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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최고령 요가 스승 나남말 별세

    인도의 최고령 ‘요가 스승’으로 유명한 브이 나남말 할머니가 26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나남말은 이날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코임바토르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은 “어머니가 최근 48일 뒤에 죽을 것이라고 자신의 사망일을 예견했다”며 “예견일보다 8일 앞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나남말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 100명에게 요가를 가르쳤다. 가족들에게 죽음을 예고한 뒤 낙상사고를 당해 최근 30일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다. 1920년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8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배운 요가를 시어머니에게 처음 가르친 뒤 이웃과 아이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요가센터를 설립해 100만명 이상을 가르쳤고 유튜브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그에게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파드마 슈리’를 수여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사망일 점쳐놓고 여드레 앞당겨 ‘요가 할머니’ V 나남말 세상 떠

    사망일 점쳐놓고 여드레 앞당겨 ‘요가 할머니’ V 나남말 세상 떠

    ‘요가 할머니’로 불리며 인도의 수행자나 교사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V 나남말이 남부 타밀 나두주의 코임바토르 근처 집에서 26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몇달 전까지도 하루에 수백 명에게 요가 수련을 가르칠 정도로 건강이 좋았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그런데 침대에서 낙상한 뒤부터 한달 동안을 몸져 누웠다고 가족들이 PTI 통신에 밝혔다. 두 아들이 코임바토르에서 요가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 가운데 한 명은 “앞서 어머니가 48일 뒤에 죽을 것이라고 사망일을 예견했는데 정확히 예견일보다 여드레 앞당겨 돌아가셨다”고 말했다고 현지 영자 신문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전했다. 농민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요가를 배워 50개 이상의 동작과 아사나(마음을 신체활동에 대한 관심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취하는 부동자세)를 통달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등이 늘 요가를 수련하며 피로를 푸는 것을 보고 함께 따라 했다고 했다. 시어머니에게 요가 수련을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친지와 이웃들에게 가르치다 점차 넓혀 지금까지 45년 넘게 100만명 이상의 제자를 조련해 600여명의 강사를 양성해 전 세계로 내보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나남말은 인도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파드마 슈리를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늘 입고 다니던 핑크빛 전통 의상 사리를 입은 채 수련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17년 BBC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렇게 정정한 것은 매일 요가 수련을 한 덕분이라며 “건강이 최우선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독도지킴이 공적조서 조작 바로 잡아 달라”…고 김성도씨 유족 1인 시위

    “독도지킴이 공적조서 조작 바로 잡아 달라”…고 김성도씨 유족 1인 시위

    독도마을 이장을 지낸 고(故) 김성도(1940~2018)씨 유족 측이 ‘독도의 날’인 25일 오전 경북도청 앞에서 ‘독도 김성도 국민훈장 998계단 공적조서 조작 사건 진실 규명’ 이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김씨의 딸 진희씨는 “해양수산부와 경북도, 울릉군이 지난 5월 31일 ‘바다의 날’을 기념해 독도 수호에 공이 큰 제 아버지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면서 주요공적에서 독도의 샘물인 ‘물골’로 올라가는 998계단 설치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등 공적조서를 일방적으로 조작했다”면서 “뿐만 아니라 누락 사실도 외부에 철저히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6월 아버지의 공적조서가 조작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를 작성하거나 관여한 울릉군과 경북도에 바로 잡아 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면서 “훈장 포상을 주관한 해양수산부에도 이를 항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훈장 반납을 시도하는 등 강력 반발해 왔다. 진희씨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땅 독도의 역사가 일본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엄연한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와 지자체가 스스로 독도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해서는 절대 안된다”면서 “독도 수호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공적조서 조작 경위가 철저히 밝혀지고 역사적 사실이 바로 잡혀지길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독도 주민 최종덕·김성도씨 국민훈장 추서를 해양수산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남일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이 서울신문에 이들의 공적 근거 자료라며 지난 7월 뒤늦게 제공한 ‘독도주민생활사’(2010년 경북도 발행) 책자에는 물골 계단 설치가 김씨와 최씨 두 사람의 공적으로 기록돼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인천상륙작전 공로에도… 잊혀진 영웅 ‘켈로부대’

    인천상륙작전 공로에도… 잊혀진 영웅 ‘켈로부대’

    인천에서 직선거리로 9㎞가량 떨어진 작은 섬 ‘팔미도’. 면적이 0.23㎢에 불과한 이 섬에는 국내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있습니다. 팔미도 등대는 문화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기습 침공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던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등대 불빛이 인천 앞바다로 온 연합군의 길잡이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엔 미군이 조직한 첩보부대 ‘켈로(KLO)부대’가 있었습니다. ‘KLO’는 ‘주한첩보연락처’(Korea Liaison Office)를 줄인 것으로, 미 극동군사령부가 운용한 한국인 특수부대 ‘8240부대’를 의미합니다. 6·25 전쟁 당시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 ‘강원 화천발전소 탈환작전’ 등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비정규군에다 기록이 많지 않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전후 대원 상당수가 정규군이 됐지만 6·25 전쟁 당시의 활약상은 대부분 미군의 기밀로 취급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4일 켈로부대 규명을 주도한 남광규 고려대 교수가 올해 한국보훈학회에 제출한 ‘6·25 참전 KLO한국유격군 보상법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켈로부대는 6·25 전쟁 발발 직후부터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미 8군에 소속됐다가 1950년 11월 중공군 개입 이후 미 극동군사령부에 배속됐습니다.●생환 가능성 희박한 적지에 투입… 전원 전사 켈로부대는 주로 북한군 점령지역 항만을 봉쇄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특수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북한군으로 위장해 적지로 침투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북한 출신으로 구성됐고 군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를 탈환하는 임무를 맡았고 나머지는 서해 백령도에 주둔한 ‘동키부대’, 강화도 교동의 ‘월팩부대’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켈로부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던 ‘백골병단’은 미군이 아닌 우리 군에 배속돼 북한 침투 작전을 벌였습니다. 2013~2014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문가가 미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자료를 수집한 결과 미군 조종사 구출작전, 이른바 ‘블루 드래곤 작전’의 활약상도 밝혀졌습니다. 대외비로 60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던 이 작전은 1952년 1월 시작됐습니다. 평양 북쪽에 불시착한 미군 조종사 5명을 찾는 임무였습니다. 생환 가능성이 희박했던 작전에 5월까지 켈로부대원 170여명이 투입됐고 안타깝게도 북한군, 중공군과의 교전 끝에 대원 전원이 전사했습니다. 켈로부대는 ‘화천발전소 탈환작전’에도 투입됐습니다. 유엔군은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 화천발전소를 탈환하려 했지만 중공군 진지와 포병부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습이 쉽지 않았습니다.●진지 위장술 밝혀내 중공군 공습, 발전소 탈환 이때 켈로부대원이 투입돼 중공군의 대포와 전차가 실은 유엔군 정찰기를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곧바로 유엔군이 중공군 진지를 공습했고 화천발전소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수많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전후 ‘굴곡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953년 7월 휴전 당시 켈로부대는 30여개 소부대로 늘었습니다. 부대원 중 전사상자를 제외한 일부는 1958년 ‘특전사 제1전투단’ 창설에 투입됐습니다. 간부 700여명은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병사 1만 2000명은 한국군에 재입대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해산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등병, 일병 등으로 재입대해 명예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물론 ‘이중복무’를 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유격대원은 아무런 복무 기록이 없어 새 군번과 계급이 제공됐습니다. 간부들은 부대 내 계급에 따라 부사관이나 ‘대위’ 등 위관급 계급을 받았지만 병사 역할을 맡았던 대원들은 병역법에 따라 ‘신병’으로 재징집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남 교수는 “미 8군이 1954년 1월 뒤늦게 유격대원이 한국군에 배속된 사실을 알고 국방부에 항의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며 “이후 그들이 미군에 배속돼 수행한 활동에 대한 보상은 일절 논의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보상법안 19대 국회서 법사위 못 넘고 폐기돼 남 교수에 따르면 현재 켈로부대원으로 활동한 참전용사에게 지급하는 보상은 매달 12만원을 주는 ‘6·25 전쟁 참전 명예수당’이 전부라고 합니다. 전공에 따른 무공훈장이나 참전수당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에 배속됐던 ‘백골병단’과 ‘특수임무자’들은 이들과 달리 각각 관련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국회는 2004년 3월 ‘6·25 전쟁 중 적 후방 지역 작전수행 공로자에 대한 군복무 인정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백골병단에 대한 보상을 진행했습니다. 특수임무자들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됐습니다. 남 교수는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켈로부대원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일”이라며 “미군에 배속돼 활동한 3년여 기간도 군 복무 기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남 교수에 따르면 국방부는 ▲과거부터 켈로부대원을 한국군에 배속시키면서 이미 급여를 지급했고 6·25 참전수당과 현충행사를 지원하고 있는 점 ▲개인 기록이 없어 보상과 서훈이 불가능한 점 ▲국가가 소집한 것이 아닌 자생적 미군 산하 단체로 국가가 보상할 책임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막대한 예산도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자료에 따르면 켈로부대원과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5년간 68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보상법안이 어렵게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문턱은 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보상법안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 교수는 “6·25 전쟁 직후 시대적 환경과 당시 제도적 여건 미비로 이들의 희생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현재 생존자 대부분이 80세 이상 고령자임을 감안할 때 더 늦기 전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유격대 단체가 절충점을 찾아 좀더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노벨문학상 한트케의 인종청소 옹호… 넘어선 안 될 선”

    “노벨문학상 한트케의 인종청소 옹호… 넘어선 안 될 선”

    “알바니아에서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와 정치적 색채를 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가 옹호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저지른 인종학살은 결코 이해되거나 수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83)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77)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트케는 알바니아계 ‘인종 청소’로 악명이 높았던 전 세르비아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를 옹호한 전력으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019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카다레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트케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지만 작가로서 그를 옹호한다는 건 알바니아뿐 아니라 동유럽에 속한 발칸반도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 되는 태도”라고 일갈했다. “그의 조국보다 유명하다”는 평을 얻는 카다레는 외세 지배, 스탈린식 공산독재를 겪으며 유럽에서조차 소외된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문학 대사’다. 1963년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서슬 퍼런 공산 정권하에서 작품이 출간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92년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4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2005년 제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6년에는 프랑스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그는 발칸반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을 차용,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에게 풍자는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있던 모든 동료 작가들이 권력의 억압에 대항해 표현,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도달한 지점”이었다.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방한한 카다레는 “알바니아에서 한국 문화는 물론이고, 문학의 지위도 향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알바니아가 세계 최고의 공산주의 국가라 했는데 그건 유럽에서이고, 북한 상황은 알바니아에도 잘 알려져 있다”며 “낙원, 천국이라는 개념을 자주 말하고 사용하지만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북한 같은) 국가에서 문학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배우 김혜자·가수 양희은 은관문화훈장

    배우 김혜자·가수 양희은 은관문화훈장

    배우 김혜자(왼쪽)와 가수 양희은(오른쪽)이 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올해 수상자 28명을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가슴 뭉클하고 섬세한 연기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국민엄마’로 불리는 김혜자, 노래로 동시대의 삶을 위로한 포크송의 대모 양희은이 은관문화훈장의 영예를 안게 됐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제74주년 경찰의 날, 부산경찰청 2년연속 우수관서 뽑혀

    제74주년 경찰의 날, 부산경찰청 2년연속 우수관서 뽑혀

    부산지방경찰청이 2년연속 우수관서로 뽑혔다. 부산경찰청은 제74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치안성과 우수관서 선발’에서 전국 18개 지방청 중 2위에 선정돼 행정안전부 장관 단체 표창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부산경찰청은 지난해에는 전국 1위 지방경찰청으로 뽑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로써 2년 연속 우수관서에 선정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김창룡 부산경찰청장은 “ 이번 수상의 영예는 평소 부산시민의 경찰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시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부산경찰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부산경찰청은 이날 오전 부산경찰청 대강당에서 부산재향경우회, 경찰발전협의회 등 내·외빈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4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홍무곤 산업보안협의회 위원이 행정안전부장관 감사장을 수상하는 등 3명이 감사장을 받았다. 또 부산북부경찰서 청문감사관 성백섬 경정이 녹조근정훈장, 부산경찰청 문종남 경감이 근정포장, 과학수사과 진호석 경위가 각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기념식에 앞서 김 청장 등 간부들은 부산경찰추모공간을 찾아 순국·순직경찰관들의 공훈을 기리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故황현산 평론가 등 6명 은관문화훈장…문체부 문화예술발전유공자 30명 선정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고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소설 ‘순이삼촌’ 작가 현기영 등 6명이 은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문화훈장 수훈자 18명을 비롯해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수상자 5명,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체부 장관 표창) 수상자 7명을 선정해 17일 발표했다. 은관문화훈장은 황현산·현기영 외에 미술가 곽인식(미술), 공예가 한도용(공예·디자인), 첼리스트 나덕성, 노동은 전 중앙대 국악대학장(음악)이 받는다. 1970~1980년대 국민 캐릭터 ‘독고탁’으로 사랑받은 고 이상무(본명 박노철) 만화가와 고 김혜원 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부위원장, 고 하동호 전 공주대 교수, 고 강국진 전 한성대 교수, 이보형 고음반연구회장은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한다. 옥관문화훈장은 이용남 한성대 명예교수, 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김해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국서 극단76 예술감독에게, 화관문화훈장은 이준호 서산문화원장, 김시영 흑자 스튜디오 작가, 오영수(본명 오세강) 극단 자유 배우에게 돌아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은 이재춘 안동차전놀이보존회장(문화일반) 등 5명,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은 미술작가 정은영(미술) 등 7명이 받았다. 유공자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2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1959년 낯선 땅을 밟은 이방인은 1964년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작은 산골을 보고 양이나 젖소를 키워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5년 산양 두 마리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다음해는 임실산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효소는 막걸리 누룩, 발효통은 약탕기로 대신해 치즈 생산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와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1968년에는 정과 망치만으로 우리나라 최초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1972년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해 조선호텔에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임실치즈는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임실치즈 생산과정이 담긴 기록물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4월 “임실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했다.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버킹엄궁에서 담배 피우고 화장실 휴지 슬쩍, 유명인도 예외 아님

    버킹엄궁에서 담배 피우고 화장실 휴지 슬쩍, 유명인도 예외 아님

    ‘비틀스’의 존 레넌은 1965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 전 버킹엄궁의 화장실에서 멤버들이 대마의 일종인 카나비스를 피웠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조지 해리스는 나중에 “너무 긴장했기 때문에 “ 화장실에 가 일반 담배를 피웠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당시는 담배에 관대했다 하더라도 지엄한 왕궁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던 사실은 털어놓은 셈이었다. 영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왕궁에서 이처럼 황당한 행동을 하는 유명인들이 적지 않다고 BBC가 14일(현지시간) 전했다. 가장 최근에 버킹엄궁에서의 비행을 털어놓은 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연기한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이다. 그녀는 일간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남편이 화장실 휴지를 전리품으로 슬쩍 했다고 털어놓아 논란을 일으켰다. 일년에 5만명 가까이가 찾는 버킹엄궁 대변인은 “만약 모두가 하나씩 슬쩍 가져간다면 궁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방송인 데니스 반아우텐은 1998년 재떨이와 티슈 화장지 상자를 슬쩍 가져왔다가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사과한 뒤 선물을 하나 더 얹어 돌려주면서 “미안해요 엄마, 놀래킬 의도는 없었어요”라고 적힌 편지를 보냈다. ‘스파이스 걸스’의 엠마 번튼은 방송에 출연해 2002년 여왕을 위한 공연 ‘골든 주빌리’에 초대됐을 때 화장실 휴지를 훔쳤다고 털어놓았다. 역시 방송인 피어스 모건도 늘 부잣집이나 유명한 이의 집에 가면 화장실 휴지를 훔쳐와 집에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여왕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재직하던 백악관에서는 감옥에 갈까봐 그러지 않았다고 2011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백했다.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도 버킹엄궁에서 몸이 좋지 않아 쓰러졌다는 소문을 부인하며 사실은 카나비스를 피운 것이라고 2017년 더 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신문은 2012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 무대에 서며 그런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찰스 왕세자의 친구이며 코미디언 겸 작가인 스티븐 프라이는 코카인 마약을 흡입한 적이 있다고 회고록에서 털어놓았는데 의회 의사당, BBC 텔레비전센터 등에서도 마찬가지 행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여왕 대변인을 지낸 디키 아비터는 전리품 하나 안 챙겨가는 정직한 방문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엄청 어리석은 짓이다. 휴지에 ‘버킹엄궁’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휴지인데 말이다”라고 혀를 찼다. 반아우텐의 고백에 대해선 1998년이라면 이미 버킹엄궁에서 금연 구역이 시행됐는데 어떻게 재떨이를 가져갈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비터는 유명인 좀도둑들은 명성을 더 날리고 싶어서 뭔가를 훔친 뒤 떠벌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냥 편의점 가서 사면 아홉 개 들이를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대학생 평화 현장 체험에 새터민 여대생 둘, 16세 여중생도

    대학생 평화 현장 체험에 새터민 여대생 둘, 16세 여중생도

    대학 매체 기자들을 비롯한 대학생들이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곳을 찾아 하나되는 미래를 꿈꿨다. 11개 대학 19명의 대학생과 16세 여중생 한 명이 1999년 제정된 통일교육지원법에 따라 이듬해 설립된 통일교육협의회(상임 의장 송광석)가 지난 11일과 12일 1박2일의 일정으로 진행한 ‘제1회 전국 대학생 기자단 평화현장 취재 및 통일 기사 경진대회’에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는 통일부 통일교육원과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후원한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새터민 대학생 둘과 부득불 참여하겠다고 간청한 여중생 한 명이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첫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아 2㎞ 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한 땅을 조망하며 분단의 아픔을 실감한 대학생들은 임진각에 지난해 문을 연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들러 납북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다. 이어 통일대교를 넘어 민간인 통제선 안의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을 찾아 묵었다. 캠프 그리브스는 1953년 정전 무렵에 처음 만들어져 50여년 미군 2사단 506 보병대대 등이 주둔하다 1997년 절반 병력은 이라크로 떠나고, 절반은 본국으로 철수해 버려졌다가 2007년 8월 한국정부에 반환된 곳이다. 2014년 경기 파주시에 넘겨져 유스호스텔로 누구나 묵을 수 있는 곳이 됐으며 특히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낯익은 곳이다. 판문점까지 9㎞만 가면 판문점이고 원래 일정은 판문점과 도라전망대, 제3땅굴 등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 차원에서 제외됐다. 특히 캠프 그리브스는 1987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으로 유명한데 그 발단이 됐던 미루나무가 이곳 캠프 주변에도 아주 많았다. 일행을 안내한 정훈장교는 미루나무가 성장 속도가 빠르고 키가 크고 잎이 커 공중 정찰 등으로부터 시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어서 많이 심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들은 황성기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소장의 특강 ‘통일을 위한 언론과 우리의 역할’을 듣고 이윤기 한림성심대 겸임교수 겸 사단법인 평화한국 사무총장의 직업 적성 등에 관한 심리학 강의를 들었다. 밤에는 6~7명씩 팀을 나눠 2~3시간 평화연구소 소속 기자 3명으로부터 기사 작성 교육과 함께 취재현장의 경험담을 함께 했다.이튿날에는 2시간에 걸쳐 캠프 그리브스 탄약고와 막사 등에 설치된 작가들의 작품과 정전협정 협상 과정을 감독하던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참여했던 폴란드와 체코 막사 등을 둘러봤다. 특히 폴란드군이 쓰던 막사에는 김일성 전 주석이 간청해 북녘의 전쟁고아 1500명이 1951년부터 1959년까지 폴란드로 건너가 지내다 북한 형편이 나아지자 다시 모두 돌아간 사실과 함께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추상미 감독이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제작해 개봉했다.대학생 기자들은 이번에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기사로 작성해 27일까지 통일교육협의회에 제출하면 평화연구소가 심사해 다음달 13일 서울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시상식을 개최해 시상한다. 대상 격인 통일부 장관상 한 편에 상금 30만원 등이 주어지며 소속 대학에도 같은 액수의 상금이 주어지는 점이 색다르다. 소속 대학의 매체에 게재되거나 방송되면 가산점이 주어진다. 서민규 통일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젊은이들의 평화와 통일 의지를 북돋기 위해 참가자들을 통일 기자로 위촉하고, 지속적으로 통일에 관한 기사를 쓰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남쪽에 온 새터민 이보람(가명 22·숙명여대 1학년) 씨는 “오두산이나 임진각이나 여러 차례 와봤는데 캠프 그리브스는 처음이다. 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현직 기자들로부터 기사를 어떻게 작성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강의를 듣고 생각하게 된 것이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과 북의 갈등을 줄이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사회심리학과 법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예린(16·인천 관교여중 3학년) 양은 “지난해 우연히 통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통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북한과 통일을 조금 더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며 “현재 장래희망을 기자로 마음먹고 있는데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한운사 예술제 그의 고향에서 열린다

    한운사 예술제 그의 고향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한운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한운사 예술제가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그의 고향 괴산에서 펼쳐진다. 괴산군 청안면 한운사 기념관 일원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한운사 선생 서거 10주기를 맞아 괴산군 문화원이 마련했다. 무대극 ‘남과 북’, 가수 임병수 등이 출연하는 한운사 OST 음악회, 한운사 특별전, 한운사 토크콘서트 등 한운사 선생을 기리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제공된다. 문화공연, 농산물마켓 및 문화마켓, 역사마당, 경로잔치, 청안면민 화합 노래자랑, 괴산군민 휘호대회 및 전시회, 영동 난계국악단 초청공연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마련된다.한운사 선생은 1923년 괴산군 청안에서 태어나 2009년 서거했다. 1946년 서울대 재학 중 KBS 라디오 드라마 ‘어찌하리까’로 데뷔한 이후 영화 ‘빨간 마후라’, ‘남과 북’, 드라마 ‘이 생명이 다하도록’, ‘아낌없이 주련다’, 소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잘살아 보세’로 시작하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작사하는 등 방송·문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겨 2002년 한국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다. 정부는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생가터 인근에 자리잡은 한운사 기념관은 2013년 6월 문을 열었다. 10억9000만원이 투입돼 2층규모로 지어졌다. 1전시실은 음악과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2전시실은 한운사 선생의 자취를 담은 사진을, 3전시실은 육필 원고, 대본과 생전에 쓰던 책상, 펜, 안경 등 유품을 전시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故 조남철 9단 日 바둑의 전당에 헌액

    故 조남철 9단 日 바둑의 전당에 헌액

    한국 바둑의 대부인 고(故) 조남철 9단이 일본 바둑의 전당에 헌액됐다고 한국기원이 10일 밝혔다. 한국인이 일본 바둑의 전당에 입회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일본기원은 지난 9일 한국기원에 공문을 보내 “8일 바둑의 전당 표창위원회를 열어 조 9단과 사카다 에이오 9단을 16회 바둑의 전당 입성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조남철은 1937년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 9단 문하에 입문했고 194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기원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1945년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한 뒤 1956년 최초의 공식 프로기전인 국수 제1위전을 개최했으며 국수전, 명인전 등 국내기전에서 30회 우승했으며 1989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한국기원은 “조카인 조치훈 9단과 현역 국회의원인 조훈현 9단의 일본 유학을 지원하는 등 한일 바둑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바둑의 전당에 헌액됐다”고 설명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이웃사랑 숨은영웅 155명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이웃사랑 숨은영웅 155명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28년간 131억원을 저소득층 학생과 소외계층에게 꾸준히 기부해 온 최신원(왼쪽·66) SK네트웍스 회장이 10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또 자신도 장애가 있지만 28년간 노인,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료 급식과 생필품 지원 활동을 해 온 대구지체장애인협회 수성구지회장 사공한(가운데·68)씨, 27년간 눈 건강 진료 재능나눔을 해 온 마산 김안과의원 원장 김해곤(오른쪽·62)씨가 국민포장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열린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이들을 비롯해 평소 이웃사랑을 실천한 155명이 나눔국민대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조매정(57)씨는 1994년 목욕 봉사를 시작으로 24년간 노인과 노숙자 대상 미용 봉사활동을 해 왔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서봉현(64)씨는 13년 전 위암 2기 진단을 받고도 더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봉사회를 결성하고 대구 북구 지역 내 사각지대 발굴·지원 활동을 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이날 기념식에서 이들을 “사회 곳곳에서 봉사·헌신하고 있는 숨은 영웅들”이라고 칭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동정]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몽골 보건부 의료훈장

    △ 힘찬병원은 이수찬 대표원장이 최근 몽골 보건부로부터 의료훈장을 받았다고 10일 밝혔다. 힘찬병원은 몽골 경제발전 및 의료환경 발전을 위한 몽골 현지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거주하는 몽골인들을 위한 의료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 [서울광장] 청와대에 충직한 참모는 없는가/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청와대에 충직한 참모는 없는가/이종락 논설위원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재상 한유는 매우 강직해 현종의 면전에서 잘못을 서슴없이 지적했다. 이를 보다 못한 측근이 “왜 한유를 내치지 않느냐”고 묻자 현종은 “한유 때문에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고, 항상 잠도 편히 자지 못해 이렇게 말랐지만, 그 대신 나라가 살쪄 천하가 편하지 않았는가”라고 답했다. 서슬 퍼렀던 조선 시대 광해군 때 사헌부 지평을 지낸 임숙영은 1611년 과거시험에 ‘나라에서 가장 화급한 사안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는 과제가 출제되자 “정신 못 차리는 임금이 가장 화급한 문제”라고 답했다. 이어 “임금의 실수는 국가의 병입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신중한 마음을 가지십시오”라고 적어 냈다. 한유의 얘기는 무려 1300년 전, 임숙영의 일화는 40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바람직한 리더와 참모와의 관계를 반추하게 한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 한유와 임숙영 같은 참모가 있을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집권 반환점을 눈앞에 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국정 지지율이 90%에 육박했지만, 경기 침체와 잇단 인사 논란으로 30%대로 하락했다. 문 정부의 촛불 민심을 지탱해온 중도무당층의 이탈이 확연해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인데도 청와대 근무 경험을 이력서에 훈장처럼 새긴 뒤 오늘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여의도 일대를 배회하고 있는 전직 참모들이 무려 30여명에 이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때처럼 참모들이 문 대통령에게 충심을 담은 고언을 못하다 보니 모든 이슈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맞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 청와대 참모는 조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화를 많이 내셨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그제도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해 서초동 집회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론 분열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진단과 달리 일반 시민들은 갈등과 분열상에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을 보좌할 참모들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며 거리의 세 대결에 누가 많이 나왔는지 숫자놀음만 해야 하는 것인가. 김영삼 정권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윤여준 정치연구원장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보혁갈등이 심화되는 등 상황이 어려워지면 대통령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다. 참모들은 그럴수록 대통령이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안심시킬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 듣기 거북한 얘기를 피하는 등 자리 보전에만 매달리면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노 실장은 지난 1월 취임 초기 비서실 기강을 잡고, 페이스북에 우리나라 경제지수가 좋아졌다는 자료를 종종 올리더니 요즘은 아예 이런 활동도 뜸해졌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 한미 동맹 균열,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빅이슈에서 노 실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다”라면서 “참모는 대통령의 입을 두 손으로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한 지 6개월이 되면 현장감각이 없어진다. 나는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많이 듣게 하기 위해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박권상 KBS 사장을 자주 만나게 해줬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이어 “그분들이 얼마나 올곧던지 내가 대통령과의 만남을 자주 주선한 은인인데도 대통령에게 “‘박지원을 쫓아내라. 저 놈이 간신이다’라고 했을 정도”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분열의 정치시대를 맞은 것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정국이 이렇게 갈등 양상으로 가는 데도 책임 있는 집권 세력이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서초동도 민심이고, 광화문도 민심이다. 진영 간에 세 대결이 경쟁적으로 이뤄져서는 국론 분열이다. 찢어진 민심을 대통령이 달랠 수 있도록 참모들이 고언해야 한다. 국민에게 세 대결을 자제해 달라고 대통령이 호소해야 한다. 참모들이 직을 걸고 국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해야 한다. jrlee@seoul.co.kr
  • 빨리 다녀온다던 참전용사 아버지… 66년 만에 아들 품에

    빨리 다녀온다던 참전용사 아버지… 66년 만에 아들 품에

    아들 자택서 ‘호국영웅 귀환행사’ 개최유품 등 담긴 ‘호국의 얼함’ 가족에 전달지난 5월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김기봉 이등중사의 유해가 6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는 8일 “경남 거제시 동부면에 위치한 김 이등중사의 아들 김종규(70)씨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허욱구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은 유가족에게 김 이등중사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에 대해 설명한 뒤 신원확인통지서,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함’을 전달했다. 또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954년 김 이등중사에게 수여했던 ‘무성화랑무공훈장’에 대한 훈장수여증명서 및 ‘정장, 금장, 약장’을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전달했다. 아들 김씨는 “‘종규야, 군대 빨리 갔다 올게. 집에 들어가레이’라고 하신 아버지의 약속이 유해로 지켜져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김 이등중사는 1952년 12월 13일 제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이듬해 6월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교전하던 중 7월 10일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66년 만인 지난 5월 다수의 국군 및 유엔군 추정 유해가 발굴된 화살머리고지의 ‘a고지’에서 발굴됐다. 발굴 당시 유해는 좁은 개인호에서 아래팔이 골절되고 온몸을 숙인 상태였다. 정밀 감식 결과 두개골과 몸통에서 금속파편이 확인된 것으로 미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다 적의 포탄에 의해 다발성 골절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용하지 못한 탄알이 장전된 M1 소총과 직접 사용한 수류탄 안전핀 등도 함께 발견됐다. 김 이등중사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가수 이미자 포항지진 이재민 위해 공연수익금 7400만원 기부

    가수 이미자 포항지진 이재민 위해 공연수익금 7400만원 기부

    가수 이미자(사진)씨가 경북 포항 지진 이재민을 위해 포항공연 수익금 수천만원을 기부했다. 1일 포항시에 따르면 이미자씨는 올해 1월 26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한 공연 수익금 7400만원을 지진 피해 이재민을 위해 지정 기부했다. 이씨는 지난 7월 말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포항시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시는 기부금을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와 개별 임시주택에 사는 이재민 전기요금 지원에 쓸 예정이다. 가수 이미자씨는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뒤 ‘동백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은관문화훈장, 무궁화훈장,MBC가수왕,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미자 선생의 아름다운 기부는 지진으로 상처받은 이재민에게 단비 같은 희망을 준 것”이라며 “52만 포항시민을 대표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20세기 빛낸 ‘흑인 오페라 여왕’ 제시 노먼 별세

    20세기 빛낸 ‘흑인 오페라 여왕’ 제시 노먼 별세

    네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흑인 성악가 제시 노먼이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AP통신이 1일 보도했다. 74세. 유족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노먼이 척수 손상에 따른 합병증인 패혈성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가수들과 다른 개성의 드라마티코 소프라노로 평가받는 노먼은 바버라 핸드릭스, 캐슬린 배틀 등과 함께 20세기를 빛낸 흑인 성악가 3인방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1969년 독일에서 열린 ARD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노먼은 특히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전 세계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97년 당시 52세로 최연소 미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받았고 2010년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2001년, 2002년, 2009년 내한 공연에서 국내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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