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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역외 탈세조사 공조 강화”

    역외탈세 방지를 위한 한·미 양국의 공조체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을 방문 중인 빅터 송 미국 국세청(IRS) 범칙수사국 국장은 25일 “한·미 동시범칙조사협정이 지난해 8월 11일 체결됨으로써 양국 과세당국 간 (역외탈세 조사에 대한) 공조관계가 한층 강화됐다.”고 밝혔다. 재미교포 3세인 송 국장은 국세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8월 양국의 동시범칙조사 협정을 통해 미국 IRS와 한국 국세청은 동시조사를 실시하고 양국에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조세범칙 혐의자와 이들의 특수관계자 및 탈세 조장자에 대한 금융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역외탈세 거래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국장의 외조부(정두옥)는 일제 강점기에 하와이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후원한 독립운동가로서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은 인물이다. 송 국장의 경우 1981년 IRS에서 근무를 시작해 특별수사관을 거쳐 지난해 IRS의 핵심부서인 범칙수사국장으로 승진해 현재 글로벌 탈세와 돈세탁, 마약자금 등에 대한 단속을 총지휘하고 있다. 그는 역외탈세 방지 노력의 가장 큰 성과로 잠재적 역외탈세 행위에 대한 ‘심리적 억제효과’를 꼽았다. “미국의 경우 은행들의 역외탈세 조장 성향이 많이 억제됐고, 납세자들은 역외 자산은닉 여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며 “심리적 억제효과를 세수로 환산하면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IRS는 작년에 시작한 해외계좌 보유내역에 대한 자발적 신고제도를 통해 1만 8000명이 자진신고했으며, 건당 추징금액이 평균 20만 달러가 넘는다. 한해 동안 추징금액을 환산하면 3억 6000만 달러로 4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마음 속엔 살가움 한가득임을 알기에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같고, 큰 누이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 분열의 문단 어머니처럼 보듬어 안던 ‘큰 나목’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셔지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 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 전쟁·참척 고통까지 관조“내 나이 새삼 징그럽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늘 내면의 상처에 주목해왔기에 그의 문장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 암 발견 직전까지 유니세프 한국위 친선대사 활동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호암상 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은 소설가로서 삶에 내려진 작은 상일 뿐이다.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몸 속의 깊은 병을 확인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한국위 평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 고귀한 이상을 가지신 분임을 새삼 확인했다.’라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밤하늘 별로 반짝거리며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구미·남양주시 ‘3회 섬김이 대상’ 수상

    구미·남양주시 ‘3회 섬김이 대상’ 수상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3회 섬김이 대상’ 수상자를 표창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섬김이 대상’은 고질적인 민원이나 기업 애로를 해결하는 등 일선에서 묵묵히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들을 발굴해 포상하는 제도다. 현 정부 들어처음으로 시행됐다. 올해는 경북 구미시와 경기 남양주시가 기관표창을 수상했다. 경기 이천시청 김재홍(6급)씨 등 2명이 훈장을, 광주 광산구 임곡동 주민센터 최영현(6급)씨 등 3명이 포장을, 강원도청 박일수(5급)씨 등 15명이 대통령 표창을 각각 받았다. 김재홍씨는 추가적인 환경오염이 생기지 않는데도 기존 규제에 묶여 공장 증설이 어려운 상황에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관계 부처와 주민들을 설득, 1500억원 규모의 공장 증설을 이끌어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영현씨는 임대주택 사기를 당한 세입자 800여 가구의 문제에 발벗고 나서 중개업자의 위법행위를 입증해 주고, 공인중개사협회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이 대통령은 “오늘 상을 받은 공직자들이 표상이 되어 다른 공직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기 바란다.”면서 “우리가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업이 세계 기업을 상대로 해서 이겨야 하고 공직자들은 그 나라 공직자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우리가 앞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앙에서 만든 좋은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오늘 참석한 일선 행정 담당 공무원들”이라고 격려했다. 참석자 중 한명이 대통령의 격려가 “너무 감동적이며 힘이 난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공무원들도 격려해 주면 힘이 난다고 했듯이 국민들도 격려를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면 어렵더라도 힘이 날 것”이라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가 나아지는 온기가 서민계층에까지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함께 애쓰자.”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몽골 설원 누비는 늑대 사냥꾼들

    몽골 설원 누비는 늑대 사냥꾼들

    중앙 아시아 고원지대에 위치한 몽골. 그리고 스스로 강인한 늑대의 후예라 여기는 유목민족 몽골인들. 그들은 늑대를 신성시하면서도 늑대를 향해 총을 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추운 겨울만 되면 굶주린 늑대들이 가축에게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경우 전체 인구의 30%가량이 유목생활을 한다. 그들은 여전히 전통가옥 ‘게르’에서 생활하며 가축을 기른다. 그들이 추운 겨울, 혹한보다 더 걱정하는 게 늑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100년 전 늑대로 인한 가축피해가 심해지자 몽골에서는 조직적으로 늑대 개체 수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매년 10월 15일부터 4개월간 늑대 사냥을 허락하고 사냥꾼 협회를 운영한다. EBS ‘극한직업’은 19~20일 밤 10시 40분, 2회에 걸쳐 몽골의 늑대 사냥꾼을 소개한다. 40년 넘게 늑대 사냥꾼으로 살아온 간바테르. 그는 사냥꾼 협회에서 훈장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냥실력을 갖췄다. 손녀 손자들 앞에선 인자한 할아버지이지만 늑대사냥에 나서는 순간, 눈빛이 변한다. 그의 눈은 매섭고, 누구보다 빛난다. 발자국만 봐도 늑대가 언제, 어디로 지나갔는지 아는 자타공인 베테랑이다. 사냥 본능은 그의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받았다. 유목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본능이다. 늑대를 신성하게 여기지만, 늑대를 잡는 것이 더 신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직업에 강한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는 몽골의 사냥꾼 부자(父子)다. 어느날, 늑대에게 양을 빼앗긴 한 이웃이 간바테르에게 사냥을 요청한다. 간바테르는 동이 트기도 전, 늑대의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제작진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극한의 늑대 사냥 현장에 간바테르와 동행해 혹한을 뚫고 늑대를 쫓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간바테르는 넓은 설원에서 늑대의 발자국을 찾기 시작한다. 역시 베테랑 답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발자국을 발견한다. 간바테르는 바쁘게 발자국을 쫓는 한편 다른 포수들, 몰이꾼들과 한자리에 모여 작전을 짠다. 늑대는 150m 밖에서 쥐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최대한 소리를 낮춰, 재빨리 각자 위치로 흩어진다. 과연, 사냥꾼들은 혹한의 추위를 뚫고 늑대를 잡을 수 있을까. 20일에는 눈으로 뒤덮인 설원 위에서 밤새 늑대에게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 한 마리가 등장한다. 양 떼가 당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뼈까지 물어 뜯긴 말의 시체가 발견되자 사냥꾼들은 늑대 사냥에 더욱 의욕을 보인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부고] ‘임이 오시는지’ 작곡가 김규환 선생

    [부고] ‘임이 오시는지’ 작곡가 김규환 선생

    가곡 ‘임이 오시는지’를 지은 원로 작곡가 김규환 선생이 16일 오전 9시 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음악학교를 다녔으며 동덕여고와 동아대, 영남대, 동의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인은 ‘임이 오시는지’를 비롯해 ‘남촌’, ‘물새’, ‘나그네’ 등의 가곡과 교성곡 ‘조국’ 등을 남겼으며 ‘한오백년’, ‘신고산타령’ 등 민요 30여곡을 채보했다. KBS합창단 지휘자와 단장을 역임했고 한국작곡가협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1997년에는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정해순(74)씨와 2녀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97.
  • ‘미스 잉글랜드’ 전장으로…하지 하사 아프간 파병 예정

    ‘미스 잉글랜드’ 전장으로…하지 하사 아프간 파병 예정

    영국 최고 미녀가 군복을 입고 전쟁터로 향해 화제다. 1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2009 미스 잉글랜드’인 카트리나 하지(24) 하사가 자신이 복무했던 영국 육군 앵글리안 연대로 복귀, 아프가니스탄 전선으로 파병될 예정이다. 하지는 18세에 입대, 이라크 전장에서 활약을 펼쳐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에 용맹함을 갖춰 ‘전투 인형’(combat Barbie)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하지는 2009년 군복 대신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미스 잉글랜드에 도전해 레이철 크리스티(21)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크리스티가 나이트클럽에서 소란을 피운 사건으로 사퇴함에 따라 미스 잉글랜드 왕관을 물려받았다. 본업에 복귀하게 된 하지는 “꿈같은 생활은 끝났다.”며 “조국을 위해 복무하는 게 나의 본업”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부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 실제 주인공 윈터스 소령

    [부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 실제 주인공 윈터스 소령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자마자 부하들보다도 더 먼저 적진으로 달려나가는 중대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리처드 윈터스의 실제 모델이 지난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9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수년간 파킨슨병에 시달려 온 윈터스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유언했다. 1918년생인 윈터스는 101공수사단 506연대 5중대 소대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고, 전사한 중대장을 대신해 중대장이 된 뒤 중대원 13명을 이끌고 적군 포대를 격파하고 독일군의 상세한 방어지도를 획득해 첫 훈장을 받았다. 역사적인 벌지전투에서는 벨기에 바스토뉴 지역을 점령하는 공을 세웠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역사학자인 스티븐 앰브로즈가 1992년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펴내고 이를 토대로 2001년 같은 이름의 미니시리즈가 전파를 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윈터스와 함께 참전했던 중대원들은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지도자로 기억했다. 윈터스 본인은 2004년 ‘미국 역사학지’와 인터뷰할 당시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다만 영웅들의 중대에서 복무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윌리엄 가니어(88)는 “그는 진정한 지휘관이었다.”라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정년퇴임한 국과수 화재감식요원 1호 김윤회 씨

    정년퇴임한 국과수 화재감식요원 1호 김윤회 씨

    1988년 19명의 사망자를 낸 천호대교 버스추락 사고를 비롯해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1994년·12명 사망),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1999년·23명 사망), 인천 호프집 화재(1999년·57명 사망),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192명 사망), 이천 냉동창고 화재(2008년·40명 사망) 등 모두가 기억하는 굵직굵직한 대형사고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공학적 조사 방법’ 첫 도입 국내 1호 화재감식요원으로, 이 분야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윤회(60)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안전사고조사TF팀장이 근속 31년만인 지난달 31일 정년퇴임했다. 1980년대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감정서를 써 낸 우리나라 1호 화재감식요원인 김 전 팀장은 “당시만 해도 선배들이 골치 아픈 일인데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면서 말렸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숱한 화재 현장에서 재와 먼지를 뒤집어 써서 생긴 피부병이 훈장”이라면서 “화재현장에서 감식을 마친 후 몸에 밴 탄 냄새 때문에 지하철 승객들이 코를 막고 불쾌해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는데, 항상 미안했다.”는 소박한 소회를 밝히며 웃었다. 김 전 팀장이 국과수에 막 몸담았던 1970년대 후반에는 ‘과학수사’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당시 화재는 대부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종결짓는 경우가 많았고, 뺑소니 사고가 나면 피해자의 옷에 묻은 페인트 가루로 차량의 색깔을 알아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토록 저급했던 국내 과학수사 수준이었지만 1985년부터 그로 인해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김 전 팀장이 그해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 연수를 다녀오면서 부터다. 김 전 팀장이 현장증거를 토대로 역추적해 상황을 재구성하는 ‘공학적 조사 방법’을 도입하면서 교통사고 차량의 속력까지 알아낼 수 있게 된 것.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사방법이었다. 이를 토대로 지금은 흔적만으로도 사고 당시 순간을 컴퓨터로 재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 ●대구 지하철 참사 등 2000여건 감식 그가 31년간 국과수에 재직하며 현장 감식했던 사고는 2000건이 넘는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나자 바다로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기도 했으며,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1983년·21명 사망)때는 안기부 요원이 몰래 가져온 증거물을 분석하기도 했다. 퇴임 후 손해사정업체에서 자문역으로 일한다는 그는 “보험사고와 관련한 연구소를 만들고, 전문가를 양성해 앞으로 많이 늘어날 민간 차원의 사고조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11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우수에 찬 눈동자, 날렵한 턱선을 가진 꽃미남 황태자가 황태마을에 떴다. 진부령 끝자락에 고즈넉히 자리 잡은 황태마을 용대리.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집안 어르신들의 명을 받아 2년 전 고향으로 내려온 이상진씨. 칼바람 황태덕장의 말단 노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루하루가 시험날인 상진씨의 24시간을 만나본다. ●꼬마과학자 시드(KBS2 오후 3시 5분) 시드는 가수와 과학자를 함께 하고 싶은 꼬마 과학자다. 시드는 판다 박제가 운동장 비탈길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꾸미고 싶다. 이를 위해 시드와 친구들은 바퀴, 경사면, 지렛대, 도르래와 같은 기계들을 사용할 계획을 세운다. 과연 시드는 판다 박제를 꼭대기까지 올려 보낼 수 있을까. ●몽땅 내 사랑(MBC 오후 7시 45분) 김 원장은 새로 생긴 필승학원이 홍보에 열을 올리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승아에게 밖에서 홍보하라고 다그친다. 태수는 추운 날씨에 밖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승아를 보고 마음이 아파 도와주려 하지만 번번이 우진에게 선수를 뺏긴다. 한편 태수는 정 집사를 골탕 먹이기 위해 영옥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정 집사에게 보여준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30분) 한 지붕 아래 1분 1초도 함께할 수 없는 부자가 있다. 매일같이 집안이 떠나가라 들리는 소리, “아빠 나가.” 아빠에게 반경 1m 내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 주인공은 바로 5살 어진이다. 가족 모두가 5년 동안 꼭꼭 숨겨온 비밀이 어진이와 아빠를 멀어지게 했다는데…. 도대체 어진이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 50분) 방글라데시 제2의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도시 치타공에서는 30년 경력의 전문 서커스단원 부모와 함께, 방글라데시 방방곡곡을 다니며 서커스를 하는 아홉 살 소녀 루마가 있다. 공중곡예를 펼치는 것이 일상생활인 루마에게 학교는 꿈나라 속 일일 뿐이다. 하지만 루마에겐 이루고픈 소망이 하나 있다고. 루마의 꿈은 무엇일까.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5분) 양지서당에는 조선시대에나 있을 만한 훈장님 가족들이 있다. 주인공 가족은 큰 훈장님을 비롯해 둘째 아들 정우, 셋째 아들 정욱 등인데, 모두 훈장님들이다. 훈장님이라고 해서 옛날 구식 훈장님들이 아니다. 휴대전화 사용은 물론 카레도 맛있게 먹을 줄 안다. 계룡산 깊은 골짜기, 개성 넘치는 신식 훈장님 삼총사를 만나본다.
  • 비키니벗고 전쟁터로 돌아간 ‘미스 잉글랜드’

    영국 최고 미녀가 왕관을 버리고 군(軍)으로 복귀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2009 미스 잉글랜드’에서 1위를 차지했던 카트리나 호지 하사(24)가 자신이 근무했던 영국의 육군 앵글리안 연대로 복귀해 아프가니스탄 전선으로 돌아가게 됐다. 카트리나 호지는 꽃다운 나이인 18세에 군 입대해 이라크로 파병가 많은 공로로 훈장을 받아 군 내에서는 이미 유명한 인물.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함께 용맹함까지 갖춰 ‘컴뱃 바비’(Combat Barbie, 전투 인형)라는 애칭도 얻은 바 있다. 카트리나 호지는 2009년 7월 군복 대신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미스 잉글랜드에 도전해 레이첼 크리스티(21)에 이어 2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크리스티가 맨체스터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피운 사건으로 체포돼 호지가 미스 잉글랜드의 왕관을 물려받게 됐던 것. 미인대회에 나가기 전에는 제대로 된 화장 한 번 하지 못했던 카트리나 호지는 지난 1년 동안 총을 놓고 왕관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미스 잉글랜드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또한 그녀는 군을 위한 활동도 계속했다. 그녀가 한 란제리 브랜드의 모델로 나서면서 이 회사는 모든 군인에게 자사 제품을 할인해 주기도 했다. 본업에 복귀하게 된 하지 하사는 “비록 꿈같은 생활은 끝났지만 조국을 위해 복무하는 게 나의 본업”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미녀 여군은 지난해 6월 스리랑카에서 비밀리에 동료 군인과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교장이 회초리 드니 학생·학부모 불만 없어요”

    “교장이 회초리 드니 학생·학부모 불만 없어요”

    “교장이 회초리를 드니까 학생이나 학부모가 불만이 없어요.” 안홍렬(61) 충남 천안중학교 교장은 학생이 잘못하면 직접 회초리를 든다. 학생들은 교장실을 ‘따끔이 교실’로 부른다. 교사 체벌 금지가 논란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교장이 회초리를 들어 학생을 가르치고 교권도 바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이 불손한 행동을 하거나 지각, 두발상태 불량 등이 있으면 두말하지 않고 학생을 교장실로 데려간다. ●“엄정함 전하기 위해 정자관 써” 안 교장은 학생에게 회초리를 들 때 옛 훈장처럼 정자관(程子冠)을 쓴다. 그는 “교사가 직접 학생을 체벌하면 감정이 개입할 수 있고,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가 생길 수 있다.”면서 “정자관을 쓰는 것은 나름의 형식을 갖춰야 엄정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교장은 대신에 교사들의 체벌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있다. 안 교장은 회초리를 들기 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지적한 뒤 학생이 반성하면 동의를 얻어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종아리를 3~5대 때린다. 회초리는 손가락 굵기의 볏과 식물인 신우대로, 결코 부러질 만큼 때리지는 않는다. 안 교장은 “학생들에게 내가 모범을 보여 공감을 얻어야 학생들이 따른다.”고 했다. 안 교장의 별명은 ‘이사도라’이다. 24시간 학교를 돈다고 해서 학생들이 붙여줬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학교에 나와 운동장 등을 청소하고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학생들이 밥을 먹고 간 식탁을 닦는다. 지난해 말 학교축제 때는 말썽꾸러기 학생 4명과 함께 문제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인형극 ‘하늘 편한 서당 금깨비이야기’를 공연하기도 했다. 안 교장이 회초리를 든 것은 1998년 교감이 되고서였다. “체벌이 사회문제로 불거져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내가 대신 짐을 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명문이던 천안중을 10여년 만인 2008년 3월 다시 와보니 한부모가정 등이 늘면서 교육에 문제가 빈발해 회초리를 더 들게 됐다.”고 회고했다. ●“체벌 사라져도 훈육은 남아야” 교장이 회초리를 들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교사의 체벌을 받은 학생이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없어졌다. 최근에는 ‘머리를 단정하게 깎으라’는 지적을 거부하고 달아났던 학생의 학부모가 다음 날 자식을 데리고 교장실로 찾아와 잘못을 빌게 하는 일도 있었다. 면학 분위기가 좋아져 ‘왕따’나 금품갈취 등 불미스러운 사고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는 다음 달 말에 정년퇴직하지만 퇴직 후에도 운동장 청소와 식탁 닦아주기 봉사는 계속할 생각이다. 안 교장은 “체벌은 언젠가 없어져야 하지만 학교에는 반드시 어른이 있어야 하고 훈육 자체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유방암 퇴치 자매의 약속

    유방암 퇴치 자매의 약속

    지난해 10월 서울 청계천이 분홍색으로 물든 적이 있다. 대형 분홍색 풍선과 리본으로 장식된 행사장 한쪽에는 폭탄을 맞은 듯한 가슴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제 분홍색 리본이 유방암 퇴치 운동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처음 유방암 퇴치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 ‘핑크리본’(낸시 브링커·조니 로저스 지음, 정지현·윤상운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은 유방암 퇴치 재단 ‘코멘’을 설립한 낸시 브링커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1946년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태어나 요람에 누워 있던 낸시를 보고 언니 수지가 처음 한 말은 “흠! 재미있게 생겼네!”였다. 30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이며 인생의 동반자로 지냈던 자매 사이는 1977년 언니 수지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3년 뒤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산산조각 났다. 동생이 곁을 지켜주는 가운데 언니 수지는 온갖 치료와 암울하기 짝이 없는 대기실에서의 오랜 기다림, 그리고 의사의 잘못된 정보까지도 전부 견뎌냈다. 그러면서 수지는 낸시에게 약속해 달라고 했다. 유방암의 침묵을 깨달라고, 연구기금을 모아 언젠가 유방암을 완전히 퇴치해 달라고. 동생의 대답은 “약속할게, 언니. 평생이 걸린다고 해도….”였다. 1982년 낸시는 생활비에서 조금씩 모아 마련한 200달러로 수전 G 코멘 유방암치료재단을 설립한다. 남편 노먼 브링커는 베니건스를 창업한 외식업계의 대부다. 낸시는 베트남전 10년 동안 5만 8000명의 미국인이 사망했지만, 그 10년 동안 33만 9000명의 미국 여성이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통계로 남편을 설득했다. 이후 남편은 낸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낸시는 1984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언니보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화학요법으로 머리가 다 빠진 상태에서도 분홍색 헬멧을 쓰고 재단을 한 단계 끌어올릴 준비를 했다. 미국의 전 대통령 부인이었던 베티 포드와 낸시 레이건의 유방암 투병기도 많은 여성들의 눈물을 자아낸다. 오늘날 유방암에 관한 최신 연구는 대부분 낸시가 만든 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막대한 자금으로 진행된다. 2009년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자유훈장을 받았다. 유방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발견된다. 여전히 유방암은 여성의 주요한 사망 원인이지만 고대 이집트 여성처럼 치료받을 가능성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핑크 리본’은 이제 차별 없는 치료의 상징이다. 1만 48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월 강원 화천에 ‘감성마을 전시관’ 여는 소설가 이외수 씨

    [김문이 만난사람] 6월 강원 화천에 ‘감성마을 전시관’ 여는 소설가 이외수 씨

    긴 머리 소년이다. 해맑은 웃음이 그렇다. 하얗고 빨간, 원색 톤의 옷을 즐겨 입는다. 선도(仙道)로 향하는 상상력이 특별하다. 아름답고 맛깔스러운 언어를 잘도 골라낸다. 그런데 소년은 수염이 있다. 하여 강원도 산골짜기에 사는 촌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산과 들에는 눈부시도록 눈이 쌓여 있었다. 서울에서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5번과 56번 국도를 탔다. 옛날에는 오지여서 하루 종일도 더 걸렸겠지만 시원하게 도로가 뚫려 있어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가 사는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처음 반기는 것은 이색 표지판. 좌회전 표시는 새의 부리, 우회전 표시는 물고기의 아가리로 구분했다. 문득 동화 마을에 온 기분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저런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했을 터. 트위터계의 간달프 작가 이외수(65)씨. 지난 4일 강원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感性)마을에서 만났다. 6년째 이곳에서 산다. 그날도 웃음이나 옷차림이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네티즌들의 말을 빌려 ‘트위터계의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그는 요즘에는 ‘트위터계의 간달프’라고 한다며 웃는다(간달프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백색의 마법사).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옆에 때마침 며느리가 있었다. 설은영(33)씨.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작가다. 에궁, 집안 내력이라는게~. 혹시 이씨가 한 수 지도해 줬을까 궁금해졌다. “발표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단을 쳤지요. 어떻게 시아버지가 소설 제목도 모르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미리 말씀드리면 혹시 오해라도 생길까 봐요’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쨌거나 발표되고 나서야 원고를 처음 봤습니다. 가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정리돼 있더군요. 저는 늘 아웃사이더였는데 며느리는 객관적 평가로 등단했다고 축하해 줬습니다.” 이씨는 역정 반 웃음 반으로 며느리를 잠시 쳐다본다. 대견스러운 눈길이었다. 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씨 집안에 들어와 큰일을 해 냈으니 무척 좋다는 표정이다. 함박웃음으로 ‘우리 애기’라고 표현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얼른 며느리의 작품평을 부탁했다. “젊고 건강하고 신선합니다. 보편적 현실의 두려움을 거침없는 필치로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신인입니다. 작가로서 가장 힘든 것이 언어이지요. 언어가 생물입니다. 그런 언어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 정진하라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예술가 집안이다. 이씨는 “큰애(아들)는 영화감독을 하고 작은애(아들)는 글과 그림을 잘 그리고, 며느리는 작가이니 예술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껄껄 웃는다. 며느리 설씨는 처녀 때 이씨의 홈페이지에 자주 접속하면서 인연이 됐다. 나중에 채팅방에서 큰아들 한얼씨와 꾸준히 사연을 주고받다가 결혼에 골인했다. 화제를 ‘감성마을’로 돌렸다. 원래는 다목리였다. 궁궐을 세울 때 서까래로 사용했던 나무가 많아 다목(多木)이라는 유래가 있다. 감성마을은 이씨가 창작 공간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직접 지은 이름이다. 왜 그랬을까.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자연이 주인입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은 그 고마움을 느끼고 다시 전달하는 것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감성마을로 정하자고 했더니 화천군에서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그래서 한반도, 아니 세계 처음으로 감성마을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뉴스 하나. 올해 6월에 ‘감성마을 전시관’이 생긴다. 이씨가 그린 그림,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온 노래 100여곡, 그리고 직접 지은 노랫말 등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된 문학 영상 콘텐츠와 사진, 동영상 등이 전시관에 진열된다. 찾아온 손님들과 춤을 추고 노래하는 공간도 마련된다. 각자 낯설게 찾아왔지만 다들 식구처럼 만나는 감성의 멍석을 밑바탕에 쫙 깐다. 이성의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말이다. 개관식 때는 개그맨 김제동이 사회를 본다. 뿐만 아니다. 감성의 느낌을 계속 연장하기 위해 윤도현 밴드, 가수 김장훈, 김C 등 이른바 ‘이외수 사단’이 돌아가면서 3개월 동안 매주 금·토·일에 개관 기념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이씨는 이들을 가리켜 ‘재능구걸팀’이라고 했다. 또 있다. 전시관 개관을 시작으로 세계 유일의 ‘감성체험장’이 만들어진다. 인간의 오감을 새롭게 각성시키고 감성의 체험을 확장시키는 코스가 이어진다. 공중에서 낱말카드가 쏟아지면 문장을 제대로 작성하는 등의 다양한 체험방도 있다. “20세기까지 이성이 주도했다면 21세기는 감성이 주도합니다. 이성은 인간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감성은 인간과 자연을 소통시키지요. 이곳에 왔다 가면 풍부한 감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성 전이의 체험장이 있습니다. 철학적인 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트럼펫 소리는 금빛이다.’, ‘회초리는 맵다.’는 식의 청각을 시각으로, 시각을 미각으로 체험하는 것이지요. 자유롭고 창조적 감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가 감성체험장을 착안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감성사전’을 발간하면서였다. 또 지나치게 이성과 성적 중심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준비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예산 마련이다. 이씨의 생각대로 만들어지려면 간단한 예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험장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늦어도 5년 이내에 완공할 계획이다. 그는 감성마을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CF도 찍고 글도 쓰고 방송 진행도 하고 좌충우돌, 종횡무진 별의별 거 다 했다. 화천군 홍보대사, 산천어축제 홍보대사, 자살방지 홍보대사, 쪽배축제 홍보대사, 15사단 홍보대사의 직함도 있다. 재미있는 별명도 붙었다. ‘걸어다니는 휴가증’과 ‘명예헌병’ 등이다. “15사단이 마을 부근에 있습니다. 하루는 부대 창설 기념일인데도 축제가 없더군요. 다른 곳은 다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부대장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작품 ‘하악하악’을 발간했을 때였지요. 이 책 500권을 사인해서 선물할 테니 휴가증 500개를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부대장이 ‘500명이 한꺼번에 휴가를 가면 전력에 차질이 생기니 200장만 합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00장을 받고 부대 창설 기념일 때 각 초소를 다니면서 근무 중인 이등병이나 일등병 위주로 휴가증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헌병초소 근무자가 가장 많았어요. 나중에 이런 일이 상급부대에 알려지게 됐고 고맙다는 뜻에서 ‘명예 육군헌병증’을 주더군요.” 흥미로운 일화 한 가지 더. 그는 1년에 서너 차례씩 화천군 관내 군부대에서 강연을 한다. 대상은 주로 ‘관심사병’(문제사병을 뜻함)이다. 신기한 것은 이씨의 강연이나 상담을 받은 병사들 대부분이 의욕적으로 군생활에 적응했다는 것. 그러자 해당 부대장은 이씨에게 “아니 병사들에게 마약을 먹였습니까?”라는 농을 건네기도 했다. 한번 방문할 때마다 20~30명이 됐으니 그의 상담을 받아 군생활에 성공한 사병만 100여명은 족히 될 듯하다. 그의 군대 생활은 어떠 했을까. 훈련병 때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주특기 ‘칠빵빵’(700)을 받고 육본 부관감실에서 차트병으로 근무했다. 주로 베트남전 사망자 처리 업무였는데 밤 새우는 일을 밥 먹듯이 했다. 이처럼 밤을 잊은 군대 생활로 오늘날 주침야활(晝寢夜活)의 버릇이 생겼다. “우리는 이른바 하나하나(11)로 시작되는 속칭 와르바시 군번인데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이다,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이다 해서 제대가 무기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내무반에서 44명이 칼잠을 자면서 군생활을 했지요. 그때에 비하면 요즘 군대는 캠핑이나 마찬가지입니다(웃음).” 화제를 고향 마을로 돌렸더니 그는 고향이 4곳이라며 껄껄 웃는다. 어떻게? 우선 육신의 고향이 2곳. 경남 함양 상백리에서 태어나 강원도 인제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진주사범을 나와 직업군인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인제에서 살게 됐고 초중고를 인제에서 졸업했다. 그의 이름이 외수(外秀)인 까닭은 외갓집에서 태어나 ‘외’자가 붙었고 ‘수’는 집안 항렬이다. 그 다음은 정신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과 화천이다.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춘천에서 탄생했고 화천에서는 ‘글쓰기 공중부양’ ‘하악하악’ 등의 작품이 나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현재 트위터팔로어 1위(54만 7000명)라고 하자 그는 “제 글을 읽어야 잠을 잔다는 사람도 있고, 출근해서 제 글을 읽어야 상쾌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람도 많다.”면서 “이 시대는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데 꾸짖을 때는 가차 없이 꾸짖는다. 악플러들과는 상종을 안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는지도 물었다. “사람들이 그래요. 이외수의 대표 작이 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다음 작품이라고 말하지요. 정말이지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료 준비는 거의 끝났고 1권이 될지 2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씨의 집 앞마당 장독대에는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었다. 날씨는 추웠으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게 감성체험인가 보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소설가 이외수는 누구 춘천교대 제적 1호·72년 신춘문예 등단… 그림 전시회도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어서 어릴 때부터 강원도 인제에서 살았다. 1964년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춘천교대에 진학했다. 집이 가난했다. 한 학기 휴학하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다음 한 학기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7년 이상 다닐 수 없다는 학칙에 위배돼 1972년 8학점을 남겨 놓고 쫓겨났다. 춘천교대 제적 1호라는 말이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로 당선되자 산속에 들어가 본격적인 문장 공부를 한다. 1975년 ‘세대(世代)’지에서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창작에만 전념한다.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9)을 발표하며 섬세한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들개’(1981), ‘칼’(1982), ‘황금비늘’(1997) 등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했다. 이후 ‘괴물’(2002)과 ‘장외인간’(2008)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6), ‘감성사전’(1998), ‘외뿔’(2001),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2003), ‘바보바보’(2004) 등의 산문집을 통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풀꽃 술잔 나비’(1987)를 시작으로 몇 권의 시집도 출간했다. 화가로서도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선화집 ‘숨결’(2006)을 출간하기도 했다.
  • [공직 대해부] 7·9급의 꿈 ‘사무관’

    [공직 대해부] 7·9급의 꿈 ‘사무관’

    “사무관(事務官)으로 승진한 1988년 7월 23일은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죠. 그날 회식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비고시 출신으로 공직생활 33년째인 정부대전청사의 A국장은 5급 사무관이 되던 날, 세상을 품은 듯했다고 회상했다. 7급이나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공무원에게 사무관의 의미는 남다르다. 승진연한만 차이 날 뿐 ‘공직의 꽃’인 별을 단 것에 대한 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최근 고시 출신이 늘고 직급 인플레로 사무관 숫자가 증가하면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정부 외청이나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무관에 오르기 위한 공무원들의 소리 없는 경쟁이 치열하다. ●事를 벗고 官이 되다 직위분류상 사무관은 주사(6급) 위이고 서기관(4급) 아래다. 공무원 전체로 보면 9급과 최고위직(1급) 간 중간 간부로, 신체에 비유하면 ‘허리’가 된다. 7급이나 9급으로 출발한 공무원 사이에서 사무관이 되면 팔자를 고쳤다는 말이 회자됐다. 사(事)자를 떼고 관(官)을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반증한다. 사무관이 되면 국새가 찍히고 대통령 직인이 박힌 임명장을 받는다. 2005년 6월 임명권이 소속 기관장으로 이관되면서 국새와 대통령 직인이 사라진 임명장을 받았지만 공무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환원하자는 여론에 따라 2009년 11월부터 원상회복됐다. 사무관은 대우가 달라진다. 우선 호칭부터 ‘○○○사무관님’으로 바뀐다. 지금은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서도 주무관으로 우대하지만 예전에는 ‘○○씨’ ‘아무개 선생’으로 불렸다. 6급과 비교해 급여가 30만원 정도 인상되고 정년도 차이가 난다. 출장비는 서기관과 동일한 수준으로 오른다. 훈장도 6급 이하는 옥조근조훈장이지만 사무관은 녹조근조훈장을 받는다. 해외 직무훈련 대상에 들어가고 대외기관 회의에 기관 대표로 참석하기도 한다. ☞ [공직 대해부] 특집 시리즈 기사 보러가기 사후 예우까지 달라진다.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지방(紙榜)과 묘비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에서 ‘학생’이 빠지고 ‘사무관’이 들어간다. 산림청 B국장은 “예전에는 사무관이 되면 2~6명을 거느린 계장으로 기안 책임자 역할을 했다.”면서 “서기관이나 과장 승진 때보다 축하도 많이 받았고 자부심도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지방에서 ‘장’으로 역할 사무관은 고위 관료와 권력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정부 부처 중에서 관세청은 사무관이 되면 2급 세관장에 오를 수 있다. 지역본부 세관에서는 과장이다.지방에 오면 사무관의 위상은 더욱 높다. 읍·면·동장이 사무관으로 명실공히 지역사령관이다. 필기시험이 사라졌다고 하나 사무관에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일부 기관은 5급 승진 시험을 고수하고 있지만 부처는 대부분 심사와 일부 시험을 적용하고 있다. 승진 자격을 갖추더라도 전문지식과 논술 등의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기본은 근무평가 결과다. 근무평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때 ‘인사비리’의 근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기관마다 승진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승제도’와 ‘대우공무원’ 제도가 있었다. 공승제도는 내부 승진제와 별개로 전 부처를 대상으로 시험으로 승진자를 선발해 수요가 있는 부처에 배치하는 제도다. 승진 대상자가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으면 대우공무원을 신청할 수 있다. 승진은 배제하되 퇴직 때까지 대우 수당을 지급받는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대우공무원제와 비슷한 필수실무요원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필수요원으로 지정을 받으면 승진하지 않고 사무관 대우를 한다. 중앙 부처 한 간부는 “시험으로 선발할 때가 능력이나 자질이 우수했다.”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공정사회 취지에는 시험제가 맞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50대의 지자체 C주무관은 공직생활 27년째로 사무관 승진에 근접해 있다. 공직에 들어와 사무관을 최우선 목표로 동경해 왔지만 지금은 사무관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고 토로했다. C주무관은 “본부에 있으면 나이 먹은 사무관에 불과하다.”면서 “기안능력 등도 떨어져 동장 등으로 나가는 것이 조직이나 개인에게 부담도 적고 마음도 편하다.”고 아쉬워했다. 정부 외청의 사무관은 과다한 업무로 휘청거리고 있다. 1개 과에 사무관이 5~6명이나 되고 개별, 고유 업무가 부여돼 6~7급 주무관과 마찬가지로 기안자이자 실무자에 불과하다. 더욱이 집행부서이다 보니 비업무성 보고가 많고, 공들인 업무가 성과를 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998년 정부대전청사로 이전한 기관들은 고시 사무관들의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전청사의 한 사무관은 “중앙 행정기관에서 사무관은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자리가 됐다.”면서 “중간 간부, 조직의 허리로서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큰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빛바랜 ‘원자력의 날’

    ‘일부 유럽 국가도 의사 타진…원전 추가수주 봄바람’ 지난해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을 처음 수주한 뒤 한 언론 기사의 제목이다.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원전 수출로 원전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는 원전 수주를 기념해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로 정하고 올해 첫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러나 27일 기념식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1년 전 전망과 달리 우리나라는 UAE 이후 추가 수주를 한 곳도 하지 못했다. 이날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UAE 원전 수주의 주역 5명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UAE 원전에 참여하는 한국전력·두산중공업·현대건설 등 3개사가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총 207개의 훈포장 및 표창이 수여됐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치사를 통해 “UAE 원전 수주 이후 경쟁국의 견제로 수주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긴장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면서 “수출 추진체계를 재정비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당초 정부는 UAE 원전 수주 이후 뒤이어 요르단, 터키 등에서 수주가 잇따를 것으로 장밋빛 전망을 했다. 그러나 올 6월 요르단 원전 사업은 일본과 프랑스에 빼앗겼고, 베트남 원전도 일본에 넘겨줬다. 12월 인도 원전 6기 건설사업은 프랑스에, 수주를 코앞에 두었던 터키는 다시 일본에 넘겨줄 상황에 놓였다. UAE 원전 사업은 100% UAE 정부가 공사비를 부담했지만 터키의 경우는 한국이 공사비의 70%에 해당하는 14조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원전 건설 후 전기요금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다 된 밥을 일본에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사업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동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프랑스나 자본력이 탄탄한 일본의 벽을 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지경부 관계자는 “금융당국 등 범정부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허영인 SPC회장 佛공로훈장

    SPC그룹 허영인 회장이 22일 한국과 프랑스 간 경제협력 증진에 이바지한 공으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허 회장은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 브랜드를 통해 국내 프랑스 베이커리 이미지를 높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 18C 연예계 톱스타 달문 최고의 개인기는 뭘까요

    18C 연예계 톱스타 달문 최고의 개인기는 뭘까요

    얼마 전부터 장금(드라마 ‘대장금)이나 동이(‘동이’), 김윤희(‘성균관 스캔들’) 같은 전문직 여성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TV 사극의 주인공은 주로 왕과 왕비였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이 왕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었던 데다 조선이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전문가의 일생’(글항아리 펴냄)은 가치 있는 책이다. 왕과 양반이 주도했던 시대에 사회의 양지와 음지에서 나머지 대다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역사적 실체를 보여준다. ‘조선 전문가의 일생’은 훈장, 역산가(曆算家), 의관, 광대, 승려, 음악가, 궁녀, 목장, 화원, 역관, 서적중개상, 금융업자 등 12가지의 전문직을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12명의 연구자가 조명했다. 철저히 기록을 토대로 분석했다. 조선시대 연예계 톱스타(上色才人)였던 광대의 삶은 어떠했을까. 18세기 무렵 조선 팔도를 뒤흔든, 요즘으로 치면 가수 비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던 달문(達文·1707~?)의 삶은 거지와 다름없었다. 달문의 최고 개인기는 자신의 주먹을 쭉 찢어진 입에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었다. 추남이었던 그는 장가도 들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살았는데 “아침이면 시중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다니다가 저녁이면 부잣집 문하에 들어가 잠자면 그만이지. 한양 성중이 8만호이니 매일 집을 바꾸어 자더라도 일생 동안 다 다니지 못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곤 했다. 달문은 인형놀이의 일종인 만석중놀이, 탈춤인 철괴무, 남사당놀이 가운데 땅재주 부리는 것과 유사한 팔풍무에 능했다. 18세기 시인 홍신유는 서사시 ‘달문가’에서 그의 춤에 대해 “몸을 뒤로 젖히면 머리가 발에 닿고 배꼽이 불쑥 하늘을 쳐다보네.” “온몸이 유연하여 뼈가 없는 듯 삽시간에 몸을 돌려 뒤집더니 어느새 휙 하고 바꾸어 꼿꼿이 섰다가 갑자기 넘어진다.”고 묘사했다. 말년에 억울하게 역모 혐의로 귀양을 갔던 달문은 어디론가 훌쩍 신선처럼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달문의 삶을 조명한 사진실 중앙대 음악극과 교수는 “천민 광대로서 몸은 청계천의 거지 패거리와 함께 지내지만 재상가를 드나들며 상층의 오락 유흥에 이바지했던 달문, 그 괴리를 통해서 중세적 질서와 차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세상에 눈떠 반역을 꿈꾼 광대가 아니었을까?”라고 그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에 반역의 정신을 지닌 광대 장생이 들어가도록 추천했던 사 교수는 “영화 주인공으로 제격인 달문의 이야기도 누군가가 찾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주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책에 소개된 12가지의 직업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직업은 일수쟁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순봉장책’ ‘순봉책’ ‘일봉책’은 일수쟁이의 장부다. 100년 전 일수쟁이들은 매일 남대문을 중심으로 반경 2㎞ 안에 있던 창내장, 칠패 등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과 서민들로부터 일수를 찍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자율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는 것. 영조 때 반포된 법인 ‘속대전’의 규율을 따른 것인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적용됐다. 하지만 상환 기간에 따라 이자율은 현격히 달랐다. 평균을 내어 보면 농촌은 연 30~50%, 도시 전당포는 최대 60%까지 적용된 엄청난 고리였다. 흥미로운 점은 차입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불량채권을 유발한 이에게 고리업자가 다시 대출을 해주거나 일부를 탕감하는 등 온정적인 모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일수쟁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과 달리, 하층 상인을 동반자로서 끌어안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19명 서훈 취소

    국가보훈처는 10일 친일행위가 확인된 장지연 황성신문 주필, 윤치영 초대 내무부장관 등 독립유공자 19명의 서훈 취소를 결정하고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훈 취소 대상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20명 가운데 유족들이 행정소송을 낸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를 제외한 19명이다. 보훈처는 “근·현대사 전공 학자, 생존 애국지사 등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취소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19명의 서훈 취소를 의결했다.”면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심사 대상자의 유족에게 소명 기회를 제공했고 유족들이 제출한 소명서 및 소명자료, 관련 문헌 등을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시일야 방성대곡’을 쓰는 등 항일 언론활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언론인 장지연은 1918년부터 4년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일제의 식민정책을 미화, 장려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는 이유로 서훈 취소가 결정됐다. 윤 전 장관은 1940년 ‘청년’지에 전쟁 찬양글을 기고하고 전쟁협력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맡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 장로교 목사 김응순은 일제의 태평양전쟁 징병을 선전·선동하고 일본기독교장로교단 총무국장을 맡으며 비행기 헌납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 밖에도 친일행적이 드러난 강영석·김우현·김홍량·남천우·박성행·박영희·유재기·윤익선·이동락·이종욱·이항발·임용길·차상명·최준모·최지화·허영호 등도 서훈취소가 결정됐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4명), 애국장(3명), 애족장(11명), 건국포장(1명) 등을 받은 바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이들의 친일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면서 “최종 결정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올해 안에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전국자원봉사자대회… 211명 포상

    행정안전부는 제5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3일 대구 컨벤션센터에서 ‘전국 자원봉사자대회’를 열었다. ‘자원봉사! 미래를 열어 가는 희망에너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나눔과 봉사를 통해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봉사자에 대한 시상식도 진행됐다. 광주 북구 자원봉사센터의 송윤순(59·여)씨가 약 25년 동안 나환자촌 및 장애인시설 청소·빨래 봉사, 연탄 지원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등 모두 211명의 봉사자들이 정부포상을 받았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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