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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교괴물’ 최성근 홍명보 품에

    “성근이를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지구력도 대단하다. 수비와 미드필드, 공격까지 어느 포지션에 놔도 해낼 수 있는 재목이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홍명보(40) 감독은 10일 최성근(18·언남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는 25일 이집트에서 개막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 월드컵에 나서는 그는 이날 엔트리 21명을 발표했다. 최성근은 유일한 고교생이다. 최성근은 U-20 월드컵 본선에서 2003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회 때 박주영(AS모나코·당시 청구고), 2005년 네덜란드 대회 때 박종진(강원FC·당시 수원고)에 이어 4년 만에 고교생 명맥을 이었다. 181㎝, 61㎏으로 깡마른 체구와 검은 얼굴에 찰거머리 같은 승부 근성을 지녀 ‘악바리’로 불리는 그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발재간과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지난달 가을철 연맹전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는 등 언남고를 올 3관왕에 올려 놓았다.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3월부터 꾸준하게 소집 명단에 들었던 최성근은 프로축구 K-리그는 물론, 일본 J-리그에서 뛰는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에서 살아 남아 결국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다. 지난 8일 K-리그 광주와의 연습경기 땐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 풀타임을 소화하며 1-0 승리에 한몫 거들어 기대를 모았다. 최성근은 “운동장에서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없는 플레이를 보여 실력으로 평가를 받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신궁남매’ 세계정상 또 명중

    8일 오후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단체 결승전이 열린 울산 문수국제양궁장. 한국 남자대표팀의 삼총사 오진혁(농수산홈쇼핑)·임동현(청주시청)·이창환(두산중공업)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관중들은 환호하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프랑스와 결승에서 만난 대표선수들의 얼굴에는 다음날 개인전 결승 라운드에 모두 오른 자신감 때문인지 비교적 여유가 흘러넘쳤다. 총 4엔드(1엔드는 6발) 중 3엔드까지 한국의 167-165 2점차 리드. 하지만 마지막 4엔드 첫 두 발에서 임동현과 오진혁이 연달아 8점을 쏘자 관중석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양팀이 4엔드 3발을 쏜 직후 점수차는 192-193, 한국이 1점차로 뒤진 아슬아슬한 상황. 하지만 프랑스가 3발 연속 9점을 쏘면서 희망이 엿보였다. 여기저기서 한국을 응원하는 “파이팅!” 소리가 터져나왔다. 침착하게 발사선에 들어선 한국팀 삼형제의 마지막 3발이 모두 10점짜리로 과녁에 꽂혔다. 한국의 단체전 5연패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앞서 열린 여자부 결승전에서도 주현정(현대모비스)·윤옥희(예천군청)·곽예지(대전체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안정된 자세로 활을 쏘며 일본을 리드한 한국은 2엔드가 끝나자 7점차, 3엔드가 끝나자 10점차로 점수를 벌리며 일본을 여유있게 누르고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단체전 4연패. 이날 자신의 17번째 생일을 맞은 ‘여고생 신궁’ 곽예지는 금메달이 확정되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이날 남자팀은 프랑스에 222-220, 여자팀은 일본에 224-209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 남녀팀은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4년 연속 동반 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마지막 1발을 10점짜리 과녁에 꽂으며 짜릿한 2점차 역전승의 주인공이 된 오진혁은 눈물을 보이며 “마지막 발이 들어갈 때 가슴이 찡했다. 1998년 주니어세계선수권에 출전한 뒤 첫 금메달이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일 개인전에서도 후회없는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곽예지도 눈물을 닦으면서 “기쁘고 좋고 행복하다. 개인전에서도 단체전에서처럼 잘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울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아기와 집을 맞바꾼 비정한 멕시코 싱글맘

    아기와 집을 맞바꾼 비정한 멕시코 싱글맘

    8개월 된 아기를 집과 맞바꾼 비정한 어머니가 경찰에 체포됐다. 멕시코 미초아칸 주(州)에서 19살 싱글맘이 집과 매월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한 부부에게 아기를 넘겨주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고 캄비오 등 현지 일간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이미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는 이 싱글맘은 두 번째 아기를 팔아넘겼다가 철장에 갇히게 됐다. 아기를 샀던 30대 부부도 수갑을 찼다. 사건을 고발한 건 팔렸던 아기의 할머니. 성숙한(?) 딸 덕분에 42세에 벌써 할머니가 된 그가 딸의 두 번째 임신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중순이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딸이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싱글맘인 딸이 또 남편 없이 두 번째 아기를 갖게 된 데 대해 할머니는 화를 냈다. 딸은 엄마의 간섭이 싫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이웃집에 얹혀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기가 태어난 건 지난해 12월. 그리고 이때 할머니는 딸이 아기를 낳으면 (입양시킨다는 방식으로) 갚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쓴 사실을 알게 됐다.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자식을 팔아서야 되겠는가.”라며 돈을 갚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달랬다. 생계를 책임져주겠다는 말도 했다. 그래도 딸은 “입에 풀칠도 못하면서 어떻게 생계를 책임져주겠다는 것이냐.”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싱글맘으로 둘째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친 딸이 아기를 넘기겠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한 건 4월이다. 주택과 매월 생활비를 대주겠다는 부부를 만나 협상을 했다는 얘기를 자매에게 털어 놓은 것. 손자를 팔아넘기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할머니는 체념한 듯 간섭하지 않았다. 손자는 결국 집과 생활비를 맞바꾸는 조건으로 팔려갔다. 할머니가 손자를 되찾기 위해 발벗고 나선 건 최근이다. 뒤늦게 자식을 팔아넘긴 걸 후회한 딸이 “2만5000페소(약 2000달러)가 있어야 아기를 찾아올 수 있다.”면서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 할머니는 그길로 경찰을 찾아가 아기를 팔아버린 자신의 딸과 아기를 산 부부를 몽땅 고발했다. 경찰은 세 사람을 긴급 체포했다. 사진=타리가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노약자석/김성호 논설위원

    앉을까 말까. 전철 안 갈등. 오늘 유난히 갈등이 크다.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다리도 후들후들. 컨디션 최악이다. 텅 빈 노약자석의 유혹이 정말 크다. 노인과 약한 이들을 위한 자리인데 견뎌보자. 그래도 지금 몸상태는 약한 사람, 자격이 있지 않을까. 텅빈 자리를 바라보던 중 40대중반 아줌마 둘이 전철 안에 들자마자 앞 노약자석을 선점한다. “노인 오시면 양보하면 되지 뭘 그래, 앉자.” “우리가 앉아 있으면 노인들이 불편해할 텐데 서서 가자.” 옥신각신 다툼 비슷하게 말을 주고받더니 그대로 착석. 참 편해보인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앉아 가면 될 텐데. 용기 없음을 후회하면서도 은근히 미워진다. 서 있기조차 힘든데. 알려나 모르려나. 앉은 채 이야기 삼매에 빠졌던 아줌마들. 노선도를 보더니 후다닥 뛰어내린다. 또 다시 점화하는 갈등. 앉을까 말까. 아직도 여섯 정거장은 더 가야 하는데. 눈 딱감고 앉았는데 어째 서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하다. 순간 우르르 다가서는 노인들. 그래 노약자석에 앉을 사람은 따로 있지, 아무나 앉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박태환 어렸을 때 기초 잘못 가르쳤나 후회…”

    “박태환 어렸을 때 기초 잘못 가르쳤나 후회…”

     노민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이 5일 오전 PBC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태환이를 어렸을 때부터 잘못 가르쳤나 하는 후회도 해본다.”고 밝혔다. 노 감독의 이같은 소회는 박태환이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부진했던 원인을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않는 훈련 방식을 고집한 자신에게 있다는 자책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노 감독은 “태환이를 여덟살 때부터 가르쳤다.그렇지만 이기는 것을 우선으로 했지,유턴이나 스타트를 중시하지 않았다.세계적 선수로 성장한 뒤에 보니 내가 예전에 얼마나 잘못 가르쳤나 후회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버릇이 되어야 하는데 막상 커서 (교정을 하려면) 상당히 시일이 걸린다.일선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잘 해주실 것을) 꼭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박태환 선수의 주 종목이 1500m 자유형에서 200·400m 자유형으로 변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태환이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언급했다.그랜트 해킷이 1500m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무산소 역치’ 등 전문 훈련방법이 있는 200m와 400m에서 승부를 걸었고,400m에 마이클 펠프스가 건재하지만 박태환이 탄력성에서 앞서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박태환은 내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100·200·400·1500m 자유형에 출전한 뒤 세계선수권 및 런던올림픽에서는 더 유리한 종목을 선택할 예정이다.  한편 노 감독은 로마 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 기록이 많이 뒤처졌던 이유에 대해 “준비가 조직적이지 못했다.”며 “야외 시합이었던 만큼 전지훈련 때도 야외에서 연습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표팀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 꿈나무 3명 정도를 눈여겨 보고 훈련시키는 중”이라며 “제2 ,제3의 박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9·3개각 이후] “세종시 청문회서 두고보자”

    [9·3개각 이후] “세종시 청문회서 두고보자”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가 ‘세종시 원안 수정 추진’과 ‘4대강 살리기 추진’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인 4일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이 총공세에 나섰다. 박병석·홍재형·이시종 의원 등 민주당 충청권 국회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청 출신 총리 발탁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무산기도에 따른 충청권의 반대를 무마하려는 음모”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 내정자를 향해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고향을 팔아 총리직을 구한 것”이라며 ‘세종시 원안 수정’ 발언을 번복하고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충청 출신의 한 경제학자를 이용해 충청도민과 균형발전을 염원하는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참여정부가 입안한 세종시를 원안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여권을 압박할 계획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민심을 끌어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심대평 총리설’에 이어 ‘정운찬 카드’로 충청권 기반을 위협받는 자유선진당도 정 내정자 공세에 가담했다. 이회창 총재는 이날 당 5역회의에서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정 내정자를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세종시 수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반발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청와대에서 곧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정 내정자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정 내정자는 녹색뉴딜 정책 등 대규모 토목사업에 반대해 왔으나, 전날 “4대강 사업은 수질개선과 관련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영희 제5정조위원장은 “정 내정자는 수질개선 운운하며 두루뭉술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4대강 사업이 그동안 비판하던 대형토목건설 사업인지, 아닌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충남 천안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정 내정자는 학자적 양심에 따라 의견을 밝힌 것뿐”이라며 “정 내정자의 발언이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섰다. 한편 정 내정자는 이날 서울대에서 열린 ‘사단법인 호랑이스코필드 동우회 창립총회’에서 ‘세종시·4대강 발언’의 진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발언) 시기가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후회한다는 식으로 보도하진 말아달라.”면서 “개인적 견해를 말했을 뿐인데 (언론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홍성규 유대근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서울광장] 국민 편안 위해 싸우라/박재범 논설실장

    [서울광장] 국민 편안 위해 싸우라/박재범 논설실장

    청와대 3기 진용이 짜여졌다. 곧 개각도 이뤄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을 공언한 이후 첫 인사다. 무릇 인사의 평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압축하면 두 가지다. ‘회전문’ ‘그 밥에 그 나물’ 또는 ‘깜짝쇼’ ‘능력 미지수’ 등이다. 이런 식의 까칠한 평가가 정확한지는 결과물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지금 나라 전체에는 각종 난제가 산적해 있다. 눈앞에 닥친 것을 대충 꼽아 보면 국회의 제기능 회복, 개헌 및 선거구·행정구역 개편 등 대형 현안이 즐비하다. 경기회복과 국가재정 건전성 확보를 비롯해 부동산값 급등 문제, 일자리 창출, 소득양극화 완화 등 경제현안도 녹록지 않다. 아울러 미디어산업 육성, 교육정책 및 친서민정책의 실효성 강구 등의 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새로 짜인 진용은 이런 굵직한 문제와 씨름할 것이다. 힘겹더라도 실무적으로 대통령이 선언한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말썽없는 게 최선이겠으나, 정당하다면 설혹 말썽이 빚어지더라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뚝심있게 초심을 지켜야 할 터이다. 정책의 결실을 나타내는 것보다 좀더 중요한 과제는 국가질서를 공고히 다지는 일이 될 것이다. 국정운영자라면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을 가동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국민들의 삶을 이전보다 낫게 만들 의무를 지고 있다. 이익단체나 시위만능주의자 등이 법적 권리의 한계를 넘나드는 데서 빚어지는 사회적 낭비와 폐단이 적지 않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갖춘 민주국가답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맞춰 나가야 한다. 공직부패와 권력의 오남용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질정해야 한다. 이익단체에 끌려다녀서도, 관료에 끌려다녀서도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국가가 작동되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제도의 정비로 보인다. 행정구역 및 선거구 개편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 논의에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지방자치제도의 개혁이다. 주민생활에 직결되기에 중앙정치의 영역인 개헌 및 선거구 개편 등보다 더 의미가 깊을 수 있다. 실제로 이미 전국이 들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지역을 대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준비란 주로 정당을 쫓아다니는 일이다. 정당공천제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경륜과 지혜를 쌓은 사람들 가운데 여럿이 지방자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행정을 돕거나 견제할 지방의회 쪽을 지켜본다. 그러나 이들은 정당공천의 벽에 이내 주저앉는다. 현재 지방의원들은 심하게 말해 국회의원의 ‘따까리’나 다름없다. 지방의원들이 사나운 호랑이처럼 의정비 인상에 골몰하는 까닭이다. 국회의원의 뒷수발에 드는 각종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또 중앙의 공허한 이념과 패거리정치에 휩쓸리다 보니, 생활정치에 소홀해지기 일쑤다. 주민의 삶을 개선할 조례 발의가 적은 이유로 보인다. 사심없는 인재들의 자발적 진입을 포기하게 만들고, 현직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왜곡하는 정당공천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중앙정치에서 지방을 떼어내,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심판대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번 진용은 국민이 편안해질 일이라면 싸움이 크더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올라간 만큼 내려 오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때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길섶에서] 친구/박재범 논설실장

    “친구가 다섯명은 있어야 하네.” 어느 선배가 들려줬던 조언이다. 최근 그는 “그들 다섯명의 건강을 꼭 챙겨야 하네.”라고 덧붙였다. 사연은 이랬다. 정부 고위관료를 지낸 그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으면서 순수한 관계의 친구가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십여년 노력 끝에 이해를 떠난 친구 다섯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다섯인 이유는 한둘이 감기몸살이라도 걸릴 경우 외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갑 이후 다섯이 모여 등산도 다니고 토론도 벌이며 즐겁게 지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두명의 친구가 병석에 누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셋이 모이지만 뭔가 쓸쓸하다고 했다. “내 건강만 챙겼는데, 차라리 친구 건강을 챙겼어야 했다.”는 게 그의 후회였다. 그의 당부를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소중함까지는 느꼈지만, 그들의 건강을 챙긴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갖지 못했으니 말이다. 조건과 사심에서 벗어나 신실하게 맺은 우정에, 배려심까지 갖춘 착한 선배가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기원해 본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아씨』의 작가 임희재(任熙宰)씨 무덤에 아담한 묘비가 세워졌다. 고인의 옛 동료들(방송작가협회)이 세운 것이다. 그 묘비의 제막식에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양이 새 가정의 『아씨』가 된지 6개월만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고인의 옛동료들이 모여 19개월만에 묘비 세우고 『한 인생이/그가 쓰는 작품에/만천하가 보내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다/쓴다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비바람은 언젠가 이 비문(碑文)을 지우리라/그러나/우리는 무(無)의 철리(哲理)를 알기 때문에/슬퍼하지 않는다/산에서 사는 새들아/이곳에 와 노래하라』 자연석을 깎아서 다듬은 조그만 묘비. 그 묘비에 새겨진 묘비명이다. 10월 18일 하오 3시,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기독교인 공원묘원. 임희재씨가 간 지 19개월만이다. 이 자리엔 미망인 조옥순(趙玉順)씨를 비롯한 가족과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김세윤(金世潤)등 「탤런트」, 그리고 생전에 고인을 아끼던 동료작가, 연출가들 60여명이 단촐하게 모였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선 늦가을의 햇살이 포근히 내려쬐고 있었다. 작가 김교식(金敎植)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개식을 알리자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주제곡이 녹음「테이프」를 통해 은은히 울려나왔다.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묘비명은 고인의 오랜 친구 한운사(韓雲史)씨가 지었고 글씨도 손수 썼다. 이어 추모작품 낭독.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이 「마이크」앞에 섰다. 「아씨」의 주제가가 흐르면서부터 울음을 삼키고 있던 김희준은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추모가(追慕歌)는 『아씨』의 주제곡… 복혜숙(卜惠淑)도 합창하며 울어 추모작품은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마지막 회분의 「내레이션」부분이다. 작년 1월7일 2백5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아씨』의 해설이었다. 김희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를 낭독해 나갔다. 『아씨는 공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리 만무하지만 변모한 집꼴하며 홀로 계신 오라버니를 뵈오니 가슴이 아파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달은 교교하고 밤은 깊어가는데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좀전에 김수만 이란 노신사를 만난 탓일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타다 남은 불씨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아씨를 가리켜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라느니, 혹자는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한평생을 살 수는 없다느니, 또한 그를 통해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재인식하며 인종의 미덕을 높이 승화하기까지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아씨는 곧 우리들의 어머니며 할머니며 또한 그분들은 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것 뿐이다』 「아씨」김희준은 흐느끼다 읽고 읽으면서 흐느꼈다. 몇번이나 낭독을 중단해야 했다. 추모작품이 낭독되는 동안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들쪽에서 조용한 흐느낌 소기라 들려왔다. 그 자리에 나온 원로 여배우 복혜숙여사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인 임씨는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자리에 눕는 바람에 『아씨』의 마지막 탈고를 손수 못했다. 2백회를 갓 넘기고부터 병이 나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극작가 이철향(李哲鄕)씨가「바통」을 이어받아 작품을 마무리 했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임씨는 작품에 대한 집념을 끝내 버릴 수 없었던지 마지막회의 해설만은 자신이 썼다. 연출가 고성원(高聖源)씨가 병석에 찾아가 임씨가 부르는 대로 받아써서 고인의 뜻대로 마지막 회의「내레이션」으로 집어 넣었었다. 그래서 고인의 많은 다른 작품을 제쳐 놓고 이것을 추모작품으로 결정하여 다시 한번 고인에게 들려 주게 되었다고. 추모가도 『아씨』의 주제가로 했다.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복혜숙, 김세윤, 여운계(呂運計), 선우용녀(鮮于龍女),등 5명의 「탤런트」가 나와 『아씨』를 합창했다. “친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셨는데…” 젖은 목소리로 합창이 계속되는 동안 김희준은 시종 우느라고 단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일행이 산을 내려와도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겐 작가선생님이 아니었어요. 친부모님 같이 느껴지던 분이었어요. 그렇게 말이 없으시고 그토록 착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군요』 김희준이 임희재씨의 묘소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탤런트」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아내로 돌아간 그녀는 옛 동료들과 함께 존경하던 분의 무덤 앞에 나선 순간부터 짙은 애수를 느낀것 같다. 『사실 「아씨」는 제 생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노력을 했던 작품이고 또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죠. 그분은 제게는 퍽 자상하셨어요. 연기를 잘 해 보기위해 저는 시간만 있으면 댁으로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그분도 제 얘길 많이 작품에 반영시켜 주셨어요. 어느 딸과 아버지가 그보다 더 친할 수 있을까요…』 『대본을 좀더 일찍 써 주면 연습을 많이해서 보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재촉을 하며 응석을 부린 일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돼요…』 사실상『아씨』가 2백회를 넘겼을 무렵 임희재씨는 건강이 아주 나빠 있었다. 위암이라는 결정적인 진단이 내렸었는데 병자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김희준은 임씨의 병상을 방문했을 때 『이젠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라면서 김양의 손목을 꼭 잡더라고. 그것이 김양이 임씨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희준은 『아씨』때문에 누구보다도 화려한「탤런트」생활을 누렸다. TV「드라머」로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이『아씨』는 그때까지 그늘에 묻혔던 김희준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의 인기를 배경으로 결혼, 은퇴해 버린 김희준. 『「탤런트」생활을 다시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4월21일 신경과 의사 하영수(河榮秀)씨와 결혼한 그녀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충분히 행복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임희재씨와의 추억이 담긴 『아씨』로서 그녀의 연기생활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편이 그녀다운 일이라고나 할까. <오(五)> [선데이서울 72년 10월 29일호 제5권 44호 통권 제 212호]
  • [27일 TV 하이라이트]

    ●반갑습니다 선배님(KBS1 오후 7시30분)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고백하는 김창렬.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고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연을 들은 공항고등학교는 잊지 않고 모교를 찾아준 김창렬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한다. 눈물과 감동의 명예 졸업식 현장이 공개된다. ●30분 다큐(KBS2 오후 8시30분) 내 마음대로 쏙쏙 골라갈 수 있는 저렴한 한국여행. 사람 많은 피서지, 꽉 막힌 고속도로 때문에 휴가를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한국여행 코스가 있다. 경제 한파 속 똑똑한 알뜰 여행족들에게 제안하는 지하철을 이용한 국내여행. 한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특별한 여행 노하우를 살펴본다. ●사주후愛(MBC 오후 6시50분)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는 결혼 6년차의 부부. 두 사람의 대화 방법은 한 장의 포스트잇. 어쩌다 한번 하는 대화마저도 비난 섞인 싸움으로 끝이 난다. 유일한 안식처가 PC방이라는 남편은 틈만 나면 게임을 하러 가고, 아내는 남편이 없으면 휴대전화로 위치 추적을 하는데…. ●아침드라마 녹색마차(SBS 오전 8시40분) 형모가 자백한 것을 뒤집기 위해 성근은 마크를 증인으로 만들어 정하를 공범으로 지목하게 만들라고 한다. 형모가 산업스파이 사건을 자백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하고 채영은 정하가 정보를 흘린 게 분명하다며 더 이상 언론에 압력을 넣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한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10분) 예로부터 용수가 부족한 논의 유일한 물 저장창고였던 작은 웅덩이, 둠벙. 둠벙은 가뭄을 헤쳐 나갈 지혜의 샘이자, 자체적으로 완벽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사라져야만 했던 둠벙. 그런 둠벙이 최근 주목을 받으며 복원되고 있다. 다시 복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한국 영화 ‘해운대’의 시사회가 열린 상하이 따닝루의 한 영화관.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쓰나미로 연인들이 이별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영화 ‘해운대’는 중국 전역 개봉을 시작으로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등에서 잇따라 흥행몰이에 나설 예정이다.
  • 새달 이집트 U-20월드컵 개막… 홍명보 감독 인터뷰

    새달 이집트 U-20월드컵 개막… 홍명보 감독 인터뷰

    “U-20월드컵 목표는 16강 진출.” 26일 오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홍명보(40) 감독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카리스마를 뿜고 있었다. 오전 훈련이 조금 길어졌지만 선수들 역시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이다. 최근 수원컵에서 3전 3승으로 우승했고 지금까지 국제경기 7경기 무패(6승1무)를 달리는 상승세. 선수들은 “패하는 느낌을 까먹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새달 24일 개막하는 이집트 U-20월드컵을 앞둔 홍 감독을 만나 봤다. ●“기성용급 만들어 낼 것” 한국은 꼭 한달 후 ‘열사의 땅’ 이집트에서 카메룬과 조별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카메룬·독일·미국과 ‘죽음의 C조’에 편성돼 있는 터. 대륙별 최강팀들이 모여 홍 감독의 고민도 깊어져 간다. 하지만 홍 감독은 당당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준비가 잘되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대로 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카메룬은 비디오 분석이 끝났고 독일은 홍 감독이, 미국은 서정원 코치가 직접 다녀와 맞춤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어떤 팀이 만만하냐는 물음에 홍 감독은 “세 팀 다 모든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다만 그들도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테고 우린 그때 찬스를 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이어 “목표는 조별예선 통과”라면서 “결과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후회 없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5년 박주영·백지훈, 2007년 이청용·기성용처럼 스타선수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어린 선수이다 보니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팀에 스타플레이어는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 전 합류문제로 논란이 됐던 기성용(FC서울)에 대한 미련도 접었다. “감독을 맡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성용이었지만 (합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태연히 말했다. 하지만 큰 눈을 번뜩이며 “아직 기성용만큼 되는 선수는 없지만 곧 그렇게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4주면 충분하다” 선수들이 패배를 잊으며 고공행진을 하는 만큼 감독의 마음은 내심 불안하다. 홍 감독은 “강팀과 연습경기를 해보지 않은 게 가장 걱정이다. 혹시라도 실전에서 주눅들까봐 연습 때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홍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건 ‘생각하며 축구’. 그는 “미리 정해진 전술 안에서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릴 때 이런 기본기를 닦아 놓으면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현재는 시일이 촉박한 만큼 ‘수비 의지’를 들고 나섰다. 그는 “기본 수비가 무너지면 공격도 원활히 안 된다. 공격수부터 수비 의지를 갖고 달려들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는 국가대표팀 코치를 3년간 맡으며 선수 기량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A매치 데이에 맞춰 전술은 물론 훈련 날짜와 시간 등을 꼼꼼히 챙기는 지도자를 보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진 것. 때문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선수들의 조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말한다. 프로팀 감독도 마다하고 U-20대표팀 감독생활을 즐기는 이유도 명확하다. 그의 말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선수’들을 데리고 후회없이 한번 해보고 싶기 때문.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거창한 출사표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진중함이 느껴져 오히려 승리의 간절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교중퇴’ 김창렬, 명예졸업장에 눈물

    ‘고교중퇴’ 김창렬, 명예졸업장에 눈물

    고등학교를 중퇴한 DJ DOC 김창렬이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받고 눈물을 보였다. 김창렬은 오는 27일 방송되는 KBS 1TV ‘반갑습니다 선배님’ 녹화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한 서울 공항고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최근 악동이미지를 벗고 훈남아빠로 거듭난 김창렬은 후배들에게 “현재는 나의 미래다.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 달라.”고 전했고 그의 진심 어린 충고에 후배들은 숙연해졌다. 이어 김창렬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며 “아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고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사연을 들은 학교 측은 김창렬에게 졸업식을 열어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김창렬은 상상도 못했던 명예졸업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깜짝 방문한 고교시절 은사와 친구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날 김창렬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후배를 위해 직접 두발로 뛰며 기금마련 콘서트를 준비하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 = KBS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0대 복권 재벌, 6년 만에 ‘빈털터리’

    복권에 당첨된 10대 소녀가 6년 만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컴브리아 주에 사는 캘리 로저스(22)는 2003년 39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됐으나 6년 만에 그 돈을 모두 날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 가는 로저스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돈을 한꺼번에 얻게 돼 인생이 무너졌다고 하소연 했다. 그녀는 “막대한 당첨금이 가져온 불행에 인생이 망가졌다.”면서 “시간을 되돌린다면 복권 따위는 사지 않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당첨 직후에는 그녀도 여느 당첨자들처럼 돈을 펑펑 쓰며 지냈다. 고가의 자동차를 사서 타고 다녔으며 저택 네 채와 자동차를 사서 가족들에게 나눠줬다. 가슴 확대 수술을 받고, 명품 옷을 사는데만 10억원을 지출했을 정도였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돈을 펑펑 썼지만 돌아오는 건 배신이었다. 그들은 그저 내 돈을 탐내고 접근한 것이었다.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로저스는 돈을 노리고 접근한 남성과 결혼했다가 큰 상처를 받았다. 자식을 두 명이나 낳았으나 이 남성은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재산을 빼돌리려 했다. 큰 충격을 받아 그녀는 두 번이나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술과 파티에 찌들어 방황한 그녀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났다. 약물 중개상이었던 그 남성은 로저스의 집에서 코카인을 거래하고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지난해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연루돼 그녀 역시 체포됐으나 변호사를 고용한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재산을 모두 날리고 변호사 비용인 600만원 만 빚으로 남았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그녀는 “차라리 지금이 행복하다.”면서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못할 압박을 받으며 너무나 괴로웠다. 그 때보다 가난하지만 청소부로 일하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담담히 심경을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안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파란만장한 이승에서의 삶을 접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인동초(忍冬草)의 ‘후회 없는 삶’이 산 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남겨지는 순간이었다.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참석자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유지(遺志) 계승의 각오를 눈물로 대신했다.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5시 직전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안장식은 고인을 태운 운구 차량이 국가원수 묘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진행됐다. 장엄하고 차분했지만, 고인을 보내는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깝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희호 여사와 직계가족, 장의위원, 민주당 및 동교동계 인사, 국민의 정부 관계자, 전직 비서관,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국군 의장대의 조악 연주와 함께 고인과 이별하는 마지막 의식이 시작됐다. 고인에 대한 경례와 종교의식에 이어 헌화 및 분향,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순서대로 이뤄졌다. 종교의식은 천주교에 이어 기독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치러졌다. 천주교 의식은 고인과 각별한 사이인 함세웅 신부가 집전했다. 불교는 조계사 주지 세민 스님, 기독교는 이해동 목사, 원불교는 이선종 서울교구장이 집전했다. 하관식을 위해 고인이 이동하자 이 여사를 비롯해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조금씩 토해냈다. 고인을 실은 향나무관이 아래로 내려가자 유족들의 울음 소리는 높아졌다. 이어 허토 의식이 진행되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오열하며 고인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허토 의식은 이 여사가 먼저 흙을 뿌리며 시작됐다. 이어 홍일·홍업·홍걸씨, 친인척, 고인의 전직 비서관, 장의위원 관계자, 민주당 인사, 국민의 정부 인사, 현 비서실 인사, 일반 조문객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관에 흙이 뿌려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 터에서 가져온 흙 한 줌도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임하던 이 여사도 허토 의식을 마친 뒤 꾹꾹 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 듯 눈물을 쏟아냈다.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으면서도 이 여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한참 동안 오열했다. 홍걸씨가 옆에서 이 여사의 등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나눴다. 이어 군악대의 진혼곡과 조악 연주를 뒤로한 채 고인은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정치권의 한 참석자는 안장식을 마친 뒤 “국장 기간 내내 고인의 생전 말씀과 인연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텼지만, 끝내 이렇게 가시고 나니 이제야 ‘김대중’과 함께 ‘한 시대’를 보냈다는 사실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밀려온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분의 마지막 길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과제를 엄중히 이어 가겠다.”면서 “그것이 ‘김대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김민희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열린세상] DJ의 ‘도전과 응전’/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DJ의 ‘도전과 응전’/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영면의 세계로 떠났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향하는 길가에 운집한 추모행렬은 그가 겪은 격동과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길고 길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애도의 물결은 그가 태어난 작은 섬 하의도에까지 다다를 듯하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이제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무려 27년 만에 완성한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근사한 테제로 잘 알려져 있다. 26개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역작에서 그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문명의 태동과 발전은 고통과 시련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과 당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거듭되는 난관과 시련이 오히려 의지와 저항력을 키우고 직관과 분별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토인비 문명사관의 요체다. DJ는 자신의 인생을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노회한 정치가의 식상한 수사가 아니다. 2009년 5월2일 그가 작성한 일기를 보자.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또 다른 지면에서 그는 도전과 응전의 관계를 ‘나의 사상과 역사관을 단련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회고했다. ‘대응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판난다.’는 DJ의 인생철학은 그가 걸어온 험난한 정치역정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DJ를 한국 현대사의 주역으로 성장시킨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군부독재정권이 가한 시련과 핍박이었다. DJ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군사정권은 그를 제거하려 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007 소설에나 나올 법한 죽음의 문턱들’에서 그를 생환시켰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DJ의 결연한 응전은 그를 더욱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시켰다. 납치와 고문, 그리고 사형판결은 반려자의 눈에는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의미하겠지만, 그 풍상과 질곡의 시간들은 DJ에게 민주화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보다 명료하게 각인시키고 나아가 그의 대내외적 인지도를 제고시키는 결정적 기제로 작동하였다. 수감생활은 엄청난 독서로 이어지면서 안목과 논리를 배가시켰고, 가택연금은 영어능력을 키우면서 지도자의 국제적 소양을 숙성시켰다.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당 서정주가 읊은 ‘자화상’의 한 대목이다. 누추했던 성장기의 험난한 어려움을 ‘바람’으로 은유한 이 소절은 불굴의 의지로 갖은 고난을 극복한 인간 김대중에게 더욱 적절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DJ의 도전과 응전은 때로는 일탈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는 우리사회를 유린해 온 고질적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편승하는 우를 범하면서 분열과 반목의 확산에 장단을 맞췄다. 권력에 대한 그의 집착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단일화를 무산시켰다. 그는 ‘그때 일을 후회한다. 국민 염원을 최우선에 두고 내가 양보했어야 했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한편 국민과 약속한 정계은퇴를 번복하면서 ‘민주주의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에 있다.’는 평소의 소신을 저버리기도 했다. 평생 맞닥뜨린 도전과 그에대한 응전에 있어서 이따금 적절치 않은 방식을 택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DJ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육체의 쇠약과 엄습하는 고통은 DJ에게 다가온 최후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어려움과 고통에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며 멋지게 응수하였다. 자신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이 오히려 아름다웠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발전한다는 인생관과 신념은 남은 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제 도전과 응전이 없는 편한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한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서울광장]괜한 싸움을 줄이는 게 중도다/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괜한 싸움을 줄이는 게 중도다/이목희 수석논설위원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옳다.” 시리즈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계집종이 싸운 이유를 듣고 모두에게 “네 얘기가 옳다.”고 했다. 곁에서 듣던 부인이 타박하자 황희 정승 왈 “당신 얘기도 옳소.” 황희 정승에게 어떤 이가 물었다. “아버님 제삿날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사를 드려야 할까요.” 황희 정승이 말하길 “안 드려도 되지.” 며칠 후 다른 이가 물었다. “아버님 제삿날에 우리 집 돼지가 새끼를 낳았지만 제사는 드려야겠지요.” 황희 정승은 “당연히 드려야지.” 부인이 또 타박하자 “제사 드리기 싫은 놈은 안 지내도록 하고, 제사 드리고 싶은 사람은 드리도록 했을 뿐….” 황희 정승이 우유부단했다고 지적하는 이가 있다. 정말 그럴까. 세종대왕 시절 함경도 변방을 정벌하는 임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모함과 질시 속에 황희 정승은 김종서 장군을 천거하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김종서 장군이 6진 개척이라는 찬란한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황희 정승의 소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중도실용주의를 강조한 이래 청와대와 각 부처가 바빠졌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하고, 부자가 섭섭지 않으면서 서민도 살리는 묘책을 짜내려니 쉬운 작업이 아니다. 청와대의 이데올로그라는 이들은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설명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보수정책과 진보정책을 적당히 버무리면 중도인가. 오른쪽 깜박이와 왼쪽 깜박이를 번갈아 켜면 중도인가. 사실 참여정부도 깜박이는 왼쪽으로 켜놓고 세불리하면 가끔은 오른쪽으로 돌아 진보·보수 양쪽에서 욕을 먹었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권과 차별화된 중도실용주의를 실행하려면 단순·명쾌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보수·진보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어정쩡한 중간쯤의 중도로는 감명을 못 준다. 그 때문에 황희 정승 일화를 꺼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는게 중도”라는 것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두 계집종들이 싸울 때는 서로 잡아죽일 듯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런 일로 왜 다퉜을까.”라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광복 이후 여야가, 경영자와 노동자가 싸운 사례와 이유를 따져 보면 90% 이상은 계집종들이 다툰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각박한 정치·사회 풍토가 계속되니 안 싸울 일까지 죽기살기로 다투고 있다. 황희 정승은 국가안보와 연관되자 뚝심있게 주장을 관철시켰다. 고집을 부릴 일, 안 부릴 일을 어떻게 구별하나. 그래서 진정한 중도보수주의자는 중용·절제의 미덕과 분별력·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서구 정치학에서는 이를 프루던스(prudence)라고 부른다. 지금 청와대에 이데올로그들이 없지 않으나 한 차원 높은 조언을 듣는 게 낫다. 정치철학적으로 중도통합론에 평판이 있는 이는 노재봉·박세일씨일 것이다. 두 사람은 교수 출신이지만 청와대 참모, 국회의원을 지냈으니 현실감각도 있다. 노재봉 전 총리에게 “현 정부가 중도논리를 어떻게 펴는 게 바람직합니까.”라고 물었다. 답변이 단순 명료했다. “갈등 해소.” 노재봉 전 총리 같은 이를 여러 사람 부르는 데 섞지 말고, 따로 진중하게 만나 현 정권 정책과 지향점 전반을 관통하는 중도논리의 조언을 듣기 바란다. “소모적인 갈등구조의 해소가 중도의 요체”라는 생각을 깔고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낸다면 중도를 둘러싼 국민 공감대가 훨씬 넓어질 것이다. 이목희 수석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룰라’ 이상민, 심금울린 DJ추모글 “국민의 아버지…”

    ‘룰라’ 이상민, 심금울린 DJ추모글 “국민의 아버지…”

    룰라의 리더인 이상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상민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다음 날인 19일 미니홈피 첫 화면에 ‘그냥 따뜻한 느낌 이셨던...’이란 글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으로 슬픈 날입니다’라는 제목의 추모글을 남겼다. 이 글에서 이상민은 “그냥 따뜻한 느낌이셨던, 무거운 분위기의 토론장에서도 농담을 잘 던지시던, 국민의 아버지 같았던, 그런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애도합니다.”라고 생전 고인에 대한 애틋함을 표했다. 미니홈피 음악도 애도의 뜻을 담았다. 이상민은 룰라의 컴백 앨범 중 발라드 곡인 ‘가고 싶어’를 설정, ‘가고 싶어. 너의 곳으로. 가고 싶어. 니가 있는 곳으로. 힘들 때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 후회하고 있는데.’라는 노랫말로 방문객의 마음을 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연예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준기, 김동완, 신해철 등을 비롯해 라디오 방송에서는 김미화, 태연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뜻을 전했다. 한편 김지현, 채리나, 고영욱, 이상민 등 원년 멤버 그대로 9년만에 돌아온 룰라는 컴백곡 ‘고잉고잉’에 이어 ‘같이 놀자’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 이상민 미니홈피 캡쳐,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전 대통령 일기 일부 공개

     지난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일기 일부가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의 유족측은 21일 오전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일부를 게재했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전문. 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문화마당]막걸리를 위하여/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문화마당]막걸리를 위하여/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재 너머 성권농(成勸農)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 정좌수(鄭座首) 왔다 하여라. 조선조 시가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유명한 단가이다. 시어가 살아 움직이듯 흥에 겨운 정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필자가 술과 술자리를 좋아해서 이 시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술 한 말에 시 한 수를 지었다는 이태백만큼이나 술을 좋아한 시인 송강은 자신의 작품 곳곳에 술을 소재로 시어를 풀어놓았다. 권주가로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에도 송강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매여 가나 /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 예나 /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술에 가기곳 가면 /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찌리. 사람이 죽으면 지게 위에 거적을 씌워 가든, 화려한 휘장으로 감아 여럿이 울며 따라가든 무덤에 가기는 마찬가지이니, 그때 가서 후회 말고 살아 있는 오늘 마음껏 술을 마시자는 내용이다. 애주가인 작가의 호방한 기질이 드러나면서도 어쩐지 애잔한 정서가 감지되는 시구이다. 이쯤에서 송강은 어떤 술을 즐겨 마셨을까 궁금해진다. “청탁을 불문하고 즐겨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송강도 그리하지 않았을까. ‘청탁’은 한 술독에서 술을 떠내는 방식에 따라 나뉘는 청주와 탁주를 일컫는 말이다. 쌀을 발효시킨 술독에 용수를 박아놓으면?용수 안에 맑은 술이 괴는데 이것이 청주이며,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덧을 체로 막 걸러낸 것이 막걸리, 탁주이다. 막걸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술이었는데, 막걸리를 마신 다음 날이면 유난히 숙취로 고생을 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에는 쌀보다 값이 싼 밀가루가 원재료로 쓰이고, 발효시간을 줄이고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카바이드까지 첨가되었다니 술 마신 뒤끝이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좋은 쌀로 정상적인 발효과정을 거쳐서 제조되니 숙취로 고생할 일이 크게 없다. 요즘은 막걸리 열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사람들까지 막걸리를 찾는다고 한다.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기 때문인지, 맛과 품질이 크게 향상되어서인지, 아무튼 인기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막걸리를 유난히 즐겨 마시는 필자에게도 물론 반가운 소식이다. 막걸리에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대장 운동을 돕고 심혈관질환 예방에도 효과가 있으며 막걸리로 다이어트까지 한다고 하니, 술이 마치 무슨 기능성 건강음료라도 된 듯하다. 술을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해서 마시라면 그렇게야 못 하겠다 싶은 것이 술꾼의 성정이지만.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그 질감과 단맛, 신맛, 떫은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청량한 느낌, 뽀얀 복숭아 속살 같은 색감이 첫 잔을 들 때마다 기분을 살짝 달뜨게 만든다. 또, 알코올 도수도 높지 않아 좋은 이들과 어울려 은근한 취기를 오래 누려가며 술자리를 즐길 수 있다. 싸구려라는 편견을 벗고 여러 사람이 두루 즐기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술로 막걸리가 거듭나기를, 또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명필 한석봉의 권주가 한 수를 띄운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 아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김동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 “꾸준히 선수 믿는 지도자 되고 싶다”

    “꾸준히 선수 믿는 지도자 되고 싶다”

    “은퇴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최고참이자 ‘영원한 회장님’인 송진우(43·한화)가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1년 간 걸어온 프로야구 외길 인생을 마치는 순간. 그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었다. 송진우는 18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21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고, 시간이 흘러서 은퇴를 결심했다. 열심히 선수생활을 한 만큼 후회는 없다. 은퇴하더라도 선수생활만큼 열심히 해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송진우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을 보유한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통산 최다인 210승(153패 103세이브), 사상 첫 2000탈삼진(2048개)뿐 아니라 통산 3000이닝(3003이닝)을 돌파한 유일한 투수다. 지난 4월26일 최고령 출장(43세2개월10일) 등 국내 최고령 기록도 그의 몫이다. 그는 “기억에 남는 기록은 데뷔전이던 89년 4월12일 대전 롯데전에서 첫 완봉승을 거뒀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기록은 역시 사상 첫 3000이닝을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던졌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으로는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선수생활하면서 기록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다. 하지만 한화가 빙그레 시절부터 항상 준우승에만 머물러 아쉬웠는데, 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돌아봤다. 불혹이 넘는 나이까지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을 터. 송진우는 1997~98년 2년 연속 6승에 그치며 슬럼프도 경험했다. 그는 “당시 상대 타자들이 내가 던지는 공이 뻔히 보여 치기 싫다고 얘기했을 때 가장 큰 좌절을 느꼈다. 야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즌을 마치고) 미국 애리조나로 교육리그를 가서 체인지업을 익혔다. 경기에서 잘 활용할 수 있었고 선수생활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며 힘들었던 때를 회상했다. 송진우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문하면서 선수생활을 7년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세 곱절을 했다. 슬럼프 이후 승부보다도 경기장에 있는 시간을 즐기려고 했고, 항상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자신감은 꾸준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40대 중년 남성들이 저를 보고 힘을 얻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송진우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몇년 간 해외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그는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려고 한다. 한국야구도 이제 외국에서 무시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 야구의 운영과 훈련 방식을 익히면서 한국야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꾸준히 선수를 믿는 지도자,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또 팬들에게는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오래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쳤다. 대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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