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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탈자’ 곽재용 감독 “조정석은 페르소나, 다시 태어난다면 이진욱”

    ‘시간이탈자’ 곽재용 감독 “조정석은 페르소나, 다시 태어난다면 이진욱”

    곽재용 감독이 ‘시간이탈자’ 배우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15일 서울 압구정CGV에서 박경림의 사회로 영화 ‘시간이탈자’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곽재용 감독과 배우 조정석, 임수정, 이진욱이 참석했다. 이날 곽재용 감독은 “이번만큼 행복하게 촬영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한번도 후회해 본적 없다”며 조정석, 임수정, 이진욱 세 배우들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곽재용 감독은 “조정석은 나의 페르소나다. 뮤지컬부터 영화까지 다 봤는데 정말 저 배우와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이진욱에 대해서는 “다음 생애에 태어난다면 이진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곽재용 감독은 “임수정은 내가 처음 썼던 시나리오로 데뷔를 했다”고 밝히며 “언젠가는 함께 일을 해야만 되는 배우였다. 드디어 이제 만났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들 또한 “곽재용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해서 행복하고 영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탈자’는 결혼을 앞둔 1983년의 남자 지환(조정석)과 강력계 형사인 2015년의 남자 건우(이진욱)가 우연히 서로의 꿈을 통해 사랑하는 여자(임수정)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간절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감성추적 스릴러다.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곽재용 감독이 도전하는 첫 스릴러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4월 13일 개봉.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영상) 곽재용 감독 “이진욱으로 태어나고 싶다”

    (영상) 곽재용 감독 “이진욱으로 태어나고 싶다”

    15일 서울 압구정CGV에서 박경림의 사회로 영화 ‘시간이탈자’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곽재용 감독과 배우 조정석, 임수정, 이진욱이 참석했다. 곽재용 감독은 “이번만큼 행복하게 촬영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한번도 후회해 본적 없다”며 조정석, 임수정, 이진욱 세 배우들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곽재용 감독은 “조정석은 나의 페르소나다. 뮤지컬부터 영화까지 다 봤는데 정말 저 배우와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이진욱에 대해서는 “다음 생애에 태어난다면 이진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곽재용 감독은 “임수정은 내가 처음 썼던 시나리오로 데뷔를 했다”고 밝히며 “언젠가는 함께 일을 해야만 되는 배우였다. 드디어 이제 만났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간이탈자’는 결혼을 앞둔 1983년의 한 남자(조정석)와 강력계 형사인 2015년의 남자(이진욱)가 우연히 꿈을 통해 한 여자(임수정)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하고자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감성추적 스릴러다. 이번 작품에서 임수정은 1인 2역에 도전했다. ‘1983년의 윤정’은 지환과의 결혼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 여자다. ‘2015년의 소은’은 우연히 건우를 만나 과거의 사건을 함께 쫓는 여자다. 조정석은 윤정의 여인이자 음악 교사 지환 역을 맡았고, 이진욱은 사건을 쫓는 형사 건우 역을 맡았다. ‘시간이탈자’는 꿈으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라는 독특한 설정과 세 남녀의 애틋한 관계, 범죄 사건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전개가 눈길을 끈다. 특히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곽재용 감독과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4월 13일 개봉.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랍 S다이어리] 올해 전세계 참교사는 팔레스타인 출신…교육 걱정

    [아랍 S다이어리] 올해 전세계 참교사는 팔레스타인 출신…교육 걱정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에서처럼 지금 시대에 매가 부러질 때까지 교사가 학생 엉덩이를 때린다면 뒷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교실의 어떤 학생이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아니면 맞은 학생의 학부모가 교실로 와서 교사의 멱살을 쥐어 잡거나 애초에 맞던 학생들이 교사를 구타해 더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1988년도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공감을 산 이 드라마에서 학생들은 매 맞는 걸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당시 일명 ‘사랑의 매’는 교사 권위의 상징이었다. 학생들이 매질에 감히 대들지 못할 만큼 교사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사랑의 매는 퇴물이 되었고 교사는 ‘꼰대’가 됐다. 교사라는 직업에 희망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이를 방증하듯 고등학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2015년 학교 진로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부가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처음으로 교사(교육 전문가 및 관련직)가 선호하는 직업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녀가 교사가 되길 바라는 학부모 역시 줄어들었다.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다. 교사의 36.6%가 직업을 다시 선택한다면 ‘교사는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응답도 20.1%나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교권보호위원회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례는 총 2만9541건으로, 특히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건은 2009년 11건에서 지난해 107건으로 급증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령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법으로 보장된다면 교사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더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교권의 추락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비영리 교육재단인 바키 GEMS 재단이 지난 2013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21개국의 교사 위상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중국을 제외한 대개의 나라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 직종이라고 꼽는 의사보다 위상이 낮은 직업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미국과 브라질은 교사는 도서관 사서와 유사한 위상을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자녀가 교사가 되는 것을 장려하겠냐는 질문에는 중국의 부모 50%가 긍정적으로 답한 반면 이스라엘은 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는 교사라는 직업의 위상이 높은 축에 속했지만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5%나 됐다. 부모가 모두 교사였던 바키 재단 창립자 서니 바키는 이 결과를 토대로 전세계 교사들의 위상이 위기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고 교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지난해부터 ‘세계 교사상(Global Teacher Prize)’을 만들어 매년 헌신적인 교사 한 명을 뽑아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에 참석한 바키 재단 대표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국제학업성취도(PISA) 성적은 훌륭한 교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5월 말부터 10월까지 교사추천기간 동안 ‘세계 교사상’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해달라고 전했다. 물론 학생들의 성적이 수상자를 꼽는 기준은 아니다. 그는 학생들을 얼마나 혁신적으로 가르치고 건강한 세계시민이 되도록 격려하는 지가 중요한 평가 잣대라고 덧붙였다. 천편일률적인 교과과목 수업에, 인성교육마저 과외를 받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매번 고배를 마시는 노벨상만큼이나 받기 어려운 상이 될 것만 같아 씁쓸하다. 지난해 첫 수상자는 미국 교사였고 13일(현지시간) 발표된 올해 수상자로는 팔레스타인 교사가 호명됐다. 교사들을 위한 행사라서 정숙하고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두바이에서 열린 이날 시상식에 앞서 레드 카펫 행진에는 파리니티 초프라 등 인기 발리우드 배우는 물론 할리우드 배우 셀마 헤이엑과 매튜 매커너히도 등장해 현장을 달궜다. 갈라쇼에서는 우리나라 가수 에릭 남이 초청돼 노래를 불렀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영상 축전도 공개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10명의 최종 후보 교사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이중 한 명의 수상자를 호명한 인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두바이는 ‘세계 교사상’을 통해 전세계 교사들을 고무시키고, 후보에 오른 교사들을 전세계로부터 존경 받게 하는 동시에 시상식 자체를 하나의 지구촌 축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의 아이디어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찍어주고 싶다. 윤나래 중동 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명순(58) 예비역 준장은 아담한 체구에 밝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모습을 보여 줬던 그는 인터뷰 며칠 후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당초 거부했던 인터뷰를 수락하게 된 이유였다. “전역을 하고 보니 지금 이 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해 준 게 없더군요. 선배의 말 한마디지만 사랑하는 여군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내고 희망을 품었으면 싶네요. 오늘부터 봄 날씨라는 예보가 있더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너 거기서 군인들한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 주는 건 아니지?” 1980년 2월 대학(영남대 정치외교학과 76학번) 졸업식 날, 간호장교 시험에 붙었다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유머러스한 인사랍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딱히 농담이라고만 하기도 어려웠다. 내 머릿속의 여군에 대한 인식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여자도 장교가 될 수 있구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그해 12월 초였다. 대구 중구의 맥화랑에서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데 옆 건물 담벼락 게시판에 ‘여군 장교 모집’ 공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화랑 옆에 있는 게 대구지방병무청이란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간호학과에 들어간 친구가 떠올랐다. 호기심에 빼꼼히 상담실 문을 열었다. 여군 부사관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나를 앉혀 놓고 장장 3시간에 걸쳐 여군이 되면 뭐가 좋은지를 설명했다.(여군 장교 지원자가 없다 보니 모집에 성공하면 담당자에게 따로 수당을 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여군에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평생 통제된 생활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냥 일어서려는데 담당자가 너무도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결국 지원 신청서를 쓰고 나왔다. ‘시험 보러 안 가면 그만일 텐데,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다음날부터 집 전화기에 불이 났다. 병무청 담당자였다. 처음에는 “훌륭한 결심을 왜 바꾸셨느냐”로 시작하더니 내가 완강하게 버티자 “지원을 취소하면 헌병대 군인들이 데리러 갈 수밖에 없다”로 거의 협박조로 변했다. 하지만 막판의 한마디가 나의 오기에 불을 댕겼다. “경쟁률이 10대1입니다. 우수한 인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한 건 처음인데 붙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일단 시험이나 한번 보시죠.” 지금 생각해 보면 별말도 아닌데, 그때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1981년 1월 초 대구역에서 서울행 군용열차에 올랐다. 시험 장소는 용산 국방부 근처의 여군훈련소. 집에는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둘러댔다. 첫날밤을 간호장교 친구 집에서 묵었다. “명순이 넌 정말로 못 할 일이야. 숨 막히는 상명하복 문화를 너 같은 성격에 행여….”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는 이미 출근했고, 머리맡에 고향 갈 차비와 함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명순아, 아직도 안 늦었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는 돈을 챙겨 넣고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은 필기, 면접, 체력검정으로 나뉘어 2박 3일간 이어졌다. -시험에 붙긴 했는데, 새로운 걱정이 밀려왔다. 아버지에게야 어떻게든 이해를 구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는 당최 자신이 없었다. 합격 사실을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절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기무대에서 신원조회를 위해 집에 전화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집에 없었다. 매번 어머니가 받으셨는데 딸 찾는 남자 목소리가 1주일 정도 이어지자 “대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으시게 됐다 “따님이 여군 장교 시험에 합격해서 신원조회차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도 못 끊은 채 혼절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 4남매를 집합시켰다. 당시 큰오빠는 한국전력 고리원전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오빠와 여동생은 대구에서 대학에 다녔다. 전원 반대였다. “군인이 얼마나 힘든데 여자가 군대를 가냐.” 큰오빠가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 “오빠, 합격하고도 입대를 안 하면 행정 기록에 평생 빨간 줄 같은 거 남는대.” 군인 출신인 아버지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둘러대다니. 드디어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명순이는 어릴 때부터 아들 같은 딸이었다.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못 간 길을 네가 가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평생을 바랐던 ‘교사 딸’에 대한 미련을 내가 소령 계급장을 달 때까지도 버리지 못하셨다. -육군 공병이었던 아버지는 6개월마다 교량 하나씩을 짓고 부대를 옮겼다. 강원 횡성에서 태어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 어머니는 이런 환경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우리들 교육 때문이었다. 8남매 중 맏이로서 동생들을 책임지느라 많이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 된 분이셨다. 4남매만큼은 안정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하셨다. “여보, 군인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서 장사라도 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분이셨다.(아버지는 2013년 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아내를 그리워하다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게 1965년, 내가 일곱 살 때였다. -나는 경북 경주의 작은 동네에서 ‘가게 하는 집 딸’로 통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110m 허들 육상선수로 꽤 소질을 인정받았고, 공부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중3 어느 날 대구 경북여고에서 누군가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따님을 육상선수로 스카웃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명순이가 시험으로도 그 학교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운동 특기생으로 보낼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의 바람에는 내가 얌전히 자라 교사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뒤부터는 그런 어머니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이 잦아졌다. 딸을 통해 못다 한 꿈을 이루려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사춘기의 열병 같은 것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말썽을 피운 건 아니었지만 빈둥거리는 시간이 늘었고, 성적이 그에 비례해 곤두박질했다. 경북대 영문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저 대학 안 가고 돈 벌래요. 오빠들 등록금 대기도 빠듯하잖아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던 아버지가 내심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0년, 20년 지나 봐라. 여자들 사회활동이 얼마나 활발해질 텐데…. 절대로 안 될 말이야.” 아버지가 손수 후기대학인 영남대의 지원서를 받아 오셨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은 그대로 통했다. 여군 장교 지원 조건이 ‘4년제 대학 졸업자’였으니 말이다. -기함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1981년 3월 용산 여군훈련소에 입소했고, 그날부터 후회가 시작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간호장교 친구의 만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구보 등 고된 훈련은 둘째치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40㎏ 언저리의 체중으로 그 힘든 훈련들을 견뎌내야 했다. -틀에 박힌 생활, 충성심과 국가관 교육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학생대장(소령)이 수양록(일기)을 점검할 때면 매일같이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다. ‘군대를 선택하길 참 잘했다’ 같은 식으로 써야 하는데 내 수양록에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와 같은 군대 금기어들이 수두룩했다. ‘이렇게 쓰면 훈련소에서 내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그렇게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가 차츰 커져 갔다. -1981년 9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관을 했다. 상관들은 우리들 20명에게 “외출할 때 버스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고 했다. 군복 입은 여군, 특히나 위관급 계급장을 단 여자 장교는 동물원 원숭이만큼이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1982년 육군본부에 배치됐다. 주한 외국대사관의 군인들을 상대하는 무관 연락장교를 맡았는데, 정문을 지키는 의장대 군인들이 외국대사관 군인들의 출입을 막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경비소대장에게 달려가 마구 따졌다. 그도 지지 않았다. “감히 소위가 중위에게 하극상을 하나?” “우리가 지금 계급으로 일하는 거예요?” 그때의 중위가 지금의 남편이다. 3년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양쪽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똑같이 결혼 상대가 ‘군인’이라는 이유였다. 남편은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다. -1983년 4월 미국 텍사스 공군기지 안에 있던 영어전문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는 내가 이후 통역 등 영어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군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 내가 세운 원칙은 “기존의 여군 선배들이 걸었던 ‘여군의 길’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와 같은 능력을 갖춰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기는 1990년 여군병과가 사라져 내가 보병병과로 편입되면서 찾아왔다. 더 많은 보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92년부터 1년 4개월간 특전사 여군을 지휘했다. 대테러팀, 고공강하팀, 패러글라이딩팀에 소속돼 고공 낙하산과 래펠을 탔다. 가슴에 ‘공수 윙마크’를 달았다. -“여군대대를 없애 주십시오. 250명 부사관에게 고유의 병과를 부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군본부 여군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하던 1999년, 육군참모차장에게 나는 강한 어조로 건의했다. 당시 육군본부 내 남자 사병과 여군 부사관 간에 차별이 너무 심했다. 남자 사병들에게는 정신교육을 없애고 PC방까지 만들어 주면서 여군에 대해서는 계급이 더 높은데도 취침 때까지 정신교육에 점호를 시켰다. 사병들은 대학을 다니다 온 우수한 인재들이 많고 여군 부사관들은 전문대나 고등학교 출신이 많다는 편견도 크게 작용했다. 여군 부사관이 사병의 복사 심부름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사병들이 여군 부사관을 무시하고 경례도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우리 여군 부사관들이 고작 행정 보조나 하려고, 차 심부름이나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지 않은가.’ -얼마 후 점호가 사라지고 야근도 탄력적으로 바뀌었다. 3년 후에는 여군대대가 없어졌다. 각자 병과를 받아 각 부대로 흩어졌다. 그동안의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일부 여군 부사관들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방 어느 부대에도 여군이 있다. 여군대대가 아직까지 존속했다면 여군 1만명 시대(올 연말 1만 490명 예상)가 이렇게 빨리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말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중령으로서 한미연합사에 배속된 첫 여군이 됐다. 대령 진급 후 2006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대장을 맡았는데, 이때 7명의 연대장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2007년 대구 2작전사령부의 작전처 민사심리전과장으로 가면서 ‘민군작전’(안정화 작전)에 발을 들였다.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서 한·미 연합군이 북으로 진입하게 되면 북한 주민을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우는 작전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전투에서의 승리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이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에 진주한 경험이 있는 미군은 민군 작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전투에 이겨도 전쟁에 질 수 있다”는 개념을 이때 갖게 됐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0년 여군 최초로 합동참모본부에 발을 디뎠는데, 이 경험이 장군 진급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2011년 1월 1일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맡으면서 여성 처음으로 ‘별’을 달았다. 아이들에게 큰절을 했다. 부모가 1년마다 가방을 싸는 군인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못 했는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2014년 가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국가안보론과 리더십 수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많이 받는 질문은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어떻게 장군까지 올라갔느냐는 것이다. 매번 답은 똑같다.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세상의 변화, 조금씩 유연해진 군 조직,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후배 여군들에게는 ‘여성성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꼭 필요하다면 모를까 공연히 남자 대 여자로 겨루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회는 결국 공생이고 상생이니까요.”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송명순 예비역 육군 준장은 국내 최초의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다. 간호병과에서는 2001년 첫 여성 장군이 나왔지만 실제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여군으로는 2010년 12월 별을 단 송명순 장군이 처음이다. 1981년 장교로 임관해 32년간 육군본부, 특전사령부, 작전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을 두루 거친 뒤 2012년 12월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육본 여군대대장 시절 스스로 여군대대의 해산을 상부에 건의해 관철시킴으로써 잡다한 행정업무의 굴레에 갇혀 있던 여군들을 야전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여군 1만명 시대’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58년 강원 횡성 출생 ▲경북여고·영남대 정치외교학과·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1군사령부·특전사령부 여군대장 ▲육군정보학교 영어학 교관 ▲육군 비서실 대외의전장교·여군대대장·여군담당관 ▲육군훈련소 제25교육연대장 ▲제2작전사령부 민사심리전과장 ▲한미연합사 민군작전계획과장·민군작전처장
  • “남은 대국 큰 영향 없어… 포석 잘 풀면 승산 있다”

    “진다는 생각 안 했는데 너무 놀랐다.” 인공지능 알파고에 충격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아쉬워했다. 이 9단은 “두 가지에 놀랐다”면서 “하나는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포석을 풀어 가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가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9단이 말한 알파고의 강수는 초반 상변에서 중앙으로 흑이 한 칸 뛴 곳을 들여다본 것(24수)과 우변에서 흑 세칸 벌림의 중앙을 파고든 것(102수)이다. 이 9단은 24수와 26수, 102수를 알파고의 호착으로 꼽았다. 이어 첫판 패배가 전체 대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 등 경험이 많다. 첫판에 크게 흔들린 판후이와는 달리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후회하느냐는 외국 기자의 질문에는 “충격적이지만 즐겁게 뒀고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받아넘겼다. 이 9단은 “4국이 남았다.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이날은 포석에 실패했다”면서 “포석을 잘 풀어 나가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본다. 우승 확률은 50대50이다”고 말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호남민심 잡아라… 김종인 vs 안철수 나란히 호남향우회 행사 참석

    호남민심 잡아라… 김종인 vs 안철수 나란히 호남향우회 행사 참석

    호남민심 잡아라… 여야 3당 대표 호남향우회 행사 참석  여야 3당 대표가 나란히 호남향우회 행사에 참석했다.  4일 서울 강남구 프리마호텔에서 열린 전국호남향후회중앙회 정기총회에 새누리당 김무성,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나란히 참석했다.  4·13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호남 러브콜에 들어간 것이다.   여야 3당 대표가 총선 정국이 본격화된 이후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여야 3당 대표는 이날 오후 총회에서 각각 인사말을 한다. 특히 호남표가 절실한 야권 대표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최근 더민주 김 대표와 국민의당 안 대표는 야권 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감정싸움 양상으로 번진 상황이라 이들이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 관심이다.  김종인 대표가 “총선 승리를 위해 야권 통합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제안을 한 것에 대해 안 대표는 전날 부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국민의당에 대한 정치공작이고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버릇/임창용 논설위원

    온라인뉴스 부서에 몇 년 근무한 뒤부터 못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대화 중 디지털 콘텐츠 관련 화제가 나오면 자꾸 앞에 나서려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한참 부족함을 알면서도 누군가 좀 어설프다 싶으면 부지불식간에 끼어든다. 그 파트에 갓 입문한 사람들과 있을 때 더 그렇다. 하지만 곧 후회한다. 혹여 자문을 하면 모를까, 먼저 나서는 것은 결국 아는 체하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나름 소신을 갖고 일하는 상대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내가 해 봐서 아는 데…’ 유의 어법은 실상 상대에겐 ‘공자 앞에서 문자 쓰니?’란 오만으로 비치기 쉽다. 얼마 전 ‘성완종 리스트’ 사건 재판에서 검사 출신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사들에게 “나도 수사를 잘 안다”며 호통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논어 ‘팔일’(八佾) 편에 보면 공자가 태묘(太廟)에 들어가 참배 절차를 일일이 관리인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누군가 ‘예(禮)에 정통하다는 공자가 관리인보다도 못하다’고 조롱하자 공자는 “태묘에 들어왔으면 태묘 관리인에게 물어보는 게 예다”라고 답했다. 간혹 잘 알면서도 모른 체 묵묵히 들어 주는 이를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이승훈, 서른이 되길 기다렸다…마지막 불꽃 태우련다

    이승훈, 서른이 되길 기다렸다…마지막 불꽃 태우련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이승훈은 올해 한국 나이로 29세다. 2년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은 30대의 나이로 치르게 된다. 종목별로 다르겠지만 보통 운동선수에게 30대가 된다는 것은 이제 슬슬 팔팔한 10~20대 선수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실내빙상장에서 만난 이승훈은 “어렸을 때부터 30대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에게 30대란 사회적 활동도 왕성하고 에너지도 넘치는 시기인 것 같다”며 “빙속에서 현재 5000m든 1만m든 제일 잘 타는 선수는 전부 30대다. 나도 30대에 오히려 더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강조했다. 30대를 코앞에 둔 이승훈은 자신의 바람대로 올해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매스스타트에서 2위와 0.06초 차이의 짜릿한 금메달을 따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그는 “당시 마지막 구간에서 추월을 시작하며 상대 선수와 나란히 섰을 때 이미 우승을 확신했다”며 “올 시즌은 매스스타트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집중했었는데 목표했던 바를 이뤄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금메달은 시즌 내내 인고의 시간을 거듭한 끝에 따낸 것이다. 이승훈은 2014~15시즌 5번의 월드컵 대회에 나가 5개의 메달(금3·은1·동1)을 따냈는데, 이를 지켜본 다른 나라 선수들이 집중 견제를 해 2015 세계선수권대회에선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월드컵 대회에선 튀지 않고 조용히 보내는 전략을 택했다. 2015~16시즌 그의 월드컵 메달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4차 대회의 동메달이 유일했다. 이승훈은 “지난 시즌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았지만 정작 세계선수권에서 견제를 너무 많이 받았다. 그래서 시즌 내내 눈에 안 띄도록 노력했다. 심지어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초·중반에는 나서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자리를 잡고 뛰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회를 금메달로 마무리 지어 다행이었지만 사실 이승훈에게 2015~16시즌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는 시즌의 시작을 예상치 못했던 실격과 함께 출발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매스스타트 종목에 출전하기 바로 직전 경기복이 찢어져 시합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승훈은 “경기 출전 이틀 전쯤 신설 규정에 맞춰 방탄소재로 바뀐 매스스타트용 유니폼을 새로 받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며 “시합 직전 경기복을 입은 뒤 몸을 일으키니 지퍼 부분이 터져 버렸다.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고, 다른 남는 옷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매스스타트 세계랭킹 1위였던 이승훈은 당시 실격으로 순위가 7계단이나 곤두박질쳤다. 속상할 법도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당황스럽긴 했지만 세계선수권이나 동계올림픽도 아니고 (대회 규모가 더 작은) 월드컵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앞으론 조심해서 입어야겠다”며 “이후 더 큰 걸로 달라고 했더니 이젠 입으면 약간 펄럭거릴 정도다. 그나마 이게 움직이긴 편하긴 하다”고 말한 뒤 허허 웃어 보였다. 훈련방식에서도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승훈은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둔 2013~14시즌 때 역도 훈련을 열심히 했었는데, 이것이 월드컵 메달로 이어지며 효과를 톡톡히 봤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역도 효과’를 기대하고 이번 시즌에도 훈련에 열중했는데 과도한 의욕이 결국 역효과를 불러왔다. 이승훈은 “역도에 너무 욕심을 낸 것 같다. 바벨 무게를 올리고자 체중을 불렸던 게 장거리 타는 데엔 마이너스가 됐다”며 “중거리인 1500m 기록이 좋아진 반면에 주 종목인 장거리가 약해져 이게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거리에 맞춰 다시 훈련하다 보니 리듬이 깨져 이번 시즌 5000m와 1만m에서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선수권에 온 힘을 쏟아부었던 이승훈은 오는 11~13일 네덜란드에서 있을 월드컵 파이널 대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한국체대에서 하루 5시간가량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이어 3월 중순부터는 한 달 가량 휴가를 계획 중이다. 이승훈은 “매년 휴식기 때면 제주도에 가서 쉬다 오곤 했다. 올해도 갈 것 같다. 우리나라인데도 서울과는 분위기가 달라 여유가 느껴져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쉴 때에는 주말에 가족들과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며 “뮤지컬을 보는 것도 즐기는데 시즌 때 못 갔으니 휴가 때 보러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늦게 일어나도 돼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이승훈은 휴식기간이 끝나는 4월 말쯤부터는 다시 오전 4시 50분에 일어나 하루 8시간씩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 특히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남은 시즌을 후회 없이 보낼 계획이다. 이승훈은 “사실 지금으로선 평창 동계올림픽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운동이 많이 힘들기도 하고, 이후 은퇴를 하면 다른 일들도 많이 할 게 있을 것 같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끝내면 선수로서 욕심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은퇴 뒤에 무엇을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는 “일단 다른 일을 하려면 한동안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뒤에는 강단에 서는 일들을 했으면 한다. 후배들에게 나의 성장과정을 들려주는 일도 좋고, 쉽지 않겠지만 교수가 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승훈이 31살 때 열린다.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이승훈의 목표는 주력 종목 모두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는 “평창에서는 매스스타트, 팀추월, 5000m, 1만m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고 싶다”며 “잘 마무리를 지어 아시아에서는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선수가 되고 싶다”며 빙그레 웃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23살의 나이로 깜짝 금메달을 따내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승훈이 30살로서는 처음 맞는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한층 노련해진 그의 스케이팅이 기대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이승훈은 ▲1988년 3월 6일 ▲서울 중구 출생 ▲리라초-신목중-신목고-한국체대 ▲178㎝, 70㎏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금메달· 5000m 은메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은메달 ▲2016년 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충분히 생각하고

    섣불리 생각지 말자. 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너무 깊이 생각지 말자. 너무 깊이 생각하면 괜한 의심 많아지니. 사지물거 거즉다위(思之勿遽 遽則多違)사지물심 심즉다의(思之勿深 深則多疑)이규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사잠’(思箴) 편 이규보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경솔히 행동한 것을 후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허겁지겁 일을 하고 나서는 생각하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생각하고 일을 처리했더라면 어찌 화(禍)가 따를 리 있겠는가. 나는 불쑥 말을 던지고는 한 번 더 생각지 않은 걸 후회하곤 한다. 생각하고 말했더라면 어찌 욕을 볼 일이 있겠는가. 섣불리 생각지 말자. 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 너무 깊이 생각지 말자. 너무 깊이 생각하면 괜한 의심 많아지니. 잘 헤아려서 절충하여 세 번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알맞으리. ‘논어’에는 공자께서 계문자(季文子)가 세 번 생각한 후에 행하였다는 말을 듣고 두 번이면 된다고 했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현혹될까 걱정해서 한 말이라 합니다. 두 번이면 된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나 세 번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이규보의 생각이나 그 취지는 다 같은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이치를 잘 따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과, 과감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괜히 이런저런 의심을 하는 것 모두를 경계한 것이겠지요. ■이규보(李奎報·1168∼1241) 고려의 문신·재상.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만년에는 시·거문고·술을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렸다. 젊은 시절에는 시문을 즐겨 당대 문인들의 모임인 강좌칠현(江左七賢)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장년 이후에는 정계의 중심에 섰고 무신 정권 시대에 문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재상에 이르렀다.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책’ 코너에서는 다른 고전 명구나 산문, 한시 등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시론] 후회 없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되려면/정준모 미술평론가

    [시론] 후회 없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되려면/정준모 미술평론가

    삼수 만에 유치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제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유치 당시의 기쁨도 잠깐. 부지런히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완벽한 대회 개최도 조바심 날 일이지만 정작 더 큰 고민은 올림픽이 끝난 뒤다. 올림픽을 치른 다음의 설거지는 오롯이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조직위 측은 2주간의 올림픽을 치르는 데 필요한 경기장과 시설물 건설에 약 8000억원, 대회 운영비 200억원 등 투자 수요에 순수익 1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당장의 대차대조표만 봐도 ‘빚잔치’가 자명하다. 여기에 ‘승자의 저주’, 즉 경제적 단락 효과라는 ‘올림픽 경제침체 효과’를 예상하면 마냥 낙관적일 수 없는 노릇이다. 세계인들을 대한민국의 평창에 모아 근사하게 잔치를 치르고 모두 만족해 즐겁게 돌아가면 좋지만 우리는 2주를 위해 20년, 200년의 계획을 가지고 이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올림픽 후를 걱정하는 이들은 나가노와 밴쿠버, 소치의 적자 또는 실패를 예로 들지만 삿포로, 레이크플래시드, 릴레함메르, 토리노처럼 성공을 거둔 예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성공과 실패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 하기 나름이다. 지금이라도 실속 있는 대회 준비를 통해 성공적인 올림픽, 후회 없는 평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단 걱정했던 대회 운영과 시설은 최근 정선에서 열린 2016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월드컵대회를 치르면서 한숨 돌렸다. 하지만 재정부문의 걱정은 여전하다. 약 1조 5000억원의 소요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그래서 마른 수건도 다시 짤 궁리를 해야 한다. ‘애프터 평창’이 걱정이라면 새로 건립 예정인 개폐회식장도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공사비 1300억원도 걱정이지만 추후 연간 100억원이 소요되는 유지관리비는 더 걱정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11%인 평창군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걸까. 적자수지를 역전시키기 위해선 환경올림픽의 기치 아래 전국의 폐컨테이너를 모아다 이를 이용해 한시적으로 사용할 개폐회식장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약 1250개의 폐컨테이너로 구조물을 만들면 3만~4만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 건설에 약 200억원의 공사비로 가능하다. 또 겨울철에 개폐회식이 열리니 막구조 지붕으로 천장을 만들어도 총 300억원이면 충분하다. 이때 사용된 컨테이너는 추후 기념품으로 희망하는 곳에 나누어 주는 것도 올림픽을 기념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두고두고 돈 잡아먹는 애물단지를 끌어안고 사느니 이렇게 컨테이너를 이용한 임시 스타디움을 만드는 것이 실속 있는 일 아닐까. 여기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흑자 대회가 되려면 평창올림픽을 국가와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기회로 삼아 문화·관광산업의 획기적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기회에 지속 가능한 문화관광 인프라를 구축하자. 지금까지 시설과 운영 그리고 예산 확보에 집중하느라 문화예술관광 프로그램은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18개 강원도 내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프로그램을 1개씩 올린다는 계획이지만 전체적인 개념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중심이 없고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콘텐츠가 크게 부족하다. 가용한 자원을 토대로 평창, 강릉, 정선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본다. 평창은 개폐회식과 야외종목을, 강릉은 실내종목을 맡고 있으니 활강경기의 골인 지점인 정선을 문화 올림픽의 주체로 부각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아리랑과 화암동굴, 재래장터 등의 콘텐츠를 지닌 정선은 문화 올림픽의 적지다. 현 문화예술회관을 보수해 올림픽 기간 중 상시공연, 전시 프로그램을 올리면 어떨까. 정선아리랑을 세계적인 음악가, 오페라 연출가들을 초치해 새롭게 재해석하는 국제 아리랑페스티벌 같은 것을 이때 그리고 이후 격년으로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인공동굴과 자연동굴이 공존하는 화암동굴을 에코 뮤지엄 형태의 전시 및 공연시설로 거듭나도록 한다면 겨울철 야외 행사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새로 돈 들여 짓기보다는 있는 것을 보완하고 고쳐 써 올림픽 이후 문화관광 강원의 토대를 만들어 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후회 없는 동계올림픽이 되려면 말이다.
  • 필리버스터 나흘째, 서기호 의원 돌연 총선 불출마 선언…왜 지금인가 했더니?

    필리버스터 나흘째, 서기호 의원 돌연 총선 불출마 선언…왜 지금인가 했더니?

    필리버스터 나흘째, 서기호 의원 돌연 총선 불출마 선언…왜 지금인가 했더니? 필리버스터 나흘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테러방지법에 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마친 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남 목포에서의 출마를 고민하고부터 ‘목포를 책임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준비는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왔다”면서 “결론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불출마 결심은 더 일찍 했지만 뜻밖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고 아직 진행 중이어서 발표를 망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고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지만 본회의장에서 토론하는 동안 많은 분이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총선에서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줬다는 소식을 듣고 더 늦기 전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서 의원은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사태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됐고 국민과 소통을 위해 시작한 SNS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판사직에서 물러난 뒤 비례의원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게 됐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소신 있게 쉼 없이 일했고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털어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기호 총선 불출마, 필리버스터 마친 뒤 돌연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

    서기호 총선 불출마, 필리버스터 마친 뒤 돌연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

    서기호 총선 불출마, 필리버스터 마친 뒤 돌연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서기호 총선 불출마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테러방지법에 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마친 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남 목포에서의 출마를 고민하고부터 ‘목포를 책임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준비는 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왔다”면서 “결론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불출마 결심은 더 일찍 했지만 뜻밖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고 아직 진행 중이어서 발표를 망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고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지만 본회의장에서 토론하는 동안 많은 분이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총선에서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줬다는 소식을 듣고 더 늦기 전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서 의원은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사태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됐고 국민과 소통을 위해 시작한 SNS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판사직에서 물러난 뒤 비례의원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게 됐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소신 있게 쉼 없이 일했고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털어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짝짝이 장갑/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곁에 있을 땐 그다지 긴요함을 모르다가 없어지면 아쉬워지는 것들이 많다. 특히 장갑 한 짝을 잃어 버리면 참 난감하다. 가죽 장갑의 한 짝을 얼마 전 길에서 잃어버렸다. 들렀던 카페, 지나온 길을 몇 번씩 오가며 훑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누구는 그깟 물건 하나 잃어버리고 뭘 그리도 서운해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참 그랬다. 손에 딱 맞게 길들여 놓고 겨울이면 꺼내 쓰기가 벌써 10여년째였으니 말이다. 홀로 남은 한 짝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할 수 없이 잘 안 쓰던 모직 장갑을 끼고 다녔는데 며칠 전 그것마저도 한 짝을 잃어버렸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 하느라 장갑 벗을 일이 잦다 보니 전보다 장갑을 잘 흘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남은 것들을 짝 맞춰 끼면 되겠네”라고 한다. 다행히도 오른쪽, 왼쪽이 한 짝씩 남았던 터라 양손에 끼어 봤다. 짝짝이지만 은근히 잘 어울린다. 가죽과 모직의 조화도 맘에 들고 왼쪽 가죽 장갑은 핸들이 미끄러지지 않아 운전할 때 좋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한 짝만 남아서 쓸모없게 됐다고 그냥 버렸으면 참 후회할 뻔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軍 “北, 체제 붕괴 재촉” 강력 경고…국지적 도발·사이버 테러 비상등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북한군이 지난 23일 청와대 등에 대한 선제공격 운운하자 우리 군 합동참모본부는 24일 ‘체제 붕괴’까지 거론하며 강력한 경고로 맞섰다. 북한의 위협은 다음달 한·미 연합 키리졸브 군사연습과 독수리훈련을 겨냥한 ‘말 폭탄’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국지 도발 및 사이버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의 ‘청와대 타격’ 위협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도발적 언동”이라고 비판한 뒤 “이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합참은 ‘북 최고사령부 성명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우리 군은 북한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도발적 행태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도발을 감행한다면 단호한 응징을 통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은 무모한 도발로 야기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북한 독재체제의 붕괴를 재촉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합참이 ‘체제 붕괴’, ‘파멸’ 같은 강도 높은 표현까지 써 가며 북한을 비판한 건 이례적이다. 북한은 전날 인민군 최고사령부 중대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 군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노린 ‘참수작전’에 나설 경우 “선제적인 정의의 작전 수행에 진입할 것”이라며 “청와대와 반동통치기관들이 1차 타격 대상”이라고 위협했다. 이 같은 북한의 위협은 이른바 ‘최고 존엄 훼손’에 대한 반사 반응으로 이해된다. 한·미 연합군이 김 제1위원장을 겨냥한 훈련을 펼치는 만큼 북한군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에 맞서 맞대응 훈련을 벌이기는 벅찬 상황이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기들의 의지를 대내적으로 보여 주는 명분이란 점에서 확고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매년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북침전쟁연습’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올해는 5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체제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군 최고사령부의 첫 ‘중대성명’이란 점에서 위협 수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게다가 최근 국제사회가 북한의 ‘돈줄’을 죄는 고강도 제재에 착수하며 북한이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국지 도발 등을 감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이라며 “고강도 맞대응 무력시위 가능성은 낮지만 서해상 긴장 고조나 비무장지대 무력 증강, 사이버테러 등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미 공군은 이날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쌍매 훈련’을 공개하며 끈끈한 동맹을 과시했다. 25일까지 경기 오산기지에서 실시되는 이번 훈련에는 북한군 전차를 파괴할 미국의 A10 공격기 7대가 동원됐다. 또 수도방위사령부와 경찰특공대, 서울메트로 등은 이날 서울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에서 북한의 테러에 대비한 통합훈련을 실시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28년 만에 단편 낸 황석영

    28년 만에 단편 낸 황석영

    소설가 황석영(73)이 28년 만에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24일 발간되는 계간 ‘창작과비평’ 50주년 기념호인 봄호(통권 171호)에 실릴 ‘만각 스님’이다. 황석영이 단편을 발표한 것은 1988년 ‘열애’ 이후 처음이다. 그는 등단작인 ‘입석부근’을 포함해 ‘객지’,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등의 단편을 썼다. ‘만각 스님’은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1983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소설가 ‘나’는 장편소설 연재를 마무리하기 위해 전남 담양의 호국사에 내려간다. ‘나’는 호국사에서 만난 만각 스님을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흔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소설가 ‘나’는 1980년대 역사소설 ‘장길산’을 연재했던 황석영을 연상시킨다. 또 황석영은 소설 곳곳에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과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의 이야기를 중첩시키며 논픽션 성격을 강화한다. 소설은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실제 주인공은 만각 스님이다. ‘뒤늦게 깨닫는다’(晩覺)는 뜻의 법명을 지닌 스님은 사십이 넘어서 중이 된 특이한 인물이다. ‘나’는 소설 말미에 만각 스님이 한국전쟁 당시 공비 토벌로 훈장을 받은 경찰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황석영은 이런 말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나는 스님의 법명이 자기에게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디 그이뿐이랴. 사람살이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의 반복이 아니던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박보검 ‘꽃청춘 아프리카’ 첫방, 세가지 볼거리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박보검 ‘꽃청춘 아프리카’ 첫방, 세가지 볼거리

    ‘쌍문동 4형제’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담은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가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는 ‘꽃보다 청춘’(이하 꽃청춘) 시리즈의 4탄으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주역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이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를 방문하기 위해 10일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케이블TV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응팔’과 tvN 간판 예능 ‘꽃청춘’의 만남으로 기대를 높이는 가운데, 첫방송을 앞두고 제작진이 ‘꽃청춘 아프리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소개했다. ▶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 아무도 몰랐던 역대급 납치극 전말 공개 이날 첫방송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쌍문동 4형제의 몰카 납치극 전말이 공개될 계획이라 궁금증을 자아낸다. 태국 푸켓에서 ‘응팔’ 포상휴가를 즐기던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가 현지에서 나영석 PD를 맞닥뜨렸을 때 보였던 멘붕 모습과 미리 귀국해 다른 일정을 소화 중이던 박보검이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깜박 속아넘어가는 모습이 큰 웃음을 선사할 예정. 연출을 맡은 이진주 PD는 “몰카 납치가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쌍문동 4형제 모두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아프리카라는 먼 땅으로 떠나는 여행이기에 이들의 설렘, 걱정, 감격 등 복잡미묘한 심정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고 전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호기심을 더한다. ▶ 광활하고 원초적인 아프리카 풍경에 시선강탈 쌍문동 4형제를 흥분시킨 아프리카 특유의 광활하고 원초적인 풍경이 시청자들의 시선 또한 사로잡을 전망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 나미비아, 세계에서 가장 긴 물의 장막 빅토리아 폭포 등을 보며 대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고, 얼룩말-기린-타조-임팔라-사자 등 다큐멘터리에서 볼법한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색다른 볼거리를 예고하는 것. 김대주 작가는 “쌍문동 4형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를 고민했는데, 아프리카와 이 친구들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은 ‘응팔’을 통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들의 실제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곳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꽃청춘 아프리카’에서 쌍문동 4형제와 아프리카에 대해 시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라고 밝혀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 요즘 청춘들의 리얼 여행스타일 담아 이번 여행은 ‘스타’가 아닌 ‘자연인’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 더욱 흥미진진할 예정이다. 편안한 잠자리보다는 멋져 보이는 지프차를 선호하고, 그들만의 재미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물 속에서 속옷탈의를 감행하는 등 요즘 청춘들의 예측불허 돌발행동이 빵 터지는 즐거움을 전한다. 나영석 PD는 “쌍문동 4형제의 행동이 딱 요즘 청춘들의 모습이라고 느꼈다. 보통 여행가면 돈을 모아서 공금을 쓰는데 이 친구들은 공금을 받자마자 나눠가졌다. 각자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서로 터치하지 말자고 해서 놀랐다. 또 용돈이 적으니까 당연히 차를 작고 저렴한 것으로 빌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친구들은 차는 무조건 제일 좋은 것을 고르더라. 내면보다는 외향에 신경 쓰는 딱 요즘 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던 게 좋은 차를 빌린 대신 며칠을 노숙해도 불평을 안 했다. 쓸 때 쓰고 그것에 대해 후회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쌍문동 4형제의 풋풋하고 순수한 모습이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역대급 몰카 납치극과 환상의 멤버 조합, 이국적인 볼거리로 ‘꿀재미’를 예고하는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는 19일 금요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밤 9시 45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태양의 후예, ‘송중기+송혜교+진구+김지원’ 포스터 공개… 4인4색 매력폭발 ‘기대’

    태양의 후예, ‘송중기+송혜교+진구+김지원’ 포스터 공개… 4인4색 매력폭발 ‘기대’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KBS2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캐릭터 포스터가 공개됐다. KBS 2TV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극본 김은숙, 김원석, 연출 이응복, 백상훈 제작 태양의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NEW)는 낯선 땅 우르크에서 재난을 겪게 된 파병 군인과 의사들을 통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멜로다. 이번에 공개된 캐릭터 포스터에서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은 자신들이 연기할 인물들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태양의 후예’ 제작진은 오는 24일 첫 방송에 앞서 미리 알고보면 좋은 인물들의 캐릭터 ‘디테일’을 공개했다. #. 유쾌한 엘리트 군인, 유시진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갈게요, 내가 찾을게요.” 군 전역 후 ‘진짜 사나이’로 돌아온 배우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대위는 육사 출신의 엘리트 특전사 대위다. 육군 원사로 명예 전역한 아버지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들에게 다른 길을 권유했지만, 아버지를 존경한 아들은 그 길을 따랐다.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한다는 믿음,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지만 한 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이것이 바로 시진이 지키고자 하는 애국심이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상황에 따라 재치 넘치는 농담도 잘 하는 유쾌한 남자다. #. 쿨한 생계형 의사 강모연 “그래도 내가 같이 가고 싶다면요?” 배우 송혜교가 연기하는 강모연은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는 강남개업을 진리라고 믿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꼬인 인생, 다행히 공부 하나는 잘해 살벌하게 의대를 마치고 29살의 나이에 전문의까지 따냈지만, 결국 ‘빽’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이란 백신을 맞아 자신에게 어설픈 휴머니즘은 없다고 믿는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말솜씨를 가졌으며, 실력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실수는 깨끗하게 인정하는 쿨한 여자다. #. 말보단 액션, 뼛속까지 군인 서대영 “전 괜찮다고, 제 걱정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 진구는 뼛속까지 군인일 것 같은 남자 서대영 역을 맡았다. 날 때부터 배냇저고리 대신 깔깔이를 입었을 것 같고, 내 가족을, 내 조국을 내 손으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하기 때문이다. 특전사를 거쳐 특수수색육군특전구조대로 활약하면서 그는, 쓰촨성, 아이티, 동일본 대지진 등 세계 각지의 재난 지역에 투입됐다. 가벼운 대사보단 묵직한 액션이 편하기 때문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슴은 깊고 넓고 뜨거운 남자다. #. 한 남자 바라기, 멋진 여군 윤명주 “다치지 마십시오, 명령입니다. 목숨 걸고 지키십시오.” 도도한 이미지의 김지원은 각 잡힌 여군 윤명주 중위로 돌아온다. 대한민국 여군, 여군 중에서도 군의관, 그리고 특전사령관의 무남독녀 외동딸, 이른 바 ‘장군의 딸’, 가진 이름도 많은 그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육사에 들어갔고, 여군이 됐다. 그리고 첫 부임한 부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는 검정고시 고졸 출신의 상사. 처음으로 군인이 된 걸 후회했지만, 그냥 물러설 그녀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직진하는 멋진 여자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실패에서 배운다 아차차!] (3)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실패에서 배운다 아차차!] (3)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 비효율 초래… 원안 끝까지 못막은 게 두고두고 후회 론스타 투자회수 지연시킨 건 문제 “공무원이 그렇게 센지 밖에 나와서 체감했습니다. 기업들이 정부 말 안 들으면 엄청나게 손해 본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죠.” 노무현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차관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장을 지낸 권태신(67) 한국경제연구원장은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에서 일하다 보니 규제를 더 풀지 못하고 나온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순환출자 규제, 금산분리, 수도권 규제 등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2009년 부처 간 업무 영역을 조정할 때 더 세게 밀어붙여 중복 규제 등은 없앴어야 했다”면서 “정부 규제로 대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탓에 유출되는 일자리가 약 150만개”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또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엄청난 비효율을 초래했다며 세종시 원안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정부 부처 이전 대신 대기업 유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종시 수정안’ 통과를 책임졌으며,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총리실장 직에서 물러났다. 2009년 정운찬 당시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나왔을 때 여당을 상대로 원안 폐기를 설득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수도 이전은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만큼 헌법(72조)에 따라 국민투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또 미국 헤지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태도도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에 검찰 고발까지 하면서 론스타의 투자 회수를 막는 게 현명했느냐는 것이다. 론스타는 당시 외환은행 매각 절차 지연 등으로 피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투자자·국가간소송(ISD)을 제기했으며, 오는 6월 최종 심리를 앞두고 있다. 그는 재경부 차관 시절 감사원이 론스타를 감사하는 식으로 론스타의 투자 회수를 지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를 3~4년 더 한국에 붙잡아 두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한국은 국제 관례, 정상적인 규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 줬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스크린쿼터(국산 영화 연중 146일 이상 의무상영) 제도와 관련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2006년 한 라디오방송에서 영화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스크린쿼터의 ‘점진적 축소’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당시 영화인들이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00일 동안 삭발 시위를 했다”고 회고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서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부흥했지만 이와 별개로 직설적인 화법이 공직 생활에 결코 득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돌직구’를 날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집사람마저 왜 자꾸 말을 겁 없이 해서 적을 만드느냐고 꾸중을 하더라고요.(웃음)”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눈물로 호소하며 11년이나 지켜왔는데…”

    “눈물로 호소하며 11년이나 지켜왔는데…”

    “눈물로 호소하며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지켜왔는데, 다 포기해 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듭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문이 열릴 거라고 믿습니다.” 2004년 문을 연 개성공단에 첫발을 디뎠던 15개 기업 중 하나인 SJ테크를 이끌어온 유창근(59) 대표는 11일 오후 5시쯤 전해진 북한의 공단 내 자산 전면 동결 조치 소식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11년간 맨손으로 일궈온 설비와 모든 제품을 빼앗긴 것이다. ●고비 때마다 동분서주… 이번엔 달라 유 대표는 앞서 오후 1시쯤 경기개성공단사업협동조합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 고양시 킨텍스 평화누리명품관을 찾았다. 이곳은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벌써 11년이네요. 개성공단에 물도 전기도 없었던 때였어요. 6개월 동안 직원 5명과 컨테이너 숙소에서 라면 먹으며 지냈는데, 그래도 그땐 정말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개성공단에 모두 관심을 가졌고, 중국보다 경쟁력 있는 인건비 덕에 사업에도 큰 보탬이 됐었죠.” ●100억 투자·개성공단 유일 R&D 센터 그는 휴대전화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 생산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위기가 수시로 닥쳤다. 2008년과 2010년에도 정치적 이유로 가동 중단 위기를 맞았고, 2013년에는 5개월이나 문을 닫아야 했다. 그때마다 유 대표는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리 무력감이 든다고 했다. “국가 안보 때문에 정부가 결정한 일이라고 하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황무지를 일구다시피 만든 공장이, 그동안의 노력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유 대표는 공장에 있는 나무 한 그루까지 자기 손이 닿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지난 11년간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개성공단을 다녀왔다. 그 결과 5375㎡(약 1626평)로 시작했던 공장 부지는 현재 9917㎡(약 3000평)로 확대됐다. 북한 측 근로자는 400명에 달한다. 이 중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 300명이다. 10년 넘게 100억원을 투자하며 개성공단에서는 유일하게 연구개발(R&D)센터도 지었다.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는 공장을 넘어 민족의 자산으로서 가치를 지니도록 만들고 싶어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북쪽 고급 인력 100명이 내구성 시험, 부품소재 개발 작업 등을 주도했다. ●후회 안 해… 언젠가 싹 다시 자랄 것 최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정보기술(IT)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설명하자 북쪽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그에게 ‘공상 사업가’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쁠 때보다는 힘들 때가 더 많았지만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개성공단이라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으니까요. 그 싹이 잠시 사그라지겠지만 언젠가 다시 자랄 겁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어느 직장에나 있다…5가지 ‘성격이상자’와 대처법

    어느 직장에나 있다…5가지 ‘성격이상자’와 대처법

    어떤 직장이든 성격적 결함으로 다른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상사나 동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이들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각 유형에 대한 정신적 대처법을 내놓아 관심을 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 주디스 올로프 박사가 말하는 ‘직장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인물 유형 5가지’를 간략히 소개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아도취자)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을 중시하며, 관심에 목말라하고, 늘 칭송받길 원한다.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때로 꽤 매력적 인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매력이 있건 없건 타인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며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교수는 설명한다. 따라서 만일 직장에 나르시시스트가 존재한다면, 이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조종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그들이 좋아할만한 형태로 꾸며 말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예컨대 나르시시스트 상사에게 휴가를 요청해야 한다면 “요즘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제가 이 기간 동안 쉰다면 업무 효율을 높여 회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교수는 충고했다. 두 번째 유형인 ‘분노중독자’(anger addict)는 직장에서의 모든 갈등을 상대에 대한 비난, 공격, 모욕 등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정서적 피해를 입히며,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교수는 설명한다. 이런 분노중독자를 상대하다 보면 스스로 분노에 휩싸여 추후에 후회할 말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교수의 조언이다. 세 번째 유형인 수동 공격자(passive-aggressor)는 분노중독자와 유사하지만, 더 교묘한 형태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짜 미소를 짓거나 마치 상대를 우려하는 것처럼 꾸며 자신의 비난과 분노를 감추기 때문에 진의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수동 공격자를 상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들로 인해 느끼는 모욕감이 나 혼자 만들어낸 착각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박사는 “그러나 이들의 태도에서 불쾌함이 느껴진다면 착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을 탓해도 좋다”고 전했다. 다음 유형인 ‘죄책감 전도자’(guilty-tripper)는 “책임전가의 귀재”라고 교수는 말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해 자기 부탁이나 요구를 들어주도록 유도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죄책감 전도자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완벽한 사람(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는 것이 좋다”고 교수는 조언한다. 만약 죄책감 전도자가 당신의 실수를 이용하려 들면, 순순히 사과하고 잘못에 대해 적합한 수준의 책임을 져 사태를 마무리해 버림으로써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하자. 교수는 “이들은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쉽게 흥미를 잃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유형은 ‘험담꾼’(gossip)이다. 이들은 직장 내 스캔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이들이 거론하는 가십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것도 물론 모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남의 이야기를 몰래 퍼뜨리는 그들의 행태 자체가 불쾌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차라리 관심을 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교수는 말한다. 그는 “사실상 험담꾼들을 억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그들의 발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조언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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