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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홍만에 맞는 군복 있나

    최홍만에 맞는 군복 있나

    ‘218㎝에 160㎏,370㎜짜리 전투화를 신는 훈련병을 어떻게 감당할꼬….’ 격투기 선수 최홍만(28)이 21일 군에 입대한다.K-1의 주최사인 일본 FEG의 한국지사는 15일 “최홍만이 21일 강원도 육군 제36보병사단 신병훈련소에 입소한다.”고 밝혔다. 당초 내년 초쯤 입대할 계획이었지만 병역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FEG는 밝혔다. 지난달 입영통지서를 받은 최홍만은 훈련소에 들어간 뒤 신체검사를 받고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최홍만은 1999년 신체검사에서 4급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이전의 씨름계 골리앗들은 모두 키 196㎝ 이상이면 면제라는 병역법 규정에 따라 혜택(?)을 입었지만,80년생인 최홍만은 99년 1월 병역법 개정에 따라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최홍만의 군입대에 따라 고민에 빠진 건 육군이다.218㎝에 160㎏의 거구인 데다 남달리 팔다리 길이가 긴 최홍만의 몸에 맞는 군복이 없다.370㎜의 발에 맞는 전투화와 전투모, 속옷 등도 기존의 보급품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침상도 문제다. 관물대 아래까지 발을 뻗는다고 해도 최홍만이 제대로 잠을 이루기는 곤란하다. 그를 위한 맞춤형 보급품을 제작한다는 것도 전례가 없거니와 형평성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깊다. 육군 관계자는 “현재 가장 큰 사이즈의 보급품 중에 최홍만의 체격에 맞는 품목이 거의 없어 고민”이라면서 “단체 생활의 경우 본인이 적응해야 할 부분이지만 보급품 지급에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길섶에서] 반나절의 재회/우득정 논설위원

    새벽부터 재촉하더니 차안에서도 아내는 줄곧 성화다. 속도 위반으로 한번 찍힌 것 같다고 해도 계속 밟으란다.3시간가량 지나자 황량한 산길이다. 민가도 드물다. 집 주변에서는 벌써 자취를 감춘 진달래가 이곳 산자락에서는 한창이다. 살벌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간판. 얼마 후 아들이 있다는 군부대다. 산비탈에 웅크린 시멘트 막사가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형이다.” 꼬마녀석이 소리친다.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조금은 낯익다. 두달 전 훈련소에서 손을 흔들며 짓던 그 웃음 그대로다. 얼굴에 약간 살이 올랐다. 읍내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들은 군대 얘기를 늘어놓기 바쁘다. 아내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마냥 맞장구친다.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읍내의 유일한 목욕탕으로 향했다. 아들은 돌침상에 누워 곯아떨어진다. 허벅지가 많이 굵어진 것 같다. 얼굴이 편안한 걸 보니 좋은 꿈을 꾸나 보다.“아빠,2년인데 뭔들 못 하겠어.”산골 어둠 사이로 서로 손을 흔들며 반나절의 재회는 끝났다. 우득정 논설위원
  • 이소연 “갑자기 3㎝ 컸어요”

    |모스크바 박건형특파원·서울 오상도기자| “직접 와서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어렵습니다. 평생 제가 받은 복을 갚겠습니다.” ‘대한민국 첫 우주인’ 이소연(30)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씨는 11일 밤 11시48분(이하 한국시간)SBS라디오를 통해 진행된 두번째 인터뷰에서 “마지막 로켓이 분리되고 궤도에 진입하자 꽉 묶어놓은 몸이 살짝 떴다.‘이제 우주구나. 드디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지상 360km에서의 생활을 전했다. ●우주에서의 첫 마디는 ‘와∼.’ 이씨는 두번째 ‘천상메시지’를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저는 ISS에서 잘 지내고 있는 이소연입니다.”라면서 힘차게 시작했다. 이어 “어제 많이 힘들었는데 자고 나니 좋아졌다. 어지러웠는데 괜찮아졌다.”고 전했다. 로켓 발사 때의 기분을 묻는 질문에는 “엔진점화 전까지 훈련소 때와 같았지만 엔진이 흔들리자 아래에서 누군가 뻥하고 차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에 대해선 “긴장되고 너무 놀라운 일이라 기억도 잘 안 난다.”면서 “소유스 안에선 멀미가 난다면서 절대로 지구를 보지 못하게 해 ISS에 도착해서야 볼 수 있었다.”고 답했다. 우주에서의 첫마디는 “와∼. 이제 우주구나.”라는 옆 승무원과의 감탄사였다.”고 말했다. ISS에서 이틀째 밤을 맞은 이씨는 “무중력 상태에서 키가 3cm가 컸다. 항상 163∼4cm였는데 167cm가 돼 있더라.”면서 “대신 급격하게 허리통증이 생기고 두통이 심하다.”고 신체변화를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서울 방산중 교사 박소영(36)씨와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대학원생 이용우(27)씨가 참여했다. 앞서 이씨는 이날 새벽 0시41분 ISS에 무사히 입성해 오전 10시30분부터 9시간 가까이 긴 수면을 취했다. 우주선 발사와 이틀간의 비행으로 누적된 피로를 푼 뒤에는 본격적인 과학실험에 착수했다. ●한국음식으로 ‘우주의 날’ 만찬 12일 우주 공간에 있는 6명의 우주인들은 한정식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소연씨는 이날 세계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실은 ‘보스토크 1호’의 무사 귀환을 기념해 제정된 ‘우주의 날’을 맞아 만찬을 주최한다. 이씨는 우주식품 실험, 우주저울실험, 제올라이트 결정성장 실험 등 모두 8가지 실험을 한 뒤 저녁에는 ISS 동승 우주인 5명을 초대해 10가지 한국 우주식품으로 만찬을 베풀 예정이다. 한정식 만찬은 원터치 캔으로 포장된 우주김치와 동결 건조된 우주밥, 튜브형 용기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붓고 빨대로 먹는 우주된장국, 고추장, 볶은 김치 등이 차려진다. 방사선으로 멸균된 생식바와 수정과, 녹차, 홍삼차 등이 우주디저트로 나온다. 백홍렬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이씨가 모든 한국 우주식을 4명씩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면서 “오랜 시간 한국 기업들이 고생해 만들어낸 우주식의 진가를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라고 밝혔다. ●ISS는 밤하늘 어디쯤 있을까 천문연구원 천문정보센터 이동주 팀장에 따르면 ISS는 태양전지판으로 반사되는 밝기가 샛별(금성) 만큼이나 밝아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이 팀장은 “서울을 기준으로 12일 오후 9시11분∼14분,13일 오후 7시57분∼8시3분,14일 오후 8시19분∼25분 북북서 방향을 관찰하면 밝은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ISS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spaceflight.nasa.gov/realdata/tracking)에서도 ISS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kitsch@seoul.co.kr
  • [깔깔깔]

    ●증인 수봉이가 훈련소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고 있었다. 교관은 솔방울을 던지며 ”수류탄”이라고 외쳤다. 훈련병들은 즉시 몸을 피하며 엎드렸다. “너희들 가운데는 영웅이 한 놈도 없어.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다른 동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놈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잠시 후 교관이 다시 솔방울을 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봉이만 빼고 모두 수류탄을 덮쳤다. 교관이 수봉이에게 물었다. “넌 왜 거기 그대로 엎드려 있는 거야?” “한 사람은 살아서 경위를 설명해야 할 거 아닙니까?”●기브 앤 테이크 키가 2m나 되는 봉팔이가 마트에 갔다. 물건을 고르려고 식품 진열대 앞에 서 있는데 키 작은 할머니가 맨 위 선반에 있는 물건을 내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봉팔이는 기꺼이 물건을 집어 할머니에게 전해 주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고마워요, 혹시 이 아래 뭐 필요한 거 없수?”
  • [일요영화] 제9중대

    [일요영화] 제9중대

    ●제9중대(EBS 일요시네마 오후 2시40분)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배경으로 신병들의 입대과정부터 신병훈련소를 거쳐 전쟁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전쟁영화. 아프가니스탄의 자르단 3234고지에서 벌어진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러시아 최초로 특정 분쟁사건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인 1988년. 미술학도, 결혼한 지 하루밖에 안 된 새 신랑, 어린 딸이 있는 가장…. 각각의 사연을 가진 젊은이들이 입영열차에 몸을 싣는다. 훈련소를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견디며 끔찍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은 조금씩 전사로 성장해 나간다. 마침내 3개월의 지옥훈련이 끝나고 젊은 병사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수송기에 몸을 싣는다. 역사상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다는 아프가니스탄. 시체라도 성하면 다행이라는 이곳에 투입되는 신병들은 복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는 고참병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랜 전투에서 자신을 지켜줬다는 부적을 같은 고향 출신의 신병에게 남겨주고 귀국길에 오른 고참이 탑승한 수송기는 이륙과 동시에 피격을 당해 비상착륙 도중에 불덩이가 되어 버린다. 이를 지켜보는 신병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고, 이들 중 일부는 자르단 3234고지에 있는 훈련소의 악질 교관이 몸담았다는 9중대에 배속된다. 삶과 죽음이 일상처럼 돼버린 아프가니스탄 산간마을에서 게릴라 무자헤딘과 총알세례를 주고받던 어느 날, 외부와의 교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게릴라들의 공세가 시작된다. 지난 2005년 러시아에서 개봉해 흥행 신기록을 세운 영화는 완고한 부대장과 세상 물정 모르는 신병, 갓 부임한 신부, 예민한 예술가 등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통쾌함을 기대한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쟁의 허무함과 참상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러시아 영화 특유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제9중대장으로 직접 출연한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아들이다. 슈테판 미하일코프와 예술영화 그룹을 설립하고 뉴스 앵커와 CF 및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일하기도 한 그는 ‘스탈린그라드’(1989),‘중재인’(1992),‘동작 중’(2002) 등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139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주말탐방]군대식 전투축구? 편견을 버려!

    [주말탐방]군대식 전투축구? 편견을 버려!

    ‘1%의 나약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국군체육부대(상무)의 모토에선 숨막히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언뜻 금녀(禁女)의 구역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375명의 상무 전사들이 모두 구릿빛 피부에 파르라니 짧은 머리,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끓어넘치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찌감치 여자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사격, 태권도는 물론 지난해 부산 상무 축구팀이 창단되면서 모두 27명의 여전사들이 이곳에서 비지땀을 쏟고 있는 것. 경남 마산과 전남 순천에서 긴 동계훈련을 마치고 갓 복귀신고를 한 부산 상무 여자축구단의 뜨거운 훈련 현장을 살짝 들여다봤다. 3일 오전 성남시 창곡동 국군체육부대 보조축구장에 선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따뜻한 남쪽에서 ‘빡센’ 전지훈련을 마치고 온 탓인지 선수들의 몸은 다소 무거워보였다. 하지만 웬걸,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자 20대 초반의 또래들처럼 쉴 새 없이 ‘까르르’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조잘조잘 수다를 떨던 선수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수철 감독과 이미연 코치가 나타나자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집합,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이다.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선수들은 이내 1m 간격으로 표지를 세워놓고 2인 1조로 엇갈리며 부지런히 잰걸음으로 뛰어다녔다. 잠시 쉴 틈도 없이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이 계속됐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내 이마에선 땀이 송글송글 배어나왔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났다. 잠시 뒤 휴식시간.‘헉∼헉∼’ 가쁜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앙수비수 신귀영(25) 하사 옆으로 다가갔다. 경포여중 1학년 때부터 축구공을 찬 신 하사는 부산 상무에서 ‘제 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강일여고를 졸업하고 실업팀 대교와 서울시청에서 뛰던 신 하사는 1년여 전만 해도 축구화를 벗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축구를 좋아했고 소속팀과 재계약도 했지만, 출전시간이 워낙 적은 데다 새로 온 감독과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 때마침 부산 상무의 창단 소식이 들렸고, 소속팀 감독도 상무행을 권유했다. 평범한 여자 축구선수가 군인으로, 그것도 부사관으로 변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논산훈련소에서 평생 해 본 적 없는 유격훈련을 할 때나 부사관학교에서 정신교육과 공부를 하면서 보낸 14주는 정말 끔찍했어요. 오로지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간신히 참아냈죠. 다시 하라면 죽어도 못 할 걸요.”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신 하사는 “덕분에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또 이렇게 힘든 일도 버텨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은 못하겠느냐는 자신감도 얻었고요.”라며 이내 생글생글 웃었다. 새 둥지에서 축구화를 질끈 동여맨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주장 신 하사를 비롯, 동료들의 실력도 부쩍 늘었다.“여기 있는 친구들은 아픔을 가슴 한 쪽에 묻어두고 있어요. 대부분 전 팀에서 주인공은 아니었거든요. 저도 전에는 시합 때 공을 잡으면 허둥댔어요. 하지만 이젠 시야도 넓어지고 축구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부산 상무 축구단이 창단된 것은 지난해 3월. 실업팀 4개로 근근이 운영되던 국내 여자축구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군(軍)이 소매를 걷어붙였지만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다. 테스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기존 4개 실업팀으로부터 선수 지원을 받았지만 이른바 ‘A급’은 없었다. 대학무대의 거미손으로 통했던 골키퍼 이청정(22)과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미드필더 반영경(23)과 수비수 신귀영을 제외하면 무명에 가까웠다. 알짜배기 선수들을 내놓지 않으려는 실업팀들의 이해관계 탓에 태생적으로 ‘외인구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논산훈련소(5주)와 부사관학교(9주)에서 14주 군사교육을 마치고 하사로 임관한 이들이 지난해 7월 국군체육부대로 전입하면서 비로소 팀의 구색을 갖췄다. 하지만 제대로 엔트리조차 꾸리기 힘들어 서울시청과 첫 연습경기에서 0-7로 졌다. 지난해 9월 첫 출전한 공식대회인 추계여자축구연맹전에서 3전전패.10월 전국체전에서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6강에서 탈락해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들은 첫 승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수철 감독은 “꾸준히 선수 수급이 이뤄지고 제대로 조련한다면 3년 정도 후에는 아무도 우릴 만만하게 보지 못할 겁니다. 해마다 재계약에 실패할까 전전긍긍하던 선수들이 3년동안 부사관 신분이 보장되면서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장기 복무가 가능하다는 것도 선수들에게는 큰 메리트죠.”라고 말했다. 부산 상무 축구단을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악으로, 깡으로 몸을 날리는 ‘군대(?)식 전투축구’ 수준으로 생각하면 큰 코 닥칠 일. 비록 실전은 아니지만 남자 선수들 못지 않은 강력한 태클을 서슴지 않았고,2㎞의 남한산성 크로스컨트리로 단련된 강철 심장을 뽐내면서도 섬세한 패스워크와 조직적인 전술로 무장한 ‘아트사커’를 꿈꾼다. 정식 경기가 아닌 훈련에서도 ‘불사조군단’ 상무의 트레이드 마크인 끈끈한 조직력과 정신력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들은 오는 5월 말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점검해 볼 계획이다. 국군체육부대 박상한 공보관은 “부산 상무 선수들 한 명, 한 명은 부사관 교육을 통해 분대장의 리더십과 희생정신, 책임감을 몸과 머리로 익혔다. 평생 기계적으로 운동만 한 선수들보다 조직력과 정신력에 관한한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군대식 체력훈련으로 단련된 근육과 축구선수가 필요로 하는 근육이 다소 달라 초기에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고 박 공보관은 귀띔했다. 영외 거주지인 성남시 복정동 숙소에서 오전 6시10분에 출발, 부대에서 아침점호를 받고 오전·오후 훈련을 모두 마친 이들은 오후 7시쯤 파김치가 돼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한 쪽에는 남자축구팀인 광주 상무의 버스와 부산 상무의 버스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이동국(미들즈브러)이나 정경호(전북 현대)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뛰었던 광주 상무의 버스에는 ‘오빠∼ 사랑해’ 같은 소녀팬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물론 부산 상무의 버스는 깨끗했다. 여자축구의 인기가 남자에 비할 바가 아닌 데다 아직까지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인 까닭. 그렇다고 해서 버스에 올라타는 부산 상무 여전사들의 어깨마저 움츠러든 것은 아니다.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작은 행복과 언젠가는 그녀들의 버스도 열혈팬의 낙서로 도배될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은 아닐까.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상무 여자선수들 이것이 궁금해 ▶상무 여자 선수들은 몇 년 동안 복무하나요? -모든 여자선수들은 부사관 신분입니다. 부사관이 되기 위해 논산훈련소(5주)와 부사관학교(9주)에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하사로 임관한 뒤 3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하죠. 장기복무를 원할 땐 의무복무가 끝나기 전에 육군본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병 신분인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에게 거수 경례를 하나요?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사회인 만큼 원칙적으로 사병 남자 선수들이 상급자인 여자 선수들에게 거수경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산 상무 선수들은 임관한 지 1년도 안 됐고, 간부보다는 선수의 개념이 강해 실제로는 서로 존칭을 붙인다고 하네요. 물론 남자 선수들도 중사 이상 여 선수들에게는 확실하게 거수경례를 붙인답니다. ▶여자 선수들은 어디에서 생활하나요? -사격과 태권도 선수들은 부대 내 독신간부 숙소인 ‘화랑의 집’에서 잡니다. 하지만 부산 상무 선수들은 성남시 복정동에 4층짜리 빌라 한 동을 빌려 생활합니다. 이곳에는 식당과 체력단련실, 치료실까지 마련돼 있죠. 또 최근 ‘화랑의 집’ 1층에 부산 상무 선수들이 쉴 수 있도록 간이 침상이 갖춰진 휴게실이 만들어졌답니다. ▶주말에는 어떻게 하나요? -시즌 중에는 대회와 훈련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도 주말에도 쉴 수 없습니다. 다만 비시즌에는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외박을 나간답니다. ▶의무복무 기간에도 결혼을 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14주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부사관으로 임관하면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기혼자는 원한다면 영외에서 출퇴근을 할 수도 있답니다.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세계 무대 호령하는 여전사들 각 군에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국군체육부대(상무)의 이름으로 한 둥지를 튼 것은 지난 1984년 1월4일. 출범과 함께 사격의 최동실·양윤희·김혜영 준위 등 3명의 여전사가 상무에 합류했다. 국제무대에서 상무 여전사들의 활약은 주로 사격에서 도드라졌다. 아테네올림픽 더블트랩에서 깜짝 은메달과 트랩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보나(당시 중사·현 우리은행)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보나 이전에도 상무 여전사들은 국제무대에서 매운 맛을 유감없이 뽐내왔다.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곽유현 중사가 스키트 단체전 금메달을, 이미경 준위는 50m 소총복사에서 ‘골드’를 적중시켰다. 이 준위는 이 대회 50m 소총복사 개인전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준위는 92년 하사로 입대해 최장기 복무 중인 상무의 영원한 맏언니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곽유현 중사가 스키트 단체전 동메달을, 이정아 준위가 트랩 단체전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다. 태권도의 임효정 하사도 지난 2006년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금빛 발차기를 뽐냈다. 중사 진급을 앞둔 임 하사는 “태릉에도 있어봤지만 여기가 더 타이트하다. 남자선수들과 훈련을 많이 하다보니 기량이 더 빨리 는다.”면서 “올해는 반드시 대표 1진이 돼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곳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임 하사는 “처음엔 남자선수들이 옷 갈아 입는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넉살을 떨었다.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북한의 루니’ 정대세, 일본서 인기실감

    ‘북한의 루니’ 정대세, 일본서 인기실감

    ’북한의 루니’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스타덤을 실감하고 있다.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지난 24일 일본으로 귀국한 정대세는 하룻동안 휴식을 취하고 26일 팀 훈련에 합류했다. 일본신문들은 26일 정대세의 훈련소식을 일제히 전하며. J리거 한국인 골잡이에 관심을 드러냈다. 스포츠니폰은 정대세가 “(돌아와보니) 휴대전화에 71건의 메일. 블로그에 110건의 방명록이 남겨져 있었다”면서 “마치 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팬들은 정대세의 휴대폰과 블로그에 총 3경기에서 2연속 골을 넣어 공동 득점왕에 오른데 대한 축하인사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팀 훈련에서 정대세는 일본대표팀으로 차출됐던 팀 동료 2명과도 환담을 나눴다. 미드필더 나카무라 겐고. 야마기시 사토루.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가 그들이다. 특히 북한-일본전에서 각각 공격수와 골키퍼로 만나 정대세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GK 가와시마와는 정대세에게 “(골)넣지 말아줘”라고 말했고. 정대세는 “등을 배로 바꿀 수는 없잖아”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등을 배로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일본속담으로 ‘중요한 일이 닥쳤을때 양쪽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북한대표로 A매치 두 번째 무대에 섰던 정대세는 이번 대회에서 FIFA(국제축구연맹)랭킹이 한참 앞서는 일본. 한국을 상대로 각각 1골을 기록. 양 팀을 1-1 무승부로 묶어놓으며 절정의 골감각을 과시했다. 3월 J리그 개막을 앞두고 일본언론은 정대세를 요주의 인물로 꼽고 있다. 산스포는 ‘일본전의 골로 자신감을 얻은 정대세는 오는 3월9일 도쿄 베르디와 시즌 개막전을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6년 3월 프로무대에 데뷔한 정대세는 지난 해 정규리그 24경기에서 12골을 터뜨리며 J1리그 득점순위 12위를 기록했다. 이번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2골을 기록. 한국의 박주영 염기훈. 일본의 야마세 고지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일요영화] 영광의 날들

    [일요영화] 영광의 날들

    ●영광의 날들(EBS 일요시네마 오후 2시20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위해 싸운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군인들의 이야기. 프랑스의 해방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존재는 지난 2006년 9월 한달간 프랑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를 통해 부활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알제리의 한 시골마을.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청년인 사이드(자멜 드부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프랑스를 나치로부터 구하겠다는 일념에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쟁에 지원한다. 사이드는 훈련소에서 같은 식민지 형제들을 만나 이들과 함께 전투에 투입되고 전투 도중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마르티네즈 하사의 당번병이 된다. 오로지 진급에만 관심있는 압델카사르, 동생 결혼식을 위해 죽은 병사들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불 같은 성격의 야시르(사미 나세리)를 비롯한 토착민 출신 병사들은 고된 훈련을 참아낸다. 이들은 격전지로 악명 높았던 노르망디와 얼어붙은 동부 전선 그리고 독일군 점령 하에 있던 알자스 지방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희생해가면서 프랑스를 지켜낸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국기를 꽂고 승리의 기념사진을 찍는 건 모두 프랑스 출신 군인들이었다. 게다가 식사와 진급, 편지검열 등 토착민 병사에 대한 불평등이 계속되고 압델카사르가 진급에서 밀려나자 프랑스 군인과 토착민 병사들 사이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사이드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정당한 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독일군 점령하의 알자스 마을에 침투, 독일군과 힘겨운 전투를 시작한다. 이 영화는 전통적으로 식민지 점령기를 다룬 영화를 금기시해 온 프랑스에서 매우 의미있는 역할을 한 작품이다. 지난 2006년 첫 시사회에 참석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식민지 군인들의 인권을 보상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그해 9월27일 프랑스 정부는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8만명의 토착민 군인들이 프랑스 군인과 동일한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개봉 당시 평단의 평가도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남우주연상을, 시카고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특별상을 각각 수상했다. 또한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120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KBS1 오후 10시) 어린이 성장발육과 심신단련, 인성교육에 좋은 운동으로 인식돼 자녀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부모가 많다. 그런데 이 태권도 승단 심사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과연 이 심사비는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아울러 전국 모텔의 위생 실태, 공영주차장 경차거부 실태를 파헤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처가 덕에 문을 연 병원을 강남 최고로 키운 피부과 원장 성필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간호사 가영과 두 집 살림 중이다.5년 간 들키지 않고 완벽하게 바람 핀 걸 자랑으로 생각하던 성필은 방송국 인터뷰 준비 중에 만난 헤어디자이너 유진과 또 다른 사랑에 빠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그에게 보약까지 해 바친다.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30분) 거센 위력의 바람에도 끄떡 없을 정도의 무게를 자랑하는 바위. 그런데 이런 바위가 저절로 돌아간다. 저절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위의 실체를 공개한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복귀할 때 누른다는 ‘복귀버튼’이 있는지 없는지, 물에 담그면 의문의 숫자가 떠오르는 달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본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1961년 5월, 항공우주 개발에서 소련에 뒤지고 있다는 데 위기감을 느낀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10년 안에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았다. 우주비행 훈련소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계획은 어쩔 수 없이 정체상태에 빠지고 만다.   ●`EBRD 남북한에서 배운다´(YTN 오전 10시40분) 새 정부가 북한 지원기금 조성계획을 밝힌 가운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글로프 EBRD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YTN과의 대담에서 몇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되면 북한의 경제 개혁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일일드라마 아현동 마님(MBC 오후 7시45분) 배가 고프다는 금녀와 함께 식당을 찾던 하수사관은 문 연 곳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으로 금녀를 데리고 간다. 한편, 한밤중에 길라는 시향 몰래 일어나 빨랫감을 찾아내 세탁기를 돌리고, 이를 본 숙영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희라와 이것저것 비교하며 질투를 하는데….
  • 中인민군 “4가지 헤어스타일 중 고르세요”

    중국 일간지 제팡쥔바오(解放軍報·해방군보)가 “올해 입대하는 신병들부터 4가지 헤어스타일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고있다. 신문은 21일 “중국 군인들은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강제로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삭발을 했다.”면서 “그러나 올해부터는 군내 이발소에서 각자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신병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높은 미적 감각과 군인의 기질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정책으로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남자 신병들은 강건형·청년형·온건형·분방형, 여자 신병들은 단정형·청춘형·수려형·스포츠형 등의 스타일 중 선택이 가능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각 포털 게시판에는 이에 대한 의견이 줄을 이었다. 한 네티즌(218.20.35.*)은 “진작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삭발은 정말 괴로웠다.”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221.222.190.*)은 “중국 군인만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찬성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군대에 오래 있었지만 신병들에게 강제로 삭발시키는 모습은 본적이 없다.”(60.30.96.*)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4가지 스타일이 너무 비슷하다.”(60.183.137.*) “삭발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 되는 과정이다.”(218.89.119.*)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탈영 64%가 복무 부적응 탓

    #1 A씨는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국군병원 정신과에 입원했다. 군의관은 A씨를 조기 퇴원시켰고, 소속부대 지휘관과 군의관은 외진을 허가하지 않았다. 전역 뒤인 2007년 A씨가 투신자살을 하자, 그의 아버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2 2005년 입대해 행정보급병으로 근무한 B씨는 잠 잘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식사를 거르는 일이 빈번했다. 상관으로부터 “이 ××, 군 생활하기 싫어?”,“영창 가고 싶냐?”는 등 폭언을 들었다.B씨는 아침체조 중 발작으로 쓰러졌다. 이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함구증’ 증세를 보였고 지능지수가 68로 떨어졌으며, 우울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인권위는 17일 군복무 부적응이 예상되는 입영 대상자를 사전에 찾아내고 복무 중인 병사에 대해서는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고 국방부 장관과 병무청장에게 권고했다. 병무청과 훈련소 등에 임상심리전문가를 두고, 일선 부대에 ‘기본권 전문상담관’을 확대하도록 했다.‘비전캠프(육군에서 군복무 부적응자 및 자살우려자 등을 대상으로 사단급에서 실시하는 심리치료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지원 및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2001년 출범 이후 2006년까지 군 인권침해와 관련해 진정된 372건 중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진정사건이 107건이었고, 이중 41건이 군복무 부적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본부에 따르면 2002∼2006년새 연 평균 1085건의 군무이탈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중 64.2%인 697건의 원인이 복무 부적응으로 조사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싸이 논산훈련소 입소… 7개월만에 재입대

    현역 재입대 판정을 받은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17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싸이는 “7개월간 (병역 소송으로)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저보고 공연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살이 왜 빠지지 않냐고 한다.”면서 “이번에 들어가서 확실하게 살을 빼고 돌아오겠다. 군대를 마칠 분이나 이미 마친 분들에게 사기를 저하시켜서 죄송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 전재산 모교에 남기고 간 퇴역여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80대 퇴역 여군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재산과 다름없는 자신의 집을 모교 발전기금으로 기증해 화제다. 5일 중앙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5일 81세로 별세한 홍소운씨의 유족은 이날 1주기를 맞아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홍씨가 살던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시가 6억원 상당)를 모교인 중앙대에 내놨다. 홍씨는 중앙대 영문과를 1기로 졸업한 뒤 1950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여군 정훈장교로 참전했고, 여군학교 초대 교관과 여군 훈련소장 등을 거쳐 1968년 중령으로 예편했다. 보훈처 연금으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던 홍씨는 이웃인 이신복(70·여)씨를 양녀로 삼았고,‘자린고비’처럼 생활해 마련한 아파트를 모교에 기증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깔깔깔]

    ●몇가지 궁금증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양력은 양약이고 음력은 한약일까? -장남에게 시집 안 간다는 여자들이 많은데, 결혼하면 차남부터 낳을 자신이 있다는 걸까? -불량배들이 길을 막고 꼽냐고 물었다. 꼽다고 해야 될까, 아니꼽다고 해야 될까? -이틀이 멀다하고 술집에 가는 남편에게 왜 만날 술집에 가느냐고 묻는 아내는 술집에 술 마시러 가는 것 모르는 걸까? -훈련소 생활이 지옥같았다는 신병들은 군대오기 전 지옥에 가봤을까? -강제로 노처녀와 입을 맞췄더니 울면서 입술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다시 입술을 돌려주고 싶은데, 순순히 받아줄까? -술 마시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문 열던 아내가 `당신이오?´라고 묻는다. 몰라서 묻는 걸까, 딴 놈이 생긴 걸까?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9) 논산 연무~상월

    전북 여산에서 1번 국도와 갈라진 옛길은 충남 논산 연무대와 닿아 있다. 이 길로 접어 들면 연무읍 고내리에 봉곡서원이 나온다. 서원 앞에 사는 80대 할머니는 “여자들이 꿈을 꾸면 옛날에 욕을 본 사람들이 나타난다며 (서원을) 옮기라고 해유.”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최근까지 사람이 살다가 떠난 흔적이 있다. 특별하게 보이는 서원은 아니지만 이계맹 등 조선시대 때 귀향을 갔던 선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기에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논산훈련소 주변 경기도 옛말 서원 앞에는 ‘황화정(皇華亭)’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황화정은 서원에서 400m쯤 북쪽에 있던 정자다. 옛날 현감(군수)이 관찰사(도지사)를 맞고 배웅을 하던 곳이다. 황화정이 훼손된 뒤 비석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황화정이 있던 마을은 지금 한적하고 쇠락한 농촌일 뿐이다. 예전에 전라도 지역에 속했던 마을이다. 이 마을 끝에서 옛길은 다시 1번 국도와 만난다. 곧 이어 육군훈련소(옛 논산훈련소·연무대)와 입소 대대가 나온다. 훈련소 앞에서 식당 호객을 하던 김영심(74)씨는 “훈련소도 옛날 훈련소지, 지금은 아녀. 자꾸 오그라져.”라며 최근의 경기를 전했다. 흔한 술집도, 다방도 없다. 입소병의 ‘총각딱지’를 떼주던 아가씨촌도 사라졌다. 교통이 좋아져 입소날에 부모의 차를 타고 오고 면회 때도 멀리 나가 먹는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호객을 하던 70대 할머니는 “재수 있으면 하나 걸리고 공 치는 날이 많아.”라고 한탄을 했다.“밥 먹고 가슈.” 두 할머니는 끝내 객(客)의 소매를 잡아끈다. 훈련소 입소 대대 앞도 마찬가지다. 식당이 줄지어선 거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논산은 역사상 최고 전쟁터 훈련소에서 옛길을 따라 좀더 올라가다 옆길로 2㎞쯤 빠지면 견훤 왕릉이 나온다. 이 왕릉은 기념물 26호로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견훤은 완산(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아들 신검과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을 빚으면서 고려 왕건에게 멸망했다. 죽으면서 “완산이 그립다.”고 해 이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전주 모악산이 보이는 것도 이런 연유다. 논산은 후백제가 왕건과 전투를 벌였고 백제가 멸망할 때 계백장군이 신라와 싸운 황산벌이 있는 곳이다. 육군훈련소도 이곳에 있고 계룡대도 있다.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현재 계룡시에 속하지만 이전에는 논산 땅이었다. 논산지역 향토 사학자 류제협(61)씨는 “논산은 넓은 곡창지대여서 전투식량 조달이 손쉬워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치러졌다.”며 “삼국시대 때는 접경 지역이라 전쟁이 많았고 계룡대는 높은 계룡산이 둘러싼 천혜의 요새여서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논산은 최대 전쟁터일 뿐만 아니라 삼국 통일을 이끌어 통일을 상징하는 고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견훤 왕릉에서 다시 탄 옛길은 연무터미널과 개태골을 거쳐 1번 국도와 갈라져 은진향교로 향한다.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이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낸다. 공자 등 성현 22명의 위패를 모신 향교는 평상시에 문이 닫혀 있다. 향교 안에 3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옛 정취를 이어준다. 향교에서 1㎞쯤 올라가면 망보기마을이 나온다. 고개에서 적들이 오는지 망을 보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양이나 전라도로 갈 때 선비들이 이곳에서 쉬었다고 한다. 큰 정자나무 밑에 계단식 서낭당이 있다. “20년 전만 해도 소몰이꾼들이 정자나무 밑에서 쉬다 갔어.” 나무 밑에서 붉은 고추를 널어 말리던 70대 할머니가 넋두리처럼 내뱉었다. 이 마을을 지나면 옛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촉사가 있다. 보물 232호 석등도 있지만 높이 18m의 국내 최대 석불인 은진미륵(보물 218호)이 서 있어 유명하다. 고려 목종 9년(1006년)에 완공된 이 석불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구절초가 절 안에 가득 꽃망울을 터뜨려 가을 분위기를 한껏 뽐냈다. 사찰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세워진 이승만 박사 추모비는 이 곳의 옛 정취와 달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추모비는 방공청년회 논산지부가 1965년 건립한 것이다. ●‘춘향전´에 7군데나 지명 나와 옛길은 다시 논산시 부적면으로 이어진다. 향토 사학자 류씨는 “전북 여산에서 충남 공주 경천까지 가는 길의 지명이 춘향전에 7군데나 나와 이 구간이 ‘춘향전 옛길’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새다리도 이 가운데 하나다. 부적면 신교리 논산천에 있는 이 다리는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면서 다리를 놓았던 돌이 냇가에 묻혔다고 한다. 부적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옛길은 지금도 넓은 논 사이를 달린다. 호남선 건널목을 건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2리의 자연부락인 지밭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무당이 후백제를 멸망시키려 왔던 왕건의 꿈을 해몽해줘 왕건이 이를 믿고 공격, 끝내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서용호(81)씨는 “한양으로 가던 길은 농로가 됐거나 경지 정리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푸념했다. 4∼5㎞쯤 되는 비포장 농로를 달리다 보면 노성천이 나오고 이 하천을 건너자마자 초포마을이 나온다. 이 일대 주민들은 이 마을을 ‘풀개’라 불렀다. 주소는 광석면 항월리다. 이곳은 한양을 오갈 때 반드시 거치는 마을이었다. 자연히 주막촌이 형성됐고 왈패들이 많았다.‘최장사’니 ‘팔장사’니 하는 힘센 전설적인 장사 이름이 전설로 내려온다. 주민들은 이들이 들었던 거대한 돌이 있다고 전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새로운 교량이 들어섰지만 예전 다리를 쓰던 돌들이 냇가에 흩어져 있다.20∼30년 전까지만 해도 논산장을 가려면 지나던 길이다. 주막집들은 지금 슬래브 주택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기와집 한 곳에서만 막걸리를 팔았다. 주민 이유영(67)씨는 “주먹 깨나 쓰던 장사들이 많아선지 ‘아사리 풀개’라고 불렀다.”면서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곳에 5일장이 서면 노성, 상월 등 인근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 오는 걸 꺼렸다.”고 회고했다. 풀개를 떠난 옛길은 노성천 옆을 따라 올라간다. 노성면으로 들어서자 교촌리 ‘윤증고택’이 맞는다. 윤증(1629∼1714) 선생은 조선시대 숙종 때 한학자로 스승 송시열 선생의 논리를 비판하는 등 성품이 대쪽 같았다. 대사헌, 우의정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했다. 고택은 윤증의 성품대로 간결하고 품위가 있다. 중부지역 양식에 남도풍이 가미돼 있다. 중요민속자료 190호다. 길은 이어 상월면을 거쳐 공주시 계룡면으로 들어간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부인2리 지밭마을 유래 “옛날 선비들이 한양에 말 타고 갈 때 서낭당 앞에서 내려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대유.” 논산시 부적면 부인2리 지밭마을 주민 오영근(65)씨는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전하면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마을안 논 옆에 세워져 있는 서낭당은 무당을 모신 곳이다. 이 무당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의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후백제를 치려고 개태사 근처에 진을 치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자신이 무쇠솥을 쓰고 물속에 빠지는 꿈이었다. 왕건이 “불길하다.”고 고민하자 부하들이 “이 마을에 해몽을 잘하는 무당이 있으니 한번 물어보자.”고 했다. 무당의 딸로부터 ‘흉몽’이라는 얘기를 듣고 낙심해 되돌아가던 왕건을 때마침 집에 돌아온 무당이 붙잡았다. 무당은 “길몽이다. 솥은 왕관을, 물은 등극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왕건은 무당의 말에 곧바로 후백제를 쳐 멸망시켰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뒤 무당의 은혜를 갚고자 ‘부인’이라는 작위를 내리고 땅을 하사했다. 지금의 마을 이름도 이 작위명에서 유래하고 있다. 지밭이란 자연부락명도 ‘제사를 지내는 데 쓰는 밭’이란 뜻에서 변형됐다. 오씨는 “쳐다봐서 보이는 땅은 전부가 무당 땅이었다고 해요.”라고 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왕건이 하사한 엄청나게 넓은 토지의 일부가 지금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 땅은 두 마지기(400평 정도)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쌀로 매년 대보름 전날 마을 서낭당에서 무당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요즘 서낭당 앞에는 건축폐기물이 어지럽게 쌓여 있지만 제사 때는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지낸다고 한다. 제삿날이면 일부 주민이 풍물을 치면서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제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풍물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뒤따른다. 제사는 성대하다. 오씨와 함께 도랑에서 우렁이와 참게를 잡고 있던 서일웅(67)씨는 “(제사를 지내는) 그날은 주민 모두가 멸치도 안먹는다.”고 웃었다. 비린 것을 피할 정도로 무당의 제사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여년 전만 해도 제사 때면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제삿날 직전에 초상집에 갔던 주민은 서낭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꾀병 눈총에 더 아픈 21세 의경 안타까운 사연

    “멋지게 군복무를 마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10월 의무경찰로 입대한 고모(21)씨는 1년이 넘도록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천천히 10분만 걸어도 온몸이 쑤시고 일반인이 10초면 오를 계단도 1분이 넘게 걸린다. 입대 직후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 훈련을 받다가 생긴 치질 때문에 수술을 받은 이후 계속 이런 상태다. 각급 군병원에서 보낸 시간만도 6개월이나 되지만 아직도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해 ‘의병 전역’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료적 군대문화 탈피 적절한 조치 아쉬워” 고씨는 수술 당시 마취 과정에서 생긴 잘못이 원인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군 병원과 대학병원 등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고씨는 “지금까지 정밀진단과 재활치료 비용만 5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면서 “한번에 10만원이 드는 재활치료비가 부담스러워 헬스클럽에서 혼자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프지도 않은데 꾀병을 부린다.”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고씨를 진찰했던 모 대학병원 김모 교수는 “정신적 원인에 의해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형 장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지속적인 격려와 심리적 상담을 통해 호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 전직 육군 영관급 장교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군대 조직문화 때문에 군 병원에서 환자가 중심이 되지 못한다.”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환자가 죄인이 돼 버리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소비자상담센터 이인재(변호사) 소장은 “의료진의 과실이라고 보기에는 인과관계가 약해 보이지만 결국 국가가 장병 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씨를 담당했던 송모 군의관은 “원인을 모르겠다. 여러 차례 검사했으나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전역을 시켜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송 군의관은 고씨가 지난 5월 경찰학교로 배치받을 당시 “경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고씨가 배치를 받은 서울경찰청 기동대에서는 고씨에게 의가사제대를 권했지만 고씨는 수도통합병원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역에 필요한 5급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강제전역’도 경찰이 아니라 군 소속일 당시 생긴 질환이라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의료사고법피해 구제법 제정이 대안”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제정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 당사자들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無)과실을 증명하게 하는 ‘입증책임전환’이 핵심”이라면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면 배상책임도 없기 때문에 피해를 주장하는 쪽과 의료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피닉스’ 다시 창공을 난다

    유방암 수술을 받아 군 신체검사에서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고 강제퇴역했던 피우진(52·여)예비역 중령이 다시 군복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한국 최초의 여군 헬기조종사인 피씨는 ‘피닉스(불사조)’라는 그의 항공호출명처럼 불사조같이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 민중기 수석부장판사는 5일 피씨가 국방부를 상대로 낸 퇴역처분 취소소송에서 “수술 후 군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데 복무 부적합자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낸 퇴역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체력 검정서 합격 복무장애 안돼”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아 유방 절제술을 받았으나 수술 경과가 양호하고 수술 뒤 정기 체력검정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은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피씨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데 장애 사유가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이어 “심신장애등급이 1급 내지 7급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해도 현역으로 복무하는 데 장애사유가 되지 않는 경우 심신장애를 이유로 전역처분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방부가 피씨의 퇴역 근거로 삼은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대해서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해 대외적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현대전 양상은 단순히 육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개별작전의 수행에서 벗어나 군 조직관리, 행정업무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전투수행으로 확대해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피씨는 1978년 소위로 임관한 뒤 여군훈련소 중대장을 시작으로 특전사 중대장,202항공대대 헬기 조종사 등을 거쳐 항공학교 학생대 학생대장을 맡았으며,2002년 유방암 판정으로 유방절제술을 받은 뒤 군 신체검사에서 장애 2급 판정으로 퇴역조치를 당하자 올 초 소송을 제기했다.●피씨 “복직한다면 이젠 사랑하고 싶다”피씨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번 소송에 함께 힘쓴 인권변호사, 인권실천시민연대측에 감사한다.”면서 “법적 분쟁은 이제 끝냈으면 하는 만큼 국방부가 더 이상 항소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복직 뒤 있을지 모르는 집단 따돌림 우려에 대해 피씨는 “잘못된 것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게 군인정신 아니냐.”면서 “그런 일이 있을 리도 없지만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 정도는 이겨낼 만큼 강하다.”고 밝혔다.“그동안 일에만 매달려 살아오다보니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면서 “복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국방부 측은 아직까지 이번 판결에 대한 항소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홍성규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 ‘어머니는… ’으로 돌아온 하명중 감독

    ‘카라마조프적인 힘’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렁저렁 타인이 될 법도 한데 질기도록 끈끈히 이어지는 흔치 않은 ‘인연’이 여기 있다. 한 사람은 소설가, 또 한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불처럼 살다가 요절한 영화감독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1975년.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1941∼79) 감독, 그리고 네살 아래인 소설가 최인호.30대 청년인 둘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만났다. 하 감독은 그 이전부터 서울대 불문과 시절 시인 김지하씨와 친하게 지내는 등 문단의 지인들과 교류도 많았다. 최 작가의 원작인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 대학가의 풍속도와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병태’와 ‘영자’ 하면 40대 이상의 팬들에겐 “아, 그때!” 하며 새삼 추억의 잔을 들어올리곤 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최인호와 인연 이후 하 감독은 최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속 별들의 고향’(1978년)과 ‘병태와 영자’(1979년) 등을 연출,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병태와 영자’가 한참 상영 중이던 1979년 2월28일 하 감독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2007년 9월 어느날. 최 작가는 20년 만에 아주 특별한 나들이를 했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시사회장을 찾은 것. 영화 감상이 끝난 직후 최 작가는 “처음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팔았다는 느낌에 다소 거북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감회어린 고백을 했다. 아울러 최 작가는 이 영화를 연출한 하명중(60) 감독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하명중 감독은 다름 아닌 하길종 감독의 친 동생. 오랜만에 만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껴안으며 ‘사모곡’을 합창했다. 최 작가는 하명중 감독보다는 두살 위. 하지만 30여년 전부터 대략 말을 튼 사이였다. 최 작가는 “길종이 형을 형님으로 모셨으니, 이 친구와는 얼렁뚱땅 말을 놓았다. 내가 이 하씨 형제하고 무슨 인연인지, 참 질긴 인연이야….”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최 작가로서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에 와서도 그의 동생과 또 다시 영화로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 감독의 두 아들(상원·준원)이 배우와 프로듀서로 이번 영화에 참여해 형-동생-아들까지 대를 잇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하 감독의 부인 박경애씨(뤼미에르 극장 대표) 또한 이번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 그 의미를 더해 준다. 하 감독은 4년 전 최 작가의 신작 ‘어머니는∼’가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광화문의 한 서점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죄다 읽었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작가는 “미처 ‘어머니는∼’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2권을 집필하겠다.”고 밝혀 하씨 형제와의 인연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 ‘땡볕´으로 스타감독 반열에 하 감독은 소위 ‘딴따라 인생’ 40년 동안 광고 모델 한번, 밤무대 한번 나가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영화로 얻은 이름, 영화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관객들에게 돌려 드리고 싶다는 철학을 평소 피력해 왔다. 피는 못속이듯 형처럼 올곧은 성품의 발로라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하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는 이번 영화가 ‘땡볕’(1983년)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0년) 이후 17년 만의 연출 복귀작인 셈. 특히 오락영화가 판치는 요즘,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화두를 추석 극장가에 과감히 던졌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용기와 열정을 보여 준다. 특히 나이 60에 제2의 감독인생을 향한 첫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연륜답게 세심한 손길로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스크린에 담아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그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했던 ‘땡볕’은 일제 강점기 척박한 삶을,‘태’는 섬 주민을 속이며 착취하는 지주(군부 독재자)의 횡포를 그렸다. 이후 소년가장의 수기를 바탕으로 ‘혼자 도는 바람개비’를 통해 시대적으로 굴절된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다뤘다. “점점 가족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에 서 있는지, 인생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로소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우린 어머니의 소중한 사랑을 알았을 땐 어머니는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말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결국 어머니의 친정 고모 되시는 분이 저랑 제 형을 키웠지요. 최인호씨의 책을 읽으면서 낳아준 어머니랑, 키워준 어머니(할머니)의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인생 40년… 제2감독인생의 첫작품 하 감독은 폭력과 인성파괴의 영화가 난무하는 요즘 세태를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의 참영화와 참사랑을 한번 얘기해 보자, 또 영화를 통해 씻김을 하고 기쁨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 영화 개봉에 앞서 신병훈련소에서 시사회를 가졌다.“잠시 어머니를 떠난 이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채워 주기 위해서이며 앞으로 교도소에도 필름을 갖고 찾아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디스크수술 부위가 터져 재수술하는 등 고생도 많이 겪었다고 귀띔했다. 화제를 바꿨다. 대외활동이 없던 지난 17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영화현장을 자주 찾아 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조디 포스터도 만나고 쉰들러리스트의 리엄 니슨, 그리고 유명한 시나리오작가와 영화감독 등을 많이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작법과 영화연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하게 된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부연했다. 하 감독은 1965년 문희 남정임 백일섭 이정길 등과 함께 KBS 공채 5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당시 드라마 ‘연화궁’에 출연할 때 홍콩 쇼브러더스의 란란쇼 회장의 눈에 들어 1967년 홍콩으로 건너가 한류스타 1호로 기록된다. 본명인 ‘하명종’(河明鐘) 대신 ‘하명중’(河明中)이란 예명을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체류 기간 중 ‘12금전표’라는 무협영화에 출연했다. 일본 도호영화사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겼으나 귀화를 권유해 이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1969년 귀국했다. 영화계 데뷔는 올해로 40년째.1967년 ‘너와 나’로 시작된다. 이후 ‘탄야’‘태’‘바보사냥’ ‘깃발없는 기수’ ‘사람의 아들’ 등 70∼80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극장 경영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어머니는∼’가 제2의 영화 인생 시작인 만큼 앞으로는 오로지 영화만 하렵니다. 내년에요? 2008년에 맞는 시대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하 감독의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영화얘기로 꽃을 피운다. 첫째 상원(34)씨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의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둘째 준원(31)씨는 ‘괴물’의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한 작가이며 곧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부산 출생. ▲65년 KBS탤런트 공채5기. ▲67년 영화 ‘너와 나´로 데뷔, 홍콩 영화계 한국배우 1호 진출. ▲71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신인상. ▲7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상, 아시아영화제 주연상 ▲83년 대종상 신인감독상. ▲84년 ‘땡볕´ 감독, 베를린영화제 출품. ▲90년 ‘혼자도는 바람개비´ 감독. # 주요 출연작 바보들의 행진(75), 불꽃(75), 발가락이 닮았다(76), 목마와 숙녀(76), 고교얄개(76), 한네의 승천(77), 느미(79), 사람의 아들(80), 태(85) 등 80여편.
  •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 병역 거부자 ‘잔혹史’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 병역 거부자 ‘잔혹史’

    ‘20만 5801개월’. 지난 1950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1만 2324명에게 선고된 형량이다. 분단과 전쟁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신성한’ 국방 의무를 거부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반국가사범’이란 낙인을 찍히고도 항변할 기회조차 없었다. 지난해 수형자 가족모임이 병역 거부로 수감됐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인 6328명이 수감생활 중 1만 8966건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가혹 행위는 사망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1975년 논산훈련소에서 숨진 김종식씨,1976년 포항 해병대에서 사망한 정창복씨 등 5명의 유가족은 지난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죽음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진정을 낸 상태다. 2∼3년간 복역한 뒤 출소한 뒤엔 전과자라는 주홍글씨가 기다렸다. 공무원은 물론 변변한 기업체에 취업하기도 어려웠다.1972년 유신이 선포된 뒤에는 특별조치법까지 제정돼 처벌이 강화됐다.‘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시절엔 형량이 35개월까지 늘기도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종교·신념따른 대체복무 허용] “집총 거부하다 주검으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라요. 앞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게 될 테니까요.” 18일 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자영업자 김윤태(54)씨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20여년 전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하다 입대 뒤 하루만에 숨진 동생 선태(당시 22세)씨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1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사를 시작한 선태씨는 갑작스레 군입대 통지서를 받고 같은 해 8월14일 서울 태릉의 모 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그는 군사훈련 일체를 거부했고, 다음날 부내 내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입대한 다음날 아침 동생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온 가족이 부대로 달려갔어요. 주검을 보니 온 몸에 타박상 흔적이 나 있고 특히 가슴과 엉덩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유서도 없었는데 군 당국은 이렇다 할 해명 한 마디 없이 ‘자살했으니 확인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만 했어요.” 당시 군 당국은 “자살 확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도 구속해 버리겠다.”며 선태씨와 같은 이유로 군 입대를 기피하던 김씨를 위협했다. 결국 확인서에 서명이 끝나자 동생은 곧바로 화장됐고, 김씨도 석달 뒤 병무청 직원들에게 이끌려 강제 입영된 뒤 병역 거부로 3년 1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동생이 죽은 뒤로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어요.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싶었지만 당시는 군사정권이 들어서 ‘계엄상황’이다보니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화병 때문에 8년 전 돌아가셨고요. 저 역시도 수감 후유증으로 몸도 가누기 어렵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취직도 안 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동안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던 김씨는 지난해에야 동생의 사인 규명을 위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씨는 이번 정부 방침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전과자가 되지 않고 사회에 온전히 기여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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