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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력마비’ 수법 전수받아 병역 면제… 前 국대 등 8명 적발

    브로커, 1인당 1000만~5000만원 받아 7년간 병역면제 1500명 전수조사 실시 고의로 청각장애를 유발한 뒤 장애진단서를 받아 병역을 면제받은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와 인터넷TV 개인 방송 BJ 등이 무더기로 병무청에 적발됐다. 병무청은 19일 “브로커가 개입해 고의로 청력을 마비시켜 병역법을 위반한 피의자 8명과 병역 면제를 도운 공범 3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김모씨 등은 2014년부터 병원 주차장 승용차 안에서 자전거 경음기와 응원용 나팔을 귀에 대고 1~2시간가량 큰 소리를 내 청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들은 발급받은 장애진단서를 토대로 장애인으로 등록 후 병역면제를 받았다. 이모씨는 자신이 2011년 같은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점을 악용해 김씨 등으로부터 병역회피 수단을 전수해 준다는 명목으로 1인당 10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을 건네받았다. 이씨에게 병역면제를 부탁한 사람 중에는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A씨와 인터넷TV 개인방송 BJ 김모씨도 포함됐다. 이들은 이씨에게 각각 1500만원과 5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김씨의 경우 병역 회피를 시도하다가 실패 후 2018년 입대했으나 훈련소에서 정신병을 이유로 조기 퇴소한 뒤 같은 방법으로 병역 회피를 시도하다 병무청에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친동생 2명과 지인 등 공범 3명도 이씨를 도와 지인에게 접근해 병역 회피를 회유한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병무청 관계자는 “브로커가 지인들에게 접근할 때 굉장한 수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접근했다”며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는 금액을 깎아 주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병무청은 청각장애를 활용한 병역 회피 신종 수법이 적발되자 최근 7년 동안 청각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은 1500여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들의 18세 이전 장애 기록과 치료 이력 등을 면밀히 확인해 기록이 없는 사람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중앙신체검사소 정밀 검사를 강화해 일시적 청력 마비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등 병역판정검사 시 청력검사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다. 아울러 아직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들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정보를 공유하고 장애인 등록을 취소하는 방안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승리 “입영 연기 신청”에 병무청 “신중히 검토해 결정”

    승리 “입영 연기 신청”에 병무청 “신중히 검토해 결정”

    25일 논산훈련소 입소 예정…‘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 해당 주목‘성점대’ 등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선 승리(본명 이승현·29)가 15일 “입영 연기”과 관련해 기찬수 병무청장은 “신중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승리의 군입대 예정일은 이달 25일로 열흘가량 앞두고 있다. 아무리 국민적 관심이 크다고 해도 수사 기관의 조사만으로 입영 연기 대상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승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오늘 정식으로 병무청에 입영연기를 신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승리는 현재 버닝썬과 관련해 경찰 유착 및 마약 투여·유통, 성접대 등 각종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오는 25일 충남 논산의 신병훈련소로 입소해야 한다.기 병무청장은 이날 뉴스1과의 통화에서 “승리 본인이 입영연기를 신청하면 우리가 직권으로 연기를 (결정)할 수는 없고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영연기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들어오면 사유를 볼 것”이라며 “우리가 판단할 수 없으면 (외부에) 법률자문도 받고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 병무청장은 “(승리의 입대예정일이) 3월25일이니까 (입영연기를) 신청하면 그 이후에 충분히 결정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병역법 제61조를 보면 질병·심신장애·재난 또는 취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의무이행일에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사람의 경우 30세 전에 연기가 가능하다. 병역법 시행령 제129조에는 질병이나 심신장애, 가사정리, 천재지변, 행방불명, 시험응시 등 입영일 연기 사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사내용과 언론보도 등을 볼 때 승리의 경우는 법적으로 연기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포괄적으로 시행령에 규정된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될지는 알 수 없다.앞서 병무청 관계자는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본인이 연기원을 내지 않는한 입대한다”며 “본인이 (연기원을) 제출하면 심사할 수 있지만 해당되는 사항이 (법에)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입영연기를 신청하려면 전자문서 등으로 입영일 5일전까지 연기원서를 지방병무청장에게 내야 한다. 연기기간 및 연기횟수·연령 제한 등 필요한 사항은 병무청장이 정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 이번 사안과 관련해 “입영 전에 구속이 되면 연기가 될 수 있지만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하는 것만으로 (입영이) 연기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현행 병역법 제60조는 병역판정검사 및 입영 등의 연기를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수사 내용만으로는 승리는 군입대를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 해당 규정을 보면 지방병무청장은 ‘범죄로 인하여 구속되거나 형의 집행 중에 있는 사람’의 경우 징집이나 소집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중국은 인권 침해 독보적 국가

    중국은 인권 침해 독보적 국가

    미국 국무부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소수민족 박해와 시민 탄압 등 인권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인권 침해에서 “중국이 독보적”이라고 비난했다.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내 ‘수용소’ 문제를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2017년부터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운영하는 ‘직업훈련소’를 겨냥한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있는 이슬람 소수민족에 대한 대규모 구금 작전을 대폭 강화했다”며 “중국 당국은 종교와 민족적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수용소에 80만명에서 200만명에 이르는 위구르족과 다른 이슬람교도들을 임의로 구금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적시했다. 또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 수용소가 테러와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언론과 인권단체, 과거 구금됐던 인사들은 수용소 내 보안요원들이 일부 수감자를 학대, 고문하고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권 침해에 관한 한 독보적인 중국이 있다”며 중국의 소수민족 박해 문제를 거론하고, 정부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에 대한 박해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코작 국무부 인권담당 대사도 “우리의 추측은 (중국이) 수백만 명을 수용소에 넣어 고문하고 학대하며 그들의 문화와 종교 등을 DNA에서 지우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건 매우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수용시설에 대해 일종의 노동 훈련 캠프이며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그것은 정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문제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중국 당국이 부패 등 권력 남용 관련자들을 기소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산당이 불투명한 당내 징계절차를 이용해 먼저 조사 및 처벌을 한다”며 “당국은 권력 남용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한 시민을 압박, 구금, 체포했다”고 비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에 대해서도 “단지 권리를 위해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해 20명 이상을 숨지게 하고 수천 명을 적법 절차 없이 체포했다”며 “이란 정권은 지난 40년 동안 국민에 가한 잔혹 행위의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한국의 ‘적폐청산’의 진행 경과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소 및 재판 상황과 국가기구의 과거 위법활동에 대한 조사 상황이 담겼다. 국무부는 31쪽 분량의 보고서 중 ‘정부의 부패와 투명성 결여’ 항목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정부 부패에 대한 많은 보고가 있었다”면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재판 상황을 전했다. 보고서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강요 등의 혐의로 작년 4월 1심에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고, 8월 2심에서는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으로 형량이 늘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최씨도 불법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것도 포함됐다. 또 보고서는 지난해 4월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여러 부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과 삼성으로부터 총 110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권력 남용, 인권침해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작년에 결과가 발표됐으며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고 언급됐다. 국내 선거와 관련해서는 2017년 5월 대선과 지난해 6월 지방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한 것으로 인식됐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고 법원은 2019년 12월31일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고 소개했다. 법무부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석방도 포함됐다. 다만 이후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한 정책 논의와 변화 상황이 상세히 담기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2017년 2월 한 여성 검사가 남성 검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 활발히 전개된 ‘미투’ 운동에도 주목했다. 작년 여성상담센터 등을 통한 상담 수치와 성폭력 피해자 지원 내용을 소개했다. 이와함께, 보고서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존중’ 항목에서 정부 당국이 탈북민과 접촉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탈북민들이 정부의 북한 포용정책에 비판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중연설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청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가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더디게 진행했으며 북한인권대사 자리가 1년 넘게 공석이라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밖에 보고서는 ‘근로자의 권리’ 항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변경에 따른 근로 환경 변화에 관해 기술했다. 비정부기구들은 국가보안법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자유를 억압한다며 개혁이나 폐지를 촉구한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이종석, 오늘 8일 대체복무 시작 “근무지는 비공개” 이유 보니

    이종석, 오늘 8일 대체복무 시작 “근무지는 비공개” 이유 보니

    배우 이종석이 오늘(8일)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시작한다. 이종석의 소속사 에이맨프로젝트는 “이종석이 8일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시작한다”며 “병무청이 지정한 곳에서 대체복무를 먼저 하다가 이후 훈련소에 입소,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종석은 과거 교통사고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4급 판정을 받았고, 현역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게 됐다. 이종석은 대체복무요원으로 먼저 군 복무를 시작한 뒤, 이후 지정된 기간에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송 중인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출연 중인 이종석은 지난달 27일 촬영을 모두 마쳤다. 이후 잠깐의 휴식을 취한 이종석은 오늘(8일)부터 본격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근무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함께 근무할 동료들을 배려해 자세한 근무지는 공개하지 않은 것. 이종석 측은 “조용히 복무를 시작하고 싶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장소 및 시간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주위 분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히 첫 출근해 복무를 시작한다.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VR 사격·마스크 지급… 예비군 훈련비 3만 2000원으로

    올해부터 예비군 훈련에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사격 훈련이 도입되는 등 대폭 변화된다. 국방부는 4일 “전국 250여개 훈련장에서 275만여명의 예비군을 대상으로 2019년도 예비군 훈련을 이날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예비군 훈련에 ‘4차 산업혁명 스마트 국방혁신’과 연계해 VR 기술을 적용한 영상모의 사격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도입했던 기존 2D 방식의 단방향 스크린 사격에서 3D 방식의 양방향 전술 사격이 가능하도록 성능을 개선해 사격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예비군 훈련여건에서도 질적 개선이 이뤄지게 된다. 미세먼지 발생 시 예비군의 건강 보호를 위해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를 지급하고 야외훈련 통제지침 등을 선제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또 훈련소 입소 때 반납해야 했던 휴대전화도 ‘자율적 통제체계’를 적용해 훈련 중 쉬는 시간마다 쓸 수 있도록 했다. 동원훈련 보상비도 1만 6000원에서 올해부터 3만 2000원으로 올려 지급하고 2022년까지 9만 1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재동이] “돼지도 폭발물이나 마약탐지가 가능하리라 본다” 천재돼지 옥자를 만나다

    [재동이] “돼지도 폭발물이나 마약탐지가 가능하리라 본다” 천재돼지 옥자를 만나다

    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동그란 코를 가진 돼지가 살랑살랑 연신 꼬리를 흔들며 총총걸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여기에 초강력 애교까지. 지난달 31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있는 코리아경찰견훈련소에서 만난 미니피그 옥자(2세, 암컷)의 첫인상은 그랬다. 옥자는 천재돼지로 유명하다. 각종 장애물을 능수능란하게 통과하는 것은 물론 앉아, 엎드려, 일어서, 기다려, 제자리 돌아 등 다양한 명령을 이해하고 척척 따른다. 또 정해진 장소에 배변하는 깔끔함도 자랑한다. 이러한 옥자의 능력은 최승열 코리아경찰견훈련소 소장 덕분이다. 1987년부터 30여년간 경찰견과 군견 등을 교육해온 베테랑 훈련사인 그는 옥자에 대해 “개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학습 능력을 가졌다”고 자랑했다. 최 소장은 “별생각 없이 ‘옥자도 교육해 볼까’해서 시작했는데, 모든 어질리티 코스를 보름여 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는 더럽다’, ‘돼지는 멍청하다’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고 덧붙였다. 옥자와 최 소장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그는 2017년 미니피그를 구해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 수소문 끝에 옥자를 만났고, 지인에게 보냈다. 그러나 3일만에 지인으로부터 옥자를 돌려받았다. 녀석의 뒷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최 소장은 어쩔 수 없이 녀석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아픈 옥자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최 소장의 보살핌으로 옥자는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녀석의 특별함은 방송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최 소장은 옥자가 탐지돈(豚)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보다 돼지의 후각이 뛰어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돼지를 활용한 탐지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돼지를 활용한 폭발물 탐지나 마약탐지 등은 가능하리라 본다. 기회가 된다면 옥자에게 그 능력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최 소장은 옥자에게 영상 메시지를 이렇게 남겼다. “옥자야, 네가 내 옆 있어 항상 고맙고, 나는 너로 인해서 항상 웃을 수 있고,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어서 굉장히 고맙다. 앞으로도 더욱 건강해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옥자가 됐으면 좋겠다. 옥자야 사랑한다!”‘재미있는 동물 이야기(재동이)’가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동물들의 재미있는 순간을 포착한 동영상 파일이나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런 것도 될까?’라는 고민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과 연락처도 부탁드립니다. (제보메일: seoultv@seoul.co.kr)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
  • [반려독 반려캣] ‘명연기’로 심폐소생술 훈련 돕는 댕댕이 (영상)

    [반려독 반려캣] ‘명연기’로 심폐소생술 훈련 돕는 댕댕이 (영상)

    주인의 심폐소생술(CPR) 훈련 강의을 돕는 똑똑한 개가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화제의 영상이 촬영된 곳은 태국 방콕의 한 육군사관학교 훈련소이며, 영상 속 주인공은 올해 3살 된 암컷 ‘크림’이다. 크림의 주인이자 직업군인으로 일하는 쿤 끼띠삭 하사는 지난해 12월 28일,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강의를 실시했다. 이날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다름 아닌 끼띠삭 하사의 반려견 크림이다. 크림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척 연기를 하기 시작했고, 끼띠삭 하사는 쓰러진 척하는 크림의 흉부 위치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끼띠삭 하사가 흉부압박 뿐만 아니라 인공호흡을 함께 실시하며 학생들에게 정확한 심폐소생술 방법을 설명하는 동안, 놀랍게도 반려견 크림은 실제로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없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끼띠삭 하사는 심폐소생술 관련 설명을 모두 마친 뒤 크림을 껴안아 바르게 앉혔고, 이를 본 학생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박수를 보냈다. 주변을 놀라게 한 크림의 ‘명연기’ 뒤에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크림은 본래 육군사관학교 주변에 살던 떠돌이 강아지였는데, 당시 이를 발견한 끼띠삭 하사가 크림의 새 가족이 되어줬다. 유독 영민한 크림을 알아 본 끼띠삭 하사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크림에게 심폐소생술 강의의 조교 역할을 맡겼고, 크림은 현재까지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찬사를 받고 있다. 끼띠삭 하사는 “수업 때 마네킹을 이용해 심폐소생술을 설명하는 것보다 크림과 함께 설명했을 때, 학생들이 더 빨리 쉽게 이해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크림은 경험이 많아서 강의할 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린다”고 설명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쓰러진 척 해 드릴게’…심폐소생술 훈련 돕는 댕댕이 (영상)

    ‘쓰러진 척 해 드릴게’…심폐소생술 훈련 돕는 댕댕이 (영상)

    주인의 심폐소생술(CPR) 훈련 강의을 돕는 똑똑한 개가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화제의 영상이 촬영된 곳은 태국 방콕의 한 육군사관학교 훈련소이며, 영상 속 주인공은 올해 3살 된 암컷 ‘크림’이다. 크림의 주인이자 직업군인으로 일하는 쿤 끼띠삭 하사는 지난해 12월 28일,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강의를 실시했다. 이날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다름 아닌 끼띠삭 하사의 반려견 크림이다. 크림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척 연기를 하기 시작했고, 끼띠삭 하사는 쓰러진 척하는 크림의 흉부 위치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끼띠삭 하사가 흉부압박 뿐만 아니라 인공호흡을 함께 실시하며 학생들에게 정확한 심폐소생술 방법을 설명하는 동안, 놀랍게도 반려견 크림은 실제로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없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끼띠삭 하사는 심폐소생술 관련 설명을 모두 마친 뒤 크림을 껴안아 바르게 앉혔고, 이를 본 학생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박수를 보냈다. 주변을 놀라게 한 크림의 ‘명연기’ 뒤에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크림은 본래 육군사관학교 주변에 살던 떠돌이 강아지였는데, 당시 이를 발견한 끼띠삭 하사가 크림의 새 가족이 되어줬다. 유독 영민한 크림을 알아 본 끼띠삭 하사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크림에게 심폐소생술 강의의 조교 역할을 맡겼고, 크림은 현재까지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찬사를 받고 있다. 끼띠삭 하사는 “수업 때 마네킹을 이용해 심폐소생술을 설명하는 것보다 크림과 함께 설명했을 때, 학생들이 더 빨리 쉽게 이해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크림은 경험이 많아서 강의할 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린다”고 설명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양요섭 오늘 24일 입대, 자필 편지 공개 “어찌보면 필요한 시간”

    양요섭 오늘 24일 입대, 자필 편지 공개 “어찌보면 필요한 시간”

    양요섭이 입대를 앞두고 자필편지로 소감을 전했다. 하이라이트 멤버 양요섭은 오늘(24일) 의경으로 입대한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배치되는 수순을 밟는다. 입대 당일인 24일 양요섭은 자신의 SNS에 “바쁘게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너무 대견하고 멋있네요. 먼 길 수고스러울까 걱정돼서 미리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친구들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편지에 적은 글처럼 즐겁게 다녀오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히 잘 지내시길”이라는 글과 함께 하이라이트 멤버들과 찍은 사진과 자필 편지를 게재했다.자필 편지에서 양요섭은 “열심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생각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고 역시나 걱정되기도 합니다”라면서 “다녀오면 조금 더 멋진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제가 맡은 일을 성실히 이행하고 여러분들 곁에 돌아와 제 노래를 들려드릴게요”라고 다짐했다. 또 “제게도 이 시간이 어찌보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색다른 경험과 겪어보지 못한 여러가지 상황에 부딪히면서 나름의 생각들도 정리하고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고 전했다. 함께 공개된 사진 속 양요섭은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을 한 채 하이라이트 멤버 이기광, 용준형, 손동운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멤버들의 훈훈한 우정이 돋보인다. 양요섭은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배치된다. 이후 21개월간 의경으로 복무하게 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회복무요원 소집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1심 무죄

    사회복무요원 소집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1심 무죄

    현역병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 통지를 받았는데도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5)씨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15년 1월 육군훈련소 소집 통지서를 받고도 소집에 응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부모, 조부모, 삼촌, 외숙부 등이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가정에서 1994년 태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다. A씨의 초등학교 및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한 기록이 남아있었고, 2006년 침례를 받은 뒤 2010년부터는 1년간 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이와 같은 기록을 근거로 “피고인의 입영거부 행위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으로 병역법 제99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이 판사는 A씨가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된 점에 주목했다. 이 판사는 “A씨는 국립현충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었다”면서 “그에 불응해 현재까지 장기간에 걸쳐 형사재판을 받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피고인 이익에 부합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A씨는 2015년 3월부터 재판을 받기 시작해 1심 선고가 나오기까지 약 4년이 걸렸다. 한편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후 하급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그달 16일 전주지법에서 대법원 선고 이후로는 최초로 하급심 무죄 판결이 나왔고, 지난달에는 서울북부지법과 서울동부지법에서도 각각 1건이 나왔다. 특히 대법원 선고 이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끌려간 학생들 대부분 실종…참전 중인 나 대신 모친이 졸업장 받아”

    “끌려간 학생들 대부분 실종…참전 중인 나 대신 모친이 졸업장 받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9회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김춘식 ▲인천학도의용대 창영분대 ▲인천중학교 3학년 15세 때 참전 1935년 5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서, 6년제 공립 인천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자원입대한 후에 참전하여 1954년 4월 만기 명예 제대함.김춘식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23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치과 3층) 대담 김춘식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6·25 사변이 터지고 인민 횡포에 시달리다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 고교)에 다닐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 집은 동구 창영국민학교 옆에 있었으며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인민군이 인천에 들어오자 곧바로 학생들을 인민의용군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끌려간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되었다. 그해 여름을 집에서 숨어 지내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맞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우리 동네에 생긴 인천학도의용대 창영분대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대원은 박희송과 해병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동네 친구 최춘국이다. 인천학도의용대 따라 남하 이후 국군의 후퇴로 전세가 불리해져서 우리들은 1950년 12월 18일 남하하게 되었다.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걸어서 밤이 깊어서 안양까지 갔다. 안양에서 민박으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수원으로 또 걸어갔으며 수원부터는 기차도 타고 걸어서 가면서 20일 정도 걸려서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산진국민학교의 육군 제2 훈련소 입소 나는 1951년 1월 10일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이후 20여일 훈련받은 후 군번 받고 정식 군인이 되어, 경상남도 진주농업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8사단에 배치받았다. 그때 내 소속은 8사단 16연대 2대대 8중대 소속이었다. 이렇게 배치된 8사단은 병력보충 등 재편을 끝나게 되었으며 그런 얼마 후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부대가 진주에서 이동하여 주둔한 지역이 경상남도 산청이라는 곳이었다. 그 후 함양, 거창 등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공비토벌작전에 참전하였다.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당시 공비토벌은 주로 겨울에만 하는데 산속에 있는 갈대가 눈이 내려 쓰러질 때가 공비들이 활동을 못 하고 노출이 되니까 그때가 토벌작전 하는데 제일 좋은 시기였다. 이후 다시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됐다가 다시 전방 중동부 전선으로 이동하여 지형능선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가 전투했던 지형능선이라고 하는 것은 산세가 다섯 손가락처럼 뻗었다고 해서 지형능선이라고 하였다. 나는 휴전이 되고 9개월 후인 1954년 4월달에 만기명예제대를 하였다. 어머니가 대신 받은 나의 인천중학교 졸업장 당시 군에서의 제대는 상이제대뿐이었으며 휴전 후 내가 1차로 만기 명예 제대를 하였다. 나는 인천중학교 3학년 15세에 국군에 자원입대해서 만 3년 4개월 만에 제대했다. 이때는 전쟁 중이라서, 제대는 심하게 다치거나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만 제대를 시켰고, 1954년에 만기제대라는 것이 생겼다. 나는 군에서 제대한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내가 다니던 인천중학교에 찾아갔으나 제대 후 당시는 6년제 중학교가 3년제 중·고등학교로 분리가 되는 학제개편 때문에 고등과는 없어지고 3년제 중학교만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6·25 당시 나는 인천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국군에 자원입대하였고 내가 전쟁터에 있을 때인 1951년 8월에 어머니께서는 전쟁터에 있는 아들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중학교 졸업장을 받으신 것이었다.6년제에서 3년제로 바뀐 인천중학교 그리하여 1954년 제대 후 인천중학교 졸업장을 갖고 인천중학교를 찾아갔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 최고 학년이 되어 내가 돌아갈 학년은 없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재입학 문제를 의논했더니 교장선생님은 “아직 고등학교 인가가 안 나서 그런데 이제 곧 고등학교가 인가되면 받아줄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망하여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갔다. 나의 재입학을 받아준 인천기계공고 집에서 실망하여 지내고 있었는데, 같이 자원입대하고 제대한 한 친구가 인천기계공고에 알아보았더니 학교에서 한번 학교로 오라는 연락이 왔으니까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인천기계공고에 가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어릴 때 입대하여 제대하게 된 과정과 제대한 후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더니, 학교 측에서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좋다”고 하더니 “담배나 술을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네, 합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그것은 전부 군대에서 배운 거라 하니까 학교에서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학교에 와서는 절대로 담배나 술을 할 수 없으며 그 대신 집에서 사복 갈아입고 마시되 학교 재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한다면 입학을 허락하겠다”고 하면서 조건을 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위 조건을 지키기로 하고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1학년에 편입학하고 평탄히 학교생활을 하고 졸업하였다.남기고 싶은 말 6·25 때 우리 인천의 어린 학생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운 것은 그 시대에 닥쳐온 우리들의 운명이려니 하고 자원입대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리고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낸 데 대하여는 그 개인마다의 손실은 컸겠지만 고향 인천과 나라를 위하여서는 보람 있는 행동이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참전 역사를 찾는 일은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가 함이 당연한 일인데도 큰 비용과 정신 그리고 시간이 소모되는 이 엄청난 일을 개인이 하는 데 대하여 감사한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으며 부디 이 인천학생 6·25 편찬사업이 무사히 성공하여 우리 인천의 후대(後代)들에 인천의 자랑으로, 그리고 좋은 본보기로 남겨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0회 계속
  • 육군정보학교 ‘드론 특기병’ 29명 첫 배출

    육군정보학교 ‘드론 특기병’ 29명 첫 배출

    육군정보학교는 ‘드론운용·정비 특기병’ 29명을 처음 배출했다고 16일 밝혔다. 특기병들은 지난해 9월과 10월 정보학교에서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된 인원으로 육군훈련소에서 5주간의 신병교육을 마친 뒤, 정보학교에서 ‘드론운용·정비 특기병’ 소정의 드론 운용과 정비에 대한 교육 받았다. 특기병 전 인원은 사회에서 초경량 무인장치 조종자(무인멀티콥터)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들로 실기체 이착륙 및 자세모드 비행과 시뮬레이터 프로그램 사용법, 종합전술비행훈련 등 군에서 요구되는 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숙달했다. 육군정보학교는 지난 2017년 5월에 드론교육원을 창설하여 부사관을 대상으로 100여명의 드론조종자와 지도조종교관을 배출하면서 쌓아온 드론 교육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훈련병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개발하여 모델화하였다. 배출된 특기병들은 앞으로 드론봇전투단과 야전부대의 최첨단에서 적 주요표적에 대한 정보수집부터 실시간 적 핵심표적 타격, 공중재보급, 위험지역 정찰 및 적 위협 제거, 작전부대지휘통제 보장, 주요시설방어 등 전ㆍ후방 각지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예정이다. 육군정보학교는 ‘드론 운용ㆍ정비 특기병’ 69명을 2019년에 추가적으로 양성 할 계획이며, 드론교육센터를 창설하여 고등비행기술시범과 고등기술비행과정 교육을 실시 할 예정이다. 육군정보학교 관계자는 “드론의 메카인 정보학교가 ‘드론운용·정비 특기병’을 처음으로 배출한 것은 육군이 본격적으로 드론 전투체계를 구축하는 시발점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육군의 드론전사 양성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이창섭 입대’ 세븐이 공개한 이창섭 사진 “#예지앞사 #고거신기”

    ‘이창섭 입대’ 세븐이 공개한 이창섭 사진 “#예지앞사 #고거신기”

    이창섭의 입대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세븐이 이창섭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14일 세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비투비 이창섭과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 함께 출연했을 당시 촬영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븐은 비투비 팬덤 이름인 ‘멜로디’와 함께 이창섭이 만들어 낸 단어 ‘예지앞사(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사랑해)’, ‘고거신기(고무신 거꾸로 신지 말고 기다려)’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한편, 비투비 이창섭은 14일 훈련소에 입소해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현역으로 복무하게 된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창섭 입대, 멜로디 향한 마지막 메시지 “예지앞사♥”

    이창섭 입대, 멜로디 향한 마지막 메시지 “예지앞사♥”

    비투비 이창섭이 입대를 앞두고 삭발 사진을 공개했다. 14일 이창섭은 훈련소에 입소해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현역으로 복무하게 된다.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창섭 본인이 조용한 입대를 원해 입소 장소와 시간 등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창섭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삭발 사진을 공개하며 “다녀오겠습니다. 예지앞사(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사랑해)♥”라는 글을 올리며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앞서 이창섭은 군입대 전 마지막 방송인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팬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이창섭은 ‘고무신 거꾸로 신지말고 기다려줘’를 줄인 말 ‘고거신기’를 활용해 “멜로디(비투비 팬덤명) 예지앞사 고거신기”라고 말했다. 사진=인스타그램,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올해 첫 입영… “잘 다녀와라”

    올해 첫 입영… “잘 다녀와라”

    올해 첫 입영 행사가 열린 7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한 입대 장병의 부모가 아들의 볼에 입맞춤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입대한 훈련병 1679명은 5주간 각개전투와 사격, 행군 등 군인으로 갖춰야 할 기본자세와 전술을 익히게 된다. 논산 뉴스1
  • 한국계 최초 美 해병대 장성 대니얼 유 ‘새 이민자상’

    한국계 최초 美 해병대 장성 대니얼 유 ‘새 이민자상’

    한국계 최초 미군 해병대 장성인 대니얼 유(56) 소장이 한미우호협회의 ‘새 이민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미 애틀랜타 뉴스앤드포스트는 31일(현지시간) 한미우호협회가 오는 25일 웨스틴 애틀랜타 페리미터노스 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지난해 6월 특수전 최정예 부대 ‘레이더스’ 사령관으로 부임한 유 소장에게 새 이민자상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 소장은 한국계 장성으로 미군에서 맹활약한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태어나 버지니아주로 이민한 유 소장은 1984년 애리조나주립대를 졸업한 뒤 해병대 간부 후보생을 거쳐 1985년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작전장교와 훈련소장, 아프가니스탄 제1해병대 원정군 사령관 등을 두루 거치면서 미군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국가전략문제 연구원, 미외교협회 군사 특별연구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새 이민자상 역대 수상자로는 테네시주 내슈빌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김유근 박사, 아프가니스탄 전쟁영웅 존 오 중령, 아시아계 최초 미군 대대장을 지낸 고(故) 김영옥 대령 등이 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1부>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①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우리는 헌법 전문을 통해 우리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방을 맞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정은 1919년 여러 정부가 하나로 합쳐져 세워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27년간 외교 노력과 전쟁을 병행한 독립 운동의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민중의 뜻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투쟁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1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역사 탐구에는 김원봉(1898~1958년)과 김산(1905∼1938년), 조봉암(1898∼1959년) 평전을 쓴 이원규(72) 작가와 독립운동가 김연방(1881~1919년)의 증손자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신한촌碑, 고려인 독립운동 중심지 일깨워 지난달 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낮았다. 기자를 안내한 교포2세 권세라(27) 가이드는 “그래도 여기는 연해주 다른 도시보다는 따뜻한 편”이라며 “러시아에는 ‘40도 이하 술은 술이 아니다. (영하) 40도가 안 되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웃었다. 공항에서 남부 루스키섬 쪽으로 50여분쯤 달리자 시내 외곽 라게르산 비탈에 도착했다. 검은색 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에 직사각형 모양 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묶어 놓은 태극기와 노란 리본도 눈에 들어왔다. 신한촌 기념탑이었다. 3개의 기둥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숫자인 3을 형상화한 것이다.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상징한다.1911년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명분 삼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던 고려인 마을 구(舊)개척리를 철거했다. 한인들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신한촌을 세웠다. 1919년 3월 17일 우리 민족이 세운 첫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1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여기에 살았지만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마을을 모두 파괴했다. 지금은 기념비만이 이곳이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의 구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3·1운동은 세계 각지에 임시정부 설립을 촉발했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 “이제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뜻있는 이들이 주권 기관을 세워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 곳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정부), 서울의 한성 임시정부 등 세 곳이었다.●전로한족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정부 수립을 위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은 열강의 제국주의 책동을 비난하며 “약소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우리도 반제국주의 흐름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같은 해 5월 문창범(1870~1938년)과 최재형(1860~1920년)이 중심이 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열었다. 러시아 전역의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다.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었다. 이때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의회 의장에 문창범을 선출하고 외교부장 최재형, 군무총장 리동휘(1873~1935년) 등을 임명했다. 공식 선포는 20일쯤 뒤인 3월 17일에 이뤄졌는데, 이는 3·1운동과 궤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대한국민의회는 ‘노서아(러시아) 영토에 있던 임시정부’라는 뜻으로 ‘노령정부’라고도 한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가 기능을 한 곳에 모아 집행하는 소비에트제를 채택했다. 단시일 내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에 나서고자 정부 조직 과정을 다수 생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대한국민의회는 정부 선포 직후 각국 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와의 혈전(血戰)을 선언했다. 간도 뤄쯔거우(나자구)에 군사 훈련소도 마련했다. 신한촌 옛터에서 이원규 작가는 “전 세계 임시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전쟁으로 영토를 되찾아 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령정부는 이런 임정의 본령을 구현할 최적지에 있었다”고 평했다.다만 이 정부는 상하이·한성 정부와 달리 별도의 헌법을 발표하지 않아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유산계급인 원호인(러시아 귀화자)들이 무산계급인 여호인(미귀화자)들을 차별해 한인 사회가 둘로 쪼개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러·韓 어느 곳에도 최재형 추모비 하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 발해성 등 2개의 성터가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쌍성자’로 부르던 곳이다. 민가가 즐비한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가자 단정히 정돈된 최재형 생가가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러시아 인부들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느라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집은 그가 1919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던 곳이다. 권 가이드는 “최재형을 빼놓고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이나 러시아 어느 곳에도 추모비 하나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노령정부 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들자면 단연 ‘연해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최재형이 꼽힌다.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저격할 수 있게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을 건넨 인물이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였던 아버지 최형백과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9살이던 1869년 가족들이 배고픔과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크라스키노(연추)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 때 “밥만 축낸다”는 형수의 구박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포시에트라는 작은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최재형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는 이 부부와 전 세계를 항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양문명을 체험했다.187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최재형은 군수업자로 변신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가 월 10~15루블 정도였는데, 그는 포시에트항을 근거지로 여러 사업을 벌여 매달 1만루블 이상을 벌었다. 거부가 되자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고국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역 저격을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최재형의 막내딸인 엘리자베트 표트로브나의 회고록에는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실행 전 우리 집에 기거하며 사격 연습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해주 한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는 애칭도 얻었다.●전 재산 독립에 쓰고… 日 헌병대에 총살당해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일본은 1920년 4월 러시아혁명 세력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상륙해 대대적인 체포·학살에 나섰다. 조선 독립에 전 재산을 쓰고 어렵게 살던 최재형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의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돼 4월 5일 처형됐다. 63세였다. 당시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까봐 담담히 앞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맞으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 블라디보스토크·바라바시·우수리스크·크라스키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인천상중 밴드부와 함께 남하… 나 따라 참전한 심재민 전사 ‘애통’”

    “인천상중 밴드부와 함께 남하… 나 따라 참전한 심재민 전사 ‘애통’”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8회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장인석 인터뷰 일시 1999년 3월 19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편집실(이규원치과 1층) 대담 장인석(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된 인천 중학생들 1950년 6월 25일날 6·25전쟁이 일어났다. 며칠 후 우리 인천이 북한 공산군에게 점령당했는데, 많은 중학생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는 비극이 벌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유엔군의 9·15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천이 수복이 된 후 북한 공산군 치하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조직 내가 살던 화평동에서도 뜻이 맞는 내 또래 학교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분대 본부는 지금의 인천극장 근방에 있었던 화수관이라는 빈 술집을 접수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화평분대를 조직한 우리들은 인망이 두터웠던 인천중학교 5학년 김영배를 분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치안 유지·피난민 안내 등 호국 활동 당시 화평분대 조직원은 화평동에 사는 학생들은 물론 화수동에서 사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것은 당시 화수분대 본부는 화도진 고개 넘어 괭이 부리에 있는 화수조합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화수동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화평분대 본부에서 가까운 학생들은 대부분 화평분대로 가입해서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 활동을 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대원 명단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대장과 대원들은 7명이다. 대장 : 김영배 인천중학교 5학년 해병 6기 대원 : 장갑석 해성중학교 5학년 해병 6기 손홍근 인천상업중 5학년 해병 6기 손정기 인천영화중 4학년 해병 6기 장인석 인천상업중 4학년 해병 6기 이윤우 해성중학교 3학년 해병 6기 신명호 인천상업중 3학년 해병 6기 심재민 해성중학교 2학년 해병 6기1950년 12월 18일 후배 심재민과 같이 남하 이렇게 조직하여 호국 활동을 하는 가운데도 시간은 흘러 그 해도 다 저무는 1950년 12월 중순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천학도의용대 본부로부터 12월 18일날 인천학도의용대는 모두가 남하(南下)하니까 화평분대는 남하할 준비를 하고 18일날 축현국교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12월 18일 아침이 밝아왔다. 우리들은 화평 분대 본부 앞에 전원 모여 인원 점검을 마치고 집합장소인 인천축현국민학교(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운동장에 모였다가 수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날 우리들의 남하 행렬 맨 앞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가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첫날 우리들은 지치기 시작하였으며 졸면서 걸어 도착한 곳이 안양이었다. 안양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들은 이튿날 수원을 향하여 또 걷기 시작했다. 수원에서부터는 기차를 이용했다. 당시 기차는 서울서부터 내려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어서 화물차 칸 안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 우리들은 기차 화물차 칸 지붕 위에 올라앉아 내려갔다. 전쟁의 국가 위난 시기라서 어느 역에 정차하면 몇 시간에서 심지어 며칠 동안 기차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경우도 많았다. 화평분대 대원 마산에서 해병 6기에 모두 입대 이렇게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대원들은 인천에서부터 마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잘 도착하여 대기 중일 때 고향 인천 소식을 들으니까 고향 인천은 또다시 북한 공산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마산에서 해병대 모집이 있어 우리들은 그 해병대 모집에 지원하기로 하고 전원 모집장소인 어느 학교 운동장을 찾아갔다. 그날 전원 해병대에 합격한 우리들은 그날로 진해 경화국민학교에 있는 해병훈련소로 걸어가 입소하였다. 이때 내 바로 위 형님(장갑석·해성중학교 5학년 재학 중)도 같이 입소하였다. 해병 6기는 대부분 우리들 인천 학생들이었다. 이후 해병대 전방 전투지역에 배치된 나는 도솔산 전투 등 각종 전투에 참전한 후 1953년 7월 휴전이 되고 며칠 뒤 제대하였다.지금도 기억나는 전사한 동네 후배 심재민 심재민은 나하고는 같은 동네에서 살았으며, 나이는 나보다 3살 어린 15살이었다. 나와 같이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소속 대원으로 함께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 활동을 하다가 마산까지 같이 남하하여, 해병 6기에 자원입대하였다. 우리 화평분대에서 가장 어린 나이여서 마산까지 남하할 때는 내가 꼭 심재민을 열심히 챙겼었다.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받았으나, 배치될 때 헤어졌었다. 6.·25 당시 심재민이 살았던 집은 화평동과 화수동 경계지점인 화평동 163번지였으며, 우리 집과는 한집 건너였다. 내가 심재민의 전사 소식을 알게 된 것은 1951년 7월 해병 제1연대 본부인사과에서 근무할 때였다. 당시 육군이 맡고 있던 강원도를 우리 해병대가 맡아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나는 사상자 실태 파악을 하는 중에 전사자 명단을 보니까 심재민이 전사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심재민이 어떻게 전사했나 하고 친구들에게 알아보니까 대대장 연락병으로 도솔산 전투에 참전하여 지뢰를 밟아 전사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49년이나 흘렀지만 나를 따라서 15살에 자원입대하고 16살에 전사한 한동네 후배 심재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장인석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소속 해병대 6기 <군번 9210466> 1932년 2월 6일 : 인천 화평동 125번지 출생. <인천서림국민학교 졸업(2회)> 1950년 9월 15일 : 인천학도의용대 화평분대 대원으로서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의 호국(護國) 활동. 1950년 12월 18일 : 인천상업중학교 4학년생으로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서 남하를 시작. 1951년 1월 24일 :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에 지원하여 입대 후 도솔산 전투 등에 참전. 1953년 7월 30일 : 만기 제대.
  • ‘입대’ 샤이니 온유-김민석, 10일 입소 ‘비공개 의지’

    ‘입대’ 샤이니 온유-김민석, 10일 입소 ‘비공개 의지’

    샤이니 온유(29·본명 이진기)와 배우 김민석(28)이 10일 현역 입대한다. 온유는 이날 샤이니 멤버 중 처음으로 군에 입대, 향후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SM은 “온유가 조용히 입대하기를 희망하는 만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입대 장소 및 시간은 공개하지 않고, 별도의 행사도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온유는 입대를 앞두고 지난 5일 첫 번째 솔로앨범 ‘보이스(VOICE)’를 발표하면서 팬들에게 선물을 남겼다. 김민석은 충남 논산훈련소를 통해서 입소한다. 김민석 역시 비공개 입대 의지를 밝힌 만큼 이날 현장에서 별도의 행사는 없다. 김민석은 육군 현역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김민석은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을 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김민석은 JTBC ‘뷰티 인사이드’, tvN 드라마 스테이지 ‘인출책’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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