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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시의원은 옷 훔치다 들통나고

    경기 용인시 서부경찰서는 6일 용인시의회 A의원을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A의원은 지난 4일 오후 9시 40분쯤 용인시 아웃렛 의류매장에서 13만 9000원 상당의 재킷에 달린 레이스를 계산하지 않고 나온 혐의를 받고 있다. A의원은 폐쇄회로(CC) TV를 확인한 매장 측이 신고해 덜미를 잡혔다. A의원은 5일 오후 9시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그는 “한달 전 재킷을 이 매장에서 샀는데 세탁 중 레이스가 손상돼 고민하다가 매장을 찾아가 점원에게 ‘단골이니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또 “점원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보고 레이스를 가방에 넣었다.”며 “다음 날 카드사로부터 연락받고 매장을 찾아가 매장 주인과 직원들에게 분명히 가져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는데도 절도범으로 몰아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공직자로 사실관계를 떠나 물의를 빚은 데 대해서는 후회한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음악이 곧 내 삶… 공연 생각에 흥분”

    “음악이 곧 내 삶… 공연 생각에 흥분”

    그의 연주를 들었다면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표본’이란 평에 토를 달기가 쉽지 않을 터다. 나이 열일곱에 데뷔 음반으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1997)를 내놓더니, 2년 뒤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음반으로 프랑스 3대 음악상 가운데 하나인 디아파종상을 받았다. 2008년 쇤베르크·시벨리우스협주곡 음반은 발매 첫주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쇤베르크 곡으로 빌보드에 1위로 데뷔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래미는 벌써 두 번이나 품었다. 날카로운 곡 해석과 함께 야윈 뺨, 도드라진 콧날, 날렵한 턱선에 창백한 낯빛까지 더해 ‘얼음공주’란 별명이 붙었다.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CEO)와 협연하는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32)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질문에 따라 답변의 길이와 뉘앙스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때론 앨범 재킷의 냉랭한 표정이 떠오를 만큼 까칠했다. ‘얼음공주’란 별명에 대해 묻자 “그 별명은 꽤나 유치하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나 쓴다.”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음악과 한국 팬에 대한 애정을 전할 때는 자신의 유튜브 사이트(www.youtube.com/hilaryhahnvideos)에서 본 모습처럼 사랑스러웠다. 2008년 밴쿠버심포니와 협연 이후 3년 만에 내한하는 그는 “공연 생각에 벌써 흥분했다. 꼭 와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네 번째 생일을 한달 앞두고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정말 우연이다. 내가 살던 볼티모어의 동네에 ‘스즈키레슨’(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교육자 스즈키 신이치가 개발한 어린이 음악교수법) 간판을 내건 피바다음악원이 있었다. 이전까지 한번도 바이올린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쉽게 싫증을 내는데. -남달리 집중력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에도 접시에 남은 완두콩 한 개까지 남김없이 먹었다.(웃음) →1991년 볼티모어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메이저 데뷔를 했다. 긴장되지 않았나. -난 공연을 정말 사랑한다. 연습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다. →평생을 바이올린과 보낸 걸 후회한 적은 없나. 바이올린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단 하루도 없다. 음악이 곧 내 삶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시각적인 예술이나 창조적인 작업을 다루는 저널리스트가 됐을 것 같다. →당신의 완벽한 테크닉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건조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든 바라보는 관점은 제각각이다. 청중들도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이해한다. →한국에서는 3년 만인데.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더 자주 오고 싶다. 공연에서 연주할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5번은 열살 때 처음 배웠지만 21년 동안 (곡 해석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뽑아내려 애쓴다. →공연을 놓치면 안 될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한국에 오려고 아주 오랜 시간 날아왔다. 여러분은 대문 밖으로 걸어나오기만 하면 된다(웃음). 꼭 함께해 달라. →쉴 땐 보통 뭘하나. -주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가을에 발표할 새 앨범 준비로 녹초라 쉬는 시간까지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가끔은 내 귀도 휴식이 필요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정치권은 당선무효 완화할 생각 접어라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이 또 당선무효 규정을 완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21명은 당선인과 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당선인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요건은 현재 100만원 이상의 벌금에서 300만원 이상의 벌금으로 완화된다. 선거사무장과 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 후보자의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기준은 300만원 이상의 벌금에서 700만원 이상의 벌금으로 조정된다.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당선무효 규정을 완화하려는 것 같다. 공직선거법이 이렇게 개악된다면 당선무효가 될 의원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달 전에는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54명이 직계 존·비속의 법 위반으로는 당선무효가 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인의 얼굴이 두꺼운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없다. 지난달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치자금을 쉽게 거둘 수 있도록 소위 청목회 면죄부법도 슬쩍 통과시키는 등 정치권의 부도덕한 행태는 끝이 없다. 국회의원들이 뭘 잘한 게 있다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뭘 제대로 한 게 있다고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는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려고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할 의원들이, 산적한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의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위해 혈안이 된 것처럼 보여 안타깝고 측은하다. 국민은 안중(眼中)에도 없다는 것 아닌가. 정치권은 당선무효 요건을 완화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 정치인이 자성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매운맛을 보여 줘야 한다. 유권자들은 부도덕하거나 함량미달의 정치인을 가려내,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 출신지역 등 이런저런 인연에 얽매여 투표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의원을 뽑는 것은 유권자에게 달려 있다. 수준 미달의 의원을 뽑고 난 뒤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⑤서울 상계동 ‘희망촌’의 희망가

    [독거노인 사랑잇기]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⑤서울 상계동 ‘희망촌’의 희망가

    “그나마 움직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지난 1일 서울 상계동 산 161 덕흥로 ‘희망촌’의 비탈길에서 만난 남춘단(72)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맞았다.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근처 불암산 자락의 꼬부랑길. 99개 계단을 오르고 연탄재 무더기를 지나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10여분 걸어 동네에 이르렀다. 다시 한 사람 비켜설까 말까 한 골목을 50여m 지나자 작은 철제 대문을 열며 남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언제 내걸었는지도 아득한 나무 문패에 희미하게 적힌 ‘반상회 장소, 4통장’이라는 글이 버거운 세월을 말했다. 2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자리를 내주며 할머니는 “추위가 물러났으니 우리처럼 사는 사람들에겐 다행”이라고 했다. 갖가지 가재도구가 널려 있어서 방은 더 비좁았다. 이웃들은 남 할머니를 ‘수진 할머니’라고 부른다. 몇 해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가출한 손녀의 이름이 수진이다. 한 동네 아주머니는 “파지나 빈병 모으기도 건강할 때 하지, 수진 할머니는 그런 일도 못 한다.”며 혀를 찼다. 옆집 할머니는 “집안에 좀 산다는 친척도 있다고 들었는데, 스스로 연락을 끊고 지낸다.”면서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친척들 눈치를 보느니 혼자서 사는 게 낫다며 고집을 부린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남 할머니는 1998년부터 정부에서 주는 한달 생계주거비 33만 2100원과 기초노령연금 9만원을 합쳐 월 42만 2100원으로 생활한다. 동대문 쪽 청계천에서 살다가 1968년 판자촌 철거와 함께 희망촌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고 한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함께 과일장사를 하며 그럭저럭 살았는데, 1995년 사별한 뒤부터는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 가족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당뇨와 천식, 폐결핵을 앓는데, 병원에 갈 땐 담벼락을 손으로 짚어가며 간다고 했다. 희망촌에서는 남 할머니처럼 혼자 힘겹게 사는 노인들이 서로의 이웃이다. 사회복지사 황철순(45)씨는 “복지 서비스를 홀몸노인들에게 권해도 무작정 거절하는 바람에 난감한 경우가 적잖다.”고 했다. 얼마 전 68세의 나이에 별세한 함모 할머니는 20대에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줄곧 혼자 살다가 쓸쓸히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젊어서는 공장에서, 이후에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 위궤양과 관절염, 지방간 등으로 숱하게 고생만 하다가 갔다고 했다. 함 할머니가 2006년 11월 결장암 선고를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안 황씨가 지난해 초부터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라고 설득했지만, 함 할머니는 “아직 짱짱한데 병원에서 밥만 축내며 지낼 순 없다.”며 고집을 부렸단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며 황씨가 그해 9월 겨우 설득한 끝에 함 할머니는 입원했지만 넉달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황씨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던 모습을 지금껏 잊지 못한다.”면서 “몸이 불편한데도 아들 대하듯 반갑게 맞아 주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이경미 주민지원팀장은 “처음 발령을 받아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렇게 지내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복지사 황씨는 “16년째 홀몸노인들을 돌보고 있는데 쓸쓸히 돌아가신 분들만 유독 기억에 남는다.”면서 “평소에 더 마음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탓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는 본청 공무원 자리 37개를 줄여 19개 주민자치센터에 사회복지 인력을 1~2명씩 늘렸다. 또 자치센터 업무도 조정해 19명을 복지 담당으로 돌렸다. 희망촌 할머니들처럼 가장 취약한 계층을 만나는 ‘체감 복지’를 위해서다. 사회복지사는 동마다 2~7명 배치돼 있지만 현장 업무가 아니라 각종 행정 서류를 처리하느라 더 바쁜 실정이다. 황씨는 “소외 계층, 특히 홀몸노인들에게는 금전적인 지원 못지않게 꾸준한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골목골목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단위별 복지협의체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꽃그림 그리면서, 그러니까 참…. 이발소 그림 그리냐는 소리도 듣고, 팔리는 그림만그리느냐, 타락했냐는 소리도 듣고. 참 많은 지청구를 들었죠. 허허. 그런데 이렇게 미술관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시회도 열어주고…. 감개무량하고, 인생 막판에 대단한 영광입니다.” 설악산에 은거하면서 화려한 설악의 자연을 담아내 ‘설악 화가’라 불리는 김종학(74) 회고전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상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생존작가의 회고전이라 국립미술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가장 눈에 띄는 건 뭐니뭐니해도 미술관이 들인 공력이다. 꽃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그래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꽃그림보다 대작 풍경화 위주로 전시작을 골랐다. 그것도 개인 컬렉터, 갤러리 등 30여곳을 발품 팔며 돌아 대표작 70여점을 ‘모셨다’. 1970년대까지의 김 화백 초기 작품들도 함께 전시했다. ●1970년대 초기작 포함 70여점 전시 덕분에 김 화백이 초기 앵포르맬(Informel·비정형) 화법에서 설악산 풍경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 또 화풍은 바뀌었더라도 초기 화법이 어떻게 변형되고 유지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붓을 쓰기보다 튜브째 짜서 캔버스에 바로 바르는 화법이다. 김 화백 표현을 빌자면 “구멍별로 달리한 채색법”이다. 가령 녹색이 필요할 경우 녹색 물감 튜브에다 각기 다른 사이즈로 구멍을 뚫는다. 크게 낸 구멍으로 라인을 그리고 작게 낸 순서대로 채색한다. ●물감 튜브 구멍별 채색… 독특한 화법 물감을 뒤섞는 경우에도 팔레트를 쓰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바로 물감을 바른 뒤 자연스레 물감들끼리 뒤섞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물감을 더덕더덕 붙여둔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두는 서양화 기법이다. 여기에다 유난히 클로즈업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다. “흔히 동양적 풍경 하면 여백과 관조를 강조하는데 제 그림은 꽉 들어찬 그림들이에요. 꽃을 그렸지만, 추상적 구상을 쓴 거지요.” 김 화백은 처음엔 욕 좀 먹었다. 출발점이 서구적 실험 화법이었기에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는 ‘변절’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정말 답답했어요. 무슨 주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도망간 게 설악산이에요. 1979년이었지요.” 꽃그림을 그린 이유와도 상통한다. “처음 설악산에 들어간 게 늦가을이었는데 참 애잔하더군요. 그 다음 해 봄에 꽃들이 막 올라오는데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꽃 같은 건 쳐다본 적도 없거든요.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었는데 꽃들을 그리면서 서서히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남들이 뭐래도 이 그림들을 꼭 그리고야 말겠다 싶더군요.” 이런 심정이 묻어나는 편지 한통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1987년 자식들에게 쓴 편지다. “설악의 밤하늘을 보며 백장의 좋은 그림을 남기고 죽자고 맹세했지.” ●“무슨 주의·이념 떠나 설악산으로 도망”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식도 있다. 1979년 이래 유지해오던 설악산 작업실에 최근 도둑이 들었단다. 약간이 아닌,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 작품을 훔쳐가봤자 어디에 처분하기도 힘들 텐데 몇몇 작품들을 도둑맞았단다. 그래서 설악산 작업실을 완전히 정리하고 서울 부암동 작업실로 짐을 모두 옮길 예정이다. 서울로 이사 오면 조금 작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이번 전시작품들은 웬만하면 가로 3m다. “제가 대작 체질이에요. 뭘 그려도 크게 그려야 속이 시원하더군요. 허허허. 막상 그릴 때는 힘들기도 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고 그랬어요. 이제 힘도 떨어지고 했으니 자그만 거 그리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전시된 걸 보니까 더 크게 그리지 못한 게 안타깝네요. 허허허.” 6월 26일까지. 3000원. (02)2188-622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글로벌 시대] 환경위기에서 보는 중·미 협력의 미래/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환경위기에서 보는 중·미 협력의 미래/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위기는 국경을 넘어선 환경문제의 엄중성을 다시 일깨운다. 농산물과 수돗물 오염 확산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도 후쿠시마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면서 지구촌은 화들짝 놀랐다. 방사능 위기가 아니더라도 각종 환경재앙에 지구촌은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 문제는 일상의 삶과 생존에 직결되는 현안이 됐다. 이런 가운데 개별국가들은 국제적인 환경 안전과 환경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국제적 경쟁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국가 간 상호의존도 커졌고 국제 간 협력이 더 필요해졌지만, 이해가 커지면서 그만큼 환경문제를 둘러싼 개별국가들 간의 합종연횡은 더 복잡해졌다. 환경문제는 점차 ‘국제 이익분배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각각의 진영으로 갈라놓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 갈등의 중심에 중국과 미국이 서 있다. 초강대국 미국과 덩치 큰 개발도상국 중국은 국제체제에서 지위와 시각 차가 현격하다. 두 나라는 환경외교의 원칙과 목표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전 지구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의 절반가량을 뿜어내고 있는 두 나라는 때로는 날카롭게 대립한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미국은 공격의 칼날을 중국에 겨눴다. 미국은 “중국의 탄소배출량은 계속 가파르게 늘고 있고, 중국의 과감한 실천 없이는 국제사회의 배출량 삭감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며 압박했다. 미국은 2010년 11월 칸쿤 회의에서도 “중국 등 신흥경제대국들이 배출량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환경문제의 진전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면 중국은 선진국들이 지난 여러 세기 동안의 산업화를 통해 발생시킨 지구촌 오염에 대해 보다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본다. 또 “개별 국가들이 환경문제에 있어서 공통의 책임은 져야 하지만 그 책임은 똑같을 수 없고 ‘차등적인 책임’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소재, 환경기술 및 환경자본의 공유에 대해서도 두 나라의 입장 차는 뚜렷하다. 중국은 환경보호 문제가 경제 개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경계하지만, 미국은 국익의 극대화를 위해 환경 문제를 정치화하면서 기득권 보장에 활용하고 있다.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두 나라의 환경협력은 국교정상화 다음해인 1980년부터 시작돼 연륜을 더하고 있다. 중국은 대기 및 수질오염 관리 등에서 미국의 앞선 경험을 배웠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 시절 환경보호 문제는 양국 수뇌의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가 됐으며 관계 발전의 추진력이 됐다.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환경문제는 고위 전략대화에 포함됐고, 2007년 3차 전략경제대화(SED) 때 두 나라는 ‘향후 10년 동안 클린에너지 개발 등 자원의 지속 사용과 기후변화 대처 기술 개발 합의’를 이끌어냈다. 2008년 4차 SED 때는 클린 교통 및 대기 기술, 습지보호 등 5개 분야 분과를 설치하고 실천에 옮겼다. 2009년 5차 SED 때는 에너지 효율 목표를 설정하고, ‘중·미 에너지 10년 협력의 틀과 녹색협력파트너 계획’에 합의했다. 또 연구소, 대학, 각급 정부 간 협력과 공동 연구의 촉진 방안도 마련했다. 지난 1월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 방문에 때맞춰 두 나라의 여러 기업들은 각종 신에너지개발 협력사업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신에너지 개발 및 환경협력의 중요성에도 공감하고 이를 발전시키자고 합의했다. 클린에너지공동연구소, 재생에너지파트너십, 에너지안전협력 등에 대한 여러 프로젝트들도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물론 두 나라가 환경협력에서 ‘한 배를 탔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략적 상호신뢰, 협력시스템의 제도화, 환경문제와 주권 불침범 원칙의 확립 등 두 나라가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차이와 갈등 속에서도 최근의 노력들은 미래의 희망을 느끼게 한다.
  • [대재앙 후 일본을 말한다] “日, 이전 경제대국과 다른모습 될 것”

    [대재앙 후 일본을 말한다] “日, 이전 경제대국과 다른모습 될 것”

    정신과 의사이자 문필가로 일본 사회의 집단적 정신상태에 대해 진단, 처방해 온 가야마 리카 릿쿄대 교수는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한동안 불황에 빠지고 국제사회의 신용도 낮아지겠지만 본래의 속도를 찾는다면 재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가야마 교수는 일본의 부흥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전 같은 경제대국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월간지 문예춘추 4월호에서 일본을 ‘우울병에 걸린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동일본 대지진 전이었는데, 어떤 뜻에서 그렇게 본 것인가. -장기간 지속된 불황,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여겨져 온 ‘고학력’,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들을 일본인들이 하나둘 버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봤다.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그런 가운데 경쟁이나 성장만을 강요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이 마음의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일본’에 대한 처방전은 무엇이었는가. -먼저 우울증 상태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더욱더 매진하고 분투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아예 여유를 갖고, 인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회를 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쉰다면 더욱더 국제사회에서 뒤처진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런 상태로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과 조직이 다 타버리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자체가 파탄날 위험성이 있다. →우울증에 걸려 있는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번의 대재해는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을 싫든 좋든 다시 되돌아 보고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대지진 이전보다 더 큰 불황에 빠질 수 있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국제적인 신용도 저하할지 모른다. →대재해 이후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하는가. -대지진으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본래의 속도, 페이스’를 생각하고 찾아낼 수만 있다면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일본은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고도성장기에 일본이 달성한 ‘경제대국’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어제 재해지역인 센다이를 돌아보고 왔는데, 어떻게 느꼈나. -재해지역에서 피난민들의 정신적 구호를 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현장을 둘러봤는데 쓰나미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생활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번 같은 대재해를 겪으면 인간은 어떤 정신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하는 망연자실한 상태가 한동안 계속된다. 슬픔이나 의기소침이 나타나는 것은 그 뒤이다. 너무나도 막대한 피해에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라고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신적 방위본능 혹은 기제가 작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참담한 경험을 어떻게 헤치고 이겨내야 하나. -우선은 마음의 치유보다는 내 몸의 안전과 안심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마음을 이재민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누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그것을 이재민들에게 계속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우울증에 걸린 나라’는 문예춘추 4월호에 실린 가야마 리카 교수의 칼럼 제목이다. 가야마 교수는 무엇이든 비관적이고 후회, 향수 등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 그리고 ‘타인의 행동’을 피해망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우울증이 개인 차원이 아닌 일본이란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우 타인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우울증에 걸린 일본은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정부 민주화 시위 등에도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울증에 대해 개인이라면 “먼저 일을 2개월 정도 쉬라.”는 처방전을 낸다. 그것이 국가일 경우 “일본도 국민 모두가 수개월의 요양기간을 갖고 외교도 중단시키는 ‘쇄국’을 하자.”는 제언을 한다. 그래서 “국내의 신뢰관계를 되찾은 뒤 다시 한번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야마 리카 교수는 1960년 홋카이도 출생. 도쿄 의과대학 출신으로 학생 시절부터 잡지 등에 기고를 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을 살려 사회, 문화 비평을 하고 있다. 현대인의 ‘마음의 병’에 대해 관심이 깊다. 최근에 출판한 ‘살고 있는 것만으로 좋습니다’ 등 100권 이상의 저서를 갖고 있을 정도로 왕성한 문필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보여 준 응원 모습에 대해 “편협한 소(小) 내셔널리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
  •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노래 하나 감상해본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한운사 작사, 황문평 작곡의 ‘빨간 마후라’다. 얼핏 짧고 단순한 노래 같지만 대한민국 공군 출신들에게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추억의 되새김질을 하게 하는 노래다. 또한 40~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다가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과 시원한 활주로, 빨간 머플러가 컬러 필름으로 표현돼 관객을 압도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에서만 25만 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됐으며 주연으로 나온 신영균(83)씨는 당시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 스타가 누구냐고 했을 때 영화계에선 신씨를 거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런 추억을 담은 ‘빨간 마후라’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고 유치곤 장군의 호국기념관에 노래비로 세워져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원로 영화배우 신씨가 2010년 10월 출연한 재산으로 출범한 재단법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이 현판식과 함께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2011년도 상반기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첫 장학금 전달 영화인 총연합회 회원단체와 영화인회의 등 8개 영화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인 자녀 이동규(서원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 임원룡(서울대 경영학부 4학년)군 등 대학생 10명과 홍민호(경복고 3학년), 정원(동두천외국어고 1학년)군 등 고교생 9명에게 총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들 장학생 중에는 영화배우 허기호(허장강씨의 장남)씨의 아들 허진우(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1학년)군도 포함됐다. 이 자리에서 신씨는 명보시네마테크 운영, 신영균연기예술상 제정과 함께 영화 인재 발굴 사업으로 청소년 영화제 ‘필름 게이트’와 방학 시즌 어린이 영화 체험 교실인 ‘꿈나무 필름 아트 캠프’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올 연말에는 제1회 신영균영화연기대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빨간 마후라’와 ‘5인의 해병’ 등으로 일찍부터 원조 한류스타의 명성을 얻은 신씨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는 등 국내 영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열정과 의욕을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명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신씨를 만났다. 때마침 김두호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도 함께 있어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검은색 양복에다 빨간 넥타이 차림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40대로 보인다.”고 인사를 하자 “에구 뭘, 마음이 젊어서 그런가.”라며 파안대소했다. 그래서 건강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운동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가끔 골프 라운딩도 하고 헬스클럽에는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나가지요. 나이 먹어서는 근육 운동을 자주 해야 돼요. 골격이 튼튼해지니까.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합니다.” ●294편 영화 거의 다 기억… 팔순의 나이 무색 신씨는 웃음이 호탕하다. 생각을 젊게 하고 행동 또한 그러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억력 또한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 조긍하 감독의 ‘과부’로 데뷔한 이후 1978년 ‘화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출연한 294편의 영화를 거의 줄줄 꿰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에 출연한 동료 배우 최무룡씨를 비롯해 ‘5인의 해병’에 등장하는 황해·곽규석·박노식씨 등에 대한 추억도 또렷하게 떠올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아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특별하다. 신씨는 알다시피 지난해 10월 자신의 사재 대부분을 털어 장학사업에 쓰겠다고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 후회는 한번도 없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사업)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들의 작업 환경이 아직도 열악합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재능 있는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보탬이 된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대를 잇는 훌륭한 연기자들을 잠시 떠올린다. 1955년 ‘피아골’로 데뷔한 고 이예춘씨의 아들 이덕화와 손녀 이지현, 고 김승호씨의 아들 김희라와 손자 김기주, 오발탄의 명배우 고 김진규씨의 아들 김성준, 고 황해씨의 아들 전영록, 고 독고성씨의 아들 독고영재와 손자 독고준, 고 박노식씨의 아들 박준규 등. ●치과의사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꿈 간직 신씨 자신도 가난과 배고픔을 몸소 겪었기에 연기에 자질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춘극단’에서 2년 동안 연기를 하다가 생활의 비참함을 벗어나고자 좀 더 안정적인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해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업했으나 도저히 끼를 못 버려 2년 뒤 황순원 원작 ‘과부’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연극을 했는데 생활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치과의사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데뷔작 ‘과부’에서 처음 주연으로 발탁될 당시를 회고한 그는 “배역도 좋고 작품도 좋았는데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많이 고민했지만 순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이후 신씨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스타의 길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빨간 마후라’ ‘5인의 해병’ 같은 군사물은 물론이고 ‘연산군’에서는 폭군,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멜로물의 주인공,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는 종교인으로 등장하며 타고난 끼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18년 동안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그의 열정과 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다면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릴 때 왜 배우를 그만두게 됐을까. “당시 군사정권이었죠. 검열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권총을 쏘는 장면도 ‘왜 이 각도에서 총을 쏴야 하느냐’ 등의 이유로 가위질을 많이 당했지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매력도 없어지고 편수도 줄고, 관객 또한 마찬가지로 흥미를 잃게 됩니다.” ●군사정권시절 검열 심해 배우 생활 그만둬 배우를 그만둔 이후에는 제주도에서 영화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다. 그가 제주도와 인연이 된 것은 영화 ‘마적’(신상옥 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1967년 제주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신씨는 드넓은 초원에서 영화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1999년 제주 남원읍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신씨가 부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부를 일궜을까. “제 인생의 특징을 말한다면 실패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 또 무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인격적으로는 겸손하자고 늘 생각했어요.” 신씨는 배우 시절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늘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서 1960년대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에 동시 상영을 하는 ‘금호극장’을 지었다. 영화는 많으나 극장이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발동이 걸렸던 것. 이후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다. 이때 부인 김선희 여사가 팔을 걷어붙여 직접 빵을 굽고 장사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당시 명보제과는 뉴욕제과와 태극당, 풍년제과 등과 함께 4대 제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던 1977년 8월 명보극장을 인수하게 된다. 이후 ‘지옥의 묵시록’과 ‘빠삐용’ 등의 외국 영화와 ‘내가 버린 여자’(이문웅 감독),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미워도 다시 한번’(변장호 감독) 등의 한국 영화가 잇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지난해 기부 대상을 ‘명보극장’으로 정한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극장 소유는 영화인들의 꿈이었고 이제는 그 꿈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진다는 철학도 포함됐다. 신씨는 지금도 꿈을 꾼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에 출연해 멋진 연기로 영화배우로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단다. 이를 위한 구상이 현재 기획 단계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의 취미는 나무 심기다. 신영영화박물관 옆에 많은 나무들을 심었단다. 서른두살에 영화 나무를 처음 심은 이후 지금도 꾸준히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팔순 나이에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서 또 한번 영원히 자라는 나무를 심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신영균은 치과의사 → 배우 → 국회의원…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1928년 황해도 평산의 산 속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 일찍 서울로 월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교회 연극을 통해 연기를 접한 뒤 줄곧 배우를 꿈꿨다. 한성고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청춘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극단 배우로 생계 유지가 힘들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 치의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활동했고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하다 1960년 32살의 나이에 영화 ‘과부’로 데뷔했다. 이어 1961년 ‘마부’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고, 1962년에는 ‘연산군’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데뷔 2년 만에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출연작 중 단연 압권은 ‘빨간 마후라’(1964)이다. 이 영화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원조 한류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심해지면서 영화계가 침체됐고 1978년 ‘화조’를 끝으로 배우 활동을 접었다. 이후 명보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고 15,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9년 제주도에 영화박물관을 지었으며 지난해에는 사재 500억원을 선뜻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현판식을 가지면서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열녀문(1963), 쌀(1963), 달기(1964), 시장(1966), 천하장사 임꺽정(1968), 대원군(1968),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있으며 18년 동안 모두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MBC ‘나는 가수다’ 4월 한달간 결방

    MBC ‘나는 가수다’ 4월 한달간 결방

    가수 김건모의 재도전과 담당 피디의 교체 등 논란을 빚고 있는 MBC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4월 한달 동안 결방할 것으로 보인다. MBC 관계자는 24일 “새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재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5월 초쯤 새 방송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사이 태국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를 방송하고 다른 특집으로 방송을 꾸밀 것”이라면서 “‘한류 콘서트’는 원래 방송이 예정됐던 만큼 실제 ‘나는 가수다’가 결방하는 기간은 1~2주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MBC는 27일에는 ‘나는 가수다’ 특집을 2시간 45분간 방송하고 또 다른 코너 ‘신입사원’은 결방하기로 했다. 이번 주 방송에서는 지난 2주간 녹화한 2회 분량이 전파를 타며 두 번째 7위 득표자도 공개될 예정이다. MBC는 또한 ‘놀러와’의 신정수 피디를 전날 경질된 김영희 피디의 후임으로 발표했다. 1995년 입사한 신 피디는 2008년부터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 연출을 맡아 ‘세시봉 친구들’ 특집과 ‘세시봉 콘서트’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 피디는 “통보를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업무를 파악 중”이라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출자 김영희 피디의 사퇴에 이어 가수 김건모가 스스로 물러나면서 한때 프로그램 폐지설이 나돌았던 ‘나는 가수다’는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나는 가수다’의 제작진은 지난 20일 방송에서 탈락자로 지목된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줘 논란을 자초했다. 누리꾼 및 언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MBC 측은 23일 김영희 피디를 사퇴시키는 등 초강수를 띄웠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가수가 탈락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피디가 탈락하는 것이었나 보다.” “‘나는 가수다’가 아닌 ‘나는 피디다’로 프로그램 이름을 바꿔라.” 등 야유를 보냈다. 김 피디의 사퇴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자 김건모는 23일 밤 서울 방배동 미디어라인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스스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김건모는 “김 피디의 교체 소식을 듣고 많이 고민했다.”면서 “내가 사사로이 재도전이란 걸 하면서 일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어 “소속사와 상의한 결과 나의 재도전으로 피디까지 교체됐으니 이쯤에서 출연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출연 가수들과의 단체 행동이 아닌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재도전 제안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당시 재도전을 놓고 갈등을 많이 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주는 교훈/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옴부즈맨 칼럼]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주는 교훈/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지난 일요일 저녁, 모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충격과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었다. 사실 모처럼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는 생각에 방송을 보면서 약간의 흥분도 일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답게 요즘 보기 드물게 가창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가수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와 기대는 한주의 피로까지 말끔히 풀어주는 듯했다. 그동안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신인들을 대상으로 한 발굴을 목적으로 했다면, ‘나는 가수다’는 진짜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여 경쟁하는 프로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합이 진행되고 무엇보다 청중들이 평가단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공정사회가 화두인 작금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여 연출 PD와 방송사의 기획력이 새삼 돋보였다. 그러나 결말에 제작진과 참가자들에 의해 정해진 규칙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졸속으로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영되는 걸 보면서 차라리 방송을 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500명 평가단의 심사결과가 너무도 쉽게 무시당한 채 탈락이 결정된 참가 가수가 가장 선배이고 과거 경력이 화려했다는 이유로 재도전이 결정되는 과정은 이 시대 불공정 사례의 한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숨은 인재들이 부상하는 과정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우리에게 희열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이 시대 최고의 프로 가수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청중 평가단을 한순간 바보로 만들고 전국의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장면은 정말로 실망스러웠고, 이를 기획한 방송사에 대한 신뢰도 추락이 가져다줄 후유증에 속이 상했다. 요즘 우리 신문은 1면부터 7~8면, 더러 10면에까지 일본 대지진 뉴스로 도배하고 있다. 때로는 자극적인 기사도 있고,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일본 지진 뉴스가 열흘이 넘도록 주요 기사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 많은 일본 관련 기사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일본 국민의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높은 신뢰도에 기초한 침착하고 이성적인 대응 자세이다. 어릴 때부터 지진에 대한 대비와 훈련이 몸에 밴 탓이라고 해도 일본국민의 태도에 새삼 감탄하고 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우리나라가 그와 같은 상황에 부닥쳤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청와대, 국회, 국정원, 검찰, 경찰 등 정부와 각종 공공기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명백한 근거자료와 증거에도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직업병일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4월 보궐선거 후보 공천 관련 소란이 연상되었다. 각 정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과정을 통해 후보를 선정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실제로는 정당 지도부와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선정하려고 너무도 쉽게 규칙을 바꾸는 건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국민이 참여한 경선과정을 통해 후보가 결정되어도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의 청중 평가단이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에 무시당하고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유권자의 의사와 상관없는 후보가 결정되는 건 아닐는지. 그래서 유권자들은 바보가 되고 국민은 또다시 정치에 실망하여 등을 돌리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과 개인은 물론 정부, 국회, 언론 등 공적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 회복이다. 가끔은 우리에게 애초 신뢰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는 불신의 풍조 속에 사는 것 같다. 대통령의 약속도, 정치지도자의 공약도, 심지어 종교지도자의 말조차 믿지 못하는 극도의 불신 사회를 지난 주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우울하고 슬프다.
  • 통영 국제음악제는 ‘전환’을 꿈꾼다

    통영 국제음악제는 ‘전환’을 꿈꾼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 하지만 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짠내마저 포근한 남쪽 항구의 봄은 클래식과 함께 온다. 통영이 배출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올해도 변함없이 26일부터 새달 1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10돌을 맞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주제는 ‘전환’(Moving Dimension)이다. 첫 외국인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알렉산더 리프라이히(43·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의 선택이다. 윤이상 선생의 1971년 작 ‘Dimensionen’(차원)에서 착안한 것으로 감각적이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음악제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다른 변화는 레지던스(상주) 제도다. 올해의 레지던스 작곡가로는 각각 동·서양을 대표하는 진은숙과 하이너 괴벨스가, 레지던스 아티스트로는 소프라노 서예리와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가 선정됐다. 이들은 1회 공연으로 끝을 내는 게 아니라 독주·협연·앙상블·심포지엄 등 축제 기간 내내 통영에서 먹고 자면서 관객과 소통한다. 축제의 서막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서예리가 연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과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의 협연(27일), 영국 아카펠라 중창단 힐리어드 앙상블(29일), 호주 퍼커션 그룹 시너지 퍼커션(27일), 독일 현악 4중주단 쿠스 콰르텟(31일)의 연주도 놓치면 후회할 터.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독일 출신 작곡가이자 연출가 괴벨스의 음악극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31일·4월 1일)도 눈길을 끈다. 폐막공연은 세계적인 베이스 바리톤 연광철과 TIMF 앙상블이 책임진다. (02)3474-8315.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死地로의 출근…가족을 뒤로 한 채 그들은 그렇게 떠났다

    死地로의 출근…가족을 뒤로 한 채 그들은 그렇게 떠났다

    “나는 일본을 구하러 간다.” 18세부터 원자력회사인 주부전력에서 근무하고 있는 A(59)는 정년을 불과 6개월 남긴 채 후쿠시마 원전이 긴급 요청한 특별 지원팀에 자원했다. 지난 15일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이 말만 툭 남겼다. 딸(27)은 “가지 마세요.”라며 여러 번 아버지의 소매를 붙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당시 자신처럼 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자원자들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당시 구조대원 28명은 방사능에 노출돼 3개월 만에 숨졌고, 그 뒤로도 19명이 방사능에 의한 피부 손상과 이에 따른 감염으로 사망했다. 백혈병과 혈액암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후쿠시마행을 선택했다. 딸은 “아버지는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않으셨다. 만약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 스스로 정한 것이라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며 무사 귀환을 당부했다. 딸은 “집에서는 별로 말도 안 하고 미덥지 못 할 때도 있었던 아버지가 지금은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58)은 “남편은 18세부터 지금까지 원전에 종사해 왔다. 가장 안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지원을) 결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누른 채 떠나는 남편의 등에 대고 “현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게 열심히 하고 오세요.”라는 말을 던졌다. 남편은 씩 웃었다. 그러곤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일본 열도가 패닉에 빠져 있는 가운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사고 처리 작업에 나서고 있는 사수 대원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막기 위해 비공식으로 원전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가며 자원자 모집에 나섰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자칫하면 사지가 될 수도 있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일이라 내놓고 모집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둘 자원자가 모여 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A를 포함해 20명의 외인부대가 특별지원팀이라는 이름으로 꾸려졌다. 이들 말고도 도쿄전력 내부에서 230명의 지원자가 새로 나왔다. 이들은 곧바로 도쿄전력 800여명의 근로자 가운데 자원자로 현장에 남아 있던 70명과 함께 320명의 원전 사수대를 꾸렸다. 사수대는 저마다 전쟁터로 나가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사수대의 굳은 결의가 공개되면 칠레 광산에서 34명의 광부가 사투를 벌인 것처럼 영화로 제작될 가능성도 있을 만큼 감동적이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한 자원자는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설명에 묵묵히 “그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이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맡고 있는 곳은 후쿠시마 원전 1~3호기다. 이들 주변에는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줄 정도의 방사선량이 검출되고 있다. 3호기 서쪽에서는 15일 1시간당 방사선량이 연간 방사선 피폭 한도량의 400배에 상당하는 400m㏜(밀리시버트)로 계측됐다. 17일에도 이 수치는 줄어들지 않았다. 심각한 방사선 누출이 염려되는 4호기는 너무 위험해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모니터로 감시할 수밖에 없다. 지난 16일 방사선 수치가 갑자기 정상치의 6000배를 넘으면서 일시 철수했던 이들은 늦은 밤 다시 투입됐다. 도쿄대 병원 교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마치 전쟁에서의 자살부대와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팀으로 나누어 10~15분 동안 원자로에 해수를 번갈아가며 투입하고 있다. 그 이상의 시간은 방사선 노출로 인한 피폭 피해가 허용치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압력 완화 밸브를 여닫고 냉각수를 투입하는 일도 이들의 역할이다. 도쿄전력 측은 “이들이 있는 발전소의 방사선 수치는 600m㏜에 이른다.”면서 “이것은 몇 년 동안의 최대 피폭 수치와 맞먹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정부, 채권발행·토지매각 6조 조달

    정부, 채권발행·토지매각 6조 조달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흑자도산을 막기 위해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섰다. LH는 125조원의 부채(2010년 기준)보다 많은 130조원의 자산(2009년 기준)을 지녔다. 이에 채권 발행과 자산 매각 등이 차질을 빚으며 올해에만 6조원 규모의 자금 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6일 당정협의를 거쳐 채권 발행에 초점을 맞춘 ‘LH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정부 지원안’을 발표했다. 크게 채권 발행으로 3조원, 토지매각으로 3조원 등 6조원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정창수 국토부 1차관은 “정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기보다 신용보강, 사업구조개선, 자구노력 등으로 정상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재확인했다. ●LH 대 외 신용도 강화 정책 우선 LH의 손실을 직접 보전해 주는 대상사업에 세종시·혁신도시와 임대주택 운영 등을 포함했다. 기존에는 보금자리주택사업과 산업단지 건설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또 LH가 주식으로 출자 전환을 요구해온 30조원 규모의 국민주택기금 융자금을 채무 변제 순위가 낮은 후순위채로 전환하고, 기금의 여유자금으로 연간 5000억원씩 LH채권을 직접 인수하기로 했다. 이는 모두 LH의 대외 신용도를 보강해 채권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 차관은 “매년 일정 수준의 이익을 내는 LH가 당기순손실로 돌아서 정부가 직접 손실을 보전해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손실 보전 범위를 확대했을 따름”이라고 밝혔다. ●택지개발부터 공공·민간 법인허용 아울러 정부는 강남권 보금자리주택 분양에서 발생하는 분양대금 채권을 기초로 1조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계획도 밝혔다.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LH의 미매각 토지를 선별적으로 위탁판매하는 안도 추진된다. 미매각 자산의 대금 회수 촉진을 위해 별도의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 27조원대 재고자산의 일부를 이전한 뒤 SPV의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기 회수하는 안도 제시됐다. 또 국민임대주택 건설 시 주택기금 융자금의 거치기간을 현행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키로 했다. 재무여건 개선을 위해선 ‘선투자·후회수’ 방식의 사업 구조 개선이 강조됐다. 보금자리사업에 민간 참여를 추진, 초기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택지개발부터 공공·민간 공동법인의 설립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근본책 아닌 미봉책 지적도 하지만 이 같은 지원안은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근본적인 재무구조 개선보다 정부의 간접적인 신용 보강을 통해 채권 발행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우선 급한 불은 끄겠지만 다시 유동성 부족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금자리특별법과 LH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다음 달부터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상반기 통과는 미지수다. 민간 자본의 참여도 불투명하다. 국책사업으로 빚더미에 앉은 LH에 여전히 자체적인 재원조달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정부의 낙관론은 더 큰 장애 요소다. 정 차관은 “LH의 재무구조가 언제 정상화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부동산 시장 여건 등 외생변수의 영향이 크다.”고 말해, 부동산 경기 회복에 따라 상황이 호전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만 드러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직접적인 재정지원은 아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임무 실패땐 수백만명 위험”… 70人, 원전과 최후의 사투

    칠흑 같은 어둠, 그들의 시선은 한줄기 손전등 빛을 따라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등에 진 산소탱크만큼이나 초침은 무겁게 그들을 짓누른다. 파손된 원자로에서 새어 나온 수소가스의 간헐적인 폭발음은 단 1초의 주저나 방심도 허용치 않는다. 방독마스크와 특수제작한 전신 작업복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하지만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방사성물질을 차단하기에는 이조차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6일 ‘방사능 쓰나미’의 진원지인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건물 내부에서는 70명의 원전 직원들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나갔다. 동료 직원 730여명은 안전을 위해 전날 이미 현장을 떠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성물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최후의 70명은 모두 자원한 직원들이다. 이들은 1분에 수백~수천ℓ의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들여 1~3호기 원자로를 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면적인 노심(心) 용해를 막기 위해서다. 작업 과정은 극도의 위험과 변수 투성이다. 원격제어 장치가 파괴돼 이들은 원자로의 뚜껑을 직접 손으로 열어야 한다. 또 급수 과정에서 내부 압력이 상승한 원자로가 붕괴될 수 있어 뚜껑을 열고 가스를 내보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스를 무작정 방출할 수만도 없다. 임무 실패는 곧 대재앙으로 직결된다. 수천t의 방사성물질이 후쿠시마 상공을 뒤덮고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적어도 일본인 수백만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일본 열도의 운명이 이번 사투의 승패에 달린 셈이다. 그렇다고 일본인 특유의 근성이나 불퇴전의 각오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원자로 주변에서는 일반인이 연간 노출되는 한계 피폭량의 400배에 이르는 시간당 400m㏜(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이 관측되고 있다. 15분 이상 작업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때문에 70명의 직원들은 조를 나누어 수분 단위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피폭량이 위험 수치에 도달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16일 오후에는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전원 철수하기도 했다. 이들의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자원자 가운데 28명은 방사능에 노출돼 3개월 만에 숨졌고, 적어도 19명이 방사능에 의한 피부 손상과 이에 따른 감염으로 사망했다. 백혈병과 혈액암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체르노빌 당시 자원자들이 사전에 위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25년이 지나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무엇이 이들 자원자 70명의 발길을 붙들었을까. 외신들은 어릴 때부터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해 온 일본의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70명의 자원자 중에는 정년을 6개월 앞둔 협력업체 직원도 포함돼 있다고 일본 현지 언론은 전했다. 40년 동안 원전 업무에 종사한 50대 후반의 이 남성은 “지금의 대응에 원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사명감을 갖고 간다.”며 15일 오전 집을 나섰다. 아내와 딸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면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그를 배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감독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

    “‘달빛 길어올리기’가 101번째 작품이 아니라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리면 좋겠다. 지난 100편의 작품에서 도망쳐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임권택(75) 감독이 3년 동안 공을 들인 ‘달빛 길어올리기’(17일 개봉)는 ‘축제’(1996) 이후 15년 만에 동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50년 감독 인생 최초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 촬영방식을 취했다. 촬영기간 내내 “이렇게 신기한 게 있었느냐.”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는 후문이다. 시대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는 노() 감독의 의지인 셈이다. ●취재·각본·촬영에 1년씩 임 감독은 “한지(韓紙)의 깊고 넓은 세계를 겁도 없이 영화화한다고 대든 게 경솔했다.”면서도 “후회하면서도 이런 깊은 세계를 한쪽이나마 영화로 담는 행운을 잡아 좋다.”고 말했다. “나 같은 나이 든 감독이라도 이런 영화를 해서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의 술자리에서 들은 한지 얘기에 솔깃해 3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임 감독이나 영화 속에서 1000년을 버틸 한지를 재현해 보려는 장인들의 ‘무모한’ 열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열정만큼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물다. 게다가 절정의 고수는 화려한 초식으로 현혹하지 않고도 상대를 무릎 꿇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불현듯 찾아온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118분이 너무 편안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임 감독의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일도 많다. 국내 ‘빅3’인 CJ,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최초로 공동 투자배급에 나선다. 거장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표현인 셈. 임 감독의 가족들도 얼굴을 드러냈다. 배우로 활동 중인 둘째 아들 권현상(본명 임동재)과 첫째 아들 임동준이 한지 장인을 맡은 안병경의 아들로 나온다. 대부분의 장면을 권현상이 소화했지만, 막판에 사정이 생겨 임동준이 마무리했다. 유망한 배우였지만 임 감독과 결혼한 이후 내조에 전념해 온 채령은 지공예 공방 주인으로 깜짝 출연한다. ●7급 공무원과 아내, 그리고 다큐 PD 만년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은 전주시청 한지과로 발령이 난다. 시장의 역점사업인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을 담당하면서 “잘만 되면 6급도 되고, 5급 돼서 ‘관’(사무관)도 붙여볼 기회”란 생각에 마냥 즐겁다. 필용은 뇌경색을 앓는 아내 효경(예지원)의 병 시중도 하고 있다. 대대로 한지를 만드는 집에서 태어난 아내는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필용 부모에게 타박을 당했다. 설상가상 필용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 터. 날마다 밤샘 근무를 하면서 업무에 집중하던 필용은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지원(강수연)을 도와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했지만 어느새 이들의 거리는 좁혀진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한지와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이야기다. ‘한지의 본향’ 전주시와 전주국제영화제가 순제작비의 60%를 지원했다. 때문에 필용이 교재 삼아 보는 다큐멘터리나 다큐 PD인 지원의 작품(‘달빛 길어올리기’)은 물론 다양한 한지 공예품과 한지 전문가 인터뷰 등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몇 차례 나온다. 자칫 ‘한지의 세계화’라는 당위에 치우쳐 영화가 무거워질 법한데, 임 감독은 그 사이에 사람의 얘기를 촘촘하게 직조했다. 부부인 필용과 효경, 서로에게 끌리는 필용과 지원은 물론 경쟁자(?)인 효경과 지원까지 반복적으로 스치면서 미묘하게 마음을 연다. 특히 필용과 지원의 하룻밤은 외도라는 생각보다는 생활인이라면 한번쯤 겪을 수도 있는 에피소드처럼 그려진다. 임 감독은 “둘(필용과 지원) 사이의 감정은 일생을 살면서 피어나기도 했다가 잠자기도 했다가 큰 사고 없이 일상에 묻혀 지나가는 그런 것”이라면서 “그런 감정들이 파고들어 삶에 불편함을 주는 극적인 확대를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지원:한지는 물질보다는 영혼에 가까운 거 같아요. 옛 사람들은 백지를 흰 백(白)자가 아닌 백지(百紙)라고 썼대요. 손이 100번 가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뜻이죠.…효경씨는 한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효경:달빛은 소란하지 않고 고요해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에요.…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담담하고 조용해졌을 때 한지와 같은 달빛은 한가득 길어 올려질 거예요. 필용과 한지 장인들이 무주 구천동 첩첩산중에서 1000년을 버틸 종이를 재현하는 장면에서 지원과 효경이 주고받는 대사는 메시지와 여백을 동시에 담은 듯하다. 어쩌면 101편에 이르는 임 감독의 필모그래피(작품 연보)야말로 ‘달빛을 한가득 길어 올리려는’ 영화장인의 지난한 도전 과정일지도 모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임권택 감독의 주요 작품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 ‘아다다’(1987) ‘연산일기’(1987) ‘아제아제바라아제’(1989) ‘장군의 아들’(1990) ‘장군의 아들 2’(1991) ‘개벽’(1991) ‘장군의 아들 3’(1992)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창’(1997) ‘춘향뎐’(1999) ‘취화선’(2002) ‘하류인생’(2004) ‘천년학’(2007)
  • ‘오페라 베이스의 전설’ 새뮤얼 래미 첫 방한

    ‘오페라 베이스의 전설’ 새뮤얼 래미 첫 방한

    오페라에서 남자 가수에게 허락되는 스포트라이트는 대개 테너나 바리톤의 몫이다. 가장 낮은 음역인 베이스가 맡는 역할은 왕이나 제사장, 철학자, 나이 든 아버지 등이다. 드라마나 영화로 치면 조역이나 감초라는 얘기다.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이되, 주연의 화려한 조명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 자리. 그런데 다면적인 악마 캐릭터를 탁월하게 소화해 ‘전설’이 된 베이스가 있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삼은 구노의 ‘파우스트’,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등 수많은 오페라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역할만 400회가량 공연한 미국의 새뮤얼 래미(69)가 주인공이다. “그의 노래에서 오페라의 전설이 만들어진다.”(미국 뉴욕포스트)거나 “래미의 유일한 단점은 청중으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녹초가 돼 돌아가게 한다는 것”(뉴욕타임스)이란 평가처럼 지난 30여년간 래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16~20일 공연하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은 래미를 7일 공연장소인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났다. 그가 한국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몸짱에 ‘쿨’하기까지 젊은 시절 ‘오페라계의 섹스 심벌’이란 평가를 들을 만큼 ‘몸짱’이었던 풍모는 조금 퇴색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컬이 들어간 아름다운 백발에 따뜻한 미소, 단전 아래에서 끌어올린 듯한 중저음은 ‘미노년’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전날 입국한 래미는 “호텔 직원을 빼면 만난 사람이 없어 한국의 첫인상을 말하기 이르지만 친근한 느낌”이라면서 “너무 늦게 한국에 왔지만, 첫 공연이라 매우 흥분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해외공연에서 시차로 겪는 어려움은 젊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며 한국공연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래미가 이름 모를 작은 오페라단에서 처음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은 것은 1971년. 꼭 40년이 지났다. 래미는 “악마의 특성상 무거워지기 쉽지만, 굉장히 장난스러운 면도 있는 등 다층적인 캐릭터라는 게 이 역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래미는 메피스토펠레스뿐만 아니라 199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개막공연에서 오펜바흐의 ‘호프만이야기’에 나오는 4명의 악한 역을 모두 맡아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악마와의 데이트’(A Date with the Devil)라는 타이틀로 오페라 속 악마 캐릭터의 아리아 14곡을 부르는 레퍼토리로 전 세계 투어를 흥행시키기도 했다. 수십년 동안 ‘악마 전문 가수’로 살아오면서 내면의 악마성을 느껴본 적은 없을까. “글쎄, 지인들은 다르게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닌 것 같다.”면서 “실제 성격은 재치가 번득이는 ‘피가로’(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주인공)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무대 위에서는 악역이 훨씬 재미있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아고 역이 탐나 바리톤 갈구도” 어렸을 때는 팝 음악을 흥얼거리던 래미가 진지하게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캔자스주립대에 진학한 이후다. 대학에서 첫 스승이 들려준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에 넋을 잃은 것. 1967년 여름 무렵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래미는 합창단원을 뽑던 콜로라도의 한 오페라단에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이후 뉴욕시 오페라단을 거쳐 1984년 1월 최고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헨델의 ‘리날도’로 데뷔했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진입한 셈이다. 그는 “매우 흥분된 밤이었다.”면서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배역이 좋은 데다 톱스타였던 매릴린 혼(77·메조소프라노)과 공연해 더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0년 가까이 무대에 서 온 ‘전설의 베이스’가 가장 사랑하는 역할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잠시 고민하더니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가장 좋아한다.”면서도 “베르디의 ‘오셀로’ 중 ‘이아고’ 역을 너무 해보고 싶어서 (음역대가 더 높은) 바리톤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오페라 가수로서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쿨’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늙었다.”(I´m not getting older. I´m just old)면서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역할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목소리가 한창 때처럼 나오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오랜 세월 기다려온 한국 오페라팬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앞으로 길어야 무대에 서는 것은 3년 정도일 텐데 아마도 내 인생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할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후회하지 않을 테니 꼭 와서 지켜봐 달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11세 딸마저…” 23세 세계 최연소 할머니

    대를 잇는 ‘과속스캔들’로 23세에 손자를 얻은 루마니아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어린 할머니’로 이름을 올렸다. 루마니아 일간 리베르타티아에 따르면 이색 타이틀의 주인공은 주부 리프카 스타네스쿠(24). 지난해 그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10세 딸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리프카는 “아직 어린 딸이 아기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면서 “한창 공부를 할 나이인데 학교를 그만둬야 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초등학생 딸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딸 마리아의 고백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리프카 역시 부모의 반대를 딛고 11세 어린 나이에 마리아를 낳은 전력이 있기 때문. 리프카는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내 딸은 나와 같은 힘든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눈물을 흘렸다. 임신으로 학교를 그만둔 마리아는 지난해 건강한 아들 아이언을 낳았다. 마리아가 부양능력이나 아기를 키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리프카가 아기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세 딸의 출산으로 리프카는 우리나라 여성 결혼 평균연령에도 못 미치는 스물셋에 젊은 나이에 할머니가 됐다. 자연스럽게 리프카의 40세 어머니 역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증조할머니란 타이틀을 얻게 됐다. 리프카는 “남들보다 일찍 할머니가 된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서 “다만 딸이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도록 아기를 키우면서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현장 톡톡] ‘마이 블랙 미니 드레스’ 제작 보고회

    [현장 톡톡] ‘마이 블랙 미니 드레스’ 제작 보고회

    대학문을 나섬과 동시에 차가운 사회와 부딪치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하게 되는 20대 여성들.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여성 4명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린 영화다. 지난달 28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네 명의 배우들은 제목처럼 검정색 미니드레스를 입고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영화는 2009년 세계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던 김민서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연극영화과를 갓 졸업한 유민(윤은혜), 혜지(박한별), 수진(차예련), 민희(유인나) 등 네 명의 친구들이 사회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졸업만 하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 하지만 몇 차례의 연애 경험만 있을 뿐, 별 볼일 없는 ‘스펙’밖에 없는 이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서로를 위로하며 우애를 다지지만, 혜지가 스타가 되면서 우정에도 금이 간다. 허인무 감독은 “영화는 가장 혼란스럽고도 유쾌한 24살 여자들의 이야기”라면서 “가장 재미있는 시기에 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는지를 그렸다.”고 말했다. 허인무 감독은 ‘신부수업’, ‘허브’를 연출했다. ‘카리스마 탈출기’ 이후 5년 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한 윤은혜는 “첫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던 영화를 찍고 난 뒤 드라마를 쉼 없이 찍다 보니 영화가 하고 싶어졌다.”면서 “시나리오를 읽어 봤는데, 여자의 감수성을 너무 재밌게 잘 썼다. 지금 이 나이 아니면 다시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때를 놓쳐 버리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배우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냉혹한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한별은 “연예인으로 데뷔를 하기만 하면 스타가 될 줄 알았는데 조연을 오래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라고 답했고, 유인나는 “연기나 노래를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많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수입도 없었고, 연습생 시절에 허드렛일도 많이 하면서 세상을 알아갔다.”며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허인무 감독은 “원작을 읽고 영화화하려고 할 때 졸업을 하는 24살 정도의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치열했다.”면서 “그래서 자칫 무거울까봐 원작보다 가볍게 하면서 공감할 만한 포인트는 꼭 가져가도록 하면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클릭비’ 김상혁, ‘비틀즈코드’서 심경고백 눈길

    ‘클릭비’ 김상혁, ‘비틀즈코드’서 심경고백 눈길

    8년만에 재결합한 밴드 그룹 클릭비가 윤종신 유세윤이 진행하는 Mnet ‘비틀즈 코드‘에 출연한다. 제 1세대 꽃미남 아이돌 가수로 불리는 클릭비는 과거 음주운전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상혁 뿐 아니라 지난 1월 국방의 의무를 마친 맏형 우연석과 막내 노민혁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드러머 하현곤은 탈모 때문에 방송 녹화현장에서 매니저로 오해받은 사연을 전하고, 우연석은 녹화 내내 어색한 모습을 보였지만 김상혁만은 예전의 빛나던 예능감을 잃지 않고 쉼 없이 감동과 재미를 안겼다는 후문. 김상혁은 과거 음주운전 사실에 대해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생각이 짧았다. 사건 이후 2~3년간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외출도 잘 안했다. 정말 후회한다.”면서 “멤버들 역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활동 당시 유독 예능 출연이 잦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노래 실력이나 악기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보니 팀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예능 출연을 자청했다”고 설명했다.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멤버들의 끈끈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클릭비의 모습은 3일 목요일 밤 12시 M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정한 기회는 헛꿈” vs “차후 보완하면 될 일”

    “공정한 기회는 헛꿈” vs “차후 보완하면 될 일”

    ■뿔난 연수원생 60% 입소식 거부… 현수막 시위도 지난 1일 오후 10시. 경기 고양시 장항2동 사법연수원 기숙사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42기 사법연수원생 일부가 각 방을 돌며 입소식 참가 여부를 물었다. 앞서 이들은 연수원 측으로부터 ‘입소 거부는 징계사유가 돼 판사나 검사에 임용될 수 없다’는 이메일을 받았던 터. 그들 말대로 평생 공부만 해온 ‘범생이’들은 그렇게 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2일 오전 9시 10분. 기숙사 로비에 42기생 100여명이 모였다. 오규진씨는 “많이 떨린다.”고 말했고, 김두섭씨는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이라면서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0시 5분. 입소식 예정시간이 지났지만 연수원 대강당은 절반 넘게 비어 있었다. 먼저 식장에 입장한 교수들은 두리번거렸다. 한 교수는 “이게 다예요?”라면서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10시 15분. 임명장 수여식이 시작되자 김씨와 오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나가 펼친 현수막에는 ‘로스쿨 검사 임용 방안 철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단상에 자리잡은 사법연수원장과 교수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이들의 돌발 행동을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10시 20분. 김이수 사법연수원장은 축사에 앞서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여러분 의사 확실히 표현했습니까.” 그는 “연수원생들은 국가공무원 신분”이라며 “법령을 준수하고 사생활을 조심할 것”을 각별히 당부했다. 10시 25분. 이날 현수막을 들어 입소식 거부 의사를 밝힌 김씨와 오씨가 대강당 밖에서 입을 열었다. 이들은 “로스쿨생의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채용하는 것은 공정성·객관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사법연수원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입소식 무더기 거부 사태. 974명 중 40%가량만 참석했다. 참석한 이도, 불참한 이도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연수원생들은 법무부가 추진 중인 ‘로스쿨생 검사 우선 임용’ 방침에 반발하면서 입소식을 거부했다. 내년에 배출되는 로스쿨생 중 대학원장의 추천을 받은 성적 우수자를 면접 후 검사로 우선 임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 입소식에 참석하지 않은 정모(32·여)씨는 “면접만으로 검사를 뽑는 방식 자체가 불공정하다.”면서 “소위 ‘있는 집’ 자제들만 검사에 임용될 것이 뻔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지방에서 농사 짓는 아버지가 ‘부모가 잘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더라.”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공정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해서 죽어라 공부만 했는데 헛꿈이었다.”고 말했다. 박모(24)씨는 “법무부안은 로스쿨생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고, 연수원생에게는 재앙이다.”라고 주장했다. 입소식에 참여한 연수원생들도 의견은 비슷했다. 강모(23)씨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입소식에는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2기 자치회장 손정윤씨는 “입소식에 참여한 사람들도 ‘로스쿨생 검사 임용’안에 반대하는 마음은 같다.”면서 “창립총회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조만간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화난 로스쿨생 ‘밥그릇 싸움’ 역풍 우려 속 찬성 고수 로스쿨생 검사 임용 방안 철회를 요구하며 일으킨 사법연수원생들의 사상 초유의 입소식 대거 불참 사태에 대해 로스쿨 재학생들은 일단 섣부른 비판은 자제하고 있다. 이 제도로 실질적 이득을 보게 된 입장에서 사법연수원생 측 행태를 직접 비난할 경우 ‘밥그릇 싸움’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로스쿨생 검사 임용 방안 자체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당연한 제도”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형주(제주대) 로스쿨학생협의회장은 “이 제도를 통해 여러 법조 직역 중 검찰 쪽으로도 로스쿨생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로스쿨 제도의 안정적 정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재학생 입장에서는 2017년 사법시험이 완전 폐지되고, 로스쿨 출신으로 법조인이 채워지므로 검사 역시 로스쿨생 출신 비중을 높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29)씨는 “법조인들이 로스쿨 출신으로 점점 채워지는 상황에서 제도를 바꾸지 않고 사시 폐지 이후 갑자기 바꾼다면 혼란은 뻔한 일”이라며 “로스쿨생 검사 임용과 같은 제도를 지금부터 적용해 차차 보완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련 제도의 공정성 보완 등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서울의 한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32)씨는 “로스쿨생 검사 임용안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그러나 원장 추천이나 교수 주관이 들어가는 학점을 기준으로 검사를 임용하는 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변호사시험과 같은 시험을 통해 성적 순으로 검사를 임용하는 것이 가장 잡음이 적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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