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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기업비밀이 새나간다/魯柱碩 기자·경제과학팀(오늘의 눈)

    기업비밀은 물론 국가연구기밀까지 속수무책으로 새 나간다.우리 경제가 IMF체제에 들어선 이래 기업,은행과 정부기관까지 앞을 다퉈 외국 컨설팅업체에 경영진단과 구조조정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정확한 액수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올 한 해 동안 우리 업계에서 외국 컨설팅 업체에 내는 돈만 해도 대략 1,000억원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7.5%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의 경영주체 선정을 맡은 미국의 A.D.L사는 협상은 제자리 걸음인데도 비용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100만달러의 실사비용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현대와 LG 양사는 평가업체선정을 놓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전경련의 중재에 따라 이 회사를 선정했다.한 관계자는 “이럴 줄 알았다면 10분의 1도 안되는 비용으로 국내 업체에 맡기는 것이 나을 뻔했다”며 후회하는 눈치다.컨설팅업체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영권이 왔다갔다하는 현실도 현실이려니와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에 불평 한마디 못하는 우리의 처지가 더욱 서글프다. 얼마 전 과학기술부는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25개 출연연구기관의 구조조정을 미국 매킨지사에 맡겼다가 구설수에 올랐다.교육과 함께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일컬어지는 과학기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내줬다는 지적이었다.더욱이 우리 업체들은 컨설팅업체가 비밀을 지켜주리라고 철석같이 믿는다.계약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철저하게 비밀유지를 약속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가업체들의 생리를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한국에서 맹활약중인 한 미국계 유명 컨설팅업체는 지난해 컨설팅을 원하는 국내 기업이 2만달러만 내면 희망하는 경쟁기업의 연구개발 전략은 물론 상품개발 전략까지 팔아 치웠다.또 다른 한 유명 컨설팅사는 ‘따끈따끈한’ 기술정보에다 최고 경영진의 신상정보까지 끼워 제공했다.이런 식의 정보세일이 다반사다.한국경제의 모든 것이 외국 컨설팅업체 앞에 발가벗겨진 현실은 물론 귀중한 외화가 낭비되는 현실도 개운찮다.마치 ‘곳간’열쇠를 남의 손에 쥐어준 느낌이다.
  • 洪淳瑛 외교 ‘21세기 한국의 외교정책’ 강연 요지

    ◎민주주의·시장경제 바탕 ‘계몽된 세계관’ 가져야/확고한 안보 토대 구축/대북 포용정책 지속 추진/독자·창의적 사고 형성/세계 중견국 위상 정립해야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11일 오후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21세기 한국의 외교정책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다음은 강연 요지. 21세기를 여는 한국의 외교정책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먼저,세계화시대에 책임감있고 유능한 행위자가 되기 위해선 우리는 눈앞의 준거기준을 뛰어넘어 보편적 가치 및 규범에 충실한 ‘계몽된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과거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그러나 우리는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민족과 어울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이것이 세계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다.세계화 시대의 보편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우리는 외견상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민주적 가치를 따르는 것을 배워야 한다.시장경제의 규칙과 절차도 수용해야 한다.우리는 최근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OECD에 가입한 것을 후회해서는 곤란하다.오히려 세계가 믿을 수 있는 회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독자적 사고도 형성해야 한다.냉전 최전방에서 우리는 외교무대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우리는 지금 주변 4강과 모두 친교를 맺고 있고 아시아에서 민주화 및 시장경제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정책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는 우리 외교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21세기 한국은 아시아의 지역강국이자 세계중견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한국은 자신을 세계무대의 주행위자로 여겨서는 안되고 동아시아의 중견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동아시아가 번영할 때 우리도 안전할 것이다.미국 주도의 세계질서하에서 우리 외교정책은 미국의 세계전략 맥락안에서 펼쳐져야 한다.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이 한국의 지역전략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이럴때 한국은 독자적 사고와 능숙한 외교를 발휘해야 한다.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우리는 ASEAN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APEC과 같은 역내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EU는 국제문제의 중요 축이다.EU와의 긴밀한 협력은 우리 주변 4강과의 관계와 균형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장려할 만하다.조국의 평화통일 달성은 우리 외교정책의 가장 근본적 동기로서 계속 유지될 것이다.그러나 분단 양 당사자는 통일의 구체적 방법과 통일 후 양측의 공생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후 비로소 통일과정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확고한 안보의 기초 위에 지속적인 포용정책의 추진만이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다.통일한국은 기존 국경선을 존중하고 재래식 무기에 한정된 군사력을 보유할 것이며 비핵화를 지향하는 평화국가가 돼야 한다. 외교는 통치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다.외교과제는 국정과제의 중요한 부분이며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위 외교관이다.그렇기때문에 과거 국내정치세력들은 외교현안을 국내 정치목적에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사실상 외교정책은 정부만의 배타적 영역이 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며 집권당과 야당 진영의 사려깊고 책임감있는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그러나 일단 정책결정이 이뤄진 후에는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즉,효과적인 외교가 되기 위해서는 초당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 “銃風은 야당 목조르기”/李會昌 총재 격앙

    ‘총풍(銃風)사건’으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다시 열을 받았다. 1일 당사 10층 대강당에서 열린 신임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李총재의 노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여야 총재회담 이후 대여(對與) 공격을 자제해온 李총재는 평소와 달리 흥분한 어조로 여권을 싸잡아 비난했다. 李총재의 감정이 이처럼 격해진 것은 지난 8월31일 전당대회를 치른 당일 오후 핵심 측근인 徐相穆 의원의 ‘세풍(稅風)’관련 사실이 터져나온 데 이어 첫 총재단회의를 연 30일 총풍사건 공판에서 자신과 동생 會晟씨의 연루 사실이 불거져나왔기 때문이다.특히 會晟씨에 대해서는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터여서 충격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李총재는 이날 “지금은 우리 당이 다시 출발하고 비상하려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경각심을 일깨운 뒤 “이럴 때 여당이 우리 당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은 ‘3金’시대의 구태정치와 다름없다”고 강한 톤으로 여권을 성토했다. 지난달 10일 열린 여야 총재회담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그는 “여야 정상화와 국민여론,여권의 간곡한 소망에 따라 총재회담이 이뤄졌다”고 소개하고 “그래서 정국이 잘 풀려가나 했더니 또다시 총풍사건을 빌미로 총재인 나에게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고 임명장을 받은 신임당직자들을 자극했다. 李총재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더욱 격한 용어를 쏘아댔다.“우리는 여야 정상관계를 갖고 민생해결에 머리를 맞대기를 희망했지만 여당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대화로 정국정상화를 기하고 숨을 고르다 다시 우리당의 목을 조르는 행태를 되풀이해왔다”고 케케묵은 감정을 노출했다.
  • 서울 11차 동시분양 오늘부터 청약/부동산

    ◎‘노른자위’ 포함 올 최대물량 쏟아져/17개 지역 5,219가구… 대단지 ‘빅3’ 관심/청약 양극화…순위 상관없이 선택폭 넓어 올해 서울에서 사실상 마지막 분양인 11차 동시분양이 2일부터 청약에 들어간다. 최근 대우,LG,현대 등 대형 건설업체들의 일부 인기지역 아파트가 청약율이 100%를 상회하는 등 신규분양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자 각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사업물량을 올해안에 소화하기 위해 쏟아내는 바람에 올들어 최대물량이 공급된다.11차 동시분양의 특징과 청약전략 등을 소개한다. ●특징 올해 서울에서 사실상 마지막 분양인 11차 동시분양물량이 17개지역 5,219가구에 달해 올들어 가장 많은 곳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분양되는 셈이다. 특히 이번 분양에는 청약자들이 기다리던,입지여건이 좋은 곳에서의 분양이 많은데다 최근 우리나라 경기가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일것으로 전망돼 어느때보다 청약자들이 관심을 갖고 청약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물량인 만큼 상도 신동아,공릉2지구 효성,미아 SK 아파트 등의 대단지 아파트,즉 ‘빅3’가 한꺼번에 분양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도 청약율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가 속출해 미아 SK아파트는 광통신망을 설치하고 1층과 꼭대기층의 중도금 전체를 입주때 내도록 하는가 하면 공릉2지구 효성아파트와 노량진동 상도 신동아파트는 1층과 꼭대기층에 대해 분양가를 700만원,1000만원 싸게 책정했다. 또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창동 현대(현대산업개발)와 신도림동 대림아파트에 안목치수(벽체 안쪽 경계선 사이의 거리)가 적용돼 전용 25.7평형의 경우 실내공간이 예전보다 2평 정도 넓다. ●청약전략 최근 들어 용인죽전지구와 분당과 강남 일부지역에서 기존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로 반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IMF로 인해 폭락했던 아파트가격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있어 현재 시점이 최저가격으로 내집마련의 절호의 기회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미 아파트 분양가격이 자율화 되었으므로 주변시세보다 아주 저렴하게 분양받을 수는 없지만 아직은 순위에 별 상관없이 소비자가원하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되면 주택업체들은 분양가격을 인상할 것이 뻔하므로 아파트가격이 본격 상승세를 보이기 전에 분양받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순위내 청약자들은 인기지역으로 몰리면서 업체별로 청약양극화 현상은 이번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양받는 아파트는 입주 시점에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많아 아파트 가격도 상승세를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따라서 이번 최대 분양물량분 중에서 자금상황,주변환경,앞으로의 발전가능성 등 자기여건에 맞는 아파트를 분양받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약과 관련,부동산투자클럽21((02)3411­9100,천리안 유니텔 GO 21C 하이텔 GO 21C 나우누리 GO CLUB21),내집마련정보사((02)934­7974,천리안 GO KYJ) 등 컨설팅회사를 활용하면 자신에 맞는 청약전략을 소개받을 수 있다.
  • ‘YS 부자 증인 채택’ 3당3색/국민회의,예우차원 부정론 우세

    ◎자민련,“절대 양보 不可” 강경입장/한나라,청문회 무산 불사 배수진 이번 경제청문회의 최대 관심사는 金泳三 전 대통령과 차남 賢哲씨의 증인채택여부다.여야는 현재 국정조사특위의 위원 배분과 위원장문제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속내사정을 들여다보면 ‘협상교착’의 원인은 바로 YS부자의 증언를 둘러싼 여야간 현격한 입장차이에 있다. 국민회의는 25일 총재단회의를 열어 ‘성역없는 증인채택’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그러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金전대통령 부자의 청문회 증인 채택에 대해서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당내에서는 YS를 직접 증언대에 세우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한 고위당직자는 사석에서 “국정최고책임자였던 사람인데 예우를 해야하지 않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민주대연합’구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지적이다.그러나 ‘5공청문회를 경험한’ 국민여론이 부담이다.鄭東泳 대변인은 25일 “국민들의 71.9%가 YS의 조사에 찬성하고 있다”며 모 여론조사결과를 소개했다. ‘YS부자 증인채택’을 주장하는 기류도 만만찮다.金榮煥 정세분석위원장은 “YS가 빠진 청문회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한 당직자는 “金전대통령은 야당시절 백담사에 가 있던 全斗煥 전 대통령의 청문회 증인에 합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자민련은 ‘YS부자의 증인채택’이라는 당론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상태다.민주대연합의 고리를 끊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하지만 朴泰俊 총재가 최근 “국가체면을 생각해야 한다”며 다소 융통성을 보여 金전대통령의 ‘간접조사’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강경하다.어떤 경우이든 ‘YS부자의 증인 채택’은 안된다는 입장이다.민주계의 ‘심상치 않은’움직임이 이미 당지도부에 전달된 상태이다.상도동과의 창구역할을 하는 辛相佑 국회부의장은 이날 “YS는 올봄 검찰에 서면증언서를 제출한 뒤 위증이라는 얘기 나오자 상당히 후회했다.이번에는 비디오든 서면이든 안된다는 생각이다”라고 상도동 기류를 전했다.한나라당은 YS의 증인채택이 불가피할 경우 ‘청문회 무산’이라는 배수진을치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
  • 만물상(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2)

    ◎조물주가 기암괴석 만들고 萬物草에서 생명 빚어진듯/天仙臺서 통일될때까지 仙藥으로 잠들었으면 ●神仙의 나라 萬物草 어려서 듣던 옛날 이야기에는 신선의 나라가 곧잘 나왔다.그것은 지어낸 전설이 아니라 분명코 신선들이 사는 곳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그렇다면 사람이 사는 속계(俗界)와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가 갈라지는 곳이 있을 터인 즉,그곳이 과연 어딘가 싶었더니 바로 한하계(寒霞溪) 찬 안개의 골짜기가 이루는 곳이요,여기를 벗어나면 조물주가 세상을 빚을 때 처음 만물의 본(草)을 떴다는 만물초(萬物草)의 경내(境內)가 펼쳐지는 것이다. 조선조의 시인들과 최남선·이은상의 글과 시에서도 모두 ‘만물초’로 이름했는데,초(草)가 ‘상(相)’으로 바뀌었는지 여기저기 ‘만물상’으로 박혀 나온다.아무튼 이곳에 와본 눈밝은 이들이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기암괴석들의 형상을 헤아리다 못해 조물주의 손길이 맨처음 여기에 작품의 모형을 만들어놓고 그 하나씩 생명을 넣어서 세상에 내보냈다고 짐작했다니 내 어두운눈으로 어찌 아니다 하겠는가. ‘처음 하늘과 땅이 열릴 때 이 산에서 비롯되었고/사람이 빚어질 때 만물초에서 태어났으리’.조선조 시인 유의문은 노래했고 장자(莊子)가 제물론(齊物論)에서 ‘하늘과 땅은 손가락 하나이고 세상만물은 말(馬) 한마리’라고 한 것을 비웃어 역시 조선조의 한장석(韓章錫)은 ‘세상만물이 작은 구멍의 한 마리의 말이라니 황당하기 그지 없구나/내 후회하노니 내 제물론을 읽은 것을’하고 읊은 것이 바로 만물상 앞에서였다.그러고 보니 내가 더 보탤 말이 없다. 최남선은 ‘심심밀밀도 하거니와 곡곡절절도 하고 중중첩첩도 하거니와 층층구구도 하고 기기묘묘도 하거니와 환환허허도 하신지고 히히! 저렇게까지 하실 것이 무엇이리 조화의 묘기가 또한 과하시다는 생각이 납니다’고 그의 ‘금강예찬’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조화로움을 그려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이것이 신선나라의 문지기인가,삼선암(三仙岩)이 하늘을 뚫는 세 기둥으로 불끈 솟아 ‘너 어디라고 왔느뇨?’라고 불심검문을 한다. ●여기서 한 개 돌이었으면 겸재 정선,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의 그림에서 본 삼선암은 월명수죄라는 한처녀의 초대를 받은 마을노인들이 술과 산해진미에 취해 사흘만에 돌아왔더니 200년이 흐른 뒤더라는 전설과는 달리 큰 불꽃이 솟구치는 것도 같고 창끝을 세운 것도 같은 장엄한 돌기둥이 좀처럼 힘이 센 붓끝이 아니고는 그려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삼선암과 마주 서서 키를 재기라도 하는 듯 남근(男根)을 떠올리게 하는 귀면암(鬼面岩)이 한껏 얼굴을 치켜들고 있다.이름이 귀신낯짝일진대 무슨 저런 도깨비가 있을까 싶은 게 아무렴 사람이면 어떻고 도깨비면 또 어떠랴. 돌층계를 딛고 삼선암에 오르면 만물상이 수천수만의 꽃봉오리인 듯 그 잎잎이 날개를 펴는 장관이 펼쳐지고 이제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다다랐음인가 천선대(天仙臺)가 하늘문 밖에서 손짓을 한다. 저 돌의 돌들,저 봉우리의 봉우리들,천만년전 이 만물상이 태어날 때 어디 사람의 발길이 닿는 것을 허락하였으랴.지금 이 금강산나라의 사람들 저마다 가슴에 서로 다른 슬픔,서로 다른 생각,서로 다른 기쁨들을 품고 와서 돌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물소리에 흘리는 것이나 지금 숨어서 보고 있는 신선들은 우리네 왜 이곳에 오기를 소원했던가,여기 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낱낱이 듣고 보고 있을 것이다. 내려가고 싶지 않다.이왕 신선의 나라에 왔으면 그들과 한 판의 바둑이라도 두고 싶다.아니 선약(仙藥)의 술과 안주로 한 200년쯤,아니면 통일되는 그날까지라도 푹 잠들고 싶다.칠명수좌여! 그대의 고운 손길로 나를 붙잡아다오,나도 이 만물상의 한개 돌이 되고 싶다.봄,여름,가을,겨울 새롭게 태어나는 돌이 되고 싶다.
  •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유전적 요인·사별·실직 등 원인

    ◎남성 5∼12%·여성 10∼25% 평생 한번쯤 경험/약물·상담으로 70∼90% 치료가능/환경 변화주고 긍정적 사고 갖도록 과거는 후회스럽고 현재는 보잘것 없다는 생각에 비참하다. 미래도 비관적으로만 느껴진다. IMF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겪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남성의 5∼12%,여성의 10∼25%가 평생 한번쯤은 경험한다는 흔한 정신상태. 잠깐 지나치는 경우엔 문제될 것이 없지만 2주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는 병적인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원인◁ 가족 중에 우울증이 있을 경우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전적 요인을 가진 사람이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 처하면 뇌신경세포간 정보전달 물질이 균형을 잃게됨에 따라 우울증이 발병하게 되는 원리다. 사람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실직 등이 꼽힌다. 또 햇빛의 양이 감소되는 계절적 요인에 따라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 발병하는,계절성 우울증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치료◁ 완치율이 70∼90%로 제때 치료만 받으면 정상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않는다. 그러나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다른 사람이 알 것을 꺼려 숨기는 바람에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하고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약물의 부작용을 지나치게 의식해 상태가 좋아지면 바로 복용을 중지,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최근 부작용을 줄인 치료약이 많이 개발돼 있다. 우울증 치료법으로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잡아주는 약물치료나 상담을 통해 부정적인 인식을 교정하는 인지치료가 주로 활용된다. 심한 경우엔 뇌신경에 고압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때맞춰 서울시내 3개대학에서 ‘우울증 극복하기’무료강좌를 열고 있다. 지난 20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24일 고대안암병원 8층 대강당에서,27일 강동성심병원 15층 강당에서 일반인 상대로 강좌가 열린다(각 오후 2시부터) ◇도움말: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02)760­2451,연세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02)361­6104,고려의대 정신과 이민수 교수(02)920­5354 ◎우울증 예방법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스스로의 반응을 분석한다 ●회피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생활환경에 변화를 준다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선택과 포기를 분명히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고 평소 건강유지에 애쓴다 ●스스로를 구속하는 자기만의 규칙에서 벗어난다 ●대화하는 습관을 갖는다.
  • 腐敗學 교육을 시작하자(林春雄 칼럼)

    학교 동기생중에 아주 출세한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가 공직에 있을때 거액의뇌물을 받은 죄목으로 감옥살이를 하다 풀려난 일이 있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면회를 가려했으나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실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보석으로 나와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전화로나마 위로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전화를 걸려하니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 일로 낯을 들지 못하고 있을 사람에게 불쑥 위로랍시고 전화를 하면 위문이 폐문이 될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목소리도 낮추고 위로의 말도 어디서부터 할지 메모를 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들었다. 마침 친구가 전화를 받기에 내가 누구인지를 밝힌 다음 더듬더듬 말을 꺼내려 하는데 친구가 허!허!허! 너털 웃음을 웃으며 어찌나 호방하게 전화를 받는지 메모대로 얘기를 이어 갈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화는 엉망이 되어서 어물어물 전화를 끊고 말았다. 전화통을 내려 놓고 전화건 것을 한참이나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국민들 부정·부패문제에 관대 대통령하면서 기천억원 씩을 꼬불쳐 놓았다가 감옥에 간 全斗煥 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이 출옥하던 날 풍경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얼마전 4,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잡혀갔다가 풀려나온 전직 국회의원의 출소장면도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그 사람의 표정은 막 국회의원에 당선이라도 된양 밝았고 더 없이 당당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부정·부패문제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다 보면 표적사정을 얘기한다. 표적 사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표적사정이면 나머지 부정한 사람도 빠짐없이 잡아내라고 해야지 명백히 범법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만 억울하다는 식은 곤란하다. 앞선 나라에서는 점심 한끼 먹는 것도 문제가 되는 세상인데 우리는 아직도 전세기에 살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 문제에 대한 교육을 해야한다. 교육을 한다고 부패한 공직자가 아주 없어질까마는 우리 국민들은 부패문제에 의외로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청백리 얘기는 가끔 책에서 읽었고 통쾌한 암행어사 출두 장면은 극장에서 보았으되 부정·부패문제를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일이 없다. 학교에서,가정에서 부패학(腐敗學)을 교육해야 한다. 부패문제는 바로 국민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부패의 부도덕성을 교육해야 하고 부패가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부패가 국민 모두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교육해야 한다. IMF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한보와 기아 사태가 다 부정·부패에서 비롯된 일이다. 뇌물은 정치인,공무원,은행원들이 받았지만 그 천문학적인 빚은 모두 국민의 몫으로 남게됐다. ○부패 인지 지수 세계 43위 국제투명성기구(TI)가 얼마전 발표한 98년 각국 부패인지 지수에 의하면 조사대상 85개국중 한국은 짐바브웨이와 함께 세계 43위로 돼있다. 우리 국민의 부패 불감증 지수는 이보다도 더 나쁠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는 부패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반부패 운동이 이미 국제적으로 연대화(連帶化)하고 있다. 부패한 나라는 국제적 신인도가 떨어지고 그런 나라엔 투자도 교역도 하기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 부패는 더 이상 개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과제요 국민적 숙제다. 부패학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
  • ‘한국의 지성’ 서울대 교수:6·끝(공직 탐험)

    ◎“박봉·열악한 연구환경 개선” 한목소리/봉급은 국립대중 최하위/강의외 행정잡무 많아/일부 교수 PC도 지급안돼 사립 여대에서 서울대로 옮긴 朴모 교수.경쟁끝에 선망의 서울대에 입성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봉급이 이전 학교의 7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서울대 재직 30년째인 李모 교수는 모임에 가서 돈 얘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한다.돈에 관한 한 그는 평생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왔다.동료교수들끼리 ‘허울좋은 잡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래저래 서울대 교수들도 불만은 많다. 이들은 먼저 박봉의 어려움을 든다. 서울대에 따르면,수당 연구보조비 성과급 등을 합한 연봉이 정교수는 4,991만원이다.부교수는 3,995만원,조교수는 3,421만원이다.서울대 교수들은 기성회비에서 나오는 보조비 등이 다른 국립대보다 적어 국립대 중에서도 봉급이 최하위라고 말한다.96년 10월 발간된 ‘서울대학교 50년사’에는 서울대 교수의 평균 연봉이 연세대보다 600만원에서 1,800만원까지 낮다고 밝히고 있다. 원로교수들은 돈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돈벌자고 학문하느냐”며 월급,처우개선 문제 등을 거론조차 않는다.그러나 외국대학 등에서 높은 연봉을 받다 온 소장파 교수들은 다르다.최근 경제학부 趙모교수(39)가 미국 인디애나대로부터 15만달러의 연봉을 제안받고 사직했다.임용된지 1년이 안된 상황이다.일부 교수들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높은 연봉에 따라 옮기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밖에서는 서울대 교수의 연구비 수주액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지적한다.교육부의 96년 대학연구비 수주현황에 따르면 서울대가 972억원,포항공대 360억원,연세대 309억원 등의 순이다.공과대학 일부 과 교수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한다.교육부 담당자는 “서울대교수의 연구비지원액과 수업시간수(9시간 미만),학생수 등 비경제적 요인도 포함하면 월급이 적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에 서울대 교수들은 연구비의 경우 교수개인의 돈이 아니며,이도 몇개과에 한정돼 있음을 강조한다. 서울대 교수들의 단골 불만사항 중에는 열악한 연구환경이 포함된다. 사회대 K교수는 자신의 수첩을 뒤적이며 행정사무 일정을 나열했다.이번 학기만 해도 입시채점,시험감독,대학원 입시 면접,문제출제,무시험전형제도로 인한 면접,서류심사,제자들의 유학추천서,재외교포자녀 입시를 위한 면접 등을 합하면 한달이 없어진다.그는 “과 전임보조원 4명을 두어 성적처리 등 모든 업무를 하는 미국 교수들의 여건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에게도 필수인 PC가 올해 처음,그것도 일부 교수에게만 제공됐으며 학회가입비,출장비 등도 자기부담이다.교수 연구실에 주는 것은 책상 책장 탁자 하나씩.나머지 기물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에어컨,난로 등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그래도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 등의 설치자체를 금지했던 몇년 전과 비교해 많이 나아진 것이란다.
  • 行試 최종합격 182명 발표

    ◎수석 金太坤씨·최연소 21세 李政洙씨/여성도 42명 합격 영예 행정자치부는 제42회 행정고등고시의 최종합격자 182명의 명단을 11일 발표했다. 최고득점자는 평균 67.44점을 얻은 일반행정직의 金泰坤씨(26·연세대 행정학과 4년)이며,최연소 합격자는 재경직의 李政洙씨(21·서울대 경제학과 3년)이다.여성은 일반행정직의 李珉載씨(27·외국어대 화란어과졸) 등 42명이 합격해 지난해 25명보다 17명이 늘었다. 수석합격한 金씨는 金暉東 경상북도 농정국장의 장남으로 부자(父子)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다.金씨는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잘 치렀다고 해서 내심 합격이 안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고 소감을 밝힌 뒤 “아버지가 일요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아 후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공직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여성합격자 李씨는 남편 丁善根씨(33·외국어대 정외과졸)도 올해 사법시험 2차에 합격,최종발표를 남겨두고 있어 경사가 겹쳤다. 다음은 최종합격자 명단. ◇일반행정(85명)=盧鎭鶴 李春茂 宋星憲 南碩 禹榮珪 金基先 余城喆 段熙修 金賢淑 孫志玧 李承桓 朴鍾九 金修美 成慶濟 印貞淑 朴鍾讚 崔大洵 姜銀娥 李恩英 鄭海聖 辛東寅 李주현 黃基淵 吳亨根 金東柱 曺永鎭 裵一權 白承一 金勇進 康潤振 安昌湧 南周賢 朴賢姬 金禧順 高雄朝 趙正娥 河琮穆 具本奎 黃範淳 姜壽相 陳영주 李炫玉 李珉載 金範錫 朴美英 李相魯 權純旭 姜민구 羅治晩 李祥熙 鄭稀銀 朴柱淵 朴連炳 朴星林 安棅圭 洪性完 李喜烈 柳良只 鄭奇永 李勇出 鄭在畯 徐南敎 咸聖九 金炯光 張榮圭 權守珍 南占順 申仁喆 金泰坤 千芝潤 朴載華 金明善 金東碩 朴吉成 劉喜鍾 高正玟 金權成 姜大現 池承佑 金惠貞 馬才鉉 金 眞 李炳哲 張哲豪 卞榮碩 ◇법무행정(5명)=鄭世熙 尹廷引 池光澈 成志媛 金顯哲 ◇재경(55명)=李崇圭 金俓志 李炯周 邊光旭 崔志暎 李在弘 李鎬燮 朴珍院 趙翼魯 朴焌國 金成根 金泳魯 金在雄 高在信 金相潤 金氣代 朴鍾熙 李政洙 尹晟赫 盧慧元 張道煥 黃仁熊 沈珍壽 閔惠暎 姜聲八 崔然禹 李炳源 林成煥 朴敏夏 宣重圭 韓慶洙 徐재용 徐기웅 許承喆 金起漢 李昌浩 孫榮彩 韓敞旭 李鍾碩 李齊壎 李宗祐 尹相淇 李樹炯 黃海植 孫周亨 兪承沅 申盛弼 姜甘贊 林榮鎭 金明奎 金東煥 金奎成 金吳泳 尹現柱 李珍熙 ◇국제통상(10명)=柳東希 金鎬喆 成完鎭 朴倫民 崔載河 崔栽赫 鄭喆中 羅晟化 芮暢燮 權炳基 ◇교육행정(10명)=朴芝暎 金度完 金俓年 張美蘭 鄭潤璟 柳志宛 河裕卿 李江馥 金賢珠 崔寶英 ◇사회복지(3명)=張浩演 金英善 玄修葉 ◇노동(4명)=申鎬澈 朴一勳 崔台昊 金富熙 ◇소년보호(5명)=李泳冕 鄭栽駿 安柄景 裵鍾相 金龍雲 ◇검찰사무(5명)=金容郁 金鍾根 金峰奭 兪正玟 白種東
  • 지니고 있는 福의 고마움부터 알자(박갑천 칼럼)

    좌평(佐平) 成忠은 의자왕(義慈王)이 주색에 빠져드는 것을 간하다가 죽는다. 죽기에 앞서 국가유사시에는 국도 동쪽 탄현(炭峴:지금의 식장산)과 서남쪽 백강(白江:금강하류)을 지켜 적을 막아야 한다며 눈을 감는다. 유배중인 興首도 같은 의견이었다. 하건만 나당(羅唐)연합군이 쳐들어왔을때 백제조정은 그 말에 따르지 않았고 나당연합군은 성충·흥수가 지적한 길로 진군해왔다. 그리고 백제는 망했다. 의자왕의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보물을 잊으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남이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동경의 눈길을 보낸다. 그래서 의자왕도 성충·흥수같은 충신의 값어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 모르는 것과도 같이. 의자왕은 신라 金庾信을 은근히 부러워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같은 인정의 기미를 잘 나타내는 우리 민담이 있다. [순오지](旬五志)에 적혀 있는 ‘두더지혼인’ 얘기가 그것이다. 두더지가 혼인하려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와 연을 맺고자 하늘한테 청혼한다. 그러자 하늘은 자신은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 없으니 거기 상의해보라 한다. 해와 달한테 갔더니 우리는 구름이 덮으면 쓸 데가 없다 한다. 구름한테 청혼했더니 바람한테는 맥을 못춘다면서 거기 가보라고. 바람한테 갔더니 내 아무리 불어제쳐도 밭 가운데 돌부처는 꼼짝 않으니 높은 건 돌부처란다. 돌부처한테 청혼했더니 말한다. “내가 오직 두려워하는 건 두더지다. 두더지가 발밑을 뚫고 오면 난 넘어질 것이니 나보다 높은 건 두더지가 아니고 뭣인가” 두더지는 날카로운 입부리 지닌 제가 가장 높은 존재라며 신바람나서 두더지와 혼인한다. 어찌 두더지가 가장 높은 존재랴만 자신이 지닌 복이나 장점을 잊고서 다른 존재의 그것에만 눈길을 쏟는 자세에 대해 침을 놓는 뜻은 깊다. 하늘한테 하늘의 구실이 있듯이 두더지한테도 그 나름의 장점은 있는 법. 그런 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느끼면서 장점을 살려나가는 삶의 자세가 소망스러워진다. “엽전들 하는 짓이…” “우리회사 꼬락서니하고는…” “무능한 우리남편…”하면서 자기비하(自己卑下)하는 말들을 곧잘 듣는다. 그런 사람들 눈길은 항상 남의 장점에 꽂혀 있다. 그 남들이 지니지 못한 복을 자신은 지니고 있다는 고마움부터 느낄줄 알았으면 싶건만.
  • ‘개도국 온실가스 감축’ 논의 제외/유엔기후회의 개막

    【부에노스아이레스 교도 연합】 2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된 제4차 유엔기후변화회의는 개도국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이번 회의에서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이 문제는 새로 설립될 비공식 기구에서 다루기로 했다. 아르헨티나측은 개막연설에서 미국의 지지 아래 개도국의 자발적 감축 목표 설정문제를 논의토록 할 것을 제의했으나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이 이 문제의 상정을 막아냈다. 미국은 개도국도 자발적인 감축목표를 정해,협약의 적용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회의에는 170여개국이 참가했으며 지난해 12월 채택된 교토(京都)의정서에 대한 구체적 이행방안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친일의 군상:11/여자 밀정 裵貞子(정직한 역사 되찾기)

    ◎伊藤博文의 꼭두각시로 매국·배족 선봉에/1885년 도일… 이등박문 만나 ‘스파이 교육’ 받아/러 견제·고종퇴우 막후활동… 만주지역서 독립운동가 탄압/태평양전쟁때 韓人 부녀자 100여명 위안부로 내몰아/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된뒤 후회의 눈물/시골 아전의 딸로 출생 대원군 실각후 집안 몰락/어릴때부터 조정에 반감/한때 官妓여승으로 전전 1949년 2월 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姜明珪 조사관 일행이 서울 성북동 언덕길을 급히 오르고 있었다. 한 양옥집 앞에 다다른 姜조사관 일행은 백발의 한 노파를 끌어내 수갑을 채우고 남대문로 반민특위 사무실로 연행했다. 그 노파의 나이 79세. 겉으로 보기엔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가 반민특위로 잡혀오자 특위 요원들이 이 노파의 얼굴을 보려고 姜조사관 주위로 모여들었다.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그 나이에 수갑에 채워져 끌려왔을까? 과연 이 노파는 누구인가? 裵貞子(1870∼1952). 흔히 이름 앞에 ‘요화(妖花)’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배정자가바로 그 노파였다. 정사(正史)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한국근대사의 이면사(裏面史)에 ‘일제의 앞잡이’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배정자급(級)에 드는 친일파는 몇 안된다. 한말 일제의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협조하였고 ‘한일병합’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조선인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었다. 친일파 가운데 우두머리급에 드는 친일파였다. 해방후 반민법 위반으로 반민특위에 잡혀온 여성피의자는 총 6명. 그들중 첫번째로 잡혀온 사람이 바로 배정자였다. 흔히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마타 하리’를 든다. 고급창녀 출신의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1917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배정자를 바로 이 ‘마타 하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정자는 1870년 경남 김해 고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던 裵祉洪의 딸로 태어났다. 아명은 분남(粉男). 부친은 1873년 대원군 실각후 그 졸당(卒黨)으로 몰려 대구 감영에서 처형되었다. 모친은 이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렸다. 그가 세살때의 일이었으니 그의 초년은 순탄치 못했다. 이후 그는 모친과 함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밀양에서 관기(官妓)로 팔렸으나 도중에 뛰쳐나와 양산 통도사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우담(藕潭)이란 승명(僧名)으로 목탁을 두들기던 그는 2년만에 다시 절을 뛰쳐나와 배회하다가 밀양 관청에 체포됐다. 여기서 우연히 은인을 만났다. 당시 밀양 부사 鄭秉夏는 그의 부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로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일본으로 가서 살도록 주선해주었다. 1885년 15세 되던 해 그는 일본인 밀정 마쓰오(松尾彦之助)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에게 뜻밖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배정자는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개화파 인사 安경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金玉均과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물굽이를 틀어준 사람은 바로 이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은 당시 일본 정계의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의 빼어난 미모에 끌린 이토는 하녀 겸 양녀로 자기 집안에들여앉히고 ‘다야마 데이코(田山貞子)’라는 일본이름을 지어주었다. 裵貞子의 ‘貞子’는 여기서 생겨났다. 이토는 재색(才色)을 겸비한 그를 장차 고급 밀정(스파이)으로 키울 요량으로 수영·승마·사격술·변장술 등을 가르쳤다. 소위 ‘밀봉교육’을 시킨 셈이다. 일본으로 간지 9년만인 1894년 배정자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는 신임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하야시(林權助)의 통역이었으나 본분은 일제의 밀정. 첫 임무는 당시 조선황실 내의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공사관에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엄비(嚴妃·고종의 계비)의 친인척을 통해 황실과 선을 댔다. 고종(高宗)은 미모에다 출중한 일본어 실력을 갖춘 그를 총애하였다. 당시 한 신하가 고종에게 “비기(秘記)에 가로되,갓 쓴 여자가 갓 쓴 문(門)으로 출입하면 국운이 쇠한다 하였습니다. 통촉하옵소서”라고 아뢴 바 있다. 양장에 모자(갓)를 쓴 그가 대안문(大安門·덕수궁의 정문으로 현재 명칭은 ‘大漢門’임)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러일전쟁 직전 친러파는 고종의 신변안전을 위해 ▲평양 천도 혹은 ▲고종의 블라디보스토크 천거(遷居)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비밀이 누설돼 일본측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이 정보를 빼내 일본공사관에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배정자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3월 이토가 초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자 배정자는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빠 裵國泰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으로,동생은 경무감독관(현 경찰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토를 등에 업은 그는 밀정이자 막후 권력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일제와 함께 고종에게 퇴위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기세는 1909년 이토가 통감자리에서 물러나고(6월) 다시 4개월 뒤 하얼삔에서 安重根 의사에게 살해됨(10월26일)으로써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토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은 ‘한일병합’후 부임한 조선주둔 헌병사령관 아카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는 배정자의 과거 밀정경력을 높이 평가하여 헌병대 촉탁으로 채용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그는 일본군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는 이 지역에서 수년간 군사첩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봉천(奉天·현 瀋陽)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만주지역 거주 조선인들의 동향을 정탐,귀순공작을 담당했었다. 배정자는 1920년 일제가 옛 일진회(一進會)의 잔당들을 규합,만주지역 최대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창설할 때 배후인물로도 활동하였으며 나중에 이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이 단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 탄압과 체포를 위해 조직한 무장 첩보단체로,초대회장 崔晶圭는 대한제국 시절 참위(소위)출신이었다. 매국노 李容九의 한일합방 청원을 지지했던 崔는 보민회에서 활동한 공로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한편 만주지역에서의 맹활약(?)으로 독립투사 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하자 배정자는 1922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가 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가 경무국 촉탁으로 다시 고용하였다. 나중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600여평의 토지를 받기도 했는데 은퇴한 뒤에도 총독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군 위안부 송출업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70 노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여성 100여명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가서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강요하였다. 해방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취재차 형무소를 찾은 한 기자에게 그는 “따끈한 장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애걸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정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고 한낱 늙은 죄수의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제와서 전비(前非)를 어찌 변명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신대도 달게 받고 가겠습니다. 다만 제 아들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뒤늦게 자신의 죄과를 후회했다. 배정자의 형량과 얼마동안 징역을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죽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종로구청에 보관돼 있는 호적에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2월27일 서울 성북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묘하게도 그가 죽은 날짜는 그의 출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어릴 때 조정(朝廷)에 대한 증오 때문에 조국을 배반,매국녀(賣國女)가 된 배정자는 해방후 조국에서 8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裵貞子의 남성편력/빼어난 미모에 화려한 경력 소유/결혼·동거 등 거쳐간 남자 7∼8명 裵貞子는 빼어난 미모와 화려한 경력에다 연령·민족을 불문한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남자’는 田在植. 한 때 관기로 있을 때 대구 중군(中軍) 田道後의 아들 전재식을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 배정자의 일본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전재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재회,결혼했다. 이 사이에서 田有和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경응의숙(慶應義塾)에재학중이던 전재식이 병사하자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났다. 두번째 남편은 일본공사관의 조선어 교사였던 玄暎運. 1895년 당시 외부(外部·현 외무부) 번역관(주임관 6등)이던 현영운은 배정자의 도움으로 10년만에 육군 참장(종2품·현 준장)으로 승진,농공상부 협판(차관)직을 맡았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1년 가까이 살다가 이혼하였다. 그리고는 현영운의 후배인 朴榮喆(일본육사 15기 졸업,함북도지사·중추원 참의 역임)과 결혼하여 5년간 동거하다가 또 이혼하였다. 이후 일본인 오하시(大橋),은행원 崔모,전라도 갑부 趙모,대구 부호의 2세 鄭모 등과도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대륙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중국인 마적 두목과 동거한 적도 있다. 1924년 57세로 밀정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25세의 일본인 순사와 동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인생을 바꾼 DJ와의 만남/청와대 해외입양동포 다과회 눈물바다

    ◎88년 해외서 만난 입양 여학생 “운명에 굴복말라” 용기 심어줘/법률자문가 돼 10년만에 해후 23일 오후 청와대에서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金大中 대통령과 해외입양 동포들의 청와대 다과회 자리에서 가슴저린 해후가 있었다고 朴仙淑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金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金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미안하고 우리가 정말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다.그러면서 ‘네덜란드의 한 식당에서 만난 노부부가 한국인 장애입양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떠먹이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 울어버렸다’는 지인(知人)의 얘기를 소개했다. 이어 지난 88년 2월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동포리셉션에서의 일화를 들춰냈다.기모노를 입은 한 여학생이 일어나 질문을 하기에 ‘일본 여학생이구나’했는데 “나는 한국에서 온 입양아다.당신 나라는 우리는 물론 지금도 아이들을 낯선 외국으로 팔고 있다.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느낀 대로 “부끄럽기짝이 없다.그러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라”는 취지의 답을 했다고 회고했다.“그 여학생은 ‘20년 맺힌 응어리가 풀렸다’고 인사했고,몇년이 지난 후 기자가 되어 스웨덴을 방문중인 나를 인터뷰하러 찾아왔었다”고 털어놨다.그리고 “그 여학생이 지금 성공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소개했다.지금은 스웨덴에서 법률자문사로 일하는 리나 김경애씨(33)가 일어섰고,흐느낌 속에 박수가 터져나왔다.리나씨는 “민주주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을 다시 만나 정말 기쁘다.그때의 만남이 저를 바꿔놓았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한국전쟁때 미국으로 입양된 크리맨트 토머스(46)가 “과거는 과거이고 바꿀 수 있는 것도,또 바꾸고 싶은 것도 없다.과거에 대해서 후회도 없다”며 대통령이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줘 고맙다고 했다.모두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든지 다과회장은 삽시간에 ‘흐느낌의 개울’에서 ‘울음의 바다’로 변했다.金대통령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동포는 아무도 없었다.
  • 안중근 이토 총살(秘錄 南柯夢:27)

    ◎탕! 하얼빈 1번플랫폼 충성… 일제원흉 즉사/이토 러시아 가던길서 사망/명치천황으로선 두손 잃은셈/“삼천리강토 원수 갚았을뿐” 安의사 죽음앞서도 당당/여순감옥서 순국땐 구슬비마저 기차 30분 넘도록 안화 낙심하며 돌아서는데 그때 도착하는 모습이 그래서 막 뛰어가…(安의사 회고中) 1909년 10월26일 오전 10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 나라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이토는 특별열차로 중국 만주의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다. 그때 원수 이토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중근의사는 뒷날 회고하기를 “이토 그놈을 가딱하면 놓칠뻔 했네. 그놈의 기차가 아침 9시 도착인데 9시30분이 되어도 오지 않아서 그만 걸어서 돌아서는데 다리있는데 오니까 아! 그때 기차가 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막 뛰어가 그놈을 쏘아 죽였네 그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해서 일제침략의 거물 이토를 하얼빈역 1번 플랫홈에서 쏘아 죽였다. 이것을 우리는 안의사의 이토 총살이라 부르고 있다. 전 통감 이토(伊藤)는 저희 나라의 일로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하얼빈역에 잠시 내렸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아! 동양의 패권을 쥐었다는 자가 끝난 것이라. 이토가 끝났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이토는 한국민에 대해 원수일뿐 아니라 일본인에 대해서도 원수인 것이다. 금년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 79주년이 되는 해인데 안의사가 외쳤던 ‘동양평화’는 과연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뒤 조용히 잡혀가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니 충의는 당당하고 의리는 빛났으며 위엄있는 풍도는 늠늠하니 뉘 감히 그를 꺾을 사람이 있겠는가. 안중군 의사는 당년 32세의 젊고 젊은 나이에 의거를 결심했는데 그의 참뜻은 아직도 후손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지은 ‘장부처세가(丈夫處世歌)’는 이렇게 외친다. 동포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만세 만세 대한독립이로다. 안중근,그는 누구인가. 아무도 그 당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얼빈에서 총을 쏜 소년은 뉘 집의 아들이었던가. 칼을 집고 바다를 건너갔다고 하는데 그의 선대는 알지못하겠으나 성은 안씨요 이름은 중근(重根)이라 하였다. 아이시절부터 칼 쓰기와 공차기를 좋아 했고 장성해서는 비분강개하고 활협(闊狹)의 의지가 강하여 남을 잘 도왔다. 또 나라일을 걱정하고 그 지략이 커서 사소한 일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이토가 러시아땅에 들어가는 기회가 있음을 미리 알고 그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이토의 얼굴이며 신장의 처수까지 알아두기 위해 이토의 사진 한장을 얻어 오래 익힌 뒤 즉시 단총(육혈포)으로 방포(放砲)해 그자의 가슴을 바로 맞추어 즉사케 하였으니 아! 위대하고 장하도다 안중근 의사의 공판투쟁은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하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법률에 따라 조선사령부에 호송되어 며칠동안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은 청천백일과 같아서 한결같이 정정당당했고 끝내 굴하지 않고 말하기를 “대장부 사내가 되어 한번 죽음은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 이처럼 고달프게 문초하는가. 원래 조선에서는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갚게 되어있다. 어찌 한치라도 사심이 있겠는가” 하였다.심문관이 또 묻기를 “너와 같이 공모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하였다. 안중근이 대답하기를 “조선의 이천만 동포가 모두 같이 공모자다”고 했다. 또 묻기를 “누가 너에게 이런 불법적인 일을 가르쳤는가” 하자 “하늘이 가르쳤다. 누가 가르쳤겠는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법대로 하라. 이토로 말하면 우리 삼천리 강토를 늑탈하고 오백년 종사(宗社)를 멸망케 하였으니 내가 그 원수를 갚은 것이다. 나는 귀국의 원로를 죽여 조선의 수치를 씻었다. 그러나 귀국은 나를 살인죄로 죽이려 들 것이니 구차스럽게 문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조용히 죽음에 임했다. 이토는 일본 근대사에 있어서 제일가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만엔짜리 일본 지폐에 그 얼굴이 찍혀 나왔다. 이토의 이력에 대해선 벌써 온 세계 역사책에 기록이 돼있으니 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열방(列邦)과 교섭하는데 있어 이토같은 거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같은 인물이 죽었으니 명치천황으로서는 두 손을 모두 잃은 것 같았다. 이토의 지략은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미국의 워싱톤 보다 못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명치 천황의 혁명이 아니었다면 어찌 동서양 패권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옛날 제나라때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는 제후에게 패도(覇道)를 써 임금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이토의 경우는 달랐다. 예로부터 영웅은 시대를 잘만나 공을 이루는 법인데 이토는 명치천황의 악정(惡政)을 혼자 자기 사업으로 전용(專用)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공로가 많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안의사와 같은 이가 또 있으니 바로 창해역사(滄海力士)다. 그는 조선인이었는데 박랑사중(博郞沙中)에서 철퇴를 던져 진시황을 저격했으나 다음 수레를 잘못 맞춰 온누리의 영웅으로 불려왔으며 진(秦)나라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지금 안중근도 한번 단총을 쏘아 패권을 쥐고 있던 주인공을 꺼꾸러져 죽게 했다.그러나 일본은 점점 강해지고 조선은 반대로 멸망하니 이것이야 말로 일은 사람이 꾸미고 성패는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안의사는 죽음에 임하여 태연히 웃으면서 말하기를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먼저 일본이 정략을 고쳐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를 잃으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고 했으니 이 얼마나 앞 날을 꿰뚫어본 탁견인가. 안중근의사는 마침내 1910년 3월26일 10시 구슬비가 나리는 가운데 만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푸른 하늘은 답답한 듯 하고 백일(白日)이 침침하며 숙숙(肅肅)한 기운이 육대주에 충만하였으니 두공부(杜工部 즉,杜甫)가 지은 시에 “영웅의 가슴에 눈물이 가득하다”고 한 것은 안중근이 나오는 것을 미리 알고 지은 시가 아니었던가. 그 친척들이 시체를 거두어 고향산천에 반장하였으나 그 뒤에는 적적하여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토는 안의사를 만나 잘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명성 또한 빛을 잃었을 것이다. 이토의 만장(挽章) 영웅을 쏘아 죽이자 만국이 놀랐다/하늘이 그로 하여금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함일세/이로써 열강의 교섭은 끝나고/명치는 울어서 눈물이 쏟아지겠지 그러나 안의사의 죽음만큼귀중한 일은 없었다. 안중근의 만장 하얼빈의 총소리가 오대주를 진동하였으니/안중근의 기개가 천추에 관통하였네/지난해에 충의를 다한 자 누가 있었던가/자기 한몸 죽여가며 나라근심 보답했네.
  • 건전 소비문화 되찾아 국난극복을/金容汶(발언대)

    IMF체제가 시작되면서 많은 기업체가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게 됐다. 수입이 줄어든 반면 물가는 폭등해 국민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와중에서 국민들은 IMF체제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돌렸다. 그 책임이 정작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국민들의 검약정신과 건전한 소비의식 결여가 IMF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민주정치가 시행돼 오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른바 ‘칠비’라는 해괴한 단어가 등장했다. ‘칠비’는 ‘비정상적 사고’‘비정상적 행태’‘비윤리적’‘비상식적’‘비합법적’‘비합리적’ ‘비공식적’ 등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뜯어고쳤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다. 부패한 권력은 물질적 부를 좇게 됐고,결국 자본가와 권력자가 결탁한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의 모든 악의 근본이 됐다. 이들은 부정축재한 돈으로 호화스런 생활을 했고 이들의 과소비는 일반 국민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불러 일으켰다. 너도 나도 흥청망청 쓰다보니 결국 외채가 1,500억달러,국민 1인당 500만원이라는 외채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국가경제를 파멸로 이끈 1차적 책임자는 정치인들이지만 원죄는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있다. 무능한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바로 우리 국민들 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그럴 줄 몰랐다’고 후회하기엔 너무 큰 불행이 우리들을 덮쳤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럴 줄 몰랐다’고 후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 신탁통치’라는 IMF체제를 극복하는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모든 국민이 ‘제2의 건국 운동’에 적극 나서고 노·사·정이 국력을 한 데 모으면 IMF체제에서 벗어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다.
  • 李姬鎬 여사 월간지 퀸 특별회견

    ◎“소외계층 돕는데 더 노력”/위안부 문제 일 보상보다 사과 더 중요/정의·진리·신앙에 의지 온갖 역경 넘겨 金大中 대통령부인 李姬鎬 여사가 서울신문 자매지인 여성월간지 ‘퀸(Queen)’과 특별인터뷰를 가졌다.李여사는 지령 100호를 맞은 ‘퀸’(10월호,23일 발행)과 잡지로서는 처음으로 단독인터뷰를 갖고 청와대 안살림 이모저모와 함께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밝혔다.대담은 任英淑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했다. ­내조자입장에서 金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제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나 운영방식 등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해요.다만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지켜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립발전’이라는 신념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 가시는 걸로 믿고 있습니다.아내로서 가장 안쓰러운 건 나라 사정이 너무 어렵다 보니 대통령이 밤낮 없이 노심초사하는 일이 많아 저러다가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다행히 타고난 건강체질이라 끄떡 없지요. ○국정관련 조언 거의 안해 ­金대통령께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곁에서 조언을 하십니까. ▲특별히 물어오실 때가 아니면 그런 일은 드뭅니다.주위에 참모들과 전문가들이 많잖아요.그 사람들과 주로 상의를 하십니다. ­국민들 곁에 다가가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일,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오는 10월초에 송월주 스님·강원용 목사·김성주 주교 등이 가칭 ‘사랑의 친구들’이란 자선단체가 만들어지는데 나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예요.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도와 줄 능력이 있는 사람들간에 다리를 놓아 주는 그런 운동이지요.여성·문화분야 등 어려운 시기일수록 소홀해지기 쉬운 영역에 대해서도 나름의 노력을 다해나갈 계획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우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시인하고 잘못을 사과해야 합니다.민간차원의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몇푼의 보상금을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그분들이 받은 정신적 타격이 얼마나 큰데요.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한 연후에는 우리도 더이상 과거에 매이지 말고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4월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셨을때 2등석을 탔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일로 갔던거니까요.그런데서 권위를 내세우고 싶진 않습니다.비행기에서 내릴때도 1등석 손님들을 먼저 내리게 했지요. ○외출 자유롭게 하고 싶어 ­청와대 들어오신 후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점은 야당 총재 시절과 달리 불쑥 방문하는 손님들이 없다는 것입니다.여기서는 모든 일정이며 행사가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거든요.반면에 불편한 점을 들자면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가끔은 자유롭게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외출도 하고 싶은데….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 음식선물을 받고 되돌려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물론 처음엔 고맙게 받았어요.그런데 또 음식을 장만해 왔더라고요.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은 없는 법입니다.이 안에 있을 땐 그런 사소한 것도 원칙을 정해 처리하고 싶어요. ­청와대 들어오신 후 예뻐지셨다고들 합니다.비결이 있으십니까. ▲예전에는 직접 머리손질을 했습니다만 요즘에 미용사에게 맡깁니다.일산에서는 새벽 4시쯤 일어나다가 여기선 한시간쯤 잠을 더 잘뿐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럼요.아직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참여가 가장 미약한 곳이 정치분야이지만,차츰 나아질 거고 실제로 나아지고 있습니다.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려면 정치 참여를 통해 제도나 의식을 개혁하는 방법이 지름길이예요.수적으로 우세한 여성들이 힘을 뭉친다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여성대통령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념·관용·멋에 끌려 결혼 -숱한 위기와 역경의 순간들을 金대통령과 함께 헤쳐나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려움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의와 진리의 승리에 대한 확신,그리고 신앙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지금 고통받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오늘의 어려움을 꿋꿋이 참고 이겨내면 반드시 밝은 내일이 온다는 굳센 희망을 가지란 말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金대통령이 감옥에서 계실때 두분이 주고 받은 편지는 유명한데요. ▲대통령은 당시 사형수에서 감형된 무기수 신분이어서 0.96평짜리 독방에 있었습니다.거의 매일 편지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모두 600여통에 이르더군요.그 어둡고 외로운 독방에서 고생하는 남편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남편이 감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형법을 공부하고 수시로 형무소장을 찾아가 항의를 하기도 했어요.어느땐 담당변호사와 행형법에 대해 얘기하다가 오히려 변호사쪽에서 자기도 모르는 법률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며 감탄할 정도였지요. ­결혼생활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참으로 행복하다,그런 느낌을 가져 보지 않았어요.(웃음)그렇다고 결혼을 후회해 본적도 없어요.늦게 한 결혼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행복을 추구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남편의 꿈이 그저 꿈으로 끝나진 않으리란 신뢰를 지녔고 그의 신념과 관용과 멋에 끌려,내가 이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지요.그래서 주어진 환경과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날마다 오후에 수영을 해요.헤엄을 친다기보다는 물속에서 30분쯤 걸어다니는 거지요.조용한 저녁시간에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요즘에는 붓글씨도 쓰고 있습니다.
  • 클린턴 이미지 치명상/증언테이프 공개 파장

    ◎스타 ‘성추문보고서’ 보다 위력적/“공화도 역포화 맞을 것” 분석도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관련,연방 대배심 증언 테이프가 끝내 공개됐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21일 오전 9시(한국시간 21일 밤 10시) 성추문 관련 연방 대배심 증언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했다. CNN,MSNBC 등 주요 방송 채널들은 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4시간 분량의 테이프를 방영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증언에서 특별검사팀의 날카로운 질문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거나 때때로 화를 내기도 했다.또 당당하던 모습과는 달리 시종일관 긴장을 풀지 못하기도 했다. 눈빛이나 표정,몸짓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방송 매체의 특성상 테이프 공개로 클린턴은 성추문 보고서가 공개됐을 때와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민들은 클린턴 대통령을 더이상 ‘국가 지도자’로서 받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세했던 사임이나 탄핵 반대 여론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공화당 의원들이 테이프 공개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통해 이미 탄핵이라는 덫에 걸려든 클린턴의 목을 죄겠다는 속셈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공화당도 이 테이프 공개로 ‘역(逆) 포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백악관의 존 포데스타 보좌관은 “미국민들은 테이프의 공개가 당파적으로 이뤄진 결정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며,의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절차의 공정성에 커다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CBS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도 ‘역 포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CBS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69%는 테이프의 공개가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중산층의 공화당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서민이나 유색인종 등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오히려 더욱 결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테이프 공개가 ‘상처받은 대통령’을 다시 옥죄려는 공화당의 전술로 성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는 추잡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모저모/미 주요방송 중간중간 해설 자막/클린턴 구체 증거자료 대자 당황/테이프 예정보다 25분 늦게 공개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증언 테이프가 공개되기로 예정된 오전 9시(한국시간 밤 10시)이전부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생방송 태세에 돌입.대부분의 방송들은 성적으로 지나치게 상세한 내용이 포함된 점을 감안해 미성년자들의 시청에 주의를 환기시켰으며 중간중간 증언 내용의 해설자막을 내보내기도. ○…클린턴의 증언은 스타 검사측이 성관계(sexual relationship) 정의를 확인하는 작업에서 부터 달아 오르기 시작.클린턴은 계속되는 검사측의 추궁에 “성관계는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자극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신체의 여러 부분을 접촉하는것”이라며 나름대로 해석을 내리기도. ○…스타 검사측은 ‘부적절한 관계’가 ‘오럴 섹스’였다는 답변을 이끌어 내는데는 실패.클린턴은 검사측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의도적으로 질문을 무시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고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제시될 때에는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건네준정표가운데에는 두사람이 관계를 가져 온 2년동안 주고 받았던 선물들을 찍은 흑백 사진들도 대거 포함.특히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준 라디오 시티 뮤직홀 담요와 마서스 비녀드의 블랙 독 카페에서 구한 핸드백,옷걸이에 매달린 드레스 사진도 들어 있었다. ○…독일의 두 TV방송은 헬무트 콜 독일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항의에 따라 클린턴의 증언 전체를 방영하려던 계획을 취소.콜 총리는 사생활이 묘사된 테이프를 방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여러 정파 정치인들과 함께 테이프 전체의 방영에 반대의사를 피력.그러나 피닉스 TV는 발췌 부분을 방영키로 했고 상업방송인 N­TV도 ‘포르노적인 부분들’은 삭제후 방영하기로 했다고 발표. ○…프랑스 사회당은 스타 검사가 섹스에 집착하는 ‘불쾌한 인물’이라며 수사로 인한 피해자는 클린턴이 아니라 미국 자체라고 주장.사회당의 프레데릭 브레댕 서기장은 “TV를 통해 방영된 것은 멜로 드라마에 불과하다”며 스타검사는 클린턴과 르윈스키간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섹스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당혹스럽고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친구관계에서 시작돼 이같은 행동으로 이어진데 대해 후회한다”고 진술. 클린턴은 “내가 96년초 어떤일로 르윈스키와 혼자 있게 됐을때,그리고 97년초에 한번 옳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말해 지난 7개월간 공식적,사적으로 관계를 부인해온 입장을 번복. ○…대배심 증언 테이프가 인터넷과 방송망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지고 있는 동안 클린턴 대통령은 뉴욕의 유엔에서 국제 테러를 막기 위한 노력에 전세계가 동참하자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한편 이날 테이프는 사전 준비작업을 하느라 당초 예정됐던 시각보다 25분 가량 늦게 공개됐다.
  • 클린턴 탄핵 뇌관 폭발 초읽기/증언테이프 오늘 공개

    ◎드레스 ‘흔적’­DNA 검사 등 증거물 포함/공화당 여론몰이에 국민 41% “탄핵 착수하라”/백악관 담당고문 영입 응전태세… 고어도 지원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창이냐 방패냐.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를 놓고 백악관과 공화당이 대세를 가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에 돌입했다.와중에 민주당은 클린턴쪽으로, 민심은 탄핵쪽으로 저울추가 이동하고 있다.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일리노이주)등 공화당 탄핵기수들의 잇따른 전력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백악관이 이번 폭로전을 음모했다는 지적이 강력히 일면서 공화당을 화나게 했다. 공화당은 하원 법사위에서 총 37명중 21명이라는 과반수를 앞세워 전격적으로 클린턴 연방대배심 증언 테이프 공개쪽으로 밀어붙이면서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테이프가 공개되면 클린턴의 유일한 동아줄인 국민지지 여론에 치명타를 입힐수 있다는 계산 같다.때마침 하원에게 탄핵절차에 착수하라는 요구하는 여론은 35%에서 41%로 치솟았다.스타보고서가 나간지 일주일 만이다. 클린턴도 원군을 불러모으는등 임전태세를 가다듬고 있다.상원 원내총무를 지낸 조지 미첼(메인주)을 백악관 탄핵담당 고문으로 급거 영입하고,팻 윌리엄스 전 하원의원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백아관의 린 커틀러 보좌관은 이틀전부터 구원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여기엔 마이클 반스,마티 루소,데니스 에카르트,마이클 앤드루스,베릴 앤터니 등 전의원들이 포함돼 있다.모두 역전의 노장들이다. 앨 고어 부통령도 클린턴 지원에 가세했다.그는 18일 뉴 햄프셔에서 “클린턴이 사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라면서 “클린턴은 사과했고 일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고 옹호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탄핵정국 안팎/테이프 120곳 삭제… 스타 “힐러리 기소할수도”/클린턴 “르윈스키와의 관계 후회” 수차례 증언/르윈스키 伊 모델 데뷔… 10월 1회 출연 47만불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21일 상오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방 대배심 증언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다양한 자료를 공개키로 결정해 클린턴 탄핵정국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의회 소식통들은 르윈스키 드레스의 정액 자국과 클린턴의 혈액 검사내용, 특별검사측과 연방수사국(FBI)의 각종 신문(訊問)자료등 2,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추가 증거물도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은 증언테이프는 음란장면 120개 부분을 삭제한 뒤 공개하기로 했다고 18일 발표.CNN방송은 21일 상오 9시(한국시간 하오 10시)에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증언 텍스트 공개 웹사이트 주소는 http://www.house.gov/icreport와 http://loc.gov/icreport. ○…뉴욕타임스는 20일자에서 클린턴의 증언 내용을 일부 소개.클린턴은 대배심 증언에서 스타측을 비난하며 모니카 르윈스키와는 개인적으로 걱정을 나누는 ‘부드러운 친구관계’였다고 강변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증언 도중 수차례 당혹감과 후회의 뜻을 나타낸 그는 “96년초와 97년 초 르윈스키와 단둘이 있을때 잘못된 행위를 했으며,그러나 성교행위는 없었다. 지난 1월17일 폴라 존스사건에서 성관계는 성교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따라서 나는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을 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증언 도중 여러번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케네스 스타 검사는 백악관의 비행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며 클린턴을 탄핵하기 위해 힐러리를 기소할 수도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9일 보도.타임스는 스타 검사가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들과 그밖의 사건에서 힐러리와 다른 관리들의 역할을 조사하고 있다고 부연. ○…워싱턴 포스트 등 신문들이 비디오 테이프 공개 결정을 간단히 취급한데 반해 MSNBC·CNN 등 TV방송은 요란스럽게 선전. MSNBC는 “클린턴은 진실을 모두 얘기했는가? 스타는 도를 지나쳤는가? 대통령의 증언 전부를 삭제없이 그대로 보여줍니다”라는 예고방송을 내보내며 호들갑. ○…르윈스키가 내달 이탈리아에서 패션모델로 데뷔한다고 미 CBS방송이 보도.르윈스키는 오는 10월6일 밀라노에서 열리는 가티노니 패션쇼에 모델로 출연하기로 동의했으며 출연료는 단 1회에 47만달러(약 6억2,000만원).
  • 李會昌 신임총재 일문일답/보복차원의 정치권 사정은 절대 안돼

    ◎야당 파괴공작 극심… 黨 분열은 없을것 한나라당 李會昌 신임 총재는 31일 전당대회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권 사정(司正)이 지금처럼 보복 차원에서 이뤄져서는 절대 안된다”며 “야당만을 상대로 정계개편을 위한 사정을 한다면 종국적으로는 현 정권이 후회하고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당선 소감은. ▲여당의 야당 파괴공작이 날로 극심해지고 나라 형편도 어려운 시기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 ­당의 분열을 막을 복안은. ▲절대로 분열은 없을 것이다. 당권파와 비당권파를 구분하고 대립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낙선 후보들과도 서로 협조,당의 화합을 이루겠다. ­여권의 정계개편에 대한 대응은. ▲여당이 비민주적 발상을 바꿔야 한다. 야당 파괴공작에 의연히 대처하도록 당의 울타리나 정체성을 지키겠다. ­부총재 지명의 시기와 대상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우리 당의 틀을 가다듬겠다. ­영수회담을 제의했는데. ▲정권 출범 반년이 되도록 여야가 마음을 터놓고 정국을 논의한 자리가없었다. 정국 정상화를 촉구했으니 여권에서 여러가지 고려가 있을 것이다. ­정치권 사정은. ▲정말 정치를 깨끗이 하려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사정을 해야 한다. ­경제청문회의 대처 방안은. ▲경제 실정(失政)을 호도하기 위해 과거 정부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쪽으로 국민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당 파괴공작의 증거가 있나. ▲대통령이 외국에서 야당 의원을 빼내 정국을 개편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느냐. 야당을 대화의 대상으로 대우한다면 결코 과거 야당의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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