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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박꼬박 월급 준 내가 바보” …아르헨 자영업자의 후회

    “꼬박꼬박 월급 준 내가 바보” …아르헨 자영업자의 후회

    종업원을 가족처럼 챙긴 한 아르헨티나 카페사장의 눈물이 현지 언론에 소개됐다. 그는 "내가 어리석었다"고 배신감의 눈물을 흘리며 허탈해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영화관 테마카페 '엘카피탄'을 운영하는 사장 노르베르토 로이소의 이야기다. 2019년 테마카페를 연 그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필수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전 영역에 올스톱 결정을 내리면서다. 당시 카페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20명은 졸지에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사장의 종업원 챙기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로이소 사장은 한 푼도 카페 매출이 없었지만 20명 종업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했다. 그나마 강제 영업중단 결정을 내린 아르헨티나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책으로 종업원 월급 50%를 지원한 게 그에겐 큰 도움이 됐지만 나머지 50%는 사비를 털어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중단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길어야 1~2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전면적 봉쇄를 이어갔다. 아르헨티나에서 카페의 영업이 재개된 건 7개월 만인 지난해 9월부터였다. 하지만 로이소 사장의 카페는 이때 문을 열지 못했다. 영화관을 겸하고 있는 테마카페라는 이유로 영화관 규정이 적용된 때문이다. 그래도 로이소 사장은 계속해서 20명 종업원의 월급을 챙겨줬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온 로이소 사장에게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 건 해를 넘긴 올해 2월이다. 11개월 만에 영업중단이 풀리면서 그의 테마카페도 마침내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사장은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종업원 20명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출근하세요"라고 알렸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의 일이다. 하지만 이날 그는 일생일대의 배신감을 느꼈다. 20명 종업원 중 출근을 하겠다고 한 사람은 겨우 6명, 나머지는 "출근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들 14명은 이미 다른 곳에 취업해 일을 하고 있었다. 사장에게 알리지 않고 슬쩍 다른 곳에 취업해 지난 1년간 이중으로 월급을 챙긴 셈이다. 로이소 사장은 자신의 사연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에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최근 방송인터뷰에서 로이소 사장은 "(20명 모두) 일하기 시작한 지 2~3개월밖에 안 된 종업원이지만 가족처럼 생각하고 1년간 사비를 털어 월급을 줬지만 돌아온 건 배신이었다"고 허탈해 했다. 그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채용광고를 내면 구직자는 줄을 서겠지만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면서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바보였다"고 했다. 종업원들을 사기 혐의로 고발할 생각은 없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그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인터넷엔 로이소 사장을 격려하는 위로의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사진=방송에 출연해 인터뷰 중인 로이소 사장 (출처=라나시온)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추억의 카세트 테이프 발명한 루 오텐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추억의 카세트 테이프 발명한 루 오텐스

    지독하게도 음원 구하기가 힘들었던 젊은날, 우리 모두는 카세트 테이프를 끼고 살았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으면 연필이나 볼펜을 꽂아 돌려 팽팽하게 만들곤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2014년 6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유명 DJ 케이시 케이슴이 진행하던 ‘아메리칸 톱 40’를 주한미군(AFKN) 라디오로 아예 통째로 녹음해가며 미국 음악을 엿들었다. 연말이면 흠모하는 여학생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선별한 음악들만 골라 편집해 곡명과 아티스트 이름을 정성껏 적어 건네곤 했다. 그것을 발명한 이가 누구일까 당연히 궁금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1960년대 필립스의 엔지니어 루 오텐스가 처음 만들었는데 그가 지난 주말 고향인 네덜란드 두이젤 마을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전날 가족들이 뒤늦게 알렸다며 10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인은 전해지지 않았다. 오텐스는 필립스의 제품개발 부서 책임자가 돼 팀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돼 곧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카세트 테이프가 1000억 개가 팔려나갔다. 레코드 LP를 대체할 저장장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이 가운데 필립스가 ‘오픈 릴’(open reel) 방식의 저장장치를 표준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오텐스는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나무 원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또 필립스를 설득해 그의 발명품을 다른 제조업체가 무료로 쓸 수 있도록 해 일본 회사 소니와 필립스가 함께 카세트를 만들게 했다. 일본의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베껴 만들자 그제야 특허를 신청했다. 카세트테이프는 테이프 자성체 개선 노력과 더불어 소니에서 낸 ‘워크맨’ 덕분에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필립스는 그 뒤 릴이 손상되거나 워크맨 기기의 벨트가 파손되는 등의 휴대용 카세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의 디지털판인 디지털 콤팩트카세트(DCC)를 만들었다. 오텐스는 여기에도 참여했다. DCC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00억 개 팔렸다. 고인은 카세트 테이프 발명 50주년을 맞아 타임지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첫날부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털어놓았다. 1982년 필립스가 CD 플레이어 시제품을 선보이자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전래 레코드 플레이어는 낡은 것이 됐다”고 말했다. 4년 뒤 그는 은퇴했다. 오랜 엔지니어 경력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묻자 필립스가 아니라 소니가 워크맨을 개발한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2000년대 들어 카세트 테이프나 DCC, 워크맨 모두 서랍이나 장식장 안에 먼지를 뒤집어 쓰게 됐는데 최근 몇년 동안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레이디 가가나 킬러스, 메탈리카 같은 음악인들이 카세트 테이프로 앨범을 발매했다. 영국의 공식 차트 집계회사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이전 해 같은 기간보다 카세트 판매량이 103% 늘었다고 집계했다. 미국에서는 닐슨 뮤직 집계에 따르면 2018년에 전해보다 23% 발매량이 늘었다. 며칠 전 BBC는 코로나19로 록다운(봉쇄)된 동안 낡은 LP 300장을 모두 들어봤다는 음악 팬의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죽음을 사색하다… 삶을 사유하다

    죽음을 사색하다… 삶을 사유하다

    독일 유명 예술가 잠든 도로텐슈타트 묘지제임스 터렐의 작품 있는 작은 예배당 북적 한적한 묘지뷰 선호…가족·연인들 쉬어가 “어느 공원으로 갈까?” 카페나 밥집은 아직도(!) 갈 수가 없으니 매번 가는 곳은 공원이다. 집 앞 언덕 위 작은 공원으로 가거나 판코에 있는 뷔거 공원을 가거나, 날이 정말 좋으면 집에서 먼 샤를로텐부르크의 슐로스 파크까지 간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간 곳 역시 공원이었다. 사람들도 다 공원으로 모인다. 잘 알려진 공원일수록 사람도 많다. 다닥다닥 앉을 일은 없지만, 가끔 인적 드문 곳으로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공원 대신 ‘공동묘지’로 간다.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베를린에선 놀이터 만큼이나 친근한 곳이다. 베를린 도심 안에 꽤 많은 공동묘지가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번엔 어느 묘지로 갈까?”●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 도로텐슈타트 유럽의 큰 도시 안에서는 관광 명소를 가듯 묘지를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걸 14년 전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알았다. 베를린에서 열흘을 보낸 뒤 파리로 갔는데, 친구가 많았던 베를린과 달리 파리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외롭고 심심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화이트 와인을 병째 나눠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고 센 강변엔 키스하는 연인들 천지였다. 처음 간 파리는 로맨틱한 도시였지만, 홀로 여행하는 자에겐 끔찍이 외로운 도시였다. “파리는 이제 절대 혼자 오지 않겠어.”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때 머물던 민박집에서 가까운 곳에 ‘페르 라셰즈’란 공동묘지가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큰 묘지이자 쇼팽,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잠든 곳이다. 시내 중심가로 나가기 전 잠깐 들르려고 갔다가 그곳에서 아침나절을 모두 보냈다. 외롭고 기가 죽어 있던 나는 조용하고, 사람도 없고, 아름다운 정원 묘지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파리에서 왠지 조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유럽의 묘지를 가게 되었다. 으스스한 기분이나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유명한 공원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갔고, 묘지의 대부분은 실제 잘 가꿔진 공원이기도 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 안에 있는 길이며 이정표, 나무들, 묘비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모두 속삭이듯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베를린의 묘지도 그렇다.베를린에서 가장 먼저 가 본 묘지는 ‘도로텐슈타트’ 공동묘지였다. 당시 머물던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어 산책하듯 가볍게 갔다. 1763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다. 18~19세기 독일 당대의 유명 예술가와 학자들이 많이 잠들어 있다. 철학자 헤겔부터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가 하인리히 만,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신켈 등의 묘비를 찾을 수 있다. 유명 인사들의 묘비 앞에는 베를린시에서 수여한 붉은 명예 석판도 박혀 있다. 베를린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하고 사망한 유명인사들이 이곳에 잠든 것을 영광으로 기린다는 표식이다. 메인 입구의 안내판에는 유명인들의 묘지를 표시한 지도도 있다. 지도에 표시된 25개의 숫자를 보며 유명인들의 묘비를 찾아다닐 수도 있다.각각의 묘비 장식도 아름답다. 고대 로마 스타일의 석관처럼 만들어진 묘부터 대리석이나 화강암에 얼굴 부조를 넣은 묘비, 단단한 오벨리스크, 네오 고딕 양식의 주철로 된 십자가, 소박한 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에 세워진 묘비들은 새하얀 대리석에 모던한 사각형으로, 마치 현대 조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묘비 위에 놓고 간 작은 돌들을 보면 얼마나 존경받고 사랑받는 인물이었는지 가늠이 된다. 도로텐슈타트 묘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높은 벽 너머의 다른 부지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다. 독일어의 ‘독’자도 못 알아들으면서 몇 년 전 이곳 예배당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참석을 원하는 사람은 온라인 예약을 해야 했는데, 이유는 예배당 안에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빛과 공간의 마술사’라 불리는 그는 당시 새로 보수를 마친 작은 예배당 안을 경건하고 신비로운 빛으로 장식해 놓았다. 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줄도 길었다. 예배 내용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림자가 전혀 드리워지지 않는 빛의 구도와 끊임없이 변하는 색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품은 지금도 설치돼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예배당은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지만, 터렐 특유의 빛과 색을 다시 마주할 날이 오면 좋겠다.●베를린 동네마다 있는 다양한 묘지공원 베를린의 묘지를 다니며 느낀 건, 이 도시에선 죽음의 공간이 매우 일상적이란 사실이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들이 가까이 있기도 하거니와, 새로 지어진 고급 아파트의 전망이 ‘묘지 뷰’인 곳도 많다. 그렇다고 집값이 떨어지는 일도 없다. 오히려 ‘묘지 전망’의 집이 더 비싸게 팔린다. 앞을 가리는 건물이 전혀 없고 탁 트인 녹음이 내다보이는 전망을 누구나 원하기 때문이다. 수세기를 지나는 동안 베를린의 묘지는 마구 자란 나무들이 울창하고, 작은 숲을 이루는 또 다른 공원이자 유적이 됐다.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고 묘지 안을 산책한다. 점심시간엔 샌드위치를 사 들고 와서 먹는다. 아이들을 풀어놓고 놀게 하고, 10대들은 묘지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떤다. 사랑하는 사람의 묘비 앞에 백합을 놔두는 등 잘 관리되기도 하지만, 더이상 운영되지 않아 공원으로 변한 묘지도 많다. 남자친구와 자주 가는 라이제파크도 딱 그런 곳인데, 우리는 어쩌면 누군가의 잊혀진 무덤 위에 매번 누워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심 한복판에는 여전히 연고도 없이 죽은 군인이나 장교들이 묻힌 묘지가 있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로는 더이상 무덤을 만들지 않고 추모의 공간으로 유지하는 곳도 있다.가 본 곳 중엔 베딩에 있는 세인트 엘리자베스 묘지도 특별했다. 터키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답게 이 묘지 주변에는 터키인들의 주택이 많았다. 집에서 크게 틀어놓은 흥겨운 터키 음악이 묘지 안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묘지 안에서는 동그란 안테나가 집집마다 달려 있는 공공주택이 바로 보였다. 걸어 놓은 빨래가 펄럭이고, 터키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노란 차양의 발코니가 귀여운 아파트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름이면 이 묘지에 누워 있는 주인들은 활짝 열린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주민들의 소음에 분주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묘지 안을 한참 걷다가 빗물을 담아 놓는 커다란 돌 항아리를 보았다. 물 안에 커다란 나무토막이 들어 있었는데 “누가 여기에 나무토막을 빠뜨려 놨지?” 하고 얼른 빼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항아리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물 항아리 안에 새들이 자주 빠집니다. 새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넣어둔 나무이니 빼지 마세요.” 묘지 안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작은 딱따구리의 딱딱딱 소리와 뾰로롱 하는 방울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새소리를 들으려 숨죽여 있으면 사위는 조용해지고, 어느새 묘지를 감싸고 있는 고요함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가 보고 싶은 묘지 중엔 베를린 서남쪽에 위치한 그루네발트 묘지가 있다. 그루네발트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나오는 이곳은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자살 묘지’로 불렸다. 처음엔(18세기 말) 하벨강에서 떠내려오는 시신들을 묻는 곳으로 쓰이다 점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시신도 알게 모르게 묻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일반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이들의 시신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러다 그루네발트 묘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의 시신도 받게 되자 스스로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 근처로 찾아왔다고 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미국의 전위적인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 앨범에 여성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니코’도 이곳에 묻혀 있다. 그는 이른 나이에 자전거 사고로 죽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해 이곳에 묻힌 엄마의 곁에 있기 위해 이곳에 함께 잠들었다.●죽음 때문에 더 빛나는 인생 오랜만에 도로텐슈타트 묘지에 들렀다. 운 좋게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묘지 안의 하얀 자작나무 길을 걸어 묘비 사이로 들어가니 연보라색 크로커스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낮게 핀 꽃들 속에는 벌써 많은 벌들이 찾아와 윙윙 거렸다. 묘지의 한가운데에서 봄의 생기가 치솟는 순간이었다. 해가 잘 드는 나무 벤치에 앉아 정면에 있는 봉안당을 바라봤다. “나는 죽으면 어디에 묻히게 될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살고 있지만, 이 도시에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 혹시라도 남자친구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서울로 돌아갈 것 같았다. 막연히 한국 어딘가에 묻힐 거라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으니까. 혼잣말 같은 내 질문에 남자친구는 대답했다.“아니, 돌아가지 않을걸. 그때는 여기에 너의 삶이 있을 테니까. 한국에 돌아가도 부모님은 더이상 계실 수 없을 거고…, 형제자매가 있어도 같이 살진 않을 텐데. 물론 친구들이 있지만 누가 남아 있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그동안 이곳에서 깊어진 인연들이 있겠지. 이곳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생각지 못한 인연도 생기고 말이야.” 다 늙어서 돌아갔을 때, 반겨줄 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도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반대로 살아왔다. 서울에 있을 땐 외국에서 살고 싶고, 외국에선 서울을 그리워하고. 가족과 살 때는 독립이 하고 싶고, 혼자 살 때는 엄마 밥을 먹고 싶어 하고. 회사를 다닐 땐 때려치우고 싶고, 그만두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편했지’ 생각하고 등등등.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우리는 늘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하고” 산다. “그렇게 삶을 소진하다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곳의 삶에 좀더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개구리 삶은 그만 살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살아야겠다고. 그러면 내가 묻히고 싶은 곳을 그때는 알게 되지 않을까. 이동미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美 바이든호 상원 인준, 연이은 ‘막말’ 논란

    美 바이든호 상원 인준, 연이은 ‘막말’ 논란

    각종 막말로 첫 낙마한 니라 탠든에 이어굽타 법무부 부차관도 과거 언사로 논란탠든과 달리 민주당 “공화당 중상모략” 엄호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바니타 굽타 법무부 부차관이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과거 거친 언사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각종 막말 전력으로 이미 낙마한 니라 텐든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지명자 때와 달리 공화당의 일방적인 정치적 공세라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은 9일(현지시간) 이날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굽타에 대해 ‘그간 진보주의에 치우쳐 공화당을 비난했고, 경찰 예산 삭감 등을 옹호했다’며 공격했다. 공화당 소속 톰 틸리스 의원은 굽타가 지난해 2월 트위터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거론하며 “하원에서 이미 통과된 중요한 민권 법안의 표결을 보류하고는 대신 당파적인 반 낙태 법안과 더 많은 종신 연방법관이라는 두 개의 당파적인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잊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에 대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인준을 두고 “지명에서 인준까지 모든 성급한 과정은 불법”이라고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 외 굽타가 지난해 공화당 전당대회를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터무니없는 거짓말’의 사흘 밤이라고 조롱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굽타는 이에 대해 “지난 몇 년간 때로 했던 거친 언사를 후회한다”며 철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사과했다. 다만 “여러분께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내 평생의 기록을 보라는 것”이라며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법무부의 민권담당 부서 책임자로서 이념적 경쟁자들을 화합시킨 기록을 거론했다. 경찰 예산 감축을 옹호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난 경찰 예산 감축을 지지하지 않는다. 사실 법 집행에 더 많은 자원은 물론 몸에 부착한 카메라, 경찰관의 건강 및 안전 프로그램 등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데 내 경력을 바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도 막말에 대해 비판이 나왔던 탠든과 달리 굽타에 대해서는 ‘공화당의 중상모략’이라는 주장이 민주당 내 대체적 기류였다. 허프포스트는 “일부 공화당원들은 굽타의 과거 언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뜻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손해배상으로 협박”vs“아닌걸 어떻게 증명하나” 조병규 학폭 새국면

    “손해배상으로 협박”vs“아닌걸 어떻게 증명하나” 조병규 학폭 새국면

    조병규 학폭 폭로자, 날짜별 상황 공개“거액의 손해배상…여기서 끝내고 싶었다일상생활 흐트러져 회사에서까지 해고돼”조병규, 인스타 글 통해 직접 반박“익명의 당신께 어떻게 상황 전달하나허위글 유포부터 악플까지 끝까지 간다” 배우 조병규의 학교 폭력(학폭) 폭로자가 소속사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며 “공개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조병규는 “허위글 유포한 사람부터 악플까지 끝까지 가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조병규 학폭을 폭로한 A씨는 10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지난달 19일 의혹을 제기한 뒤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공개했다. A씨는 “21일 동창을 통해 소속사 법률대리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소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손해배상이었다”면서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변호사 측은 ‘게시물을 모두 내리고 사과문을 올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단 모든 게시물들을 내렸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이 나갔고 저는 여기서 끝낼 수 있다면 합의문 받고 사과문 쓰고 끝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2월 22일 저쪽에서 배우 해명 글을 올린다는 기사가 나왔다. 변호사 측은 ‘합의문 없이 사과문을 먼저 올려라. 피해가 커서 결과에 따라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 사과문을 늦게 올릴수록 피해는 더 커진다’고 했다”며 “무턱대고 사과문을 쓰면 안 될 것 같아 시간을 달라고 말했고, 아는 변호사 형에게 자문을 받고 결국에는 사과문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아울러 A씨는 “사실 그(조병규)는 그 자체가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일진들과 주로 어울리며 괴롭힐 때 매우 지능적으로 그들을 활용했다”며 “처음에 그를 막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밝혔다. A씨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꾸준히 자신을 압박한 제3의 인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조병규)를 칭찬하는 글을 볼 때 화가 나고 과거가 생각나 일상생활이 흐트러졌다”며 “2월 21일부터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90일간의 수습 기간이 2주 정도 남았었는데 25일 결국 해고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해고를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회사에 집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조병규의 소속사인 HB엔터테인먼트에 ‘공개 검증’을 제안했다. 그는 “사정상 언급되지 않은 모든 것 포함 공개 검증을 제안한다”며 “만족할 만한 답변과 해명이 없으면 진실을 향해 적절한 대응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읍소해야 하는 이런 X같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분노했다.이에 대해 조병규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익명의 악의적인 글들에 더이상 반응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지만 도저히 못 보겠어서 글을 올린다”며 “아닌 걸 대체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건가”라고 밝혔다. 조병규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 하나 안 주고 산 사람도 아니고 성장과정 중에 모두와 성인군자처럼 친하게 산 사람도 아니다”라면서 “왜소하다는 이유로 돈을 갈취당하기도 했고 폭행을 당한 전적이 있는데 그럼 지금부터 나도 피해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좁은 인간관계 그리고 관계없는 사람들의 악감정에 대한 무관심이 문제였던 것 같다”며 “이미 10년의 커리어는 무너졌고 진행하기로 한 작품 모두 보류했다”고 강조했다. 조병규는 “나는 감정호소문이고 익명의 얼굴 모르는 사람의 글은 진심인가”라면서 “변호사, 소속사는 돈으로 압박한 적 없고 그게 협박으로 느껴진다면 내용증명은 어떻게 보내고 타국에 있는 익명의 당신께 어떻게 상황을 전달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글쓴이는 지인을 통해 변호사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먼저 선처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병규는 “당신의 불성실로 인한 해고를 남 탓하지 마시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끝으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려 했지만 저도 인간이고 타격이 있기에 저를 지키려 다 내려놓고 이야기한다”며 “허위글 유포한 사람부터 악플까지 끝까지 가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앞서 A씨는 뉴질랜드 유학 시절 조병규에게 폭행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조병규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병규의 학폭 의혹 제기가 계속됐고, 결국 출연 예정이었던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컴백홈’에서 하차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英 방송인 피어스 모건 “‘메건 마클 못 믿겠다’는 생각 바뀌지 않아”

    英 방송인 피어스 모건 “‘메건 마클 못 믿겠다’는 생각 바뀌지 않아”

     “곰곰이 돌아봤는데 내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영국의 아침을 연다는 말을 듣는 ITV의 인기 뉴스 프로그램 ‘굿모닝 브리튼’을 6년 동안 진행하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방송을 통해 메건 마클 왕손빈이 전날 미국 CBS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왕실 비판을 하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가 후폭풍에 휘말려 마이크를 내려놓은 피어스 모건(56)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10일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트위터에 위의 글을 적은 뒤 “표현의 자유가 고비에 놓여 있다. 그걸 위해 죽는다면 행복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틀 전 “미안하지만 마클의 말을 한마디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마클이 일기예보를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트위터에 마클을 ‘피노키오 왕손빈’이라고 적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모건은 2015년 ITV에 합류해 격식 없이 자유롭게 비판하는 ‘굿모닝 브리튼’을 6년 동안 진행해왔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2006∼2011년), ‘브리튼스 갓 탤런트’(2007∼2010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미국 CNN의 래리 킹이 진행하던 토크쇼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이나 트윗은 영국 신문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그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는 영국이 코로나19 감염병의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하나가 된 까닭을 두고 영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 고위관리들로부터 몇개월째 면담 거부를 당한 일도 있다.  ITV는 해리 왕자의 배우자인 마클을 겨냥한 모건의 비판이 적정 수위를 넘었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자 자사의 간판 프로그램에서 모건을 하차시키기로 했다고 전날 밝혔다.  그의 발언이나 지적은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힘들게 고백한 것을 공격했다는 점 때문에 호된 비판에 직면했다. 영국 방송의 규제당국은 진정이 4만 1000건 접수되자 발언에 가학성이 있다고 보고 방송 윤리에 부합하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정신보건 단체인 ‘마인드’(Mind)는 “좋지 않은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존엄성을 지켜주고 존중과 공감으로 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TV는 논의 끝에 모건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였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모건은 마지막 방송에서도 “마클이 말한 것들 중 많은 부분의 진실성을 두고 나는 여전히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정신질환과 자살에 대한 내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히고자 한다”며 “이 문제는 극도로 심각하게 다뤄져야 하고 누군가 그런 것(극단적 충동)을 느낀다면 필요할 때 언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자신의 발언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동료와 격렬한 토론을 했다고 BBC는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유노윤호 “의료진에 송구…부끄러워 스스로에게도 화나”

    유노윤호 “의료진에 송구…부끄러워 스스로에게도 화나”

    ‘동방신기’ 유노윤호(본명 정윤호)가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밤 10시 이후 자정까지 머물러 방역수칙을 위반한 데 대해 “큰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유노윤호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유노윤호는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음식점에서 자정쯤까지 머문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식당·카페·노래방 등의 영업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지난달 15일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되고 있다. 유노윤호는 9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동안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준 모든 분에게 큰 실망을 드리게 됐다”며 사과글을 올렸다. 그는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상황을 견디며 애써 주시는 의료진 여러분을 비롯해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계신 모든 분에게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 영업 제한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내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이 화가 나고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것 같다”며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을 한 점 너무나 후회가 되고 죄송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이어 “방역 수칙을 어긴 점 깊이 반성하며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고 매 순간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윤호가 되겠다”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글을 마무리 했다. 앞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식입장문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유노윤호는 한 순간의 방심으로 많은 분에게 실망을 드린 점 깊이 자책하며 반성하고 있으며, 당사 역시 소속 아티스트가 개인적인 시간에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 및 지도하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정학 숨기려고… 13세 소녀 거짓말이 ‘佛교사 참수’ 불렀다

    지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프랑스 교사 참수 사건이 13세 소녀의 거짓말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프랑스를 또 한번 테러 공포에 몰아넣고, 서방과 이슬람세계 사이 격한 대립까지 빚게 만든 참극이 고작 학교 수업을 여러 번 빼먹어 꾸중을 들을까 겁먹은 소녀가 지어낸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세계가 다시 한번 경악했다. 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등에 따르면 이 소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된 교사 사무엘 파티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파리 근교 콩플랑생토노린 중학교 역사 교사였던 파티는 지난해 10월 5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수업 중 이슬람교도 사이드·셰리크 형제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문제 삼아 2015년 1월 벌인 테러를 설명했다. 그는 이 테러로 12명이 살해됐으며 다음날 수업에서 이 만평을 보여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만평에 충격받을 수 있으니 무슬림 학생들은 눈을 감거나 복도에 나가 있어도 된다고 했다. 당시 문제의 소녀는 잦은 결석으로 정학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모로코 출신인 아버지 브라힘 크니나(48)에게 수업을 받지 못한 진짜 이유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파티가 이 만평을 보여 주기 직전 무슬림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나가라고 했고 이에 파티에게 항의했다가 교실에서 쫓겨났다고 꾸며낸 것이다. 그러자 화가 난 크니나는 7일 학교에 찾아가 항의하며 경찰서에 고소까지 하는 한편 페이스북에 파티의 이름과 학교 주소를 공개하며 비난했다. 이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관심이 있던 체첸 출신 18세 압둘라 안조로프가 봤고, 같은 달 16일 퇴근하던 파티를 뒤따라가 무참히 살해했다. 범행 직후 도주하던 안조로프는 경찰에 사살됐다. 수사 당국에 침묵하던 이 소녀는 다른 학생들이 파티가 무슬림 학생들을 강제로 내쫓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수사관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소녀는 평소 열등감이 심해 정학당한 것을 숨기고 싶어 이러한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의 변호사는 사건의 책임을 13세 소녀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며 “교사를 비난하는 영상을 올린 아버지의 지나친 행동이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크니나는 “테러리스트가 내 메시지를 볼 줄은 몰랐다”며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약물로 만든 24인치 헐크 팔…“근육 욕심에 죽을 수도”

    약물로 만든 24인치 헐크 팔…“근육 욕심에 죽을 수도”

    짧은 기간에 큰 근육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약물을 투입한 남성이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고 제거 수술을 받았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지난 7일 러시아 청년 키릴 테레신(24)의 사연을 소개했다. 테레신은 지난 2017년부터 자신의 이두와 삼두근에 여러 차례 신톨(Synthol Oil)을 주입했다. 테레신은 총 6L의 약물을 맞고, 24인치에 달하는 팔 굵기를 가지게 됐다. ‘뽀빠이’ ‘러시안 헐크’ 등의 별명도 생겼다. 문제는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키릴은 처음에는 하루 25㎖씩 신톨을 투여하다가 점차 리터 단위로 투여량을 늘렸다. 결국 2018년부터 고열 증세가 자주 나타났고, 팔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증상이 악화되자 그는 결국 신톨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죽은 근육 덩어리를 제거하고, 팔에 축적된 신톨을 빼내는 수술이었다.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최악의 경우 키릴은 숨질 수도 있었다고 의료진은 말했다.수술을 집도한 세체노프 의대의 드미트리 멜니코프 교수는 “키릴이 주입한 신톨 오일은 근육 조직을 포화 상태로 만들고 혈류를 차단했다”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정상적인 몸을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키릴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헐크처럼 큰 근육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바보 같았던 나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반성했다. 더선은 “몸에 신톨을 주입하는 것은 근육 손상 외에 돌이킬 수 없는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멜니코프 교수도 “트레이너들이 종종 자신의 몸에 신톨을 주입하는데, 이는 조직섬유증과 괴사를 일으킬 수 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브라질의 한 남성 역시 신톨을 주입해 25인치의 팔 근육을 가지게 됐지만 결국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신톨을 계속 주입하면 팔을 잘라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이 남성 역시 “체육관을 다니면서 거대한 근육을 가진 ‘빅 가이’들을 봤고, 그들과 친해지며 신톨을 소개받았다. 그 효과에 흥분됐고 자제력을 잃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부모님도 못알아봐” K아이돌 성형한 베트남 남성

    “부모님도 못알아봐” K아이돌 성형한 베트남 남성

    “당신 얼굴로는 직장 구하기는 힘들다”는 취업 면접관의 말에 한국 아이돌처럼 성형수술을 한 베트남 남성이 화제다. 저축한 돈으로 9번의 성형을 했다는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9일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는 자신의 성형 전후사진을 비교해 올린 도 쿠엔(26·남)의 영상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코스모 등 동남아시아 매체들은 “쿠엔이 정확히 한국 연예인 얼굴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거주하는 도 쿠엔은 눈, 코, 치아, 입술 등을 포함해 총 9차례 성형 수술을 받았다. 성형 비용만 4억 동(약 1970만원)이 들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성형은 모두 자신이 저축한 돈을 사용했다. 도 쿠엔이 성형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취업 면접관으로부터 “당신 얼굴로는 직장 구하기는 힘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 쿠엔은 “처음 성형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 부모님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고는 생각은 했지만 부모님이 그런 반응을 보이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면서도 “성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도 쿠엔은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봐야 한다. 나의 아름다움 지표는 거울을 봤을 때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만족할 수 있는 지다”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추미애, 나경원에 “부럽다”…조국엔 “온 가족이 장하다”

    추미애, 나경원에 “부럽다”…조국엔 “온 가족이 장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아들의 군대 의혹을 언급하며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부럽다”고 언급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자넌 5일 오후 공개된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나 전 의원이) 부럽다. 그렇게 의심스러운 데가 많았는데…. 우리 아들은 군대 다 갔다오고 남들만큼 휴가도 못 썼는데 병가 쓴 걸로 압수수색도 당했다. 어떻게 (나 전 의원은) 십수 개 혐의를 소환 한번 안 당하고 무혐의 받을 수 있는지. 무슨 기술이 있는지 과외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해 “(검찰에) 당해보니까 알겠더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 장하다. 온 가족이 장하다”며 “사모님(정경심 교수)이 현재 수감 중이다. 아내와 엄마가 수감 중이라는 걸 생각해보라. 어떻게 참아낼까”라고 안타까워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남편인 조 전 장관을 ‘공범’으로 지목했다. 추 전 장관은 “후회되는 것도 있었다. 그 아픔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이라며 “그때 저는 당에 있었으니 당내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선거에 불리할까봐 (조 전 장관에 대해) 거리두기하고….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남의 상처를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갈등을 회고하며 “제가 버틸 수 있게 한 건 시민들이 보내주신 꽃”이라며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보낼까 헤아리려 했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까 눈물이 스스르 나더라. 이분들 때문에 우리 역사가 똑바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진행자 김어준이 “지지자들은 사방에서 추미애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포털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추미애 욕하는 기사로 도배돼 있었다. 본인은 장관으로서 지지자를 만날 수 없었고, 그때 외로우셨구나”라고 묻자 추 전 장관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의 고비를 못 넘으면 시대가 역행할 것 같은 끝자락에 제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저의 의연함이 무너지면 다 이상하게 될 것 같아 내색을 못했다”고 말했다. 김어준은 “조국 전 장관만 하더라도 정말 힘들었겠지만 덜 외로웠을 것”이라며 “서초동에 100만명이 모여서 외치니까 ‘나를 지지해주는 분들도 있구나’고 느끼지만, (추미애 전 장관의 경우 지지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매일매일 뉴스는 추미애가 잘못했다고 쏟아지고 하니까 외로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 전 장관은 자신의 추후 정치 계획에 “코로나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잘 잡히지 않는다. 함께 궁리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제게) 더불어 잘사는 희망 있는 대한민국에서 무엇이라도 하라고 한다면 기꺼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유리, 한복입은 혼혈 아들 젠과 한국식 백일잔치

    사유리, 한복입은 혼혈 아들 젠과 한국식 백일잔치

    방송인 사유리가 자신의 아들 젠에게 한국식 백일잔치를 해줬다. 6일 공개된 유튜브 사유리TV ‘엄마,사유리’에서는 아들 젠의 백일잔치를 하는 사유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백일잔치를 하기에는 날짜가 모자라지만 딸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사유리의 어머니가 일본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와 조금 앞당겨 백일 잔치를 한 것이다. 이날 사유리는 백일 기념 떡을 구매하고, 백일 잔치에 어울리는 소품을 구매해 집안에 설치했다. 사유리의 엄마는 옆에서 사유리의 잔치를 도왔다. 사유리는 주문한 갓을 꺼내며 “엄마가 젠이 꼭 이 모자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했고, 사유리 엄마는 “10년 전부터 하고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사유리는 떡과 과일,키를 비롯한 각종 소품들을 백일 상에 차렸다. 이어 사유리와 친한 카메라 감독이 백일잔치를 찍어주기 위해 집을 찾았다. 카메라 감독은 사유리와 사유리의 어머니, 아들 젠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유리는 엄마가 되고 달라진 점을 묻는 질문에 “기미 많이 생기고 늙었다. 좋은 것은 저보다 소중한 생명이 생겼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던데’라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더라. 나도 배고플 때 있다”며 “애기 돌봐줘야 하니까 내가 밥을 못 먹는다. 이럴 때 엄마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유리는 한국식으로 백일잔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 “옛날부터 백일 하는 사진보고 너무 하고 싶었다. 한복 입고 갓을 쓴 것을 너무 하고 싶었다”며 “오늘 하는 게 꿈꾸고 있었던 게 현실이 되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사유리는 “백일 잔치가 생각보다 어려웠다”며 상을 차릴 때 실수를 많이 해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돌을 기다리고 있다. 돌 때는 사진을 찍고 싶다. 돌은 백일보다 완벽하게 하고 싶다. 그때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어머니 아버지가 한국에 와서 돌을 끝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바랐다. 한편 사유리는 외국의 한 정자은행에서 백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한 뒤 지난해 11월 4일 일본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조국 “‘검찰당’ 출신 대권후보 3명 홍준표, 황교안, 윤석열”

    조국 “‘검찰당’ 출신 대권후보 3명 홍준표, 황교안, 윤석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6일 ‘검찰당’ 출신 세 명의 대권후보가 생겼다며 검찰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갔다. 그가 꼽은 세 명의 대권후보란 홍준표 무소속 국회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황 전 총리는 윤 전 총장이 사직과 함께 사실상 정계 진출을 밝힌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를 공유하며 “‘나라로부터 큰 혜택을 받은 내가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무엇인가 해야 한다’ ‘이육사 선생 같은 초인은 아닐지라도, 작은 힘이지만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이육사 선생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찾아, 딸인 이옥비 여사를 지난 3·1절에 만난 사실도 공개하고 ”이육사 선생 같은 초인은 아닐지라도,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황 전 대표는 “요즘 일부 도적들이 주권을 찬탈하고 국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권력 찬탈을 위해 온갖 불법과 무도한 일을 벌인다. 대한민국을 좀먹는 무리”라고 맹비난했다. 조 전 장관이 주장하는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에 대해서는 “도적을 잡아 국권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공권력을 ‘공중분해’하려고 한다.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해 “당해보니 알겠더라. 얼마나 저분이 힘들었을까”라며 “참 온 가족이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사임 직후 조 전 장관이 위로의 말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하자 “누가 누구를 위로하나 도대체”라며 이같이 밝혔다. 추 전 장관은 “사모님(정경심 교수)이 현재 수감 중이다. 아내와 엄마가 수감 중이라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참아낼까”라며 “겪어보지 않으면 남의 상처를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또 21대 총선을 몇 달 앞둔 2019년 ‘조국 사태’ 당시를 돌이키며 “후회되는 것도 있다. 그 아픔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이라며 “저는 그때 당에 있었다. 선거에 불리할까 봐 거리두기를 했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마음에 담아둬야죠” 패배에 눈물 글썽인 박지현의 독한 다짐

    “마음에 담아둬야죠” 패배에 눈물 글썽인 박지현의 독한 다짐

    신인왕에서 베스트5가 되기까지 불과 2년. 한 시즌 만에 평균 득점(8.37점→15.37점) 리바운드(5.56리바운드→10.4리바운드)를 2배 가까이 늘렸다. 어느새 국가대표 정예 멤버 수준으로까지 성장했다. 이번 시즌 박지현(아산 우리은행)이 보여준 성장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박지현은 이번 시즌을 통해 여자농구의 보물로 성장했다. 정규시즌에서 경기당 평균 36분 44초를 뛰며 15.37점(6위) 10.4리바운드(2위) 2.93어시스트(12위) 1.7스틸(1위)을 기록하며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명목상은 가드 포지션이긴 하지만 워낙 다방면에 뛰어났고 2라운드 최우수선수(MVP)도 그의 차지였다. 시즌 내내 주목받는 선수로 활약한 박지현은 마지막 경기에서 눈물을 보이며 화제가 됐다. 지난 3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0~21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박지현은 용인 삼성생명에게 4쿼터 42-58로 지고 있을 때 5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눈가가 촉촉히 젖은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박지현은 “코트 안에서 울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는데 그날은 그냥 눈물이 나더라”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생각나 아쉬움도 많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흐름이 넘어간 경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아쉬운 마음도 컸다. 1차전에서 승리를 따내는 ‘미친 3점슛’ 포함 18득점 5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12득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고군분투한 박지현이었기에 마지막 경기는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아직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는 만큼 팬들에게 챔프전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단다. 그래도 마냥 후회만 할 수는 없다. 처음으로 제대로 뛴 플레이오프였기에 박지현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됐다. 박지현은 “1차전엔 운이 좋게 이겨서 2차전엔 실력으로 이기고 싶었는데 부족함을 느꼈다”면서 “3차전에선 경기 하면서도 다른 경기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서 ‘지현이는 2시간이면 다 잊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박지현은 “다들 내가 진짜로 그런 줄 안다”고 웃었다. 박지현은 “마음 한 곳에 담아놨다가 비시즌 훈련할 때 생각하면서 힘내서 훈련할 것”이라고 독한 다짐을 드러냈다. 패배의 아픔 따위는 훌훌 털어버릴 것이란 주변의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다. 박지현은 이미 지금 성적만으로도 리그 톱 수준의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베스트5 투표에서 102표(총 108표)를 얻은 것은 박지현이 얼마나 대단하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 덩달아 인기도 늘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많은 응원의 메시지가 도착하고, 거리에서 마스크를 끼고 다녀도 알아보는 팬도 생겼다. 인터뷰 도중 합류한 오승인도 “지현이가 비시즌 때도 제일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뿌듯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지현이가 어린데도 언니들하고 대등하게 하려는 거 보면 나도 배우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박지현은 “기록상으로 겉만 좋지 그 안에서 내가 부족한 것도 많다”면서 “언니들은 스스로 했다면 나는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시키는 대로 해서 그렇게 됐다. 다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고 몸을 낮췄다. 생애 첫 베스트5지만 “벌써 받아도 되나 생각도 든다”면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위성우 감독은 “지현이는 아직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고등학생 같은 순수함이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지현이가 다른 선수보다 특히 더 많이 느꼈으면 하는 시즌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코트에서 수도 없이 “지현아! 박지현!”을 외친 위 감독이기에 애정이 더 컸다. 위 감독은 “지현이는 팀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며 “그 미래가 남들보다 더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고 느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주위에선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 내 눈에는 그렇지 않다”고 독하게 성장할 것을 주문했다. 감독이 바라는 주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박지현은 수많은 호통에도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감사한 분”이라고 자랑했다. 이제 박지현의 시즌은 끝났지만 비시즌을 더 바쁘게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취소 위기에 몰렸던 도쿄올림픽이 백신의 힘으로 개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량만으로 따졌을 때 박지현의 올림픽 여자농구 대표팀 승선에는 이견이 없다. 박지현은 “모르겠다. 생각 안 하고 있다”고 하더니 이내 “내가 딴 티켓이 아니고 언니들이 힘들게 딴 티켓인 만큼 만약 뽑힌다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언제 올림픽이란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가서 열심히 하겠다”는 당찬 각오를 드러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여보 거긴 어때?” 바람만이 답하는 日 이와테현의 공중전화

    “여보 거긴 어때?” 바람만이 답하는 日 이와테현의 공중전화

    “여보세요. 나야 여보. 거긴 어때?” “ ” 애초에 전화선도 연결 안돼 있어 답을 들을 수 있다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든 것이 아니었다. 바닷가라 거친 바람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그저 다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아내에게 속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마음껏 울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일본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흰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못다 나눈 얘기를 실컷 해보라고 지난달 27일 첫 선을 보인 ‘바람의 전화’를 로이터 통신이 5일 소개했다.사사키 가즈요시(67)는 쓰나미에 세상을 등진 아내 미와코의 핸드폰 번호를 조심조심 눌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 아내의 행적을 찾기 위해 헤맸는지부터 설명했다. 대피센터와 시신안치소들을 샅샅이 뒤졌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일어났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을 알리는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냈는데 보지 않았더군. 집에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어. 마치 보석함을 보는 것 같았지. 난 울고 또 울었어. 그때 쯤에야 난 수많은 이들이 스러졌다는 것을 알았어.”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과 실종자는 2만명이 넘는다. 오가와 사치코(76)는 44년 동안 부부의 연을 쌓고 속절없이 먼저 떠난 남편 도이치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지부터 남편에게 물었다. “외로워요.”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가족들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끊어요. 나도 곧 갈게요.” 오가와는 남편이 저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니 조금 낫더라”고도 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언덕 정원에 이런 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며 가끔은 두 손자도 데려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한다고 했다. 그의 손자 다이나(12)는 “할아버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제 곧 중학교 들어갈 거에요”라고 자랑했다. 할머니와 두 손자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새 바이러스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도쿄에서 북동쪽으로 500㎞ 떨어진 이 마을의 공중전화 부스를 만든 이는 정원 주인 사사키 이타루(76)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몇달 전 암으로 사촌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무슨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한다”고 ‘바람의 전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공중전화 부스가 많이 알려져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쓰나미 생존자들만 아니라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까지 찾는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몇달 전 사사키에게는 영국과 폴란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사사키는 “참사처럼 팬데믹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가족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한층 길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사키 가즈요시는 아내 미와코를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10년 뒤 다시 사귀자고 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 뒤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그는 최근에 임시 주택을 나와 막내아들이 지은 새 집으로 이사해 손주들과 지내고 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전화를 끊기 전 최근 체중이 빠졌더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약속할게. 우리가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 응, 빨리 말해봐.” 밖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학폭 인정’ 지수, 군대 간다…“반성의 시간 갖겠다” [이슈픽]

    ‘학폭 인정’ 지수, 군대 간다…“반성의 시간 갖겠다” [이슈픽]

    KBS드라마 ‘달이 뜨는 강’ 중도 하차광고 삭제, 출연작 다시보기도 중단소속사 “모든 활동 중단, 통렬한 반성할 것”“위압 동원한 성폭력은 명백한 사실무근”피해자 “사과 따윈 필요 없다, 평생 학폭자”중학생 시절 학교폭력 논란을 인정한 배우 지수(본명 김지수·28)가 모든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군에 입대하기로 했다. 지수의 소속사는 “지수는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수는 주연으로 출연했던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도 하차한다. 그가 출연했던 출연작들의 다시보기는 중단됐으며 광고도 삭제됐다. 소속사 “지수, 10월 중순 입대,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예정” KBS, 지수 배역 교체 후 재촬영“지수 출연 장면 최대한 삭제 방송” 소속사 키이스트는 5일 “지수는 배우로서 계획된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제보 이메일 접수, 온라인 커뮤니티 모니터링 등 다각도로 관련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항간에 나도는 위압을 동원한 성폭력과 같은 주장들은 명백한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키이스트에 따르면 지수는 지난해 12월 영장을 받아 오는 10월 중순 입대한다. 2016년 급성 골수염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지수가 주연으로 출연 중이던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배역을 교체하고 재촬영해 방송된다. 대타로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 출연했던 나인우가 발탁됐다. KBS는 이날 “나인우가 ‘달이 뜨는 강’의 온달 역으로 캐스팅됐다”면서 “9회 이후 방송분은 재촬영해 방송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KBS 측은 입장문을 통해 “방송일이 임박한 7·8회 방송분은 지수가 출연하는 장면을 최대한 삭제해 방송하고, 이번 주말 재방송은 결방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드라마의 편성 취소를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했다”면서 “‘달이 뜨는 강’을 사랑해 주신 시청자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스태프와 연기자, 제작사 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초유 ‘학폭’ 방송 하차 지수, 자필 반성문“과거 저지른 비행, 변명의 여지도 없다” “과거 죄책감에 늘 불안, 진심으로 사죄해”“평생 씻지 못할 과거 반성, 뉘우치겠다” 방영 초반 드라마의 주연 배우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차하게 된 것은 초유의 사태다. 지난해 12월 배우 배성우가 음주운전 적발로, 2018년 배우 조재현이 ‘미투’ 사태로 작품 말미에 각각 중도 하차한 바 있으나, ‘달이 뜨는 강’의 경우 아직 6회까지밖에 방송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더 이례적이다. 지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창 시절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되자 전날 “과거에 저지른 비행에 대해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며 인정했다. 지수는 지난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필 사과문에서 “나로 인해 고통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고 사과했다. 이어 “연기를 시작하면서 과거를 덮어둔 채 대중의 과분한 관심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으나 마음 한편에 과거에 대한 죄책감이 늘 존재했고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후회가 저에게는 늘 큰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과거가 항상 나를 짓눌러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기자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긴 시간 동안 고통받으셨을 분들께 깊이 속죄하고, 평생 씻지 못할 나의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치겠다”고 언급했다. 지수는 또 “나 개인의 커다란 잘못으로 방송사와 제작진, 배우들, 드라마 현장을 묵묵히 지켜왔던 스태프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이 괴롭고 죄스럽다”면서 “나로 인해 드라마에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분께 무릎 꿇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중심으로 지수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수위가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제기된 의혹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고,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도 여러 명 나와 수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동문’ A씨 “연기하고 싶으면 하라, ‘학폭자’ 타이틀은 평생 품고 살라”“‘사실무근’ 주장하면 피해자들 연대” 지수에게 중학교 시절 학폭을 당했다고 주장한 A씨는 지난 2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배우 지수는 학폭 가해자입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A씨는 증거로 서라벌 중학교 졸업장을 게재하며 동문임을 밝혔다. A씨는 지수의 학폭은 언급하며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사과 따윈 필요 없다.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하고 싶은 게 연기면 하라. 다만 그 이름 앞에 ‘학교폭력가해자’ 지수 라는 타이틀은 평생 가슴에 품은 채 살라”고 못박았다. A씨는 자신에 대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의 서라벌 중학교를 나온 ‘김지수(배우 지수)’와 동문”이면서 “김지수는 착한 척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TV에 나오고 있으나, 그는 학폭 가해자, 폭력배, 양아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지수는 또래보다 큰 덩치로 2007년 중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 일진으로 군림하여 학교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면서 “김지수가 포함된 그때의 일진들은 상당히 조직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수 무리는 부모님에 대한 패륜적인 발언도 일삼았고 구기 대회 등을 통해서도 치밀하게 괴롭혔다”면서 “우연찮게 접하는 김지수의 인터뷰나 기사를 보면 헛웃음부터 나온다. 저 정도면 진짜 자기 과거를 망각한 기억상실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A씨는 “제가 바라는 건 보상도 아니고 사과도 아닙니다. 이미 모든 걸 겪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사과 따윈 필요 없습니다”라면서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 김지수씨. 하고 싶은 게 연기라면 하세요. 다만 그 이름 앞에 ‘학교폭력가해자’ 지수 라는 타이틀은 평생 가슴에 품은 채 사세요”라고 조소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괴롭혔던 수많은 사람들의 그 기억은 저처럼 평생 잊혀지지 않아요. 순수한 척 순진한 척 착한 척 사람 좋은 척. 가증스러워서 못 보겠습니다. 연기는 스크린 속에서만 하십시오”라고 남겼다. A씨 폭로 이후 지수의 학폭을 주장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지수와 중학교 동창이라는 B씨도 “지수는 중학생 시절 정말 악랄했다”며 학폭 과거를 언급했다. B씨는 “지수는 누굴 특정해서 괴롭힌 것도 있지만, 자신이 왕처럼 학교에서 껄렁껄렁 다니면서 애들한테 무차별적으로 시비 걸고 이유 없이 때리고 욕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B씨는 “처음 데뷔해서 TV에 나오는 걸 봤을 때 절대 오래 못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일한 생각이었다”면서 “법적으로 책임질 게 있다면, 작성자를 비롯해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소속사를 통해 혹은 본인 입으로 ‘사실무근’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때는 더 많은 증거로 연대하겠다”고 경고했다. KBS 시청자 하차 청원 수천건 동의올스톱에 사실상 연예계 ‘퇴출’ 상태 이러한 학교폭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수의 하차를 요구하는 KBS 시청자 청원은 이날 오후 1시 기준 7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지수의 데뷔작 MBC TV ‘앵그리맘’(2015)과 주연으로 출연한 OCN ‘나쁜 녀석들: 악의도시’(2017)는 다시 보기에서 삭제됐다. 지난해 방영된 MBC TV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또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이외에도 지수는 방송가뿐 아니라 출연 광고까지 모두 중단되거나 영상이 삭제되면서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 상태가 됐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여보세요. 나야 여보. 거긴 어때?” “ ” 바람 소리만 들린다. 애초에 전화선도 연결 안돼 있어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전화를 건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아내에게 웅숭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마음껏 울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일본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흰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못다한 얘기를 실컷 해보라고 지난달 27일 첫 선을 보인, 이른바 ‘가제 노 덴와’(바람의 전화)다.사사키 가즈요시(67)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미와코의 핸드폰 번호를 조심조심 눌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 아내의 행적을 찾기 위해 헤맸는지 설명했다. 대피센터와 시신안치소들을 샅샅이 뒤졌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일어났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을 알리는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냈는데 보지 않았더군. 집에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어. 마치 보석함을 보는 것 같았지. 난 울고 또 울었어. 그때 쯤에야 난 수많은 이들이 스러졌다는 것을 알았어.”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은 2만명 가까이 된다. 오가와 사치코(76)는 44년 동안 부부의 연을 쌓고 속절없이 먼저 떠난 남편 도이치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지부터 남편에게 물었다. “외로워요.”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가족들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끊어요. 나도 곧 갈게요.” 오가와는 남편이 저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니 조금 낫더라”고도 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언덕 정원에 이런 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며 가끔은 두 손자도 데려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한다고 했다. 그의 손자 다이나(12)는 “할아버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제 곧 중학교 들어갈 거에요”라고 자랑했다. 할머니와 두 손자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간 채였다. “이번에는 새 바이러스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도쿄에서 북동쪽으로 500㎞ 떨어진 이 마을의 공중전화 부스를 만든 이는 정원 주인 사사키 이타루(76)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몇달 전 암으로 사촌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무슨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한다”고 ‘바람의 전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공중전화 부스의 존재가 많이 알려져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쓰나미 생존자들만 아니라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까지 찾는다. 같은 제목의 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5일 전했다. 몇달 전 사사키에게는 영국과 폴란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사사키는 “참사처럼 팬데믹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가족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한층 길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사키 가즈요시는 아내 미와코를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10년 뒤 다시 사귀자고 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 뒤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그는 최근에 임시 주택을 나와 막내아들이 지은 새 집으로 이사해 손주들과 지내고 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전화를 끊기 전 최근 체중이 빠졌더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약속할게. 우리가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 응 빨리 말해봐.” 밖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열정 가득 ‘프로 N잡러’도 아직 이루지 못한 건 ‘결혼’

    열정 가득 ‘프로 N잡러’도 아직 이루지 못한 건 ‘결혼’

    “매일 자기 전에 ‘내일은 무슨 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잠들곤 합니다.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 그날의 직업이 되는 거죠.” 프리랜서 아나운서, 작가, 스포츠 에이전트, 스포츠 심리상담사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현동(38)씨. 그는 스스로 “나는 요일별로 직업이 다른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라고 표현했다. “최근에 가장 비중을 많이 두는 일은 스포츠 에이전트와 아나운서예요. 주중에는 스포츠 에이전트로 살고 있고, 주말에는 결혼식 사회 등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로 살고 있죠. 또 집에 돌아와서는 웹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로도 살고 있어요.” 그가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대 후반. 건축학과를 전공했던 그는 건축학이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했다. SBS Sports의 ‘베이스볼 S’를 진행했고, 그 후 부산으로 향해 KNN(SBS 부산·경남) 아나운서가 됐다. “부산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롯데자이언츠 경기 중계 캐스터를 맡게 됐어요. 그렇게 4시즌(2013~2016) 동안 야구 중계를 했죠. 그때 친해진 선수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당신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자기계발서를 출간했습니다.”평소 글쓰기를 좋아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이씨. 최근에는 두 번째 책 ‘제가 좀 예민해서요’를 출간하고 작사가로서 또 다른 삶을 준비 중이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하면서 책도 같이 쓰게 됐어요. 또 스포츠 심리상담사 자격도 취득해 최근에는 중‧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의 멘탈 케어도 돕고 있죠.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작사가 데뷔’인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로 ‘강력한 목표 의식과 자기 확신’을 꼽았다.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강한 자기 확신과 목표 의식이 결국 그런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며 “하고 싶은 열정과 노력을 통해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면서 꾸준히 하다 보니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 N잡러’인 그에게도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현재 제일 큰 인생의 고민은 결혼이에요. 저도 적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계세요. 하지만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숙제인 것 같아요. 작사가의 꿈과 결혼의 꿈이 잘 이루어져 죽기 전에 ‘정말 잘 살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작가’로서 책 소개를 한다면? 자기계발서 ‘당신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제가 직접 만났던 스포츠 스타들과의 숨겨진 이야기와 제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담은 자기계발서입니다. 특히 야구선수 강민호, 손아섭, 전준우, 구승민 등 선수들의 실제 에피소드도 담겨 있어 야구팬이라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내용도 많이 있죠. 두 번째 책 ‘제가 좀 예민해서요’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감각 과민증’이더라고요. 저와 같은 감각 과민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생각보다 재밌어요. Q. ‘스포츠 에이전트’는 어떤 직업인지? 저는 KPBPA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소속된 야구 에이전트입니다. 선수들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최근에는 야구 시즌이 끝나서 선수들의 다음 시즌 연봉 협상 등의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롯데자이언츠 중계방송을 하면서 친해진 구승민(롯데자이언츠 투수) 선수가 제가 1호로 계약한 선수예요.Q. ‘스포츠 심리상담사’는 어떤 직업인지? 에이전트 활동을 하면서 스포츠 심리상담사 자격을 취득했어요.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가장 큰 차이점을 보니 ‘멘탈’이더라고요. 그래서 에이전트 회사에서 관리하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멘탈입니다. 사실 제가 야구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얻은 제 경험을 어린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일이죠.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삼촌처럼 학생들과 이야기하며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어요. Q.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만큼 직업 간의 간극은 없는지? 사실 직업이 다양하다 보니 직업마다 특징이 다르죠. 하지만 통합을 하고 보면 결국에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이런 것들의 총체적인 합이더라고요. 아나운서는 미디어와 시청자를 연결해주는 역할, 에이전트는 구단과 선수를 연결해주는 역할, 스포츠 심리상담사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 결혼식 사회는 신랑‧신부와 하객을 연결해주는 역할처럼 모든 일이 중개자의 역할이더라고요. 그래서 직업 간의 간극은 크게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Q. 꿈꾸는 ‘슈퍼 프로’(Super pro)는 어떤 모습인지? 이 질문은 스스로 늘 자문하는 것이기도 한데, ‘슈퍼 프로’는 한 분야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를 걸친 준프로 같은 느낌이죠. 지금은 에이전트로서 ‘슈퍼 프로’, 작가로서 ‘슈퍼 프로’, 이런 식으로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가장 잘 하는 1순위의 역할의 ‘슈퍼 프로’를 꿈꾸고 있어요. 꼭 한 분야의 ‘슈퍼 프로’가 아닌 여러 분야의 ‘슈퍼 프로’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본인에게 ‘도전’은 어떤 의미? 저는 도전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운명론자거든요(웃음). 무언가 실패를 해도 ‘이 또한 이 정도가 맞다. 이건 운명이다’라고 생각하면 지나간 일에 대해서 후회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말 그대로 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처럼, 도전은 저와 늘 함께하는 친구 같아요. 앞으로 힘들더라도 도전을 거부할 생각은 없고요. 죽기 전까지 계속 무언가 도전하고 있을 것 같아요. ※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장민주 인턴기자 goodgood@seoul.co.kr영상 김형우·임승범·장민주 기자 hwkim@seoul.co.kr
  • “나는 왜 태어났지?”“나는 누구지?”“어떻게 살지?”…“난 그냥 나야”

    “나는 왜 태어났지?”“나는 누구지?”“어떻게 살지?”…“난 그냥 나야”

    내가 되는 꿈/최진영 지음/현대문학/240쪽/1만 4000원 이혼이 흠은 아닌 세상이 됐다. 하지만 이혼으로 인한 피해는 여전하다. 어린 자녀의 트라우마를 외면하긴 어렵다. 아마도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려 애쓰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를 되묻고 있지 않을까. 최진영 작가는 신작 ‘내가 되는 꿈’에서 부모의 별거로 외가에 맡겨진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리면서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의미를 섬세한 시선으로 찾아낸다. 30대 회사원인 주인공 태희는 자신을 키워 준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자신의 생일조차 기억해 주지 못했던 엄마, 연락도 없던 아빠, 폭언과 성추행을 일삼은 선생, 자기 방에 얹혀산다고 분풀이를 하던 이모 등 모든 것이 상처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것은 중학생 시절 자신 앞으로 배달됐던 불가사의한 편지 한 통이다.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픔에 방황하고 자신 말고는 전부 화목한 집에서 살 것으로 생각했던 태희는 어른이 됐어도 여전히 어떤 자신이 돼야 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태희는 5년 넘게 만난 애인이 외도했음에도 이별을 미루고, 직장에서 인격적 모독을 주는 상사에게 한마디를 못 하고 모욕감만 삼키는 소시민이다.어린 태희나 어른 태희나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아이’와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누가 대신 살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97쪽)는 어린 태희에게 온 메시지는 어떤 속내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른이 돼서야 비로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메시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도. 소설은 이런 이야기를 푸는 방식으로 ‘타임슬립’을 택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남긴 유서 “잘못과 사랑은 나눌 것”(10쪽)이란 말은 상처를 나눠 가짐으로써 삶이 회복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태희가 엄마와 이모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 위로받고 치유된다. 연대와 나눔을 통해 ‘나’가 되는 일을 알아 간다. 나를 찾는 길은 더 내면으로 심화해 내 안에는 무수한 내가 존재하고, 그것만으로도 내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내가 누구인가를 꿈꿨지만,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였던 거다. 그동안 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해 왔던 작가답게 소설에서는 직장 상사의 갑질, 여성 직장인의 고충도 비중 있게 다뤘다. 어린 태희의 학교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 가정 불화가 있다. 부모로서 자신의 삶이 아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는 “다양한 시간·공간에 내가 존재한다면 어떤 세계에서 내가 슬퍼할 때 다른 세계에서 나는 기쁘다”며 “과거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현재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대에 기대했던 자신의 모습과 달리 30~40대에도 아직 자신이 갈 길을 찾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많은 ‘나’를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되는 꿈’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꾸는 꿈이란 생각이 든다. 후회가 꼬리를 무는 어른들의 삶을 되짚어 보며,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펼쳐 보인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마감 고통에 몸부림… 그래도 또 쓴다, 작가니까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마감 고통에 몸부림… 그래도 또 쓴다, 작가니까

    잘 쓴 글을 보면 심장이 뜁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까.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이름 들어 보신 분 많을 겁니다. 부커상을 2회 수상했고,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매년 거론됩니다. 소설 ‘시녀 이야기’로 수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기도 했지만 시, 논픽션에도 능한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글쓰기에 대하여’(프시케의숲)는 그가 등단 40년을 맞았던 2002년 케임브리지대에서 했던 여섯 번의 글쓰기 강의를 묶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책 한 권이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말이 작가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암흑 속에 있는 것이고,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섬광과도 같다”면서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조언합니다. “지금에서 옛날 옛적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야 한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이번에는 마감 때문에 고민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작가의 마감´(정은문고)은 글 때문에 끙끙 앓는 일본 유명 작가들의 피폐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원고를 쓰려고 마음먹은 날이 되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위경련이 일었다”. ‘타락론’, ‘백치’로 알려진 사카구치 안고의 말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는 “14일에 원고를 마감하란 분부가 있었습니다만, (중략) 17일이 일요일이니 18일로 합시다”라고 조금은 구차하게 변명합니다. “열흘이나 전부터 무엇을 쓰면 좋을지 생각했다.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라는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후회도 재밌습니다. ‘나생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도 와닿습니다. “다 쓰고 나면 언제나 녹초가 된다. 쓰는 일만큼은 이제 당분간 거절하자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 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 뭔가 쓰고 싶다. 그리하여 또 앞의 순서를 되풀이한다. 이래서는 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을 성싶다.”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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