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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원 30년근속 오세민 관리실장(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산 편성때 외부압력 없었으면”/“내손으로 짠 나라살림 국회통과땐 보람”/신정부 경제의욕 돋보여… “기획원맨” 긍지 『경제정책은 각 부처간의 입장이 상충되게 마련입니다.특히 요즘처럼 국제화시대를 맞아 대내외 업무가 연계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기획원의 정책조정기능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입니다』 지난 22일 경제기획원 창립 32주년을 맞아 근속 30주년 표창을 받은 기획원 오세민기획관리실장(56)은 현재 기획원내에서 「최고참」 관료이다.최근 나돌았던 기획원 통폐합설을 의식한 듯 『대통령책임제 정부형태에서 조직의 원리나 업무의 능률상 정책조정기능을 청와대나 총리실에 주기가 부적절하며 기획원같은 부처차원의 조정기관이 필수적』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오실장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63년 5급 을류(현재의 9급)공채를 통해 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인재가 많기로 소문난 기획원에서도 베테랑 예산통이다.30년의 기획원 생활동안 공정거래위(1년8개월)와 국회 예결위(1년3개월)파견을 빼놓고는전부를 예산실에서 보냈다. 오실장은 『예산에 대한 최고 통치권자의 관심을 보면 기획원의 위상이 드러난다』고 전한다.과거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박정희대통령 시절에는 예산문제만 갖고 부총리와 예산실장이 1년에 4∼5번이상씩 청와대에 올라가 보고를 했다.전두환대통령도 예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노태우대통령 때는 예산문제로 청와대 보고를 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회고이다.김영삼대통령이 취임이래 격주로 과천청사를 방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등 경제활성화에 주력하는데 대해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기획원은 과거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그러나 요즘 들어 성장뿐만 아니라 안정과 균형이 강조되면서 기획원의 위상이 옛날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오실장은 30년 봉직동안 23명의 역대 부총리를 거의 겪어 봤다.장기영·김학렬·남덕우씨등 개발경제시대 경제총수들의 막강한 추진력을 기억한다.자신이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며 모셨던 조순·이승윤전부총리에 대한 일화도 많다. 그는 『기획원이 강하고 약하고는 대통령이 경제를 보는 시각과 힘을 주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어도 기획원은 여전히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예산실에 근무하면서 주로 총괄주사·총괄과장·총괄국장을 지냈습니다.내 손으로 짠 나라살림이 국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오실장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는 정권안보를 위한 예산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산정책에도 굴곡이 많았다고 설명한다.그러나 이해관계가 다른 예산편성 작업을 하다보면 외부의 압력이 엄청나다고 털어 놓는다. 올 봄 기획관리실장(1급)직에 올랐으니 직업관료로서는 거의 정상에 오른 셈이다.대부분 고시출신인 기획원내에서 비고시 출신 관료의 「대부」로 통한다.『최하위직에서 순조롭게 중앙부처의 1급까지 오른 것만 해도 대단히 영광』이라고 직분에 만족하며 영원한 「기획원 맨」을 자부한다. 그는 『매사에 자기 업무에 성실하면그 보답은 반드시 있는 법』이라며 『30년 기획원 생활에 후회는 없으며 항상 기획원이 잘 되는 일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게 놓치고 구럭까지 잃는다면(박갑천칼럼)

    라 퐁텐의 우화시에 「손발과 위」가 있다.손과 발은 하는 일 없이 넣어주는 것 먹기만하는 위한테 불만이 많다.중간쯤을 조금 인용해본다. 『…우리가 없으면 그는 공기로만 살아야한다/우리는 소나 말같이 일하고 땀흘리고 수고를 한다/그건 도대체 누굴 위한것인가/오직 그를 위한것이며 우리에겐 이익도 없다/우리들의 고통은 그놈을 밥먹여주는데 불과하다/우리도 쉬자/손은 물건을 잡지않고 팔은 움직이지않고 다리는 걷지않았다/그리고 가스터(그리스어로 위나 장의 뜻)에게 일꾼을 다른데서 구하라고 했다/그것은 잘못이었고 그들은 후회했다/이윽고 가련한 녀석들은 힘이 쭉빠지고/심장에선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지 않고/팔과 다리도 그때문에 힘을 잃었다…』 이에 이르러서야 팔과다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이 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이 비슷한 얘기는 예컨대 유대인 5천년의 예지가 집약된 「탈무드」에도 「뱀과 뱀의꼬리」라는 우화로서 나온다.항상 머리의 꽁무니만 따라다닌다고 생각한 꼬리가 우김질끝에 머리대신 앞장을 선다.결과는 비극이었다.방향을 잘못잡고 불속으로 기어들어감으로써 모두가 타버리는 것이니 말이다.대결해선 안될 대결의 말로가 그것이다. 이건 좋고 나쁘다거나 혹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함께 망하는 짓이다.「전국책」(전국책:연책2)에 나오는 조개와 물새의 싸움도 그것이다.물새가 조개살을 쪼아먹고자 했을때 조개는 주둥이를 오므려버린다.물새는 말한다.『오늘내일 비만 오지않으면 바싹 말라죽은 조개를 보게 될 것이다』.조개라고 지겠는가.『내가 입을 열어주지 않으면 지쳐죽은 물새를 보게 될 것이다』.물새와 조개는 지나가던 어부한테 함께 잡히고 만다.후회해봤자 늦은 일이다. 세상사에는 게(해)도 잃고 구럭(광)도 잃는 경우들이 적지않다.오기싸움을 벌이거나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릴때 당하게 되는 일이다.「순오지」(순오지)나「이담속찬」·「동언해」 등에 나와있는 속담이다.「송남잡지」에는 민담까지 곁들여놓고 있다.­옛날에 해(해=게)와 굴억(굴억=구럭)이라는 친구가 있었다.게의 아내는 구럭을 좋아한 나머지 게를 독살한다.그러나 구럭은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법이라면서 자결해버린다.게의아내는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던 셈이다. 노사분규가 이성을 잃은듯이 각기 자기 궤도만을 치닫는 것을 볼때처럼 답답해지는 일도 없다.어부 좋아할 짓만 같고 게도 구럭도 놓치는 짓만 같아뵈기 때문이다.서로 성숙해질 때도 됐건만.
  • 바캉스 방범(외언내언)

    파리는 8월초부터 한달간 동네가게는 물론 도서관이나 관공서도 문을 닫는다.문자그대로 공동화현상을 드러내어 도시는 긴 잠과 긴 휴식에 들어간다.신문의 면도 줄고 버스 운행시간도 간격이 벌어진다.범죄도 잠을 자는지 치안에도 별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과 바다를 찾는 피서인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집을 비우는 가구들이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따라서 아파트단지처럼 공동관리가 잘되어 있는 경우는 몰라도 일반주택에 살면서 「일가족 바캉스계획」을 세우기란 좀체로 쉽지 않다.가족이 따로 나누어 떠나든가 집봐줄 사람을 구해놔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에 사는 만20세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민의 휴가 여행에 관한 조사」에 보면 서울시민 10명중 8명이 여름휴가에 나설 계획이며 이중 1.9%인 50명중 1명은 해외여행.또 교통부는 대전엑스포 개막과 겹친 이번 휴가철의 유동인구를 왕복 1억3천9백만명으로 잡고 있어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는 모처럼 교통체증없는 한여름철이 될 모양이다.하는일 없이 하늘과 바다,자연을 벗삼아 쌓였던 피로를 푸는것은 어쩌면 도시인 누구나의 바람이다.휴양과 자유시간은 보다나은 내일을 위한 재충전·재창조의 기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집을 비우고 떠났을 때의 「빈집」생각은 편안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는 커녕 걱정과 우려로 오히려 짜증스러워 질지도 모른다. 서울용산경찰서가 펴낸 「알아두면 도움되는 방범요령」은 그런 뜻에서 휴가로 들뜬 주민들에게 경각심과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집을 비운 동안 신문·우유등은 배달하지않게 미리 연락해두고 「오랫동안 집안에 불이 꺼져있으면」화를 자초하는만큼 타이머가 부착된 전등을 설치하라 등등. 사건이 발생하고나서 후회하기보다 작고 하찮은 구석까지 꼼꼼히 살펴 모처럼의 휴가가 망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 좋다.
  • 여름방학을 「방학」답게(사설)

    서울의 고등학교들이 14일 방학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초·중·고교가 오는 25일까지는 모두 여름방학에 들어간다.심술궂은 장마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직장인들의 여름휴가가 겹쳐지는 태양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름방학」이란 단어는 어른들에게 꿈과 낭만과 여유를 상징한다.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농촌 친구를 찾아,농촌학생은 시골고향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여치와 매미를 잡고 햇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먹고 송사리떼가 노니는 맑은 개울물에 멱감고 물장구 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임해훈련」이란 이름의 단체 해변가 피서도 가고 무전여행의 호기도 부려보고 동·서양 고전을 섭렵하기 위한 독서삼매에 빠지기도 하고 땀과 눈물의 봉사활동으로 뜨거운 여름을 더욱 치열하게 보낸 추억도 지니고 있다.규칙적이고 딱딱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이처럼 몸과 마음을 살 찌우는 것이 방학의 근본취지다. 그러나 지금 방학을 맞는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그들의 여름방학은 말이 방학일뿐 보충수업의 시작이고 입시가 한발 다가섰다는 신호일뿐이다.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심지어 국민학생 고학년까지 빡빡한 학원 과외 일정에 숨돌릴 틈도 없을 지경이다.도시지역의 국민학교 5∼6학년들은 예비중학생으로서 영어와 산수와 한문을 방학동안 새로 배우거나 보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은 방학이 아니라 또 하나의 학기다.당연히 부모들의 여름휴가도 따라가지 않고 공부를 해야한다.대학입학이라는 절대명제를 신봉하는 학부모들의 과잉 교육열과 비뚤어진 교육상혼이 한데 어우러져 그들의 방학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달콤한 여름방학의 추억을 지닌 부모들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그러면서도 자신이 누렸던 여름방학을 자녀들에게 물려 주지 못하는것은 끝없는 경쟁의 수렁에서 발을 뺄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려는 학부모나 학생이 있다면 비정상적인 학부모나 문제학생으로 취급 받는다.고교 1학년 여름방학때 라보의 국제 학생교류의 일환으로 외국가정을 방문하고 국제화시대의 산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은 학생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못한것에 대해 담임선생님은 허송한 여름방학을 탓하고 그 부모는 뼈 아프게 후회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머리만 크고 가슴은 빈약한,메마른 정서의 인간으로 자라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다.그들에게 방학다운 방학을 되돌려 주는 것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교육이론으로 교육정책에 반영된다면 부모들의 조바심도 사라질 것이다.
  • 한국기업들(산동성이 부른다:4)

    ◎한국투자 기다리는 개방경제의 현장/4백29개사 진출… 업종도 다양화/임금은 국내의 15%에 생산성은 50% 이상 산동성 일대에는 최근들어 한국업체들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다.지난해 8월 한중수교이래 기다렸다는듯 많은 기업들이 청도를 비롯,위해 연대 제남 등지로 몰려들고 있다.산동성 당국의 통계로는 지난 5월말 현재 4백29개 업체가 3억6천5백만달러를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준비중이다. 이곳에서 만나본 한국기업인들은 대체로 『이곳에 온걸 후회하진 않는다』『괜찮은 것 같다』『한국에서는 임금상승때문에 어차피 길이 없지 않느냐』며 이곳 투자에 조심스런 낙관을 표시했다. 산동성 연안에 투자한 업체들은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거리가 가깝고 훌륭한 수출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 정착의 주요 이유로 꼽는다.다음으로는 기후나 사람들의 성품이 한국과 비슷하다거나 한국과의 여객선운항으로 교통이 비교적 편리해진 사실도 지적했다. 물론 이들이 중국으로 건너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곳 노임이 싸기 때문이다.이곳에 오면 여러가지 불편한점이 많고 간접비용도 많이 들어가지만 이같은 추가비용을 능가하는 인건비 절약요인이 이들을 중국땅으로 끌어들인 것이다.이곳 노동자들의 평균노임은 월 3백원(4만5천원)안팎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15%에도 못미치고 있으나 생산성은 한국노동자의 50% 이상으로 지적되고 있다.한국투자업체인 연대코니정밀의 진석영총경리는 『생산성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것은 인력관리를 잘못한 때문이다.관리만 제대로 하면 한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했다.중국인도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어서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한국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업체들이 이국땅에서 느끼는 불편을 얘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우선 이곳에서는 한국만큼 전화사정이 좋지못해 통화중에 자꾸 전화가 끊기고 국제회선 부족으로 대낮에 서울로 전화걸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일부 업체들은 이곳 전압이 일정치 못해 기계를 돌리는데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심지어 낮에는 80V까지 떨어졌다가 밤에는 2백20V로 돌아올 때도 있고 정전이 잦다고 불평한다.그러나 연대같은 지역에서는 그것은 전선교체작업 때문이며 새로 건설중인 발전소가 곧 완공되면 전력부족이나 전압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도는 물론 연대나 위해에서 한국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불만중의 하나는 뒤에 들어오는 한국업체들이 자꾸만 먼저 와있던 업체들 주위로 몰려든다는 점이다.한국의 중소업체들은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자리잡음으로써 기숙사를 짓는다거나 통근버스 비용지출까지 아껴야하는데 주변에 자꾸만 한국업체들이 들어서면 서로 노동자확보를 위해 경쟁할 수 밖에 없어 불리해진다는 것이다.많은 한국업체들이 공단에 들어가지 않으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노사분규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이곳 노사분규는 노동자 구타나 노동자들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공장내 공해문제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한국업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노사분규를 방지하기 위해 공장내에 공산당조직을 설치토록 시당국에서 건의하고 있는 점인 것 같다.한국에서는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이 파업을 부추기는 주동자들로 여겨져왔으므로 아무리 공산국가라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곳 업체들은 후발업체들이 이곳에 올때는 이곳 한국업체협의회와 먼저 상의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그래야 공장부지를 선정할때 서로 조정을 해서 인력스카우트 잡음을 없앨 수 있고 여러가지 편리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인들은 공장건물을 한참 올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이웃 한국업체를 찾아온다고 청도에 맨먼저 진출한 청도삼양식품의 신영호총경리가 밝혔다. 청도에 몰려든 한국업체들은 ▲중소업체들이 대종을 이루고 ▲독자기업이 많으며 ▲전량수출형에다 ▲주로 향·진에 공장을 설치하는 등 4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유정성청도시장이 밝혔다.투자품목은 완구제조 건자재 경공업 수산업 등 다양하다.하지만 지난해 한중수교 이후에는 대기업들도 조심스레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예를들어 고려합섬 1억달러,대한방직 3천만달러,대농 2천만달러 등의 투자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밖에도 1천만t 정유공장과 1백만t 시멘트공장건설이 검토되고 있다. 산동성 관리들은 한국기업들이 어떤 분야에 투자하길 원하느냐는 물음에 에너지 교통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분야라고 설명한다.하지만 이 분야는 중국에 자본이 부족하므로 돈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것이다.송법당 산동성부성장은 『우리는 발전도상국가이므로 정부차관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문제는 이같은 사회간접자본투자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지불보증을 해주는게 아니고 예를 들어 도로를 건설했다면 통행료를 받아서 투자금을 회수해가라는 식이어서 선뜻 달려들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많은 것 같다.
  • 몬테베르디 3백50주기/이,기념음악제 성대

    ◎“오페라 아버지” 별명… 대표작 「오르페」/출생지 크레모나 중심 연주회 잇따라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사거 3백50주년을 맞아 그의 출생지인 크레모나와 활동 근거지 만투아와 베네치아 등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지에서 기념 음악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진다.이미 시작된 곳도 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달인 11월까지 계속된다. 크레모나는 아마티·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 등 바이올리니스트들이면 누구나 지니고 싶어하는 명품 바이올린들을 만들어낸 고장이다.여기서 태어난 몬테베르디는 만투아로 옮겨가 곤차가 궁정 음악가로 일하다가 인생 후반부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의 성가지휘자로서 지냈다. 크레모나에서는 몬테베르디의 작품들을 음악사적 맥락에서 조명한 연주회가 지난 5월15일 시작됐다.이 행사는 11월까지 이어진다. 만투아에서는 9월4일 두칼레궁에서 몬테베르디 시대의 작품 연주가 시작된다.음악애호가들이 놓치면 후회하게 될 바로크 음악의 대향연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가 묻힌 베네치아에서의 기념행사는 더욱 성대하다.11월29일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장엄미사가 끝나면 이 교회에서 그가 잠들어 있는 프라리 교회까지 이르는 길이 추도행렬로 메워진다.수많은 음악 연주와 함께 그의 장례식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는 1567년 외과의사를 겸한 이발사(당시는 외과의사와 이발사 일의 구분이 없었다)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으로 유족했기 때문에 교회 합창단에 들어가 음악적 생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즈음 크레모나는 쇠퇴기에 있었으나 소년 몬테베르디의 성장기에는 명성있는 바이올린 공장들이 생산을 계속하고 있었다.가장 이름 높은 제조공 스트라디바리는 몬테베르디보다 1세기 후에 태어났다. 몬테베르디는 수많은 마드리갈(연가)의 작곡자이기도 한데 최초의 마드리갈 작곡집은 그가 열여섯살의 생일을 맞기 직전에 내놓은 것이다. 만투아의 곤차가궁 소속 음악가로 있을 때는 엄청난 양의 작곡을 하면서도 보수가 시원찮아 곤궁하게 지냈다.이 시절에 내놓은 것 가운데 하나가 그의 첫 오페라 「오르페」다.이것은 그 이전의 오페라와는 확연히 다른,극적인 요소와 음악적인 요소를 잘 조화시킨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1613년 몬테베르디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의 합창지휘자로 불려갔다.이 자리는 음악가로서의 확고한 명성과 함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부러워했다.1643년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그 특권을 누리면서 자신의 모든 재능을 창작에 쏟았다.불협화음을 사용한 몬테베르디의 과감성은 오늘날에도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인간 감정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 성과는 마지막 두개의 오페라 작품 「오디세우스의 귀국」과 「포페아 대관식」에 축적되었다.이 두 작품은 진정한 현대 오페라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이탈리아에 가 볼 계획을 하고 있는 음악애호가라면 몬테베르디 행사는 챙겨볼 만한 것이다.
  • 신명나는 직장(외언내언)

    어떤 직장이 과연 일할맛나는 일터인가.미국의 권위있는 경영전문가 로버트 레버링과 밀튼 모스코위츠가 펴낸 「93년판 미1백개 베스트기업」에 보면 「급료와 물질적혜택」「승진의 기회와 문호개방」「자리의 안정성」「자신의 일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의사소통의 기회와 공정성」「회사동료간의 우호적관계」등을 일할맛나는 직장의 조건으로 들고있다.따라서 84년 100대기업에 끼었던 블루진으로 유명한 리바이스 스트라우스사는 근로자와 감독관이 경쟁사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애사심부족」판정을 받아 100대기업에서 탈락되었다.세계최대 석유회사인 엑슨사도 오랫동안 유지했던 비해고정책을 번복한 「혐의」로 역시 실격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좀더 신명나고 일할맛나는 직장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다양한 설문조사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기업이 사원용으로 펴낸 「신바람나는 직장만들기」책자에 보면 신바람나야할 직장에서 방해가 되는 관리자의 유형은 「막연하게 지시만하는 오리무중형」「상부지시 하달에만 급급한 앵무새형」「조석으로 방침바꾸는 조령모개형」이고 반대로 사원의 경우는 지시받을땐 「예,예」하다가 나중에 딴소리하는 「오리발형」지시하면 무조건 반대의견을 말하는 「일단부정형」계획성없이 일을 추진하여 허점을 만드는 「주먹구구형」지시한대로 할뿐 업무개선에 무관심한 「하인근성형」「무사안일」등등이다. 우리의 삶을 가꾸고 꾸미는 직장이란 가정이상 중요한,그래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잠시도 머물 수 없는장소이다.직장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목적이며 일한다는것은 인생의 보람이자 환희,행복일 것이다. 잘못 선택한 직업으로 후회하는 자가 「오리무중」「무사안일」등으로 우리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이는 마땅히 추방되고 개선돼야 한다.활기차고 건강하고 신바람나는 직장,그것이 바로 「신명나는 사회」를 성취하는 그 지름길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 회담 이틀간 12시간 지속 전망/미­북 고위급회담 이모저모

    ◎회담장 사진촬영 등 불허… 비공개로 진행/노동당소속 북대표 참가… 「막후실세」 추측 ○…강석주 북한외교부 제1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미·북한 고위회담의 북한측 대표단은 회담 예정시간보다 15분 빠른 2일 상오9시45분께 캐딜락 승용차를 이용,유엔본부 건너편 미대표부 건물에 도착해 미측의 안내를 받으며 회담장으로 직행. 한편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 정치군사담당차관보 등 미국대표단은 아침 일찍부터 미대표부에 들어가 회담에 대비. ○…미·북한간의 고위회담이 개막된 뒤에도 회담일정이나 토의내용 등이 일체 공개되지 않아 취재진을 애먹였는데 관측통들은 회담이 최소한 이틀에 걸쳐 12시간 정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 이날 회담은 사전 사진촬영도 금지된채 비공개리에 진행됐으며 유엔본부건물 길 건너편에 위치한 미대표부 앞길에는 미경찰들이 배치돼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상오10시부터 12시30분까지 오전회담을 마친 미·북한 고위회담 대표들은 점심식사를 한 뒤 하오3시부터 오후회담에 들어갔는데 이날 회담장 주변에는한국·미국·일본의 보도진들이 운집,이번 회담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반영. ○…강석주 북한외교부 제1부부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은 모두 9명으로 김부부장 외에 김계관 순회대사,이용호 국제국 부국장등 3명의 정대표와 4명의 배석자,1명의 통역으로 구성.배석자 가운데 한명인 김홍준은 직함이 「노동당중앙위 부위원장」으로 대표단 9명중 유일하게 외교부 소속이 아닌 인물로 밝혀져 이번 회담의 「막후실세」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편 주유엔한국대표부의 관계자들은 이번 미·북한고위회담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체로 낙관한다』고 대답.북한 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한 실무자는 『이번 회담에 임한 북한의 운신의 폭은 매우 좁다.NPT탈퇴결정 번복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핵사찰 수용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안보리의 경제제재를 받을 것인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부연설명. ○…유엔쪽에서 흘러 나오는 소문 가운데는 한·미 두나라가 이번 미·북한 고위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측에 던져줄 「선물」의 내용을 미리 협의했다는 얘기도 들어있어 보도진의 촉각을 세우게 하기도.한·미 양국은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물」로 북한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미요구사항 가운데서 「핵관련요구사항들」에 한해서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했다는 것. ○…워싱턴타임스지는 2일 미·북한 고위회담과 관련,고위회담 추진과는 별도로 미국이 이미 유엔안보리 회원국들과 대북한 경제제재 결의안 채택에 관한 사전 준비 협의에 착수했다고 보도. 이 신문은 클린턴행정부의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미국이 이 제재결의안을 추진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2일의 미·북한 고위회담 결과에 달려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무부가 이미 대북한 경제제재 결의안에 관한 기초문안을 마련,안보리 회원국들의 지지를 타진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같은 미국무부의 행보는 북한이 핵문제에 관한 기존태도를 바꾸지 않을 경우 김일성정권을 더욱 고립시킬 태세가 돼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첨언. ○…그러나 워싱턴타임스지는 대북한 경제제재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았는데 일부 미관리들이나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대북한 식량과 원유금수조치를 포함,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오고 있기도.
  • 검찰간부­정씨형제 커넥션

    ◎고교후배 통해 덕일씨 만난후 거액차용/이건개씨/동생이 정씨호텔 슬롯머신 취직/전재기씨/부인끼지 수차례 식사… 가정문제도 나눠/신건씨 고검장급 검찰간부들이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 뇌물을 받았거나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검찰자체조사결과 확인되고 있다.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은 27일 소환되는 대로 사법처리될것이 분명하고 집안끼리 교분을 쌓아온 신건전법무부차관과 전재기 전 법무연수원장도 위법이 밝혀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이들 세명은 26일 사표를 제출했다. 이씨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이면서도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주인공.주객이 바뀌어 정씨의 동생 덕일씨로부터 되레 신문을 받게 됐다고 검찰관계자들은 동정한다.대검형사2부장으로 있던 88년 10월 『건물매입자금이 부족하니 돈을 빌려달라』고 해 3차례에 걸쳐 5억4천2백40만원을 받았다.빌려줄때 언제까지 갚겠다거나 이자를 주겠다는 말도 없었고 현재까지 한푼도 갚지 않았다. 그는 지난 86년 잘 아는 고교 후배를 통해 알게된 덕일씨를 선정,돈을 빌렸다.3차례 돈을 빌리면서 차용증과 보관증을 한번씩 써줬고 이씨는 덕일씨가 보는 앞에서 차용인이름을 조성일이라 쓰고 사인도 조씨의 가짜사인을 했다. 돈을 빌릴 당시 이씨는 이미 이 돈을 챙길 심산이었던 것 같다.덕일씨 역시 그의 위세에 눌려 한 번도 돈을 되돌려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돌려받을 생각조차 안했다는 것이다.검찰관계자들은 이씨가 직위를 이용,돈을 차용하는 형식으로 거액을 삼킨 것으로 보고 있다. 전전법무연수원장과 덕진씨와의 관계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가 서울지검 특수부검사로 있던 70년대초 속리산관광호텔카지노사건으로 덕진씨를 구속한것이 인연이 돼 정씨를 알게됐다.그러나 형을 대리해 각계각층에 로비를 벌여온 덕일씨와는 모르는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가 불행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교만 졸업하고 빈둥빈둥 놀고 있던 동생이 화근이 됐다.82년 8월하순쯤 이 동생이 당시 슬롯머신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덕진씨를 찾아가 취직시켜줄 것을 요청했다.덕진씨는 구속됐을때 인간적으로 대해줬던 전씨의 동생임을 감안해 덕일씨에게 고용하도록 지시해 그해 9월7일 팔래스호텔 슬롯머신업소 지배인으로 취직시켜줬다.전씨가 정씨 형제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 계기였다.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은 대목임을 부인할 수 없다.형제간의 우애가 형을 궁지에 몰리게 했다.전씨도 동생의 「밥줄」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고 후회한다. 신전법무부차관은 영등포지청(현 남부지청)에 근무하던 70년대초 정보를 제공하는 등 수사상 도움을 주던 신용언씨를 통해 정덕진씨를 알았다.80년대초에 신씨가 장어구이집을 개업하면서 신씨부부와 정씨부부를 함께 초대해 부인끼리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발전,부인들은 그뒤 몇차례 만나 식사를 같이 하거나 차를 마시며 자식문제등 가정문제에 관한 대화도 나누곤 했다.지난해 신씨의 부인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장녀의 집을 찾아갈때 정씨부인도 LA의 집에 가기위해 같은 비행기를 타고갔던 적이 있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보통사이가 아님을 짐작케한다.
  • 20억대 빌라 진로회장에 가등기/검찰 내부수사 이모저모

    ○…박종철검찰총장과 김도언대검차장등 검찰수뇌부도 26일 자정이 넘도록 청사에 남아 주요간부들과 심야구수회의를 수시로 갖는등 이전고검장등 3명의 소환에 대비. ○자정넘게 구수회의 박총장은 이날 『검찰의 대들보들인 이들 3명이 사표를 제출한 것은 가슴아픈 일』이라고 전제,『기왕 수사가 시작된 만큼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힐 것』을 강력히 지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간부는 검찰에 투신한 이래 오늘과 같은 회의분위기는 일찍이 없었다고 전하고 검사가 된 것을 후회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심경을 토로. 특히 쾌활하고 호탕하기로 유명한 김태정중수부장도 이날은 하루 종일 표정이 굳어 있어 선배검사를 조사해야하는 괴로움을 간접적으로 표출. ○…대검중앙수사부가 소환조사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는 이 전 대전고검장은 81년 중수부1과장을 지내며 큰 사건을 수사한 경력이 있어 중수부로 소환될 경우 12년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중수부조사실에 앉아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게 되는 셈. ○입장전환 얄궂은 운명 이씨는 중수부1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이철희·장영자사건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는데 피의자를 앞에두고 호통을 치던 신분에서 후배 검사로부터 취조를 받는 입장으로 전락하게된 것. ○…김도언대검차장은 이전고검장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26일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씨등 검찰고위간부 3명을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한뒤 사진취재에 협조해줄 것을 신신당부. 김차장은 이들이 전직 고검장인 점을 감안,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사진취재는 말아달라고 요청했으나 기자들이 이씨의 경우 혐의가 드러난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이씨는 소환할때 미리 알려주기로 최종합의. 김차장은 또 김승희전김천지청장의 경우 슬롯머신업자 양경선씨가 김전지청장의 쏘나타 승용차 구입대금 1천여만원을 대신 내 준 것으로 밝혀졌으나 직무와 관련이 없어 사법처리 대상에서는 제외키로 했다고 설명.김전지청장은 결국 대구고검 검사로 전보발령하는 수순으로 매듭. ○…이전고검장등 3명의 사표가 이날 수리됨에 따라 검찰은 금명간 대폭 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여 크게 술렁. 지난번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때 검사장급 2명이 물러나 치명상을 입은 검찰은 이번에는 이들보다 격이 높은 고검장급 3명이 한꺼번에 물러나게 돼 초상집 같은 분위기.검찰이 이날 이들로부터 사표를 받은 것은 후배검사가 선배검사를 조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자연인 신분으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치로 풀이. ○…김승희 전김천지청장등 검찰관계자외에도 경찰간부 20여명에게 매달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난 슬롯머신업자 양경선씨(45)에 대한 조사를 누가 맡을 것인가를 놓고 검찰이 한때 고심했다는 후문. 서울지검 특수1부는 당초 슬롯머신업자 지분실사 과정에서 양씨와 검·경인사들과의 유착 혐의를 포착,출국금지조치와 함께 신병을 추적했으나 양씨가 잠적해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김지청장에게 승용차를 제공한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25일 양씨가 대검에 전격 자진출두하자 허탈한 표정. ○장회장 소환 방침 ○…이전대전고검장이 정덕일씨로부터 받은 돈으로 구입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롯데빌라가 지난 3월 2일 진로그룹 장진호회장 앞으로 가등기된 것으로 밝혀져 이전고검장과 조성일씨·장회장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을 낳기도. 이에대해 진로그룹측은 『장회장이 이사할 집을 찾던중 비서실 민모이사(41)와 평소 친분이 있는 조씨를 통해 조씨명의로 된 이 집을 소개받았다』면서 『조씨가 지난 3월 2일 가등기서류를 가지고 와 5억원을 주면 소유권을 이전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5천만원을 준뒤 지난 13일 정식계약을 체결,4천만원을 추가로 지급해 9천만원을 주었으며 25일 중도금 4억1천만원을 주기로 했으나 조씨가 잠적해 돈을 주지 못했다』고 구입배경을 설명. 그러나 부동산업계는 시가 20억원짜리 집을 10억원에 계약한 것도 미심쩍고 계약금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등기를 해주는 일은 부동산거래관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여드름 없애려다 염증·흉터/약물오용땐 심장마비 유발

    ◎미용실 박피술 부작용 심하다/피부전문의 시술받는게 가장 안전 여드름을 제거할 목적으로 일부 피부관리센터나 미용실에서 박피술(Deeling·박피술)을 받은뒤 염증이나 피부탈색등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춘천의 한 피부관리센터에서 박피술을 받고 부작용을 겪은 소비자의 고발에 따라 무면허의료행위로 판정,피부관리센터가 80만원을 배상하도록 조치해 주목을 끌었다. 전문가들은 『약리작용과 시술부작용 등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피부미용사 등에게 잘못 처치를 받을 경우 흉터가 평생 남을 뿐만 아니라 약물후유증으로 인해 심장마비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피술이란 특수 약물을 피부에 발라 피부각질층을 얇게 벗겨냄으로써 노화된 세포나 잡티,검버섯등을 없애는 일종의 약물수술법.마취나 입원이 필요없고 시술뒤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지않는 편리함 때문에 피부과영역에서 오래전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돼 왔다.그러나 박피술은 화학약품으로 피부조직을 일정 깊이까지 괴사시켜치료효과를 내기 때문에 약물종류및 농도를 잘못 선택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또 같은 피부질환이라도 약물의 양과 투여방법에 따라 치료효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된 피부과전문의 조차도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 치료법이다. 박피술에 이용되는 약품의 주성분은 트리크롤로아세틴산과 페놀,살리실산등.이 중 트리크롤로 아세틴산과 페놀은 피부조직을 괴사시키고 살리실산은 피부각질을 용해하는 작용을 한다. 이화의대 명기범교수(피부과)는 『박피술은 치료하려는 질환에 따라 약물농도가 달라져야 한다』며 『페놀이 과다하게 피부에 흡수될 경우 심장마비나 신장·간장손상을 일으키고 살리실산은 피부염·발진을 유발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박피술은 실제로 여드름을 제거하는 데는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명교수에 따르면 대학병원에서 박피술이 적용되는 질환은 지루성 각화증·작은흉터·사마귀등 양성종양·색소질환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여드름치료엔 소수의 한정된 환자만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이용 된다는 것. 즉 여드름치료에는 특효약이 없으며 전문적인 피부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피술로 여드름을 비전문치료할 경우 가장 많이 오는 부작용은 염증과 흉터.과잉치료로 인해 피부가 귤껍질처럼 되거나 피부가 짓무르고 화학약품의 자극으로 피부탈색및 착색이 올 수도 있다. 경희의대 김낙인교수(피부과)는 『박피술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등이 생기지 않게 피부질환이 생기면 전문의를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전제,『피부구조나 약리작용,질환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전문인에게 맡겨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교단생활 34년 이력서/박영준(교창)

    강산이 세번 반이나 변해간 35년의 긴 세월,잠깐 다른 직장으로 외도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34년동안 오직 외길 교단을 지켜왔다. 젊음을 다 바친 지난 34년의 교직생활을 반성해 보면 내가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에게 교육애를 직접 느낄수 있는 자상한 은사가 되지 못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 엄한 스승으로 남게 한 것이 아쉽고 후회되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온 생을 아동교육에 쏟았다는 사실과 내가 걸어온 길을 항상 곁에서 지켜본 내 아들,딸이 존경심에서 교직을 택했다는 사실은 정말 보람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금까지 나의 교단생활 34년의 이력서와 같이 평소 동료와 선후배로부터 유능한 교원이라고 칭찬도 받아왔으나 현재 54세로 이제 교감 승진의 기회를 얻었으니 교원들의 승진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교원들의 각종 여론 수렴에서 자주 대두되고 있는 교원 승진제도와 원로교사 우대책은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대부분의 일선교사들이 인사이동,근무성적,표창,연수,연구,연구학교 근무등 승진점수 계산에 온 신경을곤두세우고 있어 동료간에 서로 눈치만 살피고 아동교육에 소홀하는 경향이 많은 편이며 특히 강원도 초등교사는 타도에 비교하여 교감승진 평균연령이 10세 이상이나 높은 현실이다. 교육현장에서의 문제점은 그것 뿐이 아니다.학교 교육시설과 학습자료 현황을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근래 몇년간 교육시설 투자를 한다고 했으나 아직도 모든 시설이 다른 사회기관의 시설보다 낡고 보잘것 없으며 작년부터 교육부에서 학교에 부족한 학습자료 보내기운동을 전개해 왔으나 다른 사회적인 모금에는 몇억원씩 하며 대서특보로 보도하면서 교육을 위한 모금운동에는 정말 인색한 형편이다. 대학교수를 비롯한 교직자들이 목소리로 뭉쳐진다면 교육 바로세우기는 물론 교원 처우개선 문제가 하나하나 매듭이 풀려갈 것이라 믿는다.현 문민정부도 약속대로 교육투자 우선정책이 실행될 것이라 확신한다.
  •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씨(이세기의 인물탐구:24)

    ◎타고난 미성·미모 겸비 “한국의 뮤즈”/독특한 음색·풍부한 성량 조화로 “청중매료”/완벽주의 추구… 온몸으로 최상의 무대 연출/서울대 시절 “음악계 샛별” 찬사 받아… 쪽진머리·한복 즐기고 눈부신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선 백남옥의 모습을 보고 음악평론가 김원구씨는 「한국의 뮤즈 탄생」이라고 찬사를 보낸적이 있다. 한상우씨는 「진한 색감,표현의 다양함은 듣는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야만다」고 했고 한때 유한철씨는 백남옥의 메조소프라노에 현혹되어 「수십년만에 만나볼수 있는 목소리」로 요란하게 신문의 음악평을 장식하기도 했다.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침없는 목소리는 과연 청중을 사로잡는데 추호의 빈틈도 없어보인다.더구나 목소리에 버금가는 출중한 미모는 어떤 무대에 세워도 결코 손색이 없는 조건을 이미 갖춘 예술가다. 그러나 성악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외모를 지녔다해도 그 소리가 미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이겠는가.그래서 타고난 미성과 미모를 겸비했기 때문에 백남옥은 그때마다 화제의 초점이 되는지도 모른다.아름다운 용모에 아름다운 목소리,그렇다면 백남옥은 어떤 사람인가. ○별난 성격의 소유자 그는 마음씨가 곱고 착하고 여리고 겸손하며 자신을 죽일줄 아는 전형적 동양여성의 특징은 지니고 있지 않는것 같다.그렇다고해서 거세고 드세게 만사에 나서기를 즐기는 적극적 성격이라고도 할수 없다.또는 이 모든것이 해당될수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다시 말하면 일반의 상식선에선 쉽게 설명되어 지지않는 별나고도 별난축에 속한다. 우선 싫은것도 많고 꺼리는 것도 많다.이른바 원만하고 부드럽고 무난하다고 여겨지는 구석은 찾아볼수 없다.따라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편은 못된다.오히려 좀더 가까워지지 않는 묘한 긴장과 거리감을 준다.물론 그 자신도 자신의 그런 면을 십분 알고 있다.다만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자유다.그로서는 남을 불편하게 한적도 심적 폐를 끼치려는 의도도 없다.자신은 짐짓 자연스럽게 행동한다고 믿는다.남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라곤 없다.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심 한복판을 갑자기 가로지르는 상쾌한 바람처럼 정신이 번쩍드는 기분이다. 또 꼼꼼하고 완벽하다.종이한장도 똑바로 놓여야만 안심하는 주의다.그래서 쉴새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정돈하고 챙긴다. 그의 집에 가보면 알수 있다.커튼에서 카펫,식탁보 하나에 이르기까지 봄이면 봄답게 엷은 핑크에 화사한 꽃문양,커튼이 꽃문양이면 바닥은 단색,식탁위에 놓이는 찻잔과 스푼하나에도 섬세하게 배려하는 취미다. 무대의상도 마찬가지다. 오페라나 교향악단 협연에서는 역할에 맞는 의상을 골라 입지만 그는 대부분 한복차림으로 무대에 오른다.똑바로 가르마 탄 쪽진 머리에 비녀를 지르고 손가락엔 칠보쌍가락지,자신의 음반이 국제 레코드시장에 진열됐을때 자켓의 한복차림은 「한국의 백남옥」을 한눈에 알수있게 하리라고 말한다. 곧 지루해하고 곧 새로운 것을 원해서 아침에 입었던 옷을 하오 외출에선 반드시 바꿔 입는다.하나의 물건에 오래 집착하지 못한다.다만 한번 사귄 사람과는 평생을 간다. 연주를 앞둔 연습때도 소위 끈질긴 인내심을 읽을 수 있다.테이프에 녹음해서 조목조목 결점을 찾아 그 대목을 보충하고 스스로 완벽하다고 인정되지않으면 며칠 밤이고 파고든다.바로 이 완벽주의가 일상생활에서도 그를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노래의 가사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시속에 담긴 시심을 꿰뚫어 시가 지닌 정감에 감동하고 도취돼야만 비로소 멜로디에 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시가 말하려는 테마는 물론 한구절 한구절에 녹아들 만큼 집착하여 쓴사람의 심중을 깊이 헤아려야만 직성이 풀린다.77년 KBS에서 「노산 이은상 가곡의 밤」때 이은상작시 홍난파 작곡의 「사랑」에서 그때까지 막연히 이해했던 단어들을 노산에게 또박또박 점검한 적이 있다. ○성용도아 휘호받아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의 「부대마소」나 「애제 타지 말으시오」 「생□으로 있으시오」등 방언이나 고어를 사용했을 때의 효과는 어떤가고. 하도 정교하게 물으니 노산이 기특히 여겨 이 미인에게 「성용도아(모든것이 우아하고 단정하다)」라는 휘호를 남긴 에피소드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백남옥은 까다롭고 별날거라고 오해할지 모르지만 그는 청중들에게 한아름의 꽃다발을 정성스럽게 안겨주는 자세로 노래부른다.황폐하고 무미건조한 현대의 메커니즘 속에서 첨예해진 사람들의 감정을 맑고 청량하게 다스리는듯 폭풍우 후의 찬란한 햇살같은 감동을 누구에게나 고루 베풀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사람의 예술가로서 좀더 진수의 경지를 지향하기 위해선 그가 걷고있는 모든 과정을 몇번이고 찬찬히 헤아리기를 잊지않는다.『결과는 두고 볼뿐』진정한 예술정신의 도정은 그 과정에 담긴 성실함의 무게일거라고 말하면서. 백남옥은 부친 백인엽장군과 정숙일여사의 2남2녀중 장녀.서울사대부국과 이화여중 3학년이 될때까지는 세단을 타고 경무대에 세배가고 무비카메라로 일상생활을 찍히는 소공녀로 성장했다.그러나 5·16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부모가 헤어지자 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난생처음 가난과 비극적 환경을 체험했다. 대학4학년 때인 68년 어머니의 헌신적 뒷받침으로 학생신분으로선 감히 생각지도 못할 본격적독창회를 개최,명동 시공관무대에 데뷔했을때 맑고 따뜻한 그의 메조소프라노는 오페라와 예술가곡을 부를수 있는 재능이 두드러져 음악계는 이 신성에게 대대적인 환호를 보냈었다.그때 취재하러왔던 당시 대한일보기자 정준극씨가 그의 부군이다. ○독일 국립음대 유학 단돈 6만원으로 시작한 신혼생활,사글세방으로 10여차례나 전전하는 어려운 중에도 부군은 독일유학을 서둘러 주었다.여전히 각박한 유학생활이었으나 베를린 국립음대에서의 지도교수인 바리톤 H·브라우어 박사는 고음위주의 레퍼토리로 그의 음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다른 동양권 학생들은 테크닉이 앞선다.당신은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다음해 베를린국립음대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리히트 오디션에 참가,「리케르트 시에 의한 말러의 마지막 7개 가곡을 불러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다.그의 앞길에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고 그도 왠지 세계무대 장악이라는 별빛같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때 어머니 타계소식이날아들었다.그에겐 청천벽력과도같은 충격이었다.가장 섬세한 사춘기에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했던 그로선 눈앞에 둔 성공이 허망하기만 했다.그때 귀국후 더이상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싶지않아 베를린 국립음대 오페라단 입단을 포기해버렸다. 오페라 출연등 연주제의를 받을때마다 그는 나에게 꼭맞는 무대인가를 여러모로 고려해본다.예를 들어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좋아하는 오페라이긴 하지만 기모노를 입을때 마다 강한 거부감이 생겨 서서히 그 역할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또 83년 한 방송국이 주관한 8·15경축 음악회에서 「민족의 해방을 경축하는 자리」에 가슴이 파진 드레스를 입는 것이 송구스럽게 느껴져 그때부터 한복을 고집하게 되었다. 80년초 큰 병을 앓고난후 그는 예술과 인생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어떤 부분에서도 별로 후회되는 일은 없었다.그가 한 일은 늘 옳았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는 사랑하는 남편과 다 자란 딸(은진 서울대미대),하루종일 화초를 가꾸고 여전히 집안의 구석구석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면서 그런 생활이 음악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알고있다.그의 생활은 결국 그의 예술을 지켜주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를 필요로하고 그를 보고자하는 사람들에겐 그가 지닌것만큼 주저없이 나누고 싶어한다.군민을 위로하는 군민음악회나 구민음악회,장애자를 위한 예술학교 기금모금 자선음악회등 크고 작은 음악회에 기꺼이 참여한다.다만 왼손이 한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 화려한 그의 이면에 이런 면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작은 음악회라도 「이무대는 나의 첫무대」 「언제나 새로운 최상의 무대」여야 한다는 각오로 혼신을 다한다.풍부한 성량과 날이 갈수록 윤기를 더하는 투명한 목소리,온몸이 악기가 되어 자유자재로운 기교로 노래부르지만 그에게서의 예술은 단순한 재능과시나 화려한 영광을 위한 기교는 더이상 아니다. 「예술은 인간 가슴의 심연에 빛을 보내는 일」,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완벽추구와 긴장을 잃지않는 백남옥의 노래는 바로 그 청중의 가슴에 던지는 한줄기 빛처럼 따사롭게 흘러들고 있다. □연보 ▲서울 출생 ▲1965년 서울예고 졸업 ▲1969년 서울대 음대 졸업 ▲1973∼76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가곡과 오페라 전공) ▲1976∼78년 중앙대·서울예고 출강 ▲1979∼현재 경희대 음대 교수(이화녀중때 김학근,예고때 오현명,서울대 음대때 이정희,베를린국립음대 때 브라우어 교수 사사) ▲1964년 서울대 음대 주최 제15회 전국남녀학생음악경연대회 특상 입상 ▲1966년 제16회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 1위 입상 ▲1968년 제1회 독창회(명동 시공관) ▲1969년 오페라 「순교자」(국립오페라단) ▲70,71,72년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국립오페라단 김자경오페라단)〃 모차르트 오페라 「마적」(국립오페라단),비제 오페라 「카르멘」(김자경오페라) ▲1974년 베를린 국립오페라단 오디션1차합격,베를린 국립오페라단 퐁키엘리 4막오페라 「라조콘다」 ▲1975년 독일유학시 베를린 국립음대 오케스트라 말러가곡 솔리스트(리케르트시에 의한 말러 마지막 7개의 가곡으로 프랑스의 파리 툴르즈 바이안느 지방 순회연주) ▲1976년 동아일보·동아방송주최 귀국독창회(류관순기념관),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국립오페라단) ▲1977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김자경오페라단) ▲1985년 음악의 소극장 운동을 위한 제1회음악회(현대극장 소극장) ▲1986년 독창회(호암아트홀) ▲1986년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호암아트홀) ▲1987년 오펜바흐 가곡 「호프만의 이야기」(김자경오페라단) ▲1989년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투테(여자는 다 그런것)」(김자경오페라단) ▲1990년 캐나다 토론토,미 워싱턴등지 독창회 ▲1991년 8·15경축음악회 미애틀랜타 휴스턴 시애틀 워싱턴등지 순회독창회 KBS교향악단,시향10여회협연,지방연주 20여회,KBS·MBC­TV 「봄맞이 가곡의 밤」「8·15경축음악축전」독일문화원 주최 「독일가곡의 밤」해마다 참가. 「백남옥 우리가곡 모음」(78년)「애창곡집」(79년)「우리가곡집」(86년)「매혹의 목소리 백남옥 우리가곡」CD출반(92년)이상 성음,「백남옥 우리가곡」LD출반(93년 삼성)외.
  • 자리와 수분(외언내언)

    민자당의원들의 재산공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복잡하고 조잡하다.그들은 정치인이다.재벌이나 장사꾼도 아닌데 보통 10억 20억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단위가 높아져 이제는 수십억에서 백억대까지,1인당 평균 25억이란 숫자까지 나온다. 이런 와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회창감사원장의 공관입주 「거부」다. 『지금 살고있는 구기동집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굳이 규모가 크고 호화스러운 공관으로 옮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지 9백70평에 건평 2백평 정원에 골프연습시설물을 갖춘 벽돌 건물.신문에 난 흑백사진을 보면 호화주택보다는 무슨 비밀집회를 위한 아지트나 요색같은 느낌이다. 국가의 예산집행을 감독하고 공직복무자세를 밝게 「사정」해야 하는 직책에 비해 어딘지 어둡고 수상한 구석마저 풍긴다.이감사원장으로서도 그 어둠침침한 느낌이 자신의 직책과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과연 옳고 그름을 바로 가려 나가야하는 감사원장다운 자세다. 골프연습장뿐 아니라 테니스코트에 풀장까지 갖춘 호화주택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것을 선호한다면 그들은 이미 관리는 아니다.감사원장의 공관은 그것이 「관저」이고 그 관저에 살아야할 관리가 「관저와 직책이 서로 걸맞지 않음」을 드러내준데 있다. 공관이란 관직에 있을때 임시 머무는 우거에 불과하다.정사를 연장시키는 구실로서 건물이 과시될 필요는 없다. 한낱 서생이 자신의 출세를 실감하고 자랑하고 싶다면 「고대광실」일수록 우쭐할지 모른다. 누추해서 업무에 불편하다는 논리는 빈약하다.13평짜리 아파트라도 대쪽같은 정의감으로 자신의 소신을 얼마나 올바로 펴나가느냐가 문제다.모든 나라가 「살림줄이기」에 허리를 졸라매는 시기이다.지나치지 않고 알맞게 행동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다.내자리와 자리에 맞는 분수를 알수 있어야겠다.
  • “43년만의 귀향” 새 정부에 감사/송환소식접한 이인모씨 표정

    ◎“통일매듭 푼것”… 사경헤매던 얼굴에 화색/전향거부한채 34년간 복역… 88년 가석방 『모든 문제를 초월해 민족적인 측면에서 나를 고향으로 보내주기로 결심한 새정부에 감사한다』 미전향장기수 출신 이인모노인(76)은 10일 상오 입원중인 부산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학병원 932호실에서 자신을 무조건 북송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을 전해 듣고는 감격해 마지않았다. 지난달 13일 폐렴등의 증세로 입원해 한때 사경을 헤매기도 했던 그의 얼굴은 송환소식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이노인은 시종 환한 표정으로 『북에 있는 아내와 딸,손자·손녀들을 빨리 보아야 할텐데』라고 되뇌었다. 이노인은 우리 정부의 결정을 『그동안 남북 양측이 고집해 오던 이기적인 관점을 버리고 대국적인 측면에서 통일의 매듭을 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송환을 계기로 남북이 모두 억류하고 있는 사상범들을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길 바랐다. 이노인은 지난 50년 인민군 문화부 종군기자로 일하다 52년 12월 부상을 입고 국군에 체포된 뒤 34년동안 복역했다. 그는 장기복역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전향을 거부했다. 이노인은 지난 88년 10월27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경남 김해군 진영읍 신용리 483 김상원씨(42)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자신의 방 벽에 부인 김순임씨(66)와 딸 현옥씨등 가족의 사진을 걸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으며 함경남도 풍산군 자신의 고향에서 보내던 어린 시절을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러다 지난달 10일 감기증세로 근처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되자 3일만에 부산대병원으로 옮겼었다. 담당의사 박순규씨(48)는 『이노인의 증세가 입원 당시 폐농양으로 진전돼 있어 매우 걱정했다』면서 그러나 요즘 많이 좋아져 고향길을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하오1시10분쯤 문익환목사가 이노인을 문병,하루빨리 나아 고향의 가족과 만나라고 위로했다.
  • 인왕산 열리다(외언내언)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하는 속담이 있다.하는 뜻으로 쓰인다.한국의 산천을 누비는 호랑이라면 반드시 인왕산에를 다녀가야 한다는 옛말에 연유하는 속담이다.자기를 인왕산에,상대방을 호랑이에 비기고 있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북악이다.안산은 남산이고 좌청용이 낙산이며 인왕산은 우백호.우람하여 남성적인 산세이다.본디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청룡·우백호로 삼으라고 건의했다.그것을 정도전이 반대한다.그렇게 하면 궁궐이 남향 아닌 동향이 되는데 동향으로 지은 궁궐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무학은 내말대로 않을땐 2백년 뒤 후회한다고 「경고」 했다.그게임진왜란이라고들해석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글에 의하면 옛날엔 지금보다 숲도 울창했던 듯하다.그랬으니 호랑이가 다녀가는 「성지」로도 되었겠지만.이런 인왕산 경관을 충신 성삼문도 「인왕모종」이란 제하에 노래한다.『인왕산 해 떨어지니/종소리 때를 알리네/책상머리에 숨어있는데/온 성안은 밤중이로세』.주변에 명승지·고적지도 적지 않다.바위산임으로 해서 이름있는 바위들도 많고.중종과 신비의 애틋함에 얽힌 치마바위,태조와 무학의 상이라는 전설을 담고 있는 선바위,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붙임바위 등등. 어제 닻을 올린 새 정부는 곧바로 인왕산의 통제를 풀고 청와대 앞길도 활짝 열어 놓았다.인왕산의 경우 88년에 약수터에 한해 일반인 출입을 허용했던 것인데 이번에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68년의 1·21사태 이후 25년만에 취해진 일.청와대 주변의 교통사정도 한결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이 막고 하여 그동안 국민과의 정신적 거리를 멀게 했던 곳이 청와대였다.그 앞길을 활짝 연다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다.나라의 앞길도 열린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그 주변 동네의 불이익도 차츰 풀려가게 돼야 할 것이다.
  • 섬 아이들 위한 밀알되어/권혁호 경북 울응국교 교사(교창)

    검푸른 망망대해 높은 파도를 가르기 7시간,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배멀미에 지쳐버린 상태다. 저녁 놀이 수평선을 넘어갈 쯤 멀리 하얀 눈으로 덮인 울릉도가 시야에 나타나고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불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연락선이 부두에 닿자마자 동료 직원들의 반가운 마중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뱃길에 지쳐 버리고 한편으로는 후회스럽기도 했던 내 가슴을 훈훈히 녹여 주던 그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순박한 인심 때문일까? 아니면 살기가 좋아서일까?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남들은 왜 울릉도에서 고생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괜히 울릉도가 좋다.눈 덮인 고도의 첫 인상이 좋았고,따뜻한 차 한 잔의 인심이 좋았다.어딜 가나 솟아 오르는 물은 모두가 생수며 약수다.죽도와 관음도,삼선암,공암,촛대암 등의 기암과 해안선마다 깎아 지른듯한 절벽위에 기암괴석이 솟아있어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눈더미 속에서도 동백꽃이 만발하고 고비나물과 땅두릅 등의 산채는 더할 수 없이 좋다. 그러나 그보다 낙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는 좋은 것이다.말로만 듣던 그 흔한 기차 한번 타 보지 못한 아이들이기에 변변한 놀이시설 하나 없어 휴일이면 바닷가에 나가 낚시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기에,아버지는 오징어잡이 나가시고 엄마가 바쁠때면 오징어 귀치기,발떼기를 돕는 아이들이기에,섬이 좁아 갈곳은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픈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말린 미역취 다발 속에 귀한 고비나물 한 줌 넣어 빛 바랜 신문지에 곱게 말아 스승의 날에 선물을 해 주던 순박한 아이들이 있어 좋은 것이다. 흰 눈 덮인 청순한 섬 울릉도 만큼이나 때묻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라도 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에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또 내일을 기약해 본다. 오직 조그마한 나의 바람은 우리 섬 어린이들이 희망의 큰 나래를 활짝 펴고 아직은 낯선 동해 건너 먼 곳으로 훨훨 날아 스스로 간직한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울릉도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 “안전정책은 대안 없었던 선택”/퇴임 이틀앞둔 최각규경제팀 공과

    ◎임금 고졸상승 경기침체 불러/“총수요 집착 성장 감퇴” 비판도 6공 마지막 2년의 경제를 담당하고 물러나는 최각규경제팀의 재임기간만큼 경기논쟁이 많았던 시기도 찾기 어렵다. 안정에 집착해 성장잠재력을 죽였다는 비판이 재임기간내내 있었다.지난 연말부터는 이른바 「급브레이크론」도 등장했다.기업체질을 과신,경기를 급랭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했다는 비판이다. 퇴임을 이틀 앞두고 최부총리는 안정정책이 대안없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새삼 회고했다.다만 미시산업정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쉬움을 지적했다.산업정책을 통해 경기낙폭을 줄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후회다. 최부총리팀은 총수요관리,기업경쟁력강화를 정책축으로 일관했다.취임했던 91년 초,경제는(90년기준)성장 9.3%,물가 8.6%,국제수지적자 21억달러였다.92년말 성적표는 물가 4.5%,성장 4%대,국제수지적자 40억달러대로 짜여있다. 『경제에서 최선은 고성장·저물가·국제수지흑자이고 최악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기업경쟁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가 일부의 비판을 못이겨 총수요관리를 포기했더라면 저성장 고물가의 스테그플레이션과 국제수지적자확대를 가져왔을 것이다』 최부총리는 지난 몇년간의 우리경제 어려움을 오일쇼크에 견줘 「임금쇼크」로 규정했다.민주화바람과 함께 온 고임금행진이 경제를 망쳤다는 것이다.『4년에 걸쳐 임금상승률이 생산성향상범위를 넘었다.기업의 경쟁력이 있을리 없다.기술개발로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그런속에 과소비 광풍이 왔다』그는 취임과 함께 임금억제를 최우선과제로 역설했지만 이를 현실화시킬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고,92년에야 경제위기감을 밑에 깔고 총액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임기간중에 수많은 기업도산이 있었다.반면 물가가 잡혔고 임금인상자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거품이 많이 걷히면서 어느정도 기업체질도 강화되고 있다.이런 것들이 앞에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전체정책에 대한 옳고 그름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안정화 일변도가 장기적으로 「쓴약」이 돼 지속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인지,일부의 비판대로 성장잠재력을 죽인 것인지는 시기적으로 새정부의 경제팀에 의해 검증받을 수 밖에 없게 돼있다. 최부총리는 아쉬움으로 두가지를 꼽고 있다.앞서의 미시산업정책에 대한 미진함이 하나고,또 하나는 경제팀 조직이 경제가 어려울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는 불협화의 경험이다. 『총수요관리책을 지속하되 지난해 하반기이후 산업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보완하려했다.그러나 이것이 재벌규제를 위한 「신산업정책」을 쓰려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부총리는 경제팀내 협조부족에 대해서는 현직을 떠난후에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했다.다만 경제팀의 기능과 조직을 어떻게 개편해야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알게됐다고 했다. 최부총리는 4∼5월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에 가 경제공부를 할 계획이다.한국경제에 대해 압축성장의 좋은 점만 연구를 해왔는데 그는 선진경제에 진입하기위해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장애에 대해 연구할 생각이라고 한다.
  • 철새정치인(외언내언)

    『조맹이 귀하게 한 것은 조맹이 또 천하게 만들 수 있다』(조맹지소귀,조맹능천지).조맹은 진나라를 쥐고 흔드는 실력자였다.그 사람에 의해 출세를 한 사람은 그 사람에 의해 몰락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맹자」(고자상)에 쓰여 있는 말이다. 정주영국민당대표가 정계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을 놓고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그에 의해 「귀하게」될양으로 의리고 체면이고 내동댕이치고 그의 날개죽지 아래로 모여들었던 이른바 「정치후조」들.「조맹」의 후퇴로 당 자체가 흔들거리자 무엇보다도 그 후조들의 처지가 처량해진다.그야말로 꿩 떨어진 매의 신세.전에 몸담았던 당으로 되돌아간다 하기도 어려운 일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물러가는 「조맹」이 그 후조들 걱정까지 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불정한 설화를/정사인양 오식한다』고 꼬집었던 함윤수시인의 시 「후조」.「정치후조」들로서는 나름대로의 「후조의 변」이 없을 수는 없겠다.하지만 그런 변명은 「국민정서」쪽에서 볼 때 함시인의 지적마따나 「불정한 설화」이며 「정사인양 오식하는」일일뿐이다.유권자들 눈에 좋게 비치는 것은 아니다.「조맹」에 의해 희망을 가졌던 그들인 만큼 「조맹」에 의해 하게 되는 낙담도 크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고 원망을 한다 하여 보상될 일은 아니다.역시 경홀했던 자기자신의 처신에 대한 성찰부터 하는 것이 옳은 순서일 듯하다. 애당초 「돈의 힘」으로 이루어진 모임이 국민당이었다.또 그 돈의 힘으로 해서 잠깐사이에 불끈 일어서서 제3당으로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금배지 후조들에 대해 실망이 컸던 이유중 하나도 돈많은 당으로 돈때문에 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있었던 것.그러나 「돈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수많은 「후조」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친다.「정은 정야」라 했다.우리 정계가 그 참뜻을 느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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