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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잼버리장 자전거 완주/서울연맹 화랑대소속 19명

    ◎매일 새벽6시 기상 4박5일 강행군/“고난 극복” 자부심속에 호연지기 과시 서울을 출발,4박5일의 힘겨운 자전거 여행을 강행한 끝에 6일 낮 제17회 세계잼버리장(강원도 고성)에 도착한 서울연맹 7단 화랑대 소속 소년대와 연장대 대원 19명 그리고 지도자 6명은 마중나온 관계자들과 각국 대원들로부터 힘찬 박수를 받았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이들 대원들은 1천여리의 장정으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표정에는 강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는 등 이들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2일 서울 둔촌동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서 출발,팔당 양평 홍천 양구 인제를 거쳐 5일만에 도착한 대원들은 『자전거로 잼버리대회장을 찾는 것이 7단 화장대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자랑했다. 해질 무렵 중간 야영지에 도착,야영준비와 취사를 끝내고 밤늦게야 잠자리에 들었으며 이튿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출발해야하는 강행군을 벌였다. 특히 예정에도 없던 민통선 북쪽의 도솔산과 펀치볼고지 제4땅굴을 견학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더욱 힘든 여행길이된 것. 그러나 미시령 정상에서 대회장을 내다봤을때 한순간에 피로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대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이 교통수단을 외면한 것은 잼버리대회를 단순한 축제가 아닌 극기훈련의 일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장 김국부 서울북부연맹 훈육부장(37)은 『이제껏 한명의 낙오자도 없었던 것이 자랑』이라면서 『공부만을 강조하며 잼버리대회의 참가에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던 학부모들도 대회가 끝난뒤 한층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온 자녀들을 보면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중 가장 나이가 어린 송동훈군(중앙중1년)은 『힘들었던 만큼 추억도 많을 것』이라며 『중학생으로서의 첫 여름방학을 멋지게 장식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지난 67년 제12회 대회가 열렸던 미국 아이다호의 지명을 따 「아이다호 분단(분단)」이라 명명된 제12분단 2대(대)에 소속된 이들은 『이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만큼 대회기간중 각종 행사와 과정활동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둬 한국스카우트의 늠름한 기상을 외국대원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 정치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데…/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돈없이는 정치를 하지 못한다. 정치는 곧 돈이다. 그것은 정치판의 오랜 명제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정상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못하다. 돈벌이가 못되는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한사코 돈이드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것은 왜 그런가. 범인들의 눈으로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정치와 돈은 본래부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무리 깨끗한 도의정치가 구현된다해도 정치·사회공동체의 총체적 구조상 정치자금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민주주의 정당정치는 비슷한 사상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그 집단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 한다. 따라서 무언가 일을 꾸미고 추진하며 전개시키는 정치에는 돈이야말로 가장 긴요한 윤활유가 된다. 바로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긴요한 기름이지만 그것은 정치를 정치이게 하는 즉 「정치를 있게하는」 최소한에 그쳐야하며 누구에게나 떳떳해야 한다. 정치인들을 놓고 한심스럽고 불쌍한 「족속」들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는 꽤나 많다. 정치인들 스스로도 더러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않는다. 그들도 어엿한 직업인이고 우리 공동체사회의 구성원이며 게다가 대개는 건전한 지식인이다. 누구나처럼 상식선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인이라고 볼때 그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인색치 말아야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관찰컨대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자신들은 긍지를 갖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보려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보자. 『이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간호사·육체노동자·교사·농민·기술자·우체부·경찰 등이다. 기업인·판사·은행원·예술가도 사회에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능으로 볼때 사회에 가장 유익하지 못한 직업이 있다. 창녀·국회의원·고급공무윈이다』 이 무슨 변고인가. 참으로 면구스럽다. 국민의 대표(의원)로서 또 공복(공무원)으로서 국가운영을 주름잡는 선량과 고급공무원이 창녀와 다를게 없다니 말이다. 작년말인가 프랑스의 주간지 누엘 옵세바퇴르(새관찰자)가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였다. 그 보고서 「프랑스인의 값어치­프랑스사회와 노동에 관한 조사」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나 「권력계급」에 대한 민중의 불신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 월급값도 못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바로 이들 지도급 인사들이 속해있고 그러면서도 국가권력은 「직업적 책임감」 또한 낮은편인 이들에게 집중돼있어 문제라는게 이 조사의 결론이다. 나라안의 시각도 그러하다. 지난해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펼친 국민의식 조사에 나타난 정치인들 점수는 말이 아니다. 학교의 훈육점수로 보면 낙제보다 더한 제적에 해당하는 점수이다. 즉 성인국민의 70% 이상이 정치인을 「가장 부패한 계층」이고 「가장 싫은 직업」이라고 응답했다. 대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면 만장일치와 다름없다. 이쯤되면 정치인들도 달리 생각하는바 있어야 할 것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을 두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이 그 하나이고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이 다른 하나이다. 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에따르면 전자는 한마디로 정치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이다. 「몸을 던진다」는 말은 남을 위해 희생을 무릅쓰며 최선을 다하고 봉사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그 정도면 정치인으로서도 보람도 있고 대중의 신뢰와 아낌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하나 즉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은 쉽게 말해 정상배를 말한다. 정치에 얹혀서 무슨 이문이나 챙길까 하고 밤낮으로 두리번거리는 무리들이다. 「가장 부패한 계층」이 바로 이들인데 주변 우리 정치판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불행한 일은 이런 정치꾼들이 빨리 정치무대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치현실을 극복하는 길이 없지는 않다. 선거때 표를 안주면 된다. 민주정치는 국민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윤활유가 위력을 발휘한다. 근본적으로는 유권자 의식에 달려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기름의 힘은 아주 크다. 우리 정치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그 기름이 과다하고 그 출처와 용도가 다같이 흑막에 싸여있다는 데에 있다. 정치인 자신들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그것을 알면서도 그냥 간과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것이 「관행」이고 「불가피」 할수록 그것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로 고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다. 선거가 곧 민주주의라 해도 좋다. 또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방식이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라고 할때 국민의식의 개혁으로써만 그 병폐와 부조리는 차단될 수 있다. 우리 정치권은 지난 2월 한달동안 의원 8명이 구속되는 난리를 치렀다. 이미 그 이전에 5명이 구속되어 13대 국회는 13명의 구속자를 낸 결과가 됐는데 그 모두가 돈과 관계되는 사안들이다. 이쯤되면 만신창이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입법부의 권위가 거의 재기불능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권력남용을 감시·견제해야 할 국회가 거꾸로 기업로비와 권력형 비리의 들러리가 됐다고해도 틀리다고 할 사람없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모두가 돈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한마디로 정치는 돈이라는 등식을 깨야한다. 정치인에게 정치 즉 선거,선거 즉 돈이라는 등식관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돈을 끌어 모으는 방법도 다양하고 대담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확대되면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않고 그 자신과 자파의 생리적 정치생명에만 집착을 갖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도 아래서 개개인이 사생결단의 경쟁을 벌이는한 금권선거의 폐습은 근절될 수 없다. 그런 풍토 아래에선 정치인과 정당지도자의 능력은 돈을 잘 끌어대는 「타락지수」와 비례하게 된다. 또 그것이 자금의 흑막이다. 수서사건의 정치인 연루도 그것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제도가 아닌 사람으로써 하자는 것이다.
  • 외언내언

    두살 터울의 자매끼리 뭔가 논쟁이 붙었다. 소리가 높아지더니 동생쪽에서 언니한테 대고 쏘아댄다. 『언니완 말못해. 세대 차이야』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끼어든다. 『두살 차이에 거창하게 무슨 세대차이냐』. 이를 받는 동생의 말­『동갑끼리도 달이 다르면 세대차이는 나요』 ◆아닌게 아니라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제와 오늘이 달라져 가는 세상. 그만큼 빨리 가치관의 기준도 달라져 간다고 할 수 있다. 자매끼리도 그렇다는데 하물며 부모와 자녀 사이이겠는가. 한톨의 쌀을 놓고 생각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50대의 어버이는 그 쌀에 맺힌 농민의 피땀을 생각하는데 비해 20대의 자녀는 돈으로 따지면서 대단찮게 여길 수 있는 것. 그 엄청난 가치관의 차이들이 한 지붕 아래 산다. ◆지자막약부란 말이 「관자」 「한비자」 등에 나온다. 그 자식을 아는데 아비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는 뜻. 그런 측면은 오늘에도 여전히 있다고는 하겠으나 역시 옛 얘기일뿐 아닌가 싶다. 한국 청소년 연구원이 설문조사 한 결과도 그를 말해 준다. 조사대상 부모 가운데72.8%가 『요즈음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지 않은가. 『자녀와의 세대차를 실감한다』도 78.4%였다. ◆하지만 이건 안된다.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다. 오늘날의 반사회적 성격을 띤 갖가지 청소년 문제의 근원이 여기 있다고 하겠기 때문이다. 제각기의 일에 매이다 보니 부모와 자녀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자연히 적어져 가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 가정 모습. 이해를 못하고 거리감을 갖게 되는 것도 거기 연유한다. 그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대화. 그 대화의 장을 마련함에 부모쪽에서부터 적극성을 띠어야겠다.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가정. 분위기와 훈육은 평생을 지배한다. 이번 조사결과에서도 부모들의 89.8%가 그를 인정하고 있다. 그 점에서도 서로의 이해가 그 출발점으로 되는 것. 저마다 내 가정을 한번 돌아다 보자.
  • 부정입학과 우리의 2세(사설)

    ◎부모와 스승이 비리를 가르친다면… 국회의원의 「뇌물외유」 사건과 일부 예능계 대학의 부정입학 사례가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를 이라크의 전장만큼이나 뜨겁고 소연하게 하고 있다. 특히 부정입학의 경우 그 희한한 수법이 우리 모두를 아연하게 하고 있는 터에 불똥은 다시 체육 특기자 부정입학으로까지 튄다. 이 또한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얼마나 더 확대될 것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불안하고 착잡해지는 심경을 가눌 길이 없다. 불신을 확산시키는 이 행태들은 마침내 분노로까지 치닫게 한다. ○사유무너지는 소리 들려 우리가 부정입학을 대단히 심각한 병리로 보는 까닭은 그것이 학부모와 스승과 그리고 자식이며 제자이기도 한 2세가 삼위일체로 합세한 불법행위이며 부도덕 행위라는 데에 있다. 이는 옛날 관자가 말했던 예의염치의 사유가 무너지는 현상이다. 그는 사유가 무너지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인데 이 삼위일체의 범법 속에서 그 위기를 느낀다. 세상의 어버이가 어떤 존재인가. 세상의 스승이 어떤 존재인가.어버이는 그 자식을 위해 용신을 삼가고 스승은 그 제자를 위해 백행의 본을 보여야 하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고 어버이와 스승은 덕행의 근원이며 교범이 된다. 그 훈육 아래 인간을 형성하게 되는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군국주의 시대에 나온 군사부일례란 말이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교육의 일각은 금사부자일체가 되었다. 그것을 가르쳤다. 부모와 자식과 스승이 돈을 매개체로 하여 그렇게나 구체적으로 못된 짓을 숙의하여 행동화 할수 있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정상한 생각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다. 부모와 스승이 부정불법을 가르친 것이 아닌가. 부모와 스승은 2세에게 돈의 위력을 가르쳤고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못된 수단을 다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친 셈이다. 그런 사회가 어떻게 올바르게 염위될 수 있다고 하겠는가. 그런 「교육」으로 부정불법의 불감증에 걸린 2세가 사회에 발 디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돈을 위해서라면 「뇌물외유」 아닌 「강탈외유」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송연해지는 심경이다. 사유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까닯이 여기에 있다. ○「교육」은 「사람」위에 베풀어야 하기 좋은 말로 「교육열」이라고들 하지만 그 실상과 행태는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 아닌가 한다. 높은 교육열이 오늘의 우리 번영의 원동력이 된 것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다. 그러나 그 교육열의 실상은 「생존경쟁열」이었다고 함이 더 옳다. 남보다 나은 자리에서 남보다 편하고 부유하게 살고자 하는 뜻들이 교육열이라는 이름으로 집약되었다는 데서 그러하다. 교육열이라는 말이 옳게 쓰이기 위해서는 그 열기 속에 인성의 함양이 포괄되어야 한다. 그렇건만 오늘의 우리 교육열은 상급학교,그것도 1류 학교 진학이 그 모두로 되고 있다. 그래서 『대학 들어가 준 것이 효자』라는 말도 나온다. 그 사람됨이야 어떤 것이든 간에 목표한 학교만 들어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맹점이 있다. 이타를 아는 풍요로운 인성 대신 조악한 이기가 높은 교육열 속에서 양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윤리의식이 증발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를 증명한다. 지도층·지식층의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러함을 우리는 보고 듣고 있다. 죄의식에 둔감해진 삼위일체 부정불법 입학 사례도 그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고 스승이고 그 알량한 교육열의 포로가 되어 또다른 중요한 교육열은 잊어 버린 꼴이다. 그들은 이미 마모된 윤리·도덕의식으로 해서 자신들이 2세에게 가장 못된 짓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까지를 깨닫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합격 안될 상황인 것을 합격시켜 놓고 『어때,아버지(어머니)의 힘이 대단하지?』하며 으스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잘못된 교육열이 만들어 낼 내일의 사회를 깊이 생각해 봐야할 줄로 안다. 「애정」으로 착각하여 가르쳤던 비리가 여물게 될 때 그 부모만 배신 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배신 당하면서 그 폐해를 입게 된다. 현재의 부정·불법보다는 더 두려워지는 것이 이 대목이다. 그 점에서 왜곡되어 있는 오늘의 우리 교육열에 대한 성찰도 따라야한다. 물론 정책의 측면에서는 보다 거시적·종합적인 시각에서의 접근이 요청된다 하겠으나 가정과 학교 또한 덕육은 아예 깎아먹고 있는 지육편중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사람」위에 베풀어지는 것이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치부척결 민주발전의 길로 생각하자면 의사당의 부조리나 교육현실의 부조리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밖에도 있어온 숱한 치부 또한 진작부터 조직화·관례화하여 내려오고 있고 또 그 같은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도 있었다. 다만 그 부조리들이 발화점을 찾아 사회문제화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발화점을 찾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화발전 과정이다. 그리고 발화하여 이제는 진화된 여러 현상들을 그동안 지켜보아 오고도 있다. 따라서 이같은 사단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피흐름의 정상화를 위한 계기라고 생각하면서 사유의 재건을 위하는 데로 우리 모두의 노력을 집주해야겠다. 고름과 어혈을 짜는 척결에는 아픔이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참고 구조적인 모순이나 갈등을 구조적인 합리와 조화로 이끌어 나가는 데에 협력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잘못된 구조나 잘못된 관행이 또 있다면 남김없이 밝혀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모조리 다스릴 때 비로소 우리 피흐름이 맑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 절약운동은 도덕운동이다/미 상의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사설)

    주한 미 상의가 우리 정부에 고가 사치품 수입규제를 해제하고 과소비자제운동을 중단해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해왔다는 소식은 우리를 불쾌하고 섭섭하게 한다. 통상압력의 차원을 넘어서는 내정간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이 지닌 독특한 정신적 규범이 있다. 풍요할 때 오히려 빈곤을 기억하고,검약으로 절도의 품격을 수련하는 것은 우리가 지녀온 고유한 덕목이고 미래에까지 이어가기를 바라는 정신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절약운동은 도덕운동인 것이다. 외제사치품을 분별없이 수입하여 분수없는 과소비생활을 일삼는 풍조를 없애기 위한 이 운동은 사회를 부패시키는 타락한 물질주의와 함수관계가 있음을 인식해 건전사회를 되찾기 위한 우리의 순수한 내부적 합의사항이다. 그 운동을 몇 푼 안되는 자국의 상통이익에 저해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자제하도록 압력을 가한다는 것은 우선 우방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강대국의 금도에 먹칠을 하는 매우 실망스런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절차만으로 보아도 이 일은 온당치 못한 처사다.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업자모임이다. 업자수준의 불평이나 사익에 관한 요구를 그 당사자들이 막바로 우리 정부에 한다는 것은 오만한 군림의 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각기 자기 정부를 통해 외교적 수렴을 거쳐 주고 받는 것이 주권국가에 대한 예의다. 이 절차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정부측 관계자들에게도 허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 상의가 이런 종류의 간담회를 갖는다면 그 카운터파트는 우리 상공회의소 수준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을 과잉대응하여 외무부 상공부 등의 고위급관리가 대거 참석했다는 것은 모양부터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위압적으로 어린아이 손목이라도 비틀 듯 우리의 건전한 사회운동까지를 시비하며 사소하고 부당한 간섭을 해온 것을 공식 접수하는 형국이 되게 한 것은 현명한 결과가 아니었다. 고조되는 반미감정의 우려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양국 사이의 책임있는 사람들은 아주 섬세한 행동에서까지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지금은 우루과이라운드가 진행중인 시기다. 다자간 협상에 의해 시장개방협상이 진행중인 상태에 있다. 길어 보아야 1개월이면 끝난다. 그 결과를 기다려보고 나서 쌍무협정을 진행시키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그 도중에 뛰어들어 온당한 절차까지 무시해가며 요구하는 것은 저의가 따로 있음을 의심하게 만든다. 미국측은 UR협상에서 농산물 등의 시장개방을 위해 방금 막바지 공세를 가하는 중이다. 그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쌍무적 통상압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는 중이다. 미 상의 구성원들의 「과소비억제운동 중단 요청」은 쌍무적 통상압력을 즉물적으로 현시한 것이라고 보여서 더욱 입맛이 쓰다. 그밖에도 미 상의가 요청한 것은 많이 있다. 한국내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고 국내유통부문 중 소매업종을 개방하여 미국의 자동차며 전자업체들이 직영대리점을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도 요구했다. 외국 보험업의 국내시장 접근의 전면자유화,원유와 수출용 원자재의 외상수입 허용 등 심지어 와인쿨러의 주세율 인상에까지 숱한 이의를 제기했다. 크고 굵은 것에서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덩치 큰 부자나라가 할 수 있는 행동치고는 너무 잗다란 일들까지 시시콜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맹수들이 대문 앞까지 다가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실정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국제간에 부는 생존을 위한 무역태풍은 실로 냉혹하고 유보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럴수록 우리가 할 일은 건전하고 건강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생존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자제품 중에서도 대형을 선호하는 풍조가 날로 늘어나고,양탄자며 모피 비디오게임용구 고급승용차와 가구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가품을 수입해 들여오는 부도덕한 상혼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국민적 각성을 촉구하는 절제운동이 필요하다. 사회안에 범죄가 창궐하고 부유층의 도박행위가 나라 안팎으로 성행하며 마약이 전계층을 무차별 공략하는 오늘과 같은 사회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를 절망으로 몰아가는 무서운 병인들이다.이같은 병리현상은 당장 우리의 대문 밖에 몰려와 으르렁거리는 맹수들에게 만만하고 안일하게 보이는 빌미를 제공한다. 자성할 줄 모르는,참을성도 없고 부도덕한 국민이라고 판단되면 그들은 우리를 더 우습게 보고 함부로 요구하게 된다. 자구력을 가진 이웃에게는 경외를 보내며 조심을 하는 것이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나 국제간에 다같이 통용되는 생각이다. 사치를 추방하고 절약하는 운동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하고 효과적인 운동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사상으로 자녀를 훈육했고 법도를 지켜왔다. 근면과 성실의 근원도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관이 주도해서는 되지도 않는 운동이다. 방금 일고 있는 우리의 각성운동도 민간에서 자생한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성화시켜 부패를 방지하고 건전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우리가 이웃에게도 능력있고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전통있는 우방이 서로 반일하는 나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의 노력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절약은 온국민이 함께 해야 한다/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면(사설)

    4일부터 모든 공공건물의 엘리베이터 운행이 제한되고 에어컨의 가동온도도 높여졌다. 느닷없이 몰아닥친 「페르시아만 충격」으로 언제 에너지 위기의 파고가 우리에게 밀려들지 알 수 없으므로 정부가 부랴부랴 서두른 것이 「에너지 10% 절약」이다. 예측되는 위기의 절박함에 비하면 우리가 마련한 대응은 매우 허약하고 미소하다는 느낌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해진 나라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일본의 공공건물은 이이 옛날부터 28℃ 수준이 안되면 냉방을 가동하지 않는다. 후텁지근하게 더워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일본의 관리들이 『우리 일본은 이렇습니다. 잘 산다는 건 허울뿐 정해진 온도만큼 더워지지 않으면 에어컨 같은 거 켜지 못합니다』하고 엄살을 피운다. 그것이 불평이라기 보다는 근신으로 보여서 허술하게 대할 수가 없다. 그들의 정부청사에는 직원용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것도 상례다. 국장급까지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고급관리도 승용차 출퇴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가용 소유비율로 보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 자동차 수출로 세계를 석권하는 나라지만 국민의 태도는 그토록 무섭다. 이런 태도로 일으킨 부를 이런 태도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기왕의 경제이론을 수정하게 해가며 의연히 탄탄대로를 가고 있는 것이 그 나라인 것 같다. 관공서만 그렇지가 않다. 웬만한 기업체나 민간기구도 마찬가지다. 고급 관료출신의 개인연구소조차도 검소하기 짝이 없다. 세계 굴지의 기업 중역이라도 명목없는 접대비를 쓰지 못하고 객적은 팁같은 것을 뿌리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호기있게 「쩨쩨하다」고 경멸한다. 이라크ㆍ쿠웨이트 사태가 터지자 석유수급에 비상이 걸린 우리 정부는 정부비축분이 51일이고 정유사 재고분이 37일이므로 당분간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정부보유분만 해도 1백50일분이상이라고 발표했다. 허장성세로 위기를 이기지는 못한다. 내숭스럽도록 「쩨쩨」하면서도 어려운 고비가 닥치면 꽉찬 내실을 풀어 재난의 고비를 넘는 것이 승리의 길이다. 우리 정부는 「문제없음」의 허세를 부리지 말고 좀더 실현성있고 효과있는긴축을 모색하고 국민 또한 남의 일 보듯 하지 말고 협조해야 할텐데 우리는 아직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풍선경제의 환상으로 공공기관의 엘리베이터나 냉ㆍ난방기의 절약형을 일찌감치 내던져 버리고 자동차나 아파트나 고급형으로만 치달아 온 것은 우리 모두의 어리석은 허세의 소치다. 세제나 보험따위 제도가 「소형」을 권하기에 유리한 정책을 반영하지 못하고 엔진용량보다 겉뚜껑을 크게 보이게 하는 「허영」을 조장해온 결과까지 빚고 있다. 아직 멀쩡한 냉장고도 큰 것으로 바꾸기 위해 내다 버리고 초여름만 되면 선풍기가 동이 난다. 추운 것도,더운 것도 참지 못하고 가족 모두가 불편한 것은 감내해 주지 못한다. 이런 일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징조들이다. 사람의 기능은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퇴화한 기능을 회복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다. 특히 참는 기능은 한번 퇴화하면 재생시키기가 거의 무망하다. 우리가 허세때문에 잃은 것은 바로 참는 기능이다. 진정으로 부유하게 되더라도 이 기능은 퇴화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쭉정이처럼 실속이 없는 풍요 속에서 가장 소중한 기능을 방기해버린 형국이 되었다. 우리에게 참을성의 기능을 익혀주고 지켜주는 것으로는 근검을 따를 수 없다. 절약은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절제의 덕목을 심어준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절약만큼 효과적인 훈육이 없다. 절약이란 인색함과는 다르다. 낭비성을 띤 소비를 절대로 하지 않는 것,그것이 절약이다.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 사람들의 쓰레기에 벌받을까 무서울 지경인 게 많다』고 한다. 누구의 눈엔가 그렇게 비쳤으면 그런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여름 피서라는 것도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일이 아니다.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를 저속으로 달리느라고 기름을 몇배씩 태우고 바가지요금을 뒤집어 써가며 온갖 쓰레기로 산하를 더럽히고 「집 떠나면 고생뿐」임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난장판 휴가를 죽어도 떠나는 허세도 일종의 악습이고 커다란 낭비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견뎠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석유위기는 단순한 기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에너지 모두와 석유를 원료로 하는 생필품 전체에 직접 영향을 주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삶의 원가를 들썩들썩 올릴 것이다. 국가가 세운 에너지의 10%절약이 성공하려면 국민은 20% 절약의 노력을 각오해야 한다. 당장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실기한다.
  • 이 실망스런 사회병리현상(사설)

    ◎중고생이 「떼강도」가 되는 세태를 보며 「중고생 떼강도」라는 말이 예사롭게 신문기사의 제목이 되고 있다. 이것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 말인지를 곰곰 생각해 보면 몸서리가 쳐질 일인데,사회 전체가 무신경해질 만큼 예사로워졌다. 이번 주말에만 해도 「서울 S고 3년등 고교 3년생 4명」이 강도짓을 한 혐의로 붙들렸고 「H실업고 1년생등이 금품을 훔치고 장물을 팔려다」 붙잡혔다. 「D상고생과 그 친구」들도 잡혔고 D중생과 또래들도 교회에서 도둑질을 했다가 잡혔다. 어떤 「중고생 강도」는 하루에 3번도 범행을 했고,30여차례 절도행각을 벌인 학생 섞인 청소년집단도 있다. 대개의 경우 이들은 집안도 멀쩡하고 사무치게 가난한 것도 아니다. 또 도회의 오염된 청소년만 이런 비행에 빠진 것이 아니다. 심심치 않게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온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요즘 범행을 저지른 이들 「중고생 떼강도」의 범행동기는 하나같이 「바캉스 자금 마련을 위해서」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0대 청소년중 비행을 저지르는 계층은 학교에서 쫓겨났거나 진학에 실패한 「고교생 낭인」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교육받을 대상에서 제외되어 낙오한 청소년들이 자포자기하듯 비행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맡겨진 청소년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까지는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버젓하게 학적을 둔 확실한 재학생이 범죄중에서도 강력범 노릇을 하고 다닌다. 흉기를 들고 대낮 강도도 하고 남녀 행인에게 대담한 폭행도 한다. 지난 27일,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장기 5년,단기 3년의 징역 선고를 받은 오모 피고인만 해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주부를 대낮에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을 한』 고교생 범죄자다. 그는 그 범행때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겁에 질려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학생」에게는 많이 관대하다. 특전도 많고 편의도 제공하고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하는 쪽을 택하고 버스비 기차비 영화관 입장권에까지 할인혜택을 인색하지 않게 베푼다. 가정이 불우하여 열망하는 학업을 중단한 채 산업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는 같은 또래의 청소년에게는 주지 않는 갖가지 은전을 「학생」에게는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소득원을 갖지 못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미래의 좋은 인재로 연마되고 있는 중인 것이 그들이므로 소중하고 조심스러워서 아끼고 가꾸는 뜻으로 온갖 혜택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중고생 떼강도」라는 말이 예사로울 만큼 비행에 물들어가고 비뚤어져간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잘못된 책임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있다. 바캉스철에는 바캉스 자금을 위해,크리스마스철에는 크리스마스 유흥자금을 위해,행락철에는 행락자금을 위해 그들은 범죄하고 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놀고 싶은 때는 놀아야 하겠다」는 행태가 사회에 만연한 것과 청소년범죄의 번창은 시기를 같이한다. 그들의 환경을 싸고 도는 온갖 정보가 그것을 충동이고 있고 어른들의 부주의와 무신경은 거기에 가속을 주고 있다. 가정은 이기주의로 가득 차가서 훈육은 제쳐놓고 출세와 영달의 가도를 달리는 기술과 수단에만 투자하고 보급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학부모의 욕심에서 학생들을 바로잡지도 격리시키지도 못한다. 교육제도는 교육제도대로 압력만 가해주고 있다. 입시공부를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을 집밖에서 보내는 것이 요즘의 중고생이다. 부모와 선생님의 눈길에서 벗어나 하루에 3분의1 이상을 밖으로 돌고 있는 그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기회는 너무도 많이 있다. 잔인하고 부도덕한 상업주의는 그들이 다니는 길목에마다 함정을 파고 있다. 학원 밑에 유흥가가 있고 학교 담 옆에 오락실이 있다. 이발소 하나도 온전한 곳이 쉽지 않고 안방의 전파매체조차도 조심성이 없다. 법대로 지켜지는 일이 없고 공권력은 맥을 못춘다. 치안은 공백을 면치 못하고 죄를 지은 쪽이 큰소리를 친다. 이런 일들이 청소년 학생들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기관이나 계층만의 책임도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에도 무관심해서는 바로잡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명백한 것은 중고생이 「떼강도」로 물들어가는 일의 결과가 주는 피해는 우리의 미래 모두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어떤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이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주 절박한 시기에 이르고 있음에 인식이라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 청소년 정책이 가야 할 방향(사설)

    청소년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의지가 본격화되고 있다. 체육부의 명칭을 청소년체육부로 개칭하는 일은 이미 확인된 것이고 이를 계기로 체육부의 올해 업무계획도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들에 각별히 관심을 가진 흔적이 보인다. 늦긴 했지만 반가운 대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청소년 문제는 그 문제의 심각도가 너무 깊고 넓은 것이어서 외국의 행정직제상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체육부의 형식이나 업무영역 정도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불변의 진리이지만 건전한 청소년 육성이란 지덕체의 균형된 발전을 돕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청소년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일찍부터 개성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에까지 이르러 있다. 그리고 이 일의 대부분을 교육과 사회적 문화시설들이 감당하고 여기에 더하여 건강한 체력을 보강한다는 입장에서 청소년과 체육이 함께 하는 부서를 만들고 있는 것이 타국들의 과정이다. 하지만 누구나 보고 느끼고 있듯이 우리의 구조는 교육과 사회문화환경이 청소년에 대한 어떤 대응도 구체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교육은 가장 비창의적인 입시 위주의 기능적 교육만 하고 있고 사회문화환경은 또 성인 퇴폐문화의 확대로만 가고 있는 처지에다 청소년들을 이 속에 무분별로 방치하는 형국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차제에 우리가 무엇보다 강조하려는 것은 청소년 정책의 관심범위를 보다 넓은 문화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에 대한 프로그램의 구성과 운영도 좀더 포괄적으로 접근되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보면 아직도 계획의 항목들은 청소년 비행예방을 위한 사회운동이나 청소년 약물 오ㆍ남용 예방을 위한 책자간행과 같은 기존 행사방식의 외곽적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청소년 정책에 새롭게 접근하는 일은 바로 이러한 외곽적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청소년의 삶 그 자체의 중심으로 들어가 청소년 그 자신이 스스로 보다 건전하고 질 높은 삶을 살도록 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집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장을 확대하고 청소년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있어서도 이것이 스포츠의 장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하고 지도자 또한 체력이나 훈육의 역할을 넘어서는 문화교육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청소년 체육부의 직제는 보다 문화적으로 조직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여타 관련부서와도 어떻게 할 일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효율적일지를 자세히 분별해둘 요구가 있다. 이런 점들이 고려되지 않을 때 청소년 전담부서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오히려 그 정책적 행동의 영역은 협소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계기에 우리 모든 국민과 사회 전반이 보다 건전하고 질적으로 향상된 삶의 양식과 환경을 창조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청소년의 선도나 보호를 말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선도하고 어느 지역에서 보호하느냐를 답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사회가 가진 최선의 것만이 청소년 세대에게 주어질 수 있을 때 청소년 정책은 성과가 가능하다. 이 간단하면서도 힘든 명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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