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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중 ‘조국 일본’ 공습한 일본계 미군 사망

    2차대전 중 ‘조국 일본’ 공습한 일본계 미군 사망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 도쿄를 불바다로 만든 유일한 일본계 미국인이 사망했다. 최근 미국 LA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일본계 미국인인 벤 쿠로키가 캘리포니아 카마릴로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향년 98세. 한 노병의 죽음에 현지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역시 일본계로서 모국 일본에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지난 1917년 네브라스카주 이민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 직후 미군에 자원 입대를 신청한다. 그러나 일본계로서 충성심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단박에 거절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은 그는 다른 지역의 신병 모집소로 달려가 재차 신청해 입대하는데 성공했다. 군에 입대했다고 해서 이같은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훈련 중 일본계 미국인들은 해외로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으나 우수한 성적 덕에 당당히 육군항공대 소속이 된 그는 B24 폭격기 포탑 사수로 배치돼 유럽에서 나치와 싸우게 된다. 특히나 쿠로키가 현지에서 화제가 된 것은 일본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태평양 전선에 배속을 희망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군 당국에 의해 이같은 요청이 거절당했으나 당시 헨리 스팀슨 육군장관이 신원을 보증하면서 그는 모국을 향한 폭격 대열에 오르게 된다. B29 폭격기 승무원으로 그는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을 포함한 여러 작전에 투입됐으며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3개의 훈장도 받았다. 그의 활약에 감동받는 미 타임지는 지난 1944년 '영웅: 벤 쿠로키, 미국인'(HEROES: Ben Kuroki, American)이라는 기사로 그를 치켜 세울 정도.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저널리즘 학위를 받은 후 기자로 일하다 은퇴했다. 수많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희망이자 애국자로 평가받았던 그는 과거 한 행사장에서 이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우리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위해 지옥처럼 싸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싸움이 정당하다고 느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브라질, 최신원 SKC 회장에 훈장… 양국 경제·문화 교류 등 기여 공로

    브라질, 최신원 SKC 회장에 훈장… 양국 경제·문화 교류 등 기여 공로

    최신원 SKC 회장이 브라질 정부로부터 한국과 브라질의 경제·문화·교육 등 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히우 브랑쿠’ 훈장을 받았다고 SKC는 3일 밝혔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광진구 광장동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에지문도 후지타 주한 브라질 대사의 이임 행사와 함께 진행된 수훈식을 통해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 회장은 지난 2011년 6월 사단법인 한국·브라질 소사이어티 설립을 주도하고 회장을 맡으며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다. 아울러 지난 2011년 브라질 명예영사에 위촉된 뒤 인천국제공항 업무단지 내에 명예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도 한국과 브라질의 교류 확대와 돈독한 협력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中 전승절 열병식] ‘황금색 패션 외교’ 朴대통령… 중화부흥·군사굴기 드라마 참관

    [中 전승절 열병식] ‘황금색 패션 외교’ 朴대통령… 중화부흥·군사굴기 드라마 참관

    모처럼 푸른 하늘을 수놓은 첨단 군용기 200대, 지축을 흔들며 등장한 500여기의 최신형 무기 장비, 평균 연령 90세 노병 부대가 포함된 1만 2000여명의 병력, 평화 메시지와 함께 발표된 인민해방군 30만명 감축 방안…. 3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대회 열병식’은 역대 최대 규모로 세계를 향한 ‘군사굴기(軍事崛起) 쇼’이자 중국인을 위한 ‘중화 부흥의 드라마’였다. ●열병식 행진곡은 한국인 정율성 선생이 작곡 오전 9시(현지시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톈안먼(天安門) 북쪽의 돤먼(端門) 광장에서 각국 지도자를 맞이하며 열병식의 시작을 알렸다. 공식 예복인 중산복(인민복)을 입은 시 주석과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펑리위안은 차례차례 입장하는 각국 대표단과 악수를 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열병식에서 처음 연주된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은 한국인 작곡가 정율성(1914~1976) 선생이 작곡한 군가였다. 광주 출신인 그는 1939년 이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여러 곡을 남겨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로 불린다. 깍듯한 자세로 영접에 나선 시 주석 부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황금색 상의를 입고 입장하자 미소와 함께 짧은 담소를 나눴다. 중국인들은 황금색이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노란 상의는 펑리위안의 붉은색 원피스와 잘 어울렸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악수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지 않고 이동하려 했지만, 펑리위안이 친절하게 안내해 시 주석 오른쪽 옆에서 촬영을 했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반기문 총장은 오른쪽서 다섯번째 자리 톈안먼 성루에 오를 때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왼쪽에서 걸어갔다. 단체 기념사진 촬영 때는 시 주석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이 섰고, 왼쪽으로 펑리위안과 박 대통령이 섰다. 성루 위 귀빈석에서 박 대통령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했다. 열병식장 입장부터 성루에서 열병식을 관람할 때까지 박 대통령의 자리가 네 번 바뀌었지만 줄곧 시 주석 가까이에 있었다. 중국 당국은 박 대통령에게 차양막이 없고 햇빛이 강할 수 있으니 미리 선글라스를 준비하라고 안내하는 등 전날 시 주석과의 단독 오찬에 이어 각별한 의전을 이어갔다. 성루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 주석으로부터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자리에 앉았다. ●박대통령, 슈뢰더에 “하르츠 개혁 귀감됐다” 박 대통령은 성루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등 중국의 원로지도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등 성루외교를 펼쳤다. 특히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게 “지난 2003년 추진한 하르츠 개혁(노동개혁)이 귀감이 됐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2기 핵심과제로 노동개혁을 꼽은 바 있다. 오전 10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개회선언을 하자 시 주석은 15분가량의 기념사를 마친 뒤 톈안먼 광장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창안제(長安街)에 도열해 있는 장병들에게 “퉁즈먼 하오”(同志們 好·동지들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치며 사열했다. 장병들은 “서우장 하오”(首長 好·최고사령관님 안녕하십니까)로 우렁차게 답했다. 시 주석이 탄 무개차는 중국산 최고급 승용차 훙치(紅旗)였다. 시 주석이 각 부대를 사열하면서 왼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하다가 맨 마지막에 오른손으로 경례한 것은 중국군의 독특한 전통이다. 분열 행진의 선두엔 항일노병부대가 섰다. 팔로군 등 항일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은 저마다 가슴에 훈장을 달고 대형 무개차에 앉아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열병식에 참여했다. 대만 국민당군 출신 노병들을 호송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45대의 오토바이 부대가 등장했다. 대원들은 시속 10㎞로 10시간씩 100㎞를 가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분열 행진 중 미모로 유명세를 탄 평균 신장 178㎝ 육·해·공 여성 의장대 51명이 눈길을 끌었다. ●예포 70발은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물량공세로 공중과 지축을 압도했다면, 열병식의 내용은 여러 가지 ‘숫자’로 상징됐다. 먼저 70.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며 개막을 알린 예포가 총 70발 발포됐다. 헬기 편대는 아라비아숫자 ‘7’과 ‘0’의 모양으로 대열을 맞춰 식장 상공을 수놓았다. 팔로군, 신사군, 동북항일연군, 화남유격대 등 10개 항일부대가 선보인 깃발 역시 70개였다. 오전 11시 37분 리 총리의 종료 선언과 함께 열병식의 끝은 비둘기 7만 마리와 풍선 7만개가 톈안먼 광장 하늘을 수놓았다. 개막식을 알린 예포 56발은 중국을 이루는 56개 민족의 숫자가 반영됐다. 열병식 국기게양을 맡은 호위부대는 톈안먼 광장 인민영웅기념비에서 게양대까지 정확하게 121걸음을 걸었다. 중국이 패전해 아시아 패권을 잃는 계기였던 청일전쟁(1894년) 발발 121주년을 기념한 행보다. 청일전쟁의 무대는 동학농민혁명 등으로 근대화와 자주화 모색이 한창이었던 한반도였다. 전쟁의 시작도 끝도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열병식에 드러나지 않은 ‘여백’은 앞으로 중국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우선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열병식에 참석한 현직 정상은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유일했다. EU 회원국 대다수는 정상이 참석하지 않고 장관급이나 외교관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맥스 보커스 주중 대사가 참석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개인 자격으로 초청받아 왔다.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초청자 대다수의 정통성이나 격이, 모처럼 준비한 중국에 맞지 않았던 여백을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메워 줬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서울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비위’ 퇴직 교원 89명 정부 포상

    음주운전, 성범죄 등의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은 교원들이 정부 포상을 받고 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교육부에 따르면 음주운전, 아동 성범죄 미신고 등 각종 비위 전력이 있는 교원 89명이 지난 2월 정부 포상을 받고 퇴직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4월부터 ‘정부포상업무지침’을 개정해 금품·향응 수수와 공금 횡령·유용, 성범죄, 음주운전 등의 ‘비위’ 공무원들을 정부 포상 추천에서 영구 배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침이 시행되기 직전인 2월 말 이들 비위 교원들에게 포상을 했다. 또 포상 사실도 교육부 홈페이지에 공지하지 않았다. 실제로 교육부 감사 결과 직원 채용 과정에서 시험 계획을 공고하지 않아 경징계를 받았던 A 대학의 전임 총장 B씨는 지난 2월 말 청조근정훈장을 받고 퇴직했다. 당시 친인척 채용 의혹이 있었던 해당 직원은 합격 직후 사직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지난달 말에 퇴직한 교원 중 징계 기록이 있는 인사 127명에 대해서는 훈포장 수여를 전면 보류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軍, 지뢰 피해자·후송대원 무공훈장·표창 검토

    육군은 지난 4일 발생한 북한군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의 피해자 김정원·하재헌 하사를 포함해 사건 당시 침착하게 이들을 후송한 나머지 수색대원 6명 등 총 8명이 훈장이나 표창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육군 관계자는 28일 “지뢰도발 사건의 부상자뿐 아니라 부상자들을 성공적으로 후송한 1사단 수색대원들에게 포상을 주는 방안을 1군단이 육군본부에 건의했다”면서 “일부 수색대원들에 대해서는 무공훈장을 포함한 포상 방안이 폭넓게 논의됐으나 북한군 포격 도발로 잠시 중단됐다가 다시 추진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육군본부는 1군단의 건의에 따라 이들 수색대원에게 적절한 포상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들 수색대원이 훈장 가운데 격이 높은 무공훈장을 받으려면 육군본부의 상신 이외에도 소관 부처인 행정자치부의 최종 승인을 거쳐야 한다. 평시 수색작전 중 사고를 당하고 이에 잘 대처한 장병들이 무공훈장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지뢰도발 사건 당시 하 하사와 김 하사는 지뢰를 밟아 크게 다쳤음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팀장인 정교성(27) 중사를 비롯한 동료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부상자들을 성공적으로 후송했다. 이 모습은 우리 군이 운용 중인 열상감시장비(TOD)에 그대로 찍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그때 그 아픔 달래주던 ‘불멸의 가수 7人’ 부활

    그때 그 아픔 달래주던 ‘불멸의 가수 7人’ 부활

    광복 70주년을 맞아 힘들고 고단한 시절 노래로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의 기틀을 마련한 ‘불멸의 가수 7인’을 조명하는 뜻깊은 무대가 마련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960년대 이전에 음반을 발표해 활동하다 고인이 된 가수 중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남인수, 백년설, 현인, 배호, 고복수, 이난영, 김정구 등 7명을 ‘불멸의 가수 7인’으로 선정했다. 이들의 노래는 오는 31일과 9월 7일, 14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특별기획 3부작 KBS ‘가요 무대-광복 70년 불멸의 가수, 영원의 노래’를 통해 부활한다. 1부에서는 윤항기, 명국환, 현철, 설운도, 인순이 등 후배 가수 8명이 남인수와 백년설이 발표한 명곡을 다시 부른다. 남인수는 1938년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해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감격시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겨 당시 ‘가요황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백년설 역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을 비롯한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2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마음을 달랜 ‘타향살이’의 고복수, 불멸의 가수 7인 중 유일한 여성가수로 ‘목포의 눈물’을 히트시킨 이난영, 1980년에 대중가요 가수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은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 등 3인을 집중 조명한다. 태진아, 최유나, 김연자가 총 16곡의 무대를 꾸민다. 3부에서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던 배호, 대한민국 건국 후 음반을 처음으로 발표해 ‘대한민국 가수 제1호’라는 별명을 지녔던 현인의 히트곡으로 무대가 펼쳐진다. 윤수일은 ‘돌아가는 삼각지’, 진송남은 ‘안개 낀 장춘단공원’을 부르고 주현미는 ‘굳세어라 금순아’, 안다성은 ‘길’을 각각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송성각 원장은 “광복 70년을 맞아 시대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 온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선배 가수들의 히트곡들로 무대를 꾸몄다”면서 “이번 행사가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새로운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백중앙의료원장에 박상근 교수 연임

    백중앙의료원장에 박상근 교수 연임

     학교법인 인제학원(이사장 이혁상)은 인제대 백중앙의료원장에 상계백병원 신경외과 박상근(사진) 교수를 연임 발령했다. 임기는 오는 9월 1일부터 1년.   박상근 의료원장은 상계백병원 초대 신경외과 과장과 부원장, 원장을 역임한 뒤 2010년부터 백중앙의료원장을 맡아 왔다. 또 대한뇌종양학회 회장, 신경외과학회 회장, 노인신경외과학회 회장, 신경중환자학회 회장과 서울시병원협회회장, 상급종합병원협의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37대 대한병원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민훈장 석류장, 홍조근정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인생 2막 ‘希스토리’

    [커버스토리] 인생 2막 ‘希스토리’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지만 직장인의 절반은 여전히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고 있다. 연봉이 높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권에서도 ‘명퇴’(명예퇴직)와 ‘찍퇴’(찍혀서 퇴직) 등을 통해 최근 1년 새 5만 7000개의 일자리(올 6월 말 기준)가 사라졌다. 서울신문이 퇴직 은행원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인생 2막’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스펙’(SPEC)이다. 기술(Skill), 전문성(Professionalism), 시도(Endeavor), 소자본(less and less Capital)의 머리글자다. 상고를 나와 국민은행에서만 30년을 근무한 이만호(59)씨의 지금 직업은 보일러 수리공이다. 지금까지 따 놓은 자격증만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전기기능사 등 9개에 달한다. 이씨는 “기술과 자격증이 있으면 보수가 올라가고 그만큼 제2의 정년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2011년 기업은행에서 본부장으로 퇴직한 노희성(59)씨는 은행원 시절 전문성을 살려 박사 학위 없이도 대학(유한대) 강단에 서고 있다. ‘영업의 달인’, ‘인수·합병(M&A) 전문가’ 등 자신만의 고유 브랜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영란(47) 지구촌사랑나눔 이주여성지원센터 이사는 지난해 10월 한국씨티은행에서 물러났다. 고액 연봉을 뿌리치고 무일푼 자원봉사자의 삶을 선택했다. 오 이사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시도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부지점장 출신인 조성준(63)씨는 개인택시 기사다. 택시를 선택한 것은 소자본으로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인택시 면허와 차량 인수에 들어간 돈은 1억원 남짓. 출퇴근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손주들을 보거나 운동을 한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퇴직 은행맨들의 인생 2막 이야기] ■Skill(기술) - 퇴직 6년차 이만호 국민은행 보일러 기사 보일러기사 되니 지점장 망신이라고?… ‘9개 자격증 별’ 달아 봤어? ‘생즉사 사즉생.’ 국민은행 본점 보일러실에 근무하는 이만호(59) 기사는 “정말 죽기 살기로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국민은행에서 30년을 근무하며 지점장까지 올라왔지만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한 그는 2010년 희망퇴직을 하고 직업학교를 다녔다. 그가 가장 먼저 도전한 자격증은 보일러 기사. 나이 제한(만 55세) 직전에 걸려 있었던 이씨는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용어가 생소하니 외워지질 않는 거예요. 그래도 필기시험은 실기보다는 나아요. 용접을 하다 옷을 태우는가 하면 손발을 다치기도 했죠.” 수업 중에 실수를 해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던 그는 하지만 첫 도전에 바로 합격했다. 이후 공조냉동기능사 자격증에도 곧바로 도전했다. 보일러기사 자격증으로는 일 년 내내 돈을 벌기가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공조냉동기능사가 눈에 띄었다. 실기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을 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합격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국민은행 보일러 본점 시설과에 채용됐다. 주변에서는 “이만호가 지점장 망신시키고 다닌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후배들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씨의 월급은 140만원. 지점장 시절에 비하면 ‘쥐꼬리’이지만 이씨는 “이게 어디냐”며 미소 짓는다. 보일러기사로 근무하면서 따놓은 자격증이 어느새 9개. 이씨는 앞으로 전기 분야 최고 자격증으로 통하는 전기기능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전기기능장이 되면 월 400만~500만원은 거뜬히 벌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Professionalism(전문성) - 퇴직 5년차 노희성 유한대 경영과 교수 30년 노하우로 산학협력 영업 뛰어… 박사 학위 없이도 교수 평가 100점 “지난해 교수 평가에서 100점을 맞았습니다. 비결이 뭐냐고요? 은행 30년 경력 때문이죠.” 노희성(59) 유한대학교 경영과(세무회계 전공) 교수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은행원 출신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기업은행 강남지역본부장을 끝으로 2011년 희망퇴직한 노 교수는 한국교통대를 거쳐 지난해 유한대 산학협력 교수로 초빙됐다. 박사학위 없이 현업에서의 전문성과 경력만으로 교수가 됐기 때문에 각론 과목보다는 원론 수업(경제학원론, 경영학원론 등)을 주로 맡는다. 은행 인사부장 경험을 살려 인사·조직관리, 리더십 등의 과목도 가르친다. 그의 업무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기업들과 산학협력을 맺는 것이다. 노 교수는 이 부분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은행에서 지점장, 지역본부장을 하면서 거래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학교 주변에 산학협력을 원하는 기업들이 많아요. 개별 접촉을 하기도 하고, 인근 지역 지점장 소개를 받기도 하고, 본부 부서(기업은행 일자리창출팀)를 통해 다자 간 협력을 맺다 보니 산학협력을 체결한 기업체 수만 60~70곳이 넘네요.” 산학협력 교수는 해마다 평가를 통해 2년 단위로 연장하는데, 노 교수는 첫 교수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정년(65세)까지는 학교에 남아 있을 것 같다”며 노 교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인생 3막도 준비 중이다. 80세까지 할 일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다음 직업은 진로 지도사. 지난달 방학 기간을 틈타 한국진로지도협회도 세웠다. “학교에 있다 보니 진로 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겠더라고요.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팡이 역할을 해줄 겁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ndeavor(시도) - 퇴직 2년차 오영란 지구촌사랑나눔 이사 2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나 ‘우리’ 돌아보는 ‘새 시작’에 설레 오영란(47) 지구촌사랑나눔 이주여성지원센터 이사는 피부가 까무잡잡하게 그을려 있었다. 7월 말부터 2주간 스리랑카에 다녀온 ‘훈장’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아이들이 왕복 4시간의 산길을 걸어 통학해요. 농번기엔 가정에서 아이들이 홀로 지내죠. 이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스리랑카에 그룹홈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오씨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다고 했다.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씨티은행 부장이었다. “20년 넘게 은행원 생활을 하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이웃이나 주변을 살펴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내달려오던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됐죠.” 지난해 10월 은행을 그만뒀다. 그리고는 곧장 다문화가정 미혼모를 위한 지원센터 설립에 매진했다. 은행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총괄하며 다문화 가정의 열악한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였다.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재능기부’이지만 오씨는 기업체, 대학병원, 법무법인 등 후원을 해줄 수 있는 곳이라면 닥치는 대로 쫓아다녔다. 오씨는 이 센터에서 미혼모 6명과 자녀 10명을 돌보고 있다. 그는 “불법 이주노동자 출신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역시 ‘불법 이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 정부 지원은커녕 이 땅에 기댈 곳이 없다”며 “적어도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체 재취업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의 연장선상이다. “씨티은행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공헌 활동이 필요한 기업과 다문화 가정을 연계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이제 시작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Capital less and less(소자본) - 퇴직 11년차 조성준 개인택시 기사 택시하려고 퇴직금 따로 떼어뒀지… 핀잔 주던 동기들, 이젠 부러워해 “어디로 모실까요?” 개인택시 기사 조성준(63)씨는 매일 아침 “10명의 손님한테 칭찬을 받자”는 다짐을 한다. 은행원 시절 고객을 대하는 자세로 임하면 택시를 타는 손님들 마음도 열릴 것으로 본 것이다. 조씨는 “운전이 고되긴 하지만 손님들한테 ‘인사를 잘하신다’ ‘운전을 편안하게 하신다’ ‘인상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1976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30년을 한 직장에서만 지내온 조씨는 2005년 부지점장을 끝으로 퇴직을 결심했다. 지점장을 노려볼 수는 있었지만 어차피 퇴직을 해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나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게 낫다고 봤다. 희망퇴직을 하면서 특별퇴직금으로 30개월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았는데 이 중 1억원은 개인택시를 하기 위해 따로 떼어놨다. 조씨는 “동기들이 ‘은행 다니는 놈이 택시는 무슨’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개인택시만큼 안정적인 일도 없다. 식당을 차렸다가 장사가 안되면 투입한 돈을 모두 날리지만 개인택시는 나중에 면허를 반납하면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말했다. 조씨의 하루 근무 시간은 약 10시간. 오전 7시부터 11시,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주로 출퇴근 시간에만 운전한다. 심야에도 일할 수 있지만 욕심부리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자제하고 있다. 월평균 수입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여기에 국민연금 월 120만원을 받고, 개인연금도 매월 50만원 남짓 나오니 부부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요즘에는 동기들도 다들 부러워해요. 제 삶만큼 자유로운 삶이 있을까요. 내년 5월 아내와 북유럽 여행을 다녀 오려고 적금을 붓고 있습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박윤슬기자 seul@seoul.co.kr
  • 국경절 아닌 전승절 첫 열병식… ‘대국굴기’ 노린 시진핑 야심작

    국경절 아닌 전승절 첫 열병식… ‘대국굴기’ 노린 시진핑 야심작

    중국이 새달 3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개최하는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 열병식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중 치러지는 가장 성대한 국가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 블루(푸른 하늘)’를 연출하기 위해 20일부터 베이징시에서는 차량 홀짝제가 시작됐고, 오는 28일부터는 베이징 인근 7개 성에 있는 오염물질 배출 공장 1만 2255개가 가동을 멈춘다. 신중국 건국이 선포된 1949년 10월 1일 열린 개국 열병식 이후 이번 열병식 전까지 중국은 14차례에 걸쳐 국경절(10월 1일)에 열병식을 거행했다. 국경절이 아닌 전승절에 치러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을 물리친 중국이 마침내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섰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시 주석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국내 행사에 머무른 기존 열병식과 달리 해외 각국 지도자와 군대까지 초청했다. 열병식에서는 시 주석이 강조해 온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섬)와 ‘군사굴기’의 위용이 유감없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중국이 야심 차게 개발해 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31B와 둥펑41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신형 전략폭격기 훙6와 젠10, 전투기 젠11B, 공중조기경보기 쿵징2000, 최신 헬기 즈11, 최신 장갑차 99A 등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장 직선도로인 장안대가(長安大街)를 행진하는 병력은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인들도 행진에 참가한다. 열병식은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펼쳐진다. 시 주석은 성루에서 사열한 뒤 기념 연설을 한다. 전승기념일 특성을 살려 항일전쟁을 겪었던 노병들에게 기념 훈장을 수여한다. 낮 12시 30분부터는 광장 옆 인민대회당으로 자리를 옮겨 축하 사절단을 위한 리셉션을 진행한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가 구분되다 보니 열병식 참석을 꺼리는 외국 정상들이 리셉션에만 참여해 시 주석과 회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열병식 준비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은 중국이 분리 참석을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열병식을 건너뛰고 리셉션에만 참여하는 것은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밥만 먹고 가는 것과 같아 중국 입장에선 외교적 결례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열병식은 중국의 국력과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개국 열병식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오늘 성립됐다”고 선언했다. 당시 전투기 17대가 광장 상공을 비행했는데, 국민당과의 내전이 막 끝난 터라 4대에는 실탄이 실려 있었다. 1950년 열병식에서는 1900필의 백마를 탄 기병부대가 광장을 통과해 세계에 큰 인상을 심어 줬다. 이 열병식 후 20여일 만에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1953년 열병식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사열에 참여했고, 중국군 총사령관인 주더(朱德)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1959년까지 매년 10월 1일 국경절에 치러진 열병식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24년 동안 중단됐다. 마오 사후 당내 투쟁을 거쳐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1984년에 열병식을 부활시켰다. ICBM이 이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쩌민(江澤民)은 건국 50주년을 기념해 1999년 열병식을 치렀다. 건국 60주년이었던 2009년 열병식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사열을 맡았다. 시 주석은 건국 70주년인 2019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이란 명분을 내세워 집권 3년 만에 사열대에 올라선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날 오전 개최할 예정이던 전승절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지만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美선교사 ‘알렌 훈장’ 문화재 된다

    美선교사 ‘알렌 훈장’ 문화재 된다

    고종 황제가 1904년 미국인 의료선교사이자 외교관이던 알렌(1858~1932)에게 수여한 훈장이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알렌 수증 훈공일등 태극대수장’을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고 19일 밝혔다. 훈장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건 처음이다. ‘알렌 훈장’은 정장(正章·약식이 아닌 정식으로 된 훈장 등을 통칭), 부장(副章·끈이 없는 메달로 정장과 함께 가슴에 다는 표지), 대수(大綬·정장을 달기 위해 어깨에서 허리에 걸쳐 드리우는 큰 띠)로 이뤄져 있다. 정장 위쪽은 대한제국 상징인 이화꽃 문양으로 표현돼 있으며, 꽃잎 뒷면엔 한자로 ‘훈공일등(勳功壹等)’이 새겨져 있다. 부장도 태극장 형태이며, 정장과 함께 대수 윗부분에 꽂을 수 있도록 제작됐다. 대한제국기 훈장 제도는 1900년 정치·외교적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도입돼 1910년까지 시행됐다. 알렌이 훈장을 받은 1904년까지 태극장을 수여받은 사람은 100여명이며, 정장·부장·대수가 모두 남아 있는 예는 드물다. 문화재청은 “알렌 훈장의 역사성과 희소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고 설명했다. 알렌은 1884년 의료선교사로 입국해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을 설립했다. 1905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훈장을 가져갔다. 그의 사후 유가족이 지난 4월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현재 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새달 민방위 40돌 공무원 포상 줄줄이

    다음달 22일 민방위 창설 40주년을 맞아 공무원 포상이 줄지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주무 부처인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개인 29명 및 단체 4곳을 민방위 업무 발전 유공 정부 포상 추천 명단에 올렸다. 1차로 걸렀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훈장 또는 표창을 받게 된다. 이번 명단에는 정부 부처 공무원 6명과 지방자치단체 직원 20명, 민간 기업체 2곳, 주부와 통장 각각 1명, 지자체 3곳이 포함됐다. 경남 창원시 조진희(56) 주부민방위기동대연합회장은 지금까지 민방위 활동에 2319회 참여해 지원민방위대 운영을 위해 힘쓴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도의회가 지원조례를 만들어 뒷받침할 정도로 역량을 쏟았다. 홍성일 전남도 안전총괄과장은 도청 공무원들을 위해 방독면 1750개를 보급하고 민방위 교육 강사비를 자체 조달하는 등 공로를 세웠다. 또 최충수 안전처 서기관은 지난해 최초로 실시된 전국 단위의 화재 대피 훈련을 기획, 집행하고 민방위 선진화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데도 한몫을 해냈다. 김상중 충남도 사무관은 민방위 경보 통신망 개선에 힘써 기존 동선 통신망 79회선을 100% 광통신망으로 바꿨다. 손준석 대구 중구 남산3동 제1통장은 민방위 교육 및 훈련 참여율을 92%로 끌어올려 포상 대상에 추천됐다. 지자체들의 노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부산시는 지난해 민방위 마스코트까지 만드는 등 활성화 정책이 돋보였다. 경기도는 지난해 교육과정 운영 특화에 14억원, 시설 확충 사업에 47억원을 투자해 모범을 보였다. 한편 제399차 민방위의 날인 19일 오후 2시 민방공 대피훈련 방송에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진영(새누리당) 위원장이 특별 출연해 민방위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밀알심장재단 이정재 총재, 심장병 환자 수술 공로로 캄보디아 국왕 훈장

    세계밀알심장재단은 이정재 총재가 지난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밀알심장재단 캄보디아 심장병 환자 수술 10주년 행사’에서 캄보디아 보건복지부 차관으로부터 국왕 최고훈장을 받았다고 18일 밝혔다. 캄보디아 국왕이 수여하는 이 훈장은 국가에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이 총재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250여명의 캄보디아 심장병 환자를 수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됐다.
  •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1920~1930년대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매년 이날이 되면 하루 종일 굶으며 그날의 치욕을 곱씹었다.”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1888~1957) 장군의 막내딸인 지복영(1919~2007)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14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 여사가 노년에 쓴 공책 세 권 분량의 회고록과 언론 기고문, 편지, 한시 등 육필 원고를 모아 한 권의 회고록으로 묶었다. 지 여사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중국 각지에서 생활했다. 19세부터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지 여사는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며 2012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지 여사의 회고록에는 만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겪은 ‘조선인 동포 사회’의 풍경이 상세히 기술됐다. 특히 해마다 ‘국치일’(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 8월 29일)이 되면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고 치욕을 곱씹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또 낮에는 조선인 학교에 모여 ‘국치의 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연극을 공연했던 것으로 기술됐다. 나라를 잃었지만 개천절이면 다 함께 음식 추렴을 해 마을잔치를 열었던 일,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중국인 패잔병들이 벌인 악행, 동포들 사이에서 나타난 지역감정과 분열상 등 당시 동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부친 지 장군의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일화도 소개됐다. 1924년 당시 다섯 살이던 지 여사는 어머니, 오빠와 함께 중국 지린으로 건너가 처음 아버지와 만났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기에 어린 지 여사는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지 장군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회고했다. 지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딸답게 일제에 적극 항거한 여성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지 장군은 한국독립군 간부들과 중국 내륙으로 이동했다. 지 여사도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19세가 되던 1938년부터 거리에서 ‘일제 타도’란 구호를 외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이후에는 한국광복군 창군 대원으로 참여했다. 지 여사는 광복군의 기관지 ‘광복’을 편집·제작하고 대일 선무방송을 진행하며 일본군으로 끌려온 한인 병사들을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임무도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회고록을 펴낸 지 여사의 장남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후손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편에 섰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1880~1953)의 외손자 오이시 스스무(80)씨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광복 70주년 인사를 남겼다. 그는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도 “축하에 이어 가장 먼저 드는 소회는 한반도 분단에 대한 슬픔”이라고 전했다. 그도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2004년 건국훈장을 받은 할아버지처럼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오이시는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독립운동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에게 드리는 최대의 공양(供養)”이라는 표현을 쓰며 남북한 통일을 기원했다. 이어 아베 신조 정부의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해 “진실을 부정하려는 자세는 정당하지도 않고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도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지 얼마 안 될 무렵 직접 한국을 찾아 수요집회에 참석했다는 오이시는 “나는 위안부에 끌려간 여성의 불행을 인식하며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는 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했다. 최근 친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근령씨를 언급하기도 한 그는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죄는 한국의 요구가 아닌 일본의 자발적 행위일 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평론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한 오이시는 ‘후세 다쓰지와 조선’ 등 4권의 책을 쓰며 역사 속에 묻힌 후세 변호사의 삶을 되살려 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톰킨스 등 7명 한국친우회 통해 독립 지지

    [광복70주년] 톰킨스 등 7명 한국친우회 통해 독립 지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새롭게 포상한 257명에는 외국인이 10명 포함돼 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에 기여한 공적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외국인은 총 67명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새로 선정된 10명 중에서도 ‘큰 인물’이 적지 않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미국인 플로이드 톰킨스 목사가 그렇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은 톰킨스 목사를 가리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무장된 군인 몇 개 연대와도 맞먹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3일 “톰킨스는 미국 21개 지역에 퍼져 조선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여론 형성에 나선 한국친우회의 초대 회장이었다”며 “조선이 지도에도 없고 한민족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던 당시 미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선전 외교 활동의 선봉에 있었다”고 말했다. 조지 노리스와 셸던 스펜서 등 미국인 6명도 한국친우회를 통해 일제의 식민 통치를 비판한 인물들로 이번에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1942년부터 한미협회 회장을 지내며 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하는 글을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제임스 크롬웰, 1906년 런던트리뷴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린 더글러스 스토리도 각각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프랑스인으로는 유일하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루이 마랭은 파리에 한국친우회를 만들어 일제의 인권유린을 고발한 공이 인정됐다. 기존의 외국인 서훈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30명에게만 수여된 ‘최고 훈격’인 대한민국장 서훈자 중에서도 외국인이 5명이나 된다. 중국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쑨원과 장제스 대만 총통, 그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 중국 정치가인 천궈푸와 혁명가인 천치메이 등 5명으로 항일을 위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힘을 합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과거 대통령장에 추서됐던 인물로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이름 ‘배설’로 잘 알려진 그는 1904년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언론 활동을 벌인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67명의 외국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한국인 유공자들이 매월 받는 보훈급여나 교육·의료·취업 혜택은 받지 못한다. 따라서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에게는 일종의 ‘명예훈장’만이 주어진 셈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A급 전범·독도 망언 등 일본인 15명 서훈 유지 왜

     우리 정부가 훈장을 잘못 추서한 일본인들의 서훈이 각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과 조선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 731부대 관련자, 야스쿠니신사 및 독도와 관련해 망언을 한 인사들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들 부적격 서훈자들의 자격 논란이 제기된 이후에도 상훈법상 서훈 취소와 관련된 정부의 유권해석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행정자치부와 외교부 등에 따르면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등 총 15명의 일본인에 대해 현재 우리 정부 훈장이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공개한, 잘못된 서훈 대상자로 A급 전범 3명과 731부대 관련자 2명, 독도 망언 인사 5명,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주장한 4명, 인종차별 발언자 1명 등 모두 15명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로 고다마 요시오, 사사카와 료이치 등과 함께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용의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망언이나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한 인사 중에서는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기시 전 총리의 동생), 시나 에쓰사부로(기시 전 총리의 핵심 참모),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아베 총리의 부친) 등이 훈장을 받았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일본 총리의 참배 정례화를 주장한 인물로는 스즈키 젠코 전 총리 등이 있고, 훈장 수여자 중 다케 미다로와 가토 가쓰야 등은 731부대 관련자다.  정부 훈장 포상을 담당하는 행자부 측은 “서훈 수여나 취소의 경우 추천 기관 요청에 따라 가능하다”며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관할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호 증진 기여 등의 공적이 인정돼 적법 절차에 따라 결정된 서훈인 만큼 취소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 의원은 2013년 국가 이익을 해치는 행위와 사회윤리에 반하는 행위 등 서훈의 존엄과 가치를 손상시키는 경우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상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광복70주년] A급 전범·독도 망언 등 일본인 15명 서훈 유지 왜

    우리 정부가 훈장을 잘못 추서한 일본인들의 서훈이 각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과 조선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 731부대 관련자, 야스쿠니신사 및 독도와 관련해 망언을 한 인사들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들 부적격 서훈자들의 자격 논란이 제기된 이후에도 상훈법상 서훈 취소와 관련된 정부의 유권해석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행정자치부와 외교부 등에 따르면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등 총 15명의 일본인에 대해 현재 우리 정부 훈장이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공개한, 잘못된 서훈 대상자로 A급 전범 3명과 731부대 관련자 2명, 독도 망언 인사 5명,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주장한 4명, 인종차별 발언자 1명 등 모두 15명이다. 정부 훈장 포상을 담당하는 행자부 측은 “서훈 수여나 취소의 경우 추천 기관 요청에 따라 가능하다”며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관할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호 증진 기여 등의 공적이 인정돼 적법 절차에 따라 결정된 서훈인 만큼 취소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 의원은 2013년 국가 이익을 해치는 행위와 사회윤리에 반하는 행위 등 서훈의 존엄과 가치를 손상시키는 경우 서훈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상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33년 근무하면 ‘폭행·불륜 교원’도 훈장 주는 교육부

    지난해 정부 포상을 받은 퇴직 교원 중 200여명이 각종 비리로 징계나 형사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는 불륜이나 도박, 여교사 폭행 등을 저질렀던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중징계인 ‘정직’ 전력이 있는 교원도 5명이나 됐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1일 교육부에서 받은 ‘2014년 퇴직 교원 정부 포상자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포상을 받은 퇴직 교원 9938명 가운데 징계나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은 214명으로 100명 중 2명꼴이었다. 경남 지역의 A 교장 등 4명은 불륜을 저질러 징계를 받았다. 울산의 B 교감 등은 도박을 했다가 적발됐다. 강원 지역 C 교감은 다단계판매를 했다가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강원 D 교감은 동료 여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해 견책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 모 대학 E 교수는 음주운전으로 2차례 벌금을 냈다. 음주 추태 행위로 견책을 받은 교감도 있었다. 시험문제를 낼 때 특정 업체의 참고서를 활용하거나 대학 입학 지원 방법을 위반해 징계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회계 처리 부정이나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사문서 위조 등을 저질렀다가 적발된 교원들도 퇴직을 이유로 상을 받았다. 원칙적으로 공무원은 33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할 경우 옥조·녹조·홍조·황조·청조 훈장 등 정부 포상을 받는다. 재직 중 형사 처벌이나 징계, 불문경고 등을 받은 공무원은 퇴직 포상에서 제외되지만 사면(형사 처벌), 말소(징계·불문경고) 등의 처분을 받으면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징계 등의 전력자 214명은 이 규정을 적용받아 포상을 받았다. 안 의원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징계나 형사 처벌을 받은 교원들은 사면, 말소 등과 상관없이 정부 포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제 고조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남강 선생입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어려울 때 가진 재산 다 털어서 오산학교 세웠던…. 그게 1907년이니까 100년도 넘었네요.” 이기대(61)씨의 목소리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명 중 한 명이자 1만 3000여명 독립유공자 중 단 30명만 추서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후손인 이씨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관련 법이 보상 및 지원 대상 유족의 범위를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가장 아래 후손인 남강 선생의 손자, 즉 이씨의 할아버지는 이미 50여년 전인 1960년대 초에 별세했다. 1961년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군사원호청이 세워진 이후인 1965년부터 독립유공자 지원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남강 선생의 후손들은 사실상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셈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보상 내용을 담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유족의 범위를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해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기간’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을 기점으로 1945년 8월 14일까지 50년으로 본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경우 현재는 거의 증손 혹은 고손까지 대(代)가 내려온 상황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임예환 선생의 증손자 임종선(55)씨도 후손 지원이 끊긴 사례다. 임씨는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보상이 뚝 끊겼다”면서 “한창 나라가 힘들 때는 힘들다고 보상을 못 받았고 지금은 자격이 안 돼 못 받는다”고 말했다. 민족대표 33인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손자녀로서 보상을 받고 있는 민족대표의 후손은 6~7명에 불과하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유족 범위를 증손자녀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내에서 계류 중이다.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은 국가유공자의 유족 범위를 자녀로 한정하고 있는데, 독립유공자의 경우 이미 ‘예외적’으로 손자녀까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인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유족 지원은 본인이 생존했다고 볼 때 부양해야 할 가족에 대한 것인데 통상 이는 손자녀까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국가유공자 유족의 범위를 최대 손자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증손자녀까지 유족 범위를 확대할 경우 수급 대상자가 급증할 수 있고 재정 소요가 커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실제 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증손자녀가 유족에 포함될 경우 2014~2018년 추가적으로 48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됐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고 이매방 명인 은관문화훈장 추서

    고 이매방 명인 은관문화훈장 추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7일 별세한 ‘한국 무용계의 거목’ 이매방 명인에게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추서했다고 9일 밝혔다. 앞서 이 명인은 1984년 옥관문화훈장(4등급)을 받은 바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옥관문화훈장에 이어 은관문화훈장을 또 추서하는 건 평생 우리 춤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문화 융성과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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