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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경계 거부하고 오로지 사랑을 실천한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세상의 경계 거부하고 오로지 사랑을 실천한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테레사 수녀(1910~1997)는 알바니아계 부모 사이에서 마케도니아(옛 유고연방)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주된 활동무대는 인도 콜카타였다. 생전 국적 등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스스로 밝혔듯, 그는 “신앙으로는 가톨릭 수녀이며, 소명으로는 온 세상에 속하며, 마음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던” 이였다. 인종, 민족, 국가, 이념 등 세속의 모든 경계짓기를 거부한 채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교황청 기념미사 등 각국서 행사 오는 26일 그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각종 학술행사, 전시회 등이 잇달아 열린다. 국내에서도 그의 일대기와 삶의 흔적, 기도문, 대화록 등을 담은 책들이 나와 헌신적인 삶을 돌아보게 한다. 테레사 수녀가 50여년 동안 이끌었던 인도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 본부에서 기념미사가 거행되고, 이탈리아 로마교황청에서는 기념미사가 봉헌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필리핀 등에서도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각종 전시회와 학술행사가 열린다. 미국, 오스트리아, 유럽 일부 국가는 기념우표와 기념주화 등도 발행할 예정이다. 수녀의 고향 마케도니아와 핏줄을 나눈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에서도 사진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어둠속 믿음’ 등 일대기 펴내 국내에서는 일대기를 다룬 책들이 우선 눈에 띈다. ‘마더 데레사-어둠 속 믿음’(바오로딸 펴냄)은 테레사 수녀의 탄생부터 시복(諡福·성자 전 단계인 복자로 인정하는 가톨릭 절차)까지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에 대한 비판까지 모두 다루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성녀로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번민을 계속했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그의 활동이 가톨릭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을 뿐, 독재자와 사기꾼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신화일 뿐 ”이라고 폄하한 시선 등까지도 포함했다. ‘마더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시그마북스 펴냄)은 테레사 수녀의 초기 활동과 육성 등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게 해 그에 대한 추억을 더욱 애틋하게 한다. ‘우리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민음인 펴냄)는 테레사 수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에피소드가 담긴 전기다. 테레사 수녀의 고해성사 신부이자 통역으로 일했던 레오 마스부르크 신부가 썼기에 더욱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는 화장실마다 꼭 청소하던 모습,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지옥불에서 한 사람씩 영혼을 구해 달라며 기도하던 모습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고해성사 신부가 쓴 전기도 출간 또한 테레사 수녀가 직접 쓴 에세이집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샘터 펴냄)은 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수녀 이해인이 1997년 번역해서 더욱 화제였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1980년에는 인도의 최고 시민훈장인 바라트 라트나, 1985년 미국 최고 시민상인 자유의 메달, 1996년에는 미국 명예시민권을 받았다. 1981년과 1988년에는 한국을 찾아 사랑의 선교회 활동을 점검하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악마를 보았다’로 5년만에 상업영화 복귀한 최민식

    ‘악마를 보았다’로 5년만에 상업영화 복귀한 최민식

    요즘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다. 연쇄살인범 경철에게 약혼녀를 잃은 수현(이병헌)의 복수극을 다뤘다. 노골적이고 잔인한 장면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연쇄살인범 역의 최민식(48)에게 가장 먼저 눈이 간다. 섬뜩한 연기력은 차치하더라도 5년만에 상업영화로 컴백한 반가움이 앞선다. 16일 서울 태평로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낫이라도 들고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농을 건네자 “아까 치워놨다.”고 받아친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노련함이 관록의 배우답다. 스크린에서는 지독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그이지만, 현실에서는 스타의 권위의식 따윈 찾아보기 어렵다. 그와의 대화를 주요 키워드로 풀어본다. ●5년간의 공백과 군대 우선 안부가 궁금했다. 지난 5년간 어지간히 마음 고생을 했을 터이니 말이다. 최민식은 2006년 정부의 스크린쿼터(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 방침에 항의하며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했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그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많지 않았다. 자의반 타의반 연극무대와 저예산 영화를 찍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지난 5년간) 정말 배운 게 많다. 후배들이 군대 갈 때 마치 배우인생 끝난 것처럼 낙담들을 많이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 배우는 평생 직업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정년퇴임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웃음). 난 뭐든 해 보라고 조언한다. 미친 듯 사랑도 하고, 술 먹고 싸움질도 해 보고…. 치열한 경험은 배우에게 큰 자산이다. 나 역시 5년간 그런 경험을 한 거고.” 좀 더 구체적으로 ‘경험’의 실체를 물고 늘어졌다. “반성과 동시에 자부심의 시간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행도 하고 연극도 매일 보러 다녔단다. 오대산 월정사나 상원사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다. 바쁘게 계속 연기를 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수많은 사람들과 술판을 벌이며 소중한 연도 맺었다. “배터리 충전 확실히 했다. 이제 달릴 차례다.” ●유영철과 장경철 아뿔싸. 과거사로 시간을 너무 끌었다. 영화 얘기를 아직 꺼내지도 못 했으니 말이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서둘러 물었다. 박훈정 작가의 시나리오 ‘아열대의 밤’을 보고 필이 꽂혀 버린 최민식. 갑자기 김지운 감독이 떠올라 연락을 했다. “그럼 배우가 감독을 캐스팅한 건가.”라는 추임새에 “아유, 캐스팅은 무슨…. 제안이다.”라며 웃는다. 처음엔 이병헌이 맡았던 수현 역을 탐냈다고 한다. 악마성이 전염되는 과정에 매력을 느껴서였다고. 그런데 김 감독이 가로막고 나섰다. “수현은 멋있는 캐릭터잖아. 그냥 최 선배가 연쇄살인범하지?”라면서. 최민식은 수소문 끝에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조사한 형사를 직접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캐릭터를 좀 더 실감나게 살리려는 욕심에서였는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잔인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의 잔인함은 현실로 옮겨오면 ‘새발의 피’일 뿐이라는 최민식. ●잔인함과 현실 그도 영화가 이고 가는 ‘잔인성 논란’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논란이 인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얘기다. 그 논란이 사회에 세련되게 흡수되고 있으니까. 다만 성인들이 보는 영화인 만큼 너무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째 좀 싱겁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단순히 잔인해서 욕 먹는 건 아닌 것 같다. 악마성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치기보다는 그냥 원색적인 표현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이 있다.” 틀린 분석은 아니라며 일단 수긍하는 최민식. “영화에는 결국 두 주인공이 펼치는 행위만 남는다. 극단적인 폭력이 유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수현의 복수 의미는 없어진다. 폭력성이 전염돼 버리는, 일종의 상징이 되는 거다. 우리 사회의 명분 없는 수많은 폭력과 그 폭력에 중독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연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공공의 적과 새가슴 현실 속의 최민식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DVD를 보다가 역겨워 그냥 꺼 버리는 남자다. 그런데도 영화 속의 그는 늘 ‘센’ 배역을 맡는다. “오랜만의 복귀작이라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적 포석 아니냐.”고 슬쩍 공격해 봤다. “여성관객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 얼마나 욕먹고 있는데 전략이라고 보긴 좀 그렇지 않나.”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가족들도 걱정이다. 특히 장모님이 보시면 실망하실 텐데….” 영화 촬영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도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장애까진 아니지만, 배우들 입장에서 이런 영화는 무척 힘들다. 아무리 인형(인체 대용)이라지만 요즘엔 너무들 잘 만들어 깜짝깜짝 놀란다. 빨간색도 싫어진다. 소품으로 쓰는 피가 식용 색소인데 약간 단맛이 난다. 나중엔 정말 피비린내 난다. 촬영기간 동안은 고기도 안 먹히더라.” ●펜션과 가위질 영화는 애초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상영 불가 위기에 몰렸다가 ‘18세 이상 관람가’로 최종 결론났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펜션 신이 대거 잘려 나간 게 무척 아쉽다고 최민식은 말했다. 펜션은 경철이 수현의 추적을 피해 다른 사이코패스 친구와 머무르던 장소다. “펜션 장면이 생뚱맞다는 지적도 있지만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장치다. 악마들이 소통하는 공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 악마로 서서히 전염돼 가고 있는 수현이 들어왔을 때 그 심리묘사가 핵심요소였는데 잘려 나가 아쉽다.” 다음 작품은 이번처럼 지독한 역할은 아니라고 한다. “준비단계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좀 바보 같은 역할이다. 또 살 떨리는 영화 찍어서 공공의 적으로 완전히 찍히고 싶진 않다. 하하.”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설] 위장전입이 고위 공직자 훈장쯤 되는가

    8·8 개각에 따른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일부 장관과 청장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문제가 터져 나왔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조현오 경찰청장·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는 자녀의 진학이나 전학과정에서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신 후보자는 자녀 교육과 관련해 5차례 위장전입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니 위장전입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법은 지켜야 한다. 현재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도 위장전입을 하면 자녀를 보다 좋은 학교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국민들은 극히 일부다. 신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땅 투기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지난주 인사청문회를 끝낸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 지난해 인사청문회를 한 민일영 대법관도 부동산 구입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위 공직자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위장전입을 한 것은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닌데도 해당자들은 사과 한마디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위장전입이 큰 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심각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위장전입의 ‘달인’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에는 위장전입한 뒤 부동산을 구입한 일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으나 그 뒤에는 흐지부지되는 듯하다.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상을 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 인사라인의 검증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에게는 보통의 국민보다는 높은 수준의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은 대법관, 장관, 경찰청장, 국세청장이 국민들에게 ‘법을 지켜라.’ ‘탈세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8·15 경축사를 통해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위장전입한 인사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면, 분명 공정한 사회는 아니다.
  • [부고] 北 첫여성장관 윤기정 사망

    [부고] 北 첫여성장관 윤기정 사망

    북한에서 여성으로는 첫 장관을 역임하며 20년간 북한의 재정을 총괄한 윤기정 김일성종합대학 명예교수가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밝혔다. 통신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김일성종합대학 명예교수 윤기정이 급성심장기능부전으로 13일 8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당과 혁명 앞에 세운 공로로 김일성훈장을 비롯한 많은 국가표창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윤 교수는 1980년 4월 여성 최초로 정무원 재정부장(장관)에 발탁돼 18년간 김일성 주석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국가 재정을 집행했다. 이어 1999년 경제간부양성기관인 인민경제대학 총장에 임명됐다가 2년 뒤 물러났으며, 2003년 김일성종합대학의 첫 명예교수가 됐다. 200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대통령 개최 답례 만찬에도 참석했다. 그는 서울 경기여고를 나온 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1기로 졸업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희선, 故 앙드레김 안장식 참석…허토하며 눈물

    김희선, 故 앙드레김 안장식 참석…허토하며 눈물

    배우 김희선이 연예인 중 유일하게 故 앙드레 김의 안장식에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희선은 15일 낮 12시 충남 천안 공원묘지에서 불교식으로 치러진 영면식에 참석해 비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생전 앙드레 김이 가장 아낀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힌 김희선은 이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지만, 김희선은 결국 허토와 묵념을 끝으로 앙드레 김과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한편 앙드레김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께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고인은 대한민국 패션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2PM 닉쿤, 굴욕은 없다..여권사진도 ‘꽃미남’▶ 조권, 가인 민낯에 "앞으로 이대로 다녀"▶ 이파니 "구애하던 연하남★ 아버지가 모욕·협박"▶ 보아, 알고보니 ‘땅부자’…"땅값도 많이 올라"▶ 김제동, 이효리와 등산중 김밥 놓고 티격태격▶ 미쓰에이 민, ‘깝민’ 등극..깝권 "여자중 최고봉"▶ 성은 키스 굴욕 고백…"연인 LJ와 첫 키스중…"▶ f(x) 루나, 지소연과 허벅지씨름…"만만치 않아"
  • 권상우, 故 앙드레김 영결식 참석 ‘눈물로 배웅’

    권상우, 故 앙드레김 영결식 참석 ‘눈물로 배웅’

    배우 권상우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故 앙드레 김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권상우는 15일 오전 6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앙드레 김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지난 6월 뺑소니 교통사고로 물의를 일으켰던 권상우는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고인의 생전 각별한 인연을 유지했던 터라 권상우는 이날 오전 장례식장을 찾아 눈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불교식으로 치러진 발인식을 끝낸 후 고인의 유해가 실린 관이 운구차에 오르자 권상우는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편 앙드레김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께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고인은 대한민국 패션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서울신문NTN 뉴스팀ntn@seoulntn.com / 사진 = 현성준 기자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오나미, ‘신민아 급’ 뒤태인증…“착각했다”▶ ’구미호’ 신민아, ‘여신’ 인증셀카…"진정 베이비 페이스"▶ 2PM 닉쿤, 굴욕은 없다..여권사진도 ‘꽃미남’▶ 미쓰에이 민, ‘깝민’ 등극..깝권 "여자중 최고봉"▶ ’군 입대’ 강인, 슈퍼주니어 콘서트 ‘깜짝 등장’▶ 이파니 "구애하던 연하남의 아버지가 모욕·협박"▶ 영화감독 박성범 별세…향년 41세▶ 박지헌 생활고 소식에 팬들 "하늘이 도울 것"
  • [NTN포토] 패션계의 대부 故 앙드레김 발인식

    [NTN포토] 패션계의 대부 故 앙드레김 발인식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故 앙드레김의 발인이 15일 오전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사진과 훈장이 발인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지난 12일 오후 7시 25분께 대장암 합병증인 폐렴이 악화돼 향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유해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안치된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주말 TV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25분) 2000년부터 사할린 한인들이 영주 귀국하여 생긴 사할린 정착촌, 경기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 조국을 떠난 지 60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박필순 할머니는 러시아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60여년을 박옥순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살아왔다. 사할린 한인 정착촌 고향마을 사람들의 3일을 만나 본다. ●병영체험 진짜 사나이(KBS1 토요일 오전 10시30분) 수려한 외모에 실력까지 두루 갖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선수 우지원이 화려했던 30년 농구인생을 마감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도전정신을 기르기 위해 적토마 부대를 찾은 우지원. 과연 전차 위에서도 코트의 귀공자로 군림했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출발 드림팀 시즌2(KBS2 일요일 오전 10시35분) 홍콩의 세계적 축제인 국제용선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여한 출발 드림팀2 2010 여름특집 ‘한류열풍의 현장, 홍콩에 가다’ 제2편. 장마철인 홍콩 날씨의 특성상, 게릴라성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진행된 빗속의 대결. 과연 드림팀은 홍콩에서의 첫 번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45분) 늦은 밤, 한 남자와 그 뒤를 바짝 쫓는 검은 그림자. 다음 날, 그 남자는 죽은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과연 남자를 쫓은 그림자의 정체는. 2001년, 5명의 남자가 미국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왜 훈장을 받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이 훈장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싶다 <침묵속의 절규 가족 성폭력>(SBS 토요일 오후 11시10분)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친족 성폭력 사건의 실태를 취재하고, 친족 성폭력으로 인한 2차 피해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또한 가정에서 내몰린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사회가 어떻게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 본다. ●평화통일 대행진, 5박 6일간의 기록(EBS 일요일 오전 10시25분) 강원도 고성에서 강화도까지 우리나라 국토를 횡단하는 대장정, 평화통일 대행진.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외참전용사의 손자, 손녀 50여명을 비롯하여, 이 행사에 참여한 625명의 청소년들. 그 역사적인 길 위에서 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며 돌아올까. 평화통일 대행진, 그 5박 6일간의 여정을 기록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한국의 여인(OBS 일요일 오후 10시20분)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 투쟁의 역사 속엔 한국 여인들의 강인한 애국정신과 독립의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남성 독립 운동가에 비해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한국 여인의 활약상을 추적했다.
  • 앙드레 김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는 지난 12일 타계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그간 패션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고인의 빈소에 조전을 보내 명복을 빌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앙드레 김 선생은 세계 수준의 패션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면서 “지속적인 기부와 봉사로 많은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앙드레 김 선생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조전은 진동섭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오전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을 찾아 대신 전달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오후에 빈소를 직접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NTN포토] 임태희 태통령 실장, ‘고인의 영정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NTN포토] 임태희 태통령 실장, ‘고인의 영정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앙드레김 (본명 김봉남, 75)의 영정에 훈장을 추서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12일 오후 7시 40분께 대장암 합병증인 폐렴이 악화돼 향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김 별세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씨가 12일 오후 7시25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5세. 지난달 말 대장암에 이은 폐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그는 병세가 악화돼 이날 세상을 떠났다. ☞[포토] 국내 남성 패션디자이너 1호 ‘앙드레 김’ 별세 ☞[포토] 하얀 국화에 둘러싸인 ‘앙드레 김’ 장례식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인 그는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국내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패션쇼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패션 세계를 선보였다. 1977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았다. 고인의 영결식 및 발인은 16일 오전 6시에 이뤄지며, 상주는 82년 입양한 외아들 중도(30)씨가 맡는다.장지는 충남 천안의 천안공원묘원으로 결정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NTN포토] ‘故 앙드레김 영정에 놓여진 금관문화훈장’

    [NTN포토] ‘故 앙드레김 영정에 놓여진 금관문화훈장’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13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앙드레김 (본명 김봉남, 75)의 빈소에 금관문화훈장이 놓여져 있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12일 오후 7시 40분께 대장암 합병증인 폐렴이 악화돼 향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故앙드레김, 경영권·디자인 승계는?…유언장 관심 집중

    故앙드레김, 경영권·디자인 승계는?…유언장 관심 집중

    ‘한국 패션계의 거장’ 앙드레김이 지난 12일 별세함에 따라 브랜드 ‘앙드레김’의 경영권과 디자인 후계, 이에 대해 언급했을 유언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앙드레김’은 의류뿐만 아니라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속옷·보석·전자제품·침구·자전거·신용카드·아파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펼쳤고 패션 이상의 브랜드로 승화됐다. 이에 연간 1000억 원 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앙드레김이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브랜드 ‘앙드레김’의 경영권과 그를 이을 후계 디자이너, 재산 문제 등이 새삼 화제를 모르고 있다. 고(故) 앙드레김은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계자 문제도 신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경영권은 가족에게 물려줘도 디자인의 후계는 외부 영입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심중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고인과 28년간 일한 도신우 모델센터 회장은 13일 오후 케이블 뉴스전문채널 YTN ‘뉴스&이슈’에 출연해 “앙드레김이 유언과 유언장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상주이자 고인의 아들인 김중도(30) 씨가 아직 충격에 빠져있어 공개를 안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앙드레김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께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향년 7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패션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정부는 13일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5일 오전 6시에 엄수될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 사진설명 = (아래) 김중도 씨, 고 앙드레김 영정사진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농심 새우깡, 쥐머리에 이어 ‘쌀벌레’ 가득 충격▶ 이시영, 시크함의 절정에 이른 공항패션 선보여▶ 앙드레김 300억원대 재산 상속자 중도씨… 네티즌 관심 집중▶ 설리-크리스탈, ‘불량태도’ 목격담 추가공개…논란 재점화▶ 오나미, 신민아 뺨치는 ‘뒤태 미인’ 인증▶ 김주리, 트위터 통해 3개국 미녀스틸 공개 화제▶ ’섹시글래머’ 킬리 하젤, ‘시스루 란제리룩’ 화보 공개
  • 앙드레김, “우아하고 판타스틱했던” 75년간의 패션쇼

    앙드레김, “우아하고 판타스틱했던” 75년간의 패션쇼

    ‘한국 패션계의 거장’ 앙드레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오후 7시 30분께 향년 7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패션을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시대를 향유했던 앙드레김의 타계 소식에 패션계는 물론, 대중문화계와 사회문화계 전반이 슬픔과 조의를 표하고 있다.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앙드레김은 국제복장학원 1기로 졸업해 인터내셔널 디자이닝 인스티튜드를 수료했다. 1962년 첫 패션쇼와 ‘살롱 앙드레’를 연 앙드레김은 한국의 ‘남자 디자이너 1호’ 출발해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패션디자이너로서 ‘우아하고 판타스틱한’ 생을 마감했다. ◆ 런웨이에 선 톱스타들…패션+문화예술 앙드레김의 패션쇼는 국내 톱스타들을 메인 모델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1963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가 앙드레김의 패션쇼에 선 것을 시작으로 ‘여배우 트로이카’ 윤정희, 장미희, 이영애, 김희선, 최지우, 송혜교, 김태희 등 미모와 스타성을 동시에 갖춘 여배우들이 런웨이를 걸었다. 남자배우들 역시 여배우와 함께 앙드레김의 드라마틱한 런웨이의 주인공이었다. 장동건과 배용준, 이병헌, 원빈, 송승헌, 소지섭 등 톱스타들의 워킹 역시 앙드레김의 패션쇼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패션쇼를 단순한 패션의 장에서 탈피, 문화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던 앙드레김은 자신의 모델을 단지 배우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박세리, 추성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하기도 했고, 개그우먼 조혜련 역시 앙드레김의 모델로 나선 바 있다. ◆ 과장의 미학…컬러·패턴·실루엣 앙드레김의 패션쇼에서 만날 수 있는 의상들은 대부분 과장의 미학에 기초했다. 서양 드레스의 화려한 실루엣에 한국적(혹은 동양적) 색감과 패턴을 가미한 앙드레김의 디자인은 한국은 물론,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극단적인 화려함과 우아한 고풍스러움, 과도한 과장법으로 요약되는 앙드레김의 디자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트렌드 제시능력을 상실한 나르시시스트의 작품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동양의 신비와 화려한 색채들을 보여준다는 의도 아래, 앙드레김은 매 쇼마다 칠겹 궁중드레스, 용무늬를 수놓은 거대한 패딩코트 등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지난 2002년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앙드레김 패션판타지아’ 패션쇼에서(당시 배용준과 최지우가 메인 모델로 호흡을 맞췄다.) 앙드레김은 “로코코 스타일의 클래식함만을 강조하던 시대는 지났으며 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세계로 나가겠다”고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기도 했다. ◆ 문화적 아이콘…화법·스타일·브랜드 앙드레김은 영어를 섞은 화법과 기이한 화장법, 독특한 패션 스타일로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연예계와 문화계에서는 이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해 코미디나 드라마 캐릭터, CF 등에 차용하기도 했고, 일각에서는 앙드레김을 디자이너보다는 사교계 인사 혹은 엔터테이너로 불려야한다는 의견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앙드레김 본인은 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앙드레김은 패션계 인사들보다는 대중문화계나 예술계 인사들과 더 친분이 두터웠다. 이 같은 성향은 앙드레김의 브랜드 전략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앙드레김’의 이름이 붙은 침구용품, 냉장고, 에어컨, 아파트, 신용카드 등이 출시됐고, 그의 이름 자체가 패션 이상의 브랜드로 승화됐다. ◆ 세계로, 세계로…한국 패션 선구자 앙드레김은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66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패션쇼를 연 앙드레김은 1997년 패션 디자이너 최초로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기도 했다. 또 1996년에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2006년에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호주,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앙드레김의 디자인은 민간외교사절로서 전 세계를 누볐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3월 중국 베이징의 ‘뉴 차이나 국제전시센터’에서 ‘앙드레김 아트 콜렉션’을 개최했다. 당시 앙드레김은 “언젠가는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패션쇼를 열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채 우리 곁에 떠나고 말았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별세 앙드레김…국내 첫 남성디자이너 ‘백의 천사’ 로 일생

    별세 앙드레김…국내 첫 남성디자이너 ‘백의 천사’ 로 일생

    한국 패션계의 거장 앙드레김(본명 김봉남)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75세.앙드레김은 12일 오후7시 25분께 서울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대장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했다.지난달 말 폐렴 증세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으며 장례식장은 서울대학교 병원 1호실 특실에 마련됐다.고인은 1935년생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 등 격동의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경기도 고양(현재는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편입) 태생으로 신도초등학교와 한영고등학교를 졸업, 1960년인 25살부터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았다.1962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열면서 디자이너로 데뷔함으로써 앙드레김은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가 됐다.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도 개성있는 디자인과 노력으로 의상 디자인계를 개척한 그는 1966년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이후 그는 이집트 카이로, 캄보디아 왕국 앙코르와트 패션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곳곳에서 패션쇼를 열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특히 앙드레김은 일생동안 ‘한국 알리기’에 앞장섰다. 국내 주재하는 대사들의 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이들을 패션쇼에 직접 초대하기도 하는 등 한국의 ‘하이패션’을 소개했다.또 한국의 원로로서의 모범적인 행동에도 앞장섰다. 전세계 아이들을 돕는 유니셰프 친선 패션쇼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할 뿐 아니라, 해외 유출 문화재 기금 패션쇼, 국제 백신기구 기금 마련 패션쇼 등 수백 차례에 걸친 자선패션쇼를 열어 선행을 펼쳐왔다.패션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에는 패션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았다.유족으로는 1982년 입양한 아들 중도(30)씨가 있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아이유·박서희, 두산·넥센 시구대결…’깜찍vs섹시’ ▶ ’제빵왕 김탁구’ 스티커사진기 옥의티? 시대설정 논란 ▶ 레인보우, 신곡 ‘A’ 뮤비서 파격 시스루룩 ‘섹시’ ▶ 열다섯 고교생 해커, 문자폭탄 프로그램 테러 ▶ 세븐, 허세놀이 삼매경 "난 허세븐…보아야 같이 할래?" ▶ 비욘세, 온 몸에 체인-거미-해골문신 ‘파격’ ▶ 황보, 그린 비키니 공개…"22인치 신화" 극찬
  • [부고] 테드 스티븐스 전 美 상원의원 항공기 추락사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중 가장 긴 의정 활동 기록을 가진 테드 스티븐스 전 의원이 9일(현지시간) 항공기 추락사고로 별세했다. 86세.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스티븐스 전 의원이 탄 소형 항공기는 이날 밤 악천후 속에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남서쪽으로 525㎞ 떨어진 산악 지역을 비행하다 추락해 탑승객 9명 중 스티븐스 의원을 포함한 5명이 숨졌다. 스티븐스 전 의원은 1968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40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최근 100년간 알래스카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 세기의 알래스카인’에 선정됐다. 최장기간 의정 생활을 하던 그는 2008년 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낙선했지만 그 뒤 무죄가 입증됐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10일 성명을 통해 “스티븐스 전 의원은 알래스카의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데 헌신한 사람이었다.”고 애도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8명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게 됐다. 1995년 광복 50주년 포상 이후 최대 규모다. 국가보훈처는 11일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안중근 선생의 4촌 동생 안홍근 선생과 유찬희 선생 부자 등 33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포상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18명(독립장 5명, 애국장 108명, 애족장 105명)과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 등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안중근의사 가문 독립유공자 15명 배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안홍근 선생은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에 참가하고 그해 여름 독립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수청(水淸)촌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도 모았다.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홍근 선생을 포함해 안명근(1962·독립장), 안춘생(1963·독립장), 최익형(1977·독립장), 안경근(1977·독립장), 안정근(1987·독립장), 안봉생(1990·애국장), 오항선(1990·애국장), 조순옥(1990·애국장), 안원생(1990·애족장), 안공근(1995·독립장), 안낙생(1995·애족장), 조성녀(2008·애족장), 안태순(2009·애족장) 선생 등 모두 1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 유찬희 선생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그의 차남 유기문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그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대한독립기성총회, 한인상무총회, 대한국민회 간부로 활동했다. 1923년 이후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동성노농공사와 국민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또 유기문 선생은 1930년 이후 중국 상하이와 톈진 등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과 흑색공포단에 가입해 일제의 주요시설 폭파, 친일파 처단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앞서 유 선생의 장남 유기석 선생이 200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아 3부자가 모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됐다. ●‘성서조선’ 김교신·송두용 건국포장 1927년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해 오다 1942년 3월 책 머리말에 ‘조와(弔蛙)’라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을 계기로 옥고를 치른 김교신·송두용 선생에게도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조와’는 일제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돼 관계자들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되어 관계자 여럿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되며, 국외에 거주하는 유족에게는 재외공관을 통해 전수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중앙기념식장에서 안홍근 선생의 손녀 안기숙(69)씨 등 7명에게 직접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6명, 애국장 3669명, 애족장 4547명, 건국포장 866명, 대통령표창 2198명 등 모두 1만 2209명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주말기획] “공사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금강송 찾는 일”

    [주말기획] “공사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금강송 찾는 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광복절인 오는 15일 일반에 공개된다.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에 따라 2006년 12월부터 추진해온 원형 복원 작업을 끝내고, 고종 중건(1865년) 당시의 위용을 드러낸다. 광화문 복원은 장장 20년에 걸친 경복궁 복원의 대역사를 마무리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광화문 현판식을 누구보다 감개무량하게 지켜볼 이가 있다. 신응수 대목장이다. 지난달 26일 칠순을 맞은 그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을 대표하는 장인이자 유일한 궁궐 도편수로서 광화문 복원은 물론 경복궁 복원 전체를 총지휘한 책임자다. 1991년 5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고, 곧이어 6월에 경복궁 복원 정비사업의 도편수를 맡아 20년간 매일 경복궁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했으니 그 감회는 더욱 남다를 터다. 신 대목장을 지난 3일 서울 통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전통건축’이란 간판이 걸린 사무실은 경복궁의 서쪽 문인 영추문 맞은 편 길에 있다. 사무실 없이 경복궁 안에서 일을 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져 1년 전 이곳에 따로 사무실을 얻었다고 한다. “감격스러운 거야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지금도 20년 전 기공식하던 날 가슴 벅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때 나이가 50이었는 데 목수로서 너무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가장 활발하게 일할 때 나라의 큰 일을 맡게 됐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일인데 행운을 타고 난 것이지요.” ●문화재 공사는 온 국민이 감독자 돼야 1968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했던 광화문 문루는 신 대목장의 손끝에서 145년 전 목조 구조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경복궁 중심축에서 벗어나있던 위치도 바로 잡았다. “서까래 지름을 15㎝에서 21㎝로 두껍게 한 덕분에 처마 선이 더욱 뚜렷하고 아름다워졌다.”고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 자부심이 한껏 배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한 공사 기간 단축에 따른 부실공사 논란에 대해선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 공개는 원래 12월 예정에서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 맞춰 9월로, 그리고 다시 광복절로 두 차례 앞당겨졌다. “공사 기간을 줄이느라 일처리를 제대로 안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급하다고 목수가 대패질도 안 하고 나무를 뚝뚝 자를 수 있겠어요? 공사는 이미 끝났고, 뒷정리만 남은 상태에서 이왕이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인 만큼 광복절날에 공개를 하면 몇 배 더 감격스럽지않겠나 판단한 겁니다. ” 그는 “문화재 공사는 온 국민이 감독자가 되는 게 맞다. 한번 잘못하면 돌이키기 힘들기 때문에 잘못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하지만 일리에 맞게 지적해야지 무조건 헐뜯는 식이어선 곤란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흥례문 복원 때도 나무를 수입송으로 썼다느니 나무가 터지고 추녀가 너무 높다느니 말들이 많아서 감사원 감사까지 받았다. 그때의 억울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신응수 대목장의 호는 성재(誠齋)다. ‘정성스럽게 집을 잘 지으라’는 의미로 서예를 하는 지인이 15년 전쯤 지어줬다. 열일곱 살 때 사촌형을 따라 처음 목수 일을 시작한 이래 반세기 넘게 전통 목재 건축 일에만 매진해온 그의 외곬 인생을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료하게 대변하는 이름이다. 밥벌이로 시작했던 목수 일은 스승 이광규 대목장을 만나면서 천직으로 바뀌었다. 스승이 데려간 1962년 숭례문 중수 공사 현장에서 처음으로 “목수가 참 대단하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100건 넘는 고건축 문화재 복원·신축 “남들보다 실력이 뛰어났다기보다 성실했던 것 같아요. 나이는 어렸지만 최고 선생님 밑에서 배운다는 자부심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눈 팔지 않고 스승을 따른 덕에 1970년 불국사 복원 공사 때는 부편수가 됐고, 5년 뒤 수원성 복원 공사 때는 도편수로 올라섰다. 이후 경주 안압지, 창경궁, 청와대 대통령 관저 등 100건이 넘는 고건축 문화재 복원과 신축 작업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20년을 함께 한 경복궁 복원 사업은 50년 목수 인생 중 최대 역작이다. 침전, 동궁, 흥례문, 태원전, 건청궁 등 90여동의 건물이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근정전을 해체하고 복원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5대궁 가운데 최고의 건물이 근정전이에요. 조선 장인의 솜씨가 얼마나 정교한지 정말 놀랐습니다. ” 그는 “전통 건축은 정성 그 자체다. 대충대충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이 생명이라고 했다. “딸린 식구(제자)가 40명쯤 되는 데 한 명이 잘못하면 전부 불러다 야단을 칩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건 못봐요. 똑같이 일하면 발전이 없어요.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도록 가르칩니다.” 목수에게 나무는 평생의 동반자다. 좋은 나무가 없으면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없다. 광화문 복원 중 가장 어려웠던 것도 금강송을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초창기만 해도 큰 나무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속이 붉고 나이테가 촘촘한 적송은 구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그는 후대를 위해 강릉에 50만평 임야를 사들여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 사무실 한 켠엔 숭례문 처마 모형이 놓여 있다. 화재가 나기 수년 전 조사 차원에서 실측했던 자료와 불탄 흔적들을 찾아서 만든 모형의 일부다. 숭례문 복원 공사는 다음 달부터 시작된다. “예전에 선생님이 했던 공사를 맡게 돼 어깨가 더 무거워요. 선생님의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옛 기억을 살려 철저히 해내야겠지요.” 정교한 작업 못지 않게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기록이다. “혼자만 알고 있는 건 소용없어요.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장인들도 볼 수 있게 책으로 남겨야 우리나라 건축이 발전하지 않겠어요?” ●숭례문 복원과정 책으로 남길 것 경복궁 근정전 보수 전(全)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그의 책 ‘경복궁 근정전’은 한국 목조 건축의 교과서로 꼽힌다. 그는 숭례문 복원 과정도 책으로 남길 계획이다. 남은 꿈은 전통건축박물관을 짓는 일이다. 상설전시관, 체험관, 목수 학교 등을 갖춘 공간을 계획 중이다. 10년째 터를 못 구해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아쉬운 대로 가회동에 한옥을 매입해 자료박물관이라도 먼저 시작할 생각이다. 목수로서 꼭 이뤄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전설 속에 묻힌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살아 생전 내 손으로 복원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신응수 대목장은 ▲1941년 충북 청원군 오창면 출생 ▲1958년 충남 천안 병천중 졸업 ▲1960년 대목 이광규 문하생으로 봉원사 요사 및 종각 공사 ▲1962년 숭례문 중수 공사(도편수 조원재, 부편수 이광규) ▲1970년 불국사 복원(도편수 이광규, 부편수 신응수) ▲1975년 수원 성곽 복원(도편수 신응수) ▲1979년 경주 안압지 복원 ▲19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대통령 표창 ▲1991년 6월~ 경복궁 복원 공사 ▲2002년 옥관문화훈장 ▲2010년 9월 숭례문 복원 공사 시작
  • [부고] 한국 고고학 선구자 윤무병 학술원 회원 별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한국 고고학의 선구자인 윤무병 전 충남대 교수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5년 만주 신경법정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부터 국립박물관 보급과장, 고고과장, 학예관 등을 역임했다. 1974~1989년에는 충남대 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81~1995년에는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박물관에서 근무할 당시 전국의 고인돌과 선사시대 주거지, 경남 해안 일대 패총 발굴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고인돌에 대해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발굴조사를 처음 실시해 고인돌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을 받는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 3·1 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감은사’ ‘한국지석묘연구’ ‘한국청동기문화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최순(81)씨와 아들 기련(에프앤유신용정보 이사), 딸 나호·선희, 사위 김동국(한양대 화학과 교수), 임현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7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이다. (02)2258-5951.
  • 故 전숙희씨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가 지난 1일 별세한 원로 수필가 전숙희씨에게 4일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수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4일 “고인이 60여년 동안 작품 창작과 문단 활동을 활발히 하고한국문학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등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훈장을 추서했다.”고 설명했다. 훈장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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