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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입 연 이재용 “뇌물 아니다, 정유라 몰랐다, 청탁 없었다”

    처음 입 연 이재용 “뇌물 아니다, 정유라 몰랐다, 청탁 없었다”

    뇌물 관계 ‘연결 고리’ 모르쇠 일관 “난 전자 소속… 미전실 소속 아냐 정유라, 작년 8월 언론으로 알아 朴과 독대서 삼성 현안 요청 안 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처음으로 직접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 4월 7일 정식재판이 시작된 뒤 50번째 열린 공판이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의 심리로 사흘째 열린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에 대한 피고인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부터 증언대에 섰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그룹의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 훈련을 비롯해 청와대와 최씨 관련 지원을 했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부회장은 “저는 삼성전자 소속이고 미래전략실에 한 번도 소속되지 않았다”며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반면 이 부회장에 앞서 신문이 이뤄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그룹 내 주요 의사결정을 자신이 주도했다며 이 부회장은 알지도 못했다고 엄호했다.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뇌물 관계에 ‘연결고리’가 될 만한 모든 현안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2014년 9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첫 단독 면담에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맡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회사에 다 넘기고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믿었다”며 협회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즈음 정씨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을 두고 ‘공주 승마’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 부회장은 “승마 관련 기사를 20년 이상 안 봤다”며 정씨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4년 하반기에는 이 회장의 와병과 회사 업무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정씨를 지원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쯤 언론에서 특혜 의혹이 제기되며 대략적인 보고를 들어서였고, 구체적인 내용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에야 파악했다는 게 이 부회장의 주장이다. 삼성 임원들이 2015년 8월 3일 정씨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때부터 모든 과정을 이 부회장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성이 정씨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기 직전인 2015년 7월 25일 박 전 대통령과의 2차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선수 지원이 미흡하다고 질책했지만 정씨를 지원하라는 지시는 없었다고 이 부회장은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서도 “양 사 합병은 사장들하고 미전실에서 알아서 다 한 일”이라면서 “회사에서 그렇게 판단하면 추진해 보라고 했다”며 합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치로 박 전 대통령에게 이를 도와 달라고 청탁했을 것이라는 특검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독대 과정에서 삼성의 현안에 대한 요청을 한 일이 없고, 박 전 대통령 역시 대가성 지원을 요구한 일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특히 독대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적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내용 일부에 대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는데 면담 장소엔 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안종범 수첩에는 ‘임기 내 경영권 승계’, ‘삼성-엘리엇 대책 강구’, ‘금융지주사 전환-은산분리’ 등이 기재됐고,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전 실장도 이 부회장의 이 같은 증언을 뒷받침했다. 최 전 실장은 자신이 그룹 내 주요 의사결정 책임자였고 이 부회장에겐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에게 6명의 선수에 대한 승마 지원 개요는 나중에 얘기했지만 정유라에 관한 얘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유라를 꼭 끼워 달라는 최씨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었고, 나중에 내가 모든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이 부회장에게 보고를 해서 부회장이 ‘스톱’을 시켜 줬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된다”고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철저히 가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1년 훌쩍 지난 장현승 사과에 팬들 반응 “꼭 지금이어야 했냐”

    1년 훌쩍 지난 장현승 사과에 팬들 반응 “꼭 지금이어야 했냐”

    장현승이 비스트를 탈퇴한 지 1년 3개월여 만에 사과글을 올렸다. 그러나 뒤늦은 사과에 팬들 반응은 싸늘하다. 장현승은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탈퇴 전 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분께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데뷔를 하고 꿈을 이룬 듯 했지만, 활동 당시의 저는 저 나름의 불편함들이 있었고 또 해소되지 않던 음악적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룹 활동과 팀워크를 위한 이해보다는 제 개인을 고집하는 데에 힘을 썼고, 남의 말은 듣고도 곧바로 제 고집과 자존심을 부려 멤버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고 과거를 되돌아봤다. 이어 “그때 이미 저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무대를 포함한 모든 공식 석상에서까지 불량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르렀고 모든 면으로 참 철없었던 제 모습이 젊음을 즐기는 거라 착각까지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멋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면 많이 후회스러운 모습들입니다”라고 반성했다. 그는 “저의 경솔하고 이기적인 결정들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이제서야 알게 돼 제게 상처 받으신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를 전했다. 장현승은 2009년 비스트로 데뷔했으나 2015년부터 불화설, 태도 논란 등에 휩싸이다 지난해 4월 공식 탈퇴했다. 그로부터 무려 1년 3개월이 지났다. 그는 지난 27일 신곡 ‘HOME’을 발표했지만 차트 성적은 좋지 않았고 대중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제서야 올라온 사과에 팬들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하 장현승 사과글 전문> 안녕하세요, 장현승입니다. 긴 글이 될 것 같지만 꼭 전하고 싶었던 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7년, 탈퇴 전 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분께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TV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화려하고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그때부터 큰 꿈을 가지고 5년의 연습기간을 거쳐 좋은 기회를 통해 멤버들과 함께 비스트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를 하고 꿈을 이룬 듯 했지만, 활동 당시의 저는 저 나름의 불편함들이 있었고 또 해소되지 않던 음악적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룹 활동과 팀워크를 위한 이해보다는 제 개인을 고집하는 데에 힘을 썼고, 남의 말은 듣고도 곧바로 제 고집과 자존심을 부려 멤버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빚어진 멤버들과의 벽은 너무 두터워졌고 화합을 선택하는 대신 저는 멀어지는 것을 선택 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무대를 포함한 모든 공식 석상에서까지 불량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르렀고 모든 면으로 참 철없었던 제 모습이 젊음을 즐기는 거라 착각까지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멋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면 많이 후회스러운 모습들입니다. 고집만큼이나 불필요한 자존심이 쎄서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탈퇴 이후, 저에게 많은 일들이 일었고 겪는 과정이 경험이라기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 할 때 제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그동안 버티던 바닥을 칠 수 있었고, 그렇게 제 나름의 바닥에서 전 깨달음과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은 보지 못하며 남에게 상처들만 남겼습니다. 동시에 저의 경솔하고 이기적인 결정들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이제서야 알게 돼 제게 상처 받으신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단독] “프로듀스101 공연표 사기범,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을 신고합니다.” 지난 28일 인천 계양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20대인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아들이 인터넷에서 공연 티켓 사기를 쳐 돈을 훔쳤다”며 아들을 경찰에 넘겼다. 아들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싹싹 빌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인천 계양경찰서와 서울 마포경찰서는 A(24·무직)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서 각종 공연표를 판매한다고 거짓 글을 올려 돈만 받고 연락을 끊는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여 왔다. A씨는 일본 영화음악 감독 히사이시조의 내한 공연표 한 장을 37만원에 허위로 판매해 돈을 가로챈 것으로 범행을 시작했다. A씨는 이달 초 열렸던 ‘프로듀스 101’ 공연표를 팔겠다는 글로 100여명을 속여 800여만원을 챙겼다. A씨는 정가 7만 7000원 상당의 공연표 값을 최대 30만원까지 요구했다. A씨는 프로듀스 101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일부 피해자에게 환불을 해 주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대한축구협회 직원이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등의 거짓말도 했다. 하지만 점점 사태가 커지자 A씨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진노한 아버지는 당장 A씨를 계양경찰서로 데려갔다. A씨는 같은 날 신고가 접수됐던 서울 마포경찰서에도 혼자 찾아가 조사를 받고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버지가 피해 금액을 다 변제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A씨도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있지만 사법처리는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추가 조사 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장현승, 뒤늦은 비스트 탈퇴 심경 “스스로 통제할수 있는 능력 상실했다”

    장현승, 뒤늦은 비스트 탈퇴 심경 “스스로 통제할수 있는 능력 상실했다”

    가수 장현승이 그룹 비스트 탈퇴 심경을 털어놨다. 장현승은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탈퇴 전 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분께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데뷔를 하고 꿈을 이룬 듯 했지만, 활동 당시의 저는 저 나름의 불편함들이 있었고 또 해소되지 않던 음악적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룹 활동과 팀워크를 위한 이해보다는 제 개인을 고집하는 데에 힘을 썼고, 남의 말은 듣고도 곧바로 제 고집과 자존심을 부려 멤버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이미 저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무대를 포함한 모든 공식 석상에서까지 불량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르렀고 모든 면으로 참 철없었던 제 모습이 젊음을 즐기는 거라 착각까지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멋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면 많이 후회스러운 모습들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저의 경솔하고 이기적인 결정들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이제서야 알게 돼 제게 상처 받으신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마무리 했다. 한편 장현승은 2009년 비스트로 데뷔했으나 지난해 4월 탈퇴했다. <이하 장현승 심경 전문> 안녕하세요, 장현승입니다. 긴 글이 될 것 같지만 꼭 전하고 싶었던 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7년, 탈퇴 전 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분께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TV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화려하고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그때부터 큰 꿈을 가지고 5년의 연습기간을 거쳐 좋은 기회를 통해 멤버들과 함께 비스트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를 하고 꿈을 이룬 듯 했지만, 활동 당시의 저는 저 나름의 불편함들이 있었고 또 해소되지 않던 음악적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룹 활동과 팀워크를 위한 이해보다는 제 개인을 고집하는 데에 힘을 썼고, 남의 말은 듣고도 곧바로 제 고집과 자존심을 부려 멤버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빚어진 멤버들과의 벽은 너무 두터워졌고 화합을 선택하는 대신 저는 멀어지는 것을 선택 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무대를 포함한 모든 공식 석상에서까지 불량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르렀고 모든 면으로 참 철없었던 제 모습이 젊음을 즐기는 거라 착각까지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멋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면 많이 후회스러운 모습들입니다. 고집만큼이나 불필요한 자존심이 쎄서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탈퇴 이후, 저에게 많은 일들이 일었고 겪는 과정이 경험이라기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 할 때 제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그동안 버티던 바닥을 칠 수 있었고, 그렇게 제 나름의 바닥에서 전 깨달음과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은 보지 못하며 남에게 상처들만 남겼습니다. 동시에 저의 경솔하고 이기적인 결정들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이제서야 알게 돼 제게 상처 받으신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비밀의 숲’ 유재명, 진실 밝히고 투신 “날씨가 참 좋다”

    ‘비밀의 숲’ 유재명, 진실 밝히고 투신 “날씨가 참 좋다”

    ‘비밀의 숲’ 유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30일 방송된 ‘비밀의 숲’에서 결국 진실을 선택한 이창준(유재명 분)은 유서를 쓰며 자신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이켰다. 이날 황시목(조승우)은 윤과장(이규형)의 배후가 이창준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한 폐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황시목이 “윤과장을 사주해서 박무성(엄효섭 분) 죽였습니까? 김가영(박유나 분)도 상해했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무엇을 위해서였느냐”고 묻는 황시목에게 그는 박무성을 한조물류에 소개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그것 딱 한 가지가 후회 된다”며 “너라면 후회할 일을 만들었을까”라고 물었다. 이어 이창준은 “날씨가 참 좋다. 수갑 차고 수형번호 가슴에 달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겠지? 그 사람들 정수리가 휑했다. 왜 그게 지금 생각날까? 패잔병이 돼 포로로 끌려다느니냐, 전장에서 사라지느냐”며 의미심장한 말 했다. 이에 황시목이 “저와 함께 가시죠. 선배님”이라며 다가가자 이창준은 “선배님? 듣기 참 좋네. 좀 천천히 오지?”라며 스스로 뛰어 내렸다. 황시목은 이창준을 붙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 놀라서 쫓아온 서동재(이준혁)는 죽어가는 이창준을 보며 오열했고 창준은 “너는 아직 기회가 있어. 너는 이 길로 오지 마”라고 말하고는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8년 전 안락사 원했던 소녀, 장기 이식 받고 제2 인생

    8년 전 안락사 원했던 소녀, 장기 이식 받고 제2 인생

    암과 심장병으로 고통스러워 삶보다 죽음을 달라며 법정소송까지 진행했던 10대 소녀가 결국 이식 수술을 받고 어엿한 숙녀로 자라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의 27일자(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영국 남서부 웨일스 뉴 퀘이에 사는 한나 존스(22)는 13살 때 장기 이식 수술을 거부했다. 존스는 병으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 복용 중인 약들로 이미 지친 상태였다. “병원 트라우마를 겪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 같다”며 “내게 남은 마지막 날들은 평화롭게 보내고 싶다”며 장기 이식 수술을 원치 않는다고 침착하게 말했다. 존스의 단호한 결정은 이식 수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세상을 놀래켰다. 이후 존스는 심부전에 대한 치료와 이식 수술을 진행하려던 지역 병원 의사들과 고등법원 소송을 시작했고, 법적인 경합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1년 후,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존스는 마음을 바꿔 6시간 반이 걸리는 이식 수술을 받았다. 기증자는 스코틀랜드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을 거둔 40대 남성이었다. 그녀는 “죽을 고비를 앞두고 인생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원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이식수술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내가 일찍 이식 수술을 선택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내 결정에 대해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나는 타인의 장기를 이식 받은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올 9월부터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정말 아픈 시기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결정을 바꿔 살아난 덕분에 그녀는 이식 후에도 모든 것이 가능하단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스포츠&스토리] 현주엽 “감독 되면 반쪽 된다는데…살쪘단 소리 듣고 싶어”

    [스포츠&스토리] 현주엽 “감독 되면 반쪽 된다는데…살쪘단 소리 듣고 싶어”

    “방송에 출연하고 후유증도 생겼습니다. 많이 고쳐지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주변을 웃겨야 한다는 ‘직업병’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지난 27일 경기 이천시 LG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프로농구 현주엽(42) LG 감독은 이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지난 4월 취임한 현 감독은 “아직도 코칭스태프와 있을 때면 이런 습관이 나옵니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식사 시간만 되면 현 감독의 식탁 쪽으로 선수들의 시선이 쏠린다. 케이블 ‘먹방’(먹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현 감독의 면모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현 감독에 따르면 김종규(26)의 경우 자신도 밥을 많이 먹으면서 “그래도 감독님에게 밀린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이날 옆에서 훈련하던 조성민(34)도 “TV를 잘 안 봐서 몰랐는데 이틀 새 51인분을 해치웠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농담을 건넬 수 있는 것은 운동할 땐 진지하지만 평소엔 편하게 지내야 한다는 현 감독의 철학 때문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현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대화를 많이 하겠다”고 천명한 뒤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식사 시간에 선수들을 한둘씩 자신의 테이블로 불러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LG챔피언스파크 미래관 3층 감독방에서 선수들과 티타임을 자주 갖는다. 요즘엔 너무 자주 찾아와 ‘출입 금지’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현 감독은 “괜히 소통을 강조했나 싶을 만큼 자꾸 찾아옵니다”며 또 웃었다. “내가 선수일 때는 1년에 한 번 감독 방에 찾아갈까 말까였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주장인 조성민이 다른 선수들을 대신해 의견을 전하러 많이 온다고 한다. 현 감독은 “더러 힘들기도 하지만 서로 오해를 없애려면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엔 ‘먹방’에 출연하며 몸무게가 이틀 사이에 7㎏이나 불었다. 지금도 그대로다. 그러나 그는 경험자의 이야기라며 “감독을 맡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겨울엔 홀쭉해지니 걱정하지 말랍니다”고 말했다. 한 발짝 나아가 현 감독은 “(성적이 좋아가지고) 겨울에도 살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덧붙였다. 방송인으로 거듭난 현 감독이 은퇴 당시 팀이었던 LG로 돌아오기까지는 숱한 속앓이를 거쳤다. 방송인으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하루 종일 선수단과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입 측면에서도 방송인일 때 벌어들인 게 감독 연봉에 곱절 정도 풍족하다. 이러한 이유로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농구를 향한 마음을 돌이킬 순 없었다. “(2009년 6월) 은퇴 당시엔 다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70, 80세까지 산다는데 10대부터 죽을 때까지 농구만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심지어 처음엔 농구 경기도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지나다 보니 잘했던 것도 농구, 앞으로 잘할 수 있는 것도 농구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에 감독직을 결정할 때도 다른 조건들만 따졌다면 결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리그 선수 때 우승을 한 번도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았습니다. 선수 시절 원 없이 뛰었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한번 더 해봐야겠단 결심을 굳혔죠.” 따지고 보면 현 감독은 방송인으로 살면서도 농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제로 농구를 소재로 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국보센터’ 서장훈(43)과도 이러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고 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농구에 관심이 없더라고요. 반성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전에는 농구 선수들이 거리에 나서면 많은 분들이 알아봤는데 요즘 이들을 밖에 세워 놓으면 그냥 키 큰 청년에 불과하더라고요. 빨리 인기를 되찾으려면 코트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전체 농구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어린 시청자들 눈엔 저를 그냥 웃기러 나온 사람으로 보이지만 좀 더 나이를 먹은 분들은 농구선수였던 걸 알죠. 그분들이 방송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농구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2년 가까운 방송생활에서 올해 4월 코트로 되돌아온 목표도 분명하다. 오는 10월 개막하는 새 시즌에서 일단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입해야 한다. 외국인 선수를 10개 구단 중 9순위로 뽑았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많다는 게 불안요소이긴 하지만 일단 PO에 나가면 우승도 노린다고 각오를 다진다. 국내 선수들도 매일 슈팅 400개와 자유투 200개씩 쏘아 올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선수들을 계속 독려하는 것은 KBL의 수준을 높이는 게 농구 인기를 회복하는 근본 해결책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 차례도 챔피언을 차지하지 못한 아픔을 갖고 있는 LG와 현 감독의 한을 풀기 위해선 착실한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올 시즌 LG가 우승하면 ‘방송인 현주엽’도 다시 볼 수 있다. 현 감독은 “만약 우승을 하게 되면 선수들과 다 같이 방송에 한번 나가고 싶습니다”며 씩 웃어 보였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기춘은 징역, 조윤선은 집행유예…남편 박성엽 변호사 ‘눈물 변론’ 덕분?

    김기춘은 징역, 조윤선은 집행유예…남편 박성엽 변호사 ‘눈물 변론’ 덕분?

    지난 27일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징역 3년형,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는 집행유예 판결이 났다. 28일 법조계에서는 조 전 장관이 6개월의 옥살이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을 두고 남편인 박성엽 김앤장 변호사의 공이 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박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을 때부터 사실상 다른 일을 포기하고 아내 조 전 장관의 변론에 전념했다. 박 변호사는 통상이 전문 분야다. 전문이 아닌 형사 사건이지만 조 전 장관의 재판과 관련된 일이면 어김없이 법정에 나와 직접 변론까지 했다. 그 스스로도 지난 3일 열린 조 전 장관 등의 결심 공판에서 최후 변론을 하며 “변호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왔지만 개인적으로 형사 법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사 소송 문외한”이라고 고백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최후변론에서 남편이자 변호인으로서 조 전 장관을 지켜보는 심경을 떨리는 목소리로 풀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조윤선 피고인이 블랙리스트의 주범이라는 보도가 있은 후 저희가 할 수 있는 말은 ‘우리는 한 적이 없다’고 외치는 것 외에 달리 없었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이 사건에 전념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간의 소회를 말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이 구속됐을 때를 떠올리며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을 보면서 결혼해서 데려올 때 했던 나의 다짐,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무력감을 느꼈다”면서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남편의 변론을 옆에서 듣던 조 전 장관도 감정이 복받친 듯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남편의 ‘성심 변론’ 덕분인지 조 전 장관은 27일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는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박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지난 1월 국회 청문회에 나갔을 때 메신저로 ‘깨알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가 조 전 장관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로 ‘해당 부분 증언은 계속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사정당국에서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하여야 할 듯’이라고 조언한 내용이 취재진에게 포착된 것이다. 실제 조 전 장관은 당일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의혹에 대해 ‘모른다’거나 ‘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서울대 동문인 두 사람은 김앤장에서 함께 변호사 생활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듀2’ 김태동, 2차 심경 고백 “한밤중에 택시 잡고 집까지..” [전문]

    ‘프듀2’ 김태동, 2차 심경 고백 “한밤중에 택시 잡고 집까지..” [전문]

    케이블채널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한 연습생 김태동이 소속사 이탈에 대한 심경을 고백했다. 김태동은 28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저는 저를 걱정하시는 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안심을 시켜드리려고 오랜 고민 끝에 제 개인 계정에 사과문 겸 심경을 올렸다. 그런데 너무 사실과 다른 말들이 기사화되는 데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로 시작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저는 스케줄이 끝나고 한밤중에 매니저님은 저희 집과 거리가 먼 신사나 한강대교에 내려주시고 저는 그 내린 장소에서 택시를 잡고 집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그때 기분을 말로 표현하라면 진짜 표현 할 말이 없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스트레스 때문에 저는 결국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이야기 드렸고..그러한 이유로 제가 힘들어하니까 아버님의 친한 지인분의 도움을 받아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이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로펌 명의에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고 그 내용은 돌아오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지 어떠한 대화나 타협의 내용도 없었다”며 “보잘 것 없는 저를 응원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팬 여러분이 답답하고 힘드실까 봐 하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에 올린 글이 저를 더 아프게 할 줄은 몰랐고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아픔을 줄지 몰랐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태동은 최근 소속사 측에 낮은 처우 등을 문제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현재 소속사 측과 해당 사안을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후 김태동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저를 기다려 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다. 지금까지 저는 심리적인 고통과 무언의 압박으로 인해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김태동 소속사 더 바이브 레이블 측은 아티스트 계약을 맺은 김태동이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연습생 계약이 아닌 아티스트 계약을 맺은 만큼 법적 분쟁으로 번질 소지도 있는 상황. 더 바이브 레이블 측은 “회사에 섭섭했던 부분을 보냈다”고 밝혔다. 아티스트 계약 내용 등에 대한 불만으로 보인다. 소속사 측은 “이야기를 나눠 잘 풀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하 김태동 입장 전문 저는 저를 걱정하시는 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안심을 시켜드리려고 오랜 고민 끝에 제 개인 계정에 사과문 겸 심경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사실과 다른 말들이 기사화되는 데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저는 스케줄이 끝나고 한밤중에 매니저님은 저희 집과 거리가 먼 신사나 한강대교에 내려주시고 저는 그 내린 장소에서 택시를 잡고 집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기분을 말로 표현하라면 진짜 표현 할 말이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스트레스 때문에 저는 결국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이야기 드렸고.. 그러한 이유로 제가 힘들어하니까 아버님의 친한 지인분의 도움을 받아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있습니다. 그 이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로펌 명의에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고 그 내용은 돌아오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지 어떠한 대화나 타협의 내용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하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이 쪽 길을 가려 했을 때 부모님은 허락 하시지 않았지만 제 고집과 하고 싶어 하는 의지 때문에 아버님도 어머님도 결국은 허락하셨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다면 라면을 먹고살더라도 후회 없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어른들의 돈 때문이라면 그냥 대놓고 얼마를 달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응원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팬 여러분이 답답하고 힘드실까 봐 하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에 올린 글이 저를 더 아프게 할 줄은 몰랐고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아픔을 줄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안세현 ‘폭풍물살’…접영 200m도 결선행

    안세현 ‘폭풍물살’…접영 200m도 결선행

    출전할 때마다 새 역사 만들어…오늘 한국 여자 첫 메달 도전한국 여자 수영의 ‘희망’ 안세현(22)이 접영 200m에서도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안세현은 2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접영 200m 준결선에서 2분07초82에 터치패드를 찍어 1조 8명 가운데 4위, 전체 16명 중 8위의 성적으로 8명이 겨루는 결승 티켓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최고 기록 2분07초54와 한국기록(2분07초22·최혜라)을 넘는 데는 실패했지만 100m에 이어 출전 두 종목 모두 결승 진출을 이뤘다. 1조 3번 레인에 뛰어든 안세현은 첫 50m 구간을 28초34로 통과해 2위로 역영을 이어 나갔다. 100m 구간에서는 1분00초83으로 1위로 치고 나와 이틀 전 100m에 이어 또 한번의 결승 진출을 예감케 했다. 150m를 앞두고 1분34초39로 5위로 스트로크가 둔해졌지만 마지막 50m에서 스퍼트해 4위로 예선을 마쳤다. 2조 경기 뒤 전광판에 찍힌 자신의 최종 순위는 8위. 결선 진출에 실패한 9위 할리 플리킹어(미국·2분07초89)와의 격차는 불과 0.07초 차로 대회 두 번째 결선에 올랐다. 앞서 안세현은 접영 100m 준결선에서 57초15로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며 개인 첫 번째이자 한국 선수로는 다섯 번째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종목 결선에 진출했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결승에서는 57초07로 또 한번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5위에 올라 2005년 이남은(몬트리올세계선수권 여자 배영 50m 8위)의 한국 여자선수 역대 최고 성적을 넘어섰다. 박태환(29)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남녀 통틀어 두 번째로 단일 대회 두 종목 이상 결승에 진출한 선수로도 이름을 올린 안세현은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오직 내 기량만 펼쳐 보이자는 생각뿐이었다”면서 “후반 페이스가 조금 떨어졌지만 후회 없는 레이스를 했다”고 말했다. 28일 새벽 접영 200m 결선에서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이 가려진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지금, 이 영화] ‘레이디 맥베스’

    [지금, 이 영화] ‘레이디 맥베스’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권력에 눈먼 맥베스가 왕위를 찬탈했다 몰락하는 내용을 담은 희곡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면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야말로 진짜 극의 중심인물인 듯 보인다. 맥베스는 분명 야심에 들린 남자가 맞다.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맥베스는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얻으려고 나서지 않는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그와 대조적이다. 그녀는 맥베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당신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고. 당신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는 ‘그 일’을 주저하는 맥베스의 야욕을 자극하고, 결국 ‘그 일’을 하게 만든다. 자기 욕망을 모른 척하는 맥베스보다는, 그것을 충실하게 따르다 파멸하는 레이디 맥베스가 비극 캐릭터에 훨씬 더 어울린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1865년에 그는 존속 살인을 저지른 여인의 삶을 그린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원제 ‘므첸스크 군(郡)의 맥베스 부인’)을 발표한다.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의 ‘레이디 맥베스’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흑인 하녀 애나(나오미 아키에)를 비중 있는 등장인물로 다루는 등, 그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재해석해 ‘영국의 맥베스 부인’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그러면서 공간적 배경도 달라졌다. 시간적 배경은 19세기로 같지만, 장소는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원작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결말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자기 욕망을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할 법한 선택은 소설이 아니라, 영화 쪽 엔딩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에 나는 한 표를 던진다.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열일곱 살 소녀다. 그녀는 알렉산더(폴 힐턴)와 결혼했는데, 사실상 시아버지 보리스(크리스토퍼 페어뱅크)에게 팔려온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런 애정 없이 그저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의무만을 다해야 하는 나날. 이런 생활에 캐서린은 염증을 낸다. 그러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오래 집을 떠나 있을 일이 생기고, 그녀는 모처럼 자유를 만끽한다. 캐서린은 쾌락도 알게 됐다. 정부가 된 하인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 덕분이다. 그와 헤어질 수 없었던 그녀는 방해물을 하나하나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캐서린은 ‘너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정신분석의 윤리로 무장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고,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급진적일 수 있는지 그녀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캐서린은 후회 따윈 하지 않는 레이디 맥베스다. 8월 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70세 이상 어르신들 금융투자 후회되면 ‘짧은 숙려제’ 이용을

    70세 이상 어르신들 금융투자 후회되면 ‘짧은 숙려제’ 이용을

    얼마 전 A(75)씨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2000만원을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 가족들은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이미 가입해 투자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취소하지 않았다.B(70)씨는 여유자금을 단기에 운용하려고 홍콩 항셍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투자했다. 하지만 항셍지수가 급락하면서 ELS의 조기 상환이 이뤄지지 않았고, 수익이 나면 팔려던 당초 의도와 달리 3년 만기까지 보유했지만, 원금 손실도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27일 A씨나 B씨처럼 70세 이상인 고령 투자자가 ELS 등 파생결합증권에 투자한 이후 철회하고 싶다면 2영업일 이상 투자 여부를 재고할 수 있는 ‘투자자 숙려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숙려 기간에는 신규 투자는 할 수 없고 취소만 가능하다. 고령자는 또 증권사 영업점 전용 창구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 가족과 통화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금감원은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는 본인의 투자성향보다 안전한 금융투자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특히 판매직원의 권유 없이 본인 책임 아래 고위험 상품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부적합 확인서’까지 작성하면서 투자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트럼프 “한국전 참전용사, 공산주의 막았다”

    트럼프 “한국전 참전용사, 공산주의 막았다”

    트럼프 ‘정전협정의 날’ 선포…참전용사 기리는 기념식 제안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4주년인 27일을 ‘한국전 정전협정의 날’로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우리는 공산주의 확산에 맞서 한반도를 지킨 애국지사들을 기리려 한다”면서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자유를 수호하고 목숨을 바친 용사들을 기억하며 이들의 유산 보존을 맹세한다”며 정전협정의 날을 선포했다. 이어 “한국전에서 3만 60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는데도 종종 잊혀진 전쟁으로 규정된다”면서 “미군은 한반도에서 3년간 15개 동맹국과 함께 싸웠다”면서 “우리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자유를 증진한 한국전 참전용사의 용감한 노력을 절대 잊지 않겠다. 2017년 7월 27일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들을 기리는 적절한 기념식과 활동을 하기를 국민에게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전협정으로 한반도에서 교전이 멈췄지만,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미국과 동맹국, 우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정전협정 64주년과 유엔군 참전을 기리는 정부 기념식을 거행한 가운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조선의 전략적 지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며 조미(북·미) 대결구도는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거듭 요구했다. 신문은 ‘7·27로 빛나는 선군조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제목의 군사논평원 글을 통해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6·25전쟁) 때의 쓰디쓴 후회를 명심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논평원의 발표는 북한이 중요한 대외적 견해를 밝힐 때 사용하는 형식으로 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군사논평원을 내세운다.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대해 신문은 “공화국의 무진 막강한 군력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가를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 주고 미국을 그야말로 기절초풍하게 만든 역사의 대승리”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서울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블랙리스트’ 김기춘 유죄·조윤선 무죄…함께 기소됐는데 왜?

    ‘블랙리스트’ 김기춘 유죄·조윤선 무죄…함께 기소됐는데 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게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됐다. 반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함께 기소됐던 두 사람은 법원에서 전혀 다른 판단을 받았다.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 대해선 블랙리스트 실행의 ‘정점’에 있었다며 유죄를 인정했지만, 조 전 수석에게는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봤다. 구체적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지원 심의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그 시작점부터 김 전 실장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2014년 1월 당시 박준우 정무수석과 신동철 소통비서관 등에게 정무수석의 주관하에 부처별 보조금 지원실태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라고 지시한 점을 인정했다. 이후 TF의 활동 결과를 정리한 ‘문제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방안’을 보고받고는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봤다. 그 결과 ‘건전문화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이란 보고서가 작성되고, 교육문화수석실의 문체비서관실과 정무수석실의 소통비서관실이 서로 협조하며 배제 대상자를 선별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후 문체부가 문예기금을 관리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공모 신청자 목록을 받아 교문수석실로 보내면 이 명단을 정무수석실의 소통비서관이 검토한 후 다시 문체부 예술위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재판부는 이런 식으로 비서실장이나 교문수석, 문체부 장관 등이 예술위의 문예기금 공모사업에 관여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지원 배제하게 지시한 것은 예술위의 독립성과 심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에서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기춘은 보조금 TF 활동을 통해 좌파나 정부에 반대하는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 현황을 전수조사하게 하고, 그 배제 기준과 실행방안을 수립하게 했다”며 “김기춘의 지시와 승인에 따라 청와대와 문체부를 통해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 배제가 실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기춘이 지원배제의 실행행위 자체를 분담하진 않았다고 해도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범죄에 대한 본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했다. 사실상 김 전 실장의 ‘입’에서 지원배제가 시작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김 전 실장의 형량을 정하면서 “지원배제 범행을 가장 정점에서 지시했고, 실행계획을 승인하거나 때로는 이를 독려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이와는 반대로 조 전 수석에 대해선 지원배제 행위에 구체적으로 관여한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당 행위가 조 전 수석이 정무수석으로 재임하기 전부터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분석이다. 민간단체 보조금 TF는 전임자인 박준우 수석 당시 운영됐다. 재판부는 조 전 수석이 정무수석으로 부임한 후 신동철 당시 소통비서관이 민간단체 보조금 TF의 활동 결과를 개략적으로 보고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신 비서관이 ‘정무수석실이 좌파나 정부 반대 단체의 명단을 검토해 지원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고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신 비서관의 후임인 정관주 전 비서관도 지난 6월 법정에서 “조 전 수석에게서 명단 검토 업무에 대한 지시나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정 전 비서관은 “한 번 정도 수석에게 보고했다면 지원배제 업무가 중단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된다”고도 말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조 전 수석이 지원배제 범행을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지원 금액을 삭감한 일, 특정 도서의 세종도서 선정을 배제한 일도 김 전 실장이 직접 지시하거나 승인한 사항으로 판단하고, 이런 과정에 정무수석실이 가담했다고 인정할 증거는 없다며 조 전 수석에 대해선 무죄로 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美, 달라진 현실 똑바로 보라…시대착오적 적대정책 철회”

    北 “美, 달라진 현실 똑바로 보라…시대착오적 적대정책 철회”

    북한이 미국을 향해 “달라진 현실을 똑바로 보고 정책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라고 27일 요구했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7·27로 빛나는 선군조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제목의 군사논평원 글에서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6·25 전쟁) 때의 쓰디쓴 후회를 명심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논평원’의 발표는 북한이 중요한 대외적 견해를 밝힐 때 사용하는 형식이다. 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군사논평원’을 내세운다. 이 글에서 북한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시험발사를 “우리 공화국의 무진 막강한 군력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가를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주고 미국을 그야말로 기절초풍하게 만든 역사의 대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이미 우리는 미국이 달라진 현실을 똑바로 보고 정책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알아들으리만큼 충분히 설명도 해주고 경고도 하였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제 미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며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우리 군대와 인민 앞에 하루빨리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세상에 공개한 바와 같이 우리 혁명무력의 대응방식은 이미 선제타격으로 확고히 전환된 상태”라며 “우리의 존엄과 생존권을 말살하려 드는 자들은 즉시적이고도 무자비한 우리 식의 선제타격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군사회담 응답 없이 미사일 쏘려는 北

    정부가 27일로 연장한 남북 군사당국회담 제안에 대해 북한이 어제까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정전협정 체결 64주년을 앞두고 지난 17일 남북 군사회담을 21일까지 열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의 응답이 없어 27일로 시한을 연장했다.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회담 제안이었다. ‘최고 존엄’인 김정은을 건드린다며 대북 확성기 방송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북한이 받을 법한 제안이었으나, 회담 자체가 무산돼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군사회담 시한을 연장하자 자유한국당 등 일각에서는 “북한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일리가 있는 반응이었다.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미사일의 시험발사와 더불어 남한을 제치고 미국과 대화하려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 더욱 강화된 시점이었다. 그런 북한을 향한 정부의 대화 제의가 과연 의미 있겠는가 하는 비관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북한이 오늘 미사일을 발사할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미사일을 쏘아 올린다면, 북한 위협의 한편에서 긴장을 완화하자고 군사회담을 갖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최후 승리의 7·27을 안아 오고야 말 것이다’라는 논설을 통해 미사일 발사를 암시했다. 미국과 필사적으로 대화를 하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의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국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거듭된 핵·미사일 실험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북·미 대화가 남한을 제쳐 놓고 가능한지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에 묻고 싶다. 지금까지 북의 통미봉남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일지라도 군사회담 제의는 당분간 자제해야 한다. 회담 제안을 던져 놓고 우리가 거둬들인 것은 아닌 만큼 북한의 태도를 살피고 호응이 있으면 우리가 손을 내미는 게 순서가 됐다. 북에도 마찬가지다. 남북 군사회담이 중단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준비가 덜 됐다면 남측 제의를 쉽사리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은지는 의문이다. 남북 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문 대통령의 제의를 걷어찰 만큼 북한이 여유로운 사정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미국 트럼프 정권과의 대화 촉진을 위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압박 국면이 가속화한 지금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옳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측의 인도적인 대화 제의에는 반드시 응해야 할 것이다.
  • 中 13세 커플 결혼식 논란…신부는 임신 5개월째

    중국의 한 마을에서 13세 동갑내기 소년 소녀가 결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4일(현지시간) 중국 현지 언론을 인용해 하이난 성 딩안 현에 사는 13세 커플이 지난달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식 당시 신부는 이미 임신 5개월째였다고 전했다. 중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쿠’와 ‘미아오파이’ 등에서 화제를 일으킨 이 영상을 본 많은 사람은 해당 커플은 너무 어려서 서로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감을 드러냈다. 신징바오(新京报)에 따르면, 결혼식이 열린 마을의 공산당 관계자는 해당 커플은 미성년자여서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없어 두 사람의 가족들이 결혼을 증명하기 위해 그날 의식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상을 보면 13세 소년 소녀는 중국의 결혼 풍습에 따라 붉은색 혼례복을 입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터넷상에서는 많은 사람이 신랑 신부가 아직 너무 어리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한 네티즌(아이디 Cherry_hanbao)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그들은 아직 아이들이다”라면서 “어떻게 그들이 미래에 책임을 다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아이디 Jingbao baby)은 “그 어린 부부는 인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은 부모의 최우선 과제가 자녀의 교육이 아니라 결혼이었던 봉건주의적인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걱정했다. 한편 중국에서 법적 결혼 가능 연령은 여성의 경우 20세, 남성의 경우 22세이지만, 조혼은 중국의 농촌 지역에서 흔한 관습이다. 많은 10대 부부들은 부모가 수천㎞ 떨어진 대도시에 나가서 일하면서 집에 남겨진 아이들의 경우라고 신화통신은 말한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조부모와 살면서 자라기 때문에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한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윈난 성에 사는 한 10대 커플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지에라는 이름의 13세 신부는 웬이라는 18세 남성과 만난 지 3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 신부는 곧 임신해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베이징대학의 리우넝 사회학과 교수는 그다지 할 일이 없는 농촌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문화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조혼 관습이 유행하는 것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30여 년 동안 시행된 이 정책은 딸보다 아들을 더 선호하는 중국에서 크나큰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는 중국에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인민망에 따르면, 35~59세 남성 중 1500만 명은 오는 2020년까지 배우자를 찾지 못하며 2050년에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남성 수가 약 3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결과적으로 10대 소년을 둔 가족들은 아들이 신부를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서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라고 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英왕자 ‘어머니 다이애나’ 추억…“마지막 전화 짧게 끊어서 후회”

    英왕자 ‘어머니 다이애나’ 추억…“마지막 전화 짧게 끊어서 후회”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24일 방송된 다큐멘터리에서 어머니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이날 ‘다이애나, 나의 어머니:그녀의 삶과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I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는 다음달 31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별세 20주기를 앞두고 전파를 탔다. 방송에 앞서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가디언 등 언론과 만나 “사촌들과 노느라 어머니와의 마지막 전화를 짧게 끊어버린 것이 지금도 깊은 후회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형제는 어머니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 같았다”면서 인간적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12~13살 무렵 그가 당시 좋아하던 모델 신디 크로포드, 크리스티 털링턴, 나오미 캠벨을 어머니가 집에 깜짝 초대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다이애나빈은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연인과 함께 파파라치들을 피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당시 윌리엄 왕세손은 15세, 해리 왕자는 12세였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한국당, 장제원·김현아 소신에 속앓이

    한국당, 장제원·김현아 소신에 속앓이

    최고위서 張의원 징계 결론 못 내 당원권 정지 金의원도 제명 못해 자유한국당이 당과 엇박자를 내는 장제원(왼쪽), 김현아(오른쪽) 의원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두 의원은 지난 22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집단 퇴장이라는 당론을 거스르고 찬성표를 던졌다. 당 지도부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정우택 원내대표는 24일 한 방송에 출연, “장 의원의 해당 행위 여부를 당내 기구에서 검토하고 있다”면서 “해당 행위로 판단되면 당무감사회의에서 징계위원회에 판단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대해서는 “계륵 같은 존재”라면서 “그분은 이미 해당 행위로 당원권이 정지된 상태”라고 밝혔다.하지만 당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 원내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일단 보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관련 논의는 홍준표 대표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불협화음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모습이 당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김 의원의 소신 행동을 당이 나서서 제동을 걸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바른정당과 행동을 같이해 왔다. 비례대표 신분이라 공직선거법 제192조에 따라 탈당을 하면 바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하지만 당이 제명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당이 김 의원을 제명하면 의원직을 유지한 채 바른정당에 입당할 수 있게 된다. 장 의원 역시 지난 대선 때 바른정당을 탈당해 온 복당파 의원으로 징계 시 부담이 크다. 장 의원은 최근 당이 류석춘 혁신위원장을 영입하자 한국당 복당을 후회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등 공개적으로 당의 노선을 비판해 왔다. 지난 19일에는 최고위·재선의원 연석회의에서 김태흠 최고위원과 욕설이 섞인 고성을 주고받는 등 당 지도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두 의원 때문에) 당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면서 “인기 영합주의에 편승한 해당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후회는 없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난 김군자 할머니

    “후회는 없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난 김군자 할머니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생전에 사실상 전 재산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아름다운재단은 “김 할머니는 재단의 1호 기금 출연자였다”면서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장학사업에 써달라며 기부하신 분”이었다고 24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이 창립한 직후인 2000년 8월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기부해 ‘김군자할머니기금’이 조성되도록 했다. 김 할머니는 13살에 부모를 여의어 8개월간 야학에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였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이에 할머니는 “보육시설에서 자란 대학생들 학비를 지원해달라”며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할머니의 기부 소식이 전해진 후로 17년 동안 많은 시민이 기금에 돈을 보탰다. 김 할머니도 2006년 5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올해 7월 현재 김군자할머니기금의 누적 모금액은 약 11억원에 달하고, 기금을 통해 학비 지원을 받은 장학생은 약 25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 할머니 빈소에는 김군자할머니기금 장학생들의 발길이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관계자는 “올해 5월 할머니 생신 때 재단 간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삶이 한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돌아보니 가진 것을 다 줘서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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