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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진해는 일본인들이 붙인 지명이다. 원래 웅천읍성이 자리했던 곳으로, 그 웅천 바닷가에는 ‘세스페데스 방한 400주년(1553~1993)기념’이란 설명문이 붙은 조각상이 서 있다.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 톨레도의 니야누에다 데알카르데테 시민들이 우정의 정표로 기증한 것이다. 그는 1593년 12월27일에 웅천포에 도착해 1년여를 이곳 왜성에서 묵었다. 그 34년 뒤인 인조 6년(1628)에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부산 근처에 표착했고, 그로부터 59년 뒤인 1653년에는 하멜이 표류해 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표류가 아닌, 자의로 이 땅에 온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가 머물렀던 웅천 남산왜성을 올랐다. 돌들이 웅장하다. 틀림없는 왜성인데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축성했고 정유재란때 재침해 수축한 것이다. 경상도에는 유난히도 왜성이 많다. 웅천 안골포 양산 영등포 마산 고성 사천 남해왜성 등등 아예 장기 주둔을 염두에 두고 진을 쳤던 흔적들이다. 진해에는 웅천왜성 바로 건너편 안골포에도 왜성이 있다. 사면이 두루 보여 그만한 요새가 없다. 세스페데스가 웅천까지 온 이유를 알자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하다. 임진왜란때 평양성을 공격했던 고니시 고니시는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탁한 천주교도였다. 고니시의 딸 마리아는 당시 19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의 아내였는데, 소오는 임란 직전까지 대마도 병마사로 조선의 녹봉을 받았다. 그 역시 천주교 신자였다. 소오는 조선의 지리를 꿰뚫고 조선말에도 능통해 왜군의 앞잡이로 선봉에 섰다. 세스페데스는 이때 일종의 종군 신부로 온 것이다. 그의 수기에 의하면 조선의 훌륭한 문화재는 모두 고니시와 소오가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들은 문화재 약탈뿐 아니라 사람들도 엄청 붙잡아 갔다. 오죽했으면 강항이 ‘간양록’에서 ‘배 600∼700척이 몇 리에 걸쳐 바다를 메우고 있는데, 배마다 조선 남녀의 통곡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시킬 정도’라고 기록했을까. 고니시도 평양성 전투에서 6살 난 전쟁고아 소녀를 데려가 ‘오타’란 이름을 지어주고 길러 ‘줄리아’라는 세례명까지 얻게 했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대격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는 패하여 처형된다. 줄리아도 이때 외딴 섬으로 귀양가 신앙을 지키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다. 한편 고니시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오는 마리아와 이혼하고 도쿠가와의 가신으로 들어간다. 세스페데스는 1597년 3월에 다시 내한했다가 도쿠가와의 선교사 추방령으로 수박골에 피신해 있다 두달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임진왜란이라는 한·일간의 유쾌하지 못한 전쟁통에 묻어 오기는 했지만 서양인의 첫 방문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왜성이 위치한 안골포는 임란 전승지로 유명한 곳.1952년 7월 왜 수군의 주력부대가 한산도에서 참패를 당하자 그를 따르던 가토 기요마사의 42척 제2 주력부대가 당황한 나머지 안골포에 옮겨 정박한 것을 이순신이 추격, 격파한다. 한산도해전과 더불어 안골포해전은 왜 수군 주력부대를 격멸한 큰 전공지였다. 이듬해인 1593년 2월부터 한달동안 이순신 함대는 웅포에 무려 7차례나 출격해 해전을 치렀는데, 이때 웅포 남산왜성의 왜 육군이 엄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세스페데스는 그 해 겨울 웅천으로 들어왔다. 안골포에는 굴강(掘江)이 남아 있다. 방파제와 선착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남 여천에 선소(船所)와 굴강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진 지금 이곳의 해양문화사적 의미는 크다. 이순신의 대격전지에 이같은 해양 유적이 전해지고 있어 감회가 새로운데 머잖아 간척될 계획이라 운명이 풍전등화다. 매립하여 공원을 조성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도 굴강만은 살릴 계획이라지만 이 희귀한 문화유산이 전해지는 임진왜란 대첩지를 매립해 땅을 얻어 써야겠다는 문화적 반달리즘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진해는 대마도를 거쳐서 규슈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마산에서 여몽연합군이 후쿠오카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듯 최단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본디 최초의 왜관이 자리잡은 곳도 또한 이곳 웅천이다. 왜관은 모두 세 군데에 있었으나 삼포왜란 이후에 변란을 걱정해 웅천왜성은 폐지되어 부산의 초량 왜관으로 통합됐다. 이같이 일본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진해에 다시 왜인들이 나타난다. 근 300여년 만에 이번에는 왜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로 변신해 나타났으니, 그들은 지형·정서적으로 가장 잘 아는 곳부터 점령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진해만을 동양 제일의 대군항으로 키우기 위해 한반도 최초로 조직적·계획적 도시계획을 입안한다. 진해라는 말부터가 일인에 의해 처음 쓰여졌고, 옛 웅천읍성과 무관하게 신도시로 재탄생했으니 식민지 항구도시 건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당시 비동 현동 좌천 등 여러 마을을 합해 진해라 부르고 진해만 군항지를 편의상 진해만이라 칭한 것이다. 군항지 경영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돈인 800만원을 퍼부어 10개년 사업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바닷가 염습지와 황무지를 매립하여 땅을 얻고 농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했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12일에는 해군 함정을 거제도 송진포 연안에 대놓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도 했다. 송진포에 ‘일본제국 해군 가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의 여세를 몰아 웅천지역의 토지를 강탈하기에 이른다. 당시 시가지는 12만평이었으며, 계획도시답게 모범적 시가를 만들기 위해 도로는 방사형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오늘날 진해의 중원로터리 등을 보면 사방팔통으로 도로가 교체하는데, 여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미관을 엄격히 고려하고 토지를 1∼3등으로 3분하여 건축을 제한했다. 건물은 2∼3층을 원칙으로 하고 4층 이상은 허가를 받아 짓도록 했다. 이곳 토지를 불하받은 일인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사세보 사가 조슈 나가사키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에 오래 전에 나와있던 용산, 마산, 부산 등지의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몰려 왔다. 이로써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선인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목포나 군산처럼 본래의 조선인촌과 병존하게 하지도 않은 식민도시였다. 그리하여 일제 해군본부가 들어서고, 한국뿐 아니라 극동의 군항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한국 해군의 본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진해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읽는다.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로터리 모퉁이에 고색창연한 진해우체국이 서있어 식민지 시대를 전하고 있다. 도로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일장기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충무공 동상으로는 전국 최초인 1951년에 창원 통영 고성 김해 마산 등에서 갹출해 북원광장에 조성한 것이다. 일장기형 도로와 이순신의 동상이 주는 이중창이 묘한 갈등으로 다가온다. 자고로 벚꽃이 유명하여 4월 초순에는 군항제가 열린다.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벚꽃도 즐기는 최대의 행사인데,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의 이미지는 왠지 좀 거북한 느낌이었다. 제황산정에는 웅장하게 솟은 탑이 있다. 일인들이 세운 러일전쟁 기념탑을 광복 후 철거하고 1967년 해군의 기함사령탑을 상징하는 이 탑으로 교체했다. 시내 로터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했을 때 남긴 기념휘호를 각인한 비석이 있는데 가장자리가 깨져 있다.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을 땜질해 붙여놓았다. 로터리 중심의 나무에 가려져 있어 외부인은 그런 비석이 있는 줄도 모른다. 반면에 진해 바닷가에는 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전용 낚시터, 장제스를 만났다는 육각정 등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디 일본군 통신대가 쓰던 건물이다. 진해 사람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해군기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보니 도시의 주요 토지들은 모두 군용으로 묶여 발전이 없다. 군사도시인 탓에 규제가 심해 발족 당시의 인구에서 별반 늘어난 게 없다. 게다가 부산시와의 갈등도 내연 상태다. 신항만 건설부지의 80%를 내놓았지만 명칭이 부산신항만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여서 폭발 일보 직전이다. 부산신항인지, 부산·진해신항인지를 놓고 대격돌을 벌이는 중이라 이래저래 군사도시의 고충이 깊은 요즘이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군항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게다가 이웃 거대도시 부산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진해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가장 쾌적하고 맞춤한 인구, 공장이 적은 대신 맑은 숲과 바다를 지닌 천혜의 미항 진해이건만 미래가 투명하게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벚꽃 펄펄 날리는 조건에서도 소작쟁의는 물론 동양제사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각종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주기철 목사같이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진정한 종교인을 배출한 곳이 진해 아닌가(황정덕의 ‘진해 항일독립운동사’ 참조). 진해예술촌장을 맡아 군사도시 속에서 문화를 가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차생 진해문화원장이 망산도로 안내하면서 간절하게 전한 말은 이랬다.“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아유타국 허왕옥 공주가 처음 내린 망산도도 진해지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항구도시였으니 부산·진해신항으로 결정돼 사람들 시름 좀 덜었으면 합니다.”
  • [서울이야기] ⑦ 글로벌 스탠더드와 환경

    [서울이야기] ⑦ 글로벌 스탠더드와 환경

    21세기 들어 이전 세기와는 분명히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향후 50년간 세계는 하나가 되며,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이 경제의 중심 목표가 될 전망이다. 질과 가치가 중시되며, 사회·경제·환경이 통합되는 사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중시되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시의 환경정책도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흡한 점도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 지향 서울시는 도시계획조례에서 지속가능성을 도시계획 및 관리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환경기본조례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성장, 사회발전, 환경보호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서울시에서는 제도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일반시민의 이에 대한 이해는 아직 낮은 편이다. 서울시는 민·관 파트너십 기구인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아래에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두고,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주요 사업과 계획에 대해 지속가능성 평가를 하고 있다.2004년에 지구단위계획 등 21건이 접수되어 이 중 5건을 평가·자문한 바 있다. 또한 서울시는 2005년에 푸른도시국을 신설하여 자연생태, 공원, 조경분야 사업을 강화함으로써 세계 일류의 녹색도시 만들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시 환경정책의 틀도 이전의 공급관리에서 수요관리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구매·임차하는 물품이나 발주하는 용역·공사에 사용하는 물품에 녹색구매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가스보일러, 레이저 프린터 등 기존 6개 품목에 토너 카트리지, 사무용지 및 노트 등 12개 품목을 더하여 확대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시책을 사회, 경제, 문화 부문과 연계시키는 데에는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있다. ●시민·기업과 서울시의 파트너십 강화 참여와 파트너십으로 서울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4000명에 이르는 서울의제 21 시민실천단이 구성돼 있다. 이 시민실천단이 지난 수년간 작은 산 살리기, 하천 살리기 사업을 해왔고, 올해부터 음식물쓰레기 시민 모니터링과 기후변화 방지사업 등을 펼칠 예정이다. 시민에게 친근한 하천을 만들기 위해 초·중·고생과 함께 소하천 가꾸기와 1사 1하천 가꾸기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와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합동점검반을 만들어 1회용품 및 과대포장 사용규제 대상업소를 점검한다. 환경정책의 수립·집행 과정에 시민단체 참여가 계속 확대되고 있지만, 파트너십 체제를 뿌리내리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서울시와 기업간에 협약을 맺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기업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음식업체는 쓰레기 발생량 10% 이상을 줄이기 위해 적당량의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고, 서울시와 자치구는 협약업소 안내판 제작·배포, 협약을 실천하는 업소에 대한 행정적·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인센티브 제도의 강화 서울시는 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인센티브를 줄 생각이다. 공동이용에 참여하는 자치구의 출연금과 서울시 지원금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주거환경개선비, 아파트 관리비,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치구의 폐기물을 줄인 정도를 평가해 인센티브 사업비에 차이를 둔다. 재활용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5억원의 재활용사업자 육성자금을 지원하고 우수한 민간수집상에게 총 1억 5000만원의 장려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로서의 인센티브 정책에 부합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지구환경보호를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선진외국 도시에 비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조만간 서울시 환경국에 지구온난화대책팀이 만들어질 예정으로 있어 기대가 크다. 환경관련 자료와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지표로 만드는 작업은 경제 분야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환경친화 주거단지 조성을 위한 환경지표로 자연지반 녹지율 30% 이상, 생태기반지표 0.6% 이상, 우수유출 증가율 0%, 건물에너지 효율등급 2등급 지향 등의 기준을 제시하는 등 서울시 환경정책이 빠르게 계량화되고 있다.2003년 구축된 서울형 서베이시스템에서 187개의 도시정책 지표를 정해 매년 성과를 측정하고 있는 것도 큰 진전이다. ●서울의 환경정책방향 서울시는 환경과 교통, 에너지, 도시계획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그 연계성을 더욱 높여 나가야 한다. 특히, 서울시에 에너지 전담부서를 두어 에너지 계획을 지구적 시각에서 수립하고 신재생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 환경친화적 기술·경영 혁신이 중소기업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공급망 환경관리(SCEM:Supply Chain Environmental Management)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서울시와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 ●시민과 함께하는 환경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환경개선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시민과 시의 약속을 담아 1997년 발표하고 2000년 개정한,21세기 녹색서울 만들기 행동계획인 ‘서울의제 21’이 이번에 다시 수정되어 ‘서울행동 21’로 거듭난다. 이 ‘서울행동 21’에 많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여성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각종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있는 것처럼, 개발사업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성 영향평가도 필요하다. 나아가 환경문제와 여성 건강의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도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절약 등 시민 참여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각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사용량이 아니라 사용료가 직접 표시되는 전기계량기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일본 후쿠오카현 미즈마군 오키정에서는 돈이 표시되는 전기 계량기를 설치,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한 사례가 있다. ●기업과의 관계 다시 생각해야 서울시는 상공회의소나 기업 환경연구소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국제환경에 관한 최신 정보를 입수하는 한편, 공동으로 협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기업의 역량과 역할 변화에 맞추어 기업과 시민단체, 기업과 서울시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글로벌 패션과 서울 스타일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전략지역 서울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환경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패션을 서울의 문화와 전통이라는 스타일과 엮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필요하다. 패션이 남을 따라 하는 것이라면, 스타일은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환경 복원이라는 글로벌 패션을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라는 서울의 스타일과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전략이 성공한 사례다. ●글로벌 도시 서울은 지구가 활동무대 서울시 35개 환경관련 조례를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환경계획을 수립하거나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국제환경협약과의 상관성 분석 또는 지구환경보호 항목을 넣어 검토해야 한다. 조만간 서울시 환경국에 만들어질 지구온난화대책팀은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저감 목표를 제시하고 기후변화방지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황사, 산성비 등 국경을 넘나드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서울시는 동북아 환경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WSSD)에서 채택된, 의제 21 실천을 위한 ‘요하네스버그 이행계획’ 중 지자체 관련 조항은 도농(都農) 연계, 재난 관리, 산림생태계 보호, 생태관광, 환경교육 등 40여개에 이른다. 이러한 분야를 중심으로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관련 교육훈련기관에 담당 공무원을 파견해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글로벌 마인드를 키워나가야 한다. 각종 국제환경회의에도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유엔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회의,WTO 각료회의 등의 준비과정이나 회의결과를 서울시 차원에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서울, 환경경영에 나서야 세계 일류기업들이 글로벌 경영전략을 가지고 세계를 누비듯, 글로벌 도시인 서울도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세계와 접촉해야 한다. 서울시 자체가 글로벌 기업이라 본다면,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서울시 환경국은 이미 2000년 8월 환경관리 국제표준인 ISO 14001(환경경영체제) 인증을 받은 바 있다. 이제 서울시 전체가 ISO 14001 인증을 받고 전 부서가 환경경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시민이 체감하는 환경문제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으나, 서울시 환경정책 전반을 볼 때 글로벌 스탠더드에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서울시 전 부서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고, 인센티브 정책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 세부적인 환경 분야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격차를 분석하는 한편,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취약한 환경 분야를 잘 관리해야 한다. 세계 일류도시를 꿈꾸는 서울시가 세계 반대편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할 때 시민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환경정책의 글로벌 스탠더드란? 서울시는 전세계 18개 도시와 자매도시 또는 우호도시 관계를 맺어 세계화 시대에 앞장서고 있다. 오는 9월30일에는 청계천 복원사업 준공을 기념하는 세계도시환경포럼이 개최된다. 선진 환경도시 서울의 이미지를 널리 알릴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 국제회의에 많은 해외도시의 시장과 환경전문가들이 모여 도시환경 복원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떠오르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게 된다. 세계화된 사회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국제표준이 시민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A4, B4 등으로 불리는 복사용지 규격도 바로 국제표준이다. 그런데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하는 국제표준보다 좀더 넓은 의미로 ‘글로벌 스탠더드’란 것이 있다.‘글로벌 스탠더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을 뜻한다. 도시 환경정책의 글로벌 스탠더드란 세계 여러 도시들이 추구하는 환경정책의 보편적 가치를 말한다. 환경부문의 세계적 보편가치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아야 서울을 세계 일류의 쾌적하고 편안한 녹색도시로 만들 수 있다. 환경정책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경제 발전·환경 보전·사회 형평이 조화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둘째, 대기·수질 등 환경매체 중심에서 벗어나 사회·경제 부문을 포함한 다양한 이슈간 통합을 중시한다. 셋째, 공급관리에서 수요관리로, 다시 수요·공급 통합관리로 정책기조가 바뀐다. 넷째, 정부·전문가 주도가 아니라 시민·기업·행정간 파트너십과 네트워크를 강조한다. 다섯째, 기업이 환경보전 활동을 주도하면서 역할을 강화한다. 여섯째,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이 아래로 지방정부, 위로 국제기구로 분권화된다. 일곱째, 규제가 아니라 경제적 인센티브가 환경정책의 중심이 된다. 여덟째, 반공해 대책에서 벗어나 자연보호·인간생활·지구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아홉째, 지표나 지수를 이용해 환경부문을 평가하고 모니터링한다는 것 등이다. 이창우 서울시정개발 연구원 연구위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지난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길에 오른 구본무(60) LG 회장을 수행한 사람은 차장급 직원 한명뿐이었다. 계열사 사장들과 같이 가는 출장이 아니면 수행은 늘 직원 한명이 담당한다. 공항으로 임원들이 배웅이나 마중을 나오는 것도 금지한다. 구 회장은 지난 12일 LG 계열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국내사업장 ‘혁신투어’를 나서면서 자신의 차량인 ‘벤츠S600’을 놔 두고 대형 관광버스 2대를 빌렸다. 사업장간 이동중에도 사장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난 2003년에도 구 회장은 버스로 2박3일간 전국의 사업장을 누볐다. 이처럼 ‘격식’을 따지기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구 회장을 두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사람좋아 보이는 눈웃음 등 구 회장의 외모도 이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몸에 밴 검소한 생활 구 회장의 소탈한 모습은 아버지 구자경(80) 명예회장이나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초기인 40년대 후반 부산 서대신동 시절 활동하기 편하다며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공장내에서 늘 입고다녀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 묻은 옷이었다. 구 회장은 또 비싼 담배와 싼 담배를 같이 갖고 다니면서 손님에게는 좋은 담배를 권하고 자신은 값싼 담배를 피웠다.“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하는 법”이라는 지론이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고 허준구 회장도 당시 판매와 구매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거래처를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찰떡궁합’인 셈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사업장이나 계열사 사무실을 즐겨 찾았는데 어떤 때는 사전통보없이 불쑥 고객서비스센터 등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럭키증권(현 우리투자증권) 객장을 방문했을 때는 고객들이 좁은 객장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반해 임원실이 한 부서보다 큰 것을 보고 “무슨 임원방이 내 방보다 커요?”라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이같은 소탈한 이미지 때문인지 LG의 회장들은 삼성이나 현대에 비해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 순위에서도 구본무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물론 현대차 정몽구 회장보다 순위가 낮았다. 재계에서 LG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대차그룹보다 낮지 않은데도 그룹총수의 영향력은 현대차가 높게 나온 것이다. LG관계자는 구 회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는 허씨와의 동거기간이었고 2년전까지만 해도 삼촌뻘 되는 집안어른들이 계열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직격탄을 맞았고 99년에는 반도체 빅딜로 주력사업을 빼앗기는 고초를 겪었다. 사실 구 회장의 총수로서의 경영능력은 올해부터 검증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LG의 상징, 인화(人和) 구인회 창업회장은 포목상, 청과·어물전, 운수업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47년 럭키크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인생을 걸었다.6형제의 장남(4명의 여자형제도 있었으나 일찍 사망함)이자 6남4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초기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영도 대부분 가족이나 사돈(허씨)들이 도맡아 했다.47년 락희화학 설립당시 생산담당이었던 김준환씨를 제외하면 구 회장, 부사장 고 구정회(둘째 동생)씨, 영업담당 허준구(첫째 동생 철회씨 사위)씨 등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었다. 이후에도 아래로 다섯 동생과 여섯 아들, 조카, 허씨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했는데 LG의 ‘인화정신’은 이같은 독특한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친인척들을 잘 다독여 가며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경영이념으로 발전시킨 것이 인화다. 창업회장부터 내려온 인화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과 함께 했던 방송사업. 구인회 회장은 60년대 초반 사돈인 고 이병철 삼성회장으로부터 방송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50대 50 합작으로 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TV’를 설립했다. 하지만 방송사 경영이 시원치 않은 와중에 두 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간 알력이 심해졌고 결국 TV는 LG가 라디오는 삼성이 맡아서 하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 이후에도 TV와 라디오 사업의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구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 회장을 만나 TV사업까지 삼성에 넘기기로 결정한다.LG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구 회장은 사돈간의 ‘불화’가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가 사돈과의 정리를 생각해 포기했다. 당시 기획조정실에서는 21세기 물류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택배사업을 유망한 신규 사업으로 선정, 일본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돈인 한진그룹에서 택배(한진택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자경 회장이 사업중단을 지시했다.LG와 한진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의 2녀 명진(41)씨가 한진그룹 고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하면서 사돈으로 맺어졌다. ●창업주의 사람들 구인회 창업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우다 열네살때인 1921년에야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다.24년에는 서울로 상경,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19세때인 26년 처가에서 보내주던 학비가 끊기고 본인의 뜻도 있어 낙향, 사업의 꿈을 키운다. 구 회장은 사업을 키워가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고 동생들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뒤 형의 사업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한때 구씨, 허씨 일가가 너무 많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구씨, 허씨들 가운데는 경영능력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창업회장의 동생들은 초창기 외국원서를 번역해 기계 작동법을 알아내고 수출, 기술도입 등 형이 할 수 없는 해외업무를 도맡아 했다. 첫째 동생 고 구철회씨는 형과 함께 첫 사업인 포목상 ‘구인회상점’을 세웠고 둘째 고 구정회씨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청 토목과에 잠시 근무하다 형의 사업을 도왔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은 일본 후쿠오카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쳤다. 그는 경영보다는 정치권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4대 민의원과 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치고 51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고려대 상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잠시 일하다 63년 금성사 상무로 입사했다. ‘골프멤버’였던 사돈인 이보형 제일은행장·홍재선 전경련 회장·경방 김용완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등도 구인회 회장과 교우가 깊었다. ●제2의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LG명예회장은 삼촌인 구평회 명예회장과 진주고보에 같이 입학한 뒤 진주사범을 마치고 고향인 지수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50년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는데 제자들 중에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인인 한인옥씨 등이 있다. 구 명예회장은 한씨에 대해 “얼굴도 예쁜데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신 전 부의장은 모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구 명예회장에게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구 명예회장은 50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지만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그는 현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69년 12월31일 구인회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직후인 1970년 1월6일 열린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본인의 경영 퇴진과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의 회장 추대를 제안했고 이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통과됐다. 구 회장 취임 이후 1년간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준 사람은 삼촌인 고 구정회 사장이었다. 조카를 ‘보필’하는 삼촌은 LG가의 저력을 잘 말해준다. 구자경 신임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인화단결과 상호협조를 통해 그룹의 부드러운 기업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쓰고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있는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11개 계열사를 갖고 시작한 구자경 회장은 95년 2월 이임할 때까지 LG를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취임 첫 해인 70년 520억원에 불과하던 그룹매출은 94년 30조원을 넘어섰고 수출은 3100만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74배나 늘어났다. ●늘 꿈이었던 농사일에 매진 구 명예회장은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면서 “앞으로 여의도 본사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할 것이다. 모든 경영은 신임 회장에게 맡긴다.”고 약속했다. 구태회·평회·두회씨 등 창업주 형제들과 허준구·허신구 회장도 고문으로 물러났다. 충남 천안의 ‘천안연암대학’으로 내려간 구 명예회장은 버섯재배 등에 심혈을 기울이며 10년전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중에는 천안에 머물다 주말에는 서울 성북동 집으로 올라오는데 매주 월요일에만 트윈타워로 출근한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 집무실인 30층 대신 32층으로 직행,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문화재단 업무만 보고 오후에는 천안으로 내려간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구 회장 얼굴을 보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분재, 장미재배를 거쳐 버섯재배로 이어진 구 명예회장의 왕성한 취미활동은 요즘 된장, 생면, 만두 등 유기농 먹을거리로 확대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선친이 두산, 경방그룹 회장과 함께 1956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발족한 ‘단오회’와 진주중 15회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있으며 능성구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단오회에는 김각중 경방 회장,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선친을 치료했던 이동렬 박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진주중 동창인 고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도 생전에 절친한 사이였다. 고 정주영 회장도 전경련 회장단 활동 등을 통해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20년 경영수업 받은 ‘구병장’ 구본무 회장은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재벌 총수 가운데 현역 출신은 쉽게 보기 어렵다. 보병으로 만기 제대후에는 미국 애슐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인 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사업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심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구 회장의 ‘핵심참모’인 강유식(57) ㈜LG 부회장이다. 강 부회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2년 럭키에 입사했다.97년 회장실(구조조정본부)로 소속을 옮겼고 99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그룹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했다. 구 회장은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고 83∼84년에는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입사 10년만인 85년에야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95년 회장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를 약속했던 구 회장은 인터넷, 홈쇼핑, 이동통신, 통신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사세를 넓혀갔고 필립스와 합작으로 LCD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빅딜’과 ‘LG카드 사태’로 반도체, 금융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1등LG를 이끄는 사람들 지금까지 LG그룹을 상징해 온 ‘인화’는 구본무 회장 대에 이르러 사실상 ‘일등주의’로 바뀌었다.LG는 그동안 ‘인화정신’이 결코 ‘온정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해 왔지만 삼성그룹에 비해 LG그룹의 분위기가 다소 느슨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요즘 LG가 거의 매일 쏟아내는 ‘강한 승부욕’,‘독종정신’,‘다이내믹’ 등은 LG가 온건하고 점잖은 반면 보수적이고 느린 조직에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구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를 김쌍수(60)부회장에게 맡긴 것도 생활가전사업을 1등으로 만든 그의 ‘뚝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부진을 면치 못하던 휴대전화 사업을 ‘비전문가’인 박문화(55) 사장에게 맡겨 새로운 도약을 주문했다. 오디오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 사장은 LG의 ‘광스토리지’ 사업을 7년 연속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LG에서 독립한 다른 친척이나 형제와 달리 주력사인 LG필립스LCD 부회장을 맡고 있는 둘째동생 구본준(54) 부회장 역시 1등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경복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구 부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미국 AT&T를 거쳐 86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빼앗기다시피 넘겨주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뒤 99년부터 LG필립스LCD 대표를 맡아 세계적인 LCD업체로 키워왔다. ●숨어있던 승부사기질 발휘되나 소탈하고 인자해 보이는 구 회장의 이면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과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이다. 구 회장의 집념은 그가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류학’에 조예가 깊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 중학교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 집에 데려와 치료해 준 인연으로 새에 관심을 갖게 된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여의도 LG트윈빌딩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구 회장의 각별한 보살핌덕에 무사히 새끼를 낳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동생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도 최근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 100년’을 발간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데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는데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구 회장은 연습장에서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무작정 골프장에 나타나는 초보자를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더 싫어하는 부류는 ‘트리플보기(이븐파보다 3타를 더 치는 것)’를 하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이다. 다시는 트리플보기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들을 평가할 때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구 회장은 특별히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연습에 매달려 한때 핸디캡 5∼6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핸디 8∼9 정도를 친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구 명예회장 시절 선포한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에 ‘1등LG’를 더한 ‘LG Way’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천명했다.10여년에 걸친 계열분리를 마무리지은 구 회장은 ▲고객이 신뢰하는 LG▲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인재들이 선망하는 LG▲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LG를 목표로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의 집념과 승부사기질이 앞으로 어떻게 발휘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동국제강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할 정도로 장세주 회장과는 친분이 깊은 편이다. 장 회장의 숙부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 인영(37)씨가 구 회장의 당숙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와 결혼해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만화가 허영만씨와도 교류가 있는데 허씨는 인기작 ‘식객’에서 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맛있는 삼계탕을 사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출한 네식구 구 회장은 72년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인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서구적인 외모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시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보수적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맞고보니 맏며느리는 개방적이고 아래 며느리들이 보수적이었다. 뒤바뀐 감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잘 맞는 편”이라며 만족하는 분위기다. 구 회장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내외’가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주말에 곤지암에서 골프를 치다 부인이 일행들과 골프를 치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는 일화도 있다.LG 소유인 곤지암은 주말에 주로 계열사 임원들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애용하는데 ‘회장 부인’이 나오면 임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다. 김씨가 다른 그룹 회장 부인과 달리 미술관을 맡지 않은 것이나 여의도 트윈타워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LG가의 엄격한 ‘단속’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양자로 들인 구광모(27)씨와 연경(27)·연수(9) 두딸을 두고 있다. 광모씨는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으로 국내의 한 IT솔루션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올해 병역을 마치면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공대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양자로 입적된 뒤 ㈜LG와 LG상사 지분을 대폭 늘려 ‘경영승계’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LG측은 “광모씨의 양자입적은 ‘제사 지낼 장손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4세 경영’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경(27)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26)씨와 함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붓감’이다. ukelvin@seoul.co.kr ■3공화국서 “소총 만들어보라” 권유 구인회 “유망해도 무기는 싫다” 거절 LG화학은 한때 자회사를 통해 ‘비데’사업을 하다 그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타일, 욕조 등 욕실 인테리어사업에 비데를 함께 취급하면 고객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했지만 구본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첨단기술로 해외시장을 노리는 제품도 아닌데 돈이 된다고 해서 ‘품위’에 맞지 않는 제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LG에서 계열분리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도 LG카드의 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채권단은 또 한번 LG그룹의 지원을 요청했다.LG측은 “이미 1조원이 넘게 지원을 한데다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를 무슨 근거로 지원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 회장의 ‘결단’으로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구 회장은 LG카드 기업어음(CP)을 갖고 있던 친척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가며 출자를 부탁했다고 한다. 삼성과 공동으로 시작했던 방송사업을 넘겨준 것이나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 직전에 포기한 것도 ‘사돈간의 불화’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LG가 이처럼 ‘세간의 평판’을 신경쓰는 것은 엄격한 유교가문의 장손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구인회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산업은 물론 이른바 ‘먹고 마시는’일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 투자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했다. 나중에야 필요에 의해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설립했지만 한때는 호텔사업도 LG의 ‘금지리스트’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3공화국 당시 정부로부터 “소총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아무리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을 정도다. 하지만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같은 ‘체면 경영(정도경영)’은 자칫 수익성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공격적인 확장에도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관계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일등할 생각은 없다.”면서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갖추면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고객들이 인정해준다는 것이 구 회장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ukelvin@seoul.co.kr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돼 설립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새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를 놓고 재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매각대금이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형 매물의 유력한 새 주인으로 전 주인인 LG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LG는 하이닉스 인수설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검토할 일도 없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LG는 구인회 창업회장 생전인 69년 미국 NSC의 기술제공으로 반도체 회사인 금성전자를 설립했다. 초대 사장은 구자두 현 LG벤처투자 회장이었다. 금성전자는 1차 오일쇼크 등으로 73년 금성사에 흡수합병되면서 주춤했지만 74년 삼성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 등에 ‘자극’받아 75년 반도체팀을 만들고 미국 AMI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79년에는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 금성반도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회장은 구자경 현 명예회장, 사장은 이헌조 현 LG그룹 고문이었다. 금성반도체는 이후 85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1메가롬(ROM)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90년 1메가 D램,91년 4메가 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LG는 98년 정부의 ‘빅딜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양보하게 된다.99년 1월6일 청와대를 방문한 구본무 회장은 전자사업이 주력인 LG에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이미 현대측과 ‘얘기’가 끝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귀에 구 회장의 ‘절규’가 들릴 리 만무했다. 이날 밤 이헌조, 변규칠, 성재갑 등 LG의 원로들이 마련한 위로자리에서 구 회장은 모처럼 통음을 했다. 일부에서는 구 회장이 ‘통곡’을 했다고 하지만 ‘통한의 눈물’을 보인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 한남동 구 회장의 집앞에 진을 친 기자들은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구 회장을 붙들고 ‘소감’을 물었고 구 회장은 “다 버렸습니다.”는 말로 3대를 내려오며 30년간 이어진 반도체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씨줄날줄] 자이니치/이용원 논설위원

    ‘자이니치(在日)’는 일본 땅에 사는 외국인, 곧 재일 외국인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재일 한국·조선인을 한정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그만큼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한 재일동포 김태영 후쿠오카교육대 교수의 책 ‘저항과 극복의 갈림길에서’(지식산업사 간)를 보면 자이니치 사회도 최근 몇년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일 한국·조선인은 1978년 말 65만 9000여명이었으나 2003년 말 현재 61만 3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그 구성비를 들여다 보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1978년도 인원은, 일제강점기와 광복-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과 그 후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견줘 2003년 말 인원에는 최근에야 일본에 장기거주하게 된 ‘뉴 커머(new comer)’가 14만명이나 포함돼 있다. 결국 역사의 산물인 이민 1세대와 그 후손은 이미 47만명쯤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1970년대까지만 해도 귀화자 수는 연간 3000∼4000명, 많아야 5000명대 수준이었는데 1995년에 이르러 1만명을 넘어섰고 2003년에는 1만 177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조선인끼리 결혼하는 비율도 아주 낮아져 지금은 열명에 아홉명꼴로 일본인과 혼인한다. 따라서 일본 귀화는 더욱 가속도를 탈 것이다. 일본에 사는 동포에게 우리 국적을 ‘사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힘들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국적을 유지하건, 일본으로 귀화하건 뿌리가 한국임을 자각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전세계에 퍼져 사는 우리 동포를 하나로 아우르는 한민족공동체를 결성하는 일이요, 단기적으로는 각 동포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으로 풀어주는 일이다. 일본 동포사회에도 지방선거 참정권을 비롯해 현안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다음달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이니치 문제 역시 주요 이슈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승객들 ‘공포의 2시간’

    여객선이 운항 중 침수돼 승객 등 170여명이 2시간 넘게 불안에 떨다 되돌아오는 사고가 일어났다. 29일 오후 4시40분쯤 부산 조도 동남쪽 10마일 해상에서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미래고속 소속 쾌속선 코비5호(267t·선장 박근웅)가 정체불명의 물체에 부딪혔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배는 오른쪽으로 30도 기울어 기관실과 객실 일부가 침수됐다. 사고가 나자 부산해경 경비정 10척, 해군 3함대사령부 고속정, 경비정 4척, 해경헬기 2대 등이 투입돼 2시간여만에 승객들을 구조했다. 승객 이은희(27·여·부산 사하구 감천동)씨는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멈췄고 점점 기울어져 ‘이제 죽는구나.’ 여겼다.”면서 “또 사고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5분 뒤에야 나와 사람들이 한동안 공포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김화영(26·여·부산 영도구 동삼동)씨도 “배가 부딪히자 사람들이 튕겨 나가고 화물까지 마구 쏟아지져 아수라장이 됐다.”고 말했다. 사고당시 선박은 시속 80㎞로 항해중이었으며 선원 7명과 승객 163명 등 170명이 타고 있었다. 승객들은 해경 경비정을 타고 이날 오후 7시쯤 부산으로 돌아왔으며 사고선박은 부산항으로 예인됐다. 해경은 선장 박씨의 말에 따라 고래, 또는 나무같은 대형부유물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야스쿠니 참배 위헌아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인과 일본인 1000여명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위헌이라며 일본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과 참배금지 등을 요청한 소송이 26일 도쿄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로써 모두 6곳의 일본 지방법원에서 벌어졌던 야스쿠니 관련 소송은 모두 기각으로 막을 내렸다. 다만 후쿠오카지방법원만이 지난해 4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 판단했었다. 한국의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한ㆍ일 시민단체로 구성된 원고 1000여명은 소송에서 고이즈미 총리 등의 신사참배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참배행위가 정교 분리를 명시한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며 금지시킬 것을 주장하며 1인당 3만엔의 위자료도 요구했다. 반면 일본 정부와 총리측은 “참배는 공무가 아닌 만큼 정교 분리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맞서왔다. 도지사측도 “전몰자의 위령, 추도가 목적으로 종교적 활동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총재가 될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8월13일 현직 총리로는 5년 만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참배 당시 공(公)ㆍ사(私)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관용차를 타고 비서관을 대동했으며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라고 방문록에 적었다. 이틀 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도 전년에 이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위법 여부를 판단한 것은 후쿠오카지법뿐이었지만 후쿠오카와 지바, 오사카지법은 1심에서 참배의 성격을 ‘공적 참배’로 판단했다. 오사카지법은 2심에서 ‘사적 참배’로 판단을 뒤집었다. taein@seoul.co.kr
  • [피플인포커스] 고이즈미 최측근… 대북밀사 맡기도

    |도쿄 이춘규특파원|“야마사키 다쿠를 주목하라.” 24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당의 텃밭 후쿠오카 2구에서 당선된 야마사키 다쿠(68) 자민당 의원에게 일본 국내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마사키는 나의 방패”라고 할 정도로 총리의 맹우이자 정치 보좌관이다.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여성 스캔들로 낙선했다가 와신상담,1년5개월여 만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고이즈미 총리와 깊은 대화가 가능한 몇 안되는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마사키 당선자는 지난해 4월 총리의 밀사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고이즈미 총리의 재방북 길을 닦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대치상태에 놓인 북·일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일미군 재배치 문제와 교과서 왜곡 및 영토분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개선 등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고이즈미 총리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우정 민영화’ 사업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야마사키 당선자가 당분간 우정사업 및 외교분야에서 당정의 물밑 통로 역할에 주력하다 오는 9월 당개편때 중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야마사키 당선자의 정치적 위상이 과대평가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내의 견제도 크고, 지나친 우파 성향이 한계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taein@seoul.co.kr
  • 日보선 자민당 석권

    |도쿄 이춘규특파원|24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 결과 자민당이 미야기2구와 후쿠오카2구를 모두 석권했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에 더욱 힘이 실리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도 가속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후쿠오카2구의 야마사키 다쿠가 당선된 것은 향후 북한과 일본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맹우인 야마사키는 2002년과 지난해 두 차례의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막후에서 일구어낸 인물이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담당 보좌관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큰 그가 정치일선에 복귀,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 가짜논란 등으로 꽉 막힌 북·일 관계에 숨통 역할을 해 줄지가 큰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야마사키 당선시 “야마사키가 나서 3차 북·일 정상회담을 중재, 북·일 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돈다. 야마사키는 올해 68세로 이번 당선으로 11선 의원이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사업민영화’ 등 국내 정책 추진에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주일미군 재편 뿐 아니라 북한은 물론 중국과 한국 등과의 외교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여유를 얻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거세질 것이란 외부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지난해 참의원선거에서 약진,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던 민주당과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일대 시련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2개 선거구는 2003년 중의원선거 당시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됐던 곳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의석 2곳을 모두 잃은 형국이다. 따라서 오카다 대표는 책임론에 휘말려들고, 당 장악력도 급격히 약해질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월드이슈-지진공포 확산] 인도양 1~5년내 또 ‘쓰나미’ 가능성

    [월드이슈-지진공포 확산] 인도양 1~5년내 또 ‘쓰나미’ 가능성

    불과 몇 분 사이에 교량과 건물 대부분을 파괴하는 리히터 규모 8.0 이상의 강진과 그로부터 수시간 후 발생하는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해 소중한 인명과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지진해일로 30만명 이상이 희생된 지 불과 석 달 만인 지난 28일 이에 필적할 규모의 지진이 발생, 대재앙을 예고하는 시계 초침이 더욱 빨리 움직이는 느낌이다. ●빨라지는 재앙 시계의 초침 지난 28일과 같은 규모의 지진은 20세기 여섯 차례 발생에 그쳤다. 그 중 네 차례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알류샨 열도를 거쳐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지각의 경계지역에서 일어났다. 인구 밀집지역이 아니어서 인명 피해는 적었다. 지진이 잦기로 유명한 일본 열도와 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에서도 이처럼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번 세기 들어 벌써 두 차례, 그것도 16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3개월 간격으로 규모 8.7 이상의 강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일대 지질학자 제프리 박은 “누구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지난해 말 지진의 여진이 이렇게 강력한 규모로 올지 몰랐다.”고 경악했다. 이 일대에서 지난 1861년 강진때 발생한 압력이 지난해 말 분출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140년을 기다려온 힘의 압축이 있은 뒤 3개월 만에 또 다른 힘이 이를 메우기 위해 분출됐다는 설명이다. 1971년 캘리포니아 지진이 94년 같은 주의 노스리지 지진으로 이어지는 데 23년이 걸렸다.1990년 6월 이란 지진은 2003년 12월 2만 6000여명이 희생된 밤시(市) 참사를 불러왔다. 인도의 1993년 9월 지진은 1만 3000명이 숨진 2001년 1월 지진으로 이어졌다. 이번 인도양 지진은 6분30초∼8분30초 동안 지속돼 일반적으로 지진이 3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통념을 무너뜨렸다는 것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분 넘지않던 지진 8분대로 길어져 이번 지진을 2주 전에 예측해 화제를 모았던 영국 지질학자 존 매클로스키는 어떻게 규모 7.5대 지진의 도래를 경고할 수 있었을까. 그는 1998년 터키 지진 이후 아나톨리아 단층에 얹혀진 과잉압력을 측정,1년6개월 후 발생한 규모 7.4의 강진을 예측한 사례를 따랐다고 밝혔다. 매클로스키는 지난번 쓰나미때 좁게 돌출된 버마판이 인도·호주·순다판에 밀려 파열됐다가 이를 원상회복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며 그 연장선에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또 과거 1500년 동안 일본 동남부에서 일어난 대지진 가운데 5개는 5년 안에 여진이 일어났고 2개는 1년도 안돼 유사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전례를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1∼5년 안에 대형 쓰나미가 일어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경고했다. 어느 지역보다 안다만∼수마트라 일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수마트라 연안의 침강이 오랜 기간 지속됐고 비교적 취약한 두 개의 오세아니아 활성 단층이 위아래에서 압박해 왔다는 것이 이런 분석에 힘을 실었다. 인도양 일대 지진활동이 1990년대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압축된 힘이 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측자료 축적·경보제 두마리토끼 잡아야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대재앙이 언제 어느 지역에 닥칠 것인지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통신·전기·가스 등이 밀집된 도시나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폐기물 처분장 등이 들어선 해안 지역에 재앙이 덮칠 경우 그 피해는 끔찍한 수준이 될 것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 데이비드 오펜하이머는 “이번 지진에 해일이 동반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보다 심해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단층의 운동 방향이 동서가 아니라 남쪽으로 진행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과 같은 지진해일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각판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지금까지 안전지대로 분류돼온 한반도도 지난달 20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규모 6.6의 지진이 엄습했을 때 부산 경남지방까지 심하게 흔들려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진 안전지대였던 한국조차 외국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자료를 축적하면서 동시에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경보 시스템과 구호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문답으로 알아본 지진해일 미국의 지질조사국(USGS)은 웹사이트에서 지진과 지진해일 즉 쓰나미에 대한 궁금증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요약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지진 뒤에는 여진이 따르는가. -여진의 시기와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 여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진의 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진다. 지난해 말 리히터 규모 9.3의 인도네시아 지진 이후 이 지역에선 규모 6이상의 여진이 13차례나 관측됐다. 쓰나미를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보다 지진의 강도다. 지층이 옆으로 미끄러지는 ‘수평단층’ 지진보다 위아래로 어긋나는 ‘수직단층’ 지진이 해일을 일으킨다. 또한 깊은 바다보다 얕은 바다에서의 지진을 쓰나미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규모 6.5 이하는 지진해일을 일으키지 않는다. 규모 6.5∼7.5는 지진해일을 유발하지만 파괴적이진 않다. 규모 7.6∼7.8은 진앙지 근처에서만 위험한 지진해일을 일으킨다.7.9 이상의 지진은 광범위한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 대형 지진을 예측할 조짐은. -앞서 지진이 잦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인도네시아 주변 인도양에선 규모 5.5 이상의 지진이 40차례나 발생했다.2002년 이후에는 20차례가 넘는다.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 크기는. -길이는 최대 1200∼1300㎞에 이르고 진앙지에 직각을 이루는 지점의 너비는 100㎞ 이상 돼야 한다. 어긋난 단층의 규모는 20m 정도이고 지진으로 인해 오르내린 해저 표면의 높낮이는 10m에 이른다. 지난해 말 수마트라섬 지진의 강도는.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2만 3000개에 버금간다. 지진이 지속되는 기간은. -단층간 괴리 현상과 이를 느끼는 기간은 보통 3∼4분간이다. 지구의 자전에 미치는 영향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고작해야 낮의 길이가 100만분의 2초 정도 짧아졌다고 한다. 지진해일 경고 시스템은. -하와이에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가 있으나 인도양에는 없다. 이 지역에서의 지진 사례는. -1900년 이래 규모가 가장 컸던 지진은 2000년 수마트라섬 남부에서 관측된 규모 7.9다.1797년에 규모 8.4,1833년에 규모 8.7의 지진이 일어났다. 약 230년마다 한 쌍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는 통계학적 정설이 있다. 지진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는가. -연관성은 논란거리다. 다만 지진 이후 용암이 아닌 진흙을 내뿜는 이화산(泥火山)이 폭발한 경우는 많다. 이번 지진에서도 일부 목격됐다. 주로 유전지대의 화산에서 나타난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경보시스템 어떻게 돼가나 지진해일(쓰나미)의 피해가 잇따르면서 경보 시스템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국제적 시스템 구축은 빨라야 내년 중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쓰나미 경보 시스템이 잘 갖춰진 태평양 지역과 달리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경보 시스템이 없는 인도양 국가들은 개별 국가 차원의 경보 시스템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지진 정보를 관련 국가들에 제공한 것도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태평양 쓰나미경보센터(PTWC)였다. 일본, 하와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알래스카, 남미 연안 등에 이르는 태평양 지역은 1949년에 설립된 이 센터로부터 쓰나미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유엔은 지역 차원의 경보 시스템이 없는 인도양에 2006년 중반까지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국제적인 협력을 조율하며 사업을 진척시키고 있다. 지난 1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등 19개국과 유엔 등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자카르타에서 열린 ‘긴급 구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른 것이다.AP통신은 일부 경보 장비들이 설치됐다고 전했다. 인도양의 쓰나미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영국 정부 자문기관인 ‘자연재해 실무그룹 위원회’는 1400억원에서 2800억원가량이 소요되는 국제적인 재해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권고했다고 최근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같은 권고안은 오는 7월 열리는 G8 정상회담에서 의장국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제안할 예정이다. ●印尼, 지진계25개·GPS10개 설치 쓰나미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인도양 국가들은 개별 국가 차원의 경보 시스템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가장 큰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는 610억원가량을 투입해 오는 10월부터 쓰나미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2008년 완공 목표지만 우선적으로 25개의 지진계와 10개의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설치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독일 과학기술자들을 참여시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는 312억원을 들여 2007년 9월 가동을 목표로 경보 시스템을 설치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는 이번에 설치하는 경보 시스템이 태평양 쓰나미 경보센터의 시스템보다 성능이 뛰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태국, 새경보시스템 주내 가동 태국은 경보 시스템 도입 준비를 마친 상태다. 탁신 친나왓 총리는 지난 29일 “주요 언론사와 통신망에 연결된 쓰나미 경보 시스템이 1주일 내에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日 5.1도 지진… 부산·경남도 진동

    22일 오후 3시 55분쯤 일본 후쿠오카 북서쪽 45㎞ 해상에서 규모 5.1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2∼3도의 진동이 감지됐다. 기상청은 “지난 20일 이 해역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난 뒤 22일 오후 4시까지 이틀동안 111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면서 “이들 여진으로 우리나라에 지진해일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앞서 기상청은 해저지진이 일어나 지진해일 특보를 발령하기까지 15분 걸리는 것을 올 하반기부터 10분으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진해일 원스톱 통보체계 구축안’을 발표했다. 신경섭 기상청장은 이날 “2006년까지 해저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 해저지진계 2개를 동해에 설치하겠다.”면서 “경보체계가 일본 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직 무리지만, 자체 하드웨어 구축 등을 통해 지진·지진해일 통보의 자동화와 신속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신 청장은 지진해일에 대비한 대부분의 설비가 동해에 집중돼 있는 것과 관련,“일본에서 지진이 나더라도 1시간 정도 시차를 두고 지진해일 피해가 발생하는 동해안에 비해 30∼40분만에 지진해일이 도달하는 남해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상청은 23일부터 홈페이지를 개편해 매일 오전·오후 5시에 현재의 일기실황과 특보상황, 대기변화 등을 3분 동안 전문 예보관이 설명하는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부산·경남 또 ‘지진공포’

    21일 오후 11시 59분 일본 후쿠오카 북서쪽 약 45㎞ 해역(북위 33.8도, 동경 130.1도)에서 규모 4.6도의 여진이 다시 발생했다. 기상청은 이 지진으로 인해 부산·경남지역에서 지진이 감지됐으나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김정한(41)씨는 “자려고 누워있는데 3∼4초 가량 침대가 가볍게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기상청은 아직도 여진?

    기상청이 지난 20일 전국을 뒤흔든 후쿠오카발 강진의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21일 오전부터 감사원의 감사 통보와 관계기관의 질책이 정신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감사원, 이례적 지진감사 통보 이날 오전 9시 기상청은 감사원 특별조사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지진대책이 적절했는지 빠르면 22일부터 방문 감사를 실시하겠다.”는 통보였다. 기상청은 “감사원 감사는 2002년 충청권 폭설 피해 이후 처음”이라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거의 없는데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오전 8시에는 과학기술부 감사관실 ‘지진해일 대응체계 현황조사팀’의 방문을 받았다. 조사팀은 전날 지진 특보 내용과 지진해일주의보의 발령 시간 등 관련 자료를 제출받았다. 오후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이 문책성 방문을 했고, 경남지역 국회의원들도 잇따라 해명자료를 요구했다. ●기상청,“늦은 해일주의보 발령 유감” 잇따른 문책과 해명 요구에 기상청은 하루종일 곤혹스러워 했다. 엄원근 관측관리관은 “해일보다는 지진피해를 우려했고 종합적으로는 해일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면서도 “이것 저것 생각하다 보니 지진발생 27분이 지나 해일주의보를 내린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20일 오전 10시 58분 일본국립방재연구소(NIED)로부터 낮 12시 10분쯤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일본 북쪽 해안에 0.5m의 지진해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의 지진관측 메일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일본은 자동으로 해일주의보를 내린 반면 한국은 22분이 지난 11시 20분에야 지진해일주의보를 발령했다. ●한·일간 대책마련 차이는 시스템의 차이 엄 관리관은 “한·일간 경보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해저에서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5분 이내에 무조건 지진해일 특보를 내리지만, 우리나라는 지진파와 일본의 정보를 분석하고 일본 방송을 모니터한 뒤 종합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이 과정에서 아예 해일주의보를 내지 않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한다.0.5m의 파고로 지진해일에 의해 발생한다고 해도 피해는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 해일주의보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판단은 바뀌었다. 기상청은 “주의보를 발령했지만 해안가 주민과 조업하고 있는 선박을 대피시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기상청은 특히 “태풍·폭설 특보와는 달리 해일특보는 뚜렷한 기준이 아직 없다.”고 사실상 지진대처에 허점이 있음을 자인했다. ●오는 6월 즉시통보 시스템으로 전환 기상청은 자구책 마련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이후 기상청은 재해알림기능 강화 등의 대책을 강구했지만, 일본과 공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예·경보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이 수백억원을 들여 구축한 ‘지진현상관측시스템(E-POS)’은 한 해 100억원씩 경비를 들여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가지진정보시스템(NEIS)’은 2002년 7억원을 들여 마련하는 등 예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기상청은 오는 6월쯤 일본식 예보 시스템을 도입, 해저지진이 발생하면 10분 안에 경보를 발표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한·일간 핫라인 개설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진해일 대책에 무한정 예산을 투입해도 되는 것인지 기상청은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기상청 일부 직원들은 기왕 질책을 받았으니 이번 기회에 감사원이 아예 지진해일 예보시스템 투자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기상청 또 망신살

    후쿠오카 지진 늑장 대응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기상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방송사에 제공,MBC가 이를 수정없이 방영해 물의를 빚고 있다.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기상청은 20일 일본으로부터 통보받은 지진 발생 현황 컴퓨터 화면에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된 지도가 나타났으나 이를 수정없이 MBC에 제공했다. 기상청이 일본에서 제공받은 화면은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소프트웨어가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상청의 늑장 대응에 분통을 터뜨렸던 네티즌들은 다시 한번 기상청 홈페이지로 몰려들어 독도문제로 민감한 시점에 벌어진 기상청의 무신경을 비판하는 글을 쏟아냈다. 뒤늦게 일본해 표기를 삭제한 자료를 제공한 기상청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日열도 지진 열외 없다”

    |도쿄 이춘규특파원|20일 발생한 후쿠오카 앞바다 지진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니가타주에쓰(新潟中越) 지진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지진경계의 공백지역’에서 발생,“일본열도에 지진안전지대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특히 후쿠오카는 한국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번 지진의 진동이 한국 거의 전역에서 감지돼 한국도 지진대비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후쿠오카, 야마구치현 등은 부산과 지척지간이다. 이번 지진은 니가타주에쓰 지진에 이어 비교적 지진활동이 적다고 여겨진 지역에서 일어났다. 후쿠오카 기상대에 따르면 1890년 관측 개시 이래 후쿠오카현 내에서 관측된 지진은 진도 4까지다. 진도 6 약(규모 7.0)은 관측 사상 최대였다. 후쿠오카 앞바다에서 규모 7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1700년 이키앞바다 지진 이후 처음. 이번 지진을 일으킨 미지의 단층은 유라시아지각판에 속해 있다. 도쿄대학 지진연구소나 국토지리원에 의하면 북서에서 남동으로 뻗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단층형태다. 도쿄대 연구소는 길이 약 15㎞, 깊이 15㎞의 단층이 최대 1.4m 어긋난 것으로 추정했다. 국토지리원은 길이 30㎞, 깊이 약 20㎞의 단층면이 약 0.6m 어긋났다고 봤다. 해저지각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했지만 지진에 수반하는 해일(쓰나미)이 관측되지 않았던 것은 상하 방향의 움직임이 작았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기상청은 “지진발생 횟수가 적은 지역이라도 장기적으로 지진이 없는 곳은 없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한편 이번 지진으로 21일 정오 현재 1명이 숨지고 4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가옥 800여채가 전파 또는 반파됐고,2800여명의 주민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中·日 지진 7이상 되면 한국 느낀다”

    ‘리히터 규모 7’ 대전 대덕연구단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강익범 책임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이나 중국에서 리히터 규모 7 이상됐을 때 한국에서 진도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1983년과 93년 일본 혼슈 아키다현 근해와 훗카이도 오쿠시리섬 북서해역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리히터 규모로 7.7과 7.8을 각각 기록한 강진이었다. 이들 지진은 1000㎞쯤 떨어진 삼척, 속초 등 강원 해안에 1시간30분 만에 ‘쓰나미’를 몰고와 피해를 입혔다.83년에는 사망 1명, 실종 2명에 건물 44동이 침수나 붕괴됐고 선박 81척이 부서졌다. 피해액이 3억 7000만원에 이르렀다.93년에도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35척의 선박이 부서지고 어망이 찢어지는 등 3억 9000만원의 피해를 봤다. 20일 한국에서 진도가 느껴진 후쿠오카 지진도 7.0이다. 대략 10년 만에 다시 이웃나라의 강진이 우리나라에서 감지된 것이다.10년의 강진 주기에 대해 강 책임연구원은 “우연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강진발생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을 비교, 중국 지진이 한국에서 감지된 것으로 기록된 때는 조선시대에만 8차례로 집계되고 있다.1548년 9월13일 발해(리히터 규모 추정치 7),1597년 10월6일 발해(7),1668년 7월25일 산둥반도(8.5),1679년 9월2일 하북(8),1846년 8월4일 동대양(7),1852년 12월16일 동대양(7),1853년 4월14일 동대양(7),1888년 6월13일 발해(7.5) 등이다. 이 때 한성(서울)과 함경도 등 조선 전국에서 진도를 느꼈다는 기록이 있고 모두 리히터 규모 7을 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집 무너지나” 공포의 휴일

    “집 무너지나” 공포의 휴일

    20일 오전 10시55분쯤 일본 후쿠오카에서 발생한 강진(强震)이 부산 경남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감지돼 시민들이 휴일 오전 한때 불안에 떨었다. 특히 진원지와 가까운 부산, 경남, 울산 지역의 경우 규모 4∼6의 강진이 발생, 아파트 등 건물이 10∼30여초간 심하게 흔들려 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이날 전국에서 수십여초 정도의 지진현상이 발생하자 기상청과 각 시·도 소방본부 등에는 문의전화가 폭주하면서 통화 중 상태가 지속됐다. ●입주민들 수십명 밖으로 뛰쳐나와 부산 연제구 연산동 지하 3층 지상 26층인 부산시청 건물이 지진으로 20여초 흔들거렸다.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공무원 김모(46)씨는 “앉아있는데 갑자기 몸이 흔들리는 강한 진동을 받았다.”며 “이렇게 큰 지진을 느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태화 현대아파트 주민 김모(48)씨도 “아파트 현관 입구에 놓여 있는 화분이 넘어져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급히 대피했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삼산동 아데라움 아파트에서는 건물 전체가 10여초 동안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입주민 수십여명이 한꺼번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광주·전남 일부 지역에서도 건물 천장에 매달린 전구와 끈달린 액자가 10여초 흔들려 주민들이 놀랐다. 서울 강동구 길동에 사는 최미경씨는 “18층 아파트에서 식사하다 식탁과 부엌에 걸어 놓은 주방기구가 심하게 흔들렸고 아직까지도 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등 해안지역에서는 항구의 물결이 심하게 출렁거려 주민들이 해일을 우려하며 공포에 떨었다. ●지진시간대 통영 재래시장 화재 지진이 발생한 시간에 경남 통영시 서호동 재래시장내 2층짜리 목조 상가건물에서 불이 나 1,2층 1000여㎡을 태워 2억 90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2시간여 만에 꺼졌다. 화재 당시 의류와 신발 등 28개 점포가 입주한 이 건물은 대부분 전소되면서 아래로 폭삭 주저앉았으나 건물 안 점포들이 휴일이어서 영업을 하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다. 길 건너편에서 식육점을 운영하는 서모(46)씨는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건물 안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점포내 물건과 LP가스통들을 밖으로 꺼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대피했다. 불이 난 건물은 1957년 목조로 준공됐으며 의류, 신발, 간이식당 등 28개의 크고 작은 점포들이 있다. 소방서 관계자는 “오래된 목조건물인데다 전기배선이 낡아 스파크 현상으로 불이 난 것 같다.”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화인분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부산 부산진구 D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김모(25·여)씨 등 4명이 갇혀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원에 의해 30여 분 만에 구조됐다. 정리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휴일 전국 지진공포…주민들 한때 대피소동

    휴일 전국 지진공포…주민들 한때 대피소동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홍희경기자| 일요일 오전 일본 후쿠오카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경기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돼 시민들이 한때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이날 지진은 지난 1978년 충남 홍성에서 일어난 규모 5.0도의 지진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된 이래 가장 범위가 넓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20일 오전 10시53분쯤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북서쪽 45㎞ 해역의 해저 9㎞ 지점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어 이날 오후 7시 52분 등 세차례에 걸쳐 같은 장소에서 진도 4.5도 규모의 여진이 있었다. 지진의 여파로 부산과 광주·서울을 비롯한 대다수 지역에서 건물과 창문 등이 흔들리거나 화재가 발생하고 일부 시민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기상청은 “지진이 부산에서 165㎞ 떨어진 대마도와 후쿠오카 사이 바다에서 발생했다.”면서 “부산에서는 4∼5도의 진동이, 서울에서는 민감한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인 2도의 진동이 감지됐다.”고 발표했다. 기상청은 오전 11시20분에 남해안과 동해안, 제주도에 지진해일주의보를 내렸으나,1시간10분 만인 낮 12시30분 해제했다. 기상청은 “이번 해저지진이 지각의 수평 움직임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에 다행히 지진해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 최북단 지진계측기가 있는 철원에도 지진파가 전달됐지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경기 북부 일부 지역과 북한에서는 진동이 감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진해일 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1996년 2월17일 이후 9년 만이다. 한편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후 5분이 지난 오전 10시58분 후쿠오카시 해안과 나가사키현 이키, 쓰시마 일대 해안에 쓰나미(지진 해일) 주의보를 발령했다가 정오쯤 해제했다. 이날 지진으로 규슈 전역의 열차 운행이 일시 중단됐으며 후쿠오카현에서 75세 할머니가 무너진 벽에 깔려 숨지고, 최소한 4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taein@seoul.co.kr
  • 여객기7대 공중배회 ‘아찔’

    11일 오전 11시쯤 부산 강서구 대저동 김해국제공항 관제시스템에 전원이 끊기면서 레이더 작동이 되지 않아 항공기 이·착륙이 40여분간 전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부산지방항공청과 관제탑 업무를 맡고 있는 공군 제5전투비행단(5전비)에서 구 레이더와 수동(논 레이더)으로 착륙을 유도해 사고없이 무사히 비행기들이 내려 않았지만 착륙을 앞둔 비행기들이 순서를 기다리느라 공항 상공에서 수십여분씩 선회, 승객들이 공포에 떨었다. 부산항공청 등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김해국제공항 관제타워와 지난 2003년 8월 설치된 레이더 간의 전원공급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레이더 가동이 멈추는 바람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가 나자 부산항공청과 공군이 예비 발전기를 이용해 구 레이더와 수동으로 항공기 관제를 정상화시켰지만, 오사카발 JAL967편 등 7대의 항공기가 10분에서 40여분 동안 공항 상공을 수차례 선회하는 등 위험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부산항공청과 공군은 긴급 보수작업을 벌여 사고발생 3시간여 만인 오후 2시20분쯤 관제기능을 정상화시켰다. 이날 사고로 이륙 예정 항공기도 무더기 결항 및 지연사고를 빚었는데 대한항공 후쿠오카행, 노스웨스트의 도쿄행, 중국동방항공의 상하이행, 베트남항공 마닐라행, 중국남방항공 선양행 등 국제선 항공기 5편의 출발이 지연됐다. 국내선도 아시아나항공 4편이 아예 결항된 것을 비롯해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10여편의 출발이 연쇄 지연됐다. 더욱이 항공기 결항과 지연에 대한 국제선과 국내선 대합실의 안내방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일부 대기승객들이 항공사에 문의 및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한편 부산항공청과 공군은 관제타워에 전원을 공급하는 배전반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사고원인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문화마당] 시인과 제국주의/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는 침략주의적 경향을 일컫는 용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폭력을 가장 우선시한다. 이 제국주의의 폭력에 시인 윤동주가 희생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1945.2.16)한 지 올해로 60년이 된다. 시인은 옥중에서 잔혹한 생체실험을 당했고, 이 사실에 대한 기록과 함께 옥중에서 쓴 시작품을 담은 노트를 남겼는데, 일제는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노트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그토록 잔혹한 일을 저지른 일본은,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침략적 성향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모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본고사 문제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중 부랑노동자 두 명과 술집 여자 한 명이 헤어지는 끝부분을 제시하고, 이들이 삼년 뒤 다시 만나는 장면을 소설로 쓰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그런데 답안을 보니, 술집여자가 성폭행을 당해 상대방을 살해해서 감옥에 갔다든가, 부랑노동자가 조직 폭력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든가 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살인, 폭력,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빠진 답안은 극히 드물었다.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는 데 아버지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폭력적이면 아이도 그렇게 되고, 아버지가 순결한 심성의 소유자이면 아이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라나는 아이가 어떤 문화적 성향을 띠는가는 아버지가 만들어가고 즐기는 문화의 색깔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 세대의 문화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학생들의 답안은 아버지가 만든 문화가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학생들의 답안처럼 폭력, 살인, 성폭행, 불륜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운 아버지의 문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구촌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본의 대중문화가 아무런 제재 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문화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본문화 중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잔인하면서도 엽기적인 폭력을 앞세운 일본의 사무라이식 문화가 우리 문화를 강력하게 침탈해 들어 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그런 제국주의적 일본 문화의 마수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할 아버지들이 앞 다투어 그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입해서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어떤 아버지는 일본이야말로 우리의 구세주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퇴폐적이고 선정적이면서 폭력적인 일본문화를 숭배하고 선전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자라나는 세대가 침략적인 제국주의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과 같은 이가 될 것인지는 순전히 오늘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어떤 문화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폭력적인 일본문화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윤동주가 남겼을지도 모르는 옥중 노트를 돌려 받는 일은 이 땅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숙명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서정시인이 제국주의적 폭력에 희생되어 구천을 떠도는 일이 없도록, 현 단계 우리 문화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뼈아픈 반성이 요청된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문학평론가
  • [2030 온라인 사장님 4인] 사이버 세상서 숨은 금맥 캔다

    [2030 온라인 사장님 4인] 사이버 세상서 숨은 금맥 캔다

    “열린 사이버 세상, 대박 아이템이 숨어 있는 틈새를 노려라.” 벤처 및 창업 붐으로 속출한 ‘젊은 사장님’들이 장기간 지속된 경기불황으로 하나 둘씩 도태되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창업으로 ‘숨은 금맥’을 캐고 있는 이들이 있다. 새털처럼 많은 인터넷 쇼핑몰 사이에서 차별화 전략으로 승기를 잡은 이들은 “젊은 트렌드를 읽어야 하는 온라인 창업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무한경쟁의 사이버 공간에서 알찬 성공을 일구고 있는 ‘2030 온라인 사장님’ 4명을 만나봤다. ■ 여행경비 벌려 시작한 日 디카 판매…월 매출 수천만원 경희대 관광학부 4학년에 다니는 신중근(27)씨는 한달에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경매전문 인터넷 사이트 ‘옥션’에서 일제 디지털 카메라를 팔고 있다. 신씨가 처음 ‘디카’판매에 나선 것은 2002년말. 일본 여행을 갔다가 디카가 국내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사와서 주변 사람에게 되팔았다. 이렇게 여행경비나 마련하자고 시작한 ‘장사’는 디카 대중화 시대와 맞물려 자리를 잡아갔다. 신씨가 내세운 차별화 전략은 희소성을 강조하는 것.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나 재고가 부족해 가격이 오른 인기제품을 주력상품으로 내놓았다. 단종직전에 가격이 급락한 제품도 수익성을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시장조사도 철저히 했다. 전공도 살릴 겸 지난해에는 6개월 가까이 후쿠오카, 오사카 등 일본 곳곳으로 다니며 먹힐 만한 물건을 찾았다. 산지에서 매입하다 보니 경쟁자들보다 1원이라도 싼 값에 물건을 내놓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디카 동호회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디카를 판매하던 신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옥션 사이트를 이용하게 됐다.10∼20대로 시작한 경매는 이제는 한 차례 100대를 훌쩍 넘긴다. 지난 23일에는 경매 성사 1500건을 돌파했다. 판매 규모가 커지면서 물건을 들여올 때 치르는 운송비, 관세사 비용, 세관창고비 등 까다로운 절차도 꼼꼼히 공부하게 됐다. 시험기간이나 학과 일정이 바쁠 때는 판매를 아예 중단할 수밖에 없어 ‘고무줄 수입’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서면 한달 매출은 4000만원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신씨는 이제까지의 성과는 “또다른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 차근차근 분수에 맞게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위치에 다다르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면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었던 시작이었지만 자신감과 신념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세상에서 하나뿐인 인테리어 소품으로 승부 인터넷 종합쇼핑몰 ‘아이세이브존’에서 블로그숍 ‘엄마와 딸(blogshop.isavezone.com/ssyssh)’을 운영하는 송순양(39)씨는 영문 번역·감수와 인테리어 소품 판매를 병행하는 ‘비전문 경영인’이다. 장사가 서툰 송씨가 블로그숍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매출액 증가보다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 엇비슷한 물건을 파는 쇼핑몰과 오프라인 상점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하나밖에 없다.’는 ‘유일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송씨는 블로그숍에 올리는 제품 사진을 모두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직접 찍는다. 물건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매번 세팅을 다르게 하는 등 세심한 주의도 기울인다. 그는 “작은 쓰레기통 하나라도 나한테밖에 없는 물건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고객들은 끌리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상품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송씨가 ‘믿는 구석’은 10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사들인 물건들이다. 1999년 귀국한 뒤에 포장도 뜯지 않았던 물건을 요즘 하나둘씩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송씨의 판매신조는 “내가 만져본 물건만 판다.”는 것. 판매상품 가운데는 송씨가 쓰던 중고품도 많다. 그는 “무조건 많이 파는 것보다 고객과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내가 써본 물건은 일단 품질이 보증되고, 가격도 저렴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엄마와 딸’은 아직 큰 매출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송씨가 발품을 팔아 부지런히 다른 블로그숍에 홍보를 한 덕에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손님과 모녀 사이처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미로 블로그숍의 이름을 정했다는 송씨는 “수익의 절반은 장애아 후원단체에 기부, 손님이 물건을 사면서도 봉사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면서 “내가 고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고객만족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전공살린 액세서리 제작 ‘미니홈피 홍보’ 적중 인터넷 액세서리 쇼핑몰 ‘스위트팩토리’(www.sweet-factory.co.kr)를 운영하는 홍여정(29)씨는 상품 기획, 디자인, 제작, 홍보를 혼자 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홍씨는 2001년 상명대 섬유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액세서리 관련 회사에 취직해 액세서리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제작에서 판매까지 전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해 2월, 직접 쇼핑몰을 오픈했다. 홍씨의 액세서리는 앤티크 스타일. 흔치 않은 디자인의 수공예 액세서리를 찾는 여성이 타깃이다. 웬만한 손재주라면 취미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비즈 액세서리는 경쟁력이 없고, 백화점에서 파는 수공예 액세서리는 너무 비싸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 틈새를 노렸다. 홍씨는 “수출용 액세서리 제작 경험을 살려 조금 더 저렴한 원료로 비슷한 질의 상품을 만들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제작과 판매를 모두 직접 관리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상품 홍보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이용한다. 처음엔 미니홈피 사진첩에 디자인한 작품을 시험삼아 올리다 반응이 좋아지자 매일 새로운 제품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미니홈피 방문객은 하루 평균 100여명. 미니홈피 방문객은 다시 쇼핑몰을 찾기 마련이다. 한달 매출은 300만∼400만원이다. 홍씨는 하루 평균 10여개의 액세서리를 만든다. 손님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조금 버겁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없다.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을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 고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애프터 서비스(AS)와 신속한 배송은 기본이고, 선물받는 느낌이 나도록 액세서리를 담는 박스까지 직접 디자인한다. 홍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는 고객관리”라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창업의 기회는 많지만, 자신있는 분야를 살려 차별화에 주력하는 것이 성공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 “불경기엔 먹을거리 장사” 대박난 간식 쇼핑몰 김지선(31)씨는 건빵, 쿠키, 건어물, 호박엿, 뻥튀기, 강정 등을 파는 온라인 간식 쇼핑몰 ‘개미몰(gemimall.com)’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가 쇼핑몰을 연 것은 2003년 8월. 충북 옥천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꼬박 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2000만원으로 열었던 대전의 속옷가게가 문을 닫은 직후였다. 하지만 속옷가게에서 가까운 곳에 과자 공장이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우연히 들른 과자 공장의 사장은 “가장 경기를 타지 않는 것이 먹는 장사이고, 간식류라면 수입도 짭짤할 것”이라면서 “온라인 쇼핑몰을 열면 맛있는 간식류를 공급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우스 사용법도, 이메일 보내는 법도 몰랐을 만큼 ‘컴맹’이었던 김씨지만 컴퓨터 공부를 통해 어렵사리 홈페이지를 개설한 뒤 서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빵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 두달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쇼핑몰 홍보는 어려웠고, 어쩌다 판 것도 과자가 부서지는 바람에 반품되기 일쑤였다. 김씨는 “먹을거리 소비자는 절대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다.”면서 “소비자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가장 빠른 배송사를 물색해 당일에 어디든 배달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추었다. 과자 공장에도 건빵에 계란을 넣어 더 좋은 맛을 내도록 주문했다. 오전 8시30분 출근해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퇴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양질의 제품과 빠른 서비스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15명의 직원이 한달에 1억 5000만∼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세 차례 이상 제품을 주문한 단골만 3000명을 넘는다. 김씨는 “또래와 같이 일하다 보면 꿈을 향해 매진하지 못하고 여가생활을 너무 따지는 것 같다.”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온라인 사업도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머리에 담아두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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