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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충동을 자제할 수 없어 결국 자살을 택하기도”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지만 목표는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남는 것입니다. 수상을 계기로 과학 수사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힘이 돼 주고 싶습니다.” 제63주년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열린 제7회 대한민국 ‘과학수사대상’에서 과학수사 부문을 수상한 경찰청 수사국 권일용(47) 경위가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과학수사경력만 18년에 달하는 산 증인이자 국내 대표적인 프로파일러로 손꼽히는 권 경위는 이날 상과 함께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다. 프로파일러는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자의 신체조건, 심리상태 등을 유추, 수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전문가다. 권 경위는 지난 1989년 경찰에 투신했다. 연쇄살인범인 유영철(2004년), 정남규(2006년), 강호순(2009년), 부산 여중생 살인범 김길태(2010년)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사건 뒤에는 권 경위가 있었다. 범인들의 심리를 분석, 사건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강호순 검거 전 ‘30대 후반, 호감형 얼굴, 개인 승용차 이용, 안산 지역 거주자’라고 피의자를 추정,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정남규 사건 때도 ‘범인은 35∼40세 연령’이라고 당시 36세였던 정에 대해 정확히 예측했다. 권 경위는 외톨이형 범죄자 스타일인 정의 특성을 꿰뚫고 “교도소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달래며 대화의 물꼬를 터 여죄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줬다. 김길태가 수사망을 피해 숨어지내던 때 “고정형 성범죄자는 멀리 가지 못하고 집 근처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곧 잡힐 것”이라는 ‘족집게 분석’을 내놓은 이도 권 경위였다. 권 경위는 가장 인상 깊었던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정남규를 꼽았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살인 충동을 자제할 수 없어 결국 자살까지 택했던 인물”이라면서 “강호순과 유영철 역시 반성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라 속으로 섬뜩한 기분을 느낀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말했다. 또 “수백 명의 살인마와 범죄자들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죄 없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이라면서 “과학수사에 전념해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는 데 계속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과학수사 대상 법의학 부문은 경북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법과학 부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과학부 화학분석과 미세증거물 감정팀이 수상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커플 그냥 싫어” 묻지마 폭행한 中실연남

    중국 충칭에 사는 25세 청년이 지나가는 남녀 커플에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 주말 밤 10시께 슈퍼마켓 앞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남녀에 달려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놀라운 건 폭행 동기가 없었다는 점. 런이라는 성을 가진 이 남성은 “8년 사귄 여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했는데, 커플의 다정한 모습을 보자 이성을 잃었다.”고 범행동기를 밝혀 주변을 놀라게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묻지마식 폭력에 남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특히 피해남성 샤오 우(20)는 머리와 배 등에 심한 발길질을 당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담당경찰은 “마침 폭행현장 근처에서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면서 “가해남성이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폭행을 저질렀으며, 현재 매우 후회하는 상태”라고 밝혔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버릴수록 행복해진 ‘귀농 검사’

    덕수궁 돌담길 긴 줄을 4시간 기다려 길바닥에 차려진 분향소에 고개를 숙였다. 아내와 함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 막걸리집에 들렀다. 그리곤 말했다. “검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아내는 잠시 침묵하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10년 검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9년 7월의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지 두 달 뒤였다. 문학동네가 최근 펴낸 ‘검사 그만뒀습니다’는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귀농 검사’ 등으로 불리는 오원근(44)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평소 흠모하던 분의 비극에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모욕 수사’가 한몫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고 사표를 던진 이유를 털어놓았다. 검사를 그만둔 뒤 그는 전북 부안의 변산공동체에 들어가 3주간 농사 일을 했다. 검사를 그만둔 궁극적 이유는 “농사짓는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그는 변호사로 개업한 지금도 “평생 소원은 불교 수행과 완전 귀농”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여는 독실한 불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책이 귀농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6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던 국민참여재판에 공판검사로 참여한 이야기, 초임검사 시절 벌금 100만원을 깎아달라는 젊은 구멍가게 주인의 통사정을 “검사가 한번 뱉은 말을 바꾸면 권위가 안 선다.”는 이유로 야멸차게 거절했다가 뒤늦게 ‘정의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임을 깨닫고 두고두고 후회한 이야기, 아내와 함께 경북 문경의 정토수련원에 100일간 출가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곡물 노점상 어머니를 ‘버린’ 이야기는 코끝이 찡하다. 충북 청원에서 소작 일을 하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한겨울 눈발이 날리는 장터에서 쌀이며 콩을 팔아 ‘고시생’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공부하는 책 위로 자꾸만 쪼그리고 앉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날 무심천 꽃다리(청남교)를 걷다가 불현듯 “그건 어머니의 팔자”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죽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그는 어머니의 잔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뒤에도 그 어머니는 노점을 계속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해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오 변호사는 금강경의 차제걸이(次第乞已)를 인용했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걸식을 할 때 어느 집은 가고 어느 집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차례로 밥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는 “버릴수록 행복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1만 3000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세 칸 반짜리 도산서당이 주는 의미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세 칸 반짜리 도산서당이 주는 의미

    올해는 도산서당이 창건된 지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과 학술강연회 등이 경북 안동과 서울에서 잇달아 열리고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말년에 고향인 도산에 은거한 후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손수 설계하여 지은 공간이다. 돌아가신 4년 뒤(1574년)에 건립된 도산서원의 모태가 된 곳으로, 평생을 ‘경’(敬)의 태도로 일관하며 ‘학자’ 이전에 ‘사람’을 길렀던 선생의 생전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반, 측면 1칸의 규모로, 방과 부엌 각 하나에 한 칸 반짜리 마루가 곁들여 있는 소박한 구조이다. 마루도 처음에는 한 칸이었으나 뒤에 한 제자가 반 칸을 더 늘린 것이라 하니 그 단출함은 어디 비할 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내면서 퇴계 선생이 남긴 삶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오늘 우리가 450년 전 지어진 이 조그마한 서당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은 아들과 손자에게 늘 자상하였으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엄격하게 가르쳤다. 도산으로 내려온 후, 당시 서울에 살던 맏손부가 잇따라 출산하여 돌이 갓 지난 맏증손자가 젖이 부족한 일이 생겼다. 그러자 출산한 지 한두 달 된 시골집 하녀를 유모로 보낼 것을 손자가 부탁하였다. 선생은 하녀를 보내면 그녀가 낳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의 아이를 죽여 내 자식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이는 네가 배운 성인의 가르침에도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유모를 데려가지 못하자 결국 몇 달 후 맏증손자는 불행히 죽고 말았지만, 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는 모든 생명은 한결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가르친 것이다. 제자(간재 이덕홍)가 남긴 기록 가운데는 이런 일화도 전한다. 선생에게 시냇가에서 10여리 떨어진 논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논이 계단식 지형의 맨 위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 물을 대면 그 아래 있는 다른 사람의 논들은 물을 대기 어려웠다. 이를 안 선생은 논을 아예 밭으로 바꾸어 버렸다. 49년 아래인 만년 제자(산천재 이함형)가 평소 부부 금실 문제로 고민하자 타이른 이야기도 곱씹을 만하다. 제자의 고민을 알던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의 봇짐에 편지를 하나 넣어 보냈다. 자신을 예로 들며 어린 제자를 이렇게 타일렀다. 나는 두 번 결혼하였으나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다. 젊어 결혼한 첫째 부인은 공부하느라 소홀하였는 데다 그마저 둘째아이를 출산하다 사별하는 불운을 겪었다. 둘째 부인은 정신장애를 앓아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내친다고는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부부관계는 인륜의 근본인데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공부를 하겠으며, 또 공부를 한들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자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이 편지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49살이나 어린 제자에게는 깍듯이 ‘공’(公)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정작 자신을 지칭할 때는 ‘황’(滉)이라며 이름을 썼다는 점이다. 요즘으로 치면 제자는 ‘님’이라 부르고 자신에 대해서는 ‘저’라는 호칭을 쓴 셈이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감복한 제자 내외는 이후 금실을 회복하였고,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흰옷을 입고 상주처럼 지냈다. 우리가 퇴계 선생을 지금도 존모하는 이유는 학문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이런 일화들에서 보듯이, ‘사람다움’을 추구하던 선생의 삶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여전히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 가르침은 흐트러진 우리의 삶을 이끄는 소중한 자양분이다. 이것이 퇴계학 연구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20여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칸 반의 조그만 공간에 스며 있는 향기가 갈수록 짙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만추의 도산서당에 들러 삶의 한 위대한 멘토의 자취를 느껴 보기를 권한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씨줄날줄] 반성문/주병철 논설위원

    종교적 의미의 고해성사는 용서와 참회다. 여기에는 거짓이 끼어들 틈이 없다. 최초의 신분 증명 명부도 1215년 ‘고해성사 증명서’에서 비롯됐다. 모든 신도가 최소한 1년에 한번 고해성사를 하고 영성체를 받도록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했는데, 명부와 고해성사 증명서를 대조해 의식을 실천하지 않은 자는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판 반성문이 유래한 배경이라고 한다. 사전은 반성문의 뜻을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보며 쓴 글’이라고 적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반성문을 쓴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선생님은 똑같은 반성문을 열 번이나 쓰게 했다(중략)/열 장의 반성문을 쓰게 한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어느날,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나는 늘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중략)”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의 산문집 ‘반성문’이다. 무수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콕 집어내는 듯하다. ‘반성은 해도 후회는 하지 마라.’는 경구를 일깨워준다. 김도연의 신작 소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삼십년 전의 반성을 삼십년 후 풀어놓은 소설가의 자기 고백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중학교 2학년 때 학생잡지의 어느 내용을 보고 교내 백일장에 그대로 옮겼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들켰다. 선생님은 혼내는 대신에 원고지 500장 분량의 반성문을 쓰게 한다. 끝내 쓰지 못하다 삼십년이 지난 시점에 장문의 반성문을 쓰면서 과거를 돌아본다. 어찌 보면 반성문은 인간에겐 업보이자 숙명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진행형이다.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등은 반성문을 아무리 써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얼마 전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 대정부 질문 대신 ‘18대 국회 반성문’을 써 눈길을 끌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경찰의 조폭 난투극 방관, 장례식장과 유착 등 잇단 악재에 “안타깝고 할 말이 없다.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은 어제 썼다고 오늘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잘못됐다면 반성문은 써야 한다. 다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반성은 눈속임이다. 공허한 자기 메아리에 불과하다. 경찰은 지금 눈앞의 잿밥(수사권 조정)에만 맘이 있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염불(자기 정화)에 공력을 들여야 한다. 조 청장의 발언이 말장난인지, 진심 어린 반성문인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박근혜 수첩’ vs ‘안철수 편지’ 품고 羅·朴 마지막 지지호소

    ‘박근혜 수첩’ vs ‘안철수 편지’ 품고 羅·朴 마지막 지지호소

    1분 1초가 아쉬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했다. 모든 인적 자원을 총동원했다. 상대의 폐부를 찌르는 ‘언어’도 모두 쏟아냈다. ‘대선급’ 보궐선거답게 마지막 날까지 피말리는 접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범야권 무소속 박원순 후보 모두 후회 없이 싸웠다. ●시장에서 시청까지, 걷고 달리고 나경원 후보의 25일 마지막 유세 컨셉트는 ‘걸어서 서울 속으로’였다. 캠프에 따르면 나 후보는 이날 14㎞를 걸었고, 지하철로 50㎞를 이동했다. 버스와 택시로 달려간 거리도 70㎞가 넘었다. 나 후보의 이날 동선을 포털 지도검색으로 검색해 합쳐 보니 총 138.94㎞에 이르렀다. 나 후보는 새벽 5시 30분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상인들과 인사하는 것으로 유세를 시작했고, 저녁 시청 앞 서울광장 유세에 이어 종로 피아노거리 유세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모두 36개의 행사 및 유세를 소화했다. 주요 전철역에서는 군중 유세를 펼쳤고, 서울역·대학로·신촌 등에서는 줄곧 걸으며 유권자들을 만나 호소했다. 박원순 후보는 밤을 꼬박 새우는 강행군에 나섰다. 세수도 하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25일 0시부터 자정까지 서울을 훑었다. 그가 이동한 거리는 191.83㎞다. 도보 유세와 지하철 이동시간을 뺀 차량 이동시간만 8시간 25분이다. 박 후보는 신논현역에서 대리운전기사를 격려하며 유세를 시작했고, 노량진수산시장 등 새벽시장을 찾아 나섰다. 주요 지지층인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있는 홍익대 앞에서는 대학생들과 연신 ‘인증샷’ 찍기 등 퍼포먼스를 벌였다. 해가 저물자 박 후보는 범야권 인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1000여명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집중유세를 벌였고, 동대문 두타 광장에서 ‘인증샷 놀이’를 하며 선거운동의 대미를 장식했다. ●박근혜 “정당 없이 책임정치 불가” 마지막 날 나경원 후보에게 가장 큰 힘이 된 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전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응원 편지’를 전달한 데 이어 이날엔 박 전 대표가 프레스센터에 있는 나 후보 선거사무실로 찾아가 “나 후보가 정말 애 많이 썼고, 참 잘했다.”고 격려했다. 박 전 대표는 지원 유세를 벌이며 시민들로부터 들은 요구사항을 빼곡하게 적은 수첩을 나 후보에게 건넸다. 수첩에는 버스전용차로가 끊겨 불편하다는 얘기에서부터 보육시설을 늘려 달라는 맞벌이 부부의 바람, 교원 정원을 늘려 달라는 노량진 고시생의 호소 등이 빼곡히 담겼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당정치는 민주주의 실현에 중요한 뿌리”라며 “책임있는 정치가 되려면 정당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무소속 박 후보를 견제했다. 박 전 대표는 13일간의 재보선 유세 지원을 모두 마치고는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새로운 정치는 정치의 기본에 더욱 충실해야 하고 그래야만 희망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번 선거가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선거 막판에 안철수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박원순 후보는 이날 ‘연합군’ 작전을 구사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손학규 민주당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조승수·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등 범야권 지도부를 비롯해 박 후보의 멘토단인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신경민 전 MBC 앵커, 가수 이은미 등이 트위터와 거리 유세를 통해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조 교수, 탤런트 권해효 등은 자원봉사자 1000여명과 함께 지하철역 출구 151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투표 독려 1인 캠페인 ‘Vote 1026! 널 기다릴게’를 진행했다. 한 전 총리는 “투표하지 않으면 악의 편”, “유 대표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1번(나경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박 후보의 승리는 진보 대통합과 정권교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朴 운동원이 운동원 폭행” 논란 나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박 후보와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번 선거는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나경원을 택할 것이냐, 무작정 무상복지를 하겠다는 박원순을 택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박 후보가 서울을 맡으면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은 반미(反美) 집회의 아지트가 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 오세훈 전 시장 심판론을 역설했다. 그는 “이명박, 오세훈 시장 10년간 서울시가 빚더미로 변했다. 25조원을 대학생 등록금, 일자리에 안 쓰고 전시·겉치레 행정에 쏟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낡은 시대를 연장하려는 세력이 다시 총결집하고 있다.”면서 “변화를 바라는 모두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정성을 모아 승리를 지켜야 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한편 막판 총력전 열기가 양측 지지자들의 충돌과 폭력 사태 시비로 번지기도 했다. 나 후보 측은 오후 6시30분쯤 세종문화회관에서 유세를 마치고 이동하던 여성 운동원들이 박 후보의 광화문 유세 현장 인근에서 박 후보 측 운동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선관위와 경찰에 조사를 촉구했다. 이창구·강주리기자 window2@seoul.co.kr
  • [EPL 이슈] 맨체스터 더비의 5가지 교훈

    [EPL 이슈] 맨체스터 더비의 5가지 교훈

    ”Six and The City(6 그리고 맨시티)” 영국 대중지 <더 선>의 재치 있는 맨체스터 더비 기사 제목이다. 미국 유명 코미디 드라마 <섹시 앤 더 시티>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날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6-1로 대파했다. 2011년 10월 맨체스터의 주인이 드디어 바뀌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말대로 “역사적인 경기”가 됐다. 물론 퍼거슨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의 역사가 되었지만, 적어도 맨시티 팬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역사적인 경기였다. 특히나 역사와 기록을 좋아하는 영국에선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날 티비를 통해 맨체스터 더비를 지켜본 국내 축구 팬들에겐 맨유의 1-6 패배가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제아무리 유럽 축구를 오랫동안 지켜본 골수팬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큰 점수 차이로, 그것도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가 패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맨유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6골 이상 실점한 것은 1930년 뉴캐슬전 4-7 패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맨유 팬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심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맨시티에겐 두 번째 맨체스터 더비 대승이다. 1926년 맨시티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6-1로 맨유를 이긴 이후 실로 오랜만에 퍼펙트 승리를 거뒀다. ① 돈 앞에 장사 없다 돈 앞에 장사 없다 했던가. 머니 파워를 앞세운 맨시티의 괴력에 맨유도 그저 평범한 팀에 불과했다. 2000년대 들어 맨유가 열세 놓은 적은 크게 3번이다. 한 번은 무패신화의 아스날이구, 한 번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다. 그리고 이날 1-6 패배를 안긴 맨시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스날을 제외한 두 팀의 공통점은 모두 단 기간에 신흥명문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이다. 첼시는 러시아의 힘을, 맨시티는 UAE의 힘을 빌려 진짜 강팀으로 변신했고 맨유를 제압하는 위력을 뽐냈다. 맨유를 꺾고 싶다면? 간단하다. 부자 구단주를 두 팔 벌려 맞이하면 된다. ② 10 대 11은 뒤집기 힘들다 10명으로 맨시티를 상대한 맨유와, 9명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상대한 첼시 중 어느 팀이 더 힘들었을까? 아마도 맨유와 첼시가 느낀 절망감은 비슷했을 것이다. 수적 열세에 놓인 팀이 경기를 뒤집긴 매우 힘들다. 더구나 먼저 실점까지 한 상태라면 이변이 없는 한 패배할 확률이 높다. 그건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③ 루니가 못하면 맨유도 못한다 어느 팀이나 에이스는 존재한다. 때문에 에이스가 부진에 빠지면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맨유가 웨인 루니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유 같은 빅 팀이 자주 그런 현상에 빠지는 것은 옳지 않다. 맨유는 리그를 넘어 유럽 정상을 노리는 클럽이다. 이날 루니는 챔피언스리그의 후유증 탓인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루니가 맨유에서 중요한 선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플레이메이커이자 팀의 해결사다. 루니의 침묵은 맨유의 창의력을 잃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맨유의 창은 맨시티의 벽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④ 에반스는 퇴장왕 조니 에반스의 롤 모델은 로이 킨인 듯하다. 맨유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킨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가장 많은 레드 카드를 받은 선수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그는 늘 불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자주 빠져 나가곤 했다. 에반스는 이날 퇴장으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두 번째로 퇴장을 많이 당한 선수가 됐다. 성격 탓일까? 아니면 실력 탓일까? ⑤ 맨유는 실바와 투레가 필요하다 맨시티는 분명 맨유가 가지지 못한 선수를 보유했다. 바로 다비드 실바와 야야 투레다. 실바는 맨유에게 부족한 창의력을 갖췄고 투레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맨유에게 필요한 선수다. 이날 퍼거슨 감독은 맨시티의 실바와 투레를 영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시티의 두 선수를 대체할만한 선수는 많지 않다. 굳이 뽑자면 토트넘의 루카 모드리치와 아스날의 알렉스 송 정도다. 맨유는 지난여름 모드리치와 웨슬리 스네이더 영입에 실패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글레이저 구단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름에 돈을 아낀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
  • 라이스 전 美국무장관 “카다피가 나를 텐트로 초청했는데 거절”

    라이스 전 美국무장관 “카다피가 나를 텐트로 초청했는데 거절”

    “나를 주인공으로 만든 비디오, 괴상했지만 외설적이지는 않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달 말 발간될 자신의 회고록 ‘최고의 영예, 워싱턴 시절의 회고’에서 지난 20일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 관련한 일화들을 소개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3일(현지시간) 게재한 회고록 요약본에 따르면 라이스 전 장관은 “카다피가 2008년 나를 자신의 텐트로 초청했으나 내가 거절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당시 카다피가 저녁식사 이후 자신에게 ‘아프리카 공주’라는 제목의 비디오를 만들었다고 말해 당황했으나 나중에 자신의 사진이 담긴 비디오를 본 뒤 “괴상하지만 최소한 외설적이지는 않았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또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던 때를 떠올리며 자책했다. 그는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한 당일 저녁 나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스팸어랏’을 관람했다.”면서 “당시 나는 허리케인이 접근하고 있다는 경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마이크 처토프 당시 국토안전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울 일이 없느냐’고 했더니 ‘있으면 전화하겠다’고 해서 그냥 끊었다.”고 전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전화를 끊고 나서 옷을 차려입고 뮤지컬을 보러 갔고, 다음날 아침 페가라모 구두 매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허리케인 피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워싱턴DC로 돌아가겠다고 보고했다. 그는 “TV 방송에는 뉴올리언스의 참혹한 장면이 이어졌고,특히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나와 같은 흑인이었다.”면서 “그 순간 워싱턴DC를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외교정책을 책임지는 국무장관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 내 최고위급 흑인인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라고 후회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칼 대기 싫다”… 수술 9개월 미룬 것 후회

    “칼 대기 싫다”… 수술 9개월 미룬 것 후회

    “그는 9개월 앞서 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몸에 칼을 대기 싫다며 미뤘고 최후의 순간 후회하는 듯 보였다.” 애플의 공동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가 가족의 만류에도 췌장암 수술을 아홉 달이나 미루다 병을 키웠다고 그의 공식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밝혔다. 또 잡스가 알려진 것과 달리 자신의 생부를 만났던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아이작슨은 23일 방영될 미국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60Minutes)과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숨겼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CNN 최고경영자 등을 맡았던 아이작슨은 생전 잡스로부터 자서전 출간을 허락받았으며 이후 수차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잡스가 “배에 칼을 대고 싶지 않다.”면서 식이 요법으로 치료하려 했다면서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료 효과가 없었고 나중에야 수술을 미룬 사실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고 전했다. 잡스의 암 치료법과 관련해 하버드의대의 연구원인 램지 앰리는 최근 Q&A 사이트인 ‘쿼라’에서 “잡스가 전통적인 의학에 의존하기 앞서 여러 대안치료에 몰두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는 잡스의 대안치료 선택이 조기 사망의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앰리는 “(췌장암 수술은) 단순한 적출수술로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등에 비해 부작용도 거의 없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아주 낮은 치료법”이라며 “하지만 대안치료에 몰두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종양이 계속 자라나 간으로 전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잡스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고 채식주의자인 데다 전통적인 치료법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03년 말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는 2004년 8월이 돼서야 암수술을 받았다. 오는 24일 세계에서 동시 출간될 잡스의 전기에는 그가 생전 아버지를 만났던 일화도 담겼다. 잡스는 1980년대 실리콘 밸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를 수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몰랐고 생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책에는 또 평범하지 않았던 ‘소년 잡스’의 모습도 소개됐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눈을 깜빡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계속 쳐다보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고 13세 때 한 잡지에서 굶주린 아이의 사진을 본 이후로는 기독교를 버리고 선종을 공부하기도 했다. 또 그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애플의 이사회를 돈 버는 데만 관심 있는 “썩어빠진 인간들”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2010년 HTC가 아이폰의 특징을 베낀 안드로이드폰을 선보였을 때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를 향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구글이 도둑질했다며 욕설을 퍼부었고 “안드로이드는 훔친 물건이기 때문에 파괴할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재개발 도심 속살에 반해 파리行 포기했죠”

    “재개발 도심 속살에 반해 파리行 포기했죠”

    “이상하다 싶었을 거예요. 파리 보내준다는 데도 대답을 안 하니…. 하하하. 그런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스펙터클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포기합니까. 현장을 지키기 않으면 다 놓칠 판인데….” 한달에 400만원씩 드는 작업비용을 감당하느라 집세도 몇달째 밀려있다면서도 아쉽다거나, 후회한다는 표정은 아니다. 아직 흥이 채 가시지 않았다. 11월 27일까지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서울, 침묵의 풍경 Ⅱ’ 전시를 여는 안세권(43) 작가다. 원래 영상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2003년 7월 청계천 공사 착공에 앞서 그 일대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파, 바리케이드, 교통통제, 다이아몬드커팅기까지 어우러진 풍경을 영상물로 남겼다. 몇달간 천변 부근 차 안에서 먹고 자면서, 비오는 날마다 청계고가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매진했다. 그러다 공사현장 그 자체에 매료됐다. 한층 더 두터운 화장을 바르기 위해 예전의 화장을 걷어내는 순간, 근대의 이름으로 덮어뒀던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때부터 사진기를 들기 시작했다. 청계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웅장함과 거대함을 나타내는 구도와 시점을 택하면서도 세부묘사는 현미경을 들이댄 듯 세밀하다는 데 있다. 이번에 전시된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이 대표적이다. 사진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다. 특히 휘어진 철근은 지금 청계천에서 뛰논다는 물고기보다 더 생생하게 퍼덕댄다. “저 철근 느낌 때문에 새벽에 그냥 공사현장에 뛰어들어가서 찍은 거예요. 박정희식 근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봤거든요. 그 때 민원 방지 차원에서 폐건축자재를 정말 빨리 치웠어요. 우연히 발견해서 바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영원히 놓쳤을 장면이죠.” 미세함을 포착하자니 품이 많이 든다. 기본은 4~5시간 노출촬영이다. 한 번에 찍으면 명암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노출 시간이 길어야 빛이 고루 스며들면서 작은 부분이 다 살아난다. 대신, 움직이는 물체가 없어야 하니 새벽시간대에만 작업한다. 촬영 뒤에는 후반 작업에만 보름 이상 매달린다. 그 결과 도시의 속살은 땀구멍 수준으로 확대된다. 그의 사진이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회화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청계천프로젝트 덕분에 2005년 가나아트에서 신진작가로 뽑혔다. 들어온 제안이 프랑스 파리 레지던시 참가. 그런데 서울에선 뉴타운이 한창이었다. 비행기 티켓 대신 카메라 가방을 움켜쥐고 다시 뛰었다. 도시의 내밀한 살내음을 추적하기 위해 금호, 약수, 월곡 같은 재개발지역을 훓고 다녔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서울 뉴타운 풍경 - 월곡동의 사라지는 빛’이다. 특이하게도 2005~2007년에 걸쳐 찍었다. “보통 재개발하면 바로 밀어서 바로 짓잖아요. 그런데 저곳은 교회가 저항하면서 천천히 진행됐어요. 그래서 저렇게 연작을 뽑을 수 있었지요.” 말이 쉽지 3년 내내 다닌 셈이다. “출퇴근하듯 매주 찾아가면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하하하.” 환한 가로등이 점차 잦아들면서 마을은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공사현장과 달리, 용역과 철거민이 맞부딪히는 재개발 현장은 위험하지 않을까. 낯선 사람이 새벽에 큰 가방 메고 이리저리 나다니는데. 월곡동에선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는 순간을 찍으려는 데 주민들이 무척 반발했었어요. 집 부수는 순간은 그 찰나가 아니면 못 찍잖아요. 잽싸게 차에 가서 도록을 집어다 줬죠. 그랬더니 우리 동네도 이렇게 찍어줄거냐 하시더니 내버려두시데요.” 그래서 월곡동에서 청계천 철거민을 만났을 때 가슴 아팠다. 박정희 시대 청계천 공사 때문에 월곡동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뉴타운으로, 또 다시 시 외곽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도 다큐 작업이 있다. 아무래도 다큐는 스산하기 마련. 도시 재개발을 왜 삐딱하게 보느냐는 시선 때문에 잘 공개하지 않을 뿐이다. 혹시 청계천과 뉴타운 덕을 톡톡히 보신 ‘그 분’ 때문에? “으흐흐” 웃기만 하더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어떤 현상에 대해 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요. 그 가운데 예술로 말한다는 것은 일단 아름다워야 한다는 겁니다.” 온통 땅을 할퀴고 뒤집어놓은 사진인데도 거칠고 탁하기보다 따뜻한 온기가 도는 이유다. 3000원.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잡스, 수술을 조금만 일찍 받았더라면…”

    “잡스, 수술을 조금만 일찍 받았더라면…”

     “그는 9개월 앞서 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몸에 칼을 대기 싫다며 미뤘고 최후의 순간 후회하는 듯 보였다.”  애플의 공동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가 가족의 만류에도 췌장암 수술을 아홉 달이나 미루다 병을 키웠다고 그의 공식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밝혔다. 또 잡스가 알려진 것과 달리 자신의 생부를 만났던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아이작슨은 23일 방영될 미국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60Munutes)과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숨겼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CNN 최고경영자 등을 맡았던 아이작슨은 생전 잡스로부터 자서전 출간을 허락받았으며 이후 수차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잡스가 “배에 칼을 대고 싶지 않다.”면서 식이 요법으로 치료하려 했다면서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료 효과가 없었고 나중에야 수술을 미룬 사실을 후회하는 듯 보였다고 전했다.  잡스의 암 치료법과 관련해 하버드의대의 연구원인 램지 앰리는 최근 Q&A 사이트인 ‘쿼라’에서 “잡스가 전통적인 의학에 의존하기 앞서 여러 대안치료에 몰두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같은 상황에서는 잡스의 대안치료 선택이 조기 사망의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앰리는 “(췌장암 수술은) 단순한 적출수술로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등에 비해 부작용도 거의 없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아주 낮은 치료법”이라며 “하지만 대안치료에 몰두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종양이 계속 자라나 간으로 전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잡스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고 채식주의자인 데다 전통적인 치료법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03년 말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는 2004년 8월이 돼서야 암수술을 받았다.  오는 24일 세계에서 동시 출간될 잡스의 전기에는 그가 생전 아버지를 만났던 일화도 담겼다. 잡스는 1980년대 실리콘 밸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를 수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몰랐고 생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책에는 또 평범하지 않았던 ‘소년 잡스’의 모습도 소개됐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눈을 깜빡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계속 쳐다보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고 13세 때 한 잡지에서 굶주린 아이의 사진을 본 이후로는 기독교를 버리고 선종을 공부하기도 했다.  또 그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애플의 이사회를 돈 버는 데만 관심 있는 “썩어빠진 인간들”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2010년 HTC가 아이폰의 특징을 베낀 안드로이드폰을 선보였을 때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를 향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아이작슨은 잡스가 구글이 도둑질했다며 욕설을 퍼부었고 “안드로이드는 훔친 물건이기 때문에 파괴할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나는 국가대표다-조은지 기자의 훈련기] (20·끝) 럭비인생 1막을 내리며

    [나는 국가대표다-조은지 기자의 훈련기] (20·끝) 럭비인생 1막을 내리며

    꿈이 끝나고 현실이 시작됐다. 온몸에 들었던 멍도 희미해졌고, 새까맣던 피부도 급속히 하얘지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사우나 뜨거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이제는 가뿐히 잘 걷는다. 요즘 나는 다른 기자들처럼 스포츠 경기를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쭉 그래 왔던 것처럼, 럭비를 했던 시간이 ‘한여름 밤의 꿈’인 것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150일의 국가대표 생활이 일단락됐다. 기자일과 운동을 병행하느라 시간에 쫓겨 종종거렸지만 후회는 없다. 대한민국 여자럭비 사상 첫 승을 거뒀고, 가족 같은 감독·코치와 동료들이 생겼다. ‘KOREA’가 박힌 트레이닝복이 옷장을 가득 채웠다. 단순히 ‘추억’이라고 부르기에는 무거운 시간이었다. 대표선수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배에는 어렴풋이 식스팩이 생겼고, 허벅지는 단단한 꿀벅지가 됐다. (동료들이 놀리는) ‘슈퍼파워 숄더’도 장착했다.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매 순간 포기를 떠올렸지만 꾸역꾸역 잘 견뎌냈다. 힘든 터널을 통과하자 근성과 오기, 인내, 팀워크를 배울 수 있었다. 럭비를 하면 용감해진다더니 실제로 그렇다. 겁나는 것도, 무서운 것도 없다. 기자로서도 부쩍 성장했다. 앞으로 어떤 기자가 태극마크를 단 ‘선수’ 신분으로 해외 원정경기를 갈 수 있을까. 기자 명함을 갖고 있을 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잘하는 팀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걸, 비행기를 타고 원정경기 가는 게 별로 달갑지 않다는 걸,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도 꽤 많다는 걸 말이다. 벤치멤버를 보면 나도 모르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나도 두 경기 스타팅으로 나갔던 걸 빼면 거의 교체로 출전했다. 훈련도 열심히 했고 뛸 준비도 돼 있는데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벤치에서 팀원들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도 ‘나도 잘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취재를 다니면서 얘깃거리가 되는 선수-골을 넣은 선수나 주장 등-에만 집중했다. 묵묵히 땀을 흘리면서 승리를 위해 일조한 선수들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여자대표팀 조커(!)’였던 나는 이제 비주류 선수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은 ‘또 다른 나’다. 18일, 여자럭비팀은 김황식 국무총리와 오찬을 함께했다. 인도 아시아7인제대회를 마치고 해산한 지 꼭 2주 만이었다. 김 총리는 “늘 승리하는 것도 좋지만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다. 어떤 일이든 목표를 향해 열심히 한다면 실패하거나 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은 우리팀이 공식 경기에서 패배를 거듭한다는 얘기를 듣고 격려 차원에서 초청했는데 그 사이 ‘1승’을 해버렸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선수 12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여자럭비의 현재와 미래를 꼼꼼하게 묻고 들었다. “패배를 통해서도 희망을 주고 있는 팀”이라는 찬사에는 절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이제 내 ‘럭비인생 1막’이 내렸다. 다시 2막이 열릴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동안 따뜻한 응원의 눈길을 보내준 주변 사람들, 특히 ‘민폐 막내’에게 한없이 관대했던 체육부원들에게 감사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zone4@seoul.co.kr
  • [프로농구] 박찬희 25점 ‘약발’ 인삼公 시즌 첫 승

    [프로농구] 박찬희 25점 ‘약발’ 인삼公 시즌 첫 승

    프로농구 KGC인삼공사의 이상범 감독은 요즘 하루하루가 새롭다. 자신감이 넘친다. 김태술-박찬희-양희종-오세근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라인업’을 보유했기 때문. 지난 두 시즌은 코트에 들어설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티지.” 하는 기분이었단다. 리빌딩을 하겠다고 알짜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거나 군대에 보냈던 도박이 무모하지 않았나 가끔 후회도 했다.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당장 눈앞이 너무 팍팍했다. 2008~09시즌 8위, 2009~10시즌 9위로 바닥을 쳤다. 열매를 맺은 올 시즌, 경기 전 이 감독 기분은 확연히 다르다. 물론 국가대표팀 차출과 부상 등으로 손발을 맞춘 기간이 짧아 아직 짜임새가 부족하다. ‘우승후보’라는 예상과 달리 개막 후 2연패. 하지만 이 감독은 느긋했다. “54경기 중 두 경기일 뿐이다. 5연패해도 5연승하면 된다.”고 했다. 선수들의 조직력이 갖춰지면 언제든 연승을 탈거라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리고 18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전. 인삼공사는 삼성을 95-67로 대파하고 첫 승의 갈증을 풀었다. 지난 시즌 신인상을 탄 박찬희가 개인통산 최다인 25점(3점슛 5개, 어시스트 종전 24점)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로드니 화이트(12점 10리바운드)와 오세근(12점 7리바운드)이 점수를 보탰다. 전반까지 35-37로 뒤진 인삼공사는 3쿼터 박찬희의 3점포로 첫 역전에 성공했고 이후 줄곧 리드했다. 박찬희는 3쿼터에만 4개의 외곽포를 꽂았다. 쿼터를 마칠 땐 이미 16점차(68-52)로 앞서며 승리를 예감했다. ‘특급루키’ 오세근이 상대 이승준과의 매치업에서 든든히 버텨줬고, 김태술의 노련한 경기조율도 돋보였다. 김일두·이정현·김성철 등의 뒷받침도 좋았다. ‘서 말의 구슬’이 이제야 제대로 꿰어지고 있는 모양새. 어린 선수들이 리그에 적응하고 팀워크가 갖춰지면 더 무서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에서는 모비스가 82-81로 KT를 누르고 2연승을 달렸다. 경기 종료 5.7초 전 말콤 토마스의 훅슛으로 치열한 시소게임이 마무리됐다. 양동근이 14점 9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사기 완역 김원중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사기 완역 김원중 교수

    누구나 한번쯤 자신한테 물어봤음 직한 얘기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라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자문자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여 잠시 먼 엣날의 편지 한통을 감상해 보자. ‘대체로 문왕(文王)은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풀이했으며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습니다. 또 손자는 발이 잘리고 나서 ‘손자병법’을 지었습니다.(중략)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그것을 명산에 감추어 영원히 전하게 하고 다른 한편은 수도에 두어 후세에 성인군자의 살핌을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전날의 욕됨을 씻고자 하며 이제는 1만번 도륙을 당해도 어찌 후회할 수 있겠습니까.’ 사마천은 궁형(宮刑·거세)을 당한 치욕을 견디며 ‘사기’(史記)라는 불후의 명작을 저술했다. 그가 대작을 탈고할 무렵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서신 ‘보임서경서’(報任少卿書)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임안에게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번씩 끊어지는 듯하고 집 안에 있으면 갑자기 망연자실하고 집 밖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매번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구구절절한 마음을 전했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받고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자신이 ‘사기’를 지은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이 편지는 최근 출간된 ‘사기 서’(민음사 펴냄)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김원중(48·건양대 중문학) 교수는 지난주 ‘사기 서’에 이어 ‘사기 표’를 펴냄으로써 16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사기’ 130편을 완역해 낸 주인공이다. 그는 1995년 ‘사기’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9년 ‘사기 열전’을 시작으로 2005년 ‘사기 본기’, 2010년 ‘사기 세가’ 등에 이어 이번에 ‘사기 서’와 ‘사기 표’를 동시에 출간했다. 말이 ‘표’지 400쪽에 이른다. 모두 합치면 4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서’는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천문학 등에 관한 이론과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표’는 인물과 사건 등을 연대별로 자세하게 정리했다. 특히 ‘서’에는 ‘사람이란 진실로 한번 죽지만 어떤 경우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경우에는 기러기 터럭보다 가벼우니 그것을 다루는 방향이 다른 까닭입니다. ’ 등 주옥같은 글들과 함께 치욕의 종류 11단계를 열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설의 인물인 황제(黃帝)에서부터 당대 한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사기’는 2년 전 일본에서 처음 완역됐다. 하지만 이때는 공동집필이어서 개인이 완역해 낸 것은 세계에서 김 교수가 유일한 셈이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 ‘표’가 현대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표’의 서문만 번역됐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와 지방(건양대)과 서울을 오가느라 바쁘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사기’의 완역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동안 ‘표’는 단 한줄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완역이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었죠. 단순논리로 보면 ‘표’의 번역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의 중국 고전번역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될 의미있는 책이지요. 중국 이십사사(二十四史)의 정수인 ‘삼국지’와 ‘사기’를 20여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모두 완역하는 기나긴 노정 가운데 ‘표’ 번역은 가장 힘겹고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인류의 위대한 고전을 완성한 사마천의 고단한 삶, 치열한 창작열을 떠올리며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한 그는 ‘표’를 번역하면서 ‘사기’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중요하고 중국 상고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에 번역 작업에 채찍을 가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촌철살인의 필치가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역사를 꿰뚫는 사마천의 안목이 응축된 명작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단다. 그만큼 사기 번역에 간단치 않은 열정을 두었음을 의미했다. “사마천이 그토록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표’는 사마천보다 90년 뒤에 활동한 역사가인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한서(漢書)에서 계승 발전시켰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표’ 부분을 다룬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표라는 방식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큼 연표를 작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대한 분량의 ‘사기’를 어떤 식으로 번역했을까. “16년 동안 매일 밤 10시에 잠들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번역을 했습니다. 주말과 방학은 물론 명절 때도 오후에는 연구실로 출근했습니다. 웬만한 약속은 잡지도 않았고요. 그저 ‘사기’에 푹 빠져 지낸 세월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아주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가장 치욕적인 형벌인 궁형을 당하고 모진 삶을 견뎌내면서 살아 숨쉬는 인간과 권력에 대한 경전인 ‘사기’를 완성했으니 말입니다. ‘사기’ 안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잠재력을 지닌 역사의 주인공들이지요.” 김 교수는 번역 과정에서 중국 백화문(구어체로 쉽게 쓴 글)으로 쓰여진 책은 참고하지 않았다. 고전 원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중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창시절 유명한 문학평론가들의 글을 수백편씩 읽어가면서 되도록 쉽고 뜻이 잘 전달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한다. “중국 역사의 원형이지만 동아시아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기’를 한글세대인 중학교 2학년도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 완역을 하면서 때늦은 감이 있지만 폭넓게 접할 수 있도록 해서 나름대로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고생은 했지만 사마천의 치욕과 감정, 문학적 표현과 행간의 의미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관뚜껑을 닫을 때까지 인간을 논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사기’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없습니다.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사기’만 한 인간학적 교과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고 하지만 소품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에 보면 ‘태산은 한줌의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세세한 물결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인재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내용들이 담긴 스토리텔링의 보물 창고가 바로 ‘사기’이지요.” 김 교수는 스스로 사마천을 자신의 멘토라고 칭했다. 궁형을 당하면서도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그 마음, 그 정열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까닭이다. 하여 재평가 작업 차원에서 번역 일을 했단다. 사기를 읽는 사람에게 어떤 대목을 권하고 싶은지 물었다. “토끼를 잡고 난 후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의 고사로 유명한 한신에 대한 묘사에서 사마천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 고조 유방의 첫 부인으로 다른 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도록 만든 여태후의 본기를 번역할 때 가장 섬뜩했습니다. 여태후는 동양 최초의 여제가 아닙니까.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마천은 어떤 인물일까. “역사를 안다는 것은 인생을 두배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 속의 인물은 거듭해서 등장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마천은 냉정한 역사의 잣대로 인물을 재단하거나 서릿발 같은 말로 단죄하는가 하면 때로는 감성적인 언어로 인물을 감싸며 인간 그 자체를 탐색해 나갑니다. 사마천이라는 사성(史聖)을 만나 그의 대작을 한글로 복원하는 일은 저한테는 무한한 행복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중국 고전에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사기’에 이어 노자, 장자 등 주요 고전의 원문을 찾아 번역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자가 할 일이 그런 것 아니냐며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원중 건양대 교수는… 충북 보은에서 출생했다. 충남대 중문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 고전문학 이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이완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의 방문 학자와 타이완 사범대학 국문연구소의 방문 교수를 역임한 뒤 현재 충남 논산 건양대에서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천년의 강의-사마천의 생각경영법’(공저) ‘중국문화사’ ‘중국문학이론의 세계’ ‘통찰력 사전’ ‘중국 문화의 이해’ 등이 있다. 편저서로는 ‘고사성어 백과사전’ ‘허사대사전’ ‘허사소사전’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사기 본기’ ‘사기 열전’ ‘사기 서’ ‘사기 세가’ ‘정사 삼국지’ ‘당시’ ‘송시’ ‘손자병법’ ‘정관정요’ 등이 있다. ‘위진현학가의 자연관의 사유체계와 문론가에 끼친 영향’ 등 30여편의 학술 논문도 발표했다. 2010년 제1회 건양대 학술우수연구자상을 수상했다.
  • [서울광장] 면피 바이러스 백신 필요하다/박대출 논설위원

    [서울광장] 면피 바이러스 백신 필요하다/박대출 논설위원

    그들은 분노했다. 수년 동안 울부짖었다. 이건 제도권의 몫이었다. 검찰, 경찰, 법원, 교육당국 그리고 언론…. 다들 외면했다. 시민단체, 작가, 영화감독이 대신 나섰다. 소설로, 영화로 만들었다. 열풍이 불었다. 면피(免避) 본능이 꿈틀댄다. 아예 책임 회피 경쟁이다. 판사는 법 조항을 핑계댄다. 검사는 변호사를 탓한다. 하지만 변호사만 제 몫을 했다. 인화학교 교사들의 청각장애 학생 성폭력 사건. 이른바 도가니 사건의 역설이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정작 청각장애는 제도권에 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닫았던 귀를 이제야 연다. 뒤늦게 흥분한다. 후회하고, 개탄한다. 제2의 도가니를 막겠다고 부산을 떤다. 뒷북치기로 이어진다. 국회에선 법을 만들겠단다. 대법원장은 충격이란다. 법원은 양형기준을 바꾼다. 경찰청장은 재수사를 지시한다. 정부는 위원회를 만든다. 교육청은 학교를 폐쇄한다. 이국철이란 기업인이 연일 폭로하고 있다. 현 정권 실세에게 금품을 줬단다. 청와대는 소설 같은 얘기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똑같은 말을 했다. 청와대는 권력형 비리와는 다르단다. 개인 비리란다. 권력형 비리와 권력층 비리는 다른가. 한나라당이 놀랐다. 청와대를 압박한다. 그러자 대통령이 나섰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다. ‘난 도덕적이다.’는 객관적이 아니다. 국민이 인정해야 객관적이다. 당사자에겐 불편하겠지만 그게 진실이다. 검찰은 증거 없다며 팔짱을 꼈다. 교육감에겐 빠르더니, 실세에겐 신중하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나선다. 대통령 발언이 증거가 된 꼴이다. 면피엔 금역(禁域)이 없다.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우면산 재해는 천재(天災)라고 한다. 고물가, 전·월세난에 책임 공유가 없다. 책임 전가(轉嫁)만 있다. 군은 연평도 포격을 맞고도 여전하다. 도가니는 총체적인 분노다. 면피공화국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안철수 바람은 경고다. 무시하면 시스템은 다운된다. 경고가 백신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재벌이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재단과 연관된 또 다른 단체가 있다. 재벌 감시를 하는 곳이다. 재벌이 기부할 데는 널렸다. 하필이면 왜 그 재단에 줬을까. 착한 데 쓰고, 잘봐 달라는 뜻이 아닐까. 이왕 기부할 거, 그곳에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해볼 만한 의심이다. 기부한 뒤 비판이 줄었다. 의심은 짙어진다. 등기도 안 된 회사가 있다. 대기업 공사를 수주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간 격이다. 대기업 담당 임원은 회사 대표의 언니 남편이다. 역시 의심은 당연하다. 깨끗하게 썼다고 항변한다. 그러면 일단은 좋은 거다. 재벌 돈을 가난한 이들에 나눴으니 더 좋은 거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 목적이 선(善)이라고, 수단은 묻지도 말라는 건 억지다. 재벌이 의도한 바가 있다면, 착한 기부는 아니다. 그 돈을 착한 데 썼다고, 의도까지 착해지는 건 아니다. 목적도,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특혜 논란도 마찬가지다. 상식에 기초한 의심들이다. 이를 부정하면 역시 면피 바이러스 감염이다. 경쟁후보가 사퇴했다. 곽노현은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교육감에 당선됐다. 사퇴한 이에게 돈을 줬다.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선의(善意)라고 한다. 옥중에서도 변함없다. ‘난 착하다.’는 객관적이 아니다. 중국집 배달원이 돈을 줬다. 가난한 이들이 받았다. 상관관계가 없다. ‘난 착하다.’고 할 필요도 없다. “넌 착하다.”고 인정해준다. 자신이 주장하는 선의로는 면피가 안 된다. 그래도 면피하려 들면 역시 감염된 탓일 게다. 정치는 정당의 소임이다. 시민후보가 대신하겠단다. 정치의 위기다. 시민단체는 감시가 소임이다. 그들이 정치를 하면 감시는 누가 하나. 유행어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 경계를 벗어났다. 책임의 일탈이자, 권한의 일탈이다.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해야 된다. 이게 면피 바이러스를 막는 내부 백신이다. 허튼짓을 계속하면 도리 없다. 외부 백신이 나설 수밖에. dcpark@seoul.co.kr
  • JAPAN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JAPAN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1 네코무스메 열차 2, 3 요괴 라떼를 마실 수 있는 요카이 라쿠엔 입구 JAPAN TOTTORI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돗토리의 열차는 단선 궤도를 달린다. 선이 하나이니 급행열차가 지날 때면 완행열차는 역에 서서 무작정 기다린다. 시간은 돈이고, 돈은 곧 시간이라 급행열차의 요금은 완행열차의 두 배도 넘는다. 돗토리에서 급행열차를 타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돈이 이유겠지만 한편 돈보다는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적당히 두루 갖춘 돗토리의 여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일본 여행이 처음인 지나와 정주에게도 돗토리는 여유롭고 만만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글 Travie writer 이진경 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Travie photographer 김경현 취재협조 내일여행 www.naeiltour.co.kr, 돗토리현 진행협조 인페인터글로벌 기사를 시작하기 전에 *실제 여행시기는 8월30일부터 9월2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돗토리현에서의 일정과 취재는 독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기자가 이를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번 여행의 독자는 트래비와 내일여행이 함께한 도전자유여행 이벤트에 당첨돼 다녀왔기 때문에 내일여행의 ‘금까기’ 상품 내역에 해당하는 왕복항공권 및 호텔 숙박비 등에 대한 경비부담은 제외됐다. 단, 식비 및 입장료 등 개인지출 비용은 독자가 개별적으로 부담했다. *전통 료칸 숙박이 포함된 내일여행의 ‘돗토리현 미사사온센 금까기’는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며 83만9,000원부터(세금 및 유류할증료 제외, 항공사 및 여행사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 *기사에서는 편의상 독자의 존칭을 생략했다. 도전자유여행 33탄 돗토리현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이지나 새치름한 외모와는 달리 털털한 웃음소리를 지녔다. 대박 쇼핑으로 일본을 휩쓸 것 같았는데 의외로 먹고 보는 데 열심이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쿠폰을 끊어 미용실에 가는 알뜰 처자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와 영어를 좀 한다. 장점은 착하다는 것. 이정주 첫 해외여행이다. “비행기가 뜰 때 엄청 무서웠다”고 한다. 솔직한 청년이다. 누나에게 “제발 영어를 쓰지 말라”고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말을 잘 안 한다. 다이어리에 일본어 회화를 잔뜩 써 왔음에도. 장점은 착하다는 것. 1st day 두근두근 일본 첫 나들이 인천 공항에서 돗토리의 요나고 공항을 잇는 하늘 길은 1시간20분 거리다. 짧은 시간, 기내식으로 도시락까지 챙겨 먹으니 비행기가 말 그대로 뜨자마자 내린다. 입국에서 출국 수속까지 3~4시간이 일사천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기에 돗토리만한 곳이 없다. 1 요나고 공항역으로 들어오는 네코무스메 열차. JR 사카이선에서는 하루 15회 정도 요괴 열차를 운행한다 2, 3, 4, 5, 6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게게게노 기타로>의 세상이다. 800m 거리에는 요괴 동상이 가득하고, 요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요괴 열차 타고 사카이미나토로 고고~ 돗토리현 서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카이미나토.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자리한 사카이미나토까지는 요나고 공항에서 JR 사카이선을 타고 15분 정도면 간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남매가 탄 열차는 오후 2시39분에 요나고 공항역을 출발하는 ‘네코무스메 기타로 열차鬼太郞列車’. JR 사카이선에서는 기타로, 메다마오야지, 네즈미오토코, 네코무스메 등 네 종류의 열차를 하루 15회 정도 운행한다. 기타로, 눈알 아저씨, 간사한 쥐, 고양이 소녀가 그려진 열차는 운이 좋거나 일부러 시간을 맞추면 탈 수 있다. 열차 외관은 물론 내부 천장과 의자 등에 캐릭터가 가득하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水木しげる一ド 애니메이션 <요괴인간 타요마>로 한국에 소개된 <게게게노 기타로>는 요괴의 대가라 불리는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이다. 돗토리현 출신인 그 덕분에 요괴 공항에 내려 요괴 기차를 타고 요괴 역을 지나 마침내 요괴의 고향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로 이어지는 여정은 늘 요괴와 함께한다. 사카이미나토역에서 800m 가량 뻗어 있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게게게노 기타로>에 등장하는 요괴 캐릭터 동상과 요괴 캐릭터를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거리다. 열쇠고리에서 귀이개, 장식품, 문구, 술, 심지어는 화투까지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캐릭터 상품은 다양하다. 하나밖에 없는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직접 나무를 깎아 캐릭터를 만드는 가게에 들르면 된다. 투박하지만 개성 넘치는 기념품을 살 수 있다. 100엔 스탬프 책자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탬프 공간을 채우며 이 가게, 저 가게를 돌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시게루 로드에서는 ‘꼭’ 선물로도 그만! 똑딱 지갑 요카이 가마구치妖怪がまぐち 비슷비슷한 기념품을 파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가게다. 가마구치란 물림쇠가 달린 돈지갑. 똑딱 하고 열리는 동전지갑을 생각하면 쉽다. 요괴 가마구치라는 가게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마구치에는 <게게게노 기타로>에 나오는 요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작은 동전지갑 외에도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가마구치를 선보인다. 주소 鳥取?境港市松ヶ枝町14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120-375-639 이런 젓가락은 어때요? 유젠遊膳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끄트머리, 아케이드 근처에 자리한 젓가락 전문점이다. 몇백엔부터 몇천엔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젓가락을 단아하게 선보인다. <게게게노 기타로>의 캐릭터를 단 젓가락이나 젓가락 받침 등은 기념품으로도 그만이다. 주소 鳥取?境港市本町34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859-21-8200 요괴 라떼 한잔 요카이 라쿠엔妖怪樂園 요괴 캐릭터로 꾸며진 공원과 기념품 가게가 자리한 곳으로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근처 골목으로 50m 가량 들어간 곳에 자리했다. 간단한 음료와 스낵을 파는 곳에서는 초콜릿 가루로 요괴 모양을 만들어주는 요괴 라떼를 마실 수도 있다. 네 가지 모양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350엔. 주소 鳥取?境港市?町138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6시, 계절에 따라 다름 문의 0859-44-2889 지나 신기한 요괴 조형물과 인형들과 함께 찰칵~! 작은 마을에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도 즐비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 생일 선물로 고른 ‘방아 찧는 토끼 지갑’ 득템! 정주 어떤 가게의 셔터에 내가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기가 페인팅되어 있어서 흥분되었다. 구라요시역 일대 탐방기 지나와 정주가 이틀 밤을 묵은 아크21 호텔은 JR 구라요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했다. 1시간에 1~2대 꼴로 기차가 다니는 데다가 막차가 일찍 끊기는 돗토리의 현실을 감안, 이틀간의 저녁식사는 구라요시역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결정! 하지만 적당히 시골스러운 구라요시에는 식당과 이자카야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시끌벅적 구라요시 최고 인기 이자야카 로바타 카바?端かば 구라요시 사람들은 모두 모이는 듯한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한다. 계절 메뉴를 비롯 고기, 해산물, 전골 등 메뉴가 다양하며, 요일별 이벤트도 많다. 따로 요구하면 한국어 메뉴를 준비해 주지만 메뉴에 사진이 있어 주문이 어렵지는 않다.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 2-10-7 영업시간 월~목, 일 오후 5시~새벽 2시 금, 토 오후 5시~새벽 3시 문의 0858-27-0100 온갖 종류의 라멘이 한자리에 토멘보東麵房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라멘 전문점. 추천 메뉴는 쇼유 라멘으로 그 밖에 미소, 돈코츠, 규코츠 등 다양한 라멘과 교자를 판매한다. 체인점이지만 구라요시역 인근에서는 인기 있는 편. 주문은 자동판매기로 하면 된다. 700~1,000엔. 주소 鳥取?倉吉市山根 618-3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저녁 6시~새벽 3시 문의 0858-48-9518 일본 토종 햄버거 모스 버거Mos Burger 구라요시역 앞에서 KFC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패스트푸드점.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 방면 179번 국도변에 자리했다.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 359-1 영업시간 | 월~토 오전 8시~새벽 2시 일 오전 8시~밤 12시 문의 0858-26-6023 390엔 라멘? 사쿠라さくら 아크21 호텔 1층에 자리한 식당.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해 이용할 만하다. 라멘이 390엔으로 저렴한 편이며, 맥주와 안주 세트 메뉴도 있다. 밥과 미소시루, 생선구이, 밑반찬 등이 나오는 조식은 700엔.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2丁目 4-6 영업시간 오전 7~9시, 점심 오전 11시30분~오후 2시30분, 저녁 오후 5시부터 문의 0858-26-8579 지나와 정주의 선택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쇠고기 타이헤이몬大平門 아,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 곳이었다. 처음에 ‘고기! 고기!’라고 외치며 고기를 달라고 했는데, 점원이 ‘코~기?’ 하면서 전혀 알아듣지 못함을 체감. ‘스페셜 메뉴’인 듯한 그림도 없는 안내장을 보고 무턱대고 ‘okay’라고 외쳐 버린 우리. 850엔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1인분에 정말 적어 보이는 쇠고기 여섯 점…? 하지만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에 추가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 바삭한 식감의 지짐이도 Good choice! 주소 鳥取?倉吉市?谷町2丁目40 영업시간 | 월~토 오전 11시~밤 11시, 일 오전 11시~밤 10시 30분 문의 0858-26-4468 2nd day 돗토리 가이드! 버스투어 돗토리에서의 첫째 날, 버스투어 정보를 입수한 지나와 정주는 둘째 날의 일정을 일찌감치 정했다. 단돈 2,000엔으로 만만치 않은 교통비를 해결하는 건 물론 입장료, 점심식사에 후식까지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것. 버스투어는 월, 수, 토요일에만 출발하므로 투어에 참가하고 싶다면 미리 계획하는 게 좋다. 지나 2,000엔으로 드라마 <아테나>의 여러 촬영지와 코난 박물관을 돌아보고 특제 라멘, 젤라또까지 맛볼 수 있는 버스투어! 교통비가 비싼 시내에서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특히 더울 때 시원하게 먹은 복숭아 맛 젤라또의 맛은 아직까지 생각난다. 시라카베도조군 일대는 일본 전통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맛있는 과자도 맘껏 시식하고 특히 맛있던 만주도 샀다.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아 더 구경하고 싶었다. ‘비 오면 꽃무늬가 생기는 분홍 우산’을 사오지 않은 것은 아직도 가장 후회된다. 누가 대신 사다 주실 분 없나요~ 정주 버스투어로 <아테나> 촬영지인 간장공장, 절 앞의 빨간 등 거리, 인면어가 살고 있는 수로, 묘지, 백조와 오리가 있는 호수, 코난 박물관 등을 방문했는데 모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들이었다. 점심으로 버스투어에서 제공하는 라면을 먹었는데 소 뼈로 육수를 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후에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특히 가이드 누나가 추천해 준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아테나> 촬영지 만끽 투어 요금 2,000엔 출발일 매주 월, 수,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출발장소 JR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 버스 정류장 코스 구라요시역→구라요시시(시라카베도조군아카가와라)→고토우라정(규코츠 라멘 점심식사)→하나미가타 묘지(후로시키 만주)→호쿠에이정(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호조 오토 캠프장 휴게소 (‘코다’ 젤라토)→유리하마정(도고코 린카이 공원→하와이 보코로 온천)→미사사정(미사사 온천)→구라요시역 1 돗토리 고토우라정의 하나미가타 해안 묘지. 바다를 향해 2만 기 이상의 묘가 조성된 곳으로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2 시라카베도조군의 다카다슈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술도가다 3 도고코 린카이 공원 4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 <명탐정 코난>의 아가사 박사가 탄 차가 기념관 마당에 전시돼 있다 5 미사사 오스나히키 자료관에 전시된 산부쓰지 나게이레도 불당의 모형. 해발 520m 절벽에 세워진 건축 방식으로 유명한 절이다 구라요시시 시라카베도조군, 아카가와라는 하얀 벽의 건물과 붉은 기와를 얹은 전통적인 건축 양식의 창고가 자리한 거리다. 대부분의 창고는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쓰임새를 바꿨지만 겉모습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옛 정취를 느껴 보자. 시라카베도조군 유일무이 양조장 다카다슈조高田酒造 1875년에 창업한 양조장이다. 일대에 자리했던 수많은 술과 간장 제조장 중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에 다카다슈조에서는 드라마 <아테나>의 총격 장면이 촬영됐다. 버스투어의 가이드가 각종 장난감 총을 준비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다. 잘 익은 스기다마가 매달린 다카다슈조의 대표 술은 시쿤北君. 1,000엔에 구입할 수 있다. 주소 鳥取?倉吉市西仲町2663 문의 0858-23-1511 신용카드도 받아요~ 아카가와라 1호관赤瓦1?館 창고를 개조해 만든 토산품, 기념품 가게로 선보여지고 있는 아카가와라의 창고 중 유일하게 신용카드로 계산이 가능한 곳이다. 돗토리현이 자랑하는 20세기 배를 비롯해 과자, 떡 등 먹거리를 주로 판매하는데 시식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다. 주소 鳥取?倉吉市新町1丁目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858-23-6666 귀여운 아기 붕어빵 린린야りんりんや 한입 크기의 귀여운 붕어빵을 판다. 팥소를 사용하는 건 물론 검은콩, 고구마, 크림 등을 넣은 붕어빵도 있다. 비에 젖으면 숨겨진 꽃 모양이 나타나는 우산도 판매한다. 주소 鳥取?倉吉市魚町2570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6시 문의 0858-23-1996 고토우라정 바다와 산의 혜택을 고루 받아 식재료가 발달한 고토우라정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고르메 스트리트Gourmet Street라 불린다. 소 뼈를 우려내 육수를 만드는 규코츠 라멘과 아고카츠 카레, 해산물 덮밥인 카이센동 등 군침을 돌게 하는 먹거리가 많다. 고토우라정에 자리한 하나미가타 해안 묘지는 독특한 볼거리다. 2만 기 이상의 묘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곳으로 묘지가 왜 볼거리가 되는지는 가 보면 안다. 이곳 또한 드라마 <아테나>의 촬영지로 선보여졌다. 시원한 사골 국물 라멘 이자카야 카즈居酒屋和 버스투어가 들르는 이자카야로 JR 우라야스 역 앞에 자리했다. 규코츠 라멘을 짜지 않게 잘 끓이며,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도 맛있다. 620엔. 주소 鳥取?東伯郡琴浦町?万276-3 문의 0858-53-0006 돗토리현 대표 간식 후로시키 만주 ふろしきまんじゅう 143년 전통을 자랑하는 만주 가게. 일본 전통 설탕인 와삼봉과 흑설탕을 섞어 쫀득쫀득하고 달지 않은 만주를 선보인다.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므로 후로시키 만주는 유통기한이 3일밖에 되지 않는다. 선물로 구입한다면 공항에서 사는 게 낫다. 주소 鳥取?東伯郡琴浦町八橋348 영업시간 오전 6시30분 ~오후 5시 문의 0858-53-2345 호쿠에이정 호쿠에이정에는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山剛昌ふるさと館’이 자리했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작가인 아오야마는 돗토리현 출신 작가. 그를 기념하기 위해 2007년에 세워진 이곳에는 아오야마의 어린 시절 자료와 물건을 비롯해 <명탐정 코난>의 번역판 등이 전시돼 있어 전세계 팬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배가된 재미를 느끼려면 퀴즈에 도전해 보자. 퀴즈의 답이 기념관 곳곳에 숨겨져 있어 전시물을 세심하게 보게 된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퀴즈를 선택해 모두 풀면 인정증도 준다. 마당에 전시된 노란색 차도 흥미롭다. <명 탐정 코난>에서 아가사 박사가 타는 차를 재현한 차로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부품 하나하나를 모아 직접 제작한, 세상에 하나뿐인 차다. 주소 鳥取?東伯郡北?町由良宿1414 찾아가기 JR 유라역에서 걸어서 20분 이용요금 어른 700엔, 청소년 500엔, 초등학생 300엔 관람시간 4~10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11~3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 문의 0858-37-5389 유리하마정 석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도고코에서는 드라마 <아테나>의 많은 장면이 촬영됐다. 정우성과 수애는 도고코와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린카이 공원을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고 하와이 온천의 ‘보코로望湖?, 0858-35-2221’에서 사랑을 확인했다. 보코로에서는 촬영 당시 배우와 스태프의 일정표며 정우성과 보아가 먹었던 라멘 그릇 등 사소한 것까지 전시해 놓았다. 보코로는 호수 가운데에 떠 있는 노천 온천으로 유명하다. 본 건물과 다리로 연결된 노천 온천 건물에는 노천탕과 족욕탕이 자리했다. 온천의 평균 온도가 55도인 하와이 온천에서는 달걀 표면에 예쁜 그림이나 기원을 담아 온천에 삶는 온센 타마고 체험도 가능하다. 미사사정 9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말해 주듯 미사사 온천 마을에는 옛 정취가 가득하다. 허리 굽은 백발 노인이 지키고 있는 약국이며 오래된 사진관까지 이름이 없는 가게들조차 온천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남녀 구분 없이 노천 온천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가와라 노천탕은 미사사 온천의 명소 중 하나다. 족욕탕과 구분된 위태로운 칸막이 너머로는 밤낮 없이 동네 어른들이 노천욕을 즐긴다. 진쇼 축제 때 사용하는 진쇼(줄)를 전시한 오쓰나히키 자료관도 볼 만하다. 드라마 <아테나> 촬영 당시에 7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진쇼를 전시 중이다. 3rd & 4th day 한낮의 모래, 온천으로 씻다 돗토리 사구를 찾기로 한 날, 지난 밤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그래도 ‘돗토리 하면 사구’를 외치며 지나와 정주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구라요시역에서 돗토리역까지는 1시간 가량 거리. 덜컹덜컹 단선 궤도로 기차는 열심히 달린다. 돗토리 사구鳥取砂丘 센다이강은 바람에 쪼개지고 갈라진 주고쿠산지의 화강암을 바다로 흘러 보내 해안선까지 밀어냈다. 하루는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1년이 됐다. 1년의 시간을 거듭하길 10만번. 10만년이라는 세월 동안 조류와 바람이 쉬지 않고 나른 모래는 해안선을 따라 16km, 육지를 향해 2km에 이르는 사구를 만들어냈다. JR 돗토리역에서 20분. 돗토리 시내를 빠져 나오기 무섭게 사구는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다. 신발을 신고 있어도 사구의 부드러운 모래 결이 느껴지는 건 딱딱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에 익숙해진 발 때문이다. 1,000엔 택시가 지나와 정수를 내려준 건 사구의 동쪽 입구다. 저 너머 동해를 먹어 버린 해발 48m의 말의 등(제2 사구열)이 눈앞에 펼쳐진다. 모래 언덕을 오르길 15분. 말의 등에 올라타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사구의 모습을 조망한다. 사구와 맞닿은 동해는 역시 푸르다. 육지 쪽으로 눈을 돌리면 모래에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 통보리사초 군락지가 펼쳐져 동해와는 또 다른 푸르른 기운을 선사한다. 밥도 먹고, 기념품도 사고 사큐카이칸 砂丘?館 사구 동쪽 입구 맞은편에 자리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로 끼니때라면 들르는 게 좋다. 돗토리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 일대에는 마땅한 음식점이 없다. 자루소바 840엔, 아고카츠 카레 850엔. 주소 鳥取?鳥取市福部町湯山2164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 문의 0857-22-6835 지나 택시로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을 둘러보았는데 사구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정말 낙타가 있는 사막이라니! 낙타가 너무 타고 싶었지만 비가 보슬보슬 내려서 ‘낙타와의 이동’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막을 오르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마치 사우디의 여인이 된 것 같아 즐거웠다. 모래도 고와 경사진 언덕을 내려올 때도 무섭기는커녕 정말 신나게 내려왔다. 점심식사 시간! 메뉴에 그림이 없어 앞의 조형물을 보고 겨우 시켰지만 카레와 야끼소바의 맛은 일품이었다. 카레가 유명하다더니 정말 Good! 점심 식사를 하고 둘러본 우라도메 해안의 경치도 멋있었다. 저녁에 노을이 질 때 와도 좋을 것 같다.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시내로 오니 3시간이 약간 지났지만 영국 신사 같았던 택시 아저씨는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친절히 데려다 주셨다. 아저씨 감사해요~ 미사사칸三朝館 지나와 정주가 돗토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은 미사사 온천의 미사사칸이다. 둘째 날, 버스투어를 통해 미사사 온천 마을은 둘러본 터. 마지막 남은 시간은 온전히 료칸에서 보내기로 한다. 미사사 온천. 물이 참 좋은 곳이다. 9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천 마을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물 덕분이다. 라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미사사 온천은 건강에도 그만이라 미사사 온천 지대 주민들의 암 사망률은 일본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미사사 온천은 동맥경화, 천식, 당뇨병, 피부병, 부인병 등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미사사 물은 곧 미사사칸의 물이라 미사사칸에서의 온천욕 한 번에 온몸이 상쾌하다. 몸뿐만이 아니다. 미사사칸에서는 몸과 더불어 눈이 맑아진다. 로비와 대욕탕, 식당 등 미사사칸의 발길 닿는 곳곳에는 정갈한 정원이 자리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정원이 있는가 하면, 바위를 세우고 모래를 곱게 깔아 참하게 빗어 놓은 정원도 있다. 같은 정원이라 하더라도 보는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지겨울 틈이 없다. 식당과 온천으로 향하는 길, 정원이 있어 마냥 행복하다. 미사사칸의 대욕탕은 아침 저녁으로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 아침 저녁, 각각 다른 멋의 온천을 즐기라는 뜻일 테다. 커다란 노천온천이 딸린 대욕탕 외에 가족이나 커플이 따로 이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작은 노천온천도 마련돼 있다. 작은 노천온천은 체크인 후에 예약해 이용하면 된다. 문의 0858-43-0311 www.misasakan.co.jp 1, 2 돗토리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돗토리 사구 3 돗토리 사구 입구에 전시된 모래 조각 4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미사사칸의 정원 5 미사사칸 노천온천 입구 6 미사사칸의 조식 7 미사사칸 식당으로 가는 길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지나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 다른 곳도 모두 좋았지만 마지막 피로를 풀기에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맞이한 감동의 석식! 돗토리현에서 유명하다는 게다리와 새우 맛이 특히 일품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온천! 밤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혼자였는데 정말 선녀가 된 기분이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이니 그 동안의 피로도 말끔히 풀렸다. 아침잠이 많지만 다음날에도 아침을 먹고 간단히 온천을 즐겼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아침 온천도 떠나기 싫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온천만 하기 위해서 일본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이제는 100% 공감이 간다.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는 순간에도 떠나기 싫었던 미사사칸. 정주 미사사칸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미사사칸으로 향하였다. 미사사칸에서 우리는 마지막 1박을 묵었는데,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도 입어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름답게 꾸며진 온천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였다. 저녁식사는 회, 대게, 샤브샤브, 튀김 등이 나왔는데 한결같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다음날 아침 정갈한 아침식사와 마지막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요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Travel to Tottori ▶가는 방법 인천과 요나고를 잇는 아시아나항공이 화, 금, 일요일, 주 3회 운항된다. 인천발 요나고행 항공편은 화, 일요일 오후 12시30분, 금요일 오전 9시30분에, 요나고발 인천행 항공편은 화, 일요일 오후 3시, 금요일 낮 12시에 출발한다. 요나고 공항 인, 아웃으로 3박4일 여정을 꾸린다면 화요일 출발만 가능한 것. 2박3일 등 기타 일정이라면 요일 선택이 자유롭다. ▶현지교통 이렇게 저렴한 택시가~ 돗토리시를 여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돗토리역에 자리한 관광안내소에서 이름, 숙소 등 간단한 정보만 작성하면 4명이 3시간 동안 1,000엔에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3시간을 이용한다면 시내에서 20~30분 가량 거리인 돗토리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 등지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우라도메 해안 대신에 돗토리 시내를 돌아봐도 괜찮다. 1,000엔 택시 이용자는 와타나베 미술관, 간논인 정원 등의 입장료를 할인 혜택이 있는 쿠폰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30분 문의 돗토리시 국제관광객 서포트 센터(한국어) 0857-36-3767, 돗토리시 관광안내소(일본어) 0857-22-3318 웬만한 곳은 다 서요~ 공항버스 미사사 온천에서 요나고 공항으로 간다면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자. 돗토리현 여기저기를 돌고 돌아가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온천 송영버스와 기차를 몇 번 갈아타는 것보다는 편리하다. 1,500엔. 코스 미사사 온천 관광상공센터 앞→08:25 미사사 온천 입구(미사사칸 앞)→08:30 미사사 로얄 호텔 앞→08:45 구라요시역→09:00 하와이 온천→광장 10:00 가이케 온천→10:30 요나고 공항 ▶호텔 아크21 ア―ク21 일반적인 비즈니스호텔과 비교해 비교적 넓은 객실을 지녔다. 한국어로 된 호텔 설명서와 주변 안내도를 나눠주며, 한국 티브이 채널도 있다. 음료, 주류 자동판매기와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수 있으며, 6층 전망대 목욕탕이 무료다. 목욕탕은 오전 6시~오전 9시, 오후 1시~오후 5시에는 여성, 오후 6시~자정에는 남성이 이용한다. 일회용 카드 키를 사용해 이틀 이상 묵는다면 매일 새로운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며 별도의 체크아웃이 필요 없다. 문의 0858-48-1021 ▶지나의 말 8월 말, 느지막이 간 여름휴가. 동생과 함께한 첫 해외 여행이어서 어느 때보다 의미 있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 처음 당첨 소식을 듣고 동생이 한 말이다. “누나는 정말 타고난 운이야~” 그런 동생에게 나 역시, “이런 누나 덕에 너도 같이 갈 수 있잖아~” 라며 웃었다. 기다림에 더 설레였던 돗토리현 여행! 평소 티격태격할 때도 있긴 하지만 사소한 고민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동생이기에 때로는 친구 같기도, 철없는 나를 다독일 때는 오빠 같기도 한 동생과 함께한 즐거운 기억이 오래 여운에 남았으면 한다.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 드린다. 돗토리현은 정말 천천히 다시 걸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시다. 친절한 사람들과 깨끗한 거리. 그곳에서 느껴지는 여유. 한 순간, 한 순간이 영화 같았던 도시. 다음을 기약하며 소중한 추억을 되새겨본다. 1 요나고 공항 2 돗토리시에서 이용할 수 있는 1,000엔 택시 3 아크 21 비즈니스호텔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데스크 시각] 돈이 언제나 축복은 아니다/박정현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돈이 언제나 축복은 아니다/박정현 경제부장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명분의 하나는 환전이었다. 많은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에서는 승용차로 몇 시간만 달리면 국경이 나온다. 국경 검문소를 지나면서 여권에 출입국 스탬프를 찍고 환전을 해야 한다. 여간 번거로온 일이 아니다. 여행 몇 번만 하고 나면 여권은 금세 붉은 스탬프로 가득하고, 주머니는 각 나라의 동전들로 묵직해진다. 유럽을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으면 이런 불편이 사라진다는 논리가 유럽사람들에게는 설득력 있게 들렸다. 독일, 프랑스 등 11개 나라가 유럽 통합에 찬성했다. 드디어 1999년 1월 1일 단일 화폐 유로가 유통되자 유럽은 환호했다. 유로는 달러에 버금가는 새로운 기축통화로 주목을 받았다. 유럽국가들의 경제수준은 독일과 프랑스의 수준으로 올라선 듯했다. 유럽의 기세는 북미자유무역협정, 아세안 같은 지역경제체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로는 달러보다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로 출범 이후 유럽의 물가는 두배가량 올랐다. 사달은 통합 12년 만에 터지고 말았다. 나라 살림을 북유럽국가처럼 복지에 펑펑 쓴 남유럽국가들은 올 들어 심각한 도미노 국가 부도위기에 몰렸다. 남유럽국가들에 채권이 물린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도 등급 강등을 당할 처지다. 프랑스·독일의 은행들은 자신들에 투자한 미국과 신흥국을 흔들고 있다. ‘피그스’(PIIGS)로 불리는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등 유로존 5개국이 유럽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구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독일은 지금쯤 마르크화를 없앤 걸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유럽 통합 당시 독일에서는 세계 기축통화 마르크화 포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유독 강했다. 그리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후회하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화폐 드라크마를 갖고 있었더라면 환율을 수단 삼아 재정위기를 돌파할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유로체제에서 그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주변국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그리스의 국가부도 시점과 유로존의 해체 여부에 있다면 지나치게 냉정하게 들릴까. 유럽 위기는 화폐 주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절히 느끼게 한다. 비록 원화가 5000만명의 소규모 경제권에서 사용되는 화폐라 하더라도, 국가의 3대 요소인 영토에 비길까. 동남아와 중국에서 우리 화폐를 환전하지 않고도 사용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이 바로 우리나라의 국력이자 자긍심이다. 그 화폐가 기축통화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세뇨리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나라다. 중세 때 프랑스 세뇨르(군주)가 재정을 메우려 금화에 불순물을 섞어 유통시키면서 챙긴 이익이 바로 세뇨리지 효과다. 이런 달러 대비 우리의 화폐가치인 환율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걱정을 떨칠 수 없는 게 우리나라 사정이다.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부모의 비애랄까. 환율이 높아지면 국민이 져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환율마저 오른다는 것은 서민의 삶을 짓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환율이 내린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외환보유고의 달러를 꺼내 환율을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 세계 각국의 외환 보유고는 10조 달러,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고작 3000억 달러다. 환투기세력의 규모도 10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2003년 환율 하락을 막느라 14조원의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환율 상승을 막느라 72조원어치의 달러가 사라졌다. 미국의 더블딥(이중침체) 전망을 놓고 논란이 많지만 이미 미국 경제는 더블딥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갖는다. 4분기에는 미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비공식적으로 나온다. 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기에는 여전히 캄캄하다. 외환보유고는 소중하지만 함부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돈이 언제나 축복일 수 없다는 점은 ‘반(反)월가 시위’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jhpar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다스름’이라 한다. 판소리에서 목을 푸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에서의 첫 시작도 그렇다. 무대는 전통 한옥이다. 처마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앞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잠시 멈춰진다. 사람들의 숨소리 또한 그렇다. 여인의 열 손가락이 가야금 열두 줄을 타기 시작한다. 느린 진양조장단에서 시작된 가야금 소리는 중모리에서 중중모리,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잘도 넘어간다. 줄을 희롱하듯 농현(絃)한 지경에 다다른다. 이윽고 많은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국악으로 하버드대서 박사학위 받아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다가 우연히 이런 광경에 매료돼 국악을 배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국악기로 연주 발표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싶다. 우선 한글을 배우기가 어렵고, 가야금 등의 전통 국악기 또한 배우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당에서 보기 드문 국악 행사가 열린다. 미국인 여성 조세린(41) 배재대 교수가 가야금 독주회를 처음 갖는 것. 그의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로,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22살 때 한국에서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다 매료돼 가야금 전도사로 나섰고 하버드대에서 가야금 병창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국내 최초로 가야금 산조 독주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그는 성금연(1983년 작고)류의 긴 산조(45분 분량의 풀버전)를 선보일 예정이다. 외국인이 짧은 산조는 물론이고 긴 산조의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있는 일이라는 게 국악계의 평가다. 지난달 말 대전 배재대 연구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대학의 국제학부 학생들에게 ‘종교와 사회’ ‘비교미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한쪽 편에 가야금과 북이 맨 먼저 보였다. 또 벽에는 각종 국악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평소의 국악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막 강의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어서 그런지 “잠시 목을 축여야 해요.”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다. 이어 녹차와 찻잔을 꺼내 오더니 차 한잔을 권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명함에 새겨진 ‘조세린’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띄었다. 누가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하숙집 오빠들이 지어준 이름 조세린 “하숙집에 있을 때였지요. 같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 이름(조셀린)을 얘기하면서 한국말 ‘조세린’과 비슷하니 그렇게 하자고 해서 조세린이 됐습니다. 그때 하숙집에는 오빠들도 있었는데 경상도 말을 썼어요.” 녹차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차를 몇 잔 더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외국인 특유의 축약과 생략이 있는 어투였다. 중간중간 영어를 섞기도 했다. “어제 전주에 계신 선생님한테 가야금 배우러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어요. 공연을 앞두고 이것저것 최종적으로 (점검을) 받고 있는데 참 어려워요(웃음).” 그는 여러 스승을 모셨지만 현재는 성금연 선생의 딸인 지성자(전북 무형문화재)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야금이 어렵기는 하지만 리듬을 심오하게 타고 있으면 생각의 깊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야금 독주 얘기가 나왔다. “저 스스로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공연할지도 궁금하고요.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 외국인으로는 처음일 것 같은데 맞죠(웃음)? 이번 독주회는 긴 산조라서 더 어려워요. 산조는 20년 전 처음 배웠다가 잠시 중단하고 (가야금) 병창을 공부했지요. (산조를) 다시 본격적으로 한 것은 올 3월이었는데 20분 분량을 소화했어요. 그 후 25분 분량을 더 늘리는 데 많이 힘들었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성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독주회를 갖는 소감 또한 남다를 터. “알래스카에 계신 부모님도 오세요. 딸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것이지요. 가야금 공부라는 것이 매번 산에 오르는 것 같아요. 왜 그렇잖아요. 산에 오를 때, 다 왔나 생각하면 또 산이 있고 오르고 또 오르고, 가야금 하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이번 독주회도 큰 산에 오르는 첫 단계이겠죠.” 가야금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국립국악원에서는 서울대 이지영 교수와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배웠다고 했다. 또 나중에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황병기 선생에게도 잠깐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가장 궁금했던 하버드대 논문에 대해 물었다. 오죽 국악을 좋아했으면 한국에 있다가 일부러 미국으로 건너가 국악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을까.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판소리 흥부가에 제비소리가 있거든요. 그 대목을 논문 제목(지지지지 주지주지)으로 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가야금을 들고 미국과 한국을 몇 번 왔다 갔다 했지요.” 그러면서도 틈틈이 외국에서 가야금 연주를 했단다. 하버드대에서도 했고, 2002년에는 베를린과 시카고, 알래스카에서도 연주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유럽에 갈 일이 있을 때에도 가야금을 들고 가 프랑스 그르노블, 독일 쾰른 등에서 연주했다. 그가 가야금 전도사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외국에서 연주할 때 ‘미국 사람이 왜 한국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은 혹시 받지 않았을까. 그는 “한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받지만 외국에 가서는 거의 없어요. 좋아서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죠?” 하고 오히려 반문한다.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14페이지 악보 달달 외는 가야금 힘들죠” 내친김에 또 한 가지 우문을 던졌다. 가야금을 배우면서 정말 후회하지는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적은 없어요. 물론 힘들어요. 특히 (가야금의) 긴 산조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14페이지에 달하는 악보를 다 외워야 했어요. 가야금을 배우면서 잠시 한눈을 팔면 골목길로 빠지고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마음은 빨리 터득하고 싶은데 그렇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가사를 외워야 하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먹고 싶은 당근을 바라보는 말의 심정인 것 같아요. 아무튼 가야금을 잘하면 멋있어요.” 미국인 입장에서 한국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참 매력 있어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 매력을 잘 살리지 않는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더니) 한국인들은 음악의 뿌리를 다른 나라에 심고 있어요. 학교에 와서 라디오를 켜면 서양 음악이 나와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은 서양 음악을 배우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의를 생각하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재미를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죠. 가야금 산조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가끔 시골에 가서 소리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참 훌륭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소리 듣고 자연 속에서 빚은 막걸리 한잔 하고 얼마나 좋아요(웃음). 한국인은 한국 밥을 먹어야 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서양 음악에 심취하지 않도록) 잘 잡아야 해요.” ●국악은 희로애락 표현하는 삶 같은 음악 그는 이어 국악은 말 그대로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덩실덩실 흥을 돋우는가 싶으면 한풀이를 하는, 그런 음악이 좋다고 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산에 오르는 것처럼 한국 음악과 함께 걸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 클라리넷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 오보에를 배울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공군 정보장교 출신으로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근무했다. 외할아버지는 진주만 공습 때 해군대위였다. 아버지는 일본에 잠시 살다가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경험이 있어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해 친근함을 갖게 됐다. 17살 때에는 일본, 20살에는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다. 그래서 일본의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중국에서는 쟁과 서예를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의 가야금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들으면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를 통해 국립국악원을 소개받았던 것이다. 가야금 병창을 배울 때에는 한글을 못 읽어 무조건 외우면서 시작했다. 특히 다스름이니, 진양조니 하는 것을 배울 때에는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아팠지만 언젠가는 좋아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꾹 참고 견뎠다. “가야금이 저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조세린 교수는… 1970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이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현재 그의 아버지는 알래스카에서 변호사로, 어머니는 요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7살 때 일본에 살면서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20살에는 중국에서 쟁과 서예를 익혔다. 민속음악으로 유명한 미국 웨슬리언대를 나왔으며 중국 난징대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2년 22살 때였다. 미국에서 거문고를 하는 한국 사람에게 소개받아 국립 국악원에서 가야금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학위 논문의 주제는 모두 국악이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가야금 연주도 여러 번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지영 서울대 교수,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
  •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순수한 열정으로 산 오르는 사람들 그렸죠”

    관객의 가슴을 움직일 ‘이야기’에 목마른 충무로에 단비가 내렸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2011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에 ‘산의 기도’를 낸 양경모(33)씨가 4일 선정됐다. 협회는 ‘산의 기도’를 비롯해 총 8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단편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한 양씨는 “너무 큰 공모전이라 기대는 안 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나 같은 신인 감독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이런 작품을 누가 맡겨 줄까 생각했다. 최우수상을 받게 돼서 꿈만 같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산의 기도’는 칸첸중가봉 등정을 둘러싼 산사람의 도전과 우정, 경쟁과 갈등, 분노와 좌절을 다뤘다. 탄탄한 구성력은 물론 작가가 직접 칸첸중가에 오른 것처럼 묘사가 살아 꿈틀댄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는 여성 산악인과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남성 산악대장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둘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깊은 우정을 간직한 채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남성 산악대장의 후원사가 산악팀 존속을 무기로 무리한 등정을 압박하면서 사단이 난다. ‘인재’(人災)가 예고된 상황에서 여성 산악인은 옛 사랑의 목숨을 구하려고 지옥 같은 등반길에 오른다. 양 감독은 “2004년 칸첸중가에서 사고를 당한 계명대 산악부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면서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은 봉우리에 오르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산악계의 풍토가 대세처럼 비춰지지만, 여전히 순수한 열정만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의대 졸업후 영화로 인생 항로 수정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양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인생 항로를 수정했다.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면서 주말에 한겨레영화제작학교를 다녔다. 2005년 27세의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의사 면허를 가진 그는 이따금 선배들이 경영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편 틈틈이 단편 작업을 했다. 단편 ‘시베리안 캥거루’(2009)는 포르투갈과 영국, 루마니아의 국제영화제에 초대를 받는 등 호평을 얻었다. 양 감독은 “의대에서 생사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생명의 소중함 등을 배웠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한예종에 다니면서 이쪽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 바닥인지 충분히 봤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 스릴러·호러 같은 장르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우수상에는 ‘경부고속도로’(서선덕), ‘공항에 부는 바람’(손학렬·김율), ‘자전거 왕-민족의 영웅 엄복동’(최슬기), ‘헤어월드’(손정섭), ‘공무원블루스’(김선자), ‘위 아 더 원’(최종현·임진평), ‘뛰니까 청춘’(한유림) 등 7편이 뽑혔다. 상금은 최우수상 3000만원, 우수상 각각 1000만원이다. 대상 수상작은 내지 못했다. 기성과 신인, 국적·연령 제한 없이 대문을 활짝 연 공모전에는 8월 22~29일 137편의 시나리오가 접수됐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김지헌 원로작가,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 최용배 청어람(영화 ‘괴물’ 제작사) 대표, ‘박봉곤 가출사건’의 김태균 영화감독, 오희성 롯데시네마 영화마케팅팀장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에 오른 15편을 심사했다. 시상식은 오는 14일 오후 5시 서울 인현동 PJ호텔에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택시 강도를 당했습니다. 여자 승객이 납치됐어요….” 2003년 4월 14일 새벽 경기 부천중부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 왼손을 감싼 택시기사 A(당시 35세)씨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손가락을 칼에 심하게 베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일단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자기가 당한 납치 사건을 신고했다. 그는 20대 초반의 여자 손님을 태운 것은 오전 5시 30분쯤이라고 했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남자 2명이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합승 손님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그 손님을 찌르고 저도 공격했어요. 바로 칼을 겨누곤 고가도로 밑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는 차를 세운 뒤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칼에 찔린 여자 손님을 뒤따라온 검은색 쏘나타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A씨의 말대로 여자 손님은 조수석에서 칼에 찔린 듯했다. 흥건히 젖은 조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 줬다. 무엇보다 앞좌석을 적신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끌려다닌다면 납치된 여성은 한두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경찰은 관내에 비상을 걸었다. 감식반원들은 좀처럼 범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괴한 2명이 칼을 휘둘렀다는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깨끗했다. 콘솔박스 앞에는 현금 3만원과 여성의 신용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신용카드를 빼앗으려 했다면 카드에 지문 같은 흔적이 남아 있을 터. 감식반은 가변광원기를 들이댔지만 뭉개진 몇 개의 지문만 발견됐다. 조수석 시트 밑엔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납치된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 돈 훔치려던 강도들 맞아? 그냥 다 두고 갔어. 좀 이상한 놈들인데….” 택시 강도는 큰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벌이가 뻔한 택시를 노리는지라 100원짜리 동전까지 털어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엔 흙이 묻어 있었다. 차량 바퀴와 휠에는 흙탕물이 튀겨 있었다. 택시를 꼼꼼히 살핀 한 베테랑 감식반원이 택시기사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시 외곽에서 손님들을 받았나 보죠?” “아니요. 전 시내만 뛰는 걸요.” 몇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현장 보고였다. 최초 택시 강도 신고가 들어온 파출소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하천변. 수사반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농로로 쓰이는 곳이라 곳곳이 심하게 파인 곳이 많았다. 숨진 여인은 B(21)씨.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꿈 많은 초보 회사원에게 범인은 사정 없이 칼을 휘둘렀다. 범인은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끌어내려 20m가량 데려간 듯 보였다. 혈흔은 다리 위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혈흔과 주변 흙을 모아 담았다. 6시간가량 현장 감식을 마치고 오는 길. 감식반원은 웅덩이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고참 감식반원은 흙탕물을 용기에 담았다. “선배 뭐해요?” “범인 잡아야지….” 며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 결과가 나오자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를 몰았다. 형사들이 몰려간 곳은 신고자 A씨의 집이었다. “당신을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A씨가 미심쩍었다. 방금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치곤 진술 내용이 허술했다. 특히 강도를 당할 때 상황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진술한 내용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굳이 손님까지 탄 택시를 범행 대상으로 고른 점이라든가, 돈은 놔두고 손님을 납치해 간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범인임을 알려준 것은 흙이었다. 운전석 깔판 밑과 운전석 하부에 붙은 흙을 분석한 결과 피해 여성이 발견된 하천변 토양과 일치했다. 택시 바퀴와 뒷문 문짝에 튄 흙탕물 역시 진입로의 웅덩이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택시 기사는 다리 밑에 그녀를 버린 뒤 택시 강도를 당한 척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흙… 1100가지 색을 담다 흙의 성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광물학적인 분석으로 편광현미경 등을 이용해 조암광물의 형상과 입자 상태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은 3000여종. 하지만 기본 구성물인 조암광물은 수십종뿐이다. 법과학은 이 조암광물을 분석하고 따라간다. 두 번째는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크로마토그래프법, 열분해 분석법, X선법 등이 있다.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은 그것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그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에 따라 색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외국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양은 색상에 따라 1100여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토양 감정이라고 하면 흙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흙 속에 섞여 있는 기름이나 유리, 비료, 농약, 심지어 섬유까지 대상으로 한다. 현장에 방울져 떨어져 있던 적하(滴下) 혈흔도 A씨 검거에 큰 역할을 했다. B씨가 이미 살해당한 뒤 하천변에 버려졌다면 현장에는 다수의 적하 혈흔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이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현장의 혈흔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고, 피는 택시기사 A씨의 것으로 판명 났다.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였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A씨는 입을 열었다. 7개월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했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했다. 무리하게 택시를 구입한 데다 이전의 카드값까지 밀리면서 빚이 1억 5000만원까지 늘어나자 자기 택시를 이용해 강도짓에 나섰다고 했다. 국과수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숨진 B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됐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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