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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진선칼럼] 하늘을 보자

    [황진선칼럼] 하늘을 보자

    얼마 전 불교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데 스스로 대충주의자, 회색분자라고 농담처럼 말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다툼을 화해시키고 사이좋게 문제를 풀어가는 화쟁(和諍)을 하려면 당연히 그래야지 싶으면서도 생명평화탁발순례로 잘 알려진 스님의 원칙주의자 이미지와 겹쳐져 친근감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 짚어보니 우리 사회에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에 눈길이 가고 친근감이 든 게 아닌가 싶다. 중도 부재의 시대에 대충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날로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양극화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예산안 날치기 파동,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찬반, 무상급식 논란 등이 예다. 보수와 진보로만 갈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해 관계에 따라 사사건건 두부모 가르듯 편을 갈라 싸운다.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의 논리를 편다. 말도 점점 험해진다. 도법 스님 기사를 읽은 뒤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땅의 삶에만 매몰되지 말고 가끔은 하늘을 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맞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루에 한번 하늘을 보면 아등바등 각박하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너무 바쁜 것은 악이다. 하늘을 바라보면 삶의 속도를 줄일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질 것 같다. 밤하늘의 별을 보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다툼을 줄일 수 있을 듯싶다.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용서하며 살 걸, 베풀며 살 걸, 재미있게 살 걸 하고 뉘우친다고 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용서는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이다. 미움과 분노의 뿌리는 대부분 이기심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미움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불행해진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임종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이 “난 돈의 노예였어.”하고 후회한다고 얘기한다. “돈이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했던 순간은 즐겁게 놀았던 때다. 그래서 아이들과 공원에 가고, 바닷가에 가고, 여행을 간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 가장 후회하는 것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산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공감의 시대’는 공감(empathy)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얘기한다.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대를 넘어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경쟁 관념으로는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친 사회적 행동과 협동심이 새 시대의 적자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제시한다. 리프킨은 인간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공감 본능을 키워 왔다고 말한다. 갈수록 정교하고 상호의존적이고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향하는 것은 본성적으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교섭을 넓히고 심화시키려 하고, 더 큰 사회에 참여하며 자신을 초월하려는 정서를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공감 본능이 복잡한 사회적 교류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원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정치적 집회와 시민단체에서 중요한 토론의 주제가 될 정도로 흔한 개념이 된 것은 버락오바마 대통령이 이 말을 즐겨 사용한 탓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감을 자신의 정치 철학의 핵심으로 삼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을 강조했다. 공감은 모든 종교의 열쇠말인 연민(sympathy), 긍휼(compassion), 자비와 상통한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다. 그 관계는 공감과 연민이 바탕이어야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덜 자기중심적이라고 한다.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주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더 친절하고 더 사랑하고 배려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의 중심에는 하늘을 지향하는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이 있다. 인간이 하늘을 지향해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것을 강조한다. 하늘을 보라. jshwang@seoul.co.kr
  • [생명의 窓] ‘스마트, NO!’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스마트, NO!’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신부

    2011년 신년 분위기가 온통 ‘스마트’(smart) 열풍이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기 시작한 스마트 바람은 이제 모든 분야를 휘돌아 현대인의 일상을 관통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신년사에서 ‘스마트 일자리’ 창출을 기치로 내걸었다. 기대가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다분히 글로벌 스마트 전쟁의 성과에 달려 있기도 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담보받기 위하여 이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디젤(DIESEL)의 브랜드 광고문구가 퍽 흥미롭다. 그 헤드카피는 ‘스마트? NO!’였고, 이는 곧바로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바보가 돼라(Be stupid). 바보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도전. 스마트한 이들에겐 뇌가 있지만, 바보들에겐 배짱이 있지. 스마트한 이들에게는 계획이 있지만, 바보에게는 이야기가 있지. 스마트한 이들은 비판을 하지만, 바보는 행동을 하지. 당신은 바보를 앞설 수 없다. 바보는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지금의 실패를 즐겨 보라…. 스마트한 이들은 어쩌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만, 결국 그 아이디어는 바보스럽지. 바보가 돼라.” 스마트한 이들에게는 ‘뇌’와 ‘계획’과 ‘비판’이 있지만, 바보에게는 ‘배짱’과 ‘이야기’와 ‘행동’이 있다? 바보는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 구사된 낱말이 재미있으면서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 광고는 지금까지의 ‘스마트’, 곧 소위 ‘똑똑한 인재’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깰 수 없으며, 오히려 생뚱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혁신 미래를 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광고 캠페인의 충격효과는 다른 브랜드들이 ‘스마트’를 통한 창조혁신을 추구할 때 디젤은 거꾸로 바보 발상을 대안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요지는 간명하다. 창의성이 핵심동력이 될 미래에 결국 살아남을 자는 바보라는 주장인 셈이다. 왜 이 ‘슈퍼 스마트’ 시대에 하필 바보론인가? 밝히거니와 ‘바보’ 담론은 지난 날의 실존적 내지 처세적 대안 차원을 넘어, 이미 ‘바보 인재론’ 내지 ‘바보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이 정작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축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배고프고, 계속 바보스러워라.)”를 외치며 ‘바보 인재론’을 펼쳤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도 유명해지지 않았는가. 그의 논지는 교실 속 학습능력이 뛰어난 종래의 ‘스마트형 인재’보다 미래에는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고, 바보처럼 모험”하는 ‘바보형 인재’가 더 통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바보 대안론’은 단지 공허한 주창이 아니다. 그 뒤에는 신화(神話)로 우뚝하게 추앙받고 있는 숱한 증인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자신이 천상 ‘바보’였음을 파란만장한 롤러코스터 일생을 내세우며 자임하였다. 일본의 ‘센몬파가’(전문바보) 예찬 문화는 노벨상 수상자 18명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미국의 ‘백치천재’(idiot savant) 연구는 바보들에게 내장되어 있는 거인의 발굴에 성공하였다. 일제의 침략으로 그 맥이 끊겼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들 역시 벽치(癖痴) 정신으로 실학(實學)의 기초를 놓는 일에 골몰하였다. 이러한 바보 퍼레이드는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근한 사례로 미국의 펠리사 울프 사이먼 박사를 들 수 있다. 2010년 12월 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오직 6개의 원소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통설을 깬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는데, 그 주역 펠리사는 학계에서 줄곧 ‘바보’로 낙인찍혔던 소장파 학자였다. 요컨대, 우리의 문제는 천재가 부족한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바보가 모자라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광진청소년수련관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광진청소년수련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광진구 광장동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로 나오면 10대 때 페이지를 만난다. 맞은편엔 어디에서 찾아들었는지 모를 행성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띈다. 서울 도심에서 유일하게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시립광진청소년수련관이다. 오리온, 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큰곰, 물병 등 어릴 적 좋아했던 별자리들을 만나는 설렘…. 3층 천문대(2204-3190)는 인터넷 예약으로 금·토요일에만 문을 열었지만 방학을 맞아 수·목요일 오후 7시에도 길이 18m, 139석 규모의 천체투영실(플라네타리움)에서 별자리 향연을 펼친다. 돔 모양의 천체관측실에 들어서면 스펙터클 어드벤처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주쇼가 눈을 홀린다. 미국, 일본, 호주에 뜬 현지시각의 별들은 물론 계절별 별자리, 행성 등을 입체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60㎜ 반사망원경과 6대의 보조망원경으로 밤하늘의 천체를 직접 관측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체험비는 6세 이상 나이에 따라 1500~2500원이다. 수련관에 들렀다가 놓치면 후회할 곳이 있다. 바로 3층 청소년 성(性)문화센터다. 멀티미디어 세대인 아동·청소년에게 오감을 활용한 자기주도적 체험활동을 통해 성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갖도록 하는 전문 기관이다. 성인들조차 처음엔 들어가기가 다소 부끄럽고 부담스럽지만 막상 자궁 모양의 방에 발을 들여놓으면 자연스럽게 성을 터득할 수 있다. 부모가 평소 아이에게 굳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어떻게 말해야 할까하는 고민스러운 성문화 교육이 저절로 이뤄진다. 1~10개월된 뱃속 아기의 실제 크기를 모형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출산코너는 문을 나서도 잊을 수 없다. 성은 신비하다 못해 신성하다는 것을…. 수련관에서 산책 삼아 광나루길로 발길을 돌리면 드라마 ‘아이리스’로 유명한 전망대 리버뷰 8번가에서 시리도록 하얀 한강의 겨울풍경을 만날 수 있다. 투명한 바닥을 통해 보는 강은 아찔할 지경이다. 느지막이 찾는다면 인근 광진정보도서관 앞 야외카페에서 원두커피(2000원대) 한잔을 마시며 한강의 밤풍경에 젖어도 좋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한나라만으로 대선 쉽지않아… 보수 단결해야”

    “한나라만으로 대선 쉽지않아… 보수 단결해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9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이회창 대표의 자유선진당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의 선진통일연합 등 모든 보수 세력이 총 단결하지 않으면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각 시·도의 한나라당 교육감이 다 패배한 이유는 (보수 진영이) 나눠져서 그렇다.”면서 “뭉쳐서 잘해야 기회가 있지, 나눠지면 기회 자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박세일(이사장)도 있고, 이회창(대표)도 있고, 좋은 사람이 많다.”면서 “다 모여서 같이 잘하자고 해야지 당내에서 (친이·친박이) 싸우는 기본 구도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과 관련, “대세론에 올라타 ‘편하게 가는’(easy going) 사람이 많다.”면서 “과거 여러 차례의 경험이 입증하듯, 대세론이라는 게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하기 쉽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개헌에 대해 “대통령 단임제는 정치 대립이 극렬한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상당히 좋은 장치”라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는 또 최근 한나라당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에는 “민심을 잘 반영한 것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정 후보자 사퇴 등과 관련된 안상수 대표 체제 개편 논란에 대해서는 “정당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해친다.”며 반대했다. 이지운·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지지율 5%P↑… 오바마 ‘총격 연설’의 힘

    지지율 5%P↑… 오바마 ‘총격 연설’의 힘

    정적(政敵)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마저 감동시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애리조나 총격 사건 추모 연설을 기점으로 “오바마와 붙어 볼 만하다.”는 공화당의 목소리는 잠시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친정’인 민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지지율 바닥을 찍는 동안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티 파티’의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이다. 18일(현지시간) 공개된 CNN과 오피니언리서치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3%가 오바마의 국정 수행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한달 전보다 5%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도 직전 조사에 비해 5% 포인트 오른 54%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두 언론사 공동 조사에서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애리조나 총격 사건 이후 ‘독설 책임론’ 공방을 피해 침묵을 지키다가 추모식을 앞두고 동영상 연설을 배포했던 페일린 전 지사는 ‘후회 막급’한 상황이다. CNN과 유에스에이(USA)투데이의 여론조사 결과 페일린의 지지율은 각각 38%로 2008년 대선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번 CNN 조사에서는 ‘싫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56%로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았다. 페일린은 애리조나 총격 사건 직후 동영상 연설에서 ‘피의 비방’(blood libel)이라는 민감한 단어로 ‘설화의 여왕’임을 재확인시킨 바 있다. 오바마는 페일린을 비롯한 모든 공화당 대선주자들과의 1대1 가상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신문그룹 매클라치와 마리스트 칼리지 여론연구소가 ‘오늘 대선 투표가 실시된다면 누구를 찍겠느냐.’고 설문 조사한 결과 오바마는 페일린에 56%대30%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는 51%대38%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에는 50%대 38%로 앞섰다. 지난해 12월 조사와 비교하면 오바마는 롬니와의 격차를 2% 포인트에서 13% 포인트로, 허커비와는 4% 포인트에서 12% 포인트, 페일린에 대해선 12% 포인트에서 26% 포인트로 더 벌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대승을 기점으로 “오바마는 만만하다.”며 너도나도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던 공화당의 자신감이 무색할 정도다. 19일 미 정치 전문 폴리티코에 따르면 페일린 왜 다른 공화당 예비 후보들도 대선을 위한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롬니 전 지사는 최근 중동을, 최근 갤럽 조사에서 공화당 내 선호도와 지명도에서 각각 2위를 기록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찾았다. 폴리티코는 다음 달 워싱턴에서 열릴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총회를 앞두고 더 많은 주자들이 대외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CPAC는 매년 총회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의 비공식 예비 투표격인 ‘스트로 폴’을 실시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뾰족한 연필 위에 계란 세우기 가능할까?

    밑 부분을 깨고 탁자에 계란을 세운 콜럼버스의 시도를 무색케 하는 이색도전이 중국서 펼쳐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후난성 일간지인 샤오샹천바오의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창샤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추이(崔)는 얼마 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필 한 자루와 계란으로 독특한 도전을 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거꾸로 세운 뒤 그 위에 계란을 세우는 이색 시도는 시작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심호흡을 한 뒤 계란을 연필 위에 올린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뗐다. 이후 놀랍게도 계란은 지름이 1㎜도 채 되지 않은 연필 끝에 가만히 세워져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 ‘기술’을 연마해 왔다는 추이씨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며 “익히지 않은 날계란과 찐 계란, 반숙계란 등 다양한 계란으로 연습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셀 수 없이 많은 계란을 깨뜨려야 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며 “연필의 끝이 뾰족해질수록 꼭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뾰족한 연필 위에 계란을 세우려면 일단 매우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절대 계란에서 급하게 손을 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도전이 성공으로 끝난 뒤 그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가장 뾰족한 곳에 계란 세우기’ 기네스 등재를 노리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전설의 쿼터백 브렛 파브 “진짜 떠납니다”

    전설의 쿼터백 브렛 파브 “진짜 떠납니다”

    쟁쟁한 스타들이 차고 넘치는 미국 프로풋볼(NFL)에서도 쿼터백 브렛 파브(41)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다. 역대 최고 타이틀을 네개나 갖고 있는 건 그뿐이다. 3차례 최우수선수(MVP, 1995·1996·1997년), 터치다운 패스 통산 508회, 전진 패스 7만 1838야드, 패스 성공 6300회의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그런 그가 18일 NFL 사무국에 은퇴 서류를 제출했다. 기자회견 없는 쓸쓸한 퇴장이었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은퇴 선언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5년간 파브는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은퇴하겠다고 했다. 2008년 3월엔 기자회견에서 눈물의 작별을 고하기도 했다. 1991년 데뷔 이후 그는 찬란한 성적과는 대조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현재 그는 팔꿈치·발·턱·목·등·갈비뼈·종아리·어깨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지난해 12월 20일 시카고 베어스전에선 뇌진탕까지 당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그는 20년간 정규 리그 297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일궜지만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경기장 밖에서도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 12월엔 미식축구 코치였던 아버지 어빈 파브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다음 해엔 아내 디애나 파브가 유방암에 걸렸다. 2005년 8월엔 태풍 카트리나로 미시시피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07년엔 친아버지처럼 따르던 아내의 양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역경을 겪고 2007년 파브가 그린베이 패커스를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 챔피언십까지 올려놓았을 때, 사람들은 영웅의 부활을 기꺼이 응원했었다. 그러나 재기의 기쁨은 순간이었다. 그는 예전 같지 않았다. 2009년 미네소타 바이킹스로 옮겨 터치다운 33개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지만 지난 시즌에서는 영 신통치 않았다. 총 13경기를 뛰면서 터치다운 11개, 패스 가로채기 19개 성공에 그쳤다. 파브는 가장 성적이 저조한 쿼터백 3명 가운데 한명으로 꼽혔다. 불행은 동시에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그는 성추문 의혹에까지 휩싸였다. 그가 뉴욕 제츠에서 뛰던 2008년, 모델 출신의 구단 여직원에게 전화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남기고 음란한 사진을 건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NFL은 그에게 벌금 5만 달러(약 5600만원)를 내라고 했다. “이제 시간이 된 걸 안다. 후회는 없다.” 파브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의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전성기 추억을 기념하는 포스터를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은 그가 세운 ‘파브희망재단’에 기부돼 장애인 어린이와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 쓰이게 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독자의 소리] “청소년, 주민증 위조 평생 후회”/천안동남경찰서 일봉파출소 윤정원

    최근 청소년들이 주민등록증을 위·변조하거나 가짜 대학생증을 만들어 담배나 술을 사는가 하면 술집이나 성인 이용 장소 등을 출입하려다 문제가 되는 일이 잦다. 실제로 며칠 전 관내 편의점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구입할 목적으로 사촌형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하여 사용하다가 수상히 여긴 업주의 신고로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주민등록증 위·변조는 평생을 후회할 일이다. 주민등록증은 공문서이기 때문에 형법 제225조 공문서 위조에 해당하며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습득한 주민등록증을 사용하거나 지인의 신분증을 교묘하게 자기 것처럼 행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행사하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면 정작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답답하다. 단순히 어른 행세를 하고 싶어서 죄의식 없이 주민등록증 등을 위·변조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법에 의해 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천안동남경찰서 일봉파출소 윤정원
  • 청바지 벗어 경찰 ‘때려눕힌’ 女운전자

    청바지 벗어 경찰 ‘때려눕힌’ 女운전자

    중국의 한 여성 운전자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청바지를 벗어서 때려 기절시킨 영상이 유포돼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8월 3일(현지시간).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불법 오토바이 택시영업을 하던 추(55)는 단속을 하는 경찰관들을 향해 청바지를 벗어 휘두른 혐의로 8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이날 추는 신호위반으로 교차로에서 남성보행자를 치었다. 무면허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교통사고를 내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그녀는 피해자에게 돈 몇 푼을 쥐어주고 황급히 자리를 뜨다가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하지만 이렇게 붙잡힌 추는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더니 청바지를 벗어서 경찰관들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의실종’ 여성 운전자를 경찰관들이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자 이 여성은 더욱 격렬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뒷덜미를 강타당한 경찰관 한 명이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추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고 바지를 입지 않은 상태로 결국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그녀는 10여 년 전 남편과 자녀 2명이 살고 있는 안후이성에서 홀로 이주해 불법 택시 운전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추는 징역 8개월이 결정되자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겁만 주고 도망치려고 했었다. 전 재산인 오토바이를 빼앗길까봐 그랬다.”면서 눈물로 뒤늦은 후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머리에 찰과상을 입고 뇌진탕 증세를 보였던 경찰관은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동영상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열린세상] 최대 수명 20년의 장수 마을/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열린세상] 최대 수명 20년의 장수 마을/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터키에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않으면서도 손꼽히는 장수마을이 있었다. 지난주 마침 터키의 그 마을을 지나다가 신비롭고 뭉클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 나그네가 먼 길을 가다 밤이 늦어 그 마을에 하루를 묵을 요량이었는데, 마을 입구에 있는 묘비석을 보게 되었다. 묘비 주인의 이름과 함께 그 사람이 살았던 해를 표시해 놓았는데, 8년, 10년, 12년, 가장 오래 산 사람의 수명이 겨우 20년 정도였다. 틀림없이 전염병이 들어 제 명에 살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하고, 두려워 밤길을 꼬박 걸어 다른 마을에 머물렀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그 마을에서 온 촌로가 있어 그 연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말을 던져주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최선을 다해 삽니다. 열심히 일하고 또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요. 그래도 하루해가 지면 늘 아쉬움이 남고 부족하기 일쑤지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 하루를 가치 있고 알차게 보냈고, 남들에게도 만족을 줄 만큼 살았다고 생각할 때 기둥에 금 하나를 긋습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집안 처마 기둥에 금 그어진 숫자를 세어 묘비명에 그의 나이를 표시해 준답니다. 15년이면 열심히 산 셈이고 20년은 장수한 셈이지요.” 그는 다시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금 그을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첫째, 나눔과 베풂입니다. 그것은 함께 잘사는 길입니다. 둘째,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시간의 창조자로 사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안절부절못하며 삶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해나가면 시간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못한 일은 또 내일 하면 되지요. 셋째, 많이 생산하는 것보다 적게 원하는 삶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오고 남겨두어야 내일 먹을 것이 생기고, 동물들도 먹어야겠지요. 넷째, 독사의 길보다는 꿀벌의 방식을 따르려 합니다. 똑같은 맑은 이슬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지만, 꿀벌이 마시면 꿀이 되니까요. 다섯째, 신을 염원하고 가까이 함으로써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장수시대를 맞은 우리사회가 새롭게 되새겨 볼 만한 커다란 가르침 하나를 얻은 듯했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꿈 그 자체야 고귀한 것이지만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준비가 아직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 같다. 최근에 일고 있는 웰다잉(well-dying) 움직임과 세로토닌 문화운동도 이런 점에서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마무리가 깔끔한 죽음의 길을 가자는 웰다잉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세로토닌적 삶에 대한 문화운동은 매우 신선하고 의미심장하다. 세로토닌은 우리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로 행복과 조절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분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삶을 관조할 때 분비되는 물질이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엔도르핀은 의욕을 북돋아주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하는 강점이 있지만, 강한 중독성이 있어 차분한 조절기능이 약한 것이 흠이다. 산업사회시절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는 순기능을 많이 했지만 이제 3만 달러를 향해 가는 선진 사회의 근간으로서 엔도르핀적 삶은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최근 펼치고 있는 세로토닌 문화운동은 우리의 일상이 단순한 생명의 연장이 아님을 강조한다. 행복과 창의력이 솟아나는 삶 속에서 나눔과 배려를 중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 남다른 관심이 간다. 터키 악세히르 마을 옛 사람들의 예지와 관조적 철학이 새해에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싶은 우리의 다짐은 아닐까. 그래서 생명 연장이란 가치 대신 이제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는 진정한 우리의 수명을 찾아가야 되지 않을까. 올 한해 우리 모두 금 그어진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 “참여정부 지분 안희정·이광재 40%… 나는 2%정도”

    “참여정부 지분 안희정·이광재 40%… 나는 2%정도”

    지난해 9월 초, 한나라당의 최고위관계자가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관계자는 “차기 대선에서 가장 두려운 야당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자 서슴없이 “김두관 경남지사”라고 답변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국무총리에 발탁하려 한 것도 김 지사를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같은 질문을 받은 한나라당의 또 다른 고위관계자도 김 지사를 지목했다. 그때부터 정치권에서 김 지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그렇다면 정작 김 지사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지난 14일 김 지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 지사는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40분 동안 서울신문사 19층 기자클럽에서 가진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정치 역정과 경남지사로서의 업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물론 정치현안 및 2012년 대선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가 취임 이후 서울에서 가진 첫 인터뷰였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경남지사 →한나라당에서 김 지사를 강적으로 지목한다. -(빙그레 웃으며) 사람 잡는 소리다. 당선이 어려운 지역에서 승리해서 그런지 역량보다 3, 4배 더 쳐주는 것 같다. 하지만 도정을 맡은 지 7개월밖에 안 됐고, 글을 잘 쓰거나 이슈 파이팅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다. 4년 동안 도정에만 전념할 생각을 갖고 있다. →취임 7개월째다. 업적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경남도에 어떤 변화가 왔나. -경남 자치 16년 역사에 시민사회와 야 4당이 지지하는 무소속 도지사가 탄생된 것 자체가 첫 변화다. 함께 출마했던 민주노동당 강병기 후보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하고 민주도정협의회를 만들었다. 촘촘한 복지도 시도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을까 말까 한 느낌이 든다. 나의 리더십 부족도 있고 경남의 정치 지형이 만만치 않은 이유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너무 바빴다. 농담이지만 그래서 올해를 ‘노는 해’로 정했다. →촘촘한 서민복지는 어떤 의미인가. -의료개혁연대가 제안한 ‘간병인 없는 병원’ 공약을 지방선거 때 내놓았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간병인을 하루 3교대하면 보호자 없이 24시간 환자를 간병할 수 있다. 또 영농법인과 농협이 참여하는 급식지원센터를 통해 친환경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다. 또 틀니가 필요한 노인 5만여명 중 2만명 정도에게 무상으로 혜택을 줄 계획이다. →경남도 재정자립도가 35%인데, 전체 예산의 26%를 복지에 쓴다. 도 재정운용에 부담되지 않나. -도 예산 가운데 복지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복지·교육·환경·문화 부분에 예산과 행정력을 좀더 투입해서 삶의 질을 높이자는 거다. 복지를 강화하지 않으면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전임 김태호 지사의 정책 가운데 승계한 것이 있나. -전임 지사나 대통령이 했던 중요한 정책은 승계해서 마무리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김 전 지사의 업적 중 ‘남해안 프로젝트’는 눈에 띄는 사업이다. 84개 사업 중 올해 8개 사업부터 시작하려 한다. 김 전 지사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다. →김태호 전 지사의 낙마는 지방 정치인에 대한 중앙 정치인들의 텃세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동의하나. -그런 인식이 좀 있었다. 김 전 지사의 정치력과 대중친화력이 우리 정치에 도움되길 바랐는데 안타까웠다. →인사청문회 당시 경남도에서 청문 위원들에게 자료가 많이 갔다고 하는데. -국회에서 요청한 자료는 줬다. 한나라당이 143건, 야 4당이 145건이었다. 야당에 자료를 많이 줘서 그렇게 됐다는 것은 오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시의회와 대치 중이다. 동병상련을 느끼나. -의회의 견제를 받는 면에서 양상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나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고 했고 도의회는 예산을 깎았다. 그러나 서울시의 경우 의회는 하려고 하고 시장은 안 하려고 한다. →오 시장과 서울시의회는 아직 합의의 틀을 찾지 못했다. 경남은 어떤가. -무상급식비 235억원, 노인 틀니 20억원 예산을 짰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노인 틀니 예산 전액 삭감, 무상급식 예산 118억을 삭감했다. 의회 예결위에서 노인 틀니 예산은 모두 복원됐고 무상급식 예산은 35억 복원됐다. 지난해 연말, 경남도의회와 대의적 차원에서 합의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결론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는다. 김 지사는 몇 점을 주겠나. -나를 만난 사람들은 야박해서 그런지 30점 정도밖에 안 주는 거 같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결여돼 있다. 공권력을 남용한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특히 현 정권 들어 경제적 민주주의는커녕 정치적 민주주의도 후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모델을 복원하려 했고 국민들도 삶의 질이 나아질 걸로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선택에 참담한 후회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박정희 모델이 대한민국 발전 모델이 아니란 게 증명된 것이다. ●지역 선거와 전 대통령 →6·2 지방선거에서 김 지사가 53.5%를 얻어 당선됐고, 부산에서도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45% 지지를 얻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선거 당시 변화와 혁신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1995년 지방선거 이후 16년 동안 한나라당이 단체장을 독점한 데 대한 비판이다. 나와 김 후보의 선전은 지역주의가 허물어졌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흐름이 4·27 김해을 재·보선에서도 이어질까. -내가 야 4당과 시민사회의 야권 단일화 후보였다. 또 지역에서 5번 깨져도 도망 안 갔기 때문에 도지사가 됐다. 4·27 김해 선거에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가 되고 후보가 경쟁력이 있으면 팽팽할 거 같다. →김태호 전 지사는 출마할 것으로 보나. -정치를 아시는 분이 김해 재·보선의 판을 키울지 의문이다. 본인이 정치 재개를 위한 시기를 언제 잡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출마한다면 야권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2012 대선에서는 지역구도가 사라질까. -내가 당선된 자체가 지역주의를 넘은 거다.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라는 큰 나무둥치를 8번 찍고 내가 2번 찍어 쓰러뜨렸다. 영남에서 제2, 제3의 김두관이 나와 시장, 군수도 하고, 한나라당이 호남에서도 지지 받아야 의미가 있다. 다만 2012년 총선에서 영남 유권자들이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바람이 불면 장담할 수 없다. 같은 경상도라도 경북과 경남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결국 지역구도를 무력화시킬 카드를 제시해야 야권에 승산이 있을 거다. 특별한 변화 없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기타 진보정당이 기존 구도대로 선거를 치른다면 지역구도를 흔들기 어려울 것 같다. →6·2 선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강원지사 당선도 주목받을 만하다. 두 사람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 -‘주식회사 참여정부’의 지분을 따지면 노무현 대표가 60%,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각각 20%를 갖고 있다. 나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2% 정도 주식을 얻었다고 본다. 안·이 지사는 성골이지만 나는 진골도 아니고, 6두품쯤 되나. 그러나 성골보다 왕에게 더 사랑받은 것은 맞다. 안·이 지사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기획자이자 동지들이다. 노 대통령은 동업자라고 했다. 정권 탄생을 공동 작품이라고 말한 지도자는 노 대통령이 유일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분이 없다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친노 정치인 가운데 누가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잇고 있다고 보나. -노 전 대통령은 한 사람이 승계하기에는 너무 큰 인물이 됐다. 노 대통령의 가치를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이 집단지성 형태로 승계해야 하지 않을까.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김두관이 승계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정치개혁은 유시민이, 안희정·이광재는 양극화 극복이나 경제 비전을 맡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정치를 뒷받침했다면 이젠 자기 정치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광재·안희정 지사도 국가를 이끌만 한 재목이 된다고 보나. -검증을 받아야겠지. 지금까지는 노 전 대통령을 뒷받침한 역할이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4년 하는 걸 봐서 도지사 이상으로 할 만한 사람이다, 도지사 맡기기도 아깝다, 유권자들이 그런 판단들을 하겠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는 어떻게 구별되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민주개혁정부 1기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대통령만 바뀌었지 대외정책 기조는 같았다. 2012년 민주개혁 2기 정부를 수립하면 여당 소속 도지사가 돼서 예산도 많이 따겠다.(웃음) →언제까지 무소속으로 정치할 수는 없지 않나. -정치는 당이 하는 것이 맞다. 솔직히 당선되고 싶어서 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색깔 있는 무소속이라고도 하고 4당 대표 야권 도지사라고도 한다. 도지사로 있는 동안 정당 가입을 안 한다고 약속했다. 4년 끝나고 나면 뜻이 같고 괜찮은 당을 선택할 것이다. ●2012년 대선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보나. -애국심, 통찰력, 정책 역량이다. 거기에다 국민과 소통하고, 전문가들 의견을 잘 수용한다면 누구나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고 본다.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일까. -복지가 아닐까 싶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못 간다. ‘줄푸세’를 주장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까지 생애주기별 복지를 이야기할 정도 아닌가. →2012년 대선 때는 여야 후보 중 누가 유리할까. -2007년처럼 500만표 싸움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야권 단일후보가 결정되면 40% 지지율이 될 거고, 여권 후보도 비슷한 지지율이 될 거다. 나머지 20% 놓고 11%를 차지하려는 싸움 아닐까. 이회창·김대중 후보와 노무현·이회창 후보 당시 격차 정도 날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하다. 인정하나. -현재 흐름은 인정하지만 아직 대선이 2년 남아 있고 야권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시간이 좀더 가야 대세론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인 박근혜’는 잘 몰라서 평가하기 어렵다. 옛날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평가가 강했는데 이제는 ‘박근혜’라는 독자적 이미지를 굳힌 느낌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 등 국민들이 찬반으로 갈린 정책에 대해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분이 입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가 싶다. →민주당은 수권 능력이 있다고 보나. -민주정부 10년의 국정운영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 많고 야권의 대표 정당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민주당만으로는 집권이 어렵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빼고 집권할 수 있겠나. 그래서 손학규 대표도 야권 연대를 말하는 것 아니겠나. →2012년 야권 대선후보를 꼽는다면.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 국민참여당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 박원순 변호사 정도 아닐까 싶다. →일부에서 김 지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합하면 완벽한 후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두 분 가운데 누가 낫다고 생각하나. -유 전 장관이 월등하게 경쟁력 있다. 확실한 지지층을 갖고 있고 젊은층에 인기가 많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도 강하고 지적 능력도 뛰어나다. →김 지사 본인의 차별적인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시민들과 소통이 가장 잘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닥에서 커서 그런지 주민들과 유대감이 강하다. 새 역사는 변방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기존 우리 사회를 주도했던 쪽에 많은 경험이 없는 게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정치 역정 →1986년 구속됐는데 이재오 특임장관은 본인 탓이라고 미안해하더라. -이 장관 때문에 구속된 건 아니다. 1986년 당시 이 장관이 서울 민통련 부의장이었고 내가 사회팀 간사였다. 직선제 개헌투쟁을 할 때 청주로 내려갔다가 잡혀서 바로 구속됐다. 100일 감옥살이하는 동안 고향으로 가서 농민운동하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겠다 생각했다. 오늘의 김두관을 만든 계기다. →1989~95년 남해신문을 발행했다. 언론관이 무엇인가. -언론이 도정이나 정치 비판하는 건 좋다. 다만 침소봉대하는 것은 곤란하고, 섭섭하다. 특히 정치적 왜곡과 편향이 너무 심하다. 그렇게 되면 영향력은 있을지 몰라도 좋은 신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참여정부 시절에 기득권적 입장에서 과도한 비판을 한 것은 섭섭했다. →최연소 군수를 거쳐 최연소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최연소라는 데 의미를 두나. -노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시골 군수를 행자부 장관으로 앉히지 않았을 거다. 고건 총리와 몇분이 굉장히 반대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나를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적임자로 밀었다고 했다더라. 주민투표제 도입을 발표한 날, 고 총리가 전화를 걸어 ‘협의도 안 하고 왜 한건주의로 했느냐.’고 질책했다. 다음날 아침 노 대통령도 전화해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쯤 되면 장관이 꼬리 내리는데 내가 밀어붙이는 기질이 있다. 그 법이 통과돼 제주특별자치도가 탄생했다. →행자부 장관을 거치며 공무원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게 됐나. -공무원은 행정개혁 주체이자 대상이다. 공무원을 혁신의 동력으로 써야 한다. 확정된 정책을 실행하는 면에선 공무원만 한 조직이 없다. →신고된 재산이 3800만원이다. 청빈도 좋지만 돈이 너무 없어 걱정은 안 되나. -1998년 남해군수 선거 당시 재산은 2000만원이었다. 당시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가 ‘자기 가정 살림도 못하면서 남해군 살림을 어떻게 맡느냐.’고 몰아세웠다. 남해신문 운영하느라 물려받았던 논밭도 다 팔아치웠다. 군수 7년 동안 연봉을 5000만원씩 받았지만, 군수 마치고 나니 빚만 1억 5000만원 남았다. 선출직 나서는 사람은 돈을 모을 수가 없다. 노 전 대통령 유서 중에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졌다.’는 말이 있는데 가슴 깊이 와닿는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 -자유방임이었다. 딸은 중국 인민대 4학년이고, 아들은 군대 갔다 와서 올해 경남대에 입학한다. 공부를 썩 잘하진 못해도 착하게 커줘 고맙게 생각한다. →군 복무는 어떻게 마쳤나. -경기도 의정부에서 육군 병참병으로 30개월간 복무했다. 군 생활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많이 느꼈다. 보직과 계급에 따른 불평등 같은 것들이다. 군 생활하면서 한번도 졸병들에게 구타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군 동지들과 지금도 만난다. 이 친구들이 후원금도 모아준다. 정리 구혜영·유지혜기자 koohy@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희망을 싣고 달리는 탈북 버스기사 유금단 씨

    [김문이 만난사람] 희망을 싣고 달리는 탈북 버스기사 유금단 씨

    황순원의 ‘소나기’가 잠시 북으로 간다. 두메산골이다. 잔잔히 흐르는 강줄기가 있다. 오며 가며 정든 징검다리도 있다. 한 소녀가 그 다리를 건널 때 소년을 만났다. 둘이 오가피나무 열매를 따먹곤 했다. 겨울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영화 ‘러브스토리’처럼 뒹굴었다. 눈싸움도 했다. 강에서 산천어도 잡았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했다. 가재랑 놀았다. 그러다가 산에 올랐다. 두 손을 턱에 괴고 아래를 바라본다. 소년은 어디 갔을까. 중얼중얼 노래를 불러 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에~’ 소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찾아오는 것은 불행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친척 집에 맡기고 두만강을 홀로 건넜다. 파란곡절을 겪으며 남한으로 왔다. 두고 온 아들 때문에 가슴이 아파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며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아들과 다시 남한에서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하여 ‘이제는 살아야 한다.’며 다부지게 일어섰다. 포장마차 보조, 공사장 막일, 식당 홀서빙, 노점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버스 운전사가 됐다. 필기시험에서만 12번 떨어지고 13번째 합격하는 불굴의 의지로 이루어 냈다. ‘절망은 없다. 꿈 있는 자가 진정 아름답다.’라는 좌우명으로 이겨 냈다. 지금은 ‘뛰뛰 빵빵’ 신나게 서울 시내를 달린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말에 승객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사는 맛을 느낀다. 그 소녀의 이름은 유금단(40).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1년 탈북했다. 북에서 온 여성으로는 드물게 남한에서 6년째 버스 핸들을 잡고 있다. 그는 2008년 광복 63주년 때 보신각 타종 행사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신정동에 있는 6623번 시내버스 차고지. 이날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하얀 눈과 환한 웃음이 잘도 어울린다. 약속 시간이 약간 늦었기 때문에, 그렇게 달려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였다. 그의 애마나 다름없는 버스 안에서 마주 앉았다. 먼저 지금 고향에도 눈이 많이 오겠다고 했다. “겨울이면 눈이 항상 많이 쌓여 있어요. 저는 눈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왔을 때 눈이 별로 없어서 속상했어요. 작년하고 올해가 눈이 좀 와서 기분이 좋아요. 오늘 비번인데 눈과 함께 놀라고 하느님이 축복해 주는 것 같아요.” 고향이 어떤 곳이냐고 했더니 “함경북도 산골이며 금강산 못지않은 좋은 경치를 자랑한다.”며 싱글벙글 웃는다. 역시 고향 얘기는 즐거운 일. 봄에는 산나물을 캐고 가재를 잡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강냉이를 절구에 찧어 먹었고 어머니가 삶아 준 줄당콩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렇다면 부모 생각도 간절하겠다고 했더니 유씨는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본다. 함박눈이 더욱 굵어진다. 유씨의 눈가는 차츰 젖어 갔다. “아버지는 40대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50대 초반에 돌아가셨지요. 두 분 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는 원래 남한 출신입네다. 6·25 때 17살이었는데 북한군에게 잡혀 갔지요.” 유씨는 남한에 처음 왔을 때 고모와 삼촌을 만났다. 그리고 조치원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도 갔다. 이때 가슴속 깊이 다짐한 것이 있다. 이산가족으로 한 많은 삶을 살아 가는 이 땅의 노인들을 위해 통일의 문이 열리는 날 버스에 수십대, 아니 수백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달고 북으로 달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절하게 당부했다. “제발, 그날까지 다들 건강하게 살아 계십시오.” 탈북해 남한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을까. 적응하느라 고생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 같은 조선 땅입니다. 남한으로 내려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제 인생은 여기(남한)에서 시작됐으니까요. 남한에서 귀신병을 앓다시피 온갖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걸 겪으면서 비로소 꿈과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남한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의 이질감이었다. 막노동판에서 쫓겨났을 때도 그렇고 포장마차 보조일, 식당 홀서빙 일을 할 때도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그만두어야 했다. 함북 지방 사투리가 불친절한 반말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은 암흑이었습니다. 술을 안 마시면 견딜 수가 없었지요. 우울증과 귀신병을 반복적으로 앓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울었던 날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어떡합니까. 북에 두고 온 아들 생각에 참고 또 참았지요.” 북한에서 8살 된 아들과 이별할 때는 “열흘만 있으면 엄마가 돌아올게.”라고 했다. 당시 남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8년 징역형으로 수감된 상태였고 아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다시피 했다. 이런 아들이 떠올라 울음을 그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노점상으로 나섰다.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아들과 남편을 데려오는 데 썼다. 하늘도 감동했던지 2005년 남편과 아들을 남한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됐다. 그가 버스 운전사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버스 기사가 멋있게 보이더군요. 또 시민들의 발이 된 내 모습을 상상했지요. 기분이 아주 좋아지더라고요.(웃음)” 함북 산골에는 시내버스가 없지만 북한에서 버스 기사는 중산층에 속한다. 그는 어느 정도 운동신경이 있어 운전을 자신했지만 필기시험에서 계속 떨어졌다. 한자식 단어가 낯설고 이해가 잘 안 됐다. 주변에서 해석을 도와 주워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결국 13번째 도전에 합격해 마을버스 핸들을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달려오는 5t 트럭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급히 돌리다가 그만 장 파열을 일으키는 큰 사고를 당했다.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복부에 붕대를 감은 채 경기 지역 시내버스에 다시 올랐다. “그때 죽을 뻔했지요. 병원에서 호흡기에 의지해 지냈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많이 격려를 해 주더군요.” 4년 전부터는 지금의 6623번 시내버스로 옮겨 신정동과 여의도를 오가고 있다. 새벽 2시까지 일하는 날도 많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아들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 버스의 단골 승객들한테는 ‘친절한 금단씨’로 소문이 나 있다. 키가 150㎝ 단신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함경도 또순이’로도 통한다. 그는 특히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 클러치를 밟을 때마다 정강이가 갈라지는 느낌을 받지만 정신력으로 참고 이겨 낸다. 아주머니들이 오르내릴 때 엄지를 치켜세우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격려와 관심에 힘입어 지난해 6월에는 모범운전자 자격증까지 땄다. “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목표의 절반은 이루어낸 것이지요. 또 꿈이 있어야 하늘이 도와줍니다. 저는 원래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시골에 작은 요양원을 설립해 노인들을 모시는 일에 일생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나는 부자다. 남한테 빚이 없으니 부자가 아니냐.’라는 생각을 늘 한다. 또한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 가면서 개인적 감정으로 부딪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웃는 얼굴로 살아 가자.’고 다짐한다. 이런 내용으로 강연을 하면 매번 기립 박수를 받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눈물 젖은 두만강’을 지금도 부르냐고 했더니 “이젠 너무 슬퍼서 잘 안부른다. 대신 윤태규의 ‘마이웨이’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 노랫말이 새삼 다가온다.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다볼 것 없네/~누구나 한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내가 가야 하는 일들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일어나 한번 더 부딪쳐 보는 거야. 마이웨이.’ 편집위원 km@seoul.co.kr ●유금단씨는 1970년 5월 함북에서 태어났다. 2001년 탈북해 중국 땅을 전전하다 2002년 6월 남한에 왔다. 막노동과 포장마차 보조, 식당 홀 서빙일 등을 하다 2003년 말 12번의 낙방 끝에 13번째 필기시험에 합격하면서 버스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이후 경기 지역 마을버스와 시내버스의 핸들을 2년 동안 잡은 뒤 4년 전부터 서울 신정동과 여의도를 오가는 6623번 시내버스 핸들을 잡고 있다. 2008년 6월에는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그해 8월 15일 광복 63주년 보신각 타종 행사에 우주인 이소연씨 등과 함께 참여해 화제가 됐다. 2010년 6월에는 모범운전자 자격증을 받았다. 현재 18살 된 아들과 함께 경기도에서 산다.
  • 이명세 감독 “입김에 자유로운 비영리 상영관 절실”

    이명세 감독 “입김에 자유로운 비영리 상영관 절실”

    박찬욱, 봉준호, 김혜수, 원빈, 고현정, 소지섭 등 국내 스타 영화 감독과 배우들이 릴레이로 출연해 관심을 끄는 광고가 있다. “맥주맛도 모르면서.”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맥주 광고다. 화면 하단으로 흐르는 자막에 시선이 꽂힌다. ‘이 광고의 출연료 전액은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에 기부됩니다.’ 시네마테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스타들이 후원에 나섰을까.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이명세(53) 감독을 지난 6일 서울 보광동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네마테크가 영화 학도나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해 영화 도서관이다. 좋은 영화에 관한 자료를 모아 그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곳이다. 흔히 시네마테크 하면 고전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올드하다는 느낌을 털어버리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영화는 21세기의 첨단 예술인데 시네마테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시네마테크는 왜 필요한가. -우리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영화 속에 다 있다. 거기에 담겨진 시대와 문화를 보면 느낄 수 있는 게 많다. 요즘 우리 영화계에 세대 간극이 엄청난데 시네마테크가 일찌감치 있었다면 1970년대 고(故) 하길종, 홍파, 이장호 등 ‘영상시대’ 선배들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시네마테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시네마테크는 좋은 영화의 전범(典範)을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심형래·진중권 논쟁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소년 시절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풀었나. -지금은 영화제가 많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다. 비디오가 보급되기도 이전이어서, 개인적으로는 그 덕에 오히려 상상력이 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네마테크가 오래 전 정착됐다면 한국 영화의 진화는 보다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지 않나. -맞다. 내년이면 10주년이 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데 필름을 빌려와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재원이 무척 중요하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는 장소를 빌려 운영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그때그때 도와주는 방식이었는데, 지난해 영진위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지원금이 크게 줄었다. →시네마테크는 공익적이고 비영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아예 정부 기관이 맡는 게 낫지 않을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바뀔 때마다 기호에 따라 지속 여부가 갈린다면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는 정착되지 못한다. 외부 지원이 있으면 좋은 일이지만 운영의 독립성은 지켜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당장 눈앞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문화 유산이다. 21세기가 영상의 시대이고, 문화의 시대라면 당연히 힘을 쏟는 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시네마테크로) 눈을 돌리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다. →전용관 건립은 내년이 목표인데. -올해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은 기금을 모아야 한다.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전용관이 홀로 세워지는 것보다 다른 문화 분야와 연계해 세워졌으면 좋겠다. 경복궁 옆 옛 기무사 자리에 들어설 현대미술관이나, 한남동에 세워지는 뮤지컬 전용극장과 함께 들어선다면 시너지가 클 것이다. 외국에서 손님이 왔을 때도 한국 문화를 복합적으로 알릴 수 있는 구심점이 되지 않겠나. →전용관 추진위 위원장이라 어깨가 무겁겠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후원해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야 하는데 (영화)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류승완 등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임을 자처하는 영화인 모두 각자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수준이다. →2007년 ‘M’ 이후 작품이 없었다. 최근 윤제균 감독의 JK필름과 작업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지난해 초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군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를 찍으려고 했었는데 진척이 잘 안 됐다. 윤 감독과 손잡고 한국형 007 격인 ‘미스터 K’를 준비하고 있다. 봄 정도면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여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형사’를 내놓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인정사정’으로 한창 잘나갈 수 있었는데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후회는 없나. -계속 작업을 이어갔으면 두편 정도 더 찍었을 거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행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가 아니었으면 영화를 다시 바라보고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뉴욕에서 4년 정도 체류하며 그곳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에 일주일에 2~3차례 등교하다시피 했다. 수백편의 영화를 봤다. 나홀로 대학을 졸업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너무 좋았다. →‘인정사정’ 이후 작가주의 경향이 짙어져 대중과 멀어졌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결코 아니다. 나는 예술 영화, 상업 영화 구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흥행이 되고 안 되고에 따라 구분을 짓는 게 이상한 일이다. ‘형사’와 ‘M’은 장르적인 특성을 강화한 영화였을 뿐이다. 소재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미스터 K’는 소재적인 측면에선 관객들이 폭넓게 받아들일 작품이 될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현장에서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 아닌가. 어딘가에 자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니까…. →배우든 감독이든 해외 진출이 붐이다. 해외 시장을 노크한 선배 입장에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 시대는 정말 행운의 시대다. 좋은 감독과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세계 속에서 한국 영화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이제는 시장을 넓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정체되면 그대로 무너진다. 한국적 관점이 아닌 아시아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아이유 “국민 여동생은 과분한 사랑…똑똑한 가수 될게요”

    아이유 “국민 여동생은 과분한 사랑…똑똑한 가수 될게요”

    요즘 대한민국이 이 소녀의 매력에 푹 빠졌다. 뛰어난 가창력과 여고생다운 풋풋함으로 사랑받는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18)다. 아이유는 2집 타이틀곡 ‘좋은 날’로 한 달째 각종 온·오프라인 차트 1위를 석권하더니 최근 드라마 ‘드림하이’를 통해 연기자로도 데뷔했다. 광고계의 블루칩으로도 떠오르는 등 그의 별명처럼 ‘대세’임을 입증하고 있다. →새로운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는데, 요즘 대세임을 실감하나. -많이 부담스럽고 과분한 타이틀이다. →데뷔한 지 2년여 만에 갑자기 스타덤에 올랐는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어리둥절하다. 솔직히 저도 회사도 이 정도로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좋은 날’이라는 노래가 좋았고, 운도 좋았다. 튀게 예쁘거나 잘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꽤 들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집안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없다. 노래를 부르면 가족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가족들의 자극 때문에 노래를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좀 달랐는데, 수업시간이나 체육대회 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그때마다 무대가 체질이라고 생각했다.(웃음) →중학교 때 공부 잘하던 학생이 갑자기 가수가 된다고 하니 부모님이 반대했다던데. -특히 엄마가 반대를 많이 하셨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대학에 들어가서 연예인을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반대로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이후에 혼자 노래방에 가서 연습하곤 했다. 가끔씩 아빠와 함께 노래방에서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이문세, 최백호 선배님의 노래도 불렀다. →모 기획사 오디션에 응했다가 떨어진 장면이 인터넷에서 한창 화제가 됐는데 당시를 떠올리면. -동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개성도 없고 노래도 많이 미흡했다. 그래도 꼭 가수가 되겠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그때 (오디션에) 붙었으면 지금 걸그룹 멤버가 됐을지도 모른다.(웃음) →2008년 데뷔 때부터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나. -맞다. 처음엔 이름도 ‘지흔’이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 ‘나와 너’라는 뜻의 ‘아이유’로 바꿨다. (몇 차례 낙방 끝에)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가수 데뷔는 상당히 먼 얘기로 생각했다. 10개월 만에 덜컥 데뷔하게 돼 저보다 먼저 연습생 생활을 하던 소속사 언니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장안의 화제인 ‘3단 고음’(소리를 끊지 않고 세 번에 걸쳐 음을 한 단계씩 높이는 창법)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히트곡 ‘좋은 날’ 녹음 때 단 두 번 만에 성공했다는데.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솔직히 처음엔 겁이 났다. 녹음은 끊어서 할 수도 있지만, 무대에서는 긴장되고 호흡도 가빠지고 율동도 있어서 라이브를 소화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녹음할 때는 한번 목이 쉬면 회복이 어려우니 무조건 빨리 끝내자는 생각뿐이었다. →가창력으로만 승부해도 될 것 같은데 예능이나 드라마에 도전한 이유는. -일단 저라는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SBS ‘영웅호걸’ 출연 요청을 받아들였다. 쟁쟁한 아이돌들이 나오는데 끼워준다고 하니까 솔직히 과분했다. 그땐 뭘 가리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KBS 드라마 ‘드림하이’도 그런 맥락에서 출연을 결정하게 된 거다. →‘드림하이’에서 초밥 소녀로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줬는데, 연기 데뷔는 만족스러운지. -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가수가 되기 전에 연기 학원에 다닌 적 있다. 필숙(극 중 이름)은 연기력을 보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안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가수가 되고 싶지만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저랑 많이 비슷하고…. →외모 콤플렉스 얘기가 나와 말인데 성형설도 들린다. ‘아이유 화장법’도 화제고…. -그냥 학생이었으면 콤플렉스가 없었을 텐데 너무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 사이에 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엄마가 싫어하셔서 성형수술은 안 했다. 회사에서도 안 시켜주고.(웃음) 다행히 좋은 메이크업 선생님을 만났다. 제가 눈 사이의 간격이 넓은 편인데 아이라인을 그릴 때 앞 부분부터 채워 그려나가는 식으로 보완한다. →여기저기서 이상형으로 꼽힌다. ‘사귀자’고 하는 남자 연예인도 많을 것 같은데. -단 한 번도 그런 제안을 받은 적 없다. 친하게 지내는 지연(걸그룹 티아라 멤버)과 루나(에프엑스 멤버)에게 “왜 나한테는 아무도 전화번호 물어보는 사람이 없지?”라고 했을 정도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솔로 가수라 기회가 더 없는 것 같다. 요즘엔 바빠서 아무 생각 없지만 얼굴에 착하다고 써 있는 남자가 좋다. →대학 진학을 미뤘는데 아쉽지 않나. -공부보다 노래가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스물세 살쯤 제 힘으로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싶다. 유학 가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지금의 인기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려운 적은 없었나. -솔직히 지난해 얻은 것이 너무 많아 2010년이 가는 게 겁이 났다. 대세라는 것도 언젠가는 변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앨범이 망해본 적도 있어 지금의 인기에 안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른 제 색깔을 찾아서 이은미, 이소라 선배님의 계보를 있는 여성 솔로 가수로 이름을 올리고 싶다. 역시 요즘 10대는 당찼다. 아이유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지만, 지금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나이 어린 여고생 가수’라는 타이틀이 훗날 깨기 힘든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잘하는 똑똑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유. 그럴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011 놓치면 후회할 ‘클래식 맞수’ 내한공연

    2011 놓치면 후회할 ‘클래식 맞수’ 내한공연

    클래식 애호가들이 신났다. 신묘년 새 달력에 ‘놓쳐서는 안 될 공연’을 적어 넣는 재미가 꽤 쏠쏠해서다. 올해는 유난히 ‘맞수’들의 내한공연이 많아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맞수 공연과 더불어 해당 장르의 객석을 달굴 대가(大家)들의 ‘핫 공연’도 곁들여 소개한다. ●닮아서 더 비교되는 시프 vs 페라이어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48)와 머레이 페라이어(54)가 라이벌로 불리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의 공통점 때문이다. 스케일이 큰 비르투오소(명 연주자)는 아니지만 가식을 배제하고 내면적 깊이를 추구할 줄 아는 단정함이 그렇다. 작품에 대한 충실한 해석과 세밀한 표현력은 단연 이들의 장기다. 시프는 세밀한 부분까지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우아함을, 페라이어는 시적인 서정성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곡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킬 줄 아는 비상한 재주를 지녔다. 시프는 2월 23일, 페라이어는 10월 29일 한국 무대에 선다. 장소는 모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예브게니 키신 활화산같이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원한다면 11월 17일 키신(40)의 공연이 안성맞춤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팬덤’(열혈 팬 집단)을 몰고 다니는 키신은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지휘하는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관능’ 사라 장 vs ‘얼음 공주’ 힐러리 한 사라 장(31)과 힐러리 한(32)은 세계 바이올린계의 여풍(女風) 중추라 할 수 있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신동 출신 두 연주자는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이지적이고 당찬 모습 때문에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힐러리 한은 야무지고 단단한 연주를 선보인다. 정교하고 깔끔한 음색 이면에 여리고 섬세한 여성성도 깔려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꼽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반면 사라 장은 좀 더 역동적이고 관능적이다. 최근에는 진중한 깊이를 더하며 성숙해진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힐러리 한은 4월 12일 영국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사라 장은 11월 8~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각각 협연한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안네 소피 무터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하면 무터(49)도 빼놓을 수 없다. 티켓 파워나 인기만 놓고 보면 키신과 더불어 올해 방한하는 연주자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힐 만하다. 5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살아있는 두 전설’ 바렌보임 vs 아시케나지 다니엘 바렌보임(59)과 아시케나지(74)는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피아니스트였다. 지금은 모두 지휘 거장으로 불린다. 지휘 경력만 따지면 바렌보임이 대선배다. 20대 때 지휘에 입문했다. 반면 아시케나지는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잡은 세월이 10년이 채 안 된다. 두 사람 모두 곡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젊은 연주자로 구성된 서동시집(西東詩集) 오케스트라-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쓴 ‘서동시집’에서 이름을 따왔다-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8월 10~12일, 14일. 아시케나지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1월 16~17일 공연한다. 앞서 10월 12일에는 아들 드미트리와 함께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도 펼칠 예정이다. 모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사이먼 래틀 록 밴드 비틀스와 함께 영국 리버풀이 배출한 세계 최고의 ‘문화 상품’으로 불리는 마에스트로 래틀(56)이 말러를 들고 3년 만에 방한한다.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서다. 11월 15~16일 이틀에 걸쳐 말러 교향곡 9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내한할 때마다 비싼 티켓 가격으로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던 베를린 필은 이번에도 최고 등급 좌석(R석)을 40만원대로 책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첫 날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둘째 날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2011년 빛낼 스포츠 스타] 남자 펜싱 플뢰레 간판 최병철

    [2011년 빛낼 스포츠 스타] 남자 펜싱 플뢰레 간판 최병철

    펜싱은 속고 속이는 게임이다. 상대방을 속이지 못하면 내가 속는다. 2010년 11월 20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경기가 열린 광다체육관. 남자 플뢰레 4강전에서 만난 상대는 바로 세계 랭킹 2위인 일본의 오타 유키. 베이징올림픽 16강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다. 지난 2년간 설욕의 순간만을 기다렸다. 역전에 재역전. 명승부 끝에 15-12, 3점 차로 복수에 성공했다. 이후 결승전에서 홍콩의 청쉬런을 꺾고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까지 파죽지세였다. 남자펜싱 플뢰레 ‘간판’ 최병철(30·화성시청) 얘기다. ●절친 남현희와는 한국체대 동기생 여자 플뢰레에 남현희가 있다면, 남자 플뢰레에는 최병철이 있다. 둘은 한국체대 01학번 동기다. 중학교 때 최병철이 서울 대표였고, 남현희가 경기도 대표였다. 당시는 얼굴만 알던 사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 상비군을 함께하면서 친해졌다. “(남)현희는 어릴 때부터 스피드가 남달랐죠. 서로 부족한 기술을 조언해주며 친한 동료가 됐어요.” 둘은 한국체대에 나란히 입학했고, 2001년에 같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올해로 둘 다 10년째 한국 펜싱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남현희가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올랐을 때, 최병철은 2002년 부산 대회에 이어 단체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경쟁의식이 안 생길 리 없다. “평소 경쟁의식이 좀 있긴 했지만, 현희가 메달 땄을 때 정말 마음속으로 기뻤어요. 응원도 열심히 했죠.” 베이징올림픽에서 남현희가 은메달을 땄을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발목 수술, 1년 재활 딛고 얻은 쾌거 하지만 남현희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주목받는 동안, 정작 최병철 자신은 철저히 소외됐다. 베이징 대회 개인전 16강전에서 ‘최고 라이벌’인 오타에게 14-15, 1점 차로 진 것. 당시에 최병철은 세계 랭킹 7위로 세계 9위인 오타보다 오히려 랭킹이 높았다. 그래서 더 허탈했다. “시합에서 진 날, 좌절감에 휩싸여 동료들과 술을 한잔 했죠. 올림픽만 바라보고 8년을 뛰었는데….” 최병철에게 2008년 베이징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그보다 더한 시련이 찾아왔다. 올림픽 이후 고질병인 발목 통증이 악화돼 수술대에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 “통증은 그대로였어요. 그저 발목이 좀 더 튼튼해지기만 했죠.” 통증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수술대에 오를 필요는 없었다. 재활로 1년여 동안을 허송세월했다. 수술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오타가 세계 1위까지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 최병철은 한물갔어.”라는 소리도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말만 앞서는 선수가 되기 싫었어요.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새달 국제그랑프리 랭킹 포인트 사냥 나서 ‘2전 3기’ 끝에 얻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역시 1등과 2등은 다르더라고요. 주변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죠.” 금메달을 딴 순간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 순간에는 날아갈 듯이 기뻤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내 올림픽 금메달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의 올해 목표는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것이다. 올해 출전하는 모든 국제대회 성적이 바로 랭킹 포인트가 된다. 이 포인트에 런던행 티켓이 걸려 있다. “비책이 있다.”고 했다. 원래 공격형 스타일인 그는 이번에는 ‘양수겸장’을 선언했다. 수비 강화를 통해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 태릉선수촌에서 다시 맹훈련에 들어간 그는 2월 프랑스 국제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랭킹 포인트 사냥에 나설 계획이다. 런던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 은퇴 뒤엔 대표팀 후배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소망도 있다. “제 대표팀 경험을 죄다 후배들에게 넘기고 싶어요.” 그에게 런던올림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글 사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최병철은 누구 ▲ 출생 1981년 10월 24일 서울 ▲ 학교 신동초-신동중-홍대부고-한국체대 ▲ 가족 최창운(59), 유선자(56)씨의 2남 중 둘째 ▲ 별명 깜상(얼굴이 까매서) ▲ 좌우명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한다. ▲ 2001 세계청소년펜싱선수권 남자 플뢰레 개인전 동메달 2002 부산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2006 도하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2008년 스페인 국제월드컵 개인전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
  • 檢, 한만호씨 녹음CD 제출… 한씨 또 부인

    檢, 한만호씨 녹음CD 제출… 한씨 또 부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검찰이 핵심 증인인 한만호(49·수감 중) 전 한신건영 대표가 구치소 등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 내용 녹음 CD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 공판에서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며 검찰진술을 번복한 것에 대한 후속 대응이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여전히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준 적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우진) 심리로 열린 한 전 총리에 대한 3차 공판에서 검찰은 한 전 대표가 서울구치소와 의정부교도소에서 면회인과 나눴던 대화 녹음 CD를 증거로 새로 제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CD에는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한 전 대표의 어머니는 지난해 5월 18일 “내가 문숙이(한 전 총리 측근인 김문숙씨를 지칭하는 듯)한테도 전화를 해봤어. 명숙이(한 전 총리를 지칭하는 듯)가 미국 가 있대. 우리가 이렇게 나갈 집도 없고 하니까, 좀 어떻게 서로 돕는 방법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무슨 말씀으로 전화했는지 알겠대.”라고 한 전 대표에게 말했다는 것. 한 전 대표는 또 같은 해 6월 30일 “3억 얘기했었거든. 3억이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어떤 대답이 오긴 올 거예요. 그리고 한명숙 서울시장 나오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될지 안 될지는 모르니까.”라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대화 내용이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자금을 전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한 전 대표가 구치소에서 외부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을 인용해 그를 신문했다. 한 전 대표와 함께 구치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진술을 인용하기도 했다. 검찰은 “우리가 (부도난 당신의) 회사를 되찾는 데 도움 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정치권과 접촉해 진술을 바꾼 것 아니냐.”고 신문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나의 수감으로 근심하고 있던)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했던 말”이라며 검찰 신문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구치소에서 아버지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다’고 말하는 등 (한 전 총리 모함을) 후회한 발언도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이날 추가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밝힌 CD 등은 사실상 ‘히든카드’였다. 그러나 한 전 대표의 바뀐 증언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데는 사실상 실패했다. 검찰은 또 CD 내용 일부를 재판부가 허가도 하기 전 언론에 공개, ‘여론몰이’를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한 전 대표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비용 등으로 3회에 걸쳐 현금과 미화, 수표 등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열린 공판에서 한 전 대표는 검찰 진술을 모두 부정하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임주형·강병철기자 hermes@seoul.co.kr
  • [세대공감] ‘새해 다짐’

    [세대공감] ‘새해 다짐’

    새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새해 소망이다. 매일 밝아오는 똑같은 아침이지만 1월 1일 하루만큼은 지난해 묵은 기억 훌훌 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에, 새로운 것을 소망하고 계획을 세운다. 2009년 한 취업 포털에서 직장인 809명을 대상으로 새해 다짐 실천 여부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새해에 세운 계획을 ‘전부 실천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24.2%였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된다는 기대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더욱 새롭고 기분 좋게 한해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세대마다 서로 다른 새해 소망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샘이나·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新·舊 없는 ‘열공’ 의지 ●42년 만의 고등학교 진학 “이제 다시 공부할 때가 된 것 같아요.” 4일 오후 9시 서울 화곡동 김정희(58·여)씨의 집. TV에서 구제역 관련 보도가 흘러나왔다. 김씨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남편과 둘째 아들이 구제역 확산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뉴스에 관한 대화에 낄 수 없는 것이 ‘가방끈이 짧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김씨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잘 모르니까 이야기에 낄 수 없어 소외됐다는 느낌까지 드는 게 사실이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광주 출신으로 6남매의 장녀다. 동생들은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배울 만큼 배웠’지만 그는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집안일 돕느라 중학교를 마친 게 고작이다. 그는 “그때는 맏딸이니까 동생들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들 학교 가면 집안일하고, 동생들이 좋은 성적 받으면 제가 잘된 것처럼 덩달아 기분 좋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저만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드네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언제가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새해 계획을 “고등학교 입학”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교 진학을 포기한 때가 1968년이니 42년 만의 도전인 셈이다. 그는 “자식들도 다 커서 다들 자기 밥벌이하고 있으니 이젠 저를 위해 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둘째 아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에 들어간 만큼 이제 고등학교 진학을 미룰 걸림돌은 없다. 그는 가방에서 서울 방화동의 한 고등학교에 곧 제출할 입학 원서를 꺼내 만지작거리다 껴안았다. ●“영어회화 공부로 명예 회복” “Excuse me.”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백화점 의류 매장에 외국인 손님이 찾아왔다. 이미 산 옷이 너무 작아 큰 것으로 교환해 달라고 했던 것.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 찾아오자 직원들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정선(26·여)씨를 찾았다. 김씨는 토익 점수 950점에 1년 어학 연수도 다녀오는 등 누가 봐도 영어에 능숙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더듬더듬 “Um….” 말문을 떼기도 어려웠다. 해당 치수가 품절이라 교환이 어려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데 처음엔 ‘품절’이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여차여차해서 해결은 했지만 직원들 앞에서 망신당한 것 같아 보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김씨는 그 일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김씨가 새해에 자신과 한 약속은 ‘영어회화 완벽하게 하기’다. 3일 오전 6시 김씨는 지난해 말 등록한 영어회화 수업에 가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영어 쓸 일이 있으면 제가 또 불려갈 텐데 다시 망신당할 수는 없잖아요. 영어회화를 열심히 공부해 꼭 명예 회복을 할 겁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밝게 웃었다. 자립의지 다지는 딸들의 결심 ●스스로 등록금 벌어서 내기 서울 대림동에 사는 대학생 이혜리(20·여)씨의 새해 목표는 등록금 벌어서 내기다. 이씨는 국립대에 다녀 사립대보다 등록금이 싼 편인데, 그걸 ‘무기’로 지난 2년 동안 부모에게 의지해 대학을 다녔다. 아르바이트를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는 “과외도 하고 학원 강사도 해보고 커피숍이나 빵집 서빙 아르바이트 등 고등학교 졸업 때부터 쭉 아르바이트를 해 왔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번 돈은 모두 개인 용돈이나 방학 때 해외 여행 자금으로 쓰였다. 이씨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하나 있는 오빠도 직장인이라 집에서 이씨의 등록금을 대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4년 동안 1년 정도는 자기가 번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생활비도 내 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씨는 “내년엔 4학년이라 어차피 아르바이트도 하기 어려울 거고 올 한해만큼은 자식 등록금 걱정 안 하게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부모님은 “기특하지만 공부만 열심히 해달라.”며 이씨를 말렸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주중에는 과외, 주말에는 학원 강의를 나가고 있다.”면서 “한번 해보고 싶은 거예요. 등록금을 꼭 부모님이 내야 한다는 건,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강조했다. 또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를 버는 것도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해요.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어른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취업, 후회 없이 준비할 것” 나현영(가명·25·여)씨는 자신의 새해 약속을 ‘현실을 직시하기’로 정했다. 올 2월 대학을 졸업하는 나씨는 아직 직장을 못 구했다. 지난해 기업 20여곳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기 때문. 마지막 학기에 공부와 취업을 병행하느라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자기소개서도 미리미리 써 두지 않고 마감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제출하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불성실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업이 아닌 곳은 쳐다도 보지 않은 것도 후회하고 있다. 서울에서 알아주는 4년대 사립대학 영문과를 다니는 나씨의 친구나 선후배들은 대부분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업했고, 그도 당연히 대기업 아닌 곳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올봄부터는 백수가 되는 자신의 처지가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학벌만 믿고 취업 준비도 제대로 안 했는데 눈은 높으니, 취업이 안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면서 “올해부터는 내 현실을 직시하고 취업 준비를 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일단 나씨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물류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 그래서 새해 첫날부터 서점을 찾았다. 이제 졸업생이 되는 만큼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더 많은 ‘스펙’을 쌓을 계획이다. 영어 회화 학원에도 등록했다. 800점 후반인 영어 점수를 확 끌어올리고 영어 면접에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는 후회 없이 공부하고 준비해서 꼭 취업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엄마·아빠들의 자기계발 ●드럼 치며 주부 스트레스 확 날려 “두구두구두구 칭” 강원 동해시에 사는 김금희(53·여)씨가 집 안 청소를 하다 말고 드럼 소리를 흉내 낸다. 양손으로 드럼 치는 시늉까지 한다. 김씨는 올해 ‘드럼을 배우겠다.’는 새해 계획을 세웠다. 집안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없앨 방법을 고민하다가 드럼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동년배의 가정주부들이 모여 ‘난타’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미 드럼 레슨을 등록했다. 김씨는 “드럼 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아요. 우리 주부들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어디다 이야기할 데도 없잖아요. 드럼을 치면서 마음속의 우울함을 날려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가정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시간 보낼 것” 서울 여의도동에 사는 권순찬(54)씨는 새해 첫날 오전 6시, 해도 뜨기 전에 등산복을 입고 등산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렀다. 아내와 두 자녀는 집에 둔 채 혼자 나섰다. 휴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외출하는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권씨는 고교 동창생 3명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일과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라고 말했다. 권씨의 새해 다짐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자’이다. 권씨는 “그동안 새해 소망은 일 아니면 가족이었는데 올해는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이런 계획을 세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직장에서는 승진할 생각을 하면서 일에 치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식 교육·집 장만 걱정에 이렇게 머리가 희끗희끗 나이가 들어 버렸지요.”면서 “지난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우리가 너무 남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권씨가 홀로 집에 남아 있을 때가 잦았다. 그는 “부인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고, 자식들도 약속이 있다고 나간 뒤에 저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 TV 보고 있었던 적이 많았어요.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면서 “그런데 그게 제 문제더라고요. 제가 나서서 모임도 만들고 친구들도 만나면 풀리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권씨는 당장은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산을 오르는 ‘소심한 일탈’을 했지만 산악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는 등 앞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이는 5개월짜리. 5개월 전에 아저씨의 정액이 아내의 질을 파고들어 거센 산성반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수정란을 착상시켰다. 5개월 전이라면 아저씨와 내가 종로 3가 나이스 모텔 205호에서 새벽 내내 서로의 배꼽 속에 손을 넣었던 때다. 나와 만나기 전날이거나 혹은 다음날에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고 기계적인 성교를 했을 것이다. 아저씨의 아내는 궁색한 가짜 신음소리 내기에 바쁜 여자니까. 아저씨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신음소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편집증 환자처럼 집착한다. 그런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 나는 가짜 신음소리 따윈 내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 나는 진짜에게만 연다. 그것이 성대든 밑구멍이든 간에. 오늘 만나. 삐리릭. 교실 한구석에서 체육복을 베개 삼아 누워 있던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가방을 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메고 나는 교실 밖으로 향한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아저씨에게 한 번 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매우 절약적인 문자. 럭셔리 라운지 모텔 507호. 아홉 시. 아홉 시까지,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다. 아저씨와 만나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세찬 바람이 분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나? 아저씨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치마 밑단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얘, 허벅지 다 보인다.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넌 참 미쳤구나. 그래서 이름이 미치인가 보구나.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장례를 다 마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고 있었다. 넌 그새 또 어디 갔다 왔니. 그냥 잠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였다. 엄마, 할머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 내 방 문 틈새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굽은 등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며 일정한 리듬에 맞춰 떨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아저씨를 만났다. 삼성동 명아장 모텔 313호.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교복 와이셔츠를 벗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여덟시 오십 오 분에 모텔에 도착했다. 내가 313호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다 벗은 몸으로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아저씨가 인사했다. 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쾌적한 향내가 풍겼다. 오히려 첫 번째 갔던 곳이 적당히 촌스러우면서 마음이 편했다. 옷을 못 벗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듯이 만져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참았다. 나는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몸을 열고 젖히고 오므리고 뒹굴었다. 두툼한 손가락처럼 두툼한 아저씨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내 피부에 닿았다. 남의 살을 맞대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저씨의 거죽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물론 아저씨가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냥 남의 살결, 살 틈으로 새어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한 차례 사정이 끝나고 난 뒤에 아저씨는 모로 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가 슬쩍 내게 말을 건넸다. 미치. 미치예요. 아아, 그래. 그래서 내가 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었지. 네에. 근데 전 미치진 않았어요. 그냥 미치일 뿐이에요. 음, 그래. 하지만 좀 특별한 이름이구나. 네에. 미카엘 같은 거랑 연관된 건 아니에요.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미치는 무슨 뜻이니? 미치는 그냥 미치인데요. 별 뜻은 없어요. 음, 그렇구나. 아저씨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대화를 끝내겠단 듯 자세를 고쳤다. 등 돌린 아저씨의 넓은 등짝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아저씨의 담배를 빌려 등짝에 무어라 쓰고 싶었다. 등신이라고. 그때 아저씨 이름을 물어보면 좋았을 걸. 아직도 나는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 장씨, 김씨, 윤씨, 최씨. 개중에 하나겠지. 여하튼 내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씨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저씨의 두툼한 손가락과, 출렁이는 뱃살, 수염자국이 난 얼굴피부뿐이다. 정수리 근처가 조금 휑한 거나 금이빨로 된 어금니가 하나 있다는 것, 배꼽부터 무성한 털이 하반신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발이 아담한 것, 그리고 오른쪽 팔뚝에 개에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는 것까지. 아저씨의 흉터는 곧 아저씨의 이름이었다. 아저씨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서울 전역. 아저씨는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고심하여 장소를 물색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동네, 같은 모텔을 반복해서 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다. 구석구석 늘어선 골목과 로터리가 답답할 정도로 복잡했다. 위로 세우고 벙커를 만들고, 한정된 공간의 쪽수를 넓히거나 한 칸짜리 공간을 좁히거나 하는 식으로 자꾸만 넓어져 가는 서울. 뚝딱뚝딱 완공이 끝나면 어디에선가 증축이 시작되고, 어딘가가 매끈해지면 다시 어딘가가 더럽혀졌다. 더럽혀진 부분을 메우는 동안 또 어딘가가 파괴되고 무너져 갔다. 할아버지는 폭설이 내리던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져 죽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병원으로 후송된 지 십 칠 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은 오래 살다 가셨으니 여한 없으시리라 판단, 호상이라 여기며 잔칫집처럼 장례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고 화투 패를 돌리고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삼일 중 이따금씩 곡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매우 형식적이었다. 하하호호 웃다가 누군가 곡소릴 내면 얼마간 따라 울어주고, 딸꾹질 멈추듯 뚝 그치면 다시 하하호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내가 밖으로 빠져나와 교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순간, 아버지가 홀연히 담배를 물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별은 참 폼이 안 나. 아빠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셨다. 아빠의 왼손에 달린 담배가 빨간 불씨를 태우며 양복바지를 위협했다. 그거 탈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염병할 양반. 보도블록에서 고꾸라지기는. 아빠는 색색의 벽돌이 지그재그로 놓인 보도블록을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가닿은 가래침은 희부연 노란빛을 풍겼다. 아빠는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와 함께 종이컵을 집어 던졌다. 소주가 바닥을 치고 튀었다. 아빠는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식장 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저씨 뭐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실은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적이 없었다. 뭐하냐고. 역시 묵묵부답. 차라리 보내지 말 걸, 두 번씩이나 씹혔다. 쪽팔리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미친이구나. 오늘 만날까? 미친이라니, 내가 분명 미치지 않았다고 했을 텐데. 미친 아저씨. 나는 눈에 젖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곧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는 동안 아빠는 병원 건물 귀퉁이 어딘가에서 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대충 토하는 것을 마치고는 보도블록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 표면이 토사물 범벅이었다. 아빠의 긴 속눈썹에 연주황색으로 변한 실파가 붙어 있었다. 더럽게시리. 나는 다시 대로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나는 얼마간 더 병원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한쪽 손을 기계처럼 흔들면서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말대로 별 몇 개가 우스운 크기로 떠 있었다. 저게 무슨 별이야. 그러는 사이에 택시가 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택시 아저씨에게 별 보러요, 라고 말할 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섹스가 전부였고, 섹스가 끝나고 치르는 비릿하고 울적한 냄새들을 소멸시키는 일에 신경 쓰느라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을 교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자락을 빙글빙글 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대꾸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저씨에게서 아내 얘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왜 애를 가졌어요? 내가 아저씨 배꼽에 손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간지러웠는지 실실 웃으며 좌우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가진 건 아니고 아내가 가진 거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꺼가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거랑 그거랑 같은 일로 봐서는 좀 그렇지. 그거랑 그거랑 원래 같은 거 아니에요? 그걸 해야지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에이, 하지만 언제나 그걸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니잖아. 아아, 하긴. 우리도 그거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으응, 그래 맞아. 골치가 아픈 일이지, 그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거를 사용했고, 나중에 가서는 굳이 그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까지 그거 타령을 했다. 그러다가 대화의 종반부에서는 그거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에서부터 그거를 그거로 불렀는지, 그거가 그거가 아닌 다른 그거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등을 돌려 누웠을 때, 아저씨의 등과 내 등이 맞닿았다. 나는 차갑고 아저씨는 뜨겁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저씨가 차가워지고 내가 뜨거워진다. 척추를 나란히 두고 우리는 열과 냉을 반복적으로 옮겼다.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도 참 후졌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의 등줄기가 움찔했다. 글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아내가 만든 거라니까. 아저씨가 발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다. 굳은살이며 티눈이 박인 피부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생각을 해요? 너무 구려. 너무 너무 구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떤 시대기는, 잘 먹고 잘사는 시대지. 너무 구려. 태어나는 일 자체가 구린 시대예요, 지금 이 시대는. 미치. 너는 너무 어린데,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잖아요. 씨발. 나는 울먹였다. 아저씨가 발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 애 낳으면 나 꼭 보게 해줘요. 음,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해보지. 아저씨는 말을 이으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똥 누러. 아저씬 왜 만날 그렇게 똥을 싸요? 모르겠어. 난 너만 보면 똥이 마려워. 아내 앞에서는요? 집이건 회사건 똥 싸는 일이 고역인데, 난 너만 보면 똥구멍이 빠져버릴 거 같아.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똥을 싸고 싶어 재빠르게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아저씨. 나는 또 한번 아저씨에 관한 흉터를 진하게 새겼다. 똥냄새를 풍기며 침대로 돌아온 아저씨와 뒹굴다가 말고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든 여덟의 할아버지와 함께 육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는 일흔 일곱. 열한 살 연상의 남편을 마주 대하며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유순한 고집과 무지한 강직함으로 이겨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지냈던 고향을 저버린 것은 할머니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진 탓이었다. 밭을 안 일구면 되지 않냐, 그냥 일 안 하고 시골에 계속 계시면 안 되냐, 하고 심술을 툴툴 부린 내게 엄마는 꿀밤을 먹였다. 네가 시골에 가서 한 번도 살아보질 못해 이러는구나. 시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야. 등불이 없는 동굴 같은 곳이라고.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과 함께 부대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 따로 모실 거니까. 따로 사는 데엔 나보다 엄마 몫이 더 컸다. 아빠는 미적지근하게 그러지 뭐, 하며 우리 집 근처에 값이 싼 아파트를 골라 전세계약을 했다. 십육 평형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며 월마다 꼬박꼬박 작동 점검을 하는 엘리베이터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할머니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끔 식용유나 세제 같은 걸 사들고 가는 아빠에게 거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산해, 라고 말하면 아빠는 내 콧잔등을 쿡 치면서 노인네들 잠자리 뒤숭숭하게 함부로 말 놀리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깟 귀신, 어차피 동년배들 아니겠어?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 집 전세계약이 얼마 안 있어 끝날 참이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있던 엄마는 되레 계약기간 전에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조금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짐들이 가득 들어찬 다용도실을 대충 비워내고 할머니가 덮을 이불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풀지 않은 짐짝처럼 더욱 몸을 웅크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내가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면 건넌방에 있던 할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왜요? 라는 기색으로 노려보면 이내 주춤거리는가 싶게 눈을 피하다가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금 내 쪽을 살폈다. 내가 한 번 더 뭘 봐요? 라는 표정으로 찌릿, 눈빛을 쏴주면 그제야 다 알겠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기분 나빠. 내가 닫힌 방문 틈새로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그럼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별 몇 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졸하게 쪼그라든 것이 언젠가는 점점 작게, 그보다 더 작게, 그래서 결코 보이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질 것만 같았던 별들. 마치 할머니의 쪼그라든 유방처럼. 너네 엄마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안방에서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이 또 시작됐다. 카악, 퉤. 아빠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뱉어 진짜? 엄마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소릴 질렀다. 카악, 퉤. 카악, 퉤. 의식적으로 가래를 뱉다가 사래 걸린 아빠가 연신 밭은기침을 토했다. 조금 과장이다 싶게. 나는 방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모텔과는 다른 차원의 이불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말고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는 아무래도 버려진 짐짝처럼 놓인 할머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미친 엄마 아빠. 나는 방문을 열고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를 살핀다. 방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직접 살짝 문을 열어 놓았을 터. 문과 문턱이 아귀가 딱 맞게 붙어 있지 않고 약간 틈을 벌리고 있다. 그 미세한 틈처럼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는지 몰랐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물세례에 허덕이듯이. 할머니 서럽겠다. 짝이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 네 아저씨는요? 아저씨의 귓불을 빨면서 내가 물었다. 그건 여자에게만 국한된 일이야. 남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아예 머릿속에 그런 게 없어. 이 사람 없으면 죽겠다 싶은 그런 게. 결혼 왜 했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뜸을 들였다. 글쎄, 돈을 모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 남자란 게 그래. 챙겨주고 입혀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좆나 후졌네, 남자들이란.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가 깔깔 웃었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미친 아저씨. 뭐 이런 게 다 있지? 덜 말린 해초처럼 무성한 아저씨의 풀숲을 헤치다 말고 나는 입을 뗐다. 입술에 빳빳한 음모가 달라붙었다. 에이, 좀더 해주지 그래.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말했지만 나는 그냥 일어났다. 반투명한 유리 칸막이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을 빡빡 문질러대며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따라 들어왔다. 에이, 미치. 섭섭하게 왜 그래. 아저씨가 내 팔뚝에 묻은 거품을 닦으면서 품에 안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샤워기를 아저씨 방향으로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아저씨 살갗에 닿았다. 앗 뜨거워.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안 할래요, 피곤해요. 저리 가요. 이제 만지지 마요. 아저씨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아저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미치. 앞으로 삼주 정도 못 봐. 나는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아내랑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애 낳기 전에 좀 돌아다녀야 될 것 같아서. 애가 나오면 피곤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매만지며 물기를 닦았다. 외국을 다녀올까 해. 연차랑 휴가 당겨쓰니까 삼주 정도 여유가 생기더군. 나는 대충 로션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 속에 든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아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다네. 난 애초에 더블린이 어디 박혀 있는 덴지도 몰랐다니까. 그냥 동남아 일대나 둘러보고 올 것이지, 무슨. 대충 스타킹까지 신었다. 주머니를 쑤셔 담배를 찾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건넸지만 무시했다. 삼주 뒤엔 웃으며 보자.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명랑해서야. …… …… 삼주 동안 똥 못 싸서 어떡해요?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아저씨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픽 웃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들어 침대 중앙으로 눕혔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내가 말해도 묵묵부답. 아저씨가 좋아하는 보라색 원피스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부득이하게.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음소리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엉덩이에 푸른 멍이 흉터처럼 들어 있었다. 언제고 지워질 것이 빤한 흉터가. * 아저씨는 정말 삼주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잘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들었다. 의자에 등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역시 좀이 쑤셨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쳤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애들이 자리로 가 책상을 정돈했다. 아직 선생이 오질 않았다. 틈을 타 가방을 몰래 들고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든 갈 곳을 찾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쎄미였다. 나도 데려가. 미친년. 귀찮게시리.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어디 갈 건데? 몰라. 뭐야, 시시하게. 그럼 나 따라와. 그러든지. 우리는 번화가 로터리에서 내렸다. 쎄미는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역사 안 물품보관함에서 옷을 꺼냈다. 초록색 미니 원피스였다. 넌 갈아입을 거 없어? 나는 가방 안에 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꺼내 보였다. 우리는 쌍방울자매처럼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쎄미가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우리는 피시방으로 갔다. 모니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나는 쎄미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다가 졸았다. 얼마 안 있어 쎄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나가자.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번화가 로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온갖 조명 세례에 비둘기들은 나뭇가지 위로 종적을 감췄다. 보도블록은 연이어 뱉은 껌들과 담배꽁초로 넘쳐났다. 쎄미는 로터리 변방에 있는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색이 누런 간판에 조명도 시원찮은 것이 딱 학생들이 숨어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짜리몽땅한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쎄미가 샐쭉이 웃어 보이며 익숙하게 소주 두 병과 부대찌개를 시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태연히 일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던 담배를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태반이 고등학생들처럼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며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쎄미는 재떨이를 제 앞에 가져다 놓고 그새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나도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쎄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미, 오랜만이다. 쎄미가 남자애 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옳다구나, 같이 놀자는 소리로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가 큰 자식이 쎄미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뒤이어 눈썹이 숯덩이처럼 진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새 할머니가 전골냄비가 올라간 부르스타를 들고 와서는 퉁명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쎄미와 그 옆에 앉은 꺽다리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취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숯덩이 눈썹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박한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햄 조각과 두부, 콩나물과 양파. 찌개는 어쩐지 팔팔 끓여도 맛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앞에 두 사람이 기어이 취한 척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을 때쯤 나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랬더니 옆의 숯덩이도 냄비에 제 수저를 꽂았다. 나는 맥주에 콜라와 소주를 조금씩 섞어 숯덩이에게 주었다. 숯덩이가 고마워하며 답례로 자신도 타주겠다고 했다. 각자 서로가 타준 폭탄주를 마셨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쎄미와 꺽다리는 팔짱은 물론 어깨동무며 심지어는 서로에게 입술까지 드밀며 야단이었다. 소주를 일곱 병쯤 마셨던가. 그 와중에도 쎄미가 자리를 뜰까봐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꺽다리가 숯덩이에게 눈질을 보냈다. 무언의 암시 같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행된 약속이 있었던 듯싶다. 쎄미는 비에 젖은 이불처럼 꺽다리의 팔뚝에 안긴 채 실려 나갔다. 이윽고 숯덩이와 나만 남았다. 숯덩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렸다. 우리도 일어나지 뭐. 벌써 가게? 그럼 더 있으려고? 시간 별로 없어. 밤은 못 새. 숯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유치한 반응. 어디로 갈 건지는 정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숯덩이. 아, 이래서 어린애들은 귀찮다. 다 정한 거 알고 있거든. 모텔로 갈 거 아니야? 일 치르곤 만나 해장할 거 아니었어? …… 그리곤 쎄미랑 나랑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낄낄거리겠지, 뭐. 안 봐도 빤해. …… 빨리 계산하고 나와. 너구리굴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을 헤집고 나와 건물 앞에서 숯덩이를 기다렸다. 숯덩이는 쭈뼛거리며 나왔지만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았다. 앞장 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돼? 어, 원래 이러려고 했잖아. 내가 인상을 쓰자 숯덩이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잡지 마. 숯덩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자. 숯덩이가 말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들어갔다. 심야시간대에 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잠시 졸았다. 조는 내내 숯덩이가 내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박력 없기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숯덩이가 팝콘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쯤에 나는 숯덩이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고는 그를 이끌었다. 어디 가려고? 심심한데 그냥 DVD방이나 가든지. 우리는 영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DVD방으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계산을 하는 숯덩이 몰래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숯덩이와 몸을 섞고 난 뒤에도 아저씨에게선 답문이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나. 나는 검은 소파에 누워 말했다. 숯덩이가 휴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곤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긋거렸다. 화면에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게 비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러닝타임이 긴 시리즈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숯덩이가 슬금슬금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 이만 가봐. 싫은데. 그럼 걍 닥치고 가만히 있든지. 어차피 나도 뺑이 치는 거야. 오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거든. 학교는 안 다니니? 너야말로 학교 다니는 년이 이러고 다니냐? 등신. 너만큼 구린 애 아니거든, 나. 웃기고 있네. 됐다. 그만 말해, 입만 아파. 딱 봐도 사이즈 나와. 나는 뭐 누나들이랑 안 놀아본 줄 아냐. 뭐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대충 윗옷을 걸쳐 입고 DVD방을 나왔다. 숯덩이는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거리는 아직 깜깜했다. 추위 탓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건물 앞 계단에 누워 토사물을 흘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리는 한적했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진 셔터에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숯덩이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던 아저씨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내 몸에 남겨진 아저씨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쪽팔리게, 정말 후지게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아저씨를 만난 건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아담했지만 역사가 오래된 레코드 가게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섹션별로 잘 나눠진 음반들은 가게 주인의 손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됐다. 주인은 내가 오면 리패키지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내가 모르는 희귀 앨범을 꺼내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존 레넌의 사망주기 30년을 맞아 아저씨는 비틀스의 앨범을 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LP로 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을 꺼내주었다. 아저씨는 보물 다루듯 LP를 매만졌다. 그거 복사본 같은데. 내가 다가가 이 말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쪽을 살피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데요. 20년 전에 들어온 건 정식판 거의 없어요. 다 해적판이지. 그리고 진퉁이라 쳐도 몇 억 넘을 걸요? 그냥 작년에 나온 리마스터 앨범 사세요. 저 같으면 그거 안 사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LP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아저씨는 앨범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 진퉁. 같이 나가지? 그리고 우리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미치.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니? 비틀스 노래 제목이잖아요. 후추상사의 밴드. 물론 한국에 그 제목을 딴 인디밴드가 있단 건 알아요. 아니.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가 낸 책이 있어. 그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 속에 든 여자주인공 이름도 역시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거야. 루시나 리타 같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밴드가 남아프리카 출신들이란 거야. 그래서 번역본을 구하긴 힘들어. 그 튼실한 내용의 책은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고 해. 더 신기한 건 뭔 줄 아니? 소속된 밴드 팀원이 단 한 명이란 거야. 뭐야. 나머지는 다 세션이에요? 그 밴드는 공연 안 해요? 응. 그 밴드는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이 없어. 그 밴드의 업적이라곤 책 낸 게 끝이야. 그게 뭐가 밴드예요. 그냥 작가지. 그러게. 하지만 그 사람이 우기면 밴드겠지. 마치 네 이름이 미치가 아닌데도, 네가 줄곧 미치라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야. * 아침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어쩐지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둘러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미친년. 집에 들어오기만 해.], [네 방에 있는 CD 다 갖다 버리기로 결단 내렸다.], [평생 네 멋대로 하다가 죽어. 여한 없이 그렇게 살아라. 부럽다.], [엄마아빠 오늘 등산 가니까 네가 할머니 밥 좀 챙겨드려. 것까지 안 하면 넌 정말 죽는다.] 나는 할머니 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미역처럼 장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기척도 못 느끼셨는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큰 소리로 두어 차례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야 어깨를 움찔하는 할머니. 저 왔어요. 밥 드셔야죠.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차. 원피스를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생각해 보니 허접한 실력으로 그린 아이라인도 엄청 번져 있을 것이었다. 밥 챙겨드릴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할머니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오라는 눈치인가 싶어 나는 대충 눈 밑에 번진 아이라인을 손으로 닦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의 주름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 어깨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꺼끌꺼끌했다. 뭐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자 몇 차례 여쭈어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몇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의 눈동자는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질문하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장롱에 머리를 기대었다. 할머니는 조만간 부서질 박제나비 같았다. 할머니의 눈가와 손,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이 가뭄처럼 답답하고 숨 가쁠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마다 이렇게 장롱에 머릴 기대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 있긴 한 걸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희정아.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어쩐 일인지 눈꺼풀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이해가 안 됐으나 눈물은 더 솟구쳤다. 접을 수 있다면 잠깐 시간을 접어놓고 싶다. 정말 구리고 후지다. 나는 집전화기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받는다면 나는 다 폭로할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비틀스를 공유한 사이라고요.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세요? 남아프리카에 있는 원맨밴드를 아시냐고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임신은 왜 해요? 그렇게 안정적인 게 좋으면 차라리 소파랑 결혼을 하셨어야지.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요. 신호가 계속 가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받는다면 이제 아저씨와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야지. 아저씨의 똥배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라고. 아저씨도 똑같아. 부인 앞에선 똥도 못 눈다면서 여행은 왜 같이 가요? 왜 나한텐 아저씨 이름도 안 알려줘요? 치사하게 산다. 치사 빤쓰다, 정말…… 그리고 달칵.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한창길입니다. 아저씨 목소리다. 한창길이라는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건 분명 아저씨의 목소리다. 내가 수없이 핥았던 목에서 나는 그 소리 맞다. 허나 나는 한창길이란 이름을 모른다. 그런 이름일랑 들어본 적도 없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요, 아저씨. 저예요, 미치……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아저씨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내게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뿔싸. 이렇게 깔끔할 수가.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걸 지워야지. 아저씨의 배꼽이 따뜻했다는 것 정도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열여덟이라는 전투의 군사기밀이라 생각하고 블랙박스에 가두어 사장시켜야지. 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집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짜증나게. <끝〉
  • [생각나눔 NEWS]조기노령연금, 받고 나니 후회가…

    [생각나눔 NEWS]조기노령연금, 받고 나니 후회가…

    2년 전부터 조기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홍모(57)씨는 요즘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식들이 건네는 용돈으로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데 괜히 일찍 연금을 받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홍씨는 “곰곰이 따져 보니 그냥 60세부터 연금을 받는 게 더 낫더라.”면서 “손해 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홍씨처럼 소득이 없거나 월 급여가 275만원 이하인 사람들이 받는 조기노령연금의 소득 기준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하고, 만 55세 이상인 가입자가 소득이 없을 경우 연금 지급연령인 만 60세 전에도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2010년 10월 말 현재 20만 9608명에 이른다. 2006년 10만 1166명이던 수급자 수는 경제난과 맞물리며 5년 사이 두배 넘게 늘었다. 조기노령연금은 조기은퇴자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입자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이를 운영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55세부터 받으면 원래 지급액의 70% 수준으로 평생 받으며,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었던 가입자의 경우 약 55만원을 받는다. 월 급여 275만원 이하(2010년 기준)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문제는 경제적 빈곤선을 기준으로 해야 할 조기노령연금의 소득 기준액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월 275만원 이하 즉 연봉 3300만원 이하 수준이면 우리나라 전체 평균연봉 2610만원보다 무려 690만원이나 많다. 2006년 이전까지는 기준소득이 연 500만원이었지만 지나치게 낮아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부터 바뀐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또 감액된 금액대로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60세부터 받는 수급자보다 결국은 손해를 피할 길이 없다. 실제로 55만원의 연금을 받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완전연금 수급자보다 2300여만원을 덜 받게 된다. 당장의 경제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공적연금연계팀 관계자는 “전문가들도 소득인정액을 낮춰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면서 “소득인정액 재설정에 따른 대상자 추이와 의견수렴을 통해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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