년 삼화인쇄·출판사를 설립해 50여년간 운영해온 고인은 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12·13·14대 중소기업중앙회장, 세계중소기업연맹(WASME) 총재 등을 역임했다.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 보관문화훈장, 5·16 민족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장남 유성근 삼화인쇄 사장과 유항근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은 8일 오전 9시 중소기업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 양평공원묘지. (02)3010-2000.
  • 백호 서울시 언론담당관 녹조훈장

    백호 서울시 언론담당관이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한다. 31일 서울시에 따르면 백 담당관은 120 다산콜센터 활성화 등 각종 시정 홍보 분야에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는다.
  • “연말연시엔 늘… 그대있어 든든”

    “연말연시엔 늘… 그대있어 든든”

    “대한민국 2%라는 자부심으로 철통경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31일 경기 연천군 서부전선 최전방 육군 비룡부대엔 연말연시 분위기가 없었다. GOP(일반전초) 경계에 나서는 장병들에게 2009년 12월31일은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특출한 날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임무를 완수해야 할 또 하나의 하루에 불과했다. 전 국민 가운데 단 2%만이 최전방 GOP 병영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병들의 남다른 자부심이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겨울 한복판의 강추위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비룡부대는 서울 시내까지 차로 1시간 거리에 인접해 있다. 1974년 11월 발견된 북한의 제1땅굴, 앞서 1968년 청와대 습격을 노린 김신조 일당의 침투 경로가 모두 비룡부대 작전지역 안에 있는 것도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룡부대 부대원 모두가 ‘내가 뚫리면 수도가 뚫린다.’는 긴장감을 한시도 떨칠 수 없다. 이노근(20) 일병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왼쪽 하반신이 고관절 괴사라는 희귀병에 걸려 부대장에게서 의가사 제대를 권고받았지만 ‘철책의 매력’에 빠져 만기 제대를 자진 희망했다. 비룡부대 GOP 중에서 북측 GP(휴전선 감시 초소)와 가장 가까운 9소초의 본격적인 하루는 해질녘에 시작된다. 도시보다 이른 어둠을 틈타 준동하는 적의 움직임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명이 올 때까지 쉴 새없이 이어지는 야간 경계 근무는 GOP근무의 골간이다. 야간작전 투입은 실탄 지급이 포함된 군장 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비 점검은 물론 경계·교전 수칙 등을 되새기며 군기를 다잡는다. 이어 철책 투입은 철책을 점검하며 적의 침투 흔적이 있는지를 살피는 게 첫 번째 임무다. 뒤이어 조별 초소 경계근무와 밀어내기식 교대근무가 겨울 밤을 지새우며 반복된다. 칠흑같은 어둠, 옷깃을 파고드는 송곳 바람, 시야와 이동에 장애가 되는 폭설조차도 단 한 번 꺾지 못한 GOP 핵심 임무는 이렇게 두 해가 맞닿는 자정을 넘겨 새해 첫 해가 떠오를 때까지도 반복됐다.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자원입대한 한상희(20) 이병은 “때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가고 있다.”며 의젓함을 드러냈다. GOP근무는 1년 단위로 교대된다. 한 부대가 한 번 투입되면 1년내내 반복적인 철책근무가 이어진다. 면회도 허락되지 않는다. 인터넷도 이용할 수 없다. 무료한 일상에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이 답답할 법도 하지만 불만은 그리 높지 않다. 9소초장이자 병사들의 맏형격인 손광일 소위는 “이병이든 병장이든 모두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 더 의지를 하게 된다.”며 끈끈한 전우애를 자랑한다. 고된 GOP생활에는 보상도 따른다. 개인별 침대가 지급되는 최신식 막사와 질 좋은 부식은 기본이다. 정수기, 전기 난방기, 드럼세탁기까지 완비돼 있다. 외주업체가 가져다 놓은 자동 빨래 건조기도 이용할 수 있다. 모두 내무반 생활의 피로감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다. 다만 충성클럽(매점·PX)이 없다는 점이 병사들로서는 아쉽다. 1주일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순회 PX가 고작이다. 병사들은 이를 ‘황금마차’란 애칭으로 부른다. 상승부대 정훈장교 이의진 중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황금마차의 인기는 최고”라면서 “다만 GOP 근무병들은 제한된 이용횟수 때문에 ‘담배·캔커피 사재기’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겨울에는 낮시간대 반짝 휴식을 만끽할 수 없는 제약이 따른다. 폭설이 내리면 보급차량이 접근할 수 없어 야간 근무병도 제설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투정이 나올 법도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인 걸 알기에 불만이 많지는 않다. 잠시만 히터를 벗어나도 추위가 무서운 기자는 젊은 그들의 인내심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비룡부대 장병들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 있는 젊은이들보다 카리스마 넘치고 멋져 보였다는 점을 고백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아카데미상 11개 받은 것보다 훨씬 기뻐”

    “아카데미상 11개 받은 것보다 훨씬 기뻐”

    “아카데미상 11개 받은 것보다 훨씬 기쁘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48) 감독을 앞으로는 ‘피터 경(卿)’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잭슨 감독이 조국 뉴질랜드의 신년 서훈 대상에 들어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뉴질랜드 헤럴드 등 현지언론이 31일 보도했다. 잭슨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다. 2005년 아카데미 영화상을 받았을 때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런 영광을 준 나의 조국 뉴질랜드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2002년에 공로훈장을 받았던 잭슨 감독은 뉴질랜드 영화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게됐다고 뉴질랜드 정부는 밝혔다. 잭슨 감독은 판타지 영화의 새 역사를 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 이후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찾는 인기 촬영지가 됐다. 그는 2003년 영화 후반작업 스튜디오인 ´파크로드 프로덕션´을 설립, 뉴질랜드 영화산업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학교와 자선단체, 각종 지역 영화제를 후원해 키위(뉴질랜드인의 별칭)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이달 초 자신의 최신작 ‘러블리 본즈’를 들고 고국을 찾았던 잭슨 감독은 “8살 때 부모님의 채소밭에서 전쟁영화를 찍으며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면서 “기사 작위는 영화 스태프들과 현대 뉴질랜드 영화를 개척한 선배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총리를 세 차례 역임하고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로 자리를 옮긴 헬렌 클라크 전 총리는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가장 큰 뉴질랜드 생존 인물 20명만 받는 뉴질랜드 최고훈장인 ‘뉴질랜드 훈장’ 수상자 그룹에 합류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위기의 2009-희망을 만든 사람들] 대청해전 승리 이끈 김상훈 대위

    [위기의 2009-희망을 만든 사람들] 대청해전 승리 이끈 김상훈 대위

    “어떠한 상황에 오더라도 이에 대한 완벽한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 승전의 주요인입니다.” 지난 11월10일 북한군 등산곶 385호와의 교전을 승리로 이끈 해군 고속정 ‘참수리 325호’ 정장 김상훈 대위는 27일 승전을 이룬 특별한 비법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 내내 “꾸준한 정신교육과 체계적인 훈련”을 최고의 비결로 꼽았다. ●어떤 위기에도 평상심 유지 그는 “출동 명령을 받고, 또 교전을 시작하면서 해군사관 생도훈인 ‘포연탄우(砲煙彈雨·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위기상황) 속에서 부하를 지휘할 수 있는가.’를 계속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생도 시절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전통인 럭비대항전 선수로 발탁돼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어떤 위기를 맞더라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 위기 속 기회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그만의 노하우를 럭비에 비유해 설명했다. 일촉즉발, 단 한 발의 총탄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장에 서 있는 그의 신념은 참수리 325호의 승조원과 후방의 국민 안위를 담보하는 든든한 군인의 표상이 됐다. 지난 10일에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北 다시 도발해도 승전 자신 하지만 대청해전 이후 그가 지키는 백령도·대청도·연평도 인근 해는 최근 더욱 짙은 전운에 휘감겨 있다. 북한 해군사령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수역과 관련, “우리(북한)의 해안 및 섬 포병 구분대(대대급 이하 부대단위)들의 평시 해상 사격구역으로 선포한다.”며 긴장도를 높였다.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된 김 대위는 “지금까지 우리 해군은 북한의 예상되는 어떠한 도발에도 만반의 준비를 해왔고, 그 결과로 대청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면서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지 현장에서 종결해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구로구, 소상공인 대회서 대통령상

    서울 구로구가 ‘2009 전국 소기업·소상공인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전국 소기업·소상공인 대회는 우수 소기업과 소상공인, 발전 유공자 등을 표창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이 주최하는 행사다. 매년 전국 소기업과 상공인, 지원단체를 심사해 훈장, 산업포장,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을 수여한다.구로구는 이 가운데 유공단체 부문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울산 소상공인지원센터(지식경제부 장관상)와 경상북도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한국인터넷PC방 협동조합(이상 중소기업청장 표창)도 유공단체로 꼽혔다.중소기업청은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소기업과 소상공인 육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구로구는 2002년 전국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소상공인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자금지원에서 경영상담까지 ‘원스톱 지원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소상공인 무담보 신용대출 8억 1000만원, 중소기업 육성기금 8억 500만원을 지원했다. 또 세무, 회계, 노무 등에 대한 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하고 취업박람회 등을 개최해 왔다. 시상식은 오는 28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된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여기자 ‘-20도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가다 ①

    여기자 ‘-20도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가다 ①

    우스갯소리로 첫 키스와 군대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첫 키스는 평생의 추억이 되지만 군대에서 고생한 기억 역시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에 훈장처럼 새겨진다고 예비역들은 입을 모은다. 그 중에서도 야외에서 4박 5일 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혹한기 훈련은 예비역 병사들에게는 가위질로도 도려낼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다. 하루 종일 군화 속 언 발을 동동 굴려 봤거나 새벽녘 차가운 서리에 맞으며 잠이 깨어 본 사람이라면 찬 바람이 부는 계절만 와도 당시 기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혹한기 훈련은 겨울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지만 영하의 기온에, 씻지도 배불리 먹지도 심지어 제대로 ‘싸지도’ 못하는 극한 상황에 놓인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존 전쟁이다. 때문에 예비역들은 패기 넘치게 전 훈련과정을 소화하고도 시쳇말로 군대 생활 최고의 ‘개고생’으로 혹한기 훈련을 기억하기도 한다. 본지 여기자는 엄동 속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병사들의 노고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혹한기 훈련에 직접 참여했다. 17일부터 훈련 중이던 30사단 91여단 소대에 합류해 병사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을 받고 텐트에서 자며 혹한기 훈련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왔다. 훈련 내용을 2편에 걸쳐 연재한다. ◆ 군사훈련, 생애 두번째 경험 <첫째날 오전 9시 30분> 천하의 미실도 예측 못한 기습적인 한파였다. 달력에 표시된 훈련 날짜가 다가올 수록 기온은 매섭게 내려가더니 취재 당일인 18일이 되자 급기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 오전 9시 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야전지휘소에 도착했을 때 기온계 수온은 영하 10도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홍성우 대령은 “날짜를 제대로 잡고 오셨다.”며 호탕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다. 전날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는데 이날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인터넷 고무신 카페인 ‘짬밥같이먹기’ 회원들이 적극추천한 대로 내복 두 벌을 껴입고 핫팩 여러 개를 준비했지만 추위에 대한 공포에 벌써부터 턱이 덜덜 떨렸다. 이날 기자는 생애 두번 째로 군복을 입어봤다. 지난 10월 부사관 훈련학교에서 취재 차 유격훈련을 받았을 때에 이어 두번째 하는 경험이다 보니 이번에는 꽤 능숙하게 갈아 입을 수 있었다. 남자 동기들에게 그 장점에 대해 익히 전해 들었던 군용 점퍼인 일명 ‘깔깔이’를 입어보니 생각보다 재질이 부드럽고 보온력도 뛰어났다. ◆ 병사들과의 떨리는 대면식 <오전 10시> 야전지휘소에서 정훈 장교인 이선경 중위와 함께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무건리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소대원들과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3면을 감싸고 있는 훈련장에서 5분 여를 기다렸을까. 야수의 울음소리처럼 묵직한 굉음을 내며 장갑차 넉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 위용을 드러냈다. 장갑차 한 대당 1개 분대 9명씩, 서른 명 남짓한 병사들이 장갑차에서 내렸다. 얼굴에 위장을 한 병사들은 목도리와 귀마개, 두꺼운 장갑 등으로 추위에 맞선 모습이었다. 소대를 이끄는 윤용훈 중위와 인사를 나눈 뒤 병사들과 덜리는 첫 대면식을 가졌다. 남동생과 같은 건강한 청년들을 보니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영하의 추위도 녹일 것 같은 병사들을 뜨거운 눈빛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걸 느꼈다. 간단하게 소개를 마친 뒤 분대장인 김영진 병장의 도움을 받아 얼굴에 위장크림을 발랐다. 요즘 부쩍 는 눈가의 주름이 신경이 쓰였지만 얼굴을 삼색으로 칠하니 진짜 군인이 된 것 같은 사명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 날다람쥐처럼 뛰어오르고 싶었으나…<오전 10시 30분> 곧바로 이어진 임무는 야산 수색이었다. 세워둔 장갑차 바로 앞에 서 있는 야산을 민첩하게 수색해 물론 가상이지만 적군을 찾아내는 것이 훈련 목표다. 고등학교 2학년 체력장 때 세운 17초 대의 100m 달리기 ‘공식’ 기록으로 늘 큰소리 쳐왔으니 스피드만큼은 다른 병사들에게 질 수 없었다. 다른 병사와 5m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상체를 낮춘 자세로 신속하게 정상까지 수색하는 것이 관건이다. 생각 같아서 날다람쥐처럼 폴짝폴짝 산을 타고 싶었으나 과도하게 옷을 껴입은 탓에 딱 추억의 개그코너 ‘큰 집 사람들’처럼 뒤뚱거리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서리를 잔뜩 머금고 얼어버린 낙엽을 밟고 미끄러지는 굴욕을 맛봤다. ‘뛰다→넘어지다→일어나다→뒤뚱거리다’를 반복한 지 얼마 안되서 몸이 달아올라 뜨거워 졌다. 불과 30분 전만해도 턱이 흔들리도록 떨었는데 추위도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을 정복(?)한 뒤 다시 추억의 ‘큰 집 사람들’처럼 뒤뚱거리며 내려오니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찬 공기가 목구멍으로 전해지자 더운 날씨 속에 받았던 유격훈련과는 또 다른 상쾌함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 전투식량으로 한 끼 <오후 1시> 임무를 마치고 다시 장갑차로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조종수 1명과 병사 2명이 검게 칠한 얼굴에서 유독 하얗게 보이는 눈을 굴리며 장갑차 주변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배고픈 병사들의 지친 기색을 눈치챈 소대장은 “점심 전까지 낙엽이나 갈대로 장갑차를 위장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장갑차 위장을 마치니 배의 꼬르륵 소리는 좀 더 커졌다. 배고픔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던 기자는 점심 메뉴가 잡채밥이라는 소리에 한층 더 흥분해 3일 배를 곯은 짐승처럼 눈을 이글거렸다. 뜨거운 물을 붓고 몇 분이 지나니 마술사가 마법을 부린듯 딱딱했던 봉투 안 내용물이 한 끼 식사로 변해 있었다. 한 입 떠서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는 잡채밥 속 잡채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짭짤한 양념을 밥에 비벼 먹을 만 했다. “양이 많으니 못 먹겠으면 두 끼에 나눠 먹어도 된다.”는 정훈 장교의 조언을 사뿐히 넘기고 “맛있다.”를 연발하며 게 눈 감추듯 먹으니 병사들은 “체력은 몰라도 식성은 하나는 군대 체질”이라고 농을 던졌다. 전투식량을 가뿐하게 비우고 나니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절실하게 생각났다. 아쉬운 대로 냉수로 목을 축여야 겠다는 생각에 미리 채워온 수통 뚜껑을 열었더니 물이 꽝꽝 얼어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까부터 병사들이 “수통에 물 얼지 않은 사람 물 좀 달라.”며 열심히 물 동냥을 하던 이유가 있었나 보다. ◆ 장갑차 기동 훈련 <오후 2시 30분> 점심 식사를 모두 마치자 혹한기의 불청객인 한기가 찾아왔다. 훈련할 때 등과 발 등에 났던 땀이 차가운 바람에 식자 엄청난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전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군화 속 발은 꽝꽝 얼어 감각이 없었고 너무 움츠렸던 나머지 어깨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부위가 뻗뻗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기동 명령이 떨어졌다. 전 병력이 또 다른 진지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일반 보병은 걸어서 이동해야 하나 기계화 부대는 장갑차를 이용해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다. 훈련 받는 병사 입장에서야 지옥 같은 행군을 피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지만 홍성우 대령에 따르면 장갑차로 인한 불의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더욱 철저한 정신 훈련이 필요하다. 전 대원이 탑승했다고 확인되자 다른 기계화 보병 소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다른 진지로 이동했다. 소대장은 특별히 부조종수 자리를 초짜 병사인 기자에게 내주는 배려를 해줬다. “아마 얼굴이 많이 따가울 겁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조종수인 차원석 병장이 장갑차를 조종하자 비교적 좁은 장갑차 안에는 동굴 속 메아리처럼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언 땅 위를 움직이다 보니 장갑차는 요동 쳤고 그 안에 있는 병사들 역시 손잡이를 붙잡고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부조종수는 장갑차에 몸을 반쯤 뺀 상태로 주변 상황을 주시하며 특별한 무전 마이크로 조종수에게 말해주면 되는데 장갑차를 타보기는 커녕 두눈으로는 처음 본 기자는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즐겼다. 뒤늦었지만 본분을 잊었던 점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하고 싶다. 파주=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동영상=김상인 VJ bowwow@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사상생·일자리 창출 215명 포상

    노동부는 21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2009년 노사 상생협력 및 일자리 창출 지원 유공 정부포상 합동 시상식’을 열고 215명에게 대통령 표창 등을 수여했다.노사 상생협력 부문에서는 철강업계 최초로 기존 3조 3교대에서 4조 2교대로 근무 체계를 전환, 임금 감축 없이 신규인력 100명을 증원한 대한제강 등 7곳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3년 연속 노사화합 공동선언을 이끌어 낸 보해양조 임건우 회장과 지역 노사민정 협력 활성화에 공헌한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박대수 의장을 비롯한 8명이 훈장을 받는 등 119명이 노사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일자리창출 지원 부문에서는 은행권 최초로 취업지원센터를 설립, 운영한 부산은행 등 9개 단체가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또 금융권 처음으로 임금 동결에 합의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양병민 위원장 등 3명이 정부 훈장을 받는 등 96명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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