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훈장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건축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의장대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민원 처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근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31
  • 인요한 교수에게 인권상 근정훈장

    인요한 교수에게 인권상 근정훈장

    국가인권위원회는 10일 세계인권선언 66주년을 맞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념식을 열고 인요한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에게 대한민국 인권상 근정훈장을 수여했다. 인 교수는 이주민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체계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인권상 국민포장은 시각장애인의 정보통신 접근성 개선에 이바지한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에게 돌아갔다. 국가인권위원장 개인부문 표창은 이천영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 이사장, 구수경 부산인권포럼 대표, 고(故) 이주헌 의료선교사, 윤진·황현택 KBS 기자, 원용철 벧엘의집 목사, 권은경 열린북한방송 국제팀장, 고민숙 국방부 해군본부 인권과장, 박숭각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실 경위, 피기춘 강원지방경찰청 경위, 김현진 경기 솔개초 교사가 수상했다.
  • 한국전쟁 상처 보듬어준 아세안 행정장관 모인다

    한국전쟁 상처 보듬어준 아세안 행정장관 모인다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이름을 딴 다리가 경기 파주시 조리읍에 있다고 하면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말레이시아가 한국에 제공한 대외원조자금으로 다리를 준공했고 이를 기념해 1966년 성대한 준공식까지 했다는 걸 알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말레이시아의 도움으로 다리를 짓고 공무원들이 선진 외국문물을 배우러 필리핀으로 연수를 가던 시절이었다. 한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이만큼 살게 된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던 아세안(ASEAN) 10개국의 행정장관들이 11~12일 부산 벡스코에 모인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이 행사는 행정혁신 전시회와 행정장관 라운드테이블로 구성된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정부3.0’을 주제로 발제할 예정이다. 아세안 10개국 행정장관들 역시 정부혁신과 인사제도, 전자정부 등으로 나눠 발제와 지정토론을 벌인다. 각 세션 말미에는 각국에서 실제 추진한 구체적인 혁신사례도 소개한다. 가령 다툭 조세프 말레이시아 총리실 장관은 2010년 발표한 경제계획인 ‘비전 2020’을 소개하면서 그 핵심 추진전략으로 정부개혁과 국민통합을 강조할 예정이다. 찬 차우호 싱가포르 정부최고정보책임관은 ‘싱가포르 디지털정부의 미래’라는 발표에서 국민의 수요를 예측하고 디지털생태계를 구축하며 보안·안전과 디지털 포용, 실질적 통합을 구현하는 것을 5대 핵심전략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싱가포르 디지털정부가 자동화시대(1980~1999년), 전자서비스시대(2000~2006년), 통합시대(2007~2010년), 협력시대(2011~2015년)로 진화해 왔다면서 지금은 정부부처 데이터와 시스템을 통합하는 시대를 넘어 정부 안팎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전시회는 크게 한국정부관, 아세안 국가관, 한·아세안 협력관으로 나누어 조성된다. 한국 정부통합전산센터와 각종 전자정부시스템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의 대표적인 행정혁신 사례들을 전시한다. 각국 정상은 물론 각국 관료와 언론인 등 3500여명이 둘러볼 전망이다. 행자부에선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정상회의에 행정혁신을 주제로 한 공식 부대행사가 포함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순구 국제행정협력관은 9일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요소로서 공공행정 부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서 “한국의 공공행정 발전경험이 아세안 국가들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맞아 국가기록원은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을 주제로 한 사진 12건과 영상자료 19건을 이달의 기록으로 공개했다. 기록물에는 1954년 12월 필리핀 병사들을 경무대로 초청해 훈장을 수여하는 영상과 1950년부터 22년간 주둔하다 1972년 귀국하는 4만여 태국군을 환송하는 영상 등이 담겨 있다. 말레이시아교 개통식 사진에선 다리나 도로 개통식에 그 지역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을 모셨던 전통에 따라 두루마기 차림을 한 노인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너는 일행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등 5명에 금탑산업훈장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등 5명에 금탑산업훈장

    역대 최단기 무역 1조 달러 돌파에 이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수출 유공자와 기업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포상하는 제51회 무역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정부와 기업·유관 기관장 등 1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42명의 무역진흥 유공자가 산업훈장·포장 및 표창을 받았고 1481개 수출 기업이 수출의 탑을 받았다.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은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조순태 녹십자 대표이사, 양진석 호원 대표이사, 강신영 흥아기연 대표이사가 받았다.자동차부품 업체인 호원은 전년 대비 66% 성장한 2억 1065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최고품질 인증과 11건의 자동차 제조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터키 등 신시장을 개척해 한·터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한 세계 글로벌 자동차인 마이에르 부품 공급 시장을 선점하기도 했다. 제품의 70%를 해외에 수출하는 세계 5위 포장기계 회사인 흥아기연은 올해 지난해보다 120% 증가한 3억 116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1970년 창업해 실적이 전무했던 2007년 중국 시장에서 현지 밀착 사업을 벌여 100억원대 시장으로 성장시키고 시장점유율도 60%까지 끌어올렸다. 장인환 포스코 부사장 등 5명은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동탑산업훈장은 박남옥 동보 상무이사 등 9명에게 돌아갔다. 올해 최고 수출의 탑인 750억 달러 탑은 삼성전자에 돌아갔다. SK하이닉스와 현대모비스가 100억 달러 탑, 한세실업이 10억 달러 탑을 각각 수상했다. 매직픽스 등 431개사는 올해 처음으로 1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아 본격적인 수출기업으로의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올해 전체 수상업체 수는 1481개로 지난해보다 45개 줄었다. 지역수출 지원 최우수 광역자치단체에는 울산시와 경기중소기업청 수출지원센터가 대통령 표창(단체)을 받았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허진수 부회장 5일 금탑훈장 받아

    허진수 부회장 5일 금탑훈장 받아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이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51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다. GS칼텍스는 허 부회장이 30여년간 대규모 고도화 설비에 투자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으로 수출을 증대해 국가 에너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세계 경기 침체와 산유국 정체 능력 확대 등 불리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올해 266억 달러 수출액을 기록했다. 허 부회장은 2008년 정유업계 최초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같은 해 GS칼텍스가 150억 달러 수출의 탑을 받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부고] 한국아동복지학 창시 주정일 선생

    [부고] 한국아동복지학 창시 주정일 선생

    국내 아동복지학 창시자로 꼽히는 원로 아동학자 주정일 선생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학 가정과를 수료한 뒤 미국 조지아주립대와 테네시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당시 보건사회부 부녀아동국장 시절 ‘어린이집’이라는 말을 만들고 그 토대를 다졌다. 서울대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으며 대한가정학회장, 한국아동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남편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와 딸 진경(전 충북대 교수)씨, 아들 진웅(덕성여대 교수)·진수(충북대 교수)·진호씨, 사위 정병호(한양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5일 오전 9시. (02)3010-2261.
  • [손성진 칼럼] ‘빅 히어로’는 없는가

    [손성진 칼럼] ‘빅 히어로’는 없는가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건 ‘리틀 빅 히어로’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알고 난 후였다. 남몰래 묵묵히 선행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과는 다른 별세계의 이야기 같다. 1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둘이 함께 화장실 청소로 번 돈 1029만원을 기부한, 허리가 꼬부라진 노부부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동반자가 돼 주는 두 남녀의 선행은 남발되는 훈장쯤으로는 도저히 보답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불공평한 세상을 더욱 불공평하게 만든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불리는 데 골몰한다. 권력자는 더 큰 권력을 추구하고 부자는 더 많은 재산을 끌어모으려 한다. 밥벌이를 위해 불의를 서슴없이 합리화할 만큼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세상이다. 비록 정당한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이기심으로 점철된 그들의 욕망은 인지상정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철저한 경쟁주의에서 낙오된 약자들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수십만의 또 다른 ‘송파 세 모녀’ 가구가 있고 그보다 별 나을 것도 없는 빈곤층이 천만에 육박한다. 3만 달러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해 온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 길고 짙게 드리워졌다. 빈곤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을 뿐 뒤는 돌아보지도 않은 탓이다.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그런 상황을 체감하기는 어렵다.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빈곤 해결에 발벗고 나섰던 지도자를 기억해 낼 수 있는가. 없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 권력자, 지도층이 현실조차 제대로 모르니 시정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느리다. 마침 이를 입증하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의 빈곤율은 18.9%에 이르는데 정부 정책으로 빈곤율이 감소한 효과가 가장 적은 나라라는 반갑잖은 소식이다. ‘리틀 빅 히어로’에 나오는 ‘불량 농부’ 김은규씨는 이런 세상을 작은 힘으로나마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수확한 농작물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기도 하고 다급한 사람에게 외상으로 준다. 갚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굶주린 시신으로 발견된 영화감독 최고은씨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통장이 마이너스인 적자 인생을 살면서도 위기 상황에 빠진 이웃을 기꺼이 도와준다. 이런 노력은 바이러스처럼 번져 나가 그의 활동에 동조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기 전에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이웃에 냉소적이다. 집에 둘러친 높은 담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세상에서 쾌락을 향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천박한 이기심에 파묻힌 그들에게 주변의 삶이 안중에 들 리도 없다. 타인을 억누르고 이득을 강탈해 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리틀 빅 히어로’, 작은 영웅들이 하나둘 늘면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다. 김은규씨 같은 사람이 천 명, 만 명을 넘어설 때 적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붕괴의 위기에 빠진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오롯이 그들의 가상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이다. 민초(民草)의 힘이 잘못된 정치를 바꾸듯 빈곤 문제도 미력한 백성의 십시일반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또 빠른 길도 있다. 국가와 지도자, 또 지도층이 ‘빅 히어로’가 된다면 한쪽으로 쏠린 불공평을 한층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리틀 빅 히어로’들처럼 한 번만이라도 타인의 삶에 눈길을 돌린다면 세상은 금세 달라지리라 의심치 않는다. 기업들은 연말이면 수백억원씩 기부금을 내고, 주머니를 털어 이웃에 작은 도움을 베푸는 시민들도 물론 많다. 하지만 사회적 리더들의 힘이 필요하다. 저 자신, 제 가족만 생각하는 좁은 식견에서 빠져나와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빅 히어로는 어디에 있는가.
  • 신동빈 회장에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

    신동빈 회장에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과 영국 양 국가 간 관계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훈장인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는다. 20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수훈식은 2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리며 여왕을 대신해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가 훈장을 수여한다. 대영제국 훈장은 영국의 이익에 공헌하거나 경제, 문화예술, 기술과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 가운데 CBE는 기사(Knight) 작위 다음으로 높은 훈장이다. 신 회장은 영국에 대한 롯데그룹의 투자를 비롯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서 한·영 양국 기업체 간 공동의 번영을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롯데그룹은 2006년 롯데쇼핑을 국내와 영국 런던 증시에 동시 상장했고 2010년에는 롯데케미칼이 영국 화학섬유업체 아르테니우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베트남서 민간외교 활동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베트남서 민간외교 활동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의욕적인 베트남 민간외교 활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회사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 17일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경제 현안과 교류 증진 방안에 대해 환담했다. 박 회장은 특히 이날 만남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했다. 박 회장이 쯔엉떤상 주석을 만난 것은 베트남 최고훈장인 ‘우호훈장’을 받은 지난 3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양측은 이날 환담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아홉 차례 만남을 이어 가는 등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18일에는 베트남 대학생 118명에게 재학 기간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회사는 2007년 200만 달러를 출연해 베트남 내 최대 규모의 장학문화재단을 설립, 매년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지원을 받은 현지 대학생은 현재 1100여명에 이른다. 박 회장은 이어 제3회 ‘금호아시아나배 베트남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도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신념에 따라 베트남 정부와 협력해 미래의 큰 자산인 학생들의 미래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일본의 영혼 닮은 배우… ‘철도원’ 눈감다

    일본의 영혼 닮은 배우… ‘철도원’ 눈감다

    일본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다카쿠라 겐이 악성 림프종으로 지난 10일 도쿄 시내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교도통신이 18일 보도했다. 83세. 한국에서도 개봉된 1999년 작 ‘철도원’에서 강직한 성품을 지닌 철도원으로 분한 그는 이상적인 일본 남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1960년대 여러 협객 영화에서 부조리에 맞서는 주인공을 연기해 당시 학생운동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할리우드 영화 ‘블랙레인’(1989년), 중국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연출한 중·일 합작영화 ‘천리주단기’(2005년)에 출연하는 등 세계 무대로 활동 폭을 넓혔다. ‘철도원’으로 1999년 몬트리올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일본 문화훈장을 받았다. 2002년 주연을 맡은 영화 ‘호타루’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다카쿠라는 총 2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한 배우였다. 또한 뛰어난 연기력과 인품을 갖춰 일본 팬들에게 ‘겐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의 유작은 2012년 개봉한 ‘당신에게’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그해 호치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서울광장] 아베 극우주의의 종착역/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베 극우주의의 종착역/오일만 논설위원

    밀운불우(密雲不雨). 비가 내리기 전에 먹구름이 잔뜩 낀 모습이다. 주역의 소과괘(小過卦)에 나오는 구절로 조짐만 보이고 뭐하나 일이 성사되지 않는 암울한 형국을 말한다. 대륙 세력 중국과 해양 세력 일본이 정면충돌하고 중간에 낀 우리가 동분서주하는 2014년 동북아 정세와도 비슷하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불행히도 과거사의 끝자락에서 시작됐다. 중화 부흥(中國夢)을 앞세운 중국은 120년 전 청일전쟁 패배 이후 치욕을 되갚으려 와신상담 중이고 장기 침체기에 빠진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 한다. 치욕과 영광의 교차점에서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이 된 양국의 에너지가 갈등과 충돌을 향해 가는 것은 뭔가 불길하다. 경제 불황이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던 과거사의 교훈을 되새김질하지 않더라도 20년간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불황기에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면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 길을 열어 놓은 점도 수상쩍다. 1930년 전후의 대공황기에도 그랬다. “1929년(쇼와 4년) 월가의 주식시장 대폭락 사태로 닥친 불경기가 일본을 덮쳤다. 세상에 실업자가 넘쳐 흘렀고 불경기에서 일찍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쟁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1932년(쇼와 7년) 전쟁(만주사변)으로 인해 경제가 좋아지면서 신문은 노골적으로 전쟁 확대를 선동했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치닫는 배경이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비평가인 한도 가즈토시의 말이다. 전쟁을 향해 가는 일본 군부의 어리석은 판단과 이에 편승해 권력을 추구했던 정치인들, 전쟁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를 생생하게 전했다. 쇼와시대에 이은 헤이세이 26년(2014년) 일본은 어떤가. 마치 쇼와시대의 데자뷔를 보는 느낌이다. 2012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극우적 행보를 훈장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나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화하는 극우단체들, 군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입을 닫는 일본 극우 언론들이 활개친다. 전쟁 전 극우 세력들의 핵심 축이 군부였다면 지금은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매개체다. ‘태평양전쟁은 자존자위의 올바른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우익들 세계관과의 절묘한 결합점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정치인들이 집요하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목을 매는 이유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현재의 집권 세력인 아베 정권은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자 일본 극우화의 본산으로 불리는 세이와정책연구회 회원들이 주류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의 산파역을 맡았던 요시다 쇼인을 정신적 지주로 모신다. “구미 열강과의 조약은 지키되 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조선 및 만주에서의 영토 확장으로 만회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권으로 계승됐다. 아베 정권은 요시다의 가르침에 따라 전후 세대가 대부분인 국민들을 우경화하면서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에 앞서 “독일 나치 정권에서 바이마르 헌법 개정 수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이들의 역사관을 가늠케 한다. 국제 정세 역시 일본 극우주의 세력에 자양분을 주는 형국이다. 중국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은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의 배양지가 되고 있고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은 군사대국화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 견제를 위해 재팬머니가 절실하다. 분쟁 지역에서의 전쟁 위험이 클수록 수지가 맞는다는 입장에서 미국 군산(軍産) 복합체의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는 조지 프리드먼 역시 군국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정치·경제적 이유로 호전적인 국가로 변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침략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찬미하는 정권과 이웃하고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어찌 보면 북핵보다 더 위험한 동북아의 핵폭탄을 이고 사는 심정이다. oilman@seoul.co.kr
  • 송해·최불암·박정란씨 은관훈장

    송해·최불암·박정란씨 은관훈장

    26년간 KBS 인기 방송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아 온 방송인 송해씨와 배우 최불암씨, 1세대 드라마 작가 박정란씨가 올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1일 이들 외에도 KBS 성우 1기로 왕성하게 활동한 김수일씨와 1950년대 공장 근로자와 해외 교포들을 위한 공연 활동에 주력하며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가수 명국환씨, 영화 120여편에 출연하며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배우 최은희씨 등 3명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등 대중문화 부문 포상 대상자를 발표했다. 대통령표창 수상자는 가수 김광석씨를 비롯해 배우 사미자씨, 모델 이재연씨, 연주자 이유신씨, 음반제작자 홍승성씨, 방송 PD 김영희씨와 작곡 프로듀서 유영진씨 등 7명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조병량 명예교수 홍조근정훈장 수상

    조병량 명예교수 홍조근정훈장 수상

    조병량(67) 한양대 명예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제27회 한국광고대회에서 올해의 유공 광고인 최고상인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시상식은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조 교수를 비롯해 산업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문체부 장관 표창 등 훈·포상 수상자 14명의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다.
  • ‘국민 소재’ 나일론 첫 생산…섬유계 선구자

    ‘국민 소재’ 나일론 첫 생산…섬유계 선구자

    국내 섬유의 종가로 불리는 코오롱그룹을 세운 주역인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이 명예회장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하고 부친인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선대회장이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아사히피복회사를 설립할 당시 15세였던 이 명예회장은 부친 덕에 섬유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1945년 해방 뒤 아버지와 귀국해 대구에 경북기업주식회사를 세웠다. 1957년 4월에는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질기고 오래가는 기초 생활소재인 나일론의 국내 첫 양산은 당시 한국 의류사의 큰 사건이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한국나일론을 한국포리에스텔과 합병하면서 상호를 ‘코오롱’(KOLON)으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했다. 코오롱이라는 지금의 사명은 코리아 나일론(KOREA NYLON)에서 나왔다. 고인이 취임한 이후 코오롱은 1980년대 필름·산업자재, 1990년대에는 초극세사를 이용한 첨단 섬유제품, 1990년대 초반에는 제2이동통신사업 등에 진출했다. 그는 ‘경제계의 어른’이기도 했다. 1982~96년 초까지 15년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2년 금탑산업훈장을, 1992년에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받았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대한농구협회장과 대한골프협회장, 2002 한·일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와 황영기와 이봉주가 소속된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1995년 12월 회사 경영을 외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물려줬다. 퇴임 이후에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2009년에는 미수전을 열었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틀째 이어졌다.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재계와 금융계 인사들이 이날 빈소를 찾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경총 등 경제단체도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고인은 1945년 신덕진(2010년 작고)씨와 결혼해 1남 5녀를 뒀다.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큰 돈보다 더 큰 뜻…카이스트에 100억 기부한 익명의 할머니 하늘로

    큰 돈보다 더 큰 뜻…카이스트에 100억 기부한 익명의 할머니 하늘로

    2010년 1월, 카이스트 교무처장인 이광형(현 미래전략대학원장) 교수에게 모 은행으로부터 “기부를 원하는 할머니가 계신데 한번 만나보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이 교수와 마주 앉은 여든다섯의 할머니는 평범했고 수수했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재산이 좀 있는데, 좋은 곳에 쓰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주위에 맡길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에 맡기면 딴 데 쓸 수도 있어서 재단을 만들까 고민 중”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재단은 떠나시고 나면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한국의 미래는 과학에 있으니, 과학 인재를 위해 그 돈을 쓰자”고 설득했다. 그해 여름까지 7~8차례의 만남이 이어진 끝에 할머니는 카이스트에 기부를 약속했다. 이때만 해도 기부금이 얼마인지 짐작도 못했다. 같은 해 7월 14일 카이스트에 전달된 돈은 현금 100억원이었다. 할머니는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만 내걸었다. 서남표 당시 카이스트 총장과 이 교수가 “기부는 알려야 확산된다”고 설득한 끝에야 가명으로 기부 사실만 발표할 수 있었다. 가명은 할머니의 성 ‘오’에 호인 ‘이원’을 썼다. 워낙 자신을 숨기다 보니 이 교수나 카이스트 발전기금 관리자들조차 오이원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전남 순천 출신으로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신 분”이라면서 “남편이 의사였는데 20년 전 사별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대부분 채권을 사 모으면서 큰 돈을 벌게 됐다고 하더라”면서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검소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셨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측도 나중에 알았지만 100억원은 할머니의 전재산이었다. 기부 과정에서 흔히 생기는 가족 간의 잡음도 없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동의했고, 손자들도 좋아했다”고 전했다. 오 할머니는 기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지만, 훈장조차 가명으로 받았다. 카이스트는 기부금으로 할머니의 호를 딴 ‘이원 조교수 제도’를 만들었다. 갓 부임해 기반이 없는 젊은 조교수의 연구비로 1인당 3년 동안 600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2011년 3명으로 시작해 올해는 수혜자가 20명으로 늘었다. 앞으로도 매년 20명씩의 ‘이원 조교수’를 뽑을 계획이다. ‘이름 없는 기부천사’인 오 할머니는 지난 3일 숙환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89세. 카이스트는 교내에 빈소를 만들어 오 할머니의 숭고한 뜻을 기렸고, 학생과 교직원들의 애도 발길이 이어졌다.이 교수는 “만날 때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려면 카이스트가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고 당부하셨다”면서 “그 뜻이 이뤄지는 것을 하늘에서라도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발목 복사뼈 물혹, 수술 뒤 치유?”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발목 복사뼈 물혹, 수술 뒤 치유?”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발목 복사뼈 물혹, 수술 뒤 치유?” 40일간의 칩거 이후 공개활동을 재개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손에서 지팡이가 사라졌다. 조선중앙TV가 5일 오후 3시쯤 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제3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에 참석한 소식을 전하며 내보낸 사진에서 김 제1위원장이 지팡이 없이 군 수뇌부와 대회장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날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에서도 김정은 제1위원장이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이동하면서 지팡이 없이 걷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제1위원장이 지난달 14일(보도날짜) 장기간의 칩거를 깨고 등장한 이후 지팡이 없이 공개활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왼쪽 발목 복사뼈에 낭종(물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이 때문에 장기간 칩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인민군 제3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가 3일과 4일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됐다”면서 김 제1위원장이 대회에서 연설하고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북한군 대대장의 계급은 보통 대위 또는 소좌(우리의 소령)이며 대대 정치지도원은 대대 군인들의 사상교육을 책임진 정치장교다. 이번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는 2006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차 대회 이후 8년 만이며, 1차 대회는 1953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 제1위원장은 대회 연설에서 “인민군대에 있어서 싸움준비, 훈련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절박한 과업은 없다”며 “싸움준비에서 내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대들에서는 부업을 강하게 내밀어 중대들을 다 부자중대로 만들고 군인들에게 언제나 푸짐한 식탁과 포근한 잠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연설 후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0여 년간 대대장 또는 대대정치지도원으로 일하면서 공로를 세운 방경철 등 5명에게 ‘노력영웅’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직접 수여했다. 김 제1위원장의 연설로 미뤄 이번 대회는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훈련 강도를 높여 군 기강을 확립하며 군인복지에 힘을 넣어 ‘군심’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해 10월에는 김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13년 만에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열고 군 기강 확립을 독려했다. 대회와 기념촬영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군 총참모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등이 함께했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제발 건강이 나빠져야 할 텐데”,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이제 치료가 다됐나”, “김정은 지팡이 없이 등장, 저 몸으로 잘 걸어다니지도 못 할텐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리스 美태평양함대사령관에 훈장

    해리스 美태평양함대사령관에 훈장

    해군은 황기철(오른쪽) 해군참모총장이 방한 중인 해리 해리스(왼쪽) 미 태평양함대사령관(해군 대장)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우리 정부를 대표해 수여했다고 3일 전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우리 해군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한·미동맹의 견고함과 양국 해군의 탁월한 작전수행 능력을 과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 공로로 이날 훈장을 받았다. 1978년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리스 사령관은 ▲미 남부사령부 작전참모처장 ▲6함대사령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강습 및 지원부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 러 한민족학교 설립자 한국 국적 취득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매우 기뻐요.” 러시아 국적의 엄넬리(74·한국명 엄원아) 박사는 고려인 4세다. 150년 전 증조할아버지가 강원도 영월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엄 박사는 러시아에서 한국 문화 교육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모스크바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91년 51세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만 해도 우리말을 몇 마디 못했다. 한 핏줄이고 생김새도 같은 데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원통해 모스크바로 돌아온 뒤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러시아 유일의 한민족학교를 설립했다. ‘뿌리’를 잊지 않도록 우리 전통예절도 가르치며 20여년 동안 동포들에게 한민족의 주체성과 긍지를 심어왔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대통령표창, 2002년 국민포장, 200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그러던 그가 우리 국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특별공로귀화자 2호가 됐다. 법무부는 31일 엄 박사에게 한국 국적을 수여하는 ‘국적증서 수여식’을 열었다. 벨기에 출신으로 ‘시흥동 슈바이처’로 불리는 마리 헬렌 브라쇠르(68·한국명 배현정) 전(全)·진(眞)·상(常)의원 원장도 함께 증서를 받았다.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한민국 국익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귀화가 허가된 것은 2012년 3월 인요한 박사 이후 두 번째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제22회 물류의 날, 석탑산업훈장에 백영창 회장

    제22회 물류의 날, 석탑산업훈장에 백영창 회장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물류의 날, 최고의 영예인 석탑산업훈장은 40여 년 간 꾸준히 물류산업 발전에 힘써온 백영창(사진·71) 합동물류 회장에게 돌아갔다. 합동물류는 31일 국토교통부가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한국물류대상 시상식’에서 백 회장이 최고 대상인 석탑훈장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은 국내 물류업계 최대 행사인 ‘2014년 물류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석탑산업훈장을 수여한 백 회장은 택배단가 현실화, 택배기사와의 상생경영 등을 통해 국민생활과 밀접한 택배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 택배시장 선진화를 이끌어온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류업계의 해외 시장 개척에 기여한 공로도 인정 받았다. 2004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현지에 7개 영업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베트남, 캄보디아, 몽고 등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백 회장은 “전문성을 갖춘 소(小)화물 전문 물류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유미기자 yium@seoul.co.kr
  • 폴란드 출신 6000명 구한 ‘日쉰들러’ 나치 적극협력 들통난 ‘가짜 伊쉰들러’

    제2차세계대전의 참혹함 속에 유대인을 구한 이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알려진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 말고도 많다. 폴란드에서 그릇 공장을 운영하던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 1100명을 구해 냈다. 또 다른 독일인 사업가 베르톨트 바이츠는 폴란드에서 유대인 250명의 목숨을 구했다. 지난해 8월 숨진 그는 독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 명예회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전 개발 사업가였던 바이츠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유대인들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용소로 가는 것을 막았다. 1973년 이스라엘 야드 바셈 대학살 박물관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열방의 의인’ 호칭을 받기도 했다. ‘일본의 쉰들러’로 알려진 스기하라 지우네는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영사대리로 일할 당시 6000명에 달하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에게 일본 비자를 발급해 줬다. 정부 훈령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송환된 뒤 외교관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2000년 일본 외무성이 그의 공적을 기리는 현판을 세우며 명예를 회복했다. 1969년에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1985년 일본인 처음으로 ‘열방의 의인’으로 칭송받았다. 유대인을 구한 것으로 칭송받다가 후에 거짓으로 드러난 인물도 있다. ‘이탈리아의 쉰들러’ 지오반니 팔라투치는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이탈리아령 리예카에 경찰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유대인 5000명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증거가 지난해 나오면서 나치 협력자로 밝혀졌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나치 위험에서 구출된 ‘아이들’ 75년 만에 105세 은인에 박수

    나치 위험에서 구출된 ‘아이들’ 75년 만에 105세 은인에 박수

    휠체어에 앉은 백발의 영국 노신사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밀로스 제만 체코 대통령도 허리를 굽힌 채 최대한 예의를 갖춰 그를 맞이했다. 28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올해 105세인 니컬러스 윈턴 경을 위한 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제2차세계대전 직전인 1939년 체코 유대인 어린이 669명을 학살 위협에서 구해낸 공로에 대한 체코 정부의 ‘뒤늦은 보은’이었다. 윈턴 경은 “아이들을 받아 준 영국인과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치에 맞서 싸운 체코인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75년 전 그가 구해 낸 아이들은 80대 노인이 돼 생명의 은인인 윈턴 경에게 박수를 보냈다. BBC는 “영국의 평범한 할아버지가 체코에서 막대한 존경과 환대를 받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체코 국방장관은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윈턴 경을 모시기 위해 특별 전용기를 보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서 복무한 윈턴 경은 조종석에 들어가 보는 작은 호사를 누렸다. 그가 아이들을 구해 내기 위해 사무실로 썼던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아트데코 호텔도 방문했다. 이날 체코 정부 최고 훈장인 ‘백사자 국가훈장’을 받은 윈턴 경은 “나는 조금 도왔을 뿐이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제만 대통령은 “훈장을 너무 늦게 드린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윈턴 경이 어린이에게 삶과 자유의 기회를 줬다면서 윈턴 경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독일계 유대인 부모를 둔 윈턴 경은 190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던 1938년 겨울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떠나려던 그에게 유대인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29살에 불과했던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프라하로 떠났다. 윈턴 경은 자비를 털어 양부모가 될 영국의 후원 가정을 모집하고 프라하에서 런던까지 운행하는 기차 8대를 예약했다. 부모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하자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던 어린이들이었다. 1939년 초부터 그해 9월까지 영국에 무사히 도착한 유대인 어린이 699명은 대부분 영국 가정에, 일부는 스웨덴에 입양됐다. 그가 구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윈턴 경의 선행은 비밀에 부쳐졌다가 1988년 남편이 몰래 보관해 온 자료를 발견한 부인을 통해 BBC ‘대츠 라이프’에 방송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2002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그를 ‘영국의 쉰들러’라고 칭송했고, 2003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