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훈계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팀장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여직원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물 절약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7080 공연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47
  • 서울·광주 “정치적 의도·선거용” 경기·인천등 “통상적 업무” 담담

    감사원의 지방자치단체 일제 감사에 대해 자치단체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대부분 통상적인 업무감사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서울시 등 일부자치단체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고 있다. 특히 1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감사를 받는 서울시의 경우 겉으로는 “통상업무 차원의 감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지어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늘의 감사로 볼 때 청계천복원사업 등 특정분야에 집중되는 것 같지는 않다.”며 “교부금이 내려간 사업 외에도 예산이 쓰인 모든 사업 전반이 감사대상이 되는 통상적인 업무감사”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감사에서 정치적인 의도 등이 드러나면 별도로 대응할 문제”라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부산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다. 부산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평소 자체감사를 강화한 데다 아직 정확한 지침이 전달되지 않아 어떤 분야가 집중감사 대상인지 알 수 없다.”면서도 “산하 기관의 인사문제, 단체장의 비리문제 등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감사원의 수시감사가 너무 잦아 감사준비에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반응을 보였다. 올들어서만 ▲지역경제 활성화 추진대책 ▲산업단지 조성 ▲지방축제 ▲지방채 발행 ▲지방도로 건설 공사집행 등의 분야에 5차례에 걸쳐 감사원 감사가 실시됐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자치단체에 대한 종합감사가 사라지고 분야별 수시 감사가 도입된 이후 감사원의 감사가 너무 잦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전북도 감사관실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어 감사원의 감사 배경 등을 중점 논의하고 6월부터 실시될 감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특히 예산편성 집행, 인허가, 업무추진비, 재해복구계약, 민간단체보조금 현황 등 주요 감사대상 업무에서 지적받지 않도록 부서별로 자체 점검에 들어갔다. 광주시, 전남도는 이번 감사원 감사의 초점을 선거에 두는 분위기다. 많은 공무원들은 민선자치 출범 이후 일선 지자체가 단체장의 선거 캠프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인사문제가 집중 감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직 없이 대기 중인 4급이상 공무원이 3명에 달하는 등 인사의 난맥상은 앞서 행정자치부 종합감사에서도 지적돼 김진선 지사가 경고, 조명수 행정부지사가 훈계조치를 받았다. 도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의 중립과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감사를 실시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밖에도 경기도, 인천시 등 나머지 지자체들도 “정기감사일 뿐이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방선거 1년을 앞둔 시점이라 자칫 단체장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박성철 위원장은 “감사원이 인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국가기관도 아니고 자치단체에 상주 감사를 하겠다는 것은 지방 길들이기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조만간 노조 차원에서 감사거부 등 대응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 정리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교황의 인간관과 걸어온 길 2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84)의 회고록 ‘일어나 갑시다!’(성하은 옮김, 성염 주교황청 한국대사 감수, 경세원)가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이 책에는 카롤 보이틸라(교황의 본명)가 1958년 폴란드 크라코프 대주교의 보좌주교로 임명된 이후부터 1978년 첫 폴란드인 교황으로 선임되기까지 20년 동안을 “회상하고 반성한” 내용이 담겼다. 교황이 자신의 사제생활을 회고한 ‘은사와 신비’(1996년)의 후속편 격인 이 책은 일반적인 회고록처럼 사건 중심이 아니라 주제별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 제목은 성경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온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일어나 가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황은 이 책에서 특히 주교의 역할과 마음자세를 강조한다.“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는 교황은 “주교는 무엇보다 되도록 많은 신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인격 하나하나는 각각 한 권의 책에 해당한다. 나는 늘 이런 확신에 따라 행동했다.”는 교황의 인간관도 전해준다. 교황은 필리핀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야말로 제3000년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1958년 크라코프 주교로 서임됐을 당시의 일화가 실려 있다. 교황은 주교가 된 날 폴란드 리나 강을 카누로 여행하던 중 스테판 비신스키 추기경으로부터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결정을 통보받았다. 추기경을 만나러 바르샤바로 가던 그는 밀가루 부대를 실은 트럭에 몸을 싣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고 회상한다. 교황은 공산당 시잘 폴란드에서 성당 신축 허가를 번복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는 “성직자의 가장 큰 역할 가운데 하나는 훈계이지만 크라코프 시절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성격 때문이었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이 회고록은 폴란드를 제외한 세계독점 배포권을 갖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소유의 몬다도리 출판사에 의해 지난해 5월 처음 출간됐다. 회고록 내용은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사설] 총리·국회의원 누가 더 문제인가

    헌법과 국회법에 의하면 국무총리는 행정 각부 통할자로서 국민대표인 국회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대정부질문에 출석한다. 참여정부는 이에 더해 ‘책임총리제’를 내세운다. 여당 출신 총리를 임명하고 정치권에 공동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헌법에 따르면 국민 앞에 선 것이요, 정치적으로 친정인 국회에 국정 전반을 보고하는 자리다. 하지만 엊그제 끝난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총리는 국회의원을 국민대표로 대접하지 않았다.5선 의원인 이 총리는 총리직에 오른 출발점이자, 다시 돌아올 국회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듯한 언행을 했다. 그에게는 “의원들과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그득했다. 면박과 호통, 자신이 한 수 위라는 훈계조 발언이 잇따랐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총리가 너무 한다.”는 반응이 나오겠는가. 능멸을 당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의원들도 문제다. 사전준비가 미흡한 데다 지역구를 의식한 기록용 질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20∼30명이 본회의장을 지키다 보니 총리가 국회를 깔봐도 즉석에서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이대로 두면 국회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정치불신은 커간다. 총리와 의원들이 우선 반성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할 것이다. 대정부질문은 순수대통령제에서는 없으며, 우리가 이를 채택한 것은 다소 기형적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보가 통제됨으로써 대정부질문의 효용가치가 컸다. 지금은 다르다. 답변 내용이 뉴스가 되지 못하므로 문답 행태가 이슈가 된다. 일괄 질문·답변을 일문일답식으로 바꾼 배경이다. 이제 일문일답 방식도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루 10명씩 40여명이 나서서야 심도 있는 문답이 될 수 없고, 행정부의 전문가에게 밀린다. 당 대표나 정책위의장, 분야별 대표주자가 나서 주요 정책을 추궁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자. 당 차원에서 준비가 필요하므로 임시국회 때마다 하지 말고 정기국회 등으로 횟수를 줄이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다.
  • [안동환기자의 현장+] 오빠부대와 함께 한 3일

    [안동환기자의 현장+] 오빠부대와 함께 한 3일

    “댁 같으면 이 추위에 저러고 있는 애들이 이해가 되슈? 내 딸 같으면 당장이라도….” 서울 청담동의 주택가. 소녀팬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록그룹 ‘더 트랙스’의 숙소 앞에는 10대들이 진을 치고 있다. 길건너 슈퍼의 50대 주인은 “애들 덕분에 매상은 많이 오른다.”면서도 머리를 흔들었다. 이른바 ‘빠순이’로 불리는 아이들이다. 스타의 공연장에서 열광하던 1980년대 ‘오빠부대’도 어른들에게는 철없는 아이들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과 연예기획사, 숙소를 전전하며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면 오빠부대의 ‘충성심’은 턱없이 뒤진다. 하기는 오빠의 ‘빠’에 젊은 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어미 ‘순이’가 합쳐진 이름부터가 오빠부대보다는 점잖지 못하다. 이처럼 문제아나 불량소녀 같은 이미지를 지닌 이들은 누구인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기자는 아이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사흘 동안 쫓아 다녔다. ■ 양말 4켤레 껴신고 밤샘도 즐거워 지난 3일 오전 1시 청담동에서 만난 트랙스의 팬 효선(18·가명)이는 숙소 현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골목길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 낮에는 기획사 사무실과 미용실, 저녁에는 방송국을 찾아 나선다. 효선이의 일상은 트랙스의 동선과 일치한다. 트랙스의 모든 스케줄은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효선이의 일상은 스타의 동선과 일치 효선이는 가수의 사생활을 좇는 ‘사생파’와 공개방송만 따라다니는 ‘공방파’의 종합판이다. 그는 사흘째 영하의 밤공기에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담요 한 장으로 막아내고 있다.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별 것 아니라는 반응이다. 현관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효선이는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한다. 금방이라도 ‘오빠들’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녀석의 얼굴은 빨갛게 텄고 입술도 갈라졌다. 이 골목에서 어른들은 반갑지 않은 존재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훈계만 하려 드는 존재로 인식된다. 처음엔 기자를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던 효선이는 슈퍼에서 구해온 라면 박스와 뜨거운 녹차를 건네자 경계심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친구집에 있다고 말했어요.TV에서 오빠들을 보는 것으론 부족해요. 오빠들 얼굴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에요.”효선이는 작정한 듯 말을 이어 갔다.“어른들 시선이 불편하지만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축구나 야구를 보며 열광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효선이는 지난 1일 포항 집에서 가출 아닌 가출을 감행했다. 오빠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3이 되는 효선은 부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눈치다.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라지만 대학으로 가는 길은 트랙스 오빠들을 만나는 길보다 더 험난하게 느끼는 듯했다. 이날 함께 밤을 새운 아이들은 5명. 담요를 두른 채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화제는 당연히 멤버들. 가족 관계부터 키, 몸무게, 성격, 말투, 좋아하는 음식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아이들은 밤샘 경험을 ‘숙소 후기’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또래집단에서는 남이 모르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있거나, 스타와 말 한 마디라도 나눠본 경험이 있는 것 만으로도 ‘권력’이 된다. ●“어른들 축구 좋아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들도 스타를 영원한 존재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지금 이 순간 만족해. 하지만 꿈은 엄연히 있어. 좀 더 나이를 먹거나 남자친구가 생기면 오빠들을 잊게 될지도 모르지.”효선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은 “난 아니야.”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감하는 표정이다. 보통 40∼50명이 몰려들지만 추운 날에는 ‘출석률’이 낮다. 개학을 하면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30분 간격으로 경찰차가 무심한 듯 골목을 순찰한다. 오히려 소녀들 틈에 끼어 앉은 기자를 의심쩍게 살펴보곤 했다. 밤샘에도 노하우가 있다.20일 연속 밤을 새운 적이 있다는 윤아(15·가명)의 비법.“다 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안고 있으면 춥지 않아요. 편의점에 가면 뜨거운 물은 공짜로 얻을 수 있거든요. 많이 껴입어야 해요. 양말과 스타킹까지 보통 4켤레는 신지요. 담요는 필수죠.” 윤아의 말대로 더운 물을 담은 페트병을 안고 있었더니 몸이 따뜻해진다. 새벽이 되자 아이들은 골목길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효선이는 “우리 때문에 오빠들이 욕을 먹을까봐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6시20분 가까운 PC방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아이들은 총총히 오빠들이 머리를 단장하는 인근 미용실로 향한다. 이날 서울 강서구 88체육관의 공개방송 현장. 전날 일산의 야외 공개방송에서 만난 민지(15·가명)와 이슬(15·가명)이는 5시간이나 남았지만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가수 휘성의 팬클럽 회원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두 사람은 휘성의 데뷔 998일째인 지난달 19일 처음 만났다. 스타의 데뷔일이 이들에게는 기념일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린 그런 꿈 안꿔요. 음악이 좋은 것뿐 얼굴도 안되고, 목소리도 안되잖아요.”요리를 좋아하는 민지의 장래 희망은 푸드스타일리스트, 슬이는 코디네이터이다. 슬이는 휘성과 친구처럼 통화하는 코디의 모습을 본 뒤 유치원 교사에서 꿈을 바꾸었다. ●스타만 좇는 게 아니라 미래도 준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미(13·가명)는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거든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경미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수만 쫓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아이들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교 때부터 기획사의 공식 팬클럽 임원으로 활동해 온 대학생 박모(23·여)씨도 기성세대의 시선에 불만이다. 박씨는 “대책없는 아이들로 보는 건 억울하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팬클럽은 더 이상 무대 밑에서 스타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팬클럽은 직접 콘서트를 기획하고 헌정 앨범을 제작하는 등 대중문화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의 팬클럽이란 아이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체감케 하는 인생의 한 무대 장치는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졸업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痛)이라면 더욱 다행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스타를 따르는 순수한 아이들을 상업적 측면에서 조직화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심화된다면 성장통은 고질병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여전히 남았다. sunstory@seoul.co.kr ■ 국내 팬클럽 어떻게 변했나 국내 팬클럽은 1980년대 초반 가수 조용필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용필 오빠”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소녀팬들은 이제 40대 어머니가 됐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1960년대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공연에 열광했던 세대의 딸이 1980년대 조용필의 팬이 됐고, 그들의 딸이 다시 요즘의 10대가 된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팬클럽이 용인되고 있는 데는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용필에 앞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남진과 나훈아가 있었다. 하지만 팬들의 열광은 가요계의 스타 등장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현상에 머물렀다. 클리프 리처드 공연때 오빠부대가 장안의 화제를 모은 것은 폭발력있는 슈퍼스타를 가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서태지의 팬클럽은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컬트화’라는 현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하이텔 등 컴퓨터 통신이 활발해지면서 통신을 통한 팬의 결집 현상도 처음 나타났다. 서태지 팬클럽은 스타가 사라져도 지속되는 특징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연예기획사가 주도하는 이른바 스타 시스템이 본격화하면서 조직화된 팬클럽이 등장한다. 기획사가 스타와 팬을 동시에 띄우면서 10대팬들을 가리키는 ‘빠순이’이라는 부정적 용어도 나타났다.H.O.T,SES, 젝스키스 등 아이돌 가수의 팬클럽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또래집단으로 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의 팬클럽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층 더 능동적이다. 기획사와 대립하기도 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하지만 팬클럽과 기획사의 대립조차 내부적으로는 ‘기획사의 기획’일 때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팬클럽의 구성원은 순수하다고해도 팬클럽 자체는 고도의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sunstory@seoul.co.kr
  • [내 인생의 등대] 정영섭 광진구청장

    [내 인생의 등대] 정영섭 광진구청장

    구청장직을 9번이나 수행하고 있는 ‘직업이 구청장’인 정영섭 서울 광진구청장은 “기관장의 최고 평점은 60점”이라고 역설한다. 평점이 50점이하여도 문제이지만 60점 이상이면 허명일 가능성이 높으니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흔히들 성격이 좋은 사람을 가리켜 ‘무골호인’ 또는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쁜 말은 아니지만 한번 더 새겨보면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 또는 ‘일의 맺고 끊음이 없이 두루뭉실 넘어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 청장이 말하는 최고점수 60점은 공직자는 이러한 평가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훈계인 셈이다. 기관장이나 어떤 부서의 책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바쁘게 마련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밀려오고 때로는 급한 일, 힘들고 어려운 일, 국가와 국민의 공익을 위해 희생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너도 좋고 나도 좋고’‘그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밀고 나가야 할 일, 욕을 먹고 불평을 듣더라도 결단을 내려야 할 일,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중단없이 성사시켜야 할 일이 많게 마련이다. 지도력과 통솔력을 발휘해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기관장의 책무다. 이런 연유로 기관장이 평가를 무서워하고 눈치행정으로 60점이 넘는 평점을 받으면 이미 무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후배 공무원들을 훈계한다.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옥불탁불성기 신불학부지도). 그는 오랫동안 지역행정을 책임지면서 이 문구를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다. 옥도 갈고 닦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는 “지도자는 부단히 지도력과 통솔력을 배우고 익혀 실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륜이 묻어나는 그의 공직관에서 거짓을 찾을 수 없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서울광장] 정책 유연성이 돈을 번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책 유연성이 돈을 번다/육철수 논설위원

    정책은 일관성도 좋지만 유연성은 더 중요하다. 한 시대에 최선으로 여겼던 정책이 수십년 뒤 골칫덩어리로 바뀌는 것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탓이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1960∼70년대에 정부는 밤나무 등 유실수 심기를 권장했다. 그게 지금 어떻게 돼 있나. 밤나무는 처치가 곤란한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소득이 오르면 국민의 입맛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검토가 없었던 탓이다. 가족계획은 타이밍을 놓치긴 했어도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인구 증가를 막으려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다가, 언제부턴가 딸·아들 구별말고 하나만 낳자고 했는가 하면, 지금은 셋이라도 좋으니 많이 낳으라고 등쌀댄다. 하지만 시류를 따랐다는 측면에서 정책의 유연성은 평가할 만하다. 근자에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보전의 첨예하고도 지루한 논리대결도 따지고 보면 시대 변화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방사성폐기장(방폐장) 건설사업, 새만금사업, 고속철도사업 등 굵직굵직한 국책사업들은 하나같이 환경보전의 덫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개발의 가치보다 환경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는데도 일관성을 고집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사업마다 환경가치를 보완하면서 추진했더라면 장기 표류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 바람에 나라 곳곳에선 뭉칫돈이 술술 새나간다. 보이지는 않지만 사라지는 나라 돈이 너무 아깝다. 연기처럼 날아가는 돈이 하루에 수십억원인지 수백억원인지 모르는 판에 내 주머니 돈이 아니라고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방폐장은 1986년 경북 영덕을 필두로 최근 전북 부안에 이르기까지 19년간 후보지를 5군데나 선정했다가 불발됐다. 담당 공무원들은 그동안 광고·홍보비로 쓴 국고만 수천억원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희망이 안 보이니 딱한 노릇이다. 부존자원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라에서 원전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지역주민을 제대로 설득해왔는가. 술 사주고 밥 사줘서 선심이나 얻으려 했고 지역발전기금 3000억원 앞세워 훈계조로 나서는데, 어느 주민이 얼씨구나 좋다 하고 받아주겠는가. 새만금사업은 어떤가.14년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2조 2000억원을 쓸어부어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루만 공사를 못해도 3억원씩 손실이 난다는 중요한 사업을 농림부는 아직 용도지정조차 못 했다니 기가 찬다. 법원이 정부와 환경단체에 조정권고를 내렸는데, 권고 수용이 무산됐으니 다음달 1심 판결에 이어 2·3심까지 가야 할 판이다. 환경전문가들과 깊이 상의해서 일을 진척시켰더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역시 정책의 유연성 결여가 일을 그르쳐 놓은 사례다. 경부고속철도의 경남 천성산 터널 공사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난해 8월 중단됐던 공사는 11월 말 재개됐지만 대법원에 재항고된 상황이어서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사가 지연되면 하루 손실이 70억원이고 완공이 1년 늦어지면 2조원이 더 든다는데, 잠시라도 지체하면 이 또한 국고손실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수년∼십수년 전부터 추진된 국책사업이 주춤거려서도 안 되겠지만 환경의 시대적 가치를 외면할 순 없다. 나라의 빚이 240조원에 이르고 정부가 재정이 부족해 국민의 미래를 보장할 연금에서 수조원을 빌려쓰는 마당이다. 사회·경제적 비용을 허비할 만큼 나라에 돈이 남아도는 것은 아닐 터이다. 국익과 공익을 위한 결단은 빠를수록 좋으나 합리적이어야 국부(國富)유실을 막는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정책입안자들은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문화마당] 행복의 빈곤국가/전경린 소설가

    오하이오에서 2년 동안 살고온 지인을 만났다. 인사차 돌아온 소감을 물었더니 그녀는 한숨을 폭 쉰 뒤 대답했다. “여긴 정말, 전쟁통 맞아요.” 그 말을 듣자 신문에서 보았던 사진 두 장이 불쑥 떠올랐다. 야윈 겨울 햇빛이 비치는 한낮에 녹슨 철로를 베고 침목 위에 웅크려 누운 어린 소녀와 평양 공원 바닥에 쓰러져 방치된 소년의 사진이었는데 둘다 11살 전후로 보였다. 언제부터 떠돌았는지 색깔을 알 수 없게 옷은 해지고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작은 뺨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엔 흙더께가 앉았다. 북한의 꽃제비라는 제목이었다. “여기서 40년을 살고 그곳에 갔을 때, 적응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겨우 2년 살고 돌아왔는데, 이곳에선 6개월이 지나도록 심각한 부적응증을 겪고 있답니다. 하루하루가 아귀다툼이고 감시라도 당하듯 매사에 눈치를 봐야 해요. 그리고 빈틈없이 시야를 막고 선 시멘트 건물들, 온갖 구조물들이 너무 공격적이에요. 여기 비하면 오하이오는 초록의 천국이죠. 길을 나서도, 말하는 거나 옷 입은 거며 행동하는 데에 긴장이나 얽매임이 없어요. 더구나 이탈리아로 넘어가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애정을 나누는 연인들의 티없는 모습에서 존재적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죠. 우린 야유하고 눈살 찌푸리고 심지어 떼어놓고 훈계까지 하잖아요. 매사 너무 많은 감정을 안 보는데서 폐쇄적으로 억눌린 채 처리해야 하니, 행동과 욕망과 인격이 다중화되고 돈 자랑만 하게 되고…. 국민소득과 상관없이 우린 행복지수 극빈곤국일 거예요.” 그러자 나의 일상적인 감정이 혐오에 가까운 불안감인 것도 납득이 되었다. “실제로 세계 유일의 휴전국이잖아요.” “곧 없어진다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주제를 가져온 나라이기도 하죠.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혼외정사를 개인프라이버시가 아니라 공공의 범죄로 규정하는 나라일걸요.” “그런 것들이 우리 일상생활을 엄청나게 왜곡하고 있는데도 근본 이유는 망각되고, 결코 습관이 될 수 없는 불안과 부자유와 기만과 혼란만 심화되죠.”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가 동시에 내뱉었다. “우리 아이들은 더 안됐어요!” “당장 청년 실업도 큰 문제지만, 지금 10대들이 자라면 경제 인구 1인당 노인 4∼5명을 세금으로 부양해야 하는 노령국가가 된다잖아요. 한 국가가 그런 착취구조를 가지다니…. 엄마들이 아이들 피난시키듯 외국 보내고 가능하면 돌아오지 않고 정착해 살기를 비는 마음이 이해도 되고 밉기도 해요.” “아이 못 내보내는 우리는 그 아이들이 늙은 엄마 아빠 잊지 않고 모셔가기만을 바랄 수밖에요.” 농담 반 진담 반 끝에 다시 한번 절망적인 북한 사진 두 장이 떠올랐다. 휴전이 임시방편이니 그 위에서는 무슨 방법을 써도, 어떻게 살아도, 임시적이고 불구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한 현실에 너무 오래 휘둘리느라 불행의 근본 원인인 자기고통을 다들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공통으로 가진 문제와 고통들을 정직하게 수긍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갖게 되면 바르게 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막연한 불행 의식도 한결 덜할 것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휴전국에서도 우리 모두의 삶은 소중하다는 진실이다. 전경린 소설가
  • 국내 첫 교사역할훈련프로 소개 김원석 교수

    국내 첫 교사역할훈련프로 소개 김원석 교수

    ‘담·탱·이’요즘 10대들이 담임선생님을 낮춰 부르는 은어다. 담탱이 뒤에는 ‘짜증나.’,‘재수없어.’등 부정적인 서술어가 붙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버릇이 고약한 문제아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교사의 무엇이 학생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드는 것일까?협성대 김원석 교수는 교사 역할훈련 프로그램인 TET(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에 그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오는 27일 우리나라에 처음 TET를 소개하는 김 교수를 만나 TET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누구보다 더 애를 쓰는 A교사. 그가 수학 성적이 크게 떨어진 학생 B군에게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고 가정하자.A교사는 학생들의 성적을 꼼꼼히 점검해 주는 성실한 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B군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제를 좀처럼 풀지 못하고 끙끙거린다. 이 때 A교사는 B군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협성대 경영대학 김원석(46) 교수는 보통 교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B군에게 건네는 말의 유형은 크게 1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딴청 부리지 말고 어서 문제나 풀어.(명령·지시)▲좋은 성적 받으려면 문제 열심히 푸는게 좋을거다.(경고·윽박지르기)▲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 개인적인 문제를 학교에서 고민하면 못써.(교화·설교)▲잘 생각하면서 천천히 풀어 보렴.(충고·제안)▲시계 좀 봐라. 집에 가야할 시간이 훨씬 넘었다. 어서 풀어라.(훈계·가르치기)▲마냥 게으름만 피우는 사람을 대체 어디다 써 먹겠니.(판단·비판)▲그렇게 늑장을 부리니까 성적이 떨어지지.(비난·정형화하기)▲너 문제 안 풀고 도망갈 궁리하지.(분석·진단)▲넌 잘 할 수 있어. 문제 금방 풀거라고 믿는다.(칭찬·긍정적 평가)▲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니까 못 푼다고 부담갖지는 마.(위로·지지)▲문제가 그렇게 어렵니?모르면 물어봐야할 것 아니야.(질문·심문)▲이 문제가 어려우면 좀더 쉬운 문제를 풀어볼까?(비위맞추기, 주의환기시키기) ●교사입장서 판단·답 제시 하지 말것 김원석 교수는 교사들의 이러한 대화법이 학생들의 입을 막아 버리거나 학생들의 공격 성향을 강화시키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교사들이 TET에서 권하는 세가지 대화 기술만 익혀도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TET에서 권하는 첫번째 대화법은 ‘적극적 경청’이다. 교사 입장에서 학생의 상황을 판단하고 학생들에게 답을 제시하려들지 말고 먼저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듣기가 상대방의 말에 ‘그래’,‘맞아’,‘그래서?’와 같은 말로 가볍게 응대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경청은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것이다. ●학생이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 먼저 알기 A교사는 학생 B군이 왜 끙끙거리는지 그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 혼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하는지, 집에 늦게 가면 엄마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고 있는지, 정말 문제가 어려워 자책하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감정을 읽으려는 질문을 시도해야 한다.“혼자 남아서 공부하는 게 부끄럽니?”,“수학성적이 떨어져서 속상하니?”,“집에 늦게 가면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되니?”와 같이 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곧 터질 것 같이 공기가 가득찬 풍선처럼 학생의 감정은 고조되었다가 스스로 속내를 털어 놓으면서 풍선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빠진다. 학생의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그 후에 이성적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경우는 감정이 가라앉으면 학생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TET에서 권하는 두번째 말하기 법은 상대방을 타이르거나 나무랄 때 ‘YOU 메시지’를 자제하고 ‘I 메시지’를 사용하라는 것이다.C양이 수업 시간에 ‘딱딱’소리를 내며 껌을 씹는다고 가정하자. 보통 교사들은 이때 “너 때문에 시끄럽잖아. 껌 뱉어.”라고 말한다. 학생의 불량스러운 태도가 거슬려서 그럴 수도 있고 C양의 껌 씹는 소리가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주의를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의 이러한 대화법은 학생의 자존심만 건드릴 뿐이다. ●나무랄때 ‘you’보다 ‘I’를 사용하라. TET에서는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장의 주어를 ‘너(YOU)’로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한다.‘YOU 메시지’는 상대에게 반감을 산다. 이럴 때는 객관적인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껌 씹는 소리 때문에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좀 신경이 쓰인다.”와 같이 ‘껌 씹는 소리가 요란하다.’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한다. TET에서 권하는 또 하나의 대화 기술에는 ‘예방적 I 메세지’가 있다. 과중한 수업과 잡무에 시달리던 D교사. 그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집안의 곤혹스러운 일까지 겹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수업에 들어갔다고 가정하자. 학생 E군이 수업 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는 게 거슬린다.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주의를 주거나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워낙 D교사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자신도 모르게 만화책 읽는 학생에게 분필을 던져버렸다. 이는 학생과 교사 모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건이다. ●예방적 메시지를 사용하라. TET에서는 이럴 때 ‘예방적 I 메시지’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경고하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있으면 상대는 나의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선생님이 오늘은 몸이 좀 아프니까 조용히 해달라.”와 같이 먼저 자신의 상황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이러한 ‘예방적 I 메시지’는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도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학교마다 상담실을 마련해 두고 고민이 있는 학생들은 찾아 와서 상담받을 것을 권한다. 문제가 있는 학생이 상담실에 찾아 오지 않을 때에는 상담실이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나 학생들의 문제는 특별한 시간이나 이례적인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배우고 가르치는 일상 생활에서 발생한다.”면서 “교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학생과 대화를 시도하면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TET(교사역할훈련프로그램) TET는 교사들에게 바람직한 학생지도 방법을 알려 주고 학생과의 갈등을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훈련 프로그램이다. 부모역할 훈련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를 개발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토머스 고든 박사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인관계 모델을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적용해 1966년 처음 시작됐다. 일본에도 80년대 후반 ‘교사학’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돼 해마다 100차례 이상 TET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오는 27일 협성대 김원석 교수에 의해 처음 소개된다.27∼29일 광화문 서울시 교원연합회 3층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초·중·고교 교장·교감, 현직교사, 상담교사, 교육학 전공자, 교대·사대 재학생, 학부모 등이 참가할 수 있다. 참가문의 (02)2202-0511.
  • [안동환기자의 현장+] 총각도사 3인방의 사주카페 손님들

    [안동환기자의 현장+] 총각도사 3인방의 사주카페 손님들

    “자∼지금부터 당신의 인생을 속시원히 까발려 봐. 그렇다고 운수에다 올인하진 말라고.”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사주카페.‘족집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총각도사’3인방의 스타일을 한동안 TV에서 인기를 끌던 ‘우격다짐’식 개그로 풀어 보자면 이럴 것이다. 일기예보가 그러하듯 ‘인생예보’라고 어떻게 딱 맞을 수 있을까. 젊은 도사들은 “사람들이 불황에 잔뜩 움츠린 탓인지 신년운세도 크게 기대를 안하는 눈치”라고 전한다. 2002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건축학도 출신으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김종선(32)씨와 같은 92학번 동문인 이동근(32)씨, 전산학을 전공한 김상현(33)씨가 동업한다. 대학 연합 사주팔자 동아리 ‘구통도가’출신인 이들은 10년 세월 동안 만만찮은 공력을 쌓은 젊은 역술인들이다. 불황이 무섭긴 도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대목이지만 손님은 지난해보다도 많이 줄었다. 서양의 점성술인 타로가 주특기인 동근씨는 외국계 기업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원. 낮에는 넥타이를 매고 해외 바이어의 심리를 읽다가, 저녁이면 도사로 변신한다. 상현씨는 주역과 관상에 특히 밝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던 도중 20대 여성과 상담에 나선 동근씨.“밧줄에 목덜미가 묶인 상을 보니 채무가 있군요.”이씨가 실마리를 던지자 “어쩜. 어쩜”을 연발하며 여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부터는 도사의 존재를 무시하며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술술 풀어낸다.“카드빚을 갚지 못해 상황이 어렵거든요. 올해 금전운이 어떤가요. 혹 횡재수라도 없을까요.” 어떤 대답이 나올까 잔뜩 기대를 걸었지만 동근씨의 대답은 고지식하다 못해 어이없을 지경이다.“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끼세요. 본인이 저질러 놓은 일을 어떻게 운으로 해결하겠습니까.”한바탕 ‘훈계’하고 난 동근씨는 “20대 여성들은 대개 명품을 사다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로또 번호를 맞혀 달라.”고 간절한 표정으로 볼펜을 내미는 황당한 손님도 의외로 많다고 동근씨는 귀띔했다. 이들의 세계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출혈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주카페가 유행하면서 종로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한 집 건너 점보는 카페가 들어선 데다 일반 카페에도 역술인 한둘쯤은 자리잡고 있게 마련이다. 불황을 겪고 있는 동네 ‘철학관’의 역술인들도 시내로 몰려들고 있다. 20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연애운’. 사랑은 불황도 강추위도 이기는 묘약인 셈이다.‘취업운’과 ‘시험운’이 궁금한 취업재수생들은 타로점을 많이 찾는다. 요즘은 공무원 시험 응시생들이 대세를 이룬다. 여성의 고민은 남성보다 좀 더 복잡하다. 혼수 걱정부터 남편의 바람기, 이혼운도 상담거리가 된다. 예전에는 이혼을 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봤지만, 요즘은 이혼을 작정하고 ‘길일’을 알려 달라는 사람이 많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회사와 재계약 여부를 점쳐 달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 손님에게는 혹 나쁜 운을 가졌다고 해도 희망으로 포장해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남편의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적어와 창업운을 묻는 40∼50대 여성도 자취를 감추었다. 경기불황이 깊어지면서 소자본 창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접신(接神)이 돼 ‘꽃몸살’을 앓는다고 호소하는 여성이나, 빙의(憑依)가 되어 귀신을 본다며 범상치 않은 정신세계를 자랑하는 남성은 어느 시절이나 가끔 찾아온다. ‘천기누설’을 밥 먹듯 하는 세 젊은 도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생의 덕목은 요행보다 정직한 노력. 횡재에는 횡액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게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종선씨는 “사주는 넉사(四)에 기둥주(柱)자로 건축학적으로 보면 사람의 일생은 기둥 네개만 올려진 집에 지붕을 얹는 과정”이라면서 “집을 제대로 짓느냐 못 짓느냐는 자신의 노력에 달렸다.”고 단언했다. 왕후장상과 사주가 똑같아도 삶의 결과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총각도사의 점괘는 언제나 “행복은 고난과 역경으로 포장돼 있다.”는 평범한 진리로 귀결된다. 같은 점괘를 두고 1만원의 복채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든, 괜한 돈 버렸다고 후회하든 결국 자신의 몫이라는 얘기다. sunstory@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울산 기초단체, 전공노 중징계 ‘고민’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파업 참여자 징계와 관련해 울산지역 기초자치단체가 행정자치부와 시의 변함없는 강경지침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울산시는 2일 파업참여자 대부분을 단순가담자로 판단해 경징계를 요구한 중·남구에 대해 행자부 지침에 맞게 중징계로 보완해 요구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또 구 자체로 대부분 훈계처리키로 한 북구에 대해서는 자체 징계처리하는 것은 잘못됐으므로 시에 징계 요구를 하라고 촉구했다. 징계를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동구에도 공문을 보내 불법집단행동을 방조하고 국가법질서 확립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돼 시정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며 빨리 징계요구를 하라고 재촉했다. 이에 대해 중·남구는 정부의 방침과 현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고민끝에 결정한 징계요구임을 시가 알면서 원칙을 내세워 200∼300명을 모두 중징계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북·동구의 입장에도 변화가 없다. 한편 경기도는 이날 전공노 파업에 참가한 공무원 96명가운데 9명을 파면,45명을 해임 징계하기로 결정했다.37명은 정직 처분했으며 5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유보했다. 시·군별 해임 및 파면 징계자(54명)는 ▲도 2명 ▲수원시 6명 ▲고양시 8명 ▲부천시 5명 ▲안산시 6명 ▲평택시 2명 ▲광명시 1명 ▲시흥시 3명 ▲군포시 1명 ▲화성시 2명 ▲포천시 1명 ▲하남시 3명 ▲오산시 8명 ▲과천시 6명 등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울산 4개구청 대부분 경징계 행자부 대응 주목

    전국공무원노조 파업과 관련해 파업참여자가 가장 많았던 울산시 기초자치단체들이 행정자치부의 중징계 방침을 따르지 않고, 대부분 경징계하기로 결정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특히 구청장이 민주노동당 소속인 북구는 대부분 자체적으로 훈계하는 선에서 처리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상범 울산 북구청장은 1일 파업공무원 징계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파업에 참여했던 213명 가운데 단순가담자로 드러난 205명은 엄중 경고하는 뜻에서 훈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노조간부 등 적극가담자 8명에 대해서도 자체 징계위에 회부, 견책이나 감봉 등 경징계키로 하고 시에 징계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 구청장은 “소속 정당의 징계거부 방침은 물론 행자부의 중징계 지침도 따르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한 결정으로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이라는 점도 각오하고 있다.”며 “공무원노조 관계자들도 앞으로 요구와 수단의 정당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중구는 302명 가운데 12명, 남구는 301명 가운데 5명만 적극가담자로 분류해 중징계하고, 나머지는 단순가담자로 경징계하도록 시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시는 행자부 지침에 맞게 파업가담자 전원을 중징계하도록 다시 요청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동·북구에 대해서도 행자부 지침에 따라 징계를 하라는 공문을 곧 보낼 계획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개같은 날의 오후

    “요 X이 영어로 욕했다니까. 영어는 못하지만 느낌으로 다 알지.” “아줌마. 나는 욕한 적 없어요.” ‘강아지 똥’때문에 외국인과 환경미화원이 대낮 공원에서 한바탕 멱살잡이를 벌였다. 17일 낮 12시 인천시 남구의 한 공원. 애완견과 산책을 하던 캐나다 여성 A(23·영어강사)씨 앞을 여성 환경미화원 B(60)씨가 빗자루를 든 채 가로 막아섰다. “아니 강아지는 집에 놓고 다니든지. 내가 이 녀석 따라 다니며 똥을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환경미화원 B씨는 전에도 수차례 ‘훈계’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A씨를 보고 발끈했다. 하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로 ‘화’만 내는 환경미화원 아줌마가 A씨 역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마가지 않아 둘은 서로 다른 나라 언어로 목소리를 높였고, 이내 빗자루와 주먹이 오고 가는 육탄전이 이어졌다.B씨는 경찰에서 “강아지 똥 때문에 몇 마디 했다고 어린애가 영어로 대꾸하는 것이 꼭 나에게 욕설을 하는 것 같아 싸웠다.”고 말했다. 반면 A씨는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환경미화원”이라며 “캐나다에서는 무조건 원인제공자가 처벌을 받게 돼 있는데 도대체 왜 나를 조사하느냐.”고 강하게 항변했다. 그러나 경찰의 결론은 쌍피(쌍방피해). 인천 중부경찰서는 18일 서로를 폭행한 두 사람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전공노 122명 무더기 징계

    경남도가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전국공무원노조 경남지역본부 소속 공무원 122명을 무더기로 징계하고, 주도자는 고발했다. 경남도는 지난달 11일부터 16일까지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도청 현관에서 농성을 벌인 이병하 전공노 경남지역본부장 등 21명을 지방공무원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2일 밝혔다. 도는 이들과 함께 자진해산 요구에 불응한 9명 등 30명을 중징계하고, 연좌농성에 이틀 이상 참가한 5명은 경징계, 단순 참가자 87명에 대해서는 훈계조치할 방침이다. 고발된 21명중 이 본부장 등 17명은 일과시간 중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농성을 주도했으며, 창원·양산시 공무원 등 4명은 ‘도지사는 거짓말쟁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김태호 지사를 따라다니며 ‘그림자 시위’를 벌였다. 지방공무원법 제58조는 공무원들의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중징계의 경우 파면·해임, 정직 등 처벌을 받고, 감봉과 견책은 경징계에 해당된다. 전공노가 오는 15일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무더기 징계는 행정자치부의 강경방침과 무관치 않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체벌허용 교육법’ 헌법소원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21일 체벌을 허용한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이 헌법의 행복 추구권과 인격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 1항과 시행령 제31조 7항이 헌법의 행복 추구권과 인격권,평등권,신체의 자유,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야만의 시대는 끝내야 하며 체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어른들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중등교육법에는 “교육상 필요한 때 법령과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해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시행령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체벌을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Seoulites]이웃서 받은 사랑 ‘러브하우스’로 보답

    [Seoulites]이웃서 받은 사랑 ‘러브하우스’로 보답

    “화재로 사라진 제 집을 이웃의 손길로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이제 제가 받은 도움을 그들에게 되돌릴 차례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층 주민들의 노후 주택을 무료로 수리해 주는 은평구의 ‘맥가이버’ 정순영(54)씨.지난 2001년부터 그가 손 댄 ‘러브 하우스’만 해도 자그마치 80채를 넘는다.은평구청의 노면청소차 운전기사인 그는 주말이면 ‘사랑의 집’ 수리공으로 변신한다.4년전 자신의 집이 불탔을 때 그를 도와준 이웃에게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고 있다. “이웃의 정신적,물질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잃은 제가 쉽게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전부터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화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셈이죠.” 화재의 충격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군복무를 마친 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집수리에 나섰다.처음에는 무모하다며 아내마저 말렸지만 후원자가 하나 둘씩 늘면서 지금은 30여명이나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지난 5월에는 은평구청의 지원으로 ‘은평 집수리 봉사단’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20년 가까이 부업으로 철물점을 운영해서 보일러와 배선 등 집수리에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하지만 힘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려고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그 때마다 주위에서 도와줘서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정씨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주말을 꼬박 집수리에 매달린다.본업인 청소차량 운전도 새벽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한가한 편은 아니다.더군다나 좀 더 제대로 집수리를 하기 위해 야간 기능대학에서 전기기능사 과정까지 다니고 있다. “한 채를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30만∼40만원입니다.재활용품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외부 발주 비용의 20%선에서 일을 마칠 수 있죠.하지만 밥값이나 기본적인 재료비는 어쩔 수가 없어요.” 지난 7월초에 마친 폭우로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한 독거노인 가옥의 경우에는 재료비만 800만원이 들었다.이 가운데 절반은 구청에서 지원했지만 후원회에서 도와준 50만∼60만원을 빼면 나머지는 정씨의 몫으로 돌아온다.그러나 정씨는 후원자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짐을 자신이 떠 안은 것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재정문제보다는 사람관리가 더 어렵습니다.자발적으로 5∼7명 정도가 매주 참여하는데 개인 사정에 따라 인원이 들쭉날쭉하죠.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이 때문에 일의 진척도가 달라지니까요.” 가장 큰 지원군은 초창기부터 고락을 함께한 아들 기채(29)씨.호텔에서 근무하는 기채씨는 비번인 날에는 공구와 자재를 챙겨주는 등 군말 없이 아버지를 돕고 있다.하지만 정작 정씨는 젊은세대가 해야 할 봉사를 나이든 세대가 하고 있다며 오히려 훈계까지 덧붙인다. “예산이 허락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을 한 채씩 지어 드리고 싶어요.지금은 어렵겠지만 이 일은 일단 시작했으니까 굶어 죽지 않는 한 계속 할 거예요.”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용서받지 못한 이영훈교수

    MBC ‘100분 토론’에 출연,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6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사과방문했지만 용서를 받지 못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 교수에게 ‘나라가 없어 강제로 끌려간 한을 아느냐.당장 사퇴하라.’며 40여분간 꾸짖고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이날 오전 10시쯤 토론에 함께 출연한 가톨릭대 안병욱 교수와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이 교수는 “해방 후에도 성을 착취하는 기구가 있어 왔다는 점을 총체적으로 반성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발언한 것인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일제에 고통을 받으신 할머니들에게 심적으로 상처를 끼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자(80)할머니는 이 교수에게 물잔을 집어 던지고 “당신이 일본놈 앞잡이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근본이 의심스러우니 호적등본을 떼어 갖고 오라.”고 호통쳤다.또 박옥선(81)할머니는 “나눔의 집을 한 번이라도 들러봤느냐.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한을 알겠느냐.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당신의 수업을 받으니 걱정이다.당장 사퇴하라.”고 소리쳤다.이 교수는 훈계 내내 머리를 조아렸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이 교수가 와서 ‘토론에서 그런 의도로 발언한 것이 아니다.’고 변명부터 했다.”며 “처음부터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나눔의 집 역사관을 둘러본 뒤“학생들에게 나눔의 집을 방문토록 가르치겠다.”며 거듭 사죄하고 오전 11시40분쯤 상경했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儒林(169)-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69)-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유하계(柳下季)는 당시 노국의 현인으로 성은 전(展)씨고,이름은 획(獲).평소에 공자가 존경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버드나무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유하(柳下)라고 불렸다.그런 현인에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둑인 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일 것이다.어쨌든 장자에 나오는 일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유하계가 말했다. ‘지금 선생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가 된 사람은 그 아들을 타일러야 하고 형이 된 사람은 그 아우를 가르쳐야 한다고.그것은 어디까지나 옳은 말씀입니다.그러나 만약에 아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을 적에는 아무리 선생의 웅변을 임한다 해도 이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척의 사람됨으로 말하자면 마음은 솟아나는 샘처럼 분방하고,그의 성격은 불어치는 표풍(飄風)같이 사납습니다.어떤 적이라도 막을 만한 강한 힘과 어떤 잘못이라도 호도(糊塗) 할 만한 언변을 지녔으며,그 뜻에 순종하면 기뻐하고 뜻에 거슬리면 성을 내서 남 욕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터입니다.그러니 선생께서는 부디 가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공자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는 안회로 마차를 몰게 하고,자공을 왼자리에 앉힌 다음 도척을 찾아 나섰다. 한편 도척은 이때 부하들을 태산 남쪽에서 휴식시켜 놓고 자기는 사람 간을 회로 하여 간식을 먹고 있었다.그런 판에 찾아온 공자는 마차에서 내리자 앞으로 나아가 접수하는 사람을 보고 말하였다. “노국의 공구라는 사람이 장군의 높은 의를 사모한 나머지 달려와 삼가 어른께 인사 여쭙니다. 신하가 들어가 그 뜻을 전했더니,이를 들은 도척은 크게 노해서 눈빛은 명성(明星)과 같고,머리칼은 치솟아 관을 치밀어 올리는 듯하였다. ‘그놈은 노국의 사기꾼 공구임에 틀림없으렸다.내 말을 이렇게 전하라.너는 인의가 어떠니 예악이 어떠니 하고 말을 조작하고,문왕의 도가 이렇고 무왕의 도가 저렇다고 망령된 소리만 지껄이고 다닌다.머리에는 나뭇가지를 벗겨서 만든 어쭙잖은 관을 쓰고,허리에는 죽은 소의 옆구리 가죽으로 만든 띠를 띤 꼬락서니라니. 그리고 되지도 않는 소리만 지껄이면서 농사일도 안 하고 밥을 먹고,길쌈을 안 하면서 옷을 입고 살아가지 않느냐.그리하여 입술을 놀리고 혓바닥을 움직여서 제멋대로 시비를 가려 천하의 군왕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그 뿐인가.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도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대신 효제(孝悌) 따위를 도덕인양 착각해서 요행히 제후가 되고 부귀를 노렸으면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너의 죄는 크고 허물은 무겁다.우물대지 말고 속히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네 간을 도려내어 점심 상 위에 반찬으로 보태도록 하리라.이와 같은 내 말을 공구에게 전하거라.’ 신하가 도척의 말을 전하자 공구는 다시 한번 면회를 청했다. ‘나는 장군의 친형이신 유하계선생과 친근한 사이입니다.원컨대 진중에서 장군의 신이라도 바라보게 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신하가 다시 그 뜻을 전하자,‘그러면 데리고 오라.’고 도척이 만날 뜻을 보였다.공자는 추창(趨)하여 나아가 자리를 피하여 물러난 다음 도척에게 두 번 절하여 경의를 표했다.그런데 도척은 크게 노해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칼자루에 손을 대고 눈을 부릅떴는데,그 목소리는 새끼를 자주 낳은 호랑이 같았다. ‘구야,앞으로 나오라.네 말이 내 뜻에 맞으면 살려주겠거니와 내 마음에 거슬리면 너는 죽는 줄 알렷다.’”
  • [이진의 섹스&시티]차속에서 ‘달리기’

    무더위 끝자락을 보내던 날 밤,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친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치킨과 맥주를 바리바리 싸서 한강 고수부지에 갔었습니다.‘명당’자리는 이미 부지런한 이들의 몫.할 수 없이 주차장 근처에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좀 살 것 같다.’며 숨을 돌릴 무렵 아이들 한무리가 주차장에 모여 키득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죠.그저 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까지 찍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해 아이들 옆에 가보니 한 젊은 남녀가 차 안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자세히(?)는 못 봤지만 두 사람이 분명 서로 엉겨 붙어 있었죠. 자리에 돌아와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더니 함께 있던 친구 4명이 같은 경험이 있다고 말하더군요.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어느덧 ‘카섹스 예찬론’으로까지 퍼졌습니다. 흔히 카섹스하면 호텔에 당당하게 들어가기 힘든,가령 불륜 관계인 연인들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죠.하지만 정상적인(?) 애인이 있는 친구들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우선 카섹스는 집이나 호텔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발각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그래서 스릴 넘친다고 말하더군요.가끔 지나가던 어른들에게 들켜 훈계를 듣는 것마저도 때론 재미있다고 하고요.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다 보면 집중력뿐만 아니라 친밀감도 높아진다나요. 거기에 무엇보다도 경제적이라는 장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았습니다.사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젊은 연인들에게 매번 호텔이나 모텔의 숙박비를 부담하는 게 쉽지 않죠.일주일에 두번만 가도 한달이면 그 금액이 만만치 않으니까요.그래서 가끔은 숙박비도 아끼고 드라이브도 할 겸 부모님의 차나 친구들의 차를 빌려 데이트를 즐긴다고 하더라고요.차가 있는 한 친구는 일부러 선팅을 진하게 하고 늘 분위기 있는 음악과 ‘예방 도구’를 구비해 놓는다고 합니다. 카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비록 스릴을 즐기긴 하지만 단속을 당하는 것은 여전히 불만이라고 합니다.경찰에게 걸릴 경우 경범죄로 과태료를 물거나 즉심에 회부됩니다.‘공연음란죄(公然淫亂罪)’라는 혐의로 말이죠.하지만 말 그대로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해야 하는 것일 텐데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어둡고 구석진 차안에서,그것도 차 안에서 남몰래 사랑행위를 하는 것을 ‘공연음란죄’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이며 그것을 적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닐까요.나아가 이건 엄연히 ‘섹스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 아닌가요. 전 자동차를 불륜의 장소가 아닌 단순히 색다르고 저렴한 섹스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그것이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면 제발 귀신처럼 스르륵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거나 전등을 비추며 문을 열라고 닦달하는 것만 이라도 참아주세요,네?
  • 與 경제인에 혼나고 野는 민생회복 나섰다

    與 경제인에 혼나고 野는 민생회복 나섰다

    ■경제인에 혼난 與 정치권이 왜 정쟁이란 ‘마약’을 끊고 민생 경제에 전념해야 하는지를 13일 여당 지도부와 무역업계 대표들의 간담회는 여실히 보여줬다. 한푼의 이윤이라도 남기기 위해 험한 해외시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 노(老)사업가들은 고담준론이 체질화된 여당의 실력자들 앞에서 거침없이 ‘뼈있는 말’을 쏟아냈는데,사실상 훈계조로 들릴 만큼 날카로웠고 작심(作心)이 묻어 있었다.평소 여의도에서 온갖 비생산적인 정쟁의 담론에 빠져 ‘경제는 선택과목’ 정도로 치부해온 듯한 정치인들로서는 수치심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 삼성동 무역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업계대표들은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의 의례적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쓴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먼저 남덕물산 용을식 회장이 답답하다는 듯 “이번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왔으니 일본과 유럽 등 주요 국가 의원들과 협력관계를 빨리 구축해달라.”고 호소했다.이어 “요즘 장사가 안돼 죽겠다는 소리가 많은데 이런 때일수록 정치권에서 기업인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해달라.”고 주문했다. 남영산업 문희정 사장은 “요즘 미국 사업가들을 만나면 ‘장사는 친구와 하는 법이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국가간에 우호가 돈독해야 사업도 된다는 뜻이다.”며 한·미 관계 개선을 당부,여당 의원들을 긴장시켰다.미래와사람 안군준 회장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엄청난 피해를 봤는데,요즘 화물연대측이 다시 ‘정부가 타협안을 이행치 않고 있어 지켜보는 중’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니 의원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무역협회 한영수 전무는 “외국에 가보면 우리 정치권의 불협화음이나 노조의 과격한 모습 등 부정적 면만 클로즈업되고 있다.”면서 “외국이 신뢰할 만한 안정적인 모습을 여당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무역협회 김재철 회장은 “수출이 잘 되려면 국회가 미래지향적이고 세계 흐름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면서 “특히 크게 요동치고 있는 중국에 모든 의원들이 다만 2∼3일만이라도 가봤으면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민생회복 나선 野 한달 가까이 국가정체성 논란을 이끌어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3일 ‘민생 회복’을 외치며 무게중심을 ‘경제’로 옮기기 시작했다.유승민·심재엽·윤건영·이혜훈 의원 등 당내 경제 전문가를 불러모아 ‘민생점검회의’를 열었다.경제 위기를 타파할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박 대표는 회의 서두에서 민생경제 챙기기와 국가정체성 논란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그는 “국민과 기업가가 불안해 하는데 아무리 사정하고 협박을 한들 투자가 이뤄지고 경제가 살아날 수 있겠냐.”면서 “나라의 기본을 흔드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물은 것이 정쟁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언론인 여러분도 과거 정치와 비교를 해봐라.장외 투쟁,국회 보이콧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여권의 답을 기다리는게 정쟁이냐.”고 쏘아붙였다.임태희 대변인은 이를 두고 “박 대표로서는 야당이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던졌고,이를 정쟁으로 모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구체적인 정책을 따지고 여권의 정체성을 점검하자는 것이 박 대표의 의지”라고 전했다.박 대표의 이같은 언급은 외형상으로는 ‘외연 확대’로 비쳐졌지만 한편으론 경제살리기에 주력하겠다는,즉 방향 선회를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2시간 넘게 격론을 벌여 현 경제 상황을 “여권이 추진 중인 수조원의 재정지출 확대나 콜금리 인하 등 단기 부양책으로 해결하기 힘든 국면”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방만한 재정 혁신 ▲선별적 감세정책 추진 ▲공공요금 동결 내지 인하 ▲공공부문 고용 확대 ▲부동산세제 완급 조절 등 9가지 정책을 정부 여당에 제안했다.국제 유가가 안정될 때까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세금과 특소세,중소기업 법인세 추가 인하 등 서민생활에 도움을 주는 혜택도 포함시켰다.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이같은 회의를 정례화시키기로 했다.분기별로 경제 동향의 큰 흐름은 경제통인 윤건영 의원이 분석하고,당 정책위는 각종 정책을 마련해 지원 사격한다는 방침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