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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지훈아, 여기 둔 종이 안 봤니? 친목회 돈 받고 적은 걸 놔뒀는데.” 엄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며 물었다. “아니요. 전 책을 읽고 있었던 걸요.” “그래? 그럼 누가 손을 댔지?” 엄마는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 두었는데…….” 엄마는 몇 번이나 응접테이블 위와 아래를 기웃거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 위에는 먼지 하나 앉아 있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조금 전에 요 위에다 종이를 놔뒀거든. 그런데 없잖아.” “난 백 번 말해도 안 봤어요.” “귀신이 곡을 하겠네. 그럼 어디로 갔지?” 엄마는 다시 테이블 주위를 살피셨다. “혹시, 네가 보고 시치미 떼는 거 아니냐? 봤으면 얼른 내 놔라.” 엄마는 미심쩍은 얼굴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만, 난 절대로 보지 않았어요.”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뻔했다. 그동안 엄마의 잔소리에 얼마나 시달렸는데 애꿎은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하다니. 나는 엄마의 물건에는 정말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잘못했다가는 엄마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시 그럼, 엄마가?” 엄마는 의심의 화살을 외할머니에게 겨누었다. “엄마! 왜 또 외할머니를 의심하세요?” 나는 혹시나 하면서도 외할머니 편을 들어드린다는 생각에 큰 소리쳤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찬찬하지 못해서 가끔씩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의심이 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의심하는 건 싫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지.” 엄마는 사라진 종이를 찾지 못해 다시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참 깔끔하다. 뭐든지 어질러진 꼴을 못 보신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물건은 찾기 쉬운데 두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외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온갖 물건이 방안 가득 널려 있다. 아니 이부자리만 빼고 약이랑 할머니 소지품,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난 건망증이 심해서 안 보이는데 두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와 외할머니는 자주 다투시지만 외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엄마는 청소귀신, 정리귀신이 씌운 모양이다. 가구들은 늘 반질거렸고, 물건이 하나라도 제자리에 없으면 난리를 피운다. “너무 깨끗하면 복이 달아난다. 대충대충 청소해라.” 외할머니가 이따금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다니러 왔다가 엄마의 깔끔을 떠는 모습에 혀를 차더니 좀처럼 놀러오지도 않는다. 먼지가 보이지 않는데도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냉큼 걸레질을 하니 할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신 적이 있다. “원 불편해서 다시 가겠냐?” 아빠가 할머니에게 놀러오라고 전화를 하면 할머니는 못마땅한 듯이 말씀하신다. “당신 왜 그래? 어머니가 편하게 지내다 가게 하지.” 아빠가 엄마에게 나무라면 엄마는 “내가 뭐 어머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녜요. 먼지가 앉아서 닦은 것뿐이지.”하고 변명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며 나는 슬그머니 기분이 좋았다.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야 해. 그래야 집안이 늘 깨끗하지, 손님이 와도 안 부끄럽고. 찾기도 쉽고. ” 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헤매다니 고소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청소나 정리뿐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정확하지 않으면 엄마는 마음을 놓지 않으신다. 시장에 갈 때에도 정확하게 살 물건을 써서 꼭 그것만 사가지고 온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싸게 나와도 엄마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먹고 싶은 과일이나 떡볶이, 어묵 같은 걸 맛볼 수가 없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살 때도 싸고 좋은 것을 산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녀 진을 다 빼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사다주신 걸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받아들인다. “신발이 잘 정리되어야 도둑이 안 들어. 도둑이 들어왔다가 아 이 집은 신발장을 보니 물건을 함부로 놔두지 않겠다 하고 가버리지.”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엄마의 잔소리 테이프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었으면 제자리에 꽂아야지.” 만일 책을 읽다가 방바닥이나 거실에 두었다가는 잔소리가 금세 날아와 귀에 꽂힌다. 그래서 나는 책에 손도 대지 않는다. 책정리를 안 했다고 꾸중을 듣느니 차라리 안 읽고 말지. 그러면 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꾸중을 하신다. “너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거 알아 몰라? 학생이 책도 안 읽고 무슨 공부를 한다는 거야?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 알지?”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그래도 살 맛 나는 건 외할머니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일을 대충대충 하시고, 아니 오히려 덤벙대신다. 빨래를 할 때도 대충대충 하시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한 빨래를 엄마가 다시 할 때도 있다. “엄마, 세탁기에 넣어서 빨면 되잖아요. 왜 만날 손으로 빤다면서 잘 문지르지도 않고 비눗물도 잘 헹구지 않는 거예요?” “왜 비싼 전기를 써서 빨래를 하니? 손으로 대충해도 되지. 멋을 낼 옷도 아닌데 좀 더러우면 어때?” 외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왜 그리 성화냐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여 엄마를 더욱 화나게 만들 때도 있다. 할머니는 잘 잊으신다. 시장에 갔다가 돈만 주고 물건을 안 가지고 올 때도 있고, 돋보기안경은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른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건망증 때문이라거나, 노망이 들었다거나,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것 같다고 하시면서 쩔쩔매실 때가 많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잊으신다. “엄마, 이 종이에 살 물건을 다 썼으니까 꼭 이 종이를 보면서 사야 해요.” 엄마가 바빠서 외할머니에게 시장가는 것을 부탁하면 외할머니는 그중에서 몇 개는 빠뜨리실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가 다시 시장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시장에 가는 핑계로 놀 수 있으니까 나는 횡재를 한 셈이다.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네.” 할머니가 실수를 하면 엄마는 외할머니가 못마땅해서 중얼거릴 때가 많다. 아무튼 잔소리와 청소와 정리하러 태어난 사람처럼 엄마는 극성이시다. 엄마가 종이를 찾으러 방으로 거실로 들락거릴 때, 외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 혹시 여기 둔 종이 못 봤어요?” “종이? 어질러졌기에 쓰레기봉투에 넣어 아까 버렸는데. 난 또 쓰레긴 줄 알았다.” “정말이에요?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외할머니를 쳐다보더니 급히 밖으로 나가셨다. “난 또 네가 종이를 아무렇게나 놔둔 줄 알고 엄마가 보기 전에 얼른 치우려고 했지.” 외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잘했어요, 할머니. 엄마도 당해 봐야 잔소리가 줄어들지요.”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매일매일 깔끔을 떠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난리치는 걸 보는 건 흐뭇하기까지 했으니까. 한참 후, 엄마는 종이를 들고 현관문을 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아무거나 버리지 마세요. 한참 찾았잖아요. 쓰레기차가 다녀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알았어. 다신 손대지 않으마.” “내 물건에 손대지 말고 엄마 방이나 깨끗하게 치우세요. 누가 오면 엄마 방문을 열어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니까요.” 엄마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난 네가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미안한지 변명처럼 이야기했다. “내가 언제요? 난 엄마 물건에 함부로 손댄 적이 없는데요.” 엄마도 변명처럼 대답했다. “내가 말해주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리를 한다면서 내가 쓰던 물건에 손대서 내가 찾느라 애먹고 있는 걸 넌 모르지? 너도 나이가 들면 다 나처럼 잊기 대장이 돼. 너라고 안 늙을 줄 아냐? 엉엉엉”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엄마도 참.” 엄마는 더 말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외할머니가 우는 걸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이나 서 있다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알았다. 내가 철딱서니 없이 울었구나. 철이 없게.” 외할머니가 눈물을 그쳤다. 나는 눈물을 흘리던 외할머니가 하나도 철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할머니는 또 실수를 하실 것이다. 그땐 내가 응원을 해 주어야지.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작가의 말 몇 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철이 들어 많이 후회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대화를 많이 하고 배려를 해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약력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남. 아동문예 신인상, 계몽아동문학상, 제주문학상 받음. ‘검둥이를 찾아서’ ‘내 친구 삼례’ ‘이여로 간 해녀’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까마귀오서방’ 등의 창작집이 있음. 현재 서귀포학생문화원장(http://iyudo.hihome.com)
  • 女기자, K3 기관총을 직접 쏴보니…②

    女기자, K3 기관총을 직접 쏴보니…②

    ◆ 1초에 20발, 기관총을 겨누다 <1:20> 오후는 분대 공격 훈련 체험이다. 40분가량 떨어진 육군 부사관학교로 갔다. 오후 첫 훈련은 사격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사격 실력은 나 따라올 자 없었지.” 지금껏 만난 예비역 열 중 예닐곱은 이렇게 자랑했다. “사격 훈련, 너 잘 걸렸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잘해서 그 남자들 코 납작하게 해주겠다며 자신했다. ‘빵, 빵, 빵, 빵’ 고막을 흔드는 총소리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귀에서 손 떼!”라는 교관의 호통에 기가 더 죽었다. 실제 총은 처음 본 터라 손에서 식은땀만 줄줄 났다. 고소공포증도 이기고 레펠 훈련도 마쳤는데 훈련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안하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오락실 총싸움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 무기를 보니 뒷걸음질치게 됐다.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산다는 선배 기자의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뒷걸음질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K3라는 기관총을 어깨에 지지하고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교관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르르…. 놀라운 위력이었다. 2초도 안되어 장전한 20발이 속사포처럼 튕겨나갔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사격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일까. 정답은 탄피 줍기다. 20발을 쐈으면 단 한 발도 남기지 않고 탄피를 주어야 한다. 탄피 한 발이 사라졌다면 그 날은 부대에 ‘비상’ 걸린다. “탄피 하나를 잃어버리면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고 교관은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날 밤 기자는 악몽을 꿨다. 사라진 탄피 세 발을 찾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 훈련의 하이라이트, 분대공격훈련 <2:30> “2번 분대원 북한군이 쫓아오는데도 그러고 있을 것입니까.” 또 호통이다. 하루 종일 혼났더니 이제는 교관의 빨간 모자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오전에 받은 유격훈련에서 83번 후보생으로 불렸다면 오후에 받은 분대공격 훈련에서는 2번 분대원이었다. 가짜 수류탄을 ‘건빵 주머니’에 넣고 공포탄이 든 총을 어깨에 멨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군모에 밤나무 가지를 꽂으니 실제 전투에 임한다는 비장함이 몸에 흘렀다. 게다가 기자는 체험이지만 다른 분대원에게는 진짜 훈련이기에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몸을 숨기라.”는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포복을 하고 “9시 방향에 있는 북한군을 공격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뛰어가는데도 번번이 제일 늦었다. 엄지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터졌고 입안에 마른침이 끓어올랐다. 인간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이야기 하는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 한계를 극복하는 군대 훈련, 이것이 참맛 <5:30> 서쪽 하늘로 해가 넘어가서야 훈련의 끝이 보였다. “이제 끝이다.”는 해방감 보다는 오늘 겪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기사로 풀어낼까 겁부터 났다. 그 만큼 하루가 길었고, 겪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남자들이 제대하고 몇 년이 흘러도 군대 이야기를 하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충성!” 교관에게 경례를 하는 것을 끝으로 기나긴 훈련이 마무리 됐다. 후보생들과 10분 간 꿀 같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옆에 있는 여자 후보생에게 물었다. “대체 이 고생을 왜 사서 하세요?” 기자의 철없는 질문에 여군은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거예요. 이런 훈련 안 해 본 사람은 모르죠.”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해할 것 같다.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바로 훈련의 참맛이 아닐까. 두고 온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에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남군에게 슬쩍 재차 물었더니 “왜 아니겠어요. 요즘에는 눈 뜰 때마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고된 몸을 뉘일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그래요.”라며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 말이 한동안 가슴을 울렸다. 비록 하루라는 짧은 훈련이었으나 그들의 땀과 웃음 그리고 애환을 엿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묵묵히 나라를 지키는 68만 군인이여, 모두 힘내시라!” 전북 익산=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동영상=김상인VJ bowwow@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살찔 걱정없이 추석음식 즐기는 방법

    살찔 걱정없이 추석음식 즐기는 방법

    올해도 어김없이 햇곡식으로 가득한 추석이 다가왔다. 달콤한 깨와 고소한 콩이 듬뿍 든 송편부터 부드러운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지는 쇠고기산적과 잡채까지, 추석은 그야말로 ‘고량진미’(살찐 고기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의 천국이다. 하지만 3일간의 연휴가 끝난 뒤 체중계에 올라서면 후회가 곱절로 밀려오기 마련. 송편을 비롯한 추석 음식은 대부분 놀랄 만큼 고열량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송편 6개는 300㎉, 잡채 5젓가락은 280㎉, 동태전 3개는 254㎉이고, 약과 2개는 무려 270㎉에 달한다. 대부분 밥 한 공기(300㎉)와 맞먹는 열량이다. 결국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며 먹는 한 끼 식사만으로도 남녀 20~49세 기준의 1일 평균 칼로리 섭취량인 2500㎉와 2000㎉(한국영양학회 2005년 자료 기준)의 절반가량을 채우는 꼴이 된다. 이 상태로 3일을 보냈다가는 지난 3개월간 노력한 다이어트가 헛수고가 될 것은 자명한 일. 어떻게 하면 살 찔 걱정 없이 추석을 보낼 수 있을까. ◆“식사 중에는 되도록 물을 마시지 말고, 김치를 많이 먹을 것” 청강문화산업대학 식품과학과의 이상준 교수는 “명절에는 평소에 잘 먹지 않던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까닭에 과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례 음식은 기름에 볶고 지지는 것이 많아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지방흡수를 억제하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를 곁들여 식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도 소화를 촉진하는데 도움을 준다. 물을 많이 마시면 소화액이 덜 분비되므로 식사 중에는 되도록 마시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송편은 식혜와 함께, 과식 후에는 과일로 지방 해소” 송편은 추석 별미인 동시에 가장 손쉽게 살을 찌우는 추석 음식이다. 간식으로 송편을 먹을 때 탄수화물 분해효소가 풍부한 식혜를 곁들이면 소화를 도와 지나친 포만감을 없애준다. 또 고단백, 고지방, 고탄수화물 식사 후에는 항산화 효과가 있는 폴리페놀 성분과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섬유소인 펜틴이 풍부한 사과, 배 등 과일을 먹으면 과도한 지방이 중성지방으로 전환돼 축적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과식으로 체했을 때는 매실차가 최고” 유혹에 넘어가 과식을 피하지 못했다면 매실을 추천한다. 매실은 위장 활동을 활발하게 해 소화를 촉진 시키고 변비와 설사를 예방하는데 뛰어나다. 때문에 체했을 때에도 매실은 천연 소화제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이상준 교수는 “추석음식으로 살찌는 것을 피하려면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그리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음식을 먹을 때에는 전분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가 풍부한 타액이 음식물과 고루 섞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호우시절’ 고원원 “한국의 눈에 부족하지 않기를” (인터뷰)

    ‘호우시절’ 고원원 “한국의 눈에 부족하지 않기를” (인터뷰)

    인형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미소를 가득 담아 인사를 건네는 배우 고원원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중국 미인이다. 영화 ‘호우시절’(감독 허진호·제작 판씨네마) 속의 메이도, 서울 창서동의 한 카페에 마주 앉은 고원원도 참 예쁘다는 말에 “영화 속 내 연기는 어땠는가?”라는 고원원의 질문이 바로 따라왔다. ◇ ‘호우시절’,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첫 작품 다음달 8일 개봉을 앞둔 ‘호우시절’의 첫 언론시사를 마치고 고원원은 걱정이 많아 보였다. 예쁘다는 칭찬을 너무 많이 들었다는 게 그 이유다.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속에서 후회 없이 연기했어요. 근데 내 연기보다는 예쁘다는 칭찬이 더 많은 것 같네요. 한국의 눈에 제가 부족한 배우가 아니길 바래요.” 허진호 감독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에 출연한 심은하 이영애 임수정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고원원. 이들에 비해 자신이 한참 부족했던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극중 동하로 분한 정우성과 우연히 재회하는 메이의 행복과 망설임 사이의 미묘한 표정이 훌륭했다고 칭찬하자 고원원은 그제야 활짝 핀 미소를 보였다. “저는 까다로운 성격이라 항상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호우시절’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첫 작품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보는 게 꺼려지지 않아요.” ◇ 정우성, 연기도 외모도 훌륭한 남자 ‘호우시절’에서 고원원의 메이는 동하(정우성 분)가 잊지 못한 첫사랑이다. 한국에서도 미남배우로 유명한 정우성과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것이 즐거웠다고 고원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한국 영화에서 정우성과 영화를 찍는다고 하자 친구들도 모두 놀라워했어요. 그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배우입니다.” 정우성의 잘생긴 얼굴은 둘째 치고, 좋은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와 함께 해 행운이었다는 고원원. 정우성 외에 또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한국인 남자 배우가 있냐는 질문에는 고민스런 얼굴을 했다. “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배우와 함께하고 싶다고 선택하기 보다는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 거니까요.” ‘호우시절’의 정우성도, 지난 7월 부산에서 진행된 한국 홍보드라마를 함께 찍은 송승헌도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호우시절)처럼 만났다며 고원원은 미소 지었다. ◇ 한국과 중국, ‘사랑’이란 감정은 하나다 처음으로 한국의 영화인들과 한국의 사랑이야기를 찍은 고원원은 국경의 차이가 사랑에만은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동양적 문화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드라마 속에서 다뤄지는 사랑을 중국인들은 굉장히 좋아해요. 저도 한국 배우인 정우성과 연인을 연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구요.” 하지만 고원원은 다양한 장르의 한국 작품들이 중국에 활발히 받아들여진 반면, 한국인들이 보는 중국 드라마나 영화는 무협이나 역사물에 제한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 같아요. 서로를 깊이 알수록 영화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테니까요.”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다룬 영화 ‘난징! 난징!’에 출연한 이후 어둠에 젖어들었다는 고원원은 시기를 맞춘 좋은 비처럼 ‘호우시절’을 만났다. 사랑의 희망을 되찾게 해준 이 영화처럼 언젠가 또 ‘한국의 비’를 맞고 싶다는 고원원.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 그녀의 바람은 곧 이루어질 것 같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도시와 산]부산 황령산

    [도시와 산]부산 황령산

    “옛 아낙네들은 황령산에 올라와 친정 있는 쪽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지. 그래서 반보기산이라고도 불렸지.” 부산 북쪽에 금정산이 있다면 남쪽에는 황령산이 있다. 해발 427m로 그리 높지 않다. 산꾼들은 “이게 무슨 산이냐.”고 힐난하겠지만 정상에 올라 탁 트인 동해와 동서남북으로 한눈에 펼쳐지는 부산시의 전경을 보노라면 왜 사람들이 황령산에 매료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바다가 가까워 실제로는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돼 이곳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왜적의 침략을 서울 조정에 알렸다. 빠르면 12시간가량 걸렸다고 한다. 또 시집간 아낙네들이 산에 올라와 저너머 친정집 동네를 보며 소맷귀를 적시며 그리움을 달랜 곳이기도 하다. 금정산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꼽히는 황령산은 도심에서 가까운 데다 빼어난 경치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심 속의 산답게 정상까지 도로와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어 365일 찾는 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산 중턱에는 청소년야영장과 체육시설 등이 있어 시민휴식공간으로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 보는,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의 야경은 한폭의 그림처럼 길손의 가슴에 다가온다. 우리나라 야경 가운데 최고로 꼽힐 정도다. ●황령산의 ‘황’은 荒일까 黃일까 황령산은 부산 남·수영·연제·부산진구 등 4개 구에 걸쳐 있다. 동편은 남구에, 서편은 부산진구에 접하고 있으며 남구가 가장 많은 지역을 차지한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돼 있고 북동쪽으로 황령산의 가장 큰 봉우리인 금련산과 연결돼 있다. 산의 암석은 남미대륙 안데스산맥의 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산암으로 이뤄져 있다. 황령산이란 이름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황령산을 누를 ‘황(黃)’자를 써서 황령산(黃領山)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그러나 동래부읍지(1832년)에는 현재처럼 거칠 ‘황(荒)’으로 기록해 놨다. 황령산은 동래가 신라에 정복되기 전 동래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인 거칠산국(居漆山國)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거칠산국에 있는 산으로 ‘기츨뫼’라 했던 게 한자화하면서 거칠 황(荒) 고개 령(嶺)의 황령산이 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산이라는 뜻으로 ‘황강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상호 황령산 늘샘 쉼터 회장은 “황령산 한자명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현재는 거칠 황자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아마 거칠산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령산의 또 다른 이름인 ‘반보기산’에는 시집간 여인네들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옛날 아낙네들은 출가외인이라 시집을 가면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당시 남구 대연동 사람들은 인근의 용호동이나 기장 사람들과 주로 혼인을 했는데, 친정에 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황령산에 올라 멀리 친정 쪽을 바라보며 달랬다고 한다. 가끔 친정식구들과 중간지점인 황령산에서 만나 반나절 정도 정을 나누다가 아쉬움을 안고 헤어졌는데 그런 연유로 반보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이곳에는 탄광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수영구 광안4동 옛 공무원교육원 자리에 있던 광산이 규모가 가장 컸는데 구리와 금을 캤다. ●사통팔달 등산로 황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남구 쪽에서는 대연동 경성대를 들머리로 해서 오르는 임도 코스가 있다. 비교적 코스가 단조롭지만 안전한 데다 길이 넓고 부드러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 산행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린다. 경성대 인문관에 닿기 전 언덕길 왼쪽 산자락으로 따라 난 길을 타고 쭉 올라가면 된다. 황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넓고 편한 길은 몇 개가 더 있다. 문현동 현대2차아파트를 들머리로 오르는 임도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산길은 남구와 부산진구를 가르는 구 경계선인 돌산고개에서 남구방향으로 20m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만난다.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지정광고대 옆(산쪽) 시멘트 길이 초입이다. 산행 초입에서 바람재까지 넉넉잡아 20분이면 충분하다. 부산시는 지난해 10월 ‘황령산 봉수대 전망시설 및 주변정비사업’을 벌여 산 정상에 6604㎡ 규모의 공원을 꾸며 누구나 황령산 정상에 올라 편안하고 안전하게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부산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정상 안 가보면 정말 후회합니데이! 부산 황령산 봉수대는 임진왜란 때 불을 피워 전쟁을 알린 중요한 사적지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와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중 하나이다. 경상도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시대인 1425년(세종 7년)에 황령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됐다.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관리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황령산 봉수대에서 봉수가 올라 북으로 이어졌다. 황령산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면 부산의 앞바다가 확 트여 보이고 내륙지역을 바라보는 시계도 넓어 적의 침입을 쉽게 확인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이 봉수대는 동쪽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는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범어사·계명산 봉수대 등과 연결돼 있다. 부산지역 봉수망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봉수대에는 5개의 봉화구가 있으며 1898년에 기능을 상실했다가 1976년 복원됐다. 이후 1992년과 1995년, 199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봉수대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통신시설로 약 3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화대를 두고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렸다. 평시에는 한 번, 적이 나타나면 두 번, 적이 접근하면 세 번, 적과 싸우면 네 번을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서울 목멱산(현재 남산)의 경(京)봉수대까지 연결됐다고 한다. 해마다 산신제와 함께 봉화 재현 행사가 열린다. 각 봉수대에는 도별장 1명을 두고 이 밑으로 별장 10명, 감고(監考) 1명, 봉군(烽軍) 100명씩 배치했다. 김무조 부산시문화재위원은 “봉수대는 조선시대 군사적 목적의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으며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에서는 가장 오래된 봉수대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부산의 남쪽을 대표하는 황령산의 정상은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기자기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부산시는 정상 전망대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목재 데크를 만들었다. 부산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G20 정상회의 유치] 李대통령 “IMF·세계은행 개혁 위한 결의 필요”

    [G20 정상회의 유치] 李대통령 “IMF·세계은행 개혁 위한 결의 필요”

    │피츠버그 이종락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은 24일과 25일(현지시간) 양일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네 차례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국제금융기구 개혁과 금융규제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24일 핍스 식물원에서 열린 G20 업무만찬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중요한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IMF의 신뢰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에 대한 정상 차원의 정치적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세계은행의 개혁도 동시에 추진돼야 함은 물론”이라며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투표권이 형평성 있게 배분될 수 있도록 지분개혁이 이뤄져야 하며 IMF처럼 지분 검토를 주기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세계은행을 포함하는 다자개발은행들은 저소득 국가의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5일 오전회의에서는 “조급하게 ‘출구전략’을 실행함으로써 ‘더블딥 리세션(double-dip recession·이중 경기침체)’을 경험한 역사적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출구전략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이 가능하려면 현 세계경제의 재균형(rebalancing)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열린 오찬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보호무역을 저지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면서 “실업률이 계속 높아지는 등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에 대한 정치적 유혹이 크다.”고 보호무역주의 반대 및 현 수준 동결(스탠드스틸)을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회의에서 지난해 워싱턴 G20 정상회의에서 설정한 47개 금융개혁과제 이행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금융위기 예방을 위한 부실자산 정리 등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다.”며 “자만심에 빠지지 말고 금융개혁을 차질없이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rlee@seoul.co.kr
  • 나이들면 욕심도 미움도 사라질줄 알았는데…

    정진홍(72)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다고 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의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다고 했다. 종교학자이기도 한 그는 나이 일흔은 ‘드문나이’라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남자이길, 여자는 여자이길 그만두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나누는 갈래짓기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일흔이 되고 보니 욕심도 가시지 않고 가슴앓이도 삭지 않고, 미움도 여전하고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지고, 과거의 보람은 고함처럼 커간다고 했다. 예순 때보다 쉰 때보다 더 철저하게 사람 구실을 하나도 놓지 않고 더 질기게 사람노릇하는 나 자신을 확인한단다. 그는 일흔에 자신의 스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민속지에 나오는 민담(民譚)과 다르지 않고, 다른 종의 생물이 인간의 언어로 여긴다고 증언한다. 일흔이 발언하면 일흔을 함께 사는 사람 말고는 아예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고안해 놓은 사회복지도, 종교도, 공동체와 혈연마저도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오는 신념으로 승화하고, 갑자기 지사(志士)가 되기도 한다. 돈 문제로 치사스럽고,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조바심에 바짝 건강을 염려하는데, 옆에서 볼 때는 다 늙은 노인네가 주책스럽다고 여긴다고 속상해한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어사연 글, 궁리 펴냄)에서 정 교수가 70대를 대표해서 글을 쓴 것이 서문이 됐다. 이 책은 10대부터 80대까지 10년씩 잘라서 각 연령대마다 노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개인적 경험에 비춰 적어내려간 책이다. 어떤 은퇴한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들 부부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잘 다녀 오마.”하고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아들 부부를 배웅 나간 부모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뒤 빨리 내려가지 않아서 듣지 않은 만 못한 소리를 듣게 된다. 아들은 “노인네들이 벌어놓은 것 다 쓰고 세상 뜰 모양이지.”라고 말한 것. 상심한 늙은 부부가 주변에 하소연했더니, 다른 집 자식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란다. 늙음과 젊음, 이렇게 서로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다. 평소 공자의 말씀에 귀기울여왔던 동양인들은 최소한 40세가 되면 불혹, 50세 지천명, 60세 이순의 순으로 유혹을 떨쳐내고, 하늘의 뜻을 이해하며, 어떤 소리에도 희로애락하지 않는다고 알아왔는데 70세가 넘어서도 떨쳐왔다고 생각해 온 그 세계가 악귀처럼 달라붙어 있다니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근력과 육체를 사랑하는 산업자본주의시대에 늙는 일은 서럽기 짝이 없다. 쏟아지는 과학문명에 자신들의 지혜는 설 자리를 내주고 폐기물로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1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軍의 천성관” 합참의장 청문회도 투기·탈세 의혹

    “軍의 천성관” 합참의장 청문회도 투기·탈세 의혹

    “군(軍)의 ‘천성관’이다.”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이상의 합동참모본부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던진 말이다. 이날도 이전 국무위원 후보자의 청문회처럼 부동산 투기와 다운계약서 작성, 증여세 탈루 의혹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군 지휘관으로서 평일 골프를 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후보자는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군인이라서 잘 몰랐다.”는 답변을 반복해 빈축을 샀다. 안 의원은 이 후보자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경기 일산과 분당, 서울 여의도, 가락동 등에서 아파트를 다섯 차례 매매할 때 실거래가보다 5000만원에서 3억원 정도 낮춰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점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이 후보자는 “군 생활에 전념하다 보니 사회통념을 잘 알지 못했다.”면서 “부동산 관련 업자들이 (다운계약을) 추천할 때 ‘공직자인 난 그렇게 못한다.’고 뿌리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이 후보자가 1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 6월 당시 실제 경작하지 않으면서 강원 원주시 신촌리 농지를 매입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투기를 위해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그 일대는 투기지역으로 선정됐었다. 안 의원은 “이 후보자가 1군수지원사령부 이전과 관련해 원주시 개발 정보를 알고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결코 투기 목적이 아니다. 전역 후 그 땅에 집을 짓고 살기 위한 의지가 충만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직접 경작할 조건이 안돼 지인이 관리하고 있다.”며 농지법을 위반한 사실은 시인했다. ‘평일 골프’ 의혹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2006년부터 휴가와 외박 기간이 아닌 평일에 세 차례 골프를 쳤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2008년 국방부 건군60주년 기념사업단장 재직시 3월1일과 2일 이틀 연속으로 남성대에서 골프를 쳤고, 2006년 강원 양양의 8군단장 재직시 훈련기간에 서울 송파구 장지동 남성대까지 가서 골프를 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장군이 부하의 눈을 속이고 평일에 위수지역을 이탈해 골프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며,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결코 그런 사실이 없으며, 제 명예를 걸고 (평일 골프를)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덕만, 뒤늦은 후회…냉정한 유신에 ‘눈물이 뚝뚝’

    덕만, 뒤늦은 후회…냉정한 유신에 ‘눈물이 뚝뚝’

    사랑을 떠나보낸 ‘여인’ 덕만이 결국 눈물을 흘렸다. 지난 22일 방송된 ‘선덕여왕’(극본 김영현 박상연·연출 박홍균 김근홍) 36회 분에서 차가운 유신(엄태웅 분)의 반응에 덕만 공주(이요원 분)의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덕만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유신의 진심과 그 사랑을 거부한 것에 대해 뒤늦은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린것. 무술비재에서 승리했지만 미실파의 음모로 풍월주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된 유신. 그런 유신이 꼭 풍월주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덕만은 유신에게 가야세력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신이 이를 거부하자 덕만은 “그럼 제가 유신랑을 (미실에게)내놓아야 합니다. 제가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하여 유신랑에 대한 내 마음이 작아 보입니까?”하며 진심을 표현했다. 의외로 유신의 반응은 차갑고 냉정했다. “공주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군주가 되는 일을 쉽게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군주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백성을 지켜야 합니다. 전 그리할 것이고 공주님께서도 그리 하시길 요구합니다.” “저는, 그럼 저는요.”외치는 덕만에게 유신은 단호한 눈빛으로 “혼자 가셔야 할 길입니다.”말했고 덕만은 서러움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처소로 돌아와 “유신랑을 놓을 수가 없다. 좋아한다, 연모한다 말도 못했는데…” 말하며 울음을 터트린 덕만의 모습에 비담(김남길 분)은 당황했고 소화(서영희 분)는 “공주님 이제 마음으로 밖에 (사랑)못하세요.”라며 덕만을 위로했다. 여인의 감정을 포기하고 신라의 왕이 되어 대업을 이루려 했던 덕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흘린 덕만의 눈물이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사진 = MBC ‘선덕여왕’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현 “‘30분전’ 돌리고픈 사랑…있었다” (인터뷰)

    이현 “‘30분전’ 돌리고픈 사랑…있었다” (인터뷰)

    §1. 이현, ‘이별 3부작’ 마지막 주인공이 된 이유 ’30분 전에 내 가슴 찢기지 않았는데, 30분 전에 내 얼굴이 눈물 범벅 아니었는데’ (이현 ‘30분 전’ 中) 심장에 총을 맞은 것처럼 숨이 컥 막힌다. 이 남자의 목소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이별 3부작’을 탄생시킨 방시혁이 그랬다. 감정 표현력 만큼은 국내 보컬리스트 중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고. ‘30분 전’의 후렴구에 전율이 인다면, 왜 ‘이별 3부작’의 마무리를 이현이 맺어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슬픔이 짙게 배인 목소리, 절규하듯 흐느끼면서도 이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 창법. 후크송 보다 강한 중독성으로 음악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이 남자의 보컬 표현력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하나의 의문점이 들었다. 경험담은 아닐까. 그래서 물었다. 누군가와 사랑하면서 ‘30분 전’으로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었냐고. “물론 제게도 되돌이키고 싶은 사랑은 있었죠. 20대를 돌아봤을 때, 가슴에 남아있는 한 사람이 있어요. 누구나 이별을 추억해보면,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별 후에 ‘만일 이 시간을 ‘30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 사실 남자들이 더 많이 하거든요.” §2. ‘이프 온리’, ‘이터널 선샤인’…그리고 ‘30분 전’ 마치 필름을 되감듯 사랑했던 이와 이별의 순간을 거슬러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는 판타지 로맨스. 이미 영화 ‘이프 온리’(If only),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등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졌던 이 소재가 노랫말로 풀어진 것은 ‘30분 전’이 처음이다. ’닫힌 문이 열리고, 니가 뒷걸음 쳐 들어오고, 비워진 커피잔이 채워지고 너의 입이 니 말을 거뒀어’(도입부 中) “이색적인 가사가 너무 끌렸어요. 우연히 이 곡의 가이드를 제가 뜨게 됐는데, 처음 불러본 순간 ‘아, 내 노래다. 무조건 내가 불러야겠다’고 느꼈죠. 그후론 어딜가도 이 노래 생각뿐이었어요. 입가에서 ‘30분 전에~’란 후렴구가 떠나질 않는 거예요. 이미 제 노래가 된 마냥 부르고 다녔죠.”(웃음) §3. 사고치고 시위해서 얻은 첫 솔로곡 이현은 가수가 노래를 얻기 위해 작곡가에게 시위(?)를 벌인 최초의 1인으로 기록됐다. 대학 축제에서도 부르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부르고…. 끝내 이현은 올초 에이트의 콘서트 무대에서 “방시혁 작곡가님, 저 이노래 진심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저 꼭 주세요!”라고 돌발 발언을 하며 미공개 곡인 ‘30분 전’의 일부분을 부르는 대형 사고를 치기도 했다. “제가 B형 남자거든요. 큰 사고를 친거죠.(웃음) 아직 주인도 정해지지 않은 곡을 제가 부르겠다고 호소했으니… 어디서 그런 깡이 솟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 노래가 아니면 안되겠다 싶을 정도로 간절했죠.” 요즘처럼 가공된 곡을 받는대로 부르는 대량생산형 가요계 흐름에서 ‘30분 전’을 부르기 위한 이현의 눈물겨운 막무가내 투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이트의 리더로서, 또 2년 만에 첫 솔로 데뷔라 책임감이 막중했어요. 제 이름을 건 첫 앨범인 만큼 정말 좋은 곡을 선보여서, 대중들로 하여금 에이트는 음악적으로 항상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그룹이란 평을 듣고 싶었어요.” §4. 2년 반만에 듣는 임정희의 목소리 ’30분 전’의 여성 듀엣 버전 도입부에는 ‘길거리의 디바’ 임정희의 반가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미국에서 음악 공부 중인 임정희는 데뷔 전부터 자신의 콘서트 무대를 빛내준 아끼는 후배 이현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기 위해 약 2년 반 만에 귀국, 한층 성숙된 목소리를 실었다. “정희 누나는 여성 보컬리스트 중 최고로 꼽히는 분이잖아요. 데뷔 전 정희 누나와 길거리 콘서트에 함께 서면서 친분이 생겼어요. 그리고 ‘30분 전’ 듀엣 버전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셨죠. 미국 유학을 통해 조금은 새로워진, 깊이를 더한 보컬색을 입혀 주셨어요.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멋진 곡이 탄생했죠.” §5. 베스트 보다 ‘온리’될 것 임정희의 지원사격으로 더욱 힘을 싣은 ‘30분 전’은 지난해 상반기 음원 1위 행진을 이어간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잘가요 내사랑’에 이어 발표 직후 차트 상위권에 진입, 빠른 상승세로 정상을 향해가고 있다. “사실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잘가요 내사랑’이 없었다면, 제 솔로곡 ‘30분 전’도 없었을 거예요. 앞선 두 곡으로 ‘에이트는 좋은 노래하는 그룹’이란 이미지가 생길 수 있었어요. 자랑스런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또 제가 돌아갔을 때 에이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마지막으로 ‘발라드 강세’ 속 첫 이번 활동의 목표를 묻자 이현은 “베스트(Best)보다 온리(Only)가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노래를 잘하시는 보컬리스트는 너무 많잖아요. 최고의 보컬리스트보단 ‘다른, 하나 뿐인’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발라드가 활기를 띠고 있어서 기뻐요. 좋아하는 선배님들과 경쟁하며 제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넓혀갈 수 있다는 면에서 가수 이현을 성장시킬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손오공 되고싶어요”…털북숭이 中남성

    세계에서 가장 털이 많이 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남성이 원숭이처럼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7세 때부터 온몸 96%가 털로 뒤덮인 위 쩐환(32)은 최근 원숭이와 비슷한 외모를 만들려고 무려 다섯 가지 성형수술을 계획하고 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미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외모 때문에 ‘몽키 맨’이란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위는 새로 제작되는 드라마 ‘서유기’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떨어졌다. 당초 이 남성은 손오공 역할에 탐을 냈지만 “원숭이를 충분히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고배를 마셨다. 위는 “내가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오디션 당일 진짜 ‘몽키 맨’으로 보이려고 일부러 털까지 다듬고 갔지만 제작진이 날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원숭이를 더욱 닮은 외모를 하려고 성형수술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는 “몸에 있는 털을 좀 없애고 좀 더 예쁜 원숭이로 변신할 것이다. 날 떨어뜨린 감독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그는 이번에 총 다섯 가지 수술을 받는다.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고 눈을 더 크게 만들려 쌍꺼풀 수술을 한다. 또 입술과 코를 더 줄이는 성형수술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연기를 사랑하지만 많은 이들은 내가 털 때문에 성공했다고 믿는다.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7세 때 영화 ‘몽키 보이즈 트래저 사파리’(Monkey Boy‘s Treasure Safari)란 영화로 데뷔하면서 유명해졌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본인이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나연 “18홀 버디로 진짜 프로 된 기분”

    “18번홀 버디 퍼트를 할 때는 굉장히 떨렸어요. 이제 비로소 ‘진짜 프로’가 된 것 같네요.” 21일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쥔 최나연(22)은 “평소 정신력이 약한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계속 되뇌었다.”면서 “우승을 했다는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밝게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우승이다. -그동안 우승이 없어 미국 온 것을 후회할 정도로 속상했다. 우승을 했으니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 →후반에 흔들렸는데. -전반에는 잘 풀렸는데 우승을 의식하면서 긴장한 것 같다. 11번홀 보기 뒤에는 리더보드를 안봤다. 후반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잘하고 있다.’고 되뇌었다. 17번홀 퍼트를 할 때까지도 내가 1위인 줄 알았다. →최근 캐디를 바꿨다. -새 캐디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비제이 싱(피지)과 여러번 우승했던 폴 푸스코다. 우승 경험이 있는 캐디가 필요했고, 이번이 함께한 네번째 대회인데 컨트롤을 잘 해줬다. →신지애와 챔피언조에서 동반플레이를 했는데. -한국에서 여러번 경기해 봐서 편했다. 지애가 “긴장하지 말고 쳐.”라고 말해줬다. →누가 제일 많이 축하해 줬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 준 김송희였다. 우리 또래에서 우승 못한 선수가 나하고 송희뿐이다. 경기 후 “내가 우승 못한 저주를 풀었느니 다음에는 네 차례”라고 말했다. →내년 이 대회에서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까. -불황으로 LPGA 투어가 축소되고 있는데 한국기업이 주최하는 대회는 꼭 유지됐으면 좋겠다. 내년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다시 출전하고 싶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세종시 수정발언 후회 안해”

    “세종시 수정발언 후회 안해”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21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 “필요하다면 세종시를 좀 더 자족적으로 만들기 위해 예산을 (기존의) 22조 5000억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이상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총리인사청문특위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목표는 자족도시이지 원안이다, 아니다는 중요하지 않다.”며 총리 내정 직후의 ‘세종시 수정’ 발언을 재확인했다. 이어 “이 발언이 사전에 (청와대와) 모의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공주는) 제 고향이기에 이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말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발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종시의 취지와 관련, 정 후보자는 “수도를 옮기려 했으나 위헌 판정을 받자 다 옮길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반쯤 정도 옮기자고 타협한 것 같다. 혁신도시 또는 세종시 아이디어가 모두 균형발전을 위해 나왔지만 너무 빨리 갔다.”고 주장했다. 자족도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과학 연구기관이 들어갈 수 있고 비즈니스·대학 등 여러 생각이 있다.”고 공개했다. 정 후보자는 ‘세계 최대 모자회사인 Y사 회장에게 지난해 용돈을 받았느냐.’는 민주당 강운태 의원의 질문에 “해외에 나갈 때 ‘너무 궁핍하게 살지 말라.’며 소액을 받은 적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1000만원 정도 된다.”고 시인했다. 정 후보자는 뒤에 “‘소액’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사과했다. 미국 마이애미대 유학 때 입학신청서에 ‘병역 면제’로 기록한 데 대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써야 했지만 영어 공문서를 처음 보다 보니 미국 군대는 안 가도 된다는 의미에서 ‘면제’라고 썼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노선에 대해 “자유주의는 좋지만 피해가 있을 수도 있는 만큼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친서민 정책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법 개정 방향과 관련, “금융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지금보다 조금 더 감독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와 여성위는 이날 각각 이귀남 법무부,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을 안건으로 상정하지 못했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정책진단] 상봉 또 무산된 92세 이풍석옹

    [정책진단] 상봉 또 무산된 92세 이풍석옹

    “고령자들은 이산가족상봉 대상자에 당첨될 확률이 높다고 하기에 이번에는 꼭 될 줄 알았어요. 내가 죽기 전에 북에 있는 딸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올해 92세인 이풍석옹은 이산가족 1세대이다. 그는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지난 1950년 6·25 전쟁 당시 피란하던 중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산을 약 일주일가량 앞둔 아내는 “더는 움직일 수 없다.”며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씨는 친형과 처남인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함북 회령에 아내·2남1녀 있다는데…” 그는 20일 “아내와 아들 2명, 뱃속의 딸을 두고 오면서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게 평생 아픔과 후회로 남게 될 줄을 몰랐다.”고 울먹였다. 현재 강원 원주시 명륜감리교회의 원로 목사로 활동 중인 이씨는 2000년 초 북에 두고 온 딸의 남편이 민간단체를 통해 보내온 편지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에 아내와 2남1녀의 가족이 함경북도 회령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뒤 이씨는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지난 2002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했다. 매년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추첨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대한적십자사에 전화 해 ‘이번에는 내가 당첨될 수 있느냐.’고 숱하게 물었다. 이씨는 지난달 남북이 적십자회담을 갖고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대한적십자사에 전화했다. 그는 “‘내가 올해 92살인데 이번엔 아내와 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직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직계가족인 데다 고령자여서 우선 선발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해 북에 두고온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 말고도 90세 이상이 4000여명이래” 하지만 이씨는 지난달 28일 1차 후보자 추첨에서 낙첨됐다. 이씨는 “너무 슬퍼서 울며 대한적십자사에 전화를 해 ‘고령자는 우선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나 말고도 90세 이상의 고령자가 4000여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끊었다.”면서 “내가 죽기 전에 북에 두고온 우리가족을 만날 수나 있을지….”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씨는 “내가 그동안 10여차례 이산가족 상봉 추첨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많이 기대하고 또 떨어져 실망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면서 “빨리 남북의 관계가 좋아져 특히 나같이 고령 이산가족들이 죽기 전에 북에 두고온 가족을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천희 “이효리ㆍ박예진 여자로 느낀 적 있어”

    이천희 “이효리ㆍ박예진 여자로 느낀 적 있어”

    ‘엉성천희’로 안방극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천희가 ‘패밀리’ 이효리, 박예진에게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천희는 21일 방송되는 SBS ‘야심만만2’ 녹화에 참여해 이효리, 박예진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 있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에 출연했던 이천희가 가족같이 지냈던 이효리, 박예진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 6월 방송을 끝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천희는 이효리와 박예진을 여자로 느끼는 마음을 정확히 ‘수치’로 표현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편 ‘패떴’을 하차한 것과 관련해 이천희는 “솔직히 후회된다. 얼마 전에 ‘패떴’을 보는데 저녁식사 하면서 내 얘기를 해서 너무 반가웠다.”면서 “멤버들이 나 말고 새로운 멤버들과 얼마나 잘 지내는지 신경이 쓰이더라.”며 아쉬움을 토로해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많이 컸죠?”… 여덟 쌍둥이 생애 첫 나들이

    기증받은 정자로 올해 1월 태어난 여덟 쌍둥이가 생애 첫 나들이에 나섰다. 한번에 아기 여덟 명을 낳아 ‘옥토맘’이라는 애칭을 얻은 나디아 슐먼(33)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쌍둥이를 포함한 아이 14명을 데리고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한 공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생후 6개월 된 노아, 말리아, 아이제이아, 노아, 조나, 제리미아, 조시아, 매캐이 등 아기 여덟 명은 곰돌이 푸가 그려진 귀여운 티셔츠를 입고 4인용 유모차 두 대에 나눠 타고 공원에 도착,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맏이인 엘리지(8)는 어머니를 도와 아기들에게 젖병을 물렸으며, 스트라이프 탱크톱을 입은 슐먼은 출산 이전의 날씬한 몸매를 되찾아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이미 자녀가 6명이나 있는데도 체외수정으로 여덟 쌍둥이를 출산한 슐먼은 별칭으로 상표를 등록, 아기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그녀는 지난 7월 유럽에 있는 한 TV프로그램 외주제작사와 3억원의 출연료를 받고 리얼리티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슐먼은 “아기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육아에 신경썼다. 최근에는 살도 많이 빠져 육아와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기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 시각] 출구전략 요란해선 안돼/오승호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출구전략 요란해선 안돼/오승호 경제부장

    출구전략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출구전략 시행 시기가 논란거리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경기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경기부양에 동원됐던 각종 대책들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시점과 관련해서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는 쪽과 지금은 때가 이르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기상조라고 거듭 강조한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 중소기업 대출 100% 보증 및 만기 연장, 사상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린 기준금리(연 2.0%) 등의 조치들로 인해 일단 금융 쪽, 즉 유동성 문제는 일단락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관건은 금융 위기로 타격을 받은 실물 부문이 회복됐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지표로 소비와 수출을 꼽을 수 있는데, 소비는 여전히 영하권이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출구전략에 대해 입씨름을 하기에 앞서 착안할 점이 있다. 설령 실물 쪽이 살아난다고 해도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향후 경기회복 양상이 윤 장관의 말대로 ‘나이키’나 ‘루트’형이 될지, 아니면 ‘L’자형이 될지는 해외에 달려 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경기를 살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자본시장 자유화 정도에 비해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것도 한 원인이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우리나라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해외가 관건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출구전략은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쏟아낸 대책들을 언제 원상 복구할지, 요란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마치 골프에서 힘을 빼고 샷을 하면 공이 멀리 날아가듯이 긴장하지 말고 조용히 준비하면 된다. 당국자들도 출구전략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으면 한다. 나중에 국민들이 “그게 출구전략이었구나.”라고 평가하면 된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곳곳에서 출구전략은 이뤄지고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당초 10조원을 조성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1차 5조원을 뺀 나머지 5조원은 중단했다. 자본확충펀드도 20조원을 목표로 했으나 3조 9000억원만 투입됐다. 구조조정기금은 목표액 40조원 가운데 올해 절반을 집행할 계획이지만, 달성하기 힘들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조~30조원 규모의 금융안정기금은 국회 동의까지 받았지만,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내년에 소득공제 혜택 등을 줄여 세금을 더 걷는 쪽으로 세제 개편을 하려는 것도 출구전략과 무관치 않다. 걱정되는 것은 금리 인상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실제 효과 이상의 상징성이 있는 출구전략의 대표적 수단이어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의 발언으로 미루어 보면 인상 시기와 관련해 줄다리기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화정책을 파티에서 펀치볼을 치우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은이 파티(경기회복)가 무르익어 가지만 다음 날 과음(인플레이션)으로 후회할 것을 우려해 술병을 빨리 치우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은이든 재정부든 금리에 지나치게 집착해 소모전을 펴서는 안 된다. 경기부양을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내면서 경기회복 이후 인플레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은 다 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중소기업들은 기초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제조업 가동률은 대기업보다 훨씬 낮은 68% 수준이다. 재고 감소율도 대기업에 비해 낮다. 출구전략이 종합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기를 원한다면 추후 한은에 인플레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오승호 경제부장 osh@seoul.co.kr
  • [하토야마의 일본] 막내리는 자민당 정권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소 다로 총리가 이끈 내각이 16일 오전 총사퇴한다. 아소 총리의 취임 358일 만이다. 아소 총리는 자민당 총재직도 내놓는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와중에 중의원선거를 겨냥, ‘정략적’으로 등판한 아소 총리는 당초 예정과는 달리 ‘정국보다 정책’을 우선시했다. 경기 정책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에서다. 때문에 자민당 안의 조기 총선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결국 중의원 해산도 7월21일 단행, 8월30일 선거를 치렀다. 결과는 참패였다. 선거전 300석에서 181석을 잃고 겨우 119석만 건졌다. 아소 총리는 54년 만에 정권을 내준 ‘최초의 총리’라는 오명을 썼다. 자민당 역시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모두 약체의 제2당으로 전락, ‘야당’의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 10개월 동안 야당 생활을 했던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당시엔 그나마 제1당을 유지해 군소정당들과 연립, 여당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트여 있었던 터다. 아소 총리의 최대 실책은 해산시기를 연거푸 미뤘다는 점이다. 해산이 늦춰지는 동안 한자 오독과 실언이 이어져 국민의 불신만 키웠다. 또 경기 회복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지율 상승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 초 오자와 이치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정치자금 수수의혹에 휘말려 모처럼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반등하는 기회를 잡았을 때도 경기대책만 붙잡고 있었다. 반면 민주당은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 체제를 구축, 잃었던 지지율을 되찾고 선거정국을 주도했다. 아소 총리는 최근 “지난해 가을 해산을 했으면 이 정도로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뒤늦게 후회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때 해산했으면 경기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자민당은 오는 28일 총재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참패의 여파가 워낙 큰 탓에 제대로 당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렇다 할 총재 후보들도 없다. 때문에 새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한동안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hkpark@seoul.co.kr
  • [금융위기 1년 지금 세계는] 日, 경기부양으로 연명

    [금융위기 1년 지금 세계는] 日, 경기부양으로 연명

    │도쿄 박홍기특파원│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변되는 이른바 ‘리먼쇼크’ 1년을 맞는 일본 경제의 기상은 여전히 ‘흐림’이다. 지난 4∼6개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연율환산 3.7%로 15개월 만에 플러스로 바뀌었지만 경기회복의 전환점으로 여기는 견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정부의 강력한 ‘진통제’, 무려 130조엔(약 1747조원)을 쏟아부은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떨어지는 올해 말 ‘제2의 바닥’을 우려하는 관측이 제기됐다. 성장궤도가 불투명한 탓에 생활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수출 부진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다만 최근 중국 수출과 함께 환경차의 판매 호조에 따라 적자폭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11일 찾은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혼다자동차 본사는 여전히 금융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혼다는 올해 국내 총생산대수를 지난해의 78% 수준인 90만대로 낮췄다. 또 건설 중인 사이타마현 요리공장의 내년 가동을 연기했다. 수출보다 내수에 치중하는 전략을 짰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시장이 불확실한 데다 엔고의 영향으로 수출길이 험난한 까닭이다. 어코드·시빅·휘트·인사이트 등 소형 및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지난 7월 기점으로 104%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정부의 업체 보조금, 소비자 세제 혜택에 따른 결과다.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토 다카시 혼다 홍보주임은 “경기 회복이 안된 데다 정부의 보조금 기한도 올해까지인 만큼 현재로선 설비투자와 신규 고용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혼다는 지난해 12월 말 4500명에 달했던 계약직 사원이 지난 4월 현재 단 한 명도 없다. 도치기현 등 3곳의 공장에서는 정규직들이 잔업이나 휴일 근무 등으로 생산량을 맞추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계와의 관계도 변했다. 도요타는 제너럴 모터스(GM)와의 미국 합작공장인 ‘누미(NUMMI)’의 생산을 내년 3월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닛산은 크라이슬러와 합의했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제휴를 해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용사정은 훨씬 악화됐다. 지난 7월 현재 전국의 구인율은 0.42%로 집계됐다. 기업에서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월 실업률은 5.7%에 이르렀다. 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실업자 수는 359만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03만명이나 늘었다. 파산과 감원 등 직장 형편에 따른 실업이 전체의 33.7%인 121만명을 차지했다. 게다가 기업에서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잉여인력’은 내각부의 지난 1∼3월 집계에 따르면 607만명이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실직할 가능성이 큰 ‘실업예비군’인 셈이다. 정부의 공공직업안내소 격인 ‘헬로 워크’를 찾은 하시모토(30)는 지난 3월 전자업체를 다니다 생산라인 조정과 임금 삭감 등의 분위기 속에 퇴직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라며 후회하고 있다. 도쿄 오타구에는 금속 가공을 하는 중소·영세기업 4600개사가 자리잡고 있다. 도쿄정밀 기계공작소는 이들 중에서도 잘나가는 기업에 속했다. 고미노 쇼고 회장은 “도요타의 매출이 30% 줄었다지만 우리 매출은 80% 날아갔다.”고 말했다. 지난 1961년 창업 이래 첫 적자를 낸 데다 지난 5월 첫 휴업도 단행했다. 정부에 고용조정 조성금도 신청했다. 도쿄공작기계공업회가 발표한 지난 1~7월 수주액은 1825억엔으로 지난해의 20.2% 수준에 그쳤다. 도요타의 지난 1~6월 세계 판매대수가 지난해와 비교, 26.0% 감소한 356만 4000대인 사실에 비하면 중소기업의 실적 부진은 충격적이라는 게 현지의 반응이다. 실업률이 치솟는 가운데 소비자 물가는 떨어졌다. 경기침체는 진행형이다.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의 모습이다. 지난 7월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 하락, 3개월 연속 떨어졌다. 최대 하락폭이다. 물가하락에 따른 매출의 감소는 기업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쿄증권1부 상장기업 1312사의 4~6월 결산을 보면 경상이익은 지난해 대비 70.5%나 줄었다. 1~6월의 파산기업도 8.2% 증가한 8169건에 달했다. 고용 환경도 개선될 기미가 없다. 결국 ‘기업수익의 악화→고용 감축 및 임금 삭감→상품 매출 부진→상품가격 인하→기업수익의 악화 심화’라는 악순환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다. hkpark@seoul.co.kr
  •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시흥 연꽃 테마파크] 연꽃에 대한 명상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시흥 연꽃 테마파크] 연꽃에 대한 명상

    연잎은 접시안테나처럼 잎을 펼친 채 태양을 읽는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교신해온 연꽃 향기는 그야말로 청량한 기호들이다. 강렬한 한낮의 태양빛 아래 연꽃은 그래서 100만 년 전 상징을 간직하고 있다. 태양 중심부에서 문득, 하나의 생각이 에너지가 되어 이렇게 인연을 광합성하는 것이리라.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에 위치한 연꽃 테마공원, 이곳에 오리라고 마음먹은 건 일종의 숙명이다. 이 초록의 집단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는 원형은 100만 년을 산 사람의 기억과도 같다. 연꽃들은 깊은 차원에서 이미 하나의 정점에 맺혀 있다. 그러니 눈물을 믿는다는 건 나와 그리고 한때 나였던 것들에 대한 경배이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보다 연꽃의 자태가 더 우주적인 질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너른 밭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나도 접시안테나를 펼친 채 누대의 생을 받아내고 있다는 생각. 연꽃은 6월부터 9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여느 정치의 허세처럼 소란스럽게 일제히 피지 않고 조금은 사소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시즌을 지난다. 연꽃 탐방 길을 걷노라면 이러한 연꽃들 개개의 성격과 마주한다. 마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하나씩 만나게 되는 인연처럼, 꽃의 표정이 다양하다. 활짝 핀 채 제 안의 노오란 속내를 점점이 드러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시들어 너른 연잎 한가운데 떨어져 말라가는 꽃도 있다. 인생은 이렇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나를 만나게 한다. 수많은 가능성에 스스로를 의지하며 이날까지 살아왔으니, 연꽃의 생은 신념이 이뤄놓은 쓸쓸한 사건이다. 결국 나와 당신은 봉오리의, 만개된, 떨어진, 연꽃이 뒤섞인 지상의 시차를 견뎌야 한다. 후회는 내가 조금 더 누추해졌었길 바랄 뿐. 비망록 윤성택 시간을 겹겹 접으니 견고하게 뚫립니다 생생한 과거를 이제 펼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과거에 이르는 속성은 당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 내 청춘은 고백에 가깝습니다 이 불안하고 어리숙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무모한 기대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고 이해하겠습니다 한때의 결의도 사랑도 헌책에서 뜯겨져 나간 속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곳의 공기에게 예감은 선물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기억이란 운명을 은유하면서 일생을 떠돌게 마련이니까요 태연한 그 여백을 오늘이라고 적겠습니다 칠흑 같은 내 안의 추억은 악취뿐이었으나 당신은 그 악취에 뿌리 내린다. 나는 더욱더 썩길, 썩어가길 원했어야 했다. 그러나 온통 침전된 불행의 지층 사이로, 부끄러운 나를 휘저으며 더 깊은 곳까지 따뜻한 슬픔이 온다. 막막한 깊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혼탁한 내 안의 덩어리를 놓아주는 것.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는 것이다. 무수한 입자들 속에 나를 분해하면서, 아니 용해되면서 가닥가닥의 촉감에 의지하면서. 그렇게 나에게로 다가오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흡수하고 지상의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꽃의 향기로 흩날리게 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흰색 사이로 번진 분홍의 홍련(紅蓮), 순수한 백옥빛 백련(白蓮), 연못이 막 피워낸 것 같은 수련(垂蓮)…. 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경건해진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사실보다, 연꽃 씨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연꽃이 불성을 상징한다는 말보다 더 이끌리는 건 연꽃이 어쩐지 사람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고 색깔이 있다. 곁에만 있어도 은은한 이끌림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마디 대화에도 지독한 이기심이 서려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는 어차피 이 지구의 시간 속에서 뿌리 내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일찍 피었다 질 뿐, 아니 늦게 피느라 아직 준비가 덜 되었을 뿐.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관곡지의 연꽃이 되어 그렇게 이 계절을 살다갈 것이므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나는 그때 당신이 향기로웠다는 것을 첫 눈빛으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당신에게서 잊혀진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속에서 막연한 타인이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오늘 당신이 읽는 건 선택이 아니라 선택되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그토록 이루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나로 인해 함께했던 것들이 우리를 관곡지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소망 하나가 관곡지의 바람이 되어 서성이는 건 아니었을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간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헤어지지 말자고 죽어서도 잊지 말자고 했던 다짐이, 지금은 오후의 햇볕으로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되어, 양산을 든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어 인연이라는 테마파크에서 해후하는 것처럼. 이제 당신은 주위의 어둠에 물들지 않고 고고해지길, 연잎에서 그대로 굴러가는 빗방울처럼 악과 거리가 멀기를, 고인 물에서 향기를 길어내듯 훈훈한 사람이 되기를, 바닥이 아무리 더러워도 늘 청정하기를, 둥근 연꽃처럼 늘 온화하기를, 연의 줄기와 같이 부드럽고 융통성이 있기를, 연꽃 꿈처럼 길한 일이 함께하기를, 반드시 맺히는 연꽃 열매처럼 좋은 결실을 맺는 사람이기를, 활짝 핀 연꽃마냥 인품과 마음이 열려 있기를, 연꽃의 넓은 잎과 긴 대와 같이 기품이 늘 함께하기를……. 글·사진_ 윤성택 시인 TIP 시흥 연꽃 테마파크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219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조선 중기 농학자인 강희맹(1412∼1483) 선생이 세조 9년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 남경 전당지에서 연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연 재배지가 되었다. 22㏊ 면적에 조성한 연근 생산단지로 시흥시 농가 소득 자원으로도 꼽힌다. 연꽃을 둘러보려면 햇볕을 가릴 양산이나 모자는 필수. 연못에 피는 연꽃이라 야외 천막 외에는 그늘이 없다. 자동차로 가려면 접이식 자전거를 싣고 가면 더없이 좋다. 인근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물왕저수지까지 연결된 7.5km에 이르는 시흥시 그린웨이가 자전거 도로로 잘 꾸며져 있다. 같은 색을 맞춰 입은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20여 대로 지나가는 것은 기본. 호젓한 시골길과 가을 풀숲의 정경이 자전거 페달보다 가볍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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