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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 & Wedding] 임광욱·시정인

    [Love & Wedding] 임광욱·시정인

    광욱이를 처음 본 것은 1998년 5월, 훈련소를 마치고 갓 부대 배치를 받아 군기가 잔뜩 들어있는 신병의 모습이었다. 여대생이 웬 부대인가 하겠지만, 당시 학교를 휴학하고 미군부대에서 일(교회 피아노 반주)을 하던 나는 수많은 카투사들의 입대와 제대를 지켜보았고, 광욱이도 처음에는 ‘군복이 꽤 잘 어울리는 조금 잘 생긴’ 신병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광욱이에겐 미안하지만) 그리 뛰어나지도 않은 영어 실력으로 국적과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긍정적인 태도와 성실함에 끌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안 보면 자꾸 생각나고,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 해 10월 말, 광욱이의 생일을 앞두고 짝사랑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에 (용감하게도!) 생일 카드에 감정을 고백했지만, 이런 고백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는 몹시 당황스러워했고 이후 둘 사이는 오히려 서먹해지고 말았다.(그날 나는 오랫동안 내가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땅을 치며 후회했다!) 비록 둘의 관계는 서먹해졌지만 어찌됐건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속으로도 끊임없이 친구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개월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던 어느 날, 전화 통화 중 ‘친구처럼 지내니 너를 다시 보게 된다.’라는 광욱이의 말에 몇 달 동안 꾹꾹 눌러서 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은 예전보다 더 굳어졌고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었다. 광욱이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난 7년간의 시간은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한동대에서 함께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다듬어 갔던 소중한 추억을 주었고, 무엇보다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결과 지금 광욱이는 기자로, 나는 홍보인으로 서로가 꿈꿔오던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2주 앞둔 지금, 바쁜 회사 일 때문에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마음만 급해 짜증도 많이 내고, 화도 곧잘 내지만 늘 너그럽게 받아주는 광욱이에게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그리고 그동안 정말 멋진 남자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도 멋진(?) 아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싶다.
  • [깔깔깔]

    ●사우나실서 짜증나는 사람 * 도발적인 유연성 체조를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몸 쭉쭉 펴는 거야 좋지만 적나라한 신체표현이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모르게 하죠.). * 앉을 자리도 별로 없는데 퍼질러 눕는 사람. * 모래시계를 돌려놓고 인내하고 있는데 방금 들어와 모래시계 다시 돌리는 사람. * 좁은 공간에서 방귀 뀌는 사람(훈련소 가스체험실을 회상케 함.). * 사우나실 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사람. ●애완동물 김 과장이 귀여운 딸과 함께 애완동물가게에 들렀다. “아줌마, 토끼 있어요?” “그래 어떤 토끼 줄까? 하얀 토끼? 아니면 털이 예쁜 검은 토끼?” 그러자 딸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우리 집 비단뱀은 그런 것까지 따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아무나 박수 칠 때 떠나나.” 20대의 한 젊은이가 있다. 원래는 대학을 진학해 여름방학때 시골집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수박을 실컷 먹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또 회사 다니다가 아이 낳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업보일까. 일찍부터 노숙자같은 생활, 단칸 월셋방과 고시원 전전, 시골카페 DJ생활 등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슬픔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통째로 웃겨보자고. 친구들과 거리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지하철, 대학로, 거리식당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웃겨드리겠습니다.”며 ‘철판 깔고’ 사람들 앞에 섰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드디어 공중파 방송에 뜨면서 박수갈채를 받기 시작했다. 꿈에서나 생각했던, 그건 분명 인기와 사랑의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돌연 방송중단을 선언, 미련과 욕심을 아낌없이 버렸다.“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인기 개그맨 안어벙(28·본명 안상태).2004년 혜성처럼 나타나 ‘빠∼져 봅시다.’‘마데 홈쇼핑’ 등의 유행어를 뿌려대며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절정을 달렸다.‘잘 나가던’ 그는 지난 6월26일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매몰차게 방송계를 떠났다. 특히 젊은층은 물론 40∼50대의 장년층 팬들도 많았기에 아쉬움도 컸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탑아트홀.‘안어벙의 깜짝 콘서트’(7월7일∼9월26일)가 열리고 있었다. 출연진은 ‘안상태와 실미도 개그군단’, 모두 15명. 무명시절 고생했던 개그팀 ‘오장육부’의 김대범 황현희도 함께 출연했다.200석 규모의 소극장은 꽉 찼다. 공연이 시작되자 안어벙은 ‘마데홈쇼핑’을 비롯, 랩과 춤 그리고 즉흥 퍼포먼스를 섞어가며 관객을 압도했다. 이튿날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안어벙을 만났다. 어벙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진지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 청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먼저 방송계를 떠난 이유를 물었다.“좀더 멋진 모습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팬들과 만나기 위해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여태것 물흐르듯 살아왔다. 가는 길을 열심히 갈 뿐이다.(방송에)있어도 문제, 나가도 문제라는 생각도 했다. 우선 연기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연 중인 대학로 개그콘서트에 대해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두달간 연습했다. 팀원들과 마찰도 많았고, 주위의 걱정도 있었지만 후회없이 행복하게 무대에 올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돈벌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수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늘 감사하고 또 (자신의)이름을 걸고 공연을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울러 항상 호응해주는 관객이 있기에 행복하고 또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무명시절, 길거리 공연때에는 눈물도 설움도 참 많았다.”면서 그때 여자친구한테 많이 차이기도 했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얼마전 대학로 공연장에 당시 만났던 여자 친구가 찾아왔더군요. 맨앞좌석에 앉아 제 공연을 다 보고나서 만나달라며 안가고 기다리더군요. 할 수 없이 잠시 갔더니 악수를 청하며 ‘이젠 미워하지 않을 거지.’라고 하더군요. 당시엔 뒤도 안돌아 보더니…” 안어벙의 눈물겨운 개그는 2002년 늦가을 서울 응암동 달동네에서 30만원짜리 월셋방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료 3명과 합숙하며 더욱 뻔뻔해지기 위해 ‘오장육부’라는 이름으로 길거리 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앞부터 대학로까지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았다. 백화점, 경찰서, 지하철 안 등 닥치는 대로 개그 퍼포먼스를 벌였다. 노숙자들과도 자주 접했다. 이때 안어벙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노숙자의 시선에 얻어진, 초점을 잃은 듯한 바보같은 느낌, 덜 미친사람 등을 떠올렸다. 영구나 맹구는 확실한 바보지만 중간형태, 즉 “어벙하게 가자.”고 정했다. 이무렵 안어벙은 개그맨 모집을 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었으나 ‘엿장사 주제에’라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 만들었던 개그 아이템이 아무런 동의도 없이 모방송국 개그프로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다.2003년 2월 대학로의 한 고시원으로 방을 옮겨 심기일전을 다졌다. 오장육부팀은 “개그맨이 안되면 함께 죽자.”며 손가락으로 혈서까지 썼다. 대학로의 소극장을 전전했다.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미친 듯이 공연을 했다. 주위에서는 안어벙을 가리켜 ‘인간 영사기’라고 했다. 이때 받은 한달 개런티는 30만원. 고시원 월세 25만원을 내고 남은 5만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나중에 월급이 50만원으로 오르자 안어벙은 그날로 은행으로 달려가 매달 10만원씩 붓는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주택부금 통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던 2004년 4월 오장육부팀은 KBS 개그맨 공채 19기에 응시, 당당히 합격했다. 이날 너무 감격스러워 모처럼 점심밥을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고는 다들 남산에 올라갔다.“우리를 배반한 자들은 절대 잘 될 수 없다. 하지만 다 잊자, 앞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고 굳은 결의를 했다. 이날 안어벙의 고향인 충남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 마을입구에는 ‘축 합격, 개그맨 안상태 탄생’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내걸렸다. 그해 안어벙이 KBS개그맨 신인상과 개그코너상을 연이어 수상했을 때에도 그랬다. 안어벙은 평범한 농촌의 종가에서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는 동네에서 직원 5명 정도의 조그만한 방직공장을 운영했다. 어머니도 여기에 하루종일 매달렸다. 때문에 안어벙은 할머니한테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독서실 등에서 혼자 자취하며 다녔다. 대학은 취직이 잘된다는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이때만 해도 개그맨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너무 소심하고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고 부끄러움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성격을 바꿔보자.”는 고민에 빠졌다. 대학 1학년때 하루는 학과대표와 얘기하던 중 문득 “상태야, 내일 MT가는데 진행을 맡아볼래”라고 제의했다. 안어벙은 아무생각없이 “그래”라고 대답했다. 막상 그러고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또라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온갖 표정연습을 했다. 이튿날 MT진행은 무난했다. 끝나고 나서 과대표의 “수고했다.”는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용기를 내 유머책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때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휴식시간마다 자청해서 앞에 나와 훈련병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느끼가이’.32사단 배치를 받은 뒤에는 보초를 설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며 음악DJ 연습을 했다. 군생활을 회고하면서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칠 뻔했다고 고백했다. 상급자한테 워낙 매를 많이 맞아 몇번이고 죽이려고 했지만 실행직전 꾹꾹 참았다는 것. 이때마다 돌아서서 노래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혼자 부르며 마음을 달랬다. 제대하던 날 천안역에 내리자 비가 쏟아졌다. 비를 쫄딱 맞으며 이벤트 카페를 찾아다녔다.DJ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4개월여 동안 카페 DJ를 하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길거리 공연 등에 나서면서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됐다. “개그란 진지하고 페이소스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 계층만이 아닌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다 공감을 얻어야 하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의 모습, 살아오면서 많은 고생을 했던 경험이 저에겐 소중한 자산이지요.” 안어벙은 그림과 시(詩)에도 많은 끼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영화 ‘야수와 미녀’에도 출연했듯이 아마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한결같은 사람,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사람,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한테 용돈을 드리냐고 하자 머리를 끄덕이며 “얼마전에는 건강검진을 시켜드렸다.”며 웃었다. ■ 그가 걸어온 길 ▲1978년 충남 아산 출생 ▲96년 신림고등학교 졸업 ▲97년 단국대 전자공학과 입학 ▲98년 육군 입대,2001년 만기 제대 ▲2001∼03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지하철 등 거리공연 ▲03년 단국대 졸업 ▲03∼04년 3월 대학로 공연 ▲04년 4월 KBS개그맨 공채 19기 ▲04년 KBS 개그콘서트 ‘A-YO’‘춤추는 대수사선’‘X-FAIL’ ‘깜빡홈쇼핑’ ‘TV는 사랑을 싣고’‘해피선데이’‘비타민’‘해피투게더’ ‘스펀지’‘폭소클럽-록키루키’ 등 오락프로 다수 출연, 영화 ‘안녕, 형아’ 카메오 출연 ▲04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신인상, 최우수 개그 코너상 수상 ▲05년 영화 ‘야수와 미녀’ ‘작업의 정석’ 출연 ▲05년 6월 ‘KBS 개그콘서트-깜빡 홈쇼핑’ 마지막 방송출연 ▲05년 7월 대학로 탑아트홀 ‘안어벙의 깜짝 콘서트’ 공연 km@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고희 넘기고도 라디오와 함께하는 성우 오승룡씨

    [어떻게 지내세요] 고희 넘기고도 라디오와 함께하는 성우 오승룡씨

    “나이 70이 넘어 지금도 라디오로 생방송 중인 사람이 있을까요. 어림잡아 생방송 시간을 계산해보니 2만 3000여 시간이 족히 되는 것 같아요. 기네스북에 올라도 손색이 없죠.” ●“생방송시간만 2만3000시간” 오승룡(71)씨. 우리의 안방에서 TV가 차지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는 라디오 시대였다. 따라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스타는 대부분 짝사랑의 대상이곤 했다. 그 대상 중에 여자 성우로 고은정씨가 있다면 남자 성우로는 오씨가 가장 대표적이다. 특유의 구수한 목소리로 ‘세월따라 노래따라∼’는 아직도 귀에 생생할 정도로 친근감이 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말 성우 데뷔 50주년을 맞았고, 앞으로 60주년 행사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전국교통방송(TBN)의 ‘오승룡의 세월 100년 노래 100년’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한다. 매일 밤 9∼10까지 1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며,MBC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이어 청취율 2·3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자랑한다. 청취자들과 1대1 문자대화를 통해 “방송진행이 맛이 있다.”는 평가를 자주 들어 보람도 많고 책임감 또한 새록새록 생긴다고 했다. 그는 또 TBN에서 최근까지 ‘서울야곡’을 7년 동안 맡았으며, 현재 서울교통방송에서 매일 오후 8시5분(녹음)에 ‘오승룡의 서울 이야기’를 진행하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그는 “인기는 한번 올라가면 내려가기 쉽다.”면서 “이를 지키는 방법은 항상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없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 한 시간 전에는 방송국에 도착해 원고를 뒤지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소주 7~8병 마셨는데… 16년전 딱 끊어” 이를 위한 체력관리는 매일 아침 동네 한바퀴를 도는 것. 한때 등산과 국궁을 즐겼지만 끝나고 나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얼마전에 그만 두었단다. 대신 속보에 취미를 붙였다. 특히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16년 전에 끊어 맥주 한잔 안 한다. 한때는 별명이 ‘한병만 더’였을 만큼 소주 7∼8병은 거뜬히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기계도 쉬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안쉬면 어떻게 되느냐며 ‘한달만 끊어보자.’‘두달만 끊어보자.’는 식으로 하다가 술을 끊는 데 성공했다며 웃는다. “체력은 전혀 걱정이 없습니다.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지요.” ●“라디오 홀대하는 풍토 사라졌으면” 경기고와 중앙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54년 KBS 성우 공채 1기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해 51년째 ‘생방송 중’이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던 기간을 제외하곤 하루도 방송을 안한 날이 없다. 특히 61∼71년 방송된 MBC의 ‘오발탄’은 그가 가장 아끼는 추억의 프로그램. 그러나 라디오를 홀대하는 방송사가 미워진다는 불만감도 표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발탄’정도는 ‘명예의 전당’에 올릴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는 속내도 털어놓는다. 50년 넘게 방송일기를 쓰고 있다는 그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자녀들이 아직 결혼을 안해 함께 신길동에서 산다. 요즘에는 딸과 함께 홈페이지(greatsroh.x-y.net)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낀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뭐? 훈련병 봉구가 우리 중대장님?”

    “뭐, 강봉구가 우리 중대장님이었다고….” 경기도 양평의 육군 20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이달 중순 1주차 신병교육을 마친 훈련병들 사이에 동료의 ‘정체’를 놓고 소동이 빚어졌다. 신병교육대의 한 중대장이 훈련병 신분으로 입소,1주일간 함께 교육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 한동안 반말을 하며,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1주일 뒤 ‘하늘 같은’ 중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훈련병들은 까무러칠 만큼 놀랐다. 신분을 숨긴 채 훈련병 생활을 자청한 주인공은 신병교육대 2중대장 강병규(육사 56기·29) 대위로 그는 지난 8일 ‘210번 강봉구’라는 이름표를 달고 훈련소에 입소했다. 평소 신병들의 기본권 보장에 관심이 많던 그는 신병의 눈높이에서 교육과정을 둘러보고, 문제점을 직접 찾아 보겠다며 ‘잠행’을 결심했다. 강봉구는 물론 강 대위와 성만 같은 가상의 인물. ‘까까머리’를 한 채 훈련병에게 지급되는 보급품을 받고 입소, 군대 예절 등을 배우는 교육 1주차(7.8∼15) 과정을 모두 마쳤다. 물론 조교나 교관들은 강 대위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의도를 알고 있던 터라 신분에 대해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줬다. 덕분에 강 대위는 ‘팔굽혀펴기’나 ‘선착순’ 등 얼차려도 동료 훈련병들과 똑같이 받았다. 40여명의 동료 소대원들은 그의 신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동료로 대했으며 상당수는 그에게 자연스럽게 마음 속 얘기까지 털어놓았고, 강 대위는 그동안 몰랐던 신병 교육 과정의 문제점도 새롭게 인식했다고 한다. 함께 훈련을 받았던 이승태 훈련병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봉구가 중대장님이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훈련병의 입장으로 돌아가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중대장님의 모습을 보고 모두 적극적인 자세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대위는 “이번 체험을 바탕으로 신병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교육 성과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씨줄날줄] 군대 학점/김경홍 논설위원

    요즈음 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훈련소 인분사건이 말썽을 빚더니, 철책선이 뚫리고, 급기야 최전방 GP에서 상상하기조차도 끔찍한 총기참사가 발생했다. 왜 이런가. 단순히 지휘관 한 사람의 잘못이나, 비뚤어진 병사 한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보기는 석연치 않다. 총체적으로 군대기강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분석이 맞을 것이다. 군대는 특수집단이다. 그래서 몸을 담고 있는 직업군인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관리해야 하고, 사병들도 특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제복이 자랑스러울 때 기강도 서고, 책임감도 늘어난다. 이처럼 군대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역설적으로 군대가 일반사회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 일반인들이 군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허송세월하는 곳이 아니다. 군 생활에서는 무엇보다 나라에 대한 사랑을 배운다. 부모에 대한 감사함을 배운다. 건강의 고마움도 알게 된다. 조직에 대한 헌신과 희생, 인내를 배운다. 과잉보호와 자기위주의 삶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에게 자립십과 애국심을 기르는 데 군대가 한몫을 해야 한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총기참사 이후 병역제도 개선이니, 병영문화 개선이니 하면서 온갖 토론과 대책이 난무하고 있다. 상당부분 말의 잔치거나, 탁상공론에 가깝다는 지적도 많다. 군의 특수성이나 현실을 무시한 인기위주의 정책도 눈에 띈다. 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협의회에서 합의한 ‘군 인적자원 개발 종합계획안’은 군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답답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정부여당이 내세운 것은 각 대학별 온라인 강좌를 군과 연계해 재학중 입대한 사병들에게 9학점까지 이수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에 다니지 않은 사병들에게는 공무원 시험이나 국가자격기술시험에 대비토록 한다는 것이다. 어학프로그램도 만든다고 한다. 군을 학교나 학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대책이 나올 수가 없다. 군은 전시에 대비한 조직이고, 군인은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신세대 장병을 세태에 맞게 잘 관리하는 것과, 무조건 기분을 맞춰주고 보자는 것은 별개다. 최근의 군대 문제 해결은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기강을 바로잡는 데 달려있다. 이런 어설픈 대책으로는 오히려 군을 더욱 흩트려 놓을 우려가 크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1박2일 ‘군인 되기’ 그만

    내년부터 육군 제2훈련소가 있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군(軍)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병영체험축제가 열린다. 논산시는 육군 제2훈련소가 있는 연무지역의 특성을 살려 내년부터 매년 5∼6월에 연무읍 일원에서 1박2일간 ‘논산훈련소 병영체험축제(가칭)’를 열기로 하고 건양대 충남지역문화연구소에 의뢰한 ‘지역축제 발전방안’이란 연구결과를 4일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축제에는 훈련소 행군체험과 사격술예비훈련(PRI)체험, 입영열차 타기체험, 훈련병 복장체험, 훈련소 식사체험, 내무반 체험, 군복입고 사진찍기, 군화끈 빨리매고 집합하기, 훈련소 출신 연대별 축구 및 족구대회 등 훈련병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체험행사가 다채롭게 마련된다. 또 인근의 견훤왕릉 참배와 서재필 박사 추모제 참석, 지역 특산물인 황토돼지 시식회, 돼지고기 요리대회, 돼지몰고 경주하기, 연무쌀로 밥지어먹기 등 지역특색을 살린 이벤트도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논산시는 이 축제를 안정적으로 열기 위해 연무읍 일원에 ‘추억의 논산훈련소 체험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논산시 관계자는 “훈련소측이 군에 대한 불신감 해소와 군 홍보를 위해 적극 협조하기로 한 만큼 축제 전망이 매우 밝다.”면서 “이 축제를 현대적인 병영체험축제로 차별화해 전국 최고 수준의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논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설] 결국 해임건의안 제출된 국방장관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주 중 법무부와 환경부 등 2개부처 장관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석을 메우는 인사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김승규 장관이 국정원장 후보로 내정됐고, 환경부는 곽결호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보각차원의 개각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최전방에서 총기참사가 빚어졌고, 집값 폭등 등 경제문제가 심각한 시점에서 국정쇄신을 위한 개각은 필요없다는 인식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청와대측은 윤광웅 국방장관 교체여론이 비등하는데도 국방개혁의 적임자라고 감싸고 있고, 경기회복 지연 및 부동산 급등 등 경제불안이 심각한데도 현 경제팀이 해결하도록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람을 바꾸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국정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국방의 불안은 비단 총기참사뿐 아니다. 최근 두번이나 철책선이 뚫렸고, 훈련소 인분사건뿐 아니라 병사들의 알몸사진 유포 등 군내 인권유린사건도 한두건이 아니다. 이렇게 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데도 당장 손에 잡히지도 않는 국방개혁만 내세울 건지 묻고 싶다. 안보와 군기강이 흔들린다면 아무리 개혁을 내세워도 공허할 뿐이다. 국방개혁의 적임자가 없다는 말도 핑계에 불과하다. 누구든 책임론이 대두된 상황에서는 힘이 실릴 수가 없을 것이다. 국방문민화니 하면서도 적임자가 달리 없다면 빈약한 참여정부의 인재풀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마침 한나라당이 국방장관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의 정치공세를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사회분위기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새 각오로 불안한 민심을 추슬러야 한다.
  • [임영숙 칼럼] 아들을 軍에 보낸 어미 마음

    [임영숙 칼럼] 아들을 軍에 보낸 어미 마음

    생때같은 자식을 어처구니없는 총기난사 참극으로 잃은 부모 마음을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많지도 않은 군대 봉급을 모아 휴가 나올 때 디지털 카메라나 씨암탉을 사오던 그 착하디착한 아이들이 비명횡사한 것도 원통한데, 그들이 불명예스럽게도 이른바 ‘언어폭력’을 휘두른 ‘가해자´ 로 지목됐으니 그 기막힌 심정을 누가 다독여줄 수 있겠는가. 내 아들도 군대에 보낸 어미로서 그분들께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며 숨진 여덟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또 공포의 현장에서 살아 남은 병사들의 부모들은 얼마나 애태우고 있을까. 그때 받은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텐데, 최종수사결과 발표장의 증언대에까지 세워진 아이들의 모습을 TV로 보며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한편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김 일병의 부모 마음은 어떠할까. 김 일병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그가 조용하고 평범한 아이였는데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아들을 잘못 키운 죄인이 돼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을 그 처지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분들의 손도 잡아드리고 싶다. 경기도 연천군 중부전선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지난 주말 발생한 사건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어느 쪽 부모의 처지에라도 졸지에 당면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가해자조차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 군대의 상황이라니…. 군대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등을 떠밀다시피 보낸 것이 7개월 전이다. 대학생이 되자 ‘엄마’란 호칭을 ‘어머니’로 바꾸었던 녀석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애써 의젓한 척했다. 나 역시 그애 마음이 약해질까봐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이가 훈련소를 떠난 다음 훈련병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이 터졌지만 극히 예외적인 돌출사건이려니 여겼다. 아들이 배치된 부대가 후방이고 특히 내무반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안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하다. 말로는 항상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하지만 혹시 무슨 문제가 없을까. 그래 지난번 면회 갔을 때 아이 얼굴이 약간 어두워 보였었는데….“엄마 아빠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으면 군종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이 말씀드려라.”했더니 그애 얼굴이 밝아졌었지.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나. 이번 참사의 원인을 두고 일부에서 성추행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이가 후방부대에 있는데도 이러한데 총기사고 위험이 있는 전방부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할까 싶다. 20년 전에도 같은 부대에서 똑같은 참극이 일어났으나 당시 군사정권 아래서 은폐됐었다는 것이 연천 참사 이후 밝혀지고 다른 부대에서도 총기 난사사고가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불행한 사고가 계속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이번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서 효과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병사의 개인적 성격결함에 초점을 맞춘 듯한 군 당국의 최종수사결과 발표는 미진한 느낌을 준다. 서둘러 덮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병영문화를 비롯해 군 내부의 심각한 문제점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모병제든, 지원제든, 복무기간의 축소든,GP 근무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획기적인 인센티브 제공이든 간에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즉각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부터 실행해 가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군대가 자식 보내기 두려운 곳이어야 하는가. 지금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는 물론이고 앞으로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할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을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논설고문 ysi@seoul.co.kr
  • 日강제동원 진상규명 ‘겉핥기’

    日강제동원 진상규명 ‘겉핥기’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작업이 ‘수박 겉 핥기식’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 등의 강제동원 신고내용 대부분이 구체적이지 못한 데다 피해 신고서를 접수한 지방자치단체 등도 인력부족으로 사실여부 확인을 거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전국 250개 지자체에 시달한 ‘강제동원 피해 신고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이달 말까지 만주사변(1931년 9월18일) 이후 태평양전쟁(1945년 8월)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강제 동원돼 군인·군속·노무자·군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 당해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를 신고받아야 한다. ●생존자 드물어… 피해입증 곤란 신고인의 자격은 강제 동원 피해자 본인 또는 피해자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등이며, 신고 접수는 국내의 경우 신고인의 주민등록 거주지 시·군·구 또는 시·도 실무위원회 등이다. 또 6하 원칙에 의해 피해 신고를 접수한 지자체는 피해여부 사실 확인 및 피해자 진술 청취, 자료수집 등을 통해 사실 확인 결과서를 작성해 해당 위원회에 전산 입력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지난 21일까지 본청을 비롯해 23개 도내 전체 시·군청을 통해 모두 1만 6784건의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전국적으로는 15만 6558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피해 신고가 전체 피해규모(정부 등 추산 300만명)에 비해 극히 저조한 데다 신고내용이 대부분 부실해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자체 관계자들은 우려했다. 피해 신고가 저조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해를 당한 지 60년 이상 지나 생존자가 극히 드문 데다 유족 역시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족 등에 의해 대리 신고된 피해내용 대부분이 훈련소 수료증이나 부대원 사진 등 구체적 정황·증거 제시보다는 구전(口傳)에 의존한 것이어서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여기에 접수기관인 대다수 지자체들도 사실확인 등에 손을 놓고 있다. 시·군·구별로 담당공무원이 1명인 데다 그나마 다른 업무와 겸하고 있어 피해신고 접수에만 급급할 뿐 피해자에 대한 현장 자료수집이나 피해여부 확인 작업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자 보상 검토 이재영(51) 경산시 시정담당은 “직원 1명이 15개 읍·면·동지역에서 접수된 580여건에 대한 피해사실 현장조사를 벌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관심도 낮아 진상규명 관련 업무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현재와 같은 신고·접수 방식으로는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일정한 보상책 마련과 함께 지자체에 한시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진상 규명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지자체들의 관련 인력 충원 등을 위해 4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신고자에 대한 보상문제는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구타 두려워” 휴가나온 일병 자살

    부대내 총기 난사 사건으로 전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휴가 나온 군인이 부대내 구타가 두려워 귀대하지 않다가 자살했으며 훈련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훈련병 2명이 탈영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9일 오후 7시15분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 모 여인숙에서 경기도 양주시 육군 모 부대 소속 김모(21) 일병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주인 윤모(83)씨가 발견했다. 윤씨는 경찰에서 “4일째 묵고 있었던 김씨가 보이지 않아 방에 들어가 보니 벽에 박힌 못에 군화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치아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 13일 3박4일 휴가를 나왔으나 16일 부대로 복귀하지 않은 채 집 근처 여인숙에서 지내왔다. 김 일병이 갖고 있던 수첩에는 “맞는 것이 두렵다. 사람들 앞에서 맞는 게 창피하다.” 등 부대내 구타행위를 암시하는 글이 여러번 써 있었다. 군헌병대는 김 일병이 부대내 구타행위가 두려워 복귀하지 않고 고민하다 자살한 것으로 보고 부대원들을 상대로 가혹행위 여부와 자살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부산 사상경찰서는 20일 오전 2시 10분쯤 부산 사상구 감전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남 창원시 육군 모 부대 신병훈련소에서 탈영한 훈련병 김모(19)씨와 또 다른 김모(20)씨 등 2명을 붙잡아 헌병대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김 훈련병 등은 지난 16일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내무반 동기들로 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김 훈련병 등은 경찰에서 “훈련소에 들어온 뒤로는 여자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고 군 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어 탈영하게 됐다.”고 진술했다.부산 김정한·청주 이천열기자 jhkim@seoul.co.kr
  • 金일병은 게임광이었다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총기 난사사고를 저지른 김동민 일병이 입대 전부터 컴퓨터 게임에 푹 빠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과의 연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일병에 대한 합동조사를 담당한 육군본부 인사관리처장 박철수 준장은 20일 “김 일병이 게임을 매우 좋아했다고 동료들이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게임이 이번 사고와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평소 김 일병은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게임을 즐겨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함께 지난 19일 사고 현장을 다녀온 군의 한 관계자는 “참혹한 현장의 모습이 흡사 살인장면이 담긴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했다.”고 털어놨다.신병훈련소에서 5주간 혹독한 신체훈련과 정신수양을 하고 북한군과 마주한 최전방 GP에서 근무중인 병사가 전우들을 끔찍하게 살인한 장면이 마치 컴퓨터 게임 속의 한 장면 같았다는 것이다. 결국 평소 게임을 즐겨오던 그가 휴식시간에도 주로 혼자서 PC게임을 하는 등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 바람에 사실상 ‘왕따’가 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평소에는 폐쇄적이고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을 보이다가도 동기에게는 범행 계획을 사전에 밝히는 대범함을 보이는 등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그는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처음에는 떨면서 진술했으나 나중에는 차분히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거침없이 담담하게 밝혀 조사반원들을 매우 놀라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기수 1000기 돌파 해병전우회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전국의 시·군·면을 가면 어디서나 해병전우회 사무실을 볼 수 있다. 컨테이너로 된 어설픈 건물이지만 타 군 출신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전우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 무슨 비결이 있기에 젊은 날 잠시 군문에서 맺은 인연이 ‘사회’에서까지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일까. 해병 기수 1000기 돌파를 맞아 해병 출신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신화’를 파헤쳐 본다. ●전국 231개 지부… 봉사단체로 맹활약 서울에 있는 해병전우회중앙회 산하에는 16개 광역 시·도별로 연합회가 형성돼 있으며 각 시·군·구에는 231개의 해병전우회 지부가 자생적으로 생겨나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도 60개의 지부가 있다. 해병 전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들 전우회 및 직장·학교 등 그룹별로 구성돼 있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친목단체는 물론 사회봉사단체로서도 존재 이유를 밝힌다. 지부별로 야간 방범순찰은 기본이고 응급구조대·기동봉사대·환경봉사대 등을 편성해 활동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기능의 편차를 보여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해양사고 인명구조를, 산악지역에서는 등반사고 구조 등에 주력한다. 이들은 군대에서 익힌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전문가 못지않은 활동을 펴고 있다. 야간순찰 시에도 해병대 출신은 범법자에게 경찰 못지않은 위압감을 주기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다. 이들이 공식활동을 할 때의 복장은 해병의 상징인 빨간 명찰과 팔각모, 얼룩 무늬의 위장복 등 현역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해병 출신들은 아직도 군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 회원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불가사의한 단결력 전우회의 일이라면 자다 일어나서라도 달려가는 것이 이들의 생리다. 너무 단합이 잘 돼 호남향우회, 고려대동문회와 더불어 잘 뭉치는 3대 집단으로 회자된다. 여느 친목회들이 상부상조를 통해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있는 데 비해, 해병전우회는 이익이나 반대급부에 상관없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돌쇠형’에 가깝다. 군대 시절부터 익히고, 제대해서도 선배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이 이런 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요즘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 아직도 이런 구시대형(?) 결합이 가능할까. ●지옥훈련 속 고도의 동질감 형성 우선 해병의 단일화된 기수체계를 들 수 있다. 훈련소별로 기수가 다른 육군과 달리 해병대는 하나의 훈련소에서 배출된 단일기수여서 일체감이 형성된다. 생면부지의 해병 출신이라도 만나자마자 기수부터 확인하고, 긴 말이 필요없이 금방 선·후배 사이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해병전우회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최고참은 80∼85기(대략 65∼70세), 아래로는 900기(25∼27세) 밑으로까지 내려가나 기수가 ‘나이의 골’을 메운다. 이채로운 것은 기수체계가 다른 장교나 하사관 출신도 전우회에서는 입대연도에 따라 사병 기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전관예우를 못 받는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어차피 ‘해병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마당이기에 이런 사정은 중시되지 않는다. 해병을 뭉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통에서 오는 자부심이다. 해병이 6·25전쟁이나 월남전 등에서 만들어낸 신화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전통은 해병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작용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짬밥’ 출신이든 기술병 출신이든 누구나 ‘귀신 잡은 해병’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해병 출신들의 유난스럽기까지 한 단결력에 대해 ‘논리가 필요없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훈련받을 때부터 ‘해병은 하나다.’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해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형제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정기인(64·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엄청난 기합과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타 집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권 및 정치와는 거리 멀어 특이한 점은 해병전우회가 사회단체로서의 적지 않은 영향력에 비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전우회가 만들어진 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이권에 개입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 해병 출신들이 다소 ‘폼’을 잡는 경향이 있음을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권오현(權五顯·50) 김포해병전우회장은 “해병 출신들은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데다, 해병의 명예를 실추했을 때 매장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우회 간부직함 등을 무기삼아 지방의원 등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예 내부 정관으로 회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전우회도 많으며, 선거 때는 중앙회 차원에서 선거 개입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려보낸다. 또한 단체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우회 사무실 운영비를 다른 곳의 특별한 지원없이 대체로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수도권지역 한 해병전우회는 수년 전 회원들이 야간순찰 도중 술집에서 술을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상자들을 징계했다. 이 단체 간부는 “말썽의 싹을 자르기 위한 차원”이라며 “해병대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명예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이 거름이 돼 해병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 한때 ‘개병대’로 불리며 취직과 결혼조차 잘 안되던 것은 이미 전설이 된 지 오래고, 지금은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가고 싶은 군대’로 꼽히는 등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노병은 사라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성금(李成金·64) 해병전우회 서울연합회장은 오전 9시면 출근, 연합회 일을 보는가 하면 저녁이면 전우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 바쁘기만 하다. 이 회장은 “죽는 날까지 전우회 일을 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해병 출신이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해병이 수행하는 상륙작전 등은 뭉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임무적 특성에다 단결을 중시하는 해병의 전통이 오늘의 해병정신을 만들었다. ▶요즘 주안점을 두는 활동은. -지난 4월부터 주말이면 연합회 회원 60여명이 한강시민공원에서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또 다음달 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서울 여의도부터 춘천까지 한강청결 캠페인을 벌이는 등 환경정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군에서 대형 총기사고가 발생했는데. -군기가 빠질수록 사고가 많이 생긴다. 해병전우회에서는 60세를 넘겨도 선후배 관계가 분명하다. 요즘은 내 자식만을 위하는 가정교육부터 잘못된 것 같다. ▶향후 활동 방안은. -육·해·공군 가운데 유일하게 해병대만 전용회관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는데 전우들과 힘을 합해 건립하도록 노력하겠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1995년 12월30일. 이듬해 1월로 예정된 입대를 앞두고 대학생활과 입대 전의 생활을 정리하고 있던 중,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발랄하고 귀여운 그녀를 만나게 됐다. 입대하기 전이라 그녀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했으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입대 일주일전 그녀의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 그러나…”라는 말에 가슴이 쓰라려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잠 한숨 못 자고 고민하던 난 훈련소로 따라와준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고 그리워졌다. 입대 뒤, 편지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그녀는 나와 4시간을 함께 있고자 10시간을 투자해 강원도 양구까지 몇차례나 면회오는 등 나의 군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렇게 2년 2개월의 기다림과 사랑의 시간이 흘러갔다. 복학 뒤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거의 캠퍼스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 그녀의 대학원 입학과 나의 바쁜 회사생활로 서로가 지쳤던 탓인지 2002년 7년 동안 키워온 사랑에 위기가 왔고, 소중한 시간들이 묻혀버리는 듯했다. 결국 참기 힘든 2년간의 이별의 시간. 무수한 고민과 많은 아픔 끝에 결국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별 전의 열정어린 사랑보다는 진한 정과 서로의 깊은 마음을 느끼며, 자신의 발전보다는 상대방의 발전을 기원했다. 또한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길커피를 즐기며, 외모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며 서로를 감싸안게 됐다. 만난 지 정확히 9년이 되는 2004년 12월30일 “만난지 3287일 기념 파티하자.”고 불러낸 그녀에게 난 추억어린 수십장의 사진과 사진마다의 편지, 그리고 목걸이를 전하며 “나랑 살자. 이쁘게 이쁘게 같이 만들면서 살자.”라는 프로포즈를 날렸다.2005년 6월16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수민이와 대호는 또 하나의 삶, 그리고 하나의 긴 여행. 그리고, 서로의 꿈을 하나로 모아 정진해 나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항로를 그리고자 한다. 꽃다운 대학 1년때 멋모르고 만나 오랜 연애 끝에 시집오게 된 우리 예비 아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신 부모님, 예비 장모님께 무한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랑과, 많은 행복을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오늘이 바로 우리 사랑의 시작임을 알리며….
  • 예비군 동원훈련 참관

    윤규혁 병무청장은 13일 병무행정 시민 참여위원들과 함께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2함대사령부의 동원훈련소집 집행 과정을 참관한 뒤 훈련에 참가한 예비군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 한달 후면 여름방학…우리아이 어딜 보낼까

    한달 후면 여름방학…우리아이 어딜 보낼까

    앞으로 한달쯤 지나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학습 보충과 인성 함양의 기회로 여름방학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캠프다. 캠프는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방학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할 수 있다. 자녀를 캠프에 보낼 의향이 있다면 인기 캠프들은 일찌감치 마감되는 만큼 지금부터 꼼꼼히 살펴서 선택해야 한다. 각종 캠프의 일정과 특징, 캠프 선택 때 주의사항을 살펴본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방학 중 영어캠프는 수백만원씩 들여 해외로 떠나는,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불면서 기존 업체는 물론 지자체와 대학들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영어캠프를 마련하고 있다. 기간과 가격이 천차만별인 만큼 자녀의 수준과 비용을 고려해 꼼꼼히 따져서 골라야 한다. 올 여름 예정된 각종 영어캠프의 특징과 장·단점을 따져본다. ●외국 대사관 후원받아 문화체험도 가능 가장 저렴하면서도 믿을 만한 것은 각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영어캠프다. 대부분 국내 영어체험마을 등에서 1∼3주씩 진행되는 이들 영어캠프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다른 캠프와 달리,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거의 실비 수준만 받으면서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서울·경기·충남·강원도청과 서울·인천·부산 교육청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기본적으로 지역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고 지원자가 넘치면 시험·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비용이 싸다는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의 ‘Power-up 영어캠프’는 2주 동안 식비 5만원만 내면 된다. 강원 영어체험캠프는 4박5일에 4만 8000원, 부산시교육청의 영어캠프는 3주에 25만원이다. 충남 영어캠프는 도에서 1인당 150만원씩 지원해 3주에 50만원, 저소득층 자녀는 무료다. 경기영어문화원의 4주 집중 프로그램도 135만원으로 저렴한 편.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24시간 영어만 쓰면서, 요리·공작·방송·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엄선된 외국인 강사로부터 영어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다. 환경도 최대한 현지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교육청 주관 프로그램은 어학능력이 뛰어난 일선 영어교사들이 참여해,24시간 영어로 생활지도까지 철처히 해준다. 구청 주관 캠프도 많다. 서울 강남구의 ‘영어논술 서머스쿨’에서는 미국 스탠퍼드대 영재교육원 교사들로부터 수준 높은 영작문을 배울 수 있다.17일에 280만원으로 다소 비싸다. 국내 영어캠프들은 모두 인원이 한정돼 있어 신청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주관 캠프는 벌써 마감이 임박했다. 경기영어캠프는 10일 마감한다. 아무래도 국내 캠프이기 때문에 외국 문화 체험은 조금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외국 대사관 후원을 받아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마련하는 등 보완책을 갖추고 있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구청 단위의 캠프는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것도 많으니 해당 구청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대학·사설업체 주관 캠프 최근 대학이 주관하는 국내 영어캠프도 크게 늘었다. 이들 캠프는 기숙사 등 대학의 시설과 교수 요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크게 비싸지 않고 프로그램도 알찬 편이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남서울대의 초·중 영어캠프는 천안에 있는 외국어연수원의 외국인 교수진이 강사로 나선다.4주에 135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며, 영어만 사용하고 주니어 토익 강의도 있다. 오는 13일부터 선착순으로 마감한다. 홍익대, 계명대 등이 개설한 2∼3주짜리 캠프도 대부분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 기타 사설 어학원·유학원 등에서 개최하는 영어캠프는 종류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예전에는 해외 캠프 일색이었지만 요즘은 국내 캠프도 많다. 미국·캐나다 등 영어를 쓰는 국가의 해외 캠프는 참가비가 300만∼500만원선이며 그보다 비싼 캠프도 있다. 시기와 장소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체험캠프 어떤게 있나 여름방학을 이용해 야외에서 산교육을 하는 각종 체험캠프도 많다. 과학·수학·역사 등 관심있는 분야의 캠프를 골라 가볼 만하다. 영어캠프 다음으로 많은 것이 과학·자연체험 캠프다. 중미산천문대가 주관하는 천문과학캠프, 스페이스스쿨의 NASA 우주비행사캠프, 파랑새열린학교의 에디슨 과학실험캠프는 초·중학생의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물자연학교의 여름계절학교, 환경교육센터의 푸름이 국토환경 대탐사는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환경의 소중함을 생각해 볼 기회다. 인성·예절캠프도 다양하다. 수년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청학동 체험 예절교육캠프도 있고 각종 인성함양 프로그램이 나왔다. 평소 소극적·내성적인 아이라면 인성스쿨의 자신감키우기 캠프를 권할 만하다. 한국심리교육연구소의 집중력리더십캠프는 집중력과 자신감을 계발하는 심리기술 캠프이며, 한국가족치료연구소의 자아발견캠프는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인 천재성을 계발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색 캠프도 많다. 안산 실미도훈련소에서 해병대 훈련을 받으며 체력과 인내심을 키우는 해병대 리더십 캠프, 발전적인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캠프나라의 한·일 청소년 미래 캠프, 음양오행과 침·뜸의 원리를 배우는 파랑새 열린학교의 한방의학캠프 등이 마련돼 있다.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와 마술 캠프·음악 캠프도 눈에 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캠프 이렇게 고르자 ●캠프의 성격 정확히 파악할 것 캠프가 어떤 주제와 일정으로 진행되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도와주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색다른 체험을 통해 경험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이 핵심. ●아이의 의견을 존중할 것 캠프의 주체는 자녀이므로, 사전에 충분히 상의하고 의견을 존중한다. 억지로 보내거나, 캠프 참가를 조건으로 다른 보상을 제시하는 것은 역효과가 크다. ●주최하는 단체의 신뢰성 따져볼 것 학기 중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인지,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적절한지, 이전 캠프 성과는 어땠는지 따져본다. ●참가비가 합리적인지 검토할 것 교육비가 비싸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 단, 지나치게 싸다면 식사·숙소·안전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도움말 캠프나라(campnara.net), 파랑새열린학교(openschool21.co.kr)
  • ‘훈련병 중대장’ 뽑는다

    신병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이 스스로 내무생활 등 동료들을 통제하는 이른바 ‘자치근무제’가 도입된다. 또 7월부터는 각 부대에 설치된 ‘장병 인권 전문 상담실’에 민간 인권상담관이 처음으로 채용돼 병사들의 인권보장 활동에 나선다. 육군은 지난 1월 육군훈련소에서 발생한 ‘인분사건’에 따른 장병 인권보장과 정예 신병 육성을 위한 대책으로 이같은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30일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훈련소 입소 2∼5주차가 되면 훈련병 중에서 자치 분대장과 소대장, 중대장을 뽑아 훈련병들의 내무생활 및 교육 준비 등을 자율 통제토록 한다. 기존에도 훈련병들이 훈련 교관이나 조교의 단순 보조역할을 맡았지만, 개선안에서는 훈련병들의 자율권이 대폭 확대된다. 이에 따라 중대별로 중·소·분대장이 희망자 및 동료 훈련병들의 추천을 받아 자치요원을 선발한다. 이와 함께 훈련소 입소 1주차 훈련병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훈육요원 1명이 이들과 식사·취침 등 24시간 같이 생활하며 지도하기로 했다. 육군은 장병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지난 4월부터 각 사단급 부대에 설치한 ‘인권 전문 상담실’에 올 7월 민간 상담 인력 7명을 처음으로 채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간 전문인력 활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편 육군은 이같은 개선책을 토대로 31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주재로 국방부는 물론, 국가인권위, 법무부, 국방부, 경찰청 관계자 및 훈련병 부모 등이 참가한 가운데 ‘신병교육 발전 대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교정 대상 수상자]

    ■ 대상수상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 교위 “죄가 미울 뿐이지 마음은 여린 사람들입니다.” 제23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대전교도소 보안과 이정옥(54·여) 교위는 수형자들을 이렇게 표현했다.1971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후 33년 7개월 동안 근무한 이 교위는 여성 재소자들의 교정(矯正)을 담당하고 있다. 항상 온화한 성품으로 재소자들을 대하는 이 교위는 그들의 대모로 통한다. 다른 직업을 마다하고 굳이 교도관의 길을 택한 것은 먼저 교도관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서였다. 올해 여든넷이 된 아버지의 당시 직업은 어린 그에게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대전여고를 졸업했지만 나이가 응시 기준에 미달돼 교도관 시험을 보지 못했다.1년을 기다려 ‘교도(9급)’ 계급장을 달았다. 이 교위가 교도관이 되었던 그해 3월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만 50세로 정년퇴직을 했다. 이 교위는 “처음에는 (재소자들이) 무서워서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자식같고 동생같은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맘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도관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죄를 연결시키면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아 감옥에서 연을 맺은 생면부지의 그들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부모나 가족이 못한 일을 하는 것을 사명이자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살인죄로 복역하다 가석방된 유모(여)씨와의 인연은 동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1986년 교도소에서 만난 유씨는 고향뿐 아니라 나이도 비슷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친 유씨는 무서운 범죄자로 전락하면서 삶을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 교위는 수차례 상담을 하면서 마음을 열게 해 미용기술과 뜨개질을 가르쳤고 청소 담당 책임자의 역할도 맡겼다. 가장 마음을 썼던 것은 그에게 가족의 정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유씨는 목포의 복지가와 자매결연을 한 것이 계기가 돼 1993년 출소 후 결혼도 했다. 유씨가 첫 아이를 낳아 1995년 아이 돌이라며 연락이 와 참석했을 때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교위의 동료들은 그를 천성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출소자 옷을 준비해주지 않던 시절 자비로 옷을 사 주거나 자기 옷을 갖다 주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감자들의 수술비나 치료비도 지원해주는 등의 선행을 베풀어왔다. 이 교위는 “관공서나 복지시설, 독지가 등이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교도복을 벗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머물고 싶다.”면서 “작은 힘이나마 재소자들이 재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본상 ■ 교화상 서홍석 원주교도소 직업훈련교사 91년 원주교도소 제29공공직업 훈련소 직업훈련교사로 임용돼 13년 동안 수용자들의 직업훈련을 담당한 모범 교정 공무원이다. 건축시공산업기사 취득자 5명에게 취업을 알선해 주는 등 출소자 30명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줬다. 또 수용자 108명이 각종 경기대회에서 입상, 총 1억 2000만원을 상금으로 받는 데 도움을 줬다. 2002년에는 봉사단체인 한국기능선수회를 세워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 공로상 최한기 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 중학교 권투부 코치로 활약하다 87년부터 인천소년교도소에 자원해 18년 동안 스포츠를 통해 소년수용자들을 교화해 왔다. 지금까지 55차례에 걸쳐 199명의 수용자들이 각종 아마·프로 권투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지도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슈퍼페더급 챔피언까지 배출해 냈다. 또 기증운동을 벌여 스포츠계 인사 등으로부터 20종에 이르는 1780만원어치의 각종 훈련장비를 받아 소년 수용자들이 효율적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 창의상 구우진 마산교도소 교위 80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4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창의적인 근무 자세로 출소자 취업 알선, 직장 화합 분위기 조성 등에 기여한 바 크다. 83∼86년 4년 동안 의무과에 근무할 때에는 전국에서 집금 수용된 정신·결핵 환자 350명을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85년부터는 출소자 30여명을 마산시 소재 기업체에 취업을 알선해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청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교도관일 뿐만 아니라 팔순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 자애상 신동민 원주교도소 종교위원 10년 가까이 종교활동을 하고 생활지원을 하는 등 수용자 교화활동에 참여했다. 돌볼 사람이 없는 수용자의 자녀를 보호 시설에 연계시켜 주는 일을 해 왔으며, 갈 곳 없는 수용자들이 출소 뒤 쉼터에 머물 수 있도록 지원했다. 95년 10월부터 176차례의 종파교회와 10차례의 영세식을 실시하는 등 수용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신앙지도를 실시해 왔다. 또 10번에 걸쳐 수용자 300여명에게 원주가톨릭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 성실상 김재중 영등포구치소 교위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30년 1개월 동안 장기 근속하면서 불우수용자들의 벌금을 대신 내주거나 그들의 가족을 돌봐 주는 등 교정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88년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김모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197명의 수용자에게 545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했다. 부인과 함께 출소자 선교를 위한 참사랑교회를 세워 출소자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며 재범을 방지하는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자비상 황용주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정읍 일광사 주지로 1986년부터 불교 독지방문위원으로 활동하다 97년 교정위원으로 위촉됐다. 지금까지 매월 3차례 이상 총 818회 14만여명의 종파 집회를 집전하고 수용자 1종교 갖기 운동을 이끌었다. 96년부터 매월 20명씩 총 2830여명을 ‘이달의 불자’로 선정, 상담하고 영치금 등으로 1930만원을 후원했다. 이밖에 수용자 사회체험 및 봉사활동을 후원하고 교화용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수용자 정서순화와 교정교화를 위해 애써 왔다. ■ 면려상 김성봉 목포교도소 교감 75년 교도관으로 임용돼 29년 6개월 동안 장기근속하면서 수용자들의 정신교육기법 개발과 직업훈련 강화에 남다른 신경을 써왔다.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용자에게 양복 기능사 1급 자격증을 받도록 도와 가석방 후 새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1994년에는 문제수 51명을 대상으로 1220여차례 상담을 실시해 이들의 심성 순화를 도왔다.2000년부터 4년 동안 목포교도소 중대장으로 근무할 때는 전 경비교도대원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888명의 유단자를 양성해냈다. ■ 박애상 박상영 경주교도소 종교위원 포항 성결교회 목사로 수용자들의 종교활동을 지원하고 생활용품 제공, 교육실·도서실 보수, 이동도서함 설치, 정보화교육 기자재 기증, 무의탁자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1만 6500여명을 상대로 238차례에 걸쳐 기독교 집회를 주관했으며 39차례 1160명에게 생일행사를 열어 주면서 1500만원어치의 생활필수품 등을 제공했다. 수용자 교육용 TV수리, 방송기자재 교체 등에 필요한 자금 2800여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별상 ■ 면려상 손윤규 공주교도소 교위 1992년 민원실을 교정기관 최초로 은행창구식으로 개조하고 미결수용자 영치금 반환절차를 간소화했다.1999년 불우수용자 가족을 돕는 모임인 ‘나눔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수용자 451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 등 1800여만원어치를 지원했다.2001년 12월 경비교도 후원회를 결성,1134만원을 지원했다. ■ 창의상 정기수 대구교도소 교위 2000년 10월부터 직업훈련담당으로 기능사 등 810명에게 각종 기술자격을 취득하게 했다.2003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재소자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알고 성금을 지원받아 세탁소를 개업하도록 도와 줬다.2004년에는 한 수용자의 벌금 30만원을 자비로 대납하여 조기 출소하도록 도와 줬다. 불우수용자에게 영치금도 지원해 줬다. ■ 교화상 손기운 청송보호감호소 교회사 1986년 출소자 3명의 벌금 55만원을 대납해 줬다.1988년부터 피아노,TV, 도서 등 3560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를 수증하였고 김천소년교도소 재직 때는 한자교재 500여권을 확보해 소년수용자들을 가르쳤다.1991년에는 무연고 수용자를 벽돌공장에 취업시키고 무의탁 수용자를 자매결연자와 연계시켜 주었다. ■ 박애상 이숙경 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동현교회 집사로 수용자 합창단 및 성가대 지도, 기독교 집회 피아노연주 및 성가대 지휘, 수형자 자매결연, 체육대회 지원, 불우수용자 영치금 제공 등 활동을 해 왔다. 지금까지 수형자 184명과 자매결연해 연간 80여차례 총 1614회에 걸쳐 7420여만원어치의 음식 등을 지원했다. ■ 공로상 심재왕 군산교도소 교화위원 16년 가까이 무의탁 수용자의 벌금을 대신 내고 학용품과 교재를 기증하는 등 교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91년부터 매년 10명씩 총 140여명의 불우수용자와 자매결연해 도왔다. 현재 군산교도소 교정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며, 두차례에 걸쳐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자애상 홍승순 울산구치소 종교위원 96년부터 128차례에 걸쳐 3840여명의 수용자에게 천주교 집회를 주관하고,27차례에 걸쳐 405명의 예비신자에게 천주교 교리를 지도했다. 체육대회 주관과 교양도서·서화 및 생활용품 기증 등을 통해 복지향상에 기여해 왔다. 수용자들의 심성을 순화하기 위한 교정 미술공간 조성 사업에도 동참했다. ■ 자비상 윤여진 여주교도소 종교위원 봉림사 주지로 1988년 수원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뒤 93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됐다. 불교종파 교회를 170차례 3만 5000여명에게 실시했다.99년 충남 천안에 장애인·소년소녀 가장·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시설 ‘부처님 마을’을 운영하는 한편 군인과 전경을 위문하는 봉사 활동을 해왔다. ■ 성실상 김동수 여주교도소 교위 1994년부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의 수용시설인 의왕호스피스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불우이웃을 도왔다.2000년 1월 거처할 곳이 없는 불우수형자 3명을 의정부 영농협동조합에 취업시켜 주었다.2001년 이후 의지할 곳 없는 병든 수용자들에게 사회복지시설과 연계시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 [사회플러스] 신병 면회 ‘입대후 70일’부터

    군에 갓 입대한 신병(新兵)들에 대한 가족·친지들과의 면회제도가 개선된다. 국방부는 그동안 입대 100일이 지나야 가능했던 신병들에 대한 면회제도를 개선, 입대 70일이 지나면 면회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군은 1998년부터 ‘신병 군인 만들기’ 차원에서 신병들에게 입대 100일까지는 일체의 면회나 외출·외박을 금지해 왔다. 개선된 면회제도는 6월1일을 기준으로 입대 70일이 지난 신병들부터 적용된다. 또 각군 특성에 맞춰 시행해온 위로휴가나 외출·외박 제도는 현행과 같이 유지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대 배치 전 각 훈련소에서 교육을 수료한 신병들에게 현장 면회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면회객이 없는 신병들의 사기 저하와 가족들의 금전적 부담 등을 고려해 시행치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서울광장] 軍의 고객은 국민이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軍의 고객은 국민이다/김경홍 논설위원

    대다수 국민들은 군에 대한 인식에서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보와 관련해서 군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보나 국방은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 즉 국가나 군의 책임이라는 투다. 국방의 의무만 해도 그렇다. 남의 자식이 군대에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자식이 군대에 가는 것은 뭔가 억울하다는 부모들도 많다. 병역을 마친 남자들은 군대시절 얘기만 나오면 온갖 허풍을 보태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전부 기합을 받았다거나 군기가 셌다는 등 고생한 얘기뿐이다. 듣는 사람은 군은 고생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드러난 훈련소 인분사건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백번 잘했더라도 한번 잘못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이치다. 최근 한 장교는 “군인이 죽으면 전부 의문사”라고 말했다. 사인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도 유족들이 수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사회의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가운데 군에서도 자살 사고자가 연평균 50명에 이른다. 일반이 보기에는 신체건강한 청년이 군대에 갔는데 자살했다면 군당국을 원망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한해에 20∼24세의 일반인 남자의 자살자는 10만명당 15.7명이었다. 같은해 군의 자살자는 43명으로 10만명당 9.8명이다. 군의 자살률이 일반의 자살률보다 훨씬 낮다. 군 관계자는 “군대보다 일반사회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통계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군에서 자살자가 생길 때마다 매도당하는 것을 볼 때 군이 다소간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수치비교만으로는 곤란한 부분도 있다. 군인으로 입대한 청년들은 일단 신체건강했고, 자살 동기에 군대부적응이나 상관이나 동료사병의 가혹행위 등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여건, 장병들의 심리상태를 잘 관찰한다면 일반사회보다 훨씬 더 자살자를 줄일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달 초 취임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육군의 변화를 지시했다고 한다. 김 총장은 “군의 고객은 국민”이라는 전제 아래 대국민 감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라고도 했다. 김 총장이 육군의 CEO로서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겠다는 의도다. 김 총장이 육군의 CEO로서 고객중심의 적극적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변화는 바람직스럽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육군의 개혁과제는 많다. 과학군, 정보화 군으로 변모하자면 조직개편과 인사, 교육시스템 등 전반적인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과제는 군으로서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과제다. 첨단군으로 변모하자면 결국은 병력을 줄이되 첨단장비와 무기체계를 갖추는 길밖에 없다. 병력을 줄이는 것보다는 첨단장비를 갖추는 것이 훨씬 돈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군이 강해지려면 돈이 더 들 수밖에 없고, 돈을 더 얻어내려면 국민들의 군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다. 국민이 고객이라면 고객감동과 고객만족이 필요한 이유다. 육군 혁신기획단이 고객만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군 부적응 병사들의 휴근명령제나, 복무지역 선택지원제, 장애인의 군무원 채용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도입된다면 장병들의 사기나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안보나 국방이 군인들의 몫만은 아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안보가 튼튼한 안보다. 국민들이 군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강군은 존재할 수 없다. 군과 국민들이 서로 감동을 주고받으며 한걸음 더 다가서기를 기대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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