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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날밤 거부 새댁 억지 합궁하려다 줄행랑친 홀아비 사연

    첫날밤 거부 새댁 억지 합궁하려다 줄행랑친 홀아비 사연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5. 고추 달린 신부에 놀란 신랑, 간첩신고 (선데이서울 1973년 3월 25일) 홀아비가 술집 접대부를 새 아내로 맞았더니 뜻밖에 첫날밤 동침을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는 다음날 밤도 신부와의 실랑이로 밤을 지새웠지만 실패. 그러나 무작정 참을 수만은 없는 일, 사흘째 밤에는 힘으로 승복시키렸더니 애걔걔! 신부에게 고추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신랑(?)의 등에 흥건히 괴였던 땀줄기가 순간 차갑게 식었다. 그는 그길로 일어나 “달렸어… 달려!”라는 외마디 소리를 남기고 경찰서로 달려가 신부(?)를 간첩이라고 신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신부의 기구한 운명을 알고는 “내가 조금만 냉정했더라면…”하고 후회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홀아비 이종식(34·가명)씨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성모(28)양에게 장가들기는 지난 3일 의 일. 성양은 그때까지만 해도 횡성면 어느 마을에 있는 주점의 접대부였다. 지난 1월 27일 이 술집에 떠돌아 들어온 성양은 술집 접대부로는 좀 나이가 든 편이지만 서글서글한 얼굴에다 유창한 노래 솜씨로 그래도 인기가 있었다. 지난 2월 중순 어는 날 이 술집의 단골인 이모(42)씨가 몇 년 전 아내를 잃은 후 홀아로 살고 있는 친척이 있다면서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중매를 들었다. 처음에는 “저 같은 계집이 무슨…”하고는 펄쩍 뛰었다. “혹시 이 손님이 내 정체를 알고 놀리느라고 그러는 게 아닐까”하고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했다.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매쟁이 이씨는 남의 사정에는 아랑곳 없이 끈질기게 덤벼들었다. 장본인을 데려다 선도 보였다. 상대방도 싫지 않은 눈치고 성양도 맘에 들었다. 시집이 가고 싶은 마음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드디어 지난 3일 이씨 집으로 옮겨 살림을 차렸다. 엄마 없이 홀아비 손에서 자란 11살짜리 딸(국교 4년)과 아들도 첫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정녕 새 인생의 길이 확 트인 것 같았다. 첫날밤, 몇 년을 어린 자식들 틈에 끼여 낙이라고는 모르고 지내던 이씨에게는 가슴 벅찬 밤이었다. 밤을 잊었던 세월들을 털어 버리고 첫날밤의 정을 나누려던 이씨는 신부의 완강한 뿌리침에 ‘술집을 떠돌아다녔으면서도 그토록 굳게 몸을 지키다니’ 오히려 대견하기만 했다. 매번 실랑이로 밤을 새운 이씨는 ‘명색이 부부인데 아무리 이럴 수가 있느냐 싶어 사흘째 밤, 이씨는 힘으로 덤비고 말았다. 그러다가 뜻밖에 고추가 달린 것을 알고 기절할 만큼 놀란 김씨가 간첩이 아닌가 하고 신고했던 것. 이씨의 신고로 성양은 물론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은 끝에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달렸다고는 하지만 흔적뿐이었다. 유방도 그렇게 탐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남자의 가슴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이씨는 30년 동안이나 이 사실을 감추고 살아온 성양의 기구한 운명을 알게 되자 ‘내가 그만 탄로를 내게 하다니’하는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평생 직업이라고는 가져본 일 없이 남의 집 결혼식이나 환갑집을 찾아다니며 장구나 치고 노래나 불러 주며 ‘남자 기생’이란 소리를 들어오던 이씨이기에 성양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양은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어느 외국인과 잘못된 관계를 맺어 태어났다고만 알고 있다. 남편의 이름조차 모르는 어머니 성모(54)여인은 한을 안고 고향인 경기도 가평에서 아비 없는 아들을 길렀다. 국민학교 들어갈 때쯤부터 그 아들의 행동은 여자애와 같아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변했다. 차츰 남자애들과는 멀어지고 여자애들과 어울려 놀게 되었다. 모두들 계집애 같다고 놀려댔다. 자식이 누구 못지않게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아들이 미웠다. 18살 때 그 아들은 무작정 가출했다. 춘천에서 대폿집 심부름 꾼으로 일했다. 술상 뒷바라지를 하면서 색시들이 부르는 노래를 흥얼댄 것이 제법 노래 잘 부르는 놈으로 통하게 됐다. 이때부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것이 달리긴 왜 달렸노’ 하고 마음속에서 스스로 푸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아비 모르고 태어나 어릴 적엔 분명 남자 그러나 결국 떨어진 곳은 변두리 대폿집. 처음에는 심부름 꾼으로 일했으나 하는 짓이 하도 여자 같아 하루는 주인이 장난삼아 여장을 시켜 술상 머리에 앉혔다. 그랬더니 그 노래 솜씨에 손님들이 반해 으레 다른 여자를 젖혀놓고 찾게 됐다. 인기 있는 접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 아닌 여자로서는 접대부 생활이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디 가나 한 달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한집에 3일만 있으면 “단골이니 손님 요구대로 고분고분 하라”는 주인의 명령이 떨어진다. 한번 후한 팁을 던져주고 점잖게 물러간 손님이 두 번째 올 때는 반드시 몸을 요구하고 주인도 명령했다. 속이는 것도 한 두번이다. “먼저 가 계시면 옷 갈아입고 뒤쫓아가겠다”고 해 놓고는 뺑소니쳤다. 그러면 열이면 아홉이 다음에 다시 찾아와 행패를 부리게 마련. 그렇다고 성양이 한결같이 속일 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러는 남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버텨내기도 했지만 완력으로 덤빌 때는 어쩔 수 없이 망신을 당하고 만다. 이럴 때는 눈물로 호소하면 분노했던 남자들도 대개 기구한 운명에 동정, 눈 감아 주었다고. 소문이 날 때는 그날로 그 고장을 떠나야 했다. 그러면서도 보건증은 꼬박 발급받아 가지고 다녔다고. 그런 성양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목욕. 양양, 고성 등 시골로 다닐 때는 독탕이 없어 한 달에 한 번씩 남들이 다 잠자리에 든 밤중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대충 몸을 닦아야 했다. 성양이 시집가기 전 몸담고 있던 술집 주인은 소박 맞고 돌아온 성양이 불쌍해서 부엌일을 하도록 해주었으나 그녀도 그도 아닌 성양은 요즘 술만 퍼마신다고. 정리=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달샤벳 동생에서 밍스로…신인 패기로 가요계 흔들까(종합)

    달샤벳 동생에서 밍스로…신인 패기로 가요계 흔들까(종합)

    ‘말괄량이’라는 뜻을 가진 걸그룹 밍스(MINX)가 첫 쇼케이스로 컴백을 알렸다. 지난해 9월 ‘우리 집에 왜 왔니’ 이후 9개월 만이다. 이날 밍스는 래쉬가드 복장으로 타이틀곡 ‘러브 쉐이크’(Love Shake)의 발랄한 무대를 선보였다. 밍스는 ‘휘핑크림 춤’, ‘파도타기 춤’, ‘실룩실룩 춤’, ‘배탈 춤’ 등의 깜찍한 포인트 안무와 ‘쉐이크 잇 러브’(Shake it Love)라고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취재진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어 밍스는 발라드곡 ‘나도 너처럼’으로 잔잔한 무대를 꾸몄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안정된 가창력, 흰 원피스에서 나오는 청순미는 앞서 ‘러브 쉐이크’(Love Shake)에서는 보지 못했던 밍스의 매력을 엿보게 했다. 이처럼 밍스는 섹시 콘셉트가 주를 이루는 ‘걸그룹 대전’에서 귀엽고 상큼한 말괄량이 콘셉트와 신인의 패기를 통해 ‘달샤벳 동생’이 아닌 걸그룹 ‘밍스’로 이름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이번 밍스의 새 앨범 타이틀곡 ‘러브 쉐이크’(Love Shake)는 흥겨운 리듬에 밍스 멤버들(지유, 수아, 시연, 유현, 다미)의 발랄함이 더해진 여름 댄스곡으로, 작곡가 남기상이 달샤벳의 정규 1집 ‘뱅뱅’(BANG BANG)에 수록된 동명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밍스의 첫 번째 미니앨범 ‘러브 쉐이크’(Love Shake)는 동명의 타이틀곡 ‘러브 쉐이크’와 헤어진 남자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한 여자의 슬픔을 담아낸 감성 발라드곡 ‘나도 너처럼’, 한 남자에게 반한 소녀의 마음을 표현한 ‘슈퍼스타 슈퍼맨’(Superstar Superman), 뒤늦게 매력을 발견하고 늦은 후회 속에 가벼운 말로 사랑을 얻고자 하는 남자에게 바치는 노래 ‘셧 업’(Shut up), ‘러브 쉐이크’의 클럽 믹스버전 등이 포함됐다. 글·영상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장난감 물총’으로 버스 승객들 위협한 황당男

    ‘장난감 물총’으로 버스 승객들 위협한 황당男

    고작 ‘장난감 물총’을 들고 버스에 올라타 승객과 운전기사를 위협하려 한 철 없는 중국의 10대·20대 청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환추망 등 현지 언론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중국 장쑤성 전강시 시내를 달리던 버스에 어려 보이는 남성 2명이 올라탔다. 이중 한 명은 윗옷을 벗어던지고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있었고 한 손에는 총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들려있었다. 윗옷을 벗은 이 남성은 버스 운전기사를 향해 ‘총’을 겨눈 채 “강도다!”를 외쳤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을 더욱 당혹하게 한 것은 손에 들린 ‘총’의 정체였다. 이 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겨눈 것은 다름 아닌 장난감 물총. 일반 권총 형태의 장난감 총도 아닌,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형태의 물총이었다. 한 남성이 물총을 겨누는 사이 또 다른 남성은 이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스스로 버스에서 내려 줄행랑을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당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왔고,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두 사람이 인터넷 상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 같은 황당한 일을 벌인 것으로 추측하고, 영상을 분석해 이들을 찾는데 성공했다. 장난감 물총으로 ‘장난’을 친 이들은 23살의 니에(聂)씨와 19살의 정(鄭)군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두 청년이 그저 ‘웃겨보려고’ 한 행동이라고 진술했으며, 자신의 행동에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전했다”면서 “이들은 당시 버스에서 놀랐을 운전기사와 승객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두 사람은 경범죄 혐의로 현재 경찰서에서 구류 중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미성년 제자 3명 ‘성폭행’ 여교사 징역 22년형 철퇴

    미성년 제자 3명과 성관계를 가진 여교사가 무려 22년형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州) 포크 카운티 법원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등 총 37개 혐의로 기소된 영어교사 제니퍼 피처(30)에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무려 2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웬만한 살인범과 비슷한 형 선고를 받은 피처의 혐의는 지난 2011년 부터 시작됐다. 당시 플로리다 레이크랜드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는 17세였던 남학생을 유혹해 수십여 차례 '몹쓸짓'을 벌였다. 이같은 사실은 학생의 부모가 눈치채면서 끝났고 결국 그녀는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수사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남학생 외에도 2명의 남학생과 '몹쓸짓'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으로 특히 이 과정에서 임신했다가 낙태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피처는 "과거의 잘못된 짓을 후회하며 학생과 가족들에게 사죄한다" 면서 "기회를 준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잘못을 뉘우치며 살고싶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녀를 '프레데터'(Predator·포식자)라고 지칭한 재판부는 "피고는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오랜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 다른 사람이 돼서 감옥에서 나오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당초 피처의 변호인 측은 더 낮은 형량을 받기위해 검찰의 플리바겐(plea bargain·사전형량조정제도로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경감해주는 것)도 거절했다가 오히려 더 큰 형을 받았으며 조만간 항소할 것으로 전해졌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컴백 쇼케이스]밍스 ‘나도 너처럼’ 열창…말괄량이의 반전매력

    [컴백 쇼케이스]밍스 ‘나도 너처럼’ 열창…말괄량이의 반전매력

    말괄량이 신인 걸그룹 밍스(MINX)가 2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소재 엘루이 클럽에서 첫 쇼케이스를 열고 9개월 만에 컴백했다. 이날 밍스는 타이틀곡 ‘러브 쉐이크’(Love Shake)로 쇼케이스의 첫 포문을 열었다. 래쉬가드 차림의 밍스 멤버들(지유, 수아, 시연, 다미, 유현)은 ‘말괄량이’를 뜻하는 그룹명에 걸맞은 상큼하면서도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매력을 발산했다. 이어 밍스는 발라드곡 ‘나도 너처럼’을 열창했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안정된 가창력, 흰 원피스에서 나오는 청순미는 밍스의 숨겨진 반전 매력을 엿보게 했다. 앞서 보여준 ‘러브 쉐이크’(Love Shake)의 발랄한 무대와는 180도 다른 무대였다. 밍스의 이번 앨범 수록곡 ‘나도 너처럼’은 헤어진 남자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한 여자의 슬픔을 담아낸 감성 발라드곡으로, 고급스러운 스트링 라인과 트렌디한 리듬 소스가 돋보이는 곡이다. 밍스의 첫 번째 미니앨범 ‘러브 쉐이크’(Love Shake)는 동명의 타이틀곡 ‘러브 쉐이크’와 ‘나도 너처럼’을 포함, 한 남자에게 반한 소녀의 마음을 표현한 ‘슈퍼스타 슈퍼맨’(Superstar Superman), 뒤늦게 매력을 발견하고 늦은 후회 속에 가벼운 말로 사랑을 얻고자 하는 남자에게 바치는 노래 ‘셧 업’(Shut up), ‘러브 쉐이크’의 클럽 믹스버전 등이 포함됐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 (15) 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독박(讀博) 육아일기] (15) 불어난 몸무게 만큼 고통과 행복이 함께 늘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내 삶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아이는 커다란 존재가 됐다. 불과 2년 전까지 아기가 없던 집에 우리 부부가 어떻게 지냈던 건지도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기를 품고 있던 시간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궁금하다”는 후배의 초롱초롱한 눈을 떠올리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남자들 사이에서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만큼 엄마들 사이에선 임신 기간의 사연과 출산 후기가 화수분 같은 수다 주제다. 드라마에서는 밥을 먹다 갑자기 “우웩”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주변에서 “혹시 임신 아니야?”라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기가 나에게 왔을 것 같다는 직감이 먼저 들었다. 전혀 계획이나 준비를 하지 않던 때였는데도 느낌이 왔다. 임신을 확인하자 그 때부터 속이 울렁거린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열 달 내내 구토를 하는 입덧에 시달리는 임신부들도 많은데 그나마 복 받은 경우였다. 밖으로 빼내는 것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속을 채워야 하는 입덧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먹는 입덧’. 배가 고프면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초반에는 하루종일 속이 느글거려서 쉽게 넘어가는 음식도 없었다. 한밤 중에 자다가도 속이 쓰려 맨 밥을 퍼먹었다. 종일 느끼한 속을 부여잡고 있으니 먹고 싶은 것은 맵고 자극적인 것들 뿐이었다. 며칠 동안 일하다 말고 매점에 내려가 작은 컵라면을 사먹으며 속을 달랬다. 먹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와 괴로웠지만 국물을 들이키던 그 순간 만큼은 속이 편했다. 먹으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더 먹고 싶었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다” 삼시 세 끼가 스트레스 12주까지의 울렁거림이 끝나자 폭풍 식욕이 밀려왔다. 먹는 입덧의 진가를 드러냈다. 살 찌는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즐거웠고 그 결과 몸무게도 무려 20kg나 불어났다. 그렇지만 사실 매일 밥을 먹는 일이 너무 곤혹스러웠다. 잘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은 출근하느라 빵이나 김밥으로 떼웠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었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저녁식사가 늘 골치 아팠다. 남편이 퇴근시간이 늦어 늘 혼자였다. 매일 혼자 무언가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퇴근하고 9시쯤 들어가 요리를 하고 챙겨먹기가 쉽지 않았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늘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 마음만 불편했다. 가끔씩 정말로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집으로 포장해오다가 나중에는 혼자 식당에서 먹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는 외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신부가 되니 혼자 짬뽕 한 그릇을 해치우거나 순대국밥을 후루룩 먹는 것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었다. 만날 뭔가를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는 것도 은근히 눈치가 보였다. 남편에게 한 여름 새벽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거나 생뚱맞은 음식을 사오게 해서 골탕을 먹이는 일은 할 겨를도 없었다. 밤마다 꿈에서 해외에 사는 친정 엄마를 만났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엄마, 고구마 먹고 싶어”라고 말을 했는데 엄마가 바로 얼른 사라고 답했다. 그 말을 하는 내가 너무 행복해서 꿈에서 깬 뒤로 며칠을 울었다. 엄마가 담근 김치, 엄마가 무친 나물, 엄마표 잡채. 요리를 막 마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엄마의 반찬을 호호 불며 집어 먹던 때가 무척 그리웠다. 무엇보다 임신 기간 중 가장 괴로운 것은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원래도 잠이 많긴 했다. 그런데 아기를 가진 뒤 몰아치는 잠은 대단했다. 임신 초기에는 쉴새 없이 졸렸고, 후기로 갈수록 불편해서 잠을 못자 피곤했다. 특히 일을 하는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잠이 쏟아졌다. 휴식 공간을 마땅히 찾지 못해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 뒷좌석에 몸을 포개 20~30분 잠을 잤다. 제대로 잠도 못 잤을 뿐더러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온 몸이 사우나를 한 것처럼 땀 범벅이 됐다. 거의 매일 화장실 변기 위에 걸터앉고 고개를 숙이고 쪽잠을 청했다. 요즘 화장실들이 좋아져 전부 비데가 설치돼 있다 보니, 변기 뚜껑을 덮어도 평평하지가 않다. 그리고 반듯한 변기 뚜껑 보다 힘이 약하다. 그 위에 대충 엉덩이를 걸치고 칸막이 벽에 머리를 댔다. 그렇게라도 10분 남짓 잠을 자면 조금 견딜 수 있었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많은 회사들이 몰려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일하는 임신부들을 위한 ‘수면 카페’를 하나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배가 불러온다…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갑작스런 체중과 호르몬 변화 등으로 점점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임신부 체험 교육 등에서 남편들에게 10kg 이상의 짐을 배에 얹고 움직여보게 한다. 출산 기간 동안 평균적인 체중 증가는 10~12kg 정도로 알려져 있다. 8~9개월 사이 몸이 10kg가 불어버린다면 어떨지 감이 올까. 그것도 배만 불룩하게 나오면서 허리, 엉덩이, 다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손 발은 퉁퉁 붓고 머리는 괜히 시도 때도 없이 어지러웠다. 25주쯤,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힘들어졌다. 허리가 아파서 오랫 동안 앉아 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괴로웠다. 다리가 부어 자다가 쥐가 나 소리를 지르며 깬 날이 수두룩하다. 아기가 본격적으로 태동을 시작하면서는 가뜩이나 앉아있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하도 배가 꿀렁꿀렁거리니 사무실 책상에 닿는 배 부분이 아플 정도였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배에서 아기가 튀어나올 것 같은 태동이 이어진다. 8개월부터는 밤에 잠을 자는 것도 어려운 시간들이 온다. 허리가 눌려서 반듯하게 누워서 잘 수는 없고 옆으로 자는 것도 무게가 쏠리다 보니 수시로 잠에서 깼다. 자다가 시도때도 없이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다. 임신 초반에만 잠깐 운전을 하고 계속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다. 운전하는 데 정신적인 소모가 많아서였다. 운동을 할 겸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편도 1시간 거리를 움직였다. 20주를 앞두던 때에 처음으로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았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곧바로 SNS에 기록을 남겼다. 이후 만삭까지 누군가에게 양보를 받아 자리에 앉은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임신부처럼 안 보여서였을까, 라고 애써 좋게 생각해야 하나. 특히 10분도 서 있기 어려웠던 만삭일 때가 하필 겨울이어서 외투와 머플러로 배가 감쪽 같이 가려졌다. 오히려 옷이 가벼웠을 때, 배가 덜 나왔을 때보다 앉지 못했다. ●임신부에게는 자리 양보 말고도 필요한 게 많다 임신부에게 왜 그렇게 ‘자리’를 강조할까. 지하철 타는 것이 그렇게 힘들면 차를 가지고 다니면 되지 않나. 나도 이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늘 지하철을 타고 통학과 출퇴근을 했으면서도 막상 배가 불러보니 30분 남짓 서서 가는 길이 너무도 멀어 보였다. 운전을 하면 계속 앉아있을 수는 있지만 배가 나와 운전대에 부딪히고 그러다 보니 자세가 불편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창문을 열고 운전하면 앞차의 담배 연기에 시달려야 했고 혹시나 담뱃재라도 튈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운전이라는 게 나 혼자 조심한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긴장을 해야 하니 마음이 편한 것은 대중교통 쪽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에 서서 타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는 핑 돌고 어지러웠다.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가고 싶을 만큼 진땀이 났다. 처음에는 노약자석에 앉기가 민망해서 일반석 쪽에 서 있었지만 나중에는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노약자석으로 갔다. 일반석에 서 있는 것이 마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처지가 된 것 같아서였다. 11월 어느 날에는 출근길에 노약자석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깨웠다. 중년 여성이었는데 남편이 다리가 아프니 일어나라고 했다. 허겁지겁 일어난 뒤 다시 돌아보니 발목에 감긴 붕대가 살짝 보였다. 물론 내가 크게 다쳤거나 당장 힘듦을 못 참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게 왜 그렇게 서럽던지.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 어쩌면 임신했을 때의 서러운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자리 양보를 잘 안 해주는 것은 20대 초반 여성들이었다. “너희들 나중에 임신해서 똑같이 당해봐라” 저주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노려봤다. 나 역시 임신부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상처를 준 일이 있었을 것이다. 후회가 됐다. 그 다음 잘 안 해주는 40~50대 아주머니들에겐 “본인들도 다 겪었으면서 왜 양보를 안 해줄까” 더 서운했다. 자리가 없는 지하철을 타면 차라리 곧바로 문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서는 것이 가장 마음 편했다. 임신부가 되어 보니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임신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전에는 어린 아기도, 임신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여전히 임신부는 희귀한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임신한 여자를 보면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는 양 빤히 쳐다보고, 아무나 배를 만져보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품고 있는 아홉 달 동안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신부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 말고는 뭘 도와야할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내 자식 내가 품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일인데 정말 힘이 들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일들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힘들었던 시간, 그래도 임신부가 부러운 이유 오랜만에 기억을 쏟아냈더니 힘들고 서러웠던 일들이 주루룩 나왔다. 그러나 요즘 나는 주변에 많은 임신부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던 기분이 남아있다. 특히 7~8개월쯤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너무 행복해서 일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길을 손꼽으며 아기를 기다리는 설렘도 달콤했다. 매일 아기에게 편지를 쓰며 사랑과 고마움을 듬뿍 담았다. 호르몬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안정감이 느껴졌고, 뭐든지 좋게 보려고 노력해서였는지 즐거웠다. 물론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서 동료들의 가벼운 농담에도 화를 버럭 내기도 했고, 말 한 마디에 꽁해서 토라진 적도 있었다. 내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고통도 늘어났지만, 한 편으로는 행복함도 배로 늘어났다. 그래서 누군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 행복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부럽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홉 달 동안 자그마한 태아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더 많은 것을 바꿔서, 비록 2년 전인데도 아득한 옛날 일처럼 되어버렸지만. 가끔 홀쭉해진 배가 허전하게 느껴질 만큼 문득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11)’아빠 육아’ 예능을 끊은 이유는 (12)엄마들은 왜 찌라시를 퍼다 날랐나 (13)온종일 놀면서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구요? (14)수능 성적표보다 떨렸던 아이 검진표
  • [씨줄날줄] 선생님도 모른 척, ‘엄마 수행평가’/황수정 논설위원

    알림음과 함께 호들갑 떨며 들어오는 휴대전화 메시지에 둔감한 편이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그럴 수 없었던 게 딱 하나 있다. 중학생 딸아이의 반 친구 엄마들이 만든 ‘밴드’다. 수행평가 정보를 재깍재깍 올려 주는 반장 엄마의 성의를 무시할 강심장은 없다. 그 엄마의 수고에 번번이 불꽃 박수가 쏟아졌다. 과목별 수행평가의 주제와 요령, 제출 시한 등을 복사물과 함께 귀띔해 줬다. 꼼꼼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수행평가에 취약한 남학생들의 엄마들은 더 악착같이 밴드에 매달렸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들은 다 안다. ‘그 숙제는 곧 내 숙제’라는 사실을. 기말고사 시즌이다. 지필고사를 보기 직전까지 수행평가는 보통 한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그 기간에 분통을 터뜨려 보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끙끙거리는 아이에게 “네 숙제는 네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들이대기에는 상황이 말이 아니다. 이심전심. 이즈음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에는 똑같은 하소연들이 봇물 터진다. 아이와 새벽까지 인터넷 자료를 찾느라 씨름했다, 앞으로는 눈 딱 감고 모든 수행평가를 대신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수행평가가 끝나서 지필시험만 보면 되니 속 편하다…. 수행평가가 성적에 반영되는 현실에서 엄마가 ‘대행’해 주는 숙제는 엄연한 부정행위다. 수행평가의 구겨진 민낯을 선생님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엄마한테도 어려운 수행평가는 학업 부담과 사교육 억제를 내세운 교육정책 기조와도 완전히 엇박자다. A4용지 한 장의 글을 제시한 뒤 150자로 주제를 압축하라는 중1 국어 수행평가. 미리 논술학원을 다녔다면 ‘필승’이다. 기억에 남는 책 한 권을 정해 삽화를 그리라는 미술. 타고난 재능도 없으면서 미술학원까지 다니지 않는 배짱을 부렸다면 ‘필패’다. 현미경 조작과 각종 실험도구 사용법을 묻는 과학. 과학학원 간판을 예사로 보고 지나쳤던 게 후회막급이다. 한 영어 교육업체가 초등학생 이상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4.7%가 자녀의 수행평가를 도와준다고 답했다. ‘자녀 혼자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자녀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니까’ 등이 주요 이유였다. 54.7%라는 수치가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볼 수도 없다. 도와주고 싶어도 이런저런 여건이 따르지 않아 해 주지 못한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심각성은 훨씬 더 커진다. 학생의 전인적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수행평가가 도입된 것은 1999년. 17년째다. 조변석개 정책을 쏟아내는 교육부가 하자투성이의 이 제도만큼은 일관되게 신뢰하는 까닭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수행평가를 맡을 테니(떡을 썰 테니), 너는 시험공부를 하거라(글을 쓰거라).” 교육부만 못 들은 척하는, 한석봉 어머니 패러디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슈퍼맨 되려고 23번 성형한 남자

    슈퍼맨 되려고 23번 성형한 남자

    슈퍼맨과 닮기 위해 지금까지 23차례나 성형수술을 받은 남성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최근 미국 연예채널 이(E!)온라인 프로그램 ‘보치드’(Botched)에 출연한 ‘슈퍼맨 성형남’의 근황을 소개했다. 2013년에도 여러 매체에 소개됐던 이 남성의 이름은 허버트 차베스. 올해 37세인 그는 필리핀 칼람바에서 살고 있으며 슈퍼맨 코스튬을 하고 외출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2년 전, 16번의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고백한 그는 그 사이 7번을 더해 총 23번의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코와 턱 성형은 물론 지방 흡입과 피부 미백 시술도 받아 지금까지 총 2만 달러(약 2200만원)에 달하는 돈을 들였다. 필리핀에서 이 돈은 꽤 큰 금액이다. 이로써 마침내 영화 속 슈퍼맨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는 얼굴을 갖게 된 그이지만, 한 번 더 성형수술을 받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원하는 것은 슈퍼맨처럼 강철같은 복근. 하지만 이미 가슴과 복근에 반점이나 멍자국 등 불법 필러를 주입한 흔적이 있어 의사들은 그의 요청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슈퍼맨처럼 사는 삶을 통해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12년 실물 크기의 모형과 포스터, 반지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슈퍼맨 관련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른 바 있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수십년 힘들게 일해서 된 사무관… 연수 간다고 좋아했는데”

    “수십년 힘들게 일해서 된 사무관… 연수 간다고 좋아했는데”

    “사고 난 지 7시간이 지났는데도 사고대책본부로부터 전화 한 통 없는 게 말이 됩니까.“ 1일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서 발생한 지방공무원의 버스 추락사고 수습대책본부를 마련한 전북 완주군 지방행정연수원 1층의 가족대기실에서 가족들은 대책본부의 늑장 대응에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가족 일부는 넋을 놓은 것처럼 힘없이 앉아 있었다. 사망자 가족과 지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고로 사망한 광주시청 김모(55) 사무관의 부인은 소식을 듣고 말을 잇지 못했다고 주변 지인들이 밝혔다. 그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싶은 듯 찾아온 남편의 동료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광주시청 5급 사무관 3명이 이번 연수에 참여했고, 김 사무관 홀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소 성실하고 주변 사람의 업무까지 도맡아 하던 김 사무관의 소식에 주변이 숙연해졌다. 역시 사망한 경기 남양주시청의 김모(54) 사무관은 자원순환과장을 하다가 인사과장으로 최근 발령이 났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부서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직원들을 말했다. 또 그는 올해 1월 문화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아 향후 구정에 적용하겠다며 포부에 차 있었다고 전했다. 36살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그는 20년간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한 공무원은 “문화관광분야에서 시를 반석에 올려놓을 정도로 공이 컸는데 너무 슬프다”면서 “특히 언변이 좋아 시청 행사의 사회를 도맡았는데 그 모습이 계속 떠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문화예술분야의 사회적 기업에 대해 수익성이 너무 낮아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유명을 달리한 제주도청 조모(54) 사무관은 농업전문가로 도청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81년 공직생활을 시작해 2011년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농업경영담당, 애월읍장 등을 했다. 제주에서는 조 사무관 외에 2명이 더 연수에 참여했고 다른 이들은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 관계자는 조 사무관의 가족들과 중국 심양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한 동료는 “조 사무관은 평소 온화한 인품으로 늘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또 2013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어업인 자녀 교통비 지원 시책 도입을 추진해 농어촌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수십년간 힘들게 근무해 사무관이라는 직함을 얻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사망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면서 “최근에 조금 일이 바빠 못 본 것이 너무 후회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춘천시청 이모(55) 사무관은 차분하고 꼼꼼한 업무스타일로 유명했다. 소양동장, 문화체육과장을 거쳐 현재 도시계획과장으로 재직해왔다. 시의회 관계자는 “그간 앞만 보고 열심히 일만 해 온 사람이 오랜만에 교육을 계기로 해외여행까지 하게 됐다고 좋아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사람 좋기로 정평이 났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안타깝기만 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숨진 경북도청 정모(51) 사무관은 지난 31년간 공직생활을 모범적으로 수행했고 국무총리상 등 5차례에 걸쳐 유공 및 모범 공무원상을 수상했다. 평소 업무에 출중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해 다른 공무원들의 귀감이 됐다. 특히 4대강 살리기 사업 당시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려 주위에서 열정을 인정받기도 했다. 경기 고양시 한모(54) 사무관은 장기교육 중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메르스 관련 대처 요령 등을 올리며 업무를 떠나지 않았다. 청소년 육성팀장을 할 때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위기 청소년들을 편견 없이 대해 ‘삼촌 같은 공무원’으로 불리곤 했다. 전국종합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10원짜리로 임금 지급’ 업주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하지만…”

    ‘10원짜리로 임금 지급’ 업주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임금 10만원을 10원짜리 동전 1만개로 지급해 논란이 된 가운데 해당 업주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A씨는 1일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0원짜리로 그렇게까지 한 것은 후회된다. 어른으로서 생각이 짧았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사이코도 아니고…(그렇게까지 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아르바이트생 B양과 가족처럼 잘 지냈다. 그러나 B양이 두 번째 달부터 주말에 무단결근을 두 번 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전화를 해 월급을 지금 당장 달라고 했다”면서 “‘일을 갑작스럽게 그만둘 때 급여를 바로 주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월급 날짜에 정확하게 맞춰주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전했다. 이틀 뒤 한 남학생이 전화를 해 “왜 월급을 안 주냐”고 따졌고 A씨는 가게로 직접 와서 따지라고 했다. 얼마 후 학생 10여명이 가게로 찾아와 입금을 안해줘서 고용노동부에 접수하고 진정서를 놔두고 간다고 전했다. A씨는 “무단결근도 그 나이 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데 학생들이 몰려와 싸우자는 말투로 협박하듯 말한 것이 서운했다. 그 남학생은 욕까지 했다”면서 “욕을 듣고 너무 분해서…(10원짜리로 돈을 바꿔서 임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10원짜리로 임금을 지급한 것은 “어른으로서 생각이 짧았다. 그 학생 입장이었으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라며 “굉장히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고 후회한다고 밝혔다. A씨는 “장사를 어떻게 운영을 해야할지…참 그렇다”면서 “사소한 일로 일이 커졌지만 마음 정리가 되고 기회가 된다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프로그램 제작진은 B양에게도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보도가 된 뒤 B양이 많이 놀란 상태라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14) 수능 성적표보다 가슴 떨렸던 아이 검진표

    [독박(讀博) 육아일기](14) 수능 성적표보다 가슴 떨렸던 아이 검진표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래도 살면서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 적도 없던 것 같다. 아기가 내 품에 찾아온 순간부터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늘 미안했다. 엄마가 되면서 갖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쩌면 죄책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의 모든 것이 다 나만의 책임인 것 같았다 아이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모유가 잘 안 나오고 아기가 젖을 제대로 못 무는 것이 당연한데도 나의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심지어는 왜 아기가 쉽게 물지 못하는 가슴을 달고 살았는지 자책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 70일 전후, 가장 극한의 시간을 보낼 때엔 하루종일 30~40분 간격으로 수유를 했다. 잠은커녕 밥 한 끼도 못 먹고 꾸벅꾸벅 졸면서 젖을 먹이는 와중에도 “내가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아기가 계속 배고파 하나보다” 걱정이 됐다. 일찍부터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 아기를 보면 임신했을 때 매운 음식을 먹어서 이렇게 된 건지, 커피를 마셔서 이렇게 된 건지. 어쨌든 좀 더 조심하지 못했던 엄마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미안하다. 육아의 결과물이 숫자로 매겨지는 것이 아기의 몸무게였다. 나의 어깨를 가장 짓눌렀던 것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기마다 시행하는 영유아 검진이 마치 엄마의 육아 실력을 검증하는 고시 같았다. 고작 아기의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를 재고 육아 정보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검진인데 결과지를 받는 순간,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 때처럼 참담했다. 4개월 검진 때 아기는 키 하위 15% 몸무게 하위 18%였다. 100명 중에 뒤에서 15등이라는 말이었다. “정상 체중(3.15kg)으로 태어난 아기 치고는 작은 편”이라는 말이 가슴에 팍 꽂혔다. 그 날 일기에는 “충격”이라는 단어와 함께 “(지금까지의 육아가) 완전히 잘못된 것 같아 후회되고 마음이 무겁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9개월 검진 때는 성적이 더 떨어졌다. ‘뒤에서 5등’이라는 결과지를 받아들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키가 하위 5% 몸무게는 하위 12%였다. 의사 선생님이 아기의 몸무게를 늘리기 위한 조언을 해주는데 말 한 마디마다 “엄마가 그동안 뭘 했느냐”는 걸로 들렸다. 당시 몸무게가 8kg에서 몇 달이나, 아주 한참 동안 머물렀다. 17개월인 지금 겨우 9kg가 넘는다.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갈 때마다 아기를 체중계에 올려놓기가 겁이 났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산후조리원 ‘동기’ 아기들이 쑥쑥 커나가는 것을 보면 움츠러들었다. 발달이 빠르고 너무 활동적이고, 밤에 잠을 잘 안 자는 아기여서 몸무게가 안 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사들마다 별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혼자서만 아이를 보다 보니 제대로 먹이지도, 재우지도 못했다”는 자책이 쌓였다.  아기가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먹는 것과 자는 것인데 그게 모두 나의 잘못된 육아방식 때문인 것 같았다. 100g도 늘지 않는 몸무게가 너무 초조하고 겁이 나 제발 이유식 한 숟가락씩만 더 먹어 달라고 갖은 애원을 했다. 그런데 겨우 입에 집어넣은 걸 툭 뱉어버리면 아무리 엄마라도 속에서 불이 났다. 한 번은 밥을 뱉고서 찡찡대며 매달리는 그 어린 아기의 엉덩이를 찰싹 밀어버린 적도 있다. 그 즈음 육아 카페에 고민 글을 여럿 올렸다. “제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요?” “아기를 혼내는 저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힘이 들어요” 지금봐도 참 암울한 제목들이다. 그래도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나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엄마들에게 살이 되는 조언을 들었고 “힘내세요”라는 한 문장에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었다. 새벽에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도 잘 진정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러면 당장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 눈치도 보였다. “도대체 애 하나 못 달래고 뭐하는 건가”라며 짜증을 낼 것 같았다. 우는 소리가 덜 들리도록 거실로 데리고 나와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너라도 나를 도와달라”고 울부짖은 적도 있다. 모두가 깜깜한 새벽 4시, 그 때는 정말 이 세상 나와 아기 밖에 없었다. 나홀로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었는데, 모든 책임을 나 혼자 지고 있다는 데서도 그 감정이 더해졌다. 책임감, 부담감을 나눌 곳이 없으니 아기의 모든 게 온전히 내 탓이라는 무게감이 너무 컸다. 때로는 힘들고 그래서 우울하지만 이런 감정을 아기에게 내비쳐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아기의 정서에 그대로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말도 못하는 아기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 아기가 있는 앞에서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더 큰 후회가 밀려왔지만 말이다. 평소와 똑같이 울더라도 “역시, 내가 짜증내니 아기가 불안해서 더 우는구나”라고 생각됐다. 13개월쯤 정신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아기를 보며 그동안 스트레스를 감추지 못한 나의 탓인 것 같아 괴로웠다. 나중에 보니 그 시기 아기들의 비슷한 특징이었을 뿐이다. ●유리 같은 예민한 마음…알아주는 사람 없어 더 고독 이렇게 아기를 키우는 동안 내 마음은 아주 얇은 유리 한 장 같았다. 누군가가 아기를 향해 툭 던지는 말들이 쉽게 상처가 됐다. 나는 온 신경이 아기에게 집중돼 있고 모든 게 내 탓으로 여겨져 너무 무거웠는데, 남들은 쉽게 이야기하니 거부감부터 들었다. 아기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남편도 걱정이 되니 “영양제를 먹여보자”고 했는데 “역시 내가 먹이는 모유와 이유식으로는 부족하다는 거구나”하고 받아들였다. 특별히 더 유난스럽게 아이를 키운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남들보다 덜 신경을 써준 것 같은 미안함까지 보태져 있었는데 누군가 “아기한테 너무 집착해서 더 힘들어한다. 편하게 키워라”라고 말하면 말이 전혀 안 통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편하게 키워도 먹고 자는 것에 소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일부러 갖지 않으려고 해도 달려오는 죄책감인데 편해지라니 한참 힘이 들 때에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도와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만큼 간섭하는 사람들도 적어서 한편으로는 편한 쪽에 속하기도 했다. 육아 카페에서 시댁이나 친정 부모들의 육아 간섭에 부딪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간접 경험이지만 너무 답답했다. 내 아기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것도 바로 엄마인 나고, 제일 잘 아는 것도 바로 엄마인데 옛날 방식의 육아를 강요하다 보면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기가 밥을 안 먹으면 누구보다 속상한 게 엄마인데 그 옆에서 “엄마 밥이 맛이 없어서 애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하거나, 모유를 못 먹여서 누구보다 속상한 것도 엄마인데 아이가 다 큰 뒤에도 감기라도 걸리면 “엄마 젖을 못 먹어서 저렇게 아프다”는 등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엄마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아기가 돌이 지나고 단유를 하자 가장 고민거리였던 식욕이 거짓말처럼 왕성해졌고, 두 세 시간마다 깨던 것도 간격이 넓어졌다. 몸은 조금 편해졌지만 복직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루종일 남의 손에 아기를 맡기고 아침 저녁으로만 얼굴을 보게 될 엄마를 과연 아기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까지 쌓아온 애착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커서 엄마가 왜 자기 옆에 있지 않았느냐고 평생 원망하진 않을까 여전히 걱정이다. 그런데 “엄마랑 같이 못 있어서 불쌍하다”는 등의 말을 건넨 사람들을 보면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나더러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안함과 죄책감, 엄마가 가져야 할 평생의 짐 영아기 자녀를 둔 엄마들의 감정에 대한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 많다. 엄마들이 육아를 통해 얻는 긍정적 감정도 있지만 이와 함께 부정적인 감정이 함께 있고, 특히 아빠에 비해 엄마들의 감정 변화 폭이 훨씬 크다는 내용들이다.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었나 돌아봤을 만큼 낯선 감정들이었다. 나의 기분과 감정이었지만 그것조차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아기들에게도 모두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처음보단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다. 당장 밥 한 숟갈 덜 먹어도 아기가 먹고 싶은 때가 있고, 기다려주면 자기에 맞게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엄마라면 평생 짊어져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고비를 넘기면 새로운 고비가 찾아온다. 그러면 새로운 걱정과 죄책감도 따라온다. 아마도 아이가 커서 공부를 못하면 직장다니느라 신경을 못 써준 내 탓이 될 것이고, 엇나간 행동을 한다면 그것도 바쁜 엄마 탓이 될 것 같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그래서 부족함 없이 다 키워놓고도 지금껏 늘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정 엄마의 자책을 당연한 듯 삼켜 넘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해 하면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엄마의 영원한 숙제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1)나홀로 육아 1년…외로움을 말한다 (2)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3)엄마가 될수록…엄마만 필요했다 (4)세월호 참사가 초보 엄마에게 가르쳐준 것들 (5)내 아기가 타고났기 바라는 한 가지 (6)CCTV 단다고 걱정 사라질까 (7)“아기 왜 없어?”묻지 못하는 이유 (8)모유, 엄마의 눈물을 아기는 먹고 자란다 (9)잘하는 것도 없이 모두에게 미안한 삶 (10)나는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나를 키운다 (11)’아빠 육아’ 예능을 끊은 이유는 (12)엄마들은 왜 찌라시를 퍼다 날랐나 (13)온종일 놀면서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구요?
  • 오바마, 금기어 ‘깜둥이’ 언급… 인종차별 탄식

    오바마, 금기어 ‘깜둥이’ 언급… 인종차별 탄식

    “공식 석상에서 깜둥이(nigger)라고 말했을 때 무례한 사람 취급을 한다고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인종주의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200~300년 전 일어난 일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없던 일로 되겠는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을 비하한 비속어를 쓰며 자국의 인종주의를 비판했다. CNN,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류 언론들이 단어 전체를 언급하지 못한 채 “오바마 대통령이 N으로 시작하는 비속어를 쓰며 비판했다”고 보도할 정도로 ‘nigger’는 미국에서 금기어다. 그의 발언은 코미디언 마크 마론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자택의 15.3㎡(4.6평) 규모 차고에 설치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팟캐스트 방송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부츠를 신은 진행자와 양복 상의를 벗은 오바마 대통령이 진행한 파격적 형식의 방송이었고, 녹음 뒤 스튜디오에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인장이 그려진 종이컵을 놓고 떠났다고 마론은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 비판은 재임 중 여러 차례 나왔다. 올 들어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반복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빈곤 문제를 퇴임 뒤에 할 일로 꼽으며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이날 팟캐스트 방송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무력감과 피로감을 드러냈다. 흑인 아버지를 둔 그는 “어린 시절에 비해 대놓고 흑인을 비하하는 태도는 줄었지만, 노예제도의 유산인 짐 크로법의 그늘은 여전하다”며 “미국인의 유전정보(DNA) 안에 인종주의가 들어 있다”고 개탄했다. 짐 크로법은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버스 좌석 양보를 거부한 사건을 촉발시킨 흑백분리법으로 1965년 폐지됐다. 방송은 총기 규제 문제도 다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총기협회(NRA)가 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2012년 26명이 희생당한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에도 의회는 손을 놓고 있다”면서 “정말 넌더리가 나는 일”이라고 혹평했다. 미국 언론과 일부 흑인단체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나 쓸 법한 비속어를 쓴 자체를 두고 적절했는지 논란을 제기했지만, 백악관은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단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그 단어는 오바마 대통령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강조해 온 요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 뒤 “대통령은 찰스턴 교회 난사 사건의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미모 실제로 보니” 깜짝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미모 실제로 보니” 깜짝

    조성모 구민지 부부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미모 실제로 보니” 깜짝 가수 조성모, 배우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조성모와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면서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밝혔다. 앞서 조성모는 한 인터뷰에서 2세 계획에 대해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 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하지만 그냥 시간이 많을 때 만들 걸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성모의 부인 구민지는 1998년 MBC 공채 27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광고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다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인대회 출신 모델, 1.5m 샌드위치 9분 만에 ‘꿀꺽’

    미인대회 출신 모델, 1.5m 샌드위치 9분 만에 ‘꿀꺽’

    세계 4대 미인대회에 속하는 미스 어스(Miss Earth) 뉴질랜드 출신 모델인 넬라 지저(Nela Zisser·23)가 최근 이색 도전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16일(현지시간) 호주 언론 뉴스 닷컴 등에 따르면, 넬라는 길이 152cm에 달하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약 9분 만에 먹어치우는 데 성공했다. 이는 분당 약 17cm의 샌드위치를 먹어치운 셈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영상에는 책상 위 길게 줄지어 놓인 샌드위치를 빠른 속도로 물과 함께 흡입하는 넬라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녀린 체구로 거대한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넬라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낸다. 그녀가 샌드위치를 모두 먹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9분 17초. 이는 미국 식신으로 유명한 맷 스토니(Matt Stonie)의 기록 9분 23초에 6초나 앞선 것이다. 넬라는 도전을 마친 후 “샌드위치 3개까지는 정말 쉬웠다. 하지만 나머지 2개를 먹을 때는 샌드위치 5개에 모두 같은 소스를 뿌린 것을 후회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넬라 지저는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치킨 너겟 120개 먹어 치우기, 5파운드 부리또 5분 안에 해치우기 등 다양한 도전을 펼치는 동시에 먹기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진·영상=Nela Zisser/페이스북, 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5년만의 임신 소식..조성모 아내 이렇게 예뻤나? 사진봤더니..

    조성모 구민지 부부, 5년만의 임신 소식..조성모 아내 이렇게 예뻤나? 사진봤더니..

    조성모 구민지 부부 가수 조성모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배우 구민지와의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인 것. 20일 한 매체는 “조성모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보도했다. 조성모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구민지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조성모는 MBC ‘별바라기’에 출연해 “2세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되는데 그 전에는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시간 많을 때 만들 걸’하고 후회한다. 지금은 집에 가면 바로 떡실신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아이를 가졌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두 사람 다정한 모습” 대박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두 사람 다정한 모습” 대박

    조성모 구민지 부부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두 사람 다정한 모습” 대박 가수 조성모, 배우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조성모와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면서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밝혔다. 앞서 조성모는 한 인터뷰에서 2세 계획에 대해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 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하지만 그냥 시간이 많을 때 만들 걸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성모의 부인 구민지는 1998년 MBC 공채 27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광고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다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개월 만에 임신 “구민지 놀라운 미모” 실제로 보니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개월 만에 임신 “구민지 놀라운 미모” 실제로 보니

    조성모 구민지 부부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개월 만에 임신 “구민지 놀라운 미모” 실제로 보니 가수 조성모, 배우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조성모와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면서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밝혔다. 앞서 조성모는 한 인터뷰에서 2세 계획에 대해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 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하지만 그냥 시간이 많을 때 만들 걸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성모의 부인 구민지는 1998년 MBC 공채 27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광고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다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시간 많을 때 만들 걸 후회”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시간 많을 때 만들 걸 후회”

    조성모 구민지 부부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시간 많을 때 만들 걸 후회” 가수 조성모, 배우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조성모와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면서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밝혔다. 앞서 조성모는 한 인터뷰에서 2세 계획에 대해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 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하지만 그냥 시간이 많을 때 만들 걸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성모의 부인 구민지는 1998년 MBC 공채 27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광고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다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임신 소식..구민지 미모 어떻길래?

    조성모 구민지 부부, 임신 소식..구민지 미모 어떻길래?

    가수 조성모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배우 구민지와의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인 것. 20일 한 매체는 “조성모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보도했다. 조성모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구민지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조성모는 MBC ‘별바라기’에 출연해 “2세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되는데 그 전에는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시간 많을 때 만들 걸’하고 후회한다. 지금은 집에 가면 바로 떡실신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아이를 가졌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벌써 5개월 째” 2세 외모 어떨까?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벌써 5개월 째” 2세 외모 어떨까?

    조성모 구민지 부부, 결혼 5년 만에 임신 “현재 5개월” 아내 미모 보니 ‘조성모 구민지 부부 임신’ 가수 조성모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배우 구민지와의 결혼 5년 만에 임신 소식인 것. 20일 한 매체는 “조성모 구민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현재 임신 5개월 남짓 됐다”고 보도했다. 조성모 구민지는 2007년 처음 만나 3년 열애 끝에 2010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조성모 구민지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조성모는 MBC ‘별바라기’에 출연해 “2세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되는데 그 전에는 상황이 좀 좋아지고 안정됐을 때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시간 많을 때 만들 걸’하고 후회한다. 지금은 집에 가면 바로 떡실신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아이를 가졌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한편 조성모 아내 구민지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8년 MBC 탤런트 공채 27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동기로는 송일국·홍은희·박솔미 등이 있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으며 클론의 ‘사랑과 영혼’, god ‘0%’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했다. 한편 예비아빠 조성모는 오는 7월 18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슈퍼콘서트 토요일을 즐겨라’ 무대를 앞두고 있다. 사진=서울신문DB(조성모 구민지 부부 임신)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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