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후진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수성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남편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가짜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일몰제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95
  • 김정일 건강상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박5일의 방중 일정을 마친 30일 중국 CCTV와 북한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의 건강 상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2년이 지나면서 최근 프랑스 의료진을 불러 건강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데다가 기차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등 강행군을 했기 때문이다.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은 왼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걸을 때 다리를 조금 저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 외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만나 포옹을 하고 악수를 할 때는 왼손도 같이 움직이며 활동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회담장으로 걸어갈 때는 다리가 불편한 듯 보였고, 왼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나 후 주석과 마주 앉은 회담에서는 오른손으로는 쉬지 않고 필기를 하고, 왼손도 움직임을 보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면담에서는 후 주석에게 계속 말을 건네고 그의 말을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등 피곤함이 없는 기색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린시와 창춘 등에서 학교·공장 등을 견학하면서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담 후 베이지색 상하의에서 검은색 상하의로 바꿔 입은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색 ‘키높이’ 구두를 신은 채 오른손으로 제품을 만져보거나 물건을 가리키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왼손은 다소 부자연스러웠으나 방문지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먼저 대화를 나누고, 먼저 움직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대북 소식통은 “머리숱이 더 줄어들었고 볼살이 더 빠진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방송에 나오는 모습은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연출인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中 ‘비핵화 진전’ 온도차…회담국간 기싸움 지속될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30일 보도, 김 위원장의 방중에 따른 북·중 정상회담이 향후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고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후 주석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장성명을 발표한 이후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동향이 나타났다.”면서 “중국은 유관 당사국에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의 기치를 들고 현재의 긴장 국면을 완화하기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주장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 측 보도에 따르면 북·중 모두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측 보도는 상당한 온도차를 느끼게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6자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쌍방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국제 및 지역문제, 특히 동북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허심탄회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만 전했다. 6자회담을 둘러싼 북·중 간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면서 향후 회담 재개 등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중국의 고삐 죄기는 계속될 것이고, 회담국 간 기싸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중국 측으로부터 대규모 경제지원 등을 받기 위해 비핵화 등에 대한 의지를 다시 밝혔을 수 있지만 6자회담 재개 등 비핵화 진전을 위한 각론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조만간 이뤄질 미국의 대북 추가제재 발표 및 다음달 열리는 유엔총회, 6자회담 참가국들 간 협의 등에 따라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멀어진 강성대국 꿈…‘경제국경’ 허물까

    멀어진 강성대국 꿈…‘경제국경’ 허물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귀국 노선을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북한 남양으로 잡은 것은 북·중 간 ‘경제국경’을 허물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지린(吉林)과 창춘(長春)에 이어 두만강 유역까지 돌아봄으로써 중국의 이른바 ‘창(창춘)-지(지린)-투(두만강유역) 선도구 개발계획’의 핵심 지역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이를 통해 그나마 마지막 혈맹인 중국과의 경제국경을 허물고 협력하는 길만이 그가 약속한,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외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수도 있다. 지난번 방중에서는 압록강, 이번 방중에서는 두만강을 건너면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져 있는 수십년의 ‘경제시차’에 잠이 확 달아났을 수도 있다. 실제 김 위원장 귀국 직후 양국 언론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록’에는 그런 심정이 묻어나기도 한다. 김 위원장은 “동북지방의 거대한 발전은 큰 충격을 던져줬다.”며 “중국의 방법과 경험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후진타오 주석도 경제협력을 통해 ‘윈윈’하자고 강조했다. 후 주석은 “정부 주도, 기업 위주, 시장 중심, 상호공영의 원칙에 따라 양국 간 경제무역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며 김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국 정부는 창춘과 지린, 그리고 두만강 유역을 잇는 ‘창지투 개발계획’을 지난해 확정했다. 낙후된 동북지역을 개발한다는 동북진흥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경제성장으로 균형발전, 분배의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서부 대개발과 함께 반드시 완성해야 할 중요 정책으로 설정한 상태다. 문제는 동북지방이 북한과 러시아에 막혀 출항로가 없다는 점이다. 항구를 확보하지 못하면 동북의 물류는 수천㎞의 내륙 노선을 돌아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다. 엄청난 물류비로 개발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10년간 나진항 1호부두를 사용키로 한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협력확대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북한을 설득해 왔다. 지난 5월 김 위원장을 만난 원자바오 총리는 “개혁·개방의 성과를 전수해 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김 위원장은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이 적극적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위기에 빠진 김 위원장은 돌파구를 찾기 힘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한 기대를 접고, 현실적으로 중국에 경제와 안보를 의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중국도 다급한 상태다. 천안함 사태 이후 강화된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응하느라 중국은 경제에 올인할 여력을 잃고 있다. 북한과의 경제국경을 허물면 향후 한반도 유사시에 긴밀한 북·중 안보협력을 꾀하는 발판도 갖출 수 있게 된다. 중국이 이번 김 위원장 방중 시 적극적으로 ‘창지투’를 보여준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의 분석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 中에 동해 열어준다

    北, 中에 동해 열어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창(창춘)-지(지린)-투(두만강 유역) 선도구 개발계획’과 북한의 북동지역 개발계획을 연계하는 방안에 대략적인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후 주석을 만나 북동지역에 대한 중국의 투자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30일 베이징의 한 대북 소식통이 밝혔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창지투 개발계획과 북한의 나선특별시 개발을 연계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간 이런 합의가 구체화되면 중국이 북한의 나진항 등을 이용, 동해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제시한 동북지역 진흥계획은 매우 정확하다.”면서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중국과 교류협력을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번 방중 기간 지린성 등의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동북지역의 거대한 변화에 큰 감동을 받았다. 중국의 방법과 경험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며 중국 동북3성과의 협력 필요성을 밝혔다. 한 소식통은 “북한과 중국이 이번 방중을 협의하면서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고 전한 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구상을 확정하기 전에 해당 지역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창춘, 지린, 두만강유역을 모두 둘러봐 달라는 중국 측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이미 나진항 1호부두 10년 사용권을 획득한 상태로, 부두 규모가 작고 기간이 짧아 사용권 확대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두 정상 간 합의에 따라 김 위원장이 귀국하게 되면 양국 실무진 사이에 구체적인 협력방안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진흥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창지투 선도구 개발계획’을 지난해 확정한 중국은 계획 성공의 핵심인 동해출항권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며 난색을 보이는 등 의견차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중앙방송(CCTV)과 신화통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등 양국 언론들은 김 위원장이 지린성 투먼(圖們)을 통해 귀국한 직후인 오후 7시(현지시간) 일제히 이번 정상회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지난 27일 지린성 창춘 난후(南湖)호텔에서 정상회담 및 만찬을 가졌다. 정상회담에서 후 주석은 ▲고위급 교류 지속 ▲경제협력 확대 ▲전략협의 강화 등을 건의했고, 김 위원장은 이를 적극 지지했다. 김 위원장은 또 “중국과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숙한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 측은 후 주석 초청형식으로 진행된 김 위원장의 이번 비공식 방문에서 후계자로 거론되는 3남 김정은의 동행 여부에 대해 “명단에 없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들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면서 “대를 이어 조·중 친선을 계속 강화·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후계구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의 지속적인 지지와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을 태운 전용 특별열차는 이날 오후 6시45분 투먼을 통해 북한의 남양으로 건너가 4박5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무리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 stinger@seoul.co.kr
  • [사설] 국치 100년, 이제 한반도 주변 격변 주체 돼야

    어제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로 전락한 국치(國恥) 100년을 맞았다. 36년의 일제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은 존재를 깡그리 부정당했다. 비참한 처지였다. 이런 굴욕은 일제의 침략 야욕도 문제였지만 우리 민족 내부의 준비 부족에도 기인했다. 서구 제국주의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정복 쟁탈전을 벌이던 19세기 후반 무능한 조선의 지배층은 눈과 귀를 닫고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뒤늦게 서구 제국의 힘을 빌려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려 했지만 미국과 일본, 영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 간 뒷거래에 무참하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일제 패망 뒤엔 남북으로 분단됐다. 오늘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0년을 제외하고 민족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던 중국이 올 2분기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G2(양강 체제)를 형성했다. 중국은 한반도 안보에 열쇠를 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 자연 한·미, 북·중 대결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두 번째 정상회담은 한·미와 북·중 간 대결구도 심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 중국의 접근에 미국은 이번 주초 추가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발표하는 등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주변 격변에서 이번에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면밀한 정세분석을 통해 빈틈없는 질서 재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정세를 이끌 외교전략을 펴자. 100년 전 국치의 굴욕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교훈을 살려내야 한다. 특히 북한이라는 변수는 오늘 대한민국 외교에서는 숙명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북한과 중국의 접근을 포함한 동아시아 격변에 주체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가의 치욕, 더 이상은 안 된다.
  • 中 동북3성 진흥계획 화답? 대규모 식량원조 합의?

    中 동북3성 진흥계획 화답? 대규모 식량원조 합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예상과는 달리 길어지고 있다. 3개월 만의 방중이라는 점에서 정상회동이 끝나면 곧바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 위원장은 방중 나흘째인 29일 오히려 ‘북상’했다. ●베이다황 그룹 농장 둘러봐 전날 오후 9시15분(현지시간)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중국 고위인사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한 특별 전용열차는 곧바로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으로 달렸다. 새벽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쑹화강 타이양다오(太陽島)에 여장을 풀었고, 이날 베이다황(北大荒)그룹 산하 농장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하얼빈에서 북동쪽 200여㎞ 떨어진 베이다황은 현재 중국 최대 식량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에 베이다황에서 생산된 쌀을 실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원조에 합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전 한때 전용열차가 옌볜조선족자치주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나왔지만 오후 늦게까지 옌지(延吉)와 투먼(圖們), 훈춘(琿春) 일대는 조용했다. 오후에 다시 랴오닝성 선양(瀋陽) 일대에 군경이 대거 배치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등 취재진들은 하루종일 전용열차와 숨바꼭질을 벌였다. ●권력승계 염두 혁명유적지 순례  김 위원장의 하얼빈 방문은 이례적이다. 이미 후진타오 주석과 북·중 정상회담까지 마친 상태에서 북상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분명 예상 밖의 행보이다. 전용열차는 하얼빈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 5월 방중 때 랴오닝성을 돌아본 김 위원장은 이로써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을 모두 돌아보는 셈이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동북3성 진흥계획인 ‘창지투 개발계획’에 대한 북한의 협력을 요청해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화답으로 풀이된다.  하얼빈은 김일성 주석과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김 주석의 혁명유적지를 찾았다. 따지고 보면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한 일정을 빼면 그동안 3박4일 일정의 절반가량을 김 주석 혁명유적지 참배에 할애했다. 마치 ‘성지순례’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권력승계를 염두에 두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일체화’를 안팎에 과시함으로써 혁명의지를 강조해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초청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지난 5월의 ‘비공식 방문’과는 달리 이번에는 방중 형식조차 알려지지 않은 만큼 방중 소식 자체가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중 최고지도자 교류는 당대당 형식으로 진행하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하는 관행이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석달 만에 또다시 방중한 것이 자칫 굴욕외교로 비칠까 우려해 중국 측에 비밀엄수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지난번 방중 때와는 달리 중국 언론들이 인용보도마저 자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창춘 떠난 후에도 잠행 이어져  한편 김 위원장은 숙소에 칩거했던 27일에 이어 창춘을 떠난 28일에도 이상한 행적을 이어갔다. 오전 9시쯤 숙소를 나와 창춘 외곽 농업박람회장과 창춘영화제작소를 방문한 뒤 낮 12시55분쯤 호텔로 돌아와 떠날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30분간 관람한 농업박람회장에서는 검은 옷에 검은 우산을 받쳐 쓴 김 위원장의 모습이 목격됐다. 호텔을 떠날 때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모습이 포착돼 그가 시종 김 위원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韓·美·日 vs 北·中… 굳어지는 신 냉전

    韓·美·日 vs 北·中… 굳어지는 신 냉전

    오늘의 동북아는 천안함 사건 이전의 동북아가 아니다. 3개월 만에 극적으로 재연된 북·중 정상회담은 이 불가피한 사실을 자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 발표를 코앞에 둔 시점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메시지는 수신처를 미국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너희가 그렇게 하면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27일 북·중 정상회담은 단순히 남북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의 문제, 세계의 문제다. ●“美·日 행보는 中 견제용” 분석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중은 둘 다 몸을 사렸다. 하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달라졌다. 미국은 전폭적으로 한국 편을 들면서 대북 응징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을 주도했고 추가 대북제재 방침을 천명했다.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동해에 항공모함을 보내 군사훈련을 강행했으며, 다음달 초 서해 연합훈련을 예고했다. 미국의 진정한 의도는 지난달 2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전모를 드러냈다. 미국은 중국과 동남아 일부 국가 간 영토분쟁인 남중국해 문제에 끼어들어 사실상 반(反) 중국 진영에 가담했다. 미국이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서해에서 남중국해까지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만했다. 지난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도 ‘동북아의 시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 간 총리는 ‘한국인’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의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했었다. 간 총리의 담화는 한국과 북·중 사이에 선을 그어놓은 격이다. 최근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준 일본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확실한 내 편으로 붙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표기한 올해 방위백서의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도 이런 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 직후 ‘불량국가’인 북한을 편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시종 모호한 자세로 일관했다. 하지만 남중국해 영토분쟁과 서해훈련 문제 등을 통해 미국의 의도가 선명해지자 이쯤에서 뭔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한국, 대북관계 연착륙 과제로 한·미·일 대 북·중의 신(新)냉전 구도가 굳어진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한테 돌아온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중국이 북한을 돕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5·24조치로 남한의 지원이 끊기고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까지 가세한다면 북한 정권이 내년 봄쯤에는 두 손을 들 것이란 기대도 일견 녹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중국이 북한에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는 쪽으로 돌아선다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원점에서 재고해야 할 처지에 직면할지 모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후진타오, 김정일 수시동행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이후 자취를 감췄다. 후 주석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기간 수시로 동행하면서 북·중 혈맹관계를 과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후 주석의 동정은 2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컵 주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일절 보도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휴가차 동북 3성에 머물렀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허베이성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휴가를 보낸 후 주석이 또다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린서 후 주석 봤다” 증언도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은 27일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지만 전날인 26일 지린시에서 후 주석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지린시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이 베이산(北山) 공원을 함께 방문했다. 후 주석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이 같은 날 오후 김 위원장 숙소인 우쑹(霧淞)호텔에서 비공식 회담을 마친 뒤 만찬을 하면서 가무단의 공연을 관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北·中 동맹 과시 노린 듯 27일 창춘에서는 당국이 오전에 공항고속도로를 통제했고 오후에는 “후 주석이 창춘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전 10시30분 숙소인 난후(南湖)호텔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하루종일 두문불출했다. 후 주석을 비롯, 중국 최고지도부도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 호텔 주변에서는 마치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로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해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한·미 동맹을 과시했듯 김 위원장과 후 주석도 혈맹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난후호텔에서 함께 묵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난후호텔의 일부 직원은 29일 “김 위원장은 9동, 후 주석은 6동에 묵었다.”고 말했다. 28일 김 위원장이 방문한 창춘의 농업박람회장 일부 직원은 “후 주석이 동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사실이라면 후 주석은 김 위원장을 사흘 동안 수시로 만났다는 얘기다. 후 주석은 지난 5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 정상회담을 마친 다음날 김 위원장의 중관춘(中關村) 생명과학원 시찰에 동행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드러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귀국한 뒤 후 주석의 동정기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고가 잇따랐던 동북3성 시찰과 김 위원장 면담 등이 함께 소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후진타오 회담… 후계 논의

    김정일-후진타오 회담… 후계 논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의 난후(南湖)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의 후계 구도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북·중 간에 26일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라는 정보도 있으나 정부로서는 27일 회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유력 외교소식통도 “후 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가 오후 난후호텔을 방문해 김 위원장 등과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전하고 “후 주석 일행 가운데에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은 양국 간 경제협력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조 방안 외에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를 위한 양국 간 협력 방안을 중점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북한이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권력승계 문제로, 우리도 큰 결단을 할 때는 (지도자가) 국립현충원이나 아산 현충사를 찾지 않느냐.”고 말하고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북한 국내용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언급은 이번 방중이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에 대한 중국 최고지도부의 승인보다는 북한내 군부나 국민을 의식한 일종의 ‘성지순례’ 성격으로 해석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앞서 김 위원장 일행은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쯤 차량 30여대에 나눠 타고 첫 방문지였던 지린의 우쑹호텔을 떠나 창춘~지린 고속도로를 이용, 1시간30여분 만에 창춘에 도착한 뒤 밤늦도록 호텔 안에 머물렀다. 지린시 시찰 현장에서 김정은을 목격했다는 전언은 많았으나 동행 여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후 주석은 지난 며칠 동안 동북3성을 시찰한 뒤 이날 창춘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중국 최고지도부와의 회동이 끝나면 베이징으로 이동하지 않고 귀국길에 오를 것”이라고 언급, 이르면 이날 밤 평양으로 떠날 가능성을 시사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서울 김성수기자 stinger@seoul.co.kr
  • 3대세습 명분 확보… 대규모 경제지원 요청한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 이틀째인 27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북·중 정상 간 회동 내용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지난 25일 미국인 사면을 위해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외면하고 전격적으로 방중, 이례적으로 베이징이 아닌 창춘에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만큼 긴급한 현안에 대한 깊은 협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먼저 지린성 지린시, 창춘 등 ‘김일성 주석의 항일활동지역’을 돌며 김일성-김정일-셋째 아들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행보를 보인 만큼 새달 초순 북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후계 구도에 대한 협의와 함께 이를 공고화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 대표자회에 앞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구축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지지를 받으려면 중국으로부터 이를 뒷받침할 경제지원 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수해 등으로 인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북한 인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후계 구축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면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난 5월에도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미흡했다는 내부 지적에 따라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김 위원장이 급하게 움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계자로 지목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이번 방중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이미 후계자로 결정된 만큼 중국측 지도자를 알현하거나 인정 받을 필요는 없다.”며 “김정일 부자가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다면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후계구도 결정에 대한 내부 상황을 중국 측에 알리면서 북·중 관계 발전을 위한 경제적·정치적 지지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천안함 사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이어 미국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6자회담 등 북핵문제를 협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지난 5월 초에 이어 3개월 만에 다시 방중을 택한 것은 북핵문제와 관련, 모종의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 측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북측에 6자회담 복귀 등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도 생존 모색 차원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기 위한 북·미 대화 및 6자 예비회담 개최 등에 대해 북·중 정상 간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의 최근 방북에 이어 한국 방문 결과에 따라 한·미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새달 초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정치적·군사적 동맹을 강화하자는 논의도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1983년 김정일-2010년 김정은…방중 두모습

    1983년 김정일-2010년 김정은…방중 두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3년이다. 1980년 10월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인 받은 김 위원장은 3년 뒤인 1983년 6월2일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초청으로 중국을 11일간 단독 방문했다. 앞서 1982년 4월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맞아 방북한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 후야오방 총서기를 후계자 자격으로 처음 만난 바 있다. 앞서 김 주석을 수행해 1959년과 1962년 옛 소련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김 주석의 아들이자 단순한 수행원 신분이었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에 3남 김정은의 동행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정은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된 바 없다. 다음 달 초 열리는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굳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김 주석 후계자 자격으로 중국을 첫 방문했던 1983년 상황과 비교하면 위상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에게 김정은을 소개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연배도 어리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동행했더라도 중국 지도자들과의 회동에 배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대신 김 주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지린(吉林)과 창춘(長春)의 혁명유적지들을 부자가 함께 돌아보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혈통’을 확인한 뒤 귀국, 대내 선전용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김 위원장 일행이 방중 첫날 찾은 지린은 김 주석의 청소년기 혁명 유적지이다. 김 주석은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에서 위원(毓文)중학교를 조선혁명의 열망을 키운 곳이라며 그리워했고, 베이산(北山)공원의 약왕(葯王)묘 지하실에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이 27일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한 경로상에는 북한이 주체사상의 발상지라며 선전하는 카룬(卡倫) 마을이 있다. 북한은 창춘시내에서 동북쪽으로 30㎞ 떨어져 있는 카룬에서 김 주석이 1930년 6월30일 이른바 ‘카룬회의’를 주재하면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혁명노선을 발표했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 대해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로선의 탄생을 선포한 력사적 사변”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후주석 일행 호텔 안나와… 두 정상 ‘혈맹 1박’?

    후주석 일행 호텔 안나와… 두 정상 ‘혈맹 1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방중 이틀째인 27일 오전 지린(吉林)에서 창춘(長春)으로 옮겨 지린성 영빈관인 난후(南湖)호텔에 들어선 뒤 하루 종일 취재진에 포착되지 않았다. 어디를 방문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호텔주변 철통경계… 가무단 포착도 호텔 주변은 물 샐 틈 없는 경계태세가 이어졌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호텔에 들어섰다는 소문과 함께 호텔 주변의 경계는 더욱 강화됐다. 오후 2시30분 지린성 가무단이 악기 등을 챙겨 호텔 경내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정상회동 및 만찬, 공연관람 등이 장시간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현지 소식통은 “후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오늘 창춘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지난 5월 방중 때처럼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동에 시 부주석이 배석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 부주석은 전날까지 베이징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후 주석은 며칠째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후 주석이 동북3성을 시찰한 뒤 이날 창춘으로 갔고, 이에 앞서 26일 오후 김 위원장과 지린시의 베이산(北山)공원 등을 함께 둘러봤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오후 9시30분쯤 가무단 버스가 빠져나오면서 김 위원장 일행이나 후 주석 일행 가운데 한쪽이 호텔을 나올 것으로 관측됐지만 오후 11시(한국시간 28일 0시) 넘어서까지 누구도 나오지 않고, 주변 교통통제도 풀리면서 양국 지도자들이 이례적으로 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가능성이 대두됐다. 난후호텔은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와 같은 지린성의 영빈관으로 김일성 주석은 물론 중국의 당·정 지도자들의 창춘 방문 시 이용하는 호텔이다. 호텔 측은 김 위원장이 투숙한 총통(프레지던트)실의 하루 숙박비가 9999위안(약 175만원)이라고 밝혔다.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낸 지난 5월 방중 때와 달리 이번에는 김 위원장과 중국 측 모두 취재진을 철저히 따돌렸다. 이를 두고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숨겨야 할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며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은이 동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방중 첫날 오후 항일혁명유적지이자 김일성 주석의 행적이 남아 있는 지린의 베이산공원을 10여분간 방문한 김 위원장은 27일 새벽 극소수의 인원만 대동한 채 베이산공원을 다시 찾아 2~3시간 머물렀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사실이라면 김 주석이 1920년대 말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는 약왕(葯王)묘 일대를 돌아봤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 일가족 3명이 찾아왔다.”고 말해 3남 김정은을 대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권력 이양을 앞둔 상황에서 혁명 1세대인 김 주석의 유적지에서 2세대인 김 위원장, 3세대인 김정은이 김 주석의 혁명유업 계승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는 얘기여서 사실 여부가 주목된다. ●특별열차 25량 편성 북측은 지난번 방중 때 17량으로 편성한 특별열차를 이번에는 25량으로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방중 일정이 5일간이었던 지난번보다 훨씬 짧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어서 수행원이 대폭 늘었거나, 중국 지도부에 건넬 ‘선물’을 적재하고 방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이 김 주석의 혁명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 북측에서 주체사상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창춘 외곽 카룬(卡倫)마을을 방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상에서도 옛 마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1930년 6월30일 김 주석이 주재한 ‘카룬회의’에 대해 여러 차례 ‘혁명의 횃불’이라며 주민들을 선동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訪中… “권력승계 논의 가능성”

    김정일 訪中… “권력승계 논의 가능성”

    김정일(얼굴) 북한 국방위원장이 26일 새벽 전용 열차편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지난 5월 4년만에 방중(訪中)한 뒤 3개월여만의 이례적인 재방문이다.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이날 0시대에 북한 자강도 만포를 거쳐 접경지대인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을 통과한 뒤 오전에 지린시에 도착했다. 평소 다니던 노선(신의주~단둥)과는 다른 노선이다. 김 위원장은 지린시에서 고(故) 김일성 주석이 2년간 다녔던 위원(毓文)중학교와 항일유적지인 베이산(北山)공원을 방문하고 화학섬유를 만드는 화시엔 공장 등 경제시설을 시찰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 일행은 이어 이날 밤 지린시내의 우쑹(霧淞)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의 동선과 최종 목적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월 초순 열리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셋째아들 김정은의 권력승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방문일 가능성을 현재로서는 가장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방중에 김정은의 동행여부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방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제사회의 제재와 수해 등으로 가중돼온 경제난을 돌파하고자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방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또 “방중 루트로 볼때 김 위원장이 베이징(北京)으로 다시 이동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27일 지린성 창춘(長春)시를 방문하는 등 동북3성 일대 방문을 마친 뒤 베이징까지 가지 않고 동북 3성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 중국 수뇌부를 만나 면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을 영접하기 위해 시진핑 부주석이 이미 지린시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으로 향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5일 가량 중국에 머물 것으로 보이나 베이징까지 가지 않을 경우 방중 일정이 1∼3일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김 위원장이 27일 새벽 북한으로 출발해 방북일정을 하루 더 연장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면담할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지난 5월초에 이어 석달여 만에 이뤄진 것으로서 의례적 성격의 공식 방문이 아니라 ‘특수한 목적’ 하에 추진된 방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북루트는 통상 신의주와 단둥(丹東)을 통해서 가던 루트와는 다른 루트”라며 “같은 해에 또 이렇게 짧은 기간에 2회 방중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방중 목적을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3∼7일 4년 만에 전격 방중,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2000년과 2001년, 2004년, 2006년, 2010년 5월 5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했고 이번 방중이 6번째다. 베이징 박홍환 특파원·서울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시론] 日정부에 ‘합방’ 조약 무효 선언 요구한다/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시론] 日정부에 ‘합방’ 조약 무효 선언 요구한다/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올해는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 100년이라 여러 가지 행사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일 양국의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합방’ 조약 무효가 선언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선언에 참가한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민간 지식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 의미는 물론 역사적 의미도 제대로 가질 수 없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1910년에 체결된 한·일 ‘합방’ 조약은 그것에 반대하며 투쟁한 전국적 의병투쟁에서 수만 명이 전사한 사실이 증명하듯이 당시 대한제국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능한 통치자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었으며, 최근 여러 측면에서 추진된 학술적 연구 결과에서 드러나듯 불법적으로 체결된 조약이었다. 그 조약으로 감행된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는 일반 식민지배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유럽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기준으로 봐서 ‘비문명지역’이라고 본 아프리카 지역이나 ‘타 문명지역’으로 간주한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것이 일반적 식민지배였다. 반면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중세문화 수준에서는 오히려 앞섰던, 그리고 근대문화 수준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던 ‘동양 3국’ 동일문화권 안의 다른 민족사회를 지배한 것이다. 따라서 후진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힘에 겨운 것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여느 식민지배와 다른 가혹한 민족 말살정책이 강행된 ‘강제지배’, 그것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지배’를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강제적·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합법적 조약으로 간주하면 그 조약을 근거로 강행된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통치는 합법적인 것이 되고, 조선총독부의 통치권력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신성한 독립투쟁은 합법적인 권력에 저항한 불법적인 행동이 되고 만다. 반세기에 걸쳐 처절하게 전개된 이웃 민족의 신성한 독립투쟁을 불법적 행위로 간주하고도 앞으로 그 민족사회와의 평화적·우호적 협력관계를 말할 수 있는지 일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와 냉전주의로 이어졌던 지난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 세계사는 다행히도 평화주의와 지역공동체주의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지향에 앞장설 선진문명국으로 자처하는 일본이 간단없이 계속된 이웃 민족사회의 독립투쟁을 불법적 행위로 간주하고도 그 민족사회와의 평화적 공동번영을 말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건 국가건 대외적으로 떳떳하게 행세하기 위해서는 제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20세기 전반기까지의 세계사는 제국주의가 횡행했던 시기였고, 그때의 한·일 관계가 지배와 피지배관계로 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불행을 극복하고 21세기의 평화주의에 의한 공동번영의 한·일 관계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민간지식인 차원이 아니라 두 나라 정부의 합의로 ‘합방’ 조약 무효가 반드시 선언되어야 하며, 그 경우 세계의 평화시민사회가 찬양해 마지않을 것이다. 총리 차원의 유감 표시나 사죄보다 국가 차원의 ‘합방’ 조약 무효선언이야말로 앞으로의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특효약일 것이다. 1965년의 한·일 협정 때 이미 ‘합방’ 조약 무효가 선언되었어야 했지만 양국 집권자들의 역사의식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앞으로 조만간 맺어져야 할 조·일 조약 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일본 정부의 ‘합방’ 조약 무효선언이 절실히 요구되며,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어 한·일 조약이 하나로 된 후의 양국 우호관계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합방’ 조약 100년을 맞아 단행되는 정부 차원의 조약 무효 선언이야말로 앞으로 100년의 우호적 한·일 관계를 위한 중요한 담보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일 돌연 訪中] 김정일, 화섬공장·베이산 공원 방문… 시진핑 영접설

    [김정일 돌연 訪中] 김정일, 화섬공장·베이산 공원 방문… 시진핑 영접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은 26일 새벽 전용 특별열차 편으로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을 통과해 지린에 도착, 고 김일성 주석의 흔적이 남아있는 항일유적 곳곳을 둘러봤다. 이번 방중 목적을 점치게 하는 행보다. 지린의 소식통은 김 위원장 일행이 이날 오전 9시쯤 도착, 화섬공장을 참관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경찰들 밤까지 비 상대기령 이어 들른 곳은 지린의 위원(毓文)중학교. 김 주석이 2년간 다닌 곳이다. 김 위원장은 20여분간 머물며 도서관 앞에 세워진 김 주석 동상 등을 자세히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은 새벽부터 위원중학교 부근 도로의 교통을 통제하고 경찰병력을 대거 배치하는 등 김 위원장의 방문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이날 지린시 곳곳에서는 최고급 리무진 승용차를 필두로 한 20여대의 검은색 승용차 행렬이 목격됐고, 곳곳에서 교통통제가 빚어졌다. 점심식사를 마친 김 위원장 일행은 6·25 참전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와 항일혁명 시기의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혁명유적지 베이산(北山)공원에 올라 참관하고 인민광장을 시찰했다. 정통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베이산공원내 사찰에 모셔진 불상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린시 경찰에 밤까지 비상대기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묵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우쑹(霧淞)호텔에서 이날 밤 11시쯤 30여대의 차량행렬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목격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김 위원장의 지린시 시찰에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원자바오 총리가 지린시를 방문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지난 5월 방중 때에는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다롄(大連) 시찰에 동행했었다. 김 위원장 특별열차는 지안에서 퉁화(通化)~메이허커우(梅河口)~판스(磐石)~지린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466㎞ 구간으로 통상 11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전용열차로는 8~9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김 위원장 일행이 이날 오전 지린시 곳곳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다. 창춘의 한 소식통은 “창춘시의 고위직 인사로부터 김 위원장이 첫날 지린을 방문한 뒤 둘째날인 27일 창춘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창(창춘)~지(지린)~투(두만강유역) 개발계획’의 핵심도시인 창춘에서 산업시설을 시찰할 공산이 높다.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창춘에서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이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들 김정은의 동행 여부에 대해서는 “데리고 왔다.”는 정보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최고급 우쑹호텔서 묵은듯 한편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다섯 차례 방중 때 이용했던 신의주~단둥(丹東) 노선 대신 이례적으로 만포~지안 노선을 이용한 것과 관련해서는 애당초 베이징 방문 계획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지난번 방중 때와 마찬가지로 우선 동북지방의 산업시설 등을 시찰한 뒤 베이징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만포~지안 노선은 북한의 철광석 등을 중국으로 운송하는 화물열차들이 주로 이용하고, 시설도 노후화됐지만 지린, 창춘 등을 시찰하는 데는 신의주~단둥 노선보다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신의주~단둥 노선이 이번 수해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만포~지안 구간 역시 많은 비가 내렸던 것으로 알려져 설득력은 떨어진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오바마·후진타오 정상회담 ‘탄력’

    중국 외교부의 추이톈카이(崔天凱) 부부장이 미국과 차관급 정치대화를 갖기 위해 이달 말 워싱턴을 방문한다고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가 24일 보도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지난 두 달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했던 양국 사이의 첫 공식 접촉이라는 점에서 ‘외교적 접점찾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의 방북에 이은 한·미·일 연쇄방문,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곰즈씨 석방을 위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 등과 맞물려 한반도 주변정세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는 양상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미·중 양국이 ‘천안함 출구전략’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추이 부부장의 구체적인 방미 일정이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중국신문사는 양국 관계 및 공통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전했다. 추이 부부장은 카운터파트인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과 차관급 대화를 갖는 한편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 예상하는 주요 안건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이다. 후 주석의 방미는 그 자체가 갈등관계를 일시에 해소할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논의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후 주석의 방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후 주석과 만나 직접 요청했고, 후 주석이 수락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국은 9월 말 유엔총회 개막에 맞춰 후 주석이 미국을 국빈방문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하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대치하면서 실무접촉조차 갖지 못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빈방문은 고사하고 후 주석의 연내 방미 자체가 무산될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연내 후 주석의 방미가 무산된다면 양국 간 신뢰관계는 물론 세계 정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양국 모두 잘 알고 있다.”면서 “양국은 이번 접촉에서 꼭 9월이 아니더라도 후 주석의 연내 방미를 추진하기로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 국무부의 로버트 아인혼 대북·대이란 제재조정관이 다음달 초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양국 차관급 회의에서 대북제재 및 이란제재안 역시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 경제개혁 앞장 박봉주 전 총리 복권

    北 경제개혁 앞장 박봉주 전 총리 복권

    북한 경제개혁에 앞장서다 자금 전용 혐의로 2007년 해임돼 지방 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던 박봉주(71) 전 내각 총리가 3년4개월 만에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으로 복권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북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창립 50주년 기념보고회가 20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박봉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고병섭 인민봉사총국 총국장, 관계부문 일꾼들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북한 주요 인물 가운데 박봉주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전 내각 총리가 유일하다. 방송은 그가 맡은 당 부서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 전 총리가 1993년 노동당 경공업부 부부장을 역임한 바 있는 데다 옥류관이 식당이라는 점에서 당 경공업부인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마이니치신문도 최근 “박봉주 전 총리 등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측근 20여명이 최근 1~2년 사이에 복권됐다.”며 “2007년 기업에 시급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가 비판받아 좌천된 박 전 총리는 최근 장씨의 부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가 부장으로 있는 노동당 경공업부 2인자 자리에 올랐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오른 그는 임금 및 물가 현실화,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 식량과 생필품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등을 골자로 한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앞장서 추진하다 당과 군부 실력자들의 견제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6년 6월 자금 전용 혐의로 ‘40일 직무정지’에 처해졌다가 이듬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총리직에서 해임된 뒤 평안남도 소재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행정책임자)으로 내려갔다. 내각 총리 시절에는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과 면담을 하는 등 대중 관계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홍외현교수 ‘마퀴스 후즈후’ 등재

    홍외현 경남대 간호학과 교수가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퀴스 후즈후’ 2011년판에 등재됐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홍 교수는 국내외에서 왕성한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고, 만성질환 간호실무 가이드라인 개발 분야의 교육과 연구 활동에 매진한 것을 인정받아 등재가 확정됐다고 경남대는 17일 설명했다.
  • 정종환장관, 차관 이임식참석 눈길

    “장관이 차관 이임식에 나온 것은 제 공직생활에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16일 열린 차관 이임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한 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지하대강당에서 열린 권도엽 1차관과 최장현 2차관의 이임식에 참석,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덕담을 건넸다. 차관 이·취임식에 장관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정부 부처의 관례로 통한다. 행사의 주인공이 차관인데 장관이 참석하면 스포트라이트가 희미해진다는 의미 때문이다. 그러나 정 장관은 관례를 깨고 사심없이 참석한 것이다. 국토부의 한 공무원은 “장관이 두 명의 차관을 한꺼번에 떠나보내는 데다가 2년여 동안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못내 아쉬워 참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개인적으로는 두 분 차관들과 계속 호흡을 맞춰서 현안을 처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용퇴한 것은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서운하지만 흔쾌한 마음으로 보내 드린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간쑤성 산사태 中전역 추모물결

    중국의 모든 관공서와 해외공관이 15일 일제히 조기를 내걸고, 자연재해로 희생된 자국민들을 애도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8일 새벽 간쑤성 간난(甘南)티베트족자치주 저우취(舟曲)현에서 발생한 대형 산사태로 17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지 일주일째인 이날을 전국 애도일로 정하고, 거국적인 추모행사를 치렀다. 국에서 자연재해로 국가 차원의 애도일이 지정된 것은 2008년 5월 쓰촨대지진, 지난 4월 칭하이성 위수(玉樹)현 강진에 이어 세 번째이다. 새벽 5시30분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국기게양대에 조기가 내걸린 것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톈안먼 광장의 국기게양식에 나온 시민들은 ‘힘내라 저우취, 힘내라 중국’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간쑤성 성도인 란저우(州)와 산사태 피해지역 등에서는 수만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사이렌과 함께 3분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실시했다.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들도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전체회의를 갖기에 앞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전국적으로 영화상영을 포함, 모든 오락 및 유흥 행위가 금지된 가운데 수백여개의 TV 채널은 중앙방송(CCTV)의 추모 프로그램 하나만 송출했다. 저우취현의 산사태로 이날 현재 1239명이 숨지고, 505명이 실종됐다. 한편 2년 전 대지진으로 수만여명이 숨진 쓰촨성 지진피해 지역에서는 홍수와 함께 산사태까지 덮쳐 엄청난 재산피해와 수십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쓰촨성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진 등에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집중호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 11명이 숨지고 60여명이 실종됐다고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 등이 보도했다. 대지진 진앙지였던 잉슈진에서는 산이 무너져내리면서 조립식 병원 건물을 덮쳐 32명이 실종됐다. 지진피해 지역에 새로 지어진 건물 상당수가 산사태로 또다시 붕괴됐다. 쓰촨성은 가옥 2만 4000여채가 부서져 50만명이 피해를 입는 등 10억위안(약 1750억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했다. 저우취와 인접한 간쑤성 룽난에서도 14일 오후 6시 산사태가 발생, 33명이 숨지고 63명이 실종됐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위로