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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인물들 펼쳐지는 도봉구길

    역사 속 인물들 펼쳐지는 도봉구길

    서울 도봉구는 우리 근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이름을 따 명예도로명을 지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명예도로 지정은 구가 추진하는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과 연계해 진행하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최근 역사 교과서 등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신 분들을 기려, 주민들과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지정된 명예도로의 명칭은 ▲김수영길(방학로15길1~시루봉로5길1) ▲함석헌길(도봉로123길1~62) ▲전형필길(지도·시루봉로126~206) 등이다. 명예도로 사용기간은 5년이다. 김수영 시인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자유시인으로 저항적인 시를 통해 독재에 맞섰다.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 철학자, 인문학자인 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간디’라고 불릴 정도로 인권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훈민정음 해례본 등 민족문화유산 수호자 역할을 해 왔다. 구 관계자는 “김수영길은 520m, 함석헌길은 315m, 전형필길은 810m로 길지는 않다”면서도 “이 길을 방문한다면 인근의 기념관과 가옥을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한편 구는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8월 ‘가인 김병로길’을 지정한 바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명 지정을 통해 역사 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역사문화관광벨트와 연결된 이 명예도로를 통해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고 역사적 인물들의 고귀한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역사 속 인물들 펼쳐지는 도봉구길

    역사 속 인물들 펼쳐지는 도봉구길

    서울 도봉구는 우리 근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이름을 따 명예도로명을 지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명예도로 지정은 구가 추진하는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과 연계해 진행하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최근 역사 교과서 등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신 분들을 기려, 주민들과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지정된 명예도로의 명칭은 ▲김수영길(방학로15길1~시루봉로5길1) ▲함석헌길(도봉로123길1~62) ▲전형필길(지도·시루봉로126~206) 등이다. 명예도로 사용기간은 5년이다. 김수영 시인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자유시인으로 저항적인 시를 통해 독재에 맞섰다.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 철학자, 인문학자인 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간디’라고 불릴 정도로 인권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훈민정음 해례본 등 민족문화유산 수호자 역할을 해 왔다. 구 관계자는 “김수영길은 520m, 함석헌길은 315m, 전형필길은 810m로 길지는 않다”면서도 “이 길을 방문한다면 인근의 기념관과 가옥을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한편 구는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8월 ‘가인 김병로길’을 지정한 바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명 지정을 통해 역사 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역사문화관광벨트와 연결된 이 명예도로를 통해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고 역사적 인물들의 고귀한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가갸날’을 다시 기억한다/안혜련 참문화사회연구소장

    [옴부즈맨 칼럼] ‘가갸날’을 다시 기억한다/안혜련 참문화사회연구소장

    달력에서 빨간날을 찾는 건 즐거운 일이다. 10월 달력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던 때가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듯 1, 3, 9일 모두 빨간날이어서 절로 그림이 됐다. 하지만 쉬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1991년부터 국군의 날과 한글날이 까만 날이 됐고, 2013년 다행스럽게도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돼 빨간색을 되찾게 됐다. 깊어 가는 가을, 10월 9일 한글날의 의미를 되짚으려는 것은 언어와 문자가 의사 소통과 정보 전달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는 형식이자 내용이자 정신이다. 언어와 문자는 인간 정서의 바탕을 이루고 사고를 규정하고 그 사회의 정신을 반영하고 이끌어 간다. 언어 사용 습관이 특히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글날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위축된 민족 정신을 북돋기 위해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식을 한 것이 시초다. 조선어연구회의 한글날 제정은 민족 정체성을 찾고 주권 회복을 염원하는 실천적 항일운동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에 ‘음력 9월 상한’에 제정됐다는 기록에 따라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됐다. 2015년 10월 9일 서울신문은 한글날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을까.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은 힘을 잃는다”는 기고(26면), 외국인들이 참여한 한글날 행사 사진(8면), “세대불문 신조어·줄임말 넘쳐… 점점 파괴되는 한글”(8면), 강북구 직원 조례·공문서 우리말 교육(14면) 등의 기사가 있지만, 한글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성의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글은 문자 창제의 원리와 배경, 만든 이와 만든 시기가 분명한 유일한 문자이고,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다. 이렇듯 훌륭하고 편리한 우리말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 나갈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는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새로 짓는 건물이나 신상품 이름은 근거도 알지 못할 외래어라야 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이고, 학식 있는 말이나 글에는 한자나 영어 단어가 당연히 섞여야 되고, 시대와 소통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줄임말 몇 개 정도 대화에서 흘려 주어야 하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신문이 한글날을 맞아 특집이나 기획까지는 아니어도 한글의 멋과 힘을 보여 주는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면 좋았을 것 같다. 한글이나 세종대왕과 관련해 어린이들이 가 보면 좋을 장소들을 알려 주면 좋았을 것 같다. 10대가 잘못 쓰는 어휘와 어법들, 20대에게 어려운 존대법, 휴대전화 문자 이용 시 많이 틀리는 맞춤법 같은 것을 정리해 주면 좋았을 것 같다.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 작품이나 멋스러운 한글 서체 몇 점 보여 주면 좋았을 것 같다. 지금부터 569년 전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불쌍히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반포했던 그 뜻깊은 날, 89년 전 일제강점기하에서 국어학자들이 민족의 명운을 염려하며 주권 회복의 결의를 다졌던 그 슬펐던 날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늘 또 다른 의미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될지 모른다. 2016년 10월 9일 570번째 한글날, 서울신문 1면이 백성을 위하는 세종대왕의 지극한 마음을 담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 서문’으로 장식되는 것을 기대해도 좋을까.
  •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자 “1000억원 주면 국가에 헌납”

    국보급으로 평가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52)씨가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씨는 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화재청이 발견 당시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고 얘기해 왔으니 10% 정도만 지급한다면 헌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얘기가 잘못 전해져 마치 내가 1000억원에 팔아먹겠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뜻은 아니다”라며 “헌납 주체는 나고 최소 9000억원 이상 내가 헌납하는 게 된다”고 강조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묻자 “그런 것을 물으면 뭐라고 얘기하겠느냐”며 보존 상태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상주본 소유권이 정부에 있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화재청은 “2011년 6월 대법원에게서 소유권을 인정받은 조용훈씨가 이듬해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소유권이 정부에 있는데 돈을 주고 구입할 이유가 없다”면서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소유권을 가져가면 그때 가서 매매든 기증이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상주본은 국보 70호로 지정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과 같은 판본이고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26일 그의 집에 불이 나 집 안에 있던 골동품, 고서적이 집과 함께 탔는데 당시 해례본 일부도 불에 타 사라졌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배씨는 해례본을 낱장으로 분리해 보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자 “1000억 주면 국가 헌납”

    국보급으로 평가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52)씨가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씨는 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화재청이 발견 당시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고 얘기해 왔으니 10% 정도만 지급한다면 헌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얘기가 잘못 전해져 마치 내가 1000억원에 팔아먹겠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뜻은 아니다”라며 “헌납 주체는 나고 최소 9000억원 이상 내가 헌납하는 게 된다”고 강조했다. 상주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인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됐다. 내용은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학서(禮學書·예법에 관한 책), 역사서, 훈몽서(訓蒙書·어린아이를 위한 책), 지리지 등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지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방송한 비디오테이프,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자료를 포함한다. 이번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고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이어 2011년은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의미?”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인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됐다. 내용은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학서(禮學書·예법에 관한 책), 역사서, 훈몽서(訓蒙書·어린아이를 위한 책), 지리지 등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지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방송한 비디오테이프,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자료를 포함한다. 이번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고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이어 2011년은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유교책판, 이산가족찾기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되다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됐다. 이들 유산의 등재가 확정되면서 한국이 보유한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The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한국의 유교책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이다. 국가가 아닌 각 지역의 지식인 집단들이 시대를 달리해 만들었다.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존, 관리하고 있다. 문학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대인관계 등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다 유교의 인륜공동체 실현이라는 공통된 내용을 담고 있다. 종류는 유학자의 문집, 성리서, 족보·연보, 예학서, 역사서, 훈몽서, 지리지 등 다양하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기록물을 총칭한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으로, 전담 인력 1641명이 투입됐고 사연 10만 952건이 접수됐으며 절반을 조금 넘는 5만 3536건이 방송에 소개돼 1만 189건의 상봉이 이뤄졌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2001년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 동의보감, 2011년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중국이 제출한 난징대학살 문건도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난징대학살 문건은 일본 군대가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이후 6주간 난징 시민과 무장 해제된 중국 군인들을 학살한 사실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을 아우른다. 반면 중국이 함께 신청한 1931년부터 1949년까지 생성된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등재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은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군 포로의 귀환 관련 자료인 ‘마이즈루 항구로의 귀환’과 교토의 사찰인 도지(東寺)에 소장된 고문서 등 2건을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IAC 제12차 회의를 통해 60여개국이 신청한 88건 중 47건을 새롭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1992년 시작한 사업으로 한 국가를 초월해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 역사적 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등을 대상으로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정신 차려, 국어사전

    정신 차려, 국어사전

    미친 국어사전/박일환 지음/뿌리와이파리/264쪽/1만 2000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최종규 지음/철수와영희/284쪽/1만 4000원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 길이가 30~50㎝이며, 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자라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속은 누런 흰색이고 겉은 녹색이다. 봄에 십자가 모양의 노란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잎·줄기·뿌리를 모두 식용하며,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백채「1」·숭채.’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 단어’의 뜻을 풀어놓은 것이다. 한 번 맞혀 보시라 569돌 한글날 즈음해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64.2%가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한글로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미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이 넘는 사람이 국보의 상징과도 같은 제1호의 자리에 한글을 갖다 놓고 싶어 할 정도로 한글의 가치를 소중히 여김을 알 수 있는 결과다. 말글 생활은 이렇게 중요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본식 말투, 넘쳐나는 외래어, 국적을 알 수 없는 한글파괴의 유행 등이다. 이맘때면 연례적으로 언론 등에서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 넘쳐나곤 한다. 시인이면서 중학교 국어 교사인 박일환은 한 걸음 나아가 국가기관이 만드는 국어사전의 문제를 적나라하고 꼼꼼하게 제기했다. 모국어의 심장이자 보물창고로 여겨지는 인식이 무색해질 정도로 국어사전의 문제점은 넘쳐났다. 또한 이오덕(1925~2003)의 뒤를 이어 20년이 넘게 우리말 지킴이 역할을 하는 최종규의 책 역시 많은 사람이 몰라서 틀리고, 알면서도 틀리는 우리말과 글의 여러 표현과 쓰임을 친절하면서도 엄격하게 짚어 주고 고쳐 준다. 사실 말글 생활의 원칙을 강조할 때면 흔히 권위적이거나 독선적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독자들이 주눅 들지 않도록 애써 친절하게 설명하는 이유다. ●“다수의 말글에 밀려 표준어·말 본래 뜻 포기” 공교롭게 두 책 모두 비판의 화살은 국립국어원에 겨눠진다.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은 지난 6월 국립국어원이 그동안 부정적 상황의 표현에만 쓸 수 있었던 ‘너무’를 ‘너무 예쁘다’, ‘너무 기분 좋다’로도 쓸 수 있게 한 부분을 상기시켰다. 다수 사람들의 말글 생활의 현실에 밀려 표준어 및 말 본래 뜻을 포기했다는 비판이다. 또한 ‘~로부터’, ‘~에로’와 같은 번역 말투의 조사를 버젓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국립국어원은 번역 말투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널리 써서 퍼지’면, 이 또한 새로운 한국말이라고 여긴다”면서 “학교와 언론과 책이 이러한 번역 말투를 자꾸 쓰고 퍼뜨려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길든 말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립국어원 누리집(홈페이지)에 뭔가를 자주 묻는다. 그러면 늘 돌아오는 대답 끄트머리에 ‘지적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란다. 번역투와 한자어 쓰는 습관에 젖은 국립국어원에 한숨을 연신 내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어 뜻 하나 찾으려면 여러 차례 들춰봐야 ‘미친 국어사전’은 사전을 애써 찾는 이를 숨가쁘게 ‘뺑뺑이’ 돌리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짚었다. 예컨대 ‘호박무늬’를 찾고자 하면 사전은 ‘호박단의 무늬’라고 소개한다. 다시 ‘호박단’을 찾아가면 간단히 ‘태피터’라고만 나온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태피터’를 뒤적거리면 ‘광택이 있는 얇은 평직 견직물. 여성복이나 양복 안감, 넥타이, 리본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쓴다.≒호박단’이라고 풀어져 있다. 돌림 풀이로 제자리를 맴돌다가 결국 호박무늬가 어떤 무늬인지 짐작조차도 못한 채 사전을 덮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자어·외래어·전문어 사랑 등 조목조목 비판 또 방언에 대한 홀대는 물론, 부정확함과 불친절함도 지적했다. ‘잎새:잎사귀의 방언(충청). 국민 애송시가 된 ‘서시’ 속 구절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를 쓴 윤동주는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 서울에서 공부했는데 어떻게 충청 방언을 썼는지 묻는다.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의 번역자는 충청도 사람이었던 것인지 궁금해한다. 설령 오래전 과거 충청권의 언어였더라도 온 나라 사람이 널리 쓰고 있으니 표준어로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밖에 국어사전의 한자어 사랑, 외래어 사랑, 차별과 편견 부추기기, 전문어 사랑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맨 위 문제의 정답은 ‘배추’다. 뜻을 제대로 풀지 못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내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내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어떤 내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인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됐다. 내용은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학서(禮學書·예법에 관한 책), 역사서, 훈몽서(訓蒙書·어린아이를 위한 책), 지리지 등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지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방송한 비디오테이프,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자료를 포함한다. 이번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고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이어 2011년은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대체 무엇?”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대체 무엇?”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대체 무엇?”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인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됐다. 내용은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학서(禮學書·예법에 관한 책), 역사서, 훈몽서(訓蒙書·어린아이를 위한 책), 지리지 등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지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방송한 비디오테이프,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자료를 포함한다. 이번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고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이어 2011년은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무슨 내용 담겼나”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무슨 내용 담겼나”

    세계기록유산 등재, 한국 유교책판+KBS 이산가족 생방송 자료 “무슨 내용 담겼나”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인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9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4∼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을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책판 718종 6만 4226장으로 구성됐다. 내용은 유학자의 문집,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학서(禮學書·예법에 관한 책), 역사서, 훈몽서(訓蒙書·어린아이를 위한 책), 지리지 등이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지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생방송한 비디오테이프, 담당 프로듀서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 522건의 자료를 포함한다. 이번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켰고 2001년에는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이어 2011년은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 숨결 되살려 복간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 숨결 되살려 복간

    ‘596년 전 출간→행방불명→재발견→간송 전형필 입수→영인본 제작→국보 지정→복간본 대량 출간….’ 극적 운명을 겪으며 전해온 훈민정음 해례본이 원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복간본으로 나왔다.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기획하고 교보문고에서 제작을 맡아 1년 넘게 공동작업했다. 훈민정음학 연구자인 김슬옹 미국 워싱턴글로벌대 한국어교육과 교수가 해례본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했고, 영어 해설서도 붙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의 원리와 사용방법을 적은 책으로,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국보 제70호이며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출간 이후 500년 가까이 단 한 권도 발견되지 않다가 1940년 극적으로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기와집 수십 채에 이르는 사례금을 주고 입수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한글 말살과 문화재 약탈의 고난과 한국전쟁까지 거치며 어렵게 살아남았다. 원본을 사진 찍어 제작한 영인본만 1946년, 1957년 두 차례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그것도 연구자용이어서 해례본 원본이 갖고 있는 질박한 느낌과 정교함 등은 직접 느낄 방법이 없었다. 전인건 간송재단 사무국장은 “직접 해례본을 한 장씩 넘겨가며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원본의 사침안정법과 자루매기라는 전통 제본을 따랐음은 물론, 단순한 원형 복제가 아닌 손때와 얼룩, 빛바램 등까지 담아낸 현상 복제라는 점에서 596년 전 숨결까지 함께 복원된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소장 해례본에 없는 표지의 경우에도 ‘동국정운’ 원본을 참고해 제목 글자의 글꼴과 크기 등 고증을 거쳐 재현했다. 3000부 한정 제작에 가격은 25만원으로 만만치 않다. 허교 교보문고 편집장은 “복간본을 공공도서관, 단체 등에 일부 기증할 계획이며 추후 좀 더 대중적 가격의 보급판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글날’ 한글을 노래하다

    ‘한글날’ 한글을 노래하다

    제569돌 한글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전시부터 공연, 이색 콘서트까지 한글 창제 정신과 한글의 우수성·과학성을 되새기고 널리 알리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한글박물관 개관 1주년 기획특별전 국립한글박물관은 기획특별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코드명 D55C AE00’을 6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개최한다. 개관 1주년 기념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정보화된 한글의 모습을 조망하고 의사소통 수단인 문자로서의 한글뿐 아니라 정보 처리 도구로서의 한글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획됐다. ‘D55C AE00’은 컴퓨터에서 쓰이는 국제적인 문자 코드 규약인 유니코드로 ‘한글’을 의미한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글 정보화를 가능하게 했던 다양한 이야기와 현재 일상 속에 있는 한글 정보화의 잊혀진 이야기를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글 자판, 한글 코드, 한글 폰트, 한글 말뭉치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최초로 개발될 당시의 컴퓨터, 1992~1998년 워드프로세서로 만든 가족 신문 ‘가족월보’, 국회 의정 기록 속기 자판인 스테노픽처3000 등 한글 정보화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 200점이 전시됐다. 문영호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 속 한글 정보화를 발견하고 그 꽃이 피기까지의 노력을 음미하면서 정보화된 한글의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화문 광장 등서 공연·전시·체험전 문화체육관광부는 5~9일 서울 광화문 중앙·북측 광장, 세종로공원 등지에서 ‘한글문화큰잔치’를 연다. ‘다 함께 즐기는 한글’을 주제로 공연, 전시, 체험, 학술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8일 광화문광장에선 전야제가 열린다. 한글 홍보 동영상 상영, 한글 반포식 재현, 어린이 합창단 공연 등을 접할 수 있다. 한글날 특집으로 진행되는 KBS 라디오 ‘김성주의 가요광장’에는 레드벨벳, 몬스타엑스 등이 출연해 축하 무대도 꾸민다. 9일에는 광화문 중앙 광장과 북측 광장, 세종로공원에서 무용 ‘춤으로 그리는 한글’, 가족 뮤지컬 ‘넌 특별하단다’, 퓨전 국악 뮤지컬 ‘세종 이도의 꿈’, 패션쇼 ‘한글 옷이 날개’, 마임쇼 ‘생각지 못한 즐거운 공연’, 마술 연극 ‘찰리 아저씨의 무지개 날’ 등 여러 공연이 펼쳐진다. 한글 알리기 필통 만들기, 한글 전각 체험, 세종대왕 어록 판각 글씨로 한글날 빛내기, 광복 70돌 일본어투 용어 순화 학술대회 등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다양한 세대가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문화 국경일’로서의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글의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판소리·힙합·대중가요와 결합 콘서트 우리 음악과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이색 콘서트도 열린다. 9~10일 서울 종로구 문화예술공간 창선당에서 열리는 ‘한글, 풍류를 만나다’라는 판소리를 통해 세종과 한글을 기억하고 랩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 원리를 토대로 한 창작 판소리, 현대의 한글이 활용된 한글 랩의 힙합, 고은 시인의 세종대왕 찬미 시 ‘아, 세종’에 곡을 붙인 창작곡, 노랫말이 아름다운 대중가요 등이 무대에 오른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국회도서관, 고인쇄·활자 상설전시실 문열었다

    국회도서관(관장 이은철)은 6일 오전 10시30분 1층 중앙홀에서 고인쇄·활자 상설전시 및 사회과학자료실, 인문·자연과학자료실 개실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들과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종목 청주고인쇄박물관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상설 전시‘우리 활자, 우리 기록 - 국회도서관에서 만나는 고인쇄·활자전’에서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고인쇄물, 활자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이곳에서는 서사재료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한지의 우수성과 한지 제조과정을 알 수 있는 고문헌, 영상 등을 소개하고, 세계 최고의 인쇄술인 우리나라 목판, 목활자, 금속활자 등 인쇄술의 역사를 개관하며, 우리의 얼을 담은 한글,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 고문헌 등을 전시한다. 개막일 당일에는 금속활자 인출 시연 및 체험시간도 마련돼 있다. 한편, 사회과학자료실(도서관 2층), 인문·자연과학자료실(도서관 3층)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두 자료실은 이용자의 자료 접근성을 높이고 이용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이용친화적인 개가제 자료실로 조성됐다. 특히 인문·자연과학자료실은 기존의 3층 서고를 개가제 열람실로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490평 규모에 인문학, 자연과학 도서 9만책, 열람석 87석과 함께 스터디룸 3실과 캐럴 2실 등이 마련돼 있다. 이은철 국회도서관장은 “열린 국회 차원에서 우리 기록에 관한 상설전시와 개가제 주제자료실이 조성됐다. 보다 쾌적하고 편리해진 국회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채보상운동 정신 계승… 세계가 공유할 자산으로”

    “국채보상운동 정신 계승… 세계가 공유할 자산으로”

    1907년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세계화하는 사업이 본격화한다. 국채보상운동은 표면적으로 일본서 빌린 차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갚자는 자강운동이었으나 사실 국권회복운동이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대구지사장을 지낸 서상돈(1850~1913) 선생 등은 1907년 2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가장 먼저 발기문을 냈고 이에 호응해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인 양기탁과 베델 등이 캠페인을 벌이며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국채보상운동에는 고종은 물론 관료와 상인, 막노동자와 기생까지 참여해 활활 타오르는 애국·충정의식을 표출했다. 대구시는 23일 엑스코에서 국채보상운동 당시 민중들의 애국정신을 담은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보고회를 개최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주요한 문건만 150여건에 이른다. 국채보상운동에 동참을 요청하는 취지서, 권고문, 편지, 신문논설 기사와 성금을 낸 사람과 액수를 적은 성책 등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자료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등재 신청하기까지 추진위원회에서 진행해 온 다양한 활동을 발표했다. 국채보상운동을 주제로 한 창작극도 선보였다. 이 창작극은 시민참여를 유도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흥미롭게 전달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창작극은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자발적인 문화 기부로 제작됐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염원하는 100만명 서명운동을 받았고 ‘포토 월’에 시민들이 직접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는 퍼포먼스 행사도 진행했다. 앞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회 발대식과 선포식은 지난 5월 있었다. 등재추진위를 161명으로 꾸렸다. 국내 각지에 흩어진 취지문과 발기문, 일제 통감부 문서, 언론 기록물 등 다양한 문서를 수집, 정리했다. 권영진 시장은 “국채보상운동에서 보여 준 애국정신은 대구만의 유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산이자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하는 자산”이라며 “이번 보고회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은 가치가 있는 기록 유산을 보존하고 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1992년부터 유네스코가 시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은 훈민정음 해례본·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승정원일기(2001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5·18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등 모두 11건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 핫 플레이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둘리’ 집에 놀러와요

    서울의 최북단 도봉구. 도봉에는 연간 1000만명이 찾는 도봉산이 있다. 도봉구에는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고, 도봉산이 있다’고 할 만큼 도봉산만 있었다. 이 때문에 ‘도봉산을 타고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고 돌아서면 땡인 동네’였다. 그러나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2010년 7월 취임한 뒤 구에 꼭꼭 숨어 있던 근현대 역사·문화 자원을 차근차근 발굴해 개발하면서 도봉은 온 가족이 즐길 만한 동네로 변모했다. ●‘조선 최고 부자·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가옥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산도 타고 아빠·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도 들려주고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도 하고 싶다면 ‘도봉역사관광문화벨트’를 추천한다. 먼저 북한산 둘레길을 가볍게 산책한 뒤 도봉산 옛길과 방학동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간송 전형필의 가옥(시루봉로 149-18)이다. 간송은 1906년 종로4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전계훈이 종로4가의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고 왕십리, 답십리, 청량리까지 확장한 덕에 말 그대로 ‘금숟가락을 물고 나온 아이’였다. 일본 와세다대 유학생이던 그는 23살의 나이에 당대 최고 한학자로 불리는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민족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4살 때 막대한 유산을 받은 뒤로 헐값에 일제로 흘러가던 우리 문화재를 사 모으게 된다. 간송이 사재를 털어 지킨 문화재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와집 10채 값을, 고려청자 20여 점은 기와집 400채 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복원된 가옥 옆에는 간송과 그의 아버지 전영기의 묘가 나란히 있다. 1900년대 초반 지어진 뒤 제대로 개·보수가 이뤄진 적 없었던 이 집은 2011년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산행 중 주민들과 함께 발견했다. 이후 구가 유족 등과 함께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한 뒤 최근에야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간송 가옥의 첫인상은 “애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별 볼일이 없다. 조선 최고 부자가 살았다고 하기에는 안방과 마루, 사랑채로 구성된 구조가 너무 단출하다. 간송의 본가는 서울 종로이고 도봉의 집은 땅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지어 놓은 집 중 하나였다고 한다. 간송 시절에 도봉은 경기도 땅이었다. 종로 본가와 다른 가옥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다 소실됐고 현재 이 집만 남았다. 규모는 작지만 향나무와 소나무, 자작나무를 재료로 ‘한 일(ㅡ)’ 자로 지어진 집은 명문가답게 고풍스럽다. 간송 가옥 보수에 참여한 목수는 “돌을 놓는 방법은 물론 문 크기,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집”이라면서 “서울 명문 가옥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정식 개관한 간송 전형필 가옥에선 앞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이다. ●‘불온한 시인’ 김수영문학관선 낭독의 체험 전형필 가옥을 나와 정의공주와 연산군묘, 원당샘공원을 지나면 ‘불온한 시인’ 김수영의 문학관이 나온다. 김수영이 도봉 쪽에 살았나 갸웃할 것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징집돼 북으로 끌려간 탓에 1952년까지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54년 부인 김현경씨 등 가족과 재회한다. 이때 새 삶의 터전이 도봉동이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김수영문학관은 전시실과 수장고, 도서관, 동아리방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실에서는 그가 펴낸 시집을 비롯해 작품 초고, 산문 원고, 번역서, 펜과 수첩,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김수영 시인의 시를 직접 낭독하고 들을 수 있는 체험관이 있어 눈길을 끈다. ●책 보고 노래하고… 엄마·아빠·아이들의 놀이터 ‘둘리 뮤지엄’ 이쯤 되면 아이들 입에서 “이게 뭐야! 하나도 재미없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가능성이 99.99%다. 이때 눈앞에 둘리와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가 짠! 하고 나타난다. 바로 지난 7월 개관한 둘리뮤지엄이다. 도봉구가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와 힘을 합쳐 만든 이곳은 한국 최대의 캐릭터 박물관이다. 둘리가 살았던 고길동의 집이 도봉구 쌍문동이라는 점에 착안해 만든 어린이 문화시설이다. 1층에 들어서 아이들이 “둘리야”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빙하 속에 잠자는 둘리가 눈을 뜨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1층에서는 둘리의 극장판 ‘얼음별 대모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도우너의 시간 여행 미끄럼틀과 우주버스 타기, 우주의 적 바요킹과의 대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바요킹을 무찌르고 나면 스튜디오에서 둘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2층은 둘리 연재 만화를 보고 자란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은 2009년 새로 제작된 ‘고길동의 아마존 표류기’와 ‘둘리와 친구들의 저승행차’ ‘마법의 피라미드 여행’ ‘유령선 탈출기’ ‘알 수 없는 나라’ 등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각각 포토존이 있다. 캐릭터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둘리 소시지, 둘리 책가방, 둘리 필통, 둘리 물감 등 엄마·아빠가 초등학생 때 썼던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둘리뮤지엄의 수장고에는 이런 물품 1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시설 관계자는 “키덜트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라면서 “이곳을 보고 마이콜 뮤직스테이지로 가면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요리 보고~ 저리 보고~’ 하며 둘리 주제가를 열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시계 그네와 정글짐 등 아이들이 몸으로 놀 수 있는 키즈카페가 마련돼 있다. 1, 2층에서 꼬마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진을 뺀 부모를 위한 커피숍도 이곳에 있다. 몸으로 뛰놀기에 체력이 달리는 아빠들은 근처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해도 좋다. 어른 5000원, 어린이 7000원을 받는 뮤지엄동과 달리 도서관은 ‘공짜’다. 현재 5000여권의 책을 소장한 어린이 도서관은 ‘숲속의 둘리’라는 주제로 꾸몄다. 아이들이 뒹굴면서 책을 볼 수 있다. 책의 종류도 둘리 성격에 맞춰 ‘공부’보다는 ‘놀이’와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 등에 맞춰 구비됐다. 어른들을 위한 만화책도 있다. 학교 때 만화방을 들락거렸다면 부모들도 심심하지 않다. 앞으로는 구연동화와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적한 골목엔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의 흔적 가득 둘리뮤지엄을 나와 정의여고 방향으로 걸으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이 골목 한쪽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 기념관(쌍문동 도봉로 123길 33-6)이 있다. 생의 마지막 7년을 보낸 집을 수리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종교인이다. 기념관에선 그의 책과 저서, 생활용품 등 유품 400여점과 생전 육성이 담긴 강의 테이프, 동영상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지하 1층 세미나실은 게스트룸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함석헌기념관을 다 봤다면 주변 주택가를 한번 휙 둘러봐도 좋다. 기념관을 주변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전태일 열사 등 한국 근현대사를 빛낸 쟁쟁한 인물들의 집터가 남아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문화 지킴이’ 간송의 혼 되살아난다

    2011년 10월. 주민들과 서울 도봉산 둘레길을 걷던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눈에 한옥 한 채가 들어왔다. 담장 위의 기와는 깨져 있고 훼손 부위가 많아 파란 천막으로 덮어 놨지만 그 생김 자체는 근엄하고 기품이 있었다. 이 구청장이 이상하다 싶어 어떤 집인지 물으니 지역 토박이 주민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집인데 모양이 저렇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간송 전형필. 조선 말 당대 최고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 국보급 문화재를 일제가 강탈하는 것을 막았다. 이 구청장은 “문화재를 통해 민족의 정신을 지킨 간송의 가옥이 저렇게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구는 먼저 유족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간송의 가옥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했고 2012년 12월 14일 국가문화재 521호로 지정됐다. 이어 1900년대 초 지어진 뒤 한번도 제대로 수리가 안 된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 소실된 대문과 일부 담장은 개보수가 시급했다. 이 구청장은 “본채와 부속 건물, 주변 담장의 원형을 되찾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주변은 공원으로 정비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전형필 가옥에선 문화재청 문화유산 체험 교육 프로그램인 ‘생생문화재 사업’과 ‘도봉 역사문화 탐방길’ 등이 운영된다. 또 지역 주민과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개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구는 11일 오전 10시 30분에 간송 전형필 가옥 개관식을 연다고 7일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 기획전 ‘칼로 새긴 사군자전’ 개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 기획전 ‘칼로 새긴 사군자전’ 개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회’가 매년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전시회가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금년의 기획 주제는 “칼로 새긴 사군자전”으로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서초구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기획전시관’에서 개최된다. 각자(刻字)란 목판이나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에 글자(혹은 그림)를 새기는 일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각서(刻書)나 서각(書刻)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이라는 공식 명칭이 말해 주듯이, 이제는 각자(刻字)라는 용어로 통일해야 옳다. 각자를 하는 장인을 각자장 혹은 각수(刻手)라고 부른다. 1996년에 고 철재 오옥진(2014년 작고) 선생께서 초조(初祖)로 보유자 지정을 받았으며, 그 뒤를 이어 2013년 3월에 현 고원(故源) 김각한(金珏漢) 선생이 2대 보유자로 지정을 받아 국가 중요 전통 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각자(刻字)는 오랜 연원의 우리 역사와 늘 함께 해 왔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바위나 동굴 등에 암각화나 벽화의 형태로 그 흔적을 남겼던 각자는, 불교와 유교의 이입 이후에 그들 철학을 전파하는 핵심 수단이 되어 전통 문화의 고갱이 반열에 올라섰던 것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비롯하여 광개토대왕비, 중원 고구려비,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지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팔만대장경(국보 32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등의 판각에로 나아간 우리의 전통 각자는, 우리 민족사에 이처럼 뚜렷이 지울 수 없는 족적을 각인하여 왔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현 ‘한국문화재재단’이 각자(刻字)를 비롯한 전통공예의 보급과 저변 확산을 목표로 198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한국 전통공예 교육의 요람으로서, 모두 15개 전통 공예와 건축 분야에서 전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고원(故源) 김각한(金珏漢) 선생은 2004년부터 이 학교 각자전수반을 지도하며 후진을 양성해 오고 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반’에서 고원 선생의 지도하에 전통 각자 기예의 연찬에 노력한 졸업생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전수동문회>가 조직되었고, 지난 2008년부터 매해 동문 기획전을 열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군자란 곧 선비 정신의 정화(精華)인 것. 우리 문화사에는 사군자를 소재로 한 회화서부터 사군자의 정신을 노래한 서예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줄이어 왔다. 어몽룡, 강세황, 김정희, 김규진, 손재형, 김충현, 서희환 등 우리 문화사를 수놓은 고금의 예인들이 끼친, 이 숨결들을 재해석하여 나무에 아로새겨온 <각자전수동문>들의 고민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갑작스레 면모를 일신한 이즈음, 계절의 변전 못지않게 마음의 변화도 기다려진다. ‘칼로 새긴 사군자전’이 이런 관객들의 마음에 삽상한 쉼표를 찍어줄 것이다. 일별을 권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활판마다 담긴 정성… 글자가 숨을 쉰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활판마다 담긴 정성… 글자가 숨을 쉰다

    국내에 유일하게 근대 납활자 인쇄술을 고집하며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의 자부심을 심어 주는 기업이 있다. 경기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사회적기업 ‘활판공방’(대표 박한수)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납활자 인쇄본을 찾아보기 어렵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훨씬 편리하고 효율적인 새로운 인쇄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납활자에 압력을 가해 글을 새기는 활판인쇄는 1960년대 후반이 전성기였다. 그러나 대량 고속 인쇄가 가능한 오프셋 인쇄나 전산조판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라졌다. 오프셋 인쇄나 전산조판 시스템은 종이 위에 잉크를 칠하는 방식이다. 기술혁신의 진전과 숙련을 요하는 기술자의 고령화, 젊은 노동자의 기근으로 1980년대 말부터 활판인쇄가 쇠퇴하면서 납활자를 사용하는 인쇄기기는 대부분 고철 신세가 됐다. 손때·기름때가 묻은 기계들은 가동을 멈추고 먼지만 뒤집어쓴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워 뜻있는 몇몇 인쇄출판계 인사와 문인, 그리고 북 디자이너들이 뭉쳤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국의 후손으로서 자긍심을 고취하고 활자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취지다. 활판인쇄를 살려 나가고자 했던 소박한 꿈은 2007년 파주출판단지에서 활판공방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박한수 대표는 활판인쇄소를 하기 위해 10여년간 전국을 샅샅이 뒤져 활판인쇄기와 주조기를 사 모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주조공과 문선공 등 기술자도 찾아갔으나 대부분 손사래를 쳤다. “처음에는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신반의했죠. 그분들을 설득해서 모셔 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21일 오전 활판공방에 들어서자 왠지 정겨운 잉크 냄새가 고향에 온 느낌이 들게 했다. 문선대를 가득 채운 납활자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구닥다리 인쇄기기, 그리고 허연 머리에 도수가 높은 뿔테 안경을 코끝에 걸친 노신사들의 미소가 정겹다. 출판도시 활판공방은 근대 활판인쇄술의 가치를 존중한다. 대량으로 출판물을 인쇄하는 디지털 오프셋 인쇄 방식은 편의성을 무기로 인쇄 방식을 모두 장악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몇 달이 걸리는 작업량을 디지털 방식은 단 몇 시간 안에 처리해 내기 때문이다. 편의성과 경제성의 관점에서 활판인쇄 방식은 오프셋 인쇄 방식과 비교해 열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활판공방은 옛 방식을 고집하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글자를 찍어 낸다. 사람의 ‘두 손’은 기계가 결코 품을 수 없는 ‘아우라’를 담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동안 활판공방은 활판인쇄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데 노력해 왔다. 우선 활판인쇄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다. 시인들이 직접 고른 100편의 시를 담은 시선집을 활판인쇄하고 손수 제본한다. 종이에 요철이 드러나도록 찍힌 시 한 편은 전통 한지가 주는 질감과 향기, 장인들의 애정 어린 손길로 재탄생하고 있다. 절대 바래지 않을 글자로. 활판공방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성산대교에서 한강하류 둑에 만들어진 자유로를 따라 10여분 달리면 일산을 지나 교하 시계를 넘자마자 오른쪽 파주출판단지 내에 있다. 그중 오래된 인쇄기계가 눈에 띄는 건물에 활판공방이 들어서 있다. 어린이, 학생, 노인,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문선대를 가득 채우는 납으로 만든 활자들과 그 활자들로 찍힌 시선집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활판공방은 활판시집 출간, 고서 복원, 체험학교 운영 등을 한다. 작고 문인의 대표작을 비롯해 현재 활동 중인 문학인의 자선 작품을 ‘한지’에 납활자로 소량 인쇄하고 있다. 수명이 1000년 가는 품격 있는 영구 보존판 작품집은 2008년부터 계속 간행되고 있다. 고서 복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 오륜행실도, 동의보감 등 고서를 원형 복제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출판물 딱지본, 초판본 시집 등 근대문학 관련 도서 복간도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학교 역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백경원 실장은 “우리 옛 문화와 근대 활자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주인이 될 어린이들이 활자와 인쇄의 발전 과정을 견학하고 책 만들기 체험을 통해 독서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체험학교에서는 특히 ‘천자문의 활판인쇄로 전통 오침 제본’ 과정을 배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발간되는 지금 활자 하나하나를 모아 책을 만드는 활판인쇄는 신기하기만 하다. 활판공방 체험은 활자 찾기부터 시작된다. ‘천자문’ 뒷면에 들어갈 판권을 인쇄하려면 자기 이름을 찾아 글자를 심는 ‘식자’ 작업을 해야 한다. 그다음에 고정된 활자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를 얹어 손으로 인쇄기를 돌리면 글자가 종이에 고스란히 옮겨 앉는다. 이렇게 인쇄된 종이를 ‘천자문’ 뒷면에 잘라 붙인 뒤 빨간 실을 바늘에 꿰어 오침 제본을 한다. 실을 엮기 위해 뚫은 구멍이 다섯 개인 오침 제본은 우리나라 전통 제본 방식이다. 목판인쇄와 근대 인쇄를 비교해 보는 ‘인쇄의 변천사’ 체험, 시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를 그리다’ 체험, 직접 쓴 원고 20~30자로 문선-조판-교정-인쇄를 체험할 수 있는 ‘활판인쇄 전 과정’ 체험, ‘활판인쇄로 명함 만들기’ 체험 등도 있다. 박 대표는 “개화기에 도입된 활판인쇄술은 다양하고 수준 높은 도서의 출간을 불러와 애국 계몽과 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잉크가 쉽게 날아가는 요즘 책과 달리 변하지 않아 생명력이 길다”고 말했다. 사람의 손, 납, 지형에 의해 독특한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아름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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